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06 14:39 (Thu)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청춘예찬

우리는 일본 사람이 아닙니다. 우린 조선 사람입니다.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꿈에도 바라던 독립을 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안가 분단을 겪게 된다. 그리고 한국인, 북한인, 외국인도 아닌 사람들이 생긴다. 이들은 이후 195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따라서 외국인이 되어버린다. 바로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 교포들이다. 일본에 살면서 납세의 의무도 이행하지만 일본 정부의 차별 대우는 심하다. 심지어 우리나라도 이들에게 많은 지원을 해주지 않았고 오히려 북한이 먼저 손을 내밀어 이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현재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 교포 3, 4세들 중 조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 소학교는 조선 학교를 다니지만 고등학교로 진학 하는 시기가 오면 일본 학교로 진학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조선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대학 입학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 고등학교를 졸업한 재일 교포 학생들은 다시 대학 입시를 위해 개인적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일본은 고등학교 수업료를 무료화 하는 정책도 조선 학교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많은 조선 학교들 중, 오사카 조선 고등학교 학생들은 매일 수업이 끝나면 오사카 거리에서 이런 상황을 알리는 전단지를 돌리고 시위도 한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특히 럭비부 학생들의 웃음은 더 해맑아 보인다.박사유 감독의 영화, ‘60만번의 트라이’는 이들 오사카 조고의 럭비부 학생들에 관한 이야기다. 일본 고등학교 럭비 대회 중 가장 큰 ‘하나조노’ 우승을 노리며 ‘일본제패’를 외치는 오사카 조고는 일본 내에서도 실력 있는 학교로 뽑힌다. 그리고 그들은 외친다, “우리는 조선사람 입니다”. 일본말이 더 능숙하지만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말하고, 일본 사회에서 받는 차별을 실력으로써 극복해 나가려 럭비에 매진하고 있다. 항상 경기가 시작하기 전 선수들은 둥글게 어깨동무를 하고 외친다. “하나, 믿음, 승리!” 넓은 일본 럭비 경기장에서 한국말로 자신들을 격려한다.오사카 조고 학생들이 많은 절차를 거치고 떠나는 수학여행의 목적지는 북한이다. 북한에 있는 자신들의 친척과 만나 한 언어로 소통하고 떠나는 것이 아쉬워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을 보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한국에 살면서 그들을 잊고 있었지만 재일 교포들은 남과 북 모두를 가슴 속에 품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욱 미안한 마음에 가슴 한 켠이 먹먹해 졌다.이 영화를 내 또래 친구들이나 10대 청소년들에게 추천해 주면 반응이 시큰둥하다. 재미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따분하기만 할 영화 같기 때문이다. 일에 치여 사는 30, 40대 어른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영화 보기를 꺼려할 것이다. 그렇지만 길지 않은 시간 1시간 47분을 이 영화를 위해 투자해 주길 바란다. 재일 교포들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지만 정작 우리는 등을 돌리고 서있다면 그들도 점차 자신들이 누구인지 잊고 살아 갈지도 모른다. 이런 비참한 일을 막기 위해선 우리도 그들을 알고 기억해 줘야 한다. 아주 작지만 힘있는 일, 이 영화를 보고 그들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언젠가 삶을 살다 보면 일본에 사는 우리 교포들을 만날 수도 있다. 그때 “나는 당신들을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먼저 건네며 인사 할 수 있는 가슴 따뜻한 친구가 되어주자.

  • 오피니언
  • 기고
  • 2014.10.08 23:02

진심으로 소통하기

지난 9월 12일, 나는 세계 평화의 날 기념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발칸의 붉은 장미라고 불리는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난생처음 해외로 나가는 터라 설레기도 하였지만 이와 동시에 의사소통의 걱정으로 인해 상당한 불안감이 내 주위를 맴돌았다. 불가리아어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영어 역시 내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만큼의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이러한 걱정을 품고 약 12시간의 비행 끝에 소피아 공항에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우려는 도착과 동시에 현실로 다가왔다. 행사 주최자와 불가리아 친구 한 명이 마중을 나왔었는데 이들과 인사를 할 때부터 말문이 턱 막혀버린 것이다.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나의 입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그저 조용히 듣거나, 웃으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뿐이었다.그리고 며칠 뒤, 전체 8일간의 행사 중 3번째 날이 되었다. 그 날은 현지의 초등학교에 방문하여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종이접기 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행사 참가자들은 저마다 몇 명의 아이들을 전담하여 종이학 접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나 역시 대니스라는 남자 아이를 맡아 종이접기를 시작하였다.나는 우선 몸을 낮춰 그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 다음 순서에 따라 조금씩 종이학을 만들어 갔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기내에서 익힌 몇 마디 불가리아 인사말과 감사와 칭찬의 표현을 해주었다. 나의 발음이 이상했는지 대니스는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이따금 서로를 마주 보며 웃기만 할 뿐 별다른 대화 없이 가장 먼저 종이학 한 마리를 완성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하이파이브 했다. 이 후 우리는 또 다시 아무런 말없이 내리 3마리의 종이학을 접었다.그렇게 평범한 수업이 끝나고 모두가 헤어질 무렵, 하교하던 대니스가 갑자기 발길을 돌려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곤 함께 접었던 종이학과 연필을 내밀면서 나의 이름을 적어달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에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다른 수업을 위해 다음날 학교를 찾았을 때 대니스는 내게 조그마한 불가리아 기념품을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다시 나를 찾아와 내 이름을 부르며, 어디서 배웠는지 영어로 같이 사진을 찍자고 제안하였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함께 어깨동무하고 사진을 찍었다. 서로의 진심만으로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그 이후로 나는 다른 친구들을 대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분명히 평소와 다름없이 대화는 잘 되지 않지만 내가먼저 진심을 다해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니 상대방도 나를 배려해 주었다. 심지어는 불가리아 친구와 단둘이 깊은 대화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대니스를 통해 진심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운 덕분이었다.진심으로 소통하기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처음의 나처럼 외국인이나 혹은 그들의 부모님, 친구, 연인 등 크고 작은 인간관계 속에서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조금만 용기를 내어,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가지고 있는 거짓 없는 진심을 보여준다면 상대가 누구든 긴밀히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심’이란 전 세계인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만능열쇠이기 때문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10.01 23:02

하고 싶은 대로 해야 나도 즐겁고 학생도 즐겁다

그리 오래 지난 일이 아니지만, 교단에 섰던 첫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땀이 흐른다. 교사가 되고 나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자 가장 어려운 질문을 그날 받았다. “선생님은 왜 선생이 되셨어요?” 면접을 위해 준비했던 대답이 아니라, 진짜 내 안의 대답을 찾는 것이 평생의 화두가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비록 역할이 다르지만 나는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학교에 가고 있다. 학교라는 공간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굉장히 힘들고 지루한 나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수업속의 나와 원래의 나에 대해 생각하며 어우러지려고 나름 치열하게 고민하지만, 사실 매일 매일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수업시간에 아이들이 보온병의 물을 따라 마시고 짝과 이야기 하고 필통을 흔든다. 왠지 앉고 싶은 짝과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서 그런가 해서, 순간 “번호 대로 앉아!” 외치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신체적 자유나 작은 속닥거림을 빼앗는다면 교실이 얼마나 팍팍해질까 싶어 다시 한 번 심호흡 하며 마음의 여유를 찾아본다. 아이들이 얼마나 즐겁게 배우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수업은 교사만의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내 말에 모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도 아이들 마음속에서는 얼마든지 딴생각이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지로 정돈된 모습만을 만들다 보면, 결국 수업은 가르치려는 교사와 쉬고 싶은 학생간의 전쟁이 된다. 하지만 내가 나다운 모습으로 그리고 아이들이 자신다운 모습으로 진심으로 함께하면 뭔가 마음이 맞는 순간들이 더 많아진다. 그걸 찾고 기다리는 일이 힘들지만 보람찬 일과가 되는 것이다.그리고 교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나와 함께 있는 학생은 어떤 아이인지, 학교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등의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교사로서의 내 모습을 천천히 찾고 있다. 이런 고민이 이어져야 수업에 빛깔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또, 마음속에 철학이 있다고 해서 바로 수업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고민해야 해서 어렵고 또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술과 음악은 타고난 재능이 필요하지만 수업은 노력으로 조금씩은 나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수업을 함께하는 말하기, 관계 맺기, 수업 지식 등은 시간을 두고 차분히 닦아 갈 수 있다. 그래서 기술을 습득하려고 안달하기보다 먼저 수업 안에서 나다움을 찾아보려 한다.그래서 수업 방법 역시 내가 좋아하는 것, 나에게 맞는 것을 찾고 있다.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도대체 내가 아닌 것으로 자꾸 수업을 치장하게 된다. 내가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교사들은 대체로 모범적인 성향의 사람들이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주위 시선을 생각해 남 보기 좋은 모습을 애써 보일 때가 많다. 그리고 이런 성격은 수업에서도 종종 드러난다. 아무리 병아리 교사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수업 상이 어렴풋이 있을 텐데, 그것을 접어두고 남의 기준에 내 수업을 맞추려는 때가 많다.그렇지만 ‘마음속에 있는 나’와 ‘보이는 나’가 다르면 그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수업을 해야 나도 즐겁고 학생도 즐겁다. 일을 통해 나라는 존재가 누구인지 발견하고 그 속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자기다움’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첫날의 질문은 그 과정 안에서 자연스럽게 구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9.24 23:02

끝나지 않은 4월 16일, 아니 끝낼 수 없는 4월 16일

2014년 4월 16일 이후 100일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476명의 가족과 친구들은 100일이 넘도록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 중에서도 294명의 가족, 그리고 아직 가족들과 만나지 못한 10명의 가족은 더욱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단지 불운의 사고였을 뿐이고, 국가가 나서서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절대로 통용될 수 없다. 공기관의 엄격한 점검이 있었다면, 규제 완화 정책으로 인해 청해진 해운이 낡은 배를 사들이지 않았다면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의 실수와 정책으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사건이라면 국가도 배상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들은 지친 상태다. 자식이 사고를 당했는데 계속해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 부모가 어디 있을까. 부모들은 자식이 자신의 곁으로 돌아올 때까지 자식의 곁을 지켰다. 부모들이 살아갈 때 가장 큰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자식을 건강하게 기르고 자신이 다하지 못했던 것까지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돈을 벌고, 직장을 다니는 것의 가장 큰 목표가 아니었을까? 4월 16일에 일어난 바로 그 사건으로 인해서 삶의 목적을 잃은 부모들도 있다. 일시적으로 직업이 없으면 기본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수입이 없게 된다. 결국 월세를 내지 못해 가족 집에 신세를 지고, 기본적인 식생활을 이어갈 수 없어 건강에도 문제가 생기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사태에 100일이 넘게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를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와중에 국회에서는 정당끼리 싸우느라 기초적인 보상도 되지 않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비리 혐의 의혹을 받고 있는 여당의 한 국회의원의 체포 동의안을 막기 위해 개최된 방탄 국회에서는 일부 야당 의원들도 반대에 표를 던져 여당을 도왔다는 점이다. 대의민주주의가 필수적인 현대 국가에서 국민들은 그들의 의사를 대변해줄 사람들을 국회로 보냈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오히려 국민들을 외면하고 굴복시키려고 한다. 최근 여당은 유가족과의 협상 자리에서 대단히 강경한 입장을 내세웠다. 박근혜 대통령은 특별법 제정과 올바른 수사를 약속했음에도 언제 그랬냐는 듯 유가족을 외면하다시피 하고 있다. 현재 정부와 유가족이 합의를 보지 못하는 사안은 기소권과 수사권에 관련된 문제이다. 하지만 국가가 유가족들이 믿을 수 있도록 수사를 진행했다면 유가족이 이를 국가에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국가의 기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유가족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은 설득력 있다고 볼 수 없다. 유가족들은 단지 사건을 끝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사건이 끝나려면 먼저 실종자들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선이다. 그 이후로는 사건에 대한 올바른 수사가 끝나야 한다. 보상 절차는 그 이후다. 유가족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의 책임인지, 무엇이 원인이 되었는지를 밝혀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고 싶은 것이다. 이 사건이 끝나려면 유가족 모두가 이제는 끝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 전까지 4월 16일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아니 끝낼 수 없는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9.17 23:02

평화는 우리의 권리입니다

오는 9월 21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평화의 날’이다. 이 날은 1981년 세계대학총장회의 총회에서 당시 의장이었던 우리나라의 조영식 박사가 제안한 것으로, 유엔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 9월 셋째 주 화요일을 기념일로 제정하였다가, 2001년 유엔총회에서 다시 9월 21일로 고정하여 기념하게 되었다. 이 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취임하면서부터 이 날을 위해 매년 일정한 주제를 제시하였는데, 올해의 주제는 바로 평화에 대한 권리(Right to Peace) 즉, 평화권이다.평화권. 뭔가 좋은 말처럼 들리면서도 그 개념이 분명치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평화권에 대한 관심이 그리 많지 않으며, 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반면에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평화를 하나의 인권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유엔을 중심으로 그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 왔다. 특히 1984년 유엔총회에서는 평화권 선언을 발표하여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신성한 평화권을 갖고 있다는 생래적 권리로서의 평화권을 확인하고, 평화권의 보존과 이행을 증진하는 것은 각 국의 의무임을 선언했다.그리고 최근에는 평화권이 평화와 인권을 결합한 제3세대 인권으로써 독자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았고, 그 향유주체도 개인을 넘어 집단으로까지 해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평화권은 단순히 전쟁의 부재만을 의미하는 것이라 개인과 집단이 평화를 목적으로서 요구할 수 있는 적극적 평화를 의미하게 된다. 여기에는 침략전쟁 포기, 군비축소, 전쟁의 위험에 처하지 않을 권리,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군사적 목적의 기본권 제한 금지, 평화를 위한 시위와 시민참여의 권리 보장, 희생자들의 권리 등이 포함된다.실제로 우리주변 곳곳에서 평화권이 요구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해군기지 건설과 미군기지 이전으로 삶의 터전이 위협받는 제주 강정마을과 평택 대추리의 주민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용산참사 희생자들이 국가안보와 가진 자들의 이익에 의해 평화적인 삶을 누릴 권리를 빼앗겼다. 대외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잔혹한 폭력 속에서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대한 감옥에 갇혀 평화를 유린당하고 있다. 이들에게 평화권이란 이 같은 폭력적, 반인권적 행위에 대한 양심적 거부와 불복종의 권리를 부여해 주는 것이다.물론 평화권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 이는 주로 미국, 일본 등의 강대국들 사이에서 나오는데 한국 역시 반대표를 던지고 있다. 평화권이 인정될 경우 패권경쟁을 위해 힘겨루기를 하는 이들 국가들의 군비증강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자국 내에서도 자본의 논리가 결부된 국가적 사업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평화권이 좋게 보일 리 없다. 국가의 이익 추구에 의해 인간의 권리가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그의 저서 ‘시민 불복종’에서 “우리는 한 나라의 국민이 되기 전에 인류의 일원부터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말하였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단순히 눈앞의 이익을 쫓아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현재와 미래의 인류를 위한 보다 큰 가치를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고 연대하여 권리로서의 평화가 인정받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기를 꿈꿔본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9.03 23:02

두려움을 깨고 교실을 거꾸로 뒤집기

시대에 따라 교육도 변한다.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학생 중심으로 배움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은 항상 교실의 화두가 된다. 최근 교사들 사이에서 ‘거꾸로 교실’이 화제다. ‘거꾸로 교실’은 영어로 Flipped Classroom이라 불리는 교육방법으로, 2010년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며 주목을 받고 있다. 거꾸로 교실은 발상의 전환에서부터 시작된다. 원래 교실에서 하던 지루한 강의식 수업을 영상으로 만들어 학생들이 수업 전에 미리 보고 온 후, 교실에서는 강의 대신 다양한 활동으로 재미와 함께 공부의 깊이를 더해준다는 것이다. 거꾸로 교실에서는 일방적 강의에서 소외됐던 학생들이 다시 교실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기존 수업에서 학생들은 교사에게 지식을 전달받고 배운 내용을 집에서 복습했다. 이때 부족한 부분은 사교육을 통해 보충하는데, 사교육에 대한 의존이 지나치게 커지며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학교에서 다시 배우는 일이 흔해졌다. 이 과정에서 많은 아이들이 배움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다. 그래서 교실을 뒤집는 것은 학생 중심의 교실 문화를 만드는 데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교사는 수업 시간에 학생과의 상호작용에 집중하고, 수업 내용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도울 수 있다. 학생들은 배운 내용을 서로 이야기하며 실험하며, 더 깊은 수준의 지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교사와 학생 모두 소통으로 가르치고 배울 기회를 얻는 셈이다. 하지만 거꾸로 교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학생 스스로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교사가 제공한 사전 학습 자료들을 보고 습득한 지식을 기반으로 교실에서의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전 학습 자료들을 보고 온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까지는 학생의 자기 주도적 학습이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그래도 거꾸로 교실을 통해 선생님과 배움의 교감이 커진 학생들이라면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겨나지 않을까. 또, 사전 학습 자료가 꼭 동영상일 필요도 없다. 손이 많이 가는 영상 대신, 다양한 형태의 자료들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 교사는 배움을 돕는 다양한 정보들을 적절히 제시하여 학생들을 돕고, 학생들은 정보를 능동적으로 활용하여 지식을 구성하고 나눌 수 있다. 이렇듯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둔 새로운 시도들이 여기저기에서 모색되고 있다.하지만 교실을 뒤집는다는 말 자체가 많은 이들에게 두려움을 주는가보다. 심지어 선생님들마저도 학생 중심으로 교실이 돌아간다면 교사가 무슨 필요가 있겠냐고 의문의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우리는 급속도의 사회 발전에 따라 교육 또한 앞으로 어떻게 될지 항상 예측 불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교육을 담아낼 수 있는 다양한 그릇들에 대해 우열을 따지는 것은 공허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이 겪은 시대의 틀로 교육을 이해하고 고수한다. 하지만 변화와 개혁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변화가 주는 신선함을 받아들였을 때 그것은 즐거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문제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완고한 고정관념이다. 새로움을 두려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시선이 주는 변화를 담대하게 수용한다면 그것이 바로 성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두려움을 깨고 아이들이 중심에 설 수 있도록 교실을 한번 거꾸로 뒤집어보자.

  • 오피니언
  • 기고
  • 2014.08.27 23:02

교육감은 학생이 뽑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조례안, 예산안, 결산서의 작성, 교육규칙의 제정, 교육 기관의 설치 이전 및 폐지에 관한 사항, 교육과정의 운영에 관한 사항 결정 등 교육감이 관장하고 있는 중요 사무 중 일부만 서술한 것이다. 교육감은 시·도 교육 학예에 관한 한 대통령에 버금간다. 그럼 이런 교육감의 모든 활동에 대한 이유와 원인을 제공하고, 이런 활동들에 대한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아내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바로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다. 그런데 바로 그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의 교육감을 뽑을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왜 교육감 선거로 인해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학생들에게는 선거권도 주지 않으면서 교육감 선거를 하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가져보고 싶다. 과연 그 동안 통용되어 왔던 이유처럼 학생은 아직 성숙하지 못하고, 선거를 치르기에는 너무 순수하기 때문일까? 그럼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그렇다면 선거를 할 수 있는 어른들은 얼마나 성숙할까? 교육감 선거는 정당 선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성향과 A 후보의 성향이 같으면 A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보통의 사례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왜 이 후보를 지지하느냐고 물으면 명쾌한 답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는 것일까. 교육감의 성향을 볼 가능성이 높다. 교육감이 보수 성향인지 아니면 진보 성향인지. 사실상 정당만 보고 투표하는 실태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는 교육감 선거에만 국한되지 않고, 후보의 공약과 가능성을 보기 보다는 이미지와 성향을 중시하는 선거의 현 세태가 짙게 묻어나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이 바로 ‘성숙한’ 어른들의 선거다. 그럼 학생들이 미성숙하다고 하는 근거는 뭘까? 이미 여성이나 흑인들은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선거에서 배제되어 온 역사가 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모든 영향을 그대로 받아내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에서는 항상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배제되어 왔다. 복장, 두발, 교육 방식, 대입제도 등 학생들의 모든 것들을 결정한 것은 단지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학생이 아닌 어른들이었다. 어른들 구미에 따라 교육정책을 수도 없이 바꾸면서 학생들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었던 것이다. 어른들의 선택에 따라 교육감이 바뀌고 교육감의 정책에 따라 교육 제도가 바뀌어도 학생들은 항의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그 제도대로 생활해야 했던 것이 지금까지 계속된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교육감 선거에 어느 정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가? 그 ‘성숙’하다는 어른들조차 막상 선거 전단지가 집으로 배달되어 오면 그것을 꼼꼼히 읽어보기 보다는 곧바로 휴지통에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선거에서 당선된 교육감의 정책을 학생들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가 있는가? 학생들은 그들이 자신들의 환경을 바꿀 수 있다면 분명히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할 것이다. 교육감들이 내세우는 공약 또한 더욱 구체화되고 학생들을 위하게 될 것이다. 공약이 실현되지 않으면 학생들은 그들의 ‘미성숙함’과 ‘순수함’을 내세우며 더욱 강력하게 항의할 것이다. 교육감은 학생들이 뽑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학생들이 자신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선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학생들의 선거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 만큼 자신의 교육을 선택할 권리도 분명히 있어야 한다. 비단 선거가 아니더라도 학생들에게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학생들이 자신들에게 맞는 교육을 선택하기에는 너무 미성숙하고 순수하다고? 모두 기억하자. 인류사에서 역사를 바꿔왔던 것은 모두 그 ‘미성숙함’과 ‘순수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8.20 23:02

페이스북 '좋아요'의 문제점

7살 때 집에서 할게 없으면 운동화를 신고 털레털레 집 옆에 있는 놀이터로 향했다. 그러면 친구들이 항상 공을 차고 있었다. 나는 불쑥 들어가 대충 편을 나누고 같이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스무 살, 대학생이 된 나는 더 이상 심심해서 밖에 나가는 일이 없다. 손 안에 스마트폰만 있으면 심심함도 잠시 털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스마트폰으로 가장 많이 하는 것은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등 누구나 접속할 수 있고 언제든 친구와 대화할 수 있는 SNS,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다.내 생각을 소신껏 글로 써서 보여주며, 좋아하는 유머, 연예나 스포츠 뉴스, 명언 등을 ‘좋아요’나 ‘리트윗’버튼 하나만으로 공유할 수 있다. 직접 얼굴을 보지 않아도 항상 같이 이야기 하는 듯 착각 속에 빠진다. 나 역시 풍덩 빠져있다. 재미있는 소식, 궁금한 뉴스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마친다. 다른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게 되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부분이 있으면 실제로 만나서 대화를 할 때 그 주제는 살짝 피해서 불필요한 갈등을 애애초 만들지 않는다. 이런 유용한 면들 때문에 나와 같은 청춘들에게는 SNS가 거의 필수가 된 것 같다.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SNS에 대해 비판한다. 중독성이 심해서 사람을 망칠 수도 있다는 이유가 대표적이다.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비판 받아야 할 대상은 SNS가 아닌 우리 사람들이다. 우리의 잘못된 사용으로 인해서 생기는 사회 문제들이 너무 많다. 이런 많은 문제들 중 하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현재 SNS 상에서 가장 큰 이슈는 꺼지지 않는 논란인 세월호 사건이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벌써 4달이 다 되어간다. 세월호 특별법과 진상 규명을 위해서 유가족 분들께서는 열심히 투쟁하고 계신다. 하지만 4달이란 시간이 너무 길었나 보다. SNS에서는 이제 지긋지긋 하다는 글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고 특별법 제정이 의사자 지정, 대학 특례 입학과 관련이 있다며 유가족들이 너무한 것이라는 게시물들에 리트윗과 ‘좋아요’가 만개를 넘어선다. 내 친구들의 이름도 ‘좋아요’ 목록에 있는 것을 볼 때면 안타까운 한숨이 나온다. 심지어 유가족들을 ‘유족충’이라는 단어로 부르며 SNS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와 같은 내용 중에는 전혀 사실이 아닌 것도 다수 이다. 그런데 내용 전체를 읽어보고 사실 확인을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친구들이 무심코 누른 리트윗이나 ‘좋아요’로 인해서 거짓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고, 익명성을 무기 삼은 악성 게시물들이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개씩 올라온다.사람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부분에서는 각자의 소신이 달라서 토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어떤 부분에서는 다를 수 없는 것이 있다. 옳은 것, 바른 것이 존재하는 영역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하하며 욕을 쓰는 것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자유가 아닌 옳지 못한 행동이다.사회 정의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우리 대학생, 10대들도 SNS사용에서부터 옳고 그름을 정확히 분별해야 한다. 게시물을 읽었을 때 헷갈리는 것이 있다면 다양한 방법으로 정확한 정보를 찾아보고, 내 SNS는 친구들과 공유하는 것을 잊지 말고 신중하게 게시물을 선택해서 공유해야 한다.이것이 작게나마 우리 청춘들이 할 수 있는 의무다. 또 이런 작은 행동이 앞으로 살아갈 사회를 더 건전하게 만들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8.13 23:02

복종 권하는 사회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만해 한용운의 ‘복종’이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여기서 복종의 대상이 되는 ‘당신’은 관점에 따라 사랑하는 연인, 일제 강점기의 잃어버린 조국, 혹은 종교인으로서 추구해야 할 진리 등으로 해석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당신’이란 우리 사회의 저변에 깔린 복종을 권하는 문화가 되지 않을까?우리 사회의 복종을 권하는 문화는 전통적으로 유교적 가치관을 가진 조선시대부터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충과, 효를 바탕으로 부모와 어른들에게 조건 없는 복종을 하도록 강요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일제에 의해 복종을 하도록 길들었고, 해방 이후 근대적 국민국가의 건설이라는 이름으로 조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 할 것을 맹세했다. 특히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선 이 시기에는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가 학교를 비롯한 온 사회에 팽배하였다.그리고 현재, 우리는 계속해서 복종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이른바 ‘착한아이’로 성장하도록 강요받고, 좋은 학교에 가야 성공한다는 어른들의 말에 따라 중등 교육을 마칠 때 까지 오로지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부만 하는 ‘범생이’로 자란다. 대학에 진학을 해서도 사회적으로 규정된 성공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스펙 쌓기에 청춘을 불태운다. 여기서 조금만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면 소속된 사회 집단에서 퇴출당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어른들의 기준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들에게 남은 것은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만능주의와, 나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타인과 사회 일반에 대해서는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이기주의뿐이다. 이러한 문화의 어두운 면은 세월호 참사 이후 여실히 드러났다. 그저 여태껏 교육받은 대로 어른들의 말을 잘 따랐던 수많은 착한 아이들이 차디찬 바닷속에 수장되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는 이른바 ‘관피아’로 통칭되는 복종의 문화에 길든 많은 사람들이 연루된 부정행위와 그에 따른 문제들이 속속들이 적발되었다. 누구 하나 부정을 고발하려 들지 않았다. 이와 같은 복종을 권하는 사회에서 더 이상 ‘소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의가 이루어지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하는 정당한 외침에 돌아오는 건 ‘가만히 있으라’는 일방적인 명령뿐이었다.이러한 시점에서 소위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대학생들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우리는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우리 주변의 이웃들이 겪는 아픔들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세월호의 유가족들이 자식을 잃은 슬픔을 뒤로하고 우리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밀양의 어르신들이 그토록 처절하게 송전탑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리고 행동하자. 사회 문제에 대해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가지고 그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의 소소한 실천이 거대한 불의와 맞설 수 있는 위대한 저력이 될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8.06 23:02

틀려도 괜찮아, 부드러워도 괜찮아

모든 물건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실패를 딛고 우연에서부터 기지개를 펴, 더 큰 감동을 주는 물건들도 있다. 1968년, 3M사의 연구원 스펜서 실버는 기존의 접착제들보다 강력한 물질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접착력은 좋지만 쉽게 떨어져 버리는 물질이 탄생한 것이다. 낙담에 빠진 그에게 직장동료 아트 프라이는 접착제를 바른 종이 상품을 제안한다. 아트 프라이는 주말마다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성가대였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찬송가 쪽수를 찾아야 해서 종이를 한가득 끼워두었는데, 찬송가를 펼치면 종이가 쏟아져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종이가 쏟아지지 않게 하려고 풀을 붙여두면 찬송가의 얇은 페이지들이 찢어져 버리곤 했다. 그래서 잘 붙지만 깨끗하게 떨어지는 종이를 판매하자는 아트 프라이의 착안 덕분에, 드디어 1981년부터 포스트잇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그로부터 포스트잇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활의 편리를 제공하고 있다. 조금 전 일도 깜박깜박하는 나에게도 포스트잇은 없어서는 안 될 친구이다. 사실 포스트잇 말고도 내 주변에는 수많은 메모들이 여기저기 남겨진다. 스마트폰에, 몰스킨 노트에, 바탕화면 메모장 파일에. 메모들은 내 흔적이 닿는 곳마다 살아있어서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갖가지 일들을 나 대신 기억해준다. 하지만 필요한 순간마다 바로바로 찾아 쓸 수 있는 편리함에는 아직도 포스트잇을 따라갈 자가 없다.크기별로 색색별로 구분된 포스트잇들은 복잡한 세상일들을 잘 알아볼 수 있게 도와준다. 심지어 어떨 때는 붙어있는 위치만으로도 여러 일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다. 때로는 벽에 한가득 붙어있는 포스트잇들을 보며 나만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세상에 감탄하기도 한다. 포스트잇에 뭔가를 적는 동안에는 생각이 정리되고 상상력마저 튀어나오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때로는 내가 왜 적지 않고서는 하루라도 마음 놓고 살 수 없게 된 것인지 한탄이 나오기도 한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메모가 된 것 같아 부쩍 심통이 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물 먹은 담요처럼 기분이 내려앉을 때에도, 작고 귀여운 포스트잇 뭉치를 보면 다시 한 번 새로운 무언가를 적고 싶은 마음마저 드는 것이다. 이렇듯 포스트잇은 늘 내 곁에 있어주는 고맙고 깜찍한 친구이다.포스트잇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드라마틱한 이야기마저도 감탄과 함께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실패한 줄만 알았던 작품이 발상의 전환으로 새롭게 가치를 얻은 이 사례는, 창의적 사고와 유연한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일깨워준다. 그리고 실패에 좌절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우연이 필연으로 바뀔 수 있음을 알려주어, 잠시 넘어진 청춘들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준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 ‘틀려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로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도 준다. 또한, 다른 종이들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도 스스로 붙었다 떼어졌다 하며 유연하게 전체의 의사소통을 돕는 모습은 사회에 첫발을 디딘 초년생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더운 날씨에 울컥하여 맥주집을 향하고 싶을 때마다 포스트잇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유쾌하게 웃어 보는 건 어떨까? 붙였다가 언제든지 뗄 수 있으니 틀려도 괜찮다고, 부드럽게 살아도 괜찮다고.

  • 오피니언
  • 기고
  • 2014.07.30 23:02

학생을 위한 유토피아

대한민국 학교에서 필수적으로 진행하는 야간 자율 학습이 해외 토픽에 올랐다. 토픽의 주제는 ‘세상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일’ 이라는 주제였다. 한국 학생들처럼 하루 일과가 획일화되어 있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아침 6시에 기상, 등교, 정오가 다 되는 시간까지 공부, 그리고 취침. 사실상 하루 24시간 중에 3/4인 18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셈이 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하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한 준비 과정이다. 국어와 영어를 배워서 세계와 교류하고 폭 넓은 학습을 할 수 있게 준비한다. 수학을 배워 논리력과 공간 지각 능력을 기른다. 도덕과 예체능 과목을 배워 사회에 적응하고 즐기는 능력을 기른다. 이렇게 학생은 12년 동안 자신의 뇌를 발달시키고 지식을 얻는다. 그리고 대학교에 가서 자신이 배우고 싶은 과목을 선택한다. 뇌를 발달시켜왔기에 공부하기에 훨씬 수월하다. 이론상으로는 가장 완벽한 교육 과정이다. 한국 학생들은 세계적인 학술 대회에서도 항상 수상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기술력과 지적 능력을 지닌 학생들이 사회 각계각층으로 뻗어 나가 대한민국 또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행복을 느끼는가? 학생이 공부하도록 강요하여 성적을 이끌어내는 교육 환경은 좋은 환경인가? 학생들의 만족도와 행동을 보았을 때 꼭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한국 사회의 인식은 성적에 의해 극단적으로 계층을 가른다. 이는 한국 학생들의 높은 자살률과도 직결된다.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은 자신의 계층의 현실을 깨닫고 극단적인 선택을 택한다. 자신의 자녀가 좋은 계층에 속하길 원하는 어른들은 학생이 하루에 18시간씩 학교와 학원에 있어야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학교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공부란 불가능하다. 공부만이 뇌를 위한 계발이 아니다. 어떤 행위이든 집중하여 뇌를 사용한다면 뇌는 꾸준히 계발된다. 단지 책상 앞에 학생을 앉힌다고 해서 학생이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하는 사람만 한다. 나머지는 않는다.’ 라는 속설은 ‘성적의 계급화’를 가장 잘 설명한다. 체육 활동은 공간 지각 능력과 사회성을 극명하게 발전시킨다. 이는 미술이나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동아리 활동을 통한 집중은 학생이 ‘원해서 공부할 수 있게’ 만든다. 학생들이 원하는 공부를 택하고 그를 지원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교육은 학생이 학습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막는다. 모범생이던 학생이 대학에 간 이후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창의력보다는 암기력으로 승부한 학생들, 주어진 교과서만 외우고 자신이 공부거리를 찾아서 하는 능력은 떨어진 학생들은 학습적으로 자립할 수 없다. 이런 현상이 반복된다면 학교는 교도소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모범수와 다를 것 없다. 아무리 교도소 내에서 모범수였어도 자유가 되면 방황하듯이, 모범생이라는 학생들도 자립성이 떨어지면 방황한다. 지금 한국에 학생들을 위한 유토피아는 없다. 어른들은 현 제도에서 가장 맞는 제도를 골랐다고 합리화한다. 그리고 어른들의 말이 맞는 말이라고 합리화한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학교를 소개할 때 말하듯,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며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학생이 원하는 교육이 진정한 교육이다. 그 교육이 더더욱 효과적이라면 그것이 올바른 교육이다. 한국은 지금의 교육 제도에만 고착화되어 바꾸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모든 학생이 지금의 제도에 ‘일체화’ 된 지금, 조금의 변화가 가장 큰 효과를 불러올 때다. △김종표 군은 전북교육청 학생단으로 활동하며 최우수 상을 2회 수상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7.23 23:02

초등학생들에게 “넌 꿈이 뭐니?”라고 물어보면 “가수요!”, “의사요!”, “외교관이요!” 등 많은 답변을 듣는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기특하게 여긴다. 나도 그랬다. 내 초등학교 때 꿈은 동물병원 의사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고등학생이 된 나는 더 이상 어른들의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내 꿈이 왜 하나의 ‘직업’이어야만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청소년은 직업이 꿈이 돼서 머리에 새겨지고 그것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도 않는다. 나는 그 질문을 던졌고 결론을 내렸다. 꿈은 하나의 직업이 아니다. 숨 쉬고 살아갈 삶이 한 번밖에 없는 것도 슬픈데 꿈마저 한 직업으로 결정지어야 한다면 너무 우울한 인생일 것 같지 않은가?EBS 지식채널e, ‘교육 시리즈-열다섯’을 보면 아일랜드 아이들을 위한 어른들의 아름다운 선물을 볼 수 있다. 아일랜드 교육 시스템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대학 진학을 위한 입시 공부였다. 매일 경쟁을 위해 러닝머신을 뛰듯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며 잘못을 느낀 어른들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달리는 것을 멈추고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어른들은 마침내 엉뚱하지만 아름다운 선물을 줬다. 바로 시간이다. 중등 3학년을 졸업한 15살 아이들에게 1년의 세월, ‘전환학년’을 선물해줬다. 1년간 학교에 다니지 않으며 자신이 배우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즐기며 보낸다. 기업, 대학, 봉사단체, 가게 등은 자신들이 가르쳐 줄 수 있는 기술, 지식을 무료로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전환학년은 자신이 정말 뭘 좋아하는지, 미래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었다.우리나라 학교에서는 하나의 교육과정을 따라 모든 아이들이 공부한다. 각자 좋아하는 것, 개성이 다르지만 가야 하는 길은 하나뿐이다. 마치 경주에 나가는 말들이 옆을 보지 못하도록 눈에 가림막을 달아 놓은 것 같다. 가수 이승기의 노래 ‘음악시간’에 나오는 가사처럼 “왜 우리는 다 다른데 같은 것을 배우며 같은 길을 가게 하나요….”이렇게 어른들이 만든 틀 속에서 사는 청소년들이지만 결국 내 인생을 선택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우리 청소년들도 이제는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스스로 가지며 살아야 한다. 돈 많이 주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 보다,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이 훨씬 더 값지다는 사실을 알고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 질 수 있을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사람은 그렇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삶이 너무나 즐겁다. 내 꿈을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은 그래야만 한다. 어제는 뿌듯했고, 오늘은 즐거웠으며, 내일은 기대돼야 한다. 내 모습을 관찰하고 새로운 나를 발견해 꿈을 그려야 한다.청소년들은 많은 꿈을 꿔야 한다. 모든 걸 잘 할 수는 없어도 많은 걸 즐기는 삶을 살고, 치열한 경쟁에서 이자 하기보단 경쟁에서 한 발짝 벗어나 뒤에서 오는 친구들과 함께 걸어 나가야 한다. 나는 사랑스런 아이의 아빠가 되는 것, 배낭 메고 세계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며 친구들을 만드는 것 등 많은 꿈을 꾼다. 앞으로 살아갈 동안 더 많은 꿈을 꿀 것이다. 직업을 가지고, 가정을 이뤄도 꿈꾸는 일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수많은 꿈을 꾸며 오늘을 행복하게 살기를 희망한다.△김한결씨는 청소년 토론 프로그램 ‘정세청세’기획팀, 청소년 평화통일 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7.16 23:02

푸른 봄날의 자화상

며칠 전 서울에 사는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휴식차 전주로 여행을 온다는 것이었다. 거의 2년간 만나지 못했던 터라 반가운 마음에 곧바로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한옥마을의 조용한 막걸리 집에서 술잔을 부딪쳤다.이 친구와의 인연은 군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공간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잦았다. ∥내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그 친구의 여행담이었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여행을 통해 변화된 자신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 등등, 꾸밈없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막연한 아름다움이 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그때까지 나는 이렇다 할 여행을 한 경험이 없었다. 여행을 통해 분명히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을 함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금전적인 문제나 다른 계획들에 차질이 생길 것 등을 생각하다 결국에는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것은 비단 여행뿐만이 아니었다. 대화를 하다 보면 내가 평소에 하고 싶어 했지만 하지 못한 것들을 그 친구는 대부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와 나의 차이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답을 찾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나는 매 선택의 순간마다 내 자신에 집중하기보다 주변의 환경과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는 데 급급했다. 지금 하고 싶은 것들은 나중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 달랐다. 자신이 좋아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그냥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 순간밖에 느낄 수 없는 행복을 그는 즐기고 있었다. 그 친구를 통해 나는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 그렇게 나는 내 행복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었다.그리고 우리는 다시 만났다. 오후 늦게 와서 한다는 소리가 늦잠을 잤단다. 그럼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더니 계획 같은 건 없다며 되레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며 멋쩍은 듯 웃는다. 심지어 밤에 묵을 숙소도 잡지 않았다고 한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 친구가 자신만의 청춘을 즐기는 나름대로의 방법이었다. 아무렴 어쪄랴. 지금 이 순간, 행복하면 그만이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우리의 푸른 봄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친구와의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대화의 주제는 여느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서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었다. 아직 정확한 진로는 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이 좋아하는 일들을 하다보면 누구보다 멋진 어른이 되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하나씩 늘어놓았다. 그의 눈은 열정으로 빛났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나는 그 친구의 눈에 비친 나 자신을 보고 있었다.40점의 자화상을 남긴 반 고흐는 캔버스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오로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를 열정적으로 살았다. 그는 행복했다. 가난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때때로 사회가 원하는 혹은 부모님이 원하는 기대에 미치기 위해 자신의 꿈과 현재의 행복을 저버리고 수동적인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청춘들에게 160년 전의 화가 반 고흐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곽현문씨는 전북환경운동연합 푸르미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7.09 23:02

스스로 배우고 싶어서 배우도록 도울 수 있다면

방학이 다가오며 복도에 점점 여름의 유쾌한 활기가 가득 찬다. 운동장에서 불어오는 더운 기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쁘게 여름을 맞이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선생인 나조차도 서운한 마음을 잊고 방학을 기다리게 된다. 이렇게 여름이 오면 벌써 색종이를 반 접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벌써 한해의 반이 갔는데 그동안 나는 무얼 했나 싶어서 다시 3월의 기억을 떠오려 본다.3월에 학부모님들께 보내는 편지에, 내가 써뒀던 문구들이 있지 않은가. 개학 전날 잠을 뒤척이며 이리저리 단어 속에서 헤매다 나름 야심 차게도 아이들과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고 썼었다. “저는 아이들에게 많이 물어보고 많이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선생님이, 아이들과 아이들이, 서로 소통하고 나누는 교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표현하고 소통하고 나누며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존중하며 함께 땀 흘려 일하고 수확을 기대하는 농부, 즉 하나의 ‘정신적 농부’로 아이들과 함께하려 합니다. 그리고 수확에 대한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눈에 보이는 수확이 많든 적든, 우리가 함께하는 길에서 더 큰 의미들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약속한 것들이 얼마나 잘 실천되었는지 반성해보며, 어찌 됐든 작게나마 실천의 발자국을 옮기고 있었다고 다시 한 번 스스로 다짐을 새겼다. 사실 생각해보면, 선생이 되었든 엄마가 되었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이 스스로 하고 싶어서 무언가를 하도록 돕는 일이다.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아이의 자발적 행동은, 상이나 벌과 같은 ‘당근과 채찍’에 의한 행동보다 훨씬 오래가고 만족도 크다. Daniel Pink는 저서 〈Drive〉에서, 스스로 하고 싶다는 동기부여의 요소로 ‘자율성(autonomy)’, ‘숙련(mastery)’, ‘목적(purpose)’의 조화를 이야기했다. 즉, 아이들 마음속에서 내가 정말 하고 싶어서 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동기 부여의 핵심이다. 그래서 아이들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게 돕고,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려주는 것이 학습에 대한 주인의식을 높여주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하지만 우리 생활에 깃든 조급함은 최초의 교육이 시작된 때부터 우리를 괴롭혀 왔다. 선생인 나조차도 항상 진도라는 물리적 한계에 추격당하며 조급해하는 것이, 슬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항상 나 스스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지금 이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자발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아이들의 삶을 교실로 한 발짝 초대하는 것이 나름의 정답이 아닐까 싶다. 일단 시계를 자주 쳐다보는 습관부터 줄이고.나는 학생이었을 때도 3월에서 2월로 한 해를 보냈고, 졸업한 지금도 여전히 3월부터 2월의 삶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나에게 7월은 해의 고민을 한 번 더 살피는 반 틈의 시간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해를 절반쯤 보낼 때마다 전보다 너그럽지만 수줍어진 자신을 발견한다. 풋내는 조금씩 벗어가는 것 같지만, 오히려 아이들 앞에 어떻게 서야 할지 고민은 점점 커져간다. 어렵겠지만 배우고 가르치는 것에 대한 지금의 고민을 계속해 간다면 내가 꿈꾸는 교실도 조금씩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송은정 교사는 전라북도 교육연구정보원 정보영재강사, 교육부 스미트교육 중앙선도교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7.02 23:02

우리가 극복해야할 조선의 말폐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흔히 조선시대를 비난한다. 그러나 대부분 그 사람들이 근거로 드는 것은 사실 조선의 말폐(末弊)이다. 여기서 말폐란 ‘말기의 폐단’을 가리킨다. 즉, 그들이 비난하는 조선은 이미 거의 망해가던 시절의 악습에 가깝다.조선이 신라나 고려처럼 오류와 모순을 극복하려 시도한 후속 국가에 의해 대체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단계에 접어든 일본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했기 때문에 스스로 말폐를 청산할 기회가 없었다. 게다가 그 이후의 광복이나 분단, 대한민국의 수립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라는 세계사적 구조에서 주어진 것들로, 우리의 선택이나 노력과는 별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극복되어야 할 말폐가 여전히 잔존할 수 있었다. 때문에 아마 구석구석 많은 말폐들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크게 두 가지만 정리해보았다.첫 번째 말폐는 상전-노비 관계를 연상하게 하는 전근대적인 노사관계이다. 물론 제도적으로 노비제도는 공노비 해방(1801년)과 사노비 해방(1894)을 거치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이러한 노비해방은 쟁취의 결과가 아니라, 위로부터의 개혁에 의해 주어진 것이었다. 여전히 고용주는 노동자를 자기가 소유한 노비처럼 다룬다. 즉, 우리나라의 노동자는 노동력을 팔아 연명하지만, 근대적 노동자와 전근대적인 노비 사이의 어느 지점에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근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력’은 상품이고, 상품을 거래하는 두 주체는 기본적으로 서로 대등하다. 따라서 고용주가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구입한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의 시간과 그 시간동안의 인력만 구입한 것이지, 그 사람 자체를 소유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1970년 전태일 이후로 40여 년간 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불사르며 자신의 온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워왔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은 반공이란 명분으로 그들의 정당한 투쟁마저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며 억압하고 있다. 그 덕분에 우리의 삶은 여전히 노비처럼 고단하다.두 번째 말폐는 자신의 안위와 이익만을 탐하는 기회주의의 만연이다. 조선 후기의 혼란한 시대상황에서 관리가 되려면 세도(勢道)를 장악한 집안에 줄을 대고 뇌물을 바쳐야만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백성을 착취하며 자신의 손해를 벌충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의 원인이 된 고부군수 조병갑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이후 외세의 침략에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이완용 같은 기회주의자들은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고 말았다. 그런 친일 반역자들과 그의 후손들은 그 뒤에도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으며, 최근에는 식민지 근대화론 등을 도입하며 자신들의 죄악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아마 제대로 조선이 망하고 새로운 국가가 세워졌더라면, 이러한 기회주의자들은 모두 청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배우는 것은 기회주의자들의 미덕이다. 그것에 저항하는 자들은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혀 ‘낙오자’가 되고 만다. 여기에는 여러 구조적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에, 아마도 이런 말폐들을 쉽게 극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들이 영원불멸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비가 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기우제는 반드시 성공하는 것처럼, 말폐들을 청산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6.25 23:02

청춘, 잃어버린 감정을 찾아서

직장에서 기획회의를 할 때면, 편하게 아이디어를 끄집어낼 수 있도록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이야기에서 시작하곤 한다. 이번에 기획하게 된 행사는 처음 만나는 활동가들과 진행하는 오리엔테이션이었다. 첫 대면에서의 어색하고 불편한 자기소개를 대신해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도 두 가지 사소한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요즈음 당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요즈음 당신을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사소함 속에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큰 힘이 있었다. 요즈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동안은, 처음 만나는 이들 앞인데도 목소리가 떨리고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20대이건 40대이건, 꿈에 대한 고민과 내면의 성장 과정 속에서 일상을 보내느라 비슷한 무게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저, 고민을 나누는 동안만은 나만 외로운 게 아니구나,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며, 어쩌면 잔인한 공감대 속에서 마음이 모아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마음속에서 꺼내어 놓는 그 자체만으로, 그리고 그 이야기를 향해 몸을 기울여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는 느낌이랄까? 그랬구나, 그럴 때가 있지, 그래 힘들었겠다. 주거니 받거니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한 가지 질문으로 오랜 시간 열띤 수다를 떨다가, 두 번째 질문으로 화두를 옮겼다. 그런데 멀뚱멀뚱,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아까의 성토대회 분위기는 어디로 갔는지, 최근의 사건들 속에서 ‘설렘’의 감정을 찾아내느라 모두의 머릿속이 분주한 듯 했다. 즐겁고, 기쁘고, 보람찬 감정들이야 수시로 감정 선을 드나들며 살고 있지만, 설렘이라는 감정은 글쎄…. 첫사랑에게 다시 연락이라도 온다면 모를까 한참을 생각해도 당최 기억이 안 난다. 잃어버린 감정을 찾아야 했다. 당황해하는 서로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버린 우리는, 더듬더듬 설렘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치킨을 주문해놓고 현관문 벨소리가 울리길 기다리는 그 30여분, 육아로 잠시 휴직했다가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 어느 주부의 출근시간, 졸업하고 다시 만난 선후배들, 여행을 떠나기 전날 미리 예매해놓은 버스 티켓 등등. 일상에서 우리가 설렘의 감정에 너무나 무뎌져 있었던 탓일까. 긴장감과 설렘이 가끔 혼동될 때도 있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그 감정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들여다보면 우리들의 일상 속에는 너무나 많은 설렘들이 손을 흔들며 스쳐가고 있었지만, 둔감한 우리가 인사조차 못했던 것이리라.화나고, 우울하고, 슬프고, 무기력한 감정은 홍수처럼 일상에 차고 넘치는데, 반대로 설레거나 짜릿하거나 들뜨는 감정은 바닥이 쩍쩍 갈라지도록 메말라버렸다. 그래서 우리 입에서 토해내는 말들도 늘 ‘짜증나, 힘들어, 못하겠어.’로 걸러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화나고 슬픈 감정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감정의 표현 방식에 문제가 있지 싶다. 어떤 감정이든 내 안에서의 분출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타인과의 ‘공감’을 먼저 생각하면 좀 더 쉬워질 수 있다. 요즈음 당신을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필자의 질문에 갑자기 머리가 멍- 해진다면, 지금 당장 이 질문을 주제로 옆 사람과의 수다를 권하고 싶다. 답답하고 뻔하게 반복됐던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수만 가지 감정들이, 사소하고 작은 소통 속에서 낮선 두근거림으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6.18 23:02

학교 안전교육 소홀한 우리나라

주말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어머니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길래 그 이유를 물었더니, 방금 전까지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과 만나고 오셨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바라는 것은 내가 행복하게 사는게 전부라고 하셨다.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날지 모르고, 내가 바다건너 사는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했을지도 모르는 대화가 공부하라, 또는 꾸짖는 말이 된다면 슬플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참 아팠다. 사실 우리나라 학생들과 부모님들의 대화는 주로 공부나 학원 따위가 주제니까. 특히나 내 또래가 가장 많이 해당 되는것 같다. 수학여행 날 아침에 부모님과 다투고 나온 친구도 있었을 것이고, 한 번도 속시원한 대화를 나누거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친구들도 많았을 텐데. 같은 학생으로서 너무 아프고 화가 난다. 학교 교육에 부족한 점이 많은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이 사고로 인해 안전 교육 문제가 확실히 부각되는것 같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현장학습도 가보고 수학여행도 가봤지만 출발 전 딱히 안전 교육을 받은 기억은 없다. 그냥 부모님에 허락한 서명서를 내고 가는 것이다. 버스 안에서도 안전띠를 매라고 하지 않을 때도 있었고, 말로만 꼭 매라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었다. 장소에 도착해서도 별 다른 방송은 없었다. 내가 다닌 학교만 그런 것인지, 다른 학교도 비슷한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학교를 벗어날 때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안전에 관한 인식을 조금 소홀히 하는 것 같다. 사실 강당에 모여 앉아 아무리 위험하다고 강의을 들어도 그림과 말만으로는 잘 다가오지 않는다. 체험이나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색다른 교육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이상하게 안전에 관해서 규칙이 엄청나게 많았다. 분위기상 한국보다 자유로웠지만 정말 내가 처음 들었을때 ‘별 규칙이 다 있네…’ 하는 것도 많았다. 예를 들자면 중학생들은 학교측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 등록된 부모님의 차 외에 다른것을 탈 수 없다. 시내 버스를 타고 하교하고 싶다면 허락을 받고 미리 학교에 알려야 한다. 친구 부모님의 차라도 친구 부모님과 내 보호자가 서로 연락이 되었다는 사실을 학교가 알아야 한다. 현장학습이 있을때는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학부모 보호자를 네 다섯명 정도 신청받는다. 학교로 직접 와서 얘기하거나 이메일로 신청할 수 있다. 현장학습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학교 행사도 해당된다. 사실 학생들은 친구들끼리 가는 여행에 부모님이 오시는 것이 불편하고 부끄러울 수 있지만, 안전을 따진다면 확실히 이편이 낫다. 한국이나 일본 처럼 학교에서 따로 교육을 받진 않지만, 일이 생기기 전에 이런저런 규칙들로 예방하는 식이다. 아주 조그만 일로도 고소를 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학교 측의 잘못이 되기 때문이다.일본은 안전 교육의 빈도가 굉장히 잦다. 주제도 다양하다. 특히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전거로 등·하교를 하기 때문에 자전거 교육에서부터 조폭이나 불법 단체란 관한 것까지 가르친다. 참 특이한 것이 미국이나 우리나라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개개인이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일본은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한다. 지금까지 받은 검사만 해도 여섯개는 되는 것 같다. 심장 검사, 폐 엑스레이, 척추나 구강검사 등 다 학교에서 제공한다. 이미 수학여행을 한번 갔다 왔고, 이번달에 한번 더 있을 예정인데 출발하기 2주 전쯤 알레르기나 지병, 복용중인 약이나 버스를 타도 괜찮은지, 또 특별히 알아야 할 사항이 있는지 미리 조사한다. 그리고 장소에 도착하면 그쪽 관계자가 직접 안전 교육을 해주는 등 굉장히 철저하다. 교육에는 정답이 없다. 우리나라가 무조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 교육이 올바른 방향으로 잘 나아가고 있는것 같지가 않다. 하루빨리 더 이상의 무의미한 희생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 오피니언
  • 기고
  • 2014.06.11 23:02

보헤미안의 인생

자기계발서가 범람하는 세상이다. 세상에, 정말 빠져 죽을 수도 있을 것만 같다.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는 것이 보통의 경우 그들이 말하는 기본 골자 중 하나다. 틀린 것 하나 없는 말이지만, 피끓는 청춘이라는 이유로 필요 이상의 고통을 합리화시키는 부작용을 앓는 병든 청춘들 역시 적지 않게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안타까운 모습이다.살아있었다면 지금쯤 이들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차고 있었을 것 같은 사람이 생각난다. 10년이 넘게 웨이터 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언젠가는 자신의 뮤지컬이 브로드웨이를 뒤흔들 것이라고 소리치고 다니던 괴짜같은 사람, 뮤지컬 ‘렌트’의 제작자 조나단 라슨이다. 그는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뉴욕 슬럼가의 5층 다락방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던 숱한 룸메이트들이자 동시에 열정 가득한 빈털털이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 싶어했고, 이러한 그의 열망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렌트’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불행히도 조나단 라슨 본인은 렌트의 초연 전날 대동맥류파열로 사망했으나, ‘렌트’는 그의 바람대로 브로드웨이를 뒤흔들었던 걸작으로 평가받았다.아무리 작품 속 인물들이라지만 다들 참 기구하게도 산다. 무명 가수와 스트립댄서가 시종일관 틱틱 싸우면서도 사랑을 나누고,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 철학 교수가 강단에서 내려와 인생을 노래한다.“La vie boheme(보헤미안의 인생)!” 언제 생을 마감할지 모르는 이들이지만 서로 오늘도 수고하셨소, 하고 웃고 떠들고 술잔을 부딪치며 외치는 말이다. 서로 닮은 점 하나 없는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진리의 말이자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풀리는 것 하나 없지만 오히려 삶에 대한 여유가 넘친다. 전직 교수가 “수틀리면 딴데 가서 식당이나 차리지!”라고 하는 걸 보면, 말 다했다.‘렌트’는 예술가들의 유쾌한 발악을 매개체로, 시간에 쫓겨 현재를 잃어버리고 사는 이들에게 “오직 오늘뿐“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나중에 잘 살려고 오늘 하고 싶은 걸 왜 참아야 하냐고 묻는다. 불치병과 불안정한 생활로 이미 미래가 불투명한 그들에겐 당연한 일상이다. 그들의 해답은 항상 현재를 살며, 항상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는 마음가짐에 있었다.인터넷에서 한 글귀를 읽었다. 노는 돈을 아껴 저금하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파격적인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달에 100만원씩 1년을 저금하면 1,200만원이고 10년이면 1억 2,000만원을 버는 셈이란다. 결국 10년을 저금한다고 해도 서울에 있는 아파트 전세도 힘드니 투자라 생각하고 하고 싶은 걸 하라는 우스갯소리 섞인 글귀였는데, 생각해보니 이게 꽤 설득력있는 말이다. (그럴 만한 배짱이 있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겠지만.)몇몇 청춘들은 오늘도 주문을 외운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참는 자가 복이 있다며 끊임없이 되뇌이다가 현실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하면 또다시 힐링이라는 주문을 반복하는 식이다. 조금 더 자신을 위해 살면 어떻겠느냐, 고 조심스레 권유하고 싶다. 무조건 위를 바라보기보다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찾는 것이, 멀리 봤을 때 더 큰 기회이지 않을까.이 곳에서의 마지막 글이다.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마지막 이야기를 끝맺고 싶었다. Viva la vie boheme, 영원하라, 보헤미안의 인생이여!

  • 오피니언
  • 기고
  • 2014.06.04 23:02

영원한 나라는 없다

망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그러므로 신라가, 고려가, 조선이 망한 것처럼, 대한민국도 언젠가 망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새로운 나라가 생겨날까?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지만, 상상할 수는 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보다 나은 우리나라를 상상해보고자 한다.첫 번째로 특별 사면권이 없는 대통령을 상상해본다. 대통령의 특별 사면권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보장된 대통령의 권리이다. 그런데 역대로 특별사면은 억울한 사람을 구해주기보다는, 정치인이나 재벌총수 등을 풀어주는 데 많이 쓰였다. 때문에 ‘죄를 지으면 벌 받는다’는 상식은 통하지 않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몰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새로운 나라에서는 반드시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폐지되어야 사법정의가 구현되리라 생각한다.두 번째로 공정한 중재자로서 국가를 상상해 본다. 자본은 기본적으로 치안을 유지할 공권력은 필요로 하지만, 그 공권력이 너무 커져 자본을 통제하고 간섭하는 상황은 싫어한다. 때문에 근대이후 자본은 국가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축소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길들여 왔다. 그래서 신자유주의에 포섭된 현재의 대한민국은 국민을 보호한다는 가장 큰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의 계획경제처럼, 사사건건 국가가 개입하는 방식도 옳지 않다. 이는 소련 등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이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때문에 국가의 역할은 공정한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과 대기업, 재벌의 전횡으로부터 사회적 약자인 중소기업과 소비자, 서민을 보호해야 한다. 따라서 공정거래위원회 등 여러 관련 기관의 권한을 강화하고, 징벌적 배상제도의 도입 등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세 번째로 직접 민주주의 제도를 상상해 본다. 간접민주주의는 교통과 통신이 아직 불편했고, 정치에 참여할 정도로 교육받은 자들이 소수였던, 근대의 초입에 생겨난 제도이다. 따라서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교육 받은 다수의 대중이 존재하는 현대에도 적합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물론 국민이 모든 법률의 입법과 행정에 직접 관여하는 수준의 직접 민주주의는 지금으로선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는 국민 개개인은 물론, 국가에게도 엄청난 비용과 시간,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직접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최초의 한 발자국 정도는 상상해볼 수 있다. 바로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 대한 탄핵 발의권이나 국민 소환제 등을 도입하는 것이다. 현재 간접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임명만 할 수 있고 해임을 할 수 없는 반쪽짜리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뽑아준 국민의 뜻과 어긋나게 국정을 운영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때문에 최소한의 해임권한을 확보하여 간접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 구체적인 직접 민주주의는 그 뒤에 상상해볼 문제이다. 그러나 이런 상상들이 현실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헌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헌법 개정 절차는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거친 후에야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에 들어갈 수 있다. 즉, 아직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와 같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 우리는 87년 6월,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개헌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성취한 바 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희망은 언제나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5.28 23:02

여행, 그 참을 수 없는 고단함을 위하여

퇴근 후에 자취방에 앉아 빨래를 개다가 문득, 방바닥과 정리장 사이 뿌옇게 자리 잡은 먼지가 눈에 띄었다. 정리장을 밀어내고 그 자리의 먼지를 닦아내니, 그 앞에 있는 침대 모서리 먼지들이 또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렇게 다 늦은 저녁, 느닷없이 대청소가 시작되었다. 자취생활 4년차에 접어들다 보니 작은 방에 무슨 물건들이 그리도 많은지, 큰맘 먹고 버릴 물건들을 정리했다. 언젠가는 입을 일이 생길 것 같은 마음에 서랍장에 모셔놨지만, 계절이 몇 번이나 다시 돌아와도 꺼내어지지 않는 옷들, 또 언젠가는 요긴하게 쓸 일이 생길 것 같은 마음에 상자마다 쟁여놓은 물건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요긴하기는 커녕, 이런 게 있었네.하고 있다. 버리지 못한 이유는 미련보다는 미련함이지 싶어, 그 미련함에 반박하듯이 재활용 수거함으로 직행.한참을 정리하기에 몰입하느라 오히려 온 방을 뒤집어 놓고는, 한동안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 물건 하나가 발견됐다. 물건 하나가 눈에 띄었을 뿐인데, 방 안의 공기들이 그 물건에 대한 기억들 수만 가지로 가득 찼다. 짐보다는 추억과 낭만과 내 20대의 작은 세상을 더 많이 담아냈던, 여행 가방이었다. 대학 때는 방학이면 농활, 악기 전수, 해외봉사, 해외연수, 하다못해 친언니처럼 좋아했던 언니들의 배낭여행에 따라가고 싶어 돈을 모았다. 꼭 해외가 아니더라도 강원도로, 부산으로, 또 전남일주까지 배낭 하나만 달랑 챙겨가지고는 버스와 기차만으로도 여행이었는데,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여비도 넉넉하고 이동수단도 업그레이드되었는데도 왜 여행이 여행같지 않은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마음가짐의 문제이지 싶다.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일보다도 고단했지만 공부보다도 얻는 것이 많았으며 그 어떤 휴일보다도 달달했다. 편하자고 하는 여행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으로는 그 때는 그래도 어렸고, 그래서 마냥 신났고, 아무튼 지금보다는 나았다는 핑계를 늘어놓고 싶다. 하지만 내 인생에 그 어느 때라도 지금보다 덜 치열했거나 덜 심각했다고 말할 수 있는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예상치 못했던 막내동생이 태어나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초등학교 때도, 첫사랑에 실패했던 중학교 때도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가 좋았다는 억측이 만들어낸 속담이 바로 구관이 명관인 모양이다. 역시나, 마음가짐의 문제임이 확실하다. 살면서 축적해가는 경험치는 점점 높아지는데, 희한하게도 목표는 점점 더 희미해지고 마음은 지쳐가게 된다. 일을 위한 일이 고약하게 지속되다보니,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잃어버리거나, 혹은 잊어버리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여행을 마음먹기가 예전처럼 쉽지가 않다. 월요일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주말에 휴식이 꼭 필요하다는 강박관념에 여행이 휴식이 아닌 또 하나의 고단함이 될 것만 같고, 그렇다고 마냥 집에 누워 있는다고 해서 월요일이 덜 두려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시계바늘 위에 걸터앉아서 시간이 옮겨다 주는 대로 정말 꾸역꾸역 살아가는 느낌이다. 배낭을 꺼낸 김에, 다시 한 번 여행갈 채비를 해 보려고 한다, 배낭에 쌓여있던 먼지를 털어내듯이 감성에 쌓인 먼지도 털어내고, 또 한 10년쯤 흐르고 난 뒤에 그래도 그 때가 좋았지하며 억측을 늘어놓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 하나 더 만들어 와야 할까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05.21 23:02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