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성씨(姓氏)탄생의 비화(秘話)
 조선조 초기 우리나라 성씨는 전체 인구의 10% 정도에 불과했다, 유랑민이거나 원래의 천민들은 조선 말기까지 성(姓)이 없이 떡쇠, 돌쇠, 마당쇠, 개똥이, 삼돌이, 오월이 유월이, 향단이 등 이름으로만 불리었다. 1909년에 일제가 민적법을 시행하여 유랑민이나 노비들에게도 원하는 성씨를 주어 호적을 만들게 했는데, 인기가 있던 성씨가 金,李,朴,崔,鄭, 姜,趙,尹,張,林씨 등 지금의 10대 성씨였다. 그런 양반성씨를 천민들에게도 마음대로 쓰게 한 것은 양반씨족들의 단결을 약화시키는 일제의 술책이 숨어 있었다. 우리의 성씨는 중국(유교)의 영향을 받아 모두 한자(漢字)로 쓰이며, 부계(父系)혈통으로 본관과 성을 결합해 혈족의 계통을 나타냈다.(예-김해김씨. 전주이씨. 밀양박씨 등) 1985년 통계청 성씨별 인구조사로는 274개였으나, 2000년 조사에서는 286개로 늘어났다. 42개의 성씨는 100명 이내였고, 1위인 金氏는 전체인구의 21.6%인 992만여 명(그중 김해김씨가 410만여 명), 2위인 李氏는 14.8%인 679만여 명(그중 전주이씨가 260만여 명), 3위 朴氏는 8.5%인 389만여 명(그중 밀양박씨가 300만여 명)으로 3대 성씨가 전체인구의 45%이며, 4~5위인 崔, 鄭氏는 4%대이고, 6~9위인 姜,趙,尹,張씨는 2%대, 10위 (林氏)는 1%대다. 우리나라 족보의 특징은 조상들의 벼슬을 자랑하면서 그 몇 대 손(孫)이라는 양반의 후손을 긍지로 살아가는 세계에서 양반이 제일 많은 국가다. 중국은 5.000여 성씨로 집계되는데, 전체인구 1,2,3위 비율이 7.4%, 7,2%, 6.8%로 특정 성씨로 몰리는 기현상은 없으며, 0.1%의 130여 개의 성씨가 전체 87%를 차지한다고 한다. 중국 1위의 성씨는 李氏로 전체인구의 7.4%인 9천 600만여 명으로 우리나라 679만여 명을 합하면 李氏는 1억 명이 넘는 세계 최대의 성씨다. 우리나라와 중국성씨의 순위를 비교해보면 한국의 1위인 김氏는 중국에서는 64위, 한국의 2위인 이氏는 중국의 1위, 한국의 3위인 박氏는 100위, 4위 최씨가 58위, 5위인 鄭씨는 21위, 姜(6위-50위), 趙(7위- 8위), 尹(8위-95위). 張(9위-3위), 林(10위-17위) 등으로 나타난다. 두 글자의 성씨(복성)를 인구수대로 알아보면 -남궁(南宮),황보(皇甫), 제갈(諸葛), 사공(司空), 선우(鮮于), 서문(西門), 독고(獨孤), 동방(東方), 장곡(長)谷,어금(魚金), 강절(岡田), 망절(網切) 등 12개다. 그리고 전체 인구 10명 이내의 성씨도 약 10여개 있으며, 최근에 생긴 성씨 중에는 국제결혼으로 국적을 취득한 동남아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메이지(明治) 유신 때(19C 후반)부터 “전 국민이 성씨 가지기“ 정책을 시행했는데,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의 위치나 동네의 특징을 살려 성씨를 만들었다. 그 예로 田中(전중-밭) 中村(중촌-마을), 松下(송하-소나무) 등으로 100여년의 역사에 그 숫자가 8만여 개다. 한국, 중국, 일본이 가지는 성씨의 특징은 한국과 중국은 유교사상으로 인해 양반을 흉내 내기 위해 특정의 성씨를 많이 선호했으나, 일본은 성씨의 평준화 즉 성씨에 대한 애착이나 자부심이 없었다. 성씨로 인한 신분의 구별을 없애려고 각자의 뜻대로 성씨를 고르라 했던 것인데. 우리는 일본과는 반대현상이 일어났던 것이다. /김형중 군산대 자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