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농촌일손 지원해준 '일일 청년농부' 위해 푸짐한 밥상
고기 굽는 냄새에 지나가던 주민들도 함께 왁자지껄 '이야기 꽃'
 
   긴 겨울이 지나고 오랜만에 따뜻한 햇살이 내리쬡니다. 그 아래에서 본보 청년들이 구슬땀을 흘립니다. 한참 일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넘어갈 시간. 땀을 닦으며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어디선가 최은주(79)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이고, 고생들 많다니께! 밥은 먹고 혀야지!"
최 할머니가 마당 한쪽에서 사용감이 느껴지는 바비큐 그릴을 꺼내 옵니다. 자식들이 집에 찾아올 때 쓰던 물건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손님을 위해 꺼냈습니다. 손에는 큼지막한 삼겹살 덩이도 들려 있습니다.
직접 재배한 싱싱한 상추도 큼직한 채반에 한 가득. 거기에 신옥리(83) 할머니의 명이나물과 고추 장아찌, 매콤한 고추와 마늘까지. 금세 저녁 한 상이 뚝딱 차려졌습니다.
”얼른 와! 고기 탄다. 먹고 혀! 고생했응께 많이 먹어야 혀."
 
   푸짐한 한 상이 차려지고도 한참을 안 오는 청년들을 부르는 소리가 점점 커집니다. 뒷정리에 매진하다 헐레벌떡 달려간 최 할머니의 집 앞 마당은 앉을 자리도 없었죠. 고기 그릇이 바닥 나기가 무섭게 끊임없이 채워집니다. 너무 많이 먹었다는 말도 소용없습니다.
”어르신, 저희 많이 먹었어요! 이제 그만 굽고 같이 드셔요.”
그만 굽고 드시라는 말에 어르신은 손사래를 칩니다. 꼭 고생한 저희에게 직접 구운 고기를 먹여야겠다는 겁니다. ”안 다쳤어? 많이 힘들지?“ 함께 고기를 굽기 위해 그릴 곁에 함께 선 청년 이장을 향해 신 할머니가 말합니다.(사실 신 할머니도 치킨을 준비했다가 너무 많은 고기 양에 급하게 주문을 취소했답니다. 다음에 사 주기로 약속했죠.)
맛있는 고기 냄새가 마을에 퍼진 듯 주변에서 운동하던 마을 주민들까지 모였습니다. 이장순 할머니부터 청년 이장들도 '영화 언니'라고 부르는 동네 주민 이혜례 씨까지 다 모였죠. 그리고 귀여운 시골 똥강아지도 왔습니다. 명절에나 다 모일 것 같은 인원이 한 자리에 모여 왁자지껄 하하호호 한바탕 놀았습니다. 뒷정리까지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간다는 청년들의 말에 할머니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고마워!"라는 말을 반복하셨죠.
사실 오늘 고생한 사람은 저희만이 아닙니다. 화정마을 어르신들도 마음고생이 컸답니다. ‘젊은 청년들을 고생시키는 건 아닐까?’, ’다치면 안될 텐데.‘ 걱정이 함께 걷는 걸음에서, 함께 수레를 잡아 주던 주름진 손에서, 한숨처럼 흘러나온 말들에서 묻어났습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배가 불렀지만 내어주신 음식을 남김없이 비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어르신!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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