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으로 중국산 물량공세 극복
전주한지는 전통문화의 명맥을 이어가는 전주가 자랑하는 대표적 명품이다. 그러나 한지는 그 우수한 품질에도 불구, 대량 생산되는 양지(洋紙)에 일반 종이시장의 대부분을 내어준데다 한지시장마저 저급한 중국산 제품에 밀리고, 환경 문제까지 겹치면서 힘겹게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문명의 이기가 명품 한지의 존립을 위협하면서 세계적 한지 명산지 전주의 한지 산업도 큰 타격을 입어왔다. 지난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40개가 넘었던 전주 일대의 전통한지 생산업소가 12월 현재 7개소에 불과한 것. 당국이 전통한지의 귀중한 가치에 무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주시 당국의 전통문화 보존의지가 강하게 작용하고, 업계에서도 다양한 연구가 성과를 거두면서 전주 전통한지는 그 빛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전주한지의 전통과 우수성은 우리나라 한지 유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서울 인사동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세계적 ‘문화의 거리’로 꼽히는 서울 인사동 중심거리에서 도내 출신들이 한지 유통시장을 장악, 품질좋은 전주전통한지의 활로를 터나가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매월 서화용 한지 1백만장, 일반용 한지 1백만장 등 총2백만장 정도의 한지가 유통되며, 이 가운데 50% 이상이 인사동에서 소비되고 있다.
인사동은 전통과 현대, 신·구세대가 함께 공존하는 다양함과 생생함이 살아있는 박물관과도 같은 문화의 거리. 곳곳에는 골동품과 고서적, 한지, 필방, 고미술상, 화랑 등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다. 특히 주변에 수많은 화랑과 예술인들의 작업실, 찻집, 주점 등이 위치하면서 인사동은 문화예술의 거리이자 외국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인사동 중심가에서 지필묵을 함께 취급하는 필방을 제외하고, 한지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소는 대략 10여개소. 이들 전문 한지 취급점 가운데 전북 출신이 운영하는 곳은 무려 8개소에 달하고 있다. 전북인들이 우리나라 한지유통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는 것인데, 전북이 전통한지의 명문가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40여년전인 지난 1962년 인사동에 전주한지 판매소를 냈던 변재신 사장(전북지업사)과 김득수 사장(전주지업사)은 인사동에 전문한지시장의 문을 처음 연 인물들로 알려져 있다. 당초 변 사장과 김 사장은 동업으로 가게문을 열었지만 전주와 임실 일대에 한지공장이 급증하는 등 사업이 번창하면서 결별했다.
이어 63년 전주 흑석골 소재 문산제지(90년대 초반 폐업)가 서울 인사동에 직매점을 내면서 상경한 오경표 사장(경일한지백화점)을 비롯 김용의(전북한지), 송재천(송지방), 변희석(형제지업사), 신동규(백제한지), 박성만(동양한지) 사장 등도 변사장 등으로부터 갈라져 나오거나 새롭게 한지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밖에도 전문 한지 취급업소로 원주한지와 일신당이 있지만 이들은 경기도와 강원도 출신들이 운영하고 있는 업소로 알려지고 있다.
변재신 사장과 오경표 사장 등 인사동 한지 터줏대감들에 따르면 당시 인사동의 한지시장-국내시장 전체-은 지금보다 훨씬 컸다. 아파트 등 현대식 건축문화가 미흡했던 터여서 한지는 도배지, 창호지, 장판지 등으로 수요가 많았다. 화선지는 예술가들 뿐 아니라 학생 및 일반인들의 활발한 서예활동으로도 많이 팔려나갔다. 안피지는 인쇄용 등사원지로 쓰였고, 지적도와 호적대장 등에 사용하는 종이도 한지였다.
이런 가운데 특히 전주 전통한지는 전국 시장에서 맹위를 떨쳤다. 80년대까지 유통 창호지의 60%가 전북에서 생산된 한지였고, 도내 생산 한지 가운데 40%는 임실에서 생산될 정도로 전주와 임실지역은 전통한지의 주요 생산지였던 것이다. 특히 전주한지는 우수한 품질 때문에 일본 수출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오경표 사장은 “국내 한지업체가 줄줄이 폐업하면서 중국제품이 많은게 사실이다. 국내 유통한지의 약 80% 가량이 중국산 한지이고, 나머지 20% 가량만을 전주를 비롯 원주, 괴산, 안동 등에서 생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관련, 오 사장은 당국의 무심함을 지적했다. 1980년대 후반 무렵, 전통한지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잿물이 하수를 오염시킨다며 당국이 엄격한 단속을 펼치면서 한지업계는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결국 대책없는 정책 때문에 한지업계가 활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
물론 전주시가 지난 93년에 22개 한지업체를 집단화하는 등 한지업계를 지원하며 전주 전통한지의 명맥 잇기에 나섰지만, 지금은 고작 전주 7개업소, 임실 1개업소 등 총8개 업소만이 우리 고유의 전통한지를 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중국제품은 공급량이 많은 반면 질이 낮은게 대부분이어서 전주 전통한지를 찾는 사람들은 변함이 없다고 인사동 판매상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중국제품이 양적으로 우세한 반면 전주한지는 명품으로서의 위상을 굳게 지켜가고 있는 것이다.
전통 한지 활로는
거대한 종이 시장에서 양지에게 눌리고, 중국산 한지에 밀린 우리 전통한지의 살길은 무엇인가.
사회 전반적으로 기술이 발전하고, 생활양식이 달라지면서 직격탄을 맞은 한지업계.
비록 한지 인화기술 개발, 한지 수의 개발, 한지공예, 한지 명함 등 생활 속에서 한지의 쓰임새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그 시장의 한계성 때문에 활로 찾기가 간단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40년 넘게 한지 유통시장을 주도해 오며 전통한지의 사양화를 온몸으로 겪어온 인사동의 변재신, 오경표 사장은 우리 문화에 대한 국민적 애정도 필요하지만 한지의 쓰임새를 넓혀주는 정책적 배려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오경표 사장은 “행자부와 경찰청, 국방부의 경우 표창장을 한지로 제작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영원한 추억으로 남는 졸업장을 한지로 만들어 준다면 얼마나 멋진 선물로 남겠는가. 전통한지의 우수성을 영원히 이어가기 위해서는 한지 수요를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적 배려도 크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재신 사장은 “한지로 도배하면 미학적으로는 물론 무엇보다 건강에 좋다. 도배를 하면서 적어도 초지작업만이라도 한지를 사용하도록 한다면 한지업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심신수련에도 큰 도움이 되는 서예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초등학교 단계든, 중학교 단계든 좀더 많은 학생들이 서예를 배운다면 학생들의 정서함양, 정신집중 등의 효과는 물론 한지산업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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