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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보통의 청년들

보통 남자를 만나 보통 사랑을 하고 보통 같은 집에서 보통 같은 아이와 보통만큼만 아프고 보통만큼만 기쁘고 행복할 때도 불행할 때도 보통처럼만 나 살고 싶었는데...라디오에서 백지영의 보통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사를 들어보면 여자는 남들처럼 보통의 삶을 살고 싶었다고 한다. 헌데 나쁜 남자를 만나 상처를 입었다는 흔한 사랑 이야기였다. 하지만 유난히 정지 신호가 길어서였을까. 이 노래를 듣는 내내 필자는 보통이라는 말에서 어딘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최저 기준으로 살아가는 청년들10년 전에는 나도 대학생이었다. 졸업 후에는 남들처럼 직장에 들어가고, 때가 되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 아파트에 살며, 토끼 같은 자식을 낳으리라 믿었다. 당시 내가 생각했던 삶에서 보통의 높이가 100 가운데 80이었다면, 서른이 넘은 지금의 내 기준에서 보통의 기준은 100 가운데 50, 절반에 겨우 턱걸이를 하고 있다. 사람답게 살길 원했던 10년 전의 나와 달리,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보통의 삶은 생존을 위한 마지노선이 되었다.해가 바뀌면 어김없이 최저 시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최저 시급을 1만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한편에서는 최저시급을 주는 고용주를 저 정도면 된 사람이라고 말한다. 최저의 사전적 정의는 가장 낮음인데, 가장 낮은 보상을 주는 고용주는 그나마 양심적인 사람인 것이다. 버스정류장에 붙은 구인광고를 본 적이 있다. 사업주는 대학을 나온 인재를 모집하고 있었고, 당당하게 최저 임금을 준다고 적어 놓았다. 그보다 못한 처우를 받으며 일하는 환경이 얼마나 흔하면, 최저임금을 준다는 사업주의 어깨에 저렇게 힘이 실렸을까.최저임금을 보장하라는 문구가 자주 들릴수록, 최저라는 말은 본디의 뜻을 잃고 보통이 되어간다. 왜 우리는 최저의 기준을 지키는 고용주를 찾아야 할까? 청년들에게 보통이 아닌 최저의 기준을 강요하는 건 우리 사회였다. 보통의 평범한 삶을 꿈꾸며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에게, 최저임금 사수는 왜 감사한 말이 되어야할까.청년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 중 하나가 노답(답이 없다)이다. 개념이 없는 사람을 지칭하던 이 표현은, 이제 한국 사회는 노답사회라는 범위로까지 넓어졌다.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최저의 기준이 보통이 되는 사회. 필자 역시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미래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는 절로 노답이라는 말이 나온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이라는 책에서, 저자인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행복한 삶의 방식을 의지박약한 젊은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이토록 부조리한 사회에서 살게 만든 기성세대들의 업보라고 말한다. 기성세대는 성실하지 않은 청년들의 태도를 비난하며 대기업을 보지 말고 중소기업에도 눈을 돌려라, 기준을 낮추라고 이야기한다. 지금의 환경에서 스스로 만족하고 위안하는 방법을 알면 행복해질까? 청년들은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선택하고 싶은 답이 점점 없어지고 있음을 청년들은 점점 깨닫고 있다.행복한 삶 위한 선택지 사라지는 사회지금으로부터 10년 뒤 사회과목 시험에는 이런 문제가 나올 것도 같다.주관식 1. 2015년,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당시 시대상을 어떤 단어로 표현했는가?정답은 세 글자, 헬조선이라고 적어야 할 것이다. 최저를 넘어 보통의 삶을 꿈꾸며, 나만의 행복 기준을 추구하며 살고 싶지만, 주변에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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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13 23:02

강남역 살인사건과 여성혐오

지난 주말, 늦깎이로 군입대를 앞둔 후배를 만났다. 후배는 약속시각을 조금 넘겨 도착했는데 오다가 일이 생기는 바람에 늦었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후배는 정류장에서 함께 내린 여자분이 있었는데 계속 같은 방향으로 가게 되자 뒤를 힐끗힐끗 돌아보기 시작하더니 불안한 걸음걸이를 보이길래 자신이 골목길을 빙 돌아서 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강남역 살인사건 때문에 여자들이 불안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자신처럼 체격이 크다는 이유로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했다. 네가 체격이 좀 크긴 하지만, 그 여자분이 조금 앞서나가긴 했다며 후배를 다독거려주긴 했지만, 한편으로 나도 그 여자분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난 오늘도 우연히 살아 남았다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가장 유명한 추모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난 오늘도 우연히 살아 남았다. 이 메시지는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바로 나였을 수도 있다 혹은 조심하지 않으면 다음 차례는 내가 될 수 있다로 해석될 수 있다. 절박하다. 마치 공포영화나 도시괴담의 한 장면이 현실로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기에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해 여성들이 그저 한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경찰의 수사 결과 범행을 저지른 남성은 정신질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가 문제의 원인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흔히 ~녀(년)등의 여성비하와 혐오를 나타내는 표현들이 인터넷과 각종 미디어 매체에서 조롱과 유머로 통용되고 확대 재생산된다. 그러기에 범인의 진술 중 이전 직장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를 받아서라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바로 사회적 혐오의 대상인 여성에게조차 무시당해서라는 뉘앙스마저 풍긴다. 그렇기에 여성혐오의 위험성은 단순히 정신이상자의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여성비하와 혐오의 표현은 이렇게 인터넷과 미디어 매체를 통해 확대재생산되며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에 스며든다. 특히 인터넷과 미디어 매체의 접근성이 높은 젊은 연령대(10대~ 20대)에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혐오의 시선이 일부의 여성에 대한 것이며, 우리사회에서 여성혐오를 하는 것은 소수라고 비판하지만, 실제로 여성혐오적인 발언은 특정인이 아닌 여성으로 일반화되어 표현되지 일부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비하와 혐오의 표현이 일반화되어 사용될수록 은연중에 여성혐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뿌리깊게 잡혀갈 우려가 있다.'사회적 약자 혐오'로 바라봐야하지만 한편으로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라 하더라도 프레임 자체를 여성혐오에만 국한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에 대한 문제로 프레임을 넓혀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번 사건에서 불거진 여성혐오의 문제는 단순히 남성과 여성간의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대상에게, 언제든 같은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 폭력의 위험한 단면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제도적 보완과 더불어 사회 구성원들 간의 소통과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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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30 23:02

그해 여름, 그리고 지금 여기

고3 여름이었다. 4인용 밥상을 두고 선생님과 마주보고 있던 나는 접시 위에 놓인 자두를 집으며 말했다. “아, 공부하기 싫어요.” 선생님은 간호학과 학생으로 지하철 끝과 끝을 달려 일주일에 두 번 내게 수학과 영어를 가르쳐주었다. 인터넷 과외사이트에서 본 소개글이 마음에 들어 ‘찜하기’ 버튼을 눌렀다가 만났는데, 나와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성숙한 분이었다. 첫 만남 만큼이나 학습법도 남달랐다. 수학연습장 한 권을 다 채울 때마다 자필편지를 써주는가 하면 태도 산만한 내게 “십 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어 보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말로만 듣던 대학캠퍼스 잔디밭을 뒹굴게 한 것도 선생님이었고 도서관의 책 냄새가 얼마나 좋은지 알게 해준 것도 그녀였다. 책 냄새가 좋다는 걸 알려준 선생님그 사이 두 장도 쓰기 버겁던 연습장은 다섯 달 만에 무려 11권으로 늘었고 나는 여름 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보여줄 수 없는 비밀이 하나 있었다. 모의고사 시험지, 특히 빈 공간이 많은 수학시험지엔 어설픈 자작시와 소설 문장이 가득했다. 긴 꼬리를 감추지 못하고 문제의 시험지를 선생님께 들킨 날, 고개를 떨구고 있는 내게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렇게 글 쓰는 걸 좋아하는데 몰라봐서 미안하다. 이제 수학 공부 하지 말자.”그런 선생님을 거의 십년 만에 만났다. 그런데 나로서는 무척 서운한 소식을 들었다. 올 가을에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는 것이었다. 못 본 사이 선생님은 결혼을 했고, 프리랜서 번역가가 되었다. 나는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의아했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동기들보다 빨리 취직해 간호사가 되었지만 ‘이게 사는 건가’ 싶었다. 도저히 자기 자신의 삶을 돌볼 수 없었고, 이러한 삶을 놓을 수 없는 한국 시스템 안에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왜’라는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의 집에는 가구가 없었다. “원래 사방 벽이 다 책장이고 책이 2천권쯤 있었거든. 그런데 어느 날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고 살고 있구나, 저 물건들에 책임을 지지 못하고 있구나 그런 마음이 들더라.” 그래서 한 권 한 권 다 팔아버리고 나니 딱 200만원 남더라고, 내친 김에 퀸사이즈 침대와 식탁, 의자, 소파도 다 처분해버렸더니 비로소 집에 ‘뒹굴거릴’ 자리가 생겼다고 웃었다. 그때부터일까. 필요한 물건만 사고 불필요한 모임이나 각종 경조사, 만나기 싫은 사람과의 만남에서 스스로 해방될 수 있었다고 했다. 어쩌면 삶은 버텨내는 게 아니라 자기 의지로 가꾸어가는 것이라는 걸, 선생님은 조금씩 터득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를 천천히 기다려주고 가르쳐줘헤어지는 날, 내가 내민 소박한 선물에 선생님은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예전부터 선물을 참 잘했지. 고맙거나 미안하거나, 어쩌면 네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뭔가를 줬던 것 같다.” 나는 부끄러워져서 아, 하고 작은 소리를 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선생님은 오래전부터 물질적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향해 삶의 각도를 조금씩 돌려놓고 있었다는 것을, 그런 마음으로 느린 나를 천천히 기다려주고 가르쳐주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여기 자기 자신의 선택을 믿는 일이 훗날 자신의 전부가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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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23 23:02

예술인에게 복지란?

5년 전, 대학 졸업 후 예술강사로 활동했다. 초중학교에 국악을 알리는 역할이었다. 학생들을 미래의 문화소비자로 키우는 인큐베이팅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3년간 열심히 활동했다. 국악이론부터 판소리, 단소 등 국악 실기수업을 맡았다. 가장 힘들었던 과목은 민요였는데, 1교시부터 6교시까지 목이 터져라고 장구를 치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날엔 중년의 쉰 목소리로 교문을 나서곤 했다. 간혹 아이들이 국악에 흥미를 느끼고 전공을 하고 싶다는 소리를 들을 때면 예술강사 직업에 만족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예술인 기본생계 위한 예술인복지법하지만 이런 예술강사의 처우는 열악하기 그지없다. 1년 단위 계약직인 예술강사들에겐 해마다 보릿고개가 찾아온다. 여름과 겨울 방학이면 3개월은 아무런 소득 없이 치열한 계절을 보내야 했다.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할 4대 보험은 담 너머 이야기였다.이러한 불만도 심지어 누군가에겐 배부른 소리였다. 예술전공자 가운데 강사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기존 강사의 포화 상태로 일 년에 5명 이내의 신규강사를 채용하는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예술강사 자리도 귀하다. 때문에 졸업 후 관립단체를 들어가지 못한 청년 예술가들은 사회적 기업이나 문화예술단체에 몸을 담는다. 관립단체를 들어가지 않고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친구들도 있다. 팀이나 개인활동은 생계 유지가 어려워 청년 예술가들은 다른 일로 전업하거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친구들. 선후배와 동기들의 안부는 대체로 그러했다. 우리는 열악한 예술강사의 자리에 사활을 걸어야 했다.내가 예술강사로 활동하던 그 해,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생활고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예술인의 사회적 권리, 또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이어서 최고은법이라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이 만들어졌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설립되고, 예술인들의 기본적인 생계 유지를 위해 다양한 복지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그 가운데 창작준비금 사업은 예술인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창작을 중단하지 않도록 지원한다. 예술활동경력이 인정되는 예술가에게 1인당 300만원을 지원한다. 하지만 그 활동경력 인정의 절차가 꽤 까다롭다. 또한 최저생계비 소득 기준이 대다수 예술인의 현실과 맞지 않기에 유명무실하다.경제적으로 안타까운 위치에 놓이지 않고, 계속해서 의욕적인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인을 키우는 것. 무엇이 필요할까?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이 있다. 예술인은 그동안 예술활동에 대한 고정적인 인식과 틀을 무너뜨리고 작업실을 나선다. 기관이나 기업이 파견되어 예술활동을 통해 조직문화를 개선시키는 것이다. 기업이라는 조직에 예술이 들어감으로써 공동체 문화가 생기고, 회사라는 공간이 변할 수 있다. 예술생태계 속에서 자신이 처한 위치를 인식하고 능동적인 예술인 복지를 이룩하기 위한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창작환경 조성홍보마케팅 지원을필자가 생각하는 예술가의 복지는 창작환경 조성 및 체계적인 홍보마케팅 지원이라고 본다.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내면, 그 작품이 까다롭지 않은 절차와 저비용으로 문화 소비자와 만나야 한다.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 공공기관, 거리 등 다양하고 일상적인 공간이라면 더욱 좋겠다. 예술활동과 작품의 소비를 통해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야말로 예술가로서의 진정 가치있는 삶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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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16 23:02

의미 있게 나이 들어가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타인에게 어른들의 잔소리 같은 것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꼰대라는 말에도 당연하게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속한 많은 조직에서 항상 막내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사실 최근까지도 그랬다. 이십대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다 보니, 결혼은 도대체 언제 할 건지, 아이는 언제 낳아서 기를 생각인지, 앞으로도 그 직장에 계속 다닐 건지에 관한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있다. 그래서 여태까지는 내가 그 잔소리 공격의 대상이라고만 생각해 왔던 것이다.타인에게 삶에 대한 이야기 기회 늘어그런데 소년 및 아동보호사건 업무를 하며 많은 청소년들을 만나게 되면서부터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내가 하는 말이 다른 사람에게 혹시나 어른의 지루한 잔소리로 들리지 않을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나도 무언가 인생의 다른 단계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아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삶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줄 기회가 부쩍 많아지고 있다.한참을 고민하다 이것과 관련된 몇 가지 원칙을 만들었다. 첫째, 나는 정보 제공자라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다. 내가 이미 경험해서 알고 있는 객관적 사실, 그리고 그에 관한 나의 생각에 대해서 정보를 제공하듯이 이야기 한다. 내가 경험한 것들 중에서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든지 하면 좋았을 것이라고 이미 가치 판단한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미 내 인생에서 가치 판단을 끝낸 일들이라고 해서 타인도 나와 같은 판단을 하고 행동하기를 바라거나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둘째, 상대방의 이야기를 최대한 수용적인 태도로 경청한다. 그리고 셋째, 상대방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것은 오롯이 그 사람의 몫이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둔다. 그 사람이 하려는 선택이 내 입장에서는 잘못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여러 정보를 충분히 듣고도 그 사람이 그런 결정을 하겠다는 결단을 내리면 그것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내가 그건 해 봐서 아는데, 그래도 그건 아니지라는 말은 정말로 그 관계에서 불필요한 것이다.요즘은 러닝머신 위에서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를 팟캐스트로 하루 늦게 듣는다. 그러다 예전 방송을 찾아 듣게 되었는데,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파치노가 했던 실수를 해서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라오.라는 명대사가 흘러나왔다. 알파치노가 한 여자와 춤을 추려 하는데, 그 여자가 자신이 춤을 잘 추지 못하고 실수를 할까봐 걱정하자 그녀에게 한 말이다. 내게는 시행착오였던 그 선택으로 그 사람은 탱고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상대방을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해야이렇게 몇 가지 원칙들을 정하고 나니 결국 이게 바로 다른 사람이 내게 해주길 원하는 방식인가 싶기도 하다. 상대방이 내게 해주기를 원하는 방식대로 다른 사람을 대하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나이에 관계없이 상대방을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될 일이다.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생물학적 노화를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내가 경험한 것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고, 주변 환경은 언제나 빠르게 변해간다는 점을 인정하고 다양한 세대와 관계맺음을 잘 해갈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마음만은 아직 청춘이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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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09 23:02

청년일자리정책, 근본적 노력 필요

통계청이 3월 발표한 청년실업률은 12.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지난달 27일 정부는 새로운 청년일자리정책인 청년여성 취업 연계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이번 정책은 박근혜 정부의 여섯 번째 청년일자리정책으로 기존과 달리 정부가 청년일자리의 생산자가 아닌 매개역할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과 청년에게 직접 지원금을 지급하는 등 수요자중심의 정책으로 전환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정부는 이를 통해 6만명이 혜택을 볼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정부, 수요자 중심 정책 전환 시도이번 일자리정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정책은 청년취업내일공제와 임신기간 중 사용가능한 육아휴직제도이다. 청년취업내일공제는 중소기업에서 청년취업인턴제 종료 후 정규직으로 2년 이상 근무하고 300만원을 저축하면 정부가 600만원, 기업이 300만원의 지원금을 주어 총 1200만원의 자산형성지원금을 마련해준다는 것이다. 이는 현행 청년인턴사업에서 변형된 형태로 인턴지원금은 현행과 같이 유지하되, 취업지원금과 정규직전환지원금의 지급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정규직 전환 후 1년 이상 근무하면 기업에 지원되던 390만원 중 300만원을 정규직 전환 후 2년이상 근무하면 해당 청년에게 직접 지원하도록 한 것이 정책의 주요 내용이다.하지만 자산형성지원금제도는 수요자중심으로 전환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의의는 있지만 근본적인 청년일자리 창출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청년취업내일공제를 통해 1200만원의 자산형성지원금을 받는다 해도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임금격차를 생각한다면 그 이후 해당 중소기업에서 계속 근무할 동기가 떨어지게 되는데, 정작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임금격차를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방안에 대한 논의는 빠져있기 때문이다.한편으로 기업의 입장에서도 청년의 정규직 전환을 통해 지원되는 금액이 감소함에 따라 고용창출이 활발히 이루어질지도 의문이다. 결국 이번 정책이 정부의 예상 만큼 청년들이 일하고 싶은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임신기간 중 육아휴직을 사용하게 할 수 있도록 한 정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주변에서도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경우를 보면 없어서 못쓴다기보다는 보장받는 만큼 쓰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따라서 임신기간 중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보장한 정책의 취지는 훌륭하나, 이에 앞서 보장된 육아휴직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우선되어야 한다.예산 편성 등 적극적 지원 이어져야정부가 발표한 이번 청년일자리정책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수요자중심으로의 전환, 그리고 기존의 일자리 생산자에서 매개자로의 역할전환을 꾀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또한 각 부처별로 난립하던 청년일자리 정책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점도 발전했다고 할수있다. 하지만 정부에서 내놓는 청년일자리정책들이 매번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구조개선과 예산편성보다 지금까지 큰 실효성이 없던 제도를 조금 변형시키거나 반복하여 제시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어 여전히 아쉽다.지난 정책들에 대한 냉정하고 철저한 분석과 구조개선, 예산편성 등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청년일자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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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02 23:02

못난 친구들 매년 전주를 습격하는 이유

이제 안다. 친구들이 매년 5월이 되면 일정을 비워놓고 전주 여행을 계획한다는 사실을. 그런 전주에 운 좋게 살고 있는 나를 덤처럼 보러 습격한다는 사실을. 이제 과감하게 한옥마을은 생략하고 전주 천변길이나 뒷골목을 찾아다니며 블로그 맛집보다 현지인이 가는 진짜 식당을 어슬렁거릴줄 안다는 것을. 삼례 비비정이나 우석대 캠퍼스를 넘어 소양의 송광사나 작은 호숫가조차 동네사람들처럼 눈에 익게 되었다는 것을. 게임 퀘스트 깨듯 매년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며 전주력 만렙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못난 친구들, 그들의 이상한 열정이 이제는 두렵다.전주영화제가 더 설레는 이유그런 까닭에 친구들을 모시고 영화의 거리를 싸돌아다니다 상영관에 줄줄이 앉아 다큐멘터리영화나 제3세계 영화에 눈 맞추는 일은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연중행사가 되었다. 리플릿과 데일리 책자를 꼼꼼히 읽어보며 올해 프로그램과 섹션별 영화를 살펴본다. 낯선 감독의 더 낯선 언어를 접하며 엔딩 크레딧의 마지막 이름이 사라질 때까지 짠하게 지켜본다. GV(관객과의 대화)에서 만난 감독과 배우와 평론가의 대화에 호응하고 영화가 남긴 소용돌이를 매만지며 묵직한 기분으로 상영관을 나선다. 우리는 매년 전주국제영화제가 부려놓은 서로 다른 영화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조금씩 성장했다. 불편한 영화의 결말에서 환한 진실을 목도하기도 했다. 그런 변화의 면면을 감지하면서 전주국제영화제의 존재가 관람객의 태도와 생각을 어떻게 진취적으로 바꾸어놓는지 생각했다.국정원의 간첩 조작사건을 집대성한 다큐멘터리 〈자백〉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최초로 상영된다는 것은 근래 가장 놀라운 소식이었다. 메가폰을 잡은 감독이 문화방송 해직 피디 출신 최승호 〈뉴스타파〉 앵커여서 더 그랬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걱정이 됐다.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인 김승수 전주시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영화 표현의 자유는 전주 시민과 관객을 위한 것이며 어떤 외압도 없을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근래 들은 가장 고마운 말이었다. 20년 동안 공들인 부산국제영화제의 탑을 무너뜨리고 있는 자들이 지난 몇 년 간 절대 언급하지 못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수상하고 이상해지는 시절을 살고 있는 지금, 독립과 자유는 망각의 구호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런 면에서 언제부턴가 영화가 사라진 것 같은 모든 영화제에서, 오직 영화와 이야기 프로그램에 집중하려했던 전주국제영화제의 의지가 새삼 빛난다. 급진적인 미학 영화들에 고립되지 않으면서도 산업적으로 생산성을 확장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그들의 노력은 귀중하다. 물론 예산이나 규모면에선 비교 곤란한 2등이지만, 다른 쪽에서 더 행복한 2등이 되면 좋겠다. 무엇보다, 자유로운 영화제가 되었으면 좋겠다.외압 없는 자유로운 영화제나흘 뒤인 29일 금요일,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막이 열린다. 그날 여고 친구들도 전주에 온다. 우리는 온라인 예매가 오픈 되자마자 가장 먼저 끊은 그 영화를 보고, 조금 어둑해지면 자주 가는 선술집에서 놀다가 불콰해진 얼굴을 들고 오랜만에 한옥마을을 산책할 것이다. 가맥집에서 영화 얘기를 하며 노가리를 뜯다가 좀더 붉어진 얼굴로 집에 와서 가져온 이불보따리를 아무렇게나 펼쳐 놓고 뻗어 잘 것이다. 다음 날 느즈막이 일어나 콩나물국밥을 먹고 천변을 산책하다 생각난 듯 차를 타고, 기차를 타고 역으로 역으로, 각자의 도시로 흩어질 것이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약속처럼 모이는 전주의 봄, 영화의 거리. 얼굴만 봐도 흥겨운 못난 친구들의 습격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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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25 23:02

표정 지상주의

밤 12시 신데렐라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 필자는 매일 업데이트 되는 웹툰 만화를 보기 위해 어김없이 스마트폰을 켜고 어플을 실행한다. 자주 보는 웹툰이 하나 있는데, 제목은 외모 지상주의이다. 사실 이번 컬럼 제목은 그 웹툰 제목을 참고해서 정해지게 되었다.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주인공은 안경을 낀 못생긴 얼굴에 아주 통통한 몸을 하고 있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흔히 일진이라고 하는 아이들에게 돈을 빼앗기고, 빵셔틀을 하며 지낸다. 주인공은 다른 학교로 전학가면서, 새로운 삶을 살기 원하지만, 호감적이지 않은 외모로 인해 이전과 똑같은 삶을 산다. 그렇게 무의미한 삶을 살던 어느 날 눈을 뜨고 일어났는데, 8등신의 몸,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의 또 다른 몸으로 태어나고, 이전과 다른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되는 판타지 만화이다.상대방에 대한 호감 1순위는 외모오지랖 넓은 필자는 주변에서 결혼정보업체를 차리라는 말이 나올만큼 소개팅 주선자로 많이 나섰다. 세 커플을 결혼시키면 천국을 갈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이미 천국행 티켓은 따놓았다고 볼 수 있다.주선자로서의 경험으로 봤을 때 양쪽 당사자들은 흔히들 상대방의 외모나 재력을 묻는다. 여자들은 대부분 키는 몇이냐?, 어떤 직장에 다니냐?, 차는 있느냐?고 묻고, 남자들은 오직 하나 예쁘냐?고만 묻는다.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질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늘 당혹스럽기만 하다. 현실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과 추구하는 것에 근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편견으로 인해 소개팅은 실패로 끝난 경우가 다반사였다.외모? 물론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외모로만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것 같다. 제일 먼저 상대방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외모는 그 사람의 습관, 행동, 말투, 집안 환경 등을 경험하지 않고 자신만의 상상 속 이미지로 형성해버린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벗어나는 느낌을 받을 때면 실망을 하고 만다.우연히 접한 동영상 강의에서 지속적인 만남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은 동심이 없고 감정을 느끼지 못하다고 했으며, 특징은 흔히 계절을 못 느낀다고 했다. 꽃 피는 봄이 오면, 설레는 감정에 봄 나들이를 계획하는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그냥 춥다., 덥다.로 이분법적 사고로 판단 해버린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소개팅에 나가기 위해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지만, 실제로 소개팅을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오면 상대방의 대한 기억은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의 웃는 표정, 말투, 제스처, 행동이라는 통계도 있다.외모보다는 표정에 집중해야우리는 지금껏 외모에 대해서만 고민했을 뿐 표정을 보고 살지 않았다. 필자는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못생겼다. 하지만 그날의 기분과 표정에 따라 가끔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 외모를 뛰어넘어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표정이라고 생각한다. 억지로 만들어내는 표정은 표정이 아니라 가면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만들어지는 가면은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춰버리고, 열등과 어두운 자아를 가진 이중적인 삶을 살게 만든다.가면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감정을 표정으로 드러내고 건강하게 가꾸자. 그것이 바로 상대방과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한 삶을 살 수 있고 가장 매력적인 삶이라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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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18 23:02

그래도 우리는 투표를 하자

총선을 앞두고 청년들의 낮은 투표율에 관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이는 청년 정책의 부실 혹은 부재로 이어지고, 다시 정치에 대한 청년들의 불신이 생겨난다. 악순환이다. 정치적 효능감 경험 많지 않지만청년들이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투표할 의향을 밝혔다는 몇몇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지만, 실제로 더 많은 청년들이 투표장으로 발걸음을 옮길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청년들의 투표 탄력성이 높기 때문에, 이들이 실제로 투표할만한 동기를 부여하는 게 중요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평소에 정치에 무관심했던, 혹은 이에 불신감을 가진 청년들의 마음이 갑자기 어떤 근사한 홍보물을 보았다고 해서 쉽게 움직일까?정치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이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후보자와 정당에 관한 정보를 얻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각종 선거 용어는 생소하고, 일일이 공약을 찾아보며 비교 분석해 보는 일도 만만찮다.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건 알지만, 나 하나 이런 노력을 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싶은 마음이 슬며시 든다. 급기야 이런 데 마음을 쓰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취업 준비를 위해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이를 두고 비난할 수만도 없는 현실이다. 청년들은 정치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을뿐더러 정치 참여가 생활을 개선시킬 거라는 기대가 없으니, 정치에 참여할 특별한 이유를 찾기 힘들다.정치적 효능감이라는 말이 있다. 나의 정치 참여가 효과가 있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믿음은 보통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 경험은 처음부터 특별하거나 거창한 것이기 어렵다. 정치 참여가 내 권리를 보장한다는 믿음은 일상적 경험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일상적 경험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러한 경험은 주로 민주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초 교육을 받는 10대에 풍부하게 축적되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 청년들은 이러한 일상적 경험을 풍부하게 축적해온 세대가 아니다. 당장 나의 경험을 돌아보아도, 정치적 효능감을 경험했던 기억이 많지 않다. 학급 내 반장 선거를 했던 과정, 반장의 역할, 학급 회의의 운영 그리고 각종 의사 결정 과정 등을 아무리 떠올려 보아도 그렇다. 갑자기 각종 법상 성년이 된다고 해서 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노련함 같은 게 생길 리 만무하다. 이 시대 청년들은 학창 시절에는 입시 경쟁에, 성인이 되어서는 생존 경쟁에 매달리느라 바빴다. 청년층 과소대표 되지 않도록 한 표를청년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불신을 무조건 환경 탓으로 돌리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청년들의 낮은 투표율이 나 그리고 당신의 탓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서투르더라도 괜찮다. 적어도 청년층이 과소대표 되지는 않도록 하자. 내가,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투표이고, 결국 우리를 둘러싼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것도 투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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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11 23:02

청년정책과 투표

냉소와 무력감이 청년들을 관통하고 있다. 전통정당에 대한 신뢰는 많은 부분 무너졌다. IMF금융위기 이후 청년실업 등 청년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지는 벌써 십수년이 지났지만 이태백, N포세대, 달관세대에 이르기까지 자조적인 신조어가 유행하도록 청년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약속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만성적인 실업이 계속되고 있고, 이제는 금수저-흙수저논란처럼 청년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로까지 고착화 되고 있다.청년정책에 지역청년들 존재하는가2016년 호남지역 통계청에서 발표한 인구추이를 보면 20대와 30대로 대표되는 청년인구는 꾸준히 유출되고 있으며, 40대와 50대의 유입보다 유출의 감소폭이 커 2015년에는 전북인구의 순유출을 기록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청년인구의 이동을 고려할 때, 통계청에서 발표한 추이에 비해 체감하는 청년인구의 유출은 이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굳이 통계를 예시로 들지 않더라도, 청년인구는 줄어드는 추세이다. 따라서 수적으로도 청년은 정책을 주장할 수 있을만한 입장이다. 물론 이같은 이유가 청년들이 유권자로서 수적인 열세와 조직적인 단결력이 떨이지기 때문에 청년정책의 필요성이 떨어진다고 반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청년인구 유출에 대한 심각성과 정책적인 지원이 요구되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여전히 우리 지역정치권에서 청년유권자에게 정책으로 표현되는 관심이 열악하다는 점은 몹시 유감스럽다.이번 20대 총선을 맞아 후보들과 정당에서 내놓은 정책을 분석해 보면 일자리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가장 심각한 청년문제는 무엇인가에 대한 응답비율과도 이어진다. 청년스스로 가장 큰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이 바로 일자리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청년문제가 일자리 문제로 귀결되는가, 혹은 일자리만 해결되면 모든 청년문제가 해결되는가라고 비판할 수 도 있지만, 한편으로 일자리 정책이야말로 지역에서 청년들이 가장 갈급하는 정책이기도 하다.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일자리문제 외에도 분명 지역적 특색을 갖는 청년들의 욕구가 있을 진대, 이는 유감스럽게도 반영이 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사실상 명확한 수요조사 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청년, 그리고 유권자로서 선거를 통해 확인한 사실은 제도와 순응하는 태도로는 그 어떤 실질적인대안도 탄생시기키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는 구 질서를 분명히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모든 광장 시위와 점거 시위가 증명해 보였듯이,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주권회복과 현 의회제도 사이에 모순된 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주권회복을 위해서는 현 제도를 배척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투표권 행사와 같이 적극적으로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이름없는 청년에서 청년유권자로물론, 이러한 입장에서 청년 문제를 제도화 혹은 재-제도화된 정치로 환원시키는 순간 이 모든 시도와 노력이 허무로 끝나버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오늘 대다수 청년들이 보이는 정치적 무관심 또는 정치적 무중력적 상태(수평적 정치에 대한 환상)에 입각할 경우 특히 더 그렇다. 그러나 둘 중 어느것이든 간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현실에 답하지 못한다면 결국엔 기득권의 질서에 얽매이게 될 것이다. 그것도 오로지 그 질서의 방식에 따라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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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04 23:02

복종의 가려움

‘단군 이래 정부 최대 대학 지원 사업’이라 불리는 ‘프라임 사업(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 계획서 마감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정원 감축 등 구조조정에 따라 재정이 얄팍해진 상황에 등록금 인상 상한선(1.7%)을 조금만 올려도 각종 재정지원 사업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게 돼 동결할 수밖에 없었던 대학들은 정부의 파격적인 ‘당근’지원사업에 또 을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해 대학구조개혁평가로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다시 거대한 사업을 맞이한 당혹과 혼돈을 느낄 새도 없이 전국 대학들은 짧은 기간 동안 어떤 창조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사회 인력 수요에 맞춘 대학 학과 조정단일 사업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6000억원(3년)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하는 프라임 사업은 사회의 인력 수요에 맞춰 대학 학과별 인원을 조정하라는 것이 골자다. 구체적으로 인문·사회·예술과 사범대학 등 이미 사회수요를 넘어선 학과의 인원을 줄여 실용 학과 위주로 구조조정 하라는 의미에 가깝다.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14~2024년 대학 전공별 인력수급 전망’ 자료가 사업의 명분이자 주재료다. 저출산과 인력 초과 영향으로 공학계열의 공급부족과 공학을 제외한 기타 계열의 공급 과잉이 우려된다는 ‘전망’이 프라임 사업의 무쇠 오른팔이 되어주었고, 전국 대학이 앞 다투어 뛰어들고 있는 거대한 당근 게임 카운트다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성격은 다르지만 DNA는 같은 ‘코어 사업(대학 인문역량 강화사업)’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사회수요에 맞게 융합하라는 주문이 들어 가 있다. 코어사업의 5개 항목 중 ‘인문기반 융합전공 모델’ 예시를 보면 ‘인문학과 다양한 학문이 결합한 융합전공 개발을 통해 창의·인문 인재 양성’이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러한 부분이 인문학의 본질을 흐리게 할 ‘짬뽕’학과의 개설을 부추긴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기본계획안에 ‘국공립대 총장직선제 폐지’ 등 사업과 무관한 과제까지 심사기준에 들어가 있다는 것도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정부는 사회 수요와 대학 교육 간 ‘미스매치’를 해소하고 청년 실업난을 완화하기 위해 전공별 수급을 고려한 대학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언뜻 보면 정말 불가피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는 청년 실업난을 해결해야할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대학’이라는 확신이 짙게 깔려 있다. 지원 사업이란 명목 아래 대학을 취업교육학교로 규정하고, 확실하지도 않은 전망을 미끼로 학생들의 미래를 뒤흔들며, 주어진 기간 안에 대학 구성원들과 합의까지 원만하게 끝내라는, 세상에 없는 수를 두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길들이기식 태도 학생들 피해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사업을 시행한다면서도 정식으로 공고가 난 것은 3개월 전에 불과한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일찍이 지원 사업 소식을 듣고 셀프 구조조정에 들어간 대학도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길게는 1년, 짧게는 3개월 기간 동안 어느 착한 대학이 구성원들과 모여 자율적으로 논의하고 방향을 결정 지으려 하겠는가. 학과 통합과 폐지에서 언제나 빠져있는 논의의 대상, 정부의 길들이기식 태도가 전염병처럼 대학에 퍼져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되물림되고 있는 현실. 불확실한 전망만 믿고 대학의 존재 이유 자체를 쥐고 흔드는 막대한 재정지원사업의 진짜 전망은 ‘복종’아닐까. 복종, 그것은 또 다른 지원사업 세계의 문을 연 한국형 인공지능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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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28 23:02

청춘을 맞이하다

작년 여름. 평소 알고 지내던 선생님에게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 에너지 자립마을로 유명한 임실 중금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연극작품을 하나 기획해달라는 것이었다. 전통 음악공연을 주로 기획했던 나에게 연극을 기획한다는 것은 조금 생소한 작업이었지만, 선뜻 제안을 받아들였다.날씨가 참 좋았던 주말. 임실 중금마을을 찾아가 담당자와 함께 극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시와 비교해서 청정지역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농촌의 환경오염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었다. 특히 오래 전부터 몸에 배인 습관 그대로 농촌의 어르신들은 쓰레기를 소각하고 있었다. 농사에 쓰이는 비닐과 농약병 폐기 문제가 컸다. 결국 중금마을 할머니들의 쓰레기 분리수거 이야기를 주제로 교육형 연극을 만들기로 했다.80대 여배우들을 만나다마을회관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여든이 넘은 분들이었다. 집에서 나오는 생활 쓰레기를 전부 분리수거 해서 버렸다. 요구르트나 우유팩은 깨끗이 씻어서 버릴 정도로 분리수거가 몸에 배어 있었으며, 잘못 분리된 쓰레기를 다시 보기 좋게 분리수거해 놓았다.우리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할머니들의 삶 그대로를 무대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환경에 대한 할머니들의 생각과 평소 자주 쓰던 말투, 행동을 대본에 녹이기 시작했다.농번기와 함께 본격적인 연극연습이 시작되었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들은 성치 않은 몸과 대사를 외우는 일, 그리고 바쁜 농사일로 힘들어 했다. 연습이 점점 어려워졌다. 나는 힘들겠으니 다른 사람과 하라며 연습을 빠지는 일도 있었다. 우리는 연극 공연을 안 해도 좋으니 영상이라도 남겨놓자고 참여를 당부했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그렇게 할머니들과의 밀고 당기기로 가을을 보냈다. 김장철이 다가왔다. 김장을 위해 고향을 찾은 할머니의 아들과 손자, 며느리들은 자연스럽게 연극을 연습하는 할머니를 봤다. 고향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가 대본을 들고 연극을 준비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나 보다. 이내 그들이 연극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그 뒤로 나는 할머니들의 연습 영상을 가족들에게 보내주며, 수시로 중금마을의 소식을 전했다.그 뒤로 할머니들은 스스로 대사를 외워오기 시작했다. 중금마을에 갈 때마다 음식을 싸가던 예전과 다르게, 이제는 할머니들이 한 상 푸짐하게 차려놓았다. 우리와의 연습을 매우 즐거워했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이제 중금마을의 할머니들은 연극배우가 되었다. 올 한 해에도 많은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제9회 그린웨이 축제 개막식 메인무대에 초청되었으며, 임실군 마을 순회공연도 하게 된다. 연말에는 할머니들의 영상을 작은 영화제 출품되기로 했다.재생되길 바라는 마음은 더 애틋할머니들의 삶과 쓰레기는 묘하게 교차된다. 여든이 넘어가는 할머니들은 스스로의 삶을 관심 받지 못하는 쓰레기와 닮아 있다고 본다. 분리수거를 통해 쓸모 있는 물건으로 재생되길 바라는 마음은 그래서 더 애틋했다. 이번 공연 기획은 사람과 사람을 잇고, 그들의 삶에 촘촘히 스며드는 과정, 또 그 의미를 재해석하는 작업일 수도 있다. 청춘의 사전적 의미는 만물이 푸른 봄날을 뜻으로 인생의 젊은 의미를 뜻한다. 여든 넘어 푸른 봄날을 맞이한 소녀같은 할머니들이 늘 건강하고 행복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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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21 23:02

청소년 범죄로 젊은 시절 낭비되지 않도록

뒤늦게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EBS)라는 프로그램에 푹 빠져 있다. 여기에는 심각한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거나, 주인을 심하게 무는 등 행동교정이 필요한 강아지가 나온다. 그리고 그 가정에 전문 훈련사가 방문하여 문제 행동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을 개선해 나간다.위 프로그램을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강아지들이 어떤 문제 행동을 갑자기 보이는 이유는 없다는 훈련사의 말이었다. 강아지들은 사람들이 문제라고 인식할만한 행동을 하기 전에 수없이 많은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신호들을 보지 못했거나, 보고도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심지어 알면서도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소년보호사건 국선보조인 활동나는 서울가정법원 소년보호사건 국선보조인 활동을 하고 있다. 소년보호재판을 받게 된 소년들이 적법 절차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을 한다. 그리고 소년들을 변호하는 일을 하는 동시에 소년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조사하고 지도하는, 상담사와 비슷한 역할도 한다.재판을 받게 된 소년들과 이야기를 하며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이 아이가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겠구나.라는 것이다. 소년의 주변을 살펴보면, 보호자가 폭력적이거나 방임하는 경우, 지속적인 주 보호자가 없는 경우, 집단 따돌림을 받았던 경우 등 그 보호력이 미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이런 상황에서 소년들은 계속 신호를 보낸다. 위 TV 프로그램 속 강아지처럼 말이다. 나를 돌봐주세요, 더 사랑해주세요, 내게 지금 이런 문제가 있어요, 내 마음을 알아주세요, 라고. 소년은 어느 날 성인에게 대들기도 하고 잘 하던 숙제를 하지 않기도 했을 것이다. 자신의 신호를 주변에서 잘 알아주지 않으면 소년은 외로움에 화가 많이 났을 것이고, 학교에 나가지 않기도 했을 것이다. 특히 자신의 생각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소년일수록 문제 행동은 더욱 심화되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소년보호재판을 받게 되어 나와 만나게 되었을 소년들. 우리는 그 사소한 신호를 무시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물론 온정적인 시각에서 소년을 이해하기에는 피해자의 고통과 상처가 상당히 큰 경우가 있다. 혹은 자신의 행동이 범죄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미약하거나 죄책감이 적은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분명히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고 진정으로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정신과적 치료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그 맨 처음 시작은 대부분 아주 작은 것이었을 터이다.세상에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국선보조인으로서 소년과의 만남이 지속적이기는 어렵다 보니 아쉬울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짧은 만남 속에서도 소년들이 세상에 나의 첫 신호를 이제라도 알아주는 성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나와의 만남이 그들에게 치유와 반성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책임이라는 것을 배우기를 바란다.세상에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 소년들이 보내는 그 첫 신호를 민감하게 알아채고 반응하는 것은 청소년 범죄를 예방하는 첫 단추이다. 그 첫 단추를 잘 꿰어서 소년들의 젊음이 더 이상 낭비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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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14 23:02

청년기본조례, 청년문제 해결위한 초석

2016년을 맞으며 올해의 화두 중 하나가 바로 청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향신문의 〈부들부들 청년〉, 한겨례의 〈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한국일보의 〈한중일 청년 리포트〉등 앞다투어 기획한 청년 시리즈들은 절망한 청년세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 덕분인지 근래 청년에 대해 관심이 부쩍 늘어난 것을 체감하고 있다.청년 스스로 해결 주체로 나서야하지만 한편으로 관심이 높아진만큼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는 현상들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간간히 들려온다. 청년이라는 이름을 빌어 그다지 연관성 없는 일들을 포장하는데 이용되거나 특별한 내용도 없이 비슷비슷한 내용을 반복하는 자리에 동원되는 것에 염증을 느끼는 청년들도 늘었다. 그래서인지 늘어난 관심이 반갑기도 하지만 모든 세대의 다수가 힘들어 하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유독 청년이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왜인지 스스로가 반문하며 두려움이 엄습할 때도 있었다. 정녕 청년은, 이대로 한때의 유행으로 소비되며 한국사회에서 가장 불쌍한 세대로 그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실제로 청년세대의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의 정책은 늘어나고 있으며, 기성세대의 관심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청년세대의 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주체는 바로 청년이다. 어느샌가 청년이 국가적 문제가 되어 버린 이래, 사회는 끊임없이 청년전문가를 찾기에 급급해 왔다. 하지만 그들이 내놓는 해답이 과연 청년 문제를 해결해 주었던가? 또 그들이 얼마나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해주었던가? 물론, 그 안에는 기성세대의 지혜로운 통찰도 있었고 청년들이 반드시 귀담아 들어야 할 조언도 많았다. 하지만 내 문제에 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인 것처럼, 청년문제도 결국 문제에 대한 인식과 고민의 주체가 청년이 될 때 비로소 궁극적인 해결이 가능한 것이다.최근 청년문제의 해결과 지원의 일환으로 서울시를 비롯해 각 광역단체들과 기초단체들에서도 청년지원조례가 속속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 지역의 경우 전북도에 이어 전주시에서도 시의회를 중심으로 청년기본조례안을 준비하고 있으며, 3월 중 청년들과 함께 공청회를 가질 예정이다. 청년기본조례안은 청년의 사회참여 확대, 학습권 보장, 능력개발, 고용확대, 부채경감, 문화활성화, 청년공간 마련 등 지역실정에 맞는 정책을 마련하는 내용이다. 이번 청년기본조례안은 2015년 가결한 전주시청년일자리창출촉진에관한조례와 별도로 광범위한 분야를 담고 있어 취업문제 외에도 청년들을 지원하고 청년들 스스로 청년문제의 해결주체로 설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지역사회를 청년들 삶의 터전으로한편으로 청년기본조례의 제정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바로 청년들에게 지역사회의 자리를 주는 것이다. 청년들이 지역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청년들이 그동안 실질적인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체감이 이와 같았을까? 청년기본조례의 제정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청년들이 자신의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자리매김하고 더 나아가 청년들에게 지역사회가 머물다 가는 공간, 거쳐가는 공간이 아닌 청년들이 꿈꾸는 삶의 터전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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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07 23:02

어른들의 말

졸업을 했으면 취업을 하라는 말은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는 책 제목처럼 무심한 칼날 같았다. 그만큼 일상적이고 또 잔인했다. 직장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면 어느 직장에서나 평생 마찬가지라는 말을 믿었다. 그 말엔 연륜이 묻어나왔고 믿음직한 경험이 깔려 있었다. 그만큼 사실적이고 무시무시했다. 버텨야 한다. 참아야 한다. 열심히 해야 한다. 열정이 있어야 한다. 노력해야 한다. 그런 말들을 차곡차곡 모아 두 손에 꼭 쥐고 달렸다. 어른들의 말을 따라가면 조금도 위험할 것이 없었다. 험한 길이어도 아직 젊으니 괜찮았다. 뒤돌아볼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묻지 마라. 따지지 마라. 속 보이지 마라. 들을 때마다 발목에 채워두었다.호통만 치는 무서운 세상누군가 그 말을 의심할 때는 비슷한 다른 말을 꺼내 손목에 채워주었다. 묻고 싶고 따지고 싶고 다 털어버리고 싶은 그런 날에도 어쩐지 희망을 바라보고 의지를 확인하고 괜찮다고 다독였다. 감정을 숨기지 못한 날에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고 자책했다. 그래도 가만히 버티고 있으면 괜찮아질 것을 알았다. 내일이 있고 또 다음이 있으니까.이 세계의 오늘은 자주 바뀌었다. 구천에 떠돌던 말들은 더 강력하고 날카로운 이름을 달고 아프게 날아다녔다. 3포세대란 말은 9포세대로 진화하고, 헬조선의 진흙수저들이 땅을 치고 있었다. 누군가는 가까운 과거가 그리워질 거라 말하고, 누군가는 앞으로 더 나빠질 이곳에서 지옥이란 말조차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자고 한다. 이제 망국(亡國)이라고 말이다.그 와중에 대통령 어른은 화를 내며 책상을 내리치고 있었다. 왜 우리더러 책상 밑에 들어가 이상한 법이 가리키는 대로 조마조마 살라는 건지 모른다. 또 다른 어른들이 수십 년 동안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일군 길인데도 모른다. 모르는 것은 많다. 최저임금 월급으로는 집도 방도 결혼도 아기도 가질 수 없는데 현실적인 대안도 없이 어떻게 가정을 꾸리고 살라는 건지 모른다. 계약직을 늘려봤자 불안의 길이만 더 길어질 뿐인데 왜 자꾸 개혁이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모른다. 정말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이 여기인지 어디인지 모른다. 왜 자꾸 어떤 나라랑 비교하는지 모른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른다. 말은 듣지 않고 사정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호통만 치는 어른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스운지 모른다.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못한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있다.그런데 이제 그 말을 조금 비틀어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래서 말이지만 어른들의 말은 대통령의 공포정치의 궤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낡고 닳고 힘센 말이 점점 빛을 잃어가는 시대, 요즘 국회단상에 선 어른들의 말이 새삼 빛난다. 장장 몇 시간 동안 부려놓은 말에선 파도가 굽이치고 행간에선 칼바람이 분다. 어느 역사교과서보다 더 생생한 역사를 듣고, 어느 나라보다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발자취를 느낀다. 말은 격랑 속이지만 나아갈 방향은 더 뚜렷하게 보인다.마음 울리는국회 '필리버스터'현실엔 고개 숙이지만 말 한마디에 다시 고개를 들고 눈을 뜨게 된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국회방송을 켜 두고 그들을 응원하고 있다. 모처럼 어른들의 말이 피부에 와 닿기 힘든 까닭이고 이처럼 마음을 울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임주아씨는 우석대를 졸업했고, 2015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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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2.29 23:02

예술가에게 재능 기부란?

대학생 무렵, 한참 레슨을 받기 위해 선생님을 찾아 다녔다. 당시 선생님은 개인 음반도 발매했으며, 지역 축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공연무대에 오를 만큼 인정을 받는 대금연주가였다.어느 날 레슨을 받는 도중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얼핏 내용을 들어보니 대학 교수가 전화를 걸어온 것 같았다. 통화가 길어질수록 선생님의 언성이 높아졌고, 휴대폰을 놓고 다시 자리에 앉아서도 화는 가라앉지 않는 듯했다. 후에 건넨 이야기는 이러했다. 이번 달에 저명한 학자들과 유명 인사들이 전주에서 모임을 갖는데 혹시 시간이 괜찮다면 연주를 해주길 바란다는 것. 여기까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 후에 건네 온 말이 무척이나 불쾌했다고 한다. 좋은 의미가 있는 자리이니 공연을 재능 기부의 형식으로, 페이 없이 진행해달라는 것이었다.문화산업시대, 예술에 정당한 보상을2년 전 봄, 연주하는 것이 좋아 한옥마을 버스킹을 시작했다. 거리의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었고,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지속적으로 공연을 했다. 전주 한옥마을의 유래 없는 전성기가 시작된 시점. 운이 좋게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그 후로 공연을 해달라는 연락을 자주 받았다. 그들의 논리는 이러했다. 어차피 공연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니 이왕이면 우리 공간에서 공연을 해달라는 것. 언뜻 보기엔 그럴싸했다. 공연을 편하게 할 장소가 생기기 때문이다.하지만 이것은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극과 극의 상황이 된다. 내가 좋아서 하는 공연과, 그들이 불러서 하는 강요된 공연. 이러한 이유로 정중히 거절하면 도리어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때도 많다. 예술가가 좋아서 하는 거지 돈을 바라고 하면 되냐는 논리 앞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돈을 밝히는 못된 예술가로 치부되는 것이다. 예술가들 사이에서 이러한 고민은 닳고 닳은, 해묵은 이야기 주제가 됐다.문화산업 시대가 오고 문화를 경제적인 가치로 어떻게 환산할 지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예술행위에 대한 정확한 정찰제가 없고, 작품에 대한 감동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돈으로 예술을 계산하기는 어렵다.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한 시대에, 예술이 꼭 필요한 것이냐고 되묻는 이도 물론 있을 수 있다.모든 것의 기준이 돈이 되는 시대.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지지만, 예술가를 신성시하는 시선은 굳건하다.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은 여전히 돈의 세계와는 무관한 영역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무얼 먹고 살아야 할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눈물 젖은 빵을 먹는 가난한 예술가로 남아야 할까? 예술가 역시 보통의 영역에 살고 있다. 많은 이들이 학교 강의실에 앉아 경제학과 전기공학 등 전공지식을 배울 때, 우리도 음악학, 전통음악선율 등을 배웠다. 그들이 사회로 나가 청년무급인턴 등 열정페이를 강요 당할 때, 재능기부의 압박을 받는다.청년에게 열정페이 강요하지 말아야재능의 사전적인 의미는 이렇다.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 개인이 타고난 능력과 더불어 훈련에 의하여 획득된 후천적인 능력도 포함된다. 예술가가 가진 것은 재능 뿐이다. 그리고 그 재능이란 모두에게 그렇듯 우리에겐 전공이다. 타고난 감각, 그리고 밤낮으로 이어지는 후천적인 능력으로 한 편의 작품이 만들어진다. 예술가들에게 아무런 보상 없는 제안은 하지 않았으면, 또 그러한 제안을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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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2.22 23:02

노동인권 감수성과 우아한 주문

많은 변호사들이 근로계약서도 없이 일하고 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니 명시된 근로조건을 확인하기도 어렵다. 근로계약서가 있다 하더라도 추가 근무수당 없이 휴일에 출근하거나 야근하는 것쯤은 예삿일이다. 특히 갓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변호사의 경우, 변호사법에 의하여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6개월간 종사하거나 연수를 받아야 독립된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다. 그래서 근로기간을 위 법률사무종사기간인 6개월로 정하여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수습기간으로 보더라도 사용자는 최저임금의 100퍼센트 이상을 지급하여야 하나, 이것조차 지키지 않는 사업장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경우 예외대상이 아닌데도 흔히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다.얄팍한 기득권 챙기고 있는 이에게아동청소년 인권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다 보니 나는 종종 청소년 아르바이트 관련 상담 의뢰를 받는다. 청소년 노동권 침해는 보통 두 가지 상황에서 발생한다. 하나는 관련법을 모르는 경우이다. 당시에는 권리 침해에 대한 인식 없이 사업주가 그렇다니 그런 줄 알고 있다가 지나고 보니 억울하여 상담하러 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권리 침해 사실을 분명히 알고서도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경우다. 청소년의 노동이 그저 어린 애들 용돈벌이로 경시되는 상황에 청소년들이 얼마나 큰 무력감을 느낄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왜 주휴수당 등을 주지 않는지 묻는 청소년에게 너 그 돈 어디에다 쓰려고!라고 윽박지르는 사업주들. 그들에게 생계비를 버는 청소년의 생존권은, 상상 한참 밖의 것인가 보다.나 또한 이런 압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부당해고나 임금 체불을 해결하기 위해 열성을 다해 일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해 있는 변호사들이 법을 몰라서 이런 상황을 참아내고 있는 것일 리 없다.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이는 가장 먼저 약자들을 옭아맨다. 잘못된 방법으로 얄팍한 기득권을 챙기고 있는 사람들은 그 거대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그 부당함에 대해 발설하지 말라 주문한다. 때로는 그 방식이 우아하여, 우리가 그것에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다. 세상살이가 다 그런 것이니, 좋은 교훈을 얻었다 생각하고 넘어가라. 휴게시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거나 소위 알바 꺾기를 당할 때에도, 사업장에서 모욕적인 대우를 당할 때에도, 심지어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부당하게 해고되었을 때에도 이런 주문은 계속된다.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해야그러나 우리는 이를 단호히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노동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육체적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이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참조). 이는 그 자체로 삶을 유지시키는 숭고한 행위이다. 나의 노동은 오롯이 나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그래, 인생의 쓴 경험 했다 쳐버리자라는 포기의 외마디도 차라리 노동자 자신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말이지, 제3자가 할 말은 아닌 것이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이런 우아한 충고가 하고 싶어진다면 자신의 노동인권 감수성을 반드시 점검해야 하는 시점이니, 경계하자.우리는 스스로가 행한 노동의 가치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 뒤에 타인의 존중이 따라온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것은 결국 부당한 것을 두고 부당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로 이루어진 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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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2.15 23:02

젊은 예술가여! 버틸 수 있는 이유를

한때 트위터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소설가 이외수는 존버 정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이 말을 듣고 존버라는 위인의 삶의 태도를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존버 정신이 무어냐 묻는 혜민스님에게 스님, 존버 정신은 존X게 버티는 정신입니다이라는 답변을 한 일화를 듣고 3초는 웃고, 그 뒤로는 오래 씁쓸해졌다.본인이 가는 길에 자긍심 있다면예술가는 배고프다라는 관념은 기정사실이다. 현대에 들어 관립단체는 물론, 예술가가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사라지고 있다. 젊은 예술가들이 예술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필자 역시 대학교를 한국음악으로 졸업하고 상실감과 회의감으로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일본에 간 적이 있다. 오사카와 교토에서 머무르며, 그곳에서 만난 두 분이 나에게 젊은 예술가로서 버텨야 하는 이유를 만들게 했다.오사카 모모다니에는 우리말로 달맞이라는 카페가 있다. 이곳에는 제일교포 2세인 고정자 선생님이 있다. 해방 이후 유신시대를 거쳐 오며 반쪽바리로 불리며 멸시 당한 이야기, 동일본의 대지진 때 일어난 조선인 학살사건 등 그 분이 살아온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 같기도 했다.긴 이야기에 이어 고정자 선생님은 한국을 매우 사랑한다고 했다. 특히 전통음악 판소리를 좋아하는데, 일본 특유의 받침 있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게 가장 가슴 아프다고 했다. 오사카에 사는 제일교포 3세의 소리꾼이 있는데 그 소리꾼이 받침 있게 판소리를 완창하는 날이 일본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일 거라고 이야기했다. 한 발은 일본에, 한 발은 한국에 둔 사람에게 판소리는 얼마나 큰 의미일까. 선생님의 말은 내 안에서 크게 울렸다.다음 일정은 교토였다. 일흔이 넘은 시마주 타케오 할아버지는 금각사 옆에 산다.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너무나 좋아하던 시마주 선생님은 일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분이었다. 맨 처음 필자에게 걸어온 이야기는 광동대지진 사건이었고, 당시 학살된 사람의 수가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멸시 받는 제일교포를 위해 다양한 운동을 했는데, 일본 간첩 사건 때 사식을 넣었고, 강제노역을 당한 광산의 역사를 간직한 단바망간기념관의 이사로도 활동했다. 일본인에게 듣는 우리 아픈 역사에 만감이 교차했다.일본에 계시는 두 선생님은 전주세계소리축제를 맞아 한국에 방문해서 우리 음악을 듣고 막걸리를 드시며, 춤을 추고 흥겨워한다. 한국음악을 전공한 나를 참 좋아하며,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생계를 위해 음악을 포기하려던 나는 버텨야 하는 이유를 두 선생님을 통해서 찾을 수 있었다.흔들리지 않고 올곧은 길 갈 수 있어예술가들은 흔히 이야기한다. 버티는 놈이 이긴다고‥. 하지만 무엇으로 버틸 수 있는지 그 이유는 막연하다. 돈이 삶의 기본요소가 된 시대에, 예술가에게만큼은 돈을 떠나 살라고 말하는 시대. 물론 많은 부를 원한다면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이 걸어가는 길에 대한 정체성과 자긍심이 있다면, 우리는 자연히 존버 정신을 갖게 되고, 흔들리지 않은 채 올곧은 길을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젊은 예술가들이여! 젊다고 해서 버티는 것이 아니다. 버틸 수 있는 이유가 있어서 버틴다면 성공의 길도 그다지 멀지 않을 것이다.△김지훈 대표는 문화공간 cafe 마실을 운영하며 국악협회 전북지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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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25 23:02

이 시대 청춘들의 행복 추구권

영화 행복을 찾아서의 주인공은 지독하게 가난한 생활의 절정에 이런 말을 한다. 그 순간 토마스 제퍼슨이 쓴 독립선언문이 생각났어요. 삶, 자유, 행복추구권 부분이요. 그리곤 생각했죠. 행복이란 오직 추구할 수만 있는 것. 그리고 평생 무슨 짓을 하던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성공 위해 비인간적 삶 살 순 없어우리 헌법 제10조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여기서 도출되는 권리를 행복 추구권이라고 부른다. 자유나 평등도 행복만큼이나 추상적인 개념인데, 우리는 이를 각각 자유권, 평등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유독 행복만은 행복권이 아닌 행복 추구권이라고 한다.이 시대 청년들의 행복과, 행복을 추구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바라는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혹은 조금 더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났어도 일정 수준 이상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일정 시기에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고, 일을 하면서 때로 만족을 느낄 수 있으며, 함께 나이 들어갈 사람들을 곁에 둘 수 있는 삶, 그 정도가 아닐까. 저마다의 행복이 또 있겠지만, 어쨌든 이 시대의 청년들이 바라는 행복은 유별난 것이 아니다.그러나 청년들이 이 정도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독한 불행 그 자체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수많은 고통에 더하여, 실체를 알 수 없는 성공을 위해 비인간적인 삶을 기꺼이 감내하는 노력을 계속 하라는 일부 기성세대들의 이기적인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도 한몫 하고 있다.비교적 젊은 나이에 변호사가 된 나는 사회에 나름대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전통적인 변호사 업무는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고,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이럴 때 제일 먼저 고통의 한 가운데로 떠밀리는 것은 청년 변호사들이다. 내게 일터에서의 시간은 불행의 연속이었다.내가 원하는 행복도 그리 큰 것이 아니었지만, 이를 위해서 찰나의 만족스러운 순간조차 모두 포기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적 보상이 충분한 것도 결코 아니었다. 이대로 더 버틸 수 없겠다는 절박함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미래의 더 큰 만족을 위해 현재의 만족을 포기하거나 유예하는 것이 유효하던 시대는 가버렸다는 확신이 들었다.그리고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어느 정도 고정 고객을 확보한 뒤에야 용기 내서 할 수 있다는 개업이라는 것을 그만 해버렸다. 모은 돈이 많지 않았으니 사무직원 없이 작은 사무실에서 컴퓨터, 전화기와 팩스를 두고 시작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변호사 같은 세련됨은 꽤나 부족하지만 처음부터 일을 만들어 가는 보람은 있다.행복의 본질은 추구하는데 있어법률사무소를 어떻게 운영했더니 잘 되고 있다는 식의 성공 스토리를 쓸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청춘이라 일컬어지는 세대가 빠르게 독립된 인간으로 자리 잡기 어려운 때에 평범한 내가 그런 것을 벌써 할 수 있었을 리 없다. 다만 훗날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불행을 참아내는 일을 이제 그만 두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뿐이다.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이 지독한 불행일 뿐이라면, 언젠가 행복이라는 지점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진정한 행복이라 말할 수 있을까. 행복추구권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행복의 본질은, 그 자체보다 그것을 추구하는 데 있는지 모른다.△서경원 변호사는 이화여대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고 민변 아동인권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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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18 23:02

청년정책, 포퓰리즘 복지사업 아니다

2015년을 맞이하며, 신문 1면을 장식했던 N포세대와 달관세대라는 신조어를 보고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해졌던 기억이 난다. 특히 일본의 사토리세대를 번역한 달관세대라는 단어의 등장은 평범한 대한민국의 한 청년의 입장에서 자괴감마저 들게 했다. 왜 청년들은 한국사회에서 많은 것을 포기고, 무기력한 세대로 낙인이 찍혔는가. 또 왜 우리는 청년들에 대한 이름을 다른 세대, 어른들 시각으로 규정되고 불리우게 할 수 밖에 없었으며 자조와 냉소, 무기력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인가.계층 구조적 문제 포함한 청년 문제그 고민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앞다투어 신조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인구론, 헬조선, 노오력, 취업깡패, 이케아세대, 취업 9종세트, 화석선배 등.그리고 최근까지 논란이 많았던 금수저-흙수저까지. 언론에서 수없이 인용됐던 청년에 대한 신조어들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을지라도 취업난, 물가상승 등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취업은 물론이고 연애, 결혼, 출산이라는 일반적 삶의 과정을 포기해야만 하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근래 정부가 청년희망펀드를 조성하고 재계에서 각기 거금을 투입하며 앞다투어 지원정책을 내놓는 것은, 그 의도나 진정성에 대한 논의는 논외로 치더라도 한국사회에서 청년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나마 인지한 결과라 생각한다.하지만 그럼에도 왜 청년이 문제인가에 대해 여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분들을 요즘도 종종 만난다. 흔한 말로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거나 요새 젊은이들이 도전정신이나 패기가 부족해서, 청년들이 투표를 안해서 혹은 개인 역량의 문제로 환원시키며 청년들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저색깔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미 청년문제는 단순히 세대의 문제가 아니다. 굳이 문화자본이니 상징자본이니 하는 용어들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미 청년세대의 문제는 세대문제를 넘어서 계층적, 구조적인 문제까지 포함한 복잡한 난제가 됐다.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이하 청년수당)과 성남시 청년배당과 같은 정책도 이 연장선상에서 평가해야 한다. 청년수당은 미취업자, 졸업예정자 중 중위소득 60%이하인 19~29세 청년 3000명에게 월 50만원씩 지원비를 지원하겠다는 것이고, 청년배당은 3년이상 성남시에 거주한 19~24세의 모든 청년에게 연 100만원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정부는 이들을 무분별한 무상복지사업, 포퓰리즘 복지사업이라며 지방자치단체에 패널티를 부과해서라도 막겠다고 한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청년정책의 규모가 연간 1조 7000억원임에 비교하면, 서울시와 성남시가 2016년 청년 관련 사업비로 책정한 금액은 각각 90억원, 113억원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더군다나 평범한 직장인이자, 한 청년의 입장에서 중앙정부의 정책들이 만 30세까지의 국세납부세제해택, 청년인턴고용 확대 등과 같이 큰 실효성을 느끼기 힘든 것들이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서울시와 성남시가 시행하고자 하는 정책이 단순히 포퓰리즘에 입각한 정책이라고 비난하기 어렵다.중앙정부 해결하려는 의지 보여야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청년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해결을 위해 경쟁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처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사이의 정치논리와 명분에 의해 청년정책이 다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청년문제에 대한 해결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정부가 자치단체가 힘겨루기를 할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고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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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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