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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 땐 여기, 놀 땐 저기"⋯추석 보내는 꿀팁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매일매일이 한가위처럼 풍요롭고 행복한 삶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은 말이다. 무려 최장 열흘간의 추석 연휴가 시작된 가운데 알아두면 좋은 추석 꿀팁을 정리해 봤다. △추석 연휴 고속도로 '무료' 추석 전후 나흘간(10월 4∼7일) 고속도로 통행료가 전면 면제된다. 면제 기간은 4일 오전 0시부터 7일 오후 24시까지다. 10월 3일에 진입해 4일 진출한 차량, 7일에 진입해 8일에 진출한 차량도 적용된다. 하이패스 이용 차량은 평소와 같이 단말기 전원을 켠 상태로 요금소를 통과하면 된다. 일반차로 이용 차량은 진입 요금소에서 통행권을 뽑고, 진출 요금소에 통행권을 제출하면 즉시 면제 처리된다. 동시에 운전자 휴식 보장을 위해 졸음쉼터·휴게소를 추가 운영한다. 대중교통 이용객 증가에 대비해 버스·철도 등 운행횟수와 좌석은 각각 평소보다 15.2%(3만 6687회), 11.9%(208만 4000석) 늘린다. △갑자기 아프면 어떡하지? 보건복지부는 추석 연휴 기간(3∼9일)에 대비해 의료기관 및 관련 서비스 이용법을 안내했다. 몸이 아픈 경우에는 먼저 문 여는 동네 병의원이나 작은 응급실(지역응급의료기관·응급의료시설)을 방문해 진료를 받아 보는 것이 좋다. 경증인 경우 방문한 의료기관에서 의사의 판단에 따라 치료 받으면 되고, 중증 질환이 의심된다면 큰 병원으로 신속한 이송이 가능하다. 12세 이하 소아의 경우 소아 응급 전문의 등 전문 의료인이 24시간 상담을 제공하는 소아전문상담센터 아이안심톡을 이용하면 된다. 다만 중증 질환에 흔히 동반되는 심각한 증상이 있는 경우라면 즉시 119에 신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증상에 대해 혼자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 119로 신고하면 의학적인 상담도 가능하다. 가까운 곳의 문 여는 병의원 및 약국은 응급의료포털(www.e-gen.or.kr), 응급똑똑 앱, 보건복지부 콜센터(국번 없이 ☎129), 시도 콜센터(국번 없이 ☎120)를 통해 찾을 수 있다. △따분한 추석에 축제 어때? 전북에서 내로라하는 대형 축제가 추석 연휴 기간에 개막한다. 바로 김제지평선축제와 임실N치즈축제(10월 8∼12일)다. 두 축제 모두 같은 날에 시작해서 같은 날에 끝난다. 벽골제 중심으로 김제시 일원에서 펼쳐지는 김제지평선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대한민국 명예 대표 문화관광축제 중 유일하게 전통농경문화를 주제로 개최한다. 쌍룡놀이·줄다리기·연날리기 등과 더불어 공연·불꽃놀이 등도 예정돼 있다. 군민뿐 아니라 전국에서 찾아오는 대한민국 대표 문화관광축제인 임실N치즈축제는 임실치즈테마파크, 임실치즈마을, 임실읍 일원에서 개최된다. 피자 만들기, 치즈 굴리기, 치즈 시상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버스킹·콘서트·노래자랑·인형극 등 볼거리도 가득하다. 또 오는 22일까지 고창 고인돌 유적지와 갯벌 일대에서 2025 세계유산축전 고창 고인돌·갯벌 행사가 열린다. 고창군과 국가유산청, 전북특별자치도가 주최하고 국가유산진흥원 등이 주관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과 세계자연유산인 갯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축제다. 체험, 공연, 전시, 포토존 등 고인돌·갯벌을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심심한 추석에 영화 어때? 지난달 24일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가 개봉 첫 주 압도적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가뿐하게 100만을 돌파하고 영화 관람이 늘어나는 추석 명절을 맞이하게 됐다. 이제 추석 레이스에 돌입할 예정이다. 연휴 시작일인 3일에 개봉한 영화도 있다. 바로 라희찬 감독의 영화 <보스>다. 추석 개봉작 중 예매율 1위를 등극하면서 명절 맞춤 흥행 코미디 영화의 탄생을 예고했다. 2025년 코미디 영화 흥행 계보를 이을 수 있을지도 관심이 모인다. 완전히 다른 색깔인 김용환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연의 편지>도 지난 1일 개봉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인 <스즈메의 문단속>, <너의 이름은.> 등 흥행작을 연달아 제작한 일본 제작사 코믹스웨이브필름의 카즈키 스나미 프로듀서가 극찬한 작품이다.

  • 기획
  • 박현우
  • 2025.10.05 08:56

[추석특집] 새롭게 열린 전주의 명소, 가을 여행길에 더하다

전주 곳곳에 새로운 문화·여가 공간이 잇따라 문을 열고 있다. 구도심에 남아 있던 방공호를 활용한 ‘완산벙커 더 스페이스’, 야간 경관을 정비해 낮과 밤의 매력이 다른 덕진공원, 책과 음악을 결합해 도심 속 휴식을 제공하는 아중호수도서관까지,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찾을 수 있는 장소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들은 각각 전주의 역사·도심·자연을 배경으로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한다. 나아가 구도심 활성화, 야간관광 자원 확충, 생활문화 거점 확대 등 전주의 발전과도 연결돼 있다. 세 공간의 특징과 변화를 차례로 소개하며, 전주가 가을철 여행지로 어떤 매력을 더해가고 있는지 살펴본다. 빛과 영상으로 만나는 전주의 이색 체험 공간 전주 구도심 한쪽, 완산칠봉 자락엔 특별한 공간이 숨어 있다. 낡은 방공호로만 여겨지던 지하 공간이 미디어아트 관광지로 새롭게 태어난 ‘완산벙커 더 스페이스’다. 한때는 군과 경찰, 행정기관의 지휘소로 사용되던 땅굴형 벙커였지만, 지금은 빛과 영상, 소리로 가득 찬 다중우주의 세계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전주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이색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완산벙커는 1970년대에 건립된 뒤 오랜 기간 방치되며 잊힌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고구마 저장고로 활용되기도 했지만, 본래의 기능은 사라진 채 철문 뒤로 닫혀 있었다. 전주시는 이 공간을 문화관광시설로 전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수년간의 리모델링 끝에 올해 초 시민에게 개방된 이후, 개관 5개월 만에 7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갈 만큼 빠르게 자리매김했다. 전시의 주제는 ‘다중우주 탐험’. 총 15개 공간 가운데 10개의 콘텐츠룸에서 다양한 미디어아트가 펼쳐진다. 관람객은 비밀요원이 되어 좁고 긴 지하 복도를 지나며 차례로 이어지는 차원의 문, 균열의 틈, 시간의 강 등을 체험한다. 일부 구간에서는 직접 디지털 오브제를 선택하거나 외계 생명체와 상호작용하는 체험 요소도 마련돼 아이들과 청소년에게 인기가 높다. 벙커 특유의 차갑고 어두운 분위기는 오히려 전시 효과를 배가시킨다. 어둠 속에서 빛과 소리가 만들어내는 대비는 몰입감을 높이고, 작은 방과 넓은 홀을 교차로 배치한 동선은 탐험하듯 공간을 걷게 한다. 전시를 마치고 나오면 지하의 차분한 분위기를 살린 무인카페와 기념품 판매장이 이어져 여운을 즐길 수 있다. 편의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부설주차장과 인근 공영주차장 확충으로 200면 이상 주차가 가능하고, 주말과 공휴일에는 한옥마을과 벙커를 연결하는 셔틀버스도 운행된다. 입장료는 성인 1만 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5000원으로, 전주시민과 단체 방문객은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완산벙커가 전주 관광의 새로운 동선을 열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한옥마을과 남부시장, 풍남문 일대에 집중됐던 유동인구가 완산칠봉 일대로 확장되며 구도심 상권에도 활력이 돌고 있다. 현장학습과 수학여행지로도 주목받으면서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공간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도 의미가 깊다. 버려진 군사시설이 시민과 관광객의 문화놀이터로 변모한 완산벙커 더 스페이스. 전주의 오래된 시간을 품은 지하에서 빛과 영상으로 펼쳐지는 ‘다중우주 여행’은 올가을 전주를 찾는 이들에게 특별한 기억을 남겨줄 것이다. 머물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전주의 호수공원 전주의 대표적인 호수공원인 덕진공원이 새 단장을 통해 도심 속 새로운 여가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한때는 낡은 시설과 어두운 경관으로 정적이라는 인상이 강했지만, 최근 열린광장 조성과 야간경관 개선 사업이 잇달아 추진되면서 낮과 밤 모두 활기를 찾은 것이다. 시민과 관광객에게 ‘머물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공원’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덕진공원의 가장 큰 변화는 입구 부근에 들어선 열린광장이다. 과거 연지문에서 풍월정 사이에는 높은 둔덕과 수목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시는 이번 조성 사업을 통해 낡은 시설과 울창하게 들어선 나무 일부를 정리하고 개방형 공간을 만들어, 어디서든 호수를 조망할 수 있게 했다. 1만㎡ 규모의 잔디마당과 원형광장이 조성되며 탁 트인 시원한 풍경이 연출됐다. 특히 원형광장은 우리 선조들이 세계 최초로 완성한 별자리 지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콘셉트로 꾸며졌다. 밤이 되면 은하수처럼 은은하게 비추는 조명이 설치돼 안전한 산책로와 함께 낭만적인 야경을 즐길 수 있다. 계단형 수변 스탠드와 수중 데크길에도 경관조명이 더해져, 호수 위로 반짝이는 불빛이 드리워지면 덕진호수는 낮과는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야경을 즐기려는 방문객을 위한 미디어파사드 상영도 준비돼 있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밤이 되면 연화정도서관을 배경으로 영상과 음악이 어우러진 콘텐츠가 상영돼 산책하다가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보행 환경도 한층 개선됐다. 800m 구간의 노후 산책로가 재정비돼 휠체어나 유모차도 무리 없이 이동할 수 있게 됐고, 일부 구간에는 코르크 맨발길이 도입돼 건강과 체험을 동시에 챙길 수 있다. 가을밤 은하수 조명 아래 호수를 바라보는 순간, 덕진공원은 더 이상 단순한 산책 공간이 아니다. 과거의 정적을 벗고, 빛과 물,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열린 무대. 전주의 야경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덕진공원은 반드시 들러야 할 장소로 자리 잡고 있다. 책과 음악, 호수가 함께하는 휴식 공간 전주 도심 동쪽, 기린봉 자락에 자리한 아중호수는 오래전부터 시민들의 산책 명소로 사랑받아 왔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와 수려한 경관 덕분에 주말이면 가족 단위 방문객으로 북적였다. 여기에 최근 음악특화 공공도서관과 순환형 수변탐방로가 새로 문을 열면서, 아중호수는 책과 음악, 문화와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복합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 6월 개관한 아중호수도서관은 시가 추진 중인 ‘아중호수 관광명소화 사업’의 결실이다. 연면적 902㎡ 규모의 1층 건물은 나무와 유리로 설계돼 호수와 자연을 조망할 수 있게 했다. 내부에는 열람 공간뿐 아니라 음악자료실과 청음 공간이 마련돼 있다. 클래식, 재즈, 팝, OST 등 다양한 장르의 LP와 음반, 음악 전문 도서까지 1만 5000여 점의 자료를 갖춰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보물창고나 다름없다. 아날로그 음반을 고품질 장비로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는 청음공간이 특히 눈길을 끈다. 이밖에도 아중호수도서관은 연중 문학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호수 음악여행, 음악 주제 인문학 강연, 시민 버스킹 무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기획돼 시민과 관광객을 아우르는 문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책을 읽고 음악을 감상한 뒤 창가에 앉아 호수 풍경을 바라보는 경험은 도심 속에서 찾기 힘든 여유를 선사한다. 도서관 바로 옆으로는 순환형 수변탐방로가 완성됐다. 그동안 일부 구간이 끊겨 호수를 온전히 한 바퀴 돌 수 없었지만, 지난해 말 북쪽 350m 구간에 목재데크와 전망데크, 경관조명이 설치되면서 2.6㎞ 전 구간이 연결됐다. 덕분에 방문객들은 이제 호수를 따라 끊임없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저녁 무렵이면 수면 위로 반짝이는 조명과 노을이 어우러져 걷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전망데크에 오르면 호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곳곳에 설치된 벤치와 쉼터는 가족 단위 나들이에 안성맞춤이다. 아중호수도서관과 탐방로의 등장은 아중호수 일대를 문화·여가 복합지대로 격상시켰다. 책과 음악, 산책이 어우러진 경험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매력적이다. 올가을 전주를 찾는 이들이라면 아중호수에서만 누릴 수 있는 이 특별한 경험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 기획
  • 강정원
  • 2025.10.05 06:00

[내년 지방선거 누가 뛰나-완주] 유희태 현 군수 등 6∼7명 거론

완주군수 출마 예상자는 유희태 현 군수를 포함 6∼7명이 거론될 만큼 일찌감치 선거 열기가 달아올랐다. 특히 각 후보는 완주-전주 통합 논란 속에 통합 이슈를 선거전으로 십분 활용하고 있다. 국영석 전 고산농협 조합장, 김정호 변호사, 서남용 완주군의회 의원, 박재완 전 전북도의회 의원, 이돈승 김대중재단 완주지회장, 임상규 전 전북특별자치도 행정부지사 등이 주요 후보군이다. 이들 모두 민주당 경선에 집중하고 있다. 다른 정당 출마 후보자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유희태 군수(72, 비봉)는 민선 8기의 군정 성과를 내세워 주민들과 접점을 넓히며 현직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지난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한 국영석 전 조합장(63, 고산)은 뒤 민주당에 복당한 뒤 보폭을 넓히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중도 포기했던 김정호 변호사(62, 삼례)는 근래 군수 출마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바닥을 다지고 있다. 2018년 민평당 후보로 군수 출마 경력이 있는 박재완 전 도의원(58, 봉동)은 최근 민주당 완주 지역구 사무국장직을 내려놓고 군수 출마에 시동을 걸었다. 3선의 군의원과 군의회 의장을 지냈던 서남용 의원(65, 고산)은 완주군의회 내 완주∙전주통합반대 특별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지난 선거 때 민주당 경선에서 탈락한 뒤 절치부심해온 이돈승 지회장(66, 구이) 역시 완주∙전주통합 반대 활동을 하며 조직을 정비하고 있다. 임상규 전 부지사(59, 고산)는 아직 신변 문제가 정리되지 않아 행보에 제한이 있으나 전북도와 중앙부처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고향 발전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고 있다.

  • 기획
  • 김원용
  • 2025.10.04 06:00

[뉴스와 인물] 더불어민주당 최초 당원 최고위원 된 박지원 변호사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 평당원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전북 출신 박지원(38) 변호사는 눈코 뜰새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민주당은 8·2 전당대회 직후 정청래 대표의 '당원 주권 정당' 공약에 따라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에 착수했고, 지난달 14~24일 서류 접수에 115명이 지원, 32명이 1차로 선발됐다. 이후 면접과 배심원 워크숍, 권리당원 투표 등을 거쳐 최종 4명이 확정됐으며 이틀 간 진행된 전 당원 투표 결과, 지난 10일 박 최고위원이 당선자로 결정됐다.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 준비단장인 장경태 국회의원은 "사상 최초 평당원 출신 지명직 최고위원은 당원주권정당으로 향하는 큰 걸음"이라며 "당원주권 실현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박 최고위원은 정 대표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8월까지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일하게 된다. 지난 15일 인준 후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박 최고위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반갑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최고위원으로 당선됐을 때 소감은 어떠셨습니까. "단계단계마다 다 느낀 바가 달랐습니다. 처음 이번 제도에 대한 안내를 듣고 입후보해보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는 경력도 일천한 제가 최고위원이라니 당치도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류 신청자가 100명 이상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생각보다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갖고 응모했다는 데 놀랐습니다. 이후 서류심사를 통해 30여 명의 면접심사자가 추려져 면접장에 들어갔을 때는 변호사업을 영위하거나, 대선캠프에서 상근을 했던 제 이력이 '평당원스럽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평당원스러운 사람, 가장 평당원스럽게 살아온 사람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평당원의 목소리를 지도부에 반영시킬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하는 데 가장 적절한 사람을 선출해야 하는 제도로 이해했기 때문에 저의 쓰임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 그 다음 단계도 상당히 압박감이 있는 절차가 진행됐는데요. "네, 다음 단계는 면접심사를 통해 꾸려진 12명의 후보자와 함께 100여 명의 배심원단 앞에서 공론화 조사를 거쳤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진 정견발표와 조별토론, 종합토론, 배심원단 질의응답까지 체력적으로 힘든 일정이었지만, 특히 같이 조별 토론했던 분들과 좋은 의견을 나누고 서로 응원과 덕담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흐뭇했습니다. 배심원 공론조사 후 마지막 4명 후보와 종합 연설, 토론회를 할 때는 예상과 달리 의외로 제가 후보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고, 온라인 소통에도 어두운 후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온라인 공론장에서 해야 할 젊은 세대의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제가 앞으로 공부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최종 당선 후에는 도움주시고 응원해주신 분들 격려 문자와 전화에 답하느라 며칠 간 정신이 없었습니다. 여전히 감사인사 빠뜨린 분들이 많을텐데 죄송스럽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하겠다는 말씀 드립니다." - 당 최고위원이라는 직책, 일반 도민들은 어떤 직책인지 잘 모를 수 있는데, 설명해 주신다면. "최고위원회의는 당무 집행에 관한 최고책임기관입니다. 당대표, 원내대표, 전국당원대회에서 선출된 최고위원 5명, 당대표가 지명하는 2명의 최고위원 등 9명으로 구성되며, 이번에는 사상 처음으로 당 대표가 지명직 최고위원 1명의 자리를 전당원투표를 통해 평당원이 선출되게 한 것입니다. 최고위원회는 법률안을 포함한 당 주요 정책과 당무에 관한 심의·의결, 당무 전반에 관한 조정·감독, 당 예산과 결산의 심의, 시·도당 또는 지역위원회에 대한 사고당부 또는 사고위원회 판정, 국회추천(선출) 임명직공직자 추천에 관한 심의 등 권한을 갖습니다. 기본적으로 일주일에 세 번, 월∙수∙금 3회 회의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데요, 비공개 회의 후 공개 회의가 열립니다. 델리민주 등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니 관심있는 분들은 찾아보셔도 좋겠습니다." - 지난 15일 당무위원회에서 인준을 받은 뒤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아직은 처음 뵙는 분들께 인사하고, 분위기에 적응하는 중입니다. 다들 환대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가 워낙 서울 생활을 오래 하지 않았다 보니 여의도에서 생활하는 분들과 만나뵙고 적응하는 데에도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동시에 현장의 당원 목소리도 듣고 챙겨야 하기 때문에, 불러주시는 곳에 가서 당원 간담회 등을 통해 인사드리고 있습니다. 향후 어떻게 전국의 당원들을 만나고 의견을 듣는 일을 계획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궁극적으로는 현장의 평당원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를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이나 비공개 회의의 의사결정에 반영시키는 순환구조를 정착시켜야 하는데, 이것을 오프라인과 온라인 상으로 어떻게 해나갈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 인준 후 정청래 대표가 따로 한 말은 있으십니까? "결혼은 했냐고 물으시더군요(웃음). 아들 둘 잘 키우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당원주권정당 실현을 위한 당대표 공약사항 이행 결과로 만들어진 평당원 최고위원직이기 때문에 당의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쓰임받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좋은 선례를 남겨 앞으로도 평당원 최고위원 유지 등 의미있는 결과가 지속되지 않을까 합니다." - 전북에서 나고 자라 도민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자부한다면서 '삼중소외론'을 다시 한 번 거론하기도 하셨습니다. 특히 지난 16일 전북도청에서 열린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인사말 중 '지정학적인 정의'라는 말이 의미심장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전북인들의 소외의식을 이해하고 있다고 여러차례 언급하셨고, 현 정권에서 전북 출신 인사들이 당직과 공직에도 적지 않게 진출했으니 눈에 띄는 변화와 결과가 있기를 다른 도민들과 함께 도민의 일원으로서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 향후 최고위원으로서 어떤 형태로 입지폭을 넓히고 공약을 실현시킬 것인지 궁금합니다. "일단 최고위원회 구성원 분들과 친분을 돈독히 하는게 우선이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최고위원들께서 바쁜 원내 의사일정이나 원외 지역구 관리 부담 등으로 소화하기 어려운 현장 일정을 기동성 있게 다니는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국 당원들로부터 면담 신청을 받아, 가령 지도부에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는 당원 20명 이상만 모이면 전국 어디든 가겠다는 생각으로 기동력있게 다니고 싶고, 특히 약세지역에서 불러주시면 더 반갑게 가려고 합니다." - 그동안 전북에서 오피니언 리더로 활동하면서 느낀게 많으실 것 같고, 지역의 기대도 큽니다. "공교롭게 최종 후보 4명 중 저만 유일하게 비수도권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책 분야에 있어서도 지방 소멸, 청년 유출, 지역균형발전 등에 대해 더 많은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 새만금 국제공항 문제, 완주전주통합, 올림픽 등 전북에 여전히 실타래 처럼 얽히고 풀리지 않고 있는 현안이 많은데요. 이런 부분이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으로도 번지고 있기도 합니다. "모든 문제를 대통령이 풀어줄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께서도 현장 타운홀 미팅 때 거꾸로 지역에 '무엇을 도와주면 되느냐'고 묻지 않습니까. 그러한 질문에 대해 즉시 요구사항을 제시할 수 있을 정도의 준비는 우리 스스로 되어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답을 미리 정해서 요구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지요. 현재 내각과 당 지도부에 전북 출신이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현재 민주당도 호남발전특위 구성 등 호남의 목소리를 수렴할 통로를 열어놓고 있으니, 이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 봅니다." - 향후 박 최고위원의 정치 행보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배우는 단계이다보니 개인적인 행보를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다만 중앙정치 무대에 빨리 적응하고 충실히 역할을 해, 결과적으로 조금이라도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면 감사한 일로 생각합니다." - 끝으로 전북도민과 전북일보 독자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전북이라서 한 몫을 맡았다'가 아니라, '맡아서 잘 하길래 알아 보니 전북출신 이었네?' 라는 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박지원 최고위원은 박 최고위원은 1987년 익산 출생으로 전주 상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41기)을 거쳐 법무법인 다지원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 전주시 체육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전북 법조인 중에는 처음으로 지난 2022년 고액기부자를 뜻하는 ‘아너 소사이어티 클럽’에 가입하고 봉사 등 지역에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온화한 성품과 통찰력 있는 오피니언 리더로 지역사회 곳곳과 소통하고 있는데, 젊지만 지역의 새 정치를 이끌어갈 인물 중 하나라는 평을 받고 있다. 지난 제21대 대선 때는 민주당 법률위원회 부위원장과 대선 캠프 법률지원단 팀장을 맡았다. 박 변호사는 “내년 최고위원 임기까지는 변호사보다는 최고위원의 역할에 전념하는 한편, 당이나 정부 차원에서 더 많은 경륜을 쌓고 지역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하겠다”고 다짐했다.

  • 기획
  • 백세종
  • 2025.09.28 14:24

[우리 땅에 새겨 있는 역사의 흔적] 검단설화와 전통소금 자염

고창 선운사에 두 가지의 창건설화가 전한다. 진흥왕 창건설화와 검단선사 창건설화이다. 그 중 검단선사 창건설화는 검단이 연못에 살고 있는 용을 몰아내고 못을 메워 선운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당시 선운사 인근에 도적떼가 많았는데 검단선사가 이들을 불법으로 바르게 이끈 후 소금 굽는 법을 알려주어 생업으로 삼게 했다고 한다. 검단선사에 대해 알 수 있는 역사적 자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검단(黔丹)이라는 이름에서 얼굴이 검붉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외모에서 인도에서 온 승려로 보기도 한다. △ 검단선사가 알려준 소금 굽는 법 검단선사가 선운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도적떼를 교화해서 소금 굽는 법을 알려주었다는 이야기는 꽤 신빙성이 있다. 우리의 전통 소금생산법이 바닷물을 불로 때서 구워 만드는 자염(煮鹽)이기 때문이다. 「도솔산 선운사 창수승적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마두치 아래 개태사가 있으니 검단 선승이 마음을 연마하며 수도하던 도량이다. 그 아래 바닷가에는 검단리(黔丹里)가 있으니 신승(神僧)이 처음 염정(鹽井)을 만들고 여기에서 소금을 구워 절에 돌아가며 바치게 하였다. 그 법이 이어 내려와 아직도 소금을 직접 갖다 바치는 관례가 전해오고 있다.” 이 사적기는 1707년의 기록이다. 검단선사가 염정을 만들어 소금 굽는 법을 알려주어 검단리에서 선운사에 보은염을 바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검단리는 어디이며, 염정은 또 무엇인가. 고산자 김정호가 제작한 동여도에 선운사 너머 바닷가에 검당포가 있고, 그 앞바다에 염정이라 표시되어 있다. 1872년 무장현지도에는 검당리 앞 바다에 ‘밀물이 들어오면 깊이가 1장이고, 조수가 물러가면 모래사장에 염장이 있는 곳(潮進則水深一丈 潮退則鹽場與沙場處)’이라 적혀있다. 동여도에 검단리는 없지만 검당포(檢堂浦)가 있다. 1872년 무장현지도에도 같은 한자를 쓰는 검당마을이 표기되어 있다. 위치상 동일한 곳이다. 검단이 발음하기 쉬운 검당으로 음이 전이되면서 한자도 읽기 쉬운 글자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염정과 염장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1925년에 최남선이 호남지방을 여행하면서 썼던 기행문인 『심춘순례』에 이에 대한 힌트가 있다. 부안 유천리에서 소금 굽는 현장을 보고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소금 굽는 것을 보기 위해 길을 내놓고 일부러 갯바닥으로 내려섰다. 해변에서 물이 들었다가 잘 빠질 지세를 가려서 흙을 긁어모아 대접 엎어놓은 것처럼 만들고, 속에는 솔가리 같은 것을 넣어서 마치 잿물시루처럼 만들었다. 밀물 짠물이 들어와 위에 고인 것이 개흙에 걸려서 아래로 내려가면, 밑에는 받을 통이 있어 받쳐 나온 물이 거기 가서 담긴다. 그 옆구리에 샘구멍을 만들어 쓰는 대로 퍼내게 한 것이 ‘섯등’이라는 것이다. 섯등이란 것은 요컨대 바닷물을 한 번 걸러내려 하는 잿물시루의 시루 같은 것이다. 이러한 섯등이 다섯씩 열씩 늘어서 있는 곳을 ‘염벗’ ‘염밭’ ‘염벌’이라 하여 그 산업적 지위가 육상의 전답보다 더 귀중함이 있다. 염벗에는 또 몽고인의 장옥(帳屋)처럼 둥그렇게 지은 초막이 여기저기 서있다. 그 안에 커다랗게 부뚜막을 하고 두어 칸통이나 됨직한 함석목판인 소금가마를 그 위에 붙였는데, 아까 그 물을 길러다가 붓고, 한나절 남짓 밑으로 불을 지피면 수분은 증발되고 염질만 결정되어 소금이라는 귀중한 산물이 생기는 것이다.” 이 기록을 조금 보완해서 설명하면 이해하기 쉽다. 최남선이 갯벌에 내려가 소금 굽는 모습을 볼 때는 그 이전단계가 진행된 후였기 때문이다. 바닷물이 물러가고 갯벌이 드러나면 쟁기로 갈아엎는다. 이렇게 하면 염기를 머금은 개펄 흙이 햇볕과 바람에 잘 마르게 된다. 이 마른 흙을 써레로 모아서 솔가지를 얹어 만든 구조물 위에 올려놓는다. 밀물이 들어오면 햇볕에 말라 소금기를 머금고 있는 개펄 흙이 바닷물에 걸러지면서 짙은 농도의 소금물이 그 옆에 파놓은 웅덩이에 고이게 된다. 이 웅덩이가 ‘섯등’으로 한자어로는 염정(鹽井)이다. 이러한 염정이 여럿 모여 있는 곳이 ‘염밭’ ‘염벌’로 불리는 염장(鹽場)이다. 염정에 고인 짙은 농도의 바닷물을 퍼다 염막에서 불을 때서 소금을 구우면 장작과 시간이 절약된다. 바닷물을 그냥 끊여서 만드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경제적이면서 효율적인 소금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최남선은 유천리의 소금 만드는 곳을 지나며 그 모습이 “야영같이 산재한 염막(鹽幕)”이라 했다. 군대가 야영하기 위해 들판에 쳐놓은 수많은 천막처럼 당시 유천리 해안가에 엄청나게 많은 염막이 있었다. 이는 줄포만의 맞은편에 있는 고창 검당리의 갯벌도 마찬가지였다. △ 사라진 검당마을 1872년에 제작한 무장현지도를 보면 선운산 너머 서쪽 바닷가에 심원면 검당리가 자리해 있다. 그런데 오늘날 심원면의 마을이름에 ‘검단’이나 ‘검당’이란 이름 의 마을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찌 된 일일까. 이는 1899년(고종 36)에 있었던 천재지변과 관련이 있다. 1899년 1월, 엄청난 해일이 서해안을 덮쳤다. 아마 서해바다에서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 쓰나미가 밀려왔던 것 같다. 1899년 1월 17일자 황성신문은 ‘서울 지진’이라 하여 “그저께 오후 9시에 땅이 크게 진동하여 집이 흔들리고 집안에 있는 사람이 편히 앉아있지 못하고 강의 얼음이 크게 갈라져, 강을 건너지 못하게 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서해에서 일어난 지진이 서울에까지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이때 서해안에 몰아친 해일로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충청남도의 피해가 컸다. 이 해일로 바닷가에서 소금을 구워 생업을 이어가던 심원면의 몇 개 마을이 사라졌다. 검당마을도 폐허로 변해 사라졌다. 포구와 염장이 사라졌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겨우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검당마을 뒤쪽 사등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 천일염에 밀려 사라진 자염 자염은 짠맛이 덜하고 미네랄이 풍부해서 영양가가 높은 천연소금이다. 이렇게 품질이 뛰어난 소금임에도 값싼 소금의 등장에 설자리를 잃었다. 천일염이라는 새로운 소금제조법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천일염은 염전에 바닷물을 끌어들여 바람과 햇볕의 힘만으로 수분을 증발시켜 얻는 소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07년 인천에 만들어진 ‘주안염전’에서 최초로 천일염을 생산했다. 이 염전은 일본인이 조성했다.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만들다가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해 할양받은 대만에 가보니 염전에서 천일염을 생산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천일염 제조법을 습득한 일본이 조선병합을 앞두고 주안염전을 만들었다. 값비싼 자염시장을 잠식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한일병탄 이후 자염의 생산 상황은 해가 갈수록 악화됐다. 조선총독부와 결탁한 일본인들이 서해안 갯벌을 간척해서 대규모로 염전을 조성했다. 간척지에서 쏟아지는 천일염 때문에 자염은 경쟁할 수 없었다. 1950년대에 이르러 자염은 경쟁력을 상실하고 맥이 완전히 끊어졌다. 썰물에 갯벌이 드러나고 있는 옛 검당마을 앞바다. 필자 촬영 △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검당 앞바다 2010년 2월 1일, 람사르협회에서는 고창․부안 갯벌을 람사르습지로 지정했다. 심원 사등마을 앞 바다도 람사르습지에 포함되어 있다. 옛날 자염을 생산하던 곳이 이제는 다양한 생명체를 품는 건강한 습지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곳 갯벌이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런 곳에서 전통소금인 자염을 다시 생산할 묘안은 없을까. 미네랄이 풍부하고, 천일염에 비해 짠 맛이 덜하면서 감칠맛이 나는 자염은 현대적인 의미의 고급 식재료이다. 검단선사의 훈훈한 이야기가 서려 있어 더 맛깔날 이곳의 자염이 우리 식탁에 오를 날을 기대해 본다. 손상국 프리랜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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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9.26 11:56

문화·관광·산업·경제 한 곳에…전주 심장부 거듭난다

지난 반세기 이상 전주의 심장부였던 옛 전주종합경기장 일대가 전주컨벤션센터 건립공사를 시작으로 문화와 관광, 마이스산업, AI 기반 콘텐츠 등이 한데 어우러진 전주 경제의 새로운 거점이 된다. 시는 이곳에 다양한 마이스산업 인프라와 문화시설 등을 집적화해 사람이 모이고 경제가 꿈틀거리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미래 광역도시 전주의 100년을 책임질 경제 중심지로 만들 계획이다. 컨벤션센터·호텔 등 마이스 인프라 ‘집적화’ 전주시는 강한 경제 전주의 심장부이자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전주컨벤션센터를 기반으로 MICE(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 중심도시로 도약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한 핵심 시설인 전주컨벤션센터는 1만㎡ 전시장과 2000명 이상 수용 가능한 대회의실, 22개 중소회의실 및 회의 공간, 1만㎡ 규모의 다목적 광장 등을 갖추고 오는 2028년 말 완공될 예정이다. 시는 향후 이 공간을 활용해 다양한 국제회의와 전시, 세미나 등 대형 마이스 행사를 유치해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계획이다. 전주종합경기장 부지에는 전주컨벤션센터와 더불어 호텔과 판매시설 등 다양한 마이스 지원시설이 갖춰지게 된다. 특히 호텔과 판매시설은 최신 시설로 갖출 계획이며, 인허가 절차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 앞으로 전주형 마이스산업을 뒷받침하게 된다. 한문화의 중심, 전주의 문화가 모인다! 옛 전주종합경기장 일대에는 전주컨벤션센터 등 마이스산업 인프라와 더불어 한국문화원형 콘텐츠 체험 전시관과 전주시립미술관 등 다양한 문화공간도 속속 들어설 예정이다. 최근 착공식을 하고 첫 삽을 뜬 ‘한국문화원형 콘텐츠 체험 전시관’은 옛 야구장 부지에 오는 2027년까지 국비 247억 원 등 총사업비 403억 원이 투입돼 연면적 7367㎡에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로 건립된다. 건물 지하 1층에는 △공공제작 콘텐츠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주제전시관 △국내외 우수 미디어 콘텐츠를 선보이는 기획전시실 △몰입영상관(5면)이 갖춰진다. 또, 매표소와 카페(1층), 사무공간과 콘텐츠 제작지원실(2층)이 마련될 예정이다. 시는 전시관이 개관하면 시민과 관광객에게는 매력적인 체험 공간을 제공하고, 창작자에게는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는 복합문화 플랫폼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시는 AI를 활용해 첨단 디지털 문화콘텐츠를 제작하는 ‘G-타운’과 전주시립미술관 건립사업도 내년부터 본격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러한 문화시설 집적화를 통해 시민과 마이스 관광 등 전주를 찾은 관광객들은 대한민국 대표 문화도시인 전주만의 색다른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만끽할 수 있다. 사람 모이고 경제 움직이는 전주의 심장부로! 전주 교통의 대동맥인 기린대로와 백제대로가 만나는 곳에 자리한 전주종합경기장은 오늘날에도 전주의 교통 거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 지난 1963년 시민들의 성금이 모여져 만들어진 이후 증축을 거쳐 지난 60여 년 동안 전북특별자치도를 대표하는 체육 거점으로도 자리매김해 왔다. 특히 이곳에서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문화 행사와 축제가 펼쳐져 많은 시민이 추억을 만들어왔다. 시는 앞으로 전주컨벤션센터를 비롯한 다양한 마이스 기반 시설과 관광 인프라, 문화시설들이 갖춰지면 1년 내내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람이 모이면 경제가 살아 숨 쉬고, 이는 곧 산업으로 연결된다. 시는 이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 관광 산업 발전, 시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동력으로 삼기로 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주는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인 전주한옥마을과 더불어 새로운 관광 축을 갖게 된다. 전주의 중심부에 있는 전주마이스복합단지를 찾는 발길은 덕진공원과 팔복예술공장, 한옥마을, 아중호수 등 전주 전역으로 이어지기 쉽다. 무엇보다 전주에 마이스 거점시설이 생기면서 전주시뿐 아니라 전북특별자치도의 경우에는 규모 있는 국내외 행사를 자신감 있게 유치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갖게 됐다. 우범기 전주시장 “기업과 청년 모두에게 희망과 미래의 문 활짝” 우 시장은 “60여 년 전, 십시일반 시민들의 쌈짓돈을 모아 지어진 종합경기장은 오랜 세월 전주와 전북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사랑을 듬뿍 받아왔지만, 거센 산업화와 정보화 물결 속에 자연스레 쇠락의 길에 들어섰다”면서 “이제 60년을 돌아 개발 흐름에서 밀려나 있던 전주가 이곳 종합경기장의 역사를 밑거름으로 문화관광, AI 산업 등 미래 신성장 동력의 심장부로 거듭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순간이 있기까지, 미래 가능성과 시민들의 간절함을 믿고 행정력을 모아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다”면서 “‘전주가 변해야 한다’, ‘변해야 산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신 시민들과 관계 부처, 국회의원 등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전주컨벤션센터가 완공되면 3314억 원의 생산유발효과와 2600여 개의 일자리가 생겨나 지역 내 기업과 청년 모두에게 희망과 미래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될 것”이라며 “오늘 기공식이 머지않은 미래에 전주의 경제와 환경,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바꾼 기념비적인 날로 기억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우 시장은 “전주는 앞으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전주형 MICE 생태계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전주의 심장이 더 힘차게 뛰게 될 그날까지 변함없는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 기획
  • 강정원
  • 2025.09.24 18:48

[팔팔 청춘] "할아버지, 안녕하세요!"⋯학교에 가는 할아버지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마치 손주가 할아버지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듯했지만, 알고보면 제자와 선생님 사이다. 할아버지인 듯 할아버지 아닌 이 분의 정체는 바로 '전통나눔 할아버지'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국학진흥원과 함께 오는 12월 12일까지 전국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 총 132개 교실에서 남성 어르신(만 56∼74세)이 참여하는 전통나눔 할아버지 시범사업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올해 처음 진행되는 전통나눔 할아버지는 남성 어르신이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산가지, 윷놀이, 승경도 등 전통놀이와 예절 등을 통해 유아·아동의 인성을 교육하고 전통문화를 보급하는 사업이다. 전국에서 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할아버지 44명이 최종 선발됐다. 이중 전북에서는 2명이 포함됐다. 전북일보 연중 기획 '팔팔 청춘의 인생 이야기'의 일곱 번째 주인공인 조명훈·김영원 할아버지를 만나봤다. △'에이스' 조명훈 할아버지 지난 16일 오전 10시 완주군에 있는 간중초등학교에서 만난 조명훈(57) 할아버지는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전에 "전국 전통나눔 할아버지 중 막내다. 아직 60도 안 됐는데, 할아버지라는 말이 조금 어색하다"며 멋쩍어했다. 평생 목회 활동을 해 온 조 할아버지는 도서관도 만들고, 늘봄학교를 운영하는 등 항상 어린 아이들과 함께했다. 그는 나를 드러내는 일보다는 시민단체나 사회에서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조 할아버지가 전통나눔 할아버지를 하게 된 이유다. 그는 "요즘 말하는 인생 이모작에 진입하게 됐다.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사느냐,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던 중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계시는 이야기 할머니들께서 너무 좋은 일이라고 해 주셔서 해 보고 싶었다"며 웃어 보였다. 조 할아버지의 진심이 닿았는지 아직 활동을 시작한 지 1개월밖에 안 됐지만, 벌써 에이스로 등극했다. 그는 "익산시에서 운영하는 전통놀이 관련 교육 과정도 들었다. 그러면서 전통 쪽으로 접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예절을 지킬 수 있도록 하고, 재미있게 노는 법을 알려 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조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 건 예절과 우애다. 전통놀이는 협동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리고 배려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꿈꾸는 전통나눔 할아버지는 친구 같은 할아버지다. 조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우리와 같이 놀아 주는 할아버지, 우리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할아버지, 삶이 재미있다고 느끼게 해 주는 할아버지로 기억해 주면 좋겠다"면서 "세상은 나 혼자만 사는 게 아니라 같이 협력해서 살아갈 사람이 있다고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베테랑' 김영원 할아버지 지난 19일 오전 9시 정읍시에 있는 동신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만난 김영원(69) 할아버지는 본인은 '빵원 할아버지'라고 소개했다. 이름이 영원이라서, 0원, 빵원에 빗댄 것이다. 그 소리에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자연스럽게 할아버지를 반겼다. 김 할아버지는 지난 2014년 경찰관으로 정년퇴직한 뒤 수년 전부터 전통놀이 전문 강사로 활동해 왔다. 1년 뒤인 2015년 정읍시 평생학습관에서 처음 접한 전통놀이와 사랑에 빠져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이전에 정읍전통놀이전문연구회장도 했었다. 원래 전통놀이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계속해 보니까 재미있었고, 어릴 때 했던 놀이다 보니 더 즐겁게 느껴졌다. 평소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지 않다 보니 활동적인 걸 할 수 있어서 더 마음에 들었다"고 설명했다. 어릴 적 꿈이 선생님이었던 김 할아버지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서야 꿈을 이루게 됐다. 전통나눔 할아버지를 하기 전부터 계속해서 아이들과 만나면서 전통놀이를 가르치는 베테랑 선생님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있어서 건강도 중요하지만, 창의적인 머리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단순히 놀이만이 아니라 역사·교육적으로 지혜가 발동될 수 있게끔 신체 균형뿐 아니라 좌뇌, 우뇌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놀이를 해 주고 싶다"고 했다. 김 할아버지가 기억되고 싶은 모습은 거창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 때라도 다가올 수 있는 할아버지, 진짜 친할아버지, 어디서 봐도 아는 척할 수 있는 할아버지로 남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면 언제든 행복하다. 아이들에게 뿜어져 나오는 그 에너지, 활력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며 오히려 아이들에게 고마워했다. △"청춘들아, 이렇게 살아라." '팔팔 청춘'의 마지막 질문은 모두 다 같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 인생 이모작을 앞둔 세대에게 하는 인생 조언 한마디다. 두 할아버지의 대답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인생은 준비하는 자에게 더 의미 있고, 마음먹기에 따라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먼저 조 할아버지는 "진짜 젊을 때는 자기의 목표와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거기에 다 만족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인생 후반전에 그동안 못해 본 의미 있는 일, 하고자 하는 일을 준비해서 노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그게 건강한 노후를 보내는 길이다"고 강조했다. 김 할아버지는 "행복은 손바닥 하나 차이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요즘 흔히 '금수저'를 찾던데, 모두 만능으로 갖춰지다 보면 뭔가를 모아보는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손을 쥐면 펼 줄도 알아야 한다"며 "골고루 사랑을 베풀고 나눌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그때뿐이지, 다 지나간다"고 조언했다.

  • 기획
  • 박현우
  • 2025.09.22 17:06

[뉴스와 인물] 김종범 전주푸드통합지원센터장 "수익 구조 다변화로 기관 자생력 키울 것"

전주푸드통합지원센터가 설립된 지 10년이 지났다. 센터는 그동안 농업인에게 안정적인 소득을, 시민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로 전주푸드 직매장(송천점·효천점) 운영, 학교·공공급식 공급 등의 업무를 수행해 왔다. 그러나 센터는 원대한 목표와 달리 '만성 적자' 꼬리표를 떼지 못하며 통폐합 논의까지 오갔다. 특히 업무를 총괄하는 센터장은 2년 넘도록 적임자를 찾지 못하는 등 구인난까지 겪었다. 김종범(57) 신임 전주푸드통합지원센터장은 이러한 악조건 속 센터의 방향타를 쥐게 된 인물이다. 어느덧 취임 100일이 지난 그를 만나 '전주푸드 자생'을 위한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지난 6월 전주푸드통합지원센터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지난 100일간 중점을 뒀던 업무는 무엇입니까. "제가 센터장으로 취임하며 중점 추진 업무로 내세운 것은 농가 조직화, 직매장 활성화, 조직문화 개선이었습니다. 모두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만, 우선 효천직매장 활성화에 힘을 쏟았습니다. 2022년 4월 효천직매장의 문을 열었으나 아직 홍보가 많이 되지 않은 것 같아, 효천직매장을 시민들께 알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간판, 현수막, 안내판 등을 확대 설치해 가시성을 높였습니다. 할인행사와 이동장터 등을 통해 시민들과의 접점도 넓히려 노력했습니다. 또 시민들과 소통하는 생산자·소비자 교류 프로그램, 식생활 개선 요리 프로그램 등도 확대·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효천직매장의 매출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전주푸드만이 갖는 강점이 있다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전주푸드의 강점은 소비시장이 크다는 것입니다. 전주푸드를 소비할 수 있는 도시 소비자들이 많은 거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지역 로컬푸드가 전주시 내에 진출해 있기도 하고요. 전주푸드는 이러한 경쟁을 통해 성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전주푸드 대표사업으로는 다른 지역에 비해 규모가 큰 학교급식 사업이 있습니다. 현재 학교급식은 330곳, 공공급식은 85곳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직매장 사업으로는 다른 지역 직매장과의 차별화를 위해 전주시 농산물 품질인증제 사업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전주푸드의 고질적인 문제를 꼽자면 만성 적자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계십니까. "로컬푸드 사업은 지역 농업인에게 최대 이익을 보장하고, 안전하고 신선한 농산물을 지역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수익성보다는 공익성이 큰 사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수익성 개선을 위해 직매장 매출 확대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 나가겠습니다. 센터가 정책 지원 없이 자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만성 적자를 개선하기 위해선 전주푸드 직매장(효천점·송천점) 활성화가 필수적입니다. 구상 중인 활성화 방안이 있다면. "현재 전주시 내에는 전주푸드 외에도 다른 로컬푸드 직매장이 많이 있습니다. 전주푸드 직매장의 매출을 확대하기 위해선 이들과 경쟁해야 합니다. 전주푸드만의 차별화를 도모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직매장 홍보, 마케팅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생산자 조직화뿐만 아니라 소비자 조직화도 추진해 지역 농업인과 소비자가 함께하는 로컬푸드를 만들겠습니다." 직매장 외 학교·공공급식 사업의 추진 방향은. "학교·공공급식은 연중 일정한 공급이 필요한 사업입니다. 농가 조직화를 통한 기획 생산이 필요합니다. 기획 생산에 참여하는 농가를 50%까지 높여서 안정적이고 계획적인 공급을 추진하겠습니다. 학교급식은 세대에 맞게 품목을 다양화하려 합니다. 급식 현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만족도를 높이겠습니다. 공공급식은 먹거리로부터 소외되는 곳이 없도록 대규모보다는 소규모 취약계층에 중점을 두고 공공급식 수요처를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일각에서는 전주푸드가 전주시의 지원에서 벗어나 자립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물론 자립을 해야 하지만 현재는 성장 단계에 있어 약간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지속적으로 사업을 확대해 매출을 올려나간다면 자립도 가능하리라 판단됩니다. 다만 그만큼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합니다." 자립을 위해선 수익 구조가 다양해져야 할 텐데요. 수익 구조 관련 구상이 있으십니까. "전주푸드는 현재 학교·공공급식과 직매장 매출 수익이 대부분입니다. 말씀처럼 자립을 위해선 수익 구조를 다양화해야 합니다. 전주푸드가 지금은 성장통을 앓고 있습니다. 조직 안정화와 더불어 사업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안정화된다면 수익 구조를 다양화해 자립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시대에 맞는 온라인 사업을 비롯해 배달, 도시락, 반찬, 식당, 카페 등도 계속해서 고민하겠습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전주푸드통합지원센터가 출범한지 10년이 됐습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새로운 도약을 할 때입니다.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전주푸드만의 특색 있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도시형 로컬푸드 모델을 만들겠습니다. 저희 전주푸드 직원 모두는 농업인, 시민을 연결하는 지역 먹거리 플랫폼으로 거듭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종범 전주푸드통합지원센터장은 김종범 센터장은 정읍 출신으로 정읍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왔다. 이후 원광고등학교, 한양사이버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33년간 농협에서 근무한 '농협맨'이다. 농협에선 농협은행(정읍·전주·목포), 농협생명(본부), 농협 전북본부(경영지원팀·상호금융팀·경제사업부) 등에서 일했다. 평소 조용하고 원만한 성격으로 대인 관계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도 김 센터장은 '총량의 법칙'을 믿는다고 했다. 그는 "누군가 희생해야 한다면 그게 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며 "희생에는 보답이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희생을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포부와 관련해 김 센터장은 "지역 먹거리 정책을 책임지는 센터장으로서 현장에 가까이 다가가 작은 소리도 크게 듣겠다"며 지역 농업인, 소비자와의 소통 강화를 강조했다.

  • 기획
  • 문민주
  • 2025.09.21 16:39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61)  법부래문, 법부래거문, 내각법부래거문

이번에 소개할 법부래거문 등은 1894년이후 갑오개혁과 대한제국시기 정부의 법률 관계 공문 중에서 법부가 생산하고 각부서에 보낸 공문을 모아 놓은 것이다. 법부에서 기안한 공문을 기안(起案)이라고 하는데, 본 자료는 법부와 관련 타부서 사이에 오고 간 통첩이나 지령 등을 포함하고 있다. 먼저 ‘법부래문(法部來文)’은 1894년(고종 31)~1902년(광무6) 사이에 법부가 자체내의 인사·봉급·후생 등과 기타 법률 문제를 내각(內閣) 혹은 의정부에 문의한 문건을 모은 것이다. 그 중에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문건은 1895년 7월 26일자 문건으로 법부에서 작성한 죄인방질책(罪人放秩冊) 1책을 보내어 관보에 계속하여 게재해 달라는 통첩 제349호다. 이는 갑오개혁 1주년을 맞이하여 주요 유배형에 처해진 관료들과 죄질이 낮은 죄수들을 석방하는 조처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후속 문건으로 8월 1일자 관보 중에서 석방한 죄인들의 기록에서 온양에 유배한 김덕여(金德汝)는 덕현(德鉉)의 오기(誤記)라는 문건(통첩 제366호)도 있으며, 9월 12일 임천(林川)의 비적괴수 김재홍(金在洪)은 인명을 살해한 죄로 교형(絞刑)에 처하고, 문화(文化)의 비적괴수 이동엽(李東燁)은 여러 마을의 관사(官舍)를 모조리 불사르고 민인들의 전곡을 강탈한 죄로 역시 교형에 처한다는 내용(통첩 제14호)이 실려있다. 11월 8일은 지평(砥平) 살옥(殺獄) 죄인 안치홍(安致弘)을 모살죄(謀殺罪)로 교형에 처하고, 고덕인(高德仁)은 살인하고 재물을 빼앗은 죄로 교형에 처하며, 홍소사(洪召史)는 간부(姦夫)가 자신의 남편을 죽인 것을 알면서도 고하지 않은 죄로 교형에 처한다는 내용(통첩 제46호)이다. 11월 12일에는 지난 6월 27일자 조칙에 따르면 동년 4월 1일 이전에 수감된 죄인들 중에서 모반, 살인, 절도, 강도, 통간(通奸), 편재(騙財) 등 죄를 저지른 자를 제외한 나머지 죄인들을 전원 석방하라고 하였는데, 이에 법부는 법부 도유안(徒流案) 중에서 이상의 6가지 죄를 저지르지 않은 자들은 전부 석방하였다고 하면서, 각 부(府)에 도유안에서 누락된 죄인들과 본도 감영에서 유배만 보내고 미처 보고하지 못한 자의 죄안과 유배 월일에 대해 자세히 살펴 보고하라고 훈령을 내린다고 하면서 대구부, 평양부, 남원부, 나주부로부터 보고한 내용을 관보에 게재해 달라는 내용(통첩 633호) 등을 수록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법부 문건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제4책에 수록된 동학교단의 지도자인 최시형, 황만기(黃萬己), 박윤대, 송일회 등에 대한 판결선고서이다. “최시형(강원도 원주군 거주, 평민, 72세), 황만기(경기 여주군 거주, 평민, 39세), 박윤대(충청북도 옥천군 거주, 53세), 송일회(충청북도 영동군, 33세) 등 안건을 검사 공소로 심리하였다고 하면서, 피고 최시형은 1866년(본문에서는 병인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 1861년이라는 설도 있음)에 간성 거주 필묵상 박춘서(朴春瑞)라는 자에게서 소위 동학(東學)을 받아들이고, 선도(善道)로 병을 낫게 하고 축문으로 신(神)을 내린다며 열군 각도를 돌아다니면서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라는 13자 축문과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이라는 8자(字) 강신문(降神文)과 동학 원문(原文) 제1편 포덕문(布德文), 제2편 동학론(東學論), 제3편 수덕문(修德文), 제4편 불연기연문(不然其然文)과 궁궁을을지부(弓弓乙乙之符)로 인민을 선동하고 혹하여 도당을 체결하였다,”는 판결 선고서 전문을 수록하고 있다. 당시 관헌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점은 동학의 조직으로서 교장·교수·집강·도집(都執)·대정(大正)·중정(中正) 등의 6임과 집회 조직으로서 포(包)와 장(帳)의 회소(會所)를 설치였으며, 최시형의 죄목과 처형에 대한 사유로서 최시형이 교조신원운동을 위해 계사년에 대궐 상고와 보은장내에 집회를 소집했다는 점을 들면서도 갑오년에 전봉준과 손화중이 고부에서 봉기했을 때 화응(和應)하지 않았다고 증언했지만, 정부는 그의 혹세무민 행위에 주목했다. 이 선고서를 통하여 최시형의 원주에서의 체포 경위와 함께한 이들의 행동을 소상히 알 수 있다. 결국 최시형은 ‘대명률 제사편 금지사무사술조(禁止師巫邪術條)’를 들어 교형(絞刑)에 처하고 황만기 등 위종자(爲從者)들에 대한 처벌을 선고하였다(1898년 7월 18일자 판결선고, 7월 20일(음력 6월 2일) 형 집행). 이 자료는 법부에서 고등재판소에 지령하는 건(제73호, 74호)와 비교하여 연결된 문서이다(『(법부)기안』 규 17277의 2, 32책, 참조). 다음으로 ‘법부래거문(法部來去文)’은 1895년부터 1906년까지 외부(外部)에서 외국인의 형사·민사 관계의 적용사례를 법부에 문의한 조회와 그 조복을 모은 것이다. 1895년 4월 12일자 조복에서는 옥사(獄事)는 사법의 권한과 관계되어 비밀은 비록 각의에서도 발설하지 않는 것이고 만국정부의 통례이므로 공문으로는 답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외국공사가 외부대신에게 사적으로 물어본다면 가능할 수도 있으나 공문으로 옥사를 탐색하고자 하는 것은 공법이 불허할 뿐만 아니라 법부대신의 권리와 관계되는 것이라고 거절하는 내용이다. 특히 성형일관(省刑一款)은 법부대신이 혹형(酷刑)의 도구를 불허한다는 뜻으로 대군주의 재가를 받았으니 자신의 권한내에 있으며, 아직 특별법원이 개청하지 않았으니 외국인의 회심(會審)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는 당시 이종정경(李宗正卿-이준용)의 모반사건 재판에 관한 외국의 문의에 대해 답변한 내용으로 추정된다. 그해 7월 5일자 조회의 경우, 한산군에 거주하고 있는 김선재(金善在)와 서가량(徐可良), 오응노(吳應老) 등이 원래 동학난류로서 활동하다가 무휼 귀화시키는 조령으로 면죄하였으나 이후 서학(西學)을 칭하면서 다시 작폐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공주지역의 경우 소요를 거치고 환산하여 흩어진 자가 과반이었으나 동도의 여비(餘匪)들이 서학에 다시 붙어 도당의 세를 늘리고 잔민을 구타하고 전재(錢財)를 침탈하는 현상을 비판한 것이었다. 이때 문제가 된 것은 당시 프랑스 전도사 남일량(南一良 : 본명 퀴를리에(Jean Jules Leon Curlier))에 의탁하여 서학을 칭탁하여 폐해를 일으키고 있으므로, 각국과 체결한 조약 약장에서 전도인을 보호할 뿐이므로 죄를 범한 것은 엄칙하여 금지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조회 16,18,19 등 참조). 1901년 4월 4일 <조회>에는 동비 이후 양규태(梁奎泰), 안종학(安鍾學) 등이 길정당(貞吉堂), 안병태(安炳泰) 등과 부동하여 가칭 희랍교(그리스정교회)라 하면서 전도하여 내포와 완북지역에서 십자기를 들고 동비의 여당을 모아 방포하고 향리에 도육하고, 부인을 겁탈하고 인재를 빼앗으며 인총(人塚)을 이굴하고 사채를 늑봉하는 등 지역의 사대부와 부민에게 침학하고 있다는 사태를 고발하고 있다(조회 제5호, 법부거래문, 7권). 이들은 프랑스나 러시아와 연관된 종교의 포교를 빙자하여 내지의 침탈을 일삼는다고 지적하고 있으나, 1894년 이후에도 여러 지방에서 동학의 참여자들이 서학, 영학, 희랍교 등을 활용하여 여전히 민중들의 권익보호와 세력 신장을 도모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내각법부래거문(內閣法部來去文)은 1906년이후 1909년까지 내각과 법부 사이에 오고간 지령과 조회 등 공문서를 모아놓은 자료이다. 이 중에서 1907년 7월 16일에는 법부에서 동학의 교주 최제우(崔濟愚)와 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의 제명을 없애는 효주(爻周)를 명하는 지령을 수록하고 있다(지령 제238호). 고종초기부터 혹세무민의 종교로서 탄압을 받아온 동학의 교주들이 사면됨으로써 신원과 포교의 자유를 동시에 획득하게 되어 동학 탄압의 전환을 이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렇지만 당시 관료 정치인으로서 김윤식의 특사, 안경수의 사면, 이준용의 사면 등과 함께 이루어졌으며, 조칙은 일제의 침략이 본격적으로 강화되어 준식민지로 들어가는 1907년 정미년의 국면에서 취해진 유화적인 조치였다. 따라서 일제에 항거하는 정미의병이 새롭게 재편되어 치열하게 고조되는 시점과 맞물리면서 동학 교주에 대한 사면의 정치적 의미는 반감될 수 밖에 없었다. 왕현종 연세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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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9.17 18:23

[뉴스와 인물] 호남권 최초 코스트코 부지 제공, 이성식 (유)삼학콘크리트 회장

거대한 글로벌 유통기업 코스트코가 드디어 호남 땅을 밟는다. 전 도민적 관심과 지역사회의 지속적인 노력 끝에 힘겹게 거둔 값진 결실이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관건은 단연 부지 확보였다. 당초 계획이었던 익산 왕궁물류단지 조성이 무산되면서 좌초 위기에 처하자 익산시는 3~4곳의 대체 부지를 제안했다. 하지만 부적합 통보를 받자 급기야 정상 가동 중인 익산IC 인근 삼학콘크리트 부지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수년간에 걸친 설득과 협의 끝에 계약이 마침내 성사됐다. 이는 이성식(78) (유)삼학콘트리트(범창산업) 회장의 통 큰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역 발전을 위해 지난 수십 년간 지켜 온 보금자리를 선뜻 내놓은 그를 만나 그간의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드디어 코스트코 익산점 유치가 이뤄졌습니다. 오랜 기간 사업을 영위해 온 공장 부지를 내놓는 결단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사실 많은 어려움이 예상됐습니다. 공장 운영 계획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것은 물론, 현재 수준의 공장 부지를 찾는 것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공장 운영이나 토지 가치 하락 등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지역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 우리 회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파급력을 갖고 있는 기업을 개인의 영리 때문에 거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창업주이신 선친께서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돈방석에 앉게 됐다는 식의 특혜 의혹이 일기도 했는데요. 허심탄회하게 한 말씀 주신다면. “하나의 공장 부지를 절반으로 나누는 것은 그 토지에 대한 효용가치가 축소된다고 봐야 합니다. 특히 규모가 큰 공장들은 토지 매매가격을 떠나 아예 맞는 부지가 없어 입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계약 조건에는 공장 이전이 포함돼 있는데, 이전 비용을 주는 것도 아니고 잔여 공장 부지를 매입해 주는 것도 없이 정해진 기간 내에 공장을 이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부지 매각 및 신규 이전 부지 매입에 따른 각종 세금과 공사비 등을 부담해야 하고 해당 지역주민들과 협의 등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며 정해진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도로망 등 현재의 위치 정도 되는 지역에 3만 평 이상을 확보해 이전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돼 당초 결정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밖에서 단순히 바라보는 시각은 내부에서 판단하고 있는 실상과는 너무 많은 괴리가 있습니다.” △협상이 매우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 미국계 기업 코스트코 측과의 실제 협상 과정은 어땠나요?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처음 받은 계약서는 국내 유명한 로펌에서 작성했는데 62페이지에 걸쳐 수많은 조건들이 나열돼 있었고, 그중에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조건들도 많았습니다. 협상 중이던 지난해 5월경 미국 본사 경영진들이 현지를 방문한 후 추가 조건을 제시했는데, 그중에는 우리 회사에서 할 수 없는 조건들도 있고 심지어 법적으로 불가한 조건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산시의 중재로 수차에 걸친 협의를 거쳐 천신만고 끝에 매매계약이 이뤄진 것입니다.” △계약체결이 당초 예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조건별로 한국에서 절충이 끝나면 미국 본사 최고 경영진에게 보고하는데, 보고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수정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반복적인 절차를 따라야 하는 시스템 때문입니다. 이미 별도의 주변 토지 매입이나 용역비 등 30억 원 이상이 투자된 상황에서 황당한 조건들을 추가적으로 요구해 올때마다 여러 차례 포기하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회사 때문에 무산됐다는 얘기는 절대 듣지 않겠다는 각오로 협상에 임했습니다. 익산시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뚝심 있게 뒷받침해 줘 하나씩 하나씩 난제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역 대표적 상공인으로서 코스트코 입점에 대해 어떤 생각 갖고 계신지요. “호남은 다양한 농산물이 대량으로 생산되지만 지역민들의 생활은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곤한 상태입니다. 익산에는 전국 유일의 국가식품클러스터 단지가 있고 그 인접에 코스트코가 자리하게 됐습니다. 코스트코 입점이 지역 농산물의 새로운 판로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고 지역과 더불어 상생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입점을 위한 여러 행정절차와 공사가 남아 있습니다. 전북특별자치도와 익산시의 역할도 중요한데요. “모든 계약 조건들은 기한을 두고 있고, 정해진 기한 내 이행하지 못할 경우 회사의 존립 자체까지 위협하는 조건도 있었습니다. 행정을 믿고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전북도나 익산시와의 절대적인 협력이 절실합니다. 아울러 코스트코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각종 인허가 절차가 빠르게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스트코가 입점하게 되면 현 공장 주변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코스트코 이용객은 광역권입니다. 따라서 유동인구가 늘고 관광이나 지역경제 측면에서도 긍정적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도시에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일조했다는 점, 익산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정말 큰 보람입니다.” △삼학콘크리트는 지역을 대표하는 콘크리트 전문 제조업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선친께서 1947년도에 송학동에 근거를 두고 창업하셨고, 이후 이곳으로 1983년도에 이전해 송학동에서 36년, 이곳 왕궁에서 43년 등 총 79년을 이어 오고 있는 지역 대표 향토기업입니다. 특히 동종업계 중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입니다. 제가 기업을 물려받은 지는 올해 52년째인데, 지금의 회사를 혼자의 힘으로 이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각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우리 회사에 마치 큰 특혜를 줬다는 식으로 자기들만의 생각과 판단으로 호도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협의 과정에서 회사가 수용할 수 없는 조건들을 계속 요구하고 있는 와중에 특혜까지 운운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입점이 무산될 경우 주민들의 실망감과 지역에 대한 박탈감이 큰 압박으로 다가왔습니다. 뭐하나 하려면 의심부터 하거나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풍토는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이성식 회장은 이리농림고등학교와 전북대학교 농과대학 수의학과를 졸업한 이성식 회장은 지난 50여 년 동안 콘크리트 전문 제조업체인 삼학콘크리트를 이끌어 왔다. 환경, 안전, 건강과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으로 최고의 제품 및 기술 경쟁력을 확보했으며, 자율안전보건시스템을 통해 무재해 사업장을 구현하고 경영 이익 확대를 통한 지역 고용창출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그동안 한국시멘트공업 협동조합 감사, 전북시멘트공업 협동조합 이사장, 익산상공회의소 부회장, 민주평통자문위원, 법무부 익산지구 보호관찰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유)삼학콘크리트와 (유)범창산업의 회장을 맡고 있다. 대담=엄철호 기자/정리=송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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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철호외(1)
  • 2025.09.14 14:21

[트민기] “결혼식 티켓 팝니다!”⋯스드메 흔드는 ‘새로운 결혼식’

유행은 돌고 돈다. 빨라도 너무 빨리 돈다. 괜히 아는 척한다고 "요즘 유행인데 몰랐어?" 이야기했다가 유행이 끝나 창피당하는 일도 다반사다.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들, 트민기가 떴으니 이제 걱정 없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에도 SNS,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많은 유행이 올라오고 트렌드가 진화한다. 트민기는 빠르게 흐름을 포착해 독자에게 전달하는 게 목표다. “이것은 평범한 결혼 파티지만 표 구매한 분들 모두 오실 수 있습니다.” 공연 예매 사이트에 실제 결혼식 관람 표가 올라와 화제다. ‘Untitled: wedding$’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된 결혼식은 오는 27일 서울 세빛섬 가빛에서 열린다. 표를 구매하면 하객은 DJ파티, 보드게임, 술자리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눈길을 끄는 건 ‘없는 것들’이다. 이 결혼식은 주례도, 축가도, 청첩장도, 축의금도 없다. 결혼 사진, 드레스, 메이크업으로 대표되는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3종 세트도 빠졌다. 결혼식 최대 난제로 꼽히는 ‘하객룩’ 조차 자유다. 다만 “새로운 사랑을 원한다면 컬러 의상을, 아니라면 흑백을 입어달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 호기심을 자극했다. 처음엔 결혼 콘셉트 공연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결혼식’이라는 개념이 생소했기 때문이다. 안내문도 나폴리탄 괴담 형식을 택해 일부러 혼란스럽게 꾸며 공연설을 키웠다. 뮤지컬 관람이 취미인 김하늘(25) 씨는 “공연 중에서 관객이 배우처럼 직접 참가할 수 있는 개념의 ‘인터랙티브 공연’이라는 게 있다”며 “한국에서는 카지노 참가자 콘셉트의 공연도 있었기 때문에 이번 결혼 파티도 그런 종류의 공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진짜 결혼식이라 충격”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 결혼 파티는 공연이 아닌 실제 커플이 기획한 결혼식이다. 결혼식 당사자로 알려진 조명환(가명) 씨는 SNS에 “연극, 사회실험, 방송이 아니라 결혼 파티 맞다”라며 “청첩장 대신 포스터를, 축의금 대신 표를, 정장 대신에 난장을, 낮 대신 밤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존에 다들 생각하던 결혼식이 아니지만 그래도 결혼식이다. 무료하고 지친 삶에 하나의 즐거움이 되길 기원한다”고 전했다. 표는 5~15만 원으로 다양하다. 저가권은 일찌감치 매진됐고 11일 기준 15만 원권만 남은 상태다. 이번 결혼 파티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형태지만, 해외에서는 새로운 웨딩 트렌드로 자리 잡는 중이다. 올해 초 프랑스 기업 ‘인비틴’은 커플과 유료 하객을 연결해 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초대장을 유로로 판매해 결혼식 비용에 보태고, 구매자는 결혼 당사자·하객들과 어울려 새로운 문화를 즐기는 방식이다. 그 때문에 서비스를 선택하는 하객 대부분은 타국의 결혼 문화를 접하고 싶은 관광객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엄격한 복장 규정이 정해져 있고 기업에서 진행하는 유료 서비스라는 점이 이번 한국에서 진행되는 결혼 파티와는 다르다. 누리꾼들은 다가오는 결혼 파티에 대한 기대감을 쏟아내고 있다. 예매 사이트에는 “와 매진. 나 빼고 다들 재밌게 살아. 결혼 축하드려요!”, “제발 표 풀어주세요. 정말 잘 축복할 자신 있습니다”, “신랑·신부 결혼 축하합니다. 만수무강 무병장수 행복하세요” 등 기대평이 올라오며 새로운 시도를 반기는 모습이다.

  • 기획
  • 문채연
  • 2025.09.13 10:30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60) 양호초토등록, 고종과 홍계훈 문답문서

이번에 소개하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동학농민군 진압에 나선 홍계훈 관련 기록물로써, 『양호초토등록(兩湖招討謄錄)』과 『고종과 홍계훈문답문서』 두 자료이다. 특히 이 두 기록물은 1차 동학농민혁명의 실상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만큼 흥미롭다. 홍계훈(洪啓薰, 1842-1895)은 초명이 홍재희(洪在羲)로, 1842년에 무관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무예청 별감으로 관직을 시작한 그는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민비를 등에 업고 궁궐에서 탈출시킨 공으로 중용되었다. 1893년 동학교도들이 충북 보은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을 때, 장위영 정령관으로 임명되어 경군 600명을 이끌고 청주로 출동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홍계훈은 당시 민씨정권의 측근 무관으로 활동하였는데, 그 때문에 동학농민혁명기에도 홍계훈의 역할이 컸다. 동학농민군이 파죽지세로 전라지역을 장악하자 위기를 느낀 민씨정권은 홍계훈을 1894년 4월 2일 양호초토사로 임명하여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도록 하였다. 『양호초토등록』과 『고종과 홍계훈문답문서』은 그 과정에서 생산된 기록물이다. △『양호초토등록(兩湖招討謄錄)』 이 기록물은 양호초토사 홍계훈이 장위영군(壯衛營軍)과 강화영군(江華營軍) 등 경군(京軍)을 인솔하고 서울을 출발한 4월 초 3일부터 전주성을 수복한 직후인 5월 16일까지의 관련 사실을 일기체로 수록한 것이다. 이 자료에는 1894년 3월 20일에 동학농민군이 무장에서 기포하여 전주성을 향해서 진군하기 시작하자, 중앙정부가 홍계훈을 양호초토사로 임명하여 동학농민군을 토벌하도록 남하시켰을 때의 초토 활동 기록을 담고 있다. 또한 일록(日錄) 뿐만 아니라 양호초토사가 승정원 등 중앙정부에 보고한 장계와 전라관찰사에게 보낸 이문(移文), 각군에 보낸 감결(甘結), 산하 군대에게 보낸 전령(傳令), 도민에게 포고한 방문(榜文), 동학농민군의 귀순을 권고한 효유문 등이 정확한 날짜와 함께 원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 기록물은 비록 양호초토사 자신의 자기 변명이 충만되어 있으나, 그 내용에는 풍부한 사실을 담고 있어 사료비판을 하면서 활용하면 제1차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정부의 대책과 진압군의 초토 활동에 대한 여러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자료는 1894년 4월 3일부터 5월 28일까지 초토사 홍계훈과 각처 사이에 주고받은 전보를 날짜 순서로 수록한 『양호전기(兩湖電記)』와 함께 교차 분석할 경우, 당시 정부의 진압책과 동학농민혁명 전개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고종과 홍계훈문답문서』 이 기록물은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파견된 초토사 홍계훈과 고종이 문답한 문서로, 폭 23cm, 길이 292cm이다. 이를 통해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두 사람의 시국인식과 대처방안 등을 알 수 있다. 작성자와 작성시기는 불명이다.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4월 3일 서울에서 출정한 양호초토사 홍계훈은 동학농민군이 4월 27일 점령한 전주성에서 5월 8일 철수하자, 전주성내로 들어간 뒤 동학농민군이 해산한 것으로 중앙 각처에 보고하였다. 이를 접수한 정부에서는 청·일 양국 군대를 철수시키는 일이 급선무인 만큼 동학농민군이 해산하였으니 조선에서 철수할 것을 요청함은 물론 홍계훈으로 하여금 서울로 귀경하도록 5월 16일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홍계훈은 5월 16일 전주를 출발하여 공주를 거쳐 5월 26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이에 친군 장위영(親軍壯衛營)에서는 ‘본영의 정령관(正領官) 홍계훈이 거느리고 호남에 가서 주둔하고 있던 장수와 군사들이 오늘 올라왔습니다.’라고 고종에게 아뢰었다. 그러자 고종은 당일 초토사 홍계훈을 보현당으로 불러 궁금하였던 점을 홍계훈에게 직접 묻고 홍계훈이 답하였는데, 『홍계훈과 고종문답문서』는 바로 두 사람의 문답내용을 필사한 문서이다. 두 사람이 나눈 문답은 대략 11번 정도였다. 먼저 고종은 홍계훈이 동학농민군을 진압한 것을 치하한 뒤 궁금한 사항을 질문하는 형식으로 문답이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 몇 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고종은 호남으로 내려간 청군병을 어디서 만났는지 홍계훈에게 물었다. 홍계훈은 능지점에서 청국군 정탐병을 만나, 동학농민군이 해산한 전말을 상세히 말해주고 갈 필요가 없다고 하자 그 역시 돌아갈 것이라고 답했다고 하였다. 고종이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홍계훈에게 청국군 동정을 물은 것은 그만큼 청일 양국군을 철수시키는 일이 초미의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심영병 가운데 병에 걸리고 부상한 병사가 없는지 물어본 뒤, 군사 훈련도 받지 않은 병정들이 큰 공을 세웠다고 하자, 홍계훈은 ‘우리 군은 불과 2000∼3000명임에도 물러남이 없이 저들 수만명을 무찔렀다’고 답하였다. 또 고종은 동학농민군이 불랑기(佛郞機) 대포를 어느 곳에서 얻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홍계훈은 수십년전 강화에서 분실한 것으로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에서 반납한 뒤 귀화하였다고 답하였다. 실제 동학농민군은 5월 8일 전주성에서 철수하면서, 극로백 1좌, 회선포 1좌, 총과 창 1000자루, 불랑기 대포 24좌와 연환 10두 등을 반납하고 성문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고종은 다시 지금 비류가 모두 흩어졌느냐고 물었다. 홍계훈은 태인에 70여 명이 모여 있으나, 그들의 진정에 따라 전주성내로 피신한 태인군수로 하여금 조속히 환관하여 각별히 안정시키도록 하였다고 답하였다. 또 고종이 호남 각읍이 난리를 겪은 뒤 주민들이 실업하고 이산한 자가 많다고 하는데 어떻게 안집시킬 것인지 물었다. 이에 대해 홍계훈은 감영에서 군사를 모으는 것을 금지시켰을 뿐 아니라, 금구·태인·부안·정읍·흥덕·영광·장성·함평 등지의 수령은 각별히 임명해야 후환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또 고종은 청국병이 호남을 향해 갔기 때문에 심영병(沁營兵)이 머물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묻자, 홍계훈은 청국병이 내려온다는 소문에 백성들이 도피한다고 하면서 청국군보다 심영병이 머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답하였다. 실제 5월 19일 홍계훈이 이끄는 장위영군대는 상경하였지만, 심영병은 청주병영군과 함께 계속 전주에 머물렀다. 이처럼 홍계훈은 고종에게 동학농민군이 해산한 것으로 보고하였지만, 동학농민군 주력부대는 전주성에서 철수해서 각지로 흩어져 순행하면서 계속 활동하였다. 실제 홍계훈은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데 큰 공이 없을 뿐 아니라, 청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도록 보고하여 청일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었지만, 동학농민군 진압 공이 인정되어 훈련대 연대장으로 승진하였다. 그러나 훈련대 연대장으로의 승진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1895년 음력 8월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사건 때 훈련대장으로서 광화문을 수비하다 일본군의 총탄에 맞아 죽었다. 그 공으로 군부대신에 추증되었고 충의(忠毅)라는 시호도 받았다. 1898년 해월 최시형의 죽음에 이어 동학교단의 핵심인물이었던 서장옥·손천민 등이 사형을 당한 1900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현충시설인 장충단에 제향되었다. 김양식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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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9.10 20:00

[전북일보-전북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공동기획] 현실화된 전북 기후불평등...취약계층 지원 구멍 조례로 막는다

기후변화로 재난이 발생한다면 가장 위험한 계절은 여름이다. 대기의 에너지와 수증기가 급증하면서 가뭄과 폭우 등의 피해가 집중되기 때문이다. 올 여름에도 극한 호우와 역대급 폭염, 가뭄 등 상반된 이상기후 현상이 동시에 나타났다. 기후학자들은 이 같은 기후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문제는 이상기후가 심해질수록 피해도 커진다는 점이다. 더욱이 기후위기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기후 양극화로 입는 피해는 저소득층부터 덮친다. 폭염과 폭우, 가뭄과 폭설 등으로 물가가 치솟으면 누군가는 물건 사는 것을 포기하고, 반찬 가짓수를 줄여야 한다. 이상기후로 인한 기후재난은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더욱 가혹할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를 직면한 시대, 전북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폭염 속 하루, 고단한 여름나기 “아이고. 젊은 사람들 돌아다니면 막 열이 나 갖고는 병나겠어, 조심혀” 지난 7월, 전주시 인후동에 거주하는 어르신 A씨(78)는 선풍기 앞에서 간신히 더위를 피하며 이렇게 말했다. 방 안에는 선풍기 한 대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하루 종일 달궈진 무더운 공기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많이 덥긴 더워진 것이, 옛날에는 더워도 그냥 뭐 선풍기 좀 세고 부채질 좀 하고 그러면 그냥 살만했는데 요즘에는 너무 더우니까 부채질해도 그렇고…” 어르신은 더위에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방 한쪽 구석에 에어컨이 놓여 있었지만, 나중에 전기요금 고지서에 찍힐 금액이 무서워 리모컨에 손이 쉽사리 가지 않는다. 더위를 피해 집 바깥으로 나가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어르신은 “요즘 너무 더우니까 집에서만 있지, 밖에는 못 나가. 나가는 사람들 열병 나고, 더워서 몸살 나고 그런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후 위기 직면한 우리나라, 전북도 ‘휘청’ 지난해에는 입추가 훌쩍 지난 9월까지 불볕더위가 이어졌다. 평균 기온 24.7℃, 최고 기온29.6℃, 최저 기온 20.9℃로 모두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기상청 관측 결과, 이례적으로 많은 폭염 일수(6일)와 열대야 일수(4.3일)가 나타났다. 지난해 전국 주요 기상관측 지점 66곳 중 7곳에서 9월 첫 폭염이 발생했는데, 전북에서는 장수군이 포함됐다. 임실군은 9월첫 열대야 지역 4곳 중 한 곳으로 꼽혔다. 전북특별자치도소방본부에 따르면 올해 8월 4일 기준 온열질환 의심 증상으로 119구급대가 출동한 건수는 237건으로 집계됐다. 7월 말까지 도내 온열질환 구급 출동 건수도 22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3건)에 비해 2.3배 넘게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가정이나 일터에서 온열질환을 겪을 때 119구급대를 호출하지 않는 것까지 포함하면 도내 온열질환자는 더욱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공개하는 ‘국민 안전관리 일일상황보고’를 보면 올해 전북 지역은 최근까지도 폭염주의보가 발효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전북은 더 이상 기후 위기를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지역이 됐다. △취약계층에 더 가혹한 폭염 최근 기후 위기가 심화하면서 ‘기후 위기 취약계층’이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기후위기 취약계층은 폭염을 비롯한 한파, 호우 등 재난에 피해를 볼 우려가 큰 집단을 의미한다. ‘기후 위기 적응 및 국민안전 강화에 관한 특별법률(안)’에서는 노인, 아동, 저소득계층, 야외 노동자, 농어업 종사자, 취약 시설‧지역 거주자 등을 포함한다. 소득이 낮아 냉‧난방기를 마음껏 쓰지 못하거나, 업무상의 이유로 장시간 더위와 추위에 노출되고, 태풍으로 인해 한 해 농사를 망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기후 위기 취약계층에 포함되는 것이다. 한국환경연구원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KACCC)는 지난해 기후위기 취약계층 약 2400명을 대상으로 기후위기 취약계층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에너지·물품 지원에 대한 개인 복지와 무더위쉼터, 주거환경 개선에 대한 정책수요가 조사됐다. 특히 에너지 지원에 대한 수요로는 에너지 바우처가 가장 높은 수요를 보였고, 물품 지원에는 에어컨을 가장 원했다. 최근까지 발생한 폭염으로 인한 피해로는 의료비용 발생이나 직장 소득과 연계된 경제적 요인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회적 고립이나 폭염 관련 정보를 받지 못하는 것, 온열질환 진단 경험 순으로 피해 결과를 겪었다고 응답했다. 이번 조사는 폭염이나 한파, 폭우 등 기후 위험 요인과 맞닿아 있는 지역에 거주함과 동시에 경제적 취약성(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주거환경적 취약성(쪽방 등 주택 외 거주자, 반지하 거주자, 에어컨 미보유 가구 등) 중 1개 이상에 해당하는 자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전북, 기후 위기 취약계층 보호에 전력투구 길어진 무더위로 위협받는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더위에 지친 어르신들의 한숨은 폭염이 남긴 사회적 숙제다. 이러한 상황에 전북도는 취약계층이 무더위나 한파 등에 대응할 수 있도록 쉼터 운영 등 보호 정책에 나서고 있다. 지난 7월30일 전북도의회 420회 임시회에서는 ‘전북특별자치도 기후불평등 해소에 관한 기본 조례’도 제정됐다. 이번 조례는 기후위기로 발생하는 직업, 계층, 지역 간 불평등과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조례를 발의한 서난이 전북도의원은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재난을 맞이한 이 시기의 진정한 피해자인 취약계층들을 위해 조례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이번 조례를 통해 전북도는 도민 안전 보험 안에 기후보험을 도입하는 방향도 논의하고 있다. 기후보험은 올해 4월 경기도가 물꼬를 튼 사업으로, 이상기후로 인한 질환과 각종 피해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모든 도민은 자동 가입되고, 특히 기후 취약계층은 추가로 지원한다. 그러나 그동안 시행한 기후위기 관련 법이나 조례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장진호 전북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단순 시설 설치나 일회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행 점검을 비롯한 맞춤형 보완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이예령·강채연·추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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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은
  • 2025.09.08 18:35

[트민기] "승진하면 퇴사할래요"⋯2030세대의 '승진 거부'

유행은 돌고 돈다. 빨라도 너무 빨리 돈다. 괜히 아는 척한다고 "요즘 유행인데 몰랐어?" 이야기했다가 유행이 끝나 창피당하는 일도 다반사다.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들, 트민기가 떴으니 이제 걱정 없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에도 SNS,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많은 유행이 올라오고 트렌드가 진화한다. 트민기는 빠르게 흐름을 포착해 독자에게 전달하는 게 목표다. 그동안 성공의 지표로 여겨진 승진과 리더가 기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 직장에서 리더가 되기를 회피하는 '리더 포비아'라는 현상도 자주 언급될 정도다. 지난해 글로벌 컨설팅 기업 로버트 월터스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Z세대(1997∼2012년 출생자)의 절반 이상(52%)이 중간관리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응답자 72%는 팀을 이끄는 것보다 개인적인 성장과 기술 축적에 시간 쓰는 것을 선호하다고 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Z세대 트렌드 전문 연구기관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지난 5월 발표한 '20·30 직장인의 리더 인식 기획조사 2025'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절반(47.6%)이 리더를 맡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불안하다(22.1%)는 응답보다 2배 이상 높았다. 2030세대는 리더 직급을 맡지 않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의미다. 또 중간 관리직을 맡고 싶다는 36.7%, 맡고 싶지 않다는 32.5%로 팽팽했다. 기피하는 이유로는 팀·조직 성과 책임 부담(42.8%)이 가장 높고 업무량 증가(41.6%), 개인 성향에 맞지 않아서(33.7%) 등이 뒤를 이었다. 최근 들어 '리더포비아'가 주목받고 있지만 이미 수년 전부터 계속된 현상이다. 취업 포털 사람인이 지난 2019년 2030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최종 승진 목표를 묻는 말에 직급 승진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응답이 41.7%에 달했다. X(구 트위터)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관련 경험담이 올라왔다. 지난 2023년 X의 한 이용자는 “최근 힘든 일 다 맡아서 하던 선배가 퇴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내가 봐도 일이 너무 쏠린다 싶은 정도였는데 결국 힘들어서 퇴사하는 것 같더라”는 내용의 글을 작성했다. 그는 “내가 평소에 느낀 직장 생활은 열심히 하면 일이 더 쏠리는 것. 그렇게 승진해서 중역에 이르면 그때부터 시간을 더욱 갉아먹게 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부터 존재했던 리더 포비아 현상이 최근 들어 더 두드러지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근무환경과 가치관 변화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 이후 유연근무제와 원격근무가 일상화되면서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약해졌고 빠른 승진보다 개인 성장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확산됐다는 것이다. 루시 비셋 로버트 월터스 이사는 하버스 바자와의 인터뷰에서 “Z세대는 더 나은 일과 삶의 균형과 자율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더욱 개인적인 경력을 선호한다”며 “시간이 흐르면서 관리직은 스트레스가 많고 부담이 크다는 평가가 쌓였고 이에 따라 Z세대는 중간 관리직을 맡기 꺼리게 됐다”고 말했다. 관리자가 되면 팀원 업무를 감독하는 등 추가적인 부담이 생기고 동시에 본인이 좋아하는 업무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는 설명이다. 일부 젊은 직원들이 부실한 경영에 시달린 경험이 리더포비아 현상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는 올해 초 발표한 ‘리더 포비아 시대를 극복하는 진성리더의 급진거북이 전략’에서 “경기가 안 좋음에도 위에서는 여전히 높은 성과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을 독려할 뿐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때 직원에게 과도한 불이익을 부과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리더십 패러다임을 고민하기보다 현실성 없는 리더십을 강요하고 있다. 새로운 리더십 패러다임의 부재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리더(십) 포비아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 기획
  • 문채연
  • 2025.09.06 09:34

[트민기] 나왔다하면 '품절 대란'⋯다이소로 보는 가성비 전쟁

유행은 돌고 돈다. 빨라도 너무 빨리 돈다. 괜히 아는 척한다고 "요즘 유행인데 몰랐어?" 이야기했다가 유행이 끝나 창피당하는 일도 다반사다.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들, 트민기가 떴으니 이제 걱정 없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에도 SNS,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많은 유행이 올라오고 트렌드가 진화한다. 트민기는 빠르게 흐름을 포착해 독자에게 전달하는 게 목표다. 생활용품부터 화장품, 영양제까지⋯. 다이소가 내놓는 5000원 이하 제품이 매번 ‘완판 행렬’을 이어가며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최근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청년층부터 고령층까지 모두 얇아진 지갑 사정 탓에 ‘가성비 쇼핑’이 하나의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실제 다이소는 2013년 영업이익률이 1%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9%대로 급등했다. 생활 잡화 위주의 저가 점포라는 이미지를 벗어나 화장품·영양제·캠핑용품 등으로 상품군을 확장한 결과다. 대표적으로 2000원대 립밤이나 3000원대 쿠션팩트 같은 화장품은 출시와 동시에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품절템’으로 떠올랐다. 최근 선보인 5000원 미만 영양제는 “약국보다 싸다”는 반응 속에 ‘알뜰 건강템’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오픈런’ 현상이다. 화장품이나 생활용 전자기기 등 한정 수량으로 공급되는 제품은 판매 당일 품절되는 사례가 잦아졌다.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에도 “다이소 ○○템 구해요”라는 글이 줄을 잇는다. 정가보다 비싼 웃돈 거래가 붙기도 하면서 다이소 리셀 시장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다이소가 시작한 가성비 열풍은 다른 유통업계로 확산하고 있다. 대형마트인 이마트는 초저가 전용 라인 5K 프라이스를 내세워 생활 필수품을 5000원 이하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라면, 세제, 휴지 등 생필품부터 일부 화장품까지 포함되면서 소비자 선택지를 넓혔다. 편의점 업계 역시 1000~2000원 대 자체 브랜드(PB) 음료와 간식을 늘리며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CU는 개당 480원에 불과한 ‘득템라면’을, GS25는 개당 1000원인 ‘혜자백미밥’을 발매하는 등 최저가 경쟁에 돌입한 모습이다. 다이소는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가성비 플랫폼으로 변모하며 유통 시장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품절 대란이 일상이 된 다이소 발 가성비 전쟁은 이제 대형 유통사와 편의점까지 끌어들이며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 기획
  • 문채연
  • 2025.08.30 10:56

[우리 땅에 새겨있는 역사의 흔적] 조선 태조어진

경기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태조어진은 지난 2012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었다. 태조어진이 국보로 승격되자 전주시민은 환호했지만 한편에선 이 초상화가 과연 국보로서 가치가 있을까하는 의문도 있었다. 그것은 이 어진이 경기전에 1410년 처음 봉안되었던 초상화가 아니라 1872년에 이모되어 그 역사가 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태조어진의 국보 지정 이유 서양의 초상화가 감상용으로 제작되었다면 우리의 초상화는 대부분 의례용으로 제작되었다. 경모하고 숭배하는 대상으로서 일단 그림이 완성된 후에는 보는 것이 아니라 모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당이나 영당의 감실에 족자형태로 걸어놓아 영정(影幀)이라 불렀다. 이 영정이 오래 되어 석채물감의 박락이 이루어지거나 비단이 해지게 되면 이모를 하게 된다. 원본과 똑같이 그려 다시 봉안하고, 원본은 세초하여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운다. 이러한 관습 때문에 오래된 초상화의 원본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조선 태조어진. /출처-「왕의 초상」도록 1410년 경기전에 처음 봉안되었던 태조어진도 1763년에 한차례 수리된 후, 1872년 서울 영희전본 태조어진을 범본으로 이모하여 경기전에 다시 봉안했다. 그렇다면 이 이모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원본이 아니기에 모조품이라 해야 할까. 그런데 이 이모본은 범본의 도상을 충실히 반영한 초상이었다. 이모에 동원된 화원들이 조선 최고의 실력을 갖춘 화사들이었고, 조선 초상화의 전통에 일호불사 편시타인(一毫不似 便是他人)의 정신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었다. ‘털 한 올이라도 같지 않으면 곧 다른 사람이다’는 초상화 제작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어진이모도감을 설치해 조정대신들의 감수를 받으며 어진을 이모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범본의 초상이 충실히 구현되었다. 이를 입증해주는 증거가 어진의 오른쪽 눈썹 위에 보이는 물사마귀이다. 보기 싫은 사마귀마저 그대로 수용해 범본 그대로의 얼굴을 그렸다. 이를 통해 경기전의 태조어진이 이모는 했지만 태조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충실하게 재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제반 상황을 고려할 때 경기전의 태조어진은 이모본이긴 하지만 처음 봉안되었던 어진과 진배없는 작품이다. 태조어진을 국보로 승격한 데에는 이러한 작품성과 역사성, 그리고 조선의 왕을 그린 어진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희소성도 작용했다. △그 많던 조선왕들의 초상은 다 어디로 갔을까 조선의 왕들은 태조로부터 27대 순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어진을 그렸다. 태조의 경우만 하더라도 기록상으로 26축의 초상화가 그려졌다. 이렇게 많은 조선왕의 초상화를 그렸지만 현재 남아있는 어진은 경기전에 소장되어 있는 태조의 전신상 한 점과 고궁박물관 소장 영조의 반신상 한 점, 그리고 초상의 절반이 불에 탄 철종의 전신상 한 점뿐이다. 고종과 순종의 초상도 남아 있지만 이 초상화는 진전 봉안용 어진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많던 조선왕들의 초상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영흥 준원전의 태조어진(1913년 촬영). 경기전 어진이 노년의 모습인데 비해 중년의 모습이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조선에서는 세종 26년(1444) 경복궁 안에 선원전을 건립해 태조와 태종, 그리고 왕후의 초상을 봉안했다. 이후 역대 왕과 왕후의 초상들이 이곳에 봉안되었다. 그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어진의 수난이 시작되었다.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해 파죽지세로 북진해오자 선조는 궁궐을 버리고 몽진 길에 올랐다. 이때 선조는 겨우 종묘의 신주만을 챙겨 자신의 몸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왜군에 점령된 서울은 경복궁과 창경궁, 창덕궁이 불에 탔다. 경복궁 선원전에 봉안되어 있던 태조로부터 명종까지의 어진도 재가 되었다. 다행인 것은 외방에 태조 진전을 세워둔 것이었다. 태조의 고향인 함경도 영흥의 준원전을 비롯해 경주의 집경전과 평양의 영숭전, 그리고 전주 경기전과 개성의 목청전이다. 외방에 있던 다섯 곳의 진전 중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경기전과 준원전의 태조 어진이 보전되었다. 이 밖에 세조의 어진 한 점이 임진왜란의 전란을 피해 온전할 수 있었다. 세조가 묻힌 광릉의 능침사찰인 남양주 봉선사의 진전에 세조의 어진이 별도로 봉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임진왜란으로 태조와 세조를 제외한 조선 전반기 왕들의 어진이 모두 사라졌다. 조선후기 창덕궁에 다시 선원전을 건립해서 숙종․영조·정조·순조·헌종의 어진을 차례로 봉안했다. 궁궐 밖 남산 아래에 영희전을 건립해 이곳에도 어진을 이모해 봉안했다. 조선이 망한 후, 1921년 이왕직에서 창덕궁 내에 신선원전을 12실로 건립해 남아있던 역대 왕들의 어진을 한데 모아 봉안하고 향사를 지속했다. △전쟁보다 무서운 화마 창덕궁 신선원전에는 추존왕을 제외하고 조선의 27대 임금 중 10조의 어진이 봉안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이 어진들에 다시 시련의 날이 왔다. 6.25전쟁이었다. 어진은 창덕궁 신선원전에서 부산국악원의 창고건물에 보관되었다. 그런데 1954년 12월 10일 새벽, 어진이 보관된 용두산 일대의 피난민촌에 화재가 발생했다. 때마침 불어온 강풍으로 불길은 판자촌을 전소시키고 순식간에 어진이 보관된 창고로 번졌다. 이 화재로 영조의 반신상 한 점, 초상의 절반이 불에 탄 철종을 비롯한 추존왕인 익종․원종의 어진, 연잉군의 초상 한 점 등 겨우 5점만이 살아남았다. 경기전의 태조어진은 부산화재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부산국악원 창고로 옮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어진들은 모두 부산으로 옮겼는데 어떻게 해서 경기전의 태조어진은 그러지 않았던 걸까. 1907년 7월 23일 순종은 제사제도 개정에 대한 칙령을 반포했다. 이 칙령은 왕실과 국가의 제사를 간소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어진도 포함되었다. 어진에 대한 제례를 줄이기 위해 외방에 있는 어진 모두를 선원전으로 이안하도록 규정했다. 궁궐 밖에 봉안된 어진 중에서 경기전과 준원전의 태조어진만이 이 칙령의 적용을 받지 않았다. 만약 이러한 예외를 두지 않았더라면 경기전의 태조어진도 다른 왕들의 어진처럼 부산화재 때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호남사람들이 지켜낸 태조어진 태조어진이 오늘날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부산화재와 같은 재난을 피해갔던 행운도 있었지만 호남사람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기전이 창건되었을 때부터 전주사람들은 어진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경기전 인근에 있던 향교에서 나는 아이들 글 읽는 소리와 회초리 맞는 소리가 성령의 휴식을 방해한다하여 향교를 화산으로 옮겼을 정도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감사 이광과 경기전 참봉 오희길이 태인의 선비 안의와 손홍록의 도움으로 경기전에 있던 태조어진과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을 내장산 깊은 곳으로 옮겼다. 이때 안의와 손홍록은 사재를 털어 조선왕조실록과 태조어진을 옮겼을 뿐 아니라 370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그 곁을 지키며 끝까지 안전하게 지켜냈다. 이처럼 경기전의 태조어진은 조선왕조의 본향에 봉안되어 임진왜란과 6.25전쟁 등 온갖 전란과 어려움을 극복해냈다. 그 과정 속에서 호남사람들이 조선왕실의 본향이라는 자부심으로 어진을 지켜낸 이야기는 초상화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여기에 어진이 봉안되었던 본래의 자리에 안치되어 있어 유산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있어야 그 가치를 제대로 발하는 법이다. 손상국 프리랜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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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8.28 18:07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59) 전령(傳令)과 완문(完文)

이번에 소개할 세계기록유산 등재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전령(傳令) 3건과 완문(完文) 2건이다. 전령(傳令)은 국왕 및 상급기관이 하급기관의 관리에게 또는 지방관이 백성에게 명령을 하달하는 문서이다. 하달하는 내용은 상부의 명령, 군직과 관직의 임명, 행정적인 고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전령이 향촌에서 사용될 경우, 지방관이 실무적인 명령이나 처분 그리고 백성들에게 알려야 할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백성들을 대상으로 경계해야 할 등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한글로 번역하여 전달하기도 한다. 수신자는 군문의 하부관원과 지방의 향촌 실무담당자인 풍헌(風憲), 존동(尊洞), 두민(頭民), 약정(約定), 면임(面任), 동임(洞任), 양반, 천인까지 다양한 계층을 포괄한다. 완문(完文)은 조선시대 관립기관이 향교, 서원, 결사(結社), 촌민(村民), 개인 등에게 어떠한 사실을 확인하거나 특전을 인정해 주기 위해 발급한 공문서이다. 완문의 발급자는 대부분 수령이지만 중앙의 상급관청에서부터 지방의 말단하급 관청 및 궁방, 서원, 문중과 같은 결사체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존재하였다. 1894년 4월 4일 전령.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1894년 4월 4일 전령(傳令) 이 전령은 상주목사가 풍헌(風憲)과 각 리의 존동(尊洞), 두민(頭民)에게 1894년 4월 4일 보낸 것이다. 이 시기는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이 무장에서 기포하고 백산에서 대회를 개최하여 대규모 봉기를 한 직후이다. 이에 조선정부는 홍계훈을 양호초토사로 임명하고 전라도로 보내 중앙 정부 차원에서 진압을 진행하고, 의정부에서는 동비(東匪)의 철저한 토벌을 삼남의 수령들에게 지시하였다. 전령의 내용에 따르면 “이 전령이 도착하는 즉시 각 면과 리에 신칙(申飭)해서 엄히 단속하고 각별히 탐문하여 만약 적발된 자가 있으면 군교(軍校)와 포졸(捕卒)을 많이 보내어 뒤쫓아 체포하고, 만약 저쪽의 머릿수가 많아 대적할 수 없으면 이웃 읍진(邑鎭)에 알려 관아의 포졸과 마을의 장정과 힘을 합쳐 남김없이 잡아들이기를 기약하되, 우두머리는 즉시 죽여 없애고 따르는 자는 낱낱이 엄하게 가두어야 한다.”라고 하여 동학농민군을 체포하고 우두머리는 즉시 죽여 없애라고 하는 등 동학농민군 토벌의 기준과 방향을 모든 백성들에게 전달하였다. 이에 수령들은 산하 행정구역 책임자들에게 동비(東匪)를 찾아내 잡아 올리고 오가작통(五家作統)을 실시하라고 지시하였다. 이 전령 말미에 “본면의 각 리는 다섯 집을 통(統)으로 만들고 통수(統首) 1명씩을 두되, 만약 동학의 무리들이 소란을 피우는 일이 있으면 모두 나가 힘을 합하여 결박하고 압송하여 올려보낼 것”이라고 하여 오가작통의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전령에는, 마을의 책임자인 존동(尊洞)과 두민(頭民)에게 지시를 내리면서 고을이름과 산하 행정지역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화북(化北)이라는 두 글자만 표시해 놓았다. 또 여기 전령에 ‘지시를 거행함에 있어서 조금도 느슨해서는 안 되지만 양호(兩湖)에서 체포를 엄하게 시행하면 저 무리들이 영남으로 도망쳐 흩어지는 상황이 반드시 올 것이다. 더구나 본 고을의 경내에 이러한 무리들이 많이 숨어 있음은 일찍이 들은 것이기에 서로 호응하여 폐단을 일으킬 우려가 또한 없지 않다.’라고 기술하였다. 여기 표시된 ‘화북’은 경상도 상주의 행정단위 이름이고 또 ‘영남으로 도망쳐 온다’는 표현은 상주가 충청도와 접경지역이므로 실제 일어나고 있었던 현상이다. 따라서 이 전령은 겸관인 상주목사가 풍헌(風憲), 존동(尊洞), 두민(頭民)에게 보낸 전령임을 알 수 있다. 1894년 11월 14일 전령.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1894년 11월 4일 전령(傳令) 이 전령은 초토영에서 농민군 체포의 책임을 맡은 순포중군(巡捕中軍)이 하급 군졸인 집사(執事)에게 1894년 11월 14일 보낸 지시문이다. 이 시기는 동학농민군이 우금치에서 패전한 이후의 시기로 한층더 동학농민군에 대한 토벌이 세차게 몰아칠 때이다. 이 전령에 따르면 “어떤 동이건 막론하고 그 동에 사는 접주(接主)를 즉시 압송하되, 우선 그 동의 존동(尊洞)에게 염탐하게 하여 만약 혹여 동장(洞長)과 동의 사람들이 명을 거행하는 데 힘쓰지 않고 사적인 친분을 따라 일부러 놓아 준다면, 이는 바로 동도(東徒)의 남은 무리들이니 결박해 잡아 올리며 그 가산(家産)과 집물(什物)을 적몰(籍沒)하고 존동에게 압송하게 할 것”이라고 하여 접주는 무조건 잡아들이도록 하고 있으며, 동학농민군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동도(東徒)’라고 규정하여 체포하도록 하고 있을뿐더러 그들에게까지도 가산과 집물을 적몰하도록 하여 동학농민군들의 재산을 몰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당시 조선정부에서 접주를 동학농민군의 지도자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접주는 무조건 체포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1894년 전령.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1894년 전령(傳令) 이 전령은 한글로 작성되어 있다. 전령의 최종 수신자가 일반 백성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한글로도 작성하여 배포하였다. 작성 시기는 1894년 말 또는 1895년 초로 추정된다. 작성자는 알 수 없으나 수신자는 ‘영솔관 개탁’이라 하여 영솔관으로 되어 있다. 주요 내용은 접주를 반드시 잡아들이고 평민은 일절 작폐하지 말라는 것이다. 만일 접주를 숨겨준다면 마을 전체를 도륙할 것이라는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라고 되어 있다. 이와 함께 접주의 가산집물을 몰수하도록 하였다. △1894년 11월 완문(完文) 1894년 11월에 나주목에서 해남 백포의 윤씨에게 발급해 준 완문이다. 이 문서는 완문의 형태로 발급한 일종의 물침표(勿侵票)라고 할 수 있다. 이 완문으로 벼슬아치들이나 토벌군들이 재산을 약탈하지 않고 보호해 주었다. 이 완문에 따르면 “해남(海南) 백포(白浦)는 윤씨의 세거지로, 선비다운 기품과 훌륭한 법도가 있어 동학도에 물들지 않았으니 매우 가상하다. 비록 난리로 어지러운 때이지만 특별히 안전하게 보호해야 마땅할 것이다”라고 하여 해남 백포에 거주하는 해남윤씨들에 대해 동학에 물들지 않았으므로 특별히 보호해야 된다고 하면서, 이를 보증해주는 증명서를 나주목사 이름으로 발급해주었다. △1894년 12월 완문(完文) 충청도 단양군 어상천면 면장과 연곡리 집강 등이 마을 사람들에게 1894년 12월에 발급한 완문이다. 시기적으로 동학농민군에 대한 토벌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때이다. 충청도 단양군 역시 동학농민군들의 활동이 있었고, 이에 대한 토벌이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완문의 내용은 충청도 단양군 어상천면 연곡리 중곡에 사는 이건재가 동학의 접주였으나 우금치 패전 이후 집을 버리고 도망하자, 그의 재산 중 전답(田畓) 여덟 마지기를 마을 사람들이 토의하여 동학으로 피해를 입은 정선비에게 주기로 하였다. 특히 정 선비에게 준 것은 평소 이건재가 정선비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 완문을 작성한 이유는 훗날 이렇게 이건재의 재산을 정선비에게 준 것이 마을 사람들의 논의를 거쳐 이루어졌고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할 목적이었다. 이 완문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뒤에 동학농민군의 재산에 대한 몰수가 빈번하게 이루어졌고, 이를 처리하는 주체가 군현 단위뿐만 아니라 면 단위에서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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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8.27 19:07

[전북일보-전북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공동기획] ③ 익산에 웬 아열대농장⋯이상기후가 만든 진풍경

바나나, 파파야, 패션프루트⋯. 듣기만 해도 동남아가 떠오르는 열대과일이지만 지금은 전북의 한적한 농촌 마을에서도 자라고 있다. 바나나와 파파야는 연중 수확되고, 레몬·패션프루트는 해마다 두세 차례 열린다. 이곳은 익산에 있는 열대과일 체험농장 '서동팜'이다. 진택성(54) 서동팜 대표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를 기회로 삼았다. 당시 사람들의 발길이 유동 인구가 적은 농촌으로 향할 것을 예상했고, 곧바로 체험형 농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4월 새 온실이 완공되면서 지금의 서동팜이 탄생했다. 체험농장답게 판매보다 체험 비중이 훨씬 크지만, 수익 구조는 오히려 안정적이다. 농산물 판매 외 부가적인 수입원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진 대표는 "손님만 유입되면 과일은 저절로 팔린다. 체험이 곧 판로인 셈이다"고 했다. 이곳에서 나는 열대과일도 체험장에서 활용한다. 예로는 파파야 잎을 빻아 만드는 비누, 파인애플·바나나로 만들어 먹는 브런치 등이 있다. 서동팜 온실 안으로 들어서면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눈높이에 매달린 묵직한 바나나송이, 천장을 건드리는 파파야 잎, 그 옆에서 익어가는 파인애플까지. 매년 더워지는 날씨가 빚어낸 진풍경이다. 진 대표는 코로나19에 이어 이상기후를 기회라고 생각했다. 진 대표는 "부모님의 배 농사를 도왔다. 바깥 언덕에서도 노지 배를 키우고 있다. 배의 생육을 위해서 여느 때와 같이 봉지를 씌웠는데, 익다 못해 그 안에서 익어 무르는 배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그가 노지에 경고를, 시설에 기회를 준다는 걸 깨닫게 된 계기다. 하지만 열대과일을 키우기 위한 설비의 초기 비용이 부담된다고 토로했다. 진 대표는 "열대과일을 키우는데 필요한 전기 기반 고효율 난방은 비용과 환경에 모두 유리하다. 하지만 초기 투자 비용이 크다"며 "농가가 혼자 짊어지고 가기에는 큰 비용이다. 설비 보조, 연구 협력, 체험·관광 연계를 촘촘히 묶어야 현장이, 농가가 움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원영(전북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학년)·박현우 기자 ※이 기사는 전북일보와 전북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협업 취업역량강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본보 기자 1인과 학생 3명이 한 조가 되어 보도의 기획부터 취재, 기사 작성까지 실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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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외(1)
  • 2025.08.25 18:20

[전북일보-전북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공동기획] ② 기후가 만들고 위협하고⋯'완주산 레드향'을 찾아서

"인자 나무가 불쌍할 정도로 덥다니께." 최근 완주군 삼례읍 원수계리에 자리한 송가네 농장에서 만난 송성기(73)·임계자(70) 부부는 "기온이 올라서 시작했는데, 너무 올라서 문제"라며 걱정을 털어놓았다. 송가네 농장의 비닐하우스 안에는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가지마다 초록빛 둥근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이 열매의 정체는 제주에서 주로 나던 만감류, 레드향과 천혜향이다. 전북에서는 홍예향, 천년향이라고 불린다. 원래는 겨울 한파가 심하지 않은 제주도에서만 안정적으로 재배됐지만, 이상기후로 인해 기온이 전반적으로 오르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키울 수 있게 됐다. 관건은 여름이다. 날씨는 뜨겁고 비는 들쭉날쭉한 탓에 갈수록 종잡을 수 없다. 송 씨는 "더워서 작물이 크질 않는다. 어느 정도 시기가 되면 찬 바람이 불어야 하는데 계속 뜨겁다. 한낮 비닐하우스 안은 35도, 40도까지 올라간다"면서 "예전엔 비도 고르게 왔는데, 요즘은 가뭄이 길고 한꺼번에 퍼붓는 듯 내려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상기후로 시작한 일을 이상기후가 위협하면서 송 씨 부부의 걱정도 크다. 과거와 비교해 강한 직사광선에 노출돼 표면이 데이는 '일소과'도 많이 생기고, 나무의 생장까지 느려졌다. 송 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8월에 차광막을 세웠다. 올해는 7월 초에 세웠다. 선풍기도 소용이 없다. 뜨거운 바람이 나와서 나무가 불쌍할 지경이다. 그 안에서 얼마나 힘들곘나"면서 "앞으로가 문제다. 계속 더워진다고 하면 정말 답없다"고 하소연했다. 송가네 농장뿐 아니라 주변 농가도 농사 짓는 작물을 전환하고 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삼례의 대표 농산물인 딸기와 수박을 이모작 재배했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이상기후로 인해 지역을 대표하던 농산물이 점점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송 씨는 "이제 수박 심는 사람이 거의 없다. 수박 농사가 안 되는 건 아닌데, 열매가 피수박이 돼서 상품 가치가 없다. 결국 헛농사가 되는 것이다"며 "계속 이렇게 날이 뜨겁다고 하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이영재(전북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박현우 기자 ※이 기사는 전북일보와 전북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협업 취업역량강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본보 기자 1인과 학생 3명이 한 조가 되어 보도의 기획부터 취재, 기사 작성까지 실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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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외(1)
  • 2025.08.25 18:20

[전북일보-전북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공동기획] ① '위기를 기회로'…이상기후가 바꾼 전북 농업지도

최근 기승을 부리는 이상기후가 '농도' 전북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도내 14개 시·군 곳곳에서 아열대 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가운데 해당 작물이 전북 농업 발전에 새로운 열쇠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 26일 전북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기준 전북 아열대(채소·과수) 작목 재배 농가는 230명, 면적은 88.81ha(헥타르·1ha당 1만㎡)다. 재배 품목도 다양하다. 채소·특작류로는 오크라, 삼채, 여주, 공심채, 강황, 얌빈, 롱빈, 인디언 시금치, 차요테, 커피, 차나무 등이 있고, 과수로는 망고, 백향과(패션프루트), 파파야, 구아바, 바나나, 무화과, 석류 등이 대표적이다. 14개 시·군별로는 정읍시가 농가 85명, 면적 60.03ha로 가장 많았다. 완주군(42명·4.46ha), 남원시(22명·4.2ha), 김제시(12명·2.4ha), 고창군(12명·2.11ha), 무주군(12명·1.5ha) 등이 뒤를 이었다. 이외 다른 지역에서도 농가 1명 이상, 면적 0.1ha 이상씩 소규모 재배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정읍시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작목 전환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동안 제주도를 중심으로 재배되던 대표적인 아열대 작물인 레드향 등은 정읍을 포함해 전북 내륙 지역에서도 재배가 시도되고 있다. 최근 정읍에서 농사를 짓는 박정현 씨가 국산 바나나 품종인 '손끝바나나'를 재배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정읍시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기후 온난화로 작목 전환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농가가 안정적으로 아열대 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셀하우스 설치와 비료·농약 지원 등을 추진 중이다"고 말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학계도 아열대 작물 재배 기술과 관련된 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맞춰 전북도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윤시원 전북대 스마트팜학과 교수는 "아열대 작물은 기후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흐름이자 새로운 농업 기회다"면서 "안정적 생산과 유통을 위해 재배 기술 개발, 유통 인프라 구축, 시장 수요 분석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전북 농업은) 스마트팜과 신재생 에너지 활용으로 농업 리스크를 줄이고 기후 적응형 작물 연구, 지역 맞춤형 정책, 전문 인력 양성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백예람(전북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학년)·박현우 기자 ※이 기사는 전북일보와 전북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협업 취업역량강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본보 기자 1인과 학생 3명이 한 조가 되어 보도의 기획부터 취재, 기사 작성까지 실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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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외(1)
  • 2025.08.2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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