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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영화 촬영 모든 과정 전주에서…'시네마 시티' 도약

‘오징어게임’, ‘폭싹 속았수다’ 등 인기작품의 촬영지로 유명한 전주시가 글로벌 영화영상산업 도시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시는 영화영상산업 거점별 특화구역을 연결하는 펜타곤 벨트를 중심으로, 기획부터 제작, 후반까지 전 과정을 지역 안에서 완결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하기로 했다. 여기에 글로벌 스튜디오 유치, 독립영화 생태계 강화, 인재 양성 등 핵심 과제를 차근차근 실행하고 있다. 전주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가 될 영화영상산업의 비전과 실행 전략, 기대 효과에 대해 살펴본다. 촬영지에서 산업도시로…전주가 바꾸는 영화의 지도 전주는 1957년 한국 최초의 컬러영화 '선화공주'가 촬영된 이래, ‘기생충’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이 만들어진 도시다. 올해 26회를 맞이한 전주국제영화제는 독립·대안영화의 허브로 자리 잡았고, 아시아권에서 주목받는 영화제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명성과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전주는 그동안 주로 ‘로케이션 촬영지’로 기능해 왔다. 현재 세계 영상산업은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글로벌 OTT의 확산, K-콘텐츠 수요 증가 등이 촉진되면서 영상산업은 ‘촬영 중심’에서 ‘기획·제작·투자까지 이어지는 종합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다. 전주시는 이런 변화에 대응하고자 지난해 10월 ‘글로벌 영화영상산업 수도’를 도시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오는 2034년까지 총 5750억 원이 투입되며, 4대 전략, 10대 추진과제로 구성됐다. 비전의 중심엔 전주권 5개 거점별로 기능별 특화단지를 조성해 연결하는 ‘펜타곤 벨트’가 있다. 벨트의 주요 거점은 상림동, 고사동 영화의 거리, 만성동, 전주역, 전주 북부권이다. 우선 상림동에는 미래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탄소중립 영화영상 촬영단지가 조성된다. 고사동 영화의 거리는 전주형 영화·관광산업 융복합 문화단지로 거듭나고, 만성동은 방송·미디어 영상콘텐츠 발굴의 중심지가 된다. 전주역 일원은 VR, XR 등 실감미디어를 활용한 콘텐츠 다양성을 확보하게 되고, 북부권에는 글로벌 블록버스터 촬영이 가능한 쿠뮤필름 아시아 제2 스튜디오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 같은 구상은 영화 제작의 전 과정을 전주 안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기획, 제작, 후반, 소비가 지역 내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기존에는 수도권에서 기획된 영화가 전주에서 촬영만 이뤄지고, 대부분의 후반작업은 다시 서울로 이동했다. 시는 이 구조를 바꾸기로 했다. 전 과정이 한 도시에 밀집되면 콘텐츠 제작의 효율성과 지역경제 효과 모두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촬영부터 후반, 인재양성까지 기능별 기반시설 구축 시가 추진 중인 영화영상산업 정책의 핵심은 지역 안에서 영화의 기획부터 상영까지 전 과정을 처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촬영 인프라, 후반제작 시스템, 독립영화 생태계, 기술인력 양성, 콘텐츠 산업화 등 영상산업의 각 기능을 지역 내에서 실현하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먼저 촬영 인프라 구축을 위해 상림동 전주영화종합촬영소 일원에 탄소중립 영화영상 촬영단지가 조성된다. 면적은 약 10만㎡이며, 주요 시설로는 영화영상 실증지원센터, 영상지식산업센터, 버추얼 스튜디오, 특성화 세트 등이 계획돼 있다. 시는 탄소중립 미래 규제에 선제 대응한 영화 제작 환경을 만들고 글로벌 OTT 콘텐츠 촬영이 가능한 민간스튜디오 입주 부지도 조성해 기존 촬영소와 연계할 계획이다. 전주 북부권에는 쿠뮤필름 아시아 제2 스튜디오를 유치한다. 뉴질랜드에 본사를 두고 ‘아바타’, ‘뮬란’ 등 대형 영화 촬영 경험이 있는 쿠뮤필름 스튜디오는 지난해 전주에 한국법인을 설립했고, 올해 1월부터 전주영화종합촬영소 위탁운영을 시작했다. 시는 블록버스터 영화 촬영이 가능한 대규모 스튜디오를 조성하고 쿠뮤필름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외 영화 촬영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방침이다. 후반제작 기반도 함께 강화된다. 실증지원센터는 2026년 착공을 목표로 하며, 영상 콘텐츠 기술 검토와 R&D, 디지털 테스트베드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동시에 한국형 영화 효과음원 사운드 댐이 2026년까지 구축돼 음향 후반작업 자립도를 높인다. 전주의 주요 촬영지를 디지털 자산으로 변환하는 ‘공공 어셋 라이브러리’ 구축도 진행 중이며, 이는 버추얼 스튜디오 촬영에 활용될 예정이다. 독립영화 생태계 조성도 중요한 축이다. 고사동 영화의 거리에는 총사업비 720억 원이 투입되는 ‘전주 독립영화의 집’이 건립 중이다. 이 시설은 독립영화 전용 상영관 3개관, 색보정·음향마스터링 설비, 야외광장, 라키비움(기록·도서·전시 복합공간) 등으로 구성된다. 완공 목표는 2026년이다. 제작부터 상영까지 전 과정을 지원할 수 있는 이 시설은 독립예술영화 중심 도시로서 전주의 위상을 뒷받침할 거점 역할을 하게 된다.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도 함께 조성된다. 전주영화제작소 부지에 추진 중인 한국영화기술 아카데미는 실습과 현장 중심 교육에 특화된 기술교육기관이다. 총사업비는 400억 원이며, 첨단 영상기술과 후반제작 전문 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콘텐츠 산업화 기반도 함께 마련되고 있다. 시는 한옥, 한복, 한지 등 전주의 자산을 소재로 한 영상기술 콘텐츠 IP를 개발하고, 해당 콘텐츠는 VR·XR 등 실감형 미디어로 제작돼 영화 이외의 영역에서도 활용될 예정이다. 영화영상이 바꾸는 전주의 산업지도 전주시가 추진 중인 영화영상산업 정책은 지역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시는 영화영상산업 비전 실현으로 2034년까지 직·간접 일자리 7000개 창출과 200개 기업 유치, 연간 지역매출 2000억 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기반시설 구축과 기업 유치, 인력 양성, 콘텐츠 제작 등이 계획대로 작동하면 충분히 가능한 수치라는 설명이다. 제작 기반이 지역에 자리 잡으면 배우와 제작진, 후반작업 인력까지 전주에 체류하게 된다. 이를 통해 숙박, 식음료, 교통, 세트, 소품, 의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 경제에 직접적인 지출이 발생한다. 쿠뮤필름 스튜디오가 전주에 스튜디오를 운영하기 시작하면, 외국 영화 한 편 촬영으로만 수백 명의 고용과 수십억 원의 직접 지출이 발생할 수 있다. 부산에서 ‘블랙팬서’를 촬영하면서 9일 동안 직접 지출이 40억 원에 달하고, ‘호빗시리즈’를 찍은 뉴질랜드 호빗마을 관광객이 연간 50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에서도 이런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전주는 이미 여러 콘텐츠 제작지로 주목받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폭싹 속았수다’, 영화 ‘기생충’ 등이 전주에서 촬영됐으며, 전체 분량의 80% 이상을 전주에서 촬영한 드라마 ‘당신의 맛’도 최근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이는 도시 이미지 제고와 관광객 유입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후반작업까지 전주에서 이뤄진다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교육 기반과 제작 기반, 유통 시스템이 연결되면 창작자들은 전주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게 된다. 인재가 모이고, 기술이 쌓이고, 산업이 형성되는 선순환 구조는 장기적인 도시 성장의 기반으로 이어진다. 현재 전주의 영화영상 산업은 변화의 문턱에 들어섰다. 전통과 문화유산, 독립영화제의 기반 위에 첨단기술과 원스톱 지원 체계를 덧붙이고 있다. 콘텐츠의 기획부터 유통까지 지역 안에서 이뤄질 때, 영화는 산업이 되고 지역의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이 된다. 우범기 전주시장 “영화산업으로 전주의 100년 미래 이끌겠다” “전주는 이제 영화 촬영지에 머무르지 않고, 콘텐츠가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지는 제작 도시로 나아갑니다. 앞으로 전주에서 기획부터 후반작업, 상영까지 영화 제작의 모든 단계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우범기 전주시장은 전주가 영화영상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해 전주 곳곳을 기능별로 특화한 ‘펜타곤 벨트’ 전략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제작 인프라, 인재 양성, 상영 환경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산업 전 과정을 지역 안에서 완결하는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전주의 역사와 예술성, 그리고 독립영화에 대한 정체성이 쿠뮤필름 같은 글로벌 기업을 끌어들인 가장 큰 이유”라며 “쿠뮤 아시아 제2 스튜디오가 들어서면 블록버스터 제작 환경이 전주에 자리 잡게 되고, 수많은 창작자와 배우들이 장기간 머무는 도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 시장은 “전주가 콘텐츠로 먹고사는 도시, 콘텐츠로 일자리를 만드는 도시가 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행에 속도를 내겠다”면서 “제2의 오징어게임, 제2의 기생충이 전주의 경제가 되고 문화가 되도록 강한 영상산업 생태계를 만들어 내겠다”고 말했다.

  • 기획
  • 강정원
  • 2025.06.01 16:49

[창간특집] 부안군, 산단·철도·국제학교 유치…글로벌 경쟁력 높인다

민선 8기 부안군이 산단과 철도, 국제학교 유치를 통해 미래 100년 부안의 새로운 희망을 써가고 있다. 새만금(RE100) 산업단지 확보와 서해안 철도 구축, 국제케이팝학교 유치 등 3대 핵심 시책을 야심차게 추진하면서 지역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부안군은 3대 핵심 시책 추진을 통해 대규모 기업유치 및 양질의 일자리 창출, 지역 접근성 향상, 글로벌 인프라 구축 등 젊은 층을 유입하고 생활인구 확보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부안군의 미래를 바꿀 3대 핵심 시책을 중점적으로 살펴봤다. 재생에너지, 선택 아닌 생존 필수…전국 최초 RE100 산단 집중 주요 반도체 생산부품 업체인 ASML은 “2040년까지 모든 생산·유통 과정에서 ‘넷-제로(Net-zero·탄소중립)’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제 기업들에게 재생에너지 생산 및 사용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사항이다. 부안군은 전북 서남권 해상풍력 발전단지와 연계를 통해 새만금 농생명용지 7공구를 산업단지로 전환해 기업이 찾아오고 일자리가 넘쳐나는 전국 최초 RE 100 산단을 조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부안군은 지난해 11월 국토연구원 주관 새만금 기본계획 재수립 용역 중간보고회에서 새만금 지역의 부족한 산업용지 확충 방안과 관련해 농생명용지 7공구의 산업단지 전환이 최적의 방안으로 도출된 만큼 올 연말 확정되는 최종안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나갈 예정이다. 실제 새만금 국가 산단 내 기업투자 증가에 따른 산업용지 부족과 첨단 신산업 및 국가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산업용지 추가 확보가 시급한 상황으로 현재 새만금 기본계획을 유지할 경우 2030년 3.92㎢, 2035년 11.53㎢의 산업용지가 부족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따라서 부안군은 이미 해상풍력 2.46GW와 수상태양광 2.1GW, 수전해 기반 수소생산기지 등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글로벌 대기업들이 요구하는 재생에너지 기반 RE100 산단을 조성하기에 최고의 적지라는 점을 집중 부각하고 있다. 서해안 철도‧영호남내륙철도 구축…십자형 철도망 중심지 우뚝 호남 서해안 철도망 구축은 수십년째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부안군은 군산에서 부안~영광~목포를 잇는 서해안 철도와 부안~전주~김천선 영로남내륙철도 구축으로 부안을 십자형 철도망의 중심지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특히 전북특별자치도와 전라남도를 연결하는 서해안 철도 건설을 통해 환황해권 시대 관광산업 기반 마련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실현하고 수도권과 국토 서남권의 산업·관광·경제 거점인 새만금과 부안, 고창, 영광, 목포까지 연결해 고속·대량 수송 체계 구축으로 지역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철도 연결지점 타당성 용역을 선제적으로 추진해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신규 사업 제출과 서해안 철도 기자회견 추진, 국가철도망 반영 국민 서명운동 등을 전개했으며 올 들어 서해안 철도 국가계획 반영 정책포럼 개최 등을 통해 강력한 의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국제케이팝학교 유치…글로벌 K-문화·K-관광 거점 도시 도약 케이팝은 글로벌 K-문화 콘텐츠로 전 세계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부안군은 전북특별자치도의 국제케이팝학교 설립 계획에 적극 동참하며 지지하고 있다. 특히 새만금 3권역은 행정구역이 부안군으로 확정된 지역인 만큼 신속한 설립 인가가 용이한 이점이 있는 곳으로 국제케이팝학교 실현을 앞당길 수 있는 것으로 기대된다. 부안군은 지난해 6월 국제케이팝학교의 새만금 3권역 내 설립을 전북특별자치도에 건의했으며 당시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는 “민간투자자가 사업의 확장성, 수익성, 인프라 구축 등 전반을 고려해 투자가 용이한 지역에 입지를 선정할 것”이라고 밝혀 이미 행정구역이 확정된 3권역의 경쟁력이 높은 상황이다. 부안군은 행정구역 확정으로 신속한 설립 인가 추진 가능과 함께 상․하수도 등 핵심 기반시설 확보용이, 부안 관할권 내 설립 시 군 재정 투입, 3권역 개발과 연계한 글로벌 교육․케이팝 클러스터 조성, 3권역의 탁월한 정주환경, 새만금 내․외부 접근성 우수 등 입지적 감정을 강조하고 있다. 부안군은 새만금 3권역에 국제케이팝학교를 유치해 글로벌 K-문화와 K-관광의 거점 도시로 도약한다는 구상이다.

  • 기획
  • 홍석현
  • 2025.06.01 16:45

[창간특집] 고창군, 명사십리 일대 세계적 관광지로 육성 박차

고창군 해리면 동호해수욕장과 상하면 구시포해수욕장을 잇는 해변은 유리알처럼 곱디고운 백사장이 10리에 걸쳐 있다하여 ‘명사십리’라 부른다. 세계 지리학적으로도 특이성을 인정받아 2023년 5월 ‘전북 서해안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포함되기도 했다. 고창 명사십리의 하이라이트는 석양이다. 일몰 시간이 되면 붉은 노을과 하늘빛 바다, 젖은 흙에 반사되어 붉은빛을 띠는 모래사장, 소나무들의 실루엣이 로맨틱한 장관을 만들어낸다. 육당 최남선 선생도 기행문 <심춘순례>에서 조선의 빼어난 풍광 10경 중 하나로 서해노을을 꼽았다. 때 묻지 않은 미지의 땅 고창 명사십리 해변 일대에는 모텔이나 펜션은 물론, 그 흔한 카페도 하나 없다. 최근에서야 근처 어촌계에서 마을수익사업으로 숙박시설을 마련한 게 전부다. 장호어촌체험마을은 숙박시설을 공동 운영해 나오는 수익금을 70세 이상 주민들에게 매달 7만원씩 지급하고 있다. 제주 애월, 강원 양양 등 전국의 해안 곳곳이 부동산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딱 한 곳 고창만큼은 예외다. 해변 중심부에 국·공유지가 있어 개발이 쉽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땅 주인은 기획재정부, 국방부, 한국전력공사 등으로 민간이 접근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좀처럼 개발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주민들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크다. 한 주민은 “마을사람 대부분이 60대를 넘기고 있어 새로운 활력소가 절실하다”고 하소연했다.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변모” 최근 고창 해안가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수십 년째 꿈쩍 않던 정부 부처가 움직이며 길을 터줬다. 심덕섭 고창군수와 관련부서 직원들이 수차례 기재부를 찾아 설득한 끝에 지난해 7월 명사십리 한 중앙에 있는 10만5344㎡ 부지 매각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국방부와 한국전력공사 역시 큰 틀에서 지역발전을 위한 부지 활용과 매각에 동의하며 세부절차를 조율중이다. 이에 더해 군민 숙원사업이자 해안 개발의 핵심인 ‘노을대교’도 올해 착공을 앞두고 있다. 노을대교는 고창군 해리면 동호와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를 연결할 전체 7.48㎞ 길이의 다리를 말한다. 완공되면 62.5㎞를 우회해야 했던 이동 거리가 단 8㎞로 줄어든다. 다리가 놓이면 기존 한나절 넘게 걸리던 거리를 단 10분이면 오갈 수 있게 된다. 중견기업 4개사 3000억원+모나용평 3500억원 투자 유치성사 최고의 풍경을 자랑하는 해안가에 대규모 미개발 부지가 있다는 소문은 국내 레저기업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고 있다. 때맞춰 서남권풍력발전단지 조성사업, 고창신활력산업단지 삼성전자 투자유치, 유네스코 세계유산 7가지 보물 보유 등이 호재로 작용하며 고창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고 있다. 2023년 7월30일 국내 중견기업 4개사(LIG시스템, ㈜P&K INC, 영풍제약, 서울경제TV)가 고창군과 MOU를 맺고 명사십리 관광개발사업에 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각 업체들은 고창 명사십리 일대에 리조트와 숙박, 스포츠, 휴양·레져시설을 만들 계획이다. 이와 동시에 국내 리조트업계 1위인 ㈜모나용평도 명사십리 주변의 땅을 고창군으로부터 100억원을 들여 사들였다. 모나용평은 2027년까지 3500억원을 들여 중대형급 휴양형 콘도미니엄 471실을 비롯해 700석 규모의 컨벤션센터를 건설할 예정이다. 또 관광활성화를 위해 주변 염전부지를 활용해 18홀 대중형 골프장을 짓고, 주변에는 고창군이 추진하는 국제카누슬라럼 경기장, 생태갯벌플랫폼, 세계자연유산센터 등 다양한 레져·관광시설도 갖춰질 예정이다. 1조원대 메가프로젝트 “해양레저 관광의 세계적 메카로” 고창군은 2030년까지 공공개발과 민간투자 등 1조원 상당이 투입되는 ‘고창 명사십리 해양관광지 조성사업’을 추진중이다. 서해안 노을을 바라보는 최고의 자리에 온가족 놀거리와 쇼핑, 숙박시설을 만들어 베트남 푸꾸옥,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를 능가하는 세계 최고의 선셋비치와 해양레저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목표도 세웠다. 특히 해양수산부 ‘복합 해양레저관광도시 조성사업’ 공모를 통해 전국에 명사십리를 알리고 국비도 확보할 방침이다. 여수와 부산 등이 참여를 밝히면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고 있지만, 군은 공모참여 최소 조건인 민간투자 8000억원 중 6500억원이 먼저 확보된 만큼, 충분히 승리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민간투자 활성화에 기폭제로 작용할 ‘관광지 지정절차’도 속도를 내고 있다. 관광지로 지정될 경우 투자기업들의 개발부담금이 감면·면제되고, 각종 세제 지원 등을 받게 된다. 군은 명사십리 관광지 지정·군관리계획(지구단위) 변경 용역을 올 연말까지 마무리하고,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는 관광지 지정과 조성계획 승인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심덕섭 고창군수는 향후 5년이 고창군과 서해안 관광여건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심 군수는 “새만금국제공항이 2029년 개항을 목표로 건축절차가 시작됐고, 노을대교를 통해 공항에서 단 30분 만에 전세계의 관광객들이 고창 서해안을 찾게 된다”며 “오래도록 머물며 재미와 감동을 느끼는 명품 관광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심 군수는 “해양관광뿐 아니라 내륙 관광자원과도 연계될 수 있도록 인접 시·군간 연대 협력해 나가겠다”며 “고창이 가진 문화·역사·예술·관광 등 매력 자산을 활용해 산업화하고, 강한 경제를 바탕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가는 고창군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기획
  • 박현표
  • 2025.06.01 16:27

[창간특집] "아름다운 무주 자연 속에서 같이 영화 볼까요"…무주산골영화제 6~8일 팡파르

제13회 무주산골영화제가 6월 6일부터 8일까지 무주군 일원에서 펼쳐진다. 아름다운 무주의 대자연 속으로 떠나는 ‘영화소풍’, 그 자체로 힐링이 되는 시간이다. 올해는 18개국 86편의 영화와 공연, 토크, 그리고 다양한 부대 행사가 펼쳐질 예정. 조금 더 심플하게, 하지만 더 특별하게 그려질 3일간의 낭만 여정을 따라가 보자! 관람 포인트 제13회 무주산골영화제를 알차게 즐기려면 공간별 특성을 제대로 알고 누려야 한다. 무주산골영화제 측은 실내(무주산골영화관, 무주예체문화관, 전통생활문화체험관)는 ‘영화’ 중심으로, 야외(무주등나무운동장, 한풍루, 덕유산국립공원 대집회장, 태권도원)는 ‘공연’과 ‘이벤트’ 위주로 기획하는 등 특별함을 더했다. 창(窓): 산골영화관 2개 관 <창>은 무주산골영화제 유일의 경쟁 무대다. 한국영화장편 경쟁 부문으로 탈북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은 박준호 감독의 <3670> 등 극영화 6편을 비롯해 게임과 현실을 오가는 정재훈 감독의 다큐멘터리 <에스퍼의 빛>, 인간과 동물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허범욱 감독의 애니메이션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 등 8편이 경쟁한다. 숲(林): 덕유산국립공원 대집회장 무주산골영화제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숲속 극장. 올해는 6일과 7일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 수상작 <플로우>(2024)를 비롯해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한국 관객의 힘을 보여준 최고의 화제작 <더 폴: 디렉터스 컷>(2024) 등 인간과 자연, 음악과 인생, 사랑과 이별, 아름다움에 관한 동시대 최고의 영화, 총 6편이 상영될 예정이다. 길: 태권도원(도약센터 3층 대강당) <길>섹션은 ‘마을로 가는 영화관’의 형태로, 올해는 세계 태권도 성지 ‘태권도원’에서 진행한다. 태권도 체험 프로그램인 <태권스테이>와 연계한 <별빛 시네마>를 선보일 예정으로 2023년 개봉 당시, 남녀노소 모든 연령층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화제의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이 상영된다. 재미 포인트 무주산골영화제의 매력 중 하나는 바로, 좋은 영화 못지않게 뜨거운 공연 열기. 올해도 <락>섹션과 <키즈스테이지(kids stage)>에서 모든 연령층을 아우르는 뮤지션 공연과 책, 미술, 영상 등 다양한 장르가 선사하는 재미와 만날 수 있다. 락(樂): 무주등나무운동장 故 정기용 건축가가 설계한 등나무운동장이 무주산골영화제의 메인 공간. 천연 잔디가 펼쳐진 운동장에서 즐기는 공연과 토크, 브랜드 팝업 이벤트가 일품이다. 올해는 6월 6일 ’넥스트 액터 최현욱‘의 야외 토크(11:30~)부터 6월 8일 무성영화 라이브연주 ’<스피디>with CHS’(20:00~)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키즈스테이지(Kids stage): 한풍루(지남공원) <키즈스테이지>에서는 미취학 아동은 물론, 가족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더 핑크퐁 컴퍼니’의 베베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장편 애니메이션 <베베핀 극장판: 사라진 베베핀과 핑크퐁 대모험>(2025)이 극장 개봉 전 무주 관객과 만나는 것을 비롯해 총 6편의 영화가 선보인다. 태권도진흥재단과 함께 하는 ‘영화 & 공연’, <위대한 태권도>도 관람할 수 있다. 영화 상영 사이사이에는 ‘서커스 공연’와 ‘양치 습관 교육’ 등 이벤트가 기다린다. 어린이놀이터 ‘나비숲’은 가족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휴식과 힐링의 공간이다. 토크 포인트 무주산골영화제는 그동안 전 세계 동시대 영화감독 중 영화 미학의 최전선에 있는,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를 가진 감독 1인을 선택해 그의 영화 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동시대 시네아스트>와 잠재력 있는 배우를 소개하는 <넥스트 액터>를 선보이며 주목을 받아왔다. 올해는 한국 영화를 응원하고 한국 영화의 다채로운 풍경을 선보이기 위해 한국 영화감독 특집 <디렉터즈 포커스>와 <넥스트 시네아스트>를 더했다. <넥스트 액터 NEXT ACTOR> 배우 최현욱_제13회 무주산골영화제에서는 배우 최현욱의 연기 세계를 탐구할 수 있는 작품과 만날 수 있으며 GV(관객과의 대화) 및 스페셜 야외 토크, 사인회도 진행된다. <동시대 시네아스트> 감독 션 베이커_칸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가 동시에 인정한 션 베이커 감독의 주요작 6편을 엄선해 상영한다. 국내 주요 평론가들이 참여한 비평서도 발간 예정이다. 선설 <디렉터즈 포커스> 감독 엄태화_동시대 한국 영화의 최전선에 있는 상업영화 감독 1인을 선정해 관객들에게 집중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초기 단편작 <선인장>(2003)을 비롯해 5편의 작품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 선설 <넥스트 시네아스트> 감독 박세영_한국 영화 미학의 영토를 확장할 수 있는 예술적 비전과 능력을 지닌 영화감독을 발굴·조명하는 특집으로 감독의 영화와 뮤직비디오, 사진 작품들을 영상 전시 형태로 선보인다. 황인홍 무주산골영화제 조직위원장 "친환경·안전·재미 잡은 국내 유일 휴양 영화제"“무주산골영화제는 덕유산국립공원 대집회장 등 자연 속에서 즐기는 영화제, 휴식과 낭만을 콘셉트로 한 국내 유일의 휴양 영화제로 올해도 무주에 최적화된, 무주만이 할 수 있는, 무주라서 가능한 영화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울러 친환경을 실천하는 안전하고 재미있는 영화제라는 인식을 이어갈 수 있는 장치들이 다양하니까요. 마음껏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유기하 무주산골영화제 집행위원장 "무주산골영화제, 12년 만에 변화의 바람... '재도약을 위한 새로운 시도'"“올해 열세 번째 영화소풍은 조금 달리 준비했습니다. 12년간 5일이었던 행사 기간을 3일로 줄이고 프로그램 전체 구성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재도약과 성장을 위한 시도라고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산골 무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숲’이 있어 가능한 게 바로 ‘무주산골영화제’입니다. 도시 영화제가 익숙한 모두에게 불편할 수 있는 여정이지만 여러분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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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효종
  • 2025.06.01 16:24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46) 각 지방 동학농민군에 대한 뒤처리, 법부에 보고된 첩보류

이번에 소개할 첩보류는 모두 3종류이다. 먼저 『첩보(牒報) ①』(구분하기 위해 임시로 부여한 번호, 규장각 소장도서 26300)은 1895년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 전국 각도에서 법부로 보내온 첩보들을 철한 것이다. 전국 각지방에서 범죄 혐의자를 체포하거나 범행 내용을 상세히 조사하라는 법부의 관문(關文)에 대한 보고서다. 첩보에는 <1호> 충청도 충주목사(忠淸道忠州牧使) 이종원(李鍾元)의 보고서(1895.4.25.)를 비롯하여 모두 15건의 보고서가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1호> 첩보인데, 충주군 금목면(金目面) 오룡리(五龍里) 정택진(鄭宅鎭)이 동도라는 이유로 이규백의 조카를 타살했다는 누명을 쓴 일과 관련된 복잡다단한 사건의 전말을 담고 있다. 충주 상민(常民) 노백용(盧白用)이 농민군에 참여한 후, 자기 돈을 오랜기간 동안 갚지 않던 양반 이규백(李圭白)에 대한 보복으로 그의 조카를 살해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한편 진사 정영진(鄭榮鎭)은 자신의 동생 정택진이 노한(盧漢)을 몰래 도와 이반(李班)을 죽였다 하고 살옥(殺獄)의 혐의로 붙잡혀 죽었으니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하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 이규백이 노에게서 빌린 돈이 기천금(幾千金)이었는데, 매번 갚지 않아서 서로 힐란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작년 가을 동도(東徒)가 창궐할 때 노가 동도에 가입하여 동민을 늑탈하였다. 이후 동민들이 노의 집을 파괴하여 동중에서 축출한 사건이 있었고 이에 다시 노한(盧漢)이 그의 처남 전만철과 함께 이규백의 조카를 잡아 타살하고 난 후 도망갔다는 것이었다. 이때 마침 이규백이 참모사가 되어 호남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금영에 도착, 자신의 형 명원(明遠)으로 하여금 전만철 등을 관련자를 붙잡아 심문하였다. 이후 법부의 제사에 따라 이규백과 이명원, 도룡리 마을 사람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였다. 두민 정배영(鄭配永)의 말에 따르면, “작년 9월 14일 노백용이 동민을 함부로 가르칠 때 한 동이 그 협박을 견딜 수 없어 모두 동학에 참여하였다. 정진사의 동생도 또한 그 중에 참여한 후 9월 17일에 가까운 동네에 있는 민보(民堡)가 일어나 노한을 폐하고 축출하였다”고 한다. 이어 9월 28일 노한은 처남 전만철을 거느리고 이반을 잡아 이내 타살한 것이라 말했다. 사건 전말에 대해서는 서로 배치하는 증언을 하였고, 특히 몰래 도운 정택진의 혐의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났다. 노한의 독채와 공료는 모두 정택진의 시킨 바이지만, 그 금액은 이미 3석락 답을 팔아서 갚은 것이고 미진한 천여 량도 또한 작년 가을 노한이 동도를 빙자하여 와서 독촉할 때 마저 준 것이니 지금은 더 이상 추론할 것이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 송사의 논란은 이규백이 소위 수범(首犯)인 노가가 전가와 함께 정반을 사주한 것이었다. 정작 당사자는 도주하였고, 억울하게 죽은 이반의 조카, 전만철과 정택진 등에 대해 명확하게 조사하지도 않고 바로 포살(砲殺)한 상태였다. 이렇게 충분한 증거가 없이 정택진의 음조(陰助) 여부를 밝혀 단안(斷案)을 내리기 어려웠기 때문에 법부에서 각인의 공초를 검토하여 처분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 내용은 다시 『첩보②』(규장각 소장 26287)의 자료에서 재론되고 있었다. <8호>에서는 충주 주민 이규백(李圭白)과 노백용(盧白用)의 관계 및 이규백의 조카에 관한 살인사건을 재조사한 보고다. 이규백은 참모관으로 호남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공주감영에 돌아와 포교를 거느리고 전만철을 붙잡아서 공초하여 이를 도와준 정택진을 포살(砲殺)하였던 전말을 자세히 적었다. 이 문건은 앞 서의 첩보에 비해 9일 정도 늦어 1895년 윤 5월 4일에 보고되었다. 그렇지만 이전의 첩보와 같이 거의 같은 내용이 반복되고 있어 정택진의 포살에 관한 사유를 둘러싸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문건은 충청도 가도사 공주목 판관 한택이(韓澤履)가 법부에 요청한 첩보였다. 앞서 『첩보(牒報) ①』에 두 번째로 수록된 <2호>는 전라도 관찰사 겸 순찰사 위무사 이도재의 첩보(1895.5.7.)이다. 손화중 부대의 선봉장으로 활동한 고창군 농민군 홍낙관(洪樂觀)이 재인(才人) 출신으로 자칭 수접주가 되었으며, 자기 부친 맹철(孟哲)과 아우 응관(應觀), 계관(季觀) 및 종제 한관(汗觀) 등이 각기 접주로 참여한 사실 등이 나타나 있다. 이들은 1894년 3월 이후 무장, 신촌 등지를 지나 백산, 황용, 완성(完城) 등지에서 싸워서 고부, 고창, 무장, 남평 등 읍의 무기를 빼앗고, 세력이 커진 후에 사류(士類)와 평민을 강제로 들어오게 하여 1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손화중이 광주, 남평 등지에 있을 때 대군이 내려온다는 소리를 듣고 도망쳤다가 붙잡혀 조사하여 진술한 내용을 수록하였다. 이렇게 첩보류의 내용에는 각 지방에서 체포된 농민군 참여자에 대한 조사와 처리방향을 알 수 있으며, 그밖에 각종 비리 혐의를 받은 부패 관료들의 사후 처리 상황도 더불어 파악할 수 있다. 다음으로 『첩보 ②』는 1895년 5월 말부터 윤5월 말까지 전국 각 지방관들이 법부로 보낸 첩보를 철한 것이다. 『첩보 ①』에 연속된 기록으로서 묶여진 것으로 보인다. <7호>는 전라도 관찰사 이도재(李道宰)의 보고(1895. 5.29.)로 전라도 남학당(南學黨) 거괴 김광화(金光化) 등 14인을 체포한 사실을 담고 있다. 그 중에서 박학운, 윤봉수, 안화봉, 원경명 등 4명은 전라도 병영에서 도내 각도에 정배(定配)한 뒤에 개과천선의 여부를 확인하겠고, 최방춘(崔芳春), 동성월(董成月), 손관오(孫觀五), 안관옥(安觀玉), 고란봉(高蘭峯), 이관수(李觀水) 등은 나주진영에 이수(移囚)하여 다시 조사하도록 하겠고, 김운발(金雲發), 김명봉(金明峯) 등은 탈옥하여서 추적하고 있고, 원시중(元始中)은 과오를 반성하고 있어 징계 후 방송하였다고 하였다. 이들에 대해 경중을 나누어 올려 보내니 법부에서 처분을 내려달라는 내용이다. <10호>는 충청도 임천군수의 첩보(1895.윤 5.12.)로 본군에 거주하는 김재홍(金在洪)이 동비에 투탁하여 옛 동학의 명으로 대접주를 참칭하여 행패를 부리고 종적을 감추었다가 민인 대회를 열어 포살하려고 했으나 멋대로 할 수 없어 김재홍의 죄안을 갖춰 보고한다는 내용이다. 이 첩보 자료에는 모두 13건이 첨부되어 있다. 다음으로 <첩보 ③>(규장각 소장 26290)은 각 지방관리들이 1895년 7월과 8월에 법부에 올린 보고서 4편을 모아 수록한 것이다. <1호> 1895년 8월 해주부 은율군수 이현학(李鉉鶴)의 보고서로 해당 지역의 동학도를 포착하기 위해 병정을 자칭하며 동학농민군을 처형했다는 것이다. 당초 접주, 접사라고 칭하면서 행패를 부린 김계문(金啓文), 정택근(鄭宅根), 정관선(鄭寬善), 김이섭(金以燮) 등을 우선 포살하였고, 이경환(李京煥), 이근달(李根達) 등과 조승찬(趙昇贊), 사명철(史明喆), 김명학(金明學) 등의 죄상을 상세히 조사한 후 포살하였다는 사실을 보고하고 있다. <2호> 청양군 보고서에는 강심은(姜心隱), 강군장(姜君章) 부자가 동학농민군에 가담하여 지역에서 행패를 부리고 난 이후 프랑스 천주교도로 숨어들어간 사실을 적발하여 처분을 기다린다는 첩보다. 또한 <4호> 청주군수의 보고(1895.8.7.)에서는 을미 7월 18일 황동준(黃東俊, 36세), 김봉원(金奉元, 23세), 이봉의(李奉宜, 25세), 정천만(鄭千萬, 38세) 등은 승려로서 도적행위 혐의가 있어 붙잡아서 취조한 내용을 보고하고 있다. 이상의 첩보류에서는 1894년 전후 지방의 사회상과 동학농민군 및 적도들의 범죄 사실과 조치 등을 살펴볼 수 있다. 1895년에도 각지방의 분규는 계속되었기 때문에 각지에서 동학에 가담한 협의자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첩보 자료는 모두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왕현종 연세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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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28 18:41

“갑오징어 씨 마를라”⋯군산시 수산자원 회복 총력

군산은 항구다. 그 만큼 바다 자원이 풍부하다는 이야기다. 이미 유명세를 탄 박대와 홍어를 비롯해 새로운 특산물로 ‘갑오징어’가 뜨고 있다. 갑오징어는 마리당 단가가 높은 고부가가치 품종으로 과거부터 군산 해역에서 많이 잡히는 품종이었으나 최근에는 자원량이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이에 시는 수산자원 증대를 위해 갑오징어 산란 및 서식을 위한 시설물 조성사업을 본격 추진하는 한편 지역 대표 수산물로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통해 군산 갑오징어의 전국적 인지도 확산은 물론 지역 수산업과 관광산업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겠다는 각오다. ◇오징어 중에 갑(甲) ‘갑오징어’ 갑오징어는 두족류의 일종으로 몸통 안에 작은 보트 모양의 석회질 뼈가 있어 일반 오징어류와는 구분된다. 갑오징어는 갑옷 같은 뼈가 있다고 해서 갑옷 ‘갑’자를 따 이름이 붙여졌다. 갑오징어는 동북아시아 일대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지역 바다에 분포하며 대한민국에서는 주로 서해‧남해의 잘피밭에서 많이 잡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갑오징어 산란기는 4~6월(15~20℃)로 수심 2~10m 이내의 연안에서 암석‧해초‧해저 구조물 등 부착기질에 알을 붙여 산란하는 습성이 있다. 갑오징어는 회로 먹기도 하고, 다양한 요리에 사용되기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여기에 일반 오징어에 비해 살이 두툼하고 식감이 쫄깃해서 인기가 높다. 또한 타우린 함량 및 DHA 등 영양소가 풍부해 보양식으로도 좋다. ◇줄어드는 갑오징어 개체 수 늘린다 군산의 갑오징어는 전국 위판량의 9.2%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비중이 높으며, 개체 당 단가 역시 일반 수산물 평균의 2.84배에 달하는 고부가가치 어종이다. 다만 해양온난화‧적정 어획량을 넘어선 남획 등으로 생산량이 감소되면서 이에 따른 자원회복 및 증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 지역 내 갑오징어 위판량은 2017년 548여톤, 2018년 642여톤, 2019년 635여톤, 2020년 408여톤, 2021년 527여톤, 2022년 468여톤, 2023년 262여톤 등으로 조사됐다. 이런 가운데 군산시가 오는 2028년까지 옥도면 해역에 갑오징어 산란·서식장을 조성하고 나서 수산자원 증대와 어민의 경제 활성화가 기대되고 있다. 시는 해양수산부가 주관한 2024년 수산자원 산란·서식장 조성사업에 최종 선정돼 향후 5년 동안(2024~2028년) 이 사업을 진행하게 됐다. 수산자원 산란·서식장 조성사업은 자원회복 대상품종의 산란·서식장을 조성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해 수산자원을 회복·증강시키기 위한 것으로, 사업비의 50%가 국비로 지원된다. 옥도면 해역을 중심으로 갑오징어 산란·서식장을 조성함에 따라 군산 해역에 갑오징어 자원량이 증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갑오징어 산란 및 서식 조성 추진 군산시가 수산자원 증대를 위해 갑오징어 산란 및 서식을 위한 시설물 조성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오는 2028년까지 총 40억 원이 투입된다. 사업 내용은 △산란장과 인공 해조장 조성 △자연석 시설 △종자 방류 및 효과조사 등이다. 이의 일환으로 시는 산란한 알을 부착하고 은신처 제공 등을 위해 산란시설물(갑오징어 통발) 900개를 비안도‧방축도‧연도 등 3개소에 300개씩 설치했다. 비안도 어촌계에는 별도의 인공 해조장(3mx3m) 10개소 설치를 통해 알 부착율의 비교분석 및 적절한 환경조성을 통해 산란율을 높이고 자연 증식을 유도하고 있다. 또한, 해조류의 자연 착생 유도와 함께 갑오징어 산란 및 성육장 기반 마련을 위해 자연석 시설과 갑오징어 종자 방류를 추진해 향후 이 사업의 효과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시는 시설물 조성뿐만 아니라 산란장 주변의 수질 및 해양 환경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과 효과조사를 병행해 분석 및 평가하고 필요한 개선사항을 반영할 예정이다. ◇ 갑오징어 캐릭터 ‘갑토리’ 개발 군산시가 지역 대표 수산물인 갑오징어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속 가능한 자원 관리를 도모하기 위해 캐릭터 ‘갑토리’를 개발하고 디자인 및 상표 출원을 완료했다. 이 사업은 국가 공모사업으로 선정된 ‘갑오징어 산란·서식장 조성사업’과 연계해 추진됐다. 시는 ‘갑토리’ 캐릭터를 통해 갑오징어에 대한 시민과 관광객의 인지도를 높이고 친근감을 불어넣어 군산의 대표 수산물로 브랜화 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해당 캐릭터를 디자인보호법 및 상표법에 따라 공식 등록 절차를 밟아 무단 도용을 방지하고 유사 디자인에 대한 권리를 독점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동안 시는 △갑오징어 산란·서식장 조성 △홍보 영상 제작 및 송출 △‘갑토리’ 캐릭터 개발 △새만금마라톤대회 홍보 부스 운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 대표 수산물 육성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추진해 왔다. 앞으로도 시는 ‘갑토리’를 활용한 홍보물 제작과 축제·행사 부스 운영 등을 통해 관광객 유입은 물론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방침이다. 이성원 군산시 어업정책과장은 “산란서식장 조성과 함께 갑오징어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홍보 전략을 전개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군산 해역에 산란 서식장 시설 조성 외에도 어린 개체와 성체의 서식 환경 조성을 위한 자연석 시설, 자원 증대를 위한 종자 방류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최종적으로는 군산시 해역에 맞는 맞춤형 산란 서식장 조성 고도화를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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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환규
  • 2025.05.28 18:37

[전북의 기후천사] 일회용품에 이별을 고함…지구 위해 용기(容器) 내 보았습니다

얼마 전 아이 엄마가 된 친구와 저녁 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식사 준비는 어떻게 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잠시 고민하던 친구는 아이를 돌보느라 집 밥 대신 주로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고 답했다. 쉽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 배달음식을 종종 시켜먹고 있지만 음식이 담겼던 용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현타(현실을 자각하는 순간을 뜻하는 신조어)가 크게 온다고 했다. 자신은 한 끼 식사를 배달시켰을 뿐인데, 배출되는 일회용품의 양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직접 요리를 하거나 외식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늘어나는 일회용품은 기후변화를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일상이 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기자도 직접 다회용기를 들고 음식점에서 포장 주문을 해봤다. 그리고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 최대한 환경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외출 시에는 개인 텀블러와 에코백을 지참하고,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제한해보자. 다회용기를 챙겨 음식점을 방문해 보니 생각보다 여러 모양의 그릇이 필요했다. 비닐에 낱개 포장 된 단무지나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양념, 음료수를 담아주던 일회용컵까지…. 세트로 시키면 챙겨주는 음식이 한 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용기(容器) 하나만 덜렁 들고 주문하러 갔다가 어쩔 수 없이 일회용품을 소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간 음식점에 빈 용기(容器)를 들고 찾아갔다. 음식을 주문 과정에서 사용되는 일회용품과 플라스틱을 줄인다면 그만큼 탄소 배출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귀찮은 것도 사실이다. 전화로 주문하면 집 앞까지 배달해주는 편리한 세상인데 빈 그릇을 챙겨 음식점에 방문하는 게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음식을 주문할 때는 “제가 가져온 용기에 담아주시겠어요?”라고 용기(勇氣)내 한마디를 더 보태야했다. 그 과정에서 몇몇 분들은 “모양이 흐트러져서 포장 용기에 담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가져온 빈 용기를 반납하기도 했다. 또 어떤 분은 취지를 공감하고 최대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겠다며 매장 그릇에 음식을 담아주기도 했다. 그렇게 쑥쓰러움을 이겨내고 며칠 간 용기를 내밀었던 행동이 환경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활 속 기후행동을 실천한 이유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2023년 발간한 플라스틱 대한민국 2.0 보고서를 보면 2020년 기준 국민 1인당 배달 용기 연간 소비량은 568개(5.3kg)에 달한다. 생수페트병은 109개(1.6kg), 일회용 플라스틱컵은 102개(1.4kg), 일회용 비닐봉투 533개(10.7kg) 등이다. 특히 분리 배출이 가능한 플라스틱 가운데 배달음식 포장재가 포함된 기타 폐합성수지류 항목이 2019년 하루 715.5t에서 2021년 하루 1292.2t으로 80% 정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전주시에서도 지난 2021년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프로젝트 ‘용기 내 전주 캠페인’을 추진한 바 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비대면 소비가 증가하면서 일회용품 사용량이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전주시와 소비자연합, 8개 외식업체는 업무협약을 맺고 6월부터 10월까지 용기내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 캠페인은 전주의 음식점과 반찬가게에서 음식 포장시 일회용품이나 비닐을 사용하지 않고, 집에 있는 다회용기를 가져가 포장해오자는 제로웨이스트 운동이다. 업소에 따라 100원~1000원을 할인받거나 음식 양을 추가적으로 받을 수 있다. 이후 용기내 캠페인은 중단됐지만 최근 다회용기 사용지원 사업을 통해 다시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캠페인을 진행한다. 시청사 인근 커피전문점 10곳과 전주시청 및 거점건물 2곳에서 테이크아웃 시 다회용컵을 제공할 예정이다. 참여 매장에서 다회용컵에 음료를 판매하고 무인회수기를 통해 반납하면 쿠폰에 도장을 찍어주는 구조다. 쿠폰(음료 15잔)을 완성하면 참여 커피전문점에서 1000원이 할인 적용된다. 시는 덕진지역자활센터를 통해 컵을 회수한 뒤 전문 업체에서 세척해 다시 매장으로 공급하는 순환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장례식장 다회용기 대여 및 세척 서비스 사업은 지속 운영한다. 시는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 친환경 장례문화 정착을 목표로 장례식장 접객실 내 다회용기 사용을 2023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올해도 자발적으로 협약을 체결한 4개 업체를 포함해 추진할 계획이다. 전주시 관계자는 “일회용품 사용을 강제로 규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시민 인식 개선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며칠 간 환경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실천하면서 모든 것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시간 절약을 위해 음식을 미리 주문하고 음식 나오는 시간까지 확인해 부리나케 달려 갔지만 이미 포장이 되어있었고, 텀블러에 어묵국물을 담으려다가 “유난스럽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일회용품 줄이기에 나선다면 기후변화 시기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지 않을까.

  • 기획
  • 박은
  • 2025.05.25 18:24

[나는]노래하는 소방관 ⋯"도전하다 보면 길은 늘 열립니다"

“도전하다 보면 길은 늘 열립니다.” 2년 전 TV조선 <미스터트롯2>에 출연해 본선 1차까지 진출한 덕진소방서 김홍종(36) 소방교는 “도전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삶은 매 순간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었다. 지난 22일 덕진소방서에서 만난 김 소방교는 미스터트롯2 참가자 모집 광고를 보고 출연을 결심했다. 그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데는 아내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 “한 번 해봐”라는 말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어릴 적부터 예술을 사랑했던 그는 한국예술고등학교 실용음악과를 졸업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아침부터 밤까지 연습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가정사로 음악을 접어야 했다. 현실적으로 가수의 길을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생계를 위해 대학을 포기하고 특전사에 입대해 4년 6개월을 복무했다. 이후 주변에서 “운동 좋아하고 활발한 너 같은 사람이 구급대원이 되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소방관의 길에 도전했다. 소방관으로 일하면서도 노래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김 소방교는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호응해 줄 때 삶의 보람을 느꼈다. 노래할 때 나는 진심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미스터트롯2에서 박구윤의 ‘두 바퀴’를 열창했다. 주황색 소방복을 입고 무대에 선 그가 진지한 자세로 노래를 부르자 예선 통과를 뜻하는 하트가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다. 모든 하트에 불이 들어오면서 심사위원 만장일치 통과를 뜻하는 ‘올하트’를 받았다. 김 소방교는 “그날 무대 위에서 정말 많이 떨었다. 올하트가 들어오던 순간의 기쁨은 잊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이라고 회상했다. 본선에서 탈락했지만 그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행사 요청이 오면 달려가고, 새로운 대회가 열리면 주저 없이 신청했다. 그는 지금도 또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열리면 도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김 소방교는 “도전에서 오는 행복감이 있다. 구급대원으로 일하며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나는 분들을 볼 때면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일단 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 기획
  • 문채연
  • 2025.05.25 07:35

[트민기] 전북판 스쿨어택이 떴다?⋯지역 예술인이 간다

유행은 돌고 돈다. 빨라도 너무 빨리 돈다. 괜히 아는 척한다고 "요즘 유행인데 몰랐어?" 이야기했다가 유행이 끝나 창피당하는 일도 다반사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에도 SNS,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많은 유행이 올라오고 트렌드가 진화한다.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들, 줄여서 '트민기'는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의 흐름을 포착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전국적인 유행에서 더 나아가 전북에서 핫한 현장도 함께 소개한다. 전북판 <스쿨어택>이 떴다. 스쿨어택은 SBS MTV에서 인기 아이돌 그룹이 학교로 찾아가 청소년과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아이돌 대신 전북 청년보컬그룹 '쟈니컴퍼니'가 인구감소지역 학교에서 미니 콘서트를 진행한 소식이 전해졌다. 쟈니컴퍼니는 서하영(27), 신민수(25), 류수찬(25), 이민석(25), 윤민재(25), 유지오(24) 등 6명으로 구성된 혼성 그룹이다. 모두 전북 출신으로 젊은 보컬리스트의 패기와 신선한 음악 편곡으로 쟈니컴퍼니만의 새로운 공연 예술 장르를 개척해 나가는 중이다. 2025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예술 전문단체 지원사업에 선정된 쟈니컴퍼니는 <2025 청년, 그리고 지역상생 프로젝트: 비긴어게인 in 전북>을 진행했다. 5월 초중순부터 동국대 사범대학 부속 금산중학교(김제)를 시작으로 백화고등학교(장수), 남원여자고등학교(남원) 등 3곳에서 공연했다. 윤민재 씨는 "저희 (로라뮤직 김주환) 대표님이 지원사업의 주제를 정할 때 전북 인구감소지역·청년 예술인을 키워드로 삼았다. 그렇게 탄생한 프로젝트다"고 설명했다. 문화시설뿐 아니라 프로그램도 많지 않은 '문화 소외' 인구감소지역에서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들이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유이기도 하다. 본보는 이 소식을 늦게나마 듣고 마지막 공연이 열린 지난 21일 남원여고로 향했다. 강당에 모여 앉은 학생들은 낯선 지역 예술인이다 보니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무대를 감상했다. 그것도 잠시,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콘서트에 온 것처럼 소리 지르고, 응원봉을 흔들고, 플래시를 켜고 1시간 동안 콘서트에 집중했다. 로제·브루노마스의 <APT.>부터 RIIZE(라이즈)의 <Get A Guitar>, BOYNEXTDOOR(보이넥스트도어)의 <오늘만 I LOVE YOU> 등을 쟈니컴퍼니만의 색깔로 편곡해 학생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단순히 공연뿐 아니라 즉석에서 학생들을 무대 위로 불러 틈틈이 소통하는 모습도 보였다. 각자 자신 있는 노래를 부르게 한 뒤 보컬 레슨하듯 칭찬과 보완점을 찾아 주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준비된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자 학생들은 연신 "앙코르!"까지 외쳤다. 신민수 씨는 "학생들이 저희와 소통하고 즐거워 하니까 저희도 너무 재미있게 공연할 수 있었다"면서 "저희 쟈니컴퍼니 멤버 전원은 고향이 전북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전북에서 활동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전문성 있고 실력 있는 보컬팀으로 활발하게 활동할 것이다"고 전했다.

  • 기획
  • 박현우
  • 2025.05.25 07:23

[트민기] "인기 가수도 좋지만"⋯대학축제 이색 기획 '화제'

유행은 돌고 돈다. 빨라도 너무 빨리 돈다. 괜히 아는 척한다고 "요즘 유행인데 몰랐어?" 이야기했다가 유행이 끝나 창피당하는 일도 다반사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에도 SNS,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많은 유행이 올라오고 트렌드가 진화한다.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들, 줄여서 '트민기'는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의 흐름을 포착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전국적인 유행에서 더 나아가 전북에서 핫한 현장도 함께 소개한다. 5월 대학 축제 시즌이 오면서 전국 대학교 캠퍼스가 들썩이는 가운데 전주 지역 대학교인 전북·전주대 총학생회가 이색 축제 프로그램을 기획해 눈길을 끈다. 학생이 주인공이 되는 축제를 만드려는 총학의 아이디어가 큰 호응을 얻는 것으로 알려졌다. 첫 번째는 전북대학교다. 전북대는 지난 21일부터 사흘간 건지대동제를 열었다. 축제를 기획한 제57대 이유 총학생회는 '2025 건지대동제: JB&U 전북대, 그리고 당신'을 타이틀로 한 이른바 총장네컷을 준비했다. 기존 포토 부스인 인생네컷을 활용해 양오봉 총장이 미리 찍어둔 사진으로 만든 사진 틀(포토 프레임)을 만들었다. 양 총장은 과잠·정장을 입고 하트, 브이, 악수 등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굳이 총장과 사진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아니다. 반응이 뜨거웠다. 학생들이 줄 서서 사진을 찍을 만큼 반응이 좋았다는 후문이다. 구민기(25·전자공학부 19학번) 총학생회장은 "맨 처음에 주변 여론을 통해 양오봉 총장님을 좋아하는 학생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축제는 사진 찍고 추억 남기기 좋은 때인데 무엇을 하면 좋을지 타 학교 사례도 많이 찾아보곤 했다. 그때 인생네컷이 떠올랐다"며 기획 에피소드를 전했다. 평소 천 원의 아침밥, 소통 데이를 통해 학생과 간극을 좁히는 양 총장이다 보니 학생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이라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총학이다. 총학은 학생과를 통해 의견을 전달하고 홍보실에서 프레임 촬영을 진행했다. 양 총장은 다음 날 해외 일정이 있었지만 바로 촬영해서 보내 줬다는 게 구 회장의 말이다. 그는 "프레임 속 포즈는 저희가 예시 사진을 같이 드렸고 주문한 포즈대로 똑같이 해 주셨다. 사실 총장님이 이렇게까지 해 주실 줄은 몰랐는데 흔쾌히 해 주시고 재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전주대학교다. 전주대는 오는 27일부터 사흘간 2025 전주대학교 대동제-TripLog: 청춘의 기록을 개최한다. 청춘·여행을 축제의 키워드로 잡은 제52대 결 총학생회는 청춘의 한 장면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으로 굿즈를 제작했다. 앞서 지난달 재학생을 대상으로 굿즈 중 슬로건 타올·띠부 스티커의 디자인 공모전을 열기도 했다. 학생이 공모한 디자인으로 타올·스티커를, 이외 총학 홍보소통국의 자체 디자인으로 야구 티셔츠·짐색 등을 만들었다. 최의지(26·외식산업학과 19학번) 총학생회장은 "학우들이 학교에 대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매개체를 만들고 싶었다. 이번에 제작된 굿즈 중 일부는 교내 디자인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제품이다 보니 의미가 남다르다. 이 굿즈는 단순한 제품·물품이기 전에 재학생 모두가 함께 축제를 만들어가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특정 키워드를 내세워 학생이 주인공이 되는 축제를 만들고 싶었던 최 회장이다. 최 회장은 "단순히 예쁘고 실용적인 물품이 아니라 대동제를 녹이는 데 집중했다. 전주대 대동제에서 시작한 본격적인 첫 굿즈 사업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서 "굿즈는 재고 4/5 가량 판매 완료됐다"고 밝혔다.

  • 기획
  • 박현우
  • 2025.05.24 09:38

[나는] 95년 만에 첫 푸른 눈의 춘향 "'춘향다움' 가치 널리 알릴 것"

"한국의 나이팅게일, 잔다르크. 어색하지 않으시죠? 제가 푸른 눈의 춘향, 에스토니아의 춘향이 돼서 미국·아프리카의 춘향이 나올 때까지 '춘향다움'의 가치를 알리고 싶습니다." '춘향의 도시' 남원에 푸른 눈과 금발을 지닌 미스 춘향이 등장하면서 관심이 모였다. 지난 1일 열린 제95회 춘향제 글로벌 춘향선발대회에서 춘향 현에 에스토니아 출신 마이(26) 씨가 선정됐다. 95년 만에 처음 등장한 외국인 미스 춘향이다. 이날 단정히 금빛 머리를 틀고 하얀 저고리와 푸른 치마를 입은 마이 씨는 1분 자기소개에서부터 화제가 됐다. 마이 씨는 "춘향이 보여 주는 순수한 사랑과 가치는 피부색이나 국적과 상관없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이다"고 했다. 당시 말이 끝나자마자 무대 아래에서 박수가 터졌다. 본보는 현재 서울대 언어교육원을 다니는 마이 씨를 화상으로 만나봤다. 여전히 아름다운 한복 차림으로 환한 미소를 보여 줬다. 그는 춘향 현에 호명되는 순간을 잊을 수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마이 씨는 미스 춘향이 되고 싶어 2주 동안 남원에 머무는 강행군을 펼쳤다. 아침부터 밤까지 연습하며 열흘 만에 몸무게가 4kg 감소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다. 외국인이다 보니 걱정이 컸던 것이다. 대회 시작 전부터 미스 춘향을 발표하던 순간까지 마음속으로 "안 돼도 괜찮아"라며 스스로 최면을 걸었지만 떨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미스 춘향 현에 ‘마이’라는 이름이 불리는 순간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사회자가 “춘향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에스토니아에서 대한민국까지 왔다”며 마이 씨를 소개했다. 올해 새로 도입된 이몽룡이 그의 손을 잡고 무대 중앙으로 이끌었다. 머리 위에는 춘향 현임을 보여 주는 화관이 씌워졌다. 그의 노력이 모두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사실 마이 씨의 도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외국인도 참가할 수 있도록 대회 규정이 바뀌었을 때도 참가했지만 한국에 온 지 얼마나 안 돼서 긴장한 탓에 본선에서 탈락했다는 게 마이 씨의 말이다. 그는 “단순한 미인대회가 아니라 역사와 전통이 있는 춘향제이기에 정말 잘하고 싶었다”며 “작년엔 본선 2차까지 합격했는데 떨어졌다. 올해는 못 하면 어쩌나 걱정이 컸지만 다행히 잘 돼 영광이다”며 미소를 지었다. 정착 기간은 겨우 1년 반뿐이지만 마이 씨의 한국 사랑은 깊은 역사를 자랑한다. 지난 2016년부터 매년 한국 여행을 온 마이 씨는 한국에서 한복을 입어보고 아름다움을 느낀 나머지 '살아야겠다!'라는 다짐과 함께 한국, 한복을 사랑하게 됐다. "한복을 입으면 마치 공주가 된 기분이 든다. 한복을 입은 순간, 한복이 내 마음에 박혔다"고 말할 정도다. 마이 씨의 한국·한복 사랑은 유튜브까지 퍼졌다. 3년 전부터 한복을 입고 일본·중국·터키·영국 등 해외를 여행하는 콘텐츠를 제작 중이다. 23일 기준 채널 구독자는 무려 16만 명에 달한다. 춘향제 사상 최초 외국인 춘향이는 앞으로도 한복을 입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한국 문화를 알릴 계획이다. 그는 금발과 푸른 눈을 가진 춘향이가 낯설 한국 사람들에게 "겉모습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분도 마음속에 담긴 진심을 보고 따뜻하게 맞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기획
  • 문채연
  • 2025.05.24 09:05

[우리 땅에 새겨있는 역사의 흔적] 개혁의 꿈이 서린 부안 우반동

변산의 동남쪽에 있는 우반동(愚磻洞)은 산으로 빙 둘러싸여 있으며, 가운데 평평한 들판이 있다. 소나무와 회나무가 온 산에 가득하고 봄마다 복사꽃이 시내를 따라 만발한다. 1656년에 유형원이 편찬한 『동국여지지』에 서술되어 있는 우반동에 대한 묘사이다. 우반동은 오늘날 부안군 보안면의 서남쪽에 있는 우신리와 우동리의 옛 이름이다. 이 지리지는 유형원(1622~1673)이 한양에서 우반동으로 거주지를 옮겨 새로운 삶을 시작한 직후에 썼다. 따라서 이 글은 유형원 당시의 우반동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풍광이 수려했던 우반동 이 기록보다 몇 십 년 전에 이곳을 묘사한 기록도 있다. 1608년 교산 허균(1569~1618)이 이곳에 있었던 정사암에 머물며 썼던 「중수정사암기」이다. 포구에 있는 꼬불꼬불한 작은 길을 따라 우반동으로 들어가자 시냇물이 옥구슬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졸졸 흘러 우거진 덤불 속으로 쏟아진다. 시내를 따라 채 몇 리도 가지 않아서 곧 산으로 막혔던 시야가 툭 트이면서 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좌우로 깎아지른 듯한 봉우리들이 마치 봉황과 난새가 날아오른 듯 치솟아 있는데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동쪽 등성이에는 소나무와 회나무들이 울창하여 하늘을 가리었다. 우반동은 이렇게 경치가 빼어나 비경으로 꼽히는 우반십경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선계의 맑은 폭포, ‘선계청폭’이다. 선계폭포 위쪽에는 변산의 4대사찰이었던 선계사와 허균이 묵었던 정사암이 위치해 있었다. 폭포 위의 암반에 커다란 말발굽이 새겨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야인시절 이곳에서 무술을 연마하면서 말을 달려 뛰어내릴 때 생긴 자국이다. 뛰어내리면서 칼로 암반을 내리쳐 이곳의 절벽과 폭포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폭포의 이름을 성계폭포라 했는데 임금의 이름을 그대로 부를 수 없어 선계폭포라 했다한다. 재미있는 전설이다. △변산도적 녹림당 선계폭포 맞은편 산에는 바위굴이 자리해 있다. 조선시대 유명했던 변산도적의 소굴 중 하나로 추정되는 곳이다. 변산도적은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지은 소설 『허생전』의 무대이기도 하다. 한양 남산골에 살고 있던 가난한 선비 허생이 장안의 부자 변 씨에게 돈을 빌려 과일과 말총을 독점한 장사로 엄청난 이문을 얻었다. 그는 이렇게 번 돈을 변산의 도적들에게 주면서 무인도로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이 소설의 기본구조는 허균이 쓴 『홍길동전』과 흡사하다. 홍길동의 의적행위가 『허생전』에서는 체제순응적인 장사로 치환되었다. 소설의 마무리도 비슷하다. 홍길동이 의적들을 데리고 율도국으로 떠난다는 마지막 설정은 허생이 도둑들에게 소를 사주고 처자와 함께 무인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도록 했다는 결말과 거의 같다. 가혹한 세상에서 목숨을 버릴 수 없어 도둑이 된 사람들이 살길이 만들어지면 선량한 백성이 된다는 일치된 결말이다. 변산도적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영조 때 처음 나타난다.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던 영조 4년(1728), 반란에 동조해 태인에서 거병했던 태인현감 박필현을 문초하는 과정에서 명화적을 끌어들이려했다는 진술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명화적은 당시 변산지역에서 활동하던 도적의 무리로 녹림당이라고도 불렀다. 녹림당은 본래 전한의 마지막 황제를 독살하고 집권했던 왕망에 반대해 녹림산을 근거지로 하여 대항했던 집단의 이름이다. 이후 녹림당은 반란집단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러한 녹림당이라는 이름을 변산도적들이 내세웠다는 것은 이들이 단순한 도둑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실학의 효시 『반계수록』 조선사회는 중기 이후로 사회제도의 모순이 심화되고 있었다. 신분제의 모순으로 반상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토지의 과점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부자는 끝없이 땅을 확대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게 되었다. 급기야는 땅을 잃은 사람들이 유리걸식하다가 도둑의 무리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회제도의 모순을 직시한 사람이 있었다. 반계 유형원이다. 그는 한양에서 살다가 서른두 살 때인 1653년(효종 4)에 우반동에 내려와 정착했다. 이곳에는 그의 조부가 개간해 조성한 농장이 있었다. 풍광이 수려한 아름다운 변산에 아이러니하게도 도적이 존재하고 있었다. 태평성대가 아니었다. 유형원은 그 원인을 사회제도의 모순에서 찾았다. 그 중에서도 토지문제가 제일 심각했다. 토지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었다. 토지문제를 개혁하지 않고는 양민이 유리걸식하다가 도적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유형원은 이에 대한 처방으로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균전제(均田制)를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토지제도의 개혁에서부터 국가의 통치제도 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우반동에 칩거하며 22년 동안 저술했다. 실학의 효시로 평가받는 『반계수록(磻溪隨錄)』이다. 이 저서에서 반계가 주장했던 이론들은 일종의 국부론이다. 균전제로 얻은 부와 사회 안정을 기반으로 국방을 튼튼히 하면서 사회제도의 변혁을 이루고자했다. 반계의 이러한 주장과 사상은 조선시대 실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반계의 개혁의지와 사상은 이익과 안정복, 정상기를 비롯한 지식인들의 호응을 받았다. 1769년(영조 45)에는 영조의 명으로『반계수록』이 간행되었다. 유형원이 문을 연 실학이라는 학문이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 이후 실학은 다산 정약용(1762~1836)에 이르러 집대성되게 된다. △스토리텔링이 풍부한 우반동 우반동 들녘 한가운데 길쭉한 선돌이 서있다. 이 선돌 옆에는 배메산 돌방무덤이란 안내판이 서있다. 그런데 혹 이 선돌은 유형원이 자주국방을 꿈꾸며 말을 달릴 때 목표로 삼고 달렸던 돌이 아닐는지. 유형원은 어린 나이에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었다. 이때 전쟁의 참화를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며 외침에 대비해 튼튼한 국방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우반들녘에서 말을 달리며 스스로를 단련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반계의 실천적 면목을 엿볼 수 있다. 달봉대산 중턱에 복원된 반계서원은 유형원이 『반계수록』을 집필하던 곳이다. 이곳에 올라 앞을 보면 우반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반계의 개혁론이 실현되었더라면 우리에게 어떤 세상이 와 있을까하고 서당마루에 걸터앉아 생각하다가 건너편 우동마을에 눈길이 머문다. 우동마을은 부안 김씨의 집성촌이다. 유형원의 조부 유성민이 1636년에 우반의 동쪽들녘을 김홍원에게 매각했다. 그 이후 우동리는 부안 김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이 마을에는 후손에게 재산을 분배했던 분재기를 비롯한 부안김씨 종중 고문서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정월 대보름날 당산제로 유명한 마을이다. 삼백년 이상 이어오는 이 마을 당산제는 주민화합의 한마당이다. 당산제로 하나가 되는 우동마을 사람들을 보면 유형원이 꿈꾸던 세상이 조금은 실현된 것 같다. 경자유전의 균전제가 실시되지는 못했지만 해방 이후 농지개혁이 시행되어 농민들 대부분은 자신의 농토에서 농사를 짓는다. 변산에 이제 도적은 없다. 반계 같은 위대한 선각자가 있어 역사는 앞으로 나아간다. 허균이 이곳 정사암에 머물 때 『홍길동전』을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변산에 도적이 있어 반계 같은 위대한 사상가가 나올 수 있었다. 이래저래 부안 우반동은 개혁을 꿈꾸던 땅이자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의 산실이다. 손상국 프리랜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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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23 08:57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46) 친군통위영갑오십월일출주장졸성책, 갑오십월일친군경리청장졸성책, 갑오십월일경리청

△ 친군통위영갑오십월일출주장졸성책(親軍統衛營甲午十月日出駐將卒成冊) 친군(親軍) 통위영(統衛營)은 1888년 4월 고종의 전교로 기존 우영·후영 및 해방영을 합쳐 신설한 부대이자 장위영・통어영과 함께 3개 군영의 하나로 북한산성・강창(江倉) 등 종래 해방영 관할 지역과 돈의문·창의문·숙정문 등의 도성 수비를 담당하였다. 그러던 중 1894년 9월 동학농민군의 제2차 봉기가 시작되자 조선 정부는 진압을 위해 통위영을 양호 좌선봉장 이규태에 부속시켜 교도중대와 통위영 부대를 이끌고 서울을 출발하였다. <친군통위영갑오십월일출주장졸성책(親軍統衛營甲午十月日出駐將卒成冊)>은 출발 당일인 10월 12일 자 기록으로 동학농민군 진압군의 병력 편제와 인원・명단을 알 수 있다. 먼저 양호 도순무영이 보낸 양찬(粮饌) 및 마태초가(馬太草價) 실수분배기(實數分排記)에는 선봉진 장졸 89명, 통위영 장졸 357명, 교도소 장졸 326명, 전 27,480냥이 기재되어 있는데, 이 돈은 영솔 장졸 20일 분량의 식량 가격이었다. 이어 친군 통위영 간부급 지휘관으로 영관 장용진, 대관 오창성・신창희, 교장 박상길・고학석・김상운・황수옥, 서기 정도한・김원석 등을 기록하였다. 이 문서는 제3소대부터 시작하는데 제1소대와 제2소대의 기록은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 하부 편제는 규칙・십장・병정・치중병 등으로 구성되었고, 이외에 장막군, 장부, 후병, 통위영 기마, 순무영평(坪) 기마, 복마 등 도합 401명의 직책과 이름을 기입하였다. 서울 숭례문 밖에 주둔하던 통위영 병사들은 10월 13일 수원부에 도착하였고 이후 충청도 여러 지역을 거쳐 선봉진 부대와 일본군과 합세하여 공주 이인전투와 우금치전투에 참여하였다. 11월 8일 이인에서 통위영 대관 백낙완ㆍ윤영성 등이 동학농민군과 대치하다가 회군하여 우금치로 물러나 밤을 지냈다. 다음날인 9일 부대를 나누어 양쪽에서 사격하고 일본 병사들과 합세하여 격파하자 농민군들은 대포와 총과 창・깃발 등을 버리고 퇴각하였다. 이때 통위영 대관 조병완ㆍ이상덕, 참모관 이상덕ㆍ이윤철 등이 이들을 10여 리나 추격하였다. 양호 좌선봉장 이규태는 통위영 대관 장용진・신창희・오창성, 교장 박상길・김상운 등이 “자기 몸도 잊은 채 힘을 내어 세 갈래 길로 나누어 적들과 접전을 벌이며 쫓아가 섬멸하여 적의 기세를 꺾고 대포를 빼앗았다”라고 도순무영에 보고한 바 있다. 우금치전투 이후에도 고종은 순무 선봉진에게 통위영·경리영·교도대의 장관과 병정들을 거느리고 담당할 방면을 나누고 날짜를 정해 적을 섬멸하라고 전령하였다. 이에 통위영의 지휘관과 병졸들은 전라도 방면으로 진군하여 일본군과 함께 동학농민군 주력을 토벌하였다. 이 자료는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 갑오십월일친군경리청장졸성책(甲午十月日親軍經理廳將卒成冊) <갑오십월일친군경리청장졸성책(甲午十月日親軍經理廳將卒成冊)>은 1894년 10월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출진한 친군(親軍) 경리청(經理廳) 소속 장수와 병졸 명단이다. 친군 경리청은 원래 1891년 2월 서울의 방비에 중요한 북한산성의 수비를 강화할 목적으로 통위영에 속해 있던 총융청 군을 분리하여 다시 설치한 수도 방위부대였다. 경리청 부대 중 출진 명단이 확인되는 부대로 좌1소대는 영관 구상조, 대관 이상덕, 교장 이봉춘・이장혁, 규칙(糾飭) 김흥윤 외, 병정 김복선 등 156명, 좌2소대는 대관 백낙완, 교장 김명환・정재원, 규칙 박인준 외, 십장 김덕순 외, 병정 남창오 등 156명, 중2소대는 서산군수 성하영, 대관 윤영성, 교장 장대규・정인갑, 규칙 고진용 외, 십장 안창석 외, 병정 박기춘 등 150명, 우1소대는 영관 홍운섭, 대관 조병완, 교장 김홍엽・우기준, 규칙 최순갑 외, 십장 서흥돌 외, 병정 이창갑 등 162명 등 총 4개 소대였다. 각 소대는 영관・대관・교장・십장・병정 등이 있었다. 이 외에 참모관 3명, 서기 2명, 화병(火兵) 32명, 복마군(卜馬軍) 27명 등을 포함한 병력은 총 703명이었다. 1894년 9월 동학농민군의 제2차 봉기에 따라 충청도 관찰사 박제순은 이를 막을 수 있는 대비책으로 순무영 부대와 청주 등지에 주둔하고 있는 장위영과 경리청 군대의 지원을 요구하였고 이에 고종은 전교를 내려 승인하였다. 이미 안성과 죽산에 파견되어 있던 친군 경리청과 장위영 부대는 10월 충청도 지역에서 통위영 부대와 합류하여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한 작전을 전개하였다. 경리청 출진 장졸은 영관 안성군수 홍운섭과 서산군수 성하영이 지휘하였다. 이들이 인솔한 병대는 청주를 거쳐 공주에 도착하여 11월 이인전투와 우금치전투에 가세하였다. 이 전투에 참여한 부대는 일본군 후비 보병 제19대대와 선봉장 이규태가 이끄는 통위영 부대, 홍운섭이 이끈 경리청 우1소대, 영관 구상조가 이끈 경리청 좌1소대, 대관 백낙완이 이끄는 경리청 좌2소대, 성하영이 이끄는 경리청 중2소대였다. 이후에도 경리청 부대는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에서 농민군 토벌에 주력하였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 갑오십월일경리청(甲午十月日經理廳) 1894년 9월 동학농민군이 다시 총봉기하자 조선 정부는 10월 군대를 동원하여 무력 진압에 나섰다. <갑오십월일경리청(甲午十月日經理廳)>은 당시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출병한 경리청 소속 좌1소대・좌2소대・중1소대・우1소대・우2소대 사병들의 명단이다. 좌1소대는 병정 김화경 등 22명이었다. 좌2소대는 십장 김점동 외, 교습(敎習) 남창오 외, 병정 김준영 등 27명이었다. 중1소대는 교습 연경장 등 14명이었다. 우1소대는 십장 유상오 등 20명으로 대포 1문을 구비하고 있었다. 우2소대는 병정 서세웅 등 14명으로 대환구(大環口) 1문을 구비하고 있었다. 각 소대 병력은 14~27명의 소규모였는데 이 책에는 십장・교습・병정・규칙 등의 명단 외에 지휘관 이름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재곤 서강대학교 국제한국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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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5.05.22 10:30

"살면서 가장 잘한 일"⋯20년 차 위탁부모에게 듣다

"가정위탁,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들에게 부모가 돼 주세요." 올해로 20년째 전북가정위탁지원센터 위탁 부모로 활동 중인 김진호(70·가명) 씨는 살면서 가장 잘한 일로 '가정위탁'을 꼽았다. 해 보지 않았으면 영원히 모르고 지나갈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게 김 씨의 말이다. 한 아이를 위탁한다는 것은 단순한 돌봄의 역할이 아니라 한 사람의 미래를 책임지는 일이다 보니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용기 만으로는 할 수 없는, 용기와 사랑이 다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을 김 씨는 20여 년 동안 하고 있다. 20년 전이지만 김 씨는 지금도 아이를 처음 만났던 날을 잊지 못한다. 김 씨 부부는 젊었을 때부터 아이를 좋아했다. 그때 아내의 직업은 어린이집 교사, 아이는 그 어린이집 원생이었다. 김 씨는 "어떤 사명감을 느껴서 한 것은 아니다. 40세 된 홀애비가 직업도 없고, 매일 술에 절어서 오토바이로 아이를 태우고 다니는데 너무 위험해 보였다"면서 "위탁해서 데리고 온 건 아니고 친부와 이야기를 통해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그런데 한 2개월쯤 지났을때 친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장례식을 치른 뒤 친부 가족들이 와서 아이를 데리고 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지?'라는 생각에 짐도 다 정리했지만 일주일 뒤 키울 사람이 없다며 다시 아이를 데리고 왔다. 당시 막막하긴 했지만 이미 약 2개월을 같이 지냈던 터라 정이 들어 키워 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위탁부모가 됐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아이와 지내는 모든 과정이 기쁨이고 보람이었다는 김 씨. 지천명(50세)의 나이에 막내가 생긴 김 씨 부부는 모든 게 새로웠다. 바로 위 형과 나이 차이만 23년으로 이미 아이를 키운 지 23년이 된 터라 모든 게 다 새롭게 느껴졌다. 그는 "우리가 아이를 키웠던 경험이 너무나 까마득해서 다 잊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우리 막내(위탁아동)가 걸음마를 했을 때, 엄마·아빠라는 말을 처음 했을 때, 유치원·학교에 들어갈 때, 모든 게 새롭고 즐거웠다"고 했다. 늦게 본 막내지만 김 씨 부부 삶의 윤활유가 됐다. 인터뷰 내내 아이와 함께 한 모든 시간이 다 행복했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항상 행복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위탁아동은 뭐든 친권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보니 통장·여권·휴대전화를 만들어 주는 것은 물론 수술 동의서 쓰는 것도 위탁부모가 단독으로 결정하기 어렵다. 김 씨는 "사실상 위탁부모에게 부모의 책임과 의무만 주어졌지, 권한은 아무것도 주어진 게 없다"며 "일부 지역은 위탁아동에게 지급되는 지원금의 부정 사용을 확인한다는 목적 하에 6개월마다 지출 내역을 정산하도록 한다. 이게 생각보다 큰 부담이다"고 토로했다. 정산이 귀찮고 불편하다고 토로하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식구 4명이 같이 외식을 해서 6만 원을 쓴다면 1만 5000원에 대한 비용만 청구하는 방식이다. 한식구가 함께 밥을 먹어도, 함께 돈을 써도 따로 계산해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럴 때마다 위탁부모나 위탁아동이나 괜한 미안함과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급비 증빙은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일부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다. 위탁가정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지금도 안 좋은 인식이 남아 있다. 그는 "가정위탁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게 문제인 듯하다. 아직도 일부 사람은 '그거 하면 얼마나 줘요?', '돈 많이 받아요?', '그것 때문에 양육해요?'라고 물어본다. 그럴 때 기분이 상한다"고 전했다. 그래도 아이가 주는 행복이 더 크다. 그는 "현재 정부의 방침이 시설보다는 가정에서의 위탁, 양육으로 바뀌고 있다. 많은 가정이, 젊은 가정이 함께 해 준다면 참 좋을 것 같다"면서 "지금 생각보다 많은 아이가 가정의 어려움으로 위탁부모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의 용기 있는 결심과 사랑이 아이들에게 내일을 꿈꾸게 하고 행복을 만들어 준다. 우리 사회에는 빛이 될 일이다. 아이는 낳은 정도 크지만 기른 정도 그에 못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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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
  • 2025.05.21 16:42

나중에 끊긴다⋯자립준비청년 지원 사각지대

매년 아동보호시설과 위탁가정에서 자립하는 청년들을 위해 지자체와 기업이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지는 가운데 대부분 보호 종료 후 5년이 지나면 대부분 지원이 끊겨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립준비청년은 아동복지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보호받다가 만 18세가 돼 독립하는 청년을 뜻한다. 본인이 원할 경우 자립 준비 기간은 만 24세까지 연장할 수 있다. 이 기간 정부와 지자체는 매달 50만 원의 자립수당과 최대 2000만 원의 자립정착금을 지원한다. 또 심리상담, 자립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함께 제공된다. 전북에서도 관련 지원 정책이 시행 중이다. 전주시는 2023년부터 ‘자립준비청년 사회적가족 이음 멘토링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사회에 진출한 성인과 보호종료아동이 멘토-멘티 관계를 맺어 사회적 지지 체계를 형성하도록 돕는 사업이다. 전북은행도 자립준비청년을 돌봄 공백 아동의 멘토로 선발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청년들은 아동을 돕는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책임감을 기르고 사회와의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 멘토로 참여한 청년에게는 1인당 500만 원의 시드머니가 제공된다. 문제는 이러한 지원 대부분이 자립 지원 기간이 종료되면 중단된다는 점이다. 현재 지원 대상은 만 24세 이하로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기본 보호 종료 시점인 만 18세로부터 약 5년이 지나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군 복무나 대학 진학 등으로 인해 취업 시기가 늦어질 경우 사회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원이 끊길 위험이 크다. 이에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1월, 자립준비청년이 공공기관 취업 시 가점을 받을 수 있는 나이 제한을 34세까지 확대하도록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또한 국민건강보험공단·근로복지공단·국민연금공단과 협업해 채용 시 가점 연령 범위를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멘토링 사업 등 자립지원 프로그램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아직 반영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 기획
  • 문채연
  • 2025.05.21 16:38

“잠시만 가족이 돼 주세요”⋯22일은 가정위탁의 날

매년 5월 22일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시설 대신 일반 가정에서 키우는 가정위탁의 날이다. 가정위탁보호제도가 국내에 도입된 지 22년이 지난 현재 전북 보호대상아동 중 위탁가정에서 보호받는 비율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3년 정식 도입된 가정위탁은 부모의 질병·가출·학대·질병·기타 사정으로 친부모(원가정)가 아동을 양육할 수 없는 경우 일정 기간 위탁가정이 아동을 보호·양육하는 제도다. 추후 원가정으로 돌아가거나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목적이다. 위탁아동은 원칙적으로 만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된다. 아동 본인이 원할 경우에는 만 24세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친부모의 법적 권리가 유지된다는 점에서 입양과 구분된다. 도입 초기에는 보호 대상 아동이 보육원이나 아동쉼터 등 시설에 입소하는 비율이 높았지만 최근에는 위탁가정에서 보호받는 아동의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전북 지역의 보호 대상 아동 중 시설 입소 비율은 79.03%에 달했다. 이후 2020년에는 72.12%, 2021년에는 80.76%를 기록했다. 2022년부터 과반에 가까운 아동이 입양ᐧ가정위탁 등 가정에서 보호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가정에서 보호받는 아동의 비율은 46.01%를 기록했고 2023년에도 45.16%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일반 가정에서 보호하는 ‘일반위탁가정’ 아동 수 또한 증가하고 있다. 전북가정위탁센터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전북 지역 위탁가정 아동 수는 654명이다. 이중 97명이 일반위탁가정의 보호를 받고 있다. 지난 2019년 48명에 불과했던 일반위탁가정 아동 수가 두 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일반위탁가정은 혈연관계가 아닌 가정이 보호를 맡는 방식으로 전체 비중은 작지만 뚜렷한 증가세가 눈에 띈다. 반면 친인척이 보호하는 ‘친인척위탁가정’과 조부모가 보호하는 ‘대리양육가정’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전북가정위탁센터 관계자는 “많은 아동이 가정위탁제도를 통해 가족 중심의 보호와 교육을 경험하고 있다”며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시행, 오는 7월부터 시작될 ‘입양 전 위탁’ 제도를 통해 위탁부모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생아와 영아를 양육할 위탁가정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더 많은 시민이 가정위탁에 관심을 갖고 동참할 수 있도록 다양한 참여 통로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전북가정위탁지원센터는 아동을 사랑으로 양육해 줄 위탁부모를 모집합니다. 문의는 063-288-7770.

  • 기획
  • 문채연
  • 2025.05.21 16:38

[전북일보·전북특별자치도선관위 공동기획] 제21대 대통령 선거 무엇이 달라지나

<전북일보·전북특별자치도선관위 공동기획>제21대 대통령 선거 무엇이 달라지나 2005년 8월 4일 통합 공직선거법이 제정된 이래, 공직선거법은 20년 간 50차례 이상 개정됐다.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맞춰 선거운동의 자유를 확대하고 유권자의 투표편의 증진을 위해 법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으나 자주 바뀌는만큼 유권자들이 잘 알지 못하고 어려워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법의 개정 뿐 아니라 사회의 요구에 따라 선거관리 차원에서 시행되고 개선되는 부분들이 선거때마다 다른데, 유권자들에게 이를 적극 알릴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해소와 선거제도에 대한 신뢰 향상, 국민 화합 등을 위해 이번 대선에서 변경되고 시행되는 선거제도들에 대해 살펴본다.<편집자 주> △ 지방공사 ·지방공단 상근직원 이번 선거부터 선거운동 가능 지난 2022년 제20대 대선에서 지방공사와 지방공단 상근직원은 선거운동과 당내 경선운동이 불가능했다. 이어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총선)에서는 규정이 바뀌면서 이들의 선거운동은 여전히 불가능했지만 당내 경선운동은 허용됐다. 이어 오는 6월 3일 치러지는 제21대 대선에서 이들의 선거운동은 전면 가능해졌다. 이같은 변경 배경은 제21대 총선 당시 카카오톡에서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글을 올린 혐의로 기소된 모 공사 상근직원 2명이 공직선거법 제60조 제1항 제5호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고 이 조항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지난해 1월 25일 나왔기 때문이다. 헌재는 "지방공사·지방공단 상근직원의 지위와 권한에 비추어 볼 때 상근임원과 달리 이들이 선거운동을 한다고 해서 그 부작용과 폐해가 일반 사기업 직원의 경우보다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되며, 이는 과잉금지원칙 위반"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과거 불법선거가 난무하던 시절의 환경에 비춰 제정된 공직선거법의 선거운동 관련 조문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선거운동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2016년 공직선거법의 대표적인 규제 조항이던 제254조, 사전선거운동에 대한 새로운 판례를 계기로 선거운동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공직선거법이 해석·운용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법과 규칙도 개정되고 있는 추세다. 또 지난해 3월 29일부터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시설물 설치와 인쇄물등의 배부를 제한하는 90조와 93조도 완화돼 제한금지기간이 선거일전 180일에서 선거일전 120일로 줄어들었다. 앞으로 시대에 맞춰 선거운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전투표참관인 수 제한 그동안 선거 당일투표와 달리 사전투표에서는 참관인의 수를 제한하지 않았지만, 운영상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38개 정당이 참여하면서 사전투표소 당 평균 27명의 참관인이 등록됐는데, 그 문제점은 더욱 두드러졌다. 과도한 인원과 수당 지급 문제, 장소 협소 등이 그것이다. 실제 지난해 총선당시 사전투표참관인수는 전국적으로 9만8080명으로 과도하게 많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들은 참관인 수당도 받는데 당초 책정된 56억8000만원 보다 많은 98억원이 이들에게 지급됐다. 장소의 문제도 제기됐다. 한정된 투표소 공간에 다수의 참관인이 상주하면서 참관 실효성은 떨어지고 선관위는 선거관리에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올해 1월 7일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사전투표참관인은 투표소마다 최대 8명으로 제한된다. 만약 선정되거나 신고한 인원수가 8명을 넘는 경우 관할 구·시·군위원회가 추첨으로 선정하게된다. 선관위 관계자는 "사전투표참관인의 참관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기위한 제한으로 질서정연한 가운데 참관이 보다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이뤄질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전투표소별 관내·관외 투표자수 1시간 단위로 공개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서울과 인천, 부산 등 10개 도시 행정복지센터 및 체육관 등 사전투표소 운영이 예상되는 40여 곳에 불법카메라가 발견됐다. 이에 선관위는 경찰과 합동으로 전 (사전)투개표소의 불법카메라 설치 여부를 확인했다. 선관위는 이같은 사례가 부정선거 의혹에 빠진 한 유튜버가 사전투표자수를 확인해 보겠다며 벌인 일이라며, 사전투표율에 대한 불신과 의혹의 단적인 예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기존에는 선거인의 주소지를 기준으로 구·시·군별 사전투표자수를 1시간 단위로 공개하고 사전투표소별 투표자수는 매일 사전투표 종료 후 별도 공개해왔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구·시·군별이 아닌 사전투표소별로 관내·관외 투표자수를 1시간 단위로 추가 공개할 예정이다. 선관위는 이같은 변경이 사전투표자수를 실제보다 부풀려서 발표하고 부풀려진 수만큼 허위 투표지를 투입한다는 부정선거론자들의 주장에 대한 의혹을 해소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반인 투·개표 사무 지원시 국적확인 절차 강화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이들의 핵심주장중 하나가 선거의 투·개표 사무에 중국인이 대거 참여해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에 선관위는 이같은 의혹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투·개표 사무 지원신청시 국적 확인 절차를 강화한다. 공직선거법상 일반인 투·개표 사무지원의 경우 ‘공정하고 중립적인 자’임을 위촉요건으로 하고 있고 외국인을 투·개표사무원의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선관위는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위해 2023년 11월 30일자로 '공직선거절차사무편람'을 개정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을 투·개표사무원으로 위촉할 수 없도록 했다. 또 이번 대선에서는 일반인의 투·개표사무원 지원시 국적 확인란을 추가해 국적여부를 분명히 명시하도록 하고, 신분증명서 사본을 함께 제출하도록 했다. 선관위는 이같은 국적 확인 절차를 추가조치로 외국인의 투·개표사무 참여 소지를 제거해 중국인의 부정선거 조작 음모론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정선거참관단 구성 및 운영 사전투표나 선거일 투표 및 개표 등 일반 국민이 궁금해하거나 오해할 수 있는 모든 선거관리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부정선거 의혹 차단 및 선관위의 신뢰성 제고를 위한 조치도 이뤄진다. (사)한국정치학회, (사)한국정당학회 등 선관위로부터 의뢰받은 2개 이상 학회는 참관단 규모 및 참관단원 등을 자율적으로 구성한 뒤 운영해 선거 전 1개월 부터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희망하는 절차사무 전 과정을 참관하는데, 참관단과 학회 관계자가 절차사무 현장 참관을 하고 선관위 직원이 참관에 동행해 각 과정별 설명 및 질문·답변을 하게된다. 이들의 활동도 언론사들이 동행취재를 하거나 촬영영상을 선관위 홈페이지나 유튜브에 게시할 예정이다. 또한 운영 종료후 학회가 참관단 운영결과를 포함한 대선 외부평가가 실시된다. 공정선거참관단 출범식 모습/전북특별자치도 선거관리위원회 제공 선거공보물 발송 작업 지켜보는 공정선거참관단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공정선거참관단이 18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선거 책자형 선거공보물 발송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2025.5.18 ksm7976@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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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세종
  • 2025.05.20 18:42

[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 탐방’] (10) 실크로드의 시각적 강창 설법: 인도 파타에서 한국 땅설법까지

판소리는 본래 '열두 마당'이라 불리며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의 다섯 마당 외에도 강릉매화타령, 배비장타령, 무숙이타령 등 다양한 작품들이 존재했으나, 그중 상당수가 현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만약 사라진 것으로 여겨지던 판소리 창본이 갑자기 발견되어 실제 공연까지 이루어진다면, 이는 한국 문화사에서 중대한 사건이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문화적 '재발견'의 사례가 불교 전통에서 실제로 일어났는데, '땅설법'이 그 주인공이다. (그림1) △ 사라진 줄 알았던 불교 전통 '땅설법', 삼척 안정사서 생명력 이어가 땅설법은 강원도 삼척 안정사에서 최근 재발견된 불교 속강(俗講)의 한 형태로, 불교 교리와 설화를 시각 자료와 함께 구연하는 독특한 설법 방식이다. 이 전통에서는 승려가 그림이나 특수 제작된 도구를 활용하여 불교 교리의 내용을 청중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학술적 관점에서 이러한 시각적 설법 형식은 인도의 파타(Pata) 전통에서 기원하여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속강(俗講)이 생겨났고, 변문(變文)이라는 독특한 불교문학 형태로 발전했다. 이 전통은 다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져 오늘날까지 에토키(絵解き)라는 형태로 남아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한때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던 이 불교 설법 형식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의 안정사에서 살아있는 전통으로 보존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2) △ 속강(俗講)과 변문(變文): 중국 불교의 시각적 설법 속강(俗講)은 당나라 중기(7세기 후반~8세기) 이후 중국에서 유행한 불교 설법의 한 형태로, 승려들이 일반 민중(속인)을 대상으로 한 통속적인 설법을 의미한다. 이는 불교 경전의 내용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 변상도(變相圖)라는 그림을 보여주면서 진행되었다. 돈황 장경동에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과 함께 발견된 변문(變文) 문헌 중 펠리오 돈황사본 P.4524 항마변문(降魔變文) 두루마리 그림은 속강이 대중화된 시각적 불교 설법 방식임을 뒷받침한다. (그림3) △ 에토키(絵解き): 일본 불교의 시각적 설법 일본 불교에서 발전한 설법 방식인 에토키(絵解き)는 "그림을 푼다"라는 뜻으로 그림의 장면이나 의미를 설명한다.(그림4) 에토키가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AD 931년으로 시게아키라(重明) 친왕이 쓴 『이부왕기(吏部王記)』에 『석가팔상화(釈迦八相絵)』의 에토키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고대 일본의 에토키는 황실이나 귀족 등 극소수의 상위 신분의 사람들에게 고승이 직접 당탑 내의 벽화나 병풍화를 설명하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가마쿠라 시대(1185-1333) 이후 에토키는 급속히 대중화·예능화되어 종교적 교화 수단을 넘어 문화적 오락 형태로까지 발전하였다. (그림4) 일본 불교의 시각적 설법 에토키(絵解き) △ 인도 파타와 스투파: 동아시아 불교 그림 설법의 모태 동아시아의 시각적 불교 설법 방식은 공통적으로 고대 인도의 파타(Pata) 전통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인도의 파타는 길이가 종종 3~5미터에 달하는 천이나 종이 두루마리에 신화적 장면, 신들, 영웅, 또는 주요 사건을 연속적으로 그려넣은 시각 자료였다. 구연자는 이 그림을 벽이나 나무에 걸거나 펼쳐 놓고, 손이나 긴 막대기로 특정 부분을 지목하며 노래(chants), 설명(narration), 때로는 대화체를 활용하여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전달했다.(그림5) 이러한 시각 자료를 활용한 구술 전통은 문자 해독력이 낮은 대중에게 종교적 가르침과 서사를 효과적으로 전파하는 수단이었다. 불교와 그림 설법의 본격적인 결합은 스투파(불탑)의 부조 조각에서 나타났다. 스투파를 장식하는 부처님의 생애와 전생 이야기(자타카) 등 불교 설화도를 해설하던 승려들은 고대의 "그림 설법 법사"라 할 수 있다. △ 중앙아시아 불교 그림 설법의 현장: 키질 205굴 벽화 중앙아시아에서 그림 구연 설법이 유행하였음을 보여주는 가장 명백한 증거로는 키질(Kyzil) 205굴 벽화이다. 이 벽화는 제작 연대가 7세기 전반기로 추정되는데, 브라만 출신 바르샤카라(Varṣākāra)가 불교 옹호자인 아자타샤트루(Ajātaśatru) 왕에게 부처님 생애 변상도를 보여주며 설법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벽화에서 주목할 점은 바르샤카라가 이러한 시각적 내러티브를 통해 부처의 입멸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왕에게 완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왕은 정제된 버터가 담긴 항아리--고대 문화에서 항아리는 자궁과 재생의 상징으로 종종 사용--에서 목욕 중인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로 해석된다. 또한 벽화 아래에는 세계의 축인 메루산(須彌山)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부처의 열반이 세계에 미친 영향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그림6) △ 잊혀진 시각적 불교 강창 '땅설법'의 재발견과 의의 한국에서는 '땅설법'이 과거 '삼회향놀이'의 다른 명칭으로 알려졌으나, 1960~70년대 이전에 소멸된 것으로 여겨졌다. 강원도 삼척 안정사에서 다여(茶如) 스님과 신도들이 전승해 온 '땅설법'은 단순한 민속놀이가 아니라 불교 교리를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한 체계적인 설법 형식임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안정사에서 개최된 <세계의 속강과 땅설법 국제포럼>에서 세계적 석학인 펜실베이니아대 빅터 메어(Victor Mair) 교수가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그림7) 메어 교수는 오늘날 땅설법이 실제로 전승되고 있다는 사실에 학술적 놀라움을 표하며, 이 귀중한 문화유산의 체계적 보존과 국제적 공동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발견은 한국 전통 예술의 계보학적 재고찰을 요구한다. 특히 판소리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불교 속강(俗講)과의 연계성 측면에서 재검토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불교 설법 형식과 전통 공연 예술 간의 영향 관계를 밝히는 연구는 한국 문화사의 중요한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이다. 전홍철 교수 (우석대 경영학부·예술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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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19 16:43

[한신협 공동기획 -팔도 핫플레이스] 독도를 품은 울릉도 '그 섬에 가고 싶다’

섬은 고립의 공간이었다. 바다로 둘러싸인 탓에 가고 싶어도 쉽게 갈 수 없고, 나오고 싶어도 쉽게 나올 수 없는 곳이 바로 섬이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빠른 속도, 대형화된 여객선 영향으로 접근성이 개선되면서 예전보다 방문이 쉬워졌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더디게 개발되면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덕분에 힐링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우리나라엔 3천400여개의 섬이 있다. 이중 유인도는 465곳. 인구의 0.5%만이 살고 있고 대부분 서해와 남해에 치우쳐 있다. 동해에는 유인도가 거의 없지만 국토 최동단엔 울릉도와 독도가 있다. 울릉도는 내륙에서 약 200Km가 떨어져 있으며 독도는 울릉도에서 약 90Km가량 동남쪽에 위치해 있다. △애국의 성지가 된 섬 '독도' 독도가 애국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독도는 천연보호지역으로 묶여 출입이 통제됐다가 2004년 빗장을 풀고 국민들에게 개방되면서 감춰둔 속살을 조금씩 보여 주기 시작했다. 독도 전체가 개방된 것은 아니다. 온전히 개방된 곳은 동도 접안장 시설물인 일부 지역뿐이다. 서도나 동도 정상을 가기 위해선 또다시 경찰청이나 울릉군 독도관리사무소에 허락을 구해야 한다. 독도 현지에서 눈물을 흘리는 탐방객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개방된 좁은 공간에서 30분 남짓한 짧은 체류시간이지만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감동은 상상 외로 크다. 한 탐방객은 "멀미에 지쳐 후회하고, 다시는 이곳에 안 온다고 맹세했지만 독도에 상륙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 한 곳이 뭉클하면서 벅차오른다. 독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졌다"고 했다. 우리나라 동쪽 끝 영토. 동해 망망대해에 비탈지고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척박한 자연과 시시각각 바뀌는 해상 날씨와 사투하며 독도를 수호하는 독도경비대 모습은 도심에서 보는 일반 경찰과 사뭇 다른 매력과 감동으로 다가온다. 독도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일본의 탐욕의 대상이 됐다.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을 준비하면서 일본은 독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국 소유로 만들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고 지금도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의 야욕에 항의라도 하듯 탐방객 대부분 태극기와 '독도는 우리 땅'이란 문구가 들어간 옷이나 카드 등을 준비해 독도를 찾는다. 또 사진을 찍을 땐 '김치' 대신 어김없이 "독도는 우리 땅"을 외친다. 이런 모습을 보면 휴전선 인근 전망대나 접경지역보다 더 큰 애국심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장소가 독도가 아닐까 싶다. 독도를 방문하기 위해선 이동경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럼에도 연간 20만명이 독도를 꾸준히 찾고 있다. △큰 바람 기다리는 언덕 울릉도 서쪽엔 태하마을이 있다. 울릉도서 한반도를 마주 보는 마을이다. 조선시대 수토사들이 울릉도로 오거나 뭍으로 이동할 땐 이 마을에서 시작했다. 마을 바닷가 우측엔 '대풍감'이라는 곳이 있다. 큰 바람을 기다리는 언덕이다.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선 바람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태하마을은 조선시대 울릉도의 요충지였다. 마을 곳곳엔 조선시대 섬을 관할한 수토 증거가 넘쳐난다. 일본인들에게 방문을 권하고 싶은 장소다. 태하마을에 자리 잡은 성하신당과 수토박물관, 태하해안산책로 등은 모두 무료다. 넉넉하게 시간을 갖고 마을과 해안산책로 등을 천천히 둘러보면 재미난 역사와 설화, 자연풍경 등을 간직한 이곳은 어느 여행지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특히 태하마을에서 대풍감 방향으로 이어주는 태하해안산책로(연도교)도 꼭 가봐야 한다. 울릉도 탄생의 지질학적 가치를 눈과 마음으로 담을 수 있는 곳이다. 향목전망대로 가는 길 풍경 또한 절경이다. 태하향목 관광 모노레일을 타고 향목전망대에 오르면 숨겨진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 풍경은 한동안 컴퓨터와 휴대폰 바탕화면에 사용됐었다. 일상에서 답답하거나 무료할 때 생각나는 장소다. 모노레일을 타고 급경사를 오르면 정상에서는 동해의 푸른 바다와 울릉도의 절경이 펼쳐진다. 종착지에서 오솔길을 따라 10분간 걷다 보면 울릉도(태하) 등대가 있다. 오솔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매력이 있다. 태하향목전망대는 1958년 설치된 울릉도(태하) 등대 자리에 위치해 있다. 이 장소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의 망루터 자리였다. 금화를 가득 실은 러시아 함정으로 잘 알려진 '돈스코이호'를 울릉도서 최초 관측한 곳이다. 특히 바닷가 쪽 전망대에서는 쪽빛바다에 펼쳐진 대풍감의 절경과 웅포 해안의 아름다운 모습을 발아래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10대 아름다운 해안으로 꼽히는 북면 현포 해안을 한눈에 볼 수 있다.탐방객들이 전망대서 바다 절경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지른다. 관음도 전망대서 본 죽도. 죽도는 현재 한 가구가 살고있는 유인도로 울릉도 부속도서 중 독도 다음 두번째로 크다./울릉군 제공 울릉도 본 섬과 연결해주는 관음도 연도교. 에메랄드 바닷빛과 세로로 절개된 특이한 주상절리가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울릉군 제공 △울릉도 내 한반도 섬, '관음도' 관음도는 면적 0.0714㎢, 높이 약 106m, 둘레 약 800m로 울릉도 부속도서 중 독도와 죽도 다음으로 3번째 큰 섬이다. 과거 이곳에 깍새(슴새)가 많이 살아 '깍새섬'이라고도 불린다. 조선시대엔 '방패도'라고 불렀다. 항공에서 보면 한반도 모양을 하고 있다. 울릉군 저동항에서 북동쪽으로 5㎞ 해상에 위치해 있으며 예전에 주민이 살다가 무인도가 됐다. 2012년 울릉도 본 섬과 연도교로 연결되면서 쉽게 탐방할 수 있게 됐다.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을 맨 처음 반기는 터줏대감은 괭이갈매기이다. 고양이와 비슷한 울음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관음도 주변은 괭이갈매기 집단 서식처로 울릉군에서 보호하고 있다. 연도교에서 바라보면 섬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코발트 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바다와 주상절리가 어우러져 만든 풍경이 압권이다. 연도교 밑 투명한 에메랄드 바닷빛은 마치 외국을 연상시킨다. 연도교를 지나 400여개 계단을 오르면 잘 정비된 관음도 지질 탐방로가 나온다. 탐방로 주위엔 동백나무, 참억새, 후박나무, 부지깽이나물, 쑥 등이 자생해 '야생 식물의 보고이며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보전된 이유 중 하나는 섬의 폐쇄성 때문이었다. 바닷가에서 100m가 넘는 직벽으로 둘러싸여 인간의 출입이 통제됐기 때문이다. 섬에서 바닷가 방향엔 높이 14m의 해식동굴(海蝕洞窟)이 2개인 관음쌍굴이 있다.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 마시면 장수한다는 설이 전해진다. 울릉도 3대 절경 중의 하나로 꼽힌다. 울릉도 일주 유람선을 타면 바다에서 보는 섬은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관음도는 수중 모습 또한 장관이다.일상을 벗어나 다른 곳과 차별화된 여행지를 원한다면 울릉도, 독도가 어떨까? 매일신문=조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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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16 10:12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45) 이용목(李容穆)의 「백석서독(白石書牘)」과 이범석(李範奭)의 『확재집(確齋集)』

△「백석서독(白石書牘)」 이 자료는 이용목(李容穆, 1826~?)의 편지를 모은 서간집이다. 이용목은 서울 출생으로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인 이건명(李健命)의 후손이다. 그는 벼슬살이를 하지 않고 일찍이 경상도 삼가(三嘉)에서 살다가 만년에 충청도 영동, 보은지방으로 이사하여 살았고, 1894년 당시에는 상주 장암(壯岩)으로 피난하였다. 그 자신은 출사하지 않았으나 사촌형 이용원(李容元)은 경상도 감사를 지냈고, 아들 중익(李重益, 重弼)은 보은군수와 무안 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또 장흥부사로 재직 중 고부봉기가 일어나자 고부 안핵사(按覈使)로 파견되어 수많은 불법 탐학를 저질러 전봉준 등 고부 일대의 민중을 자극한 이용태(李容泰)가 그의 삼종제(三從弟)이다. 「백석서독」에는 이처럼 관직에 진출해 있던 아들이나 친인척이나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신이 실려 있다. 특히 아들 중익과 주고받은 서신에는 1893년 3월의 보은집회이나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내용이 다수 들어있다. 아들 중익은 1892년 1월부터 충청도 보은 군수에 재직하였으며, 재직 중 보은집회를 겪었다. 1894년 1월 무안 현감으로 전보되어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전라도 무안 군수로 재임하였다. 보은집회 당시에는 선무사 어윤중과 함께 1893년 3월 26일과 4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집회에 모인 동학교도 및 일반 민중을 찾아가 효유하고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또 「백석서독」에는 동학농민혁명 시기 무안 현감으로 근무하던 아들 중익과 주고받은 서신을 통해 무안 및 전라도 일대 농민군의 동향을 알려주는 내용이 일부 실려 있다. 「백석서독」의 내용 가운데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하여 중요한 내용을 몇 개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보은집회 개최 직후 집회를 주최한 교도들이 보은 공형(公兄, 아전)에게 글을 보내 집회에 따른 보은 주민들의 불편에 대해 양해를 구한 사실이다. 동학교도들은 척왜양을 하려한다는 자신들의 뜻을 민간에 알려 놀라서 동요하는 일이 없게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와 유사한 내용은 「취어」에만 나오는데 그 내용에 조금 차이가 있다. 보은집회에서는 보은, 상주 등의 수령과 향리들에게 군량과 군기를 내놓을 것을 독촉하고, 인근의 토호와 부민들에게도 통문을 보내 군량을 빌려줄 것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백석서독」의 저자 이용목도 3월 22일 밤 동학교도들로부터 백미 30석을 3일 이내에 보내지 않으면 곤란한 일을 당할 것이라는 ‘협박문’을 받았다. 또 「백석서독」에는 3월 23일 무렵 “호남과 호서의 교도들이 합진(合陣)하여 그 위세가 늠름하다.”라고 하여 금구의 교도들이 보은으로 와서 합세한 것으로 기록하였다. 다른 기록들에는 단지 이와 관련된 소문만 기록해두고 있을 뿐이다. 또한 다른 자료를 통해 보은집회의 민중들이 해산 후 서울이나 인천으로 갈 것이라고 주장한 사실은 알려져 있었으나, 「백석서독」에는 3월 그믐 경에 해산하여 1대는 서울로 올라가고 1대는 동래로 내려가기로 되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한편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하기 직전인 1894년 3월 11일 무안 현감으로 재임 중이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읍촌간의 양반집들이 심하게 모욕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분통하다.”라고 하였다. 또 3월 22일자 편지에서는 황간, 영동, 청산, 보은, 옥천 등지에서도 이미 3월 22일 무렵부터 농민군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져서 ‘원한을 갚고 돈을 빼앗는’ 일, 그리고 사대부들 가운데 구타를 당하는 일이 많다고 기록하였다. 4월 13일 편지에는 회덕과 진잠 2개 읍이 농민군에게 군기를 빼앗겼고, 농민군이 공주의 유성을 점거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으며, 5월 2일 무안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삼종제인 이용태가 안핵사 일을 잘못한 죄로 유배된 사실을 전하고 있다. 1895년 지인 이천 수령을 지낸 김준군에게 쓴 편지에 따르면, 「백석서독」의 저자 이용목은 자기가 살던 마을이 ‘동비의 소굴’이 되자 아내를 아들 중익이 현감으로 있는 무안으로 피신시켰으나, 1895년 봄에 이르러 오래된 병이 위중해져서 갑자기 사망하여 직접 영결(永訣)하지 못한 애달픈 마음을 표하고 있다. △『확재집(確齋集)』(경란록(經亂錄)」 『확재집(確齋集)』은 이범석(李範奭, 1862~?)의 문집이다. 저자의 자는 성백(成伯) 혹은 순좌(舜佐), 호는 확재이다. 아버지는 덕하(德夏)이며, 어머니는 평산 신씨로 의조(儀朝)의 딸이다. 저자는 충청도 아산 출신으로 16세 때 감영의 복시(覆試)에 뽑혀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나 급제하지 못하였고,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혁명 이후 귀향하여 향리에 은거하였다. 개화파와 맥을 같이 하던 이범석은 이후 1901년 외부주사에 임명되었고, 다음해 길주감리서 주사를 거쳐 통상국(通商局) 과장, 양근 군수 등을 역임했다. 1905년 이후에는 후진 양성에 매진하였다.동학농민혁명 관련 내용은 확재집 8권에 실린 「경란록」에 들어있다. 「경란록」은 1862년부터 1926년에 이르는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기사는 중요한 사건이 있던 해에만, 사건의 주요 내용과 그에 대한 논평을 남기는 방식으로 쓰여 있다. 「경란록」은 그가 ‘난시(亂時)에 나서 자라고 늙었다’고 말하듯이 자신이 살아있던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하고 평가해 놓은 일종의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먼저 1862년 일어난 농민항쟁(임술민란)과 영해에서 일어난 이필제란(1871)에 대해 간략히 서술하였다. 이범석은 민란의 원인을 “수령들이 백성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오로지 탐욕만을 부려 백성들이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어 경복궁 중건(1864), 오페르트 도굴사건(1866), 개항(1876), 안기영‧이재선 역모사건(1881),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64) 등을 다루었고, 광화문 복합상소와 보은집회(1893) 등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배경에 대해서는 고부봉기 가 일어났을 때 조정에서 탐관오리들을 벌하지 않고 헛되어 ‘난민’들만 다스렸으므로 민중이 모두 동학에 입도하였고, 전봉준이 그들을 모아 당을 만들어 호남 전 지역에서 창궐하였다고 지적했다. 또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했을 때, “스스로 국호를 세우고 스스로 왕호를 칭했다[自建國號 自稱王號].”라고 한 내용은 다른 기록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음에는 저자가 아산의 향제로 돌아와서 겪은 청일전쟁과 동학농민혁명의 경험을 수록하고 있다. 아산 일대에서는 농민군에 의해 양반가의 분묘가 강제로 파헤쳐지는 일이 많았다. 이범석 본인의 집도 말과 돈을 뺐기는 등도 여러 번 ‘토색질’을 당하였고, 특히 마을 사람들이나 ‘상놈’들이 모두 농민군에 가담하고 노비들도 모두 ‘배반’하려는 마음을 품자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노비를 모두 면천(免賤)해 주었으며, 직접 물을 길고 장작을 패서 밥을 지어 먹었다고 기록하였다. 이 글의 맨 마지막에 있는 「담평(談評)」에서 동학농민혁명[‘湖南民亂’]은 조선의 군대로 진압했어야 하는데, 조정에서 이기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이웃 나라의 군대를 빌린 것이 결국 청일전쟁의 단서가 되었음을 지적한 부분도 눈에 띈다. 군데군데 오류도 적지 않으나, 동학농민혁명의 배경이나 의미를 19세기 후반 조선사회의 대내외적 위기 상황과 연결하여 파악하고자 한 저자의 접근도 매우 흥미롭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배항섭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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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1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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