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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우석대학교 공동기획] 이홍기 우석대 부총장 “전북 수소산업 큰그림 만들어야

전북특별자치도가 수소산업에 대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전북은 구축된 인프라와 기업 기반을 다음 단계의 산업 성과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기존 사업을 차분히 재점검하고 대형 국책사업을 겨냥한 전략적 밑그림을 다시 그릴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전북일보는 전북 수소산업의 현재 위치와 향후 과제, 완주 수소특화 국가산단의 파급효과, 새만금 재생에너지 클러스터와 그린수소 연계 전략 등에 대해 수소 연구의 권위자인 이홍기 우석대학교 부총장(에너지전기공학과 교수·국제연료전지기술위원회 의장)의 진단을 들어봤다. 전북 수소산업의 현재 위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전북자치도는 수소산업 관련 인프라가 국내 최고 수준이다. 현대차의 새만금 투자 유치와 수소특화 국가산단 유치 성공에 따라 139개 기업이 입주 중으로, 전북 지역경제를 견인할 좋은 기회를 맞았다. 다만 중앙정부나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영향력 있는 전문인력이 매우 부족하다. 1만 7000명의 신규 인력과 재직자 전환교육을 우선적으로 수행하고, 신규 기업이 안정적으로 착근할 수 있는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전북이 수소산업에서 가장 집중해야 할 분야는 무엇인가. “수소모빌리티 분야는 전북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앞으로도 건설장비, 항공기, 드론, 선박 등 다양한 모빌리티 활용 기술을 선도하기 위한 독립적인 통합 거버넌스를 완비해야 한다. 이런 기술개발을 배경으로 발전사업과 다양한 수소 관련 산업체의 경쟁력 확보에 대한 강력한 지원이 요구된다” 완주 수소특화 국가산단 조성이 전북 산업 구조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나. “향후 전북 지역경제를 견인할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국가산단 조성에 따라 정주 여건 개선에 대한 기대도 크고, 우수 인력의 역외 유출도 막을 수 있다. 현재 전북의 경제 규모는 전국 대비 3% 수준이지만, 수소 산업만큼은 전국 대비 11%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수소산업의 메카로 위상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전북 수소산업의 강점과 보완할 점은. “세계 최초 수소용품 검사지원센터와 폐연료전지 자원순환센터 등 완주군에 조성된 수소산업 지원 인프라는 매우 우수하다. 부안 신재생에너지 테마파크 등 국내 최고 수준의 기업지원 시스템도 보유하고 있다. 앞으로는 지역사업 차원의 기업지원이 단편적인 실적 중심에 머물지 않도록, 기업 경쟁력 확보와 시장 확대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고용 창출과 지역 정주 여건 확보는 결국 기업이 하고 있는 만큼, 최적화된 수소산업 거버넌스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수소상용모빌리티 분야에서 전북이 선도권을 잡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수소상용모빌리티 분야는 전북이 선도할 것이라는 예상에 의심할 필요가 없다. 다만 보유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수소모빌리티 신규 시장을 개척하고, 후발 국가의 추격에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 수전해 기반의 그린수소 생산은 전북 수소산업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전북은 청정수소로 분류되는 그린수소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또한 수소의 80%는 발전사업에 사용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전북은 이에 대한 준비가 더 필요하다. 새만금 재생에너지 클러스터와 연계된 대용량 수전해 시스템을 완비하고, 경제성과 그린수소의 출구전략을 우선 확보해야 한다. 맹목적인 국가 대형사업 유치보다 지역의 전문성을 보강해 중앙정부 차원의 경쟁력과 명분을 확보해야 한다” 수소산업이 지역경제와 일자리로 연결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은. “수소산업에 대한 지방정부의 거버넌스 시스템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지엽적인 지원보다 거시적이고 지속적인 기업지원 플랫폼을 완비해야 한다. 전북에 정착한 기업들에 대한 완벽한 지원시스템을 구축해 지방정부의 신뢰성을 확보하고, 수소산업 시장 확대에 대한 믿음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수소의 안전성과 주민 수용성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수소는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에서 많이 사용돼 왔고 안전성은 이미 확보됐다고 자신한다. 제가 의장으로 있는 세계수소연료전지기술위원회에서도 안전성과 제품 신뢰성을 최우선으로 논의하고 있으며, 모든 국가는 의무적으로 여기서 제정한 국제표준 규격을 준수해야 한다. 주민 수용성은 사업 추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만큼 지속적인 공청회와 주민설명회를 통해 확보해야 한다. 중앙정부 차원의 수소홍보단을 전북에 초빙하려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잘 이뤄지지 않았다” 수소산업이 보조금 의존형 산업에 머물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기업과 소비자 입장에서 경제성 확보가 가장 우선돼야 한다. 이를 통해 정부지원에서 벗어난 자립형 산업이 추진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량 매출 확보가 중요하다. 중장기적인 수소산업 계획과 탄소중립과 연계 가능한 세부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국내외 전문가를 확보해 치밀한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기업에 마냥 기다리라고만 할 수는 없다. 희망과 성공 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 전북 수소산업에서 대학과 연구기관의 역할은. “지역 소재 대학과 연구기관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근본적으로는 지역사업과 대학사업을 명확히 구분하는 의식 구조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대학을 위한 지역사업이 아니라, 지역을 위한 대학사업이라는 기본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 향후 5~10년을 봤을 때 전북 수소산업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는 무엇인가. “역시 거버넌스 구축이다. 체계적이고 실현 가능한 통합 지원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피지컬 AI의 접목이다. 기존 산업 구조의 한계를 뛰어넘어 피지컬 AI 기반으로 수소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으로 본다. AI를 활용한 시스템 설계, 데이터 분석, 예측, 유지보수 등 실무 중심 교육을 확대하고 관련 자격증과 전문특화 교육을 추진해야 한다. 단순히 정부 지원을 기다리기보다 기술을 완벽히 알고 있는 전문가를 통한 플랫폼을 구축하고 실행해야 한다. 중소기업에 피지컬 AI 도입은 큰 경제적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시급히 해결해줘야 한다” 전북의 수소경제를 위해 행정과 정치권에 제안하고 싶은 방향이 있다면. “전북도와 완주군의 추진 의지는 매우 강력하고, 특히 완주군은 국내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는 사업 유치 실적도 국내 최고 수준이었다. 최근에는 수소 분야 국책사업 유치 성과를 더 키우기 위한 전략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문가들이 계획서와 사업 구조를 면밀히 분석해 행정과 정치권에 확실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단지 정치적으로 풀 문제가 아니라 왜 전북을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을 우리가 확보해야 한다. 밑그림을 잘 그려 중앙정부에 확신을 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민선 9기가 시작되면 그동안 진행된 사업들의 성과를 다시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 최근 몇 년간 대형 국책사업이 전북에 오지 못한 원인이 무엇인지도 계획서와 추진 과정까지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앞으로도 수소와 에너지 전환 관련 국책사업은 계속 나올 텐데, 전북에는 이를 받아낼 발전사업의 큰 그림이 필요하다. 발전사업은 몇천억 원 규모로 커질 수 있는 분야인 만큼, 완주 수소특화 국가산단의 RE100 수요와 연결하고 새만금 재생에너지 클러스터라는 강점을 그린수소와 묶어내야 한다. 지금처럼 작은 단위의 사업을 개별적으로 추진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올해 얼마만큼의 그린수소를 생산해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까지 단계별로 제시하는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제가 바라는 것은 전북에 있는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대단위 국책과제를 기획하고, 이를 기반으로 수소산업 클러스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전북일보-우석대학교 공동기획 「전북 수소 산업 오늘과 내일」은 수소중심대학으로 선도적 입지를 다지고 있는 우석대학교의 후원으로 게재되었습니다.

  • 기획
  • 김경수
  • 2026.06.07 15:59

[핫플레이스] 무주 향로산, 산허리 휘감은 운해·탁 트인 절경에 탄성이 절로

무주군 무주읍에 자리하고 있는 ‘향로산(香爐山)’은 이름만큼이나 특별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아주아주 먼 옛날, 집이 가난해서 제사상에 향하나 제대로 피울 수 없던 효자가 있었다. 그는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조상님, 그저 마음만 올립니다”라고 빌었는데 다음 날 새벽 유난히 짙은 안개가 산 전체를 감싸며 피어올랐단다. 이걸 본 마을 어르신들은 효심에 감복한 산이 대신해서 향을 피워올렸다며 감탄했다고. 이후로 향로산은 형편보다 마음을 먼저 보는 산, 사람의 진심을 헤아려 주는 산으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향로산 자연휴양림 - 숲에서 망중한 이곳 향로산에 조성된 ’무주 향로산자연휴양림‘은 무주군의 풍부한 산림자원을 기반으로 문화와 휴양, 체험, 교육 등의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지난 2018년 개장했다. 269ha 규모의 휴양림에는 다양한 규모의 회의 공간과 숙박시설과 방문자센터, 전망대, 쉼터, 야외 수영장, 주차장 등으로 구성된 편익 시설이 갖춰져 있다. 이와 함께 위생시설(공동화장실)과 체험시설(인공폭포, 바닥분수, 야영장), 모험시설(모노레일)이 조성돼 있다. 패러글라이딩과 MTB 등 액티비티를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 ’새처럼 날아‘ 패러글라이딩은 산골 무주의 색다른 매력을 하늘에서 만끽할 기회다. 초보라고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현장에서 제공되는 필수교육을 받으면 베테랑 전문가가 함께 오르니 망설일 이유가 있나! 힘차게 달려 바람에 몸을 맡기고 새처럼 날아오르면 발 아래 그윽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긴장으로 요동치던 마음은 어느새 여유로, 무서워 떨리던 마음은 감동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하늘에서 만나는 무주의 자연은 전망대에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생동감을 준다. △향로산 자연휴양림 야영장 - 전망 좋은 숲에서 하룻밤 향로산자연휴양림 안쪽 높은 지대에 자리해 탁 트인 전경이 인상적이다. 새하얀 구름과 푸른 산봉우리가 마치 그림처럼 펼쳐진다. 야영장은 A~E까지 계단식으로 구획이 나뉘어 21개 사이트가 운영 중이다. 사이트 바로 옆에 주차도 가능하다. 야영장 중앙에는 개수대와 화장실 등 공용시설이 위치해 이용이 편리하다.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하는 편안한 밤을 위해 캠핑을 즐기며 ‘별빛 공방’과 ‘와인 테라피’ 등 다양한 부대 시설을 이용해 보는 것도 적극 추천한다. 향로산 전망대 -‘보검 매직컬’ 앞섬마을 풍광이 한눈에 무주 향로산 전망대는 걸어서 가도 좋고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도 좋은 곳이다. 오롯이 자연에 동화되고 싶다면 천천히 숲길을 걸으면 되고, 발걸음이 무겁다면 모노레일을 타고 쉽고 편하게 이동하면 그만이다. 숲을 가로지르며 제법 물이 오르기 시작한 나무도 만나고 숲이 뿜어내는 피톤치드의 상쾌함도 느끼며 가보자. 산타는 재미가, 산속을 달리는 쾌감이 이보다 좋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모노레일에서 내려 조금만 더 걸으면 향로봉 표지석과 함께 전망대가 나타난다. 나무 계단을 타고 전망대에 올라서면 ‘와~’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금강이 휘돌아 나가는 내도리 앞섬마을과 이를 안온하게 감싸안은 산세가 한눈에 들어오고 하늘, 땅, 강,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에 미소가 번진다. 산 아래로 보이는 앞섬마을은 바로 ‘보검 매직컬’ 촬영지다. 방송은 종영했지만, 촬영 당시의 추억을 고스란히 품은 미용실은 아직 그대로라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방송촬영 당시의 내외부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촬영지는 매일(09:00~18:00) 개방한다. 무주군은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촬영지 인근에 400여 평 규모의 임시주차장을 마련하고 임시 화장실도 설치했다. 또 ‘금강 맘 새김 길’, ‘복숭아 꽃길’, ‘앞섬 체험센터’, ‘향로산’, ‘반딧불이 서식지’ 등 마을 명소와 연계한 관광 활성화 방안을 고심 중이다. 앞섬마을은 금강 상류 지역으로, 무주읍내에서 접근이 쉽다. 특히 봄철 ‘복숭아꽃’, 여름 보양식 ‘어죽’, ‘반딧불 복숭아’가 손꼽히며, ‘반딧불이 서식지’와 ‘아름다운 강변길’로도 유명하다. 물돌이 지형이라 ‘육지의 섬’으로도 불리는데 ‘금강 맘 새김길(학교 가는 길)’은 앞섬마을과 후도교 다리까지 2km 구간으로, 병풍처럼 드리워진 산과 복숭아 과수원, 금강을 따라 걸으며 만나게 되는 풍경이 일품이다. ‘앞섬체험센터’는 마을주민들이 함께 운영하는 체험 학습장으로 자전거 타기, 복숭아 향 디퓨저 만들기, 복숭아 수확 체험, 복숭아 빙수 만들기(여름 한정) 등 마을의 다양한 특산물과 자연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시원하고 얼큰한 어죽’ 어죽은 냇가에 솥단지를 걸어놓고 직접 잡은 민물고기를 끓여서 먹으면서 유래된 무주 토속음식이다. 어죽에는 그다지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다. 싱싱한 민물고기를 솥에 넣어 반쯤 익힌 뒤 뼈를 고르고 찹쌀과 고추장, 파, 마늘, 양파, 깨, 인삼 등 무주의 자연에서 자란 온갖 양념들을 넣는 게 전부. 하지만 한 번 먹어 본 이는 두고두고 이 맛을 잊을 수 없어서 또다시 찾을 만큼 특별하다. △무주목재문화체험장 -산림자원의 소중함 공유 무주목재문화체험장은 목재 체험을 통해 산림자원의 소중함을 알리고 무주를 물성 매력을 지닌 명소로 각인시킨다는 취지에서 2023년 3월에 개장했다. 775.81㎡ 부지에 지상 2층 규모로 조성된 목재문화체험장에는 목공체험장을 비롯한 상상 놀이터와 전시시설, 휴식 공간 등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는 목공예 체험을 비롯해 나무 조각, 가구 만들기 등 목재의 특성을 배우고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그간 이곳을 찾은 방문객은 5만 2000여 명으로 무주 자연휴양림 입구에 위치해 접근성은 물론, 연계 이용이 가능하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무주에 왔으니 여기도! 무주 3대장 -동굴 속 와인 한 잔의 운치, ‘머루와인동굴’ 연중 13℃~17℃의 온도가 유지되는 무주군 머루와인동굴은 사계절 사랑받는 곳이다. 이곳은 무주양수발전소 건설 당시 굴착작업용 터널을 리모델링한 곳으로 현재는 무주産 머루와인의 숙성과 저장, 판매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와인 하우스와 머루와인 비밀의 문으로 구성돼 있으며 와인을 이용한 족욕 체험과 시음, 구입이 모두 가능하다. 무주군은 ‘머루’ 주산지(전국 머루 생산량의 32% 점유)로, ‘머루와인’은 무주의 대표 특산품이다. -여기가 숲이야? 강이야? 하늘이야? ‘반디랜드’ 무주반디랜드 곤충박물관(1종 전문박물관)에는 천연기념물이자 환경지표 곤충인 반딧불이를 비롯해 국내 · 외에 서식하는 다양한 곤충 1만여 종이 실물로 전시되고 있으며 200여 종의 식물을 볼 수 있는 생태 온실이 있다. 덕유산 최상류부터 금강하구에 서식하는 다양한 물고기와 수달, 열대어를 함께 볼 수 있는 수족관 시설도 조성돼 있다. 다양한 생태영상을 관람할 수 있는 입체영상관과 돔 영상관도 운영 중이다. -세계 태권도 성지 문화교류의 중심, ‘태권도원’ 2014년 4월에 개원한 태권도원은 경기와 체험, 수련, 교육과 연구, 교류가 가능한 전 세계 유일의 태권도 전문 공간이다. 세계태권도연맹의 중앙훈련센터(T1경기장), 대한태권도협회 국가대표 종합훈련장(평원관)으로도 지정 · 활용되고 있다. 상징지구(태권전, 명인관, 일여헌, 태권루&백운정)를 비롯해 4000석 이상의 경기장과 400석 이상의 공연장, 1000여 명 이상 동시 수용이 가능한 연수와 숙박(265실), 국제회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야외복합체험 시설도 각광을 받고 있다.

  • 기획
  • 김효종
  • 2026.06.04 19:10

[소통&공감 2026 시민기자가 뛴다] ‘쇼미더머니 12’와 ‘6.3 지방선거’

‘소통&공감 2026 시민기자가 뛴다’는 전북 지역 시민사회, 복지, 문화 등 각계 전문가 등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담론을 만드는 공간입니다. 올해는 양병준 전북희망나눔재단 사무국장과 김민지 전북특별자치도 사회서비스원 전략사업실장, 김미량 군산 이당미술관‧전북은행 미술관 학예연구사, 손상국 프리랜서 PD, 이소정 문화예술교육공간 ‘오이아’ 대표 등이 참여해 도내 곳곳의 이야기 등을 전합니다. ‘소통&공감 2026 시민기자가 뛴다’는 오는 10월까지 매주 목요일자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쇼미더머니를 통해서 수많은 젊은 세대가 열광하고 호응하고 더군다나,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경쟁으로 디스까지 하지만, 그것을 보는 관객들은 즐거워하고 그 문화를 이해하고 즐긴다. 그런데 요즘 정치와 선거를 보면 유권자의 선택과 판단을 받기 위한 배틀이 아니라,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비열한 전쟁터 같다. 배틀은 문화가 되고, 정치는 전쟁이 되었다 얼마 전 우연히 아이들 때문에 힙합 경연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 12’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솔직히 낯설었다. 랩이라는 장르도 익숙하지 않았고, 특히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말을 던지는 ‘디스 배틀’ 문화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상대를 공격하는 가사가 오가는 장면을 보며 “이게 왜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몇 회를 보다 보니 조금씩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프로그램을 둘러싼 수많은 젊은 세대의 반응이었다. 그들은 래퍼들의 실력에 환호하고, 날카로운 디스에도 열광한다. 서로를 향해 거친 말을 쏟아내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무대 위의 배틀’이다. 그들은 상대를 완전히 파괴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과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경쟁한다. 그리고 중요한 점이 하나 더 있다. 그 경쟁의 결과는 관객의 평가로 결정된다. 무대가 끝나면 승패가 가려지고, 그 순간 경쟁도 끝난다. 관객들은 그것을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즐긴다. 디스 역시 상대를 제거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힙합이라는 문화 안에서 인정된 표현 방식이다. 젊은 세대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경쟁을 문화로 만들어냈다. 서로를 향한 공격적인 언어조차도 결국 하나의 규칙 속에서 작동하는 ‘게임’이자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정치의 모습은 과연 어떤가. 선거는 원래 유권자의 선택과 판단을 받기 위한 경쟁의 장이다. 각 후보가 자신의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유권자는 그것을 비교해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과정이다. 말하자면 선거 역시 일종의 ‘배틀’이다. 그러나 현실의 선거와 정치판은 점점 배틀이 아니라 전쟁터처럼 보인다. 정책 경쟁이나 비전의 대결은 사라지고,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폭로와 비난이 중심이 된다. 선거 시기의 공방으로 끝나야 할 갈등은 고발과 고소, 소송으로 이어진다. 정치적 경쟁이 법정 싸움으로 확장되면서 사회 전체가 갈등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선거가 끝나도 싸움은 멈추지 않는다. 승패가 가려졌는데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를 계속 공격한다. 마치 무대에서 내려와서도 끝없이 싸우는 배틀처럼 보인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치이며, 누구를 위한 선거인가. 정치가 시민의 삶을 위한 것이라면, 선거는 시민이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가 보여주는 모습은 시민을 설득하려는 경쟁이 아니라, 상대를 제거하려는 싸움에 가깝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젊은 세대의 힙합 문화는 오히려 경쟁의 건강한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우지만, 그 싸움은 문화 속에서 소비된다. 그리고 결과가 나오면 다음 무대를 준비한다. 정치는 왜 그보다 성숙하지 못하는가 정치가 진정으로 민주주의의 무대라면, 그 경쟁 역시 시민 앞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책과 가치, 비전으로 경쟁하고 시민의 평가를 받는 것이 정치의 본래 모습이다. 상대를 법정으로 끌고 가는 정치가 아니라, 시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젊은 세대가 만들어낸 문화 속에서는 거친 언어조차도 하나의 창작이 되고, 경쟁은 하나의 축제가 된다. 반면 우리의 정치와 선거에서는 경쟁이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키는 장치가 되어 버렸다. 어쩌면 지금 정치가 배워야 할 것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문화 속에서 작동하는 간단한 규칙일지도 모른다. 경쟁은 치열하되, 그것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전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 말이다. 정치는 결국 시민의 삶을 위한 공적 무대다. 그 무대가 전쟁터가 될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시민이다. 6월 3일 지방선거도 이제 막을 내렸다. 치열했던 선거 과정에서 수많은 말들이 오갔고, 지역 곳곳에서는 갈등과 대립의 상처도 남았다. 그러나 이제는 선거 이후를 이야기해야 할 시간이다. 선거 과정에서 시민들에게 약속했던 정책과 공약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전북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지역이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고, 농촌은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지역경제의 침체와 인구 감소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복지의 사각지대 역시 곳곳에 존재한다. 돌봄과 의료, 주거와 교육의 문제는 시민들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책임 있게 만들어가는 일이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남은 것은 지역에 대한 책임이다 지역사회가 서로를 적대하며 분열된 상태로는 어떤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는 승자도 패자도 시민 앞에서는 다시 하나의 공동체 구성원으로 돌아와야 한다. 정치 역시 상대를 제거의 대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함께 지역을 책임져야 할 동반자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선거 기간의 피로와 갈등을 넘어, 다시 서로의 삶을 돌보고 지역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결국 전북을 변화시키는 힘은 특정 정치인이 아니라 지역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연대와 참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경쟁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경쟁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전쟁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남은 것은 싸움이 아니라 지역에 대한 책임이다. 양병준 전북희망나눔재단 사무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기고
  • 2026.06.03 21:15

[동학농민혁명 세계기록유산 미등재 기록물] 동도문변(東徒問辨)과 봉남일기(鳳南日記)

△전라감사의 자기변명서 <동도문변(東徒問辨)> 1894년 동학농민군 제1차 봉기 전후 시기 전라감사로 재직하던 중 황토현전투 이후 파직된 김문현(金文鉉)의 군사마(軍司馬) 최영년(崔永年)이 쓴 동학농민혁명 관련 문답식 형태의 기록이다. ‘동도시맹변(東徒始萌辨)’ㆍ'부정척사변(扶正斥邪辨)'ㆍ'양병설세변(養兵設稅辨)'ㆍ'고부기요변(古阜起擾辨)'ㆍ'백산패적변(白山敗績辨)'의 다섯 조항으로 나누어 감사 김문현의 잘못된 행정으로 동학농민군이 봉기하게 되었다는 비난을 벗어나려는 변명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 먼저 ‘동도시맹변’은 삼례집회와 금구집회를 설명하는 것으로 오래전부터 동학교도들은 은밀한 생각을 품고 있다가 1892년 임진년부터는 활동을 전면화하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 결과 교조인 선사 최제우의 억울함을 풀고, 탐관오리를 제거하고, 교당 설치를 통한 포교의 자유를 허가할 것을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이후 점점 불어나 무리를 이루어 재앙의 원인이 되어 1000여 명이 죽창을 들고 삼례역에 이르자 집회 다음 날 아침 감사가 효유문을 지어 전라도 각 군 방방곡곡에 걸어 수습하려고 노력하였다고 적었다. 같은 기간 금구에도 동학도가 거의 만여 명이나 운집하였다는 사실도 적시하였다. ‘부정척사변’에서는 동학도들은 모두 무뢰배들로 한결같이 들개와 같이 출몰하여 우매한 사람들을 선동하여 미혹시켰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이들은 휘파람 소리를 내어 모이고 흩어지는데 아침에는 얼음처럼 풀어지다가 저녁에는 다시 구름처럼 모이니 형세 상 위세와 무력으로 다 쳐 없앨 수가 없다고 한탄하였다. 이에 대책으로 감사는 향약을 실시하여 질서를 바로잡고자 하였는데, 각 군의 유생들에게 권유하여 향약(鄕約)의 조규를 세워서 덕업상권(德業相勸)과 과실상규(過失相規)ㆍ환난상구(患難相救)ㆍ수방상조(守防相助)를 곳곳에 실행하는 일이었다. 그 결과 익산의 김태현과 김제의 이경재와 장성의 김재명 등 선비들이 함께 향약을 강구 연마하자 감사가 글을 지어 권장하면서 동학을 사교(邪敎)로 지적하고 배척하는 것을 하나의 큰 임무로 삼았다고 한다. ‘양병설세변’에서는 감사가 호남 53군에 백일세(1/100세)를 새로 개설하여 쌀 4856석 9두 3승과 4만 3200량을 얻었고 장시에 1년의 세액을 더하였지만 이는 3만 량에 지나지 않았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병사의 수는 난설대(攔設隊) 300 명 외에 장관(將官)과 잡역 700 명을 더하였으나 월급은 약소하여 주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정부에서 총리영과 총제영을 새로 설치하여 각 군에서 걷는 세금이 많이 늘었다고 주장하였다. 새로운 세역을 설정하여 수세하고 군사를 증설한 것은 동학군 진압을 위한 감사의 부득이한 행정조치고 경비 대부분도 중앙군이 사용했다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고부기요변’은 동학농민군 봉기의 시초인 고부농민항쟁의 원인 제공은 조필영과 조병갑의 실정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여기에 안핵사 장흥부사 이용태의 탐학으로 확산이 되었음을 적기하고 있다. 예컨대 전운사 조필영은 강제로 세금을 매기고 함부로 징수하여 그 해독이 전라도 전체에 흘렀으니 백성들이 원망을 이기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이어서 고부군수 조병갑이 피를 빨고 기름을 짜서 박해가 끝이 없자 사방으로 흩어져서 도망간 사람들이 열 명 중 여덟, 아홉이 되어 근방의 읍이 흉흉하게 되자 감사가 크게 노하여 파직하라는 장계에도 불구하고 조병갑은 다시 보임하여 옛날의 악습을 고치지 않고 더욱 방자하였다 한다. 최영년은 “호남의 난리는 조필영에서 시작되었고, 조병갑이 그 중간이며, 이용태가 그 마지막이니 이는 만고에 바뀌지 않는 논의이다”라고 기술하였다. ‘백산패적변’은 백산전투와 전주전투 이후 동학농민군에게 전주성을 탈취당한 것을 초토사 홍계훈의 실책으로 돌리고 있다. 이에 따르면 호남의 동학도를 토벌하도록 조정의 명령을 받은 그는 전주에 이르러 3일 동안 군대를 주둔시켰다. 전라감영에서는 소를 잡아 먹이고 전주를 지켜달라고 청하였음에도 홍계훈은 이를 듣지 않고 병사를 이끌고 백산에 있는 비적들을 토벌하러 가지 않고 곧바로 장성으로 향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비적을 토벌하지 않고 빈손으로 서울로 돌아갔으니 그 연고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관군은 백산에서 패하였고 이후 비적의 기세는 사납게 퍼졌고 관군은 떨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스럽게 생각하였다. 반면 감사는 군과 읍을 단속하고 백성들을 불러 모아 밤낮으로 노력하자 비적이 틈을 타서 돌격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모두 감사의 힘이라고 자부하였다. 그러나 이후 비적의 무리가 전주성에 들어와 성은 함락되었고 정부에서 특명으로 김학진을 신임 감사로 임명했으나 그들에게 굴복하여 선화당을 양보하였다고 탄식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 향촌 유생의 동학농민혁명 관찰기 <봉남일기(鳳南日記)> 전라도 장성 장안리 유생 변만기(邊萬基)의 일기이다. 변만기는 자신이 거주하는 장성 일대에서 목격한 것과 나주ㆍ고창ㆍ흥덕ㆍ고부ㆍ태인 등 인접 지역에서 들은 내용을 일기에 적었다. 동학농민군 관련 내용은 제2차 봉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1894년 10월부터 농민군 활동이 종식되는 1895년 2월까지 4개월간 기록이다. 1894년 10월에는 4~5명의 동학도가 말을 타고 와서 군수전(軍需錢) 100량의 증표를 가지고 백씨의 집에서 군수미를 걷었는데, 그가 사람을 도소(都所)로 보내어 침범하지 말라는 증표를 받아 겨우 모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들은 각 면과 리마다 량미(粮米)와 군수전을 내놓으라고 명령하고 사사로운 혐의로 침략하여 사람들의 원성이 들끓었고 하였다. 이 일기를 보면 동학농민군이 인접 지역을 넘나들면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고창접이 본부(本府, 장성)로 왔는데, 본 마을에서 점심 4백 개의 밥상을 보내어 바쳤다. 봉연 선비 송성위가 와서 말하길, ‘군수전을 토색하는 일을 피하여 왔다’고 하였다. 각 면이나 리마다 소위 양식쌀과 군수전이란 것을 임의대로 내놓으라고 명령하고, 혹은 사사로운 혐의로 침략하는 폐단으로 인해 사람들의 원성이 들끓었다. 석양에 고창접 천진명이 진영을 황룡시(黃龍市)로 옮겼다”라고 기술하였다. 연이어, “월평의 도소에서 짚신 몇 켤레를 본 마을에서 압류하였다 한다. 어제 신평의 김주환과 이이로가 쫓겨나 광주의 대치로 갔다고 한다. 이날 오후에 고창의 신정옥이 손화중의 급한 기별을 듣고 월평에서 돌아갔다고 한다. 어떤 왜선(倭船) 여러 척이 법성포에 와서 정박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11월에는 북창에 진입한 나주의 수성군이 동학농민군 접주 집에 불을 지르자 나주에서 장성으로 들어온 접주 오중문은 피신하였고, 광주와 나주의 접경에는 연기가 구름처럼 깔려 있었는데 집을 태우는 연기라고 들었다. 나주목사가 영장을 보내 수성군이 불을 지른 죄를 다스리고 되돌아갔다고 한다. 정읍의 동학군인 등내접도 장성 북면에 도착하였는데 지역의 동학군들이 일제히 도회를 열고 밤이 이르도록 경비를 서는 등 분주하였다고 한다. 고창 칠암의 동학군도 장성 제암의 수백 명과 더불어 봉연에서 도회를 열었고, 여러 지역에서 온 동학군들이 황룡시에서 도회를 열었는데 1만여 명이 모였다고 한다. 이후 흥덕과 고창에서 온 1천여 명이 행군하여 나주로 갔다. 고부에서 온 3백여 명이 깃발과 장대를 자신의 마을에 세웠는데 그들을 먹이는 일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고 술회하였다. 정읍의 슬내접과 고창의 대성접 수천 명은 장성 읍내와 유탕리에 진을 쳤고, 고창의 신정옥은 황룡시에 도소를 설치하고 군량미를 각 면과 각 리에서 징집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들끓었다고 한다. 한편 태인에서 패전한 동학군들로부터는 “패전한 도인 수백 명 중 본읍을 지난 자들은 거의 모두가 경기ㆍ호중(湖中)ㆍ전주 사람들이었고, 탄환을 맞고 상처를 입은 자들이 부지기수였는데, 그들은 광주 덕산의 손화중 진영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장성 지역에서는 오가작통제가 철저하게 시행되고 있었음도 확인할 수 있다. 약장(約長)은 향약 단체를 주도하는 우두머리이고 다섯 가구를 이끄는 통수(統首)와 다섯 통 즉, 25가구를 관할하는 연장(連長) 등 최말단 조직의 대표자를 차례로 구성하였다. 봉남일기 갑오년 12월과 을미년 1월 기록에는 약장과 연장의 역할에 대해 자세히 기재되어 있다, 즉, 약장은 해당 지역의 인구성책(人口成冊)을 새롭게 작성하여 이를 베껴 적고, 각 면의 약장들이 모두 모여 규례와 호적대장 작성에 관해 상의하기도 하였다. 또한 수령이 각 면의 약장과 향교의 유사들을 모두 모아 오가작통에 관한 절목을 나누어주고 낭송하는 절차를 거치기도 하였다. 이들은 수시로 회합하여 이후에도 면의 상유사ㆍ약장 등과 각 리의 연장ㆍ통수가 모여 동학농민군 잔여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탐문하고, 3일 안에 다시 실상을 약장에게 고한다는 뜻을 각 리의 연장ㆍ통수에게 당부하기도 하였다. 면의 약장과 각 리의 연장이 날이 저물 때까지 약장의 집에서 모임을 가지기도 하였다. 2월의 일기에는 향약에 입약한 사람들을 성책하였는데, 양반이나 상민이나 똑같이 기재하고, 다만 각자의 나이대로 분류하였다고 한다. 변만기는 경군이 체포한 3명의 동학군을 태워 죽이고 수성군이 돈을 토색하거나 6명의 동학군을 살해하는 장면도 목격하였다. 자료의 원본은 장성의 변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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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6.01 18:44

[전북일보·우석대학교 공동기획] 전북의 수소산업 ①현주소

전북의 수소산업은 이제 구호를 넘어 실제 산업기반을 넓혀가는 단계에 들어섰다. 완주를 중심으로 부안, 군산, 새만금을 축으로 한 생산과 활용, 인증, 실증, 기업지원이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는 수소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설정하고, 지역별 산업 여건에 맞춘 수소 생태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전북일보는 이번 연속 기획을 통해 우석대학교와 함께 전북의 수소산업을 진단해 격변하는 산업 현장에서 전북 산업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완주는 수소 상용 모빌리티와 인증·시험 기반, 부안은 수전해 기반 그린수소 생산과 수소도시, 새만금은 재생에너지 연계 대규모 그린수소 생산, 군산은 차세대 CCU 기술 고도화 사업을 중심으로 역할을 넓혀가고 있다. 전북 수소산업의 중심에는 ‘수소상용모빌리티’가 있다. 전북은 수소버스 생산지역이자 세계 최초 수소트럭 상용화 경험을 보유한 지역으로, 중대형 수소모빌리티 산업기반을 갖추고 있다. 완주를 중심으로 수소상용차, 수소저장용기, 수소용품 관련 기업과 기관이 집적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수소특화 국가산업단지 조성과 수소특화단지 지정이 추진되고 있다. 수소차를 단순히 보급하는 차원을 넘어, 차량과 부품, 저장용기, 인증, 검사, 기업지원이 함께 움직이는 산업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우석대 수소연료전지 혁신센터가 조사한 ‘전북의 수소산업 생태계 및 교육 수요 분석’에 따르면 전북에는 2022년 기준 수소기업 97개가 소재하고 있다. 수소활용 분야 기업이 49개사로 가장 많고, 이 가운데 모빌리티 20개사, 연료전지 13개사가 포함돼 있다. 전북은 수소활용 분야에서 두드러진 기반을 보이고 있으며, 모빌리티와 연료전지를 중심으로 산업 역량이 축적되고 있다. 특히 전북 수소기업의 수소 분야 매출은 약 1조1000억 원 규모로 집계됐다. 이는 전국 수소 분야 매출에서 10.9%를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 수 이상의 산업적 무게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전북 수소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연구개발 투자도 전북 수소산업의 중요한 특징이다. 전북 수소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비는 전국 수소산업 연구개발 투자비의 40.2%로 조사됐다. 수소산업이 기술집약형 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연구개발 투자는 향후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전북의 수소기업들은 모빌리티와 연료전지, 수소 활용 분야에서 기술 개발을 이어가며 지역 산업 기반을 넓히고 있다. 도내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 공공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구조도 전북 수소산업의 강점으로 꼽힌다. 완주는 전북 수소산업의 핵심 거점이다. 완주군 봉동읍 일원에는 수소특화 국가산업단지 조성이 추진되고 있다. 2023년부터 2030년까지 추진되는 이 사업은 중대형 수소모빌리티, 수소저장용기, 수소용품 관련 기업 유치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전북특별자치도와 완주군, LH, 전북개발공사 등이 참여해 수소 관련 기업 집적화와 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으며, 완주가 보유한 기존 산업단지와 기업 기반을 수소산업 성장축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수소특화단지 지정도 전북 수소산업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완주군 봉동읍 장구리·둔산리 일원에서 추진되는 수소특화단지는 2026년부터 2040년까지 수소 상용 모빌리티 전후방 기업 집적화, 상용화 실증지원 기반 구축, 산업 생태계 확장을 목표로 한다. 완성차와 부품, 시험·인증, 연구개발, 기업지원이 한 공간에서 연결되면 수소 상용 모빌리티 분야의 전북형 산업모델이 보다 구체화될 수 있다. 전북 수소산업의 또 다른 축은 그린수소 생산이다. 부안 신재생에너지단지에는 수전해 기반 수소생산기지가 구축되고 있다. 이 사업은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수전해 설비를 기반으로 하며,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그린수소 생산 기반을 마련하는 데 의미가 있다. 부안 수전해 기반 수소생산기지는 하루 1톤 규모의 수소 생산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으며, 고분자 전해질막 방식의 수전해 설비가 적용된다. 새만금은 전북 그린수소 전략의 확장 공간이다. 전북특별자치도는 새만금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그린수소 생산체계 구축을 중점 추진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새만금 재생에너지 7GW를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 100MW급 그린수소 생산 예비타당성조사 재추진, 200MW급 그린수소 생산체계 구축 등이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현대차그룹과 연계한 PEM 수전해 실증 프로젝트도 추진되며, 이를 통해 수전해 기술 국산화와 대규모 그린수소 생산기반 조성이 함께 진행된다. 전북은 수소를 도시와 산업현장에서 활용하는 기반도 넓히고 있다. 전주·완주 수소시범도시 조성사업에 이어 부안 수소도시 조성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부안 수소도시는 2024년부터 2027년까지 하서면 일원에서 추진되며, 주거, 교통, 인프라 관리 등 도시 내 수소 활용 기반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수전해 기반 수소생산기지와 연계해 농촌형 수소도시 모델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전북 수소산업의 활용 영역을 넓히는 사업으로 볼 수 있다. 시험·인증 인프라도 전북 수소산업의 중요한 기반이다. 완주에는 고분자 연료전지신뢰성평가센터, 수소용품검사인증센터, 사용후연료전지 사업화지원센터, 수소차폐연료전지 자원순환 시험·인증 특화센터 등이 구축되거나 추진되고 있다. 수소산업은 안전성과 신뢰성이 중요한 산업인 만큼, 시험·인증 기반은 기업 성장과 시장 진입을 뒷받침하는 핵심 인프라다. 완주를 중심으로 한 인증·시험 기반은 도내 기업뿐 아니라 수소 관련 기업들이 제품을 실증하고 사업화하는 데 필요한 지원체계로 기능할 수 있다. 군산에서는 차세대 CCU 기술 고도화 사업이 추진된다. 이 사업은 이산화탄소와 수전해 수소를 활용해 고에너지밀도 합성원유를 생산하는 전주기 CCU 통합공정 개발을 내용으로 한다. 그린수소와 탄소 포집·활용 기술을 결합해 차세대 에너지산업 기반을 넓히는 사업이다. 전북 수소산업이 모빌리티와 연료전지, 생산 기반을 넘어 합성연료와 탄소 저감 기술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 지원과 인력 양성도 전북 수소산업의 성장 기반으로 제시되고 있다. 전북지역 수소기업에는 수소 담당 근로자 2125명이 종사하고 있으며, 기술기능직과 연구개발직, 관리직을 중심으로 산업인력이 구성돼 있다. 우석대학교 등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을 연계한 인재 양성 체계도 수소 상용 모빌리티와 수전해 분야를 중심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전북 수소산업의 방향은 비교적 뚜렷하다. 완주를 중심으로 한 수소상용모빌리티 산업 집적화, 부안과 새만금을 중심으로 한 그린수소 생산기반, 군산의 CCU 기술 고도화, 전주·완주와 부안을 잇는 수소도시 확산, 그리고 시험·인증과 기업지원 인프라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는 2030년까지 수소 관련 기업 수 100개, 수소산업 시장 규모 1조 원, 수소모빌리티 1만2000대, 수소충전소 30곳 이상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국제연료전지기술위원회 의장 이홍기 우석대 산학부총장은 전북의 수소산업에 대해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이라는 문제해결을 위해 수소사회 도래는 불변의 진실로 어느 때보다 가속화되고 있어 이제는 수소경제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시대의 변화이다”며 “지방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수소도시, 충전인프라, 산업단지 조성 등은 지자체의 실행력이 핵심이며 전북자치도는 수소연료전지산업에서 수소특화 국가산단을 유치하는 등 국내 최고의 지원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수소산업을 지역경제 성장의 축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으며 소비자의 선택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적극적인 사업방향 설정을 위해 혁신과 변화를 과감히 반영시키는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전북일보-우석대학교 공동기획 「전북 수소 산업 오늘과 내일」은 수소중심대학으로 선도적 입지를 다지고 있는 우석대학교의 후원으로 게재되었습니다.

  • 기획
  • 김경수
  • 2026.05.31 19:10

[창간 76주년 특집] 산자수려 ‘100만 관광 시대’ 열어가는 장수

장수군 관광의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 한때 스쳐 지나가는 지역에 가까웠던 장수가 가족형 체류 관광, 생태관광, 산악레저를 앞세워 ‘여행의 목적지’로 떠오르고 있다. 장수군 주요 관광지점 방문객은 2021년 24만 5668명에서 2024년에는 85만 1736명까지 증가했고, 2025년에도 80만 5117명을 기록하며 80만 명대 흐름을 이어갔다. 특히 지난해 통계에는 장안산 등 일부 개방형 야외 관광지점이 제외됐다. 별도 집계된 장안산 방문객 17만 5268명과 장수IC 앞 만남의광장 방문객 10만 183명을 더하면 지난해 장수 관광 방문 규모는 108만 568명에 이른다. 전체면적의 75%가 산지인 장수군은 산자수려(山紫水麗)한 자연을 품고도 그동안 대규모 개발에서 한발 비켜나 있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보존된 산과 숲, 고원지대의 자연성은 이제 장수 관광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곳 ‘장수누리파크’ 장수 관광 변화의 중심에는 군 대표 관광지로 육성 중인 장수누리파크가 있다. 장수누리파크는 야외 놀이터와 물놀이장, 실내 놀이시설, 캠핑장, 카라반, 요리체험장, 산책 정원 등을 한곳에 갖춘 가족형 복합 관광지다.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뛰놀고, 부모는 쉬어갈 수 있어 가족 단위 관광객의 만족도가 높다. 놀이와 체험, 휴식, 숙박이 한 공간에서 이어지면서 장수 관광의 첫 방문지이자 체류형 관광의 출발점 역할을 하고 있다. 여름철 장수누리파크는 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피서지로 변신한다. 야외 놀이터는 마인크래프트 모형을 테마로 한 물놀이장으로 운영되고, 바닥분수대와 어린이수영장 등 물놀이 시설도 마련된다.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가족 나들이 장소로 반응이 좋다. 캠핑장과 카라반 숙박객은 물놀이와 숙박을 함께 즐길 수 있어 하루 나들이가 1박 2일 여행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실내 시설도 강점이다. 2023년 10월 문을 연 장수어린이생활문화센터는 붕붕뜀틀, 볼풀장, 무인체험공간, 열린 도서관, 커뮤니티룸, 휴게실 등을 갖춘 키즈카페형 놀이시설이다. 3세부터 12세까지의 유아·어린이와 보호자가 함께 이용할 수 있으며, 주말과 방학 기간에는 조기 마감될 만큼 관심이 높다. 상상나래 누리놀이터도 장난감, 보드게임, 블록, 레고, 보호자 휴식공간과 수유실을 갖춰 사계절 가족 관광지로서 누리파크의 매력을 더하고 있다. 장수누리파크의 장점은 놀이시설에만 그치지 않는다. 계절별 야생화가 피어나는 유럽풍 가족 정원은 산책 코스로 사랑받고 있고, 이츠레드 요리체험장은 장수 농특산물을 직접 경험하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장수한우 불고기, 장수사과 찰떡, 마들렌 등 지역 농특산물을 활용한 체험은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활동이 되고, 부모에게는 장수의 맛을 자연스럽게 접하는 시간이 된다. △장안산·자연휴양림·만남의광장, 기존 명소와 새 거점의 연결 장수 관광객 증가세는 누리파크 하나만의 성과로 설명하기 어렵다. 장안산은 장수를 대표하는 산으로 꾸준히 사랑받아 왔고, 방화동·와룡 자연휴양림은 숲과 계곡, 캠핑을 즐기려는 방문객에게 익숙한 휴식처다. 봉화산 철쭉단지는 봄철 장수의 풍경을 알리는 계절 명소이며, 금강의 발원지인 뜬봉샘과 수분마을은 2024년 환경부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국가생태관광지로 지정되며 생태관광의 상징성을 더했다. 장수IC 앞 빨간 건물로 알려진 장수 만남의광장도 새로운 관광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곳은 주민과 방문객이 함께 쉬어가고 소통할 수 있는 힐링 공간이다. 중심 시설인 레드하우스에서는 사과, 한우, 토마토, 오미자 등 장수의 레드푸드를 활용한 식음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 사과·오미자 에이드, 사과가 들어간 빵, 장수한우 육회비빔밥, 꺼먹돼지 제육덮밥 등 지역의 맛을 담은 메뉴가 운영되고, 농특산물 판매 공간도 마련돼 있다. 60여 종의 열대식물과 초화류로 채워진 300여 평 규모의 실내정원은 계절과 날씨에 관계없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어린이를 위한 야외 대형 놀이터도 조성돼 주말이면 가족 단위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지역작가 작품 전시, 지역활동가와 청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방문객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되면서 만남의광장은 장수의 맛과 문화, 사람을 함께 만나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트레일러닝에서 MTB까지 산악레저가 만든 새 가능성 산악레저는 장수 관광을 확장하는 또 하나의 축이다. 장수트레일레이스는 장수의 산줄기와 숲길, 마을길을 달리는 산악러닝 대회다. 2022년 약 150명으로 시작한 대회는 2023년 800여 명, 2024년 3000여 명, 2025년 5000여 명이 장수를 찾으며 국내 대표 산악러닝 대회로 성장했다. 대회 기간에는 선수뿐 아니라 가족, 응원단, 운영진, 자원봉사자까지 장수를 방문해 숙박시설과 음식점, 카페, 전통시장 등에 활력을 더한다. 대회 현장에서는 장수만의 환대도 확인된다. 마을 주민들은 선수들이 지나는 길목에서 응원을 보내고, 보급소에서는 간식과 물을 나누며 대회 운영을 돕는다. 장수의 산길은 러너들에게 도전의 무대가 되고, 주민들에게는 지역을 알리는 축제의 현장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최초 100마일 코스 운영과 함께 국토교통부 주관 민관협력 지역상생 프로젝트인 ‘K-샤모니 장수군 조성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고기능성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와 함께하는 장수 K-샤모니 마운틴 챌린지, MTB대회, 승마, 산악레저 캠핑 페스티벌 등 콘텐츠도 다양해지고 있다. 트레일러닝, MTB, 캠핑, 승마가 서로 다른 종목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자연 흐름 속에서 연결되면서 장수형 산악관광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숫자로 확인된 변화, 100만 관광도시 장수군의 ‘100만 관광도시’ 도전은 단순히 방문객 숫자를 늘리는 목표가 아니다. 자연과 체험, 산악레저와 환대, 지역 먹거리와 쉼의 공간을 하나로 엮어 지역경제와 생활인구 확대까지 연결하는 과정이다. 장수누리파크, 장안산, 자연휴양림, 뜬봉샘과 수분마을, 장수만남의광장, 장수트레일레이스는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의 관광 흐름을 만들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관광객이 더 오래 머물고, 더 많이 경험하고, 다시 찾고 싶은 기억을 남기도록 동선을 촘촘히 연결하는 일이다. 산자수려한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뛰놀고, 러너들은 산길을 달리며, 가족 관광객은 쉼과 체험을 함께 누린다. 개발에서 한발 비켜나 지켜온 산과 숲은 이제 장수의 미래 관광 자산이 되고 있다. 그 자산 위에 가족 관광, 생태관광, 산악레저가 더해지면서 장수군은 ‘한 번쯤 가고 싶은 곳’을 넘어 ‘다시 찾고 싶은 관광지’로 나아가고 있다. ‘100만 관광 장수시대’는 이제 구호가 아니라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 장수
  • 이재진
  • 2026.05.31 15:45

[창간 76주년 특집] 도시 전체가 하나의 관광 동선…'관광의 길' 다시 짜는 전주

전주의 관광 전략이 ‘명소 중심’에서 ‘도시 흐름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한옥마을을 찾고 돌아가는 관광을 넘어, 전주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동하고 머물고 소비하는 전 과정을 하나의 관광 경험으로 설계하는 방식이다. 핵심은 도시 구조의 변화다. 전주역을 새롭게 정비해 관광의 첫 관문을 바꾸고, BRT를 통해 전주역과 한옥마을, 원도심, 전주천 일대를 연결하는 대중교통 중심의 관광 축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도심과 생활권, 문화공간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관광객이 도시를 따라 이동하고 머물며 경험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전주 관광은 이제 ‘어디를 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도시를 따라 이동할 것인가’로 질문을 바꾸고 있다. △전주에 도착하는 순간, 관광은 이미 시작된다 관광객이 처음 마주하는 역의 풍경과 이동 동선은 도시의 첫인상을 만든다. 하지만 연간 300만 명 이상이 이용하는 역임에도 노후화된 역사와 부족한 대기·환승 공간, 주차 불편 등으로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러한 한계를 바꾸기 위한 개선이 본격화되고 있다. 기존 역사를 보존하면서 뒤편에 증축 역사를 건립하는 방식이다. 새 역사는 지하 1층~지상 3층, 연면적 6146㎡ 규모로 기존보다 4배 이상 확대되며, 주차 공간도 총 602면 규모로 확충될 예정이다. 역사 증축과 주차시설 외에도 선상 연결 통로, 전면광장 조성 등이 함께 추진되고 있다. 후면주차장은 6월 중순부터 임시 운영될 예정이며, 사업은 2027년 말 완료를 목표로 한다. 역사는 지열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친환경 공간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이 변화는 관광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전주역은 더 이상 단순한 승하차 공간이 아니라, 전주 관광이 시작되는 ‘도시의 로비’가 된다. 관광객은 전주역에서 도시의 첫 이미지를 만나고, 광장과 환승 동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도심으로 이어진다. 전주 관광의 출발점도 한옥마을에서 전주역까지 확장되고 있다. 역세권 교통 체계와 보행 동선 등이 함께 재편되면서 전주역은 철도와 시내버스, 향후 BRT까지 연결되는 복합 교통 거점으로 확장되고 있다. 광장에는 ‘빛의 못’과 휴식 공간도 조성돼 관광객이 전주의 첫인상을 여유롭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여기에 역 인근 옛 농심 창고 용지에는 ‘전주 첫마중센터’ 조성도 추진되고 있다. 시외·고속버스 환승 기능과 관광 안내·라운지 기능이 결합한 공간으로, 전주시는 이를 통해 전주역 일대를 교통과 관광, 체류 기능이 연결된 복합 관광거점으로 키워간다는 구상이다. 역세권 일대도 함께 바뀌고 있다. 전주역 후면 106만㎡ 부지를 대상으로 한 역세권 개발사업이 추진되는 가운데, 역 앞 광장을 중심으로 보행 동선과 숙박·상업·문화 기능이 어우러지며 전주역 일대는 단순한 통과 공간을 넘어 머무는 생활·관광 거점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주역은 더 이상 지나치는 공간이 아니라, 도시를 경험하는 첫 장면이 되고 있다. △이동이 관광이 되는 도시, BRT가 흐름을 만든다 전주 관광의 변화는 이동에서 시작된다. 전주시는 기린대로를 중심으로 간선급행버스체계, 즉 BRT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BRT는 중앙 전용차로와 중앙정류장을 조성해 개인 교통과 완전히 분리해 버스의 속도와 정시성을 높이는 대중교통 시스템이다. 현재 추진 중인 1단계 기린대로 BRT는 호남제일문에서 한벽교 교차로까지 9.5㎞ 구간이다. 전주시는 1단계 구간 개통을 올해 말 목표로 하고 있으며, 향후 백제대로와 송천중앙로까지 확대해 도시 전반을 잇는 대중교통 축으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이다. 중앙정류장에는 냉·온열 의자와 실시간 버스정보안내단말기(BIT) 등 체감형 편의시설도 도입된다. 정류장은 단순한 대기 공간을 넘어, 잠시 머물며 다음 여정을 준비하는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 사업이 관광과 연결되는 지점은 분명하다. BRT의 핵심은 속도가 아니라, 관광의 동선을 설계하는 데 있다. 전주역과 한옥마을, 원도심, 전주천, 월드컵경기장 등이 하나의 관광 축으로 이어지면 관광객의 이동 범위도 자연스럽게 넓어진다. 결국 BRT는 단순한 교통정책이 아니다. 전주역에 도착한 관광객이 한옥마을만 둘러보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주천 야간 콘텐츠와 월드컵광장 행사장, 원도심 상권까지 자연스럽게 이동하도록 만드는 연결망이다. 이동이 편리해질수록 관광객의 동선은 넓어지고, 이는 체류 시간과 소비 확대로 이어진다. 전주 관광이 ‘한 지점을 찍고 돌아가는 방식’에서 ‘도시 전체를 따라 머무는 방식’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이동의 흐름부터 달라져야 한다. 시민의 일상 이동을 위한 교통 인프라는 관광객에게는 도시를 더 넓고 입체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기반이 되는 셈이다. △흩어진 관광자원, 하나의 동선으로 이어진다 전주의 관광자원은 이미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다. 문제는 각각의 공간이 따로 소비됐다는 점이다. 전주역과 한옥마을, 도서관, 정원, 원도심이 각각 따로 소비되면 관광객의 체류도 길어지기 어렵다. 전주시는 이 공간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고 있다. 도서관은 더 이상 책을 읽는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아중호수도서관과 연화정도서관, 다가여행자도서관, 학산숲속시집도서관 등은 책과 건축, 산책, 지역문화를 결합한 생활형 관광지로 기능한다. 특히 ‘전주 도서관 여행’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도서관과 지역 서점, 문화공간을 연결해 책을 매개로 도시를 체험하는 인문 관광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2538명이 참여해 만족도 96.8점을 기록했다. 참가자의 57%는 다른 지역 방문객이었으며, 이 가운데 44.7%는 2일 이상 체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원도 중요한 축이다. 지난 5월 열린 ‘2026 대한민국 전주정원산업박람회’는 월드컵경기장과 덕진공원을 중심으로, 성공적으로 개최되며, 정원을 단순 전시가 아닌 도시 전반의 녹색 관광자원으로 확장하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팔복예술공장도 중요한 거점이다. 산업시설이었던 공간은 전시와 공연, 창작이 어우러진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했고, 인근 이팝나무길과 연결되며 예술과 자연이 함께하는 체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샤갈 특별전 등 대형 전시 콘텐츠도 이어지며 공간의 문화적 깊이를 더하고 있다. 이처럼 전주의 관광은 명소 중심을 넘어, 도시 전체를 따라 흐르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전주역에서 시작된 동선은 도서관과 정원, 원도심을 관통하며 도시 전반을 하나로 잇는다. △흐름이 바뀌자, 관광의 결과도 달라졌다 관광 동선이 넓어지면 머무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길어진다. 지난해 전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숙박 비율은 74%, 평균 체류 기간은 2.69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각각 24.2%포인트, 0.99일 증가한 수치다. 이는 전주 관광이 ‘당일형’에서 ‘체류형’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기 방문에서 벗어나 도서관과 정원, 원도심 콘텐츠가 연결되며 관광객이 하루 더 머물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 전주천과 남부시장, 한옥마을 일대에서 펼쳐지는 야간 콘텐츠 역시 체류를 확장하는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와 국가유산야행, 전주천 야간 프로그램 등은 관광의 시간을 밤까지 확장하며 ‘머무는 관광도시’로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동선과 시간이 확장되면 소비도 함께 이동한다. 특정 관광지에 집중되던 소비가 숙박과 음식, 카페, 문화 체험, 골목상권으로 분산되며 도시 전반으로 퍼진다. 관광은 더 이상 특정 명소의 방문객 수 경쟁이 아니라, 지역 곳곳의 경제를 움직이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이처럼 체류형 관광은 사람을 불러들이는 데서 나아가, 머무는 시간을 소비로 바꾸고 그 소비를 다시 도시 전체의 활력으로 확장하는 전략이 되고 있다. 체류는 단순한 숙박일 수의 문제가 아니다. 여행 시간이 길어질수록 도시를 경험하는 깊이가 달라지고, 이는 다시 소비와 재방문으로 이어진다. 전주가 관광객 수보다 머무는 시간과 이동 동선, 소비의 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주역 재정비와 BRT 구축이 본격화되면 이러한 변화는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관광의 출발점과 이동 방식이 함께 바뀌면서, 도시의 관광 구조도 달라지고 있다. 전주 관광은 이제 명소를 넘어, 도시 전체로 확장되고 있다. △전주, ‘관광이 흐르는 도시’가 되고 있다 전주 관광의 변화는 콘텐츠 확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주역을 새롭게 정비하고, BRT로 도심의 이동 축을 만들며, 도서관과 정원, 예술공간 등 도시 곳곳의 공간을 하나의 동선으로 이어 관광객이 전주를 경험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관광객은 전주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도시의 흐름 안으로 들어온다. 전주역은 첫 관문이 되고, BRT는 주요 거점을 잇는 이동 축이 되며, 도시 곳곳의 콘텐츠는 머무는 이유가 된다. 역에서 도심으로, 다시 생활권과 문화공간으로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전주는 이제 도시 전체가 관광이 되는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관광객이 어디로 이동하고, 어디에 머물며, 어떤 장면으로 전주를 기억하게 할 것인지 도시의 흐름 속에서 설계하는 것이다. 결국 전주가 추진하는 관광 전략의 핵심은 개별 명소를 따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광객이 전주에 도착한 순간부터 이동하고 머무는 과정 전체가 하나의 여행이 되도록 만드는 데 있다. 도착의 순간부터 이동과 체류 자체가 여행이 되는 도시, 전주가 만들어갈 새로운 관광의 흐름이 주목된다. 윤동욱 전주시 부시장은 “지역관광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관광객이 한곳에 머무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 전체를 경험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전주역을 중심으로 한 교통 체계 개선과 도시 곳곳의 문화자원을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해, 다시 찾고 싶고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체류형 관광도시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 기획
  • 강정원
  • 2026.05.31 15:45

[창간 76주년 특집] 전북일보 유튜브, 전북에서 시작해 전국이 보는 콘텐츠로

△지역신문의 위기와 유튜브라는 새로운 가능성 지역신문의 위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종이신문 구독률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고, 포털 중심의 뉴스 소비 환경 속에서 지역 기사는 전국 이슈에 밀려 쉽게 묻히곤 한다. 기사 한 건을 쓰기 위해 오랜 시간 현장을 뛰어다녀도 조회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지역 언론의 존재 이유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순간들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된 미디어 환경은 지역신문에게 더욱 가혹하다. 빠른 속도와 강한 자극을 요구하는 플랫폼 생태계 안에서 지역 언론은 늘 한정된 인력과 제작 환경 속에서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역 언론이 멈출 수는 없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지역 언론이 왜 필요한지, 어떤 방식으로 지역민들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튜브는 단순한 영상 플랫폼을 넘어 지역신문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돌파구가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창간 75주년을 맞았던 지난해, 전북일보는 영상 콘텐츠를 단순한 뉴스 소비 수단이 아닌 ‘디지털 전북 아카이브’로 확장해 나가겠다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전북의 사람과 장소, 기억과 사건들을 영상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기록하며 지역 저널리즘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겠다는 선언이었다. 단순히 조회수를 위한 영상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남을 지역의 기록을 만들어가겠다는 목표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전북일보 유튜브는 구독자 2만 8800명대를 넘어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500만 조회수를 넘긴 쇼츠 콘텐츠도 탄생했다. 물론 전국 단위 대형 채널들과 비교하면 아직 부족한 숫자다. 하지만 지역 언론이 가진 현실적인 제작 환경과 여건을 생각하면 분명 의미 있는 변화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단순한 숫자를 넘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식과 완성도 면에서도 이전보다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조회수 경쟁 속에서도 지켜야 할 지역 저널리즘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디지털 플랫폼의 흐름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고 유튜브 시장의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조회수가 잘 나온 영상 하나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오히려 과거의 성과가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이런 콘텐츠가 잘 된다”, “자극적으로 가야 조회수가 나온다”, “트렌드를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실제로 유튜브는 숫자로 평가받는 플랫폼이기에 조회수와 구독자 압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전북일보 영상 콘텐츠의 방향은 단순한 자극이나 일회성 화제성에 머물 수 없다. 플랫폼 흐름을 읽는 감각도 필요하고 시청자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전북일보만이 만들 수 있는 콘텐츠, 지역 언론이기에 가능한 콘텐츠를 꾸준히 축적하는 일이다. 지역에는 전국 뉴스에서는 담아내지 못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동네 골목의 변화, 작은 시장의 풍경, 무명의 예술인 이야기, 지역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 지역 정치의 미묘한 흐름, 도민들의 웃음과 고민 같은 것들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거창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지역민들에게는 가장 가까운 현실이자 삶 그 자체다. 그리고 바로 그런 기록들이 지역 언론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다. △‘전북 기반 커뮤니티형 유튜브’를 향하여 앞으로 전북일보 디지털미디어국 영상제작부는 ‘전북일보다운 영상’을 만드는 데 더욱 집중하고자 한다. 회사 내 스튜디오를 활용한 기획 콘텐츠는 물론이고 직접 현장을 찾아가는 브이로그형 콘텐츠와 생활밀착형 영상 제작도 강화할 계획이다. 지역 축제와 맛집, 전통문화와 예술인 이야기, 스포츠 현장의 열기, 도민들의 일상과 지역 현안까지 보다 친근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특히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구나 편하게 찾아와 머물 수 있는 ‘전북 기반 커뮤니티형 유튜브’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전북 사람들에게는 공감과 소통의 공간이 되고, 외부 시청자들에게는 전북의 새로운 매력과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는 창이 되는 콘텐츠를 지향하고 있다. 단순히 지역 안에서 소비되는 콘텐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북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전국의 시청자들에게도 흥미와 공감을 줄 수 있는 콘텐츠로 확장해 나가고자 한다. 전북의 일상과 문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역성에만 가두지 않고 전국적인 감각과 흐름 속에서 풀어내며 ‘전북일보가 만들면 전국이 본다’는 경쟁력을 만들어가는 것이 궁극적인 방향이다. 영상 문법은 더욱 다양해져야 한다. 짧고 강렬한 쇼츠 콘텐츠뿐 아니라 현장을 깊이 있게 담아내는 롱폼 영상, 인터뷰 중심 콘텐츠, 다큐멘터리형 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형식을 실험해 나갈 계획이다. △완벽함보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역 언론의 한정된 제작 환경 속에서 매일 새로운 콘텐츠를 고민해야 하고 변화하는 플랫폼 흐름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때로는 조회수와 방향성 사이에서 흔들릴 때도 있다. 어떤 콘텐츠는 많은 공을 들였음에도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영상이 갑자기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한다. 아직도 무엇이 정답인지 명확하게 말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많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경험과 시행착오 하나하나가 결국 전북일보 디지털 저널리즘의 자산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부족한 부분도 많고 방향성이 완전히 정립됐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완벽함보다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에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더라도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결국 전북일보만의 색깔과 방식도 조금씩 선명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전북일보는 앞으로도 단기적인 화제성에만 기대지 않고 지역성과 공공성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갈 계획이다. 조회수 경쟁 속에서도 지역 언론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놓치지 않으면서 전북의 이야기를 가장 전북답게 기록하는 채널이 되고자 한다. 지금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훨씬 멀지만 길이 멀다고 해서 멈출 수는 없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묵묵히 현장을 기록하고, 지역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전북일보만의 디지털 저널리즘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영상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전북일보는 오늘도 전북의 현재를 기록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정윤성 영상제작부장

  • 기획
  • 정윤성
  • 2026.05.31 15:13

[창간 76주년 특집] 전북일보, 전북을 바꾸다!

76년, 2만 7740일, 66만 5760시간. 그동안 전북일보가 쉼 없이 달려온 시간이다. 우리는 ‘정론을 신념으로, 봉사를 사명으로, 도민을 주인으로’라는 사시를 가슴에 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정론직필(正論直筆)을 향해 밤낮없이 뛰고 있다. 매분 매초 치열하게 전북특별자치도를 기록해 온 우리의 발걸음은 그 자체로 역사가 됐다. 현장에서 흘린 땀방울은 지역의 어두운 그늘을 비추는 등불이 됐고, 도민의 곁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전북일보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도민과 동고동락하며 대변지의 소명을 다해 왔다. 전북 곳곳을 발로 뛰며 쫓은 진실은 수많은 기자상이라는 빛나는 훈장으로 돌아왔다. 전북일보는 늘 그랬듯 이 자랑스러운 역사와 성과를 이정표 삼아 우리만의 길을 개척하기로 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새로운 도약과 대전환의 길을 향해 다시 한번 힘차게 전진할 것을 약속한다. 전북 언론 최초의 한국 기자상 전북일보에서 전북 언론 사상 최초의 한국 기자상 수상자가 나왔다. 한국 기자상은 1967년부터 전국 한국기자협회 회원을 대상으로 그 해에 보도된 기사 중 가장 뛰어난 기사를 가려내는 것이다. 취재 보도 부문에 지원한 진병주 기자의 ‘낙도 불우 어린이 환자 돕기 캠페인(1968)’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당시 한 퇴역 수녀가 앞장 선 군산 선유도의 중등 과정인 고등공민학교의 설립 추진 현황을 보도했다. 이후 설립 지원 운동을 벌여 낙도 어린이들에게 배움터를 마련해 줬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년간의 대장정이 안겨 준 트로피 전북일보는 무려 2년에 달하는 장기 기획물을 연재한 적이 있다. 바로 1992년 6월 1일부터 1994년 5월 31일까지 99회에 걸쳐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그 역사의 현재적 의미를 조명한다(1992~1994)’는 기획이다. 또 한 번 한국 기자상의 영광을 재현한 주인공은 바로 문경민·김은정·김원용·오병권 기자다. 1994년에 제26회 한국 기자상 지역 기획 부문, 제45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 기획 보도 부문까지 휩쓸었다. 당시 동학농민혁명 100년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해 지방 언론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갑오년 역사의 숨결을 찾고, 오늘날의 의미를 집중 조명해 국민 인식을 높였다. 이 기획물은 이듬해 <동학농민혁명 100년-혁명의 들불, 그 황톳길의 역사 찾기>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고, 일본어판으로도 번역된 바 있다. 이후 이 책을 통해 제6회 녹두 대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소외된 이웃에게 희망 선물한 기획 뭐든 다 보도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자들에게도 부담이 되는 기사가 있다. 개인의 삶을 다루는 것, 특히 우리 사회에서 편견과 소외 속에서 희생을 강요 받으며 사는 사람들의 애잔한 이야기를 담는 것이다. 전북일보 이성각·안태성 기자는 세 차례에 걸쳐 ‘여성 장애인 인권 보고서-시각 장애인의 현대판 씨받이(2002)’를 보도했다. 여성 시각 장애인이 수년간 현대판 씨받이로 생활하며 겪은 인권 침해와 개인적 고통을 깊이 있게 조명했다. 여성 장애인뿐 아니라 장애인 전체에게 또 다른 편견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해 왔음을, 또 이를 묵인해 왔음을 알리는 데 집중했다. 소외와 편견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희망의 빛이 들 수 있는 작은 창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전국으로 퍼졌다. 제143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 기획 보도 부문에 이어 제6회 국제 앰네스티 언론상을 받았다. 전북일보 최초의 한국 신문상 수년 전 80명이 거주하는 시골 마을에서 30명이 암에 걸리고 13명이 사망하는 일이 알려지면서 지역사회가 들썩인 적이 있다. 그 중심에는 발 빠르게 보도한 김진만 사회부장이 있었다. 그는 오랜 기간에 걸쳐 암 공포에 휩싸인 한 시골 마을의 어려움을 집중 추적한 ‘장점마을 집단 암 발병 보도(2013~2020)’를 연재했다. 2013년 물고기 떼죽음·당국의 역학조사 필요성을 제기하고, 이후 병의 원인까지 밝혔다. 한국 기자상과 함께 국내 최고 권위의 언론상으로 꼽히는 한국 신문상의 뉴스 취재 보도 부문에 선정됐다. 단순히 집단 암 발병뿐 아니라 인근 비료 공장과의 연관성까지 파헤쳐 정부의 역학조사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김 부장은 내내 장점마을 주민들 걱정뿐이었다. 상을 받고도 “주민이 하루빨리 안정적인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적절한 보상, 재발 방지 대책이 수립되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갖겠다”며 소감을 대신했다. 전북일보 역사 잇는 MZ 기자들 전북일보는 지난 2024년 말 전북 지역 종합 일간지 최초로 디지털미디어국을 신설했다. 디지털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20대 기자들로 팀을 구성했다. 일명 MZ 기자들은 농촌 마을의 청년 이장이 되기로 했다. 박현우·김지원 기자는 완주군 고산면에 있는 화정마을에서 농촌 마을이 가진 이야기를 전하고,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지역소멸 위기 극복 프로젝트 ‘청년 이장이 떴다!(2025)’를 추진했다. 3개월 동안 마을 주민들과 동고동락한 일상을 담았다. 데이터로만 설명했던 지역소멸 현장을 몸소 체험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는 데 집중한 것이 핵심이다. 매일같이 취재 현장·사무실 대신 경로당으로 출근한 기자들의 노력은 수상의 결실로 보상을 받았다.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의 시민이 뽑은 2025년 1월의 좋은 기사를 시작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의 2025년 3월 이달의 좋은 보도상, 한국기자협회 제416회 이달의 기자상, 2026년 한국 신문상까지 휩쓸었다.

  • 기획
  • 박현우
  • 2026.05.31 15:00

[창간 76주년 특집] 세대별 전북일보 애독자들의 바람

완산고등학교 방송부 이윤성(16) 군 전북일보가 전북 지역의 대표 언론으로서 보여 준 76년간의 책임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 지역 학생들의 학업과 진로를 위해 전북일보가 힘써 주셨으면 하는 두 가지 바람을 전하고자 합니다. 올해 6월 3일에 선출될 전북특별자치도교육감 선거 관련 내용과 고교학점제 등 주요 문제들이 더욱 자주 다뤄지길 바랍니다. 지역 언론사로서 방송·언론 계열을 희망하는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신다면 진로 선택에 큰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전북일보가 도민의 삶을 대변하고 지역 청소년의 미래도 함께 밝혀 주는 든든한 언론사로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취업 준비생 김영범(26) 씨 전북일보 창간 76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지난 수십 년간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전북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 온 만큼 앞으로도 도민과 가장 가까운 언론으로 남아 주길 바랍니다. 청년들의 일자리 고민과 도전, 지역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현실을 더욱 깊이 있게 조명해 줬으면 합니다. 지역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전북을 떠나지 않고,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청년 정책과 고용 문제에도 꾸준히 관심 가져 주시면 좋겠습니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로 지역 발전의 길잡이 역할을 해 주는 전북일보가 되기를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제약회사 근무 이성진(36) 씨 전북일보가 76년 동안 도민들의 눈과 귀가 된 만큼 앞으로도 지금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언론으로 성장해 나가길 바랍니다. 전북의 경제·산업, 보건·의료 분야에 대한 심층 보도를 통해 도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해 줬으면 합니다. 살기 좋은 지역이 되려면 일자리를 만들고,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청년들이 떠나지 않도록 주거·교육 여건도 함께 좋아져야 할 듯합니다. 전북일보가 이러한 지역의 중요한 문제를 꾸준히 살피고, 도민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잘 반영될 수 있도록 힘써 주길 기대합니다. 전북경찰청 홍보계 경사 박태병(41) 씨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지역 특성상 노인 교통사고, 보이스 피싱 등 반복적 치안 활동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경찰이 전광판 등을 활용해 다양한 홍보 활동을 하고 있지만, 언론과의 협업 홍보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전북일보가 지금처럼 전북경찰청과 같이 호흡하며 걸어가는 전북 경찰의 치안 파트너가 돼 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특히 전북일보는 전북의 바람골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도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고, 그 반응을 정보 주체에게 다시 전달해 효과적인 정책 수립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초록우산 전북지역본부 복지사업1팀장 서순덕(57) 씨 지역사회 곳곳의 어려운 이웃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따뜻한 희망을 전해 주는 전북일보의 진정성 있는 행보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눔 활동과 후원 참여의 가치를 지역사회에 널리 알려 더 많은 이웃이 아이들을 위한 희망의 손길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함께해 주셔서 더욱 뜻깊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공정하고 책임 있는 언론의 역할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 환경 조성을 위해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전북일보와 초록우산이 서로의 신뢰와 연대를 통해 아이들이 행복한 전북특별자치도를 만들어가는 든든한 동반자로 오래 함께하길 기대합니다. 대한노인회 전북특별자치도연합회 사무처장 김창수(65) 씨 지역사회의 소식과 동향을 공정한 보도를 통해 적시에 전달하고, 도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신뢰성을 확보한 전북일보에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 연합회는 준비 안 된 초고령사회를 살고 있는 46만 전북 노인들의 복지 증진과 권익 향상을 위해 모범 모델이 되고자 앞장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북일보도 건강이나 복지 이외에도 노인 디지털 교육 등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지면을 할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른다운 노인상을 정립하고, 함께 전북의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길에 전북일보가 앞장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자영업자 한상현(73) 씨 창간 76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전북일보는 도민들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도,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신문을 통해 정보와 위로, 기쁨을 함께 주는 신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북 14개 시군의 소식을 볼 수 있어 좋고, 몰랐던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좋습니다. 항상 보면서 부족한 내용이 없다고 생각한 만큼 지금처럼만 잘해 주셨으면 합니다.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도 좋지만, 도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을 더 많이 실어 주시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도민들이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좋은 기사 많이 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국가유공자 임재현(84) 씨 처음 전북일보를 접했을 때 지역 소식과 도민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국가를 위해 헌신한 참전용사와 보훈 가족들의 삶과 희생이 잊히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줬으면 합니다. 나아가 인구 감소와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 지역 아이들의 미래 문제 등 전북의 위기를 깊이 있게 조명해 주기를 바랍니다. 어르신들의 복지와 생활 여건 등 현실적인 문제도 귀 기울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역 신문은 곧 그 지역의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전북일보가 전북의 얼굴로서 지역의 가치와 정체성을 잘 지켜주길 바랍니다. 정리=박현우·김문경 기자, 이상구 수습기자

  • 기획
  • 박현우외(2)
  • 2026.05.31 14:59

[천년의 종이, 전북의 내일을 쓰다] 전주의 공방서 묻다⋯한지, 다시 생활이 될 수 있을까

전주의 한지 공방에는 낯선 풍경이 하나 있다. 종이를 사러 오는 사람보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더 많다는 점이다. 공방 안에는 한지를 바른 조명과 생활소품, 색색의 공예품들이 놓여 있지만, 그것들은 이제 생활필수품이라기보다 ‘전통문화 체험’의 대상으로 소비된다. 한때 삶 속 가장 가까운 재료였던 한지는 어느새 일상 밖으로 밀려난 듯 보인다. 하지만 공방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다른 장면들도 눈에 들어온다. 한지를 찢어 붙이며 수업을 듣는 아이들, 조명의 은은한 빛을 만져보는 관광객들, 한지 질감을 활용한 디자인 소품들. 한지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생활 안에 남아 있었다. 전주에서 20년 넘게 ‘금홍 공방’이라는 한지 공방을 운영해온 김경철 공예인은 “예전에는 만들면 바로 팔렸다. 지금은 한지를 사러 오는 사람보다 체험하러 오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부터 한지 조명과 생활소품을 만들어왔다. 처음에는 생계를 위해 시작했지만, 오랜 시간 한지를 다루며 생각도 달라졌다고 했다. 김 씨는 “처음에는 먹고살기 위해 시작했다. 그런데 하다 보니 한지가 단순한 공예 재료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며 “이제는 우리 문화의 자존심과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공방 한쪽에는 오래된 나무와 버려진 플라스틱 포장 용기에 한지를 입힌 조명들이 놓여 있었다. 그는 “버려지는 재료에 한지를 입혀 새로운 생활소품으로 만드는 작업을 오래 해왔다”며 “한지는 생각보다 훨씬 활용 범위가 넓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지는 한때 생활 그 자체였다. 창호지와 책, 문서뿐 아니라 바구니와 상자, 등과 생활용품까지 사람들의 일상 곳곳에 쓰였다. 종이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삶을 구성하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와 대량생산 체계가 자리 잡으면서 한지는 점차 플라스틱과 공산품에 자리를 내줬다. 싸고 빠르게 생산되는 재료들이 생활을 채우기 시작했고, 한지는 전통공예나 문화재 복원 영역 안으로 밀려났다. 생활문화의 변화도 컸다. 과거에는 집 안을 장식하고 꾸미는 문화가 활발했지만, 최근에는 단순하고 미니멀한 인테리어가 대세가 됐다. 한지 조명과 공예품을 납품하던 고급 가구점들도 하나둘 사라졌다. 김 씨는 “예전에는 벽에 작품을 걸고 조명을 두는 문화가 있었는데, 지금은 최대한 비우는 분위기로 바뀌었다”며 “그러다 보니 한지 공예품 시장도 자연스럽게 축소됐다”고 말했다. 판매 중심이던 공방은 자연스럽게 체험 중심 공간으로 바뀌었다. 학생 체험학습과 관광객 프로그램이 늘었고, 최근에는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예술교육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그는 “한지를 찢고 붙이며 색감과 질감을 느끼는 활동 자체가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지가 생활에서 멀어졌다는 말은 어쩌면 절반만 맞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한지는 여전히 사람들의 감각 가까이에 남아 있었다. 조명과 디자인, 인테리어와 공예, 교육과 치유 프로그램까지 한지는 새로운 방식으로 생활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실제 공방을 찾는 젊은 세대의 반응도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낯설어하지만 직접 만져보고 사용해본 뒤 생각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김 씨는 “한지 조명은 일반 조명보다 빛이 훨씬 은은하고 부드럽게 퍼진다”며 “직접 사용해본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찾는다. 눈이 편하고 공간 분위기도 달라져 결국 써봐야 그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가능성이 아직 산업 전체를 지탱할 만큼 충분한 규모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지를 만드는 일은 시간과 노동이 많이 드는 데다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추기도 쉽지 않다. 후계자 부족 문제 역시 현장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다. 그는 “저 역시 생계를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 한지 시장은 젊은 친구들이 와도 오래 버티기가 쉽지 않은 구조”라며 “결국 생활이 돼야 하는데 아직은 그 기반이 약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지가 다시 생활 속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단순히 전통을 보존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책 지원과 연구개발, 생활 속 활용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지가 가진 친환경성과 질감, 빛의 특성은 지금 시대에도 충분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김 씨는 “한지는 원래 가진 특성이 굉장히 좋다. 질기고 오래가고 친환경적이기도 하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걸 지금 시대의 생활 안에서 어떻게 다시 쓰이게 하느냐”고 강조했다. 전주는 오랫동안 한지의 도시였다. 종이를 만드는 기술과 사람, 문화가 이 지역 안에 축적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한지는 과거의 영광만으로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를 지나고 있다. 박물관 안에 보존된 문화유산만으로는 기술도 산업도 이어가기 어렵다. 결국 한지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보다도 생활 속 자리 하나인지 모른다. 누군가의 방 안 조명이 되고, 손끝의 공예 재료가 되고, 다시 일상 가까이에 놓일 때 한지는 비로소 ‘현재의 종이’로 남을 수 있다. 천년을 견딘 종이. 이제 그 종이는 다시 사람들의 삶 속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끝>

  • 기획
  • 전현아
  • 2026.05.27 17:48

[팔도건축기행] 공주 중동 언덕 위 붉은 벽돌 건축의 재발견 ‘충남역사박물관’

충남 공주시 중동 구도심의 가파른 언덕길을 천천히 오르다 보면 거대한 건축물 하나가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계절마다 벚꽃과 단풍이 번갈아 물드는 언덕 위에 자리한 ‘충청남도역사박물관’이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붉은 벽돌 외벽과 육중한 기둥은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반세기 넘는 시간을 견뎌온 이 건물은 최근 충남도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되며 지역 근대건축의 상징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우수건축자산은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지정되지 않는다. 건축물의 역사성과 예술성, 지역 경관과의 조화, 사회·문화적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정한다. 충남도는 올해 처음으로 충남역사박물관과 아산 구정아트센터·온양민속박물관 본관, 당진 합덕 문화공감플랫폼 등 4곳을 우수건축자산으로 선정했다. 충남역사박물관은 상징적인 ‘제1호’ 자리를 차지했다. 반세기 넘게 공주 원도심을 지켜온 시간이 건축문화적 가치로 공식 인정받은 셈이다. ◇무령왕릉 발굴과 박물관의 탄생 충남역사박물관의 시작은 백제사 연구의 흐름을 바꿔놓은 역사적 사건에서 출발한다. 1971년 공주 송산리고분군 6호분의 배수로 공사 과정에서 백제 제25대 무령왕과 왕비의 합장릉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한국 고고학계는 물론 사회 전체에 큰 파장을 안긴 사건이었다. 무령왕릉 발굴은 백제사 연구의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그동안 문헌 중심으로 이뤄졌던 백제 연구가 실물 유물을 바탕으로 본격화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발굴 현장에서는 금제관식과 지석, 청동거울 등 수많은 국보급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정부는 갑작스럽게 출토된 유물을 보관하고 전시할 공간이 필요해 새로운 박물관 건립을 추진했다. 그렇게 1973년 공주시 중동 언덕에 국립중앙박물관 공주분관이 문을 열었고, 1975년 국립공주박물관으로 승격됐다. 무령왕릉 발굴 이후 백제 문화에 대한 관심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공주는 지방 도시를 넘어 백제 역사문화의 중심지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후 역사도시로서의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구축해 나갔다. 당시 박물관 건립에는 백제 문화 복원과 국가 정체성 재정립이라는 시대적 흐름도 함께 반영돼 있었다. 충남역사박물관의 뿌리 역시 이러한 역사문화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후 2004년 국립공주박물관이 웅진동으로 신축 이전하면서 옛 건물은 역할을 마치는 듯했지만, 개보수를 거쳐 2006년 충남역사박물관으로 다시 문을 열며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됐다. 건물의 기능은 달라졌지만 공주 역사문화의 중심 공간이라는 역할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70년대의 미학, 건축물 자체의 가치 충남역사박물관을 설계한 이는 대한민국 1세대 건축가로 평가받는 고(故) 이희태 선생이다. 그는 혜화동성당과 절두산 순교성당, 남산 국립극장, 국립경주박물관, 부산시립박물관 등을 설계하며 한국 현대 공공건축의 흐름을 이끈 인물로 꼽힌다. 이희태는 당대 건축계 주류와는 다소 다른 길을 걸었다. 화려한 해외 유학 경력보다 스스로 현대건축을 탐구하며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한국 전통건축을 현대 건축 언어 속에서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이어갔다. 그가 주목했던 건축물은 경복궁 경회루였다. 공주박물관 하부를 떠받치는 육중한 콘크리트 기둥 역시 경회루 석주를 현대적으로 변형한 형태다. 건물을 떠받치는 거대한 기둥 구조는 당시 공공건축 특유의 웅장함을 드러낸다. 건축물 곳곳에는 무령왕릉의 흔적도 녹아 있다. 건물 외벽을 감싸는 붉은 벽돌은 왕릉의 내부 구조에서 착안한 디자인 요소다.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아치형 창틀 역시 왕릉 입구 형상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관의 비례감도 인상적이다. 화려한 장식을 내세우기보다 절제된 선과 균형감을 강조한 건물은 1970년대 공공건축이 지녔던 시대적 미학을 보여준다. 정교하게 쌓아 올린 벽돌 외벽과 화강석 기단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은 색감과 무게감을 만들어낸다. 박물관 내부에는 1970년대 공공건축 특유의 구조와 분위기가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다. 붉은 벽돌과 화강석이 어우러진 내부 공간에서는 당시 건축 양식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이 건축물이 지닌 가장 큰 가치 가운데 하나는 ‘원형의 보존’이다. 여러 차례 보수와 리모델링을 거쳤음에도 건축물의 핵심적인 특징과 역사적 분위기를 비교적 온전히 유지하고 있다. 건축물 자체도 충남 근대건축의 흐름과 지역의 시간을 보여주는 역사적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공주 원도심 한가운데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벽돌 외관의 건물은 도시의 풍경과 함께 세월의 흔적을 쌓아왔다. ◇충남 선비정신의 뿌리 박물관 내부로 발길을 옮기면 충남을 지탱해온 유교문화와 선비정신의 흔적과 마주하게 된다. 충남역사박물관은 조선시대 충청도를 대표했던 유교 문화 유물들의 보고이기도 하다. 전시실에는 충남 지역 명문가들이 대대로 간직해온 고서와 서화, 생활유물 등이 다수 전시돼 있다. 화려한 연출보다 기록과 삶 자체에 집중한 전시가 특징이다. 묵향 짙은 선비들의 삶을 정갈하게 보여주는 공간에 가깝다. 충절과 예학을 중시했던 충남 선비문화의 특징은 유물 곳곳에 남아 있다. 선비들이 사용했던 붓과 벼루, 가족에게 보낸 편지글 등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고민을 보여주는 기록으로 읽힌다. 오래된 문집과 생활유물에는 당시 지역 사회의 문화와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역 명문가들이 남긴 기록물은 충남 지역 유교문화의 흐름과 선비정신의 전통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받는다. 나눔과 정직을 중시했던 충남 선비들의 흔적은 오늘날에도 의미를 남긴다. 외부의 붉은 벽돌 건물이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왔듯, 내부의 유물들도 시간을 건너 현재까지 지역의 정신문화와 삶의 흔적을 전하고 있다. ◇지붕 없는 박물관,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공간 충남역사박물관의 매력은 건물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박물관을 둘러싼 야외 공간과 산책로까지 이어질 때 비로소 이 공간의 풍경이 완성된다. 박물관 주변 산책길은 인근 중동성당과 3·1중앙공원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오래된 성당과 붉은 벽돌 박물관, 공원의 나무들이 어우러지며 공주 원도심만의 독특한 역사문화 경관을 만들어낸다.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가을이면 단풍이 언덕길을 물들인다. 시민들은 그 길을 따라 천천히 산책하며 역사를 일상 속 풍경처럼 마주한다. 아이들은 야외 마당에서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관광객들은 오래된 건축물이 만들어내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도시의 시간을 느낀다. 최근에는 야외 공연과 문화행사, 교육 프로그램도 꾸준히 열리고 있다. 오래된 건축물은 과거를 보존하는 공간을 넘어 시민들의 삶과 호흡하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충남도는 이번 우수건축자산 지정을 계기로 보존과 활용을 함께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우수건축자산으로 지정된 건축물은 원형을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일부 규제 완화 적용을 받을 수 있어 보다 유연한 유지·관리가 가능해진다. ◇시간을 품은 붉은 벽돌 건축 역사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50여 년 전 공주 중동 언덕 위에 세워진 붉은 벽돌 건물은 이제 충남 전체의 건축적·문화적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다. 무령왕릉 발굴의 기억과 백제 문화의 흔적,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의 시간이 그 공간 안에 켜켜이 쌓여 있다. 공주 원도심의 풍경 속에 자리한 충남역사박물관은 오늘도 자리를 지키며 지역의 역사와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대전일보=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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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부01
  • 2026.05.25 14:42

[전북에서 시작한 선택, 새로운 기업이 되다] 솜리에프엔비 윤지호 대표 “60년 가마솥 깨통닭, 치킨스낵으로 전국시장 도전”

익산에서 60년 넘게 사랑받아 온 솜리치킨의 손녀딸이 전통의 가마솥 깨통닭을 현대적인 스낵 형태로 재해석하며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섰다. 솜리에프엔비 윤지호(32) 대표는 지역 대표 먹거리였던 깨통닭의 맛을 전국 어디서나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상온 치킨 스낵’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구현했다. 솜리에프엔비는 단순히 오래된 치킨 브랜드를 넘어 3대에 걸쳐 이어온 조리 노하우와 지역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전국 단위 F&B 브랜드로의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가마솥 조리방식과 현대 식품 제조 기술을 결합해 ‘익숙하지만 새로운 치킨’이라는 차별화된 시장을 만들어간다는 구상이다. 윤지호 대표는 “익산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솜리치킨의 맛을 지역에만 머물게 하고 싶지 않았다”며 “어떻게 하면 이 깊은 내공의 맛을 오늘날 소비 방식에 맞춰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치킨 스낵을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60년 헤리티지 담긴 독보적 식감” 솜리에프엔비 제품의 가장 큰 경쟁력은 3대에 걸쳐 내려온 비법 반죽과 가마솥 조리법에서 나온다. 특히 대표 제품인 ‘검은깨 닭껍질 튀김’은 깨통닭 특유의 고소한 풍미를 한입 크기로 구현한 스낵이다. 별도의 조리 없이 개봉 즉시 먹을 수 있도록 개발됐으며, 맥주 안주나 아이들 간식 등 다양한 소비 방식이 가능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윤 대표는 “아는 맛이 가장 무섭다는 말처럼 익숙한 깨통닭의 맛을 부담 없이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반응이 좋다”며 “특히 60년 비법이 담긴 검은깨 닭껍질 튀김은 중독성 있는 바삭함으로 재구매율이 매우 높은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실온 보관 기술로 편의성 극대화” 윤지호 대표는 전통적인 조리 방식을 대량생산 공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가마솥 특유의 식감을 유지하면서도 장기간 실온 보관이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 윤 대표는 가마솥 온도관리부터 열풍 건조, 질소 충진 패키징까지 수차례 테스트를 반복하며 제조 공정을 개선했다. 그는 “가족에게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음식을 만든다는 원칙 하나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며 “전통 방식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품질 균일화를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또한 모든 제품에는 국내산 원물을 사용하며, 원재료에 대한 신뢰를 브랜드 운영의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3040 남성 중심 공략…“소확행 소비 겨냥” 솜리에프엔비는 주요 소비층으로 3040 남성을 주목하고 있다. 유행을 빠르게 좇기보다 한번 취향에 맞으면 꾸준히 소비하는 충성도 높은 고객층이라는 판단에서다. 윤 대표는 “최근 확실한 행복과 워라밸을 중시하는 소비문화가 확산되면서 간편하지만 만족도가 높은 스낵형 안주 시장 역시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며 “특히 홈술 문화와 간단한 술자리 트렌드에 맞춘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60년 정직함이 가장 큰 자산” 윤 대표는 브랜드 경쟁력의 핵심으로 ‘정직함’을 꼽았다. 그는 “3대째 가업을 이어오며 현장에서 직접 체득한 정직함이 브랜드의 가장 큰 자산”이라며 “단순히 유행을 따라가는 제품이 아니라 60년 세월이 증명한 맛의 정통성을 현대적인 유통구조로 풀어내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완벽한 준비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와 꾸준한 실행이다"며 “솔직한 기록과 실행으로 증명해 나간다면 결국 고객에게 진심이 전달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전국 브랜드화 기반 마련 윤 대표는 전북청년창업사관학교의 경험이 사업 확정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한다. 전북청년창업사관학교 15기에 입교해 비즈니스 모델 점검과 전국 단위 F&B 브랜드로의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윤 대표는 “같은 길을 걷는 창업가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객관적으로 점검할 수 있었다”며 “특히 솜리치킨이라는 지역 명물을 전국 단위 F&B 브랜드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전국 넘어 글로벌 K스낵 브랜드 목표 솜리에프엔비는 향후 제품군 다변화와 생산 체계 확장을 통해 전국 단위 브랜드로 성장한다는 계획이다. 1년 내 시즈닝과 디핑소스 등 추가 제품군을 선보이고 주요 온·오프라인 유통 채널 입점을 확대할 예정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스마트팩토리 구축과 함께 스몰비어 형태의 오프라인 경험 공간도 구상하고 있다. 또 5년 내 ‘치킨 스낵의 대명사’로 자리 잡고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고유의 맛을 알리는 K스낵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3대째 이어온 솜리치킨의 전통 솜리에프엔비 윤지호 대표는 익산 구시장에서 시작한 솜리통닭 박금례 대표의 손녀다. 현재 (구)솜리통닭은 첫째 아들인 윤경순 대표가 운영하고 있으며, 둘째 딸 윤선아 대표는 솜리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을 맡고 있다. 윤지호 대표는 이러한 가족 경영의 전통 속에서 60년 넘게 이어온 깨통닭의 맛을 현대적인 스낵 형태로 재해석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윤 대표는 “온 가족이 사업의 성공을 응원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정직한 맛” 윤 대표는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정직한 맛으로 사람들에게 행복한 추억을 주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며 “어제도 먹었는데 오늘 또 생각나는 가장 친근한 브랜드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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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수
  • 2026.05.21 16:08

[동학농민혁명 세계기록유산 미등재 기록물] 오하기문(梧下記聞)과 매천야록, 동비기략

매천 황현(黃玹, 1855~1910)은 조선말기 양반 선비로서 시인이자, 문장가요, 역사가로 유명하다. 또한 일본에 저항한 우국지사로 칭송받고 있다. 그의 대표적 역사서술은 『매천야록』이다. 권1의 상·하책에서는 1864년부터 1893년까지 편년체가 아닌 수문록체(隨聞錄體)의 메모 형태로 기록하고 있다. 2권 1894년 갑오년부터는 편년체의 서술과 비평을 남기고 있다. 그가 1894년 동학농민전쟁 발발에 큰 영향을 받아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 해당 기사를 그대로 기록해 나간 것은 아니었다. 기사의 추보와 수정이 가해졌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다면 매천야록을 집필할 때, 저본으로 참고한 책은 없을까. 당대 시대사를 저술한 또 다른 저작으로 『오하기문(梧下記聞)』이 있다. 책 제목은 ‘오동나무 아래서 들은 것을 기록하다’라고 했지만, 정확한 명명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는 전라도 광양 출신으로 몇 차례 과거를 낙방하고 서울에 와서 강위, 김택영, 이건창, 정만조 등과 어울렸으므로 이들로부터 여러 사실을 듣거나 당시 관보나 신문으로 검증하면서 실사구시적으로 사건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한때 이 책을 『매천야록』의 대본으로 보기도 하였다. 오하기문은 모두 7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필(首筆)은 1894년 이전 상황 개관에 이어 갑오 정월에 일어난 고부봉기로부터 기술하고 있다. 2필(갑오 5월부터), 3필(9월부터), 4필(을미 1895년 4월), 5필(건양 원년 1896년 4월), 6필(광무 4년 1900년 2월), 7필(을사, 1905년 12월~1907년 11월) 등으로 되어 있다. 갑오년부터 정미년까지 14년간 편년체의 서술이며, 행서체와 초서 세필로 기록하였다.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부분은 대개 1~3필의 내용으로 보고 있다. 이전에는 이 책 원본이 산일(散逸)되고 또 분철(分綴)이 되어 소장자에 따라 각기 소장한 까닭으로 전승과 유래에 대해 여러 이론이 있었다. 김창수는 『동학난 : 부제 동비기략초고(東匪紀略草藁』을 해제하면서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자료가 매천의 저술인 동비기략의 초고로 보았다(을유문화사, 1985). 역사학자 이이화는 『동비기략』이 오하기문의 수필, 이필, 삼필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서지학보, 4호, 1991). 관련 내용으로 동학의 발생과 최제우에 대한 기록은 첫 번째 권 1893년 계사년을 설명하는 부분에 처음으로 나온다. 이는『매천야록』에서 언급된 동학의 전말에 대한 기록과 일부 중복되는 부분이다. 여기서 매천은 동학에 대해 자세히 기술한 책으로 실제 동비기략이라고 언급했다(『매천야록』권1의 중간 부분 계사년 3월 권봉희의 상소).“그러나 고종은 말을 듣지 않고 그들을 효유하여 물러가게 하였다. 이때의 여론은 울분에 쌓여 있었으므로 권봉희가 상소한 것이라면서, 동학의 전말은 동비기략에 상술하였으므로 여기에서는 대략 언급하였다(東學之始末 詳具東匪紀略 故此編槩反之)”고 서술하였다(『梅泉野錄』 제1권(下 : 1894년 이전 ⑤ ‘崔時亨 東匪紀略 東學宣撫使魚允中’, 간행본에 있는 표제어는 원래 수고본에는 없다). 동학의 전후 사실과 이후 갑오년의 사실은 모두 『동비기략』에 기록되어 있다는 언급으로 보아, 동학농민군 관련기록은 오하기문이 아니라 동비기략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해당 원본의 상단에는 “동비기략은 지금 분실 중이다. 민국(民国) 갑오(甲午) 8월 위현(渭顯) 지(識)”라는 부분이 눈에 띤다. 1954년 8월 동비기략 책은 분실 중이라고 했다. 이 책에서 동학농민혁명과 본격적인 기록은 갑오 정월 고부봉기로부터 시작한다. 이어 3월 3일자 기사에서는 “고부(古阜)에서 동비(東匪) 전봉준(全琫準) 등이 봉기하였다. (중략) 전봉준은 집이 본래 가난한 데다가 의지할 곳도 없었다. 그는 오랫동안 동학에 물이 들어 항시 울분을 지니고 있었다. 민란이 일어날 때 많은 동학도들이 그를 괴수로 추대하였으나, 그가 간사한 뜻을 펴 보기도 전에 동학도가 해산하였으므로 자신도 창황히 피신하였다.”고 하였다. “그 후 순찰사와 안핵사가 그를 급히 수색하자 그는 그의 일당 김기범(이후 김개남), 손화중, 최경선 등과 모의하여 대사를 꾀하였다. (중략) 이에 어리석은 백성들은 그들과 호응하고 우도(右道) 연해 일대의 10여 읍도 일시 호응하여 10일 만에 수만 명이 늘어났다. ‘동학도와 난민이 합류한 것(東學之與亂民合)’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라고 기술하였다. 그는 유교를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는 동학의 세계관을 비판했고, 난을 생각하는 불온한 집단으로 동학세력을 동비, 도적 등으로 간주하였다. 그가 이 책을 서술한 첫째 이유였다. 다음으로 1894년 3월 “전봉준 등이 무장현에서 큰 집회를 열고 민간에 포고하였다”고 하면서 무장포고문 전문을 기록해 두고 있다. 이후 4월 18일경 나주 아전에게 보내는 글이나 홍계훈 초토사에게 보내는 글도 수록하였다. 이러한 글에서는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고, 보국안민의 계책을 마련해야 하며, 부패하고 무능한 관료들을 내쳐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 그렇지만 매천은 포고문에서 언급된 유교의 군신윤리, 민유방본이라는 민본주의, 보국안민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평을 가하지 않았다. 도리어 전주화약 이후 평화롭게 해산하는 동학농민군조차 토벌했어야 했다는 적대적인 입장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이 책의 가장 귀중한 기록은 1894년 1차 농민전쟁시기 뿐만 아니라 집강소 시기에 동학농민군의 내밀한 활동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도인을 자칭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학문을 ‘도학(道學)’, 하부 구성원을 포와 접으로 표현하고 도접주아래 접주(接主)라 칭하면서 서로 존대했으며, 접은 규모에 따라 구성원이 만명을 이루는가 하면, 어떤 접은 천 명가량으로 구성되기도 했다”고 보았다. 서포(徐包), 법포(法包), 남접(南接), 북접(北接) 가운데 어디 소속인가를 물어 그 연원을 따질 뿐이라고 했다. 더구나 읍마다 접을 설치했는데, 이를 대도소(大都所)라고 하며, 대도소에는 관에서 수령이 하는 일과 같은 일을 행하게 했다는 것이다. 동학농민군 조직과 활동에 대한 기술사항은 지금까지도 동학농민혁명 연구의 기본 틀로 활용되고 있다. 그가 특이하게 주목한 장면도 있었다. 동학도들은 귀천과 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서로 대등하게 두 손을 마주 모아 잡고 인사하는 예를 법도로 삼았다. 노비와 주인이 함께 입도한 경우에는 마찬가지로 서로 상대방을 접장이라고 불렀는데, 마치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평등하게 대했다. 그 때문에 집안에서 부리는 사노비, 역참의 아전과 심부름꾼, 무당의 남편, 관아에서 물을 긷는 사람 등 신분이 낮은 부류가 가장 좋아하며 추종했다고 했다. 매천은 신분제를 넘어서는 평등한 사회관계의 형성을 마지못해 인정하고 있었다. 그가 유교주의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동학과 농민군의 활동을 있는 그대로 적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치다. 이후 동학농민군의 향배와 관련하여 남원에서 6월 중순으로 추정되는‘시월망간(是月望間)’에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는 사실, 청일전쟁에 대비책을 모색하면서 7월 6일 전라감사 김학진과 전봉준의 관민상화 협상, 전봉준과 김개남, 손화중의 대처 방안의 차이 등을 적시했다. 다만 집강소시기에 자행된 동학도의 수탈 행위에 대해서 상세히 언급하며 사회적 혼란과 신분계층적 갈등을 조장한 것에 대해 비난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 책에서는 동학농민군의 2차 봉기에 대해서는 비교적 간략하게 다루어 자세한 전말을 기록하지 않았다. 북접과 남접의 현상과정이나 공주로의 진격, 그리고 당시 격문들도 다루지 않았고, 대신에 동학농민군에 저항한 장흥부사 박헌양의 죽음, 의병장 김한섭 등의 죽음을 안타까와했다. 조선의 정부군·민보군·일본군에 의해서 자행된 수만명의 동학농민군의 희생에 대해서도 정당한 토벌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호남의 적(賊) 전봉준, 손화중, 최경선, 성두한, 김덕명 등 농민군지도자에 대한 재판과 처형 사실을 끝으로 오하기문의 세 번째 기록(3필)은 마감되었다. 오하기문의 원본은 매천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으며, 필사본으로는 국사편찬위원회에 전질이 있고, 일부가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원문의 텍스트는 <동학농민혁명 사료 아카이브>에서 제공하고 있고, 번역해제본(김종익, 역사비평사, 2016)이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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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5.18 19:06

[인생 후반전, 전북으로 향하다] 돌아오는 사람들…전북, 준비돼 있는가

전북은 오랫동안 사람을 떠나보낸 지역이었다. 산업화가 본격화된 1960~70년대 이후 전북의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과 수도권, 울산·창원 같은 산업도시로 향했다. 농촌의 젊은 인구가 도시로 빠져나가고, 남겨진 지역은 빠르게 늙어갔다. ‘이촌향도’는 전북 사람들에게 너무 익숙한 삶의 흐름이었다. 전주역과 익산역, 고속버스터미널은 늘 떠나는 사람들로 붐볐고, 지역에는 부모 세대만 남는 구조가 반복됐다. 대학 진학과 취업, 결혼과 주거까지 삶의 주요 선택지가 수도권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성공하려면 전북을 떠나야 한다”는 인식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실정이다. 실제 전북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전국에서 가장 가파른 인구 감소를 겪은 지역 가운데 하나다.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가 본격 도입된 2005년 이후 2024년까지 전국에는 약 203조 원 규모의 균형발전 재정이 투입됐지만, 전북 인구는 2005년 186만 명에서 지난 4월 기준 172만 203명까지 감소했다. 21년사이 13만 9797명이 줄어든 셈이다. 도내 14개 시·군 가운데 11곳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전국 최고 수준이다. △청년은 떠나고…빠르게 흔들린 전북 인구 구조 청년 유출은 이제 전북 인구 문제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국가데이터처의 최신 소득이동 분석에 따르면 2023년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의 평균소득은 1년 사이 22.8% 증가했다. 반면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의 소득 증가율은 7.6%에 그쳤다. 소득 격차가 청년 이동을 수도권으로 끌어당기는 구조가 통계로 확인된 셈이다. 전북 역시 예외가 아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이동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북 전입 인구는 2만6844명, 전출 인구는 3만5322명으로 8478명이 순유출됐다. 전북의 청년 순유출률은 –1.3%로 전국 평균(–0.5%)의 두 배를 웃돌았다. 순유출 규모는 약 5800명에 달했다. 지역 산업 기반과 양질의 일자리 부족, 광역 교통망 한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청년층 이탈이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지역 대학 졸업생 상당수가 취업과 동시에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흐름도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북의 인구 감소를 단순한 저출산 현상으로 보지 않는다. 산업과 교통, 생활 인프라가 수도권 중심으로 재편된 결과라는 것이다. 국회미래연구원 관계자는 “청년 인구가 증가한 지역은 대규모 주택 공급과 광역 교통망, 제조·R&D 일자리가 동시에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역은 단순한 재정 지원만으로 청년 유출을 막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전북에서는 다른 흐름도 나타난다. 산업화 시기 고향을 떠났던 50대 이상 중·장년층 일부가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정년퇴직과 조기퇴직, 부모 돌봄, 수도권의 높은 주거비 부담, 삶의 전환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다. 이들은 과거의 귀향 세대와는 다르다. 단순히 노후를 보내기 위해 내려오는 은퇴층이 아니다. 수도권 기업과 산업 현장, 공공기관 등에서 오랜 기간 일하며 경험과 기술, 네트워크를 축적한 세대다. 여전히 경제 활동 의지가 강하고, 지역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으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실제 이번 기획에서 만난 정정모 씨는 서울에서 30년 넘게 은행원으로 일하다 임실로 돌아와 조경수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소일거리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일정한 수입이 발생하는 주업이 됐다. 익산 금마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김모 씨 역시 수도권 물류업 경력을 바탕으로 귀향 이후 새로운 생계를 꾸리고 있었다. 공통점은 단순한 ‘귀향’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일정한 경력과 자산,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에서 다시 일하고 있었다. 과거처럼 농촌으로 돌아와 은퇴 생활만 하는 흐름과는 성격이 달랐다. △이제 필요한 건 ‘귀향’이 아니라 ‘정착 구조’ 문제는 전북이 이들을 충분히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귀향 이후 지역에서 다시 일하고 싶어도 선택할 수 있는 산업과 일자리가 제한적이고, 재취업과 창업을 연결하는 체계 역시 부족하다. 교통·의료·문화 인프라도 수도권과 격차가 크다. 실제 귀향 이후 다시 수도권과 전북을 오가거나, 정착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역 안에서 안정적인 소득과 생활 기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귀환 흐름 역시 일시적 이동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서도 지역 중소기업의 51.4%가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은 60% 이상이 인력난을 호소했다. 반면 기업의 절반 이상은 50대 이상 인력 채용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숙련도와 책임감, 장기 근속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결국 지역은 한쪽에서는 인력 부족을 겪고, 다른 한쪽에서는 경험 있는 귀향 인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구조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돌아오느냐보다, 돌아온 사람들이 지역 안에서 다시 역할을 가질 수 있느냐가 꼽힌다. 단순히 고향에 집을 얻어 생활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 안에서 다시 일하고 소득을 만들며 공동체와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전북의 인구 구조는 이미 변하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변화를 지역의 새로운 동력으로 연결할 수 있느냐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관계자는 “중·장년층 귀환은 단순한 인구 증가 현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지역 산업과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인적 자산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재취업과 창업, 지역 산업 연계, 생활 인프라를 함께 묶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북연구원 관계자 역시 “지금까지 인구 정책이 청년 유입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돌아온 인구가 실제로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귀향 세대의 경력과 기술이 지역 안에서 다시 순환될 수 있는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기획
  • 이준서
  • 2026.05.14 16:23

[뉴스와 인물] 오양섭 (재)자동차융합기술원장 "전북, 미래 모빌리티 산업 거점으로 대도약”

(재)자동차융합기술원(JIAT)은 우리나라 상용차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는 국내 대표 기관으로, 미래 모빌리티산업 육성에 필요한 정책 수립과 사업 기획은 물론 글로벌 자동차산업 기술 변화에 대응하고 더 나아가 자동차 및 연관 산업의 발전에 선봉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자동차융합기술원 임직원 모두가 함께 움직이고, 노력한 결과물이라는 평가다. 그 중심에 지난해 5월 부임한 오양섭 원장이 있다. 취임 1주년을 맞은 그는 현대차 완주공장의 중소형 전동화 전략차종 양산, 현대차 그룹 새만금 9조 원 투자 등 전북 자동차산업의 대형 변화를 지역기업 성장의 기회로 연결하고, 미래차 산업을 선도하는 모빌리티 혁신기관으로의 도약을 다시 한번 다짐하고 있다. 오 원장을 만나 향후 자동차융합기술원 운영 방향 및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 취임 1주년을 맞았습니다. “취임한 지 어느덧 1년입니다. 지난 1년은 기술원의 방향성을 다시 세우고, 내부를 정비하며, 미래를 준비한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기술원 운영의 투명성‧효율성‧공익성을 강화하기 위해 본부별 업무 성격에 맞게 팀과 분원을 재배치하고 사업관리와 감사 기능을 강화했습니다. 분리되어 있던 자동차‧특장‧뿌리산업의 기업 지원 창구 단일화(One-Stop 서비스)를 통해 행정 효율성을 극대화했습니다. 국가공모사업 대응과 중장기 재무계획 수립을 위한 2개 TF를 운영했고, 220억 원의 국가공모사업을 수주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재무 건전성 확보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2023년 이후 사업 규모와 예산은 줄어드는 데 운영비는 꾸준히 늘어나 경영 여건이 악화된 상황이었습니다. 취임 후 비상 경영을 선포하였고 전 직원들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 세입은 22억 원 늘리고 운영비는 12억 원 절감하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 자동차융합기술원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자동차융합기술원은 전북특별자치도 출연연구기관으로서 자동차산업, 모빌리티산업 및 연관 전·후방 산업의 육성을 목적으로 2003년 1월에 설립되었습니다. 군산•완주•김제에 미래차 및 특장차 시험평가시설과 새만금주행시험장, 자율주행테스트베드 등을 갖추고 있으며 약 130명의 연구원들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기술원은 시험·평가 및 인증, 연구개발(R&D), 엔지니어링 서비스, 기업지원 및 사업화지원, 산업 인프라 구축 및 운영을 통하여 미래차 산업 전환 대응과 지역 전략산업 육성을 선도하는 기관입니다.” - 국내외 자동차 산업의 트렌드에 맞춰 지역사회의 자동차 산업 성장 전략이 있다면. “글로벌 자동차 산업은 전동화,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자율주행·AI 융합, 공급망 지역화라는 전환기에 놓여 있습니다. 자동차는 단순한 제조 제품이 아니라 데이터와 서비스가 결합된 ‘움직이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산업의 경쟁력도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생태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지역 자동차 산업은 기존의 완성차 제조를 기반으로 상용·특장차, 물류 모빌리티, 자율주행 실증 등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구조 전환이 필요합니다. 특히 자율주행과 물류 모빌리티는 상용차 분야에서 먼저 상용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관련 산업 생태계 조성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역 경쟁력의 핵심은 ‘제조 클러스터’에서 ‘실증 중심 모빌리티 클러스터’로의 전환입니다. 자율주행 테스트베드, 물류 실증 노선, 규제 특례 환경 등을 갖춘 지역은 기업과 기술을 끌어들이는 핵심 거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전북 역시 이러한 흐름에 맞춰 실증과 제조가 결합된 미래 모빌리티 산업 거점으로 도약해야 할 시점입니다.” - 군산과 새만금을 중심으로 상용차 자율주행 실증사업이 추진 중인데 현재까지의 성과가 궁금합니다. “상용차 자율주행 실증사업은 국내에서 실증에서 사업화 전환 단계로 진입한 대표 사례이며 연구·실증, 실증 인프라 구축, 상용화 준비라는 세 축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선 연구·실증 측면에서는 장거리 물류 환경을 활용한 자율운송 실증이 진행되며 실제 화물 운송 환경에서의 기술 검증이 이뤄졌습니다. 둘째, 차량·도로·관제 시스템을 연결하는 V2X 기반 협력 인프라 구축 등 실증 인프라 구축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셋째, 상용화 측면에서도 실증사업은 단순 기술 검증을 넘어 물류·항만·산업단지와 연계한 상용 서비스 모델을 준비하는 단계로 진입했습니다. 민간기업과 협업하여 유상 화물운송 서비스 실증을 추진 중이며, 항만·산단 간 자율운송, 스마트 물류, 수요응답형 교통(DRT) 등 자율주행 기반의 대중교통 서비스 도입도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 현대차그룹이 9조원을 새만금에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지역 자동차산업과의 협력 방안은. “현대차그룹 투자는 단순한 완성차 공장 유치가 아니라 AI 데이터센터, 로봇 제조 클러스터, 수소 생산 플랜트, 재생에너지, AI 수소 시티를 포함한 미래기술 산업 거점 구축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자동차 기업이 로봇·AI·에너지 기업으로 확장되는 흐름 속에서 지역 자동차 산업 역시 공급망 중심 전략을 넘어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 참여 전략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우선 AI 데이터센터와 스마트팩토리는 지역 부품기업의 제조 고도화와 생산성 혁신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제조·물류·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 활용이 확대되면 지역 기업은 스마트공장 전환과 품질 경쟁력 확보를 통해 글로벌 공급망 참여 기회를 넓힐 수 있습니다. 수소 에너지 투자 역시 지역 자동차 산업과의 연계성이 매우 큽니다. 수소 모빌리티는 승용차보다 트럭·버스 등 상용차 중심으로 먼저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상용·특장차 산업과의 협력 기반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투자가 지역 산업의 기술 고도화와 산업 구조 전환을 이끄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전략적 연계와 상생 모델 마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자동차융합기술원의 그 동안의 성과와 아쉬운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자동차융합기술원은 지난 20여 년간 전북 자동차 산업의 기술 거점으로서 기업 지원, 연구개발, 실증 기반 구축을 통해 지역 산업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특히 중소·중견 부품기업의 시험평가와 기술개발을 지원하며 기업의 품질 경쟁력 향상과 사업 다각화를 이끌었고, 자율주행·친환경차 등 미래차 분야 실증 인프라 구축을 통해 지역 산업의 전환 기반을 마련한 점은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됩니다. 아쉬운 점은 급변하는 자동차 산업 환경 속에서 연구성과의 사업화와 대형 기업 유치로 이어지는 산업 파급효과는 아직 충분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지역 기업 다수가 영세한 구조를 벗어나지 못해 기술개발 성과가 시장 확대로 연결되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앞으로는 실증·연구 중심 역할을 넘어 기업 성장과 투자 유치를 이끄는 산업 플랫폼으로 기능을 확대하고,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 구축을 통해 지역 산업의 질적 도약을 이끄는 것이 과제입니다.” - 도민과 자동차산업 관계자 분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자동차융합기술원은 이제 미래차 전환을 이끄는 핵심 기관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기술원은 전북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겠습니다. 지역 기업이 성장하고 새로운 기업들이 지역 내에 들어와야 고용이 늘어나고 주민들의 삶이 좋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년의 미래를 위한 준비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자동차 산업 경쟁력을 높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습니다.” △오양섭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은 서울대학교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사우스햄튼대학교 기계공학 석사 및 아주대학교 MBA를 취득했다. 현대자동차에서 30년간 근무하며 상용차 R&D와 상용수출부문 임원을 역임한 상용차 전문가로, 자동차 부품사인 나이스엘엠에스 대표이사를 거쳐 제10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 기획
  • 이환규
  • 2026.05.10 13:33

[가족의 재발견] 혈연의 성벽 넘어, 연대와 돌봄의 ‘가족구성권’을 묻다

전통적인 4인 핵가족 모델의 해체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됐다. 통계청 자료가 증명하듯 이미 우리 사회의 가장 주된 가구형태는 1인 가구로 재편되었으며 전북 역시 인구 위기 속에서 가족의 정의가 빠르게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와 다르게 우리 사회의 규범과 제도는 여전히 혼인과 혈연이라는 협소한 ‘정상가족’의 성벽 안에 갇혀 현실과의 괴리와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을 키우고 있다. 가족은 더 이상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이름표가 아니라,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는 실천으로서 새롭게 정의돼야 한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공동체를 이루고 어떤 형태의 관계라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 즉 ‘가족구성권’은 현대 시민이 누려야 할 가장 본질적인 사회권이자 존엄의 문제다. 지난 20여 년간 이 권리의 실체를 연구해온 성정숙(56) 가족구성권연구소 기획운영위원(사회복지연구소 물결 공동대표)과 최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상가족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시민권의 사각지대와 우리가 직시해야 할 가족의 실상을 들여다본다. △ 형태의 다양성인가, 권리의 평등인가 정부와 지자체가 최근 ‘가족다양성’이라는 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부모가족, 다문화가족 등을 아우르며 포용적인 정책을 펴는 듯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여전히 견고한 위계가 작동한다. 성정숙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현재의 가족다양성 담론은 이성애결혼과 혈연중심의 가부장적 가족질서를 유지하며 오히려 친밀성의 다양한 관계들을 ‘취약가족’으로 대상화하는 결과를 빚고 있다“고 꼬집는다. 실제로 정책현장에서 다양성가족은 흔히 말하는 정상가족에서 벗어난 ‘위기가족’으로 목록화 되어 시혜적 서비스의 대상으로만 열거될 뿐이다. 성 위원은 “가족구성권은 단순히 가족의 범위를 확장하는 인정 투쟁이 아니라 국가가 은폐하고 낙인화한 다양한 관계성에 주목하여 시민적 유대와 결속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토대"라고 설명한다. 가족을 형태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누가 시민의 자격을 얻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240개 법령이 가로막은 ‘돌봄의 권리’ 대한민국 법체계에서 가족을 언급하는 조항은 무려 240여개에 달한다. 민법 제779조와 건강가정기본법이 규정하는 ‘혼인, 혈연, 입양’의 틀은 이 모든 법령의 기준점이 된다. 성 위원은 “이 협소한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은 ‘권리없음’의 비시민으로 격하된다”며 그 실질적인 고통을 증언했다.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십년을 함께 산 동반자가 응급상황에서 보호자로서 수술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고, 상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시신을 인도받거나 장례를 치를 수 없는 현실은 일상적인 차별이다. 그는 “권리 없음은 단지 혜택을 못 받는 차원을 넘어 구체적으로 겪는 고통과 분노, 좌절이다”라며 “일상적으로 세세하게 체험하게 되는 불편함과 불안감이며 핵심적으로는 명백한 사회적 경제 불평등”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정상가족 프레임은 제도 밖의 사람들의 삶을 은폐할 뿐만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돌봄과 생존의 몫을 사적인 가족의 영역, 특히 여성의 희생으로 전가하는 억압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 가족책임주의라는 비극의 굴레 성 위원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가족주의’가 빈곤층에게 더욱 잔혹한 굴레로 작용하고 있음을 경고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이 대표적이다. 국가가 시민의 생존권을 직접 책임지기 보다 가족을 경유하여 집행하려다 보니, 연락이 끊긴 혈연조차 ‘간주부양비’라는 명목으로 수급자격을 박탈하는 근거가 된다. 과거 송파 세 모녀 사건부터 최근 수원 세 모녀 사건까지 이어진 비극들은 결코 개인의 불운이 아니다. 성 위원은 “가족에게 생존과 복지가 제도적으로 전가되고 가족이 운명공동체로서 강조될수록 가족이 함께 동반자살하거나 자신의 돌봄 몫이라고 생각하는 자녀나 부모를 살해하는 비극적 상황을 막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가족구성권 담론이 국가의 책무를 사적인 가족의 영역에서 공적인 사회의 영역으로 되찾아오는 과정이어야 하는 이유다. △‘생활동반자법’, 서로 돌보는 사회를 위한 안전망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대안으로 가족구성권연구소는 ‘생활동반자등록법’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이 법은 성적 지향이나 혈연 여부와 상관없이 실제로 함께 살며 돌봄을 수행하는 관계를 법적으로 승인하려는 시도다. 단순히 동성혼 법제화 논의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생활동반자법은 혼인과 혈연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유대를 맺고 서로 돌보는 시민들의 다채로운 관계를 인정함으로써 생애 과정에서 연결과 유대를 의미화하고 확장하는 제도적 완비”라고 정의했다. 비혼 동거와 노년의 상호 돌봄 관계, 친구 간의 주거 공동체 등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실질적인 돌봄 관계들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제도적 조건들을 충분히 확보할 때 비로소 무연고 사회로의 진입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북지역, ‘가족’을 넘어 ‘환대’의 공동체로 성 위원은 전북지역 사회가 직면한 인구 위기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조언을 건넸다. 혼인률과 출산율을 높여 인구를 늘리겠다는 식의 과거 인구정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전통적인 가족의 해체를 위기 현상으로만 명명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관계와 친밀성의 실천을 어떻게 인정하고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바꿔가야 한다고 했다. 특히 지역사회의 문화적 전환을 강조했다. 그는 “전형적인 가족과 효(孝)만 예찬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을 옥죄는 가족으로부터 멀어질 권리도 인정해야 한다”며 “가족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가족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이웃과 같이 돌봄을 나누는 ‘가족 너머의 관계’ 에 대한 의미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가부장적인 가족규범에 기대어 화목을 강요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민주적이고 평화롭게 서로를 돌보자는 제안이다. 인구감소를 정상가족을 재호명하는 것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전북에 정착하는 이주민들이 어떤 형태의 가구로 살아가든 지역공동체의 주민으로서 환대하고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공유하는 기반을 닦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전북이 다양한 방식의 상호의존과 돌봄을 실천할 수 있는 환대의 조건들을 만들 때 비로소 사람들은 그곳에 정주하며 새로운 삶을 일궈나갈 것“이라고 제언했다. 가족구성권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이다. 혈연의 성벽을 허물고 연대와 돌봄의 손을 잡는 사회. 성정숙 위원이 말하는 ‘가족의 재발견’은 바로 그 평등한 유대와 새로운 시민적 연합의 시작점에 있다.

  • 기획
  • 박은
  • 2026.05.06 19:07

[기획] ‘도지사 관사’의 기억 위에 문화를 지은 ‘하얀양옥집’

전주한옥마을 골목을 걷다 보면, 검은 기와지붕이 이어지는 한옥들 사이로 하얀 집 한 채가 환하게 서 있는 모습이 시선을 붙든다. 그 낯섦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자연스레 멈추게 한다. 이곳은 오랜 세월 전북도지사 관사로 사용되다 이제는 도민들의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하얀양옥집’이다. △권위의 담장을 넘어, 도민의 집이 되다 하얀양옥집은 약 50년 동안 전북의 행정을 품어온 공간이다. 1971년 완공된 뒤 첫 5년 동안은 전북은행장, 그 뒤 19년 동안은 전북도 부지사의 관사로 사용됐고, 이후 1995년부터 27년간 도지사 네 명의 살림집으로 쓰였다. 그리고 2022년 6월, 제36대 전북도지사에 취임한 김관영 도지사는 “권위주의를 상징하는 관사를 쓰지 않겠다”며 관사를 도민에게 환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오랜 세월 동안 문턱이 높았던 이 공간은 2024년 5월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대표이사 이경윤, 이하 재단)이 운영을 맡으며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새출발을 알렸다. 문턱을 낮춘 만큼, 보다 친근한 새 이름이 필요했다. 재단은 도민을 대상으로 아이디어를 모았고 그 결과 ‘하얀양옥집’이 25년간 불렸던 관사라는 타이틀을 대신하게 됐다. 당시 검은 지붕의 한옥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었던 탓인지 주민들은 이 집을 ‘하얀집’으로 불렀는데 예전의 그 이름을 다시 되찾은 셈이다. △방마다 새겨진 이름, 공간마다 머무는 이야기 하얀양옥집의 대문을 열고 현관 입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공간은 전시공간 ‘문턱’이다. 방문객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문턱을 넘을 수 있기를 바라며 지어진 이름이다. 이곳을 지나 2층으로 이어진 나무 계단을 오르면 도지사의 집무실을 재현해 놓은 공간 ‘이을’과 마주하게 된다. 과거 도지사들의 헌신과 수고를 기억하며 다음 세대에게 ‘이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방문객들에게 고민하게 만든다. 이곳에 마련된 편지지와 필기도구를 사용해 도지사에게 편지를 보낼 수도 있다. 2층에서 가장 넓은 공간은 응접실 ‘맞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예술을 ‘맞이’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으며 실제로 예술가의 무대나 토론회 등으로 가장 북적이는 곳이다. 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공간은 백인의 서재 ‘여럿이’다. 전북도민은 물론 역대 도지사와 예술가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명사 백 명이 추천해 준 도서를 한곳에 모아 놓았다. 독서 공간도 마련되어 누구든 원하는 만큼 머물다 갈 수 있다. 소규모 모임이나 강연도 열 수 있도록 꾸며져, 과거에 사적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이 오늘날 공적인 사유와 대화의 장이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이렇듯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방들이 오늘날에는 사람과 문화가 머무는 공공의 무대로 새롭게 쓰이고 있다.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기면 바깥으로 연결된 테라스 ‘무렵’으로 전주한옥마을의 돌담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잠시 바람을 쐬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은 방문객에게 또 다른 여유를 선사한다. △한 가족의 집에서 온 도민의 문화거점으로 하얀양옥집은 개소 이후 현재(지난달 29일 기준)까지 14만 7188명이 방문하며 체류형 지역 문화거점으로서의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개소 기념으로 열린 기획전 ‘들턱’(집들이의 순우리말)에서는 하얀양옥집과 ‘동갑’인 1971년생 전북 작가들의 작품을 선정해 도민들에게 선보였고, 이외에도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세계소리축제, 전북장애인복지관, 전북여성단체연합, 세이브더칠드런 등 다양한 지역 기관과 협력했다. 테라스 콘서트, 아트마켓, 팝업스토어, 마술쇼, 플리마켓 등 도민이 직접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행사도 꾸준히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는 남녀노소 모두가 문화 향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기획전시 ‘작은 손 큰 상상’에서는 전주한옥마을에 소재한 전주중앙초등학교 학생들이 직접 작품을 출품했을 뿐 아니라 도슨트까지 맡으며 ‘이웃’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시간을 마련했다. 또한 전북일보의 ‘지역소멸 위기 극복 프로젝트 <청년이장이 떴다> 프로젝트와 관련해 화정마을(완주군)·용평마을(김제시)·월봉마을(고창군)의 어르신 23인과 전북 예술인 6인이 협력한 예술 작품을 전시하며 관람객들의 열띤 호응을 얻기도 했다. 전통유산의 계승과 국제 문화교류의 장으로서도 기능하고 있다.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선자장(전통 부채 제작 기술 보유자)인 김동식·방화선 장인과 함께 복합 문화 콘텐츠(판소리, 합죽선 제작 시연, 관객 참여형 토크 등)를 진행하며 도민들에게 전통문화를 알렸다. 또한, 한지 공예 전문가인 김혜미자 장인과 함께 진행한 일본 가나자와시市 와의 교류 및 한국-몽골 국제 문화예술 교류 기획행사 등을 통해 전북 문화를 세계로 알리는 데 노력했다. 재단은 또한 지난 2년간 축적한 사업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에도 국내외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다. 오는 하반기부터 국립공원공단 서부지역본부·전북여성단체연합·전북특별자치도 등과 협력하여 지역 문화거점으로서의 소임을 다한다. 이외에도 어린이·가족을 위한 참여형 전시 등을 기획하여 도민 누구나 일상 속에서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재단의 목표이다. 하얀양옥집은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 10시~18시까지 운영하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 기획
  • 전현아
  • 2026.05.03 13:49

[뉴스와 인물]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금융인프라 서둘러야…전북, 지금이 마지막 기회”

국민연금공단 김성주 이사장이 전북금융도시 조성과 관련해 강한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특히 김 이사장은 전북도 등 지자체를 향해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친다”며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했다. 전북일보는 김 이사장을 만나 현 전북금융도시 구상과 당면한 문제에 대해 들어봤다. -전북일보와 이번 인터뷰를 진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 정치 상황 때문이다. 지방선거 이후 금융 중심지 추진 방향을 처음부터 설명하고 다시 맞춰야 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시간이 없다. 6월이면 용역이 끝나고 바로 금융 중심지 지정 논의가 시작될 수 있고, 2차 공공기관 이전도 같이 진행될 수 있다. 이 중요한 시기에 전북금융중심지 관련 정책이 부각되지 않아 답답한 심정이다. 어찌 보면 지금이 전북도의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국민연금의 규모와 위상은 훨씬 커졌다. 기금운용 방향도 달라졌다. “8년 전 제가 처음 이사장을 맡았을 때 기금 규모는 약 600조 원 수준이었다. 지금은 1500조 원을 돌파해 2.5배 이상 성장했다. 이제 국민연금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탑티어 연기금’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글로벌 투자 다변화이다. 기금 규모가 앞으로 3,600조 원 이상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투자 포트폴리오를 더욱 다양화해야 한다. 현재 선진국 중심의 투자에서 , 해외 사무소를 확대하고 운용 역량을 강화해 신흥시장까지 투자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 둘째는 유니버설 오너로서 책임투자를 강화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 자산을 맡은 기관이다. 투자한 기업이 투명하게 경영되고 기업 가치가 올라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건 기업에 대한 간섭이 아니라,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기 위한 당연한 주주활동이다. 셋째는 기금운용 인프라 확충이다. 다섯 번째 해외 사무소를 포함해 투자 다변화를 위해 조직을 강화할 계획이다. 아울러 인공지능(AI)과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뉴스나 정치적 위험 같은 비정형 데이터를 분석하여 국가와 기업에 대한 조기경보 시스템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금융 중심지 추진의 어려운 점은. “금융 중심지 신청의 주체는 국민연금이 아니다. 전북도다. 서울과 부산도 지자체가 계획을 세우고 정책을 추진했다. 그런데 전북도는 국민연금만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우리는 이미 할 일을 하고 있다. 실제 여러 금융사들이 전북에 진출하고 있고 이것은 분명한 성과다. 반면 전북도와 전주시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지자체는 인프라를 만들고 기업과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지자체 역할이다” -전북도가 제안한 ‘전북 패스포트’ 구상에 대해서도 견해를 듣고 싶다. “제안 소식을 듣고 의아했다. 그것은 전북도가 아니라 국민연금이 해야 하는 일이다. 지자체는 지금 해야하는 정책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위탁운용사 선정 및 관리는 기금운용에 있어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핵심 업무이다. 전문 기관인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안정적인 수익 제고를 위한 다양한 요소를 반영해 심도 있게 검토해서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공단은 금융생태계 조성을 위하여 현재 TF를 구성하여 운영 중이다. 국가계약법 등 법률에 위배사항이 없도록 법률검토와 함께 자산운용사 대상 설문조사와 의견 수렴을 진행하고 있다. 이 TF를 통해 올해 상반기까지 구체안을 만들어낼 것이다” -국민연금과 거래를 하고 있음에도 금융기관이 전북에 오지 않는 이유는. “기업들이 만나면 똑같은 얘기를 한다. ‘사무실이 없다’, ‘주거 환경이 불안하다’, ‘비용이 비싸다’는 거다. ‘입주할 건물도 없는데 어떻게 오냐’, ‘비싼 돈 내고 전주 갈 바에는 차라리 서울에 있겠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직원들이 내려오기 싫어한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기존 생활 기반을 바꾸기 싫기 때문이다. 사기업 직원에게 전주에 오는걸 강요한다면 결국 직원이 떠난다. 결국 올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지자체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의무가 있다” -전북금융도시 지정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세 가지를 이야기 하고 싶다. 업무 공간, 주거, 교통이다. 전북 국제금융센터는 10년 넘게 추진됐는데 아직 설계 단계이다. 빨리 해야 한다. 주거 문제도 심각하다. 질 좋고 저렴한 공공주택 공급이 필요하다. 이건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이다. 전북혁신도시의 주택 임대료가 서울 강남 다음으로 높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실정이다. 교통도 문제다. 혁신도시 내부 대중교통도 부족하고 전주역·익산역과의 연결도 불편하다. 지난 국민연금 이사장 때 전북혁신도시를 수소 시범도시로 지정해 수소 버스를 운행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정책 실현도 되지 않고 있다. 이 세 가지가 해결되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최근 국내외 금융사들이 전북, 특히 전북혁신도시를 찾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사장 취임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 “대통령께서 강조하는 지방이 주도하는 성장 전략과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하는 전북 금융생태계 조성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제가 이사장으로 다시 와서 1월에 전주에 사무소를 설치한 국내·외 자산운용사 대표들과 간담회를 개최했고,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직접 듣고, 논의했다. 전주 사무소 개소, 인력 배치 등은 전적으로 금융회사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고,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저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중요함을 강조한 일관된 메시지를 냈다. 최근에 KB, 신한, 우리, 하나금융이 차례로 응답해 전북 금융거점 조성을 발표했다. 이들은 전주에 상주하며 국민연금과 함께 글로벌 투자 기회를 발굴하고, 세계 최고의 금융 기법을 이곳 전주에서 공유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전주를 ‘자산운용 금융 도시‘로 변모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금융 생태계 조성의 핵심은 무엇인가. “사무실 몇 개냐, 몇 명이 왔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와서 무엇을 하느냐’이다. 구체적으로는 다양한 세미나, 컨퍼런스를 통해 투자 정보가 오가야 한다. 전주에 가면 글로벌 투자자들이 모이고 어디서든 투자 이야기가 나오는 환경이 돼야 한다. 개인 투자자와 기업들이 전주에 가면 금융정보를 얻을 수 있고 그것이 수익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결국 금융도시는 단순히 기관이 오는 게 아니라 정보와 사람이 모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시장에 대한 정보이고 그 다음에 잘 운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다. 예를 들면 ‘이란 전쟁 때문에 지금 어떤 위기가 생기고 있고 우리는 이걸 어떻게 해야 될지’, ‘AI 관련된 투자에서 높은 수익률이 예상되는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찾았다’이런 정보가 돌아야 한다” -전주 금융 생태계를 어떻게 활성화할 계획인가. “앞으로 운용사 선정 기준과 관련해 변화된 방향을 보여줄 것이다. 상당히 큰 변화가 될 것이다. 애널리스트들이 전주에 와서 국민연금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런 시장을 유망하게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걸 국민연금만 듣는 게 아니다. 이미 전주에 내려와 있는 금융사 직원들도 함께 듣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세미나와 컨퍼런스를 계속 열 것이다. 전주에 오면 자연스럽게 그런 정보를 듣고 교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여의도에서 듣던 고급 정보를 굳이 전주까지 와서 들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앞으로는 ‘그 정보를 들으려면 전주에 가야 한다’는 환경을 만들 것이다. 국민연금에 와야만 들을 수 있는 정보가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일반 국민과 지역 주민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지금은 전 국민 투자자 시대다. 전주에 가면 유명 애널리스트나 전문가들이 와서 투자 전략을 이야기하는 공간이 언제나 넘치게 될 것이다. 결국 ‘전주로 가야 정보가 있다’는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금융도시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국민연금에게 지역 상생은 단순히 평가를 위한 항목이 아니라, 전북에 뿌리를 내린 기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전북도민들은 실패 경험이 많아서 쉽게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연금 전북이전도 처음에는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이다. 시간이 걸릴 수는 있지만 방향을 정하고 가면 반드시 간다. 문제는 중간에 포기하는 거다. 이재명 대통령의 등장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금융도시에 대한 확고한 인식과 의지를 갖고 있다. 이제는 이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평가받는 전북도에서 금융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면, 국가 균형발전의 모범 사례가 될 것이다. 전주라는 지방 도시에서 글로벌 기금 운용이 이뤄지고, 독립적인 금융 거점으로 자리 잡는 모델을 만들고 싶다. 전북도에서 시작된 금융이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하나의 모델이 되는 것이 목표이다”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추진되고 있다. 전북 금융도시 조성을 위해 추가적으로 필요한 기관 유치는 무엇인가. “지난번 임기 때도 필요 기관에 대해 조사해서 보고했다. 전북 혁신도시를 자산운용 중심 금융도시로 만들려면 자산운용 기관들이 모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연기금이 같이 와야 한다.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같은 연기금들이 함께 모여야 한다. 공제회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주요 8대 공제회라고 얘기하는데, 이런 기관들이 함께 있어야 정보도 교류되고 인적 네트워크도 만들어진다. 같이 모여야 실제 운용에 도움이 된다. 전주에 가면 기금운용에 어려움이 생길 거라고 걱정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국민연금이 이미 보여줬다. 따로 떨어져 있으면 효과가 없다. 국민연금 혼자 있는 구조로는 금융 생태계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정치권과 지자체에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준비해야 한다. 선거 이후가 아니라 지금 공약 단계에서부터 금융 인프라 조성 계획을 내놔야 한다. 누가 당선이 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당선되는 사람이 무엇을 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지금 시기에 공약으로 답을 내놔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국민연금에게는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전북특별자치도를 비롯한 지자체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오라고 했으면 전북도가 책임져야 한다. 가라고 했으면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국민연금은 역할을 다할 것이다. 실제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 기획
  • 김경수
  • 2026.04.26 13:53

[뉴스와 인물] 정지영 감독 “이름 없는 ‘제주 4‧3’에 제 이름 찾아줘야죠“

1988년 서울의 한 극장가에 느닷없이 뱀이 풀렸다. 미국영화 직접배급에 반대하며 한국영화의 생존권을 지키려던 영화인들의 처절한 저항, 이른바 ‘뱀 투척사건’이다. 투쟁의 선봉에는 서슬 퍼런 기개의 젊은 감독 정지영이 있었다. 당시 투쟁위원회를 이끌던 감독은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옥고를 치러냈다. 이후 사람들은 그를 ‘투사’라고 불렀고 그의 카메라는 권력의 치부를 들춰내는 날카로운 창이 됐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흐른 2026년. 여든의 세월을 관통한 그가 다시 우리 앞에 섰다. 78여년 전 제주에서 소리 없이 잊혀진 ‘이름들’을 보듬고서 말이다. 김근태 의원의 고통을 통해 시대의 야만을 고발했던 영화 <남영동 1985>가 폐쇄된 공간 속 고문의 밀도에 집중했다면 신작 <내 이름은>은 폭력이 할퀴고 간 역사의 광범위한 ‘상흔’을 응시한다. 궁금했다. 평생 권력의 치부와 사회의 부조리에 날선 카메라를 들이대 온 그가, 왜 지금 가장 아픈 역사의 상처를 헤집을까. 그리고 최고령 현역 감독을 지탱하는 뜨거운 동력의 실체는 무엇일까. 지난 21일 전북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정지영(80) 감독은 물리적인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팽팽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정제된 문장을 헤집고 들어가 마주한 것은 청년의 심장을 가진 ‘현역 감독 정지영’이었다. -78년 전의 비극인 제주 4‧3을 지금 감독님의 시선으로 다시 꺼내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너무 늦었지요. 많은 감독이 다큐멘터리로, 예술영화로 4‧3사건을 다뤘지만 대중영화로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만큼 일반 대중들과 이 문제를 공유하기가 내용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는 의미겠지요. 이제는 그 문턱을 넘어 많은 이들과 아픔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4‧3의 비극은 그간 ‘집단의 고통’으로 그려질 때가 많았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개인의 이름’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관점에 집중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반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려면 개인사적인 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집단적인 국가폭력의 문제를 끌어낼 때, 관객들은 비로소 그 비극을 ‘나의 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영화 제목이 <내 이름은>입니다. 뒤에 생략된 문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제목을 통해 누구의 이름을 되찾아주고 싶으셨나요? “뒤에 생략된 것은 이름 석자입니다. ‘내 이름은... 정지영!’ 같은 식이죠. 하지만 또 하나의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역사적 사건은 다 이름이 있지요. 3‧1독립운동,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그러나 4‧3은 여전히 이름을 정하지 못한 채 ‘4‧3사건’이라 부릅니다. 누구는 폭동이라 하고, 누구는 봉기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이름을 찾아줄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려면 우리 모두가 4‧3을 깊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 출발을 영화 <내 이름은>을 보는 것으로 시작하면 어떨까요?” -수많은 증언과 사료 중에서 영화적 허구를 더해서라도 반드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단 하나의 진실된 장면이 있을 것 같습니다. “4‧3이라는 국가폭력으로 3만여 명이 희생당했지만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명확하게 가려내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피해자이면서 누군가에게는 가해자가 된 이들, 반대로 가해자인데 깊게 들여다보면 피해자인 이들이 엉켜있는 것이 진실입니다. 그런 생각을 안고 영화를 보시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된 장면’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역사의 비극을 다루며 ‘관객의 몰입’과 ‘희생자에 대한 예의’ 사이에서 가장 고민했던 지점은 무엇인가요? “과거를 찾아가는 미스터리적인 기법을 활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고자 했지요. 일단 영화에 몰입하고 나면 관객은 스스로 희생자의 편에 서서 그 아픔을 공유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것이 희생자에 대한 가장 깊은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작비가 시민들의 펀딩으로 모였습니다. 수만 명의 ‘제작자’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감독님께는 남다른 책임감으로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책임감이 정말 무거웠지요. 하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작비를 모아준 시민들에게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온 스태프와 연기자가 어느 때보다 열과 성을 다해 임했습니다.” -제76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내 이름은>을 관람한 외국 관객들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국적을 불문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관객이 함께 상처를 공유하는 것을 보고 저 역시 감동했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전쟁과 폭력에 직면해 있습니다. 4·3이 드러내고 있는 폭력은 모든 나라가 겪었거나 겪고 있는 보편적인 비극임을 깨달았습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영화를 관람하셨습니다. 이 영화가 우리 사회에 어떤 숙제를 던진다고 생각하시나요? “대통령께서는 국가폭력에 관한 한 징벌에 대한 시효가 있어서는 안 될 범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3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토대로 우리 사회는 비극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화해와 평화의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이 영화가 던지는 숙제일 것입니다.” -감독님 이름 앞에는 이른바 ‘사회파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40여 년간 싸우는 영화를 만들어오셨는데, 조금 편안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싶다는 유혹은 없으셨나요? “그렇게 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러기엔 여전히 12·3 내란과 같은 비극이 반복되고 있네요. 제발 역사가 뒷걸음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정지영 감독님을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인 에너지가 뭔지 궁금합니다. ‘부조리에 대한 분노’일까요? 아니면 ‘인간에 대한 애정’인가요? “분노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분노가 없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무관심 또는 외면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제 분노의 뿌리는 항상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나옵니다." -최고령 현역 영화감독이십니다. 촬영 현장에서 젊은 스태프들과 의견이 충돌할 때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의견이 다르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건 작품을 풍성하게 하는 영양소입니다. 저는 제 의견을 열어놓고 많은 이들과 토론하기를 좋아합니다.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작품을 만드는 스타일입니다.” - '투사' 혹은 ‘거장’이라는 수식어 뒤에 숨겨진 인간 정지영만의 부드러운 면모가 있다면요? “나를 가까이서 접한 연기자와 스태프들은 제가 겉으로는 냉정해 보여도 더없이 약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는 걸 잘 알 겁니다. 투사나 거장이라는 수식어는 사실 정지영의 외피일 뿐이죠." -훗날 사람들이 정지영을 어떻게 기억하길 원하십니까? “치열하지 않게, 그러나 진솔하게 자신의 화두를 많은 이와 나누고 싶어 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독보적이고 천재적인 예술가가 아니라, 그저 많은 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어 했던 대중을 사랑한 영화감독으로 남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북일보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정지영은 언제나 여러분과 나란히, 혹은 한 발자국 정도 앞서 걷고 싶어 하는 영화감독입니다. 영화 <내 이름은>을 꼭 보시고 영화가 던진 화두에 대해 마구 비판하거나 동조하며 치열하게 왈가왈부해 주세요.” 정지영 감독과의 서면 인터뷰를 정리하며 인상 깊었던 것은 분노와 애정을 동일시하는 그의 세계관이었다. 80세의 현역 감독은 세상을 향해 뜨겁게 화를 내고 있었고, 그 화의 본질은 ‘사람을 향한 사랑’이었다.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잊고 지낸 이름은 무엇이며 당신의 애정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고 말이다. △정지영 감독은 1946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졸업 후 1982년 영화계에 데뷔했다. 영화 <남부군> <하얀 전쟁> 등으로 한국 사회파 영화의 지평을 열며 거장으로 우뚝 섰다. 1988년 UIP 직배(직접배급) 저지 투쟁 당시 ‘뱀 투척 사건’의 총책임자로 옥고를 치르는 등 스크린 쿼터 사수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이후 영화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 1985>를 통해 날 선 사회적 통찰을 증명하며 시대와 호흡하는 저력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현재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현역 연출가라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 기획
  • 박은
  • 2026.04.2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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