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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천국과 지옥의 거리

지금 지구촌은 온통 한일 월드컵으로 들끊고 있다. 과거 어느 대회보다도 절대 강자가 없는 속에서 선수들은 한 손에 천국행, 다른 한 손에는 지옥행 티켓을 쥐고 박진감 넘치는 대결을 하고 있다. 전 대회 우승국인 프랑스가 처녀출전한 세네갈에게 덜미를 잡히더니 끝내 골대만 다섯차레 마치고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 밖에도 우승예상국들이 약체로 평가되는 나라들에게 번번히 발목을 잡히곤 하였다.그럼에도 이 와중에서 우리가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비기기만 해도 다행이라던 미국이 예상을 뒤엎고 우승후보인 포르투갈을 꺾었는데도 부시대통령은 선수단앞으로 장하다는 메시지하나 보내지 않았다.그런가하면 프랑스가 덴마크에게 패하여 예선탈락이라는 수모를 당하는 순간, 세계가 경악을 보이는데도 인천구장에 나온 프랑스 응원단들은 자국 선수들에게 야유를 보내기는커녕 오히려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는 사실이다.이 두사례는 결국 천국과 지옥사이를 너무 극단으로 떼놓지 않으려는 그들 나름대로 다져진 문화축적의 소산이 아닌가 싶다. 히딩크감독이 우리 대표팀을 맡자마자 국제경기에서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특히 컨페더레이션스컵 시합에서 프랑스팀에 5:0으로 패하자 단번에 그의 사생활에 시비를 걸었고 능력의 한계를 내걸며 나락으로 밀어뜨린지가 얼마되지 않는다. 그런 그가 폴란드를 꺾고 월드컵 사상 첫승을 안기자 일약 영웅으로 떠올라 히딩크식 리더쉽을 내세우며 천국행 고속열차를 태우고 있다.매사 그리고 매번 승리한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인생살이가 그렇듯, 날씨가 그렇듯 어찌 매번 축배를 들고 나날이 청명한 날씨만 볼 수 있겠는가? 과거 프로복서들이 그랬듯 지금도 해외에서 고분분투하고 있는 운동선수들이 많이 있다. 어쩌다 한번 우승이라도 하면 TV에서는 그의 부모와 친인척은 물론 학교시절의 담임선생과 친구 등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은 줄줄이 등장해 분장사가 된다.다행히 그 선수가 계속 우승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금방 외면당하고 만다. 한 때 우리나라 스포츠신문들은 거의 박찬호기사로 도배를 하다시피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에게도 한계가 있는 법, 7:0을 못지키고 무참히 강판당했을때 그곳 언론들은 거의 민족차별에 가까운 혹평을 서슴치 않았다. 그순간 그는 고독의 절정에서, 자신을 하늘높은줄 모르게 떠받쳐주고 있는 고국팬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떠올리며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어했을 것이다.이제 우리는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시했던 시절, 근대문학사에서 시보다 차라리 시인을 더 중시했던 전통윤리의 배면을 한번쯤 되짚어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그동안 우리 사회는 모든 면에서 천국과 지옥의 낙차가 너무 심했던 것 같다. 우승했다고 너무 흥분하지 말고 설혹 졌다해도 최선을 다한 결과라면 실망하지 말고 다음을 기약하자.각설하고, 오늘밤은 비야흐로 한국 축구가 천국행이냐 지옥행이냐를 놓고 포르투갈과 격돌한다. 온 국민의 염원대로 이뤄진다면야 그보다 더 좋을수가 없겠으나, 만에 하나 16강행에 실패한다 해도 너무 낙심하지 말자.그 패배의 아픔을 결코 지옥행으로 유도하지도 말고 비유하지도 말자. 왜냐하면 우리 나라가 월드컵 공동개최지로 선정되면서부터 우리는 16강행에 앞서 지구촌의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를 세계 곳곳에 전해주려는 일념으로 차근차근 준비해왔고, 다행히 이 시간까지 그 염원은 별다른 장애없이 진행되고 있어 보인다.그리고 그동안만이라도 우리는 한 민족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이글거리는 대 용과로 속에서 어떻게 혀란하게 용틀임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고, 한나라의 전통문화와 세계스포츠가 어떻게 눈부시게 조화될 수 있는가를 전 세계에 보여주지 않았는가. 어쩌면 이것이 16강보다 더 큰 소득일지도 모른다.결국 천국와 지옥의 거리는 우리가 조절하기에 달려 있다./허소라(시인, 군산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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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6.14 23:02

[전북칼럼] 지방대학 육성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는 평소 "전북대학교가 발전해야 전라북도가 발전하고 전라북도가 발전해야 전북대학교가 발전한다" "전북대학교의 발전이 전라북도의 발전이고 전라북도의 발전이 대한민국의 발전이다" 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대학 발전이 지역발전을 선도하고 지역발전이 나라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단순논리에서 시작된 말이었다. 물론 이는 이 지역에 위치한 모든 대학에도 해당되는 말이다.그래서 필자는 화두를 "지방대학 육성" 에 두고자 한다. 다행스럽게도 전라북도가 며칠 전에 지자체로서는 처음으로 위축되고 있는 지방대학을 살리기 위한 종합 육성 대책을 내놓았다. 참으로 시기 적절한 정책이며 향후 4년간 전북대학교 경영의 책임을 맡은 필자에게는 그렇게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몇 가지만 첨부한다면 금상첨화가 되겠다 싶어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지역주민 참여가 필수적문제의 핵심은 우리지역 주민의 의식구조의 전환 없이는 이 모든 것이 헛된 일이라는 것이다. 우선 먼저 이 지역 주민들이 이 지역 대학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쏟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공부 잘하는 자식을 서울로만 보내려는 부모가 존재한다면 우수신입생은 어디서 찾아올 것인가? 즉 지역주민들은 지방대학의 발전이 곧 이 지역 발전의 견인차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방대학이야말로 이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들의 일차적인 공급처이기 때문에 지방대학의 질적 저하는 곧 이 지역의 대외경쟁력의 저하로 이어지고 지역 낙후현상을 심화시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모두들 "지방대 위기론"을 들고 나왔다. 이 위기는 다름 아닌 서울과 지방이라는 지역 간의 불균형에서 시작된 것이다. 정부는 이제 벌어질 대로 벌어진 지방과 서울간의 격차를 줄이는데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대학재정확충을 위한 노력 필요지방대학이 낙후되는 것의 원인으로는 지역주민의 외면이외에도 열악한 재정환경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낙후된 지방대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대학의 재정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과제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필자 역시 총장선거과정에서 대학발전기금을 많이 모으겠다고 공약한바 있다. 따라서 이에 관한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한시적으로라도 지방대학에 한하여 독지가가 지방대학에 발전기금으로 기부금을 낼 때는 기부자에게 100% 세금공제나 상속세 공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어차피 국민의 세금으로 대학을 지원할 바에는 납세자인 지역주민이 그 지역의 대학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국가에 낼 세금을 대학에 직접 기부하는 풍토가 조성된다면 이보다 더 아름답고 훈훈한 분위기가 어디 있겠는가.이는 곧 지역주민의 지방 대학 사랑으로 이어지고 우수자녀 지방대학 보내기로 이어져 머지않아 이 지역 발전을 위한 인재 양성이 이루어져 지역발전을 위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필자는 가지고 있다.이 이외에도 " 출신지역 대학별 취업할당제" "출신지역 대학별 고시합격생 할당제" 등과 같은 지역 인재할당제의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하여 정부 스스로 국가발전을 위한 고급두뇌의 양성을 전국적으로 고르게 양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이처럼 다분히 인위적인 법적 제도일지라도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줄어들어서 전 국토가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만 있다면 조금은 무리일지라도 특별법을 한시적으로라도 운영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는가. 관계자 분들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참고를 기대해 본다./두재균(전북대학교 제 14대 총장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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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6.07 23:02

[전북칼럼] 월드컵·정치·여성

지난 85년 UN이 주최하는 제 3차 여성회의가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있을 때 였다.나이로비 대학 캠퍼스 잔디밭에서 전통한복을 차려입은 한국 대표들이 '88올림픽 로고가 새겨진 스카프와 뱃지를 책상 위에 놓고 판매하고 있었다. '88 서울 올림픽 홍보를 위해서였다.회의 참가자들은 스카프나 뱃지 보다는 우리의 한복에 더 관심을 가지고 Korea가 어디 있냐 - South korea냐, North korea냐를 묻는 것이 예사였다. 물론 국가대표회의에 북한대표들(수석대표: 여연구씨)도 참석하고 있었다.월드컵 한국 도약의 계기그 뒤 전국민이 화합을 이룬 가운데 '88올림픽을 멋지게 치르고 북유럽 출장을 갔었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어느 작은 음식점에 들렀을 때의 얘기다. 식탁의 냅킨에 "88서울 올림픽"이라고 새겨진 글자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었다. 88 서울 올림픽이야 말로 한국이 모든 면에서 한 단계 상승했던 계기가 아니었나 싶었다.이제, 공 하나의 움직임에 지구촌 60억 인구가 열광하는 2002 FIFA World cup Korea-Japan막이 올랐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가 16강에 진입한다면 한반도는 용광로 속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또 한번 정금같이 빛나는 도약을 할 것이다. 평화와 화합의 월드컵을 위해, 문화월드컵으로 치르기 위해 온 국민이 마음을 한데 모으고 있다. 자원봉사자들 또한 사상 처음으로 국가별 응원단이 조직되어 열심을 다하고 있다.또 우리의 "붉은 악마" 라는 이름의 응원단은 어떤가? 그런데 이 7만5천명 정도에 이르는 붉은 악마 가운데 많은 수가 여성이다. 공교롭게도 613 지방자치체 선거와 병행 실시하게 되어 우리의 정치 의식이 세계에 공개되는 계기가 될 듯 싶다. 공정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스포츠 정신과 단합의 정신을 전 세계에 유감없이 보여줌과 동시에 풀뿌리 민주정치를 제대로 실현해나가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운동기간 중에는 최선을 다하되 자기 홍보와 정책의 비전을 제시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상대방의 잘못을 파헤치고 흠을 잡아 공개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 같다. 해치는 선거, 해치는 정치를 하는 게 아닌가 우려가 된다. 스포츠로 온국민이 한 덩어리가 돼 있는데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파헤치는 정치, 국민을 편 가르는 정치, 남성들 독무대인 정치로 되어가는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싶다.상처를 치유해 주고 사랑과 덕으로, 은혜로 다스리는 정치. 이는 남성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세익스피어는 세계는 무대요, 인간은 배우라고 했다. 이제 정치무대에도 여성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배우와 관객의 호흡이 일치되는 멋진 드라마를 613선거에서 연출해 냈으면 한다.그래야 이 나라가 살고 비전이 있다고 본다. 그간 남성들이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고 여성들의 목청을 잠재우기 위해 마지못해 여성에게 인심을 쓰듯 한자리씩 공천 주고 자리 주는 식으로 돼 왔다. 이런 국가 운영은 경쟁력을 기를 수가 없을 것이며, 지구상에 살아 남기 어려울 것이다.여성과 남성이 각 분야에서 동등하게 참여할 때만이 소외되거나 억눌린 사람이 없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성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이 보인다.남성과 동등한 정치참여를21세기 지식 정보화 시대를 맞아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여성을 참여시키는 것이 이 나라가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미래학자 죤 나이스비크는 여성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woman leader시대를 예고했다. 격변기를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여성을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처방이라고 생각한다.강한 전북, 강한 한국을 만드는 그 중심에는 월드컵과 정치 그리고 여성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해 온국민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김원장 약력○ 전북대학교 법대.이화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교육학 석사)○ 전북도청. 전주시청 부녀아동과장○ 보건복지부 계장. 과장. 가정복지 심의관 관리관으로 명예퇴임.○ 전북 대학교 초빙교수. 성산효도대학원 대학교 아동복지과 주임 교수○ UN주최 여성회의 3회(코펜하겐, 나이로비, 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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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6.03 23:02

[전북칼럼] 논두렁에서

옛날 같으면 한창 모내기가 진행 될 때인데, 많은 논에 벌써 벼들이 땅 맛을 알아 가는지 가물가물 자리를 잡았다. 참 예쁘다. 이제 산에는 밤꽃이 피어나리라.농사철이 돌아 올 때마다 빈 들판을 바라보며 '올해 저 논에는 모가 제대로 다 심어질까?'를 걱정하지만, 농사철이 되면 논마다 어김없이 모가 심어져 저렇게 자란다. 허리가 굽을 대로 다 굽은 머리 허연 농부들이 논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 나는 가슴이 아프다. 벼들이 돌아앉는 논두렁을 이렇게 걸으면 많은 말들이 떠오른다. 농사, 농업, 밥, 생명, 환경, 일과 놀이, 농악, 두레, 새참, 공동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다운 말들이 떠오른다. 허리 굽혀 땅을 파고 햇살 묻은 씨를 땅에 뿌려 농사를 짓고 거두는 그 느림과 기다림의 정서가 사라진 곳에는, 방향 없는 속도주의, 순간을 모면하려는 찰나주의, 지독한 개인주의, 기회를 잡아 한탕주의, 너 죽고 나사는 이기주의, 말초적 쾌락주의가 자리를 잡았다. 모두다 순간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시대를 사는 부산물들이다. 자연과 인간성이 망가지고 죽어 갈수록 자본은 더욱 빛을 내며 인간과 자연을 물어뜯어 낫지 않을 상처를 낸다. 마침내 모두 망할 이 반문명적이고 동물적인 현상을 우린 진정한 문명이라고 부를 수 없다. 동물들이 행복을 느낄 때는 어떤 때일까? 논과 밭 구별 못하는 시골아이어느 날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와 함께 논 사진을 찍으러 간 적이 있다. 아이와 나는 논두렁에 앉아 논에 모를 내고 있는 이앙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 저 것이 뭐예요. 아이가 가리 킨 것은 윗논에서 아랫논으로 물이 떨어지는 물꼬였다. 내가 지금 근무하는 시골의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도 논과 밭을 구별하지 못한다. 날마다 논과 밭을 보고 그 곁을 지나다니면서도 모를 모르는 것이다. 모를 모르고, 물꼬를 모르고도 밥이 입으로 들어가 건강하게 살고 있으면 됐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면 할말이 없다. 나는 시대 착오적이고 철이 없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농부와 아이들에게 걸고 살아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늘 시대착오적이라고도 하고, 과거 회귀적이라고도 한다. 그 말에 대항 할 말도 내겐 없다. 정말이지 나는 세상을 뜯어고칠 아무런 힘이 없으므로 그들을 사랑했다. 우리들은 너무 격동기와 과도기와 국난 속에서 산다. 사람 사는 세상사가 다 그런 것인가? 하루도 평안과 안정된 모습이 없는 일상의 축제를 만들며 산다. 평화와 안정을 모르는 이 격정적인 생활이 가져온 것은 알 수 없는 불안 심리이다. 그 불안 심리가 불러오는 것이 축제다. 축제, 축제는 일상의 고통과 괴로운 순간을 모면하려는 항생제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주는 보약이어야 한다. 축제가 아름다운 건 그 축제의 마당이, 세상의 모든 갈등을 함께 묶어 녹여내는 대승, 대동적인 화해와 해방의 마당이기 때문이다. 맨발로 논 들어가본 지 오래강력한 살충제와 농약이 뿌려진 논은 미꾸리도 올챙이도 우렁이도 거미도 제비도 논바닥에 그 어떤 잡풀도 용납하지 않는다. 자연에 대한 인간들의 오만과 탐욕이 나는 무섭다. 이제 개구리가 논으로 뛰어드는 논두렁에 앉아 차근차근 풀을 베어 가는 농부도, 가방을 메고 산그늘을 따라 집에 가는 아이들도 없다. 맨발을 벗고 논에 들어 가본지가 까마득하다. 그러고도 시를 쓴다고 나는 까분다. 아니다 싶으면 돌아 갈 길을 스스로 지워버리며 우리들은 어디를 향해 이리 질주하는가.김용택(시인 덕치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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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5.31 23:02

[전북칼럼] 농촌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길

지난 3월, 교육인적자원부는 무너져가는 농어촌교육의 회생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농어촌교육발전위원회를 발족시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정부의 계획은 오는 5월말까지 '농어촌교육발전종합대책안'을 마련하고 이를 지원할 농어촌교육특별법(가칭)을 제정, 실질적인 농어촌교육발전을 지원한다는 것이다.이는 전북농촌학교살리기운동본부가 지난 99년도부터 여러 차례 교육당국, 국회에 제안했던 내용으로, 정부가 뒤늦게나마 전북본부의 요구를 받아들인 점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안타까운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도내 농촌학교는 통폐합, 복식수업 등으로 대다수의 학부모, 지역주민, 교사 모두에게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여 농촌교육 붕괴의 위기에 와 있으며, 이는 농촌지역사회의 침체를 가속화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는 것이다.그러기에 우리는 교육부가 추진하는 농어촌교육발전종합대책안이 선거국면을 의식하거나, 단기적인 농촌교육여건 개선 대책이 아니기를 갈망하면서 최근 농어촌교육발전위원회와 농어촌특별위원회에 적극 참여하여 그동안 전북본부가 마련한 농촌학교발전방안과 '농어촌교육특별법안'을 제시하고 이를 채택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그동안 전북본부가 제시한 농촌교육정상화방안의 핵심은 초등학교의 복식수업 해소와 중등학교의 상치수업 해소에 있다. 전북본부는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초등학교 복식수업해소와 특기, 적성교육을 위해 농촌소규모학교에 교대졸업 남학생들의 공익근무화를 위한 병역법 개정을 요청해놓고 있다.반면 교육부의 농어촌교육발전위원회는 농어촌교육발전방안으로 21세기 농어촌교육의 비젼, 농어촌 소규모학교에 적합한 학교운영모형개발, 농어촌우수교원 확보 및 배치, 농어촌학교 교육과정 운영방안 및 학생에 대한 지원, 지역사회와의 연계방안 등 농어촌교육과 지역사회를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정책 개발에 주력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이를 구체화하고 있다.따라서 교육부의 안이 이러한 핵심사항을 비켜가서 자칫 농촌학교에 대한 시설투자, 교원유인책, 복식수업 모델개발, 순회교사제 확대 등에만 머무른다면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이러한 가운데 최근 전북교육청은 2005년까지 69개교의 농촌소규모학교를 통폐합하겠다고 발표하여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제는 교육부가 획기적인 농촌교육발전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기에 도교육청의 농촌학교 통폐합 방침은 마땅히 유보되어야 한다.오히려 지금 도교육청이 해야 할 일은 농도인 전북농촌교육 현실을 적극 반영하기 위해 이제는 전국에서도 가장 앞장서서 농촌교육 살리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온 도내 시민사회단체, 농촌학부모들의 노력이 진정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21세기 농촌교육 회생과 농촌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복식수업, 상치수업 해소, 특기적성교육 활성화, 중등 급식, 학교운영비 전액 지원, 획기적인 교육여건 개선, 지역사회학교로의 지향성을 담은 '농어촌교육발전종합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럴 때만이 지금까지 보여준 도교육청의 태만과 잘못이 바로 잡아져 농어촌교육이 정상화될 것이다./ 박일범 (전북농촌학교살리기운동본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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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5.21 23:02

[전북칼럼] 노무현과 세대교체론

올 6월 지방선거와 12월 대통령선거에서 세대교체론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할지 주목된다. 세대교체론이 지난 97년 대선에서의 '정권교체론'과 같은 비중의 話頭 역할을 하지는 못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1970년대의 40대 기수론과 같은 위력은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전망하는 사람도 많다.세대교체론은 우선 깃털처럼 가벼워서 좋다. 혁명이나 개혁과 같은 용어에 비하면 얼마나 경쾌한가. 또한 세대교체론은 솜사탕처럼 달콤하다. 봄날같은 젊음이 느껴지지 않는가.그렇지만 그안에는 녹녹치 않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에는 활발한 신진대사가 가장 중요하다. 사람들의 모임인 사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속담이 있는 걸 보면 무기물인 물에도 신진대사가 중요한가 보다. 신진대사가 어려워 지면 활력을 잃고, 불가능해지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지금 세대교체론이 각광을 받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서 전입과 퇴출이라는 신진대사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그 결과 사회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결국 세대교체론은 사회의 활력을 되찾기 위한 처방전인 셈이다.그러나 세대교체론이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기위해서는 前提가 필요하다. 신세대가 구악을 청산할 실력과 비전을 가진 대안세력의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광고 카피 수준의 현란함만으로는 곁코 성공할 수 없다.우리는 지난 97년의 대통령선거에서 53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루어 냈다. 그러나 정권교체를 위해서 야당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미화되고 용인되어 왔던 1인지배체제와 지역주의, 공천헌금등 온갖 탈법적행태를 청산하지는 못했다. 각종 게이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 더 이상 손으로 꼽기도 어려운 참담한 현실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따라서 세대교체론자들은 구태정치를 청산하는 새로운 정치, 구체적인 정책논쟁을 핵심으로 하는 정책정당, 상향식공천을 골간으로 하는 시스템의 완비를 실현할 수 있다는 신뢰를 먼저 국민들에게 보여주여야 한다. 그리고 그 신뢰는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확고부동한 실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그런데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최근 행보는 새로움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1인지배체제의 덕목인 의리라는 패거리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부패정권과의 결연한 절연에 머뭇거리고 있다.또한 이미 청산되었어야 할 김영삼전대통령비호세력에 아부하여 부산.경남의 지지를 구걸하는 행태에서는 지역주의의 재판을 보는 듯하다.더 나아가 부산시장을 추대하고,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를 물색하는 태도는 현재 진행중인 국민경선제나 대의원대회를 무시하고 과거의 낙점시대로 되돌아 가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일으킨다.새로움이 없는 세대교체론, 이것도 새로운 정치실험일까?/ 진봉헌 (전주지방변호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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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5.20 23:02

[전북칼럼] 두 농부의 교활한 지혜

미국 캔서스주의 어느 한적한 농촌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농부가 황소, 돼지, 칠면조를 한 마리씩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황소는 이제 너무 늙어서 일도 제대로 못하니 잡아서 스테이크로나 구워 먹을 생각으로 어느 날 밤 이 농부는 도끼를 들고 서서히 외양간으로 갔다.그런데 이게 웬 재변인가. 그 늙은 황소가 "이 늙은 소를 죽이셔도 고기 맛은 별로 일 것이니 저를 살려주시면 비밀 한 가지를 알려드리지요."라고 애걸한 것이었다. 그 황소는 왈 "차라리 저 칠면조를 잡으셔서 그 발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시면 언제 어디를 가셔도 행운이 따릅니다."이 농부는 귀가 솔깃해져서 도끼를 들고 닭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랬더니 눈치를 챈 칠면조 왈:「제 목숨을 살려주시면 한 가지 신기한 비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저 돼지를 잡으셔서 그 가죽으로 지갑을 만드시면 언제나 돈이 가득 합니다.이 잔꾀에 넘어간 농부는 이제 다시 도끼를 들고 돼지우리로 가니 역시 마찬가지로 돼지 왈 "아, 저렇게 큰 황소를 두시고 이 못난 돼지를 잡으신다니, 그러시지 말고 제 말씀을 들으세요. 저 황소가 워낙 늙어서 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죽으로 트렁크를 만드셔서 여행을 떠나시면 평생 가고 싶은 곳에 어디나 무사히 가실 수 있지요."한 바퀴 돌아온 이 농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며칠 뒤에 칠면조 발, 돼지 가죽 지갑, 그리고 소가죽 트렁크를 들고 훨훨 여행을 떠나고 말았다.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서로를 비방하고 흠집을 내면 모두 다 같이 망한다는 것일게다. 요즘 우리 정치 판을 연상케 한다. 정치 판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통폐를 연상케 한다. 물론 인간사회에는 어디나 있기 마련이지만 문제는 정도의 차이다.검찰, 경찰, 민원당국에 들어오는 투서와 무고 등이 이웃 일본에 비하여 100배가 넘는다는 통계가 보도된 적이 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배고픈 것은 견뎌도 배아픈 것은 못 견딘다.'는 창피스러운 말이 있다.남북통일도 여지껏 안되고 있는 까닭도 이러한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면 자학적이라고 할까? 해방 후 국토가 분단된 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통일은 고사하고 우리는 혈육의 생사 여부도 모르고 있다가 이산가족의 극소수만이 이삼일동안 상봉하여 눈물바다를 이루다가 다시 헤어져야하는 단장의 슬픔을 겪는다.이제는 모두 오래 전에 통일된 월남이나 독일과 같은 다른 어느 분단국가에서도 볼 수 없었던 비극이다. 그래서 밖에서는 우리의 이러한 사정을 어떻게 보고 있는 지 가히 짐작이 간다.이 글의 제목을 '두 농부의 교활한 지혜'라 했으니 또 한 농부의 교활한 지혜를 보자. 어느 사람이 한산한 시골길을 가다가 자동차가 얕은 개천에 빠졌다. 궁지에서 당황하고 있을 때 한 농부가 큰 황소를 몰고 지나가다가 이 딱한 사정을 보고 기꺼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것은 밧줄을 자동차에 매어 황소가 끌어올리는 지혜였다.그런데 밧줄을 맨 다음 그는 '쌤쓴(소 이름)아, 이영차, 이영차' 하고 구령을 하는데 웬일인지 황소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트로이야, 이영차, 이영차」하고 고함쳐도 황소는 역시 막무가냈다. 세 번째는 '마이크야, 이영차, 이영차'하고 구령을 하니 그 황소는 그때서야 자동차를 거뜬히 끌어올렸다.왜 두 번이나 다른 소 이름을 불렀느냐고 묻는 질문에 이 농부 왈 "마이크는 두 눈을 못 보는 장님이라서 처음부터 자기이름을 부르면 왜 힘든 일은 자기에게만 시키느냐는 불만으로 움직이지 않으나 눈 뜬 다른 소들이 못하는 일도 자기는 해낸다는 자존심을 이용하려고 있지도 않은 다른 소 이름을 불렀노라."고./ 박춘호 (부경대 석좌교수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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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5.10 23:02

[전북칼럼] 새, 그리고 나무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딱새 한 쌍이 찾아와 집을 짓고 있다. 초등학교 안에서 새가 집을 짓고 새끼를 안전하게 키워서 나가는 새는 높은 곳에 집을 짓는 까치말고는 힘들다.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이상한 것들을 찾아내는 아이들의 수많은 눈을 피해가며 새가 집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따금 새가 집을 짓는 것을 보고, 우리 학교 어디에 지금 새가 집을 짓고 있으니 새집을 건들지 말자.새도 생명을 어쩌고저쩌고 운운... 하는 말을 절대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새가 새 집을 들랑거리는 것을 나 혼자만 보고 있다고 좋아 하지만, 아이들 중에 누군가 새집을 어떻게 했다는 고자질이 금방 들어오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 저 딱새는 집을 짓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오래 되었다. 아마 새 집을 거의 다 짓고 알을 낳았는지도 모른다. 딱새 집은 우리 학교 이층 변소 바로 앞 처마 밑 홈통이 시작되는 곳에 있다.처마와 홈통 사이 아주 작은 틈을 드나드는 것을 나는 변소에서 늘 보는데, 아이들은 키가 작아 그 새집이 보이지 않은 모양인지 보고도 그 곳이 너무 높아 어찌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이들과 함께 새가 새집으로 마른 풀을 물어 나르고, 새끼에게 줄 벌레를 물어 나르는 것을 함께 보며 신기해하고 싶다.그러나 절대 그럴 수는 없다. 저대로 조금만 두면 이제 작은 새 새끼들이 노란 주둥이로 어미 새의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살구나무에 살구가 샛노랗게 익을 무렵이면 딱새 새끼들이 집을 나와 살구나무 가지 사이를 포롱포롱 날아다닐 것이다.대여섯 마리의 작은 새들이 여린 날개로 날아다니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럴 때까지, 저 딱새가 알을 까서 새끼들이 날아다닐 때까지 안전하기를 나는 빈다. 그리하여 아이들과 내가 창가에 나란히 서서 살구나무 가지 사이로 날아다니는 작은 딱새들을보기를....나는 올해도 2학년을 가르치게 되었다. 우리 반 2학년은 모두 일곱 명이다. 이 글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를 한마디만 하자면 우리 반 일곱 명중에 4명은 이 아이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내가 가르쳤다.아무튼 나는 이 아이들에게 자기 나무 한 그루를 정하라고 했다. 자기 집에 있는 나무든, 자기 동네에 있는 나무든, 앞산에 있는 나무든, 아이들은 금방 자기 나무를 정했다. 경수는 자기 마을에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자기나무로 정했다.충용이는 자기 집 앞에 있는 멋들어진 소나무를 자기나무로 정했고, 채현이는 자기 집 뒤 안에 있는 감나무를 자기 나무로 정했다. 주인이는 자기 집 앞에 있는 작은 소나무를, 호영이는 자기 아버지가 심은 살구나무를 자기 나무로 정했고, 은철이는 자기 집 옆집에 있는 자두나무를, 마지막으로 산영이는 자기 집에 있는 은행나무를 자기 나무로 정했다.우리들은 이제 자기 나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늘 눈여겨보기로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나의 나무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아침과 저녁 내 나무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꽃이 피고, 잎이 피고, 열매가 열고, 단풍이 들고, 잎이 지고, 비가 오고! ,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새가 찾아오고, 달이 찾아오리라. 아, 한 그루 나무에서 일어나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아이들은 이제 때때로 자기 나무를 바라 볼 것이다. 집에 갈 때 경수는 그 느티나무 아래 앉아 느티나무 아래를 흐르는 작은 시냇물과 시냇물 건너 작은 들을 보리라. 수많은 잎새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을 보기도 하리라.이 세상에 자연 만큼 위대한 스승은 없다. 나는 아이들에게 짧은 시간이지만 무엇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생각을 표현해 보는 평화로움을 갖게 하고 싶다. 나무 가지에서 가지 사이로 날아다니는 새 새끼를 여럿이 함께 보는 일은 즐겁고도 행복한 일이다./ 김용택 (시인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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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5.03 23:02

[전북칼럼] 전북경제가 사는 길

지난 6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산업생산의 5% 이상을 차지하던 전북경제가 최근에는 2%미만의 경제로 추락하였다. 공업화, 산업화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전라북도는 앞으로 나아가기는 커녕 오히려 후퇴하고 만 것이다.이처럼 전북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크게 감소하고 인구가 타지역으로 유출되면서 구조적 정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원인으로는 정부의 편중화된 공업화정책과 재정 및 금융을 비롯한 각종 정책과 산업기반시설투자의 일부지역 편중에서 비롯되는 차별적인 정책 때문이었다.그리고 전북지역의 산업구조는 전국과 비교해서 농림어업의 비중이 높고 광공업이나 기타 산업비중이 낮은 편으로 이와같은 전북지역 산업구조의 취약성과 함께 도내 금융부분의 취약함이 전북경제가 낙후원인으로 작용되었다고 본다.전라북도에는 무엇보다 기업체가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해말 전라북도내 법인수는 전국대비 3.77%인 9천여개 업체에 불과하다. 특히 도내 제조업체수는 3,260여개 업체에 그치고 있다. 이 가운데 대기업은 겨우 28개업체에 불과하다.한편 전북지역 금융기반을 보더라도 전북지역의 수신 및 여신이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인구나 지역내총생산 등에 비해 매우 저조하다. 이처럼 전북의 금융비중이 저조한 것은 취약한 산업구조로 인한 낮은 소득 수준과 대기업 및 중견기업의 부족에 기인한다.전북지역 소재 기업체 등이 이용할 수 있는 총제적인 자금의 양이 줄어드는 등 지역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는 자금의 역외이동을 방지하고 자금의 역내 환류를 유도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우량기업 유치활동을 경주해야 한다. 외부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유인책을 제시해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지방에 소재함으로써 감수해야 하는 제반비용을 상회하면서 타지역보다 비교우위에 설 수 있는 수준의 혜택이 필요하다.지역여건에 걸맞는 친환경적이며, 고부가가치 산업을 위주로 수도권 소재 대기업이나 외국인 투자기업을 적극 유치해야 한다.현재 외자유치를 위한 인센티브 제도가 운영되고는 보다 과감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기업하기 좋은 전북' '투자하기 좋은 전북'을 만들기 위해서는 타시도의 사례를 집중 분석하고 벤치마킹할 필요도 있다.기업과 외자유치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투자유치 추진역량을 제고해야 한다. 또한 지역 실물경제에 대한 금융지원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주로 지역사회의 상공인들이 주주로 구성되어 있는 지방은행과 지역사회간의 상호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이제 과거의 방식, 과거의 사고로는 전북경제 회생의 길을 찾는 것이 어렵다. 급변하는 경제환경과 시대적 여건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도 이제 글로벌시대 전문경영이 필요한 시점이다.전북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비전제시가 필요하다. 환황해권 시대를 맞아 전북 서해안지역을 대중국 교역의 전진기지로 육성하고 새로운 산업벨트로 발전시킴으로써 전북발전의 기폭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또한 투자환경을 개선해 기업과 자본을 적극 유치하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하여 지역경제를 튼튼히 해야 하며 지역적 여건과 특수성을 감안해 농수축산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서비스산업과 관광, 문화산업을 육성해 산업기반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전북경제의 도약을 위해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권위적이고 전시행정과 예산낭비를 초래하는 잘못된 행정의 모습이 아니라 효율성과 생산성을 중시하는 기업마인드가 필요하다. 경영마인드를 바탕으로 '전라북도'를 세일즈하고 기업과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세균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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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5.01 23:02

[전북칼럼] 세계화의 의미

과거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절에 나라걱정을 했던 이들의 가슴속에 맴돌던 단어가민주화였다면, 요즘 지식시대를 맞이해서 우리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 바로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단어 일 것이다.21세기는 지식시대로서 정치, 경제적, 사회적인 면에서 국가간에 모든 장벽이 무너져 내리는 세계적인 현상 속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학자들은 세계적으로 총제적인 생신액의 증가보다 2배나 빠르게 무역액이 증가되고 나라간의 해외직접 투자액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현상자체를 세계회의 전진속도를 나타내는 척도로 보고 있는 것 같다.이렇게 보면 우리 나라도 GDP에 대한 수입+수출액 비율로 나타내는 대외 의존도 면에서 70%가 넘을 뿐 아니라, 주식시장을 보더라도 외국인의 소유가 상장주식의 30%가 넘어선지 오래된 상황이고 보면 최소한도 세계화 진도로 따져 선진국에 속하지 않을까?그러나 세계화의 척도를 몇 개의 한정된 지표로 따질 문제는 아니다. 대외의존도가 20%미만이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소유주식 비중이 10%가 안 된다 하여, 미국을 세계화 면에서 후진국으로 낙인찍을 수는 없다.경제의 양과 질 그리고 내수시장의 크기, 그리고 자원의 보존정도, 인구 등 나라마다 다른 여건들이 작용하여 외형적인 경제 지표를 서로 다르게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정리 해둘 것은 우리 나라와 같이 경제규모나 인구 그리고 자원 면에서 유리하지 못한 나라일수록 세계화의 추세에 능동적으로 편승해서 세계화를 통한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생존 전략이 필요 한 것이다.많은 사람과 돈, 기술, 정보가 거침없이 우리에게 밀려오도록 해야 한다. 우리 나라를 오고 싶어지는 곳, 즐기고 싶고 나아가 살고 싶어지는 곳으로 만들어야 잘 살수 있게 된다.우리 주변에 밀려있는 불합리하고도 국제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규제들은 물론이고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외국인, 외국 기업에 대한 감정적인딧세도 시급히 정리할 일이다.이렇게 해서 화교들이 발붙이지 못하고 모조리 떠날 수밖에 없었던 세계 유일의 나라라는 오명도 하루속히 씻어야 된다.외국인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아무런 불편 없이 우리거리를 활보 할 수 있을 때,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 때 우리들도 세계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국위를 높이고 돈도 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이 세계화의 척도요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 현상으로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며칠 전 우리에게 큰 피해를 주었던 황사현상이 생각난다. 기상이변으로 인해 황사마저 국경이 없이 피해를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환경재난이 국경 없이 여러 나라에 피해를 준다는 사실은 앞으로 환경 문제에 있어서의 국제적 협력과 공동대응 노력이 세계화의 목표아래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될 것이라는 교훈도 아울러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강현욱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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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4.30 23:02

[전북칼럼] 영어가 무엇이길래

우리는 불행히도 4천만이 태어날 때부터 외국어라는 십자가를 메고 있다. 이왕 머슴살이 팔자라면 큰 집 머슴살이를 하라는 속담이 있다. 아세아아프리카의 많은 후진국들이 제2차 대전 후 독립을 쟁취했는데, 그네들은 유럽 열강 그 중에서도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노릇을 했다.그래서 영어와 불어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36년간(정확히는 35년) 일본의 식민치하에서 배워둔 일본어는 아직 영어나 불어 정도의 국제성이 없다. 한편 우리에게는 일본어의 중요성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오늘날 영어는 국제어로서 확고한 위치에 있다. UN이 공용서로 쓰고 있는 아랍어, 중국어, 영어, 불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 6개 국어 중에서 단연코 우월한 위치에 있다. 전세계 인터넷 교신의 80%가 영어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이 점을 뒷받침해 준다.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1945년의 해방 후 3년간의 미국 군정 후로도 우리는 미국과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그리고 제2차 대전 후 국제사회에 있어서 미국과 영국의 압도적인 영향력 때문에 영어는 우리에게 국제교류에 있어서 단연코 우월한 제1외국어의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우리의 영어수준은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위치에 아직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왜 우리가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투자하고도 그로부터 얻는 대가는 실용적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음은 우리가 족히 알고있는 사실이다.간단히 말해서 언어습득은 습관으로 해야하는데 우리는 지식으로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구차한 설명은 더 늘어놓지 않겠다.우리가 영어를 피부에 느끼게 접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미국 군정 때에 비롯되었다. 모든 공문서는 군정청에서 영어로 전달되었다. 따라서 위로 보고하거나 의견을 내는 것도 모두 영어로 했다.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자 미국은 9월 초에 일본과 그 모든 영토를 점령하여 군정을 폈다. 1945년 9월 7일에는 연합군 최고사령관인 더글러스맥아더 미 육군 원수의 그 무시무시한 소위 「포고령 제1호」가 「조선인민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그 내용인즉 이제 조선에도 미국 군정이 실시되니 모든 조선인들은 딴 생각말고 그의 명령에 따르라는 것이었다.이 포고령은 물론 영어원문과 한국어와 일본어 번역문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맨 끝에 맥아더 사령관의 계급은 영어에는 미합중국 육군원수로 되어있고 한국어와 일본어 번역에는 육군대장으로 되어있다. 이 착오의 원인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영어의 원수는 「General of the Army of the United States」이고 육군대장은 「General, the United States Army」인데 이것을 약간 혼동한 것이었다. 맥아더는 1944년에 이미 5성 장군으로 즉, 원수로 승진했던 것이다.이 포고령에는 이와 같은 것 외에 몇 가지 오역이 있다. 아마 일본어 번역문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들도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그 당시 일본의 영어수준도 가히 짐작이 간다.그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50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왜 영어라는 십자가 밑에서 벙어리 흉내를 내거나 이빨 썩은 아이 문어 다리 씹듯 종일 물고만 다니는지 왜 한 번쯤 싹둑 짤라먹지 못하는지 생각할수록 안타깝다. 영어가 무엇이길래 말이다./ 박춘호 (부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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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4.19 23:02

[전북칼럼] 봄이 오는 강건너 마을

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 앞 강 건너에는 전형적인 마을이 산자락에 포근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나는 이 학교에서 22년째 근무를 하고 있고, 이 초등학교를 6년 동안 다녔으므로 강건너에 있는 물우리라는 마을을 28년 동안을 바라보고 있는 샘이다. 어디 26년뿐이겠는가. 다른 학교로 근무처를 옮겨도 이 물우리 마을을 늘 바라보고 다녔으니, 이 마을을 나는 눈감고도 그려낼 수 있다.이 마을은 섬진강 가에 있는 마을 중에서 가장 마을다운 형식을 고루 갖추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에서 바라보면 오른쪽으로는 여러 그루의 소나무가 잘 가꾸어져 있다. 마을의 큰 나무나 큰 바위들이 다 전설과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듯이 이 소나무들도 전설을 가지고 있다.전설도 전설이지만 이 소나무 숲은 마을의 북쪽에 있음으로 겨울 추운 북풍한설을 막기 위해 가꾸어 놓았을 것이다. 그 소나무에 사병들의 계급장 표시 모양의 큰 상처들이 있는데, 일제 시대의 송진을 받아 간 흉터이다.마을 오른 쪽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몇 그루 서 있다. 옛날에는 이 나무들이 숲을 이루었는데, 사람들은 이 나무들을 당산나무 또는 정자나무라고 통칭한다. 이 나무숲의 나무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나무가 느티나무이고, 팽나무, 서나무가 많다. 이 마을에는 멧방석만한 나무 그루터기가 있는데, 그 나무는 참나무였다.참나무로도 사람들은 정자나무를 삼았던 것이다. 가난하고 남루한 초가 마을 앞에 서서 커다랗고 우람한 이런 나무들이 단풍물이 들었다가 잎이 질 때까지 잎을 피우고 서 있는 모습은 마을을 풍요롭고도 포근하게 해 준다.조촐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이 아마 그렇게 풍성했을 것이다. 몇 그루의 아름드리 느티나무 밑에는 옛날 당산제를 지낼 때 돼지머리를 묻었던 큰 무덤 모양의 가묘도 있고, 큰 느티나무 밑에는 제사를 지낼 대 쓰던 바위 상이 있다.이 마을에는 옛날부터 불이 자주 났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옛날 내가 어렸을 때 유독 불이 많이 난 마을이 이 마을이었다. 유독 불이 잘 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분분하지만, 아무튼 이 마을 사람들은 마을 앞에다가 작은 저수지를 하나 만들어 놓았다. 동네 앞에가 저수지가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이와 해가 있겠지만, 불의 두려움에 대한 궁여지책이 잘 드러난 표시이다.이 마을 앞 강 건너에는 회문산이 있다. 마을 코앞에 커다란 산이 떡 버티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갑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을 앞이 너무 툭 터져도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또 마을 앞이 툭 터진 그 어느 곳에 느티나무를 한 그루 심어 사람들의 휑한 마음을 달래기도 하는데, 이 마을 앞은 너무 큰 산 때문에 또 위압감을 느낀다.그래서 사람들은 이 마을 앞에 커가란 나무들을 심어 산을 가렸다. 이 마을 앞 나무숲은 특이하다. 큰 나무들을 심어 놓은 곳, 그러니까 몇 그루의 느티나무, 참나무가 있는 곳에 작은 동산이 있는 것이다. 이 동산은 마을의 안산 역할을 해 주고 있는데, 절묘하게도 마을을 안심 시켜주는 작은 역할을 하고 있다.이 마을은 이렇게 마을 형식을 고루 갖춘 마을이다. 임실 회문리에서 순창 구미리까지는 농민들이 마을 공동체를 가꾼 이런 흔적들이 널려 있다. 시급히 보존해야 할 소중한 유산들이다.정월이면 동네 사람들이 풍물굿을 하는데, 우리들은 운동장 가에 나란히 서서 마을 고샅길을 돌아다니는 풍물패들의 울긋불긋 굿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흥에 겨운 동네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강을 건너오면 우리들도 고함을 치곤 했다. 물동이를 이고 가는 동네 처녀들의 모습이 보였고, 학교 뒷밭에 있는 감을 따먹으면 우리 고모님이 욕을 하던 고함 소리가 학교까지 들려 왔었다.좋은 시절이었다. 그 아름다운 강 마을에 지금 봄이 오고 있다. 텅텅 빈 강 마을의 봄이 하루가 다르게 꽃으로 번진다. 봄이 저렇게 오던 날 마을 앞에 있는 논두렁으로 처녀들이 나물을 뜯으러 와서 불던 버들피리 소리가 그립다. /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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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3.29 23:02

[전북칼럼] 골목길에서 노는 아이들

토인비는 역사를 「문명의 흥망성쇠」로 보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정보기술의 급진적인 발전이 기존의 문명을 파괴하고, 낯설고 새롭기만 한 새 질서와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해 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옛 문명이 망하고 전대미문의 새 문명이 들어서는 문명 바꾸기가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96년 1초에 1조번의 계산능력을 가진 컴퓨터가 나오는가 했더니 요즘에는 500조번의 계산능력을 가진 슈퍼 컴퓨터가 곧 개발된다고 한다. 이렇게 빨리 진행되는 기술의 발달은 급기야 TV와 컴퓨터 그리고 전화가 하나로 결합되어 언제 어디서나 정보의 접근활용이 가능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우리도 어차피 급진전되고 있는 정보화 기술 발전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초고속 정보망을 일찌감치 깔아놓은 덕분에 선진국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이 시점에서 잊어서는 안될 진리는, 어떤 문명 어떤 역사의 발전과정도 반발이나 부작용 없이는 진행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정보화 사회의 전개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근심은 여러 방면에서 나타날 수 있다. 사회적 권위가 붕괴될 수 밖에 없다거나, 정보에 접근가능한 사람과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 간의 소득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등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점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들보다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우리 어린이들의 인간성 상실이 가속화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우리는 어린 시절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골목에서, 개천가나 산자락에서 떼지어 놀곤했다. 친구들과 몸을 비비며 마주보고 서로 부둥켜안고 딩굴며 나이를 더해가는 것이었다.여기서 인간 사이에 따뜻이 스미는 정을 배웠고, 눈물과 환희를 체득했다. 친구가 어려울 때 돕거나 서로 사랑을 나누는 마음을 키웠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골목길 놀이보다 몇십배나 재미있는 텔레비에, 그리고 원하는대로 즐길 수 있는 인터넷에 푹 빠져버린 것 같다. 친구나 부모형제, 선생님들의 눈빛을 대하며 부담스럽게 대화할 필요가 없어 좋고, 귀찮은 간섭도 받을 필요가 없이 듣고싶고 보고싶은 재미의 보고를 얼마든지 섭렵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천국이 아닌가?어린이들의 「인터넷 아니면 놀거리가 없다」는 주장에 어른들은 「인터넷이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는 할 일 없는 주장만으로 서로 평행선만 달릴 일은 아니다.우리 어린이들은 21세기 정보화시대를 이끌어갈 주역들이다. 따라서 기성세대들은 어린이들을 첨단을 달리는 기술인으로 키워나가야 될 책무를 지고 있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우리 어린이들의 메말라가는 인간성 회복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일년에 한두 번이라도 농촌에 보내서 생활실습을 시키거나, 토담집 초롱불 밑에서 가족끼리 동화책을 읽기도 하고, 어려운 이웃이나 육아원양로원에 보내 봉사하는 시간도 마련해 줌이 어떨까? 이렇게 해서 성공을 「돈많이 버는 것」이라고 믿게 하기 보다는 남을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성공이라는 생각도 갖게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나는 요즘 초저녁 달빛밝은 언덕에 서면 조용히 귀를 기울여 골목길 아이들의 왁자지껄 웃어대는 소리를 듣고 싶어 기다리는 버릇이 생겼다. 이것은 잘 살면서도 서로 남을 위해주는 포근한 사회를 보고싶은 바램 때문인 것이다./ 강현욱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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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3.22 23:02

[전북칼럼] 기다리는 자와 만드는 자

영국의 저명한 일간지 가디언 (The Guardian)의 3월 2일자에는 프랑스의 문호 빅터 휴고 (Victor Hugo: 1802-1885)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기사가 있다. 금년은 휴고 탄생 200 주년인데 그레이엄 롭 (Graham Robb)이 쓴 휴고의 전기를 소개하는 기사로서 그 내용에는 몇 가지 우리의 관심을 끄는 점이 있다.우선 휴고의 파란만장한 생애 중 역경에서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만들어 불휴의 명작 몇 편을 썼다는 점, 그리고 무려 백오십년 전에 「유럽 연합국」이라는 꿈을 꾸었고, 나아가서 유럽의 「단일 통화」를 제의했다는 사실은 정확한 예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럽은 이미 단일국가체제로 들어가고 있으며 단일통화는 현재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우리에게 휴고는 우선 그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르 미제라블 (Les mis rables : 1862)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19세기 중엽의 프랑스 문단에 낭만주의 운동의 선구자로서 명성을 쌓은 한편, 정치적으로는 열렬한 공화주의자로 활약했기 때문에 나폴레옹 3세의 분노를 사게 되어 20년 (1850-1871)이상의 기나긴 세월을 망명지에서 보내게 되었다.그가 망명한 곳은 프랑스 북쪽 연안에 있는 영국령 채널섬이었다. 이곳은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있어서 망명생활 중에도 양국의 정치정세를 소상히 알 수 있어서 휴고에게는 매우 편리한 곳이었다.휴고의 걸작들은 모두 이 망명생활 중에 쓴 것들이었다. 즉, 그는 자기의 역경을 잘 활용하여 좋은 기회로 만들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불요불굴의 의지는 오히려 그러한 역경에서 더욱 큰 업적을 낳게 한 것이었다.역경을 기회로 활용한 저명한 인사들은 휴고 외에도 있다. 예를 들면 피카소는 프랑코장군이 국왕을 퇴임시키고 독재정권을잡자 오랫동안 프랑스에 망명하여 많은 명작을 남겼고, 헝가리의 민젠티(Mindszenty) 추기경은 사회주의 정권에 저항하여 부다페스트의 미국대사관에 망명하여 무로 15년 이상의 끈질긴 저항생활을 하여 유명해졌다.휴고에 관해서는 몇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은 그가 르 미제라블의 원고를 완성하여 출판사에 보내면서 출판이 될 지 않될 지 자못 초조하여 편지 대신?표를 그려서 보냈는 데 출판사로부터의 답장 역시 간단히 !표만을 그려서 보내왔다고 한다.천하의 명작들도 작가가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는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노벨상을 받은 펄 벅의 「대지(大地; The Good Earth:1931)」나 마가레트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1936)」등은 첫 쪽 혹은 첫 장을 30번-40번 고쳐 썼다고 전한다.한편 어느 작가는 원고를 몇몇 출판사에 보냈으나 보낸 곳마다 모두 퇴짜를 맞고 울화가 터져서 편집부에서 까지 읽어나 보고 퇴짜를 놓는지 궁금하여 원고 중간의 몇 쪽을 풀로 부쳐서 보내보았다. 반환된 원고의 풀로 부친 곳이 그대로 있어서 전화로 강력히 항의하자 편집자 왈 「곯은 달걀은 속까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지요」라고 능청맞은 대꾸를 했다고 한다.작가 뿐 아니라 편집자들도 때로는 퉁명스러운 문의를 받는다고 한다. 영국의 어느 잡지 편집인은 어느날 「구독료를 현물로도 받느냐」고 전화로 문의하면서 자기는 돈은 없지만 자기의 작품으로 지불할 수 있다기에 그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자 「나는 관을 만드는 목수」라고./ 박춘호 (부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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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3.15 23:02

[전북칼럼] 진짜 문화도시에 살고 있을까

이런 저런 일로 여기저기 문화 행사에 참여해 문학강연을 하게 된다. 우리 나라 어느 도시를 가나 도시의 입구쯤 어딘가 에는 커다란 간판들이 눈에 뜨이는데, 하나 같이 우리 도시가 문화의 도시임을 알리고 있다. 도시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문화의 도시임을 알려 우리들이 결코 돈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깊은 뜻으로 나는 해석한다.그러나 어떤 행사든 행사장엘 들어가서 한참만 앉아 있으면 나는 정말이지 그 행사장을 도망쳐 나와 그 도시 어딘가에 걸려 있는 문화도시라는 간판을 때려 부셔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솔 때는 굴뚝 연기 같아짐을 어쩔 수 없다.행사가 시작 될 시간이 한참이 지났는데도 사람들은 웅성거리기만 하고 있으면 사회자가 나타나서 아직 시장님, 또는 군수님, 또는 도지사 님이 오시지 않아 행사가 잠시 지체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솔직히 그때부터 열을 받기 시작한다.내가 그렇게 열을 받고 있는 사이 ,문화행사장과 어울리지 않는 반듯한 양복, 무쓰를 잔뜩 바른 짧은 머리의 사내 몇이 손에 휴대폰을 들도 서성인다. 그리고 방송국 사람들 몇 명도 카메라를 들고 서성인다.몇 번 더 사회자의 안내 방송이 지나간 뒤 어느 순간 장내가 수런거리고 카메라맨과 짧은 머리들이 부산해지면 드디어 지방자치단체장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치단체장은 행사장의 상석에 앉는다.그 행사의 대표들은, 하나 같이 입을 맞춘 듯 인사말을 통해 늘 이렇게 말한다."바쁘신 데도 불 구하시고 자리를 빛내주신 시장님, 또는 군수님, 또는 도지사님.....운운."카메라들이 부산해진가 싶으면 그 바쁘신 분이 단상에 오른다. 그 분, 그러니까 문화의 도시라는 간판을 내건 장본인들의 축사 말씀은 어쩌면 또 그렇게나 하나 같이 의례적이고, 상투적이고, 하나 같이 구태의연하고, 똑같! 이 지루한가.그렇게 문화와 예술로 도배한 축사 말씀을 끝낸 그 바쁘신 분은 단상을 내려옴과 동시에 그 길로 행사장을 그냥 빠져 나가버리고 만다. 그 바쁘신 분이 행사장을 무례하게 빠져나가면 카메라, 검은 양복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린다.나는 정말 진짜 열 받는다. 저렇게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몇 마디의 말을 하려고 도대체 그 바쁜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왜 왔단 말 인인가. 그렇게 바람을 팽팽하게 불어넣으며 와서 바람을 쏙 빼며 갈려면 오지나 말지 왜 그렇게 왔다가 가버린단 말인가.그 바쁜 분을 왜 기다렸던가. 그 분은 이 행사 진행을 돕는데 얼마간의 돈을 보태 준 것이다. 나는 그 돈이 그 바쁜 분들의 사비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정말 왜들 이러는가. 정말 가난하다고 자존심까지 내 팽개치면서 이런 행사를 치러야 하는가. 나는 저 어깨가 축 늘어진 그 도시의 문화예술인들이 이 행사를 치르기 위해 시청과 군청과 또는 도청을 드나드는 모습을 상상하며 또 열받는다.그러다가 보니, 그렇게 오랜 세월 문화를 행정가의 입장을 앞세우는 관과 행정가의 예산을 바라보는 예술인들이 함께 애호하고 사랑하다보니, 주객이 전도되어 얼토당토않게도 그 지역의 문화를 낡은 간판이 대신해버린 것이다.정말이지 가난해도 좋다. 그까짓 행사 안한다고 문화예술 다 죽는 것 아니다. 그렇게 손벌리지 말자. 그 손이 어떤 손인가. 제발 돈 보다 자존심을 앞에 챙기자. 바쁜 분들도, 돈 주고 행사 장엘 와서 표 구걸 말라. 돈에 의지하면 큰코다친다.보아라. 문화예술을 우습게 알고 함부로 하는 일들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있는 우리들 코앞에서 숱하게 벌어지고 있지 않는가. 그게 자업자득인 면이 없지 않는가 문화예술인들도 한번 깊이 반성해 볼일이다. 정말 그럴라면 나 그 알량한 문화(?) 진짜 안 할란다.새 봄이 세상에 오고 있다. 집집이 꽃들이 담장 위로 만발하리라. /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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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3.01 23:02

[전북칼럼] 가깝고도 먼 나라 '중국'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보면, 정조4년(1780년) 청나라 사신으로 6월 24일 한양을 떠나 8월 1일 북경에 도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어림잡아 40여일이나 걸린 셈이다.북쪽에 전란이 발생하거나 불안한 일이 생기면, 불가피 범선을 이용, 며칠을 항해한 후 중국땅에 도착하여 육로여행을 계속해야만 했으니, 오늘날 1시간반이면 도착하는 항공편을 이용하고 있는 우리의 형편에서 보면, 상상못할 정도로 두 나라 간의 거리가 가까워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이렇듯 시간과 공간 개념에서는 지척에 다가 온 중국이건만, 아직도 선뜻 가까운 나라라는 인식이 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수교한지가 10년 밖에 안된 데다가, 과거 오랫동안 벌어져 온 이념적 간격과 갈등, 언어장벽 등이 실제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나라이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이유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GDP)이 900달러도 안되는 후진국이라고 중국을 과소평가해 온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21세기 벽두에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중국은 우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세계 경제대국으로 힘차게 부상하고 있다. 앞으로 현재와 같은 7%의 성장속도로 20년간 경제를 키워나갈 경우, 미국과 EU를 제치고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예견되는 것이다.지금의 상황에서 중국을 들여다 보더라도, 13억 인구 중 우리나라 국민소득 수준보다 높은 인구가 거의 남한의 인구에 육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화교가 가지고 있는 자본이 2조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그 뿐인가? 전세계 TV생산의 36%, 에어컨생산의 50%, 세탁기생산의 25%를 차지하여 일본을 따돌려 세계 1위에 올라서 이미 무역규모 면에서 세계 제7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특히 우리나라와의 관계에서 보면, 200억달러에 가까운 수출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 수출상대국으로 뛰어 올랐고, 해외투자도 미국 다음으로 10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음을 상기할 때,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 중국과의 인적물적기술적 교류와 협력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 확실시됨으로써 미국이나 일본보다 우리나라에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로 다가올 것임에 틀림이 없다.더욱이 서해안의 중심에서 중국을 마주 대하고 있는 우리고장 전북으로서는 양국 간에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상호상승적인 성장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호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노동집약적이면서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의 중국으로의 이전과 같은 소극적인 방법보다는 적극적인 수출증대와 함께 중국의 무한한 관광수요를 끌어들이고, 경제교육 그리고 문화교류를 확대시키는 다각적인 협력방안이 차원높게 모색되어야 한다.군산항에서 주1회씩 운항하고 있는 자옥란호를 타고 황해를 가로질러 산동반도의 연대시까지 항해하노라면, 옛 어른들이 『고요한 밤시간에는 산동에서 개짖는 소리까지 들린다』고 하시던 얘기가 생각난다.이렇게 가까운 경제대국과 서로 협력해서 두 나라 모두 경제 선진국으로 발돋음할 수 있다면, 그리고 중국과 힘을 합하여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통한 평화무드가 조성될 수 있다면, 어느 지역 어느 나라에 국한된 경사가 아니라 세계 전체의 평화와 복지에 공헌하는 일이 아닐까?이런 관점에서 나는 먼저 중국어를 가르치는 특수외국어학교가 우리 전북에 설립되고 화교촌(china town)도 다시 대규모로 세워져 중국인들과 오손도손 사이좋게 협력하며 생활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강현욱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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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2.22 23:02

[전북칼럼] 책읽기

무슨 책을 읽느냐는 것은 각자의 직업, 취미, 생활환경 등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이야기 할 수 없다.물론 기본교양 도서 목록 등은 특히 교육기관 등에서 준비해 놓고 있지만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약간 익살스러운 속담에 활자화된 것을 송두리째 믿으면 바보가 되고 전적으로 믿지 않으면 더 큰 바보가 된다는 말이 있다.책을 어디서 읽느냐는 문제 역시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설문 조사 결과가 있다. 1995년 2월호 미국 독서클럽 뉴스레터에는 미국인들의 책 읽는 장소를 선호도 순으로 열번 째까지 순서를 다음과 같이 매겼다.즉 첫 째, 침대에서, 둘 째, 화장실에서, 셋 째, 응접실에서, 넷 째, 식당에서, 다섯 째, 기차 안에서, 여섯 째, 비행기 안에서, 일곱 째, 해변에서, 여덟 째, 자동차 안에서, 아홉 째, 공원에서, 그리고 끝으로 지붕위에서 였다고 한다.요즘 큰 서점에는 서가의 책을 꺼내서 오랫동안 읽어대는 고객들이 자주 눈에 띈다. 서점측으로서는 결코 반가운 일이 못된다. 그 책을 사가면 좋지만 다 읽어 버리면 살 필요도 없게 된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읽는다는 경우는 공중 화장실에서라는 뜻은 아닐게다.책을 얼마나 읽느냐는 문제는 읽는 사람의 독서속도하고 직접 관계 된다. 한 권을 1분내에 읽는 법이라는 책이 있다. 1986년에 일본속독협회(日本速讀協會)가 펴낸 책인데 그 나름대로 설득력있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이 협회는 전국적인 조직이 있으며 책 빨리 읽기 검정시험까지 하고 있는데 응시자의 수도 늘어나는 편이라고 한다.한 권을 1분내에 못지 않게 겁을 주는 것으로서 1년에 6백권의 책을 읽는 법을 1997년에 이게가미 다기우기 ( 井家上 隆幸 ) 라는 컬럼리스트가 펴냈다. 이 것도 내용을 자세히 보면 상당히 정연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우리는 지금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정보는 정보를 낳기 때문에 수 많은 정보 중에 본인이 필요한 정보를 찾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것이 가치 있는 정보인지 구분을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지혜가 필요하다.여기서 능력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라 빨리 많이 읽을 줄만 알아도 훌륭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고기 잡을 줄 모르면 무조건 막고 품으라는 속담도 있지 않는가 ?읽는 속도와는 관계 없이 책을 가장 많이 읽어야 하는 곳은 어느 나라에서나 대학사회일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우리 대학사회에서는 책을 많이 안 읽어도 무사히 넘어간다. 매우 걱정스러운 현상이다. 국제화시대니 하며 제법 국가경쟁력을 운운하는 우리가 실제면에서는 우물 안의 개구리인 것이다.게다가 외국어라는 십자가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을 보면 그저 안스러울 뿐이다. 외국어가 무엇이길래, 영어가 무엇이길래 말이다.끝으로 책에 파묻친 어느 시인과 그 아내의 애절한 대화 한마디. 죤 드라이덴 ( John Dryden: 1631-1700 )은 매일 밤 늦게까지 서재에서 책을 읽거나 원고를 쓰느라 아내에대한 관심은 안중에 없었다. 그 부인은 허구한 날 차나 끓여대는 하녀의 신세라고 한숨만 쉬다가 어느날 남편에게 나도 책이나 되었으면 당신의 관심을 끌텐데 하고 말하자 남편은 이게 말했다. 책이 되겠으면 연감이 되시오. 그러면 나는 매년 당신을 바꾸겠소다./ 박춘호 (부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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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2.15 23:02

[전북칼럼] 한반도 평화는 경제도약 지름길

부시 미국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밝힌 북한에 대한 '악의 축' 발언은 여러모로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이러한 동맹국의 발언은 한반도에서의 긴장과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는 것이다.또한 얼마 전 있었던 이회창 총재의 미국 방문이 부시 미국 대통령의 대북 강경 발언을 유도했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데, 만약 이러한 비판이 사실이라면 제1야당 총재로서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님은 분명하다.우리 국민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긴장의 조성의 경제회복의 기대를 뒤엎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미국의 911 반테러전쟁 기간 중에도 평화 분위기를 유지했던 한반도에 이회창 총재의 인식과 부시의 연두교서 발언이 불러일으킨 긴장 가능성에 대해 강력한 우려를 표명한다.나는 지난 7일 국회 민주당 대표연설에서 "미국이 지난 권위주의 시대에 독재세력의 손을 들어주었던 아픈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했고, 미국이 지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정중히 부탁했다.이회창 총재는 물론, 부시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기운에 찬물을 끼얹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국민은 미국의 태도변화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으며, 햇볕정책을 포기하는 내용의 변화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나는 8일 주한 미대사 허바드를 만나 이러한 의견을 강력하게 전달했고, 반테러 전쟁이 햇볕정책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설득했다.한국과 미국은 동맹국이다. 세계의 많은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미국의 입장과 이해관계를 고려하고 지지한다. 그렇듯이 미국도 한국과 한반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의 판단과 주장을 경청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정말 동맹국이 아닌가.다시 냉전의 장막이 한반도에 드리워지는 것은 불행한 일의 서막이다.20년전 레이건,나카소네,전두환 삼각 편대가 부시,고이즈미,이회창이라는 신냉전, 철의 장막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미국과 한국의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대두되고 있다.클린턴과 올브라이트가 주장한 대로 지금 미국이 택하고 있는 대북정책은 긴장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옳지 않다. 이것은 굉장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한반도 평화가 몇 십 년의 과정을 통해 이룩된 일임을 볼 때 더욱 그렇다.이번 주에 만난 경제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지금 막 살아나려는 경제에 딴지를 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부시의 태도에 굉장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었다. 바로 냉전과 긴장이야말로 경제회복, 경제도약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긴장이 조성되면 해외투자자들은 다른 나라로 떠날 것이고, 이제 막 바닥을 치려는 경제는 가라앉고 말 것이다.평화는 소극적인 대상이 아니다. 경제발전과 도약을 위한 필수적인 해결과제다.이회창 총재가 오늘의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한반도 평화와 경제회복을 위해 정략적 관점에서 벗어나 국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기를 바란다./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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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2.08 23:02

[전북칼럼] 21세기 기업이야기

어느 미래학자가 21세기가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어갈 지에 대해 확실한 답변을 요청받자 주저없이,「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했다던가?정보사회로 특징지어지는 21세기는 과거 산업사회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방향과 속도로 변화되고 있어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그러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들을 주의깊게 살펴보노라면, 짐작이 되는 변화의 여러 트렌드 중에서 유독 기업의 형태 변화에 관심을 갖게 된다.21세기를 지배하게 될 기업들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중생대에 지구를 지배했던 거구의 공룡들이 멸망하여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듯이, 정보화 시대의 상황변화에 기민하게 대응 치 못하여 덩치가 큰 대기업들이 몰락하는 반면, 비교적 작고 기술력이 있으며 소비자들 요구에 유연하고도 민감하게 적응해 가는 작은 규모의 기업들이 약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대기업들은 지금까지 막강한 정보력과 기술력, 그리고 자금력을 무기로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를 창조해 왔으나, 한편으로는 기업의 유연성효율성을 저하시키는 관료적 지배구조와 다단계의 의사결정 체계를 유지해 온 까닭으로 정보화시대에 소비자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기민하게 대응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이제는 작은 규모의 기업들이 노력하기에 따라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원격통신의 발달로 국제적 영업활동과 마케팅이 가능해져, 기술력만 뒷받침되면, 경쟁력 면에서 대기업에 뒤지지 않게 될 뿐만 아니라, 경제성이 있는 경우, 자금확보도 어느 때 보다 용이해 진 것이 사실이다.대영(大英)제국이 한 때 세계 도처에 식민지를 만들어 놓고 해가 지는 일이 없다고 호언했듯이, 대기업들은 세계 도처에 지사와 연구소를 만들어 놓고 해가 지지 않는 24시간 근무체계를 자랑해 왔지만, 이제는 이러한 경영체제가 방만한 조직에 따른 비능률과 고비용 때문에 오히려 경쟁력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요즘 솟아오르는 새 기업들을 살펴보자. 기존의 격식이나 운영체계가 무너지고 있다. 사장이 없이 팀장 몇 명이 팀웍을 통해 운영되는 회사들이 생겨났고, 상사와 부하 대신 고참과 신참 사원만이 존재할 뿐이다. 시(時)도 때도 없이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 경영진도 노동자도 강도높은 즉석교육훈련에 들어가고, 강의는 젊은 신참 전문사원이 맡기 일쑤다.격식을 갖춘 회사 없이도 프로젝트(project) 중심의 페이퍼캄퍼니(paper company)가 무수히 생겨났다가 돈을 벌고는 해체되는가 하면, 평생직장을 자랑하던 사람들은 계약직,임시직에 눌려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통합보다는 분할, 그리고 과감한 '아웃소싱'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수십 년 묵은 전통있는 대기업이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운 세상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회사가 크고 이름이 있다고 해서 자부심을 갖고 애사심(愛社心)을 발동하기에는 젊은 사원들이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특수분야에 맞는 전문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원들의 이동은 국경을 넘어 수시로 일어나기 시작했다.이런 상황에서 정부도 기업의 신규진입을 막고 부담만 가중시키는 구태에서 벗어나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규제자가 아닌 조정자로서 그 역할을 축소재정립해야 된다는 명제 앞에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옛말에 「신이 누군가를 파멸시키려 한다면, 계속해서 일정 기간 성공의 축복을 내린다」고 했다.잘 나간다고 뽑내던 미(美)일(日)등 선진국들이 거품에 쌓여 주춤거리는 사이에 동구(東歐)와 아시아 특히 중국의 약진이 눈에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神話)를 금과옥조로 믿어 온 대기업들이 「이제 이만큼 키웠으니 걱정이 없다」고 안심하는 순간 곧바로 기업의 퇴락이 시작된다는 냉엄한 현실을 깨닫고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강도높은 개혁과 변신을 계속해나갈 수 있을지가 주목되는 것이다. / 강현욱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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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1.25 23:02

[전북칼럼] 괴상한 경기대회

서양의 여러 지역에는 얼핏 보기에 괴상한 경기대회가 많이 개최된다. 우선 한가지 소개하자면 북유럽의 핀란드에서는 매년 마누라 업고 달리기대회가 열리는데 1996년에는 국내외에서 32쌍이 참전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전한다.이것은 옛날부터 내려온 전통적 민속행사인 데 그 연유가 흥미롭다. 도적의 두목이 도적들의 체력을 시험하기 위해서 곡식 포대나 돼지 등을 많이 메고 달아나는 훈련, 그리고 남의 아내를 납치하던 원시적 전통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그다지 자랑스러운 것은 못되지만 아직도 이러한 행사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고.입상자에 대한 상품도 매우 소박하여 1등 상에는 약간의 현금, 핸드폰 1대, 그리고 마누라의 체중에 해당하는 무게의 맥주 등이 고작이다.물론 이렇게 괴상한 경기대회는 유독 서양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봉건시대의 일본에는 여러 가지 소리로 흉내를 내는 「방귀대회」가 있었는데 뱀에게 물린 개구리 소리 흉내로 우승한 선수에게 겉보리 몇 말을 상으로 주었다는 기록도 있다.미국의 경우는 약간 색다른 경기대회가 많다. 즉, 음식 많이 먹기 경기다. 각 지역의 특유한 배경이 엿보인다. 가령 갈비로 유명한 텍사스의 갈비 먹기, 코넥티커트의 생굴 먹기, 오차이오의 닭 날개 먹기 등등 각 지방마다 다채롭다.이러한 행사를 주관하기 위해서 뉴욕에는 「국제 먹기대회 연합」 본부가 있다. 작년의 「핫도그」먹기 국제대회는 미국 뉴저지에서 개최되었는 데 외국의 예선에서 입상한 선수들 중에서 일본의 아리이 선수는 체중이 50키로 정도의 작은 몸인데 12분간에 핫도그 25개를 먹어치우는 바람에 세계선수권을 땄다.여러 가지 괴상한 경기대회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매년 미국 오하이오주의 버링턴에서 개최되는 「세계 거짓말 대회」일게다. 세계 각처에서 내노라하는 허풍쟁이들이 모여서 거짓말을 늘어놓는데 물론 악의 없는 말장난으로 재치를 부릴 따름이다. 입상작 거짓말 중의 걸작으로 이런 게 있었다.어느 농부가 곡식의 수확기에 몰려와서 다된 농사를 망치는 까치, 까마귀, 참새 등을 쫓으려고 몹시 무서워 보이는 허수아비를 밭에 세웠는데 그것에 놀란 날짐승들이 그 전년에 먹은 곡식까지 모두 밭에 돌려주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습관적으로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고 소문난 사나이의 아내에게 정말 남편이 언제나 그렇게 거짓말만 하느냐고 묻자 그 아내의 대답이 흥미롭다. 「아니에요. 그이는 입술이 움직일 때만 거짓말을 하지 다른 때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이와 같은 거짓말들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들이니 그저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이 되는 우스개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위에 말한 몇 가지 괴상한 경기대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세상에는 해도 되는 거짓말과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거짓말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느 것이 어느 쪽에 속한 지는 각자가 알고 있기 마련이다.우리 옛 속담에 「우비하고 거짓말은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괴상한 게 있다. 물론 거짓말을 장려한다는 뜻은 아닐게다. 끝으로 거짓말 농담 한마디다. 평생 거짓말을 한번도 안 한 걸로 알려진 사나이에게 「거짓말 한 적이 없다지요」라고 묻자 「아니오」라고 대답했는데 그게 거짓말이었다고... / 박춘호 (부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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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1.1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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