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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균 익산시 도시관리공단 초대 이사장 “시민에게 최상의 서비스 제공하는 일류 공단 만들겠다”

익산시 도시관리공단이 오는 8월 정식 출범을 앞두고 7월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공단은 앞으로 국민생활관과 서부권다목적체육관, 배산실내체육관, 익산문화체육센터, 종합운동장, 공영주차장 5개소, 쓰레기종량제 봉투 판매, 현수막 게시대 등 8개 사업을 통합 관리하게 된다. 공공서비스의 질 향상과 시민의 다양한 니즈 충족을 위한 전담기구로서 익산지역 공공시설물 통합 관리의 전문성 및 효율성을 제고하고 이를 통해 시민과 이용객의 만족도를 높여 나간다는 목표를 표방하고 있다. 지난 4일 부임한 심보균(62) 초대 이사장 역시 시민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류 공단을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지역개발과 지역정책, 도시 거버넌스 등 관련 행정을 두루 경험한 정통 행정가이자 ESG 경영 전문가인 그는 특히 장기적인 관점에서 친환경·사회적 책임·투명 경영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ESG(환경 Environment, 사회 Social, 지배구조 Governance)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성공적인 출범과 조기 정착 등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으로 연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나 익산시 도시관리공단의 운영 방향과 비전을 들어 봤다. 초대 이사장으로서 각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익산시 도시관리공단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을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보람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익산에서 초등·중학교를 졸업했고 지금도 어머님과 친인척, 많은 친구들이 있는 곳이기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사명감을 갖고 저의 30여년 행정 경험과 지역개발 및 도시정책 연구와 강의, ESG 경영 컨설팅과 자문 등의 경험을 살려 공단의 성공적 경영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특히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ESG(환경, 사회, 거버넌스) 경영 개념을 적용해 친환경 경영, 직원 및 이용자의 안전과 보건위생이 보장되는 경영, 투명 경영을 확립하고 시민에게 행복과 기쁨을 드리는 일류 공단을 만들겠습니다.” 전북도 행정부지사, 행정안전부 차관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했습니다.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지방자치와 지역 발전, 공기업 정책을 총괄하는 행정 부처에서의 경력을 마치고도 계속해서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직 수행, 대학에서의 강의와 자문, 공공기관의 ESG 경영 자문과 컨설팅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개발과 도시정책 등에 대한 강의와 연구는 물론, 도시공사와 공단 등을 대상으로 ESG 경영 자문을 해 왔습니다. 평소 지역발전과 도시정책, ESG 경영에 대한 깊은 연구와 교육, 자문 활동을 해 오던 중 익산시 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직위 공모를 알게 됐고, 저의 모든 경험과 활동, 역량을 다 바쳐 어릴 적부터 꿈을 키워 온 익산의 도약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 공단을 경영해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오게 됐습니다.” 공단 설립 과정이 순탄치 않았습니다. 공단의 핵심 가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공단은 지방공기업의 한 유형으로, 핵심은 효율성과 공공성간 균형을 유지하면서 비용을 최소화하고 시민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공단 설립 과정에서 논의된 내용을 보면 조직의 비대화나 방만 경영에 대한 우려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우려를 감안해 경영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그간 시청 내 여러 부서에서 개별적으로 관리되거나 위탁됐던 조직들을 공단에서 통합적으로 운영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경영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 경영 관리 기법을 도입해 비용을 줄이면서도 시민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효성 있는 운영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인데요. 운영에 있어 주안점이 있다면. “공단에 대한 우려는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설립 과정에서부터 논의됐던 내용으로, 조직의 비대화나 방만 경영 등 비효율 측면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그러나 관련 시설들은 조직 경영에 유사점과 연계성이 있음에도 개별 부서가 직영하거나 민간기관에 위탁해 운영되면서 상호간 연결과 균형 유지, 시너지 효과를 내기에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봅니다. 공단에서는 시설간 유기적 연계와 균형 유지, 통합적 운영, 스마트 경영 관리 기법 도입 등을 통해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방안 모색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시민의 입장에서 이용 기준과 방법에 시설별 표준적 기준 적용, 시민을 위한 서비스 이용 극대화를 위한 개선 방안 등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를 위해 각 시설의 이용 현황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민들의 시설별 이용 기준과 방법 등을 진단·분석해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시민들의 접근성과 이용 만족도를 보다 높일 수 있는 시민 서비스 극대화 방안을 찾겠습니다.” 인사청문회에서 공단 경영 역량을 인정받았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지방자치와 지역발전의 성공적 구현과 공사·공단 등 지방공기업 정책을 다루는 행정안전부에서 30여년을 근무했고, 지방공기업의 효율성과 공공성의 균형 있는 경영과 ESG 경영에 대한 자문과 컨설팅, 강의와 연구를 해 왔습니다. 지역개발과 지역정책, 도시 거버넌스, 도시 정책에 대한 강의와 연구는 물론 ESG 경영에 대해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 재직 시절부터 전문적 연구를 해 왔기에 익산시 도시관리공단 경영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 익산지역 현장의 이슈와 과제에 대한 이해와 공감 폭을 넓히고 깊이를 확대할 수 있도록 익산시 및 익산시의회와 긴밀히 협의하고 시민과의 대화와 소통을 강화하는 한편 데이터 분석과 진단을 통해 현장의 이슈를 발굴하고 시민의 요구와 기대에 맞춰 바람직한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겠습니다.” 초대 이사장으로서 특별히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특별히 목표로 삼는 것이 있다면 ESG 경영의 원리와 방법들을 공단 경영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직원의 인권과 안전 보장, 이용 시민과 직원의 재난 사고 방지와 보건위생 확보,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 효율적인 스마트 경영 관리 기업 도입을 통한 서비스 극대화 등 시민에게 행복과 기쁨을 드리는 일류 공단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 익산시민과 공단 임직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익산시민 여러분, 그리고 공단 임직원 여러분,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가까이 있는 자들을 기쁘게 하면 멀리서도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익산시 도시관리공단 경영을 통해 시민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다른 지역 사람들도 익산을 사랑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익산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혼신을 다하겠습니다. 이제 처음 발족하는 공단인 만큼 아직 걸음마 단계라서 여러 가지로 미비하고 부족하지만, 사랑과 관심을 보여 주시고 아껴 주시고 지원해 주신다면 저를 포함한 공단 임직원들이 합심·협력해 기대와 사랑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시작이라 아직은 어려움이 예상됩니다만, 시민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 행복과 기쁨을 드리는 일류 공단이 될 수 있도록 공단 임직원 여러분들도 힘과 지혜를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심보균 이사장은 심보균 이사장은 전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 대학원 행정학과 석사 및 일본 사이타마대학교 대학원 정책과학과 석사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국정관리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87년 제31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으며, 대통령비서실 인사제도비서관실 행정관, 행정자치부 인사혁신팀장, 전라북도 기획관리실장, 행정안전부 기획조정실 정책기획관 및 지역발전정책국장, 여성가족부 기획조정실장, 전라북도 행정부지사,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지방자치발전기획단장, 행정자치부 기획조정실 차장, 행정안전부 차관 등을 역임했다. 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석좌교수,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 글로벌 ESG 협회 원장, 국립서울과학기술대학교 석좌교수 등으로 활동했다. 중앙과 지방 행정을 두루 경험한 정통 행정가이자 ESG 경영 전문가로서, 섬세하면서도 기획력과 추진력을 겸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 기획
  • 엄철호외(1)
  • 2023.07.09 16:57

‘군민 모두가 행복한 순창’ 향해 순항 중

민선 8기 순창군을 이끄는 최영일 군수가 지난달 30일 1주년을 맞았다. 오랜 정치경력을 기반으로 초선임에도 불구하고 ‘군민 모두가 행복한 순창’을 만들기 위한 최 군수의 남다른 열정은 그 누구도 도전하지 않았던 새로운 활로의 기회를 만들고 있다. 군민화합, 지역경제 활성화, 돈 버는 농업, 따뜻한 복지, 정주인구 증대라는 5대 군정목표를 내세운 민선 8기의 시작은 순창군민 생활기본권 보장을 위한 ‘순창형 보편적 복지정책 추진 기본계획’ 1호 결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행보의 문을 열었다. 1년간의 민선 8기 성과와 과제, 향후 순창군정에 대한 지향점 등을 알아봤다. ‘군민화합’ 위한 365일 발로뛰는 소통행보 가장 먼저‘군민화합’을 내세웠던 최영일 순창군수는 당선 직후부터 소통과 협치를 강조해 온 가운데 취임한 전후로 각계각층과의 간담회를 여러 차례 갖고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왔다. 올해 본격적인 소통행정 구현을 위한‘군민소통혁신추진단’과‘행복소통협의체’를 구성했으며 이를 통해 다양한 여론을 청취해 군정에 반영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발굴할 방침이다. 또 올해 연초부터 317개 순창군 전체 마을 방문을 시작으로, 읍면 군정 설명회, 가뭄 대비 영농현장 등 수시로 찾아가는 소통행정을 펼치며 격의 없는 소탈한 자치단체장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현장에 답이 있다’는 소신 아래 강천산 군립공원, 용궐산 하늘길 일원, 발효테마파크 등 관내 관광지 현장에서 간부회의를 개최하여 소통 그 이상의 파격 행보를 보임으로써 현장 행정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는 주민들의 여론이다. 모두가 잘 사는 ‘지역경제 활성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최 군수는‘경천·양지천의 기적’을 추진한다. 경천·양지천 고유의 수생태계 가치를 기반으로 수변 꽃길, 음악분수, 랜드마크 등 친수 관광거점을 조성해 분산된 관광인프라와 연계해 순창군의 신성장을 창출할 계획이다. 특히 전라북도 동부권 균형 발전사업에 경천, 양지천 수변개발 사업이 신규 반영됐으며, 사업비 175억 확보를 위해 마지막 행정절차 이행에 힘쓰고 있다. 또 순창의 대표 관광지인 강천산 입장료는 현실화하고 무료로 운영했던 용궐산 하늘길 입장료를 유료화하는 동시에 입장료의 일부를 환원해 지역 상품권으로 돌려줌으로써 관광객들이 실제 순창에서 돈을 쓰고 가는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다. 풍요로운 농촌도시 ‘돈 버는 농업’ 최 군수는 농업인 기본 소득을 보장하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임기 내(2026년) 농민수당 연 200만원 지급을 목표로 정부와 지속적으로 협의 중인 가운데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받는 순창, 농민들이 살기 좋은 순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에 작년 12월 농민기본소득 지원조례를 제정했으며, 올해 농가당 농민소득 120만원 지급을 위해 36억의 예산을 수립했다. 또 고령화에 따른 대책으로 외국인 계절 근로자 확대를 위해 라오스, 필리핀, 베트남과 MOU를 체결했으며, 근로자의 처우개선과 장기적인 노동력 공급을 위해 외국인 근로자 기숙사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와함께 고향사랑기부제를 적극 추진해 지역 농산물 우수성을 전국에 알리고, 7월 초 자체 인터넷 쇼핑몰인‘행복순창몰’을 개설해 농특산물 판로를 확대하는 한편 다변화되고 있는 유통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방침이다. 촘촘한 생애맞춤 ‘따뜻한 복지’ 순창형 보편적 복지정책은 복지정책임과 동시에 직접적이고 강한 인구 유입 정책으로써 인구가 늘고 경제 규모 또한 커지는 선순환 구조를 꾀하고 있다. 지역의 실정에 기반한 선도적 보편적 복지를 추진해 군민을 따뜻하게 보듬고 지역 성장까지 이끌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목표다. 많은 복지사업 중 당연 주목받는 사업인 아동행복수당은 관내 주민등록을 둔 2~17세 아동에게 매월 40만 원씩 지급하는 사업으로 군은 출산에 대한 문제를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경제적 수준에 상관없이 자녀 수에 따라 수당을 지급함으로써 부모들의 출산과 양육의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고 있다. 현재, 아동행복수당 지원은 사회보장제도 신설 협의 단계를 진행중에 있으며, 최 군수는 연초부터 중앙부처, 전라북도 등을 방문해 사업 필요성과 타당성을 설명하는 등 현안사업 해결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또 올해 공약사업으로 첫 시행한‘대학생 생활지원금’은 지역 출신 대학생에게 1학기당 200만 원, 1년에 400만 원, 4년간 총 1600만 원을 지원함으로써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을 대폭 줄여주고 있다. 이와함께 어르신들이 활기차고 건강한 노후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존 1281개 일자리에서 임기 내 3000개의 노인일자리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하반기에는 사회서비스형 노인일자리 100개를 추가 확보해 어르신들의 사회참여를 최대한 유도할 계획이다. 백년 미래 순창을 위한 ‘정주인구 증대’ 전북 전체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순창군의 다양한 인구유입 복지정책이 효과를 보이고 있다. 최근 5개월 동안 순창군은 인구 유입이 계속되어 전년 대비 총 146명이 증가했으며, 이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가 심각한 시기에 있어 주목할 만한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또 군은 인구 유입을 위해 인근 도시민을 적극 유치하기 위한 ‘순창형 전원마을 500호 조성사업’을 위해 전북개발공사와 업무협약 체결을 완료하였고 관련 조례도 제정했으며 현재 부지매입을 추진중에 있다. 특히 면 단위 학교 폐교 방지를 위해 전국적으로 농촌유학생 모집 확대에 적극 나선 결과, 전북지역 외 초·중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18명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들 모두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다. 더불어 사업비 230억 원을 투입해 순창읍 뿐만 아니라 면단위 소재지에 공공임대주택을 건립해 거주지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신혼부부, 청년 등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자 적극 노력 중이며, 현재 복흥과 동계는 공공임대주택 사업이 활발히 추진 중이고 연차적으로 쌍치, 구림, 순창읍에도 건립할 예정이다. 최영일 순창군수 "‘군민 모두가 행복한 순창’ 만들기 위해 최선" “민선 8기 취임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일선 현장을 직접 찾아 주민의 어려움을 듣고 함께 해결 방안을 찾으며 짧은 기간 동안 작지만, 많은 성과도 이뤄낸 것 같습니다.” 최 군수는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군민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와 폭설, 호우 등 재난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언제나 역경을 딛고 희망을 만들어왔다”며“그 저력을 믿고 순창군의 새로운 군정 비전인 ‘군민 모두가 행복한 순창’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최 군수는 “지방소멸대응기금 168억 확보, 소상공인 손실 보전금 14억 지급, 제18회 대한민국 스포츠 사업대상 우수지자체 선정, 농산물 생산장려금 13억 지급, 연말 폭설피해 시설하우스 신속한 복구, 대학생 생활지원금 8억 지급, 농촌 유학 학생 18명 유치 등 의미 있는 성과를 이뤄냈다”고 덧붙였다. 특히 최 군수는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도전과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군민 모두가 행복한 순창을 실현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며“주민들과 소통을 더욱더 강화하고, 군민들의 요구와 필요에 부응해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추진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최 군수는 “군민들의 지지와 협력을 바탕으로 군정 5대 목표인 군민화합, 지역경제 활성화, 돈 버는 농업, 따뜻한 복지, 정주인구 증대를 내실 있게 실현해 나가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 기획
  • 임남근
  • 2023.07.09 16:39

[지난 주 '핫클릭' : 7. 2~7] 전주지법, 강제징용배상금 공탁 불수리

△7월 2일~ 7월 7일 무더위와 장맛비가 뒤섞여 기승을 부린 7월 첫째 주, 전북일보 홈페이지 방문자들은 박현우 기자의 '손님이 없어요, 전주 노송천 만원행복거리 눈엣가시 전락'을 가장 많이 클릭했다. 지난 2012년 지정된 전주 노송천 일대 '만원행복거리'. 상인은 손님이 없어서, 소비자는 만 원으로 살 게 없어서, 주민은 불법주차·쓰레기·하천 악취 등으로 골머리를 앓으며 애물단지 신세가 됐다고. 두 번째로 많이 찾은 기사는 송승욱 기자의 '물건너간 줄 알았던 익산 코스트코 현재 진행 중'이다. 정헌율 익산시장 지난 6일 열린 민선 8기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코스트코코리아 측에서) 대체 부지 3곳 중 1곳을 검토하고 있는데, 아직 결론이 난 것은 없다"면서도 "현재 밀당을 하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 유치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히 "샅바를 잡았다"며 강력한 의지도 드러냈다. 세 번째는 송승욱 기자의 '급식에서 벌레가, 익산 A고 부실 위탁급식 논란'이다. 학교 식당 리모델링 및 증축 공사로 인해 올해 3월부터 도시락으로 위탁급식을 진행했으며, 납품업체를 교체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밝힘. 이밖에 엄승현 기자의 '전주지법, 고 박해옥 할머니 강제징용배상금 공탁 불수리 결정' 등이 주목을 받았으며, 지난 6일 국내 유명 커뮤니티에 '배용준 이슈'가 발생하면서 2004년 전북일보 홈페이지에 게재된 '몸짱 배용준의 몸만들기...日언론 심층보도'가 소환되기도 했다.

  • 기획
  • 이용수
  • 2023.07.08 13:44

민선 8기 정헌율 호 “시민 중심 쾌속 도약 이뤄낼 터”

“안정을 넘어 대도약의 시대로 나아가겠습니다.” 민선 8기 정헌율 호가 시민 중심의 쾌속 도약을 다짐했다. 익산 최초 3선 시장인 정 시장은 취임 초기 막대한 부채를 전액 상환하고 전국 꼴찌 수준이었던 청렴도를 전북 1위로 끌어올린 것은 물론 매니페스토 3년 연속 최고등급(SA) 등을 달성하며 도시 전반을 안정화하는데 주력했다. 재선에 성공한 이후에는 안정과 함께 성장에 방점을 찍었다. 전국적으로 모범 사례인 익산 다이로움과 청년 정책, 도심 속 명품 숲 조성 등은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단초가 됐고, KTX익산역 복합개발과 만경강 수변도시 등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혁신을 담아낼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6일 익산시청 상황실에서 민선 8기 1주년 기자간담회를 연 정 시장은 이 같은 성장 동력들을 기반으로 남은 임기 동안 반드시 혁신 성장을 이뤄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연이은 모범 사례, 전국에서 빛났다 익산시는 정헌율 시장 취임 이후 지난 7년간 각종 분야에서 전국 최초 및 최고로 꼽히는 모범 사례들을 쏟아냈다. 우선 경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전국 최초 농식품 상생 모델인 ‘익산형 일자리’가 올해부터 본격화되면서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식품산업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무려 4년간 준비해 온 대규모 프로젝트인 익산형 일자리는 하림과 함께 7600여억 원을 투입, 645명의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추진된다. 지역의 대표 정책으로 자리매김한 ‘다이로움’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지역화폐 다이로움은 전국 최대인 20% 혜택으로 민생 경제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으며 수수료 0원으로 경제적 부담을 낮춘 다이로움 택시는 대기업 플랫폼을 앞서며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국내 최초로 운영을 시작한 ‘익산 청년시청’은 전국 자치단체의 벤치마킹 선진지로 부상하며 국내 청년 정책을 선도하고 있다. 특히 매월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다이로움 취업박람회는 높은 성공률을 보이며 전국적 모범 사례로 확산되고 있다. 이밖에도 근로 청년들을 위한 ‘익산형 근로청년수당’, 어르신들의 노후 보장 체계를 구축하는 마을자치연금도 차별화된 익산형 경제 정책 사례로 꼽히며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지역 장점 살려 산업·경제 선도 정 시장은 남은 임기 동안 지금까지 닦아온 도시 안정성과 성장 발판을 토대로 국내 산업·경제 중심축으로 나아갈 기반을 확고히 다진다는 각오다. 그 중심에 ‘식품’과 ‘KTX익산역’이 선다. 국가산업단지로 조성된 지 15년 만에 2단계가 본격화되는 국가식품클러스터는 익산을 명실상부한 글로벌 식품수도로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새롭게 조성되는 2단계 산단은 단순 식품을 넘어 ICT 기술과 문화가 접목된 식품문화복합산단으로 오는 2028년까지 3855억 원이 투입된다. 정 시장은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식품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그 첫 행보로 지난달 말 미국 KORTA 실리콘밸리 무역관을 방문해 푸드테크 분야 해외 투자 유치 방안을 논의했으며, 이를 토대로 입주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지원하고 식품산업 외연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KTX익산역은 교통과 산업 기반이 어우러진 호남 최대 경제거점으로 조성한다. 정부로부터 이미 사업 추진 타당성을 인정받은 익산역 복합개발은 국내 최고 대기업이 참여하며 순항 중이다. 이곳에 복합환승센터와 환승지원시설이 건립되면 원도심 이미지 개선은 물론 환승 유동 인구 유입으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끌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배산 택지개발 이후 10여년 만에 진행되는 각종 도시개발도 시민들의 기대감이 크다. ‘만경강 수변도시 프로젝트’는 자연친화적 요소와 도내 주요 관문이라는 점을 활용해 청년과 은퇴자가 공존하는 특화된 주거단지로 조성된다. 이는 민관합동개발(SPC) 방식으로 올해 민간사업자를 공모·선정하고 오는 2026년 착공을 목표로 추진된다. 쉼과 여유 어우러진 녹색정원도시 안정적인 주거 인프라와 함께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녹색공간도 대폭 확대된다. 금강의 절경이 내려다보이는 웅포면 함라산 자락에는 도내 유일의 ‘국립 치유의 숲’이 올 연말 준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며, 다양한 생태자원의 보고인 금마 일대에는 생태 관광 인프라가 조성되고 있다. 악취와 오염의 상징이었던 왕궁 축산단지는 친환경 생태정원으로 재탄생된다. 지난 5월 환경부의 자연환경 복원 시범사업 후보지에 2순위로 선정돼 현재 사전 준비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이밖에도 시민들이 도심 어디서든 녹색공간을 만끽할 수 있도록 수도산과 마동, 모인 등 도심 속 공원 5곳을 조성하고 폐철도 유휴 부지를 활용한 기후대응 도시 숲과 시민 체감형 정원을 조성한다. 대한민국 관광 1번지로 도약 도시 전반에 걸친 다양한 문화관광 자원과 인프라를 활용해 익산 방문의 해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국내 대표 역사문화관광도시로 도약하는 프로젝트도 추진된다. 현재 익산 곳곳에서는 세계유산과 백제왕도 핵심 유적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반시설이 조성되고 있다. 분산돼 있는 유적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세계유산탐방거점센터가 금마 일원에 들어서며 백제 무왕의 탄생 설화에 언급되는 마룡지와 서동생가터 일원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도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원도심 근대문화유산인 솜리근대역사문화공간과 등록문화 자원을 종합적으로 정비해 문화재를 기반으로 한 도시재생도 진행 중이다. 시는 다양한 인프라 구축과 함께 각종 콘텐츠 개발까지 병행해 국내 대표 체류형 관광지로 거듭난다는 방침이다. 맞춤형 복지로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 시는 세대별 맞춤형 복지 정책과 인프라 확충으로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를 조성한다. 우선 시민들의 의료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공공 보건의료 인프라를 적극 유치한다. 이미 유치전에 돌입한 국립희귀질환센터를 포함해 산재전문병원, 어린이전문병원 등 보건의료 기능을 집적화한다는 계획이다. 이어 직접 발로 뛰며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익산형 복지 시스템으로 촘촘한 복지 안전망을 구축한다. 위기가구 신고 창구인 ‘익산 주민톡’과 정부 지원보다 확대된 ‘익산형 긴급지원사업’, 마을복지리더로 구성된 ‘이웃애(愛) 돌봄단’ 등을 통해 사각지대 발굴에서부터 사후관리까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이밖에도 산모의 건강관리와 출산, 육아까지 책임지는 맞춤형 정책과 청소년 특화 공간 조성, 어르신 복지 증진을 위한 정책을 추진해 전 세대를 아우르는 행복생활권을 구축할 예정이다. 신산업 중심 미래 성장 동력 확보 시는 그린바이오와 홀로그램 등 미래 기술 중심의 성장 동력을 바탕으로 산업 지형을 재편하고 도시에 혁신을 불어넣는다. 특히 바이오 중심의 산업 생태계 전환을 위해 인프라 조성에 박차를 가한다. 현재 함열읍 일원에 그린바이오 벤처캠퍼스가 내년 완공을 목표로 조성 중이며, 동물 헬스케어 클러스터의 컨트롤타워가 될 동물용의약품 효능·안정성 평가센터는 올 연말 완공된다. 바이오식품과 농생명 분야를 특화시킬 제5산업단지도 새롭게 조성한다. 시는 이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해 공영개발과를 신설했으며 오는 2029년 완공을 목표로 현재 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다. 홀로그램 선도도시로서의 입지도 확고히 다진다. 이미 각종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는 시는 상용차와 문화재 복원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홀로그램 기술을 적용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앞으로 홀로그램을 연계한 익산형 IT 밸리까지 구축해 청년 창업을 활성화하고 지역경제 성장축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 기획
  • 송승욱
  • 2023.07.06 15:55

[도시의 시간, 성장동력을 만들다] ⑤ 쇠퇴 위기 도시, 역사 자원 활용 관광거점 도시로 우뚝

도시는 성장과 발전의 눈부신 시간을 맞았다가도 어느 사이 쇠퇴의 시간을 맞게 된다. 도시가 끊임없이 성장동력을 찾는 이유다. 일본이 쇄국정책을 펼치던 시대, 서양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던 나가사키, 한때는 일본의 3대 항구로 번성했던 모지항을 안고 있는 기타큐슈도 쇠퇴의 위기에서 성장동력을 찾아 나선 도시들이다. 도시의 교육문화시설, 관광 콘텐츠가 된 역사 공간 ◇나가사키 <데지마> 나가사키는 요코하마, 고베, 니가타, 하코다테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개항 도시다. 교류를 위해 항구를 연 시기는 각기 다른데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항구를 연 도시는 나가사키다. 그러나 나가사키의 교류 역사는 본격적인 개항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데지마(出島)>는 일본의 쇄국정책 속에서도 유일하게 서유럽에 개방되었던 창구다. 데지마가 일본의 근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가사키 항은 1571년 포르투갈과 처음 무역을 시작했다. 1859년에 항구를 열었으니 270여 년 전에 이미 서양과 교류하는 문을 열었던 셈이다. 이후 나가사키 항은 본격적인 교류와 무역항이 되었는데 그 통로가 된 곳이 데지마다. 데지마는 1634년에 축조를 시작해 1636년에 완성된 인공섬이다. 포르투갈인들의 기독교 포교 활동을 금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부채꼴 모양으로 조성된 이 인공섬에는 나가사키에 들어와 시내에 흩어져 살고 있던 포르투갈인들을 모아 거주하게 했다. 그러나 1637년 지방 관리들의 횡포와 과중한 징세를 견디다 못해 기독교인들이 민란(시마바라의 난)을 일으키자 일본은 포르투칼 배가 들어오는 것을 막고 포르투갈인들을 국외로 추방했다. 포르투갈인들이 떠나고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무인섬이 되자 일본 정부는 히라도에 있던 네덜란드의 무역상사와 상관을 데지마로 이전하게 했다. 서양의 학술, 의학, 문화가 들어와 일본 근대화에 큰 역할을 하게 된 또 하나의 계기였다. 데지마는 이후 200여 년 동안 일본의 유일한 해외 무역 창구로 역할을 해왔다. 1860년대에는 외국인 거류지로 편입되면서 더 번성했으나 나카시마 강의 공사로 데지마의 북쪽이 깎이고, 항만 개량공사로 남쪽이 매립되면서 부채꼴 인공섬은 원형을 잃게 됐다. 일본 정부는 1922년 ‘데지마 네덜란드 상관 터’를 국가사적으로 지정했다. 데지마 복원이 시작된 것은 1951년이다. 사적 안 사유지의 공유화를 진행하면서 1982년에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복원 정비 구상을 세웠다. 1992년에는 나가사키시에 ‘나가사키시 데지마 사적 복원정비연구회’를 설치해 데지마 사적을 교육문화시설로 조성하고 나카시마 강 맞은편 지역을 도시공원으로 조성하는 도시계획을 추진했다. 사적 ‘데지마 네덜란드 상관 터’ 복원이 시작된 것은 1996년이다. 복원 작업은 중단기와 장기 3단계로 나눠 진행되고 있다. 서북 중앙 동남의 구역을 순서대로 3단계로 나눠 19세기 초의 건축물과 주변 환경을 복원해 내는 사업이다. 이 정비계획에 따라 인공섬 안의 건조물과 섬 주변의 돌벽, 정문 다리를 복원하는 사업이 우선 추진됐다. 장기적으로는 19세기 초의 데지마 완전 복원이 목표다. 사적 안의 사유지를 완전히 공유한 것은 2001년, 사업을 시작한 때로부터 50년이 걸렸다. 2006년, 데지마는 건조물 대부분을 복원하고 돌벽과 담을 정비해 다시 문을 열었다. 오늘날 마주하는 데지마는 되살려낸 거리와 복원해 낸 건축물들이 방문객들을 수백 년 전 과거로 안내한다. 복원된 건물들은 전시와 체험을 위한 자료를 통해 각각의 기능을 그대로 보여준다. 당시 일본에 살던 포르투갈인과 네덜란드인의 생활을 재현한 그림과 모형이 전시된 사료관이나 1904년 매립되기 전의 데지마를 15분의 1로 축소한 데지마 모형과 네덜란드 무역상사를 실물 크기로 재현해 놓은 전시실은 특히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수백 년 전, 서양과의 교류 창구였던 데지마는 이제 나가사키의 역사를 새롭게 인식시키는 관광 콘텐츠의 거점이 됐다. 일본에서는 초·중·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 손꼽히는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내부의 건축물과 돌로 된 벽, 수로와 정문 다리까지 온전히 복원된 데지마는 낮과 밤의 풍경이 서로 다른 아름다움으로 눈길을 끈다. 도시 재생이 단순한 정비나 복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장기적인 구상을 실현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사례다. 행정과 민간 협력의 결실, 쇠락한 항구의 변신 ◇기타큐슈 <모지항 레트로> 모지항은 일본 혼슈(가장 큰 섬)와 규슈를 가로지르는 간몬해협에 있는 항구다. 1889년 국가의 특별수출항으로 지정돼 20세기 중반까지 중계무역항으로 기능을 했다. 중계무역을 통해 무역항으로 자리 잡은 모지항은 대륙으로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며 번성했다.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때에는 군수 물자를 수송하는 중요한 수송항이 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중국 본토와의 근접성으로 군수품과 병사들을 내보내는 중요한 항구로 활용됐으며, 유럽 항로 기항지가 되자 대륙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만주 등지로 오가는 무역선과 여객선으로 붐볐다. 특히 이 시기에는 고베, 요코하마와 함께 일본 3대 항구로 꼽히며 중요한 국제무역의 거점으로 자리 잡았고, 1914년 모지항역이 조성되면서 더욱 번성해 일본 대표 무역항이 되었다. 그러나 1942년 간몬해협을 가로지르는 간몬터널이 개통하면서 배가 아닌 기차로 물자를 수송할 수 있게 되자 수출항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지역 경제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대부분 항구가 이런 과정을 거쳐 새로운 활로를 찾듯이 모지항도 ‘개발’을 내세운 정비 사업을 시작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1960년대다. 1960년 쓰에요시 시장이 취임하면서 내놓은 항구 활성화 계획 ‘기타큐슈 르네상스 구상’이 발판이 됐다. 모지항은 재정비 시행 초기, 위기를 맞았다. 근대기에 조성됐던 역사적 건축물들이 개발을 앞세워 해체 위기에 놓인 것이다. 언론과 지역 주민들이 나서 개발계획을 비판하며 보존 운동을 벌였다. 항만 매립이 중단되고 도로 계획도 다시 세워졌다. 이때 만들어진 재정비 사업의 주제는 ‘역사와 자연’이었다. 때마침 일본 정부의 고향 만들기 특별 대책사업에 모지항 재정비 사업이 포함되면서 예산도 확보됐다. 정비 개념은 모지항의 역사를 주제로 하는 ‘레트로(Retro)’. 옛 광장과 이야기를 간직한 근대 건축물들, 수변 가로까지 항구를 중심으로 조성된 역사적 공간과 분위기가 ‘모지항 레트로’란 이름의 사업으로 추진됐다. 1988년 본격적인 항구 재생 사업이 시작됐다. 모지항 곳곳에 있던 10여 동의 근대 건축물을 항구를 중심으로 이전하거나 복원해 근대사를 껴안은 모지항의 풍광을 만들어냈다. 1995년에는 행정과 민간이 협력해 ‘모지항 레트로 클럽’을 결성했다. 더 새로운 활로를 찾아 한 번 더 도약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모지항 레트로 클럽’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과 상인, 행정이 협력해 모지항 관광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모지항 레트로 클럽’은 주민과 지자체가 함께 단체를 만들고, 자원봉사자와 기업이 참여해 지역을 살려낸 모범 사례다. 모지항은 1995년 3월 재개장한 이후 정부의 지원이 더해지면서 활력을 찾았다. ‘개발’만을 앞세워 낡고 오래된 공간을 없애지 않고 역사 자원으로 활용해 관광 콘텐츠로 이어낸 지혜로운 선택의 결실이다. 재정비 사업으로 새롭게 문을 연 이후 모지항의 관광객 수는 크게 늘었다. 최근 2~3년 동안 이곳도 코로나의 영향을 받았지만, 다시 활기를 찾아가는 중이다. 모지항은 쇠퇴하던 무역항에서 관광지로 변신했다. 그러나 모지항 역시 인구 증가에는 변화가 없다. 관광객은 늘었지만, 실제 주민 인구 증가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상황은 모지항의 과제다 기타큐슈시 산업경제국 쓰지모토 에리카 진흥계장은 “젊은 층 유입을 가장 큰 과제로 삼고 있다”며 “젊은 세대가 찾아올 수 있는 5개년 발전 방안을 담은 실천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소개했다. /일본 규슈=김은정 선임기자, 천경석 기자

  • 기획
  • 김은정
  • 2023.07.06 11:07

[참여&공감 2023 시민기자가 뛴다] 1000만 반려동물인 시대, 선진 반려문화 정착 위한 다각적 노력 필요

ㅣ# 한 가난한 할머니가 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가 울고 있는 잉어를 보고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는 그 잉어를 사서 물가에 놓아주었다. 어느날 잉어가 사람으로 변하여 은혜를 갚기 위해 할머니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구슬을 주고 간다. 할머니는 그 구슬로 인하여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욕심 많은 다른 할머니가 구슬을 훔쳐 달아나면서 다시 가난해졌다. 이로 인해 슬퍼하는 할머니를 위해 집에서 기르던 개와 고양이가 구슬을 찾아오는 도중 고양이가 입에 물고 있던 구슬을 떨어트린다. 마을에 돌아온 개는 포기한 채 집으로 돌아왔지만 고양이는 포기하지 않고 구슬을 찾아간다. 이후 다시 부자가 된 할머니는 고양이가 고마워 집안에서 키우고 개는 밖에서 키웠다. 대부분 사람이 알고 있는 전래 동화 이야기다. 하지만 천만 반려동물인 시대를 맞이한 요즘에는 그저 전래 동화 이야기일 뿐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22년도 동물복지정책과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600만여 가구, 1800만 명을 넘어섰다. 1인 가구의 증가, 고령화, 다문화 등 인구 구조의 변화에 따라 인간인 가족보다 개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을 기르는 반려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려동물은 ‘자신의 소유물로 데리고 논다’라는 의미의 애완동물에서 진화된 용어다. 1983년 처음 사용된 이 용어는 국내의 경우 2007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반려동물의 편의와 특성까지 고려한 소재를 반영한 다양한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펫케어 산업화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나아가 ‘펫 휴머니제이션, 펫팸족처럼 반려동물을 친구, 가족같이 사람처럼 인식하고 아낌없이 투자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하고 있다. 감정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이며, 독신 가구와 무자녀가정, 단독가구들이 많다. 무엇보다 펫케어 산업은 경제 불황과는 무관하게 성장한다는 전망이다. 반려동물을 양육하면서 월평균 양육비는 14만 원에 달한다.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이라면 양육하고 있기에 경기 불황과는 관계없이 성장하는 추세다. 따라서 펫케어 산업은 발전을 거듭하여, 수조 원의 산업군을 형성하며 향후 10대 산업까지 기대되고 있다. 전북지역 역시 펫케어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전북도는 사람과 동물이 함께 행복 할 수 있는 문화를 선도하는 동물복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올해부터 ‘반려동물산업 육성 지원 사업’을 신규 시책으로 추진 중이다. 실제로 지난 3월 반려동물사업 추진단을 출범시켰다. 기초단체의 경우 전주시가 반려동물 교육분야를, 익산시는 동물용 의약품을, 정읍시는 반려동물 동물용 의료기기를. 임실군은 오수의견단지를 중심으로 한 라이프프케어 분야에 각각 참여키로 했다. 최근 5년간 반려동물 전문기업으로 인지도를 쌓은 ㈜밥펫은 펫케어 산업을 통해 저소득층들에게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이 만드는 제품을 ‘임포시블’이라는 브랜드로 론칭하여, 현재 반려견 져키간식 오리목뼈, 오리도가니, 닭안심스틱 등 6종이 인기제품으로 온·오프라인 유통채널을 통해 판매 중이다. 특히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이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적경제 가치를 담은 상품으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기현 ㈜밥펫 대표는 “임포시블은 착한소비라는 단어에 맞게 지역 저소득층에게 반려인으로서 변모하고 펫 비즈니스 전문가로 성장하도록 애쓰고 있다”며 “지역 저소득층이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 경험하게 돕는다는 자부심을 갖고 더 열심히 뛰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펫케어 산업이 성장하고 있음에도 반려동물 문화 수준이 상당히 미흡한 수준이다. 지금은 반려동물들을 위한 캠핑, 카페, 운동시설 등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여가활동 시설이 많아지고 있어 기본적인 공공예절인 펫티켓은 필수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원이나, 천변에서 목줄을 하지 않아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어 비반려인의 배려가 부족하다. 반려인들에게는 가족이나 다름없겠지만. 비 반려인들에게는 동물로 대하기 때문에 반려인과 비반려인의 문제를 위한 적절한 법적제도와 동물윤리교육이 절실하다. 또한 반려동물 인구가 늘어난 반면 십수만 마리의 유실·유기 동물들이 발생하고 있어 대책마련도 필요하다. 동물자유연대의 유실·유기동물 발생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거리로 나온 동물은 11만2226건에 달한다. 이는 지난 2019년 13만3513건에 비해 2만1287건이 감소한 수치이기는 하나 매년 11만 마리가 넘는 반려동물이 부주의 또는 고의적인 유기로 동물보호센터에 입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가운데 반절 정도의 동물은 원가정으로 돌아가지만 새로운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보호센터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동물도 허다하다. 이 중에 37.9% 가량은 자연사라는 이름 아래 질병 등으로 죽음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기동물에 소요되는 예산도 적지 않다. 지난 2019년에 231억9700만 원이었던 예산이 2021년의 경우 297억4000만 원으로 2년 사이에 28% 이상이나 증가했다. 전국 시·도별로는 경기가 61억7400만 원으로 가장 많았고, 경남 39억900만 원, 경북 27억9600만 원, 전북 27억9100만 원 등 순이다. 서울 등 대도시는 상대적으로 지출이 낮다. 동물유기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타 지역에 버리는 원정 유기 등을 주 원인으로 꼽는다. 매년 300억 원에 가까운 막대한 예산이 유실·유기동물의 보호에 쓰이고 있음에도 유실·유기를 예방하고 입소한 동물을 적절히 보호하기 위한 정책의 개발과 시행은 아직 부족하다. 천만 반려동물인 시대에 맞는 정책을 수립 시행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 반려동물인은 앞으로도 더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 만큼 펫케어 산업도 성장할 것이다. 독일과 영국, 캐나다, 미국 등 반려동물 선진국처럼 반려동물에 대한 문화와 법적 근거 마련을 통해 동물복지 실현과 더불어 올바른 반려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람이 크다. 백영규 전북광역자활센터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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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05 15:01

취임 2주년 서일영 원광대병원장 “호남·서해안 대표하는 상급종합병원으로 도약”

원광대학교병원은 원불교 제생의세(濟生醫世, 의술로써 병든 세상을 구제한다) 정신에 입각해 생명 존중의 참된 가치를 실현하고, 국민 보건 향상에 이바지할 우수한 의료 인력 양성과 의학 발전을 통한 인류 건강 증진 기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1934년 8월 원불교 의료기관의 효시인 보화당으로부터 출발해 1957년 동화병원, 1980년 150병상 규모의 의과대학병원을 거쳐 현재 800병상 규모에 2300여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국민 건강과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상급종합병원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유일하게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를 비롯해 권역응급의료센터, 권역외상센터, 응급의료전용헬기, 다인용(12인) 고압산소치료기 챔버 운영 등 퀸터플 응급의료시스템을 구축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4주기 의료기관 인증조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호남·서해안을 대표하는 의료기관으로서의 신뢰와 명성을 재확인했다. 그 중심에 원광대병원의 새로운 미래를 그려 나가고 있는 서일영 병원장이 있다. 취임 2주년을 맞이한 그를 만나 호남·서해안을 대표하는 상급종합병원으로 다시 한 번 도약을 꿈꾸고 있는 원광대병원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포부를 들어 봤다. 어느덧 취임 2년차를 맞이했습니다. 그간의 소회를 밝힌다면. “1년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 것 같습니다. 외부적으로는 그동안 침체돼 있던 원광대학교병원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유관기관과 기관장들과의 관계 개선 및 상생을 위한 초석을 마련했고, 내부적으로는 병원 4주기 의료기관 인증평가, 외래3관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확장 공사 등 크고 작은 현안 사항들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원불교 이소성대(以小成大)의 정신을 교본 삼아 교직원들의 친절 의식 강화, 도민과 지역민들의 눈높이에 맞춘 의료 서비스 제공 등 내부적인 변화에 중점을 맞췄습니다. 아울러 교직원들의 복지 증진 및 사기 진작을 위해 마음 영상 훈련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 우수 직원 해외연수, 임상교수 연수, 교직원 휴게 공간 마련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선진 의료 서비스 제공을 위한 과감한 투자가 두드러집니다. “원광대학교병원은 최신 의료 장비 도입 및 시설 구축 등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충청·호남 지역 최초로 ‘하이퍼아크-트루빔(True Beam)’ 방사선암 치료기와 지방 최초로 미세병변까지 확인 가능한 스펙트랄CT 7500을 도입해 가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원불교 정신인 이소성대 정신으로 일심합력(一心合力)해 시작된 1584평 규모(지하 1층, 지상 4층)의 외래3관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확장 공사를 마무리하고 지난 5월 30일부터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과감한 투자에 따른 성과를 말씀해 주신다면. “원광대학교병원은 중증심뇌혈관질환자 외에 중증외상, 중증암환자 등 중증환자에게 최적화된 맞춤형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특성화센터를 더욱 세분화하고 전문화하는 동시에 차세대 EMR 시스템 구축으로 효율적인 진료 환경 제공과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교육 등 의료 역량을 향상시켜 선진 의료 서비스와 스마트한 병원으로 거듭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갈수록 인구가 고령화되고 심뇌혈관 환자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라북도 내에서 연평균 뇌졸중 환자가 2만명, 심근경색증 환자가 5000명 정도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국에서 허혈성 심장질환인 심근경색 생존율이 높은 지역으로 전라북도가 2위, 전북 내에서는 익산이 1위로 꼽힙니다. 아울러 뇌졸중으로 생존율이 높은 지역으로는 전국 4위입니다. 이러한 지표에서 알 수 있듯이 원광대학교병원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가 지역사회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25년까지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재지정을 받았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응급의료센터는 권역과 지역으로 구분이 됩니다. 원광대학교병원은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충남 서천과 보령뿐만 아니라 서해안 도서지역의 응급·외상·심뇌혈관환자 등을 응급의료전용헬기가 이송할 정도로 권역이 넓은 편입니다. 요즘 필수 의료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특히 지방 사립대학교병원이라는 태생적 한계 속에서 필수 의료의 전문의를 모시는 게 상당히 어렵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원광대학교병원은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재지정 받았습니다. 수도권에서는 탈락된 병원들이 상당수 있는 상황에서 재지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권역외상센터와 권역심뇌혈관센터, 응급의료전용헬기, 고압산소치료기 챔버 등을 원활하게 운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 선진 의료 서비스 제공을 위한 과감한 투자의 성과하고 생각합니다.” 향후 중증암환자 치료를 위한 양성자치료센터 유치 계획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에서 양성자치료가 가능한 곳은 두 곳 뿐입니다. 그래서 향후 양성자치료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용역 발주를 한 상태이고 익산시와 관련 사업에 대한 확장성 등에 대해 논의 중에 있습니다. 양성자치료는 암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반적인 방사선 치료보다도 조금 더 높은 단계 치료로 부작용이 적고 성공률도 아주 높아 효율적입니다. 그래서 일본이나 미국에는 굉장히 많이 설치돼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지방에는 없는 센터입니다. 향후에 양성자치료가 다음 세대의 치료 방법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센터 유치를 계획하고 시도하려고 합니다. 최소한 4~5년 뒤에 사업이 될 듯 합니다.” 지역사회와 상생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해 고민이 있을 것 같습니다. “원광대학교병원은 사립대학교병원으로는 최초로 전라북도공공의료지원단 운영을 하고 있고 전북에서는 유일하게 첨단재생의료시설기관으로 선정됐습니다. 또 전북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 주취자응급의료센터, 전북금연지원센터, 전북서부해바라기센터 등 굵직한 국책사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지역사회 주민들을 위해 더욱 다양한 국책사업을 유치·운영하려고 합니다. 아울러 지역사회 의사회와 대학병원의 관계가 좋으면 그 혜택이 결국 지역사회 내 환자들과 지역주민들에게 긍정적으로 돌아간다는 측면에서 지역사회 의사회와 상생을 통해 의료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체계적인 진료 프로세스를 공유해 환자를 신속하게 치료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그 일환으로 익산시 의사회, 전라북도 의사회는 물론이고 서천·장항 의사회나 군산시 의사회 등과도 확장된 네트워크를 구성해 나가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병원 구성원과 내원객에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우리 병원은 제생의세(濟生醫世)의 원불교 정신을 기반으로 삼아 환자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람 중심의 맑고 밝고 훈훈한 병원입니다. 환자가 만족하고 감동하며 신뢰할 수 있는 최상의 명문 병원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최상의 명문 병원은 우리 자신의 내부 만족도가 최상으로 유지될 때 가능합니다. 전 구성원이 상호 존중하고 배려하며 합력하는 가장 일하기 좋은 병원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구성원들간 소통과 화합이 가장 중요합니다. 교직원 여러분들이 일심합력(一心合力) 한다면 환자를 우선시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명문 병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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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승욱
  • 2023.07.04 15:40

[후백제 역사, 다시 일으키다-문헌사료로 본 후백제] ⑪후백제 해양문화의 거점, 고부(古阜)

서기 900년,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도성이었던 전주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겼던 곳이 바로 고부였다. 지금이야 정읍시 북서부에 있는 작은 면단위 행정구역에 불과하지만, 그 역사를 되돌아보면 가히 호남의 중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역동적이었다. 우리나라 최대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의 중심에 위치한 고부면은 동진강과 고부천을 끼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넓은 충적지와 나지막한 구릉지가 조화롭게 형성되어 있어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에 매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더해, 호남의 3호(湖) 중 으뜸으로 알려진 벽골제와 눌제를 기반으로 한 방대한 농업생산력은 고대사회의 정치·문화·행정의 거점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으며, 동진강 하구·줄포만의 통해 서해안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정학적 이점은 고부지역이 해양문화의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고부, 호남평야의 농업생산력을 기반으로 성장 그간의 고고학적 조사 성과를 보면, 고부지역을 비롯한 동진강 유역에는 다수의 선사~고대 문화유적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초기국가가 성장하기 시작하는 원삼국시대에 동진강 유역에는 적어도 4개 이상의 마한 소국이 존재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고부면 일대에는 마한의 지배자 무덤으로 알려진 분구묘의 밀집도가 매우 높다. 특히 천태산 자락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지류의 정상부에 위치한 운학리 분구묘는 원형의 대형 분구를 갖춘 석실무덤으로 발굴조사를 통해 4세기 말에서 5세기 중반 경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백제가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이전에 강력한 토착집단이 존재했었음을 암시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08년 고부천 유역에 위치한 백산성(국가 사적)에서 마한의 대규모 취락유적이 발견되어 큰 관심을 끌었다. 백산성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을 알렸던 백산기포(白山起泡)의 무대로 잘 알려진 곳이다. 본래 학계에는 백제의 토성으로 보고되어 있었으나, 발굴조사 결과 2~4세기경에 조성된 마한의 집 자리 17기를 비롯하여 집 자리를 둘러싼 환호(취락을 방어하기 위해 그 주위에 두른 도랑)가 확인되었다. 이 유적은 광활한 호남평야를 배경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렸던 마한 사람들의 사회상을 복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방대한 농업생산력을 기반으로 해양문화의 거점으로 성장했던 동진강 유역의 문화양상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백제 지방통치의 거점으로 급부상 마한의 전통을 이어받은 백제는 5세기 중반부터 고부를 비롯한 동진강 유역으로의 진출을 본격화한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 마한의 지배자 무덤인 분구묘는 점차 사라지고, 영원면 은선리 일대에 백제의 중앙묘제로 알려진 횡혈식 석실분이 급증한다. 현재까지 육안으로 확인된 고분의 수량만 120여 기에 이른다. 천태산의 서쪽 기슭에 위치한 은선리 고분군에서는 정연하게 가공된 대형 석재를 가구식으로 짜 맞춘 이른바 ‘능산리형 석실분’은 상당수 확인된다. ‘능산리형 석실분’은 백제 사비기 왕릉군으로 알려진 부여 능산리 고분군과 무덤의 축조기법 및 재료, 구조 등이 유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이렇게 정형화된 무덤은 부여나 익산 등 백제의 고도에서 주로 확인되는 것으로, 피장자의 신분이 매우 높았음을 증명해주는 고고학 자료이다. 2014년 은선리 고분군에서 그다지 멀지 않는 영원면 갈선마을에서 2점의 그릇받침을 서로 맞닿게 가로로 눕힌 특이한 형태의 백제 독무덤이 발굴되었다. 독무덤으로 사용된 그릇받침은 외면에 고사리모양의 장식대가 부착되어 있고, 하트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는 독특한 형태이다.이와 유사한 그릇받침은 지금까지 무령왕릉이 있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과 부여 신리 유적 등 백제 고도에서 확인된 바 있다. 백제 중앙묘제의 확산과 위세품의 존재는 백제 웅진기 이후 고부를 비롯한 동진강 유역이 백제 지방 통치의 거점으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백제~후백제 역사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사부리성 538년 수도를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옮긴 백제는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지방 통치를 위해 수도 사비를 제외한 영토를 중방, 북방, 남방, 동방, 서방 등 5개의 구역으로 나눈 5方 체제를 실시한다. 5방 중 동방과 서방, 남방의 위치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중방(정읍 고부 일대), 북방(충남 공주)의 위치에 대해서는 이견이 거의 없다. 백제 중방의 방성으로 지목되고 있는 곳이 바로 고부면 소재지의 배후에 있는 고사부리성(국가 사적)이다. 고사부리성은 성황산의 두 봉우리를 한 바퀴 두른 석성이다. 2006년 이후,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 사비기~후백제의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쏟아져 나왔고, 이를 통해 동진강 유역의 역사성과 문화양상을 복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백제의 대표적인 성문 형식으로 알려진 어긋문이 확인되었고, 수원확보를 위한 대규모 집수시설도 조사되었다. 고사부리성의 성벽은 옥수수 알갱이 모양으로 정연하게 다듬어진 화강암을 사용하여 틈새가 거의 없을 정도로 견고하게 축조되었다. 이 성벽을 백제의 초축 성벽으로 보기도 하지만, 후백제에 의해 개축된 성벽으로 보는 견해 역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고사부리성에서 출토된 유물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상부상항(上部上巷)’명 인장와와 백제 기마무사의 모습이 새겨진 평기와이다. 이 유물들은 고사부리성이 백제 중방의 방성으로 비정되고,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외에도 통일신라시대 신라 왕경의 6부 중‘본피부(本彼部)’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本彼官’명 기와와 초기청자 등도 주목된다. 특히 초기청자의 경우, 후백제 때 해양문화의 거점으로서 고부지역의 위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물로 인식되고 있다. 발굴조사 당시만 하더라도 고사부리성에서 출토된 초기청자는 통일신라시대 중국 월주요에서 수입된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최근 후백제의 도성이었던 전주의 동쪽에 인접된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에서 초기청자를 생산했던 벽돌 가마가 발견되면서, 초기청자의 생산과 유통이 후백제에 의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주지하다시피, 후삼국 중 후백제는 청자의 본향으로 알려진 중국의 오월(吳越)과 가장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쳤다. 문헌기록에 등장하는 국가대 국가의 정식 외교기록만 5차례에 이른다. 그 횟수만 보면 적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후백제의 존속기간이 40년에 불과하고, 같은 기간 고려 또는 신라와 오월국의 교류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 오월과의 국제교류는 후백제가 주도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국제교류를 통해 오월의 청자 제작기술이 후백제로 전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익산 왕궁리, 미륵사지, 장수 합미·침령산성, 광양 마로산성, 전주 동고산성 등 호남지역에서 초기청자가 확인되고 있는 유적들 모두 후백제와의 관련성이 매우 높은 곳이라는 점에서도 이를 증명한다. 고사부리성이 있는 정읍시 고부면 일원은 지정학적으로 후백제의 도성인 전주에서 동진강, 줄포만을 통해 서해로 진출하기 위한 해상교통의 요지에 해당되며, 후삼국시대 호남지역에서 유일하게 고려의 왕건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던 나주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이러한 중요성으로 인해 고부지역에 대한 견훤의 관심이 지대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더욱이 고부가 백제 중방의 치소이자,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였다는 역사성은 백제 계승의지를 천명한 견훤이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후백제 외교의 관문이자 해양문화의 거점으로 고부지역이 선택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부면의 서쪽에 남-북으로 흐르는 고부천은 동진강의 최대 지류로서 예전에는 조수가 드나들 정도로 큰 하천이었다. 현재 고부의 북쪽에 인접해 있는 영원면 앵성리 수성마을은 본래‘수성지(水城址)’로 알려져 있는데, 백제 때 고부천변에 형성되어 있던 큰 포구를 지키던 성터로 전해지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고부군, 산천조에는‘大浦在郡 四十里 訥堤川下流 潮水往來’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백제의 유산을 이어받은 후백제의 거점 포구 역시 이곳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루 빨리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져 후백제 해양문화 양상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조명일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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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04 15:30

[한국전쟁 정전 70년] 예비검속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제주에 또다시 비극이 찾아왔다. 보도연맹 가입자와 요시찰자 및 입산자 가족 등이 대거 예비검속돼 학살당했다. 당시 정부는 ‘좌익분자’를 색출한다는 미명하에 예비검속을 실시했다. 또 전국 형무소에 수감된 4·3 관련자들도 즉결처분 됐다. 예비검속은 범죄 방지 명목으로 범죄를 저지를 개연성이 있는 사람을 사전에 구금하는 것으로 일제의 악습이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불어닥친‘예비검속’ 광풍 경찰 문서에 따르면 1950년 8월 도내 4개 경찰서(제주·모슬포·성산포·서귀포)에서 예비검속 된 도민은 1120명이다. 경찰은 검속된 자들을 A·B·C·D 네 등급으로 분류했는데, C·D급은 예비검속자 등급별 조사 과정에서 군 송치 대상자로 분류돼 계엄군에 넘겨져서 총살됐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적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구잡이로 사람들은 잡아들이고 학살한 것이다. 이 중 제주북부(제주읍·조천면·애월면) 예비검속자는 500여 명에 달했다. 극적으로 목숨을 부지한 생존자와 목격자들은 1950년 8월 19~20일 이틀간 제주국제공항(당시 정뜨르비행장)에 끌려간 예비검속자들이 집단 학살된 후 암매장됐다고 증언했다. 4·3당시 최대 학살터였던 제주공항 활주로 밑에는 억울하기 희생된 수많은 4·3영혼이 잠들어 있다. 활주로에서는 매일 많은 수의 비행기가 쉼 없이 오르내린다. 당시 제주공항은 넓고 비어있는 곳으로 외부의 눈에 띄지 않아 총살을 집행하기 최적의 장소였다는 증언이 있다. 제주4·3평화재단은 제주공항에서 2007~2009년 3년간 유해발굴을 실시했다. 2018년에도 유해발굴 작업이 진행됐다. 4·3당시 암매장된 388구의 유해를 발굴했고 유전자 감식으로 90구의 신원을 확인했다. 신원이 확인된 90명은 △1949년 군사재판 사형수 47명 △서귀포 예비검속 13명 △모슬포 예비검속 7명 △일반인 23명이다. 서귀포 예비검속자들은 정방폭포 앞 바다에 수장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제주공항에서 집단 학살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희생자가 가장 많은 199명이 암매장 된 제주북부 예비검속자들의 유골은 단 한구도 나오지 않았다. 1973년 길이 2000m·너비 45m의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개설공사 당시 유골이 무더기로 나오면서 근로자는 물론 장비까지 모두 교체됐고 일부 유골은 제주시 어승생무연고묘지에 안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도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으로 희생된 많은 이들의 유해가 발견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백조일손지묘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공동묘지 한편에는 한 울타리 안에 조그만 봉분 132기와 함께 백조일손지지라는 묘비가 있다. 여기에 잠든 이들은 일제가 남긴 송악산 서쪽 섯알오름 탄약고 터에서 집단학살 된 지역주민들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직후부터 학살이 있던 그해 8월 20일(음력 7월 7일)까지 4·3과 관련해 구속됐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벌어진 섯알오름학살사건은 이른바 예비검속을 명분으로 대정과 안덕, 한림지역 주민들을 무차별 연행하면서 시작됐다. 연행된 사람들은 형식적인 재판 절차 없이 대정읍의 고구마 창고에 유치된 뒤 칠월칠석날인 1950년 8월 20일 섯알오름 탄약고 터에서 집단학살됐다. 유족들은 현장을 찾아 유해를 수습하려고 했지만 군·경 당국의 출입통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6년 여가 지나서야 시체들을 수습할 수 있었지만 하지만 시체가 썩고 유골이 뒤엉켜 있었기 때문에 시신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유족들은 132구의 유골을 한 곳에 이장하며 서로 다른 132분의 조상들이 한 날, 한 시, 한 곳에서 죽어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됐으니 이제 모두 한 자손이라는 뜻으로 묘지를 백조일손지지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어렵게 백조일손지지 묘비를 만들었지만 5ㆍ16 군사정변으로 들어선 군사정권 때 묘비가 파괴되기도 했다. ▲만벵디 묘역 만벵디(듸) 묘역에 묻혀있는 이들은 한국전쟁 직후 한림지서 관할 한림항 어업조합 창고, 무릉지서 창고에 갇혔다가 1950년 8월 20일(음력 7월 7일) 섯알오름 탄약고 터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예비검속이라는 명목으로 ‘사상이 의심스럽다’, ‘4·3 당시 가족 중 누군가 희생됐다’, ‘군·경·관에 비협조적이다’ 등의 이유로 재판 절차도 없이 목숨을 잃었다. 우익인사, 농민, 여성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희생됐다. 이 사건의 희생자는 62명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만벵디 묘역에는 현재 46위가 안장돼 있다. 시신 수습은 1956년 3월 30일에야 이뤄졌다. 경찰과 군인들 몰래 일부 유족들이 몰래 모여 칠성판, 광목, 가마니를 준비하고 새벽 2~3시께에 섯알오름으로 트럭을 몰고 가 희생자의 시신을 수습했다. 만벵디 묘역의 터는 유족 중 한 명이 무상으로 내놓았다. 당시 유족들은 머리 모양이나 치아, 썩지 않고 남은 옷, 소지품 등으로 일부의 시신을 구별했다. 한편 제주4·3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이후 제주도민들은 국가보안법의 연좌제, 고문 피해, 레드 콤플렉스 등에 시달려야 했다. 또 빨갱이, 폭도의 가족이라는 낙인과 당국의 감시가 두려워 억울하게 희생당한 부모형제의 제사도 조용히 지내야 됐다. 제주일보=홍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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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03 14:30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 “다양한 경험 살려 전북 자동차산업의 재도약 선봉”

자동차융합기술원(JIAT)은 2003년 산업통상자원부와 전라북도·군산시가 투자해 만든 연구기관으로 우리나라 상용차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곳이다. 특히 자동차 산업의 급격한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 글로벌 자동차산업 기술 변화에 대응하는 동시에 국내 자동차부품 중소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는 물론 자동차 및 연관 산업의 발전에 선봉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곳은 핵심부품에서 시스템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연구개발과 첨단장비를 활용한 엔지니어링 서비스, 그리고 애로기술 해결 및 교육훈련 등의 기업지원 사업을 통해 자동차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여기에는 '전북 자동차산업 활성화'라는 목표를 가지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기술원 임직원들과 그 중심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항구 원장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월 취임 후 도내 기업들과 현장에서 소통하며 변화를 주도해 나가고 있는 이항구 원장을 만나 자동차융합기술원의 비전 등에 대해 들어봤다. - 취임하신지 100일이 지났습니다. 취임 소감과 함께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국무총리실 산하 산업연구원에서 약 34년 동안 정부의 산업정책, 특히 자동차산업 정책을 입안해서 보고하고 또 법률화하는 데 노력해 왔습니다. 정년 퇴직 후에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과 호서대학교 기계공학부 조교수로 3년간 근무한 후 올해 2월 27일자로 자동차융합기술원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제가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6가지 분야에 중점을 두고 자동차융합기술원의 발전뿐 아니라 전북 자동차산업의 재도약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습니다. 그동안 전북 자동차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국내 완성차업체와 대형 부품업체와의 만남의 시간을 가졌고, 전라북도와 협력이 가능한 지방정부와도 소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김제와 고창의 상생·협력 일자리 사업, 상용차 구조 고도화와 특장차산업 활성화를 위해 전략을 강구하고 전라북도 부품업체들이 대체부품산업을 포함한 판매후서비스 부품시장과 신차용 부품시장에 새로이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도민들에게 자동차융합기술원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난 2003년 출발한 자동차융합기술원은 국내 자동차 관련 기관 중에서 상용차에 특화된 가장 규모가 큰 지원기관으로, 미래 모빌리티산업 육성에 필요한 정책수립과 사업기획을 통해 중소·중견 부품기업 및 완성차 기업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연구 시험 장비들을 구축하고 이를 활용해 기업과 공동으로 연구개발과 다양한 엔지니어링 서비스 지원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새만금주행시험장을 비롯해 상용차 혁신성장 인프라·새만금 자율주행 테스트베드·금형비즈니스센터·대체부품인증지원센터 등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자동차융합기술원 업무 파악 및 도내 자동차기업과의 소통은 어느 정도 이뤄졌는지요. “전라북도에서 추진하는 공공기관 혁신 추진과 연계해서 조직체계와 인력‧임금‧직무 등에 대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간 운영해 오던 조직체계를 전라북도의 정책방향에 맞춰 개편하고 있는 중이며, 조만간 지자체 및 의회와 협의를 거쳐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또한, 37년 동안 쌓아온 연구 경험과 전국 네트워크를 통해서 전라북도 자동차산업, 특히 미래모빌리티산업으로의 순조로운 전환과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도내 자동차기업들과 적극 소통하고 있습니다.” -취임 이후 서울 등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서울보다는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후 끊어진 서해안 자동차산업 벨트를 전라북도를 중심으로 복원하기 위해 인천광역시부터 경기도, 충청남도, 세종특별자치시, 광주광역시의 서해안 지역 지방정부 뿐만 아니라 울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경상남도, 충청북도의 관계자와 기업들을 만나 전라북도와의 협력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전라북도의 취약점을 보완하면서 강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전라북도가 상용차와 특장차산업에 특화되어 있는데, 자동차산업의 주문생산시대가 열리면서 전라북도 자동차산업의 역할이 커질 것입니다. 이러한 전라북도 자동차산업의 위상 강화를 위해 중앙정부와도 소통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향후 사업 계획을 작성해 도와 의회에 보고 드릴 예정입니다. “ -현재 국내외 자동차산업의 변화와 트렌드는 무엇인지요. “13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가진 자동차산업은 움직이는 생활공간 뿐 아니라 친환경차, 소프트웨어정의차, 커넥티드 카와 자율주행차를 포함한 스마트 카로 전환과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복잡성이 증가하고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으며, 산업간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국내 자동차산업이 친환경차 분야에서 일본을 앞서고 있지만 여타 분야에서는 중국의 추격과 미국과 유럽업체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동차산업의 디지털화는 원가절감과 차량과 공정, 서비스 관련 다양한 데이터의 수집을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해 주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미래 모빌리티는 ‘바퀴위의 컴퓨터’로 불리고 있습니다. 국내 완성차업체는 최근 제품, 공정,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과 조직 혁신을 통해 미래 모빌리티시대로 순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급업체들의 혁신은 상대적으로 부진해 중앙정부가 전환을 위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전라북도 자동차산업의 그야말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라북도 자동차산업의 현황과 문제점, 앞으로 성장 전략은 무엇인지요.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이후 전라북도는 군산형 일자리사업, 중고차 수출기지화, 대체부품산업 육성과 친환경 상용차산업 전환 및 특장차 규제특구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라북도 부품, 소재, 뿌리를 포함한 장비업체들의 준비는 매우 부족한 상황입니다. 또한 상용차산업도 어려움에 직면해 있고, 특장차산업도 수출 부진과 수입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문제는 대략 파악했고, 이들 사업의 순조로운 추진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김제·고창형 일자리 사업, 전기 상용차 생산 기반 확충, 국내 인증 중고차 수출기반 구축 사업, 대체부품 고도화 사업, 이차전지 사업과 특장 목적기반상용차(Purpose Built Commercial Vehicle) 사업 기반 조성 등을 위해 관련 대기업들 및 중견, 중소기업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서해안 지역에 위치한 국내 완성차업체가 목적기반자동차의 개발과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고, 상용차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전라북도 자동차산업의 구조고도화 전략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미래 모빌리티 관련 기업의 투자 유치를 위한 협의도 진행하고 있고 조만간 가시화될 예정입니다. 타지역 기업과 전문가들의 자동차융합기술원 방문이 증가하고 있고, 미국·독일·일본·중국 등의 기업과 전문가들이 관심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자동차융합기술원이 출범한지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자동차융합기술원의 성과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2003년 설립 당시부터 제가 산업연구원의 자동차산업 팀장으로서 기여를 했습니다. JIAT는 2018년 초 한국GM이 군산공장을 전격 폐쇄하기 전까지 전북 자동차산업의 성장 기반 구축에 기여해 왔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런 군산공장 폐쇄로 수요 기반 약화와 지원사업 재편이라는 어려움에 직면해 왔습니다. 다행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다양한 지원으로 인해 안정을 되찾고 있으나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지속가능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아래 조직 혁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상용차 전동화와 스마트화 뿐 아니라 디지털화를 지원하기 위해 자체 역량 강화를 위한 학습조직으로의 변화와 팀제를 통해 유연성을 확보함으로써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약 43만㎡ 규모의 상용차 주행시험장은 국내 유일의 상용차 특화 주행시험장이며, 상용차 군집주행 기술의 조기 상용화를 위해 새만금 4호 방조제 하부 수변도로와 명소화 부지를 활용해 Lv3 수준의 상용차 자율주행 테스트 환경을 조성하고 향후 Lv4~5 수준까지 실증할 수 있는 환경 구축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국내 완성차업체 고위 임원들이 방문해 시설을 둘러본 후 향후 협력 방안을 모색해 보자는 제의도 받았습니다.” -자동차산업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수소차, 자율주행, 품질대체부품 등 산업전환 및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전라북도 자동차산업 성장 전략은 무엇인가요. “아직 공개하기는 이르지만 일단 전북 상용차산업의 전동화와 부품업체의 전장화가 필요합니다. 디지털화는 산업내 기업 모두가 필요로 하고 있으며, 중장기적으로 스마트화를 위한 기반 확충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제가 30여 년간 국내 자동차산업 정책을 수립하는데 기여해 왔고, 현재도 다양한 국내외 네트워크를 통해 전라북도 자동차산업의 지속가능 성장 기반 강화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방정부와 의회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전술한 바와 같이 조만간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를 드릴 계획입니다." -자동차융합기술원 역시 자동차산업 전환-변환기에 맞춰 정책 기조 변화가 예상되는데요, 중점 추진 방향은 무엇인지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6가지 분야에 중점을 두고 기술원의 발전뿐 아니라 전북 자동차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성장기반을 강화하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인력 확충과 임금 개선입니다. 두 번째는 연구개발 역량 강화와 네트워크 협력입니다. 세 번째는 미래 모빌리티 분야 장비를 보완하는 작업입니다. 네 번째는 기존 지원 시스템의 합리화입니다. 다섯번째는 비즈니스 모델 혁신 지원입니다. 마지막으로 전북의 자동차 부품, 소재, 뿌리와 장비업체들의 지속가능 성장 기반 강화를 위해 해외시장 개척을 적극 지원할 계획입니다. 그 일환으로 올 가을에 미국의 자동차산업 전문가가 전북을 방문할 계획이며, 독일의 전문기관과도 소통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세계전기차학회에 참가하는 전문가들의 전북 방문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략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부족한 인원을 확보하고 지원 시스템을 개선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전라북도민과 자동차산업 관계자분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변화라는 건 늘 두렵기도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발전과 희망의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동안 우리 지역의 주력산업이었던 자동차산업이 현재는 주력산업이 아니지만, 이를 떠나 전북 자동차산업이 미래 모빌리티산업으로 전환해 새로운 투자를 유치하고 고임금 일자리를 다시 창출해 전라북도 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더 많은 격려와 지도 편달을 부탁드립니다."

  • 기획
  • 이환규
  • 2023.07.02 16:08

[이 기자의 슬기로운 보디빌딩] (4) 꽉찬 반팔핏 만드는 6가지 팔 운동

여름철만 되면 헬스장은 평소보다 팔운동에 열중하는 회원들이 가득하다.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옷차림이 팔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반팔티로 바뀌면서, 반팔을 꽉 채운 우람한 팔뚝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저 덤벨을 잡고 들어올리기만 하면 되는 쉬운 팔운동 동작에 비해, 생각보다 팔근육은 쉽게 커지지 않는 근육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리한 운동으로 관절만 다치고 운동을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지금부터 누구나 쉽고 간단하게 팔근육을 우람하고 멋지게 만들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팔운동 루틴을 소개한다. △ 팔운동의 시작은 삼두근부터 팔운동은 말발굽처럼 생긴 삼두근부터 해주는 것이 좋다. 이두근부터 선행하면 삼두근을 운동할 때 펌핑된 이두 근육이 동작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반면, 삼두근은 견갑골에 붙어있는 근육이기에 이두근 수행에 무리가 없다. 게다가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두꺼운 팔뚝을 위해선 이두근보단 삼두근이 효과적이다. 애초에 근육의 크기부터 삼두근이 이두근보다 훨씬 크다. 우선 첫 번째 삼두근 운동은 '케이블 푸시다운'이다. 케이블의 장력을 이용해 위에서 아래로 삼두근을 수축시키는 이번 운동은 로프 그립을 통해 가볍게 15회 정도 워밍업을 해준 뒤 'ㅅ'자 바를 사용해 5회 겨우 가능한 무게로 2세트 수행한다. 아무래도 삼두근은 순간적으로 힘을 내는 '속근'이 지속적으로 힘을 내는 '지근'보다 많기에, 자신이 3∼5회 정도 가능한 무거운 중량으로 운동하는 것이 좋다. 마무리는 무게를 낮춰 10∼12회가 가능한 무게로 2세트 더 수행해 총 4세트로 마무리해준다. 케이블 푸시다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깨가 위로 뜨지 않게 잘 고정해주는 것이다. 무게 탓에 어깨가 위로 들린다면, 케이블의 무게가 삼두근이 아닌 어깨쪽으로 빠져 자칫하면 부상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깨가 자꾸 들린다면, 무게가 지나친 것이니 가볍게 줄여주도록 하자. 이후 케이블 익스텐션을 3세트 수행해준 뒤, '클로즈 그립 벤치프레스'를 해준다. 이번 운동은 일반적인 벤치프레스보다 바벨을 좁게 잡아 가슴 근육이 아닌 삼두근을 목적으로 수행하는 운동이다. 마찬가지로 속근을 자극하기 위해 자신이 3∼5회 겨우 가능한 무게로 시작해 점차 12회 무게까지 떨어져 총 3세트 수행한다. △ 이두근은 수축보다 이완이 생명 삼두근 운동을 마무리했다면, 이제 '알통'이라 불리는 이두근을 건드려 줄 차례다. 이두근 운동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수축'보단 '이완'에 신경써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두근 운동에서 근육을 둥글게 수축시킬 때 느낌이 좋기에, 반대로 근육을 늘리는 이완보다 수축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외로 이두근에 가장 큰 자극을 먹이는 순간은 수축보다는 이완할 때다. 항상 빠르게 수축시킨 뒤, 천천히 자극을 느끼며 이완에 집중해주자. 이두근도 삼두근처럼 무게가 생명이다. 속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에 20회 이상 할 수 있는 가벼운 무게가 아니라 젖먹던 힘까지 겨우 3회 정도가 가능한 무게를 다뤄야 한다. 이두근 운동에서 가장 적합하며 우선시돼야 할 운동은 '바벨컬'이다. 바벨을 잡고 위로 들어올리는 간단한 기본 운동이다. 바벨컬은 자신이 들어올릴 때 테이블이나 의자와 같은 가구를 나르고 옮길 때를 떠올려보자. 가구를 들 때, 몸통을 가만히 두고 팔만 움직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슴을 열고 몸과 팔 전체를 사용해 들어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바벨컬도 마찬가지다. 가슴을 열어주고 몸통을 사용해 팔과 함께 바벨을 들어 올린다. 단, 팔꿈치가 지나치게 몸통 앞으로 오는 것은 주의하자. 팔꿈치가 몸통 앞으로 말려 올라가는 순간,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무게가 반토막이 되기 때문이다.이처럼 바벨컬은 누구나 따라할 수 있을 만큼 이두근 운동 중 가장 간단하면서 제일 무거운 무게를 다룰 수 있다. 총 4세트 수행하며, 3∼5회 무게에서 12회 무게까지 무게를 낮춰가며 진행한다. 바벨컬을 통해 중량을 다뤘다면, 이제 덤벨을 사용한 '덤벨컬'을 수행한다. 바벨컬과 마찬가지로 그냥 들어올리기만 하면 된다. 대상이 바벨에서 덤벨로 바뀌었을 뿐이다. 덤벨컬은 앞서 바벨컬에서 힘이 다 빠졌기 때문에 12회 무게로 상대적으로 가볍게 진행한다. 간단하게 바벨컬로 이두근의 크기를 키우고, 덤벨컬로 이두근을 멋있게 조각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팔꿈치가 앞으로 빠지는 것을 주의하며 이두근의 수축보다는 이완에 신경써서 진행해준다.

  • 기획
  • 이준서
  • 2023.07.01 08:21

[참여&공감 2023 시민기자가 뛴다]청년은 지역에 사람을 끌어들이는 중력의 존재

청년(靑年)은 사전적으로 ‘신체적․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표준국어대사전). 생애주기로 보면 청년은 청소년기와 중년기 사이로서, 사회적인 독립 상태로 전환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청년세대를 연령으로 구분하면 ‘19세 이상 34세 이하’로 규정하는데, 이는 2020년 제정된 ‘청년기본법’에서 규정한 연령이다. 하지만 청년과 관련한 법률과 지자체의 조례에서는 자체적인 연령을 규정하여 전라북도는 만39세, 타 지역은 만 49세까지도 청년정책의 범위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인구 중 청년(19세-34세)인구는 2021년 기준으로 약 20%를 차지한다. 그중에서 수도권에 거주하는 청년은 50%가 넘을 정도로 높은 비율이다(통계청).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지역에서는 청년인구가 적기 때문에 연령을 높여 정책지원 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청년인구가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는 시점에 지역사회는 청년들의 이탈로 인한 지역소멸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다각도로 나타나고, 다양한 청년정책으로 지역의 청년을 정주시키거나 타 지역의 청년을 유입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전라북도는 2017년 청년기본조례를 제정하여 청년실태조사를 비롯해 청년위원회를 구성하고, 2020년에는 ‘전북청년허브센터’개소를 계기로 전북청년을 위한 맞춤형 정책을 체계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기초지자체까지 연결되어 여러 시군에서 청년활동이 지역민에게 환영 받는 사례가 자주 등장한다. 그렇다면 지역사회에서 청년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청년들이 가진 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자유로움과 여유, 즐거움을 추구하는 창의적인 삶에 가치를 두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둘째는 지역사회에 활력을 주고 경제적, 사회적 성장 동력으로서 작동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청년이 움직이면 지역사회는 분명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남원시 구도심에 개소한 청년문화창업공간 ‘NOW-WON’은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문화구역을 형성해가고 있어 변화의 조짐이 시작되었다. 이 공간은 남원시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인 ‘빌드업 프로젝트’로 선발된 4명의 청년이 창업하여 입주한 곳이다. 이들은 나우원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지금 청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협업하면서 청년문화놀이터를 만드는데 한창이다. 2022년 3월 개소한 나우원의 청년 창업팀은 도킹스페이스(영화관), 추냔이네(굿즈샵), 고샅(카페), 레드브릭스(영상촬영)이다. 4개의 창업팀은 석 달간의 교육과 1년 동안의 시간을 투자하여 버려진 폐가, 폐업한 박물관을 리모델링하여 남원시에 새로운 청년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시작하였다. 청년들은 창업공간이 위치한 곳이 구도심이기 때문에 주변상권을 활성화시키면서 자신들의 문화창업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으로 생각하였다. 특히, 나우원의 청년들은 영화영상, 디자인, 영상제작 등 각자의 전문분야를 가지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창업을 했기 때문에 지역사회와 함께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획력과 운영 노하우 등 장점을 가지고 있다. 도킹스페이스는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볼 수 있고 영화서적도 구매가 가능하도록 서점도 함께 운영하며 촬영과 편집교육까지 활동하면서 영화를 매개로 거점역할을 한다. 추냔이네는 춘향이를 모티브로 친근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이용한 굿즈를 제작하고 각종 시각디자인을 하면서 핸드메이드 제품을 판매한다. 또한 지역작가의 작품을 위탁판매하면서 지역사회 상생을 염두에 두고 활동하고 있다. 고샅은 한옥건물을 그대로 살린 한옥형 카페로 기억의 감성을 그대로 담아 낸 공간이다. 레드브릭스는 붉은 벽돌이라는 의미처럼 작은 벽돌을 쌓아 새로운 공간을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아 영상과 음악을 활용한 뮤직비디오와 홍보영상을 제작하고 미디어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4명의 청년들은 각자 전문성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공간을 운영하면서 ‘따로 또 같이’ 지역활성화를 위해 청년문화구역을 만드는데 힘을 쏟고 있다. 나우원 앞마당에서 펼친 자체적인 페스티벌은 지역사회의 다양한 협력과 지원이 덧붙여져 2022년 봄(4월), 여름(7월), 가을(10월)에 걸쳐 3회의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제1회 페스티벌에서는 남원수제맥주를 만드는 ‘비즌’과 영화를 결합하고 추냔이네에서 위탁판매하는 지역 내 공방들과 시민들이 함께 운영한 플리마켓이 이루어졌다. 제2회 페스티벌은 ‘남원시 청년협의체’와 콜라보로 문화부스를 운영하고, 저녁에는 레드브릭스가 운영하는 ‘남원시랩연구회’와 유명 랩퍼의 공연, 도킹스페이스의 야외무대 영화상영으로 지역민이 함께하는 축제로 확장되었다. 제3회 페스티벌은 ‘남원도시재생지원센터’와 함께 기획한 문화한마당 행사가 이루어졌고, ‘놀자lab’단체의 리얼월드 어플을 이용한 야외형 방탈출 게임을 결합하면서 남원시 구도심에 새로운 볼거리와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올해는 지역주민과 좀 더 가깝게 연결하고 접점을 넓히기 위해 6월부터 매달마다 포트럭(potluck)파티와 공연을 준비하여 진행하고 있다. 나우원의 문화창업 청년들은 2023년 전북형 청년마을만들기에 선정되어 올해의 활동이 더욱 기대가 된다. 이들의 주요 컨셉은 ‘원(○-won)해!! (#남원에서 해봐 #남원에서 원하는 게 뭐야 #구역(원)을 만들자)’이다. 앞으로의 활동은 청년들이 창업교육을 받을 수 있게 공간을 구성하는 것, 그리고 남원에서 생산되는 상품들을 청년의 감각으로 리패키징(repackaging)하여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직접 문화기획을 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청년, 남원’이라는 주제로 전문가 멘토그룹과 제품기획, 팝업스토어를 운영할 예정이다. 또한 올해 10월에는 ‘청년영화제’를 개최하여 현재의 청년문제를 청년의 시각으로 공론화하겠다는 목표로 기획이 시작되었다. 이제 지역사회의 울타리 안에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청년들의 창의적인 새로운 시도가 조금은 낯설고 부족하더라도 관심과 참여, 애정을 쏟는 일이다. 청년들이 갖고 있는 원동력이 사라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기회만 제공하더라도 청년들은 어떤 지원보다 큰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가 함께한다면 청년들을 통해 지역사회에 사람이 모이는 중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구혜경 (전북문화관광재단 기획정책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기고
  • 2023.06.28 15:23

[도시의 시간, 성장동력을 만들다] ④ 주민들이 앞장선 지역 프로젝트의 빛나는 결실

지역의 문화자산을 예술과 접목해 만든 브랜드 △벳푸 프로젝트 규슈 오이타현의 벳푸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온천 도시다. 온천이 솟아나는 곳은 자그마치 2,800여 곳. 그곳에서 솟아나는 1일 온천의 양은 13만 7,000t으로 일본에서 용출량이 가장 많다. 온천마을을 찾아오는 관광객 수도 단연 1위. 관광이 벳푸의 주요 산업이 된 배경이다. 그러나 벳푸는 산업 환경이 변하면서 더이상 성장하지 않는 도시, 정체되고 쇠락해가는 도시가 됐다. 산업 대부분이 서비스업에 치중되어 있는 데다 종사자들의 낮은 임금이 원인이었다. 온천에 기대고 있던 벳푸의 산업 환경은 변화가 절실했지만, 오랫동안 굳어진 도시의 환경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온천에만 기대어 온 산업 구조를 바꾸고 쇠락해가는 벳푸의 도시 환경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지역주민들이 나섰다. 문화기획자와 예술가들이 의기투합해 설립한 ‘벳푸 프로젝트’도 그중 하나다. <벳푸 프로젝트>는 예술을 앞세운 민간비영리 기구(NPO)다. 단체 사무실이 있는 노구치 오토마치는 벳푸의 중심지이자 번화가였지만, 지금은 쇠락한 구도심의 마을이다. 옛날에는 배가 정박하는 항구가 있어 물산이 풍부했고, 시청 등 관공서와 상가, 영화관 등 다양한 시설들이 밀집해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항구가 이전하고 시청도 옮겨가면서 도심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상권이 붕괴하자 주민들이 떠나가기 시작하고 빈집이 늘어났다. 이 단체가 입주해 있는 건물도 1927년에 지어져 시가 오랫동안 사용했으나 시청을 새로 마련해 이전해간 이후 비어 있던 것을 관광협회 등 벳푸를 변화시키려는 다양한 단체들이 입주해 <창조교류발신거점>이란 이름을 내걸었다. <벳푸 프로젝트>는 2005년 단체를 만들고 그다음 해에 비영리기구로 법인화했다. 먼저 주목한 것은 구도심을 살리는 일이었다. 빈집을 활용해 거리를 바꾸고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꾸리기 시작했다. 빈점포를 객석으로, 거리를 무대로 만든 <벳푸 프로젝트>의 퍼포먼스. 사진/벳푸 프로젝트 첫번째 프로젝트는 예술을 활용한 이벤트였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국제행사를 유치해 공공미술을 늘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들이 참여하는 시민문화제를 기획해 문화와 예술을 일상화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썼다. 온천에 의지한 관광 산업을 지역적 특성에 예술을 입히는 관광 산업으로 폭을 넓히는 것이 목표였다. 벳푸는 직장을 가진 인구의 80%가 서비스업에 종사할 정도로 관광 산업 비중이 높은 도시. <벳푸 프로젝트>는 2006년 지역의 관광 여건을 먼저 조사했다. 당시 일본은 여행 패턴이 여성, 젊은 세대, 개인으로 변하는 시점이었지만 벳푸의 여건은 완전히 달랐다. 관광객의 70%가 여전히 남성이고 단체 중심의 관광이 절대적으로 비중이 높았다. 단체가 아닌 개인 중심의 여행 대상지, 젊은 여성들이 찾아오는 관광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인구 11만 명의 도시 벳푸의 변화가 시작됐다. 벳푸가 가진 유형무형의 자산에 예술을 접목한 다양한 사업은 도시에 새로운 매력을 더했다. <벳푸 프로젝트>를 이끄는 나카무라 쿄코 대표는 “새로운 승부를 위해서는 경쟁을 해야 했다. 경쟁력을 갖추는 일은 벳푸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줘야만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어느 사이엔가 벳푸는 온천의 도시로만이 아니라 예술이 숨 쉬는 도시 감성이 넘치는 도시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이나 개인 블로거들의 발신이 벳푸를 알리는 중요한 홍보 수단이 됐다. 개인 여행객들이 벳푸의 매력적인 공간을 여행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고 오래된 빈집과 사용하지 않는 시설들을 활용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 결과였다. 마을의 빈집을 예술가들의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자 국내외의 예술가들이 찾아왔다. 아예 이주해오는 예술가들도 늘어났다. <벳푸 프로젝트>는 낙후된 지역의 빈집을 예술가와 기업 등에 연결하고, 예술인들이 이주하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오래되어 낡고 방치되어 있던 아파트를 예술가들의 생활공간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외형은 그대로 두고 내부를 개조한 키요시마 아파트가 대표적이다. 전쟁 시기에 지어진 이 아파트는 오랫동안 빈 채로 방치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새로운 입주자(?)들의 터전이 됐다. 주민들은 모두 벳푸로 이주해온 예술가들. <벳푸 프로젝트>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120여 명의 예술가가 이곳을 거쳐 갔거나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벳푸시도 이러한 움직임을 주목해 이주해오는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아티스트 이주 정주 계획’을 만들었다. <벳푸 프로젝트>는 18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대부분이 20~30대 젊은 층이다. 오이타현청과 벳푸시, 문화재청, 기업 등과 손을 잡고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벳푸 프로젝트>는 벳푸를 새로운 매력의 도시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들은 인적 자원을 발굴하고 지역 정보를 발신하며, 지역 제품을 개발하고 오래된 공간을 고치고 변화시키는 사업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이 가진 힘을 보편화한다. 농산물 생산자들과 협업으로 만들어낸 브랜드 ‘Oita Made’나 낡은 호텔에 미술작품을 결합해 창조적인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Creative Platform Oita’는 그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벳푸 프로젝트>는 위로부터의 변화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추구한다. 주어진 정책에만 의존하지 않고 주민들이 나서 공간을 새롭게 이해하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더해지면 도시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나카무라 대표는 "매력적인 것을 발신하는 장소이자 창조적이고 재밌는 사람들이 모이는 도시로서의 가치를 높여나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소개했다.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의 가치 살려낸 도서관의 변신 △오이타 아트플라자 오이타현의 현청이 있는 오이타 시에는 이 지역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가 설계한 <오이타 아트플라자>가 있다. 확실한 자기 언어와 철학으로 한 시대, 일본의 건축을 대표한 그가 건축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설계사무소를 설립한 후 독립적으로 작업한 첫 번째 작품이다. 1962년 착공해 1966년에 완공된 이 건축물의 전신은 오이타 현립도서관. 오랫동안 지역주민들의 도서관으로 기능했으나 지난 1996년, 현립도서관을 새로 지어 이전하면서 쓰임을 잃었다. 오이타시는 오이타현으로부터 토지와 건물을 인수해 새로운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한때 전체 철거 혹은 일부 철거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건축적 가치를 살려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내부의 일부는 개조해 시민들의 문화 정보 교류 장소인 <오이타 아트플라자>로 재개관했다. 1960년대 일본에서 활발했던 메타볼리즘 운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건축물의 외관은 가공되지 않은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돼 낡고 녹스는 등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 특징. 도서관과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아트플라자의 쓰임이 크게 달라 전면적인 ‘리뉴얼’ 작업이 요구되었지만 오이타시는 건축물 구조는 물론 내부의 대부분 공간을 그대로 두고 부분만 개조해 사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오이타 아트플라자>가 1층에 2층까지 닿는 높은 천장과 창문을 통해 내부로 길게 들어오는 은은한 빛, 오전과 오후 햇빛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양쪽으로 창이 뚫려있는 특별한 공간을 갖게 된 배경이다. 1층과 2층에는 시민 갤러리와 창작 활동을 위한 공간이, 3층에는 건축가 이소자키가 작업한 세계 각국의 건축 작품 모형과 아카이브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2022년 10월 국가등록유형문화재로 등록된 <오이타 아트플라자>는 오래된 건축물의 빛바랜 외관에도 불구하고 랜드마크가 됐다.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의 대표작이어서 건축 전공자들이라면 필수적으로 찾아오는 공간이기도 하다. 주목하게 되는 것이 있다. <오이타 아트플라자>가 있는 부지의 위치다. 이곳은 오이타 시청과 오이타성 사이에 자리 잡은 이 도시의 중심이다. 당초 철거 방안이 제기되었던 것도 ‘노른자위’ 땅의 부동산 가치(?)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이타시와 시민들은 화려한 새로운 시설을 건립하는 대신 지역이 배출한 세계적 건축가가 남긴 건축물로서의 역사성과 가치를 택했다. 재생의 의미와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선택이 아닐 수 없다. / 김은정 선임기자, 천경석 기자

  • 기획
  • 김은정
  • 2023.06.27 15:54

[2023 참여&공감, 시민기자가 뛴다] 제28회 환경의 날에 부쳐-더는 물러 설 수 없는 환경보전

환경보전은 개인, 단체, 정부에 의해 자연환경을 오염시키거나 훼손하지 않도록 깨끗하고 쾌적하게 유지하는 일이다. 자연이 가진 본래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이 환경을 보호하고 정비하고 관리하는 일로 오염으로부터 환경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정에서는 물과 전기를 아껴 쓰고, 생활 쓰레기를 줄여야 하고, 폐물을 재활용해야 한다. 또한 국가에서는 무분별한 개발을 금지하고, 환경 보호법을 강화해야 한다. 오염은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인위적인 원인에 자연적 요인이 합쳐져 나타난다. 환경 파괴는 발생 그 자체를 제어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는 다르다. 발생 원인을 막는 것이 환경 파괴를 막는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 연료 사용을 중단할 수는 없다. 이를 위해서 배출 규제와 종래의 시스템과는 다른 새로운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또한 개개의 오염원의 배출량 규제나 전체적인 총량 규제도 병행해야 한다. 이 같은 방법은 국제적으로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개발과 환경보전은 현대사회에서 충돌 요인이 되고 있다. 그동안 무분별한 개발은 환경 파괴에 심각하게 영향을 주었다. 개발 지상주의가 남긴 폐해는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식되고, 개발은 반드시 환경 파괴를 일으킨다는 인식하게 했다. 경제 발전이 시급했던 시절에는 우선순위가 경제 개발이었다. 이때의 환경문제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이제는 자연 친화적 환경과 개발을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 복원할 것과 보전할 것을 제시하여 국민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이때 전반적인 국토 관리에 대한 장기적 방향과 계획을 제시하면 효과적일 것이다. 예를 들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위성도시 확장을 제한하여야 한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 공공 주도의 개발을 하되 도심 주변의 산림 및 필요한 만큼의 녹지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녹지 공간은 수해 피해 등의 대책을 겸하여 하천을 중심으로 하는 수변 공원의 확보하는 것도 좋다. 또한 읍면 등 지역 사회에 대한 장기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농어촌지역의 토지 이용과 읍면 지역의 지역형 도시계획을 구체화하여 자연생태계를 보전하고, 반복되는 산사태, 수해, 대형 산불 등의 방제에 힘써야 한다. 아울러 수요예측을 통해 필요한 개발 사업을 선정하고 지역주민과 지자체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면 환경보전에 획기적일 것이다. 또한 인간이 여가와 레저를 즐기며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개발이 가능한 토지를 구분하여 절대 보전 지구의 생태적 환경을 확대해야 한다. 국민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토지관리계획은 단순하면서도 통합된 구성이 필요하다. 아울러 최적의 자연보호와 환경보전이 되도록 국민 생활에 적합하게 국토개발이 균형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한다는 기본 생각이 바탕이 되어 모든 개발이 이루어져야 효과적인데, 이때 개발과 보존의 타협점은 장기적 개발 계획과 국민이 공감하는 지향점이 일치할 때 가능하다. 실행계획은 적어도 한 세 대(30년) 정도의 구체적인 방향이 제시되면 좋겠다. 이런 개발은 국민으로부터 충분한 명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4대강(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사업은 환경보전과 자연보호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이 사업은 녹색 뉴딜의 핵심사업으로 수질관리, 수해 예방, 지역발전, 수변 복합공간조성을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4대강 외에도 보(洑) 16개, 댐 5개, 저수지 96개를 만들었다. 하지만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그것은 장기국토개발의 구체적 방법 위에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관건이다. 따라서 보 주변에 다양한 어종이 이동할 수 있도록 자연형 어도(魚道)를 설치해 생태계 단절 문제를 해소하고, 여울과 하중도(河中島)를 만들어 이동 어류의 휴식공간으로 제공하는 등 친환경성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유수의 흐름을 이용해 수질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환경단체들이 우려하는 수질 악화를 최대한 막아야 한다. 환경보전을 위해서는 개인·기업·정부가 삼위일체가 되어 개인은 생활용품은 물론 에너지의 소비를 줄이고, 오염 물질의 배출을 최소화하는 건전한 소비 생활을 하며 각종 환경단체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기업은 환경 오염 방지를 위한 각종 시설과 장비의 설치 및 점검, 저에너지 · 저 오염 산업으로의 전환하여 환경친화적 기업 경영 등을 위해 힘써야 한다. 정부는 지속 가능한 개발 정책을 수립하고 환경보전을 위한 법적 ·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인간은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다. 따라서 환경보전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필수 불가결의 요소일 뿐만 아니라 꼭 실천해야 하는 생명의 문제이다. 이런 인식을 기조로 환경을 보전하는 책임 있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또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환경보전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를 아껴 쓰고, 쓰레기를 줄이는 동시에 재활용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생활 속 실천들이 요구된다. 경제 성장과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인간 중심의 환경 이용은 오히려 생태계를 파괴하는 동시에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환경보전은 장기적 관점에서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기 때문에 개발과 보전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조금 덜 먹고, 조금 덜 쓰고, 조금 덜 버릴 때 지구는 병들지 않고 환경은 보전된다. 그 뿐만 아니라 후손들이 살아갈 이 땅을 오염으로부터 온전하게 지켜낼 수 있다. 정성수 시인, 향촌문학회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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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25 14:02

[지난 주 '핫클릭' : 6. 18~23] '한밤중 쾅' 익산 춘포면 굉음 알고보니⋯

△6월 18일~ 6월 23일 6월 넷째 주, 전북일보 홈페이지를 '폭발적'으로 달군 기사는 송승욱 기자의 '한밤중에 쾅 익산 춘포면 굉음에 주민 화들짝'이다. 이 기사는 익산 춘포면 쌍정리 인근 폐기물처리업체에서 지난 14일 새벽 2시께 발생한 소각로 증기 배관 폭발사고와 이에 따른 주민 불안감을 전했다. 주민들은 미사일이나 대포 따위가 터질 때 울릴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고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며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두 번째 주목을 받은 기사도 송승욱 기자의 'LG화학 익산공장 매각설 솔솔'이다. LG화학이 익산제1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양극재 관련 설비 및 부지를 600억 원대에 매각한다는 소문. 이에 대해 LG화학 익산공장 관계자는 "본사 차원에서 검토 중인 단계"라며 말을 아꼈다. 세 번째로 많이 본 기사는 문민주 기자의 '호남고속도로 확장사업 사업비 대폭 확대⋯예타 재추진 불가피'이다. 삼례IC∼김제IC 6차로 확장사업의 기본설계용역 결과, 총사업비가 2299억 원에서 3600억 원으로 56%증가했다. 기획재정부 관리지침에 따라 총사업비가 15% 이상 증액되면 타당성 재조사를 받아야 한다. 이밖에 백세종 기자의 '노른자위 전주시 공유지 3년 가까이 방치⋯매각·활용 모색 필요', 육경근 기자의 '전북교육청, 지방공무원 인사 단행⋯총 501명 이동' 등이 많이 읽혔다.

  • 기획
  • 이용수
  • 2023.06.24 13:44

[도시의 시간, 성장동력을 만들다] ③ 쇠락하는 도시에 새 활력 불어넣은 '도서관의 힘'

도시는 성장을 멈추는 그때부터 쇠퇴하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오래된 도시들 역시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성장을 멈춘 지 오래다. 이미 쇠퇴하고 있는 수많은 도시는 인구가 줄어드는 ‘소멸 위기의 도시’로 내몰리고 있다. 오래된 도시의 인구 감소는 우리나라만 겪고 있는 현상이 아니다. 일본의 오래된 도시들은 우리보다 앞서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의 위기를 맞았다. 일본 도시들의 구체적인 인구 감소현황이 공개된 것은 지난 2014년 마스다 히로야 전 총무상이 주도해 펴낸 <마스다 보고서>에서다. 보고서는 ‘현재의 인구 감소 추이로는 2040년까지 일본 도시의 절반인 896개 도시가 사라진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일본의 수많은 도시를 충격에 빠뜨린 경고였다. 그러잖아도 인구 감소로 쇠퇴일로에 놓여있던 도시들은 어떻게든 도시를 살릴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나서야 했다. ‘더 이상의 인구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목표를 위해 주목한 것이 있다. 쇠락한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을 ‘거점’을 만드는 일이다. 도시의 거점으로 ‘도서관’을 주목한 도시들이 있다. 일본 규슈 사가현의 다케오 시와 구마모토현의 기쿠치 시다. 새로운 커뮤니티를 창출해낸 오래된 도시의 거점 △다케오시립도서관 사가현은 규슈에서 가장 작은 현이지만 온천으로 이름을 알린 작은 도시들이 적지 않다. 인구 5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 다케오 시도 그중 하나다. 고령화율이 일본 도시 평균을 웃돌고 전체 면적의 23%가 논밭인 다케오시의 주산업은 농업이다. 1,3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온천 도시이지만 '일본 온천 관광 100선'에는 들지 못하는 평범한(?) 소도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평범한 작은 도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변화를 이끈 것은 놀랍게도 시립도서관이다. 다케오시립도서관은 2012년까지만 해도 시민들의 이용률이 낮은 전통적인(?) 도서관이었다. 사람들을 불러 모을 거점 공간을 모색하고 있던 다케오시가 기존 도서관을 고치고 새롭게 단장해 재개관한 것은 2013년. 아름다운 디자인과 편안한 내부 공간 구성, 여기에 이용자 중심으로 전면 개편된 운영방식은 도서관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재개관한 지 1년여 만에 연간 이용자는 100만 명이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중 40만 명이 지역 주민들이 아닌 다른 지역 방문객들이라는 사실이다. 도서관을 방문하기 위해 다케오 시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식당과 숙박업소 등 지역 상권은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자연히 경제적 효과도 이어졌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다케오 시의 선택이 있었다. 다케오 시는 공공도서관을 지역 커뮤니티를 되살릴 거점이자 자랑스러운 자산으로 만들기 위해 지정관리제도를 도입해 혁신을 꾀했다. 세계적인 서점 ‘츠타야’를 만들어낸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CC)'의 경영자 마스다 무네아키에게 운영 관리를 위탁한 이유였다. 도서관은 서점과 멀티미디어 이용관, 미술관, 커피숍과 편집숍이 들어선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자료 보존과 도서 대출이라는 기존의 도서관 성격에서 벗어나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공부도 일도 대화도 가능한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도서관에서 즐길 수 있게 했다. ‘누구에게나 편안한 도서관’을 내세운 이 도서관의 목표는 새로운 커뮤니티 창출이었다. 관심을 끈 것은 또 있었다. 운영방식의 변화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던 개관 시간을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로 연장하고 개관일도 연간 295일이었던 것을 365일로 늘려 연중 쉬지 않는 도서관을 만들었다. 리모델링을 거쳐 문을 연 도서관의 공간은 창조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넓은 공간을 차지했던 관장실을 없애고, 잡지 판매 코너와 DVD 대여점을 설치한 것도 큰 변화였다. 장서는 18만 8,321권에서 21만 1,096권으로 늘리고 좌석 수도 187석에서 279석으로 늘렸다. 다시 문을 연 이후 도서관의 일일 평균 방문자 수는 기존 867명에서 2,529명으로, 대출 이용자는 일일 평균 280명에서 460명으로 늘었다. 다케오 시민만이 아니라 일본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도서 대출이 가능하게 한 것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데 주효한 방식이었다. 그 결과 도서관 회원의 60%가 지역 외 거주자이고 도서 대출 역시 외부에서 찾아오는 이용자들이 43%나 됐다. 주변 음식점과 상점은 덩달아 매출이 늘었고, 숙박시설 예약률은 두 배로 뛰었다. 다케오시립도서관의 성공사례는 일본 각 도시에도 영향을 미쳐 도서관 건립 바람을 일으켰다. 2015년 1월 가나가와현 에비나시와 2016년 미야기현 타가조시에 만들어진 도서관이 그 결실이다. 이용자 중심의 운영을 내세운 다케오시립도서관에서는 책을 읽다가 커피를 흘리거나 책을 훼손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1년에 2,000만 엔(약 2억 원)을 들여 6000∼7,000권을 구입하고, 3년 동안 한 번도 보지 않는 책들은 따로 골라 폐기하거나 보육원에 기증하는 것도 특별하다. 다케오시립도서관은 지난 2017년 10월, 새로운 공간을 더했다.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될 어린이도서관이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온 다케오시립도서관이 가져올 또 다른 변화가 기대된다. 지역의 자연환경을 품은 도서관, 주민의 자긍심이 되다 △기쿠치중앙도서관 기쿠치 시는 구마모토현의 북부를 흐르는 기쿠치 강 상류에 있는 도시다. 인구 5만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지만, 규슈지방의 정치, 교육, 문화 중심지로 번성해 지금도 적지 않은 유적이 남아 있다. 곡창지대여서 농업이 발달하고 지리적 여건으로 쌀 집산지가 되어 한때는 상업 도시로도 발전했다. 그러나 일본의 오래된 지방 도시들이 그렇듯이 기쿠치도 성장을 멈추고 쇠퇴의 길에 들어선 지 오래다. 수십 년 동안 청년들이 대거 대도시로 이주하면서 도시는 활력을 잃었다. 시는 지역을 떠나려는 청년들을 붙잡기 위해 대책을 찾아야 했다. ‘청년들이 떠나지 않는 도시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청년들이 왜 지역을 떠나는 것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던 시는 활력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첫 번째 과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공간을 위해 시가 선택한 것은 도서관. 지역 주민이 자랑스러워하는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기쿠치 시는 어느 도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랜드마크로 만들기 위해 건축가 나카무라 가즈노부 씨에게 디자인을 의뢰했다. 기구치 시 만의 특별한 도서관을 만들고 싶었던 나카무라 씨는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자연환경을 주목했다. 그중에서도 시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쿠치 강을 도서관의 주제로 삼았다. 강의 흐름처럼 곡선을 그리는 거대한 책장이 만들어져 1층 아담한 도서관을 가득 채웠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아름다운 도서관 기쿠치중앙도서관의 ‘BOOK RIVER’가 탄생한 과정이다. 기쿠치도서관의 외형은 예상 밖으로 소박하고 평범하다. 거대한 규모도 아니고 화려하지도 않다. 그러나 1층에 있는 도서관에 들어서면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책장이 곡선으로 휘감아 돌며 공간을 가로지른다. 높지 않지만 길이 100m가 넘는 책장이 가로로 이어지며 공간을 나누거나 연결하면서 다양한 기능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풍경은 특별하고 아름답다. 기쿠치중앙도서관은 지난 2017년 문을 열었다. 도서관의 슬로건은 ‘사람과 정보, 문화가 만나 어울리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교류의 공간’이다. 개관 이후 불과 두 달 만에 지역 주민의 80%가 도서관을 찾았으며 타지에서 도서관을 찾는 방문객들도 늘기 시작했다. 미국의 이름난 인테리어인 전문 잡지 <INTERIOR DESIGN>'은 지난해, ‘잠시 머물고 싶은 세계 12개의 도서관’에 이 작은 도시의 기쿠치중앙도서관을 선정했다. 도시에 활력을 가져다준 도서관은 이제 주민들의 자랑이 되었다. 공간의 힘으로 활기를 얻어낸 오래된 도시들이 적지 않다. 그 통로는 서로 다르지만 새로 짓거나 오래되어 방치됐던 건물을 활용해 지역 주민들을 모으고 외지인들을 끌어들이는 도서관의 등장은 새롭다. 도시재생의 의미와 가치가 더 다양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 일본 규슈=김은정 선임기자, 천경석 기자

  • 기획
  • 김은정
  • 2023.06.22 15:23

[한국전쟁 그리고 정전 70주년](상) 당시 학도병에게 듣는 6.25와 정전

오는 25일이면 한국전쟁 발발 73주년이자, 7월 27일에는 정전 70주년을 맞이한다. 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반도는 전쟁의 상흔이 치유되지 않고 있다. 당시 후방인 전북지역의 경우 남침한 인민군에 의해, 수복하는 국군과 경찰에 의해 이념 문제로 주민들이 희생되거나 행방불명되는 일이 허다했다. 이에 전북일보는 당시 스무살도 안된 학도병의 참전 이야기와 정전, 70년 전의 전북지역 민간인 학살현장 탐방, 아직도 치유되지 않는 상흔과 미래 과제 등을 세 차례에 걸쳐 다뤄본다. 1951년 전쟁이 한창이던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이름 모를 험준한 고지. 군번도 계급도 없는 앳된 얼굴의 소년이 상자를 안은 채 포탄이 마구 떨어지고 사체가 널브러져있는 산길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전주 출신 학도병 최종열. 전북일보는 화랑무공훈장 수훈자인 최 옹(90)을 완주군 삼례읍 자택에서 만나 전쟁 발발부터 정전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951년 4월 18살이던 최 옹은 전주사범학교(현 전주교육대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어느 날 국군이 학교에 찾아와 공부하던 학생들을 징집하기 시작했고 최 옹에게도 “얼른 트럭에 타라”고 지시했다. 어린 최 옹은 앞으로 자신이 마주하게 될 처절한 전쟁터의 참상을 상상도 못한 채 트럭에 올랐다. 연천에 도착한 최 옹과 학도병들은 대대 본부중대 소속 전투지원병으로 총탄을 전선으로 나르는 임무를 맡게 됐다. 지프차를 타고 최전선인 고지로 향하는 길은 직접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곳임에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어느 날은 타고가던 지프 바로 옆으로 포탄이 떨어지는 바람에 다 같이 땅에 나뒹굴기도 했다는 것이 최 옹의 설명. 그는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고지를 무거운 총탄 상자를 들고 수습되지 않은 사체들을 밟으며 총탄을 피해 오르내렸다. 최 옹은 "총탄을 옮기던 학도병들이 포탄이나 총에 맞아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되는 일이 비일비재 했고 하루만에 20명의 학도병이 6명으로 줄어든 일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1952년 군번을 부여받아 정식 군인이 됐고, 스무살이 되던 해인 1953년 7월 14일에는 공적을 인정받아 화랑무공훈장도 받았다. 최 옹은 정전일인 1953년 7월 27일도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했다. 그는 "이날 국군과 인민군 모두 전쟁이 끝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오전부터 의미 없이 서로 총알을 주고받았다"며 "아마 오후 10시쯤 됐을까 갑자기 하늘이 환해졌다"고 회상했다. 별만 보이는 캄캄한 밤 하늘에 국군과 인민군 모두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참혹한 장소를 기억하고 싶었던 것처럼 쉼 없이 조명탄을 쏘아댔다고 한다. 최 옹은 "낮보다 환한 조명탄 빛 아래 숨진 채 쓰러져 있는 '동포'들을 보면서 고작 이 작은 언덕 하나 차지하기위해 그렇게 참혹하게 싸웠나 하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며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그러면서 "살았다는 생각, 그 외에는 없었다"면서 최근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이들이 자꾸만 전쟁을 부추기는 것만 같아 답답하다고도 했다. 최 옹은 “6.25는 전선에서만 죽어나가면 됐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며 “이젠 완주든 부산이든 어느 곳에 있어도 전쟁의 참상을 몸소 겪어야 하는 시대”라고 설명했다. 이어 “눈앞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알던 사람이 죽어나가는 걸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느냐”며 “앞으로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재발돼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 기획
  • 송은현
  • 2023.06.21 18:41

[전북 가담항설](6) 일생 바쳐 500년 역사 지켜낸 전북 선비들

"의병은 창을 메고 눈과 비를 잊었는데 못난 선비는 와신상담의 마음으로 아침저녁 그저 지키기만 했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전주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정읍 내장산으로 옮긴 뒤, 매일 그 곁을 지킨 한 선비가 남긴 말이다. '안에 숨겨진 보물이 있는 산'으로 불리는 내장산(해발 796m)은 그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지금으로부터 431년 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됐던 곳이다. 일본군을 피해 내장산 깊은 산중 절벽 위 '은적암'이라는 곳에 전주사고에 있던 실록이 옮겨져 1년 간 보존된 역사가 있다. 지난 20일 오전 그날의 역사를 떠올리며 실록을 옮기던 선비와 같이 책 30권을 짊어진 채 내장산 은봉암을 향했다. 6월의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내장산 관광해설사의 안내를 따라 실록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총 8개의 다리로 이뤄진 실록길은 정읍시가 조선왕조실록 보존의 역사적 의의를 기리고자 내장산에 조성한 길이다. 지금은 반듯한 길이지만, 임진왜란 당시엔 인적이 드문 험한 산길이었다는 해설사의 설명이다. 1시간 남짓 수풀이 우거진 실록길을 지나 450여 개의 계단을 오르니 실록이 보관됐던 은봉암이 자리해있었다. 거친 산세 속에 파묻혀 있는 형국이라 무언가를 숨기기에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지금처럼 인위적으로 조성된 길이 아닌, 깎아지른 절벽을 1000여 권이 넘는 실록을 짊어진 채 올랐던 선비의 정체가 궁금했다. 마땅한 길도, 운송할 수단도 없던 조선시대에 자신의 일생을 바쳐 이 험난한 여정을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일본군 피해 정읍 내장산으로 옮겨진 최후의 '전주사고본 실록' 기록에 '진심'이었던 조선은 개국 이래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하는데 열심이었다. 실록은 조선의 정치와 경제, 사회 뿐만 아니라 당시의 문화와 생태계까지 당대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그런 실록의 소실을 막고자 조선 왕실은 서울의 춘추관 사고, 충주 사고, 성주 사고, 전주 사고 등 전국 4곳의 사고에 실록을 각각 나눠 보관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발발로 일본군의 수중에 떨어진 춘추관, 충주, 성주의 사고가 모두 불 타 소실되고, 전주사고본 실록만 온전히 남게됐다. 전국이 전쟁터로 변하는 상황에서 전주까지 일본군의 침입을 받기 전에, 실록 이전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에 경기전 참봉 오희길과 선비 손홍록, 안의 등은 여러 논의 끝에 정읍 내장산을 실록의 보관처로 결정했다. 내장산은 산세가 거칠고 험해 일본군을 피해 실록을 숨기기에 최적이라는 판단이었다. 당시 64세의 안의와 56세의 손홍록은 이미 상당한 고령의 나이였음에도, 기꺼이 실록 운반에 나섰다. 이들은 전 재산을 털어 30명의 인부를 고용해 조선왕조실록과 고려사, 태조어진 등 전주사고에 보관돼 있던 총 1368권의 국가 서적을 전주에서 내장산까지 운반했다. 나이에 불문없이 실록이 담긴 60여 개의 궤짝을 짊어진 상태로. △'1호 문화재 지킴이' 실록 보존에 평생 바친 안의와 손홍록 그렇게 1592년 6월22일, 실록은 90도에 가까운 가파른 절벽 40m 높이의 내장산 용굴암과 은적암에 옮겨졌다. 이곳은 안에서 밖은 보이지만, 반대로 밖에선 안이 보이지 않는 천혜의 요지였다. 그럼에도 마냥 안심할 순 없었다. 전화나 통신이 없던 조선시대에 전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실록과 함께 내장산 깊숙히 들어온 안의와 손홍록 등에겐 더더욱 그랬다. 이들은 전주에 일본군의 그림자가 점점 드리우는 긴박한 상황속에서 매 순간 일본군의 습격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안의와 손홍록은 370일의 시간 동안 7평 남짓의 은적암에서 교대로 숙식하며 무더위와 혹독한 추위, 궃은 비바람을 이겨내고 실록의 곁을 지켰다. 이후 실록을 내장산에서 충청도 아산과 황해도 해주, 강화도와 묘향산 등으로 옮길 때에도, 안의와 손홍록은 전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실록과 항상 함께였다. 이후 1596년, 이미 환갑을 넘긴 나이였던 안의는 실록을 강화도로 옮기는 과정에서 더 이상 몸이 버티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안의가 사망해 일기가 끝을 맺었음에도, 손홍록은 홀로 실록 보존을 이어갔다.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해 또 다시 일본군이 침입해오자, 그는 묘향산으로 실록을 옮기고 그곳에서 당직을 섰다. 이렇듯 실록 보존에 평생을 바친 안의와 손홍록은 공로를 인정받아 고향인 정읍 칠보면의 남천사에 배향됐다. 이에 대해 매년 6월 22일 내장산에서 '문화재지킴이의 날' 행사를 주최하는 정읍문화원 관계자는 "만약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태조부터 명종대까지의 조선 초중기 역사는 완전히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번 문화재지킴이의 날을 맞아 우리 역사를 지키는데 큰 공헌을 한 선조들의 희생과 뜻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 기획
  • 이준서
  • 2023.06.21 18:02

[참여&공감 2023 시민기자가 뛴다] 이매창, 쇠뿔바위봉, 내변산 탐방

부안은 산과 바다가 공존해서 무척 풍요로우며 힐링되는 우리 고장이다. 개인적으로는 교사로서 첫 근무를 부안에서 시작하며 추억이 많아 더욱 특별하다. 또한 내변산은 100대 명산에 도전하며 첫 스타트로 등반한 산행지라서 또한 의미가 크다. 부안의 대표적인 명산인 쇠뿔바위봉과 내변산을 탐방했다. 쇠뿔바위봉은 전북 부안군 하서면에 있다. <어수대 탐방로> 코스를 선택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한자로 御水臺라는 글자가 뚜렷한 큰 바위가 반겼다. 아래에는 한글로 어수대라는 글자와 함께 ‘우리나라의 으뜸 물 부안댐 물 시작되는 곳’이라는 설명이 적혀있다. 부안댐 시작인 지점이라 맑고 청아한 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오락가락하는 이슬비를 머금은 바위 모습이 눈물 흘리는 것처럼 보이는 어수대 바위 오른쪽에 매창의 시비가 보였다. 그 옛날에 매창이 이곳을 다녀갔다니! 천년 옛절에 님은 간데없고 어수대 빈터만 남아있네 지난일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바람에 학이나 불러볼까나 -매창- 매창은 조선 선조때의 부안 기생으로서 황진희,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시대 대표 여류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쇠뿔바위봉을 산행하며 매창의 시비를 만나다니! 뜻밖의 선물에 기쁨과 함께 어수대 코스로 오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쇠뿔바위봉 등산로는 부드러운 흙길과 완만한 암릉으로 조망이 뛰어난 능선 길로 이루어져있다. 전망대 역시 조망이 멋지며 힐링 산행 코스라 초보자도 무난하게 산행 가능하다. 빨리 걸었더니 정상까지 통상 3시간 거리인데 2시간 30분 걸렸다. 빗줄기가 굵어져 다음 주말에 부안 탐방을 이어 가기로 아쉬움을 달래며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일주일 뒤 주말에 또다시 찾은 부안, 제일 먼저 매창공원을 방문했다. 이른 오전 시간이라 조용했다. 매창공원은 매창 테마관, 부안문화원, 다목적 운동장, 놀이터, 매창·유희경 광장 등 복합 문화체육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줄 서 있는 매창의 시비를 읽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잘 단장된 매창의 묘를 비롯한 매창공원을 보며 부안군에 감사함이 우러났다. 매창 테마관은 매창의 일대기와 시와 관련된 인물과 배경을 알 수 있고 또한 매창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도록 다양한 배경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매창 시 세계의 감동을 가슴에 안고 내변산을 향해 출발했다. 예전에 내소사 코스로 산행했기에 이번엔 코스를 달리했다. 국립공원 내변산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뒤에 사자동-실상사-자연보호헌장탑-직소보-직소폭포-재백이고개-관음봉 삼거리-관음봉(정상)-세봉-세봉 삼거리-세봉 삼거리 갈림길-가마터 삼거리-사자동을 거쳐 내변산 주차장으로 산행계획을 세웠다. 코로나 시기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일생일대의 큰 도전을 했었다. 2021년 8월 7일부터 2022년 7월 25일까지 우리나라 전국을 누비며 100대 명산을 완등했다. 첫 출발 지점인 내변산을 다시 방문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전국으로 소문난 명소답게 넓은 내변산 주차장에 이미 차가 가득했다. 등산로 역시 가볍고 화사하게 입은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했다. 관음봉 배경의 직소보 전망대 포토존에 도착하니 행복한 미소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함께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풍성하게 출렁이는 직소보 옆길을 걷는데 셀 수 없이 많은 물고기가 새까맣게 몰려있었다. 관광객 일행이 휴식을 취하면서 자신들이 먹던 과자를 던져주고 있었다. 과자있는 곳으로 이리저리 물고기가 이동을 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보다, 사람들이 먹는 인스턴트 식품이 물고기들에게 괜찮을지 걱정이 되었다. 내변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직소폭포에 도착했다. 변산반도국립공원 내에 자리잡고 있는 변산 8경의 하나인 직소폭포는 높이 약 30m 정도이며 둥근 못으로 곧바로 물줄기가 떨어져서 직소라는 이름을 가졌다. 폭포를 중심으로 내소사·봉래구곡·중계계곡 등이 있어 일대가 울창한 나무와 암벽들로 심산유곡의 비경지대를 이룬다. 직소폭포를 지나니 눈에 띄게 사람 숫자가 줄었다. 정상에 가지 않고 내변산 주차장에서 직소폭포까지만 왔다 되돌아가던지, 내소사 쪽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경상도 단체 관광객이 발아래로 보이는 서해안 조망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거리가 멀어도 가을에 또 오자고 말하며 내소사를 향해 내려갔다.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정상인 관음봉에 도착하니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데크에 앉아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발아래 드넓게 펼쳐진 서해안을 보며 가슴이 뻥 뚫리는 체험을 하고 급히 일어섰다. 사람들에게 빨리 자리를 비켜주고 점심 식사는 조금 더 가서 하기로 했다. 오른쪽으로 내소사가 멀리 보였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78호인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 혜구 스님이 창건했으며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600m 전나무 숲길이 장관이다.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길로도 유명하다. 한참 가다 보니 큰 나무 아래 한적하고 넓은 곳이 나타나서 김밥을 먹으며 쉬었다. 시원한 바람과 살랑이는 나뭇잎과 청량한 새소리를 들으며 내변산에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 뒤에 긴 코스로 크게 돌며 환종주해서 내변산 주차장으로 원점 회귀했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산행 후, 휴게소에서 먹는 아이스크림이 꿀맛보다 달콤했다. 차 에어컨 바람에 땀을 식히며 격포항으로 향했다. 격포항은 옛날 수군 진이 설치되었던 곳으로 위도, 왕등도, 홍도 등 서해 섬과 연계된 해상교통의 중심지이다. 수산시장에 들러 싱싱한 회를 맛보고 채석강으로 향했다. 채석강은 중생대 백악기(약8천 700만년 전)에 퇴적된 퇴적암의 성층으로 바닷물의 침식에 의해 마치 수 만권의 책을 쌓아 올린 듯한 외층을 이루고 있으며 중국 시인 이태백이 즐겨 찾았던 채석강과 비슷해서 지어진 지명이다. 마침 썰물이어서 채석강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잠시 기다리니 격포항과 채석강에 노랗고 붉은 노을이 내려앉았다.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서 사진을 찍고 격포항으로 올라왔다. 격포항에 어둠이 내리니 흰 등대와 빨간 등대가 깜빡거리며 발아래 글씨와 함께 낭만이 뿜뿜 솟아나는 길로 변신했다. ‘격포의 노을은 소망을 이루어줍니다.’ 보름달도 두둥실 격포항과 부안을 축복하듯이 비추었다. 모든 소망이 이루어질 것 같은 부안 탐방이었다. 부안의 대표적인 축제로 4월 개암동 벚꽃 축제, 5월에 부안 마실축제, 10월에 부안 노을축제와 곰소 젓갈 발효축제가 있다. 가을에 명산 등반과 함께 축제에 참여하길 추천한다. 산행이 힘들면 마실길과 연계해도 멋진 부안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다. 하송 시인, 교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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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2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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