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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밤 뜬눈으로 지샌 시민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이른 아침부터 전주 객사앞으로 하나둘씩 모여 윤석열을 내란수괴로 즉각체포해야 한다고 외쳐댔다. 도민들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분연히 일어나 행동하는 양심을 보여줬던 것이다. 불의에 항거했던 동학의 후예답게 윤석열을 탄핵하고 그를 내란수괴로 체포해서 처벌하라고 강력하게 외쳐댔다.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주말마다 객사 앞에 수만명이 집결해서 정의를 외쳐댄 것이 바로 전북의 힘이요 저력이다. 이번에도 도민들이 즉각 행동으로 나섬으로해서 도민들의 핏속에 정의가 살아 있음을 한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도민들은 그간 국가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두손으로 강력하게 대항해 왔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불의가 정의를 억압할 수 없다는 천리를 믿고 정의의 외침을 부르짖었던 것. 심지어 어린이들까지 부모와 함께와서 외친 것은 우리의 긍지요 자랑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전북이 전국에서 가장 못사는 지역으로 전락한 것은 국가권력이 산업화 전략을 펴면서 전북을 철저하게 소외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객사에 모인 도민들 수만봐도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북이 그간 예향의 고장으로 알려지면서 도민들의 성징이 점잖은 것으로만 알려졌지만 이번 일처럼 국가가 긴박한 위기에 처하면 곧바로 한데 모여서 의기의 성냄을 통해 정의를 실천해 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전북인은 역사의 고비때마다 애국충절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해낸 자랑스런 후손들이다. 그런 만큼 오늘의 상황이 불리하고 어려워도 이를 극복할 여력이 충만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불의에 항거하는 행동하는 양심이 도민정신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 30대 젊은층의 정의감이 살아서 움직였다. 이들의 정의감이 민주주의를 지켜냈고 발전시켜 나갈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제안설명을 했던 김관영 지사가 광화문 시위현장에 카메오처럼 깜짝 나타나 민주당 지도부와 함께 윤석열정권의 실정을 국민 앞에 과감하게 외쳐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도전경성이란 캐치프레이즈를 김 지사가 도정구호로 내건 이유도 그의 삶이 도전정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었다. 학창시절에 최연소공인회계사가 된 것과 군시절에 행정고시, 재경부 사무관 시절에 사법시험에 도전해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은 도전정신에 기인한 것이었다. 지금 전북이 힘들지만 이번처럼 도민들이 하나로 똘똘 뭉치면 모든 걸 할 수 있다. 특히 지난 4.10 총선 때 10명의 국회의원 전원을 민주당 후보로 선출해 단일대오로 만들어 주면서 그 진가가 중앙정치권에서 나타나고 있다.특히 정동영 이춘석의원의 정치력이 돋보여 타 지역 국회의원의 부러움을 산다. 청렴하고 업무평가에서 줄곧 1위를 달려온 김 지사와 국회의원들이 협력하면 전북발전은 곧 회복될 것이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도민들과 함께 추억을 간직한 전주 종합경기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1963년 피폐하던 시절 44회 전국체육대회 개최를 위해 도민들 성금을 모아 지은 지 61년 만이다. 이 자리에는 컨벤션센터와 호텔 등이 들어선다. 특히 전시컨벤션센터는 지방재정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함에 따라 가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종합경기장 개발과 함께 전주 현안의 양대 축으로 꼽혔던 옛 대한방직 부지 개발도 도시관리계획 변경 절차가 마무리 되면서 탄력을 받게 됐다. 이처럼 오랜 진통을 겪어온 해묵은 현안이 행정 절차를 끝내고 착공만 남게 되면서 한껏 기대를 갖게 한다. 여기에 서부권 교통망의 핵심인 황방산 터널까지 윤곽을 드러내면서 전주시의 대형 프로젝트 꿈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탄핵 정국과 맞물려 정부의 긴축 재정 기조가 여전한 가운데 사업 추진에 따른 재정 악화를 우려하기도 한다. 시의회도 행정사무감사에서 이런 점을 지적하고 부채 관리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지역 발전의 견인 사업을 계속 방치하는 것도 장기적 관점에서 리스크로 작용할 거란 지적도 만만찮다. 자영업 소상공인은 물론 지역 경제가 초토화된 상황에서 이 사업들은 분위기 반전을 이룰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적게는 6년에서 10년 넘게 찬반 논란이 계속돼 왔던 지역의 현안이다. 최근 종합경기장 개뱔의 핵심인 컨벤션센터는 전북도와 시가 상호협력 업무협약을 맺고 적극 추진키로 했다. 전시복합산업의 구체적 청사진이 머잖아 가시화 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방직 터 개발은 그동안 걸림돌로 지적돼 온 사업의 지속성과 공공성 담보 문제를 시의회가 집중 검토한 끝에 4개항 수정 조건으로 상호 협약서를 승인했다. 이 외에도 관심을 모은 건 상습 교통체증의 오명을 안고 있는 서부권 교통 해소책으로 거론돼 온 황방산 터널 구간이 결정됐다는 점이다. 시가 그동안 3가지 안을 놓고 검토한 결과, 혁신도시 국민연금공단 사거리에서 서곡 드림솔재활병원 사거리까지 1.86km 구간을 선정했다. 일단 후속 절차가 남아있지만 서부권 시민들의 숙원이 첫 발을 뗐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이들 사업은 그동안 자치단체장이 추진 동력을 찾지 못해 지지부지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기본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업 추진이 본격화 됐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사실 경기 침체가 장기화 되면서 서민 경제는 물론 골목 상권이 깊은 불황에 빠져 있다. 이런 때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지역 현안의 추진 동력에서 심각한 경제 위기의 탈출구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여기에 덧붙여, 시가 27년 만에 덕진공원 등 8개 공원 주변의 15개 고도지구 가운데 11곳의 규제를 해제함으로써 시민들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것도 그 맥락은 같다. 김영곤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주변에는 항상 무속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취임 전부터 탄핵열차를 탄 오늘까지 2년 7개월 간 끊임이 없었다. 무슨 일의 배경에는 반드시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가 거론되고 천공, 건진, 명태균 등 무속이나 영적 신통력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입줄에 올랐다. 그러한 징후는 대선에 나서기 전부터 있었다. 윤석열이 검찰총장 시절 대검찰청 감찰부장을 지낸 한동수 변호사가 올 3월에 펴낸 「검찰의 심장부에서」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는 무언가 생각을 정리할 일이 있으면 대검 청사 사이의 숲길을 걷곤 했는데 대검 청사와 바로 연결된 서초경찰서 뒤편 몽마르뜨 기슭에 웅덩이가 있었다. 어느 날 점심후 산책을 하다가 그 웅덩이 뒤 대마무 숲에서 여러 장의 부적을 보았다. 네모난 흰 종이에 검은색 붓글씨체로 용(龍) 자 형상이 적혀 있었다. 그때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거나 형사 문제가 있는 사람이 미신적인 의도로 군데군데 뿌려 놓은 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할 때 용산 담벼락에 뿌려졌다는 용(龍) 자 부적과 크기와 색상, 글자체가 동일하다는 것을 알았다. 묘한 일치다.” 이후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 2021년 10월 1일 손바닥에 ‘王’으로 보이는 한자를 적고 대선 경선 TV 토론회에 출연해 논란이 일었다. 당시 서울의 소리 이명수 기자와 김 여사 간의 7시간 녹취록에도 부창부수 같은 모습이 보인다. 해당 녹취록에서 “내가 웬만한 무속인보다 낫다. 점을 좀 볼 줄 아는데 내가 보기에는 우리가 청와대 간다”는 등 무속에 심취한 듯한 말을 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미신세계에 기울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이들은 청와대의 용산 이전이나 올 6월의 포항 영일만 앞바다의 동해유전 발표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지금 수감 중인 명씨는 김 여사에게 “청와대에 들어가면 죽는다”고 조언을 했고 이때문에 대통령실 이전을 서둘렀다고 민주당은 설명한다. 동해유전 발표 직전에는 천공이 "한반도 밑에 가스·석유가 많다. 우리나라도 산유국이 될 것"이라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최근에는 무속 의혹과 이번 비상계엄 선포를 연관짓는 글이 등장했다. 선포일자인 ‘12월3일 10시30분’을 한자로 표기해 조합하면 ‘十二월(王), 三일十시(王), 三十분(王)’으로 임금왕(王)자가 연속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속 또는 주술정치도 끝을 행해 가고 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는 중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유쾌한 저항을 마다않기 때문이다. 하긴 이런 와중에도 천궁은 “윤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 대통령”이라며 “3개월 내 반전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무속이나 역술, 명리학에 기대는 것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무속적인 믿음을 현실정치에 반영하는 것은 옳지 않다. 더구나 국가의 최고지도자라면 더욱 그렇다. (조상진 논설고문)
12.3 비상계엄 선포로 이어진 탄핵 집회 현장을 보면서 민중의 힘으로 역사를 바로 세운 사건이 여럿 떠올랐다. 시민혁명의 전형이 된 프랑스 혁명, 비폭력 저항과 무장투쟁으로 영국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독립을 이룬 인도 독립운동, 정부의 억압과 착취에 맞서 무장투쟁으로 자치권을 확보한 멕시코 원주민들의 치아파스 봉기, 부정선거를 주도한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민주주의 정부 수립한 그루지야 국민의 장미 혁명, 부패한 독재 정권에 맞선 민중들의 대규모 시위로 민주화를 이뤄낸 튀니지 재스민 혁명, 중국 정부의 민주화 탄압에 맞섰던 홍콩 민중들의 우산 혁명…. 돌아보면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나선 민중들의 시위는 시대의 경계를 가르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졌다. 시위의 결실은 더러는 빛나고, 더러는 실패했으나 독재와 불의에 맞서 거리로 나왔던 민중들은 모두 영웅이었다.역사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목숨까지 내놓으며 도시를 끝내 지켜낸 시민들도 있다. 조각가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북부의 작은 항만도시 칼레의 시민들이다. 도버 해협을 끼고 영국을 마주하고 있는 칼레의 역사는 지난 했다. 광석 목재 등의 수입항이자 어항 도시로 발전해왔지만 프랑스와 영국의 영토분쟁에 휩쓸려 큰 수난을 겪어야 했던 칼레는 1337년부터 116년 동안 지속됐던 백년전쟁 초기, 영국군의 공격으로 점령당했다. 칼레의 시민들은 어쩔 수 없이 영국군의 지배를 받아들였으나 저항하는 시민들을 향한 정적 보복이 시작됐다.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칼레시에 칼레의 유지 여섯 명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가장 먼저 나선 이는 칼레의 부자 유스타슈 생 피에르였다. 다른 여섯 명 유지들도 그의 뒤를 따랐다. 모두 일곱 명. 그러나 피에르는 혹시 이들의 마음이 바뀔 것을 염려해 교수대에 서기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은 여섯 명도 기꺼이(?) 교수대에 섰으나 절명의 순간, 영국 왕비의 간청으로 살아났다. 칼레는 그 뒤 여러 차례 프랑스령과 영국령을 넘나들다가 1558년 프랑스령이 됐다. 칼레시는 1894년, 로댕에게 이들을 기리는 동상 제작을 의뢰했다. 로댕은 ‘칼레의 시민’을 죽음 앞에 두려워하면서도 서로 격려하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있다. 이 조각상은 당초 시청 광장에 놓여질 예정이었으나 칼레의 한적한 바닷가로 쫓겨(?)나야 했다. 영웅적인 모습을 기대했던 시민들의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조각상이 시청으로 옮겨진 것은 1924년이었다. 대통령 탄핵 집회는 끝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거리에 서는 시민들, 그들 모두가 영웅이다. /김은정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시간이다. 탄핵제도는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우리 헌법이 정한 안전장치다. 선거를 통해 뽑힌 국민(주민)의 대표를 중도에 끌어내릴 수 있는 제도로 탄핵과 주민소환제가 있다. 국민이 직접선거로 뽑는 선출직 공직자에는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 국회의원, 지방의원, 교육감이 있다. 이 중 대통령은 탄핵, 지자체장과 지방의원·교육감은 주민소환제도를 통해 임기 종료 전 직위에서 끌어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은? 탄핵도 주민소환도 그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선거권자에 의한 실효성 있는 견제·퇴출장치가 없는 것이다. 탄핵정국에서 주민소환제도가 새삼 관심이다. 대통령 탄핵 표결에 불참한 국회의원과 탄핵 반대 입장을 밝힌 여당 시·도지사들을 주민소환제를 통해 끌어내리자는 주장이 이어지면서다. 이미 선출된 주민대표를 선거권자들이 다시 투표로 해임할 수 있는 주민소환제는 해당 주민 입장에서 볼 때 성공률이 극히 낮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제도가 도입된 2007년 이후 지난해까지 총 138건이 청구됐지만, 투표로 이어진 사례는 11건에 그쳤고, 이 중 9건은 투표율 미달로 개표조차 이뤄지지 않은채 부결됐다. 전북에서도 지난해 10월부터 최경식 남원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이 추진됐지만 지난 5월, 청구요건 미달로 각하되면서 지역사회 갈등만 남긴 채 마무리됐다. ‘지자체장의 실정을 심판해 시민의 힘으로 끌어내겠다’는 취지를 내세웠지만 제도의 한계만 확인한 셈이다. ‘소환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서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왔다. 게다가 국회의원은 소환 대상도 아니다. 그러면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특히 ‘국회의원 소환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민의를 위반한 국회의원에 대한 퇴출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국회의원에 대해 엄격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국민이 부여한 권한은 국민에 의해 회수될 수 있어야 한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제17대 국회 때부터 꾸준히 발의됐다. 하지만 역시 성과는 없다. 스스로 목에 방울을 달겠다는 법안을 국회의원들이 쉽게 통과시킬 리 없다. 논란이 많다. 필요성이 인정되지만 문제점도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의원입법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안인 만큼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으로, 막중한 책임과 역할을 부여받은 국민의 대표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대한민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지금은 제도 개선과 상관없이 국회의원 모두가 그 역할과 책임, 그리고 국민의 목소리와 시대적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14일 대통령 윤석열 탄핵안이 204명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국회가 155분만에 해제시켰지만 국민들은 11일간이나 불안한 밤낮을 보냈다. 국민들은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집결해 계엄군에 대항하면서 불법 계엄선포와 내란음모 수괴인 윤석열을 즉각 체포해 퇴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국민들이 애국심과 정의감으로 분연히 일어나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영하의 차가운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지난 7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는 전국 각지에서 백만이 넘는 애국시민이 모여 탄핵가결을 외쳤지만 국힘 국회의원 105명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아 탄핵안이 무산되었다. 이후 14일 두번째로 상정한 윤 대통령 탄핵안이 반드시 가결되어야 한다면서 국민들은 국힘의원들을 전방위로 압박해서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국민들은 한밤중에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이 계엄군을 진두지휘해 국회와 선관위를 무력화시키자 즉각 항거에 돌입했다. 전주에서도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4일 아침부터 시민들이 객사주변으로 모이면서 내란 수괴범 윤석열을 즉각 체포해서 구속해야 한다고 외쳤다. 차가운 날씨에도 지난 7일 오후 남녀노소 2만여명이 객사로 집결,윤석열 탄핵안이 가결되어야 한다는 분노의 함성이 메아리 쳤다. 그날 탄핵안이 가결되지 않았지만 즉각 임시국회를 소집해 2차로 14일에 탄핵안을 상정시킨다는 소식에 인내심을 갖고 윤석열 탄핵안 국회통과를 강력하게 외쳐댔다. 결국 도민들의 분노의 함성이 탄핵안을 가결시키는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동학의 후예들인 도민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자신들의 안위는 생각치 않고 함께 손잡고 일어나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았다. 이번에는 더 성숙한 모습으로 일치단결해 즉각적으로 윤석열을 탄핵시켜 직무정지시키는데 앞장섰다. 이토록 도민들이 누란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것은 그간 피땀흘려 이룩한 나라가 사상누각처럼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헌정질서를 무너뜨려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내란수괴 윤석열부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관련자 전원을 체포해서 즉각 의법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껏 유혈사태 없이 민주주의 지켜낸 성숙한 시민의식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도민들의 의기의 성냄을 무작정 지난 일로 치부하지 말고 전북발전을 위한 원동력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간 도민들은 좌절감과 열패감에 휩싸여 실패가 두려워 도전해 보지 않고 무작정 포기했던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승리로 이끈 주역들이기에 차가운 겨울 광장에서 모여진 에너지를 전북발전을 시키는데 활용했으면 한다. 전북정치권도 일사분란하게 탄핵안을 가결한 것처럼 자신감을 갖고 더 지역발전에 매진해야 한다. 지금은 2년째 제자리 걸음한 전북국가예산 증액을 위해 김관영지사와 함께 머리를 맞대서 지혜를 모아야 한다. 도민들이 탄핵을 성공하는데 일조한 것처럼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도전경성 정신으로 부딪쳐 나가야 할 때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지난 6일 오후 1시 (현지시각) 스웨던 스톡홀롬에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첫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그 감동과 환희가 생생한 가운데 전 세계가 주목하는 행사였다. 그런 만큼 그 자리에는 지구촌 85개국 기자들이 참석해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K-컬처의 명성을 뛰어 넘어 대한민국의 위상과 국격을 한껏 드높이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시선이 쏠리는 것은 행사장 출입구 옆에서 한국의 비상계엄을 규탄하는 1인 피켓 시위였다. 벅차 오르는 기쁨과 함께 축하 현장에서 그 날의 주인공인 한강 작가의 고국에서 발생한 비상계엄이 오버랩된 데 대해 만감이 교차했다. 작가 자신도 회견에서 2024년에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안타깝기는 고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현지에서 지난 10일 시상식을 전후로 일주일 간 열리는 '노벨문학상 위크' 행사가 한국에서도 축제 분위기로 들떠야 하는데 탄핵 정국과 맞물려 제한적 행사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작가 자신은 ‘소년이 온다’ 를 쓰기 위해 1979년부터 진행된 계엄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공부를 했다며 담담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계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면서 “2024년 상황이 과거와 다른 점은 모든 상황이 생중계됨으로써 모든 사람이 지켜볼 수 있었던 점” 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무력이나 강압에 의해 통제하는 방식의 과거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는 희망도 덧붙였다. 노벨문학상을 받기 위해 이역만리에 온 그녀에게 비상게엄은 남다른 면이 있다. 혼돈으로 치닫는 고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그녀의 답변에는 불의에 맞서는 문학의 힘을 강조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작가의 문학적 성과에 대한 현지 호평이 쏟아지는 가운데 그녀가 겪은 계엄 상황에 현지 언론이 주목하는 것도 작품 세계와 무관치 않다. 5.18 민주화 운동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소년이 온다' 와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희생된 주민의 아픔을 담은 '작별하지 않는다' 가 대표적이다. 특히 그녀 고향이 광주인 것도, 과거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도 계엄 상황과 배치되지 않아 더욱 그렇다. 전북일보를 비롯한 전국 일간지의 신춘문예 공모가 한창이다. 문단의 등용문으로 이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MZ세대 예비 작가들에게 비상계엄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것도 교과서에서 배운 비상계엄을 현실에서 맞닥뜨렸을 때의 충격은 어땠을까. 한강 작가가 느꼈던 억압적이고 폭력적 형태의 비상계엄이 AI 로봇시대 젊은 세대에게 똑같은 모습으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줬다는 점에서 분노가 치민다. 노벨문학상을 배출한 국가로서의 자존감과 명예를 실추시킨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김영곤 논설위원
10∙26 사태로 인해 최고 권력자인 박정희가 갑자기 사라진 공백상태에서 전두환,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일거에 실세로 등장한 사건이 바로 1979년의 12∙12다. 역사의 물줄기는 이후 상당한 시간동안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후퇴를 거듭했고, 대한민국의 민초들이 겪어야만 했던 질곡의 현대사는 참담 그 자체였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어김없이 12∙12의 여명이 비친다. 무려 45년만에 맞는 12∙12는 또다른 의문을 던진다. “역사는 더디지만 전진한다는 말이 과연 맞는 것인가” 12∙12로 인해 단번에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되면서 전두환 장군은 대통령이 됐고, 그의 부인은 영부인 이순자로 호칭이 바뀌었다. 집권여당인 민정당의 주요 세력이 육사와 서울법대 였기에 흔히 육법당이라고 했던 1980년대 초부터 사람들은 묘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서울대 학사위에 석사, 석사위에 박사, 박사위에 육사, 육사 위에 보안사, 보안사 위에 여사(전두환 대통령 부인 이순자)가 있다"고 했다. 어느 누가 만들어낸 것인지는 몰라도 그 당시 권부의 속성을 꿰뚫어보는 명징한 비유임에 틀림이 없다. 이순자 여사의 비위를 거슬렸을때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게 바로 5공의 설계자였던 허화평 보안사 비서실장의 낙마가 아니던가.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이 터지면서 개혁을 표방했던 허화평, 허삼수 등 권부실세들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 전 장군을 구속시키는데 성공했으나 이는 결국 이순자 여사의 격분을 사게됐고, 쓸쓸히 퇴장당하는 운명을 맞게된다. 그로부터 무려 40여 년이 흘렀다. 아무리 역사가 반복된다고는 하지만 이순자 여사를 능가하는 이가 등장했으니 바로 김건희 여사다. 윤석열 대통령의 집권 초반부터 김건희 여사는 이런저런 문제로 국민들의 입방아에 오르더니, 급기야 남편인 대통령이 탄핵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결정적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탄핵의 직접적 사유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지만 그 이면에는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 똬리를 틀고 있는게 분명하다. 12∙12사태가 발생한지 45년째를 맞은 날 때마침 특이한 다큐멘터리 하나가 개봉돼 눈길을 끈다. ‘퍼스트레이디’라는 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명품백 수수,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민간인 국정 개입 의혹 등 김 여사와 관련된 각종 논란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와 김 여사에게 디올백을 전달한 최재영 목사, 21년 동안 김 여사 일가와 싸워온 정대택씨, ‘쥴리 의혹 실명 증언’ 안해욱 전 한국초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 최강욱·김종대 전 의원, 무속인 등이 출연한다. 이순자와 김건희, 전∙현직 퍼스트레이디가 만일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또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2024년의 12∙12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소설가 한강이 지난 7일 스웨덴 한림원의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 섰다. <빛과 실>이란 제목의 강연은 창고를 정리하다가 발견했다는 유년 시절의 일기장 사이에 섞여 있던 중철 제본 작은 시집 이야기로 시작한다. 시집의 시는 모두 여덟 편. 한강이 여덟 살 때 썼다는 시들이다. 그중 한강의 눈에 들어온 시가 있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시를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구두 상자 안에 넣어두었었다는 그는 이 시를 휴대폰에 담았다.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는 그는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 빛을 내는 실”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소설가로 살아오면서 담금질 해온 질문과 고뇌를 소개한 그는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자문한다. 그가 찾은 사랑의 정체는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었다. 12월 3일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대한민국은 미궁의 늪에 빠졌다. 더 참담한 것은 이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 놓여 있지만, 그 길이 쉬이(?) 열리지 않는 현실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소년이 온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돌아보면 우리의 현실이 그랬다. 뭔가 터질 것 같은 불안함의 예후. 더러는 분노하고 더러는 포기하며 직면해야 했던 암담한 현실은 이제 온전히 국민의 몫이 되었다.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했던 그 날의 상황을 마주하며 떠오른 소설 속 문장이 있다.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대원이 있었다. (중략)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계엄령 포고 진상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진실의 실체를 묻으려는 간교한 획책이 나부댄다. 한강의 강연 문장을 다시 빌린다. “학살이 벌어진 모든 장소에서, 압도적인 폭력이 쓸고 지나간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밝혀지는, 작별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사람들의 촛불은 어디까지 여행하게 될까. 심지에서 심지로, 심장에서 심장으로 이어지는 금(金)실을 타고.” 시민들이 다시 선 거리.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그 힘이 지금 ‘금실을 타고’ 온다. / 김은정 선임기자
첫눈 후 도심 가로수 모습이 확 달라졌다. 밑동에 멋진 겨울옷을 걸쳤다. 줄기와 가지에는 전구 달린 전깃줄이 칭칭 휘감겼다. 알록달록 화려한 뜨개옷은 언뜻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사람들의 정성으로 보일 수 있다. 맞다. 도심 가로수의 겨울옷은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볏짚 거적에서 비롯됐다. 주로 병충해 예방이 목적이었고, 한파에 약한 일부 수종에서는 보온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나무에 기생하는 해충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따뜻한 볏짚에 몰려들어 월동하는 습성을 이용한 것으로, 봄이 되면 이 볏짚을 벗겨내 불태우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볏짚 거적이 어느 때부터인가 고급 직물로 바뀌었고, 여기에 화려한 무늬와 글자까지 더해져 눈길을 끌었다. 이렇게 달라진 겨울옷의 목적이 의문이다. 봄철에 벗겨내 불태웠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고 재활용 방안까지 나오는 걸 보면, 병충해 방지보다 도시 미관과 분위기 조성이 더 큰 목적인 게 분명하다. 사실 겨울철 가로수 보호가 목적이라면 겨울옷보다는 거리 제설제 살포로 인한 염분 피해를 막기 위해 설치하는 볏짚 차단막이 더 필요하다. 그런데 없다. 폭설이 내렸는데도 예년에 종종 눈에 띄던 제설제 차단막은 찾아볼 수 없다. 도시 미관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아서일까? 대신 눈에 확 띄는 것은 칡넝쿨처럼 감아 올라가 바짝 마른 겨울나무를 옥죄고 있는 전깃줄과 전구다. 세밑이 되면 인파가 몰리는 시내 주요 거리에 이렇게 장식용 전구로 휘감긴 가로수가 더 늘어날 것이다. 연말연시 아름다운 경관조명을 연출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시민들에게 따뜻하고 훈훈한 분위기를 선사하겠다는 취지다. 각 지자체가 너도나도 가로수 조명 설치에 나서고 있고, 민간기업에서도 자체 예산으로 건물 앞 가로수를 장식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과 단체에서 더 적극적이다. 이제는 전구 크기도 장식용 꼬마전구가 아니다. 어울리지도 않는 큼지막한 전구가 가지 끝까지 얼기설기 연결돼 밤새 환하게 불을 밝힌다. 화려한 도시 야경을 만들어내는 경관조명의 효과는 분명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조명 설치 대상이 꼭 살아 있는 가로수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지금껏 도시 경관조명에 무관심했다가 설치가 쉽고,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가로수 조명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나무는 내버려둬도 거뜬히 겨울을 난다. 잎사귀를 모두 떨궈낸 앙상한 가지에도 여전히 생명의 에너지가 꽉 차 있다. 간섭하지 않으면 극한의 환경도 잘 견뎌낼 수 있고, 또 견뎌왔다. 인간보다 훨씬 오랫동안 말이다. 그런데 한밤중 강한 인공조명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살아 있는 가로수를 줄줄이 크리스마스트리로 만들어 멋진 야경을 연출하겠다는 계획이라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지극히 이기적인 욕심 아닌가. 그래도 보기 좋으면 그만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많이 불편하다. 그냥 내버려둬라. 제발. / 김종표 논설위원
민주주의가 뭣인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운영되어야 한다. 대통령은 국가를 안전하게 보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다. 지난 3일 밤 느닷없이 윤석열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국회가 155분만에 계엄을 해제시켰지만 지금도 국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지 못하고 있다. 국회가 7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상정 투표에 들어갔지만 여당인 국민의힘 105명이 투표에 참가 하지 않아 정족수 미달로 탄핵이 성립되지 않았다. 지금 검찰 경찰 공수처에서 각기 수사본부를 꾸려 검찰이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을 내란혐의로 체포해 서울동부구치소에 신병을 넘겼다. 국회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부결되었지만 대한변호사회가 주장하듯 내란수괴이므로 즉각 체포해서 구금해야 한다는 것. 그 이유는 대통령이 내란혐의로 고발된 상태라서 법 앞에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는 법치주의 정신을 구현해 나가야 한다는 것. 탄핵관철을 요구했던 대다수 국민들은 국힘의원들이 윤 대통령 탄핵 투표를 하지 않은 것은 공범이나 다름 없다면서 반드시 윤 대통령 탄핵을 관철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8일 한동훈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윤 대통령 한테 퇴로를 만들어 주려고 여의도 국힘 당사에서 공동으로 대국민담화를 발표,질서 있는 퇴진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조속히 말씀 드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국민들과 민주당은 시간끌기에 불과한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대의사를 밝히면서 탄핵을 재추진하기 위해 11일 임시국회를 다시 열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3일 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민주주의 역사를 새롭게 써가고 있다. 세계 10위 경제대국과 군사력 5위라는 나라에서 후진국에서나 발생할 비상계엄령 사태로 모든 국민들이 경제상황 악화와 국가신인도 추락을 염려하고 있다. 특히 국민들은 하루빨리 국정이 안정되려면 법치주의가 즉각적으로 작동되어 윤 대통령부터 내란음모 관련자 전원을 사법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한미와 한일관계가 소원해지는 등 안보상황이 위중해 국민들의 걱정이 가중되고 있다. 계엄이 발표되면서 최정예부대인 특전사 707부대원이 국회 유리창을 깨고 진입했지만 막아서는 국회 보좌진들 설득 때문에 느리게 움직인 모습이 포착,그나마 안도감을 갖게 했다. 특히 국회가 즉각적으로 해제건의안을 채택하고 유혈사태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으로 민주주의 복원력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MZ세대 군인들의 지혜로운 대처능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기회에 국회의원이든 누구든 위법하면 반드시 처벌 받는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줘야 한다. 법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는 길이다. 아무튼 윤 대통령이 친위쿠데타 성격의 비상계엄령을 선포해 일순간에 나라를 엉망으로 만든 것은 반드시 처벌 받아야 마땅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이 스톡홀름에서 말했듯 다시 역사가 되돌려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에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시 45년만에 민주주의를 배운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전북문화관광재단과 도의회 예산 충돌은 상호 신뢰 관계가 무너진 데서 비롯됐다. 어차피 견제 감시를 받아야 할 입장과 이를 추궁하는 구조의 역학 관계로 볼 때 그동안 쌓인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본질은 문화관광재단 예산의 40%가 넘는 87억 원을 삭감한 것에 대한 정당성 여부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서로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감정을 자극하며 합리적 판단이 아닌 개인의 사적 감정이 개입됐다는 것이 골자다. 두 기관 모두 이 같은 인식 위에서 상대방에게 공격적 언사를 서슴지 않으며 극단적 상황으로 몰고 간 것은 본질 보다는 곁가지에만 치우쳤다는 지적이다. 물론 예산 삭감 문제가 예결위에서 최종 결말이 어떻게 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는 '누워 침 뱉기식' 의 공방전이 안타깝다. 그간 양측의 주장을 정리하면, 도의회가 올해초 직무 관련 형사처벌 대상자의 본부장 승진을 불합리한 인사로 문제 삼고 취소를 거듭 주장해 왔다는 것이다. 재단 측은 조직개편을 통해 '팀장 자율제' 를 도입해 팀장이 본부장으로, 또는 팀원으로 갈 수 있도록 조정한 데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팽팽한 기 싸움 끝에 도의회는 도덕적 해이를 드러낸 기관에 대해 그에 상응한 예산 삭감을 통해 주의를 환기시켰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재단 측은 그동안 못마땅하게 여기며 부정적 시선을 노골화한 상태에서 급기야는 보복성 예산 삭감으로 분풀이를 한 것이라고 맞섰다. 문제는 이 같이 날선 상황에서 더 불을 지른 것은 사적 감정의 개입설이다. 도의원과 인척 관계인 팀장이 팀원으로 옮긴 데 대해 시정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칼을 빼들었다는 것이다. 이 발언이 알려지면서 양쪽 분위기는 더욱 격앙돼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문화예술인들이 나서 집단 규탄셩명을 내고 해당 의원 사퇴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예산 복원을 포석에 둔 상황에서 더 이상의 확전 양상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감정만 부추기는 꼴이다. 오히려 사실 관계를 중심으로 재발 방지와 신뢰 회복에 당사자들이 적극 힘써야 할 때다. 이번 경우처럼 문제가 꼬이면 그것을 풀기 위한 과정이 쉽지 않고 에너지가 두 배 이상 소진된다. 이런 때일수록 냉정함을 잃지 않고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는 정공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 달리 우회적 방식을 통해 상대를 굴복시키려 하고 악마화해서 반사 이익을 노리려는 꼼수는 되레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회적 공분을 불러 일으킨 보조금 수령의 악몽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 함으로써 재단의 부정적 이미지만 소환한 꼴이 된다. 의회도 끊임없는 이해 충돌 논란 속에 갑질과 막말, 고압적 태도가 대의 기관의 위상을 깎아내린다는 지적에 직면해 있다. 그런 점에서 두 기관의 리스크 관리는 실패한 셈이다. 김영곤 논설위원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큰 사건사고 등을 날짜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들면, 3∙15 부정선거, 6∙3사태, 8∙18 도끼만행사건 하는 식으로 말이다. 가깝게는 1979년 발생한 10∙26과 12∙12사태를 꼽을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인 박정희의 갑작스런 서거와 그를 추종했던 엘리트 정치장교들의 군사반란이 바로 뒤를 이었다. 그 이듬해인 1980년 잠깐 서울의 봄이 오는듯 했으나, 이는 권력의 속성을 모르는 순진한 착각이었다. 곧바로 이어진 5∙17과 5∙18은 어쩌면 시간과 장소가 정해지지 않았을뿐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12∙12사태때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정치장교들은 어떻게든 권력을 이어가고자 했으나 민초들은 더 이상 순치된 백성이 아니었다. 상식과 순리를 거슬렀을 경우 엄청난 저항과 유혈사태는 불을보듯 뻔했다. 박정희 정권이 몰락한 1979년 중동에서도 엄청난 소용돌이가 일었다. 이란에 군림했던 마지막 페르시아 제국 팔라비 왕조가 그해 2월 11일 이슬람 혁명으로 붕괴된 것이다.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슬람 혁명으로 인해 2500년 전통의 군주제는 폐지되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됐다. 이슬람 혁명은 인간다운 삶의 질 측면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실패한 혁명으로 볼 수도 있는데, 어쨋든 도도히 흐르는 민심과 맞서 군림했을때 그 끝은 파멸임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10∙26 하면 사람들은 흔히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서거(1979년)를 떠올리는데, 사실은 그로부터 꼭 70년전인 1909년 10월 26일 동북아 정세에 중대한 분수령이 됐던 일대 사건이 있었다. 바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하얼빈 의거다. 공교롭게 10월 26일 같은 날이다. 지난 3일 저녁 사람들은 계엄령 선포 소식에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했다. 후진국에서나 일어나는 일이 전세계 10대 강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진다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KBS 라디오에서는 정규방송 대신 행진곡과 함께 박종세 아나운서의 떨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금조 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의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 소위 혁명공약의 발표였다. 당연히 계엄령이 뒤따랐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는 하지만 오늘날 또다시 계엄령이 선포되면 유혈사태는 불을보듯 뻔하고 그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지금까지 총 16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늘 유혈사태가 이어졌다. 루마니아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에게 총칼을 겨누다가 끝내 처참한 말로를 겪게된 일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 도도히 흐르는 역사적 물줄기를 거스르면 그 끝은 결국 파멸 뿐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조선 기록문화의 꽃’으로 꼽히는 <외규장각 의궤>가 고국 땅에 돌아온 것은 2011년이다.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있던 외규장각에서 의궤를 약탈해간 것이 1866년 10월이니 꼭 145년 만의 귀환이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일했던 박병선 박사가 의궤의 존재를 확인한 것은 1978년 10월. 그러나 프랑스와 우리나라 사이 반환 협상이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더 지난 1992년이었다. 의궤는 오랜 시간 진통을 겪고서야 돌아왔다. 그것도 온전한 귀환이 아니라 장기 임대 형식이었다. 지난 15일 국립중앙박물관에 외규장각 의궤만을 위한 전용 공간 '외규장각 의궤실'이 문을 열었다. 초록색 비단으로 만든 의궤 표지 ‘책의(冊衣·책이 입는 옷)’를 디지털로 구현하고 어람용 의궤를 관람할 수 있는 상설전시실을 갖춘 ‘왕의 서고’다. 의궤는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의 중요한 의식과 행사의 준비와 진행 과정, 의례의 절차, 소요된 경비, 참가 인원, 포상 내용 등 그 모든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일종의 종합보고서다. 필요에 따라서는 그림을 함께 그려 넣어 이해를 도왔으니 후대에까지 제대로 전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의궤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대부터 순종이 작고한 1926년까지 꾸준히 제작됐다. '예치(禮治)와 문치(文治)'를 근간으로 했던 조선시대의 국가 통치 철학과 운영체계를 온전히 만날 수 있는 기록이 의궤인 셈이다. 의궤는 기록물로서의 이런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됐다. 조선시대 주요 국가기록물은 같은 내용이 왕의 열람을 위한 어람용과 보관하기 위한 분상용으로 구분되어 제작됐다. 외규장각 의궤도 전체 297책 중 어람용 의궤는 290책이다. 비단 표지와 고운 종이, 숙련된 제본과 장식으로 제작된 어람용 의궤는 당대 최고의 도서 수준과 예술적 품격으로도 가치를 빛낸다. 1776년, 왕실도서관이자 학술과 정책 연구기관인 규장각을 설치했던 정조는 6년 뒤,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따로 설치했다. 규장각에 보관하고 있던 자료 중에서도 왕실의 주요 물품과 도서를 보다 체계적이고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번잡한 시절이다. ‘대통령 내외 공천 개입 의혹’이 몰고 온 파장이 심상치 않다. 점입가경,또 다른 의혹의 실체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선거 브로커에 휘둘려온 정치판의 현실은 참담하다. 이런 시절에 새롭게 만나게 된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 ‘예로써 국가를 다스리고, 질서를 지켜 조화로운 나라를 세우려던 조선의 통치이념’을 후대에 전하는 외규장각 의궤가 우리에게 전하는 의미가 새삼스럽다. 우리는 언제쯤 품격있는 정치를 볼 수 있을까. / 김은정 선임기자
가끔 전주시청 현관에 들어서면 천장까지 빼곡히 들어차 있는 책을 보면 왠지 압도 당하는 기분이다. 그런데 카페와 어우러진 분위기, 아늑한 조명에서 편안함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랑방 역할도 한다.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색깔있는 동네 책방으로 초대된 느낌의 이 공간은 경직된 공직 사회 이미지도 한결 부드럽게 해준다. 무엇보다 잊혀진 우리의 추억과 감성을 자극한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이처럼 우리 동네에 맘만 먹으면 찾을 수 있는 작고 소중한 책방들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심지어 전주 덕진 연못 한 가운데는 물론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 공원 근처에 주로 자리잡고 있다. 고사 위기에 놓인 출판업과 달리 특유의 존재감을 뽐내는 책방들이 시민들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동안 디지털 기기에 빼앗겼던 책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독서 환경이 개선되는 것에 비해 책을 읽는 사람은 거꾸로 줄어들면서 아이러니한 생각이 든다. 한때 전주 상권의 노른자위로 불린 동서관통로 사거리가 속칭 '민중서관 사거리' 로 유명세를 더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이 서점이 그곳에 터를 잡고 요즘 말로 '핫 플레이스' 로 인기를 끌면서 연인 약속 장소의 대명사가 됐다.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동안 책과 잡지를 들춰 보거나 추위와 무더위를 피해 서점에 들르곤 했다. 이렇게 애틋한 추억을 간직한 이 곳도 서점가 퇴조로 인해 자취를 감춘 지 꽤 오래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서점도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대규모 자본이나 유통망에 얽매이지 않고 주인의 취향대로 꾸며진 '독립서점' 이 MZ세대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고객이 추천하고 구하기 힘든 책과 이색 잡지, SF소설과 같은 독립 출판물을 판매하며 북 콘서트, 전시회 같은 행사도 열린다. 좀처럼 찾지 않는 서점이 개성 만점의 서비스를 통해 1년새 70곳이 생겨 났다고 한다.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만을 거부한 채 서점은 사람이 힐링하고 영감을 얻는 곳으로 진화 중이다. 곳곳의 동네 책방도 이런 시대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사회 디지털 속도가 너무 빠르고 광범위하게 전개되면서 생활 환경 또한 간편하고 편리한 것만 찾게 됐다. 과거 독서를 통해 세상의 안목을 키우고 지식을 습득한 것에 비하면 지금은 인터넷 의존도가 압도적이다. 이처럼 각박한 세태 속에서 자투리 시간이라도 활용해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개권유익(開券有益)이라고 해서 책을 펼치기만 해도 유익하다는 말이 있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동네 책방이 늘어나는 데도 굳이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인터넷을 선호한다. 우리나라 성인 60%가 일 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디지털 시대 굳이 책을 통하지 않더라도 지식과 정보를 얻는 루트는 다양해졌다. 과거에는 서점을 비롯해 도서관, 독서 서클 모임 등 고전 방식의 제한된 공간에서 이루어졌던 것들이 스마트폰 등장으로 역할이 축소됐다. 디지털 혁명이 우리의 일상을 폭넓게 지배한다 해도 추억의 아날로그 감성만은 쉽게 만족시킬 순 없다. 빛바랜 책 갈피 속에서 발견한 단풍잎을 보며 켜켜이 쌓인 그 시절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고, 아내에게 썼던 20대 연애 편지 묶음을 통해 새삼 느껴지는 뜨거운 감정도 인터넷에선 불가능하다. 세상이 편리한 디지털 세계로 빠져 들수록 문득 생각나는 건 힘들고 궁핍했던 시절의 간절함이다. 그 때는 책 속에 만물의 우주가 있었다.
모든 여정은 작은 발걸음에서 시작된다. 수백 km의 물길을 만들어 바다로 흘러드는 큰 하천도 산골 이름 없는 실개천에서부터 몸집을 불린다. 강 하구에서부터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서 어김없이 작은 샘을 만날 수 있다. 발원지다. 전북지역에서 발원하는 강은 대한민국 4대강에 속하는 금강을 비롯해 남해로 흐르는 섬진강, 그리고 서해로 향하는 만경강과 동진강 등 4개다. 가장 큰 물줄기는 역시 금강이다. 장수군 장수읍 뜬봉샘에서 시작된다. 충청권을 돌아 나와 전북 군산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이 강의 발원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환경부가 최근 ‘금강 첫물 뜬봉샘과 수분마을’을 ‘국가생태관광지역’으로 신규 지정하면서다. 장수군은 오래전부터 탐방로 개설 등의 정비사업을 통해 이곳을 생태관광 명소로 가꿔왔다. 섬진강 발원지인 진안군 백운면 데미샘도 이름난 생태관광지다. 전북특별자치도가 주변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고, 휴양시설(데미샘자연휴양림)까지 건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와 달리 만경강과 동진강 발원지는 전혀 관심을 받지 못했다. 금강·섬진강에 비해 강 길이와 유역면적 등 하천 규모가 보잘것없고, 발원지에서 하구까지 전 구간이 전북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큰 재해로 관심을 끌지도 못했다. 그러다보니 국가기관과 학계에서도 관심이 적었다.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각종 지리서에 발원지에 대한 기록이 각각 달랐을 정도다. 20세기 초 일제가 미곡 수탈을 위한 증산계획의 일환으로 상류에 유역변경식 댐 등 대규모 수리시설을 건립하면서 물길이 바뀐 것도 발원지를 규정하는데 혼란을 줬을 것이다. 만경강과 동진강은 한반도 농경문화의 발상지이자 중심인 호남평야를 만들어낸 생명의 강이다. 고대에서부터 근·현대 수리시설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농경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하천이다. 21세기 들어서는 새만금 유역 수질 문제와 맞물려 또 다른 관심의 대상이 됐다. 그러면서 물길 탐사가 이어졌고,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발원지도 하나로 정립됐다. 그렇게 정립된 만경강의 발원지는 완주군 동상면 밤티마을 ‘밤샘’, 동진강의 발원지는 정읍시 산외면 여우치마을 ‘빈시암’이다. ‘시암’은 샘·우물의 전라도 사투리다. 지역 시민단체와 주민들이 발원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세웠고, 지자체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민선 8기 공약사업으로 ‘만경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완주군이 적극적이다. 완주군은 밤샘 주변 부지를 매입해 생태숲, 생태탐방로 조성 등의 정비사업을 펼치고 있다. 샘고을 정읍시도 동진강 발원지 빈시암을 관리대상으로 지정했다. 그런데 그뿐이다. 이렇다 할 사업이 없다. ‘정읍(井邑)’이라는 지명의 기원이 된 우물을 보존하고, 그 역사적 가치를 알리자는 취지조차 살리지 못하고 있다. 아쉽다. 이 유서 깊은 강의 역할과 의미, 그리고 수자원·수생태계 보전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려는 지자체의 노력은 발원지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임기 절반이 지나면서 지사 시장 군수 지방의원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전북은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이 10석을 싹쓸이 할 정도로 민주당 지지가 견고하다. 비례대표선거에서 조국혁신당이 득표율 1위를 기록했지만 아직도 민주당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에는 힘이 부친다. 지난 영광 곡성군수 재보궐 선거때 다시금 입증 되었다. 이 때문에 선출직 출마자들은 저마다 민주당 공천 받으려고 안간 힘을 쏟는다. 재선 출마를 염두에 둔 김관영 지사는 경선 과정에서 송하진 전 지사가 낙마해 운좋게 단기필마로 무혈입성했지만 보수인 윤석열 대통령쪽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져 국가예산 확보하기가 갈수록 힘들다. 자체수입이 빈약한 전북은 중앙정부에 전적으로 재정을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시절 장밋빛 공약을 내세웠지만 전북에서 14.4% 밖에 표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의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젊고 유능하다는 평을 받아온 김 지사가 취임이후 줄곧 중앙정부와 여의도를 찾아 동분서주하지만 그들이 제대로 거들어 주지 않아 의욕만 앞설뿐 별다는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각종 국가공모사업 때마다 김 지사가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해서 성과를 거둔 측면도 있지만 집권당이 아닌 야당지사로서 구조적 한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잼버리를 치르면서 정부 여당이 보인 일련의 정치적 태도가 전북 하대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국가예산을 쥐락펴락 하는 정부 여당이 당초 새만금관련예산을 78% 삭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국힘이 서진정책의 하나로 자당 출신의원을 도내 시군에 할당해서 만든 동행의원제도가 거의 유명무실해 큰 도움이 안된다.국힘은 전북에서 자당 후보한테 표를 주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로 국가예산확보 때나 현안문제 해결 때 크게 도와주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민주당 10명 의원들마저 개인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말로만 원팀 운운하지 각자도생해 김 지사만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광주 전남은 박지원의원을 정점으로 해서 모든 의원들이 똘똘 뭉쳐 자기몫을 챙겨 가지만 전북은 그렇지가 않다. 5선의 정동영의원이 전주에서 취임후 전북병을 치유하려고 백인토론회를 개최했지만 국회의원들이 참여하는 시늉만 했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않아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지금 전북은 현 정권의 견제와 도움주는 정치세력이 없어 자기몫 찾기가 무척 힘들다.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지면서 고래등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김지사 혼자서 도전경성을 외치면서 공약실천을 위해 대기업 유치에 나서지만 미국 트럼프 차기대통령이 마가(MAGA)를 들고 나오자 새만금에 들어오기로 한 이차전지업체들의 투자유치도 흔들리는 상황이다. 전북이 요구한 1조 증액이 어려운 상황에서 전북은 현정권과 코드가 맞질 않아 큰 희망을 걸수 없다. 그간 김 지사가 개인 네트워크에 의존하면서 여야를 넘나들었지만 현 정권과 괴리감 때문에 어려움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정권 잡았을 때도 찬밥신세였던 전북이 삭풍을 맞고 있어 더 고민스럽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3전 4기에 도전하는 완주전주 통합에 안호영 의원이 키맨이란 사실은 공공연하다. 지난 3번의 실패가 지역 국회의원과 정치권의 조직적 반대 때문이라 더욱 그렇다. 3선의 국회 상임위원장으로 중량급 반열에 오른 안 의원에게 거는 도민 기대도 그 위상에 걸맞는 역할이다. 지역구에만 얽매이지 말고 전북 현안의 해결사로 중심을 잡아달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합 결과는 재도전을 염두에 둔 그의 도지사 선거 전략에도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더군다나 리턴매치가 예상되는 김관영 지사와는 통합을 둘러싸고 입장이 정반대여서 귀추가 주목된다. 이런 상황에서 안 의원 일거수일투족에 언론이 주목하는 것도 사실은 완주전주 통합 흐름이 예상과 달리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주 안 의원이 지역구인 완주와 진안, 무주 발전을 위한 특례를 담은 전북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지역별 전략산업 육성과 자치권, 지방세 등 조직 재정의 34개 특례를 담았다. 그는 다음달 27일 전북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제도적 보완 취지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런데도 도민들은 처음 이 법안 발의 자체가 완주전주 통합의 부정적 시그널로 확대 해석돼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안 의원 움직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통합 과정에서 가장 큰 변수로 예상되는 완주 정치권의 반대 기류를 잠재울 수 적임자로 오래전부터 그를 꼽아왔기 때문이다. 안 의원이 걸어야 하는 정치인의 길을 진정성 있게 제시한 칼럼이 전북일보(10월 30일자)에 실려 주목을 끌었다. 권혁남 명예교수(전북대)는 "안 의원은 전북발전을 저해시킨 대표적 정치가로 손꼽히는 전임자의 전철을 그대로 밟으려 한다. 그는 왜 넓은 길을 놔두고 좁은 길로, 미래가 아닌 과거의 길로 가려는지 모르겠다. 그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은 시대 정신과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 무엇이 완주의 다음 세대를 위한 길인지 잘 선택하라" 고 조언했다. 권 교수 자신이 통합에 깊숙이 관여한 경험이 있어 그의 메시지 전달엔 힘이 실렸다. 전북의 정치 자산 안 의원에게 통합의 시대적 소명을 역설하고, 답보 상태인 통합 문제를 앞장서 풀어달라고 당부했다. 더 이상 핑계대고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완주지역 6개 찬성 단체가 제시한 통합의 상생 발전 107건과 관련해 반대 측도 대안을 갖고 협상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고 반대를 위한 반대 투쟁에 집착한다면 기득권 지키기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기초자치단체와 광역단체인 대구경북에 이어 35년 만에 대전충남까지 통합 대열에 합류한 건 그만큼 지방소멸 위기의 심각성을 웅변한다. 완주전주 통합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분위기가 무르익은 통합 협상에 찬반 양측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상생 방안을 찾으면 된다. 안호영 의원 선택에 도민들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김영곤 논설위원
올해 첫 눈이 내렸다. ‘유럽의 지붕’이라는 알프스엔 항상 눈이 쌓여있는데 그중에서도 샤모니 몽블랑은 겨울 스포츠, 특히 스키의 성지로 유명하다. 지금부터 꼭 100년 전인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는 제1회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언제나 눈이 쌓여 있는 이곳은 겨울 스포츠의 메카다. 첫 동계올림픽에는 주최국 프랑스를 비롯, 영국,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등 16개국이 참가했는데 동양권은 전무했다. 아시아권은 이후에도 반세기가 지난뒤에야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게 된다. 일본이 1972년 제11회 대회를 삿포로에서, 1998년 제18회 대회를 나가노에서 개최했고, 대한민국은 2018년 제23회 대회를 유치했다. 그런데 첫 동계올림픽 개최지 샤모니는 겨울철 스포츠로만 유명한게 아니다. 산악마라톤의 세계적인 성지다. 전 세계 트레커의 버킷리스트라고 할 수 있는 ‘투르 드 몽블랑’ 코스가 바로 샤모니 몽블랑에 있다. 몽블랑 산맥이 지나는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3개국 171km를 완주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트레일 러닝 대회인 '울트라 트레일 드 몽블랑(Ultra Trail du Mont Blanc)이 바로 그것이다. 얼마전 최훈식 장수군수는 프랑스 샤모니 출장을 다녀왔다고 한다. 수년전부터 트레일레이스대회를 통해 장수가 전국적인 산악마라톤으로 자리매김하던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장수를 한국의 샤모니, 즉 '국제산악관광도시'로 육성하겠다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거다. 그런데 얼핏 생각하면 전북과 동계올림픽은 전혀 무관한 듯 해도 사실은 그게 아니다. 쓰라린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1995년 민선자치시대가 출범한지 얼마안돼 유종근 지사는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동계올림픽 전북(무주) 유치를 들고 나왔다. 제대로 된 빙상경기장 하나 없었고, 무주리조트 슬로프가 그나마 설상 경기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에 질세라 국내 동계스포츠의 본류인 강원(평창) 역시 동계올림픽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전북이 1997년 제18회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강원은 1999년 제4회 동계아시아경기대회를 유치한 것은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군불때기였다. 하지만 전북은 결국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하고 평창이 2018년 유치에 성공하면서 국제무대에 뚜렷하게 지역을 각인시킨다. 2010년 동계올림픽 국내 후보지 결정때 양보했던 무주는 “2014년의 대회 후보지로 무주가 우선한다”는 합의문까지 받아놨으나 끝내 분루를 삼키게 된다. 객관적 여건도 부족했으나 결론은 지역정치권이 파워 경쟁에서 뒤진 때문이다. 그나마 보상판정 성격으로 무주에 태권도공원 이라도 유치한 것에 만족해야했다. 하지만 실패는 꼭 실패로만 그치지 않는다. 유종근 당시 지사가 쏘아올린 무주 동계올림픽은 결과적으로 실패했으나, 동계 스포츠 불모지였던 전북이 각종 체육시설이나 도로 등을 확충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하계올림픽 유치에 나선 전북은 과거 동계올림픽 유치과정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번에는 뒤통수를 더 단단히 맞은 격이다.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 사도광산의 연례 추도식이 반쪽짜리 된 사연이다.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노동자들이 강제 동원되어 노역했던 현장이다. 사도광산의 등재는 역시 조선인 노동자 수백 명이 강제 동원되어 희생됐던 군함도에 이어 두 번째다. 군함도보다 더 많은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 동원됐고, 그만큼 희생도 더 컸던 사도광산 등재는 큰 논란을 불렀다. 피해 당사국인 우리나라는 군함도와 사도광산 등재를 반대해왔지만, 정작 한국을 포함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전원 동의로 등재가 결정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군함도와 사도광산의 등재 과정을 알게 되면 참담함은 더 깊어진다. 군함도는 등재될 당시 ‘조선인의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 적시’가 조건이었지만 일본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사도광산 등재 때는 보란 듯이 ‘강제 동원의 강제성’을 뺐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등재에 동의했다. 국민의 반발과 비판이 일자 정부는 ‘전체역사를 알리는 시설물 설치를 성실히 이행하고, 이를 위한 선제적 조치를 취할 것을 전제로 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그 약속은 지켜졌을까. 당연히(?) 그럴 리 없다. 일본 정부가 답한 ‘선제적 조치’는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와 관련한 전시관 설치. 그러나 전시실 안 어디에도 강제 동원의 ‘강제성’은 담기지 않았다. 역사적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꼼수가 그대로 드러났지만, 우리 정부는 ‘진전된 선제적 조치를 끌어낸 점에 의미가 있다’며 사태를 관망했었다. 그리고 1년, 등재 당시 일본이 약속했던 '연례 추도식'을 앞두고 갈등이 불거졌다. 자신만만하던 우리 정부의 외교력도 한계를 맞은 모양새다. 정부는 추도식을 하루 앞둔 지난 23일에서야 “외교 당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다"며 불참을 통고했다. 이쯤 되면 이견의 내용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들여다보니 추도식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있는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 참석과 추도사에 강제 동원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를 담아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요구를 무시한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지난 24일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은 반쪽이 되고 우리 정부는 이미 현장에 가 있던 피해 유족들과 별도의 추도식을 치렀다. 사실 이러한 참담한 상황을 한 두 번 겪은 것도 아니니 군함도와 사도광산까지 이어지는 일본 정부의 약속 폐기는 이제 그리 놀랍지도 않다. 일본 정부가 앞장서 벌이는 끝없는 역사 왜곡의 징후에도 넓은 아량(?)과 어쭙잖은 논리로 양보 해온 우리 정부의 무기력함이 한탄스러울 뿐. / 김은정 선임기자
규제 풀어야 현대차 새만금투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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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에 담긴 한민족의 고유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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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커니즘'보다 '구조'가 좋아요
새 주인 맞는 군산조선소, 신조선박 보고 싶다
부모님의 땀방울 서린 농지, 지혜롭게 물려받는 법
전북이 ‘골든타임’을 잡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