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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민주당 정권 재창출 이뤄야

지난 해 김대중 대통령께서 민주당의 총재직을 사퇴한 이후 우리 민주당은 당을 민주적이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 왔다. <당 발전과 쇄신을 위한 특별대책위원회>를 당의 공식기구로 발족시켜서 구체적인 쇄신안을 연구하고 준비했다.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번 기회에 당의 쇄신을 반드시, 그리고 철저하게 이루어야겠다는 충정에서 <쇄신연대>가 구성되었다. 나는 완전한 당 쇄신과 진정한 국민경선제를 이루기 위해 <쇄신연대> 의원들과 함께 노력하고 헌신했다. 민주당이 진정한 국민정당, 민주정당, 전국정당으로 일대 혁신되지 않고서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않고서는 정권재창출도 민주당의 미래도 없기 때문이었다.당의 쇄신과 국민경선제를 위해 서로 노력하는 과정에서 산고의 고통이 있었고, 이것이 외부적으로는 갈등으로 비추어진 측면도 있었다. 가장 큰 쟁점은 국민경선제의 내용과 전당대회의 시기였다.나는 진정한 개방적 국민경선제와 지자제 선거 이후의 전당대회를 주장했다.단편적이고 즉흥적인 대응이 아니라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진정한 정치개혁을 이루어야 우리 민주당이 다시 국민적 지지와 신뢰를 회복할 수 있고 정권재창출도 이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대선 후보를 미리 선출해서 그 후보를 중심으로 지자제에서 승리하고 대선으로 가자는 것도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대로 가면 지자제도 어렵지만 대선도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던 것이다.그 해결책으로 개혁과 한반도의 평화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에게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고 기득권을 행사하지 않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운 민주대연합, 부패특권세력을 반대하고 개혁과 평화에 동의하는 신민주대연합을 이루자고 주장하는 것이다.그 전환점이 지자제와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 있다고 나는 판단하고 주장해 왔는데, 오히려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한다는 오해로 인해 다수를 설득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그렇지만 전당대회 시기문제에 관해 당내에서 합의해서 처리하는 것이 당의 분열을 우려하는 당무위원들 다수의 바램이었기 때문에 쇄신연대 의원들과 나는 정치적 결단을 했다.결단의 배경에는 솔로몬의 재판에서 친어머니가 친아들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서 아들의 팔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충정도 있었다.나는 우리 당이 준비해온 쇄신안과 갈등을 빚었던 전당대회 시기문제를 상임고문단과 당무위원들이 합의해서 처리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낀다.이 쇄신안은 우리 정당사상 처음으로 국민경선제와 모든 공직 후보의 상향식 공천제를 도입하고, 당 총재직을 폐지키로 하는 등 민주적 정당화를 적극 지향함으로써 우리 정당 발전사에 획기적인 기틀을 마련했다.특히 국민경선제는 내가 97년 대선 때부터 도입하자고 주장한 내용이다. 완전히 개방된 국민경선제가 못된 점이 아쉽지만 제도적 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앞으로는 합심 단결해서 오는 6월의 지방선거 승리와 12월 대선에서의 정권 재창출이라는 지상 목표를 위해 일로매진할 각오이다./ 김근태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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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1.11 23:02

[전북칼럼] 새해 아침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우리 동네에는 네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다. 한 그루는 이웃 동네와 우리 동네 중간에 있고, 한 그루는 동네 뒷산에 있다. 그리고 또 한 그루는 동네 앞 강 언덕에 있고, 마지막 한 그루는 내가 키운 느티나무인데 내가 사는 방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우리 집 앞 강 언덕에 있다.그 느티나무에 지금 하얀 서리꽃이 무성하게 피어 있다. 뒷산에 있는 느티나무 밑에서 아주 잘 생긴 어린 나무를 마당에 옮겨 심었다가 내손목만 할 때 저 자리에 옮겨 심었었다. 어린 느티나무를 내가 귀하게 챙겨주고 가꾸는 것을 본 동네 사람들도 어린 느티나무를 귀하게 여겨 잘 보살펴 주었다.나무는 참으로 잘도 자라서, 언제 보면 그 나무에 새 잎들이 눈부시게 피어났으며, 언제 보면 샛노랗게 단풍 물이 곱게 들어 있었다. 언제 보면 그 나뭇가지에 눈이 내려 하얗게 쌓여 있고, 언제 보면 그 나무 위에 둥근 달이 떠 있었다. 잎이 피고, 비가 오고, 잎이 지고, 달이 뜨고, 소쩍새가 날아와 울고, 언제 보면 그 어린 나무가 눈보라를 견디며 서 있었다.그리고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어느 날인가 내 방문을 열고 그 나무를 바라보았더니, 그 나무 아래에 지게꾼이 지게를 세워 놓고 쉬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아름다운 모습을 나는 지금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무에 기대 앉은 농부와 지게와 그리고 앞 강물은 내게 평화였다.나무가 점점 자라고 잎이 무성하게 피어 그늘이 넓어지자 사람들이 점점 많이 모여들었다. 어느 여름날 동네 사람들은 강가에 있는 넓적넓적한 돌멩이들은 가져다 그 아래 놓고, 그 바위 위에서 낮잠도 자고 마늘도 까고, 토란대도 벗기며 도란도란 옛날을 추억하며 놀았다. 그늘이 더 넓어지자 동네 사람들은 그 나무 아래에서 감자도 삶아 먹고, 돼지도 잡아먹으며, 노래하고 춤추고 놀았다.내가 고향을 떠나와 살다가 이따금 찾아 가 보면 나무는 더 많이 자라 있었다. 사람들에게 저 느티나무를 내가심은 것이라고 하면 모두 거짓말이라고 한다. 어떻게 몇 십 년 동안에 저렇게 클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저 느티나무는 30여년을 저 자리에서 저렇게 자라고 있다.그 나무가 오늘 아침에는 서리꽃을 하얗게 피우고 서 있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저 느티나무는 나의 희망이었다. 내가 세상을 살다 지칠 때 그 나무는 내게 위안이 되어주었고, 나도 저 느티나무처럼 살며 크고 우람한 그늘을 거느리고 사람들을 쉬게 하는 삶이고 싶었다.새 봄이 되면 늘 새로 잎을 피워내는 저 나무 같은 시를 세상에다가 스고 싶었다. 세상을 살다가 힘이 들면 나는 고향 마을 강 언덕에 늠름하게 버티고 선 저 느티나무를 생각하며 힘을 얻곤 했다.올 겨울 강바람은 유난히 드세고 거칠었음으로 새로 오는 봄, 앞산을 넘어 온 봄 햇살을 받아 새로 피는 저 나뭇잎은 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우리라. 저 나무에 새로 잎이 피면 새들이 날아와 울것이고, 달이 뜨고, 비가 오고, 세상을 가다가 지친 사람들이 찾아와 쉴 것이다.한해를 보내고 새 해의 길목에 서면 지나간 해는 아쉽고 새로 오는 날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부풀기 마련이다. 늘 새로 맞는 새 해 새 다짐들이 헛되게 지나가 버렸을지라도 우리는 또 새 해 아래 한해의 부푼 꿈을 세상에 기댄다.희망도 내가 만들고 절망도 내가 만든다. 나의 희망과 우리의 희망 그리고 이 세상의 희망이 모두 한 길에 있다. 올해도 우리 사는 세상의 모든 일들이 저 나무에서 이루어지는 하루하루 처럼 풍요롭고 무성하게 이루어지길 기대 해 본다. / 김용택 (시인. 임실 마암분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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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1.04 23:02

[전북칼럼] 살아있는 한 절망하지 않는다

1914년 일이다. 남극의 탐험가 새클턴은 의사, 철학자, 기상학자, 물리학자, 목수, 요리사, 밀항자, 선원등 27명과 함께 듀어런스란 호를 가진 배를 타고 1914년 8월 영국을 떠나 출정하였다. 우리는 성공하거나 아니번 죽을 것입니다라는 신장 섀클턴의 말처럼 그들의 출발은 위대한 모험의 도전과 위험 그 자체 였다.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탐험은 순조롭지 못했다. 북극에 도착하여 얼음이 뱃길을 열기까지 기다려야 했고 드디어 남극 탐험이 시작되었지만 얼음 두께가 2-3키로나 되는 부빙들에 갇혀 꼼짝도 못하고 바다에 떠있는 상대로 사계절을 보내야 했다. 섭씨 영하 20-7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와 폭풍속에서 물개를 잡아 식량과 기름을 얻고 고기떼를 기다리며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하고 거대한 얼음 조각이 부딪치며 떠내려오는 압력으로 배마저 파선하고 말았다. 배와 함께 침몰하지 않으려면 배를 버리고 탈출하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이미 두께가 고작 2미터로 얇게 녹아진 얼음 위에 텐트를 치고 살아가야 했다.인제 깨어질지 모르는 얼음 위에서 때로는 하루에도 수십만 키로를 반대 방향으로 표류하며 악전고투를 하는 이들을 사람들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들의 실종 보도가 있은 후 2년이 다된 어느날 더럽고 지쳐 있으며 마구 자란 수염으로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 는 행색을 한 세 사람이 사우스조지아 섬에 나타나 구조를 요청했다. 1%의 가능성도 없었지만 돛단배를 만들어 시도 한 항해가 성공한 것이다.2001년 한해는 마치 녹아내리는 얼음위에서 표류하듯이 살아가기가 몹시 힘들었다. 마음을 열고 의지 할 듯이 없어 방황했으며 계획했던 일들을 도처의 암초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되어 버렸다. 의식의 곳곳에 좌절과 절망 분노의 부빙 들로 인해 뒤틀리고 부셔지며 침몰하고 있으며 무력감은 자꾸자꾸 크게 번지고 있다.마음과 세상의 어디를 보아도 희망을 찾기 어렵다. 전쟁과 기근, 폭력가 굶주림이 난무하는 이 상황에서 세상은 더 이상의 희망시아가 온다고 해보 별로 뾰쪽 할 게 없을 듯한 현실이다. 마치 떠밀리는 얼음 조각에 텐트를 치고 사는 것처럼 불안과 죽음 이 불어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그런데 희망이 없어도 생명은 존재한다. 살아서 움직이고 성장하며 고통을 견뎌내고 현실을 정복하기까지 한다. 생명은 힘이고 남아 있는 가능성이다. 따라서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겨울에도 뜨거운 물이 흐르듯이 무덤에서도 생명은 태어난다. 나치가 체코를 진압하고 유대인들을 색출하여 죽이기 시작했을 때 공동묘지에 숨어 있다 살아 남은 베르나는 나치 전범을 재판하는 자리에서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어느날 그 지하 공동묘지에서 한 여인이 아이를 낳았단다. 숨소리도 조차 부담스런 상황에서 산고의 신음은 저주와도 같은 것이었다. 온갖 질시를 받고 태어나는 아이를 손에 받아든 한 노인이 이렇게 외쳤단다.하나님 이 아이가 메시아입니까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런 곳에서 생명이 태어날 수 있습니까? 그런데 태어나 지 사흘이 안된 어린아이가 말라붙은 젖줄기를 부여잡고 있을 분 어린것의 입술조차 적셔 주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흐르는 눈물을 받아 먹더란다.생명은 이런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내는 한해가 힘들고 절망적이라 해서 다가오는 새해를 향해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어둡고 척박한 현실에서 생명은 탄생하고 자란다./ 이혜숙 (한일장신대 겸임교수. 롯데어린이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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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2.28 23:02

[전북칼럼] 미국의 딜레마, 군수산업

해마다 연말이면 '아쉬운 한 해였다'고 사람마다 늘 아쉬워한다. 금년 역시 예외는 아니다. 남북 대화가 삐걱거리는 것도 아쉽지만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타 테러 사건이후 급랭한 반전 평화론에 대한 세계 여론이 잠적 또는 침묵하는 것이 아쉽다.소련이 무너진 지금 미국은 소련의 빈자리에 또 다른 희생양을 앉혀야 한다. 그것이 이른바 미국이 말하는 테러국 전략이다. 미국은 미리 테러국 리스트를 작성하여 응징의 기회를 예비하는 것이 대외 전략이다.백악관의 외교 전담 부서인 국무부(department of state) 라는 명칭이 시사하듯 미국의 대외 정치, 즉 외교는 따로 없다. 외교가 곧 국내정치이며 그 정치의 끝자락에는 늘 전쟁이 도사리고 있었다.미국의 역대 정권들이 끊임없이 국제 분쟁에 개입, 대규모 무력을 시위한 것은 정치 행위의 일환이다. 유고 내전걸프전월남전 등 수 없는 국지적 분쟁에 개입하여 힘의 우위와 자국민의 자부심을 고무시키는 것이 백악관의 정치이었다.최근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는 아프간을 상대로 펼치는 미국의 전쟁 놀이는 소위 헌팅턴이 말하는 기독교 문명과의 충돌이 아니라 부시정권의 고도의 정치행위이며 걸프전 이후 10여 년 가까운 기간 동안 적체된 군수산업체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호기이다.2차 대전 후 50년이 넘는 긴 기간동안 미소 경쟁체재하의 미국은 끝임 없이 군비 확장을 통해 군사적 우위를 도모하였다. 이 기간동안 미국 산업은 軍産 복합체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파생 시켰다.그런데 무기 생산 주체인 방위산업체의 살길은 무기가 소비되어야 한다. 이 말은 세계 도처에서 전쟁이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국제 분쟁 지역 개입은 자국의 군수산업체의 명운과 무관치 않는 이유이기도하다.무기는 民需品이 아니다. 생필품처럼 백화점에서 민간인이 구매할 수 있는 일상용품이 아니라는 뜻이다.냉전이 종식된 지금의 군사적 우위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공약사업이 MD 구축이었다는 사실은 화살과 창을 호미와 모습으로 바꾸려는 정책과 거리가 멀다. 그야말로 방위산업의 새로운 출구를 창조해 내는 일이다.방위 산업의 자기 생존 논리에 함몰되어 공룡처럼 거대해진 지금, 그리고 앞으로 미국 정부는 군비확충을 위해 국민 설득용으로 해외 분쟁 지역에 개입할 것이다. 세계의 약소민족영토 분규 지역은 예외 없이 차례차례 규모 이상의 美製 폭탄 세례를 경험하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미국의 강점은 다른 어느 국가 사회 보다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할 수 있는 담론공간이 열려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강점이 부시정권의 아프간 전쟁으로 의견 분출 출구가 막힌 것은 미국의 비극이자 세계 지성계의 弔鐘인 것이나 다름없다.무고하게 죽어갔을 메마른 아프간 산악지대의 수 없는 노약자와 부녀자, 그리고 어린이들의 죽음이 빈곤한 아프간에서 살았기 때문에 존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감히 미국에 대적한 국가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미국은 최빈국인 아프간을 상대로 전쟁을 벌렸다. 테러에 의해 망가진 미국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피의 응징임에는 틀림없지만 무고한 인명 살상이라는 가슴에 묻힌 반미 증오심은 수백 년 동안 미국이 걸머져야할 업보로 남을 것이다. 그런 오만의 세월이 흐르면서 미국은 차차 세계적 우월권을 상실할 것이다./ 박영학 (원광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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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2.21 23:02

[전북칼럼] 국민경선제, 그 진정한 의미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냉소가 걷혀지고 있다.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 후보를 뽑을 수 있는 국민경선제 때문이다. 권위주의, 체육관 선거, 지역주의, 1인보스 등으로 상징되던 우리 정치가 민의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로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97년에도 나는 국민경선제를 주장했다. 김대중대통령(당시 김대중 후보)이 국민들의 환호 속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고, 그 환호와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역사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그리고 당시 김대중 총재와 나는 이 문제를 놓고 두 번의 심도 깊은 토론을 했다. 그때 김대중 총재는 이번에는 준비가 안되어 있어 어렵지만 다음부터는 국민경선제를 통해 후보를 선출하자고 말씀하셨다.그리고 지금 2001년 말, 김대중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로 물꼬가 터진 정당민주화 논의는 산고를 거듭하고 있지만 국민경선제라는 옥동자를 탄생시키려 하고 있다.하지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국민경선제에 대해 나는 몇 가지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첫째는 시기의 문제다. 국민경선제는 국민에게 후보를 알리고 국민의 지지를 모아 후보를 선출하는 정치축제의 과정이기 때문에 그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당의 새로운 얼굴이 필요하다는 소위 조기후보가시화가 국민경선제의 시기를 압박하고 있다.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국민경선제 도입을 통한 당 쇄신과 정당민주화가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고 최고의 후보라는 점을.둘째는 선거인단 구성이다. 당원과 국민의 비율은 7:3이 아니라 오히려 3:7이 되어야 한다. 선거인단을 2원화, 3원화 하는 것도 옳지 않다. 국민경선제로 당론과 국민의 지지가 모아지고 있는 지금 제대로 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 당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일부 세력이 또 다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무늬만의 국민경선제를 채택한다면 국민들은 절망하게 되고,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오히려 더 멀어지게 될 뿐이다.셋째는 내용상의 문제다. 복권추첨식 무작위 추첨으로는 국민들의 열기를 이끌어 낼 수 없다. 참여의사가 있고 선거인단으로 등록한 유권자들은 모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마지막으로 16개 시도별로 순차적으로 경선을 치루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인구와 지역적 투표성향을 모두 고려해 균형있게 순서를 결정하여야 하고, 인구가 많은 곳은 경선기간을 길게 하고 인구가 적은 곳은 경선기간을 짧게 함으로서 후보의 자질과 능력, 정책이 검증되고 부각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리더십도 탄생하고 발전할 수 있다.국민경선제는 후보의 사사로운 입장이나, 어떤 세력의 기득권 때문에 왜곡되어서는 안된다. 진정한 정치개혁을 할 수 있는가? 국민과 함께 할 수 있는가 없는가?라는 원칙 하에서 판단되어야 한다.민주당이 국민경선제를 채택하고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를 추구한다면 한나라당 역시 애써 무시할 수만은 없다. 국민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바로 정치개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치개혁을 이미 민주당이 시작하고 있다. / 김근태 (국회의원. 민주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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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2.14 23:02

[전북칼럼] ‘지점(支店)경제, 지사(支社)문화’

전북 인구의 도외 유출이 심각한 문제로 거론되고 있는 시점에서 지난 달 25일 통계청이2000년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 결과를 발표했다.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해 11월 1일 현재 도내 인구는 190만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다른 통계 자료에 따르면 하루 평균 41명이 전북을 떠난다는 것이다.게다가 집계가 완료된 시점이 지난 해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재 도내 인구 사정은 불을 보듯 훤하다. 이처럼 전북의 일꾼들이 고향을 등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이는 불균형적인 지역발전 정책과 산업화 과정의 소외가 가장 큰 원인이다. 금융, 경제, 산업, 행정 교육 등 모든 면에서 전북은 소외되어 왔다. 결국 지방은 수도권 도시들의 지점(支店) 노릇밖에 할 수 없는 들러리에 불과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지역을 등지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230대 계층의 젊은 일꾼들이라는 것이다. 일찌감치 산업화에서 소외된 전북은 이미 일자리 창출에서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결국 젊은 일꾼들은 고향을 등지고 일자리를 찾아 떠나게 되었다.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유수 기업들의 도내 유치가 필연적이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기업을 유치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는 금융권이 취약하기 때문이다.모든 은행의 본점은 서울과 수도권에 위치해 있고 그로 인해 대형 기업의 지방진출이 가로막혀 있다. 오히려 전북에 모체를 두고 있는 기업들마저 줄줄이 쓰러져 나가는 현실에서 타 기업을 유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어디 그뿐인가? 젊고 우수한 인재를 도내에 정착하게 할 수 있는 교육여건도 제공되지 않고 있다. 수도권 중심에 편중된 정부의 지원, 그로 인한 대학의 서열 고정화는 우수 인재의 유출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젊은 인구의 유출은 잠재적 인구 생산능력마저 저하시키는 문제로 인구감소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심각한 문제다.이런 상황에서도 정부 차원의 시책은 한심하기만 하다. 여전히 수도권 중심의 국가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지방의 인구 감소에 대한 대책은 뒷전이다.이런 상황에서 도내 단체들이라도 발을 벗고 나서야 할 상황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정부 차원의 시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인구늘리기 정책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것이다.결국 도내 인구 200만 붕괴라는 참담한 현실 앞에 민간단체들을 주축으로 한전북 인구늘리기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이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세부적인 계획도 이미 추진 단계에 있다고 한다.그러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구축된 불균형적인 체제의 개편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간단체 차원의 정책으로는 사실상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전북도와 시군이 인구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그다지 큰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이 같은 사실들을 놓고 생각해볼 때 지역의 인구증가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정부차원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 산업, 금융 등의 지방분산 정책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머지 않아 전북은 인구 100만에도 미치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장명수 (우석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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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2.07 23:02

[전북칼럼] 마음을 앓는 사람들

지난 주말 지리산 피아골을 다녀왔다. 가을이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계곡에 겨울이 찾아와 서성거리고 있었다. 쌓인 낙엽위로 바람이 휘돌아 감길 때 무심하게 흩어지는 낙엽처럼 마음 한켠이 부서져서 스산했다.계절이 오고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게 되풀이되는 자연 현상인데도 철이 바뀔 때마다 일어나는 마음의 요동을 어쩌지 못한다.가을은 더욱 그렇다. 햇살의 길이가 짧아져서 줄어든 일조량이 한 원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계절에, 풍성한 수확을 앞에 두고 사람들의 마음이 우울하고 공허하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자연은 탐스러운 결실로 풍요를 드러내는데 삶의 바구니는 초라하게 비어있기 때문인가?마음이 아픈 것은 몸이 질병을 앓는 것처럼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신체적 질환을 오래 두거나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생명이 위험하듯이 마음의 병도 그냥 지나치면 몹시 해롭다.급성으로 아 오는 질병은 미처 손쓸 겨를도 주지 않고 불행을 가져오듯이 마음의 병도 겨울 바람처럼 빠르고 혹독하게 불어온다. 그 바람이 마음을 훑고 지나가면 이내 맨살이 들어 나고 상처는 깊게 패여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21세기의 첫 해인 올해는 유난히도 마음의 질병으로 불행을 당한 이들이 내 주위에 많이 있었다.결혼 10년은 마치 솜사탕처럼 꿈같이 살았으나 지금은 모든 것이 의미 없고 자신은 작은 파편 같다던 30대 후반의 주부, 변화된 사회를 꿈꾸며 나름 데로 열심히 살아 왔다고 자부 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돌부리에 채여 보니 자신의 존재가 너무 초라하게 여겨저 오래 우울하다던 미혼 여성, 유학을 떠나 푸른 꿈을 키웠던 여고생, 지치고 힘든 세상살이를 최선을 다 했던 생활인의 한사람, 그 외에도 몇 사람이 고질적인 마음의 병을 앓다가 서둘러서 죽음의 여행을 선택하고 먼 길을 떠났다.우리가 사는 오늘은 전례 없는 풍요와 부요를 누리는 세대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사회적 풍요에 짖눌려 산다. 하루하루를 살기가 너무나 버겁다.한여름 내내 들판에 나가 굽은 허리조차 크게 펴지 못하고 공들여 지은 농사는 풍년 때문에 남아도는 쌀을 소비 할 방도가 없으니 전량 수매도 어렵고 제값도 다 쳐주지 못하겠다며 내년부터는 아예 내린 값을 받을 요랑으로 농사를 지으란다.100원씩 가는 무값처럼 폭락한 농부의 병든 마음에 백 약이 무효다. 클링턴의 친구로 미국의 노동부 장관을 지내다가 아버지가 집에 있는지 확인해야 겠으니 집에 돌아오면 자기를 깨우라는 막내아들의 엉뚱한 제의를 받고 장관직을 그만 둔 로버트 라이시는 오늘날의 사회적 풍요는 '강제노동'과 '파괴되는 삶'의 이면이라고 한다.즉 신 경제는 '부'를 주는 대신 '삶'을 빼앗아 사람들에게 부요한 노예로 살기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가장자리에 살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애초부터 '부'와 '삶'을 모두 빼앗긴 이들이다.이런 사람들에게 마음의 병은 사회적 병폐로부터 전염 된 것이기도 하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계층일수록 더 우울하다는 일관된 임상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남성보다 여성이 더욱더 무력감을 느끼고 우울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금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방자치 선거도 코앞에 닥쳐있다. 대통령의 임기도 끝자락을 밟고 있다. 이제는 정말 지루하고 환멸스러운 정치놀음은 그만 보고 싶다.그 대신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삶'을 돌려주는 정치와 정책을 경험하고 싶다. 위기로 불어닥치는 패배와 종속의 삶을 서둘러서 치유해야하기 때문이다. / 이혜숙 (한일장신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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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1.23 23:02

[전북칼럼] 동북아의 허브(HUB)가 된다는 것

21세기 경제는 세계화와 함께 지역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유럽은 EU로, 북중미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NAFTA(북미자유무역지대)로 지역적 블록을 쌓고 있다.하지만 동아시아는 그렇지 못하다. 그 결과 EU와 NAFTA의 역내 교역량 비율은 61%와 46%에 이르고 있지만 동아시아는 33%에 머무르고 있다.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5일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 창설이라는 매우 중요한 제안을 내놓았다. 참석한 정상들의 검토합의를 이끌어냄으로서 동아시아 미래를 향한 의미있는 이니셔티브를 행사한 것이었다.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가 성립되면 "수출은 30%, 수입은 25%가 늘어나 연간 무역수지 8억8천만달러가 개선되고, 국내총생산은 2.14%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을 내놓았다.우리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최근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더불어 교역장벽이 강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동아시아 지역내 교역 활성화를 통한 상호이익 증대는 매우 중요하다.그런데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또 있다. 우리 한반도가 21세기 동북아의 허브로 자리매김하는데 있어 필수적이다.남북의 총인구는 7000만이다. 중국과 구 러시아 연방에 퍼져있는 동포들까지 합하면 7500만이다. 유럽에서도 활력이 있으면서도 이만한 인구를 가진 국가는 독일 이외에는 없다."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가 성립되면 한반도는 일본과 중국, 러시아를 연결하는 지정학적 중심으로서,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동북아 물류의 허브, 정보고속도로의 허브로 발전하게 됨으로서 당당한 세계의 중강국(中强國)으로서 등장하게 될 것이다.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선결적 과제가 가로 놓여있다. 한반도에 평화가 없다면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는 공허한 주장이고 사상누각일 뿐이다. 한반도 평화정착은 민족적 문제이면서 동시에 동아시아와 세계의 발전과 연결되어 있는 문제인 것이다.김대중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는 햇볕정책을 추진하여 6.15남북정상회담을 성취시켰다. 그때 합의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남북의 의지를 실천적으로 담보한다."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그런데 얼마 전 이회창 총재는 내년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답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대선과 지방자치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였다.한반도 평화정착은 정말로 우리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당리당략이나 정략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모두 조심하여야 한다.이제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하였다. 그런데도 이회창 총재는 자신의 주장을 계속하여 고수할 것인가?우리는 그것이 무척 궁금하다./ 김근태 (국회의원. 민주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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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1.17 23:02

[전북칼럼] 문명충동과 미치광이 이론

최근에 진행중인 아프칸-미국 전쟁을 뒷받침하는 이론이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인 듯 하다. 그의 한글 번역본이 5쇄를 찍은 것을 보면 우리나라 독서계의 상당한 주목을 받은 것 같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면 그의 이론이 지나치게 세계를 단순화하여 '우리:그들'로 가른후 서구/기독교 우월성을 보편화하려는 것 같다.미국 건국 초기 국부들은 미국:유럽을 대비시킬 때, 미국을 앞서가는 사회:완고 하고 낙후된 유럽, 종교탄압이 없는 사회:종교탄압과 내전을 겪는 왕정, 새로운 예루살렘:악의 세계에 빠진 유럽으로 단순화했다.미국역사의 중요단계마다 정착민:원주민, 북부:남부, 자유로운 미국:보수적 제국주의 권력으로 이분화 하여 어김없이 '우리:그들"도식으로 재단한다. 냉전론이 지배하던 지난 50년 남짓 미국은 나라밖의 분쟁지역에 개입하는 당위성을 위한 국민 설득 방법으로 이런 단순이론을 원용하였다. 적이 아니면 동지라는 극단주의적 이분법이 지금도 아프칸전쟁에서 세계 각국의 지도자에게 줄서기를 강요한다.이런 단순화가 종전 후 세계 도처의 민족해방 운동을 모스크바 진영의 확대로 잘못 이해했고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여 참담한 패전을 맛보았다. 그런데 패전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신봉하는 도미노 이론은 적중하지 않았다.이런 미국의 어리석음과 단순성을 두고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이며 비평가인 노암 촘스키는 지난 11월 11일 인도 마드라스 음악당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아프칸 전쟁에 대한 미국과 서방세계의 접근이 매우 근시안적이고 파멸적이라고 지적한 후 미국이야말로 고발된 테러국가라고 비판했다.미국은 수 차례나 다른 나라를 침략했으며 국제법도 상습적으로 위반했음에도 이제 와서 저들(빈 라덴)의 (뉴욕 무역센타)테러 행위를 비난할 도덕적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테러 단체를 훈련 시켜 미국의 이해에 걸림돌이 되는 많은 나라 정부를 전복시킨후 친미 정권으로 대체 시켰다. 미국국제법학회 소식지(1999년 3월호)가 미국을 국제법 위반 제1위 국가로 지목한 것을 그런 오만을 잘 증명하는 사례이다.대다수 국가의 눈에 미국이 "불량배 초강대국이 되어 가고 있으며 그들 사회를 위협하는 외부의 유일하고도 가장 큰 위협적인 존재로 비쳐지는" 데도 미국의 정책 담당자들이 개의치 않는다.오히려 전략 핵을 관장하는 미국 전략사령부의 1995년 비밀연구보고서를 보면 "미국의 이익이 치명적인 공격을 당할 경우 반드시 비이성적으로 보복하는 국가로 비쳐야하며 그럴 경우 국제법이나 조약에 매달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우리 자신을 너무 이성적이고 냉철한 머리를 가진 나라로 묘사하는 것은 자해 행위"라고 썼다.미국을 건드리면 머리가 돌아버려 핵무기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짓도 불사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닉슨이 주장한 미치광이론(mad man theory)의 계승인 셈이다.정말 미국은 미친 사람처럼 발광하는 중이다. 무고한 어린이와 양민의 처참한 주검을 외면하며 스스로 이성적이기를 거부하는 미국이 반미운동과 테러공격의 목표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세계는 문명의 충돌보다 문명의 공존 사례가 더 많았음을 왜 미국 이론가들은 외면하는지 모를 일이다./ 박영학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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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1.16 23:02

[전북칼럼] 거목과 도시정서

전주의 명물이었던 거목 곰솔이 타 죽어가고 있다. 노 거수의 죽엄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누군가가 독물을 주입하여 고의로 고사목 시켰다는 판정이 있었으나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있다. 예로부터 거목은 당산목, 신목, 명목, 정자목 등으로 불러왔고 이 나무를 베거나 죽게한 사람은 동티 나서 죽는다고 알려져 왔다.전주의 어떤 고서의 기록에 의하면 일제하 1920년대에 시내에 육백년 된 은행나무가 하수도개설에 장애가 되어 치우기로 했던 모양이다. 동원된 한국 인부들이 무서워하며 나무를 베려하지 않으니까 화가 난 일인 몇이 달려들어 톱으로 쓸어 넘어트렸던 것 같다. 그 후 얼마 있지 아니하여 나무 벴던 일인들이 하나 둘 씩 시름 시름 아프다가 다 죽었고 어떤 한 사람은 급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예로부터 큰 나무는 영기가 서리고 신으로 숭앙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것은 나무를 보호하려는 인간의 의지였다.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딴 나라에 비하여 생존한 거목이 별로 없다. 있다 하더라도 산중에는 없고 동리밖이나 마을 주변에 있을 뿐이다. 전쟁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 나무를 벌목하다 보니 산에 거목은 없어지고 벌거숭이가 되었으나 식목 30년 만에 녹화는 되었으나 나무는 어린 형편이다.수종은 좋지 않아도 산림녹화에 성공한 20세기 유수한 나라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에 따라 도시내의 공원과 가로수도 푸르러졌다. 나무가 많을수록 여름의 온난화를 방지할 수 있고 겨울의 칼바람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온난화 방지를 위해 건물의 단열제 사용은 물론이고 외부의 벽면, 옥상 녹화와 가로수와 식수대 등의 조성이 시급한 형편이다.실제로 도시의 대대적 녹화로 온난화 방지에 성공을 거둔 곳이 대구로 알려져 있다. 매년 여름이면 전국 최고의 온도로 악명을 날리던 대구가 녹화로 온난화를 방지한 것이다. 이제는 반대로 전주가 전국적으로 더운 도시로 부상한 것이다.도시의 팽창으로 녹지의 감소와 콩크리트 건물의 증가는 뜨거운 전주가 된 것이다. 시당국이 600만 그루 나무심기를 위시로 수림대를 만들고 녹화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로수는 묘목을 심고 있는 듯 어린나무를 식재하고 있다.전주에 나무를 심어야 할 긴요한 이유가 또 있다. 전주는 동, 남, 서 세 곳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으나 북향이 터져 북쪽을 진압하라고 진북사가 있다. 전주가 북풍이 심해 화재가 흔했다. 1767년의 화재는 관아 100여동 민가 2,350호를 태운 대화가 있었고 그후도 화재 비극은 여러번 있었다.또한 북쪽이 터져 있어 좁은목, 숲정이, 초록바위의 세곳은 바람통으로 추운 전주를 만든 것이다. 이 바람을 막기 위하여 진북사에서 금암동까지 인공으로 숲을 만들었으니 그곳이 숲정이 이고 바람을 차단한 것이다.전주에 나무를 심고 거목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름에는 온난화를, 겨울에는 북풍을 방지하기 위해서임이 역사 전통적으로 명시해 준 일이었다.전주에 거목이 비교적 많은 곳이 경기전이다. 그 거목 중에는 가지가 약해졌거나 마르는 가지들도 있다. 수목의(樹木 )의 치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드라마 용의 눈물을 촬영한 곳이라는 패말도 필요하지만 나무설명 패말이 앞서야 할 일이다.선진국 도시일수록 거목의 숲과 아름드리 가로수가 많다. 우리도 거목을 이식하고 가로수도 될 수 있으면 큰 나무를 심어서 도시를 울창하게 조성해야 함이 바래진다. 곰솔의 죽엄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 장명수 (우석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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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1.02 23:02

[전북칼럼] 허울뿐인 보육정책

9월의 햇살이 투명하게 빛나던 오후. 우리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7-8명의 장애 아동들이 선생님들과 즐거운 놀이시간을 갖고 있었다. 모래 장난과 놀이기구에 푹 빠져 있는 아이들은 가까운 곳에 있는 장애 어린이 집의 보육아동들 이었다.지금은 여러 가지 형편상 중단되었지만 몇 년 전에는 우리 어린이 집의 아이들이 일주일에 하루씩 그 어린이 집에 놀러 갔었다.통합보육의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하는 일이다. 다행히도 우리 어린이 집과 그곳은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정기적인 놀이 통합을 시도했던 것이다.안타깝게도 이 통합 놀이가 지금은 지속되지 못하고 있지만, 대신 한 달에 서너번씩 장애 정도가 비교적 가벼운 아이들이 우리 어린이 집에서 야외 놀이를 즐겨했다.아이들이 놀만한 마땅한 실외놀이 여건이 부족한 것을 안타깝게 여긴 선생님들의 애틋한 배려 덕분이었다. 그런데, 그날 즐거운 외출은 슬픈 외출이 되었고 그 짧은 외출이 중단되었다.놀이를 마치고 되돌아가던 중 정신지체 아동 하나가 교사의 손을 뿌리치고 순식간에 차도에 뛰어 든 것이다.그 사고가 있고 며칠 후 정부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급속히 감소하고 있는 출산율과 관련하여 대대적인 보육시설 확충 계획을 발표했다.그러나 이미 보육 시설은 너무 많지 않은가? 운영상의 이유로 문을 닫거나,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지 못해서 경매처분이 된 시설도 전국적으로 수백 개에 이른다. 그렇다면 무턱대고 시설 수를 늘리기보다는 과학적으로 다른 방안을 찾아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먼저 어째서 시설이 이렇게 많은대도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부모들의 호소는 그치지 않고 있으며, 또한 부모들은 값이 싸고 전문 인력이 돌보는 안전한 보육시설 이용을 기피하고 많은 비용을 지출하면서까지 개인 양육자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아예 자녀 출산 자체를 포기하는지 그 원인을 세심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그리고 보육시설 운영자들이 영아보육, 주말휴일, 야간 시간 등 다양한 보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부모의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지, 정책상의 문제는 없는지에 대해서 분석과 대안모색이 필요 하겠다.특히 보육의 본래 취지가 제대로 실행되지 못한 채 이른바 다른 2중대 유치원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프로그램과 교육 내용을 시정하여, 사회적 서비스를 담당하는 사회복지 기관의 기능과 정채성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보육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일이고 보육에 대한 정부의 책임의식이 강화되지 않고는 시장에 내맡긴 체 최소한의 질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를 극복 할 수 없다.최소한의 놀이터 마저 갖출 수 없는 열악함을 방치하거나, 최저 수준의 예산지원 마저 인색하기 이를 데 없는 상태에서 결코 장삿속이 되어서는 안될 자녀 양육을 시장에 나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의 무책임한 보육 정책은 전희되는 것이 마땅하다.아동 수당도 지금되지 않고, 부모의 출산 휴가 마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돈 없이 아이를 키우는 일은 몹씨 버거운 일이기도 하고, 부모의 인생을 담보하는 모험을 가는 것이기도 하다. 보육시설 수가 증가하는 것만큼 출산율이 증가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간단치가 않은 것이다./ 이혜숙 (한일장신대 겸임교수, 롯데 어린이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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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0.26 23:02

[전북칼럼] 왜 反美 테러인가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9.11 뉴욕 테러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하기 시작했다.수퍼파워의 우격다짐식 강공 외교정책의 부산물이 테러를 유발했음을 반성할 줄 모른다. 그런 미국을 두고 우리는 21세기 미국 패권의 하강 징후를 읽는다.일시적으로는 보복공격의 당위성을 확보할 것이다. CNN과 같은 단일 정보망을 통해 미국 편향보도를 전세계가 접하기 때문이다. 서방 미디어들이 그간 얼마나 진실을 왜곡했는지 살펴보자.1991년 걸프전 보도는 왜곡 중계의 전형적 예를 제공하였다. 예를 들면 많은 TV 방송국들은 워싱턴에 토대를 둔 PR 회사 Hill and Knowlton사가 부시 행정부를 위해 관리된 1천만 달라 짜리 선전 캠페인용 비디오 테잎을 방영하였다.전쟁에 관한 많은 중요 기사는 보도되지 않았다. 시민의 인명 손실을 보도한 비디오 칫수는, 미국행정부가 시인하기를 두려워 한 것보다 훨씬 무겁다.대부분의 TV 네트워크들은 인명손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다만 미디아들은 동맹군이 편 사막의 폭풍작전을 선별적으로 보도하는 데 몰두하였다.1990년 9월 11일에 보도된 위성 사진들은 이라크 대군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위협한다는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단순 시위에 지나지 않았다.마침 이날은 부시 대통령이 걸프전에 대한 공중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하던 날과 맞물렸다. 미디아가 스스로 검열을 허용하고 일부러 검열을 당한 결과이다.국제 뉴스 미디아들은 미국의 그라나다와 파나마 침공, 트리폴리 폭파, 파나마 대통령 노리에게(Noriega)재판, 동 티모르(East Timor)의 인도네시아인 학살 사건을 매우 높은 비중으로 방영하였다는 분석 결과는 무엇을 말하는가.이러한 예들은 미국 밖에서 미국이 개입된 보도들에서 더욱 더욱 배가되거나 쉽게 보충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걸프전이 아이들의 전쟁놀이처럼 안방을 점령할 때 세계는 미국의 무참한 살육전을 외면했다.9.11 뉴욕의 쌍둥이 빌딩 폭파 전경을 보고 우전세계 시민이 왜 테러에 치를 떨어야 하는가?그간 미국 세계 도처에서 키운 반미 감정에 대해 세계의 거대 미디아들은 입도 뻥긋 하지 않는다. CNN같은 미국 미디아가 미국 편향적으로 독점 보도하기 때문이다.전 세계인이 CNN의 보도를 지켜보며 CNN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여과 없이 수용하기 때문에 미국인의 목숨은 귀중하고 걸프전의 참상은 아이들의 오락처럼 희화되었다.부시의 아프칸 폭탄투하는 시작되었다.우리 나라 텔레비젼은 미국편향의 CNN 보도나 미국의 거대 미디아들을 열심히 중계하고 우리는 이유도 없이 아프칸을 향해 적개심을 키울 것이다.미군 폭격으로 죽어갈 아프칸의 양민은 생각지도 않으면서 말이다.미국은 왜 9.11의 테러에 봉착했는가. 미국 친미정권을 세우기 위해 CIA가 개입한 흔적은 세계 도처에 많다.한국은 무풍지대인가. 그렇지 않다. 최소한 남북분단의 주범 아니면 공범이다.우리는 역대전권의 철권 통치 밑에 반미구호는 곧 용공으로 몰려 처단 당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미국이 한반도 정책이 한국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미국을 위한 것인가.힘으로 승리한 사람은 힘으로 망한다고 했다. 세계 도처에서 확산되는 반미감정을 미국은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힘으로 밀어붙이는 부시 대통령의 중동정책은 이 점을 교훈으로 삼아야할 것이다./ 박영학 (원광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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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0.19 23:02

[전북칼럼] 테러 그리고 美공습을 바라보며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미국 경제의 상징이었던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테러로 무너지던 상황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빌딩을 뚫고 들어가는 여객기, 치솟는 화염, 붕괴되는 빌딩, 먼지를 뒤집어쓰고 경악하며 달려가는 시민들. 현실이라는 상황만 제외한다면 TV 화면 속의 장면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매혹적이었다.그리고 지금 미국의 보복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밤하늘을 수놓은 크루즈 미사일의 폭발과 불꽃, 항공모함의 활주로를 이륙하는 미 해군 전폭기들의 뒤꽁무니에서 뿜어져 나오는 섬광과 굉음, 우박처럼 떨어지는 폭탄, 소리 없이 다가가는 스텔스기. 현실이 영화보다 생생하다고 했던가? 스크린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을 TV는 매 시간마다 토해놓고 있다.하지만 그토록 매혹적인 TV를 끄고 나면... 어두운 밤하늘 속에서 가차없이 지난한 현실이 다가와서는 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올해 초 2/4분기부터는 침체된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경제관료들의 예측은 3/4분기로, 다시 4/4분기로 그리고 내년 초로 미루어졌었다. 이유는 미국경기의 침체지속,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일본경제, 그에 따른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반도체 가격하락, 수출부진 등이었다.그리고.. 이제 누구도 우리 경제의 회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테러와 그에 따른 보복전쟁이 회복되지 않는 경제에 대한 면죄부를 주었다는 시니컬한 반응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실의 어려움이 예측과 비난, 지적으로 치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미국의 공습이 실행되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주가도, 환율도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고통의 몫을 짊어질 국민들이 슬기롭게 대처하기 때문이다. 감사하고 고맙다. 하지만 고통은 여전히 국민들의 몫으로 남아있다.이제부터라도 국민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는 사회 지도층의 자세 변화가 무엇보다도 요구된다. 정치권이 그 선두에 서야하고 그래서 고통의 몫을 함께 하고 있다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정치와 정치지도자들에 불신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으면 지금의 어려움과 다가올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나는 당정쇄신과 여야영수회담의 개최를 호소해왔다. 책임질 사람이 책임져야 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우리 함께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합시다. 현재의 개혁이 고통스럽지만 이를 넘어가야 우리의 미래가, 우리의 아들딸들이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미래를 물려줄 수 있습니다."라는 우리의 호소를 국민들이 믿어주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믿음이 있어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국민의 단합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이 바라는 당정쇄신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10월 9일 여야영수회담이 있었고 反테러 전쟁 이후 경제가 악화될 우려가 있다는 인식을 같이하고 민생경제회복에 공동대처하기로 했고 이를 담보하는 여야정 정책협의회의 가동하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날... 한나라당의 "대통령 자진사퇴" 주장으로 국회가 파행에 빠져버렸다.그렇다! 그래서 난 여전히 정치개혁과 당정쇄신에 대한 호소를 거두어드릴 수가 없다. 김근태 (국회의원.민주당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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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0.12 23:02

[전북칼럼] 역마와 고속도로

서해안 고속도로가 드디어 개통 되었다. 만감이 교차된다. 한양천리 가는데는 눈썹도 무겁다고 했다던가,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던 20세기 초엽까지 우리네 선조들의 나들이 푸념이 귀에 쟁 쟁한 듯하다.조선시대에도 8도에 6대로가 있었다. 가장 중요시 된 것은 西路, 즉 대 중국 사신로였다. 그 중에 전라도의 이정은 제 5로 로서 서울에서 출발하여 충청전라도를 통과, 해로로 제주도에 이르는 서울제주도였다.주요 통과지는 수원, 공주, 여산, 삼례, 태인, 정읍, 영암, 해남을 지나 선편으로 제주에 이르렀다. 후에 전라도의 또 한 대로는 삼례에서 갈라져 전주, 남원, 순천을 거쳐 좌수영까지 이르는 노선으로 발전되었다. 삼례가 전라 우도와 좌도로 갈라지는 분기점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도로는 경복궁 앞의 도로원표를 기점으로 10리마다 소 휴게소, 30 리마다 대 휴게소를 만들되 휴게소에는 반드시 장승을 세워 사방으로 통하는 길의 거리와 지명을 기록하였다. 그곳에는 그늘을 만들기 위한 느티나무 등을 심게 하였다. 오늘날 농촌에 있는 큰 고목들은 휴게소 자리에 심었던 것이거나 아니면 마을 앞에 심어진 것들이다.각 도로는 대, 중, 소로 나뉘어 역마를 운영하고 역원(驛院)을 설치하였다. 역마제도를 최초로 창시한 사람은 징기스칸으로 알려져 있다.우리 나라도 고려시대 부터 이 제도를 도입하였고 조선시대에도 계승하였다. 역마는 왕명이나 공문서 전달, 관물과 물자, 공무를 띤 관리와 민간 여행자들의 왕래에 이용되었다.역마를 사용하는데는 마패라는 증표가 있어야 했고 관등품격에 따라 말의 마리 수에 차등을 두었다. 또 공문서나 서신 전달 통신기관으로 파발을 운영 하였다. 기발과 보발이 있었다. 기발은 기마로 전송하는 것이고 보발은 보행으로 전송하는 방법이었다.각 역에는 원이 변설 되어 있었다. 역이 관용이었다면 원은 일반 여객의 숙식 장소였다. 그래서 역원이라 불렀다.전라도의 가장 큰 역은 삼례역으로 역 관리가 596명, 노비가 242명, 심부름꾼 31명 말 15필 마방이 200 여개, 부속 역 12개소 였고 역 구내 면적이 7천평이었으니 그 규모가 대단히 컸음을 알 수 있다.전국적으로는 44개 노선, 535개 역에 배치된 마필의 수가 5,380 필로 한 역에 평균 10마리가 배치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의 역원은 정보가 교환되었고 인정과 문화가 교류된 곳이었다.이 역원제도는 임진왜란 이후 점차 문란해지기 시작하였다. 국가가 운영하는 역은 피폐되어 갔지만 도로 요지에 민간 여행자를 위한 점막(店幕)이 많이 생겼는데 주막이라 부르게 되었고 여행객과 애환을 같이 한 곳이다. 지금도 전주의 안덕원, 추전원 등이 바로 그곳이다.조선시대의 6대로는 북방의 침략을 방지하기 위하여 노면도 고르지 않았고 노폭 12 미터의 오솔길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일본이 대륙침략의 일환으로 건설한 철도와 신작로의 기본노선이 되었다. 또한 당시의 역원은 역사적으로 중 소 도읍으로 성장하였으며 오늘에 와서는 고속도로로 발전되었다.도로는 예나 지금이나 교류와 정보의 네트웍이다. 주고받는데는 손익이 포함된다. 그간 호남의 철도와 고속도로는 서울 교류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나 인구 유출에 역작용을 하였다.서해안 고속도로의 개통은 지역발전에 도움이 크겠으나 돈과 사람 등, 유출의 가속화가 예상된다. 새로운 변화와 신 정보화의 대처에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 장명수 (우석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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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0.05 23:02

[전북칼럼] 美의회의 솔로몬 바버라 리

.어느 날 토끼 한 마리가 사과나무 아래서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사과가 툭 하고 떨어졌다. 깜짝 놀란 토끼는 순간적으로 "지구가 무너지는구나! " 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는 무너지기 시작한 지구를 피해서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이런 토끼를 만난 다른 동물이 그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화급한 상태로 "지구가 무너져!" 라고 대답하였고 그 애기를 들은 동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토끼 뒤를 아 달리기 시작 했다. 마치 말 잇기를 하듯이 차분히 따져볼려고도 하지 않은 채 '지구가 무너진데 ! ' 이 한마디를 던지며 모두들 필사의 달음박질을 하게 된 것이다.지난 9월 11일 자본과 군사력의 최강국 미국이 숲 속의 사자처럼 풍요와 권력의 사과 나무아래서 잠들어 있을 때, 미국의 심장부 뉴욕의 맨하탄 거리의 눈동자와 같은 쌍둥이 건물이 테러 공격을 받았다. 이 끔찍한 사실은 전 세계를 망연자실하게 하였다.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들 하는데 영화에 나오는 제임스 본드는 간곳이 없고 위기일발에 위기를 모면하는 스릴후의 안도감도 없이 수 천명의 사람들이 건물의 잔해가 되어 무너져 내리는 비극의 아침은 엄연한 현실이어서 그 안타까움은 말할 수가 없다.그런데 테러사건을 수습하는 미국의 대응을 보면서 숲 속의 제왕보다는 겁쟁이 토끼처럼 보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좀더 솔직히 말하면 한 술 더 떠서 늑대가 사과를 떨어뜨려서 지구가 멸망하게 되었다고 소리치며 분노하는 토끼와 동물들의 행태를 보는 것 같다.지난 9월 14일 미국 의회는 테러를 응징하는데 필요한 무력 사용하는데 부시 대통령에게 무한한 권한을 위임하는 결의안을 채택 하였다. 거의 모든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진 부시 행정부는 CIA가 개입하는 더러운 전쟁, 지상전, 핵무기 사용 가능성, 암살작전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춈스키 교수는 이와같은 보복전쟁을 멍청한 짓이라고 말했지만 어쨌튼 전쟁은 바로 눈앞에 닦쳐 있다.미 의회의 표결은 상원 98 : 0, 하원 420 :1의 찬성을 나타낸 것인데 이는 단 한사람의 반대자를 제외하면 만장일치가 된다. 그 한 사람 유일한 반대자, 바버라 리는 버클리의 지역구 재선의원이며 사회단체 출신의 여성 의원이다. 그는 의회 표결을 마친 후 "나 자신의 도덕, 그리고 양심, 신앙에 따라 표결하였다 "고 말하였다.프로이드의 견해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이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것과는 다르게 일렉트라 콤플렉스를 극복는데 필요한 동일시의 대상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도덕성의 발달에 결함을 갖는다고 한다. 또한 죤 로크나, 밀과 같은 자유주의 사상가들도 여성은 이성보다 감성이 발달하여 감정의 지배를 더 많이 받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성의 기능이 우수한 남성의 도움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이 사실들을 상기 할 때, 바버라 의원의 선택에 대해서도 흔히 여성 정치인에게 곧잘 쏟아지는 비난처럼 정치력이 부족하거나, 현실판단 능력이 우둔하여, 함께 일하기 힘든 정치인이라고 폄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그러나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과, 힘있는 자만이 지배하고 생존 할 수 있는 약육강식의 논리를 거스르는 이성보다 더 빛나는 양심과 도덕이 어디 있겠는가? 세계의 성난 사자 미국이 숲 전체를 타 들아오는 불길에 갖혀 꼼짝도 못하는 새앙쥐같은 꼴의 아프간을 상대로 전쟁을 치를 것 같은 현 상황에서 사자도 새앙쥐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진바 있다는 공존의 원리를 깨닫는 솔로몬의 지혜가 아쉽기만 한데, 그나마 전쟁을 찬성하는 518명의 의원과 한 줄에 서기를 거부한 바버라 리 때문에 만장일치라는 덫에 빠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여긴다.그 바바라 리의 홀로 서서 빛을 발한 찬란한 양심과 도덕을 그나마 미국이 간직한 겨자씨라고 믿고 싶다. / 이혜숙 (롯데어린이집 원장. 한일장신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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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9.28 23:02

[전북칼럼] 부시정권에는 상생이 없다

부시는 일시적인 정권의 인기 유지를 위해 성냥을 켤 것인가. 지난 9월 11일 뉴욕의 수치를 두고 영화보다 짜릿한 명품이었다는 우스개 소리를 접했다. 그 웃음의 배후에 숨어 있는 반미감정 또는 고소(苦笑)의 뜻을 부시와 미국인은 모를 것이다. 피의 보복을 불사하겠다며 세계의 여론몰이에 몰두하는 모습은 광기에 지나지 않는다.미소냉전이 극을 치닫을 때 세계는 양대 수퍼 파워에 의한 상호 견재속에 균형(평화)를 누렸다. 그러나 소련이 무너지고 동구가 쓸어진후 미국은 의연한 거인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매사를 우격다짐하듯 군사력으로 해결하려 들었다. 멀게는 걸프전으로부터 코소보 전쟁까지 그리고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팔레스타인 분쟁의 배후에 도사린 미국의 논리는 여전히 냉전체제하의 힘의 질서 뿐이다.힘은 무력의 다른 이름이다. 무기는 죽임의 세계인식일 뿐이다. 컬럼버스로 대변되는 초기 미국의 개척사는 죽임의 시대 개막이었다. 컬럼버스의 유명한 달걀 세우기는 발상의 전환이 기에 앞서 무의식적인 살의(殺意)의 발로이다.단순히 세우기 놀이를 위해 달걀의 생명 끈을 생각없이 뭉갤수 있는 그 생명 도륙의 연장선상에서 기독교 이주민들은 원주민 인디안을 문명에 의한 야만의 척결이라는 미명하에 죽였다. 그런 죽임의 문명에 대한 누적된 공업(共業)의 결과가 9월 11일의 테러일 것이다.부시정권은 야심찬 MD구축에 대한 열강의 반대 여론을 잠재우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 그러나 수퍼 파워의 한 축이 무너진 유일 독주의 현 세계 질서를 새로운 무기 체제로 재편하려는 저의는 걸프전 이후 하강국면인 방위산업의 활로 찾기일 것이다.세계 제1의 무기 수출국이 미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더러운 전쟁을 장기화하려는 부시정권의 속 뜻은 미국 방위산업계의 이해와 맞아떨어진다. 가난한 아프카니스탄을 포함하여 세계 도처를 전쟁대상으로 삼겠다는 속 뜻은 무기 소비를 위한 기획에 다름 아닐 것이다.자국민의 인명 피해가 아니면 남의 목숨을 외면하는 그 오만함, 12차 대전의 참화를 직접 자기국토에서 체험하지 않은 미국인의 전장(戰場) 불감, 선조로부터 물려받은죽임에 대한 무감각, 늘 세계 일등 시민어야하는 만족하는 국민의식이 대량 인명살상을 부르는 전쟁을 서슴 없이 거론한다.이번 테러 사건을 두고 성급한 사람들은 문명의 대충돌의 증거로 확대 해석하려 들지만 그것은 황화(黃禍)의식의 복고주의에 지나지 않는다.오히려 미국의 지난 9월 11일 수치는 12차 대전과 그 이후 냉전으로 얼룩진 상극의 세계질서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진통의 내파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새롭게 도래하는 상생의 질서 구축을 위해 세계 지성에 던지는 푸르른 종소리이다.테러리즘을 반대하는 고조된 세계여론은 반드시 그 원인 규명을 향해 반전(反轉)되고 미국은 감당할 수 없는 여론의 포화에 직면할 것이다. 원남전이 진행중일 때 미국내의개인지성집단은 반전운동을 불사했다.매우 상징적인 훌륭한 경험을 부시는 교훈으로 삼아야할 것이다.더러운 전쟁의 마지막은 세계여론의 십자포화에 직면하여 지리멸렬한 것이다. 부시는 성냥을 켜지 않아야 한다./ 박영학 (원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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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9.21 23:02

[전북칼럼] 기로에 서서

미국에 대한 "테러" 때문에 모든 것이 묻혀버린 듯하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되돌아봐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지난 9월 3일 임동원 장관 해임건의안의 처리이다. 해임건의안 통과가 이루어지는 순간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극단적인 정쟁이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다는 서글픔이 가슴 밑 깊은 곳으로부터 차올랐다.1990년 독일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감동이 일었지만, 사실 난 그들의 위대한 성취를 마냥 축하해 줄 수만은 없었다. 독일은 통일을 이루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냉전의 끝자락을 붙잡고 허우적거리고 있는가? 우리의 후손들이 "그때 당신들은 무엇을 하였는가?"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답답한 심정이었다.그때 난 한가지 결심을 하였다. 이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더 이상 부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70년대와 80년대, 시작하기도 전에 가슴부터 뭉클해지던 그 노래를. 지금 할 일은 먼 장래에 있을 통일을 위해 노래나 부르고 있을 것이 아니라 평화, 그것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는 새로운 깨달음 때문이었다.1997년 12월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후, 김대중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선언하고 추진하였다. 조금씩 희망을 가꿀 수 있었다. 남북 서로간에 가졌던 적대감이 완화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평화로 이어지고, 그 평화가 언젠가는 통일의 강물을 이루어낼 것이라는 믿음을...사실 햇볕정책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동서독의 통일을 이끌어냈던 동방정책을 21세기 한국적 현실과 상황에 맞게 고친 것이다. 이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것이었고 전세계가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21세기는 탈냉전 시대다. 이 시대의 평화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한 사고는 냉전시대의 유물이다. 21세기 평화의 핵심은 경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속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경쟁하면서 또한 협력하는 것이다.북한을 견인하여 세계 속에서 협력하고 경쟁하는 시장경제의 규칙을 배우게 하자.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우리가 안내해야 한다. 성과도 있었다. 북한은 조심스럽지만 개혁과 개방의 길을 선택하고 있다. 그 변화는 우리 기대에 비춰 너무 느리지만 말이다.지금 한반도 평화정착이 난관에 봉착해 있다. 입으로는 햇볕정책을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행동에서는 남북신뢰와 평화의 실질적인 진전을 가로막는 경향이 여전히 상당하기 때문이다.우리사회는 민주주의 사회다. 견해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남북관계도 예외일 수는 없다. 문제는 감정이 실리면서 파생되는 대립과 충돌이다. 그 때문에 정치권은 끝없는 정쟁으로 치닫게 된다. 동지가 아니면 적이라는 감정이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민족의 미래가 걸린 문제도 마침내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쳐 버려지는 것이다. 9월 3일의 진실은 바로 이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가? / 김근태 (민주당 최고위원.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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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9.14 23:02

[전북칼럼] 靜脈산업의 활로

이미 잊혀진 오래 전의 일, 엿을 파는 엿장수가 있었다. 엿판을 등에메고 가위를 짝 짝 치면 어김없이 동네 어린이들이 모여들었다.떨어진 신발짝, 구멍 뚫린 냄비등 온갖 폐품이 쏟아지면서 모두 손에는 엿 몇 가락이 쥐어졌고 그것을 먹는 맛이란 천하 일품이었다.먹거리가 별로 없던 시대에 어린이, 어른 할것 없이 군입정으로는 엿이 안성 맞춤이었다. 엿장수가 걷어간 고물은 종류별로 분류되고 공장에서 원료로 재활과 재 이용되는 순환형 생산체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그런데 개발연대 이후 생산과 소비의 고도화는 쓰레기와 폐기물 배출을 대량촉진 시켰다. 소비가 미덕이라 조금만 유행이 지나면 폐품처리 됐고 폐기물의 재생은 필요성이 살아졌다. 엿장수가 없어졌고 엿은 저질 과자에 불과 하였다.생활 쓰레기는 넘쳐 났고 폐품의 재생은 수지도 맞지 않거니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었다.이런 속에서 폐기된 가전제품을 수집하는 수집상이 여기저기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큰 냉장고, 텔레비젼, 선풍기 등을 가득 넣고 쌓다 보니, 장소가 좁아서 길거리까지 내어 놓아 보행인에게 폐를 주기까지 한다.보기는 흉물스럽지만 엿장수 이래의 고물상이고 폐기물을 활용하는 자원순환형적 산업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자원을 재활용하는 세계적인 움직임과도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선진국은 이미 계분이나 음식찌꺼기의 비료산업, 빈병이나 빈깡통의 재생산업, 폐기된 가전제품의 부품이용산업 등이 국책사업으로 지원되고 성업 중에 있다.오늘날 우리의 중고차가 해외에서 인기리에 수출되고 있거니와 중고 가전제품이 수리되어 수출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게다가 폐품된 자동차와 가전제품은 재이용 가능한 부품을 분해하여 재사용, 재상품화하고 남은 골체는 압축하여 철의 원료로 매각하면 된다.이를테면 폐기된 자동차, 가전제품을 재활용하는 순환형 산업은 도시형 광산의 신 광맥을 채굴하는 격이다.지금까지 동맥산업에서 정맥산업으로의 전환되는 중요한 계기라 할 것이다.폐품의 재생산업은 환경산업 육성을 위한 법령정비, 재생품의 가격 보호책, 양질의 폐기물을 모으는 수집의 기법 축적 등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한편으로는 폐기물의 재활용으로 정맥산업을 이룩하는 자치행정의 열의가 있어야 한다. 뿐 아니라 폐기물을 적치하고 작업하는 최종처분장을「산업폐기물 재생단지」인 특정지구로 지정하는 정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정맥산업은 폐기물을 산업분야의 원료로 사용하고 생활 쓰레기를 감량시키는 순환형 사회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이 사업은 환경관련 연관산업의 하나 이기도 하기 때문에 철저한 사전 연구가 필요하다.대학 연구소나 기업이 실제로 폐기물을 최종처분장에서 처리하고 재생하는 모델을 만드는등의 사전 학술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또한 자치체와 소비자, 제조업자와 주민의 이해와 협력이 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다.나타난 폐품상은 장사의 목적으로 출현되었다. 그러나 폐 부품에는 모타, 동, 알루미늄, 플라스틱 등의 주요 원료가 분해되고 재생 내지는 재활용되면서 새로운 산업의 후방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정맥산업은 쓰레기를 감량시키면서 환경 컴비나트를 구성시키는 지역재생의 성과가 클 것이다./장명수 (우석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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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9.07 23:02

[전북칼럼] IMF 조기졸업의 역사적 의미

2001년 8월 23일 우리 나라는 IMF(국제통화기금) 차입금 총액 195억 달러 중 잔금 1억4천만원 달러를 마저 상환함으로써 3년 앞서 차입금 전액의 변제를 완료하였다. 또한 한국은 100억 달러를 보유한 세계 5대 외환강국으로 올라섰다. 이로써 우리는 3년 반만에 경제주권을 완전히 되찾은 것이다.생각하기도 끔찍한 일이지만, 1997년 11월 당시 국가의 외환보유고가 39억 달러로 급감함으로써 우리나라는 국가부도 직전의 외환위기에 직면, 그 달 21일 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하였다. 195억 달러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한국은 재정예산금리정책을 포함한 거시경제정책과 구조개력 정책에 관한 결정권을 IMF에 넘겨줌으로써 경제주권을 상실하는 국치(國恥)를 당한 것이다.이날부터 한국 정부는 독자적인 예산편성, 재정지출, 금리 등 거시경제정책 및 구조개혁 정책에 관해 IMF와 의무적으로 협의해야 했고 IMF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은 한국정부에 구속력을 발휘하였다. 또한 사후 정책평가 협의의 의무도 졌다. 경제주권을 되찾았다는 말은 우리 나라가 경제정책 결정권을 완전 회복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한국은 IMF로부터 독립된 명실상부한 주권국가이다.지금 나라의 경제상황은 17%까지 올라간 IMF의 고금리처방을 무사히 통과하여 금리수준이 제로금리로 호전되었고 실업률은 3%대로 낮아졌으며 금융기관은 철저한 개혁을 통해 튼튼해졌으며, 대기업 구조조정은 거의 70% 수준에 달해 시장도 서서히 작동하기 시작하였다.국가채무가 500조엔에 달하고 금융부실이 150조엔에 달하며 실업률이 5%를 넘어서고 노숙자가 급증하는 데도 개혁의 길은 막혀 있는 일본경제에 비하면, 한국경제는 이제 세기를 격(隔)할 만큰 내용적으로도 지극히 건전해지고 새로워졌다.이에 반해 IMF의 지원을 받는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동구제국, 러시아 등 대부분의 나라들은 아직도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하였다. 또 영국과 멕시코는 IMF 차입금을 상환하는 데 무려 6년이나 걸렸다.이런 IMF관리체제의 역사를 상기할 때, 한국의 3년 반만의 조기졸업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것이고 IMF지원을 받은 아시아 나라중 차입금을 상환한 유일한 나라라는 점에서 역사상 획기적인 것이다.이에 호르스트 쾰러 IMF총재는 김대중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한국을 타국의 모델로 치하하였고, 영국 The Times지와 러시아 브레먀 노보스찌신문은 한국정부의 실력을 극찬해 마지않았다. 그래도 국내 민심은 아직 칭찬에 어색한 것 같다. 하지만 전북인들은 정부의 이 엄청난 성과를 자랑해도 좋은 것이다. 머지않아 일반 국민과 역사도 이를 정당하게 평가해 줄 날이 올 거라고 확산하기 때문이다.국민과 정부여당은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합심하여 지혜를 짜내고 끈기를 발휘하여 이러한 국가대업을 완수한 것이다. 외환위기는 완전 극복했다. 이제 경제를 불황에서 살려내야 할 차례다. 기실 이제부터가 시작인 셈이다. 우리 경제는 이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기만 한다면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부단히 정보화 혁명에 박차를 가하여 세계 최고수준의 지식정보강국으로 올라서고 있기 때문이다./ 정균환 (국회의원. 민주당 총재특보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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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9.01 23:02

[전북칼럼] 전북 고유의 문화운동 준비할때

건축의 역사에서, 현대건축을 전 세계적으로 선도했던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 독일어:bau(짓는다: 築) + haus(집: 家. 住))는 종합 조형학교였으며 동시에 새로운 건축운동이었다. 20세기 초반(1919년)에 창설되어, 건축분야 뿐 만 아니라, 미술 공업제품, 공예, 그리고 예술 전반에 걸쳐 그 파급효과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었다.이 운동은 당시의 건축예술 분야에서의 정신적인 문화와 물질적인 문명의 대립 예술과 기술 즉, 정신과 물질의 분리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 두 요소들의 통합 내지는 결합을 주장하는 것이었다.바우하우스 운동에 참여하였던 당시의 건축가, 화가, 공예가, 조각가 등은 이후에 월터 그로피우스, 미스 반 데 로에, 칸딘스키와 같이 세계적인 작가로서 인정받아 활동하였으며, 건축을 비롯한 현대 문화와 문명이 지향해야 할 중요한 좌표를 제시하였다. 이 운동의 정신은 20세기의 물질적 문명 지상주의가 계속되고 있는 21세기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한편, 유구하고 고유한 정신적 문화를 향유해왔던 우리 전북의 도시 또한 이 시대에서 이와 동일한 문제, 문화를 담아 내지 못하고 있는 문명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건축물을 위한 각종 재료, 공법 등 물질적인 문명의 발달은 건축물을 세우는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고는 있으나, 전세계 대도시 어느 곳에 가더라도 양식과 규모와 기술수준이 비슷한 건축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건축의 세계화의 추세는 지역의 정체성을 더욱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비판을 함께 받고 있다.그러나 유럽의 역사적인 도시를 가보면 그곳에는 구도심과 신도심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 신도심에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세계화된 건축물들로 채워져 있으나, 구도심에는 건축물의 신축 또는 개축 뿐 만 아니라 수목, 공원, 도로까지도 대부분 엄격한 규제와 통제에 의하여 정신적 정체성이 철저히 보존되고 있다. 그곳의 고유한 정신적인 문화의 정체성은 옛 건축물이 남아있는 구도심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다. 즉, 정신적인 문화와 물질적인 문명이 통합되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유럽의 문화와 문명의 공존은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산업화의 시행착오와 경험, 그리고 문화의 높은 인식 수준과 정책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면, 산업화가 짧은 시간에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와 문명의 분리된 모습과 혼란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우리나라에서도 비교적 산업화가 늦은 전북의 도시들은 이러한 문화와 문명의 분리의 정도가 아직은 적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전북의 도시들은 다른 도의 도시 보다 어쩌면 산업화가 덜된 만큼, 물질적인 문명의 공백을 정신적인 문화로 채울 수 있는 잠재력은 더욱 크다고 평가될 수 있다.전북 도시들의 고유한 음식, 서예, 소리들의 문화적인 소프트웨어(software)와 잘 보존된 고적과 사적지 등의 문화적인 하드웨어(hardware)로서 바우하우스와 같은 전북 문화 운동을 준비할 때이다.이와 더불어 건축물을 정신적인 문화의 질적 표현으로 여겨야 한다. 그러므로 규모에 관계없이 주거용 건축물과 공공건물 그리고 박물관, 미술관, 음악당, 극장, 문화센터와 같은 문화적인 건물은 물론이고, 교량, 하수종말처리장, 댐 관리소, 소규모 화장실, 파출소, 우체국, 심지어 가로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광범위한 건축 구조물들이 모두 우리시대의 우리지역의 하나의 정신적인 문화의 표현으로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전북의 도시에는 문명의 진행 축에 문화의 축이 흐를 수 있도록 하여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문화적인 몸으로 느끼게 할 수 있어야 한다."OECD 국가권에 들려면 국민의 정신조건으로서, 선진국 문물에의 사대와 맹종으로부터 자기네 문물을 계속 되돌아보고 되찾고 자부하는 주체의 회귀(回歸)를 둔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지금부터라도 우리의 고유한 정신적 문화와 현대의 물질적인 문명을 결합할 수 있도록 하여, 전북의 고유한 문화가 표현된 전북의 고유한 문명을 준비할 수 있는 범도민적인 문화운동을 기대한다./ 강대호 (건축가. 전주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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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8.3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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