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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고 음악하라

얼마 전 필자는 세계 최대의 월드 뮤직 마켓인 womax에 다녀왔다. 올해 워맥스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라고 하는 작은 스페인의 소도시에서 개최되었다. 많은 이들에게 까미노라불리우는 순례길의 고요한 이곳. 워맥스가 개최 되는 기간, 산티아고의 매일 밤은 순례객 대신 각 나라의 내로라하는 음악인들과 그들의 콘서트를 듣고 즐길 관계자들로 채워졌다. 아름다운 가을날, 유럽에 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환상적인 음악과 함께라니. 생각만으로도 황홀하고 그 자체로도 그저 행복한 날들이었다.기회의 땅 , 워맥스워맥스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여러 부류이다. 각 나라의 축제 담당자들, 매니지먼트사, 레코딩회사며 예술경영지원센터와 같은 국가기관, 그리고 뮤지션, 아티스트 등 그야 말로 음악시장의 작은 지구본과 같은 느낌이다. 매일 낮이며, 밤, 날을 새가며 각 나라에서 선발 된 뮤지션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30분이라는 시간동안 그들은 자신이 가진 가장 보석 같은 곡들을 선발해 워맥스 무대에서 맘껏 펼쳐 보인다. 특히나 showcase가 진행되었던 산티아고 대성당 주변의 크고 작은 공간의 무대들은 성스러운 순례객들 뿐만 아니라 흥겹게 마시고 즐기는 워맥스 관객들도 넓게 열려 있었다. 낮에 진행 되는 daycase와, 밤에 열리는 showcase는 참여 예술인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큰 행운이자 영광과 같은 공연들이다. 가장 화려하고 활동적인 음악적 청춘에게 주어지는 무대. 워맥스라는 타이틀 자체로도 충분하지만 실제로 그곳에 가보니 그곳의 엔지니어들의 프로다움에 필자도 무대 욕심이 불끈 불끈 솟아났더랬다. 특히 워맥스에 참가한 뮤지션들은 자신의 음악을 팔기 위해, 각 나라의 음악시장에 참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그것은 긍정적인 의미로의 굉장히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첫 날 말레이시아에서 온 한 뮤지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에게 나의 CD를 줘도 될까? 너무도 흔쾌하고 감사한 선물에 필자는 대답했다. Of course, why not! 워맥스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왜 그가 그토록 조심스럽게 자신의 음반을 건넸는지 이해 할 수 있었다.CD를 건네기 힘들어. 왜냐면 다들 돌아갈 때 너무 짐스러워 하거든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필자의 트렁크엔 3kg쯤 되는 CD가 그득했다.필자가 워맥스에 참가한 이유는 음악적 견해를 넓히고, 월드뮤직시장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서 느끼고 바라 본 지점은 그것보다 훨씬 다양했다. 수준 높은 뮤지션, 풍성한 음악 들 뿐만 아니라 그곳에 온 많은 뮤지션들의 태도 에서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얼마나 안일하고 나태한 태도로 살아왔는지, 그들은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왔을지. 그곳에 참여한 예술인들의 연령대는 굉장히 다양하고, 그들의 삶은 또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지.삶에 치열하지 못했던 부끄러움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속에서 나는 다양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음악을 자위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 온 흔적들이 고스란히 무대에서, 음반과 같은 결과물에서 자연스럽게 묻어 나왔다. 무대에 서지 못하더라고 그 이후의 무대를 위해 준비해 온 그들의 보따리에 비하면, 그저 누군가의 음악을 듣기 위해 떠나온 나의 가방이 초라하고 볼품없어 한참을 부끄러웠다.좋은 계절, 여행하고 음악하는 삶 속의 청춘의 잎사귀가 풍성해지는 가을. 우리는 왜 광장으로 향하는 주말을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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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14 23:02

약자의 꿈틀거림

서걱서걱 내리는 비가 주변의 온기와 소음을 흡수해 유난히 적막하던 날 밤이었다. 샵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덜컹거렸다. 그 소리에 놀라 쳐다보니 지저분한 행색의 수상쩍은 아저씨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다가가서 무슨 일이냐 묻자 우물쭈물한다. 예상치 않게 문이 잠겨 있어 당황한 듯 보였다. 그러다 곧 뒤따라오던 비슷한 모습의 일행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마침 문을 잠가 놓았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들어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 이후로 나는 해가 지면 항상 문을 잠그고 블라인드를 내리고 작업을 한다.약자의 자리에서 낸 용기본인보다 약한 상대가 보이면 힘으로 제압하고 욕구를 채우려 드는 사람들. 대중교통에서 분풀이 대상이 되어 이유없는 욕을 들어야 했던 기억,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불합리한 상황에 응하게 만들던 사람들과 일말의 가책 없이 성추행을 자행하던 남자들.나는 항상 약자였다.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오빠를 둔 탓에 눈치 보는 것에 익숙했고 내 주장을 펼치지 못하는 성인으로 성장했다. 제대로 의견을 이야기하지 못해 원치 않은 일을 해야 했고 혼자 속앓이하기 일쑤였다. 항상 폭력적인 힘에 의해 제압당해야 했던 나는 물리적, 정신적으로 나약한 존재였다. 나를 마음대로 휘두르고 우습게 보는 사람들을 향해 당당히 내 권리를 지키며 소리치고 싶었지만 용기도, 도와주는 이도 없어 결국 자책만 했다.순두부처럼 야리야리하게 흔들리던 초등학교 시절. 딱 한번 용기를 낸 적이 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왕따를 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평소 나답지 않게 친구 편에 서기로 마음을 먹고 한동안 대다수의 친구들을 등지고 지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보란 듯이 당당하게 그 친구와 둘이서만 다니면서 뒤에서 욕을 하던, 앞에서 손가락질 하던 아랑곳 하지 않았다. 약자처럼 보였지만 그때의 난 약자가 아니었다. 왜 그 이후에 난 그때처럼 행동하지 못했을까. 약자기 때문에 당하는 것보다 스스로 약자임을 인정하고 고개 조아리는 상황이 더 나의 가슴을 사무치게 했다.지금 온 나라가 한 가지 이슈로 들끓고 있다. 그녀가 강자의 위치에서 군림하다가 아래로 끌려 내려오니 모두가 벌떼처럼 달려든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며 그녀는 과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을까. 약자로 살아온 이들은 당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당당하지 못하고, 평생을 강자로 살며 부당한 이익을 챙겨온 그들은 그녀의 딸의 인터뷰처럼 자신의 잘못을 신경 쓰지 않는다.당당함을 가지고 일어나야내가 오빠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칠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거 몇 대 때린 거 가지고. 이 한 마디에 다리 힘이 풀렸다. 온힘을 다해 버티는 나와는 달리 가해자는 한번 슥 쳐다보고는 태연히 자기 볼일을 본다. 그때부터였다. 당신이 한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깨닫게 해주리라고 다짐을 한 것이. 남을 변화하기에 앞서 내가 변해야만 했다. 내가 약자라는 사실보다 진정 부끄러운 것은 목소리를 내야 될 때 스스로 두려움을 집어먹고 그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거들었던 상황들이다.지금의 난 과거에 비해 여러모로 나아지고 있다. 쉽지 않은 과정이다. 여전히 사회적 약자로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지만 더 이상은 당연히 굴복당할 수 없기에 그동안 조금씩 이겨내온 나의 값진 시간들 속에서 용기를 한 움큼 꺼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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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07 23:02

꽃차를 만드는 일

나는 초년생 변호사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따금씩 일에 익숙해진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힘들어 일을 그만 두고 싶으면서도 아주 가끔 찾아오는 보람 때문에 선뜻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있다.내 일터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고성이 오간다. 내가 일하는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정서는 분노와 억울함이다. 잔뜩 골이 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맥 빠지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감정일 터이다.불안정한 인생에 대한 고민그래서 결심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취미를 하나 더 가지기로 말이다. 마침 친구가 꽃차 소믈리에 수업을 들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따라서 배우기로 결심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우아해 보이는 취미를 갖고 싶었던 차에, 아주 잘 어울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꽃차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그런데 유리병 속 색색의 꽃차를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고된 일이었다. 꽃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꽃이 필요하다. 뜨거운 물에 우려 마셔도 될 만큼 깨끗한 식용 꽃을 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같은 꽃이어도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특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같은 방법으로 같은 품질의 꽃차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꽃잎을 잘 다듬어 건조작업을 하는 것 또한 보통 일이 아니다. 꽃잎은 연약한 만큼 열과 습기에 민감하다. 꽃을 덖는 작업도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고 수분이 모두 빠질 수 있게 여러 번에 걸쳐 이루어진다.수업을 들은 날은 집에 와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자야 한다. 꽃을 완성되지 않은 채로 오래 두면 금세 상태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겁게 짓누르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깊은 밤에 꽃을 덖고 있자면, 쉽게 예쁜 꽃차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기대했던 나 자신이 슬며시 부끄러워진다. 이런 고된 과정을 거치고도 타버린 몇몇 꽃잎을 보다 보면, 세상에는 손쉽게 내 손에 쥘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대학교에 입학하면 인생의 관문이 끝날 줄로만 알았던 시절을 지나, 취직을 하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직업을 가지고도 끝없는 고민을 하고 있다. 하던 일을 그만 둘까, 이미 시작해버려서 그만 둘 수 없는 일을 계속 하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결코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청춘의 전유물인 줄로만 알았던 불안정한 인생에 대한 고민은 사실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었다니, 배신감이 크다.취미로 배우는 꽃차 정도는 그래도 손쉽게 만들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이것 또한 단계마다 나름의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하물며 삶을 만들어 가는 일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고된 일이겠는가.모든 것엔 꾸준한 노력 있어야그저 예쁜 꽃을 보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꽃을 덖다 보니 겸손한 마음이 절로 든다. 일을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많지만 때로 보람된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면, 이 일을 계속 해도 되지 않을까. 고되긴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새로운 꽃차를 마실 수 있는 이 취미가 꽤 마음에 드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나 자신을 조금 더 격려하며 청춘의 또 다른 관문을 무사히 통과해 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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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31 23:02

왜 다시 총학생회인가

7년 전, 필자는 26일 동안 자전거로 전국을 여행 했다. 나름 테마를 정한 기획된 여행이었는데 그건 바로 대학과 사람이었다. 전국의 거점 국립대를 탐방해 대학과 그 안의 구성원들의 생각을 들어 보고자 했다. 전북대에서 출발해 전남대, 경상대, 경북대, 부산대, 강원대, 서울대, 충북대, 충남대 순으로 지역거점 대학을 방문했다. 각 대학만의 홍보팀과 대학언론사를 찾아가 그 대학만의 고민과 장단점을 비교해보고 싶은 이유도 있었지만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오늘날의 총학생회 역할을 찾는 데에 있었다.대학은 작은사회, 대표기구 역할 중요자전거 여행을 한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때 만난 몇몇의 총학생회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가장 지역과 밀착된 총학생회는 강원대 총학생회였다. 학교로부터 학생회 간부들에게 지급되던 비용을 모아 강원도 도서벽지 곳곳에 도서관을 지어줬다. 지역에 대한 강원대의 애정과 헌신의 크기는 강원대에 대한 강원도민의 자부심에 비례한다. 학교본부와 의기투합한 곳은 경상대 총학생회였다. 경상대는 유일하게 지역이름을 붙이지 못한 거점 국립대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꽤 많다.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경남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현재 경남대는 사립대고 경상대가 경남지역을 대표하는 거점 국립대다. 당시 경상대 본부와 총학생회의 신경은 온통 경남국립대로의 이름 복원에 있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서울대 대학언론사로부터 집중 조명을 받고 있었다. 서울대 대학신문 1면 기획기사 주제는 여전히 학생자치대표기구로서 총학생회가 필요 한가 였다. 기껏해야 연예인 섭외해 치르는 축제나 학생복지 사업 등을 진행하는데 총학생회의 타이틀을 걸고 해야 되는 이유가 굳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었다.총학생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건 단순한 회상 때문이 아니다. 대학이 지역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에 따라 지역 공동체의 모습이 달라진다. 대학은 작은 사회다. 총학생회는 그런 작은 사회의 대표기구다. 작은 사회의 대표기구 역할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은 큰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과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총학생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설령 과거 유럽에서처럼 전제적 지배로부터 조국을 해방시키기 위해 책 대신 무기를 들고 전장에 앞장 서는 시대는 아니더라도, 총학생회가 은행 ATM기를 늘리거나 잔디를 심은 운동장을 확산하기 위한 역할을 위해 존재해선 안 된다. 오히려 대학생을 비롯한 수많은 청년들 개개인의 꿈과 적성, 그리고 능력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사회에 저항하고 바로잡는 데에 앞장서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 일을 할 사람들이 총학생회 선거에 도전해야 하고, 그들을 투표로 지지하고 응원해야 한다.그릇된 사회 바로잡는 이가 회장돼야『논어』에서 공자는 정치를 맡기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질문에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正名)고 했다. 이 말은 그 이름(名)에 부합한 실제(實)가 있어야 그 이름이 성립한다는 의미이다. 매년, 11월이면 전국의 대학가는 총학생회 선거를 치른다. 모두가 다 이름을 바로잡는 데 나설 수는 없다.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성적 관리도 해야 하고, 취직 준비도 해야 한다. 다만 총학생회다운 총학생회를 이끌 이들을 관심 가지고 잘 뽑자. 1%때문에 99%가 힘든 시대라면 반대로 1%만 좋은 생각과 행동을 해줄 대표기구를 뽑으면 99%가 근사하게 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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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24 23:02

전주를 떠나는 청춘들

정확히 10년 전, 수능을 앞두고 대학 캠퍼스 생활과 이십대의 앞날을 그리던 시기.많은 친구들이 ‘인서울’을 목표로 열을 내던 날들이 있었다. 학창시절 제일가는 성공의 척도이자 우열을 가리던 의미의 그 말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을 뜻하기도 했다. 어떤 이에게는 학업에 대한 순수한 열망이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졸업 후 취업 성공에 한 발짝 다가가려는 선점과도 같은 걸음이었다. 하지만 아마 대부분은 십대의 불완전한 자유 속에서 벗어난 온전한 자유에 대한 갈망이었으리라. 지역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 사람들. 그리고 젊음의 청춘들. 그곳을 향하는 저마다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청년과 농업 상생할 수 없을까사실 도내 청년 인구는 서울뿐 아니라 타 지역으로의 인구유출이 심각한 수준이다. 물론 전주만 그런 것은 아니고 타 지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전주를 떠나는 청춘들은 곧, 지역을 떠나는 청춘들, 그리고 서울을 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대할 수 있다. 차고 넘치는 곳임을 알고도 청춘들은 서울로 간다. 지역을 떠나 많은 청춘들이 중앙과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청년들이 그들의 지역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취업’이다. 특히 전북은 이렇다 할 대기업이 없는 열악한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북에서 청년 인구가 증가한 곳은 완주군이 유일한데, 이는 현대자동차나 KCC와 같은 대기업이 완주산단에 밀집돼있고, 혁신도시 조성으로 인한 인구 유입 때문일 것이다. 완주군을 제외한 도내 시군의 청년층의 인구유출은 꽤 심각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대기업 유치만이 지역의 청춘들의 발목을 잡아 둘 유일한 방법일까. 그렇지는 않다. 대기업으로 취업할 수 있는 청년의 수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것 이외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일자리 창출이 이뤄져야 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지역색’을 띠어도 무방하다고 보는데, 농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도내 현실을 반영한다면 청년과 농업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한 기업이 일하기 좋은 전라북도에서 나아가 청년에게 젊음의 열정을 꿈꿀 수 있는 기회의 지역이 되어야 한다. 청년 창업이나, 청년 일자리 창출에 쏟는 재정과 시간적 호흡을 길게 가질 필요가 있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하는 숙제처럼 이루어지는 지원은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누가 그러고 싶겠냐만은 망하기 위해 창업하는 식의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야 한다. 또한 청년문제가 일자리 창출에 한정짓는 것이 아니라 문화, 복지차원에서도 탄탄히 이루어져야 한다. 벌어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건강한 시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역이 탄탄해야 건강한 나라얼마 전 필자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지역에서 성공하는 청년 예술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는데, 왜 꼭 지역인가?’ 나는 대답했다. ‘모두가 중앙을 향하는 시대, 조금 외진 곳이라도 삶의 터전에서 인정받고 꾸준히 활동하는 것. 그 자체로도 아직 칭찬받을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지역이 탄탄해야 전체가 건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고, 나는 지역에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건강한 청년 예술인의 본보기가 되고 싶다.’ 나의 대답이 허황된 말뿐이 되지 않기 위해, 청년들 적극적인 자세와 사회의 협조적 구조가 조화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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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17 23:02

30대 미혼 여성 예술가로 당당하게 사는 법

초등학교 때, 가을을 주제로 한 글짓기 숙제가 있었다. 친구가 쓴 글을 슬쩍 읽어보는데 아직까지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글귀가 있다. 기억을 다듬어 본다.아기가 엄마 품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꽉 움켜쥔 손이 빨개진다. 단풍잎도 점점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에 나무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꽉 잡고 있느라 빨갛게 물드는 것이 아닐까.그 때는 저 표현이 마냥 멋있게 느껴졌었는데 지금 곰곰이 들여다보니 참으로 가슴 아픈 사연이다. 힘껏 애써보지만 결국 정해진 운명에 굴복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 찌들어버린 나의 감성이 그 때의 순수했던 시선을 덮치고 있다.순수했던 시선 덮친 찌든 감성나는 봄을 참 좋아한다. 연둣빛의 새순이 올라오는 나무들을 보고 있노라면 설렘이 한가득 밀려온다. 마치 이란성 쌍둥이처럼 봄과 닮아있는 가을. 태생은 같지만 너무나 다른 그들처럼 나에게 가을의 아름다움은 황홀하지만 쓸쓸하고 외롭다.어릴 때도 이런 감정이었던가? 아니다. 마냥 은행나무 길이 예쁘다며 걷고 낙엽을 주우며 설레는 마음으로 첫눈을 기다렸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가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노화의 증거인 낙엽을 마냥 아름답게 감상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대한민국 30대 서민 미혼 여성 예술가한 단어, 한 단어를 되뇔 때 마다 심장이 아리다. 마인드맵 지도처럼 뻗어나가는 연관된 단어들마다 가슴 아픈 아우성이다. 원치 않는 중금속을 가득 먹고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 밟힘 당하고도 냄새난다고 욕먹으며 결국 쓰레기통에 처박혀 불태워지는 가로수의 은행처럼 원통한 2016년의 가을날 나는 속 쓰림을 꾸역꾸역 삼키며 당장의 월세와 지출을 위해 애써 시야를 흐리고 시선을 돌려 붓질을 한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잎을 보며 곧 한살 더 먹을 것을 안타까워하는 그저 그런 인간인 내가 딱하다.아무것도 없었던 일 년 전의 막막함을 떠올려보면 그래도 나쁘지 않은 발전이다. 그런데도 여전한 이 불안함은 무엇에 의한 것인가. 불신 가득한 국가? 진실 되지 못한 사람들? 모이지 않는 통장 잔고?이런 상황들이 맞물려 점점 나의 색채를 지우고 잿빛이 되어 적당히 눈감고 타협하며 살아가게 만드는 이 세상과 그곳에서 중심을 잃고 흔들리게 될 나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은 아닐까.시발점을 찾아 생각을 거슬러 가다보면 불편한 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 모든 불안함이 나로 인해 새어나오고 있었다. 저 구석진 곳에 누군가에게 보일 새라 스스로에게까지 숨기려 했던 부끄럽기 짝이 없는 부분들까지도 이참에 샅샅이 들춰본다. 그리고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부분인데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나에 대한 부정적 평가 인정하기다. 생각지 못한 부분도 있고 자존심도 많이 상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좀 더 관대한 법이다. 그들의 시각을 빌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자신에게 그런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진정 행운이다.아티스트가 존경의 의미 되는 날 위해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 나의 중심이 되는 신념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 그 신념에 반하는 행위는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어떠한 상황에서도 남들 신경 쓰지 않고 내 길을 굳건히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세 가지 조건이라고 생각한다.만물의 아름다움이 날것 그대로 와 닿을 수 있게끔, 대한민국의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이 안타까움이 아닌 존경의 의미로 인식될 수 있는 날을 위해 손이 빨개지도록 오늘도 나는 붓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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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10 23:02

여기까지 왔다

최근 스스로에게 축하를 해주고 싶은 일이 하나 생겼다. 소수의 청년들과 뜻을 모아 진행해 오던 1%지식나눔만의 공간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다음 달부터는 지식나눔을 위한 장소를 찾아 헤매며 쏟았던 에너지를 더 알찬 강연을 만드는 데 쓸 수 있게 됐다. 참 신기했다. 공간 공사 현장을 지켜보면서 6년 전 의지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청년들로부터 시작된 시간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많은 애로사항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여기까지 왔다. 어떻게 왔을까? 지금까지 지식나눔에 함께 했던 연사들과 나눈 생각들을 바탕으로 그 이유를 찾아봤다.딱 1%의 시간과 재능을 나누고자첫째, strong why가 how to를 지배한다. 자기만의 분야에서 의미 있는 삶을 이어가는 연사들의 공통된 생각은 강한 이유가 어떻게에 우선한다는 것이었다. 지식나눔 방향과 방법에 대한 이견차이로 멤버 간 다툼이 있어도, 없는 시간과 돈만 들어간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strong why 때문이었다. 지식나눔을 시작할 때 지역청년들에게 사람이라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힘을 모아보자는 다짐만큼은 꼭 지켜내려 했다. 이유를 지켜내니 운도 따랐다. 가장 고민거리였던 지속가능한 수익모델이 해결된 것이다. 현재 6층으로 된 호스텔을 인수해 숙박업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호스텔 이름은 1%호스텔로 바뀐다.둘째, 위대한 일은 작고 쉬운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지식나눔 연사 중 한명이었던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이정표 장내 아나운서는 인터뷰 당시 성공 비결에 대해 시간 지키기를 언급했다. 비결치고 다소 작은 건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일침을 놓았다. 작은 일이라고요? 그게 전부 인데요. 필자가 학원 강사로 있을 때, 아이들이 영어 단어 잘 외우는 방법을 물어 하루에 10개씩을 추천했다. 보통 사람이 영어 단어 10개를 외우는 데 하루 1440분 중 넉넉히 10분이면 충분하다. 이 쉽고 작은 일은 365일 하면 3650개를 외울 수 있다. 웬만한 회화를 할 수 있는 단어다. 그러나 대다수가 이 쉬운 일을 안 해 평생 영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지식나눔이 한 쉬운 일은 1%에 목표를 뒀다는 점이다. 더 잘 하려하지 말고 더 많이 하지 않고 딱 1%의 시간과 재능을 나누고자 했던 게 비교적 잘 버텨낼 수 있었던 원인이다. 1%가 조금 씩 쌓여 공간이 생기는 일로 이어졌다고 확신한다.마지막으로 믿음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에 대한 재밌는 이론 중 파스칼의 내기라는 게 있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수학자이던 블레즈 파스칼은 내기이론을 통해 신에 대한 믿음을 논증하려 했다. 신이 있다고 내기에 걸었는데 만약 이긴다면 영원한 행복을 얻을 것이고 만약 내기에 진다하더라도 아무런 변화가 없을 거다. 반면에 신이 없다고 내기에 걸었다면 만약 내기에서 이기면 아무런 변화도 없겠지만 설령 진다면 영원한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신이 존재할 확률이 아무리 낮다고 해도 신을 믿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 신을 꿈으로 대체해 보면 어떨까. 당장 내 꿈이 눈에 보이지도 이뤄질 거 같지 않더라도 믿어야 이뤄진다. 지식나눔을 위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이 꼭 현실화 될 거라 믿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익숙함에 이르는 훈련의 고통 견뎌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가보지 않은 목표들이 많다. 익숙하지 않은 목표를 향한 길에 있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겠다. 그러나 익숙함에 이르는 훈련의 고통을 견뎌내는 게 후회의 고통을 견디는 것보다 훨씬 나은 일임을 알기에 또 일어날 자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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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26 23:02

우리는 과연 포기하며 사는가

얼마 전 필자는 소리극 ‘시대를 노래하다’ 〈삼포가〉를 발표했다. 많은 이들이 제목 속에서 소설 ‘삼포로 가는 길’을 떠올렸다. 소설과는 전혀 무관한 내용의 〈삼포가〉는 청춘의 자화상과도 같다. 포기하며 사는 세대, 즉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판소리극이다. 젊은이들은 무엇에 행복을 느낄까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삼포세대’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에 인간관계와 집을 포기한 ‘오포세대’,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청춘의 모습을 ‘칠포세대’라고 한다. 신조어로 연애, 결혼, 출산, 취업, 주택, 인간관계, 희망, 건강, 학업, 노후, 이미지, 양심, 종교, 정치, 애국까지 포기한 ‘15포세대’ 까지 등장했다. 시대를 이야기하고 싶었고, 또 기록하고 싶었다. 역사적으로 의식 있는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시대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두려움을 갖지 않고 시대를 비판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그러자니 내가 살고 있는 세대의 문화를 바라보는 객관적 시선이 필요했다. 과연 청춘은 무얼 얻고 또 무엇을 포기하며 사는가?작년 봄 쯤 책을 하나 읽었다. 〈절망의 나라 행복한 젊은이들〉 일본의 사회학자 후루이시 노리토치의 작품으로 20대 젊은이들이 겪는 일본 사회와 사토리 세대라 일컬어 지는 청춘의 모습을 담은 책이었다. 열악한 환경과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젊은이들은 행복하다 말하고 있다. 뭔가 모순적이면서도 아이러니한 제목에서 우리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일본은 우리나라의 사회적 문제와 흡사한 면들을 미리 겪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경제적 장기침체를 겪는 일본은 정규직 취업이 힘들고 계약직과 파견직이 태반이다. 그것마저도 힘들어 파트타임이나 편의점 알바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가난을 모르고 사는 청춘들 또한 허다하다, 고도의 경제성장을 경험한 부모님 아래서 소위 ‘캥거루족’이라 일컫는 삶을 살아간다. 아마 그들은 지금의 50~60대 부모를 자신들이 봉양해야 하는 10여년 후쯤에야 더 큰 경제적 어려움이 다가올 것이다. 우리나라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이기도 하다.그 후 우리는 무엇을 포기하며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가 궁금해졌다. 미래가 보이지는 않는 사회에서 그들은 꿈을 잃었을까? 혹은 현재 자신이 살아가는 지점에서 만족하는 것들이 주는 안이함에 익숙해졌을까? 아마 거시적 관점에서의 행복감은 아님이 분명하다. 당장 마실 수 있는 맥주 한 캔에 행복을 찾는 미시적 관점의 만족감이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그것이 삶의 행복지수로 이어졌으리라. 가진 것에 만족하고, 현실에 수긍하며 사는 삶에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젊은이들에게 그야말로 ‘미래’가 사라졌다. 작가가 말한 ‘끝나지 않은 일상’만 남았을 뿐이다. 전적으로 동감했다. 꿈을 잃었고, 하고 싶은 꿈보단 해야 하는 일에 길들여진 우리의 모습이었다. 한참 열렬히 반항적이고, 사회 모순에 저항하던 옛 청춘의 모습은 희미해졌다. 좁은 취업의 길속에서 기득권의 입맛대로 깎아지고 훈련되어진 젊은이들. 기성세대와 사회가 원하는 보기에 알맞은 순종적 청춘의 모습으로 선명해졌다.미래가 안 보인다고 꿈을 잃었을까요즘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청춘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포기하며 사는 인생이라고 단정 짓는 어른들의 시선에 갇혀버린 청춘들이 때 이른 달관의 시간을 지내고 있다. ‘청춘’이라는 단어로도 가슴 뛰게 행복하고, 누군가의 부러움을 사는 특별함이 빛을 잃었다. 그러나 청춘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렇게 바라보는 시선은 나인가, 사회인가? 왠지 불안하게 행복한 젊은이들이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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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19 23:02

숨은 재능 찾기

당신은 자신의 재능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최근 나는 실로 놀라운 경험을 했다. 평생을 나의 단점이라고 생각하며 부끄러워하고 기피했던 부분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과 함께 약간의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거나 연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 미운 약지발가락과도 같았던 그것은 바로 글쓰기다. 불과 일 년 전 까지만 해도 나는 SNS 상에 두 문장 이상의 글은 잘 써서 올리지도 못했었다. 글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애써 찾은 미사여구를 짜깁기 하곤 했는데 그런 눈속임 찌끄러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민망함에 손발까지도 붉게 물들일 뿐이었다.잠재능력, 새로운 자극에 의해 깨어나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글과 그림은 표현 방법의 작은 차이일 뿐인데 그 한 끗이 왜 그토록 멀기만 한 것인지 자책도 많았다.그런 나의 글에 변화가 생긴 것은 여행 덕분이다. 긴 시간을 걸으며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고스란히 담아두고 싶어서 정성을 들여 단어를 고르고 다듬어 기록하기 시작했다. 한 문장이 네 문장이 되고, 한 문단이 됐다.저 언덕 너머로부터 서서히 뜨는 달님께 입장은 알겠지만 조금만 천천히 뜨시라고, 저 산세로 기우는 헤님께 가는 길이 바쁘시겠지만 나랑 조금만 더 이야기하면 안 되겠냐고, 그렇게 배려 받으며 아슬아슬하게 도착한다.위의 글은 여행 중 대관령 산길을 홀로 걷는데 해는 뉘엿하고 도착지까지는 멀었기에 불안한 마음으로 하늘을 보며 쓴 글이다. 여행이 끝난 뒤 우연히 알게 된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 저 글이 너무 고와서 저장해놓고 가끔씩 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나의 글을 보고 이런 반응이었던 적은. 우연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 뒤로도 비슷한 반응들이 이어졌다. 그것은 나에게는 충격에 가까운 변화였다. 사람들은 나의 글이 잘 쓰여 졌다고 생각해서 좋아해 준 것이 아니다. 그 속에 담긴 진심이 전달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나는 이 경험을 통해 두 가지를 깨달았다. 잠재능력은 새로운 자극에 의해 깨어난다는 것, 그리고 진심보다 강한 매개체는 없다는 것이다.폐활량이 좋은 사람도 평생을 사막에서만 산다면 자신이 얼마나 수영을 잘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잠재능력을 5~6% 정도만 사용한다고 한다. 그만큼 대개의 사람들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만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어떤 우연한 경우에 또 어떤 예상치 않은 나의 재능이 발견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몇 번이고 익숙지 않은 상황 속에 나를 던져보고 싶어진다. 이제는 그 불편함을 충분히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우연한 기회 자신의 재능 발견될 수도여전히 나에게 글이란 어렵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지만 발끝을 살짝 내비쳐주는 경계심 많은 고양이 같다. 그렇게 나를 온전히 담아낸 글은 흡사 몇 달 동안 공들여 그린 작품만큼이나 충만하게 해준다. 그리고 사람들도 반드시 그 진심에 반응한다. 글과 나를 연결해주는 매개도 진심이요, 소통의 매개도 진심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지금 내가 신문사에 칼럼을 기고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당신은 본인 속에서 얼마나 놀라운 재능들이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는지 지금은 알지 못한다. 그 알을 깨뜨려 부화를 시킬 것인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멸시킬 것인가. 그것은 본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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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12 23:02

스물아홉 가을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

얼마 전 처음으로 연차 휴가라는 것을 써 보게 되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몇 번의 해를 넘겼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연차 휴가는 사유를 불문하고 쓸 수 있으니 괜찮겠지 하면서도 괜히 사유 란에 병원 방문이라고 적었다. 어쨌든 나는 근로기준법이 인정한 휴식의 날, 서울 역삼동 가장 바쁜 거리가 보이는 카페 창가에 앉아 시원한 음료수를 마셨다. 남들이 일하는 평일에 노는 기분은 이런 것이구나, 새삼스러웠다."의미 없으면 없는 대로 잘 살아야지"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일 년 전 사무실을 찾아온 어떤 이에게 근로계약서를 꼭 주고받아야 한다고, 구두계약도 유효하지만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던 당시 정작 나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언제부터 이런 수상쩍은 사람이 된 걸까. 비단 이 뿐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할 수 없었던 일을 다른 사람에게 권유했을 수많은 순간들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느새 나는 내 일과 내 삶을, 내 말과 내 생각을 분리해내며 살고 있었다.많은 배움과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신념을 가지고, 생각한 그대로 살 수 있다면 어느 정도 독립적이고도 성숙한 인간이 된다고 믿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지 않는,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 기성세대들을 바라보며 절대로 저런 사람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순간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그 생각은 도대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이 되었는가.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를 읽다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 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올해 초 우연히 별자리 운세 같은 걸 본 적이 있다. 계획을 철저히 세워두지 않는다면 시간이 그냥 흘러가버릴 것입니다. 그 때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었건만, 이 순간 그 말이 참 뼈저리다. 그저 먹고 사는 것에 온통 정신을 빼앗겨 내 삶의 의도된 방향을 잃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청춘이라는 낱말과는 급속도로 멀어져 갔던 것은 아닌가.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서 일하는 동기 언니 사무실에 잠깐 들렀다.요즘은 제가 뭘 하는지 모르겠어요. 다 부질없게 느껴지고. 내 말을 가만히 듣더니 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큰 종이컵에 얼음까지 띄운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좀 부질없으면 어때? 의미 없으면 없는 대로 잘 살아봐야지. 너 사춘기야? 스물아홉이라 그런가봐, 이십대 마지막.반복되는 일상, 헛된 것 아니기를스물아홉을 지나고 있는 나는 어쩌면 어릴 때 내가 바라보던 그저 그런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장 절망적인 생각이다. 아니 어쩌면 내 삶이 이렇게 하찮아지는 기분을 느낀 이 순간이 다시 내게 새로운 시작이 되어 주지 않을까. 이건 가장 밝은 생각이다. 스물아홉은 누구에게나 그런 때인 것은 아닐까. 이것은 가장 위로가 되는 생각이다. 유리창 아래로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만큼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이 바쁘게 지나갔다.스물아홉 가을. 인생의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려는 이 순간에 나는 가장 밝은 생각을 하려고 한다. 반복되는 일상은 비록 무의미하더라도 헛된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내 삶의 가치를 찾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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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05 23:02

대학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최근 가장 주목을 받았던 대학가 소식의 발원지는 이화여대였다. 학교 측에서 진행한 평생교육 단과대학(평단) 설립 과정의 불합리함에 이화여대 학생과 동문들이 집회와 시위로 맞선 것. 결국 이화여대는 평단 추진 철회를 선언했다.이화여대 사태를 보면서 다시금 질문을 던져 보게 됐다. 대학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화여대의 일은 비단 한 대학에서 일어난 특수한 사건이 아니다. 한국사회 전체가 대학의 본질 즉, 존재이유를 망각한데에서 기인한 일이다.지나친 경쟁성과주의 폐해 발생먼저 대학이 문제다. 대학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대학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동원되는 수단이 그 이념에 부합하는가를 지속적으로 검증하는 것이다. 만약에 국가가 대학으로부터 부당한 것을 요구한다면 대학은 논리적으로 필요성의 근거를 밝히고 따져야 한다. 오직 대학의 외적 확장만을 위해 물질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에만 힘을 기울여 대학 구성원과의 소통에 소홀하면 제2, 제3의 이화여대 소요는 곳곳에서 터질 것이 분명하다. 대학은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전문대학원, 이름도 괴상한 학과 설립, 평생교육, 병원 등 돈이 되는 건 다 하면서도 한 가지는 과감히 포기했다.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사실 대학도 안쓰러운 부분이 있긴 하다. 국가가 재정지원이라는 빌미로 대학 간의 경쟁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경쟁에 대한 두려움은 가장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조차도 어느 정도는 폭력적으로 만든다. 이화여대 총장과 본부가 학생들의 평화적인 집회를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력을 동원한 비상식적인 대처는 지나친 대학 간의 경쟁과 성과주의 때문이다.대학의 정신을 상실한 건 대학만이 아니라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탄광에서는 막장 작업 현장에 새 몇 마리를 넣은 새장을 두었다고 한다. 새장의 새가 힘을 잃고 비틀거리면 갱에 유독 가스가 찼다는 신호가 되어 광부들이 피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학생은 한 사회의 정신적 공기의 바로미터이다. 가장 먼저 부패한 공기를 감지하고 이를 세상에 알린다. 더 나아가서 대학생들은 그 부패한 공기에 대한 저항의 몸짓을 보여 왔다. 나치 치하에서 목숨을 던져 일그러진 정신에 항거한 뮌헨대학교 학생들은 그 한 가지 사례이다. 한국 또한 80~90년대에 대학생들이 최전선에 나서 국가 권력의 부조리함에 대항했다.오늘날 대학생들에게 부당한 현실에 대해 저항하는 대학의 정신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긴 꿈, 취업, 결혼, 출산, 집 등 무지기수로 포기해야 하는 N포시대에 대학의 정신쯤은 포기하는 게 뭐 그리 대수이겠는가. 하지만 대수라는 게 문제다. N포의 시작점이 바로 대학정책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한국 학생들은 학문적으로든 취업으로든 더 이상 제 구실 하지 못하는 대학간판을 획득하기 위해 꿈과 적성을 비롯해 많은 걸 기꺼이 포기해야 한다. 큰 문제는 포기에 대해 익숙해진다는 데에 있다. 달라질 게 없다는 냉소와 무관심 그리고 무기력감이 국가와 대학이 굳이 대학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할 필요를 없게 한다.인간성 계발과 인류 발전에 기여를실존철학의 대가인 칼 야스퍼스는 그의 책 「대학의 이념」에서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고 인간성의 계발과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함을 대학의 존재 이유로 설명한다. 이 인간성이라는 말이 지닌 의미가 얼마나 자주 변화했든 간에 그것은 대학의 본질로 남아 있다. 지금 우리의 대학은 어떤 모습인가. 대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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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29 23:02

그 시절 우리의 장래 희망

딱 10년만이었다. 어떻게 하면 줄인 교복 치마를 들키지 않을까를 고민하던…. 수많은 규제와 단단한 울타리가 있던 곳.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다고 매일 말하던 곳. 나의 십대 반항이 무성했던 학교를 찾았다. 같은 재단의 여중, 여고를 나온 터라 단 몇걸음 만으로도 나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다. 공모에 응시하는데 생활기록부가 필요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온라인으로도 서류를 받을 수 있다고 하던데 나는 좋아진 세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늙은 젊은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꿈 꾸고 살던 때꾸역꾸역 학교를 찾아가 그 시절은 몰랐던 다른 시선의 나를 보았다. 역시나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은 성적이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에 적극 동의하던 나였다. 그럼에도 의식 한켠엔 꽤나 공부를 잘 하던 학생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기대했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아주 편협한 성적표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잘하는 것만 잘하는 나였다. 좋은 것만 기억하는 나였구나. 어찌 보면 선호하지 않은 과목에 양, 가가 확실한 ‘양가집 처자’였다. 성적에 적잖은 실망을 하였지만 그 시절 이런 성적을 받고도 좋은 것만 기억에 넣어둔 10대의 내가 대견했다. 눈에 띄는 것은 ‘장래희망’이었다. 중학교 1학년 시절부터 고3이라는 시간 속에 나의 꿈이 변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그것은 단지 희망이었을 뿐인데, 점점 ‘장래현실’이라도 되는 마냥 선명하고 될 만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열네살 나의 장래희망 칸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판소리 인간문화재’ 아마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최고의 경지가 그 지점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문화재의 제도가 국악 예술의 다양성을 해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문을 갖는 요즘 의 나와는 다른 시선의 나였다. 그리고 열아홉, 6년의 시간 속에 빈칸은 채워지고 또 채워지며 결국은 ‘국악인’이라고 적혀있었다. 육성으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나 포괄적일 수 있다니. 범위는 커지고, 경계는 넓어졌지만 그래도 한결같은 꿈이었다. 그 시절 친구들은 나에게 말했다. ‘뚜렷한 꿈이 있는 네가 부러워, 나는 커서 뭘 하고 있을까?’ 사실 나는 그저 꿈을 적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직업란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니 꿈이 생겼다. 그것이 나의 희망이자, 그 해 장래희망이었다.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이 생긴 책상에서 공부하던 아이들. 서로가 같은 위치에 있다고 여겨지던 친구들은 모두 저마다의 모습으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푸르고 또 푸른 靑春의 한 때를 지나고 있기도 하고, 청춘인 줄 모르고 하루를 살아내기 급급한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은 꿈꾸며 사는 인생이 무모하고, 허황된 얘기라 비웃음을 사는 나이 같지만, 그 시절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꾸역꾸역 꿈을 꾸고 살았다. 장래희망 빈칸을 채워야 했기 때문에도 그랬다.장래 희망 속 나로 살고 있어 다행그 날, 큰 서류봉투에 학생기록부와 함께 자기소개서라기보다 자기소설에 가까운 종이를 몽땅 밀어 넣고 공모에 응했다. 오랜만에 10년 전 나를 바라보는 일이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공모의 당락보다 훨씬 갚진 것을 얻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 청춘에 국한 되지 않고 우리는 모두 꿈꾸며 살아간다. 그것은 모른 체 하느냐, 바라보느냐의 관점일 뿐. 10년 전 장래희망 칸 속의 나로 살고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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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22 23:02

2016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

사랑 가득한 유치원 교사를 꿈꾸던 스무 살, 사범대 새내기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나의 관심은 온통 졸업 후 교사가 되어 만나게 될 어린이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쏠려 있었다. 무엇이든지 알고 싶었고, 모든 것이 궁금했었다. 그래서 각종 개론 수업을 시간표에 빼곡히 채워 넣어 다녔고, 그 중에서도 ‘교육학개론’은 나의 대학생활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 과목이었다. 그리고 그 수업을 들으며 보았던 EBS 지식채널-e ‘2007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영상은 아직까지도 종종 떠오른다.10년 전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현실초등학생 10명 중 9명이 과외, 과외 종목 평균 3.13개, 10명 중 7명은 학교에 가기 싫다, 하루에 부모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30분이라는 응답 30%, 친구와 노는 시간 거의 없다는 응답 30%, 가출 충동을 느껴본 적 있다는 응답 53.3%, 자살 욕구를 경험해본 적 있다는 응답도 27%, 자살을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성적 문제. 위 영상에 나오는 내용이다. “저는요 학원에서 시험 보면 영어는 항상 100점 맞아요. 근데 수학은 꼭 한 두 개 틀려요. 정말 속상해요. 아파트 12층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는데 엄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상 속 초등학교 2학년 예영이(가명)의 말이다. 나는 약 6년 전 교육열이 높다는 동네의 한 사립 유치원에서 교육 실습을 한 적이 있는데, 유치원에 등원하기 전에 이미 각종 학원에 다녀오는 아이들을 보고 내심 놀랐던 기억이 난다.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위 영상은 약 10년 전의 것임에도 지금 초등학생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물론 고학력과 좋은 학벌이 반드시 명예와 부를 가져다주지 않게 되면서 이에 대한 강박적인 매달림은 다소 적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결코 능력주의 사회가 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개인의 노력보다는 물려받을 자산이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신분제 철폐를 외치며 근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요즘 유행하는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참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2007년의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이 과중한 학업 부담에 힘겨워 했다면, 지금은 여기에 집단 따돌림이 더해진 듯하다. 집단 따돌림 발생 빈도가 잦아지고, 괴롭힘의 강도도 훨씬 커지고 있는 것 같다. 나와 다르면 배제하고, 나보다 못하면 짓누른다. 나보다 많이 가진 것 같으면 아첨하고, 덜 가진 것 같으면 꺼려한다. 신분제 사회와 비슷한 면이 참 많다.이처럼 지나친 등수 경쟁이나 집단 괴롭힘 등 어린 초등학생들이 빚어내는 풍경을 바라보며 성인들은 이런 얘기를 한다. “요즘 애들은 애들 같지 않아.” 하지만 특별한 목적 없는 지나친 경쟁이나 누군가를 이유 없이 배제하는 무리 짓기, 모두 우리 성인들이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어린이들은 어딘가 별천지에 살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성인이 병든 사회에서 어린이들이 멀쩡할 리 없다. 어린이들 힘든만큼 우리 사회 병들어2016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 그것이 힘든 만큼 우리 사회가 병들었다는 뜻이다. 사범대 새내기 시절 나는 어린이들이 사는 세상이 궁금했고, 그 호기심을 충실히 따라갔다. 그렇지만 그 꿈은 희미해져 버렸고, 지금은 따라간 그 길의 어디쯤에 서 있는지조차 알 수 없어졌다. 나는 교사가 되지 않았고, 그만큼 씁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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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08 23:02

1%면 된다

구본형 작가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는 의미심장한 비유가 나온다. 일명 기간원이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는 방법. 우선 코끼리를 꿇어 앉혀놓고 너는 누구냐고 물어 본다. 처음에는 코끼리라고 답한다. 그러면 기간원은 코끼리를 개 패듯 두들겨 패고 코끼리가 나중에는 아픔을 견디다 못해 코끼리가 아니라 개야라고 깨갱거리게 된다. 그 때 냉장고에 넣으면 된다. 개 한 마리 냉장고에 넣는 건 쉬운 일이니까.1%에 99%의 모든 걸 빼앗기는 사회우리 모두는 태어났을 때 각자 만의 재능과 가능성을 가진 코끼리였을 거다. 하지만 매일 얻어맞아 코끼리가 아닌 개라고 실토하며 살아 왔는지도 모른다. 냉장고에 들어가기에 알맞은 크기로 말이다. 우리를 두들겨 패면서 냉장고 크기로 만드는 건 여러 가지다. 가까운 사람들로 구성된 꿈도둑들부터 낙후된 지역 환경, 사회적 알람 등에까지 이른다. 무엇보다도 단연 교육제도가 그렇다. 공교롭게도 교육제도의 방향을 정하고 기획하는 자의 입에서 개돼지 발언이 흘러나와 은밀하고 음흉하게 감추고 있던 권력자들의 의중(?)이 들통 나고야 말았다.education이라는 말은 educe라는 단어에서 나왔다. educe는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끌어내다라는 뜻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현재 교육제도는 다양한 재능을 끌어내기는커녕 있던 고유의 능력마저 떨어지게 한다. 학교는 짧게는 고교 3년, 길게는 초등학교부터 12년을 개인의 적성과 능력에 상관없이 천편일률적인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기를 강요한다. 이미 학문을 탐구하고 부조리한 사회에 가장 먼저 저항했던 지성의 전당의 지위를 내려놓은 지 오래된 대학간판을 획득하기 위해서다. 그나마 과거엔 그 간판이 권력획득과 신분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학벌사회가 금수저 사회, 자본 사회에 밀려 같은 학벌이라고 서로 끌고 밀어주는 미풍양속(?)을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얼마 전, 학벌사회의 폐단에 맞서왔던 단체 학벌 없는 사회가 학벌이라는 명분이 없어져 더 이상 단체를 유지할 수 없다며 해체 선언을 한 웃기면서도 슬픈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교육시장은 활황이다. 1%도 채 안 될 명문대 간판 획득자들을 위해 나머지 99%는 자신의 꿈을 알아갈 기회와 자유의지를 저당 잡힌 채 하루하루를 견뎌 낸다. 그 1%가 나중에 자신들을 개돼지 취급할 거라고 생각조차 했을까.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언가는 해야 하지 않을까. 천재나 재능을 뜻하는 영어 genius는 우리 안의 지니(Geni-in-us)의 줄임말이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마법사 지니가 살고 있다는 얘기다.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를 꺼내 보자. 일단 지니를 불러내고 봐야 소원을 말해보지 않겠는가. 혼자서 하기 두렵고 익숙하지 않다면 내 안의 지니를 꺼내 자신만의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주변에 두자. 필자가 소수의 지역 청년들과 함께 1%지식나눔이라는 이름으로 사람과 사람의 꿈과 재능을 이어가는 일을 하는 이유다. 작은 냉장고에 맞춰지도록, 내가 아닌 누군가라고 불리도록 하는 1%가 아닌 99%의 꿈을 응원하고 재능을 꺼낼 수 있도록 용기를 나눠주는 1%를 만들어 보자. 딱 1%면 된다. 고작 1%에 99%의 모든 걸 빼앗기는 사회라면 1%만으로도 99%의 모든 걸 되찾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1%만으로도 모든 걸 되찾을 수 있어지난 달, 28회 지식나눔의 주인공은 전주에서 60년 넘게 전통을 이어온 PNB풍년제과의 강지웅 대표였다. 모두가 굶주리던 시절 모두에게 풍년이 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풍년제과라는 이름으로 지었다는 말이 참 와 닿았다. 오늘날 기아로부터는 벗어났지만 꿈과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는 마음은 여전히 가난하다. 그 마음들에도 풍년시대가 찾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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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01 23:02

보통의 '때'에 관하여

때가 있다. 누구나 그러하듯 보편적이고, 통상적이며, 평균적인 의미의 시간, 혹은 그럴 시기. 우리는 그것을 때라고 말한다. 스물하고 아홉 해의 청춘. 나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 비주류의 음악이 주류로 대접받는 국악의 고장 전주에서 판소리를 하는 이십대의 청춘이다. 그런 내가 요즘 가장 많은 조언이자 억압을 받는 말이 바로 때에 관한 것이다.다른 이와 비교하면 불행해 보이는 삶다~ 때가 있다. 무언가를 해야 할 시기적절함. 한참 이쁠때다, 한참 좋을 때다 와 같은 말이 대부분 나에게 촉박함을 동반한 시간적 제약으로 와 닿는다. 마치 그것은 너는 그 시간까지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안돼 와 같은 숙제처럼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시기에 관한 이야기에는 은연중 반감이 생긴다. 아마도 내가 숙제를 하지 않은 학생처럼 꾸지람을 받거나, 혹은 여러 가지 때를 다르게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불현듯 다른 이의 삶과 비교하자니 내 인생이 불행해지고 보잘 것 없어진 적이 있다. 대학을 졸업할 쯤 대회에 나가 큰상을 받고 몇 해 뒤 발표회를 열고 관립단체에 취직을 하는 일련의 써클. 그것을 벗어나 관립단체의 취직은 물론이거니와 대회도 나가지 않았고, 틀에 박힌 발표회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 인생은 시기에 맞지도, 기준에 미치지도 못한 인생이 되어있었다. 나의 스승은 목 좋고, 체력 좋을 때 얌전히 공부를 안 하는 나를 마땅치 않게 여기며 노파심을 냈다.그러나 나는 단 한시도 공부를 쉰 적이 없었고, 소위 말하는 헛짓을 하지도 않았다. 하물며 스승이 말씀하시는 얌전히 하는 공부에 대한 절절한 갈망을 느꼈으니 인생 공부는 심심치 않게 한 셈이지 않은가. 참 많은 것들을 체에 넣었고 그 중 잘하는 하나를 걸러내는 시간만으로도 촉박하고, 짧은 청춘의 한 때였다. 더욱 솔직히 말하자면 전통소리만으로는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지 않은 설익은 젊은 소리꾼이 하는 발버둥과도 같았다.나는 옛 말에 그른 말 없다 혹은 어른들 말씀에 틀린 것 없다 와 같은 경험적 토대의 이야기를 의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경험은 무섭게도 정확하고 선행한 이들은 이미 비싼 값을 톡톡히 치른 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른들이 말하는 때에 살고 있지 않다. 그것은 저마다의 인생 시계가 다르다는 것에 더욱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많은 환경이 달라졌고, 사람 생김새처럼 누구도 같은 인생을 살 수 없다. 남의 인생시계에 맞춰 초침을 돌리자면 가랑이는 찢어지고, 비교하는 삶은 불행을 동반한다.판소리 단가 사철가를 보면 녹음방초(綠陰芳草) 라는 가사가 나온다. 우거진 나무 그늘과 푸른 풀을 일컫는 말. 요즘 한참 흐르고 있는 계절, 여름을 뜻하는 말이다. 인생의 나이를 사철에 빗대는 사람들은 청춘의 시간을 여름에 비유한다. 나무도 한 뼘 키를 키우고, 가지를 내어 잎을 퍼트리듯, 한 단계 하늘을 향하는 계절.남의 인생시계에 맞추면 더 불행해져벚꽃은 봄에 유미하게 꽃을 맺어 여름에 잎을 틔우고, 단풍은 내내 푸르르다 가을이 오면 붉게 잎을 태운다. 사시사철 나무는 저마다의 계절에 가장 열렬하고, 또 가장 푸르르다. 청춘의 시간도 그렇다. 그것은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한계를 짓지 않고, 각자의 나무를 한 뼘 키우는 여름과도 같다. 저마다 향하는 하늘의 키가 다르고, 그들은 묵묵히 각자의 계절, 그 때를 기다린다.△송봉금 대표는 전북대를 졸업했으며 제28회 전국국악경연에서 판소리 일반부 대상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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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25 23:02

나를 인정하기 위한 여정

전주에 온지 4개월이 지나고 있다. 평생의 거의 대부분을 인천에서 살았고 서울생활에 익숙한 내가 아무런 연고도, 왕래도 없던 전주에 혼자서 덜컥 내려온 것 치곤 그럭저럭아니, 오히려 가끔 올라가는 서울이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잘 지내고 있다.전국 돌며 내 속의 모든 것이 변화작년 이맘때였다. 꿈을 위해 새로운 일에 도전한지 2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여러 가지 참아내기 힘든 상황들을 씹지 못하고 꾸역꾸역 삼키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결국 탈이 났다. 육체와 정신이 바스라 지던 날들이었건만 그 시간들에 애착이 가는 건 무엇 하나 제대로 마무리 지어보지 못한 내 과거에 대한 면죄부 같은 느낌이랄까. 켜켜이 쌓여 곰팡내 나던 과거의 자책들을 고작 2년의 시간으로 때우려는 심보가 영 열없긴 하지만 그래도 확실한 건 그로인해 난 웬만한 상황에서는 의연하게 대처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장했고 단단해졌다. 그 시기를 기점으로 나의 행보는 좀 더 능동적이고 도전적으로 변하고 있었다.당당하게 일을 그만두고 얼마 뒤 난 무전 전국일주를 계획하게 된다. 혼자 여행한번 제대로 가본 적 없던 내가 혼자 무전 전국일주라니. 이건 대한민국 경제성장보다도 더 급진적인 전개이지 않나.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서른한 살의 미혼여성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적어도 우리 부모님에게 난 번듯한 직장도, 결혼도 하지 않은 손톱 옆 튀어나온 살갗처럼 거슬리고 탐탁잖은 딸이었다. 더 이상 생각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나를 스스로가 먼저 인정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나에게 당당해지려면 지금의 나론 부족했다. 나는 변할 필요가 있었다.일을 그만둔 것도 나의 꿈에 다가가기 위함이었다. 한국화 퍼포먼스 아티스트. 쉽게 말하면 나는 한국화로 그림 공연을 한다. 더 많은 경험과 발전을 하고자 그림공연에 필요한 세트와 장비, 물품들을 모두 챙겨 여행길에 올랐다. 곧 겨울이었기에 배낭의 무게는 15킬로를 육박했고 거기다 공연짐이 15킬로였다. 이걸 들고 어떻게 다녀, 여자 혼자 너무 위험한데, 과연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기어들어 올 때면 생각을 차단했다. 최대한 안전에 대비하되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의지가 나약해질까봐 안 갈수 없도록 SNS에 나의 무전 전국일주 프로젝트에 대해 공표해버렸다. 낙천적이고 게으른 내가 이렇게 추진력 있게 일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나라도 한번 칼을 뽑으면 무생채 정도는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남에게도, 나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나보다. 나는 오랜 시간 결핍되어 있었다.그렇게 난 2015년 10월 20일, 예정대로 여행을 떠났고 그림을 그리며 전국 팔도를 돌아 같은 해 12월 26일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 두 달간 만난 사람들로 인해 나의 생각과 시야, 꿈, 삶, 내 속의 모든 것들이 변화로 꿈틀댔다. 내가 변하니 가족이 변하고 주변 사람들이 변했다.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부모님의 변화는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이제 전주에서 새로운 도전나는 지금 전주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이 또한 여행의 부산물이다. 일 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을 일들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다. 나아진 것처럼 보였지만 내 단점은 여전히 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한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함께 해주니 더디지만 오늘도 한발 한발 내디뎌 본다.△신은미 작가는 성신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했으며 전주 한옥마을에서 아트숍 새라바림 갤러리를 창업,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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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8 23:02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청춘에게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 때, 여행을 떠나라고들 한다. 좋은 조언이다. 여행은 삶에 새로운 활력이 되어 준다. 예전엔 3일 전에 예매해도 충분히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전주행 기차표를 이제 일주일 전에는 구입해야 안심이 된다. 전주에 방문하는 관광객이 많아진 때문이다. 이럴 때면 예전보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졌다는 생각을 한다.청춘의 시간에 여행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일상에서 벗어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단순하고도 중요한 기능도 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젊은 시절 여행이 주는 가장 큰 기쁨은 나를 돌아보는 기회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해결하지 못한 고민을 우연한 기회에 풀어버릴 수도 있다.인터뷰 기사 쏠쏠한 재미작정하고 한 가지 생각을 파고들 수도 있다. 특히 여행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자아 성찰이나 진로 탐색의 기회를 갖기 어려운 10대를 보내는 우리,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하고 전공을 선택하는 우리, 어렵게 취업한 뒤 막상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퇴사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어쩌면 여행은, 꼭 필요한 경험일지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행을 떠나는 시간을 내는 것, 이를 위해 소비하는 것이 사치로 느껴지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나 또한 정해진 휴일 없이 불규칙한 형태로 일하기 때문에 계획된 여행을 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다.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에서 풀리지 않는 고민들을 해결할 실마리를, 마치 어쩔 수 없이 못 찾는 것인 마냥 무기력하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을 위해 취미 하나를 공개한다. 바로 좋아하는 유명인의 지난 인터뷰를 찾아보는 것이다. 무언가 일정한 직업적 성취를 얻은 데다 인간적 매력까지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나름의 고민이 있고, 서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위안이 되고 힘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그 사람들의 팬이기 때문에 정보를 알아가는 쏠쏠한 재미도 있다.나는 주로 가수와 배우들의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는 편인데, 그 과정에서 그들의 직업적 성장 등을 압축적으로 보게 된다. 특히 그들의 데뷔 초창기 시절로 갈수록 서투름과 어색함이 있는데, 이는 묘한 동지 의식 비슷한 것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들이 활동했던 어떤 순간에는 작품과 관련해서 잡음이 있기도 했고, 답보상태에 빠져 더 이상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결국 그 다음 작품을 또 해냈고 그렇게 다시 일어섰다는 것을 안다. 인터뷰 기사를 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다 보면, 마치 다른 세상에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나를 돌아보는 기회내가 특히 좋아하는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며 마무리 하겠다. 신민경 저널리스트가 영화 우리 선희의 배우 정유미를 인터뷰한 내용 중 연기를 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그 작품을 어떻게 보든, 제가 뭐가 부족한지 느끼게 되거든요. 그러면 또 그걸 다른 현장에서 하고 싶어요. 기왕이면 저도 많은 분량이 나오는 작품에 출연하면 좋겠지만, 당장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 지금 오는 기회들 사이에서 좋은 것들을 찾아야겠죠. 혹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오디션을 볼 거고요.라는 부분이다. 올여름, 시원한 선풍기 앞에서 휴대폰으로 인터뷰 기사를 읽는 간편 여행을 추천한다.△서경원 변호사는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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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1 23:02

꿈도둑들

지난 달 27일 저녁 8시. 전주시 중화산동의 한 문화 공간에 전 아나운서이자 책 저자로 활동 중인 와인드 컴퍼니 박근아 대표의 생각과 삶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50여명의 청년들과 시민들이 모였다. 이날의 시간은 1%지식나눔의 27번 째 강연회였던 것. 1%지식나눔(이하 지식나눔)은 필자를 비롯해 지역에 애정 있는 소수의 청년들이 모여 매월 진행하고 있는 강연회다. 지금까지 박원순 당시 전 변호사를 비롯해 김용택 시인, 독도 지킴이 반크의 박기태 단장, 투어컴그룹 박배균 회장 등이 지식나눔을 통해 전북청년들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함께했다.지역 청년들 꿈 훔치는 도둑에 맞서많은 애로와 우여곡절 속에서도 지식나눔을 이어가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지역 청년들의 꿈을 훔쳐가는 꿈도둑에 작게나마 맞서고자 함이다. 꿈도둑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사람이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 특히 부모, 형제, 친구 등이 꿈도둑일 가능성이 높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걱정한답시고 부정적인 말로 꿈을 빼앗아 간다. 자신만의 꿈을 이룬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들을 기억하는가? 인연을 끊는 일도 불사하겠다는 결사 반대자들이 나중에 너는 될 줄 알았다며 자신들의 과거의 말과 행동을 잊은 사례들이 꼭 뒤따른다.둘째, 환경이다. 2년 전, 전북대 한 수업에서 게스트 특강 명목으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대학생들에게 한 첫 질문은 서른 살 즈음이 되면 받고 싶은 희망연봉이 얼마입니까?였다. 돈의 액수를 알고 싶은 게 아니라 생각의 사이즈를 알고 싶었다. 사람은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기 때문이다. 4000만 원이 제일 많은 답으로 나왔다. 희망이라는 말을 굳이 붙여줬으니 좀 더 과감했으면 어떨까 싶었다. 액수에 담긴 의미가 짐작은 됐다. 본인 주변사람들이 버는 수입을 생각했을 거고 희망연봉이라 했으니 거기에 500~1000만원을 더했으리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너나 할 거 없이 1억, 3억을 버는 사람들만 있다면 과연 희망연봉 액수를 4000만 원이라 했을까. 꿈도 마찬가지다. 내가 꿈이 없는 이유는 내 주변에 꿈을 꾸고 꿈을 이루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문제인 것이다. 근묵자흑 근주자적(近墨者黑 近朱者赤)이라는 동양의 옛말처럼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어떤 사람들을 만나느냐가 그 사람의 크기를 결정한다.얼마 전,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오늘 날의 시대정신을 냉소주의라고 진단했다. 냉소는 세상만사 모든 것의 의미 없음을 토로하는 극단적인 허무의 감정이다. 웬만한 일에는 감동하지 않으며 열정을 불태우지도 않는단다. 앞서 말한 꿈도둑 외에 천편일률적인 교육제도, 탐욕스러운 권력가, 무능한 정치인 등도 청년들이 자신들의 꿈에 냉소적이게 한 꿈도둑 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마냥 포기와 체념으로 꿈도둑들이 원하는 대로 둬선 안 되겠다. 지식나눔의 목적은 바로 우리를 감싸고 있는 환경을 조금이나마 바꾸기 위해서다. 나만의 길을 주저 없이 가는 사람들의 용기를 나누고, 서로의 꿈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연대를 구축하고자 함이다.인간성 회복은 내 꿈 지키기부터 시작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조금씩 빼앗아 가고 있는 시대에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하는 건 갈수록 인간을 닮아가는 기계가 아니다. 나날이 기계를 닮아가는 인간이다. 인간성 회복은 꿈도둑들로부터 내 꿈을 지켜내는 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정희현 대표는 전북대 신문사에서 일했으며 여의도연구소 정책아이디어 공모 입상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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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04 23:02

청년문제, 청년'만'을 위한 해답은 없다

최근 지역의 한 청년단체가 지역청년들의 삶에 대한 보고서를 펴냈다. 2016년 1월부터 4개월에 걸쳐 청년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전주시 청년실태 및 정책수요조사이다. 청년들의 삶에 대한 기초자료가 희박한 ‘지역’에서 청년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위한 조사와 분석을 한다는 것은 결과물의 내용도 주목할만 하지만 그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의의가 크다 하겠다. 물론, 연구자들이 기 언급한 바 있듯 1,000여명이라는 숫자에도 불구하고 모집단의 대표성에 대한 우려 등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그간 ‘막연한 느낌’으로만 알고있던 지역청년들의 문제와 정책수요를 보여주고 정책제안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은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성과라 하겠다.일자리 등 삶의 여건 향상 정책 필요지역의 청년들이 응답한 청년실태 및 정책수요는 정도의 차이는 다소 있었으나, 우리가 예상하는 결과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역의 청년들이 느끼는 팍팍한 현실과 삶의 욕구예측에 대한 정량적인 근거를 마련해준 셈이다. 그런데 보고서를 살펴보다가 몇 가지 사안들에 대한 응답비율을 보고 고민이 들었다. 예를 들어 최근 많은 이슈가 되었던 청년수당에 대한 응답비율을 보면, 정책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기혼과 미혼, 학력 및 계열 등 응답자의 범주별로 상이한 결과치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듯 청년들 사이에서도 ‘계층’의 문제가 내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세대에서의 계층화는 우리나라처럼 계층간 이동이 점점 어려운 사회구조 속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고착화될 위험이 크다. 지금의 구조라면, 점점 양극화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다.흔히 우리 세대는 부모세대보다 기대 생활수준이 떨어지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고들 한다. 암울한 얘기다. 자식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그런데 여기서 더 우려스러운 점은 우리나라는 자녀의 교육에 부모세대가 자신의 노후자금까지 투자한다는 것이다. 즉 이는 청년실업, 자식세대의 빈곤이 부모세대의 빈곤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뜻한다. 부모세대의 격차가 청년세대의 격차를 낳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청년세대의 빈곤이 향후 노인빈곤과 세대 내의 계층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청년문제는 청년 ‘만’의 문제로 국한지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청년도, 기성세대도 마찬가지이다. 해결을 위해서는 일자리 등 삶의 여건을 향상시키는 정책과 더불어 향후 대두될 수 있는 양극화와 같은 문제까지 소통하며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양극화 문제도 함께 소통하며 고민을어느덧 내가 전주시 청년 다울마당에서 활동한 지도 거의 1년이 되었다. 그간 부침도 있었지만 나름의 성과와 변화도 있었다. 하지만 욕심만큼 많은 청년들을 만나고 미처 이루지 못한 점들은 여전히 아쉽다. 전주시 청년 다울마당은 올해 제정된 ‘전주시 청년희망도시 구축을 위한 조례’를 기반으로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향후 출범할 체제는 지속적으로 지역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시정에 반영하며 정책을 함께 고민하는 참여의 장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전주시와 청년들의 행보에 지역사회의 꾸준한 관심과 응원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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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7 23:02

내가 사는 세상

대학에 진학하고 십년 가까이 삼례와 전주를 교차하며 살았지만 주민등록등본상 나는 완주군민도 전주시민도 아니었다. 졸업 후 직장에 다니면서도 왜 전입신고를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다 작년 연말정산 때 전입신고를 해야 월세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월세를 내는 무주택자이고 연봉 7000만원 이하를 받으며 전용면적 85㎡에 거주하는 직장인이면 납부액 중 10%, 최대 75만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고 집주인의 동의없이 가능하도록 법까지 바뀌었다는데, 나는 애초에 대상감도 되지 못한 것이다.이 세상에서 덜 당하고 덜 실망하려면4대보험이 되는 직장인이 된 흔치 않은 기회에 이것도 모르고 흥청망청 살았다니. 나는 일년 전 작성했던 임차인계약서에 대구로 시작되는 주소란의 내 글씨를 허탈하게 바라보며 옛 집주인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했다. 계약서에도 없는 청소비를 뺀 보증금을 입금과 동시에 보내온 따뜻한 결별 메시지였다. 주아씨, 그동안 고마웠어요. 멋진 시 쓰고 잘 지내요!(하트)을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고쳐준 법의 보호마저 거부해온 나는, 새 원룸으로 이사하자마자 곧장 주민센터로 달려가 전입을 신고하고 확정일자를 명 받은 다음 이 도시의 새 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해 먼저 동네 한바퀴를 돌기로 했다. 운좋게도 집 주변에는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 많았다. 야간까지 운영하는 시립도서관도 있고 동네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카페 딸린 서점도 있고,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빵집과 오래된 비디오가게도 있었다. 내친김에 도서관에 가서 서가를 둘러보고 서점에 들러 컴퓨터가 아닌 사람에게 신간시집을 주문한 후 커피도 한잔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비디오가게 주인장이 누구인지 유리창으로 쓱 훔쳐보다가 ATM기에서 현금을 찾아 빵도 샀다. 그렇게 나름 동네투어를 마치고나니 잘 모르겠지만 왠지 이 동네에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 쉬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종종 교통편이 불편하다고 툴툴거렸지만 실은 별로 개의치않을만큼 이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하지만 문득문득 이 도시에서 당하지 않고 잘 살 수 있을까 생각한다. 나는 대학원을 다니며 학사조교로 근무하고 있다. 2년간 근무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나 학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계속 일하고 싶으면 몇 개월간 명의를 빌려 타인의 이름으로 근무하다 다시 내 명의로 돌아오면 별 문제 없다는 말을 동료들에게 종종 듣는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비정규직을 유지하고, 또 권장하기도 하면서 대수롭지 않은 척하며 일한다. 혹은 그것마저 다행으로 여길지도 모른다.내가 하고 싶은 일을 기어코 해내야하지만 이건 분명 이상한 일이다. 내가 사는 세상은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가 너무 뚜렷해서, 살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알아서 잘 느낄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자주 짐을 옮기는 동안 나는 알게 모르게 이상한 법들과 대결하고, 가진 패를 자주 들키며 바뀌지 않는 힘과 보이지 않은 갑들과 부당한 거래를 하게 만든다. 몇 년 째 옮겨다니는 공간도 나도 얼마 못가는 비정규직일뿐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게 덜 당하고 덜 실망하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기어코 해내는 수밖에 없다는 그 힘이 어제의 문장을 밀어낸다. 믿을 수 있는 게 문학밖에 없어 불행이자 다행인 나의 작은 세상에서 오늘도 살아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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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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