오빠가 돌아왔다
외투를 사러 객사에 나갔더니 “오빠라고 불러다오, 오빠라고 불러다오”가 쉼 없이 반복되는 노래가 상점마다 울리고 있었다.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장미하관(장미여관, 노홍철)이 부른 이 노골적인 노래는 히트를 했고, 덩달아 장미여관은 유명한 밴드가 되었다. 장미여관의 꽤 오래된 팬인 나는 장미여관의 노래 ‘봉숙이’가 가요 프로그램에서 무려 12위를 차지하고, 장미여관이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많은 사람이 장미여관의 멤버들을 별명으로 부르며 이야기하는 모습에 복잡한 마음이 되고 말았다. 좋은 밴드가 세상에 알려졌으니 기뻐해야 하는가, 나만의 밴드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에 화가 나야 하는가. 옆에서 엄마는 “오빠라면 역시 조용필 오빠”라고 했다. 내가 “지금도 오빠야? 60대라고 하던데”라고 하니, “영원한 오빠지”라고 대답한다. ‘오빠’라는 것은 그러니까, 생물학적 나이 범위 내의 남자를 손위 아래 여자가 정답게 칭하는 것 외에, 오래도록 동경하고 선망하는 남자를 이르는 말인 것이다.그런 의미로 나에게 오빠가 있다면 백민석이다. 그는 10년 전 〈죽은 올빼미 농장〉을 마지막으로 절필한 소설가였다. 그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그가 절필하고도 3년 후인 2006년이었다. “아흐 다롱디리”와 “얄리얄리 얄라셩”같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아무 뜻 없는 말들을 계속 읽고 외워야하는 17살의 여름이었다. 교과서에는 도무지 재밌는 이야기라고는 없었다. 장마가 오면 물이 새는 집에 살거나, 노모가 눈길을 걸으며 아들 생각을 하는 이야기들은 슬프고 장황했다. 나는 좀 재미있는 이야기가 읽고 싶었고, 도서관에 갔고, 우연히 그의 책 〈목화밭 엽기전〉을 대출했다. 소설 속에는 훗날 ‘그로테스크’라고 불리는 끔찍하고 흥미로운 이미지들이 있었고,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은 자주 화를 내고 이성을 잃었다. 나는 아무 뜻이 없는 “얄리얄리 얄라셩”의 세계에서 너무 빨리, 모든 행간과 문장에 뜻이 있는 세계로 넘어왔다. 인물들이 서로 사랑하고 다치게 하는 점을 빼고 그의 소설은 지금껏 읽어왔던 어떤 이야기와도 비슷하지 않았다. 그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팬이 되었고 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여고생들이 좋아하는 연예인과 관련된 물품을 모으는 것과 성질이 비슷했으나, 힘든 일이었다. 당연히 서점에 남은 그의 책은 근간 한 두 권이 전부였다. 다른 책들은 모두 절판이었다. 출판사에 전화해도 소용없었다. 그의 소설 서평을 올린 블로거들에게 일일이 쪽지를 보내 책을 팔아 달라고 부탁했다. 대부분은 거절이었다. 그럴 것이 쪽지는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막에서 물을 찾는 사람의 절박하고 기이한 느낌을 가득 담고 있었다. 몇 년에 걸쳐 단 두 권을 뺀 나머지 책을 모두 구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사랑한 캔디〉와 〈불쌍한 꼬마 한스〉를 책장에 꽂기 위해 헌책방이 많이 있다는 도시들을 방문했다. 불행하지만 그 책들은 구하지 못했다. 나는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의 뙤약볕 밑에서 눈물을 뚝뚝 흘릴 수밖에 없었다.전주의 한 서점에서 〈불쌍한 꼬마 한스〉를 구한 것이 몇 달 전인데, 돌연 그의 새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각종 신문에 기사가 나고 그의 책을 내는 출판사에서도 홍보에 열심이었다. 절필한 ‘소설가였던’ 백민석이 갑자기 ‘소설가’ 백민석으로 나타난 것이다. 예전보다 살이 좀 쪘고, 좀 너그러워졌고, 새 소설 역시 완전히 새롭게 써졌고 읽혀야 하지만, ‘오빠’에게 그런 것은 상관없다. 드디어 오빠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