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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이용자가 2천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정보의 바다’속에 들어가지 않고는 일상의 대화에 끼어들수도 없을 정도로 인터넷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히 자리잡아 가고 있다.하지만 가상공간을 주름잡는 사이버 세계의 문화는 아직 성숙되지 못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이용한 네티즌들의 자기 의견 개진이나 정책대안 제시는 바람직 하다. 광의(廣義)의 여론수렴 마당이랄 수 있다. 그러나 자기 견해와 다르다거나 공공기관의 정책 집행에 불만이 있다고 해서 익명성을 이용한 무차별 공격이나 욕설이 난무한다면 문제는 여간 심각하지 않다.10대 극성팬들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댄스그룹 멤버를 음주운전 혐의로 적발했다 해서 경찰에 욕설을 퍼붓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마비시킨 일이 있었다. 모 방송사의 연예프로그램에 불만을 품은 유명가수의 팬들이 광고주들에게 압력을 가해 계약광고를 취소시킨 일도 있었다. 도대체 건전한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인터넷상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더 우려스러운 일은 인터넷을 이용한 해킹이나 사기·성폭력등 지능적인 신종범죄뿐 아니라 명예훼손, 사생활 침해, 집단테러 행위등이 만연한다는 점이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당사자는 홈페이지에 들어가기가 겁이 날 정도로 정신적 충격이 심하다고 한다. 헛소문이나 비방을 담은 E메일의 무더기 방송도 마찬가지다.이 달초 전북도청과 김제시청 게시판에 ‘전주권 신공항 건설’에 관한 의견을 띄웠다가 온갖 욕설과 협박등 사이버 테러에 시달려온 이모씨는 가족 모두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에다가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자’는 식의 위협까지 받고 있다니 그 심정을 이해할만 하다. 이래 가지고는 안된다. 건전한 토론문화의 정착,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도 네티즌들의 자제가 절실하다. 양식없는 무식한 네티즌들은 끝까지 추적해서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한다.
주로 유신독재에 저항한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70년대 미국으로 이민 가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한국인은 많다. 세탁소 잡역부로 출발하여 억척스럽게 일한 결과 부동산 재벌이 된 사람도 있고 10억달러 자산가치의 벤처기업을 일군 사업가도 있다. 미국 전역에 이름이 알려진 유명 정치인도 빼놓을 수 없다.이들이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높은 지적능력과 몸에 밴 근면·성실성이 ‘무한한 가능성의 사회’에서 적응력을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민자 모두가 성공을 거둔 것은 물론 아니다. 초창기 이들의 미국생활은 비참했다. 낯선 이국땅에서 언어장벽과 인종차별, 생활문화환경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좌절한 사람들도 많았다. 양적으로는 이미 2백만 코메리칸 시대를 열었지만 동포들 대부분이 상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같은 민족끼리 갈등과 불화를 빚는 일도 정착을 못한 한 원인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90년대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중국 조선족이나 태국·필리핀·몽골 등 아시아 저개발국 사람들에겐 한국은 이미 ‘코리안드림’의 대상국이 돼 있다. 해마다 수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우리나라에 몰려들고 그중에는 러시아 등 동구권 사람들도 많다. 10월말 현재 외국인 근로자수는 27만여명에 이르며 이중 불법체류자만 전체의 65%에 달하는 18만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그러나 이들에게 한국은 결코 ‘무한한 가능성의 나라’는 아니다. 한 달 고작 기십만원을 벌기 위해 대부분 3D업종에 취업해 있는 그들에게는 열악한 근로환경, 임금체불, 사기·폭행 등 인권의 사각지대를 벗어날 힘이 없다. IMF이후 거리에 내몰린 국내 실업자들 틈속에서 몸둥이 하나로 코리안드림을 실현하겠다는 욕심 자체가 허상일지도 모른다.엊그제 김제 모 제조업체에서 화마로 목숨을 잃은 몰다브인 불법체류자의 비극이 새삼 가슴을 친다. 우리가 아메리칸드림에서 겪었던 좌절을 그는 코리안드림으로 재연한 것이다. 이땅에 사는 가난하고 힘없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권, 언제까지 외면만 할 것인가.
오래 전의 일이다. 성탄절을 조금 앞둔 어느 날 영국의 오클랜드 부둣가에 한개의 큰 쇠솥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누군가가 이 솥을 놓았으며, 그 사람은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솥에 다리를 놓아 거리에 내걸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은 다가오는 성탄절에 불우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만큼의 충분한 기금을 마련하게 되었다.이렇게 가난한 사람을 돕고자했던 영국의 큰 쇠솥이 바로 먼 훗날 자선냄비의 효시가 된 것이다. 붉은 세 개의 다리가 달린 냄비걸이와 냄비 모양의 모금통, 그리고 제복을 입은 구세군이 손으로 울리는 종소리는 성탄의 메시지를 알리는 크리스마스 캐롤과 크리스마스 트리, 그리고 8마리의 순록이 이끄는 눈썰매를 타고 선물을 가져다주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와 함께 연말 도시 길거리 세모(歲暮)의 풍물(風物)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사람들은 언제나 한 해를 보내는 끝자락에 서게 되면 소가 되새김질하듯이 지난 일들을 반추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였다. 올 한해가 시작되고 하늘이 열리던 날, 사람들은 새로운 세기 새로운 천년을 알리는 해돋이를 바라보며 새로운 꿈과 희망을 담았었다.그 많은 꿈과 희망을 담았던 뉴 밀레니엄의 해는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세상사까지도 온통 껴안고 이제 막 해넘이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넉넉함보다는 부족함이, 미래의 희망보다는 현재의 좌절이 더 큰 것이었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언제나 지난날의 편린(片鱗)들은 그러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해넘이가 끝나고 새로운 해돋이가 시작되는 것을 보며 이제 새롭게 우리 자신을 추스리고 주위를 살펴볼 여유를 가져야 할 때이다.그 옛날 영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 모두는 큰 쇠솥을 내걸고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고 외쳐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성(性)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담론은 그 당대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소설 거짓말이나 O양 또는 B양 비디오 사건 등은 우리 시대 의식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원조교제도 그 중 하나다. 수년전 일본에서 성행했던 이 말이 이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낯선게 아니라 이미 독버섯처럼 깊숙이 파고 들었다. 너무 급속히 번져가자 정부는 올 2월에 ‘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서다. 또 시행령에는 내년부터 원조교제를 한 성인의 신상을 연간 2회 공개키로 했다. 관보와 정부 중앙청사및 16개 시도 게시판에 1개월, 청소년 보호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6개월간 공개한다. 내년 3월쯤 첫번째 명단이 공개될 예정이다.서로 도우며 교제한다는 원조(援助)교제는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의 이중성이 만들어낸 말이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신종 10대 매매춘’‘미성년 성착취범’등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노인들이 회춘(回春)한다는 명목으로 동녀(童女)를 취하는 일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처럼 한창 일할 나이의 20-50대가 10대 매매춘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원조교제는 전화방이나 PC통신, 인터넷 채팅, 700 음성사서함, 080 무료전화서비스 등을 통해 손쉽게 접촉할 수 있다. 유형은 성인 남성이 여중 여고생 등 10대 소녀를 상대로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하지만 최근 서울에서 자녀 2명을 둔 30대 주부가 17살의 고교생과 원조교제를 가져 구속되었다. 인터넷 채팅 사이트를 통해 고교생을 만난 이 주부는 20여 차례 성관계를 맺고 대가로 7-8만원씩 1백여만원과 옷을 사준 혐의다. 이 주부의 사연이 기구해 동정여론이 없지 않다. 6살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란 이 주부는 남편이 밖에서 낳아 데려온 딸을 기르며 잦은 외도와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또 고아 며느리라는 멸시와 함께 시아버지의 중풍간호를 도맡아야 했다. 상대 남학생도 이혼한 엄마와 함께 사는 처지다. 동병상련이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원조교제가 정당화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의 성이 어디까지 팽창해 갈 것인가.
대만의 작가 백양(栢楊)이라는 사람이 쓴 ‘추한 중국인’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한사람 한사람의 일본인을 보면 한 마리의 돼지 같지만, 세 사람의 일본인이 모이면 한마리의 용이 된다. 일본인의 단결 정신이 일본이라는 나라에 누구도 감히 대적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편 세 사람의 중국인이 모이면 한마리의 돼지, 한마리의 벌레가 되어 버린다. 때로는 벌레만도 못하게 되어 버린다. 왜냐하면 중국인의 특기는 남의 다리를 걸어 넘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분열이 있다. 중국인은 영원히 단결하지 않는다. 중국인의 몸에는 단결이라는 세포가 빠져 있다고 한다.’그는 중국인다운 과장법으로 두 나라 사람을 비교하고 있다. 중국인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가족주의와 종족주의이다. 중국에는 가족주의와 종족주의가 있을 뿐이며 국가주의는 없다고 한다. 외국인들은 중국인을 하나의 흩어진 모래라고 말한다. 중국인은 가족과 종족의 단결력이 아주 강하고 이를 위하여 때로는 일신 또는 일가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희생한다.우리나라 사람은 어떨가. 흑자는 일본인과 중국인의 중간정도라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중국인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의 단결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나라 안에서는 물론 밖에 나가서도 한국인끼리 서로 치고 받고 잘도 싸운다. 그러나 한국인은 상황이나 경우에 따라서 잘 뭉치기도 한다. 아이러니칼하게도 한국인은 소집단의 결속력이 지나치게 높다. 혈연, 학연, 그리고 지연상의 연결고리가 매우 탄탄하다. 그래서 가족, 친척, 동창생, 고향사람을 위해서는 온갖 희생을 무릅쓴다. 그럴나 이러한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배타적이다.‘전라도 사람들이야 단결력이 좋지. 우리 민족이 모두 그만큼 단결력이 있었으면 통일이 돼도 벌써 됐을 것이다’어떤 영남ㄴ 사람의 칭찬이다. 어려울수록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고 한다. 지금 전북은 어려운 때다.
매년 이맘때만 되면 지역 인재육성론이 경칩의 개구리소리처럼 자주 들려온다. 대학입시의 결과가 드러나고 한해동안 치러진 각종 국가고시의 결과가 집계되기 때문이리라.그런데 이런 푸념 어린 ‘타령’에는 불가해한 이율배반이 숨어 있다. 한 입으로는 서울지역에 있는 소위 명문대학에 많은 합격생을 배출하는 것이 이 지역 인재육성의 지름길이라고 거품을 물고, 다른 한 입으로는 이 지역 대학출신의 국가고시 합격자가 많지 않다며 인재육성의 실패를 한탄하는 것이다.성적우수 고교졸업생들이 타지역으로 많이 진출하면 할수록 이 지역 대학의 ‘실력’은 저하될 수 밖에 없다. 이 지역대학 출신자들의 합격률이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수한 자원의 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 부실한 파종을 선동적으로 부추기다가 부실한 결실을 매도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더 심각한 것은 편향된 통계수치만으로 ‘실력’을 평가하는 일이다. 국가고시에 합격을 해야만 인재인가? 다양화시대에 일정 분야만을 중시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다. 또 서울중심문화의 극복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마당에 수도권 지역의 ‘명문대 타령’도 지방화시대에 걸맞지 않는 일이다.출신지역을 중시하는 것도 전근대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지역의 진정한 인재는 이 지역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지 지역입지를 자신의 입신도구로 활용하려는 이 지역출신의 정치가나 판·검사가 아니다. 지난 시절 지역연고주의의 피해를 가장 심하게 겪었으면서 지연을 강조하는 것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출세 좀 했다고 고향집에 손님처럼 찾아와 거들먹거리는 자식보다 집안 궂은 일 마다 않고 부모 모시는 자식이 더 효자일 수 있음을 상기하며, 진정 이 지역을 위해 땀흘릴 수 있는 인재 양성을 위해 힘쓸 것을 제안하고 싶다. ‘타령’만 하지 말고….
2000년 이 지역 문화예술계에 반가운 ‘단비’가 내렸단다. 문화예술의 해를 맞이하여 새롭게 선보인 무대공연지원사업과 예술인 창작지원사업이 모처럼 만에 활발한 창작열기를 고취시킨 것이다. 문화예술이 자본에 좌우되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그러나 기본 경비조차 확보하지 못했을 경우 창작의욕을 견지하기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그 의욕의 불씨를 키워갈 수 있는 기본기금(seed money)이 필요한 것이다. 이번 지원금은 침체의 늪에 빠져있던 이 지역 창작공연 부분이 기지개를 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을 뿐만 아니라, 보상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술혼을 불태워온 많은 예술인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더욱 활발한 창작활동에 전념케 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던 게 사실이다. 특히 단순 지원이 아니라 ‘창작’에 비중을 두어 사업을 전개한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라 하겠다. 이는 사후 평가작업이 제도화되어야 제대로 정착될 수 있는 것이지만, 막연하게 ‘떡고불’을 기대하고 있던 문화예술인들을 자극하는 데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을 것이다. 아쉬움이 있다면 이 지역이 지니고 있는 문화예술의 역량에 비해 지원예산 규모가 많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올해의 값진 성과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내년 예산배정 때 필히 참고되었으면 하는 바램은 이런 차원에서 제기될 수 있다. 기왕 추진을 할 바에는 문화예술의 고장답게 했으면 좋겠다. 생색내기 식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이 고르게 미칠 수 있도록 말이다. 문예행사가 아무리 활발하게 전개되더라도 ‘창작’의 축적이 없다면 무의미해질 수 있다. 문화예술이 꼭 상품이 될 수 있다하여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들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이다. 내년에는 문화예술의 싹이 더욱 건실하게 자랄 수 있도록 ‘풍요의 단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대승(代承) 불교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부처가 되는 성질, 곧 불성(佛性)을 갖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 불성에 대해 합장 경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불교신자들이 사찰에 모셔진 불상에 절을 하는 것도 바로 이런 가르침 때문이다.아닌게 아니라 부처에게 드리는 경배의식으로서의 절을 빼놓고는 절(寺)을 이야기 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의미는 각별하다. 그 본래 방식도 매우 까다롭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서는 가장 경건한 절을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예’라 해서 두 무릎과 두 팔꿈치, 그리고 이마를 바닥에 붙이고 두 손을 귀까지 올려서 경례한다. 이것을 상품례(上品禮)라고 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약식으로 중품례와 하품례로 대신 하기도 한다. 중품례는 두 무릎을 꿇어서 엎드리는 방식이고 하품례는 합장한채 가깝게 머리를 숙이는 방식이다. 어떤 방식이 되었건 불상에 대한 경배의식은 불교에 있어서는 신도들의 최상의 예임에 틀림없다.그런걸 두고 개신교 쪽에서는 소위 우상숭배라하여 깎아 내리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같은 기독교 종파이면서도 성모 마리아상을 모시는 가톨릭을 우상숭배라 하여 공격한 무교회주의자인 고 함석헌(咸錫憲)옹과 윤형중(尹亨重)신부의 예배논쟁은 한국논쟁사에 오를 정도로 뜨거웠다. 얼마전 단군상을 훼손하여 경찰에 구속된 어느 교회 목사의 돌출 행동이 사회에 큰 파문을 일의킨 것도 그런 연유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엊그제 모 교회 집사가 전주시내 한 사찰을 찾아가 법당안에 있던 불상 2점을 쇠뭉둥이를 휘둘러 부쉈다가 경찰에 입건됐다한다. ‘사이비 종교’ ‘하늘의 계시’운운한 것으로 보아 그의 신앙심이 너무 극단으로 흘렀거나 정신이 혼미한 상태는 아닌지 의심이 든다. 하지만 불상에 예를 보면 전생(前生)의 악연이 그에게 악귀를 씌운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뿐이다. 절에 불상을 모시는 것은 우상숭배가 아니라 견성(見性)으로 깨달음을 얻으라는 부처의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정보통신과 관련된 여러 조사결과를 분석해 보면 우리의 정보화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정통부에 따르면 올해 1천만대 이상의 컴퓨터가 보급되고 인터넷 사용자가 1천만명을 돌파하여 우리나라의 정보화 지수가 세계 22위이고, 정보화 지수 성장률은 세계 2위를 차지했다 한다. 놀라운 일이다.저가형 국민PC에 힘입어 우리나라 가정의 컴퓨터 보급률은 작년 51.8%에서 올해 66%수준으로 올라섰다. 세집에 두집꼴로 그 비싼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한국인터넷정보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국내 인터넷 이용자수는 적어도 1천6백만명 이상으로 전국미느이 40% 수준을 넘어섰다고 한다. 소외 계층에 대한 정부의 정보화교육이 위력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 여성의 인터넷 이용자수는 대폭적으로 증가하여 전체 이용자중 적어도 40%이상으로 나타났다. 한편 인터넷이용자를 연령별로 살펴보면 7-19세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20대이며 전체 인터넷 이용자 중 39세 이하가 90%를 차지하고 있다 한다.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정보화마인드는 선진국에 비해 미우 높으나 학교정보화는 예산부족으로 형편없이 뒤쳐지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장애인과 노인층을 위한 정보화교육도 어느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우리나라에 인터넷 PC방이 유행하면서 전체 인터넷사용자의 43%가 PC방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재미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역적으론 대전이 전국에서 인터넷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한편 이제 정보화의 가장 큰 사각지대는 4-50대의 아빠들로 추정된다. 특히 이들은 시대적으로 보릿고개를 경험한 마지막 세대이며 요즘 퇴출과 구조조정의 위협 앞에서 사정없이 떨고 있는 당사자들이다. 컴퓨터에 익숙한 자녀와 아내를 두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정보화의 사각지대로 전락한 셈이다. 정보화보다 가족 꾸려 나가기가 더 다급했던 것이다.
삼은 30여년전만 해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년생 식물이었다. 그때 시골에서 삼밭이라 하면 땅이 걸고 집옆에 딸린 ‘좋은 밭’의 대명사였다. 키가 2-3m씩 빽빽하게 자란 삼을 밑둥째 잘라 가마에 넣고 쪄낸뒤 껍질을 벗겨 삼베를 짰다.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인 삼은 중국에서 삼황오제(三皇五帝)의 하나였던 신농(神農)시대부터 심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BC 1세기초 들어 왔으며 삼국사기에도 삼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고려말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올 때까지 옷 원료의 주종을 이루었고 해방이후 합성섬유가 개발되면서 재배면적이 크게 줄었다. 지금은 삼척과 안동 등 불과 두세곳에서만 이를 재배하고 있다. 삼은 섬유가 질기고 튼튼해 직물, 밧줄, 어망 등에 쓰이고 열매는 기름을 짜서 먹거나 등불기름, 비누제조 등에 사용된다. 이 삼의 잎과 꽃, 수지(樹脂)에는 환각을 일으키는 마약성분이 들어 있다. 이것이 대마초(大麻草)다. 아랍어로 해시시(hashish)라고 하며 ‘말린 약초’라는 뜻이다. 일부 나라에서는 ‘마리화나’라고 부른다.이 대마초는 아랍권에서 접신(接神) 경험을 위해 흡입하기도 했다. 환각 상태에서 창의력이 극대화 된다는 맹신은 19세기 유럽 낭만주의 문인들을 대마초 흡입으로 몰아 넣기도 했다. 또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지난 달 “세익스피어의 천재성이 마리화나 흡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에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젊은 시절 대마초를 흡입한 것이 선거전의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는 마약의 일종인 대마초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급증하는 마약류 사범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단속된 히로뽕 등 마약사건이 1만5백89건에 달하는데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다. 이런 가운데 백담사 주지 스님이 대마초를 담배처럼 말아 피우다 구속돼 충격을 주었다. 참선시 잠을 쫓는다는 명목으로 흡입해 왔다는 것이다. 또 14일에는 서울- 전주간 고속버스 화물함에 히로뽕을 보낸 안성시 축구협회장이 붙잡혔다. 전북도 이제 더 이상 마약의 안전지대가 아닌 듯하다.
파나마에는 옛 생활 풍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이어 오면서 살아가는 원주민 인디오 족이 있다. 이들은 일요일에는 가까운 마을로 내려와 민예품을 팔아 번 돈으로 자기들에게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마련해서 다시 그들만의 생활터전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한번은 중국의 한 상인이 이 지방을 여행하다가 수예품을 파는 인디오에게 팔찌를 구입하게 되었다. 한개에 미화(美貨)로 5달러인데 4달러 50센트에 팔겠다는 인디오 상인의 말에 가격도 저렴하고 특색이 담긴 것처럼 보여 아는 사람들에게 줄 선물용으로 10개를 사기로 하고 40달러에 흥정을 벌였다. 그러나 그 인디오 상인은 40달러에 주기는커녕 원래의 제 값인 45달러보다 자그마치 5달러가 많은 50달러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중국인이 기가 막혀 "한 개에 4달러 50센트면 10개에는 45달러인 데 한꺼번에 많이 구입하는 데 5달러를 깎아주지는 못할 망정 5달러를 더 올려 받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하지만 인디오 상인의 대답은 뜻밖을 넘어 기절초풍할 만한 것이었다. 그 대답인즉, "내가 이것을 만드느라 힘이 들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서 50센트씩 손해를 보고 팔고 있었지만 당신이 혼자서 한꺼번에 10개를 사간다면 구태여 손해를 볼 필요가 없으니 돈을 다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중국인은 혀를 내두르며 50달러를 주고 그 물건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세계 상권을 주름잡는 화교(華僑)의 상술이 이름 모를 한 인디오 원주민의 상술에 견디지 못하고 두 손을 든 것이다. 최근 우리 기업들이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중국 상인과 한 원주민 인디오의 이야기를 그냥 어쩌다 있을 수 있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돌려버리기보다는 새로운 경영의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대학수능시험 결과가 발표되면서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특히 성적우수 학생들의 경우 변별력이 거의 없어 ‘판세분석’이 어려우며 진학지도에도 큰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는 것이다.변별력이 떨어질 경우 ‘손해’를 볼 수도 있는 몇몇 세칭 일류대학 관계자들이라면 몰라도 다른 사람들이 이를 두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자기 자식만이 ‘피해’를 입을까 조바심하는 것도 어줍지 않지만 대학 서열화의 문제점을 제기하던 사람들마저 ‘변별력 타령’을 늘어놓는 것은 더욱 볼썽사납다. 더구나 ‘전인교육’에 ‘대안학교’를 떠들어대던 언론들이 앞장서서 전 수험생을 일렬로 세우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크게 보아 이러한 ‘변별력 중독증’의 기저에는 모든 것을 계량화하여 그 등위를 먹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묘한 우리의 문화풍토가 자리하고 있다. 모든 대학과 학과를 서열화하고 모든 수험생에 등수를 매겨 차례 차례로 배정해야만 속이 시원한 것이다.대학 서열화야말로 대입문제로 집약되는 파행교육의 핵심고리라 할 수 있다. 한 단계라도 높은 등위의 대학에 보내기 위해 그 많은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이 피를 말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서열이 엄존하는데 이런 경향만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서열이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데 있다. 전공의 영역이 엄연히 다른데 대학마다, 학과마다 순위대로 줄을 세운다는 것이 어디 가당치나 한 일인가?이번 ‘변별력의 실패’가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다행스러운 일일 수 있다. 일류로 평가받지 못하는 대학에서도 우수 학생을 유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은 열린 것이다. 물론 이것도 대학지원을 증권투자 하듯 엄밀한 ‘판세분석’에 의존하여 한다면 물 건너간 일이지만 말이다. 이를 계기로 순위 매기기 문화가 조금이나마 완화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중국인의 지혜가 담긴 우화(寓話)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황혼 무렵에 수탉과 부엉이가 만나 서로 자기 생각이 옳다고 논쟁을 벌였다. 수탉이 먼저 우겼다. ‘하늘에 빛이 나는 둥그런 물건이 떠오르면 확실히 날씨가 따사로워 진다. 그것이 열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그러자 부엉이가 지지 않고 반박했다. ‘당신 말은 틀렸다. 내가 겪어 봐서 잘 알지만 나는 둥그런 물건이 떠오르면 쌀쌀해지는 느낌만 받았다. 그러니 그건 열을 내지 않는다’수탉이 다시 반박했다. ‘그렇지 않다. 나도 아침마다 겪어 봤지만 분명 열을 내고 있었다’ 부엉이가 되받았다. ‘나도 날마다 활동하느라 나오는데 한번도 열을 낸다는 감을 받은 적이 없다’ 논쟁의 결론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둘 다 옳았다. 왜냐하면 수탉은 해를 보고 말했고 부엉이는 달을 두고 말했기 때문이다.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지만 최근 권노갑(權노甲) 최고위원 퇴진론으로 빚어진 민주당 내분사태가 바로 이런 양상이 아닌가 싶다. 분명 현실상황이‘위기국면’인것만은 틀림없는데 그것을 보는 눈은 계파별로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국정의 안정적 운영을 책임져야 할 집권 여당이 계파간 갈등으로 국민생활에 불안감을 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동교동계면 어떻고 비동교동계면 어떤가. 경기침체에다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여파로 국민들 마음이 저만큼 달아나 있는 마당에 자칫 ‘새우싸움(?)에 고래등 터지는’우(愚)를 범하는 일이 빚어질까 두렵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집권하기 전 7명의 동교동계 비서출신 의원들이 ‘대의(大義)를 위해 자팽(自烹)하고자 한다’는 결의를 한일이 있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당직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보필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그뒤 상황은 어떻게 변했나.마침 엊그제 동교동계 핵심 실세 11명이 모여 ‘초심론(初心論)’를 들고 나왔다 한다. 동교동계가 단합하여 김대통령을 모셨던 초심으로 돌아 가 당 내분을 수습하자는 것이다. 우선 달을 해로 바꾸어 열을 내게 하는것, 그것이 지금 중요한 시점이란 점을 깨달았다는 뜻일까?
비빔밥에 대한 문헌상의 기록은 1800년대 말에 발간된 시의전서(是議全書)에 처음 보인다. ‘여러가지 반찬을 섞어 다스린 밥’이라는 뜻의 한자어 골동반(汨董飯)을 비빔밥의 유래로 해석하는 것이다.비빔밥은 우리 민족의 의식과 생활이 반영된 음식이다. 그 뿌리도 훨씬 오래 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섣달 그믐날 남은 음식을 해가 바뀌기 전에 처리하기 위해 밥과 반찬을 그릇에 모두 얹어 밤참으로 먹었다는 12월의 절식(節食)도 유래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비빔밥은 서민층뿐 아니라 궁중 사대부 집안에서도 즐겨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갖가지 나물과 쇠고기·버섯·튀각·묵등의 재료를 밥에 얹어 참기름과 고추장으로 버무려 먹는 비빔밥은 맛과 영양도 뛰어나다. 전국 어느곳에서나 대중음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전주 비빔밥’의 성가(聲價)는 새삼 설명이 필요없다. 바로 비빔밥의 대명사가 돼 버린 것이다. 그런 비빔밥이 이제는 국제적인 음식이 되고 있다. 일본인들도 무척 좋아해 도쿄와 오사카 지역에만 비빔밥 전문음식점이 2백여개소가 넘을 정도이다. 돌솥 전주비빔밥을 개발한 한 일본업체는 아예 우리나라에 비빔밥을 역수출 하고 있다고도 한다. 홍콩 사람들도 비빔밥 좋아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인 식당에서 가장 인기있는 메뉴는 단연 비빔밥이라 한다. 1998년에는 대한항공이 기내식(機內食)으로 세계 최고상을 받은 음식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런 전주비빔밥 축제가 내년 3∼4월께 일본 오사카 지역에서 열린다고 한다. 유종근(柳鍾根)지사가 일본 굴지의 식품업체 대표와 만나 전주비빔밥의 수출 및 판매를 위한 상담결과 얻은 소득이다. 이제 전주비빔밥의 세계적 상품화 시대가 막을 올리게 된 셈이다.그러나 전주비빔밥을 세계적인 음식, 관광상품화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재료와 조리법, 맛의 표준화부터 이뤄내야 한다. 그래서 ‘이것이 전주비빔밥’이라고 당당히 내놓을 브랜드가 필요하다. 김치를 기무치로 개발해 우리 시장을 잠식하는 일본 상술을 이기기 위해서도 그렇다.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더구나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경우도 허다하다. 다수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가를 알기 위한 방법중 하나가 설문조사다.각종 설문조사 결과가 마치 진실인 것처럼 언론에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설문조사는 목적, 설계 및 방법, 그리고 분석에 이르기까지 객관성과 과학성이 생명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신뢰성을 상실하여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낸다. 특히, 조사목적이 불순하거나 의도적인 경우 여론을 빙자하여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최근 모처에서 실시한 전주 일등업소 조사는 조사목적이 이상하여 의심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이해득실이 교차되는 이러한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경우 신중을 기해야함이 당연하다.더군다나 최근 대형점의 지방진출로 인해 어려워지고 있는 지방영세점포의 형편을 고려한다면 이런 조사는 기획부터 문제를 지니고 있다. 기준이나 비교의 대상 그리고 모호한 질문으로 마치 무슨 보물을 찾은 것처럼 대서특필하는 것은 많은 영세 상인에게 타격을 주어 유통업의 부익부빈익빈을 부채질할 우려가 있다.정부에서는 영세점포를 살리려는 시책을 펴고 있는 마당에 소비자정보라는 미명아래 발표되는 이런 조사결과는 시기적으로도 너무 부적절하다. 정보 자체도 소비자의 막연한 점포나 브랜드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자칫 넌센스의 우려마저 있다.무엇보다도 무엇이 일등인지가 모호하다. 느끼기에 따라서는 꼴등업소가 일등업소로 둔갑될 수도 있다. 만약 조사결과를 사업적으로 활용한다면 설문조사의 오용으로 밖에 볼 수 없다.진정 소비자를 위한다면 진실에 바탕을 둔 일등업소를 찾아야 한다. 경영철학과 목적, 상품과 서비스, 접객태도와 방법, 가격과 광고내용 등 다양한 요인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어느 업소가 좋다고 생각하느냐 들었느냐 정도를 가지고 일등업소라고 운운할 수 없다. 진정한 일등 업소는 인간과 사회를 위하는 업소이지 잘 알려진 업소가 아니다.
예전에는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거리 풍경 중의 하나가 바로 엿장수가 아닌가 싶다. 엿판을 싣고 거리와 골목을 누비며 쩔꺽거리는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는 이제 듣고 싶은 추억의 소리가 되어 버렸으며, 엿장수의 큰 가위는 골동품점이나 민속박물관에서나 찾아 봐야 할 판이다. 또한 가래엿을 꺾어 구멍의 크기를 가려서 승부를 정하는 엿치기는 엿이 딱딱해지는 겨울철에 즐겨하던 놀이이기도 하였다. 엿구멍을 비교하여 제일 작거나 전혀 없는 사람이 지게 되는 데 이 사람은 그날 엿값을 모두 물게 되는 것이다. 이름하여 '똘똘말이'인 것이다. 겨울철이면 특히 인기가 있었던 엿이 언제부터 식품으로 우리 곁에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곡류를 기름에 튀기고 꿀이나 엿을 사용하여 만든 과자가 고려시대의 기록에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그 이전부터 엿이 사용되었으리라 추정되지만,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여지승람’에 '행당맥락(杏 麥酪)'이라는 구체적인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당( )은 단단한 엿이고, 낙(酪)은 감주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를 볼 때에 고려시대에는 엿기름을 사용한 엿이나 감주가 이미 감미료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엿은 세찬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음식이었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각 가정에서 엿을 만들어 상비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각 가정이나 지방에 따라서는 독특한 엿이 개발되기도 하였다. 강원도 지방에서는 옥수수로 만든 황골엿, 울릉도의 호박엿, 충청도의 무엿, 평창 지방의 쌀엿, 전라도의 고구마엿 등이 유명하였으며 제주도 지방에서는 엿에다 닭이나 꿩의 고기를 넣어서 만든 닭엿이나 꿩엿도 있었다. 최근에 우리 고장 장수에서는 우리 농산물을 살리고 농한기 농촌 여성들의 유휴노동력 활용과 농가소득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전통 쌀엿 가공공장을 설립키로 했다고 한다. 인심이 메말라 가는 이 때에 한 겨울 사랑채에서 훈훈한 정담을 나누며 엿을 나누어 먹던 끈끈한 인정도 함께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온천으로 유명한 일본에서도 오이타(大分)현의 벳푸온천은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원천(源泉)수만 2천8백48개소로 세계 제일을 자랑한다. 시내 곳곳에서 증기수가 피어 오르고 일본 최대의 온천장인 스기노이(杉の井) 팔레스는 1천평이나 되는 ‘꿈의 대온천’과 12종류의 ‘꽃의 대온천’이 장관을 이룬다. 1천2백년전 생겨난 바다지옥 온천은 섬뜩할 정도의 푸른 빛을 띠고 있다. 시뻘건 온천수가 끊임없이 솟아나는 피지옥 온천에 서면 마치 지옥의 한 복판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자연은 섬나라 일본에 지진이라는 재앙을 안겨준 반면 온천이라는 선물을 함께 선사했다는 말이 그럴듯 하다. 이 벳푸온천을 찾는 한국인은 올 연말까지 8만여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IMF 이전엔 10만명을 넘었다.일본만은 못하지만 우리나라도 곳곳에 온천이 산재한다. 전국적으로 1백9개 지역이 온천지역으로 지정돼 있고 전체 면적이 4천6백47만평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나라 온천법은 ‘수온이 섭씨 25도C 이상이고 인체에 해롭지 않은 지하수’를 온천으로 규정하는 바람에 온천수가 30도 미만인 곳이 60%를 넘는다. 말하자면 지하 깊숙히 굴착한후 끌어올린 물을 데워서 팔아먹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온천이 일반 목욕탕과 별반 다를게 없다. 이에 반해 외국에선 지표에서 나오는 50도 내외의 온천수를 식혀 사용한다.도내에는 고창 석정, 완주 죽림, 부안 변산온천 등 13곳이 온천지구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지정만 되었지 개발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곳이 7곳이나 된다. 정읍 산외면 목욕온천과 남원 이백면 약수온천, 김제시 상동 김제온천 등 3곳은 개발계획 수립을 추진 중이고 완주 죽림온천과 화심온천, 운주온천, 순창 복흥면 구암온천 등 4곳은 자금부족 또는 공원구역 미해제 등의 사유로 개발계획이 수립되지 않고 있다.마침 온천법 개정으로 내년 부터는 온천개발 행위가 제한된다. 또한 온천 이용허가를 받지 않고는 ‘온천’이라는 상호나 광고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어쨌든 겨울은 온천과 사우나의 계절이다. 김이 펑펑 피어 오르는 노천탕에 몸을 담그면 으스스한 겨울 추위도 멀찌감치 물러 날 것이다.
좁은 땅에 인구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지만 너무 적은 것도 골치다. 일정 수준의 인구를 유지하지 못하면 국력 자체가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웃 일본은 여성들의 출산기피가 사회문제로 대두된지 오래다. 일본 여성의 평균 출산율은 1.34명으로 스웨덴 1.51, 독일1.41명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낮다. 인구감소로 인한 망국론이 제기되자 일본 정부는 천사계획(Angel Plan)을 세워 혼외 출생아에게도 수당을 주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해마다 70만명씩 인구가 줄어 비상이 걸렸다. 현재 1억4천5백만명인 인구가 2025년에는 1억명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가장 중대한 문제는 인구격감으로 인한 민족존립의 위기”라고 경고할 정도다.우리 또한 출산율이 30년 동안 계속 떨어져 인구감소로 고민하는 유럽이나 일본 수준에 근접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출산율은 1.42명이었다. ‘한 자녀’가정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유엔은 올초 “지금의 경제력을 유지하려면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그러면 전북은 어떨까. 도내 인구는 6·25 직전인 1949년 2백4만9천명으로 남한인구의 10.2%를 차지했다. 1966년에는 2백52만3천명으로 피크를 이루었다. 그런데 지난해 말에는(주민등록상) 2백1만5천명으로 4.1%였다 지금은 2백만명 이하로 떨어졌다. 더욱이 인구센서스에 의한 상주인구는 1백92만명 수준으로 잡고 있다. 이같은 인구감소는 도세(道勢) 약화로도 나타난다. 지금같은 지역구도 정치하에서 인구수는 절대적 기준이다. 지역구 국회의원 수만 봐도 영남이 60명인데 호남이 29명이다. 그중 전북은 10명에 불과하다. 김대중 정부가 취약한 것도 소수정권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10년 부터 전남도가 농어촌 산모에게 출산장려금 10만원을 지급키로 했다. 광역자치단체로는 처음이다. 기초자치단체는 강원도 인제군이 1997년에 이 제도를 도입, 첫해에 10만원, 올해는 3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장려금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인구감소가 어느 곳보다 극심한 전북도 고려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깊은 바다속에 가라앉은 난파선에서 금은보화를 건져내는 ‘보물선 찾기’가 영화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이 꿈같은 보물선 찾기가 진행되고 있다. 주로 중남미의 카리브 해안, 필리핀 앞바다, 유럽의 북해 등이 그 대상지역이다.그중에서도 가장 화제를 모으는 곳이 카리브 해안이다. 16세기부터 18세기 사이 유럽과 중남미 대륙간 무역이 활발할 때 이 해역에서 침몰된 스페인 포르투갈 난파선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당시 침몰된 선박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난파선에 실린 재화는 우리 돈으로 따져 수천억내지 수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깊은 바다속에서 난파선을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만큼이나 어렵다. 그래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모험가들이 많은 비용을 들여 탐사에 나섰다가 재산만 탕진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일도 허다하다. 간간이 메스콤을 통해 알려지는 성공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보물선 찾기가 과학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90년대 이후부터다. 인공위성을 이용한 항법장치, 수중음파탐지기등 첨단장비가 투입되면서 탐사작업이 훨씬 용이해졌다. 그만큼 보물선 찾기 성공률도 높아진 셈이다.우리나라에서도 그동안 동해와 남해·서해에서 침몰한 러시아와 일본선박 탐사작업이 계속돼 왔다. 그중에서도 러·일전쟁때 울릉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러시아 발틱함대 소속 돈스코이호의 존재는 신빙성이 높아 관심의 대상이 돼 왔는데 드디어 엊그제 해양연구소 탐사팀에 의해 선체가 발견됐다 한다. 1백50조어치 금괴를 적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배의 발견은 그야말로 ‘보물선 찾기’의 개가라 할만 하다. 앞으로 이 배를 인양하기만 하면 탐사작업에 투자한 동아건설측은 돈방석에 올라 앉게 될 판이니 이래저래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하지만 도민들의 관심을 모아왔던 군산 앞바다의 일본 화물선 인양작업은 아직도 감감 무소식이다. 거제도 앞바다도 마찬가지이다. ‘마이다스의 손길’이 이쪽에도 뻗쳤으면 하는 바램이다.
요즘 우리 대학가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우울하기만 하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해 빈둥거리는 고급인력이 수십만명에 달하고 아예 취직을 못할바에야 휴학을 하겠다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교육부가 집계한 전국1백61개 국·공립 및 사립대학의 2000년 2학기 학생현황에 따르면 전체 대학재학생 1백63만1천여명중 31%인 52만7천여명이 현재 휴학중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대학생 3명중 1명꼴이다. IMF 위기가 몰아 닥쳤을때 전국적으로 1백20만명의 실업자들이 거리로 내몰렸었다. 3년이 지난 지금 그런 현상이 되살아 날 조짐을 보이자 그 위기를 피해 대학생들이 스스로 사회를 향한 출발점을 늦추고 있는 것이다.인생의 황금기, 꿈과 낭만에 가득차야 할 대학생들에게 닥친 현실은 가혹하기만 하다. 경기침체로 버젓한 직장은 고사하고 아르바이트 일자리 하나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만큼 힘들다. 실업률이 또다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지금 대졸생이라 해서 뾰족한 대책도 없다. 졸업해봤자 갈 길이 뻔한데 우선 실업자 신세라도 면해 보자는 생각이 더 현명한지도 모른다.이들은 대부분 어학연수나 군 입대, 자격증 취득과 같은 현실적응을 택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길이 순탄치만도 않다. 어학연수에 드는 고비용, 자격증 시험에 쏟아 부어야 할 시간과 정성 또한 만만치 않다. 그것도 소수의 선택된 계층의 수혜일 뿐이다. 이처럼 대졸자나 재학생들이 일자리 불안에 휩싸이는 현상은 국가적으로 계량하기 힘든 손실이다. 정부가 한때 대졸자들의 인턴사원제를 적극 추진했지만 올해는 아직 뚜렷한 방침도 서 있지 않은 모양이다.인생을 막 출발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취업의 문이 닫혀 있는 현실은 그들에게 좌절과 무력감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다음 세대의 사회정신이 건강과 활력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더욱 그러하다.
규제 풀어야 현대차 새만금투자 성공한다
‘공직자 줄서기’ 악습, 이번엔 뿌리 뽑아야
오래된 다정함, 남문사잇길
‘연두색 넥타이’와 개헌의 봄
아리랑에 담긴 한민족의 고유정서
고래가 싸우는 세계, 한국의 길
'매커니즘'보다 '구조'가 좋아요
새 주인 맞는 군산조선소, 신조선박 보고 싶다
부모님의 땀방울 서린 농지, 지혜롭게 물려받는 법
제세공과금이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