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news
2010년 2월 그 어느 날, 나에게도 대학교 신입생의 이름을 가진 그날이 존재했었다. 수능을 끝내고 아르바이트를 경험해보고 얼마 남지 않은 대학교 입학식을 기다리던 2010년의 2월이 있었다. 현재 지금의 나는 2013년 마지막 대학생활을 기다리는 4학년의 모습으로 4년 전과 같은 2월에 서 있다. 그리고 또 다른 2013년 2월을 가진 누군가에겐 그 날의 나와 같은 대학교 신입생이라는 이름이 있을 것이다. 대학교라는 새로운 공간으로의 이주는 어느 땐 가슴이 두근두근 거릴 정도로 설레임이 가득 하기도 했고, 어느 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마음이 아프기도 했었다. 지금 그들 또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정한다. 그와 함께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어려워 할 것이고 시작이 두려울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러했던 지난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유가 누군가 곁에서 알려주고 보듬어주고 챙겨주는 보호의 대상에서 벗어나 차근차근 나아감의 준비를 해야 하는 과정의 첫 시작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막상 첫 스타트를 시작하는 나의 그 공간은 작은 유리잔에 술이라 불리는 서로의 마음을 채워 담기 위한 자리가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흘러 어느덧 지금의 4학년이라는 자리까지 지나왔다. 아마 지금 신입생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누군가도 첫 시작의 순간들과 그 과정들 속에 작은 유리잔이라는 동일한 물건을 손에 쥐고 있을 것이라 앞당겨 생각해 본다. 그것이 나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4학년의 이름을 앞세워 그들에게 훈수를 두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작은 유리잔을 올리고 내리는 순간에도 내가 그 자리에 있는 이유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리잔 속의 흔들림이 자신의 의지를 흔들어 꿈을 놓아버리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지방에서 대학교를 다닌다고 해서 주눅들어 학교생활을 하기 보다는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도전해 보면서 자신이 찾아 헤매던 나만의 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대학생활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술자리가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대학생활을 가지기 보다는 자신들 스스로가 가진 생각과 의미들이 중심이 되는 대학생활이 될 수 있도록 딱 한 가지만 기억하고 시작했으면 좋겠다. 나만이 알아주고, 나만이 시작할 수 있는 나의 마음속 깊이 들어 있는 '꿈'이라는 한 글자. 남들과 다른 위치에서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인생은 마라톤이기 때문에, 내가 가진 '꿈'이라는 것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기 때문에 시작부터 주저앉아 포기하지 말아야한다. 출발점은 눈에 보이는 것이고 결승점은 현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결과는 달려봐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정신을 집중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정신일도하사불성) 수없이 흔들리는 내 마음으로부터 내 주변으로부터 집중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라도 생긴다면, 혹은 이미 가지고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점부터 찍고 시작하길 바란다. 실패한 인생이라는 것은 없다. 단지 남들과 다른 인생들이 존재할 뿐이다. 사람들은 늘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더 낮은 위치에서 시작한 결과에 대해 더 열광하는 법이다. 그에 따라 지금 우리는 '열광'이라는 카드를 하나 더 들고 있는 사람들이며, 오히려 내세울 것이 더 많은 사람이라는 역설을 들고 싶다.
얼마 전에 고등학생인 여동생과 같이 카페에 갔다. 평소에 학원이다 뭐다 바쁜 동생이 모처럼 한가한 오후였기 때문이다. 집 근처 카페에 앉아 둘이서 스무디 한 잔씩을 앞에 놓고 소소한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어느새 동생은 나에게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말하고 있었다. 마시고 있는 스무디와 다르게 씁쓸한 이야기였다. 동생은 자기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길이 아닐 것 같아 불안하다고 했다.내가 자주 방문하는 인터넷 커뮤티니에서도 진학과 진로에 대한 상담글이 많이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자신의 수능 성적에 맞추어서 대학을 갔는데 적성이 아닌 것 같아서 고민이라는 내용이 반절을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반절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이쪽 길로 가서 성공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내용이다. 이 두 가지 내용은 청소년기에, 혹은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계속 따라오는 친구들이다. 나는 이 친구들이 죽어라 자신의 그림자를 밟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자신을 잘 모르고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요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각각의 재료들이 무슨 맛을 내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양파는 그냥 먹으면 살짝 맵지만 볶았을 때에 단맛을 낸다. 마늘은 첫인상은 그 특유의 향으로 인해서 매워 보이지만 볶음요리의 기본 맛을 내주는 친구다. 생강도 마냥 맵게 보이지만 시원한 맛을 낸다. 매실은 달고 의외로 조림 요리에 잘 어울린다. 설탕보다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만들 요리에 어떤 재료가 어떤 맛을 내는지를 아는 것은 요리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맛을 내는 건 복합적인 작용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칼칼한 맛'을 내기 위해서는 청양고추를 넣는다. 그러나 칼칼한 맛을 위해서 볶은 양파를 넣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 칼칼하긴 커녕 단맛이 나오면서 맛의 균형이 무너질 것이다. 또한 무작정 단맛을 내기 위해서 양파를 볶아 넣는 것도 이상하다. 전체적인 단맛을 내기 위해서는 설탕이나 매실을 넣어서 전체적인 밸런스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 동생의 경우도, 인터넷 커뮤니티의 이야기도 이와 같다. 진로고민은 자신을 잘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어떤 '맛'을 낼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점수가 적성을 고르는 일을 만들면 안 된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해결하는 것이 앞에서 말한 진로 고민을 때어낼 수 있는 방법이다. 자신이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특기와 강점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 어묵볶음에 들어가야 할 어묵이 미역국에 들어가 있으면 맛이 이상한 것은 당연지사다. 어묵볶음에 어묵을 넣어야 어묵볶음이 된다. 그와 같이 미역은 미역국에 있을 때 빛이 난다. 그러기에 나는 점수에 맞춰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 걸 싫어한다. 재료에 대한 이해도 없이 요리를 만드는 꼴이기 때문이다.나는 글을 쓰는 걸 좋아해서 문예창작과를 지원했다. 그러나 내가 처음부터 소설가를 지망한 것은 아니었다. 내 처음 꿈은 발레리나였다. 그렇지만 나는 발레리나가 될 재료가 아니었다. 발레를 할 만한 신체 구조가 아니었거니와 나는 꾸준히 몸을 쓰는 운동을 싫어한다. 움직이는 것 보다 사색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내가 발레를 전공했더라면 아마 지금 하는 것보다 심각한 고민을 끌어안고 있을 것이다.새 학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이시기에 진로조사서를 쓰면서 고뇌한다. 나는 그런 친구들에게 자신을 좀 더 알아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어떤 음식이 될 가능성을 타고났다. 자신이 주인공이 될 요리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사색하자. 다른 요리에 어색하게 손님으로 곁들여지는 것 보다는 자기 요리에서 화려하게 맛을 내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대학생에게 있어 대외활동은 어떤 의미일까? 흔히들 대외활동은 대학생만의 특권이라고 한다. 이미 대외활동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학점, 영어성적과 함께 스펙(SPEC)의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대학생들은 대외활동을 통해 스펙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외활동 경험은 대학생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한다. 많은 기업과 정부기관은 '서포터스' '홍보대사' '기자단' 등으로 대학생 대외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대학생들로 하여금 학교에서 접할 수 없는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관련 분야 경험을 쌓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대외활동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어가고 있다. 바로 대학생들의 시간과 노동력을 가로채는 수단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대외활동을 해본 친구들에게 대외활동이 어땠냐고 물어보면 "실제로 별로 도움 되지 않는다, 그 기업의 홍보 아르바이트생이 된 것처럼 홍보글을 쓰거나 전단지를 나눠주고 포스터를 붙이는 등 단순한 일을 많이 한다"고 말을 들어보기 일쑤다.물론 기업의 서포터즈나 홍보대사가 되기 위해서는 기업이 제시하는 자기소개서 틀에 맞춰서 서류 전형에서 합격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도 자기소개서에 '기업의 상품을 홍보할 수 있는 방안을 작성하시오. 기업의 이미지를 향상 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시오.' 등 실제 취업을 연상케 하는 질문을 요구한다. 단순히 서포터즈나 홍보대사를 뽑는 취지에서 이 같은 질문을 대학생에게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한 공모전의 경우, 지원하는 동시에 포트폴리오 작품의 소유권이 자동적으로 기업에 속하게 된다고 명시한다. 그 기업에서 아이디어를 굳이 채택하지 않고 아이디어를 사용하더라도 어떻게 따질 수가 없다. 대학생들은 자신의 스펙을 쌓거나, 대외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 기업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어필할 수밖에 없다.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고 하여도 끝난 것이 아니다. 면접 전형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상품이나 이미지와 관련된 홍보 동영상이나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게시 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자신이 그 영상과 사진을 제작해야 한다. 기업의 이미지를 홍보하는 수단으로써 대학생들의 대외활동에 대한 열망을 이용하는 것이다.이러한 까다로운 합격 절차를 과정을 거쳐서 서포터즈나 홍보단에 뽑혔다고 하더라도 대학생이 아쉬운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기업에서 제공하는 수료증을 이수하기 위해서, 이력서에 한 줄 넣기 위해서 기업의 요구대로 일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수료증을 주거나 말거나 큰 지장이 없다. 하지만 대학생은 다르다. 대학생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투자한 시간이 아깝기 때문에라도 남은 기간 동안 서포터즈 활동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애초부터 수평적인 관계가 아닌 수직적인 관계로서 이루어지는 대외활동의 여건은 진정한 의미에서 긍정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이라는 순수한 의미를 살려서 대외활동이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대외활동이 단순한 무급 노동으로서 악용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각 기업과 단체에서는 공식적인 법규를 따로 정비하여 대외활동의 본질적인 의미를 살려야 한다.
얼마 전 새벽이었다. 자다가 갑자기 눈을 떴다. 밥이 먹고 싶었다. 말 그대로 밥. 요새 밥을 너무 못 먹었다. 자취방에 반찬은 떨어진지 오래다. 일주일째 시리얼과 라면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해왔다. 몸이 스스로 결핍을 느낀 것인지, 그날따라 유난히 밥을 먹고 싶었다. 싱크대 밑을 뒤졌다. 쌀이 없었다. 사실 없는 걸 알면서도 뒤졌다. 밥할 때 섞어 넣던 현미와 잡곡만 조금 있었다. 심난한 얼굴로 여기저기 들춰봤다. 그림자 짙은 구석에 쌀이 담긴 페트병이 보였다. 예전에 엄마가 가져가라고 싸주셨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너무 반가웠다.밥을 했다. 쌀을 한 컵 넣고 현미 반 컵, 잡곡 반 컵. 왠지 성에 안차 쌀 한 컵을 더 부었다. 씻고, 씻고, 씻었다. 쌀뜨물을 버릴 때 떠내려가는 몇 톨이 참 아까웠다. 내 손등을 가볍게 적신 그것은 밥통으로 들어갔다. 잠깐 불렸다. 그리고 취사. 뿌연 수증기는 익숙한 냄새를 풍기며 방을 가득 채웠다.맛있었다. 보온, 취사 말고는 다른 기능이 없는 싸구려 밥통으로 지었다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맛있었다. 반찬은 없었다. 고추장을 꺼냈다. 바닥을 보였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비볐다. 우걱우걱 퍼먹었다. 맛있었다. 고추장은 곧 없어졌다. 밥 반 숟갈을 들고 고추장통 바닥을 긁었다. 그마저도 없어졌다. 그냥 밥만 먹었다. 밥이 달게 느껴질 때까지 씹고 또 씹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물을 병째 들이켜고 숟가락을 또 입에 넣었다. 숨이 막히고 기침이 나왔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외로움과 서러움의 중간쯤. 통학했을 때, 기숙사에 살았을 때, 장학숙에 있었을 때는 느낀 적 없는 감정이었다.넉넉하진 않았지만 부족하진 않았던 삶이 자취를 하면서 깨졌다. 부모님이 반대하는 일을 하는 대가로 용돈을 포기했다. 대학신문사 활동도 끝나서 수입이 거의 없었다. 저번달은 여기저기 글을 기고해서 받은 18만5000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대학언론인을 대표하는 단체를 만드는 일에 골몰하느라 알바할 시간이 없었다. 긴축재정이었다. 가장 먼저, 입에 들어가는 것들이 부실해졌다. 반찬이 있었을 때는 그나마 나았다. 반찬이 없으니 라면은 거의 매일 먹었다. 시리얼을 잔뜩 사서 우유에 홀짝홀짝 말아먹기가 부지기수였다. 도시가스는 뭐 이리 비싼지, 숨 쉴 때마다 입김이 보이는 냉골에서조차 보일러는 틀 엄두도 못 냈다. 라면 끓일 때, 세수할 때는 커피포트로 데운 물을 애용했다.내가 꿈꾸던 자취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친구들을 초대하고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고… 환상은 가차 없이 깨졌다. 하지만 난 이 상황에 감사한다. 자취생활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쳤다. 절약과는 거리가 멀던 내가 자취를 하면서 절약을 배웠다. 절약은 절박함에서 나왔다. 생활의 지혜가 부족해서 놓치는 것도 있겠지만 나름 아끼는 것 같다. 나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수록 날마다 어른이 돼가는 것을 느낀다. 이런 생활이 언제쯤 끝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자취하길 잘했다는 것.많은 학부모들은 대학생이 된 자녀들이 자취하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자주 보지 못하고 안전이 걱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밥은 잘 챙겨먹는지,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알 수 없는데 대한 불안감도 한몫한다. 너무 걱정할 필요없다. 좀 굶을 수 있다. 돈을 흥청망청 쓰기도 하고 밤늦게 다닐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러면서 배우고 성장한다. 대학생이라면 자취는 한번쯤은 해봐야한다. 그것이 자취가 내게 남긴 교훈이다.
2013년 계사년의 해가 떠오르고 18대 대통령이 선출돼 새로운 시작을 알린지도 어느덧 한 달 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우리 청춘들은 두려움도 한가득, 기대 또한 한가득 안아들고 각자의 인생을 시작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청춘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새로운 것, 새로운 결과들을 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전북지역 청춘들이 주목한 한 가지는 '모두가 가지고 있는 차별성 없는 스펙이 아닌, 진정한 나를 찾아 움직이고 그로써 얻은 나만의 스토리'이다. 잠시 스펙이란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출신학교와 학점, 토익점수와 자격증, 해외연수나 인턴유무 등 대학시절 동안 자신이 확보할 수 있는 외적 조건을 종합해 '스펙'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것들로 진정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당당하게 'NO!'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 우리들에겐 스펙에 대한 유연한 사고가 필요 하다. 지난 2012년 한 해 동안 전북지역대학 학생들 스스로 이루어낸 취업에 대한 진정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청년 Job 談'은 오로지 학생들 스스로 망설이고 있는 청춘들을 위해 취업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와 청춘들이 품어야할 진정한 현실들을 보여주고 답해주고 경험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학생이라는 이름은 그저 수용하는 쪽에서 받아들이기만 했다. 하지만 '청년 Job 談'이라는 행사에서 그 누구도 수용이라는 단어를 경험한 쪽은 없었다. 모두가 주최가 되어 움직였기 때문에 행사의 작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많은 위치를 품을 수 있었다.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학생에게 들려주는 청춘 이야기와 인사담당자님에게 들어보는 기발한 면접의 이야기들 그리고 졸업한 선배님들에게 들어보는 학창시절 이야기를 통해 짧은 강연시간동안 학생들은 그저 듣는 입장이 아니라 수많은 질문을 하며 진짜 궁금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지방대학교 학생들에게 현저하게 부족했던 대외활동에 관한 정보들과 그에 관한 사실들이 청춘들 앞에 펼쳐졌다는 것이다. 경험했던 청춘들과 경험하지 못한 청춘들이 동등한 위치에 앉아서 대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안주하기 보다는 그 울타리를 벗어나 각자 자신을 지켜줄 울타리를 더 나아가 상대방을 지킬 수 있는 울타리까지 만들 수 있도록 발끝만 쳐다보던 시선을 들어 올려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던 자리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행사를 주최한 운영진들 그리고 그 행사에 참여한 수많은 학생들과 전북지역 학생들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흔쾌히 수락해 주신 도청의 일자리정책지원과 모두가 '경험'이라는 소중한 한 가지를 더 가지게 되었다. 결국 이 시대 청춘들에게 스스로가 배우고 익힌 사실들을 내 현실과 접목시켜 웃음으로 혹은 다짐으로써 돌아올 경험이 더 소중하다고 말하고 싶다. 수용의 자세보다는 대담한 행동의 결과들이 필요하고 그와 함께 이것이 진정한 '학벌이 아닌 능력중심의 사회'를 구현해 나가는 발걸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올해 2013년에는 전대일(전주대) 진대원(전북대) 원대한(원광대) 설래군(군산대) 한대희(한일장신대학) 다섯 개 대학이 함께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한다고 한다. 어느 것이든 시작은 사소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작은 것이 모여 거대한 무리를 이루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창조의 시작이고 꿈의 무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앞으로 더 큰 비상을 향한 전북 지역 청춘들의 행보가 세상을 비출 수 있는 또 하나의 별이 되었으면 한다.
내 산책로에는 목련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내 키 두 배만 못 한데, 가지런히 가지치기를 해 놓아 매우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 뒤에 큼지막한 건물이 있어서 볕이 잘 들지 않는 곳에 있으면서도, 봄만 되면 하얀 꽃을 팡팡 터트리는 게 어여쁜 친구다. 이 목련나무가 가지마다 내 손바닥만 한 흰 꽃을 풍성하게 달고 있는 걸 보고 있자면 마음이 절로 두근거린다. 옆에 자리한 벚꽃이 피는 둥 마는 둥 새침때기처럼 꽃을 피울 때, 이 친구는 제 꽃송이를 큼지막하니 벌려 봄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이 퍽 아름답다. 얼마 전에, 산책을 하다가 이 목련나무를 유심히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벌써 털 난 발굽처럼 생긴 꽃봉오리가 나 있는 게 아닌가? 작은 건 내 깨끼손가락만 했고, 개중 큰 것은 엄지손가락보다 더 커 보였다. 그동안 쌓인 눈도 녹지 않을 만큼 추운 날씨가 계속 이어졌는데도 이 목련나무는 꽃봉오리로 제 몸을 한껏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도 이제 이 나무가 목련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가지는 흔들리고 있었지만, 봉우리들은 그 가지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나는 하루를 거르지 않고 이 친구가 있는 산책로를 걸어 다녔다. 매일매일 이 목련나무는 매번 앙상한 가지만 있어 휑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이 친구가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어 놓은 것을 늦게 알아차렸을 뿐이었다. 이 많은 꽃봉오리가 하룻밤 사이에 기적처럼 솟아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이 친구는 차근차근 가지에 꽃봉오리를 올리고 치장했을 것이다. 목련나무는 중요한 약속 전날에 팩을 하거나, 시험 전에 공부를 하는 것처럼 천천히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한 것이다.요즘 십대들에게 인기 있는 아이돌 가수인 '틴탑'의 안무는 칼군무라고 평가된다. 여섯 명이서 같은 동작을 동시에 한다고 해도 동작이 어긋나거나 할 수 있을 텐데, 틴탑의 안무는 한 치의 오차도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데뷔곡인 '박수' 때부터, 작년 하반기에 활동한 '나랑 사귈래'에서도 그들은 여섯 명이서 딱딱 맞는 안무를 구사하였다. 무대에서 같은 동작을 동시에 하며 춤추는 모습은 봄철 목련과 같이 화려하다. 이러한 칼군무를 위해 틴탑은 비활동기에도 일곱 시간 이상 연습을 한다고 한다. 무대에서 완벽해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겨울'에도 봉오리를 올린 목련처럼, 비활동기에도 매일매일 해왔던 연습이 있었기에 그들이 '칼군무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노래가 무대 위에서 빛을 내는 건 그들이 무대를 완성하기 까지 들인 시간 때문일 것이다. 재능만 가지고서는 한 분야의 최고가 될 수 없다. 그 재능을 갈고닦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무대 위에서의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들은 꾸준히 노력했을 것이다.목련나무가 봄을 하얗게 물들이려면 꽃봉오리를 만들어야 한다. 봄을 위해서는 겨울을 나면서, 꾸준히 꽃봉오리를 밀어 올려야 한다. 누구에게나 겨울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겨울 내내 어떻게 지내느냐이다. 목련은 탐스럽고 굵은 꽃을 올려 봄을 알린다. 그 탐스럽고 커다란 봉오리가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 추운 겨울에도 꽃봉오리를 올린 탓이다. 노력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우리는 봄 목련처럼 화려하게 피어날 날을 준비하며 겨울을 보내야 할 것이다.
칭기즈칸은 끊임없는 전쟁과 약탈이 난무하던 시절에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몽골고원을 통일했으며 중국 대륙을 정복했다. 당시의 몽골의 인구는 200만 명이 안 되었는데 이 소수 민족이 수억 명의 사람을 정복하고 거느렸던 것이다. 그것도 150여 년 동안이나 말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꿈이었다. 몽골이 가진 꿈은 다 함께 잘 사는 것이었다.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그 꿈은 하나의 제국을 완성하는 비전이 되었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모든 민족이 목숨을 내걸고 내달렸다.리더의 꿈은 곧 비전이며 그 비전은 혼자의 것이 아닌 공유할 수 있어야만 실현을 가능하게 한다. 비전의 공유는 스스로 열린 생각에서 출발하는데 열린 생각은 곧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한다. 리더가 개인의 비전을 강요하고 다른 사람에게 무한의 희생과 복종만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이미 아집에 불과하다. 비전의 공유를 위해서는 나의 비전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비전도 이해하는 포용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복잡해지고 다양화 되어 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리더의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은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말하지 말고 대화하라〉라는 책을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들 중 99%는 소통 때문에 발생한다고 하였다. 저자에 의하면 말뜻을 못 알아들어서 문제가 되고 말의 의미를 달리 해석해서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모두 소통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다.실제로 우리 주위에서도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기보다는 감정부터 앞세워 사소한 일에도 소통이 안 되는 경우를 흔히 겪게 된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도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개인이나 사회가 가진 목적을 조화롭게 이루기 위해 구성원 모두 대화와 소통이 중요하며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정작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히려 리더가 이를 핑계로 나와 다른 의견이나 생각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게 아닐까?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뜻을 가지고 있으면 대화가 통하고 소통이 잘 되는 것이고 나와 다른 의견이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배척하는 것은 아닌가?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리더가 주도적으로 대화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리더가 자신의 주장만 앞세우면 결국 이러한 흐름은 단절되고 마는 것이다. 대화의 단절은 결국 소통의 부재로 이어지게 된다. 자기주장만으로 소통을 이룰 수 없다. 무조건 내 주장만 펴기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남의 말을 들어주는 배려심이 필요하다. 그게 더 타당한 것이라면 내 주장을 과감하게 접고 따를 수 있어야 한다. 내 주장을 관철해야만 승리자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패자가 된다는 강박관념을 벗어야 할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너무 싫었다. 나 스스로 아프다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안 아픈 척하고 사는 것이 버릇이 됐는지도 모른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길들여졌다. 생생하게 꿈꾸면 현실이 된다, 뭔가를 간절히 상상하면 그게 우주에 전해져서 현실로 나타난다는 둥 이런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내린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조금만 비관적인 목소리를 내면 '그래서 네가 그 모양 그 꼴이지', '성공한 사람들은 다들 긍정적인 사람들이다'하는 등의 질책이 돌아온다.긍정주의는 19세기 미국에서 시작된 신사상 운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 사람들은 깊숙한 내면에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으며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면 이런 힘의 문을 열 수 있다는 논리로 이뤄졌다. 초기 신사상 운동은 질병은 마음의 문제라는 견해로 건강문제에 치중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관심사는 건강보다 성공과 부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에 발맞춰 신사상에 내포된 긍정주의는 번영 지향적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오늘날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긍정주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개인의 건강문제에 머물러 있었을 때는 좋은 이론이었지만 긍정주의가 자본주의를 만나면서 오히려 개인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긍정주의는 모든 사회적인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가난, 질병, 실업 등의 고통은 개인에게 원인이 있으며 그들 스스로 해결해야하는 문제이다. 뭐든 긍정적으로 견뎌내야 한다. 환경을 탓하는 순간 한낱 '찌질이'로 전락하고 만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뭔가를 바꿔보려고 사람들이 모여서 항의하거나 시위를 하면 '빨갱이'라는 낙인까지 덤으로 찍어준다. 이래저래 비관적이면 살기 힘든 세상이다.청년들에게 긍정주의는 '열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다가온다. 열정은 개인의 자아성취를 위해 생산적인 활동에 몰두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이 열정이 어느 순간부터 착취의 언어로 쓰이는 듯하다. 청년들에게 열정을 다하라는 말은 실상 비합리적인 착취구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 기업가들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을 줄 테니 와서 열정을 불태우라며 청년들을 유혹한다. 그들이 주는 임금에는 다른데서 못하는 경험이 포함됐으니 액수가 적거나 없더라도 이해해야하는 것이다. 이해하기 싫어도 이해해야 한다. 어른들은 네가 아직 사회를 모른다고 하니까, 주위에선 이것도 그냥 좋은 경험한 셈 치라고들 하니까 그냥 그러려니 한다.백번양보해서 대학생, 청년들이 알바, 인턴,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보상조차 못 받으면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열정 때문이라고 인정해보자. 그렇다면 기업가와 정규직들은 열정이 없는 사람들일까? 그들은 열정이 없어서 노동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받는 것일까? 그들은 단지 열정이라는 허울 좋은 표현으로 착취를 정당화할 뿐이다.강요된 열정은 열정이 아니다. 그렇다고 열정 없이 살자는 것은 아니다. 긍정과 열정이라는 좋은 말이 대안 없는 무비판적 긍정주의로 나타나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열정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환상이 청년들을 기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 보자. 잘못된 현실은 분명히 지적하고 저항해야한다. 아프다고 소리칠 수 있으니까 청춘이다.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사회를 보노라면 이러한 생각이 든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이기주의가 팽배해짐과 동시에 경쟁이 급속도로 과열이 되고 그 과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처절한 삶의 투쟁이 만연해져 가는 정글과도 같은 사회라고 말이다. 이러한 사회체제 속에서 세상을 단지 바둑판에 놓이는 바둑알처럼 흑과 백으로 나누어 볼 때 사회현상들에 있어서 어떠한 사람이 선한 사람이고 또는 그 반대인 어떤 사람이 악한사람이다 라고 쉽게 우리는 정의 내리지 못할 것이다.그저 그 시대와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비추어볼 때 도덕과 양심이라는 울타리의 경계 앞에서 바라만 볼뿐인 것이다. 우리는 신문이나 기타 방송매체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우를 범하곤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경제인이라던 지 아니면 어떤 범법자라든지 간에 그들을 그저 공중매체의 판단에 의해서 그리고, 그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하게 되는 언론의 힘에 의하여 대중들의 생각들은 좌지우지되어지기 쉬워지는데 과연 그러한 평가들이 옳다고만 할 수 있는 것일까?세상의 옳고 그름에 대한 잣대는 어디에서부터 존재하게 된 것이고 그러한 잣대에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판단을 내리고 그리고 누군가를 어떻게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겨지게 된 것일까? 나는 모르겠다. 무엇이 정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무엇이 옳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정말 모르겠다.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촌을 둘러보자면 힘 있는 자만이 살아갈 수 있고 편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그러한 체제적인 모습들이 만연해 있기에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닌가 싶다. 되돌이켜 위로 거슬러 올라가서 살펴보자면 역사에 존재하는 위대한 인물들의 업적들에 있어서 그들의 그 행위들이 과연 옳았던 것 이었을까? 라는 의구심도 든다. 역사는 승자에 의한 전유물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오직 승자만이 기억되고 패자는 우리 기억저편으로 잊혀지는 아니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이 생각하고 느끼고 그에 대하여 판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왜 그러합니까? 정녕 그것이 수학문제를 풀듯이 1+1=2 라는 공식처럼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라고 말이다.얼마 전 제 18대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이루어졌다. 다른 대선후보를 제외하고 박근혜후보와 문재인 후보 이둘 간의 각축을 벌인 대선 속에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 두 후보 간의 대선은 어찌 보면 20·30대와 40·50·60대의 세대 간의 다툼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세대를 뛰어넘어서 우리국민 모두는 같은 꿈을 꿈꾼다는 것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 삶의 풍요로 인한 행복을 꿈꾸고 보다 더 나은 사회를 꿈꾼다는 것이다.물가는 날이가면 갈수록 인상되어지고 국민들의 이마에는 굵직한 주름살만 더해져가고 사회복지에 대한 국가의 정책은 그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대처로 인한 국민의 실망감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커져나가고 있다.에이브러햄 링컨은 말했다. 일부 국민들을 오랜 세월 속이는 것도 가능하며, 전 국민을 잠시 속이는 것도 가능하긴 하지만, 전 국민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말이다. 이처럼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이번에 대선을 통해 당선이 된 제 18대 대통령께서는 국민들에게 약속한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에 그치지 않길 바라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행보를 기대하는 바이다.
크리스마스. 연말을 앞두고 사람들이 가장 설레며 기다리는 공휴일이다.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인데 12월 초만 되더라도 카페나 식당, 길거리에서 크리스마스 트리와 붉은색, 초록색 등의 화려한 장식들을 볼 수 있으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해 주는 캐롤이 울려 퍼진다. 한 대형포털사이트에 크리스마스를 검색하니 연관검색어로 크리스마스 선물, 여행, 데이트, 공연 등 크고 작은 이벤트를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어느새 오래전부터 크리스마스는 단지 놀고 쉬는 별다른 의미 없는 공휴일로 변하였다. 크리스마스란 메시야(Christ)와 예배(Mass)라는 두 단어의 복합어로 세상을 구하려고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성탄 풍습 초기에는 종교의식만 행해지다가 이교도의 풍습인 12월 17일부터 24일까지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고 흥겨운 놀이를 즐기는 로마의 농신제를 흡수하여 성탄절 풍습이 행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12월에 꼭 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것은 후대에 가미된 풍습이다. 현재의 성탄절은 상업적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고, 축제의 풍습만 부각되고 있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이든 아니든 종교를 떠나서 지구촌 가족의 축제이다. 또한 예수 탄생의 의미인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며 이 땅의 모든 이들과 함께 기쁨과 평화를 나누는 날'임을 알리고 예수 탄생을 축하하고 기리기 위한 날이다. 하지만 이제는 교회보다는 백화점이나 카페, 식당 등에서 먼저 성탄절을 준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성탄절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연인과 데이트를 즐기거나 학교와 직장을 하루 정도 쉴 수 있는 휴일로 생각해 크리스마스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이를 그대로 따라가는 사람들이 애석할 뿐이다.나도 얼마 전까지는 크리스마스를 특별한 의미 없는 공휴일로 생각해 교회를 가거나 집에서 쉬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나라에서 정한 공휴일이 특별한 의미 없이 달력에 붉은 색으로 표시하며 괜히 학교와 직장을 쉬게 할 일은 없지 않은가. 크리스마스의 즐거운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크리스마스의 본래의 의미를 되새기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이제는 TV에서 크리스마스 특선영화를 보기보다는 집 밖으로 나가 추운 겨울에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는 이웃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 더욱 즐거운 공휴일을 보낼 것이다. 즐거운 축제 분위기와 함께 이웃을 돕기 위한 일들은 찾기 쉬우며 다양하다. 양로원이나 고아원에 찾아가 봉사활동을 할 수 있으며 특히 12월에는 길거리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구세군 자선냄비를 통해서도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크리스마스가 세계적인 공휴일인 만큼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며 이 땅의 모든 이들과 함께 기쁨과 평화를 나누는 날임을 잊지 말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이 추운 겨울날 그들의 마음을 단 하루만이라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를 바란다.
아버지는 인간관계로 툴툴거리는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특히 모난 돌이니 많이 부딪혀서 둥근 조약돌이 되어라." 나는 늘 비판의 안경을 쓴 채 생각하기 때문에 말을 직설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면을 아는 아버지는 나를 모난 돌이라고 하셨고, 그 모난 것이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찌른다고 하셨다. 그래서 차라리 사람들과 많이 부딪히고 싸우고 깎고 반성하고 깨달아서 조금씩 둥근 조약돌이 되기를 바라신 것이다. 학교선배는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다는 내 하소연을 듣고 말했다. "재능은 노래를 잘 부르고 컴퓨터를 잘 다루는 것들이 아니야. 네가 가진 끈기와 책임감이 너를 남과 구분해주고 너를 만드는 재능이야." 참 용기를 북돋아준 말이었다.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같이 부족한 존재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만들어주는 것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깨달았다. 시간과 환경을 초월해 내가 나 되게 하는 본질이란 바로 노력이라고.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분명 다르다. 감정과 생각도 끊임없이 변하며 주어진 환경도 바뀐다. 고로 내존재의 불변성은 증명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나는 변함없는 나다. 그 불변성이란 어디서 오는 걸까? 리프스나 마스셀 그리고 볼노브 등의 철학자들은 약속에 중심을 두고 해석한다. 나의 내적외적환경은 바뀌더라도 나는 노력을 통해 변화와 상관없이 믿음성을 지켜나가고 그로인해 계속해서 내 존재의 동일성을 이룬다는 것이다.그렇다면 나는 꼭 약속에 대한 믿음성보다는 모든 것을 포함한 노력 그 자체가 개인의 본질을 만든다고 바꾸어 말한다. 내게 걸린 기대에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노력, 내가 만들어나가는 삶을 더 옳고 바른쪽으로 향하려는 노력, 잘하지는 못해도 도우려는 노력. 바로 이것이 우리 존재와 삶을 만드는 것이다.그렇다면 재능도 마찬가지다. 내 능력이 1인데, 5인 사람을 보고 열등감을 갖거나 포기한다면 거기서 끝이다. 그러나 능력이 1이더라도 바른 목적을 가지고 5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5가 되든지 되지 않든지 나는 더 이상 1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그 이상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누구든지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을 통해 모두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 능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자신의 본질을 더 높인다면, 외려 버리고 깎아내는 것이 본질의 가치를 더 높일 때도 있다. 모난 부분을 깎아내고 성숙에는 필요치 않은 것들을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은 것을 잃고 더 큰 것을 얻게 만들 것이다. 물론 버리는 것에도 노력이 따라야 하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움켜쥔 것들이 얼마나 작은지 깨닫고 그 점을 버림으로써 나은 존재로 나아갈 것이다.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하는 매순간의 선택을 통해 삶을 만들어나가고 존재를 확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옳은 선택과 참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삶에 필수불가결하다. 사실 참된 내 존재가 무엇인지는 계속 향해가는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을 목표로 하며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사는 것이다. 그리고 더 얻는 노력 혹은 더 깎아내는 노력을 하게 된다. 이제 시작점에 서있는 우리 청춘들은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에게 약속한다. 지금의 나보다는 더 참됨에 다가가겠노라고.
마무리. 일의 끝맺음을 뜻하는 말로 요즘 시기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이 단어가 잘 나타내는 것 같다. 어느 새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반짝 반짝 빛나는 트리 장식을 한 거리를 보니 곧 크리스마스가 올 것 같다. 12월이다. 2012년, 새해를 맞이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음 해를 계획하는 시기가 왔다. 나도 여러 가지 일들을 마무리하고 있다. 한 때는 내 것이었던 것들이 내 것이 아니게 되어가고 있다. 편집국장, 3학년, 아르바이트…. 편집국장. 2012년 1월 공식적인 전주교대 신문사 편집국장이 되었다. 1면의 상단에 있는 편집국장 란에 내 이름이 적혔다. 신문을 만드는 과정이 힘들고 편집국장이라는 자리 때문에 책임감이 막중했지만 완성된 신문을 보고 참 뿌듯해 했었다. 신문 만드는 일이 좋아서 그리고 더 좋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 많이 노력했었다. 신문에 어떤 기사를 넣어야 좋을지 고민하고, 우리 신문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신문사에 속한 친구들과 숱하게 고민했다. 우리의 의견이 옳다 생각하고 실천하기 위해 부딪혔던 날들, 그 당시에는 부딪히며 아프고 상처 받았지만 생각해보면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신문사에서 활동하며 즐거웠고 많은 것을 배웠다. 3학년. 다른 학교의 3학년도 그렇겠지만 교육대학교의 3학년은 매우 고달프다. 학교 과제가 많은데 특히 친구들과 조별로 함께 해야 하는 과제이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고 의견을 조율해야 해서 더욱 힘이 든다. 학교에 남아 친구들과 함께 과제하고 공부해야 하는 시간이 많았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을 때는 매우 바쁘고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속에서 재미를 찾은 것 같다. 바쁜 와중에도 틈이 나면 문화생활도 많이 하고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1, 2학년 때 보다 오히려 더 재밌었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 바쁜 3학년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서 2학기에 파리바게트 아르바이트와 고등학교 3학년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얼마 전 11월에 마무리 지어 아르바이트를 오래한 것은 아니지만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한 것 같다. 최저 시급도 안되는 열악한 조건의 빵집 아르바이트, 고가의 시급을 받고 부모님 또래의 어른께 존대 받는 과외 아르바이트. 시급 차이도 있지만 다른 대우, 다른 환경에 참 많은 것을 느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내가 나갈 사회를 미리 경험하였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많은 것에 대해 생각했고 때론 팍팍한 삶에 슬퍼졌다. 2012년 한 해를 생각하며, 그리고 내 것이었던 3가지를 돌아보며 잘 마무리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은 시작과 연결되어 있다.' 언젠가 이 구절을 봤을 때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어떤 말인지 이해가 간다. 좋은 마무리를 지어야 앞으로 내 것이 될, 아직은 내 것이 아닌 것들에 대해 잘 준비하고 당당해질 것이다.
지하철 속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간다. 그 사람들 속에는 수많은 남자들이 있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누군가의 아들로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는 아버지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아들인 이 시대의 아버지와 아들, 그들의 청춘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은 간혹 자신이 살아온 힘든 인생의 여정에 대해 말씀하신다. 특히 우리나라의 아버지들은 약주를 드시고 그 취기를 빌어 그런 이야기를 잘 하신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매번 하셨던 이야기를 수 없이 반복하셨다. "그 이야기는 너무 자주 들어서 외웠단 말이에요."라며 투정도 많이 부리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 조금이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는 장황하게 하시지만 정작 아버지 자신의 패기 있고 뜨거웠던 젊은 날의 청춘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어찌 보면 아버지의 청춘과 우리의 청춘은 살아가는 시대적 상황이 다르다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본질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청춘은 겉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일지 모르나 우리들 삶의 내면을 보면 마치 나약한 온실 속 꽃과는 달리 거친 풍파 속에서도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사람들 가슴 속에 깊이 파고드는 매화처럼 우리들은 인고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네 아버지들의 청춘 또한 격동의 역사 속에서 살아 오셨고 그 삶 속에서 또 다른 우리의 청춘을 돌이켜 볼 수 있는 하나의 만남의 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의 비교 속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청춘을 거울삼아 남들과는 다른 우리만의 청춘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은 또 다른 이름의 청춘이라는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아야 할 것이다. 아버지에게 물질적인 재산을 물려받는 것은 어찌 보면 유산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정한 유산이란 우리들의 아버지가 살아온 날들의 풍부한 경험 그리고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이를 극복해나갈 수 있는 지혜,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받아들이고 마음 속에 새겨야할 청춘이지 않을까 싶다.물질만능주의라는 현대 이기주의의 아집 속에서 '돈'이라는 물질은 그저 단 한 순간 우리의 허영심을 채워줄 수 있고 풍족한 삶을 영위하게끔 도움을 줄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지혜와 경험이라는 진정한 유산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자양분이며 밑거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에 대해 누구나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그저 알고만 있을 뿐이지 세속적인 세태와 속된 마음으로 인해 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한다고 할 수 있겠다.우리는 아버지의 청춘과의 정신적 교류를 통해 우리의 잣대로 이를 섣불리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며 이를 본연의 순수함으로 다가가 받아들이고 성숙의 시간을 가짐으로서 또 다른 나의 자아를 찾고 먼 훗날 한 가정을 이루었을 때 우리의 자식들에게 삶의 나침반 같은 역할이 되어줄 수 있게끔 이에 대해 얘기하고 공유해 찬란한 유산을 남겨야 할 것이다.이제 곧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간들이 다가온다. 올해가 가기 전 우리네 부모님들과 약주 한 잔 기울여보자. 그래서 그 동안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서로 공유하며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알아가는 기회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떠할까?
며칠 전 한 전공 교수님께서 이름을 가리고 학번과 함께 중간고사 성적을 공개하셨다. 중간고사 후 바로 공개하면 자신의 성적을 잊을까봐, 얼마 남지 않은 기말고사를 준비하는데 자극을 주고자 함이었다. 실망스러운 나의 성적을 확인하고, 성적이 나의 모든 것을 말 해주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성적이 나의 가치를 수치화한 것처럼 느껴졌다. 대학 때의 성적은 취업을 위한 요건 중 중요한 부분이다. 대학교 4학년은 곧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시기를 말한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4학년을 앞두고 있는 나의 동기들 중에는 진로를 구체적으로 정한 친구들이 있는 반면, 나와 같이 어느 길로 가야할지 몰라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 동지들이 있다. 1년 후 남들은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같이 휩쓸려 취업 준비를 하다 취업에 실패해 좌절할 것 같아 두렵기도 하고, 취업을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불행한 삶을 살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또 취업을 하려면 학교 성적과 스펙도 중요한데 나의 이력서에는 화려한 스펙보다 빈칸이 차지할 것 같다. 이렇게 취업과 같은 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면 여러 가지 고민이 머릿속에 마구 뒤섞인다.이 고민에 한창 빠져있던 중에 고등학교 시절부터 존경하던 '공부의 신' 강성태가 특강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의 별명대로 공부의 신이 대학생을 위해 어떤 이야기를 할지 무척 기대가 되었다. 그는 꿈이 없으면 남을 따르거나, 남을 위해 살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요즘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중에 나의 미래가 그렇게 되지 않을까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덧붙여서 그도 뒤늦게 자신의 꿈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주변에 잘 나가는 친구들을 따라갈 수도 있었지만 방황 속에서 고민을 하다 보니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발견해낸 것이다. 그는 험난한 과정을 통해 좋은 직장, 좋은 제안을 마다하고 생각만 해도 설레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계속 하면 진로 결정도 주변 분위기에 따르지 않고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생활은 풍족하지 않지만 한걸음씩 그의 꿈에 다가가고 있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매우 행복해보였다.나는 지금 나의 꿈을 이루기보다는 찾는 과정 속에 있다. 내 또래나 나보다 어린 사람들 중에는 벌써 그들의 꿈을 찾아서 꿈을 이루거나 자신의 꿈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많다. 그들을 볼 때면 나도 그들을 따라 조급하게 준비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생긴다. 하지만 나도 공부의 신 강성태처럼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 가려고 한다. 그 길을 걷다보면 생각만 해도 설레는 꿈을 발견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지금 방황하며 힘든 시기를 도망가고 싶은 청년들이 많을 것이다. 힘든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사람들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고 조언해준다. 무엇이든 즐기려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기 쉽다. 남들보다 늦게 걷는다고 뒤처진다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는데 노력하자.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내가 가는 길, 바로 그 방향이니까!
속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또는 성경구절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등 노력과 실천의 중요성에 대한 문구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이렇듯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결과를 얻어내고 또 인생의 순간들을 살아간다.이렇게 자명한 진리에 대해서 나는 당연하게 생각해왔고 그렇게 살고 있다고 믿었지만 되돌아보면 내 짧은 삶과 작은 선택들은 결단과 행동의 중요성에 대해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과연 그 실천에 모든 것이 달려있고 또 그것에 매여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게 일어나는 상황과 또 선택들이 발걸음을 떼는 것의 의미가 내안에서 더욱 확장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어릴 적부터 "약한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삶을 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던 나는 지금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러다가 대학원에 진학한 뒤 경력을 쌓고 자연스럽게 인권운동을 하겠거니 생각했다. 웬걸. 그토록 오랜 다짐과 꿈꿔오던 시간들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안일했다. 22살, 대학교 3년차가 겪는 세상은 전혀 생각 같지 않았고 노력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절절히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만든 틀 안에 갇혀있던 나는 조금씩 그 틀을 깨기 시작했다. 해외에 나가서 보며 느끼고, 연장자들의 경험을 배우고, 나도 모르던 내 새로운 모습을 꺼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경제적인 문제부터 가치관까지 바꾸려 노력해야했지만 용기를 냈다. 이것이 처음 내딛은 발걸음이었다. 그 후 상상할 수도 없던 기회들과 길들이 차근차근 펼쳐졌다. 사실 현 상태를 깨닫고, 그것을 바꾸려는 용기를 내고, 결단을 통해 행동을 하고, 틈틈이 오는 게으름과 같은 것들을 물리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무엇을 간절히 원해서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안락한 삶이나 눈에 보이는 것을 좇아 사는 우리또래에게 노력이나 인내는 참 어려운 가치다. 그러나 노력을 요하는 동기가 무엇이건 간에 공통의 목적은 더 나은 결과다. 따라서 겁내지 말고 발걸음을 내디뎌 보자. 그렇게 천천히 한걸음, 선택, 용기라는 돌을 발 앞에 놓아가며 걸음을 뗀다면 더 성장하고 나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내가 가진 철학중 하나는 '삶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부터 시작해서 무엇을 먹을지, 어떤 볼펜을 쓸지, 어떤 커피를 마실지, 어느 학교에 갈지, 누굴 만날지 고민하는 것 모두가 삶의 순간순간인 동시에 선택 혹은 결정이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모여 삶을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늘 마음속에 상기하며 새기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라는 노력이 올바른 삶을 구성하므로 지금 내가 내딛는 발걸음 하나조차 매우 중요하며 아름다운 삶의 순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인정한다면, 당연히 신중한 행동을 결정하도록 노력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인생의 선배들도 그러하겠지만 아무 경험도 없는 우리 청춘들은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예측하기 어렵다. 또 모든 것이 겁나고 결정하기 힘들며 인내도 부족하다. 그렇지만 이제 세상에 첫발을 내딛고 찍어낼 발자국은 오히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모험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외려 실패하는 것에서조차 배움을 얻을 것이다. 두려워말고 세상을 향해 나의 가장 소중한 첫 발짝을 내디뎌 보자.
"그대들이 말하는 사대의 예. 나에겐 사대의 예보다 내 백성들의 목숨이 백 곱절 천 곱절 중요하단 말이오."근엄하게 왕좌에 앉아 신하들에게 호통 치던 또랑또랑한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조선시대 왕 광해군을 소재로 허구적인 요소를 가미한 영화 광해. 1000만 관객을 훌쩍 넘고 얼마 전 대종상 15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최고의 영화라며 극찬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우리는 이 영화의 어떤 매력에 끌렸던 것일까? 광해는 백성을 섬길 줄 아는 왕이었다. 광해가 쓰러진 후 천민이었던 하선이 광해를 대신했다. 처음에는 낯선 궁에서 적응을 잘 하지 못 했으나 곧 궁 생활에 익숙해지며 바른 정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를 실행하려고 했다. 충신 살리기, 대동법, 중립외교. 역적으로 몰린 충신을 구제했고 땅을 더 가진 자들에게 세금을 더 내는 법을 실행했으며 내 나라 백성들이 명나라에 가서 죽는 것을 불쌍히 여겨 금나라와 명나라 사이 중립외교를 펼쳤다. 그는 당시 정권을 잡고 있는 세력과 맞서며 상식에 맞는, 바른 정치를 했다. 우리는 광해의 이런 매력에 빠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조금 더 생각해보면 우리의 슬픈 현실이 드러난다. 광해에 열광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대로 생각해보자. 우리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 옳은 것을 추구하는 광해에 열광하는 이유는 지금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상식에 맞는, 바른 정치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가 마음속에 꿈꿔 왔던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광해를 통해 보고 감동 받은 것이다.요즘 대통령이 되고 싶은 후보들의 경쟁이 한창이다. 각 후보마다 정치 공약을 내세우며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외친다. 이 후보들 중 우리가 많이 선택한 사람이 우리의 대통령이 된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과거 왕처럼 지도자가 된 후에 정치를 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좋은 정치를 펼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지도자가 바른 정치를 펼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 실패이다.2012년 12월, 우리에게 우리의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주어졌다. 우리는 가끔 '대통령으로 뽑을 사람이 없다.', '누구를 뽑든 다 똑같더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정책이 달라지며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달라진다. 우리는 후보들의 성품과 정치 비전을 보며 그가 대통령에 적합한 인물인지,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대학생인 우리들은 대학 공부를 하고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바빠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는 우리의 관심사와 관련 없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다. 틈틈이 스마트 폰으로 후보들에 관한 뉴스를 보고 그 후보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 수 있는 사람인지 생각해야 한다. 공약이 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한 공허한 약속이 아닌지 비판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적합한 후보에게 투표한다면 좋은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다. 훗날 광해를 보며 '저런 지도자가 있었으면'이 아닌 '광해가 꼭 그 지도자 같구나.'하고 떠올렸으면 한다.
화창한 날씨의 어느 날, 청춘을 부르짖는 여러분들은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남들과는 색다른 역량을 쌓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명 스펙이라 불리는 토익공부에 매달리고 있나요? 아니면, 해외로 어학연수를 떠날 준비를 하고 계신가요?이 사회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청춘이라 불리는 우리는 무한 경쟁이라는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발버둥 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들의 청춘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껴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둡고 컴컴하며 마치 길고 긴 터널을 한줄기의 빛도 없이 그저 무작정 앞만 보고 걸어가는 것처럼 말이죠.1등만이 기억되는 더러운 세상,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말, 잠재적 능력보다는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전반적인 사회의 인식들이 우리의 가슴을 멍들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밝게 빛나는 태양처럼 그 누구보다도 더 진취적이고 패기 있고, 도전적이고 열정적이어야 할 청춘은 점차 사라져만 가고, 자기 사리사욕만을 챙기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행태의 모습만을 취하려 하고 있으니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무엇이 우리를 열정과 패기의 젊음이 아닌, 마치 남들이 인정하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인 것처럼, 사회가 미리 정해 놓은 그리고 사회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본질을 잊게 만드는 것일까요?음식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요리를 한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어줄 때 행복을 느낀다고 말하던 친구. 어느 날 갑자기 그 친구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났고 지금은 호주에 있는 요리대학교인 Le Cordon Bleu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 친구와 며칠 전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너는 왜 한국에서 다니던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호주로 갈 생각을 한 거야?"하고 물어봤습니다. 그 친구는 "진실 된 삶이란 뭐라고 생각해? 나는 남들이 뭐라고 하건 간에 우선은 내가 하고 싶고, 간절히 바라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게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의 내 삶과 빗대어 얘기할 때 목표가 있고 꿈이 있다면 때론 그 여정의 길이 너무 힘들고 지쳐서 포기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지만 이겨내고 견뎌낼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리고 내선택에 후회는 없어."라고 말했습니다."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물론 김난도 교수의 대표적 저서이기도 하지만 말이죠. 나는 "꿈꾸기에 청춘이다."고 바꿔 말하고 싶습니다. 청춘이기에 꿈을 꿀 수 있어서 행복하며 꿈이라는 희망의 등불이 있기에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속에서도 앞을 비춰 나아갈 수 있기에 말이죠.얼마 전 신문기사를 읽다가 '우리들의 청춘은 빛이 아닌 빚으로'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록금과 이를 마련하기 위해 휴학과 알바를 반복하는 학생들, 학자금 대출을 통해 어렵게 등록금은 마련했지만 원리금조차 제대로 갚지 못해 연체를 거듭함으로써 신용불량자가 되는 학생들, 그 중 일부는 애석하게도 자살이라는 선택을 함으로써 청춘이라는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그렇게 세상과 작별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심각성은 모든 것을 필설로 표현하기에는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시름시름 병을 앓고 있는 우리의 청춘들. 이는 우리 모두가 풀어야할 숙제이며 해결해야할 과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피우게 될 찬란한 청춘의 꽃을 기다리며….
지난 8월에 하반기 채용시장이 열렸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하루에도 몇 개 씩 작성해 지원하고 있다. 내 주변의 4학년 선배들을 보아도 입사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지원시기가 맞물려 있어 비슷한 마감 시간 안에 지원하기 위해 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취업준비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곳에만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채용 기간 동안 지원할 수 있는 모든 기업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해 그 중에 합격하는 회사에 들어가고자 하는 지원자도 많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원하는 직업과 직무, 기업이 구체적이지 않다. 이들은 구체적인 목표 없이 남들을 따라 스펙(Specification)을 쌓아 자신을 잘 포장하려고 한다. 따라서 원래의 의도와는 벗어난 진정성 없는 봉사 활동이나 국토대장정과 같은 활동을 하고 이력서의 빈 칸을 채우기 위해 토익과 영어 회화 등을 공부한다.그렇다면 이와 같은 취업준비생들은 왜 가장 중요한 역량을 버려두고 스펙에 더 신경 쓰려고 할까? 필자는 스펙이라는 단어를 고등학교 시절부터 들어왔다. 그만큼 많은 기업에서 다양한 경험, 즉 스펙을 갖고 있는 신입사원을 원하다보니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유행으로 굳어졌다. 이에 따라 취업준비생들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조건을 갖추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스펙을 쌓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것은 가장 중요한 핵심인 업무에 필요한 역량을 놓친 것이다. 물론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여러 가지 일을 두루 할 수 있는 능력은 있다. 그러나 기업이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맡은 업무를 누구보다 잘 수행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에는 이 문제점을 지각하고 스펙보다는 핵심역량을 갖고 있는 지원자를 모집하려는 기업체가 늘고 있다. 한 기업에서는 학교와 전공, 학점, 영어 점수 등의 스펙을 제외한 업무에 대한 열정과 실력을 바탕으로 한 인턴사원을 뽑는다. 입사지원 부문 중 입사지원 과제에 대한 답변을 받아 지원자의 열정과 역량을 보기 위한 것이다. 이른바 맞춤형 인재를 뽑는 열린 채용을 도입했다. 또 다른 기업의 경우 디자인소프트웨어 직군 등은 서류전형과 필기시험의 절차를 모두 없애고 최종 면접만으로 신입사원을 모집한다. 이 기업 관계자는 스펙보다 창의성과 다양한 경험, 도전정신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기업들은 업무에 필요한 핵심역량을 갖고 있는 사원을 고용하고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추세에 맞춰 취업 준비생들은 학점, 영어, 자격증 등의 '보여주기식' 스펙을 쌓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구체적인 직업을 정하고 지원하고자 하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맞게 자신만의 강점을 갖춰 경쟁력을 높이기를 바란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으레 감성적인 면이 강해진다. 나도 가을의 영향인지 요즘 겪는 일들 때문인지 매우 우울해있었다. 학교에서도 사람들과 몇 마디 하지 않고 돌아왔고 원룸에 와서도 계속 누워만 있거나 쓸데없이 울곤 했다. 우울감은 한번 젖으면 쉽사리 떨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었다. 또한 모든 일에 권태를 느꼈기 때문에 내가 왜 이러는지 하나의 원인을 찾는 것도 힘들었다. 이렇게 "우울해, 외로워"를 입에 달고 산지 3주 정도가 지났다. 여전히 홀로 세운 벽안에 갇힌 나는 깨달았다. 내가 나를 소외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을.사람들은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를 매우 좋아한다. 약 70년을 꾸준히 사랑받는 책. 나는 특히 이 책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그들인 양 느껴지기 때문에, 그리고 결국엔 나도 그들처럼 중요한 무엇인가를 깨닫길 기대해서이다. 어린왕자는 사막에 있다. 그런데 책을 몇 번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 사막은 실재하는 사막이라기보다는 사막과 비슷한 특성이 있는 장소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생텍쥐페리는 사막의 특성을 통해 드러나는 '관계없음'과 거기서 오는 외로움이나 인간소외에 대해 말한다.데이비드 리스먼이라는 사회학자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군중속의 고독'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아무리 사람이 많은 곳에 있다고 해서,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진정한 관계를 맺어야 사람을 만나도 '만난'것이 된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분명 아니다. 오히려 나와 같은 문제를 겪지 않는 사람이 더 적을 것이다. 우울증, 왕따 문제, 은둔형 외톨이, 심지어는 자살까지. 모든 원인이 인간소외나 외로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문제들의 근본적인 부분에는 늘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얽혀있다. 인간은 모두 외롭다. 따라서 서로가 마음을 먼저 연다면, 그래서 서로에게 다가갈 수만 있다면 삶은 좀 덜 팍팍해지지 않을까. 그러기위해서는 진정한 관계에 대한 이해와 정립 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관계에 대해 나만의 기준이 분명하게 세워져있다. 물론 좋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래야 내가 손해 보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보호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결국은 지금 사람들 속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간단히 말하면, 나는 나에게와 여러분에게 노력하자고 하는 것이다.노력해도 부딪히는 부분, 상처받는 부분이 있다. 그래도 치열하거나 아픈 노력에서 오는 나 자신에 대한 이해, 사람에 대한 이해는 손해를 보충하고도 남음이다. 그러나 진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나의 벽을 세우지 않는 것, 즉 남이 내 공간에 들어올 수 있도록 나를 열어두는 것이 기본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세운 벽에 내가 갇히는 일도, 벽에 걸려 넘어지는 타인도 없을 것이다. 내가 너를 향해, 네가 나를 향해 노력한다면, 우리는 물질로부터의 소외든지 인간으로부터의 소외든지 충분히 이 소외와 분리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알프레드 디 수작의 시는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고 말한다. 나는 여러분과 나 자신에게 말한다. "마음을 열어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책 한 권만 제대로 읽어도 300만원.' 한 달 전 학교에 이 문구가 쓰여 진 현수막이 붙었다. 상당히 흥미로운 문구 때문에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다. 가까이 가서 현수막을 보니 전북겨레하나에서 주최하는 대학생 통일 골든벨에 관한 홍보 내용이었다. 2인 1조로 참여해 통일에 관한 지정도서를 읽고 문제를 푸는 형식이었다. 나는 솔직히 처음에 통일 보다 장학금 300만원이 탐이 나서 통일 골든벨에 참여하게 됐다. 지정도서는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이 쓴 '통일을 보는 눈'이었다. 통일에 대해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실사구시의 입장에서 근거를 제시했다. 과거에는 민족분단의 슬픔, 이산가족의 아픔을 내세우며 하루 빨리 남한과 북한이 통일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렇게 감정에 호소하는 것은 분단의 아픔을 겪은 우리 할아버지 세대, 분단의 아픔을 지닌 부모 밑에서 자란 아버지 세대에게나 통하는 말이고 현 대학생 세대는 이를 이해할 수 없으며 공감되지 않는다. 분단의 아픔을 잘 모르는 현재 젊은 세대에게 통일의 필요성을 감정에만 호소한다면 오히려 거부감을 줄 것이다.우리 젊은이들은 대부분 통일에 대해 반대한다. 통일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분단이 됐어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기 때문이다. 또한 통일을 하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경제적 손실이 클 것이라 예상하고 통일에 대해 격렬히 반대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것이 편견임을 지적한다. 한반도가 분단이 된 이래 우리는 전쟁에 대한 공포, 보이지 않는 경제적 손실(한반도 리스크) 등 때문에 잘 살아오지도 않았고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분단비용이 통일비용 보다 훨씬 더 많이 든다. 저자는 젊은 세대들이 이해할 수 있게 구체적인 예를 들고 정확한 수치를 통해 비용을 분석해 책에 기술해 놓았다. 통일에 대한 적절한 근거를 들어 누구나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나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책을 읽고 열심히 공부했다. 책을 읽으면서 그 동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통일, 북한 사회에 대한 생각들을 바로 잡았다. 점점 공부를 많이 할수록 하루 빨리 통일을 해야 한다고 절실히 느꼈다. 떨리는 마음으로 지난 7일 대회에 참석해 1단계를 통과하고, 2단계 30번 문제까지 풀었다. 하지만 30번 문제가 지나치게 어려워 마지막까지 남았던 나와 한 여학생 둘 다 오답을 썼다. 둘 다 탈락해 골든벨을 울린 사람이 없었다.비록 이번 대회에 골든벨 우승자는 없었지만 참 의미 있었다. 통일 골든벨은 양질의 통일 관련 도서를 읽게 함으로써 통일 문제를 공론화 하고 거부감 없이 대학생들에게 통일의 필요성을 알렸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 학생들이 장학금 혹은 상품이 탐이 나서 대회에 참가했겠지만 결과적으로 통일에 대해, 북한에 대해 조금 더 알았다. 이 대회에 참여한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전보다 통일의 필요성을 깨닫고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다. 우리 민족 속담을 인용해 표현하면 티끌 모아 태산이고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통일에 대한 믿음을 갖고 조금씩 행동을 취하면 통일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될 것이고 그 여론이 바탕 된다면 통일은 실현될 것이다. 통일 골든벨 대회가 대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인, 중·고등학생, 초등학생들에게까지 확산되어 통일의 필요성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백성일 칼럼] 민심이냐 당심이냐로 판가름 난다
[새벽메아리] 이리역 폭발 사고 48주기, 익산의 정체성을 묻다
[사설]고령운전 사고 급증, 면허제도 개선해야
[오목대] 오페라 공연장이 된 채석장
[사설] 제2중앙경찰학교 정치적 판단 작용 없기를
전북장학기금 총액 타 지역보다 너무적다
[기고] 지속가능한 희망의 청신호 “출생아 증가”
장학금, 미래 인재 키우는 소중한 밑거름
[오목대] 다시 찾아온 '조용필 신드롬'
[전북아동문학회와 함께하는 어린이시 읽기] 내가 글자를 먹을 수 있다면김성수 신동초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