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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지었는데 공정률 1%⋯전북 공사중단 건축물 15곳

#1. 정읍시 북면 한교리 1572 외 5필지, 공동주택(4만 6694.4㎡), 2000년 2월 착공, 2003년 9월 중단, 공정률 54%. #2.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538-2, 공동주택(6060.3㎡), 2001년 11월 착공, 2003년 1월 중단, 공정률 1%. 전북에서 부도나 자금 부족 등으로 장기간 공사가 중단된 건축물이 총 15개소로 파악됐다. 공사 중단 건축물은 건축법에 따라 착공신고 후 건축 또는 대수선 중인 건축물이나 주택법에 따라 공사 착수 후 건축 또는 대수선 중인 건축물을 말한다. 실태조사를 통해 공사를 중단한 총 기간이 2년 이상으로 확인된 경우에 해당된다. 21일 전북도청 홈페이지에 고시된 전북특별자치도 공사 중단 건축물 현황을 보면 2023년 기준 전북 공사 중단 건축물은 총 8개 시군 15개소(군산 1, 김제 1, 남원 3, 무주 1, 부안 2, 정읍 2, 완주 4, 장수 1)다. 이중 공정률이 1%밖에 되지 않는 곳이 있는가 하면 70%에 달하는 곳도 있었다. 용도별로는 공동주택(아파트·연립)이 5개소로 가장 많고 숙박시설이 4개소, 판매시설 2개소, 단독주택·제2종근생시설·관광농원·단독주택·공업시설(공장) 각 1개소가 뒤를 이었다. 이중 10년 이상 된 건축물은 3개소, 20년 이상은 8개소, 30년 이상은 2개소다. 10년 이하 된 건축물 2개소도 포함돼 있다. 대부분 부도, 자금 부족 등을 이유로 공사를 중단했으며 일부는 분쟁도 있었다. 정비 방법은 크게 △공공주도 △공공지원 △안전조치명령 △직권철거 등 4개로 분류된다. 비교적 활용이 가능한 경우에는 공공주도·지원으로, 활용이 어려운 경우에는 안전조치 명령, 직권 철거로 결정된다. 공공주도는 2개소, 공공지원은 4개소, 안전조치 명령은 9개소다. 전북자치도는 지난 2023년 처음 공사 중단 건축물 정비 계획(2023∼2025년·3개년)을 수립하고 이 같은 내용을 포함했다. 정비 계획을 통해 전북 도시 안전성과 미관 등을 증진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도 관계자는 "정비 계획상 '공공주도'는 건축물을 활용해서 공사 재개할 사례다. 남원, 무주 등 2개소가 있다. 공정률이 높고 상태가 양호한 경우 보조, 융자 등을 지원해 자력 재개를 돕는 공공지원은 남원, 완주, 부안 등 4개소다. 나머지 9개소는 여건상 재개가 어려워 안전 펜스를 설치하고 안내문 부착 등 안전조치를 취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활용 가능한 공사 중단 건축물은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사실상 공사 중단 건축물의 경우 소유권이 1명이 아니라 대부분 소유권이 바뀌었거나 여러 명인 경우가 많다. 이해관계자를 만나고 해도 실질적으로 추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 기획
  • 박현우
  • 2025.06.21 09:08

"부도 나고 자금 없고"⋯'흉물' 건축물 활용 방안은

오랫동안 방치된 공사 중단 건축물이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골칫거리'로 떠오른 가운데 전북, 경기 등 일부 지자체에서 흉물이 된 건축물을 활용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전북은 현재 공공주도 2개소, 공공지원 4개소, 안전조치명령 9개소로 분류해 정비 계획을 세웠다. 이중 완료된 사례는 공공주도로 진행한 남원 구 비사벌콘도 부지(남원시 어현동 37-84 외 1필지·관리번호 전북3), 1곳이다. 이곳은 1995년 12월 건축 허가를 받고 다음 달 착공에 들어갔다. 당초 지하 1층, 지상 8층 규모로 구성된 숙박시설로 계획됐지만 자금이 부족한 탓에 1998년 1월 지하 1층에서 공사를 멈췄다. 그렇게 남원관광단지 내에서 장기간 방치됐다. 남원시는 지난해 2월 구 비사벌 콘도 부지에 달빛정원 조성 공사를 착공했다.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계획공모형 지역관광개발사업 공모를 통해 복합문화공간 '달빛정원'을 조성했다. 지난 4월 30일 복합문화공간 달빛정원과 미디어아트 전시관 피오리움을 정식 개장했다. 주변 관광지인 춘향테마파크, 광한루원 등과 연계해 현재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원시 관계자는 "구 비사벌 콘도는 공사를 시작하고 2년 만에 IMF 부도로 공사가 중단됐다. 당시 지하 1층 골조만 공사한 상태에서 장기 방치돼 있었다"며 "이후 이랜드에서 콘도를 다시 지으려고 했지만 여건이 안 돼서 진행을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 남원시가 구매했고 사업 공모에도 선정되면서 사업비를 투자해 달빛정원을 조성했다. 남원관광단지 내에 있기도 하고 주변에 켄싱턴리조트, 관광지 등이 있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경기도는 지난 2018년 8월 전국 최초로 공사 중단 방치 건축물 정비 계획을 수립해 확정 공고했다. 이후 도시 미관을 해치고 붕괴나 낙하물 등 안전사고 발생 우려가 큰 건축물 정비에 두 팔을 걷었다. 대표적으로 1998년 10월 공사가 중단된 안양역 앞 번화가의 공사 중단 건축물 '원스퀘어'가 있다. 24년 만인 2022년 10월 철거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철거를 마무리하고 공영 주차장을 만들었다. 토지주와 수 차례 논의 끝에 해당 부지를 공영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협약을 체결해 조성했다. 용인시 처인구의 도시형생활주택의 경우 2016년 자금 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됐으나 건축 관계자 변경 신고 등을 거쳐 공사가 재개됐다. 2023년 7월에 준공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지난해 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건축주에게 공사 재개나 철거가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자력 정비가 완료될 수 있도록 다양한 개선 방안을 찾아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 기획
  • 박현우
  • 2025.06.21 09:08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49) 동학농민혁명을 기록한 편지 4통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185건 중에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작성된 4통의 편지가 포함되어 있다. 이 편지는 원본은 아니고 필자 또는 다른 사람에 의해 필사된 것으로 작성자가 누구인지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편지 내용에 나오는 여러 가지 지명과 등장인물을 살펴볼 때 충청도 옥천지역에서 살았던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다. 편지를 조금 더 꼼꼼히 읽어보면 이 편지의 작성자는 1894년 당시 전생서(典牲署) 주부(主簿)를 역임한 황영수(黃潁秀)의 큰형으로 짐작된다. 편지 말미에 백형(伯兄)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따르면 황영수는 1889년 부사용(副司勇)으로 임명되고 이후 사과(司果)를 거쳐 1894년 4월에는 사사(司事), 1894년 5월에는 전생서(典牲署) 주부(主簿)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그 직후인 1894년 5월 22일 황영수가 병을 칭하여 전생서 주부의 직을 거두어 줄것을 요청하자, 국왕은 빙고주부(氷庫主簿) 박주동(朴注東)과 황영수를 교체하라고 명하였고, 이것은 실행되었다. 전생서는 조선시대 나라의 제향에 쓸 양ㆍ돼지 따위를 기르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이다. 황영수의 큰형이 보낸 편지에 따르면 “지난 인편에 부친 편지를 큰 아우가 받아 보았다니 위로가 되네. 또 전생서(典牲署) 주부(主簿)로 옮겨 사은숙배(謝恩肅拜)하였으니 이미 숙직에 나아갔으리라 생각하네”라고 하여 황영수가 전생서 주부로 임명되었다는 사실이 편지에서 확인된다. 이 편지들은 모두 충청도 옥천지역에 거주하는 큰형이 중앙에 진출하여 서울에서 관직에 재직하고 있는 동생 황영수에게 보낸 안부 편지이다. 이 편지에는 1894년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관한 내용이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충청도 옥천과 인근지역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으며, 이와함께 양반 지식인들이 어떻게 동학농민혁명을 인식하고 있었는지도 알 수 있다. 1894년 4월 2일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동학의 소요가 난세보다 심해 바늘방석에 앉은 듯하네. 매일 아랫마을의 행랑에 와서 모이는데 양반들은 숨죽인 채 감히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한다네. 이들이 말하기를 ‘비록 재상이라도 추궁할 일이 있으면 어려워할 것 없이 체포하여 결박하라’ 하면서 영읍(營邑)의 명령을 아이들 장난처럼 보고 있네. 그가 워엄과 복을 스스로 만들어 발이 도리어 위를 차지한 격이라 기강과 명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나라가 나라꼴이 아니네. 묘당(廟堂)은 어찌 영칙(令飭)이 없는 것인가? 이미 한달 남짓이 지나는 동안 온갖 변고가 있는데도 아직도 움직일 기미가 없으니, 만약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장차 농사(農事)를 폐할 것이고, 비록 벼슬아치라 하더라도 장차 그것을 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네” 즉 황영수 큰형이 보기에 1894년 4월 당시 충청도 옥천지역에서도 동학농민군들의 세력이 매우 강력했으며 이에 대해 양반들이 대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즉 아랫마을의 행랑에 동학농민군들이 모임을 가졌고 이에 대해 양반들이 어떤 조치도 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동학농민군들이 활동이 그동안 유지되어 왔던 조선이라는 체제에 반하는 것으로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국가의 기강이 무너지고 있다고 한탄하면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표현하고 있다. 1894년 4월 20일 보낸 편지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었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동학의 무리들의 소요는 모두 수포(搜捕:색출해 체포함)에 겁먹어 배도(背道)하고 귀화한다고 하였네. 그리하여 그 수괴만 주벌하고 그 아랫사람들은 풀어 주었는데, 군기(軍器)를 탈취하는 변고를 일으킨 박운(薄雲)의 세 수괴(강채서, 최명기, 이일선)는 아직 잡지 못하였다네. 순사(巡使)의 뜻은 무마(撫摩)를 위주로 하지만 지금 만약 엄히 다스리지 않으면 반드시 다시 봉기할 우려가 있네. 만약 다시 봉기한다면 전보다 심할 것이니 이것이 크게 우려가 되는 부분이라네. 고부(古阜)의 적세(賊勢)가 매우 성대하다고 하는데, 뒤이어 전보(電報)가 있었는가? 이는 마을 낭정(廊丁)이 수성군(守城軍)으로서 자세히 조사하여 보내준 것으로 난리 가운데의 일 아님이 없으니 어찌해야 하겠는가? 지금 듣자니 공주(公州)의 군대가 들어가고 단지 청주(淸州)의 군대만 있다고 하며, 부상(負商)은 지패(紙牌)로 일을 행한다고 하네.” 즉 편지를 보낸 시점은 1894년 4월 20일인데, 충청도 옥천과 인근지역에서도 매우 활발하게 동학농민군들의 활동이 전개되었음이 확인된다는 것이다. 1차 봉기 과정에서 충청도 지역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또는 자체적으로 동학농민군들의 활동이 있었음이 확인된다. 군기를 탈취한 박운(薄雲)의 세 수괴인 강채서(姜采西)ㆍ최명기(崔明基)ㆍ이일선(李一善)을 아직 잡지 못하였다고 한 것은 이들이 이미 1894년 4월경에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들은 동학농민군 지도자로서 충청도 옥천과 인근지역에서 군기를 탈취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그동안 1차 봉기에서는 충청도에서 호응하지 않았다는 일반적인 견해는 제고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강채서, 최명기, 이일선은 충청도 옥천, 유성을 기반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으며 특히 강채서는 전봉준이 공주를 공격할 때 함께 했으며, 최명기는 동학농민혁명 이후에까지 천도교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1894년 5월 9일 보낸 편지에서는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동학농민혁명 전개과정을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음이 확인된다.“완산부(完山府)의 성이 함락되었으니 참으로 큰 변고일세. 도백(道伯)과 반자(半刺)가 혼비백산하여 도망간 것을 다른 나라에 들리게 해서는 안 되는데, 이로부터 절개를 세워 의리에 죽는 사람은 말단의 직임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네. 최근의 전보(電報)는 어떠한가? 신임 도백은 이미 임지에 부임하였다고 하는가? 동학의 무리들은 기운을 기르고 있을 뿐이지 조금도 징계하여 고칠 뜻이 없으니 통탄스럽네” 이 편지에서는 전주성이 동학농민군에게 함락되고 감사와 판관이 도망하였다는 것에 대해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여 이러한 사실이 다른나라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오히려 말단 관리들이 의리를 지키고 있음을 칭송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생에게 중앙에서 알수 있는 전개과정이나 전투상황 또는 관찰사가 임명되었는지 등의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즉 당시 지식인들이 동학농민군들의 활동에 대해 매우 불안해하면서도 전개과정을 매우 구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 1894년 5월말경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에서도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본읍의 군기(軍器)를 탈취당한 후에 공주와 청주 두 영(營)의 병사가 잡아간 도당(徒黨)들을 내보낸 것은 두 영에서 곤장을 한 대도 때리지 않고 모두 풀어준 것이니, 이는 비록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이지만 악행을 징벌하는 뜻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무리들이 처음에는 비록 위축되어 굴복하였지만, 지금은 의기양양하고, 처음에는 배도(背道) 하겠다고 말했던 자들이 지금은 예전으로 돌아갔다네. 또한 입도(入道)하는 자가 많이 있고 또 몰래 사통(私通)을 돌리는 자가 있다고 하니 통탄스럽고 패악스럽다 할 만하네. 사람들이 모두들 다시 봉기할 것이라고 하는데, 만약 다시 일어난다면 반드시 살육이 있게 될 것이네. 이곳에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되는데 무릉도원을 아스라이 생각하고 내 신세 곤궁함을 스스로 탄식할 뿐이니 장차 어찌해야 하겠는가?” 이 편지에서는 1894년 5월 충청도 지역에서 동학농민군들에 대한 처벌이 매우 미약하였다고 지적하였고, 반면에 동학농민군들의 세력이 매우 강성해질 것을 우려하면서 본인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이 편지에서는 이와 함께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들이 전주성 입성 이후 전개된 완산전투에서 농민군이 패한 상황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완산부(完山府)의 도적들이 나가고 초토사(招討使)의 관문(關文)을 보니, 우두머리인 김순명(金順明)과 14세 소년 장사 이복롱(李福弄)을 체포하여 죽였으며, 또 적병 500여명을 죽이고 총과 창 300여 자루를 확득하였으며 장차 머지 않아 성을 수복할 것이라고 하네.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네. 이 근처의 도당들이 이 관문을 보고 크게 기뻐하지 않는 기색이 있었다고 하니, 그 뜻이 매우 음흉하네. 그들의 도(道)를 그들만이 행하여 다른 사람들을 유혹함이 없고 협박함이 없으며 입도함에 작당(作黨) 함이 없고 다른 사람들을 해함이 없이 한쪽에 거처하면서 행한다면, 이단의 무리로 구별하여 서로 상관하지 않을 뿐이니 그렇다면 어찌 오늘날의 변고가 있겠는가?” 동학농민군의 전주성 입성 이후 완산을 비롯한 전주성 인근에서 관군과 동학농민군의 치열한 접전이 있었고, 여기에서 농민군이 많은 타격을 입었는데 이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그 상황을 파악하여 기술하고 있다. 특히 그는 동학농민군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자기의 생각을 서울에서 관리로 있는 동생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이를 실천하고자 했으며 아마도 자신의 생각을 동생에게도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의도로 계속적으로 동생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아닌가 싶다. 이 편지를 쓴 황영수의 큰형은 당시 조선에 있는 양반 지식인의 가장 표준적인 사상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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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18 18:52

국내외 석학들, 초고령사회 해법 위해 고창에 모인다

고령화 시대의 전 지구적 과제 해결을 위해 세계적 석학들과 국내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제1회 서울시니어스포럼’이 오는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 웰파크시티호텔&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노후의 삶과 비전(Life and Vision in Later Life)’으로, 의료·복지·사회·문화 등 다양한 관점에서 초고령사회 대응 전략을 모색한다.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의료비 부담, 세대 갈등, 복지비용 증가 등의 사회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서울시니어스타워(이사장 이종균)는 민간 주도로 고령화 문제에 대한 국제 협의의 장을 마련했다. △의료·복지·공동체까지 다층적 접근 포럼은 건강한 노후를 위한 의료와 장수면역, 노인을 위한 사회복지 및 주거 정책, 공동체와 웰다잉 문화까지 폭넓은 의제를 다룬다. 장수면역 분야에서는 세계적 권위자인 브라이언 케네디(싱가포르국립대), 발리 플렌드란(스탠퍼드대), 서유신 박사(컬럼비아대)가 참여해 최신 연구를 발표한다. 이들은 세포노화, 면역과 염증, 호르몬과 수명과의 상관관계 등을 심층적으로 풀어내며 건강하게 나이 드는 방법과 새로운 의료 기술의 역할을 강조할 예정이다. 이 세션 좌장인 박상철 전남대 명예교수는 “우리가 풀어내고자 하는 고령화의 과제는 의료만의 문제가 아니며, 사회, 경제, 문화의 협업과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풀어나가지 않고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사회복지와 주거, 교육 세션에서는 데니스 버넷, 로빈 스톤, 다그마르 베르그스 빙켈스, 호르스트 오파쇼브스키, 옌스 당샤트 등 유럽·북미·아시아권 전문가들이 실증 사례와 정책 모델을 공유한다. 국내에서는 김근홍(강남대), 김정근, 이금룡(상명대), 임병우(성결대), 김승용(백석대), 남현주(가천대), 김광선(함부르크응용과학대) 교수가 참여해 국가 정책과 실천 전략을 발표한다. △고령화 시대, 글로벌 협력의 장 이번 포럼은 단순한 학술 교류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글로벌 협력모델을 제시하는 데 의미가 있다. 초고령사회의 삶과 죽음, 의료, 사회복지, 공동주거, 공동의 유대, 그리고 세대 간 협력과 소통이라는 다층적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국내외 전문가들의 지혜가 모아지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포럼 주최 측은 “이 행사를 계기로 한국과 세계가 고령화라는 공동의 도전 앞에서 새로운 희망과 해법을 모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포럼이 열리는 고창 웰파크시티호텔&컨벤션센터는 국내 유일의 게르마늄 온천 시설과 대한민국 최초·최대의 시니어타운으로, 시니어 세대에게 잘 알려진 명소이기도 하다. △이종균 서울시니어스타워 이사장은 의료인에서 사회복지사업가로… 고령화 해법에 헌신 서울시니어스타워 이종균 이사장은 의료인의 길을 넘어 사회복지사업가로 새로운 삶을 걸어온 인생의 궤적과 소명을 이번 행사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 이사장은 “고령화는 단순한 인구구조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사회의 역할, 그리고 구조 자체를 재설계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라고 강조하며,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세계의 지혜를 모으고, 사회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계기로 이 포럼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1950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 그는 광주서중, 광주일고를 거쳐 조선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전주 예수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수료하고 공군 군의관으로 복무한 뒤, 청량리에 송도병원을 개원하여 대장항문 질환 분야의 권위자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의료인의 삶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복지 분야로 인생의 소명을 확장해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매일 새벽 6시에 기상해 책과 자료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점심은 간소한 도시락으로 해결하며, 저녁에는 산책이나 가벼운 운동을 통해 심신의 건강을 유지한다. 30년 가까이 실버케어, 요양, 사회복지 서비스 분야에 헌신해온 그는 앞으로도 한국의 고령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어르신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더욱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 기획
  • 박현표
  • 2025.06.18 18:37

[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 탐방’] 실크로드의 종교 융합: 바미얀에서 만난 태양신과 미래불

해돋이의 첫 빛이 바미얀(Bamiyan) 계곡을 적실 때, 동쪽을 향한 거대한 불상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고대인들은 이 순간을 ‘미래불의 강림’이라 믿었다. 실크로드의 심장부에 자리한 바미얀 석굴은 단순한 종교 유적이 아니다.(그림1) 태양의 궤적과 정확히 맞닿은 대불의 방향, 페르시아 태양신과 불교의 ‘광명(光明)’ 사상이 융합된 독특한 상징체다. 바이얀 대불은 왜 ‘태양형 불상’으로 불릴까? 2001년 탈레반에 의해 파괴된 대불이 남긴 메시지를 따라 문명 교차로의 숨은 코드를 해독한다. △ 인도와 그리스-이란 문화의 교차로, 바미얀 바미얀은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사이 해발 2,500미터 고지대 분지에 위치하여 해돋이와 해넘이가 수직 절벽 사이로 비추는 장관을 이루는 지리적 특성을 가진다.(그림2) 『서유기』에서 현장 법사와 손오공이 넘어야 했던 대설산(大雪山)은 힌두쿠시 산맥이며, 바미얀은 아프가니스탄 남부의 인도 문화와 북부의 그리스-이란 문화가 융합되는 실크로드의 핵심 거점이다. 이러한 문명 교차점에서 불교가 전파되기 전부터 인도-이란계 민족인 사카족(Saka) 등에 의한 미트라(Mithra) 신앙이 뿌리내리고 있었으며, "빛의 구원자" 개념을 가진 태양신 미트라는 고대 여행자들이 이곳의 태양 광경을 신성시하며 얻은 종교적 영감과 함께 후일 불교의 미륵 신앙과 결합하는 문화적 토양이 되었다. △ 유럽인의 눈에 비친 바미얀: 오해에서 이해까지 바미얀은 19세기 영국 동인도회사의 중앙아시아 진출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1832년, 영국의 외교관 알렉산더 번스(Alexander Burnes)는 바미얀을 방문하여 불상을 "두 개의 우상(couple of idols)", "우아하지 않고 심지어 추하다(inelegant, even unsightly)”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 불상이 야만인이나 원시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울릴 뿐이라고 했다. 이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 즉 아시아 문화를 서구의 틀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잘 보여준다. 커다란 전환점은 1858년 프랑스 학자 스타니슬라스 주리앵(Stanislas Julien)의 『대당서역기』 번역이었다. 현장 법사의 정확한 기록이 유럽어로 번역되면서 바미얀의 정체성이 제대로 파악되게 된다. △ 현장 법사와 바미얀 석굴: 실크로드 불교 예술의 증인 현장 법사는 『대당서역기』 범연나국(梵衍那國) 조에서 바미얀에는 수십 개의 가람과 수천 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기술했다. 특히 세 개의 거대한 불상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남겼다. 왕성 동쪽에는 높이 백여 척의 황동으로 만든 부처상이 있었고(城东有鍮石釋迦佛立像,高百余尺), 황금빛 나고 보석 장식이 찬란했다(金色晃曜,寶飾焕爛)고 묘사하여 당시 바미얀 대불의 장엄함을 생생하게 전했다. 또 현장은 현대 고고학자들이 찾지 못한 380미터에 달하는 열반 와불이 왕성 동쪽 2~3리 떨어진 가람 안에는 있었다고 뚜렷이 적어 놓았다. 그런데 2000년대초 아프가니스탄 고고학자 타르지(Tarzi)는 이 열반불을 발견했지만 크기가 불과 10여 미터였다. 거대 와불의 실제 모습은 아직은 미스터리다. △ 불교와 조로아스터교의 만남: 동대불 천정 벽화 동대불은 55미터의 부처 입상으로 무릎 한쪽이 약간 나와 있다. 이는 간다라와 그레코로만 조각상의 전형적인 특징이다.(그림3) 지금은 소실되었지만 이 불상의 천정 벽화에는 거대한 태양을 배광으로 전차를 타고 태양 망토를 걸친 채 검과 창을 든 태양신이 묘사되어 있었다.(그림4,5) 태양신 주변에는 날개를 단 전쟁의 여신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는 그리스 승리의 여신 니케(Nike)와 유사하다. 또한 횃불을 들고 태양신의 발아래를 비추는 배화교 신관의 모습도 확인된다.(그림6) 동대불을 마주보는 산비탈에 뚫린 구멍들은 천장묘(天葬墓)의 흔적으로, 이는 불을 숭배하고 태양을 신성시하는 조로아스터교가 이 지역에서 불교와 공존했음을 보여준다. △ 서대불과 미륵 신앙의 융합 서대불 불상은 인도 굽타(Gupta) 마투라(Mathura) 불상과 매우 가깝다.(그림7) 서대불 천정에는 대좌에 앉은 불상을 중심으로 낙천(樂天)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천녀들이 춤추며 꽃을 뿌리는 정토 세계가 그려져 있었다.(그림8) 특히 중앙의 보살이 손에 든 불로불사의 묘약 항아리는 미륵보살의 전형적 도상으로, 이는 미래불 미륵이 도솔천에서 하생하여 중생을 구제한다는 "상승 사상"과 "하생 신앙"을 형상화한 것이다. 바미얀에서 태양신과 미륵불의 결합은 우연이 아니다. 고대 이란의 미트라(태양신)가 가진 "빛의 구원자" 개념은 미래불 미륵의 "구세주" 성격과 본질적으로 상통한다. 동대불이 해돋이 방향에, 서대불이 해넘이 방향에 배치된 것은 태양의 순환 주기와 미륵의 미래 하생을 연결시킨 종교적 상징체계를 보여준다. △ 바미얀 석굴의 현재 상황과 복원 노력 바미얀 석굴은 2001년 탈레반의 파괴로 심각한 손상을 입었으나, 유네스코 주도의 국제적 복원 노력을 통해 그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고대 실크로드에서 헬레니즘, 간다라, 인도 문화가 융합된 이 석굴군은 태양신 숭배와 미륵 신앙이 결합된 종교적 관용의 독특한 사례이다. 따라서 바미얀은 종교 갈등이 심화되는 현시대에 문화 융합과 공존의 지혜를 전하는 소중한 인류 문화유산이다. 전홍철 교수 (우석대 경영학부, 예술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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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17 18:03

[뉴스와 인물] 신언성 제9대 전주기상지청장 "기상청이 만든 정보 꼭 필요한 곳에 쓰이길"

본격적인 장마철을 앞두고 날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전북처럼 산악과 평야, 해안이 공존하는 지역은 기상재해의 피해 범위도 넓고 다양하다. 이러한 시기, 지역 예보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는 기상청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난 1월 부임한 신언성 전주기상지청장을 만나 여름철 기상 전망과 대응 전략, 도민이 체감할 수 있는 기상서비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전주기상지청장으로 지난 1월 부임하셨습니다. 전북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요. “지난 1월 부임해 벌써 100일이 넘었습니다. 부임 직후에는 눈과 한파가 이어졌지만, 따뜻하게 맞아 주신 직원들과 도민들 덕분에 무척 힘이 났습니다. 전주는 역사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로, 전주천의 맑은 물과 돌다리, 도시 숲이 만들어내는 정서적 안정감이 인상 깊었습니다. 계절마다 다양한 매력을 가진 이 도시에서 도민 안전과 생활 편익 증진에 힘쓰겠습니다.” 임기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지요. “올해 기상청의 정책목표는 ‘기상재해에 안전한 국민, 기후위기에 준비된 국가’입니다. 전주기상지청 역시 방재기상서비스를 강화하고, 위험기상 예측 역량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부터는 호우 긴급재난문자를 기상청장이 직접 발송하는 체계가 전북권에도 적용됩니다. 또한 국지예보 기술 개발과 관측망 확충을 통해 지역 맞춤형 예보 가이던스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기상 분야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셨습니다. “제 신념은 단순하고 작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정보가 진짜 가치 있는 정보였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기상 정보가 공공재이다 보니, 흔히들 ‘당연히 제공되는 것’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보 하나가 실제로는 매우 큰 경제적 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대전청에 근무할 때 부모님께서 '농약을 치겠다'고 전화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엔 지금처럼 정밀한 레이더 시스템은 없었지만, 위성 자료로 분석해 보니 곧 그 지역에 소나기가 내릴 것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지금 농약 치시면 안 됩니다'고 말씀드렸고, 실제로 비가 왔습니다. 그날 농약을 안 치신 덕분에 손해를 막으셨죠. 그 한 가정의 사례에 불과하지만, 이런 정보가 전국적으로 퍼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엄청난 경제적 부가가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전북에도 기상관측차량이 도입됐습니다. “저희 지청은 작년 말 기상관측차량을 도입해 훈련을 마친 뒤 3월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갔습니다. 이 차량은 지상 6종, 고층 5종의 기상요소를 측정할 수 있으며, 산불이나 태풍, 폭염, 결빙 등 재난 현장에서 기상정보를 수집해 즉각 지원합니다. 하반기에는 이동형 노면센서도 도입해 도로의 상태 정보를 확보하고, 교통안전 대응에도 기여할 계획입니다.” 올해 3월 갑작스러운 폭설 등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가 컸습니다. “3월에 전북에는 15년 만에 대설경보가 발효되며 이례적인 폭설이 있었습니다. 작년 여름에는 전북이 관측 이래 최고 평균기온을 기록했고, 열대야와 폭염일수도 평년 대비 3~4배 많았습니다. 7월에는 시간당 100㎜가 넘는 집중호우로 군산과 익산에 큰 피해가 발생했지요. 이런 극단적인 날씨는 앞으로 더 빈번해질 전망이어서 조기경보 시스템과 신속한 정보 전달 체계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맞춤형 기상기후 서비스 제공을 강조하셨습니다. “대표적으로 ‘야외노동자 활동지수’를 개발해 전주시와 공유 중입니다. 기온, 풍속 등을 반영해 야외작업 가능 여부를 5단계로 나누어 제공하는 서비스로, 폭염과 한파에 특히 유용합니다. 또한 전북혁신도시 축산냄새 예측 서비스도 추진 중입니다. 기상 조건에 따라 악취 확산 범위를 예측해 시각화함으로써 정책 대응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농업기상 문자서비스 ‘들에서 콜’, 계절별 꽃가루 정보, 단풍 절정일 예보 등도 꾸준히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갈수록 날씨 예측이 어려워졌습니다. “기상청은 슈퍼컴퓨터, 위성, 수치예보모델 등 기술 역량을 확보해왔지만, 기후변화는 그 이상의 변동성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지역 편차가 커지고 날씨의 진폭이 확대되면서, 전북처럼 지형이 다양한 지역에는 맞춤형 대응이 필수입니다. 시·군·구별 기후변화 상황지도를 제공하고, 지자체 기후적응대책 수립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립전북기상과학관을 통해 청소년 대상 기후변화 교육도 강화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봄철 산불 피해가 컸습니다. 기상 부분에서는 어떤 점을 보면 대비할 수 있나요? “산불은 봄철에 특히 빈발합니다. 최근 10년간 산불의 65%가 봄에 발생했죠. 실효습도 25% 이하, 풍속 14m/s 이상이 예상되면 건조·강풍 특보를 발효합니다. 기상청 날씨누리와 앱 등을 통해 관련 정보를 확인해 주시고, 화기 사용 자제 등 예방 행동도 병행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저희는 산림청 등 관계기관에 산불 예방 기상정보를 주기적으로 제공하고, 대형 산불 시에는 진화 지원을 위한 기상자료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전주기상지청만의 강점이 있다면. “전주는 1918년부터 기상관측을 시작한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도시입니다. 전국적으로도 100년 이상 장기 관측자료를 가진 곳은 8곳 뿐입니다. 이 자료는 기후변화 분석과 대응 정책 수립에 있어 큰 자산입니다. 저희는 전북 전역과 앞바다 예보까지 담당하고 있으며, 농업 피해 예방을 위한 우박·서리 예보 등 실용적인 기상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북일보 독자들과 도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날씨는 하루하루 바뀌지만, 저희의 사명은 늘 같습니다. 도민 여러분의 안전한 일상과 재산 보호를 위해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예보와 분석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역의 특성과 변화하는 기후에 맞춘 정밀한 예보로, 생활 속에서 신뢰받는 기상청이 되겠습니다. 기상정보를 적극 활용해 주시고, 기후위기 대응에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신언성 전주기상지청장은 신언성 지청장은 1969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한남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기상청에 입사해 청주기상지청 관측예보과장, 기상청 레이더지원팀장, 계측표준협력과장 등을 역임하며 기상 분야의 전문가로 꼽힌다. 신 지청장은 정확한 기상 정보로 도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싶다고 강조한다. 지역민과 밀접한 기상서비스를 제공해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지청장은 “기상청에서 고생해서 만든 정보들이 더욱 필요한 곳에서 활용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고 말했다.

  • 기획
  • 김경수
  • 2025.06.15 18:30

따뜻한 마음이 흐르는 곳, 전북특별자치도 헌혈의 집

6월 14일은 세계 헌혈자의 날이다. 국제 헌혈운동 관련 기관(국제적십자사연맹, 세계보건기구, 국제헌혈자조직연맹, 국제수혈학회)이 지난 2004년 제정한 세계 헌혈자의 축제다. ABO 혈액형을 최초로 발견해 노벨상을 수상한 카를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 박사의 탄생일인 6월 14일을 기념해 지정됐다. 세계 헌혈자의 날은 전 세계적으로 매혈을 지양하고, 자신의 혈액을 무상으로 기증해 생명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헌혈자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날이다. 전북특별자치도혈액원도 세계 헌혈자의 날을 기념해 전북현대모터스를 찾아 헌혈자들과 함께 홈경기를 관람할 예정이다. 또한 도민들을 대상으로 헌혈 홍보 및 기념품 증정 행사도 진행한다. 아울러 혈액관리본부는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광화문광장 놀이마당에서 시민 헌혈 참여를 위한 헌혈버스 운영 등 다양한 행사를 펼칠 계획이다. 한 방울의 혈액은 누군가에겐 삶의 희망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에는 애타게 수혈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다. 도내 7곳의 헌혈의 집은 소중한 생명을 잇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들은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각기 고유한 장점과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소중한 헌혈의 가치를 시민들에게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이웃의 생명을 살리고 있는 도내 헌혈의 집의 특징을 살펴봤다. 익산센터 “시민의 따뜻한 연대로 생명을 잇는 공간” 익산센터는 2008년 12월 31일 원광대학교 앞 대학로에 자리 잡았다. 익산시 유일의 헌혈센터인 이곳은 항상 헌혈자의 발길이 이어지는 생명나눔의 거점이다. 단순히 헌혈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책임 간호사를 비롯한 모든 직원이 헌혈자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헌혈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문진 시에는 친절하고 정확한 설명을 제공하고, 헌혈 중에도 눈을 맞추며 대화로 긴장을 풀어주는 세심함이 있다. 방문자들은 “익산센터는 헌혈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기분 좋아지러 가는 곳이다”라고 말할 정도다. 고사동센터 “전주의 중심에서 흐르는 헌혈의 전통” 2009년 2월 문을 연 고사동센터는 15년 넘게 전주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을 모아온 생명나눔의 현장이다. 객사5길 한복판에 자리한 이곳은 접근성이 뛰어나 전북혈액원의 대표 센터로 자리 잡았다. 고사동 센터 간호사는 “처음 오신 분이 다음에도 웃으며 찾아올 수 있도록 헌혈을 좋은 기억으로 남겨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다양한 나이와 직업의 헌혈자들이 찾으며, 첫 방문이 다음 방문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생명을 살리는 확신이 싹튼다. 도심 속 상징성 덕분에 시민들 사이에서 대표적인 헌혈 장소로 인식되고 있으며, 타 지역 방문객과 도내 타 지역의 헌혈자들도 자유롭게 방문하는 등 신뢰와 다양성을 고루 갖춘 공간이다. 군산센터 “헌혈하면 즐거움이 따라오는 도시” 군산센터는 군산시 월명로 중심 롯데마트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대형 상권과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지역으로 유동 인구가 많아 접근성이 매우 우수하다. 점심시간을 이용한 헌혈, 장을 보러 나온 김에 들르는 헌혈 등 일상 속 생명나눔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곳이다. 특히 30대 이상 헌혈자 비율이 약 60%에 달해 이벤트성 참여보다 책임감 있는 헌혈 문화가 자리 잡은 도시로 평가받는다. 시민들이 정기적으로 헌혈에 참여하는 군산은 성숙한 생명나눔 도시다. 효자센터 “주말이면 먼 길도 마다치 않고 찾아오는 곳” 전주시 완산구 용머리로에 위치한 효자센터는 2012년 문을 열었다.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 덕분에 ‘쉼 같은 공간’으로 불리며, 남부권 주민들에게 편안한 헌혈처로 자리 잡았다. 정읍, 남원, 부안 등 인근 지역에서도 헌혈자들이 일부러 찾아올 정도로 신뢰를 받고 있으며, 매월 헌혈 캠페인과 봉사 단체 활동도 활발하다. 특히 이곳은 생활 속 자발적 헌혈 문화가 자리 잡고 있으며, “내가 존중받는 시간이었다”는 헌혈자들의 반응 속에 직원들의 진심 어린 응대가 돋보인다. 헌혈과 동시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옹달샘 같은 곳이다. 송천센터 “성분 헌혈의 고수들이 찾는 곳” 2023년에 문을 연 송천센터는 젊은 감각으로 새로운 헌혈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인근 직장인, 고등학생, 자영업자들이 주로 찾으며, 특히 성분 헌혈 참여 비율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단순한 봉사를 넘어 자기관리와 공동체 기여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헌혈자들의 만족도도 높다. “다음 헌혈일이 기다려진다”, “건강을 점검할 기회가 된다”는 반응처럼 헌혈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확산되는 곳이다. 송천센터는 '단순히 헌혈만 하는 곳이 아니라, 편하게 쉬고 가는 곳'이 되기 위해 진심을 다한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전북대 한옥센터 “캠퍼스 속 가장 따뜻한 공간” 전북대학교 캠퍼스 내에 위치한 전북대 한옥센터는 2023년 11월 문을 열었다. 전국 유일의 한옥형 헌혈의 집으로 전통과 나눔이 어우러진 독특한 매력을 지녔다. 2024년 기준 전체 헌혈자 중 20대 비율이 53.7%, 대학생 비율이 64.5%에 달하며, 인근 고등학생과 직장인들도 고르게 참여해 미래세대와 지역이 함께 만드는 헌혈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다. 책임 간호사는 “학생들이 다시 오고 싶어 하는 센터, 그게 바로 우리가 꿈꾸는 모습이다”고 말했다. 장동센터 “조용하지만 단단한 헌혈의 심장” 전북혈액원 본원 안에 위치한 장동센터는 전주 혁신도시 공공기관 밀집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북적이지는 않지만 조용하고 차분한 환경에서 책임감 있는 헌혈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특히 30대 이상 직장인 헌혈자 비율이 70~80%에 달해, 단발적인 이벤트보다 지속적인 헌혈 문화가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꼼꼼한 건강 체크, 친절한 문진, 안정적인 채혈 환경은 헌혈자가 안심하고 다시 찾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매일 오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만, 당신이 올 때마다 우리는 가장 따뜻하게 맞을 준비가 돼 있습니다.” 장동센터 간호사들은 시간을 내어 방문하는 헌혈자 한 분 한 분을 진심으로 맞이하고 있다. 강진석 전라북도혈액원장은 “전북특별자치도 내 7개 헌혈의 집은 생명이 위급한 도민을 살리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자발적인 헌혈을 통해 이 생명선을 온전히 지켜나갈 수 있도록 도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고 당부했다. 헌혈의 집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주말 및 공휴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점심시간에도 방문이 가능하다.

  • 기획
  • 김경수
  • 2025.06.15 16:00

[트민기] “이제는 쓴다”⋯텍스트힙 넘어선 라이트힙

유행은 돌고 돈다. 빨라도 너무 빨리 돈다. 괜히 아는 척한다고 "요즘 유행인데 몰랐어?" 이야기했다가 유행이 끝나 창피당하는 일도 다반사다.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들, 트민기가 떴으니 이제 걱정 없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에도 SNS,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많은 유행이 올라오고 트렌드가 진화한다. 트민기는 빠르게 흐름을 포착해 독자에게 전달하는 게 목표다. “이 부분 무슨 뜻인지 이해되는 사람?” 이하늘(25) 씨는 문장 밑에 밑줄을 긋고 이같이 적어 내려갔다. 최근 그는 지인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을 골라 돌아가며 읽은 후, 자기 생각을 책에 기록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책을 오래 읽을 수 있는 방법으로 ‘교환독서’를 추천받은 후 시작한 취미 활동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각자 인상적인인 부분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감상을 적는다. 가끔은 함께 책을 읽는 지인에게 해석을 요구하기도 한다. 좋은 문장이 있으면 다 같이 모여 필사하기도 한다. 단순한 읽기에서 그치지 않고 쓰기로 행위를 확장한 것이다. 이 씨는 “혼자 읽으면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않을 때도 많고 빨리 질리는데, 여럿이서 하면 더 즐겁게 독서할 수 있다”며 “특히 종이에 쓰는 행동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아 좋다”고 기자에게 교환 독서를 추천하기도 했다. 지난해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몰아쳤던 텍스트힙 열풍이 ‘라이팅힙’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로 확장되고 있다. 라이팅힙은 ‘쓰기(writing)’와 ‘유행에 앞서 가다’, ‘멋지다’ 등의 뜻을 담은 영어 단어 ‘힙(hip)’과 합쳐진 신조어다. 최근 2030세대가 글 쓰는 행위를 멋있게 느끼는 데서 파생됐다. SNS에는 라이팅힙 트렌드의 인기를 입증하는 게시물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교환 독서하는 방법 소개부터 필사책 추천까지 쓰기를 돕는 게시물이 올라와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13일 기준 인스타그램에 ‘필사’라는 키워드로 올라온 게시물이 73만 개를 돌파할 정도다. 비슷한 키워드인 필사스타그램은 13만, 필사노트는 11만을 기록했다. 필사 관련 도서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 <헌법 필사> 등 필사 관련 도서가 매대를 채우고 있다. 이중 <헌법 필사>는 12·3 비상계엄 시기와 맞물려 일시적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 문구계도 덩달아 호황을 맞았다. 라이팅힙 흐름을 타고 필사가 유행하자 형광펜, 만년필, 마스킹테이프 등 글을 쓰는 데 필요한 문구용품 매출이 크게 늘었다. 커머스 플랫폼 29CM는 지난 1월 1일부터 2월 12일까지 문구·사무용품 거래액이 전년 대비 75% 증가했다고 밝혔다. 카테고리별로 보면 고급 만년필·볼펜·연필 등 필기구는 2.4배 늘었고 다이어리·플래너는 64%, 노트류는 34% 이상 거래량이 증가했다. 29CM 관계자는 “텍스트힙 열풍에 이어 필사하거나 일기를 쓰는 등 일상에서 손글씨로 기록하는 문화가 빠르게 확산하며 문구 수집가들이 늘고있다”고 분석했다.

  • 기획
  • 문채연
  • 2025.06.14 07:59

[트민기] "MBTI 다음은 너다"⋯테토·에겐 트렌드 '주목'

유행은 돌고 돈다. 빨라도 너무 빨리 돈다. 괜히 아는 척한다고 "요즘 유행인데 몰랐어?" 이야기했다가 유행이 끝나 창피당하는 일도 다반사다.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들, 트민기가 떴으니 이제 걱정 없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에도 SNS,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많은 유행이 올라오고 트렌드가 진화한다. 트민기는 빠르게 흐름을 포착해 독자에게 전달하는 게 목표다. “에겐녀는 에겐남에게 끌리고 에겐남은 테토녀한테 끌린데요” MBTI 열풍이 한풀 꺾이자 새로운 성격 분류법이 뜨고 있다. 바로 개인의 성향을 남성 호르몬인 테토(테스토스테론)와 여성 호르몬인 에겐(에스트로겐)의 비율로 파악하는 '테토-에겐' 이론이다. 이 이론은 테토남ᐧ테토녀를 활달하고 추진력 있는 남성성, 에겐남ᐧ에겐녀를 감정과 공감을 중시하는 여성성 이미지에 빗대어 표현한다. 성역할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이들을 각각 테토녀, 에겐남 등으로 부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성호르몬 비율이 성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유행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도 나온다.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인스타툰 산부인과툰을 연재하는 한 작가는 최근 ‘에간남? 테토녀? 성격과 호르몬은 진짜 상관 있을까’라는 제목의 만화를 올려 1500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았다. 작가는 만화를 통해 호르몬과 사람 성격이 관계가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표현했다. 그는 “성호르몬은 하루에도 여러 번 달라지지만 나의 기질적 성격은 매일 바뀌지 않는다”며 “실제로 특정 호르몬이 높아진다면 신체적 부작용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재밌다는 등 긍정적인 반응 속 열풍은 거세다. 성격유형 검사 소셜 플랫폼 타입스의 에겐/테토 성향 테스트는 지난 10일 기준 90만여 명이 참여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전체 28문항에 답하면 다정 에겐남, 장군의 기개 테토녀 같은 결과가 나온다. 방송가도 발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지난 7일 방영된 쿠팡플레이 예능 <SNL 시즌2> 마지막 화에는 ‘테토남이 사랑할 때’라는 코너가 방송됐다. 해당 회차는 호스트인 육성재가 에겐남이라는 이유로 여자 친구(지예은 분)에게 환승 이별을 당한 뒤 혹독한 훈련을 통해 털이 수북한 테토남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그려 화제를 모았다. 지상파 프로그램도 유행을 받아들였다. 지난달 14일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는 출연한 유튜버 찰스엔터는 성격이 털털하다며 자신을 ‘테토녀’라고 소개했다. 함께 출연한 노사연이 이를 ‘태털녀(태생적으로 털이 많은 여자)’로 잘못 듣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사람들이 성격 유형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를 자신 또는 타인 이해에 대한 욕구로 해석한다. 이호준 전주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삶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사람들은 그 원인을 찾고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보통 그 원인이 되는 사회 구조나 환경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지만, 원인 중 하나인 자신은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이해’로 눈을 돌리는 성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격 유형 검사는 타인과의 연대감을 형성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같은 유형을 만나면 반갑고, 다른 유형은 궁금해진다. 성격 유형을 대화 소재로 삼으면 사람 간 연결을 돕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수안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성격 유형을 알면 관계에서 갈등을 줄이고 서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며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상대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격 유형이 효율적인 대인 관계 도구로 인식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 심리학 연구에서 mbti 등 이분법적으로 성격을 구분하는 유형검사는 지양하는 추세”라며 “성격 검사를 통해 ‘나’와 ‘타인’을 알아가려는 시도가 많아진 것은 긍정적이나, 성격 유형 검사를 재미가 아닌 신념으로 받아들이는 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 기획
  • 문채연
  • 2025.06.14 07:57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48) 교도소출주장병성책, 선봉진출정장졸성명급기복마실수성책, 본진별군관차출기, 친군장위영장졸실수성책

1894년 9월에 제2차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한 이후 정부는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양호도순무영을 설치하였는데, 여기에는 통위영·장위영·경리청과 일본군에게 훈련받은 교도중대가 소속되었다. 양호도순무영은 양호도순무사 신정희, 좌선봉 이규태, 우선봉 이두황 등이 지휘하였고 동원 병력은 총 2,500여 명에 이르렀다. 친군 장위영 정영관이었던 이규태는 양호도순무영 별군관 겸 순무 선봉장으로 임명되어 교도대와 통위영 각 부대를 이끌고 10월 10일 서울을 출발하여 동학농민군 진압에 나섰다. 양호도순무영은 선봉장이 정부군과 지방 관군 등 진압 병력 전체를 통제하는 총지휘관이었다. 이 때문에 선봉장 이규태가 순무영과 군무아문 등에 각종 보고서를 올렸고, 휘하 병영의 병력 및 전투보고서가 선봉진에 전해졌다. 또한 각급 관아와 주고받은 공문 등 선봉 이규태와 관련한 문서가 매우 많이 작성되었다. 이번에 소개하는 세계기록유산 기록물 역시 그 과정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교도소출주장병성책(敎導所出駐將兵成冊) 1894년 10월 동학농민군 토벌에 종사한 교도소 장병의 직책과 성명을 기록한 기록물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교도소는 1중대 3소대, 1좌익 3소대로 구성하였다. 교도소를 이끈 지휘관은 정령관 이00, 중대장 이진호, 1소대장 이민굉, 2소대장 이겸제, 3소대장 최영학 등이다. 그밖에 좌익장 이승규, 1소대 교장 이태황·유성원, 2소대 교장 김장욱·조인순, 3소대 교장 김금석과 서기 송정순·엄주환, 군조 김동욱·이동근, 별군관(別軍官) 이병효·임경준·이건원 등 18명으로, 이들에게는 매일 1냥 5전씩 지급, 30일에 총 810냥이 지급되었다. 그리고 1-3소대와 산하 1-5분대의 규칙, 십장, 병정, 기타 곡호수, 후병, 장부, 사후, 화병, 마부 등 도합 328명의 직급과 이름을 수록하였다. 이들에게는 매일 1냥 5전 합 514냥 5전을 지급하였다. 말 46필에는 매일 1냥 8전 합 92냥 8전, 도합 매일 607냥 3전, 10일 2,074냥, 30일 1만 8,219냥을 지급하였다. 특이한 점은 군인 1명보다 말 1필에 지급된 급료가 더 많았다. 이를 통해 동학농민군 진압에 동원된 교도소 중대의 병력 편제와 인원, 명단을 파악할 수 있다. △선봉진출정장졸성명급기복마실수성책(先鋒陣出征將卒姓名及騎卜馬實數成冊) 1894년 10월 동학농민군 토벌에 종사한 선봉진의 출정 장졸의 직책과 성명, 그에 필요한 마필의 수효를 기록하여 책자로 만든 기록물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선봉진 장졸은 참모군관 4명, 별군관 8명, 별무사 안성관·김태형과 종인 1명, 서자지 2명, 뇌자 4명, 순영수 4명, 아병군 2명, 등롱군 2명, 장막군 2명, 장부 3명, 복직 1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좌마 1필과 마주와 마부, 기마주부, 복마군 명단도 기록되어 있는데, 군인은 모두 총 59명이었고 말은 기마 17필, 복마 6필이 있었다. 동학농민군 진압에 참여한 선봉진의 병력 편제와 인원, 물자 규모를 알 수 있다. 특이한 점은 뇌자 4명이 있는데, 뇌자(牢子)는 죄인을 문초하거나 구금하는 등의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이었다. 이것으로 보아 친군영은 처음부터 동학농민군 진압 뿐 아니라, 동학농민군을 체포하여 심문하는 임무를 가지고 출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진별군관차출기(本陣別軍官差出記) 1894년 10월 이후 동학농민군 토벌에 참여한 별군관 차출 내용을 기록한 문서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은 신분 밑에 별군관 차출 대상 성명을 기록하였다. 신분은 출신, 유학, 부사용, 사과, 전 감찰, 전 학관, 전 군수, 전 오위장, 부호군, 진사, 한량 등 다양하였다. 주로 전현직 관리들로서, 의병 지원 및 차출 대상자와 면제자 등으로 분류되어 있다. 차출 지역은 순창, 영광, 해남, 영암, 흥양 등 전라도 지역과 연기, 문의, 진천, 서천, 홍산, 서산, 온양, 홍주, 보령 등 충청도 지역이었다. 동학농민군이 주로 활동한 전라도와 충청도에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차출 별군관 가운데에는 영광 흥농면의 이현숙(李賢淑)이 나온다. 그는 법성포 첨사를 하다가 1894년 봄에 동학에 입도하였는데, 겨울에 전향하여 영광 대접주 오시영(吳時泳)을 정부군에게 넘겼고, 민보군을 소집하여 무장 대접주 송문수를 잡아 관군에 바친 자이다.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 인물 명단인 「갑오군공록」에 “영광민 이현숙은 의기를 떨쳐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거괴를 붙잡아 바쳤다”라고 되어 있다. 그가 동학농민군을 배반한 뒤 공을 세우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반동학농민군 활동을 하였는지 알 수 있다. 이 기록물 말미에는 온양 역촌에 사는 부장 이민식은 동학에 의탁하였으니, 만약 침학하면 금단 처리할 것을 지시한 내용이 있다. 이와 같이 별군관은 지역 출신으로 현지 사정에 밝고 어느 정도 지위도 있었기 때문에 동학농민군 체포에 유리하였다. 특히 별군관들은 공을 세워 출세할 요량으로 더 적극적으로 동학농민군 체포에 앞장을 섰기 때문에 동학농민군에게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다. 친군장위영장졸실수성책 표지. 고려대 도서관 제공 △친군장위영장졸실수성책(親軍壯衛營將卒實數成冊) 동학농민군 진압에 참여한 친군 장위영 장졸 명단이다. 장위영은 1894년 6월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이후 일본군에 의해 새롭게 조직된 부대이다. 양호도순무영은 죽산부사 이두황을 순무영 예하의 친군장위영 부영관으로 임명하여 우선봉장으로서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도록 하였다. 1894년 10월에 작성된 기록물로,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먼저 선봉진 장관 좌목을 보면, 참모관에는 전 부정자(前 副正字) 이규백, 전 도사 권종석, 전 학관(學官) 이구영, 유학 이승욱·정도영, 별군관에는 전 수문장 유석용, 출신 이달영·송흠국(훈련대 장관) 등 19명의 신분과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별군관 신분은 기사장, 전 감찰, 전 부장(部將), 전 오위장, 전 중군, 전 만호(萬戶), 상리국 공원(公員), 기교(譏校) 등 다양하였다. 이를 통해 다양한 계층이 동학농민군 진압의 공을 세워 출세하고자 하였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다음 친군 장위영 장졸 명단에는 부령관 이두황, 참령관 원세록을 비롯하여, 별군관 이겸래·조편·윤지영·김광수로 되어 있고 그 밑에 제1대부터 제4대 등의 직책과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각 부대는 대관, 교장, 규칙, 십장, 병정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대는 67명, 49명, 65명, 제2대는 25명, 29명, 44명, 제3대는 45명, 62명, 65명, 제4대는 74명, 62명, 44명으로 편제되었다. 이하 참령관 직속으로 규칙, 십장, 병정, 화병, 장부, 후병 총 14명을 두고, 곡호대는 십장과 병정, 화병 17명으로 총 692명이었다. 그밖에 서기 5명, 통인 2명, 기찰포교 22명, 졸 3명, 관기 3명, 보부상 4명, 마부 51명으로 도합 850명이고 우마는 96필을 두었다. 위 기록물들은 원래 『각진장졸성책(各陣將卒成冊)』에 들어 있는 자료들이다. 『각진장졸성책』에는 이들 자료 외에도, 1894년 10월 동학농민군 토벌에 종사한 선봉진 휘하 경리청, 장위영, 통위영, 교도소 등 각 부대의 장병 성명과 직위를 기록한 각 부대의 비용 명세서인 「경각영공급기(京各營供給記)」, 「창의인명록(倡義人名錄)」, 「물금첩기(勿禁帖記)」, 「죄인록」 등 각종 성책 등이 첨부되어 있다. 이를 통해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정부군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동원하였을 뿐 아니라, 민간의 인력과 물자 역시 동원하여 총력전으로 동학농민군을 진압하였음을 알 수 있다. 김양식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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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11 16:19

[팔팔 청춘] "옛날, 옛날에"⋯'13년차 에이스' 이점식 할머니가 떴다

"나와라, 뚝∼딱!" 지난 5일 오후 2시께 찾은 전주시 덕진구 아중리에 위치한 인후유치원. 유치원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요헀다. 조심스럽게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옹기종기 매트 위에 앉아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읽어 주는 할머니가 있었다. 마치 어릴 적 할머니가 무릎을 베고 누운 손자에게 "옛날, 옛날에"를 속삭이는 듯했다. 이날 이야기는 <바다를 이용한 이순신>, 아이들에게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흐트럼 없이 집중한 아이들이었다. 오늘 이야기가 끝났다고 외치자마자 할머니, 아이들, 선생님들까지 함께 율동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잘 들었어요/우리 모두 마음이 따뜻해졌어요/귀는 쫑긋/눈은 반짝/정말 좋아요/하나, 둘, 셋, 넷/다시 만나요/빵빵!" 노래가 끝나자 아이들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할머니에게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다음주에 만나자면서 할머니와 인사를 나눴다. 이 할머니의 정체는 '이야기 할머니'였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진행하는 '이야기 할머니'는 손주를 무릎에 앉히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한 사업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3000여 명의 이야기 할머니가 활동할 정도로 할머니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오늘의 주인공 이점식(77)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할머니는 10년 활동 후 연장 평가에 합격해 3년을 추가로 활동했다. 벌써 13년차, 올해를 끝으로 은퇴하게 된다. 이 할머니는 일주일에 사흘, 곱게 옷을 차려입고 아이들과 만난다. 13년 동안 반복된 일상이 지루할 만도 하지만 '이야기 할머니'는 이 할머니 삶의 원동력이었다.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아이들과 소통하는 일, 이것보다 행복한 일은 없다고 말할 정도다. 이 할머니는 "13년 동안 행복한 일이 참 많았다. 곱게 화장하고 옷을 차려입고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들이 다 행복했다. 돌이켜보면 매일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싶을 정도로 행복하고 좋았다"고 말했다. 하루의 시작은 항상 이야기 할머니였다. 이 할머니는 아침 6시에 눈을 뜨면 정신이 깨지도 않은 상태지만 이야기를 외우기 시작한다. 외워야 하는 분량은 책 3쪽, 문장이 비슷비슷하다 보니 이야기를 암기하는 게 어렵지만 외울 때까지 읽고 또 읽는다. 옆에는 항상 빨강과 검정 펜을 둔다. 어려운 문장이 나오면 군데군데 줄을 긋고 필기도 한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이 일상을 반복한다.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많이 외워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 앞에서도 술술 이야기할 수 있다. 후딱 외워지지 않은 때도 많지만 계속 반복하는 게 답인 것 같다. 다 외우면 벽에다가 시연해 보고 아이들 만나러 가는 길에도 외운다. 이걸로 세월을 다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이렇게 열정적이었던 이 할머니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이야기 할머니'를 정리하게 된다. 아직 반 년이 남았지만 걱정이 크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무기력해질 테고 다른 데에서 일하기는 나이가 많기 때문이다. 이 할머니는 "내년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다. 이전에 코로나19 때 잠깐 '이야기 할머니'를 못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얼마나 삶이 무기력했는지 말도 못 한다. '내가 왜 이러고 살지?'라는 생각까지 했다"면서 "내가 젊은 나이면 다른 일이라도 하겠는데 나이 생각하면 정말 갈 데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 할머니가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13년 동안 일하면서 쉬고 싶은 때도 있었지만 항상 행복했던 이유, 바로 살아 있음을 느껴서다. 사실 이 할머니는 평생 남매 키우고 남편 내조하며 살림만 하고 살았다. 그때는 다 그렇게 사나 보다 생각하면서 지냈던 이 할머니에게도 남몰래 품고 있던 꿈이 있었다. 입으로는 '허황된 꿈'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꿈을 하나씩 나열하는 이 할머니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폈다. 들어보니 꿈도 많았다. 결혼하기 전, 결혼한 후, 자식들 다 키운 후. 꿈이 다 달랐다.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지금 태어났다면 이렇게 이름 없는 할머니로는 안 살았을 거라고." 꿈도 많고 열정도 많았던 이 할머니는 취재진에게 수줍게 꿈을 하나씩 꺼내 놓았다. 승무원, 꽃집 사장, 택시 기사. 공통점 하나 없는 직업들이지만 이 할머니의 눈에는 이 직업들이 멋있게 보였다. 이리 많은 꿈을 안고도 이루지 못한 터라 이 할머니는 지금을 살아가는 청춘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다. 그는 '인생 조언'을 물어보는 말에 "젊은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가 정말 인생에서 최고로 좋은 때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뭐가 됐든 해 보길 바란다. 가만히 있지 말고 뭐든지 배우고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면서 "열심히 즐기고 일도 하면서 젊음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 기획
  • 박현우
  • 2025.06.09 16:12

[작지만 강한 우리마을⑤]‘지속가능한 한옥 공동체’의 길을 걷는 완주 오성한옥마을

완주군 소양면 오성한옥마을. 종남산과 위봉산의 능선을 병풍처럼 두르고, 오성제 저수지를 중심으로 옛 한옥들이 고즈넉하게 앉아 있는 이 마을은 오늘날 연간 7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전북의 경관 명소로 우뚝 섰다. 북적이는 전주 한옥마을과는 달리, 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한옥과 숲길, 그리고 주민들의 소박한 삶이 살아 숨 쉬는 마을. ‘작지만 강한 마을’의 정수를 보여주는 오성한옥마을은 마을 주민 스스로 만들어낸 기적의 마을이다. △‘마을회관 하나 없던 시절’에서 출발한 주민 자치 ‘오성(五城)’이란 이름은 과거 오도리(오도치)와 외성리(위봉산성 외곽 마을)가 하나로 통합되며, 각 마을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 탄생했다. 이름 속에 과거와 현재, 산과 물, 사람과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다. 현재 오성한옥마을에는 50가구, 8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2012년 4월, 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댄 워크숍이 열렸다. 회관이 없던 시절, 당시 이장이던 이우석 씨의 집에서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마을의 미래를 이야기한 것이 오성한옥마을 변화의 시작이었다. 주민들은 직접 마을을 걸으며 자원을 조사했고, 닥나무, 저수지, 한옥, 종교 문화, 생태 경관 등 수십 가지 자원을 목록으로 정리해 마을 만들기의 기초를 다졌다. 기획부터 공모까지 주민들의 손으로 진행된 마을 만들기 사업은 지역창의 아이디어 공모, 한옥마을 조성사업, 문화생태숲 조성 등 다양한 경로로 이어졌고, 공모 선정이 계속되면서 마을의 토대가 하나씩 세워졌다. 모두가 “우리도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모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즈넉한 경관이 만든 기적… 연 70만 명이 찾는 마을 오성마을의 가장 큰 강점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성공 사례만을 따라가기보단, 실패한 마을을 일부러 방문해 그 이면의 원인을 살폈고, 갈등의 해결방식과 마을 운영 방식 등을 깊이 배우며 자신들의 방식으로 체화해 나갔다. 이런 학습은 매 반상회 때마다 반복됐다. ‘우리 마을이 어떤 곳이 되기를 원하는가’, ‘현재 문제는 무엇인가’, ‘해결방안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들이 반복되었고, 주민들은 그것을 함께 고민하고 공유했다. 주민 간 신뢰가 쌓이면서 마을 자치 운영 규정도 스스로 제정했다. 건축은 한옥을 원칙으로 하고, 무분별한 개발은 막으며, 주민 갈등은 규정 안에서 조율되도록 했다. 2013년과 2016년 두 차례 개정된 이 규정은 오늘날 오성마을 공동체의 근간이 되고 있다. 오성한옥마을의 가장 큰 경쟁력은 ‘경관’이다. 종남산과 위봉산, 그리고 오성제 저수지라는 자연의 선물이 주는 아름다움에 더해, 주민들이 정성껏 지은 25채의 한옥이 그 경관을 완성한다. 이 고즈넉한 풍경은 도시민들에게 '쉼' 그 자체다. 오성마을은 경관 개선 공모에 꾸준히 참여해 그 자원을 현실화했다. 특히 지난 10여 년간 한옥을 중심으로 한 경관 정비는 마을의 품격을 끌어올렸다. 지금의 마을회관, 게스트하우스, 갤러리, 공원 등은 그 결과물이다. 전주 한옥마을처럼 인파로 붐비진 않지만, 오히려 그것이 강점이 되어 관광객들은 더 조용히, 더 길게 머물다 간다. 현재 연간 7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마을로 성장했다는 것은 주민 자치의 성과이자, ‘경관이 곧 콘텐츠’가 되는 사례를 보여준다. △자연을 품은 경관과 문화를 담은 공간 이 마을엔 문화와 예술이 자연처럼 녹아 있다. 250년 된 고택을 이축한 ‘아원’, 종남산을 배경으로 한 ‘오스 갤러리’, 한봉림 도예가의 전시와 체험 공간, 한국서화협회가 전시회를 여는 ‘그림터 갤러리’ 등이 오성마을만의 예술 자산이다. 특히 오성마을은 전북 도내에서 보기 드물게 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 4대 종교가 함께 만든 ‘성지 순례길’도 자리하고 있다. 신앙의 여정과 자연의 길이 만나며 깊은 울림을 전한다. 아원고택은 오성한옥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소다. '우리 모두의 정원'이라는 뜻을 담아 이름 붙여진 이곳은 종남산을 바라보는 위치에 자리하며, 숙박공간과 갤러리, 문화공간이 어우러져 있다. 만휴당, 연하당, 설화당 등 고택 4채와 별채, 갤러리로 구성된 이곳에서는 조용한 사색과 전통문화 체험이 함께 가능하다. 또 아원고택에서 돌담길을 따라 내려오면 소양고택이 나온다. 이곳은 2010년 여름 고창과 무안에서 철거 위기에 놓였던 고택 3채를 현재의 자리로 이축한 공간으로, 문화재 장인들의 손을 거쳐 복원됐다. 소양고택은 단순한 숙박을 넘어 재즈 공연, 아트페어, 북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오성한옥마을은 단지 옛 것을 지켜온 마을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와 경관을 함께 창조해낸 공동체다. 앞으로는 마을 내 복합문화교육공간 조성도 구상 중이다. 관광객 안내와 동시에 주민 교육, 외부 마을의 벤치마킹 공간으로 활용될 계획이다. 오성한옥마을 귀농귀촌 1세대인 최수강 이장은 “우리 마을이 아름다워진 이유는 단순한 예산이 아니라,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성과 참여 덕분”이라며 “경관은 스스로 가꾸고 함께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철학이 마을을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오성한옥마을은 새로운 10년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과 ‘자연’이 있다.

  • 기획
  • 이준서
  • 2025.06.08 18:12

[전북이슈+]"전북 사투리 맞아?"⋯드라마∙영화가 불편하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당신의 맛’과 영화 ‘승부’ 속 전주 사투리가 실제와 다르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등장인물의 말투가 전북보다는 전남 사투리에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12일부터 방영 중인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당신의 맛’에는 전주 출신으로 설정된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드라마는 식품 기업을 물려받기 위해 작은 식당을 인수ᐧ합병하는 재벌 2세 한범우(강하늘 분)와 전주에서 ‘정제’라는 파인다이닝을 운영하는 셰프 모연주(고민시 분)의 로맨스를 다룬다. 전주 토박이로 설정된 모연주는 극 중 사투리를 사용한다. 모연주 역할을 맡은 고민시는 제작발표회에서 “사투리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서 집요할 정도로 집착하며 준비했다”며 요리와 함께 사투리 준비에 가장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송 직후 일부 시청자들은 사투리의 어색함을 지적했다. 방송 다음 날인 지난달 13일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스레드'에는 “당신의 맛 드라마 보는데 전주 그런 사투리 안 쓴다”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억양도 불편. 과한 사투리도 불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전주가 나와서 좋긴 하다”고 덧붙였다. 해당 글에는 “전주 사투리라기보다 전남 쪽 말투 같다”는 댓글도 달렸다. X(엑스·구 트위터)에도 비슷한 반응이 이어졌다. 한 이용자는 “드라마 배경이 전주라는데 타 지역 사투리를 쓴다. 내용은 재밌는데 전주 사람이라서 그런지 집중이 안 된다”며 “우린 ‘~랑께’, ‘~잉’, ‘~해부렀제’ 같은 말은 쓰지 않는다”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승부’도 비슷한 지적을 받았다.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 ‘승부’는 전주 출신인 이창호 국수와 그의 스승인 조훈현 국수의 대결을 담은 영화다. 영화 초반 이창호 국수의 어린 시절을 맡은 김강훈의 말투가 전북 사투리보단 광주ᐧ전남 사투리에 가까워 몰입이 깨진다는 의견이 나왔다. 장승익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충청도 방언(사투리)을 생각할 때 흔히 ‘~했슈’를 떠올리듯, 전라도 방언도 사회적 통념처럼 인식된 억양과 어미가 있다”며 “미디어가 전북을 배경으로 해도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전남이나 광주 사투리를 차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방언은 해당 지역의 정서와 문화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수단”이라며 “미디어가 그 지역의 정서나 문화를 더 현장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방언을 사용하기로 선택했다면 당연히 고증이 잘 된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획
  • 문채연
  • 2025.06.07 06:52

"다 같은 한국어랑게"⋯전국 곳곳 '사투리 살리기' 프로젝트

폭싹 속았수다, 정년이, 우리들의 블루스⋯.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 생활 습관이 담긴 사투리를 소재로 한 미디어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정작 사투리는 '표준어'에 치여 '사(死)투리'가 되고 있다. 모두 같은 한국어지만 국가가 '표준'을 정하면서 표준어에 치여 사투리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전국 곳곳에서 사투리 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진다. 보존회를 꾸리는가 하면 사투리 관련 학자가 모여 연구하고 사투리대회 개최, 조례 제정 등 다양한 노력이 눈에 띈다. 이중 사투리살리기에 가장 적극성을 보이는 단체는 강릉말(사투리)보존회다. 1993년 '강원일보' 주최로 열린 제1회 강릉사투리 대회 수상자들이 이듬해인 1994년에 꾸린 모임이다. 2007년 3월 강릉사투리보존회가 사단법인 인가를 받으면서 공식 기구로 활동하게 됐다. 현재 사투리 자료 수집, 사투리 경연대회 등을 통해 강릉 사투리를 보존·계승하고 있다. 비슷한 사례로는 단양말(사투리)보존회가 있다. 충북 단양군이 올해 초 지역의 고유한 언어 문화를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창립했다. 앞으로 잊혀가는 사투리를 발굴하고 기록함과 동시에 장기적으로 관련 서적을 발행하는 등 체계적인 보존 활동을 추진할 계획이다. 누구나 단양 사투리에 대해 공유·소통할 수 있도록 단양군청 누리집에 관련 게시판을 개설하기도 했다. 제주는 교육 과정을 통해 제주어 교육을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제주어를 익히고 사용할 수 있는 제주어 노래·마음 카드 제작 등 제주어 보존에 힘쓰고 있다. 2007년에 '제주어 보존 및 육성 조례'를 제정하고 제주어 주간을 만드는 등 일상에 제주어가 스며들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은 지난 2019년 사투리 어휘를 집대성한 전라북도 방언 사전을 펴냈다. 당시 이병도 전북도의원이 행정사무감사에서 '벤또', '구루마' 같은 일본말을 방언으로 실었다고 지적하면서 다시 보완해 재발간하는 사례가 있었다. 2021년에 제정한 '전라북도 국어 진흥 조례'에도 지역어 보전 등의 내용을 담았다. 전북도 사투리 보존을 위해 노력하지만, 다른 지자체만큼 도민이 체감할 만한 활동·사업은 부족한 상황이다. 현재 사투리 보존과 관련된 활동·사업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영우 전주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전북도 다른 지자체를 벤치마킹해서 사투리를 보존하고 널리 이어갈 수 있도록, 후세대에도 이어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을 하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단 지역 자체가 사라지고 방언(사투리) 쓰는 분들도 없다. 이걸 물리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제 생각은 데이터화(자료화)해서 보존하는 것은 가능하다. 데이터가 있어야 옛날 것도 확인하고 연구가 이루어져야 전북의 방언 특징을 알 수 있는데, 사라져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현재 제주도는 방언을 적극 교육하고 후대에도 이어나가려고 하는데, 이런 것도 참고할 만하다"고 제언했다.

  • 기획
  • 박현우
  • 2025.06.07 06:51

맛깔난 전북 사투리⋯광주ᐧ전남과 다른 미묘한 말맛

전라도 사투리는 구수한 말맛과 정겨운 억양이 특징이다. 전라도 전역에 적용되는 말이지만 전남과 전북은 말투와 억양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전문가들은 전북 사투리가 광주ᐧ전남에 비해 어조가 평이해 표준어와 더 비슷하게 들린다고 말한다. 지난 2019년 펴낸 전라북도 방언사전은 “전북 방언은 성조가 없고 억세거나 거센 발음이 적어 음성적 차별성이 크지 않다”며 “타 지역 사람은 물론 전북도민조차도 표준어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밝히고 있다. 장승익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전북 방언의 경우 지리적으로 충청도와 경기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 광주ᐧ전남보다 표준어에 가까운 억양을 구사한다”고 말한다. 특히 전남 사투리에 비해 전북 사투리가 조금 더 약한 억양을 가지고 있어 문장을 구사할 때 광주ᐧ전남과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하니까’라는 말은 광주ᐧ전남 방언으로 ‘~한께’ 또는 ‘~항께’로 표현되는 반면, 전북에서는 ‘~한게’, ‘~항게’로 발음된다. 같은 뜻이지만 어미의 된소리 정도에서 차이가 있다. 또 광주·전남에서는 문장 끝에 ‘~잉’을 덧붙이는 경우가 많지만 전북은 ‘~이’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장 교수는 “전북 방언은 전남에 비해 말끝을 조금 더 부드럽게 늘여 말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북 안에서도 말투는 조금씩 다르다. 장 교수는 “전북 방언은 크게 서북부와 동남부로 나뉘는데, 서북부는 충청도 방언의 영향을 받고 동남부는 경상도 방언의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체를 통해 전북 사투리를 접할 때 어색하다고 느끼는 경우는 같은 전북이라도 어느 충청도와 경상도 중 어떤 지역의 영향을 받았느냐에 따라 사용하는 방언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같은 전북이라도 지역별로 말투 차이가 있어 매체 속 표현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기획
  • 문채연
  • 2025.06.07 06:50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47)하동 방수장서목, 여산 차호규 등 첩정, 강계 외귀방 풍헌 첩정, 강계 고산방 풍헌 첩정

1894년 봄에 시작해서 가을에 전국에서 치열하게 벌어진 동학농민군의 활동은 겨울이 되면 급속히 축소된다. 일본군이 주력인 진압군에게 충청도의 공주 우금치전투를 비롯한 세성산전투, 홍주성전투, 청주성전투, 옥천 증약전투, 연산전투, 논산전투 등에서 패배한 후 전라도의 원평전투, 태인전투에서 밀린 다음에는 해산 지경에 이르렀다. 경군 지휘권을 장악한 일본군은 전라도 남단까지 들어가서 흩어진 동학농민군을 수색해서 학살하였다. 황해도에도 파견해서 순회하도록 했다. 추운 겨울철에 떠돌던 동학농민군 참여자들은 마을을 떠나 사방으로 피해야 했다. 이러한 일들은 1895년 봄까지 계속되었다. 일본군은 각 관아에 동학농민군 참여자를 잡아오도록 지시했다. 도순무영은 해체되었지만 삼남을 비롯해서 전국에 내려진 체포 명령은 그대로였다. 각지에서 작성한 고문서를 보면 이때의 실상을 알 수 있다. △ 경상도 하동의 적량면 방수장 서목(防守將 書目) 경상도 하동은 6월부터 동학농민군이 읍내에 들어간 이후 순천과 광양의 동학농민군이 수시로 들어오며 활동하던 지역이었다. 그러자 민보군을 조직해서 이를 막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호대한 동학농민군에게 제압되면서 민가 수백 채가 불에 타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정부에서는 재난이 심각한 지역으로 금산 괴산 성주와 함께 하동을 거론할 정도였다. 진주와 하동은 남해에서 올라온 여러 명의 동학 지도자들이 동학농민군을 이끌었고, 대접주 김인배 휘하의 순천 동학농민군이 섬진강을 넘어와서 활동하였다. 남해와 순천의 동학 조직은 강성해서 인근을 휩쓸었다. 이 일대의 동학농민군은 부산에 주둔하던 일본군 수비대가 기습해서 밀려나게 된다. 그 이후 섬진강 인근의 요지에는 전라도에서 넘어오는 동학농민군을 막기 위해 방수장을 배치하였다. 이들은 요지를 지키면서 동학농민군 지도자들을 수색해서 체포하였다. 그 실상을 보여주는 문서가 적량면 방수장의 서목이다. 1895년 정월 3일 적량면 방수장이 하동 수성관에게 보낸 서목의 내용은 간단하다. 적량면 동산에 살던 이근동(李近洞)을 진주 사동에서 체포하여 하동관아로 호송한다는 것이다. 적량면 동산은 지금 경남 남해군 창선면 진동리 지역이다. △ 전라도 여산 북삼면의 풍헌과 차호규 등 첩정(車昊奎 等 牒呈) 신임 전라감사 이도재는 금산 민보군을 이끌다가 죽은 소모관을 포상하고, 동학농민군에게 동조한 임실현감 민충식을 파출시켰으며, 금산과 용담에서 수백 채씩 전소한 민가의 복구비를 마련하는 등 긴급한 조치를 해나갔다. 그러나 동학농민군 참여자들은 엄혹하게 처벌하였다. 그 과정에서 여러 착오도 일어나고 있었다. 여산 북삼면의 풍헌과 차호규 등이 올린 첩정에 그 구체적인 사례가 나온다. 이 첩정은 이 시기의 문서로는 드물게 신분이 명확한 면내의 여러 명이 연명으로 올린 것이다. 이름을 밝힌 사람은 유사 황씨, 풍헌 김씨와 내촌 차호규, 미동 김봉수, 중발 고태진, 대정 김내문, 후상발 김동완 방공신, 어량 소휘백 남정홍 등 10명이다. 이들은 북삼면 야정에 거주하는 이지전(李之瀍)은 동학에 가입하지 않았는데 동학의 접주라고 잘못 알려져 체포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지전은 접주가 아니라는 사실은 면민 모두가 알고 있으니 헤아려 달라고 하였다. 즉 착오로 잡혀갔으니 풀어달라는 말이었다. 이 첩정을 보면 당시 격변기에 무관한 사실로 처벌받는 일이 종종 일어났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동학농민군 잔여세력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관련 혐의를 받고 체포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옥석구분(玉石俱焚)의 우려를 나타내는 표현이 여러 사료에 나오고 있다. △ 평안도 강계 외귀방(外貴坊) 풍헌 첩정 이 첩정은 1895년 2월 16일 평안도 강계 외귀방의 풍헌이 평양 감영의 전령에 의거해서 동학도를 금지했다는 내용을 강계부사에게 보고한 내용이다. 강계의 외귀방(外貴坊)은 1914년 전국의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외귀면으로 명칭을 바꾸는 곳으로 모두 4개의 동을 관장하고 있다. 강계는 험준한 산골이라서 면적은 넓으나 마을은 드물게 형성되었다. 이 고문서의 내용에는 강계의 산골까지 동학이 전파된 새로운 사실을 전하고 있다. “방금 도착한 순영문(巡營門) 감결 내의 전령에 의거하여 동학을 하는 사람들을 각 리에서 타이르고 금단하였으며, 바로잡고 조사하여 성명을 기록한 성책(成冊)을 수정하여 올렸으며, 오가작통 성책을 이어서 속히 올렸습니다.”라는 표현이다. 이를 보면, 동학도들은 평안도 강계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외귀방의 풍헌이 이들을 파악해서 명단을 기록하여 강계부에 올렸고, 동시에 동학도들을 효유하고 활동을 금지했다고 하였다. 또한 동학도를 금지하는 방안으로 전래의 오가작통을 활용하고 있었다. 도순무영에서는 오가작통이 번거롭기 때문에 10호를 함께 묶는 십가작통(十家作統) 명령을 내리고 있었지만 실제로 각 군현에서 이를 시행했다는 자료가 나오지 않는다. 평안도에서는 동학농민군이 봉기하지 않았다. 혹 봉기를 계획했던 동학 조직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청국군과 일본군이 쌍방 수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서 평안도의 수부인 평양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였던 당시에는 봉기를 시도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동학농민군이 해주까지 점거한 황해도는 물론 평안도의 북쪽까지 동학이 퍼져있었다. 이 문서는 그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 평안도 강계 고산방(高山坊) 풍헌 첩정 이 첩정은 1895년 4월 19일 평안도 강계 고산방의 풍헌이 정부에서 보낸 효유문을 민간에 알린 사실을 강계부사에게 보고한 문서이다. 고산방은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고산면으로 명칭을 바꾸는 곳으로 모두 6개의 동을 관장하였다. 첩정을 올렸던 이 시기는 전국에서 동학농민군의 조직적인 활동이 종식되어 관치질서가 회복된 때였다. 그렇지만 갑오년 전국을 뒤흔들던 동학농민군의 봉기와 청일전쟁의 여파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민심 안정과 생업 종사를 위한 국왕의 효유문을 각지에 보내서 알리도록 하였다. 그 지시에 따라 고산방 풍헌이 지방관에게 올린 문서가 이 첩정이다. 평안도 강계는 만포에 가까운 지역으로 동학농민군이 봉기하지 않았고, 청일전쟁의 피해도 일어나지 않았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평양에서 벌어진 청일군 간의 치열한 전투는 이 일대의 주민들을 놀라게 하였고, 남부 지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농민항쟁 실상도 전해져 민심을 격동시켰다. 고산방 풍헌의 첩정에는 민심을 안정시키려고 했던 을미년 봄의 지방 행정을 일부나마 알려주고 있다. 신영우 충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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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04 16:29

[창간특집] 출입처 없는 자유…디지털이 묻고 기획이 답하다

편집국 기자가 달팽이라면 디지털미디어국 디지털뉴스부 기자는 민달팽이다. 각자 취재를 담당하는 영역인 출입처가 있는 편집국과 다르게 디지털미디어국은 정해진 영역이 없다는 의미다. 정치·사회·경제·문화·체육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기존 편집국 체제와 종이신문만 중요하게 생각했던 때와 다르게 디지털뉴스부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하나, 둘 기획을 시작했고, 시시각각 쏟아지는 속보와 주말 기사에도 정성을 쏟았다. 다양한 연령층을 유입시키기 위해 인스타그램(SNS·사회관계망서비스) 운영에도 힘을 모았다. 지난해 10월 본보 디지털미디어국이 신설된 이후 모든 일에는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최초'를 만드는 우리의 노력은 계속됐다. 5일 동안 쉬지 않고 종이 신문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하는 편집국과 다르게 긴 시간 동안 깊게 파고들 수 있는 기획기사를 찾아나갔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할 계획이다. △전북 이슈+ 전북일보 디지털미디어국의 최초 기획은 <전북 이슈+>다. 매주 전북에서 일어나는 이슈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위해 마련한 첫 기획물이다. 하나의 이슈에 대해 기사 1편에 다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향으로 3편씩 연재했다. 한때 K리그 왕좌의 자리에서 호령하다가 사상 처음 파이널B 그룹으로 추락한 전북현대모터스FC의 진단을 시작으로 전주 신도시의 빈 상가들, 지역 축제의 방향성, 전주한옥마을의 오버 투어리즘, 순창 장류 명인이 말하는 장담그기 문화, 촬영 명소로 떠오른 전북, 전주고 야구부의 미래 등 다양한 주제의 기획기사를 보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2개월여 간 기획 취재한 성과가 빛을 발하면서 디지털미디어국이 신설된 첫 해 2024 전북기자상 기획 부문 우수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청년 이장이 떴다! 야심 차게 준비한 디지털뉴스부의 2025년 신년 프로젝트다. 매일 '지역 소멸' 문제를 이야기하고 걱정하면서도 한 번도 진짜 소멸 위기에 놓인 마을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소멸 위기에 처한 농촌 마을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지난 1월 주민 55명이 살고 있는 완주군 고산면 화정마을로 향했다. 옛 마을회관에 일명 '청년 이장 아지트'를 만들어 놓고 주민들과 소통했다. 3개월간 일주일에 이틀을 마을로 출근했다. 기자가 아닌 주민으로 바라본 지역 소멸이 궁금했다. 통계로 소멸 위기를 말하기 쉽지만 석 달 동안 지내보니 마을 안에서 소멸을 느끼는 건 쉽지 않았다. 인프라는 없지만 네트워크는 잘 형성돼 있었다.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으면 자동차가 있는 이웃 주민의 도움을 받거나, 일손이 없으면 서로 돕거나, 혼자 살아 밥 먹는 게 부실하면 함께 밥을 먹고, 하루라도 소식 안 들리면 서로를 챙기는 데 바빴다. 도시보다 살기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 안에서 서로를 챙기며 살아가는 '마음이 살아 있는' 마을이라는 것을 느꼈다. 청년 이장 역할을 자임한 뒤 주민과 소통하기 위해 마을 안에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여건상 배움이 부족했던 주민들을 위해 기자가 영어를 알려 주고, 청년 이장들을 함께 돕겠다고 자청하고 나선 작가들이 미술을 가르쳐 주고, 일손이 부족한 마을에 젊은 기자들이 함께 참여해 마을의 일손이 돼 줬다. 기대하지 않았던 큰 상까지 품에 안았다. 바로 제416회 이달의 기자상(지역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이다. 해당 기획이 보도되고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간하는 언론 전문 월간지 '신문과 방송'·한국기자협회 '기자협회보' 등에서도 관심을 보냈다. △트민기·나는 전북일보 디지털미디어국의 새로운 기획은 계속 이어진다.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들을 줄여 만든 '트민기'와 인터뷰 기사를 담은 '나는'이 이어지는 기획물이다. '트민기'는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에 대응하고 전북에서 이슈되는 현장을 소개하는 기사다. '나는'은 공직자, 유명인 등의 삶 보다 진짜 우리 곁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을 조명하기 위한 기획이다. '트민기'에서는 오픈AI를 활용한 '지브리' 열풍부터 지리산농협 하나로마트 생참치 해체쇼, 장수계남초 자체 프로그램인 '따뜻한 아침에 책 한 권', 인구소멸지역 학교를 찾아가는 지역 예술인 쟈니컴퍼니의 사연, 연예인이 줄 잇는 대학 축제 속 이색 프로그램 등을 소개했다. '나는'에서는 동네를 지키는 책방지기, 국내 첫 외국인 무형유산 이수자, 전북현대의 입과 귀가 되는 통역사, 95년 만에 탄생한 푸른 눈의 춘향 등을 소개했다. △전북일보 디지털뉴스부는 지금처럼 지역 언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꾸준하게 다룰 예정이다. 독자 역시 '전북'에 한정하지 않고 '전국'으로 확장해 나갈 것이다. 종이 신문을 잘 만드는 편집국과 경쟁하며 디지털 혁신에 잘 대응하는 디지털미디어국으로 자리잡아 나갈 것이다. 편집국과 디지털미디어국이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 주고 잘하는 것은 빛내 주면서 최상의 시너지를 내고자 한다. 한 가지만 잘하려는 게 아닌 두 가지를 다 잘하려는 전북일보, 우리의 미래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 기획
  • 박현우
  • 2025.06.01 17:07

[창간특집] 종이에서 영상으로…지역 저널리즘 언어를 바꾸다

「전북일보, 유튜브로 다시 태어나다」: 75년 전통 위에 쓰는 지역 저널리즘의 새로운 언어 디지털 전환과 지역 저널리즘의 미래를 묻다 2025년, 전북일보가 창간 75주년을 맞았다. 1950년 첫 지면을 펴낸 이래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신문'이라는 정체성 아래 지역민 곁을 지켜온 전북일보는 지금, 시대변화에 맞는 언론사로서 다시 태어나는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지난 수십 년 간 종이 신문은 깊이 있는 기사와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보급은 정보 소비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이제 독자들은 더 이상 매일 배달되는 신문을 기다리지 않는다. 뉴스는 인터넷에서, 그리고 유튜브에서 실시간으로 소비되고 공유된다. 단순한 플랫폼의 전환이 아니라 언론의 언어와 독자와의 관계까지도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종이에서 영상으로, 전북일보의 두 번째 도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북일보는 2024년, 디지털미디어국과 영상콘텐츠부를 신설하며 본격적인 영상 중심 디지털 전환에 착수했다. 변화의 핵심은 유튜브였다. '영상으로 전북을 기록한다'는 새로운 언어로 전북일보는 다시 한 번 지역 저널리즘의 미래를 묻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생존 전략이 아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디지털미디어국이 신설된 후 그 이전보다 2배 이상 유튜브 구독자가 증가했다. 전북일보 유튜브 채널은 도내 일간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특히 콘텐츠의 진정성과 지역 밀착성을 무기로 구독자 수와 조회수를 빠르게 끌어올렸다. 전문 장비와 인력 부족이라는 현실적 한계를 안고도, 매주 새로운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성장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영상 콘텐츠의 포맷도 다채롭다. △현장 밀착 보도 △해설형 뉴스 △인물 인터뷰 △쇼츠 기반 정보 콘텐츠 등 다양성과 실험성이라는 두 날개로 날아올랐다. 故 김수미 배우 별세 후 전국 언론 중 가장 먼저 고향 군산을 찾아 제작한 추모 영상, 윤석열 대통령 탄핵 요구 집회의 생생한 현장을 담은 리포트 등은 지역을 넘어 전국적 공감대와 주목을 끌어냈다. <청년 이장이 떴다!> 프로젝트, 저널리즘의 확장을 실험하다 2025년 신년, 전북일보는 의미 있는 기획을 선보였다. 디지털뉴스와 영상이 결합한 <청년 이장이 떴다!>는 단순한 농촌 르포가 아니다. 도시 출신 MZ세대 기자들이 마을에서 농촌 어르신들과 생활하며 세대 간 교감을 나누는 이 콘텐츠는 영상+텍스트라는 융합적 형식으로 세대 간, 지역 간 경계를 넘는 새로운 저널리즘 모델을 제시했다. 요가 배우기, 공동 그림 작업 등 소소한 활동들이 마을 어르신들과의 유대와 진심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로 발전했다. 이는 단순한 화제성 콘텐츠를 넘어 농촌의 현실을 전하는 저널리즘의 새로운 접근이었다. 이 기획은 디지털뉴스부와 영상콘텐츠부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전북일보가 레거시 미디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디지털 지역신문'의 미래를 실험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정치 콘텐츠 실험, 지역언론이 공론장을 넓히다 전북일보의 유튜브 실험은 지역 콘텐츠에 머무르지 않았다. 영상제작부는 전국적 이슈를 다룬 정치 쇼츠 콘텐츠 제작에도 적극 나서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조기 대선', '유세 현장 르포' 등 민감한 주제를 직설적으로 다뤘다. 이러한 시도는 유튜브의 강력한 알고리즘을 타고 전국 시청자에게 빠르게 퍼져 나가며 전북일보라는 지역 언론이 전국적 공론장에 개입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콘텐츠의 공공성과 정치적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 '지역 기반 전국형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모델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 전북 아카이브'를 향해 전북일보의 영상 콘텐츠는 단순한 뉴스 영상이 아니다. 전북의 사람, 기억, 장소, 사건을 시청각 언어로 기록하려는 시도는 '디지털 전북 아카이브'라는 비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는 전북일보가 영상 콘텐츠를 단순한 클릭 유도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는 증거다. 영상은 지역 정서를 담고, 공동체의 변화를 기록하며, 도민의 일상을 시간의 기록으로 남긴다. 전북일보는 앞으로 △전북현대가 뛰는 그라운드 안팎의 이야기 △전통문화 탐방 △예술인 스토리 △지역 축제·맛집 소개 △전북의 이슈 △정치 등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지역의 삶을 독자들과 공유할 계획이다. 유튜브, 정보의 바다이자 혼돈의 공간 그렇다면 왜 유튜브인가? 지난 4월 23일, 유튜브는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작은 해프닝에서 출발한 플랫폼은 이제 연간 542억 달러 매출을 올리는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뉴스·시사 정보 소비 비율 1위(60.1%)를 기록할 만큼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그 영향력은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추천 알고리즘으로 인한 정보 편향, 가짜뉴스 확산 등 부작용도 함께 커지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유튜브는 지금 이 시대 저널리즘이 피할 수 없는 주 무대다. 모든 미디어가 유튜브에 입점하는 시대. 전북일보는 그것을 단순한 플랫폼 진입이 아니라 언론 언어의 진화로 받아들였다. 지역 저널리즘의 공공성과 신뢰를 무기로 알고리즘에 휘둘리지 않고 지역의 목소리를 전국으로, 세계로 전하고 있다. 변화는 끝나지 않았다 전북일보의 도전은 계속된다. 디지털 전환은 단지 기술적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언론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일이며, 지역 저널리즘의 미래를 다시 쓰는 여정이다. 영상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우리는 여전히 전북을 말하고 있다. 75년의 전통 위에, 다음 75년을 위한 디지털 기록이 오늘도 만들어지고 있다. 유튜브에서 다시 태어나는 지역 저널리즘, 그 실험은 지금도 계속된다.

  • 기획
  • 정윤성
  • 2025.06.01 17:07

[창간특집] 전북자치도, 그린수소 산업 전문인력 양성·전주기 생태계 조성 잰걸음

기후위기 시대, 수소산업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기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는 ‘그린수소’는 탄소중립을 실현할 핵심 에너지로 떠올랐다. 세계 각국이 수소경제의 주도권을 두고 질주하는 현재, 전북은 수소특화산단 조성과 국제표준화, 재활용 실증 등을 통해 조용하지만 단단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러나 수소는 설비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것을 ‘다시 쓸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체계를 돌릴 사람이 있는가’가 관건이다. 전북일보는 창간을 맞아 전북이 수소, 특히 그린수소로 미래를 책임지기 위해 지금 풀어야 할 결정적 숙제를 짚는다. 중공업 중심의 산업화 시대에 영남권에 밀려 성장의 기회를 놓쳤던 전북은 이제 수소를 통해 반등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수소 산업 성장의 핵심축인 그린수소 산업은 여전히 ‘생산’에만 머물고 있고, 제도와 인재, 생태계는 공백 상태다. 지금 전북이 풀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생산을 넘어 순환으로, 실험을 넘어 생태계로 나아가야 할 때다. 정책도 사람도 없다…그린수소 '생태계’ 구축 시급 그린수소는 재생에너지로 물을 전기분해해 생산하는 청정 수소다.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으면서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어 기후위기 대응은 물론, 에너지 자립 측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 미국, 일본 등은 그린수소 생산 설비에 막대한 보조금과 세액 공제를 제공하며, 산업 초기부터 정책적 뒷받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국내 현실은 다르다. 수소차에는 구매 보조금이, 충전소에는 운영 보조금이 지급되지만 정작 수소를 ‘만드는’ 핵심 설비에는 정부 지원이 거의 없다. 현장에서는 '그린수소라는 말을 국가가 강조하지만 막상 시작해보면 손에 쥘 수 있는 지원은 아무것도 없다'는 푸념이 나온다. 전북 완주 테크노밸리의 수전해 설비 전문기업 아헤스는 이를 실감하는 대표 사례다. 고가의 백금·이리듐 대신 값싸고 내구성 높은 비귀금속 촉매를 활용한 수전해 장치를 자체 개발해 주목받고 있으며, 이미 603억 원 규모의 공장 투자를 진행 중이다. 특히 지난 2023년에는 인도와 3억 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도 체결했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선 전북도를 비롯해 정부 차원의 보다 적극적인 기술 R&D 및 설비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기업의 요구다. 아헤스를 이끄는 이중희 대표는 “지금은 탄소중립을 위한 그린수소 산업의 초입기인데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제도적 기반과 초기 지원이 부족하면 산업은 성장할 수 없다”며 “정책이 현장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하나의 현실적 장애물은 인력이다. 수소산업은 설계, 조립, 운전, 유지보수 등 전 과정에서 고도의 기술 역량을 요구한다. 그러나 전북 지역에는 관련 전공자도, 실무 교육을 받은 기능 인재도 크게 부족하다. 한 수소장비 기업 관계자는 “설비는 만들어졌지만 실제 돌릴 사람이 없다”며 “경력직을 뽑기도 어렵고, 신입에게 기능교육을 시키자니 중소기업으로선 리스크가 크다”고 토로했다. 현재 전북에는 수소산업에 특화된 직업훈련기관이나 전문대 수준의 기술교육 모델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실정이다. 우석대가 운영 중인 수소연료전지 IEC 국제표준 기반 인력양성 과정은 전국에서 유일한 프로그램이지만 그 규모와 범위는 산업 수요를 감당하기엔 한계가 있다. 실무 중심의 교육 체계와 민간 협력 기반 확충이 절실한 이유다. 숨가쁘게 달려온 기반확충…이제는 연계 통한 시너지를 낼 때 글로벌 수소 선도국들은 공통적으로 ‘전체를 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독일은 9000km에 달하는 수소 전용 배관망과 51개의 지하 저장시설을 갖췄고, 철강 산업에는 수소환원제철(SALCOS) 기술을 접목해 산업 전반의 탈탄소화를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은 95건의 국가표준, 209건의 단체표준을 정립해 산업 질서를 선점하고 있으며, 혹한기 운행이 가능한 연료전지 기술을 확보했다. 일본은 수소타운 ‘하루미 플래그’ 조성을 통해 생활 속 수소 경험 확산에 집중하고 있다. 전북도 만만치 않은 기반을 갖고 있다. 완주의 수소특화 국가산단, 군산의 CCU 기반 e-연료 생산단지, 우석대·군산대의 사용후 연료전지 재활용 국제표준화 작업까지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산업통상자원부는 김제·완주 일대를 수소클러스터로 지정하고 중대형 모빌리티 실증, 시험 인증 체계를 구축 중이다. 이처럼 기술, 실증, 표준이 모두 전북에 모여 있는 것은 전국에서 보기 드문 구조다. 문제는 이들 기반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과 정책, 인재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엮지 않으면 산업은 결코 돌아가지 않는다. 그린수소 생태계는 단순히 설비를 갖추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생산에서 활용, 회수, 재사용에 이르는 전주기 순환 모델이 정교하게 설계돼야 지속 가능한 산업이 된다. 국내 수소산업 권위자인 이홍기 우석대 부총장은 “그린수소가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성장하려면 이제는 ‘만드는 산업’을 넘어 ‘다시 쓰고 돌릴 수 있는 산업’으로 가야 한다”며 “기술과 표준을 넘어 산업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시스템과 인재를 함께 설계하는 것이 전북의 다음 과제”라고 강조했다.

  • 기획
  • 이준서
  • 2025.06.01 17:01

정재규 전북특별자치도 선거관리위원장 "소중한 투표권 꼭 행사하고, 선거 뒤엔 화합으로"

3일 이면 대통령선거가 마무리되면서 지난해 12월 3일부터 이어졌던 계엄과 내란, 탄핵 등의 정국의 혼란이 일단락 된다. 그런 가운데, 전북특별자치도 전체 선거관리업무를 맡고 있는 정재규 위원장(현 전주지방법원장)을 만나 조기대선의 의미와 국민 참정권 행사 등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전주지방법원장과 전북특별자치도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동시에 맡고 계십니다. 법원과 선관위 모두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질 것 같은데요. “모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공정한 재판을 하는 일,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선거를 관리하는 일. 두 가지 모두 엄중한 사명감을 갖게 되는 일입니다. 특히 요즘과 같이 다양한 의견과 행동이 상충되는 시대적 상황에서 치우침 없이 정의를 실현하고 모두가 수긍하는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해 느끼는 책무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시대적 요구를 받아들이고 국민이 믿을 수 있는 법원과 선관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법원장이 전북선거관위원장을 왜 함께 맡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 법 5조에는 각급선거관리위원중 위원장을 호선하도록 되어있는데 관례상 법관을 위원장으로 호선합니다. 선거과정에서 질의응회답이나 고발장, 개표소에서 투표지의 효력에 관한 이의제기 같은 업무의 특성을 고려한 것인데, 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도록하는 명문화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국내에서는 관례상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은 현직 대법관이, 특별시·광역시·도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은 관할 지방법원장이, 구·시·군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은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겸임한다. 또 중앙, 시·도 및 구·시·군 단위의 선관위에서는 선거관리위원으로 법관이 참여한다.)” 대한민국 역사상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이 벌써 두 번째인데, 이번 대선이 갖는 의미, 그 만큼 클 것 같은데요. “12 ·3 비상계엄부터 헌재의 탄핵심판이 선고된 기간 동안 대한민국의 여론은 찬·반으로 극심하게 갈렸고 급기야 그 여파가 사법부에까지 미치며 법원이 폭동의 표적이 되는 사례도 발생했습니다. 다수의 군중 심리를 선동한 극단적 대립과 혐오로 치달으며 우리 사회는 혼란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우리 국민을 믿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 언급된 3·1운동과 불의에 항거한 4·19의거 그리고 5·18 광주 민주항쟁과 12·3 비상계엄을 막은 국민의 행동에서 보듯이, 우리 국민은 이미 민주주의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잘 알고 행동해 왔으며, 이번 대선이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 국민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 주권자로서 가장 소중한 권리인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저를 비롯한 선거관리위원회 구성원들은 이번 대선이 공정하고도 투명한 선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선관위의 신뢰도가 과거에 비해 상당히 저하돼 있습니다. “우후죽순처럼 제기되는 부정선거 의혹이 선관위 내부의 채용비리 문제와 겹치면서 선관위의 신뢰도가 상당히 낮아진 점은 무척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국민의 의사를 투표로 나타내는 과정인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뢰 회복이 급선무일텐데...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다면 다시 얻을 수 있도록 절치부심하며 반성하고 노력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해야겠지요. 일단 할 수 있는 부분부터 해 나가고 있는데요, 내부의 혁신과 변화는 물론이고 선거에서 의심의 단초가 될 만한 부분들을 하나씩 개선해 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국회의원선거부터 사전투표함 보관장소 CCTV 영상을 24시간 실시간 공개하고 있으며, 개표과정에 수검표 단계를 추가하여 단 한표의 오류도 없도록 개선했습니다.” 이번대선에는 일부 그 주장 층이 본투표에만 참여하자는 등의 주장도 펼치고 있습니다. “역으로 말씀드리자면 선관위 입장에서는 선거당일 본투표만 실시한다면, 업무가 되레 편합니다. 그런데도 사전투표 제도를 도입한 것은 그 취지가 국민의 편의와 참정권을 증대시키기 위한 것인데, 그동안 선관위가 계속 설명과 해명을 해왔듯, 그 의혹 제기가 ‘침소봉대’라고 판단됩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투·개표사무원의 외국인 참여 논란을 잠재우고자 국적 확인 절차를 강화했고, 사전투표자수 부풀리기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관내·외 사전투표자수를 사전투표소별로 1시간 단위로 공개한 바 있습니다. 또한 (사)한국정당학회와 (사)한국정치학회가 구성한 ‘공정선거참관단’이 투·개표의 모든 절차 과정을 참관하고 그 과정을 전 국민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선거의 모든 과정을 공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선거의 결과가 나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모든 선거가 부정선거라고 치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선관위 위원장이기도 하시지만 법원장이신데요, 대선 선거이후 선거사범 재판 방향과 계획도 궁금합니다. “법원은 기본적으로 1심 6개월, 2심 3개월, 대법원 3개월 등 '6·3·3' 원칙을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재판 지연 해소를 우선과제로 뽑은 대법원의 입장이기도 합니다. 공직선거법 제270조에 규정되어 있는 6·3·3 원칙은 1994년 선거법이 제정된 때부터 있던 조문입니다. 그렇지만 재판의 진행은 재판장의 권한인데, 사건의 복잡성이나 검찰과 피고인 사이의 치열한 공방 그리고 그에 따른 많은 증거조사의 필요성 등 구체적인 선거범죄 사건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게 잘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선 과정에서 발생한 선거범죄 사건에 대하여는 공직선거법이 규정한 원칙에 따른 신속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선거범죄 담당 재판부에게 잘 안내하겠습니다.” 선거일이 하루 앞입니다. 선거운동이 아닌 유권자의 투표참여권유활동 어디까지 보장되는지요. “공직선거법 제58조의2에 따라 누구든지 투표참여 권유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호별로 방문한다거나 투표소로부터 100미터 안에서는 할 수 없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무원 등은 원칙적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그러한 사람은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 내지 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을 포함하여 하는 경우나 현수막 등 시설물, 인쇄물, 확성장치, 녹음 내지 녹화기, 어깨띠, 표찰 등의 표시물을 사용하여 하는 것은 특정 정당 내지 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이 되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엄지를 들거나 손가락으로 ‘˅’를 표시하는 등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의 기호를 표시한 투표인증샷이나 선전시설물 앞에서 촬영한 투표인증샷을 선거운동 또는 투표참여 권유 문구와 함께 인터넷에 게시·전송하는 행위는 할 수 있습니다. 투표참여 권유활동을 하면서 법에 위반되어 재판에 이르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으니 투표참여 독려의 목적이라 하더라도 법에 저촉되는 사항이 없는지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선거와 관련해 언론사의 역할에 대해 당부말씀이 있다면? “언론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여론을 전달하고 형성하는 역할과 책무는 언론에게 주어진 막중한 의무라 할 것입니다. 단, 왜곡되지 않은 올바른 소리를 전달할 때 그 의무를 다 한다 할 수 있을텐데요. 요즘 1인 미디어와 수많은 인터넷 언론, 유튜브 채널이 기존의 언론 기능을 대체하며 잠식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바른 언로를 통해 진실된 소리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선거에 있어서 공정한 언론의 역할이야 말로 가장 중요하지요. 선거가 끝난 후 결과에 상관없이 서로를 인정하고 믿을 수 있도록 언론도 함께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전북도민과, 전북일보 독자, 그리고 유권자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은? “6월 3일은 대한민국의 제21대 대통령선거일입니다. 국민의 선택으로 당선되는 후보자는 당선이 결정됨과 동시에 대통령의 권한과 책무를 부여 받게 됩니다. 도민 여러분께서는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부여된 소중한 권리를 꼭 행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난 후에는 선거결과의 유불리를 떠나서 대립을 멈추고 대한민국이 화합될 수 있도록 선거결과에 승복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정재규 전북선거관리위원장은 정재규 위원장은 전주 출신으로 전북대사대부고와 전북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 사법시험(32회∙사법연수원 22기)에 합격한 뒤 광주지법∙전주지법∙광주고법 판사, 전주지법 수석부장판사, 전주지법 군산지원장, 창원지법 수석부장판사, 광주지법 순천지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14년과 2015년 2년 연속 우수법관에 선정되기도 했다. 법원 수석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사법행정에 능통한데, 꼼꼼하면서도 소탈한 성격으로 법원장이라는 직책을 따지지 않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법원 내에서 후배판사들과 직원들의 신망이 높다. 선거관리업무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사전투표소에 직접 나가 점검하는 등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선관위에서 직원들로부터 신망이 높다. 정 위원장은 “이번 대선에서 의문과 의혹이 없도록 선관위가 공정하고 엄격한 선거관리를 해 선거가 차질없이 치러지도록 하고 나아가 우리나라 선거제도가 더욱 발전할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 기획
  • 백세종
  • 2025.06.0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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