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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다/하늘 아래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다 정해진 때가 있다/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죽일 때가 있고 살릴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다/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모을 때가 있으며 껴안을 때가 있고 껴안는 것을 멀리 할 때가 있다/얻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다/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싸울 때가 있고 화해할 때가 있다/‘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다’는 류시화의 잠언시집에 나오는 글이다. 류시화는 구약성서 전도서에 나오는 글을 인용하고 있다. 오늘은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에 대한 적정한 보상과 대우를 받기위해 노력한지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들의 노력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제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있다. 정부와 민주당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자 등 민주화운동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을 민주유공자로 지정하고 교육, 의료, 취업 등 측면에서 지원해주는 민주유공자 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역시 이회창총재의 광주 망월동묘역 참배를 계기로 독립유공자, 6·25와 베트남 참전자 등 기타 유공자들과 형평성문제등을 고려해서 5·18 유공자에 대한 적정한 대우와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여야의 합의가 가능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이제는 늦출 수 없는 때가 되었다. 광주민중항쟁정신이 국가적으로 인정받기까지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다. 너무 때가 늦었으나 이제 늦출 수 없는 때가 온 것이다.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혼전 순결관이 점점 희박해져 10명중 6명 정도는 혼전순결을 꼭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연전에 모대학 교수가 국내에서 발간된 청소년 성의식 관련 연구보고서 20편을 분석한 결과이다.분석 결과를 보면 ‘혼전 순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식은 81년 82%였으나 97년에는 39%로 줄어 들었고 ‘경우에 따라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반응은 17%에서 44%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또 성경험 비율은 남고생이 16.2%, 여고생이 7.5%였으며 놀라운 것은 97년 한해동안 전체 여고생의 0.4%인 4천7백여명이 임신을 해 이중 64.3%가 낙태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점이다.순결은 남녀 모두 결혼전까지는 반드시 지켜야 할 계율로 가르쳐 온 부모 세대들에게 이런 조사결과는 충격일 수 있다. 하지만 성의 개방화·상품화가 만연하고 있는 요즘 세태에 ‘순결강요’자체가 진부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성에 대한 기초지식마저 차단하는 학교와 한 발짝만 나가면 상품화 된 성이 활개치는 우리의 2중문화 속에서 건전한 성문화를 확인하려는 발상자체가 무리인 것이다.그러나 그렇다고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순결관이 반드시 위험수준이라고만 비관할 일은 아니다. 그들이 대학에 진학해 순결의 가치에 눈을 뜨는 ‘건전한 성 모럴’의 고리가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모대학이 순결학과를 신설하자 여학생뿐 아니라 남학생들도 지원자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미성년자 매매춘이 사회문제화 하고 환락가를 중심으로 퇴폐행위가 극에 다다른 이 즈음에도 아직 ‘순결의 선교’를 자임하는 젊은 대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성문화가 급속한 추락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엊그제 성년의 날 행사로 일부 대학에서 가진 남녀 학생들의 ‘순결선언’은 그런 의미에서 보기 흐뭇한 정경이 아닐 수 없다.
신문에 시사만평을 그리는 한 화가가 미군을 ‘점령군’으로 표현했다가 당국에 불려가 혼쭐이 난 일이 있었다. 미군이 저지르는 범죄행위에 대해서조차 우리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불평등을 꼬집은 내용이 문제가 된 것이다. 서슬 퍼렇던 5·6공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문민정부이후 한미(韓美)관계에 있어서 미군의 역할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일이 많아졌고 미군 주둔지역을 중심으로 반미(反美)감정이 싹트는 현상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주한 미군에 대해 친선·우의·국토방위와 같은 선린의 감정보다 횡포·갈등·범죄와 같은 부정적 측면의 인식범위가 넓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미군이 범죄를 저질러도 주둔군지위협정(SOFA)때문에 우리의 사법권이 제대로 행사되지 못하고 있고 주둔지역 일대의 환경파괴등 주민생활에 피해를 주는데도 적절한 대책이 수립되지 못하는데 대한 불만이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요즘 경기도 화성의 미공군 폭격훈련장 피해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오폭(誤爆)과 불발탄 폭발로 인한 인명피해는 물론 50년동안 소음과 진동으로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매향리 주민들의 생존권 투쟁이 국민들의 공감을 살만하다. 그러나 그런 피해지역이 비단 매향리뿐만도 아니다. 우리 도내의 군산 미공군기지도 매향리 못지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군산의 ‘우리땅 지킴이’모임이 그동안 기지내에서의 오·폐수 무단방출, 군용기의 이·착륙에 따른 소음공해, 교통사고후 뺑소니등 미군이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 강력한 항의시위를 벌여오고 있으나 아직까지 미군측으로부터 어떤 해명이나 개선책등을 통보받은 일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주둔군지위협정의 장벽이 그만큼 높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약한듯 하지만 강한 시민사회의 이런 결집된 힘을 미군측이 얕잡아 봐선 안된다. 한 방울의 낙수(落水)가 모여 바위를 뚫을 수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이제 군산 미공군기지 문제도 좀 더 확대하여 공론화 할 시점에 이르렀다.
우리 나라의 교육열이 높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러한 교육열이 때로는 과열 양상을 불러일으켜 각종 부작용이나 역기능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가 지금의 모습으로 발돋움을 하는 데에는 교육의 힘이 그만큼 큰 것이었다.교육현장은 배움의 장임과 동시에 가르침의 장이다. 배움이 있기에 가르침이 있고, 가르침이 있기에 배움도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교육의 장에서 다른 무엇보다 가르치는 사람 즉 스승의 역할은 중요하며 그 비중 또한 매우 큰 것이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종전에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하여 스승을 나랏님이나 아버님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그 은혜는 다 같은 것이라 하였다. 또한 스승은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기에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말라고 하였다.하지만 요즈음의 우리 세태는 이와는 조금 동떨어진 면이 많다. 흔히들 시쳇말로 ‘선생은 많은 데 스승은 없고, 학생은 많은 데 제자는 없다’고들 말한다. 교육의 현장에서 사제관계가 흔들리고있다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일 것이다. 과연 누가 그 무엇이 스승의 자리를 끌어내리고 폄하시키고 있는가? 그것은 단순히 교육현장의 책임만은 아닌 것 같다.학력만을 중시하는 사회풍토는 자연스럽게 일류병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으며, 성적에 따라 줄을 세우는 대학입시제도는 교실을 붕괴시켜 버리고 말았다. 공교육이 무너져 내린 자리에는 온당치 못한 사교육이 독버섯처럼 자라나다 못해 이제는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있다. 과외나 학원과 같은 사교육을 통해서 학력신장을 꾀하다 보니 학교는 그저 내신 성적을 받는 평가기관으로 전락하게 되었다.이래서야 어찌 교권이 바로 서겠는가? 이제 우리는 스승의 자리를 다시 찾아주어야 할 때이다. 교육이란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는 일이며, 세상의 이치를 깨우친다는 것은 곧 이 세상과 사회 속에서 자기자신을 바로 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은 학교와 사회, 그리고 모든 기성세대와 학부모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사회적 과제인 것이다. 학교는 바로 사회의 축소판이고 거울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때이다.
지금은 시골에서나, 그것도 아주 드물게 볼 수 있는 것중의 하나가 상여이다. 도시에서야 상사(喪事)도 편의주의에 밀려 장의차가 그 자리를 차지한지 오래다. 그 상여가 나갈때 소리꾼이 메기는 향두가에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에게 신문받는 대목이 나온다.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공덕 하였는가/ 깊은 물에 다리놓아 월천공덕 하였는가/ 병든 사람 약을 주어 활인공덕 하였는가/ 좋은 곳에 집을 지어 행인공덕 하였는가…’우리 조상들은 이처럼 살아 생전에 망자(亡者)가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했는가에 따라 저승에 가서도 화복(禍福)이 결정되는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구성진 가락에 맞춰 상여꾼들이 부르는 소리는 북망산천으로 가는 망자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뿐 아니라 적선지가 필유경(積善之家 必有慶)이라는 우리의 도덕률을 일깨우는 경고의 의미도 담겨 있는 것이다.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공덕’하는 미풍이 얼마나 살아 내려오는지는 의문이다. 따뜻한 온정이 완전히 사라진것은 아니지만 어려운 이웃에 시선을 돌리는 ‘마음이 여유로운’ 부자들을 찾기가 그리 쉬운 세태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해마다 자선단체들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성금을 모금하지만 그 액수가 갈수록 빈약해지는 것도 그런 현상의 하나이다.엊그제 미국의 두 노인의 선행은 그런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평생을 근검절약으로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임종때 2천7백만 달러나 되는 거금을 적십자사와 어린이병원에 기증했다는 부자 구두쇠들의 이야기는 무엇을 뜻하는가. 바로 부(富)란 어떻게 모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준 것이라 할 것이다.어떻게 쓰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더 지킬 것인가에 간지(奸智)를 모으는 우리나라 부자들은 ‘부자가 천당에 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보다 어렵다’는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솔로몬은 ‘부정으로 재산을 모으는 것보다 가난해도 정직하게 사는 것이 낫다’는 말도 남겼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생명을 가진 법적 지위를 갖는다. 하지만 지위의 완결은 어디까지나 출생신고다. 출생신고와 함께 아이는 이름과 고유의 번호를 부여받는다. 만6살이 되면 최초의 의무로 부과된 학교를 다녀야하고, 18세가 되면 국민역에 편성된다. 신성한 병역의무와 함께 근로의 의무가 지워진다.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성장에 일정한 방정식과 같은 사회적 틀을 만들어 놓고 대입시킨다. 그건 교육이나 사회화, 제도화라고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억압과 순치라는 지배의 질서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한마디로 나이의 논리에 순응해야 하는 것이다.그런데 서구사회는 레이디 퍼스트라는 말이 상징하는 여성과 어린이를 우선으로 여기는 사회다. 어떤 위기상황이 다가오면 그들은 어린이와 여성, 노약자를 먼저 안전지대로 피신시킨다. 그것을 그들은 기사도 정신으로 부르기도 한다. 반면 가부장적 전통이 강한 유교사회는 모든 일에 어른이 우선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난번 IMF 초기에 어린이와 여성은가장 큰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어려울수록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함이 선진사회의 조건이다. 힘이 들수록 가진자가 없는자를 생각해줘야 함이 마땅하다. 그것은 힘있는자와 가진자가 가져야 할 베풂의 정신이며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공동체 정신이다.무와 채소를 밭에서 캐오던 여인이나 바다에서 잡은 고기를 한 꾸러미 들고 오던 어부들은 가난한 이웃집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수확중에 얼마를 떼어 울타리에 몰래 걸쳐놓고 갔던 것이다. 춥고 긴 겨울을 보내는 새들이 쉬어 가며 먹을 수 있게 감을 모두 따지 않는 우리의 따스함이 그것이다.대형할인점이 진출하려하자 지역상인들이 저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할인점이건 지역 상인이건 진정으로 지역을 위한다면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모습부터 보여줘야 할 것 같다.
오늘은 불기(佛기) 2544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불기는 부처님이 열반하신 해가 원년이니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지는 2천6백24년이 된다.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는 크고도 넓지만 그중에서도 첫째가 자비의 정신이다. 부처님이 스스로 깨달은 진리를 처음으로 들려준 사람도 자신을 비판하던 비구니였다. 그 다섯 비구니를 시작으로한 중생구제는 바로 대자대비한 부처님의 실체인 것이다.부처님의 오신날을 맞아 우리가 불전에 등을 다는 것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하나이다. 불교에서 등은 법 즉 진리, 진리중에서도 불지혜(佛智慧)를 상징한다. 불자들이 공양을 하는 것은 촛불이 제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듯 우리도 몸과 마음을 바쳐 내 가정과 우리사회를 밝히겠다는 서원을 담는 의미도 있다.화엄경의 법계품에서는 등불의 심지는 믿음이며 기름은 자비심이며 등잔 그릇은 염불심, 빛은 공덕이며 그 공덕의 빛이 탐·진·치(貪嗔痴) 삼독(三毒)으로 가려진 무명과 번뇌의 어둠을 밝혀준다고 풀이 했다.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아사세왕이 백섬의 기름으로 궁문에서 기원정사에 이르기까지 켜놓은 1만개의 큰 등은 하룻밤이 지나자 다 꺼졌으나 가난한 여인 난타(難陀)가 밝힌 1개의 등은 더욱 빛났다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설화는 유명하다. 목련존자가 다음날 아무리 끄려해도 가난한 여인의 등을 끄지 못하자 부처님은 “그만 두어라. 정성으로 기름을 삼아 태우는 불이니 바닷물을 기울여도 끄지 못할 것이니라”고 했다.이런 연유로 부처님 오신날에는 등을 달았다. 우리나라는 신라때 부터 관청과 여염집, 사찰에 모두 등을 달았다. 또 갖가지 모양의 등을 만들어 강에 연등배를 띄워 온누리가 환한 불야성을 이루게 하는 관등행사가 매년 정월 보름에는 성행했다고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기록하고 있다.올해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전주를 비롯한 경향각지에서는 제등행렬이 있었고 전국 사찰과 암자에는 형형색색의 등이 내걸렸다. 탐·진·치의 삼독으로 물들어 칠흑 같이 어두운 우리 사회를 밝혀주는 등이 되길 빌어 본다.
‘밤을 새워가며 한다’ ‘안하면 초조하고 불안하다’ ‘잃은 돈을 되찾으려고 한다’ ‘이혼을 하거나 승진 기회를 놓친다’ 노름 중독증에 걸렸는지를 측정하는 기준중의 몇가지다. 정신과 의사들이 만든 자기진단 방법에는 이밖에도 많은 항목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마약을 연상시키는 것들이다. ‘이번 꼭 한 번만’이라고 다짐하는 것이나 결국에는 공금에까지 손을 대는 것까지 비슷하다.이렇듯 도박이나 마약은 한 번 빠져들면 좀처럼 헤어나기 힘든 속성이 있다. 심한 중독증세 때문이다. 도박을 하다가 적발돼 처벌을 받은 사람중 70%가 풀려나자 다시 도박을 한 것으로 조사된 통계도 있다. 정신의학적으로 보면 도박은 개인의 의지로 고칠 수 있는 습관이 아니라 뇌의 충동조절기능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일종의 장애 현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떤 정신의학자는 ‘돈을 잃고 싶다’는 자기파괴 본능이 도박 중독의 원인이 된다는 역설적인 설명도 하고 있다.그렇다면 내기 바둑 한판이나 내기 골프에 몇억원씩을 거는 노름꾼들은 도대체 얼마나 돈을 잃어야 자기파괴 본능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 일까. 그러고도 돈을 잃으면 다시 찾겠다는 욕심으로 도박판을 키우는 증상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것이 노름 중독증이 아닌가 싶다.IMF위기로 한창 어려웠던 시기에 미국의 라스베이거스 도박판에서 비카라, 블랙잭 도박으로 하룻밤에 몇억씩 날린 졸부들이 국민들의 분노를 산 적 있었다. 아무리 내 돈 내 마음대로 쓴다지만 정도를 벗어나면 손가락질 받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주(駐) 이스라엘 대사가 카지노 도박으로 수천만원을 잃은 사실이 알려져 엊그제 소환되기도 했다. 공직자의 윤리의식마저 마비시킨 도박중독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입증시킨 사건이다.전자오락실이 도박의 온상이 된지는 오래다. 요즘에는 인터넷을 이용하는 네티즌이 급증하면서 각종 내기와 도박성 게임을 할 수 있는 사이트들마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 사회 여기저기 널려있는 도박 증후군을 차단하는 일도 마약 못지 않게 시급하다.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던’ 어버이의 사랑과 노고는 이 세상 그 어느것보다도 지고지순(至高至純)한 가치를 지닌다.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 ‘어버이 날’이다. 그러나 1년중 단 하루(5월 8일) 행사로 충분한 보은의 기회를 충족시켰다고 보기는 어렵다. 계산이 없는 부모의 가이없는 사랑은 1년 3백65일 계속돼도 모자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효(孝)는 ‘老’자와 ‘子’자가 합해진 글자이다. 나이 들어 늙은 어버이를 자식들이 받들고 섬겨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효경(孝經)에는 ‘사람의 행실에 있어서 효보다 큰 것이 없다’했고 그래서 공자는 효를 천륜(天倫)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 전통사회에서 아직도 유교적 가치관이 뿌리 깊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중 바로 이 효사상은 으뜸이다.그러나 오늘날 많은 자식들은 효도의 방법을 용돈을 드리는 것 정도로 떼우려 드는 경향이 있다. 노인정에 나가 장기나 바둑판에 앉아 무료함을 달래는 부모들의 지루한 하루일과에 시선을 돌리는 젊은 세대는 그리 흔치 않다. 많은 나이 든 어버이들이 남아도는 여가로 고통을 느끼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부모에게 새로운 취미를 찾아 주는 일은 좁게는 그 부모의 여가를 위해서, 넓게는 사회에 공헌하는 기회도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실버사회’의 도래가 현실화한 지금 범정부 차원의 노인대책중 키워드가 바로 이 대목임에도 정작 자신들의 관심은 이에 못미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마침 서울의 모 대학 교수가 인터넷을 통해 효사상을 일깨우기 위해 ‘스위트케어닷컴’을 어버이날을 맞아 개설했다고 한다. 이 사이트는 기존의 동호인 모임이나 쇼핑몰 중심이 아니라 ‘현대적 의미의 효’를 실천하기 위해 부모를 모시는 20∼30대에 필요한 노인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고 한다. 이 중에는 여가 정보를 담은 ‘신나는 노후(老後)’라는 콘텐츠도 있다니 관심을 끌만하다. 바야흐로 효도도 인터넷이 선도하는 시대가 온듯 하다.
축제는 지방자치가 발달된 선진국 등에서 이미 효과가 증명된 지역활성화 전략이다. 즉, 지방정부인 지자체 또는 지역 민간단체가 지역특유의 이벤트를 적극적으로 주관하여 지역주민들의 범위를 벗어나, 외부지역의 방문객들을 많이 유치함으로써 지역이미지 개선은 물론 침체된 지역경제에 활력을 주고, 지역문화의 발굴보존, 독특한 새로운 지역문화 창출, 또는 지역내부적으로도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응집력과 추진력을 유도해 내려는 움직임이 축제의 핵심이다.그러나 지역의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축제 프로그램 또는 내용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았나 뒤돌아 보는 것이다. 일부 지역의 문화행사들이 지역의 홍보와 경제효과면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나면 다른 지역에서도 이를 모방한 유사 행사를 만든다.전국 어디서나 거의 유사한 종목들을 서로 모방해 오면서 짧은 시간에 행사를 치르기에 급급했던 상황이었다. 결국 축제이름은 다르나 각 지역문화제의 프로그램 내용들이 미녀아가씨 선발대회, 농악, 난장, 노래자랑, 체육대회 등 공통요소들을 포함한 대동소이한 프로그램 구성이었다.축제 프로그램 구성은 해당 지역의 문화적 배경 및 지역적 특성을 깊이 고려한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방향 설정 없이 각종 이벤트를 마구 끌어들여 종합예술제 형식으로 전개하는 식이었다. 다시 말해서 지역의 전통문화와 현대의 지역문화가 잘 반영된 독창적인 프로그램이 각광을 받을 수 있고 지역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이번 전주문화축제에 대해서 한번쯤 뒤돌아 봐야 할 때이다. 프로그램의 개발 및 차별성 그리고 지역 홍보면에서는 성공적인 것 같다. 그러나 관광객 유치나 경제 효과면에서는 반성할 점이 많은 것 같아 약간은 찜찜하다. 모 할인점은 돈 한푼 안들이고 엄청난 매출효과를 올렸다. 그것도 외지인이 아닌 지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낸 것이다.
의회 민주주의 체제를 이끌어 가는 원칙 중에는 다수결의 원칙이 있다. 이는 다수의 의사와 권익을 중시한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국민들의 다양한 욕구는 존중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미국의 경우 소수의 특정 이익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것이 바로 로비이다. 로비에 관한 한 미국은 천국과도 같다. 미국에서는 이익집단에 따라, 때로는 특정의 이슈에 따라 교육, 건강보험, 노인복지, 낙태반대, 총기소지반대 로비 등 실로 끊임없는 로비가 행해지고 있다.로비스트라는 말은 본래 ‘늘 의회의 로비에 드나들면서 특정단체 또는 그룹의 이해를 대표하여 압력을 가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사용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로비스트는 전문지식과 지명도를 배경으로 입법과정에서 특정 집단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정상적인 직업처럼 된지 오래이며,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로비는 의회 민주주의 체제에서 소수의 특정이익을 대변하는 데에 결코 무시하거나 생략할 수 없는 감초 같은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그러나 로비스트는 태평양을 건너 한반도로 넘어오면서 그 이미지가 변질되었다. 우리 나라의 로비스트들은 특정의 이익집단이나 이슈와는 관계없이 특정인물의 이익만을 대변하기에 급급한 상황이었다. 세간을 뒤흔들어 놓은 사건 뒤에는 언제나 얼굴 없는 로비스트들이 학연이나 지연 또는 혈연관계를 빌미로 뒤에서 사건해결을 도맡아 처리하는 브로커 행각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요즈음 린다 김이라는 무기거래 로비스트가 문민정부 때 백두사업과 동부전선 전자전 장비사업 등과 관련해 당시의 국방부장관 등 정·관계 고위 인사들에게 전방위 로비를 한 사실이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물론 민주사회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관련 단체나 이해집단의 입김을 배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 하지만 이 사건이 우리 사회의 변질된 로비 실태를 보는 것 같아 어처구니 없고 한심한 생각이 든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요즈음 방송과 신문은 남북경제협력과 대북투자에 대한 시나리오보도를 위해 시간과 지면을 크게 할애하고 있다. 정부의 해당부처도 남북정상회담 준비로 분주하다. 김대통령 역시 전직 대통령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 남북경협은 단기적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되고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남한은 정치적 이유에서 남북경협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북한은 경제적 실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동서독 경협 역시 그랬다. 통독전 동독은 경제적 실리에 관심이 있었다. 서독의 경우 경제적 실리보다는 동서독 경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치적 효과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서독은 동서독간 경협을 결속수단으로서 여겼다. 서독은 동서독간 거래를 국내거래로 간주해서 거래되는 상품에 대해 비관세원칙, 부가가치세 경감이나 면제조치등을 취했고 동독이 실질적으로 경제적 이득을 얻고 서독과 밀접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했다. 장기적으로 동서독간 교류협력을 추진한 것이다. 상호 신뢰가 구축되면서 점진적으로 상호 조약도 체결되었다. 특히 1970년대초 서독수상이었던 빌리 브란트정권하에서 동서독간 유대는 강화되었고 상호 협력을 위한 협정과 조약이 체결되었으며 이것은 동서독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다. 1972년 5월 교통조약, 동년 12월 동서독 기본조약, 1974년 4월 보건협정, 1982년 11월 서독 함부르크와 서베를린을 잇는 고속도로 건설, 1986년 5월 문화협정, 그리고 이듬해인 1987년 12월 환경보호협정등이 그러한 것들이다.요즈음 남북정삼회담에 대해 다양한 욕구들이 분출되고 있다. 특히 대북투자나 지원약속도 중요하지만 이중과세방지협정이나 투자보장협정등 투자여건 조성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교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처음부터 과욕은 금물이다. 남북정상 만남 자체만으로도 만족해야 한다. 상호 협력과제는 장기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인구의 도시집중은 필수적이며 결과적으로 과밀화 현상을 빚는다. 대도시건 중소도시건 차별이 없다. 어항속에 붕어가 두 세마리 있으면 사이좋게 지내지만 숫자가 늘어나 비좁다고 느끼면 서로 잡아 뜯는다. 마찬가지로 도시가 과밀화하게 되면 인간심리를 조악(粗惡)하게 만들어 여러가지 부작용을 수반한다.오늘날 도시학자나 환경전문가들이 가장 고심하는 부문이 이 대목이다. 인구가 늘면 그만큼 교육 문화 교통시설 등이 늘어나야 하는데 이에 따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인구에 비례해서, 아니 그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은 술집이나 오락시설같은 퇴영적인 것들이다. 결과적으로 과밀한 도시환경이 사람의 마음을 조급하고 거칠게 하며 그것을 원초적으로 발산케 하는 체계를 방기(放棄)하고 있는 것이다.이런 도시환경 속에서 자제(自制)나 양보, 질서, 친절같은 덕목은 갖추기가 어렵다. 출퇴근 러시아워때의 교통혼잡이나 공중이 모이는 장소에서의 무례함, 나만 편리하면 그만이라는 무질서의 극치,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쌓여 도시인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 증후군을 일으키고 문화환경에 공해를 야기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누구 하나 ‘내탓이오’로 돌리며 자기 반성하는 사람 또한 없다. 어항속의 붕어와 인간이 같을수는 없다. 삶의 조건이 조잡하더라도 이에 종속되지 않고 뭔가 개선해나가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인간은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의식개혁이요 문화라는 큰 가치이다.‘새천년 새전북인상’정립운동을 전북도가 제창하고 있고 지금 전주에서는 근래 보기 드문 문화축제가 한창이다. 언필칭 문화도시라고 자부하는 전주에 세계각국의 영화인들이 모여들었고 많은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영화와 판소리 풍물놀이 한마당에 신명을 돋구고 있다. 질서와 청결, 친절같은 도시생활의 기본이 바로 서는, 그런 문화시민의 긍지를 보여주는 좋은 기회를 우리는 맞고 있는 것이다.
복제 양(羊) 돌리 탄생이후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생명공학의 발달은 상상을 초월하는 경지에까지 이르고 있다. 미 연구팀이 DNA 인공합성에 성공하여 인간이 새로운 유기생물체를 창조할 수 있는 길까지 열리게 된 것이다. 올해 초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텍사스대학 게놈과학기술센터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인공 DNA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고 이를 응용하면 앞으로 2년내에 새로운 유기생명체가 인간의 손으로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미국이 이미 인간 게놈의 염기쌍을 완전 해독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동물들의 복제뿐 아니라 인간복제까지도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 유전공학의 수준이고 보면 사실 새로운 유기생물체의 탄생이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닌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된바 있는 외화(外畵)‘플라이’(Fly ·파리)에서 보듯이 유전자 조작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을 불러 들일까를 생각하면 섬뜩함을 금할 수 없다. 실험과정에서 파리와 사람의 유전자가 결합하여 사람이 거대한 괴물로 변해 가고 결국은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가 결코 공상과학이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될 날이 머지 않은 것이다.텍사스대학연구팀이 만들어낸 ‘합성유기체’는 암종양 세포등을 탐지하고 공격하는등 생명체의 기능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의학발전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 하지만 컴퓨터를 통한 유전자 변형으로 전혀 새로운 생명체로 탈바꿈 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인류건강, 지구환경, 또는 생태계에 전혀 예상치 못한 위험요인이 될수도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엊그제 미국과 캐나다 과학자들이 다양한 세포복제실험을 통해 장기적으로 인간 생명을 2백살까지 연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보도가 나왔다. ‘복제 소’를 탄생시키는 과정에서 젊어지는 세포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차라리 합성유기체보다는 이 쪽이 현실감도 있고 반갑기도 하다.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요’라는 속담은 무식함을 빗대어 이르는 말로 종이의 본래 용도와 잘 어울리는 속담이다. 옛 선비나 양반들은 종이와 가깝게 지냈던 것이다. 한편 ‘종잇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공동체나 협동적 삶을 강조하는 속담도 있다.우리 종이인 한지는 중국의 당지 또는 선지 그리고 일본의 화지보다 질기고 질도 우수했다. 그러나 조선조 말 이후 국력의 쇠퇴와 함께 한지는 운명을 같이한 듯하다.서양식 종이공장이 설립되면서 한지는 완전히 사양길에 들어선다. 한편 한지의 제조에 있어서도 각종 기계와 화공약품이 도입되게 되어 시간과 경비가 절약됐지만 한지 본래의 특성을 많이 잃게 되었다. 또 일부를 제외하고는 농민들이 농한기 부업으로 생산되는 한지가 되었다.게다가 일제의 우리 문화의 말살 정책으로 다양했던 한지는 창호지, 장판지, 장지, 태지등 몇 종류만 겨우 명맥을 유지되었다.해방후 한지는 양지에 밀려 완전히 붕괴된다. 선공업 후농촌 정책으로 부업에서도 밀리게 되고 주택양식의 변화로 그나마 창호지와 장판지의 수요마저 격감시켜 버렸다. 게다가 한지 기능 보유자들은 제대로 된 후계자들을 양성하지 못한 채 거의 노쇠, 사별하여 대가 끊어지게 되었다. 이제는 전통공예나 축제 차원에서 한지의 멋을 노래할 정도가 됐다.지금의 한지는 닥을 원료로 사용하지만 닥조차도 우리나라에서 거의 생산이 안되고 있어서 수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름만 한지이지 외국종이에 불과하다.이제 3D업종, 가내수공업, 공해배출업으로 분류되는 한지 생산이다. 57년 자료에 의하면 전북에만도 3백15개 업체에 종사자가 4천9백78명이었으나 77년 조사에 의하면 전국의 한지업체나 농가를 모두 합해 약 1백60곳 정도로 줄더니 이제 남은 곳은 전국에 60여곳 정도란다. 지금 열리고 있는 전주한지축제를 바라보니 묘한 서글픔이 밀려온다.
우리 고전소설 주인공 가운데 가장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꼽으라면 물어볼 필요도 없이 ‘흥부와 놀부’일 것이다. 한 형제로 태어나 동생인 흥부는 법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착하기 이를데 없는 사람인데 반해 형인 놀부는 천하에 못된 일은 다하고 다니는 아주 나쁜 인물로 묘사돼 있다.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만일 흥부와 놀부가 오늘의 우리사회를 살아간다면 어떻게 되고 어떤 평판이 남을까? 아마 모르면 몰라도 흥부는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낙오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자식만 몽땅 낳아 놓고 나몰라라 한다면 천하에 무능한 가장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요즘 모방송국의 TV 드라마인 ‘허준’의 인기는 계속 상한가이다. 시청률이 60%대를 육박하고 있으며,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허준’을 시청하기 위해 월·화요일 저녁에는 약속을 하지 않을 정도라고 하니까 그 인기가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허준’을 둘러싸고 한가지 재미있는 설문조사가 나와 화제라고 한다.최근 한 쇼핑몰 회사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만일 허준과 유도지가 현대사회에서 직장을 다닌다면 과연 누가 성공할 확률이 높을까’하는 설문이다. 대답은 어떻게 나왔을까? 유도지의 성공 확률은 50%인데 반해 허준의 성공 확률은 2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유도지가 허준보다 배 이상 성공 확률이 높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처세술이다.극중 유도지는 허준에 비해 의술이 못 미쳐 항상 열등감을 갖고 있지만 상사들에게는 깍뜻한 부하직원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오늘의 직장인들이 보기에는 유도지의 성공 확률을 허준보다 높게 보고 있는 것 같다는 해석이다. 한마디로 처세술이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요즘의 세태를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여진다.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난센스이며 ‘만일의 경우’라는 단서가 붙여진 경우여서 실제와는 다를 수도 있다. 어쨌거나 ‘흥부’와 ‘허준’이 제대로 평가되는 세상이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 아닌가 싶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을 용서하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남에게 용서를 구하거나 청하는 것은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만큼 용서는 모든 사람에게 힘들고 어려운 것이다.아마 용서를 하고 또한 용서를 받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이기적인 태도와 동질성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대체로 사람들은 남의 허물에 대해서는 엄격한 반면,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함을 보이는 성향이 있다. 같은 잘못이라도 남의 허물은 크고 무거운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허물은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생각하려 든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잘못을 용서해주면 왠지 자신만 손해를 본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할 때에는 별것도 아닌데 괜스레 자존심이 상하고 스타일을 구기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용서를 의미하는 ‘恕’자는 같다는 뜻을 가진 ‘如’와 마음을 나타내는 ‘心’으로 되어 있다. 즉, 같은 마음을 가질 때에 용서는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두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나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기준이요, 창(窓)인 것이다.그러다 보니 나와 다른 것, 아니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것에 대해서는 이질감을 느끼게 되고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유유상종(類類相從)과 동병상련(同病相憐)처럼 자신과 같거나 비슷한 것을 찾고 인정하려 드는 것이다. 이른바 동질성을 확인하려는 것이다.최근 우리사회에 용서라는 미덕이 부족한 것 같다. 용서와 관용이 사라진 사회는 지역간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 세대간의 갈등을 빚게 마련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회적 갈등은 반목과 대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입장 바꿔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전북경제는 관주도의 경제인가 아니면 민간주도의 경제인가.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다. 전북경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관주도의 경제는 계획경제와 가깝고 민간주도의 경제는 시장경제와 가깝다. 전북경제가 관주도의 경제라고 판명될 경우 전북경제의 기본 틀은 잘못되었음이 입증되는 것이다. 김대중정부의 국정지표는 시장경제였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수치로 증명되어야 한다. 지역의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비중을 측정한 뒤 정확한 답변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지역현안분석은 전북경제의 정체성에 대한 추측을 가능케 한다. 전주권신공항, 새만금사업, 용담댐사업등 모두 관주도의 사업이다. 전북경제는 관이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이다.이번에 당선된 국회의원들의 지역관련 공약을 분석해보면 민간경제를 육성하겠다는 공약은 찾기 힘들다. 어떻게하면 대형사업을 벌여놓고 중앙정부로부터 재원을 확보하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3선이고 4선의원이기 때문에 중앙 정치무대에서 비중있는 정치인이고 그렇기 때문에 중앙정부로부터 재원학보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어야 전북이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들에게서 경제철학을 발견할 수도 없었다.그들의 논리와 사고체계는 김대중정부의 경제철학과도 커다란 괴리가 있다.낙후된 전북경제를 살리기 위해 무엇이 중요한가. 대형국책사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급한 것은 민간경제를 육성하기 위한 전략이다. 전북경제의 기본틀을 바꾸어야 한다. 민간경제의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김대중정권도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고 있다. 전북정치권은 단순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관주도의 경제를 탈피해야 한다. 대형국책사업을 유치하고 중앙정부로부터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단순 사고체계를 버려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현안사업을 차질없이 수행하면서 민간경제를 육성하기 위한 비젼을 제시해야 한다.
지난 71년 닉슨대통령을 수행하여 중동지역을 방문중이던 헨리 키신저가 극비리에 중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튿날 북경에 내린 키신저는 당시 주은래(周恩來)수상과 모택동(毛澤東)을 만나 미·중국간 화해를 타진했다. 미국과 중국이 냉전체제가 낳은 죽(竹)의 장막을 허물고 역사적 수교를 이룬 것은 그로부터 꼭 1년후였다.두 나라가 대화의 물꼬를 트고 국교를 수립하기까지 협상과정에서 촉매제 역할을 한것은 다름 아닌 녹색테이블이었다. 소위 핑퐁외교로 불리우는 탁구교환 경기를 의미한다. 세계 최강의 중국탁구는 미국에 한수 가르쳐주는 입장이었고 미국은 온갖 ‘당근’을 내밀어 이념의 빗장을 허문 것이다.동·서독의 통일이 이루어 지기까지 양국간 스포츠 교류 또한 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기여한 공로는 적지 않다. 스포츠 교류는 외교가 의전이나 말의 수사(修辭)보다도 힘과 기(技)를 겨루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얼마나 가깝게 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실증적 사례가 된다. 이념과 체제를 뛰어 넘는 인류공영의 가장 위대한 가치를 스포츠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남북한간에도 비록 대립과 갈등의 골은 여전하지만 스포츠를 통한 화해분위기 조성은 동질성 확인의 바로미터가 돼왔다. 축구·농구의 교환경기는 물론 세계탁구대회 단일탐구성의 전례가 있고 앞으로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의 단일팀 구성까지도 조심스레 타진되는 분위기다. 두 말할것도 없이 오는 6월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의 민족사적 성과가 이 분야의 기대를 얼마나 충족시킬지도 관심사이다.굳이 스포츠 외교를 이 시점에서 들먹이는 것은 아직도 지역감정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영·호남간의 갈등을 스포츠를 통해 풀어 나가자는 한 도의원의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전북이 오는 2010년 유치 예정인 동계올림픽을 무주와 전주 뿐 아니라 대구와 공동으로 추진하면 동서화합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게 그의 주장이다. 정치적 볼모가 된 지역감정을 스포츠로 풀어 보자는 그의 제의는 일단 검토해 봄직하다.
일찌기 자본주의가 발달한 서구(西歐) 사회에 재벌이란 없다. 근면과 성실, 꾸준한 기술개발, 효율적인 경영관리를 통해 부(富)를 축적한 자본가가 있을 뿐이다. 스코틀랜드에서 직조공의 아들로 태어나 열세살때 맨손으로 미국에 건너와 ‘철강왕’이 된 앤드루 카네기는 바로 그런 입지전적 자본가의 전형이다.그는 가혹한 노조 탄압과 무자비한 파업 분쇄로 노동자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지만 반면 가장 인간적인 처세훈(處世訓)으로 ‘사람 관리’에 뛰어났던 것으로 평가 받는다. 그래서 그는 냉혹한 자본가이면서도 미국내에 2천여개의 공공도서관을 세운 ‘불세출의 자선사업가’로 더 존경받는 인물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우리나라의 재벌은 어떤가. 부(富)의 형성과정에서 정경유착의 꼬리표가 항상 따라 다니고 문어발식 기업 확장과 총수의 전횡적 기업경영, 부의 세습화가 비판의 대상이 돼 왔다. IMF 위기를 초래한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금융구조를 왜곡시킨 재벌의 책임이란 지적이 그래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국민의 정부가 재벌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하면서 부채비율 감소, 상호출자 제한, 회계의 투명성, 선단식 경영제한등 체질 개선에 어느정도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2년간의 개혁성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아직 기업의 지배구조, 금융구조 조정과 관련하여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판단하고 있다. 총선이 끝난후 삼성, 현대, LG등 재벌에 대한 주식매입자금 출처조사에 나선 것도 그런 전방위 압박수단의 일환으로 보인다. 당연히 재계가 반발하고 있고 정부와 재계간에 긴장감이 조성되고 있다는 보도이다.그러나 엊그제 재벌 총수들이 골프장에서 회동하여 정부조치에 항의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민들이 느낀 감정은 무엇일까? 행여 변칙적인 방법으로 여전히 부를 향유하는 귀족(?)들이 손톱밑 가시가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는 것쯤으로 비쳐진다면 문제는 복잡하다. 재벌이란 ‘거대한 규모’를 이용하여 그 소득을 개인에게 집중시킨다는 것 자체가 사회구조상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주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본다
안호영 의원 통합 결단, 끝까지 최선을
HAI 시대, 지역사회 감응에도 주목
리셋되는 행정, 중단의 비용
영화 ‘사람과 고기’를 보고
전주시, 고사 위기의 기령당 활성화하라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김 지사의 컷 오프설은 사실무근
지금, 우리에게 ‘호남’이란 무엇인가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