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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무신년진찬도병풍 - 1848년 왕실 잔치 세밀한 묘사

▲ 무신년진찬도병풍

국립전주박물관이 145년 만에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이 한창이다. 의궤를 들여다보면 글씨만 적혀있는 것이 아니라 행렬도나 행사에 쓰인 각종 기물이 그림으로 묘사된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조선의 왕실에서는 국가와 왕실의 큰 행사가 있을 때 이를 그림으로 그려 기록했다. 궁중에서 열리는 많은 행사들을 기록한 그림을 이른바 '궁중기록화'라 일컫는데, 크게 의궤에 수록된 그림과 실제 거행된 국가 의식 속 모습을 재현한 궁중행사도로 나뉠 수 있다. 의궤도와 궁중행사도는 모두 나라의 전례의식을 담은 그림이지만 의궤 그림은 보고를 목적으로 행사의 전반을 기록해 후대 참고자료로 이용하기 위한 것이다. 반면 궁중행사도는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기념화로 출발한 그림이라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궁중 행사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은 같지만, 직접적인 제작 목적 및 경위·형식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개념의 그림인 것이다.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무신년진찬도병풍'은 궁중행사도로 1848년(헌종 14) 대왕대비 순원왕후(순조의 비)의 육순과 왕대비 신정왕후(익종의 비)의 망오(41)를 맞이하여 창경궁에서 거행된 잔치를 그린 8폭의 병풍이다. 이처럼 진찬은 왕·왕대비·대왕대비의 생신이나 왕의 등극을 기념하는 잔치로, 왕실의 행사였던 만큼 '무신진찬의궤'(서울대 규장각 소장)가 함께 전하고 있다.

 

8폭의 병풍은 화면 왼쪽부터 행사 순서대로의 모습이 진행되는데, 1·2, 3·4, 5·6폭은 각각 한 화면이고 마지막 8폭에는 진찬에 참석한 명단인 좌목이 적혀 있다. 1·2폭은 진찬일 전날인 3월 16일 인정전에서 열린 진하례(陳賀禮), 3·4폭은 3월 17일 통명전(通明殿)에서 열린 진찬(進饌), 5·6폭은 같은 날 밤에 열린 야진찬(夜進饌), 7폭은 19일 향연을 마친 후 수고한 관원들을 위로하는 잔치인 익일회작(翌日會酌)의 모습을 담고 있다.

 

왕실의 화려한 행사를 기록한 조선시대 궁중기록화들은 일반 회화와 달리 화면을 꽉 채울 정도로 화사하게 그리는데, 하나하나 요소를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인원과 물량이 동원된 잔치인 만큼 흥미로운 점들이 발견된다. 우선 그림에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왕을 직접 그리지 않고 어좌와 일월오봉도로 왕의 자리만을 그렸던 게 특징이다. 존엄하신 임금을 함부로 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밤에 열린 잔치를 그린 5·6폭에는 건물 곳곳에 배치한 붉은 등이나 촛대가 있어 잔치가 열린 시기를 엿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흥겨운 자리인 만큼 각각의 화면에는 화려한 군무를 추는 무녀들이 등장하고, 화면 장막 아래에는 열심히 음악을 연주하는 무리도 보인다. 화면 구석구석에 등장하는 분주히 행사를 준비하거나 구경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궁중행사도를 보는 재미 중 하나다.

 

이렇게 대규모의 인원과 물량을 동원하면서 크고 작은 향연을 베풀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조선은 철저한 유교 질서 안에서 생성된 '국조오례의'와 같은 엄격한 의례 하에 정치를 펼쳤다. 따라서 크고 작은 궁중행사를 통해 나라를 다스리는 도를 펼치고 경로효친사상을 통해 정치적 안정을 꾀한 교훈적이고 감계적인 목적이 컸던 것이다.

 

현재 국립전주박물관 특별전'조선왕실의 위엄, 외규장각 의궤'에서는 1887년(고종 24) 대왕대비인 신정왕후의 팔순을 기념하여 열린 잔치를 그린 '정해진찬도'(丁亥進饌圖)라는 또 다른 진찬도를 감상할 수 있다. 언뜻 '무신년진찬도'와 비슷해 보이지만 8폭이 아닌 10폭의 화면에 진찬의 과정을 더 상세히 담았다. 불과 약 40년 후에 그려진 같은 성격의 그림에서 궁중행사도의 변천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권혜은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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