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과 흠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가을 햇살을 닮은 만개한 해바라기 밭이 친정집 근처에 생겼다. 분명 지난번 방문까지 쓰레기 더미가 쌓였던 곳이었는데 의아해하자 아버지가 그러신다. 비양심적인 사람들 한두 명이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하며 점점 쓰레기가 쌓여갔고, 보다 못한 아버지와 동네 주민들이 꽃을 심으셨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해바라기 꽃이 피어나자 쓰레기 같은 양심들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고, 대신 사진을 찍으려는 방문객들이 찾아왔다. 활짝 피어난 해바라기 꽃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 법칙의 실증이 아닐까 생각된다.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 발표한 이 법칙은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번져가듯, 사소한 문제를 방치하면 더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이다. 실제로 지저분한 곳, 파손된 차량에는 쓰레기가 더 쌓이고, 반면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만으로도 범죄율이 낮아졌다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 사는 세상에서는 계속 깨진 유리창이 생겨나고, 때로는 그 틈으로 무절제의 만행들이 쏟아져 나오며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시름한다. 공터에 쌓였던 쓰레기는 때로는 귀찮아서, 아무 생각 없이, 혹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남이 보지 않는 순간을 기다리며 사는 우리네 자화상은 아닐까 싶어 씁쓸한 잔상으로 남았다.
바르게, 그리고 옳게 산다는 것은 기본적인 삶의 태도일 텐데, 엄격한 자기수양을 하듯 많은 것들을 절제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최근 몇 달 사이에 그야말로 확찐자가 되었다. 팽팽하게 돌아가던 일상이 코로나에 순응하며 멈춰서자 그 틈을 타고 게으름이 스며들었다. 외부 일정이 없으니 괜찮아, 잘 먹어야 코로나를 이겨낼 것이 아니냐라는 핑계들로 삶이란 창에 구멍을 냈고, 에라 모르겠다란 한 마디로 모든 절제를 거부했다. 처음에는 공터에 버려지기 시작한 쓰레기마냥 하나, 둘씩 합리화로 이유를 만들기 시작하더니, 한계치를 넘어서며 죄책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 사이 놀랄 만큼 체중이 증가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무엇이 문제였을까를 생각해보니 결국 괜찮을 것이라고 여겼던 틈을 방심했던 것이 치명적인 흠이 되었다. 견고한 성벽도 작은 구멍으로 인해 균열이 생기듯, 균형을 잃은 라이프사이클(life cycle)은 걷잡을 수 없게 무너져 내렸다.
미국의 정치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삶을 바람직하고 규칙적으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라는 것을 고백하며 인생의 우선순위에 있는 일을 순서로 목표를 세웠다.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절제, 인내, 질서, 작은 것에 감사하는 소박한 삶, 성실하게, 청결하게, 실용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13가지 덕목을 철저하게 적었고, 계획과 점검을 통해 수많은 업적을 남기며 존경받는 삶을 살았다. 위대한 이도 이렇게 자신의 연약함을 알아 계획을 세우고 지키려고 노력했는데, 무슨 배짱으로 하루하루를 방목하며 살아왔을까.
자유를 만끽하던 삶에 찬바람이 불어오며 마음이 스산해진다. 그동안 이런 저런 핑계로 눈을 질끈 감고 살아왔더라면 이제는 삶 속에 깨진 창문은 수리를 하고, 찰진 계획을 세울 때다. 더 매서운 바람이 불기 전에, 틈이 흠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남들이 보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존엄성을 포기하진 말아야겠다.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