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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 - 특별자치도 시대, 전북 변화와 도약] 장수군 - 미래 농업 실현 위해 스마트팜 조성

기후변화에 따른 각종 자연재해, 치솟는 농자재비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농촌 인력 부족 문제까지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업 환경 속에서 해결 대안으로 스마트팜이 급부상하고 있다. 장수군은 지속 가능한 미래 농업 실현을 위해 전라북도 스마트팜을 가장 앞서 이끌어가고 있다. 일찍이 장수군 지역특화 임대형 스마트팜 육성을 민선 8기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잘 사는 농촌, 행복한 농민 실현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임대형 스마트팜은 정부의 8대 혁신성장 선도사업 중 하나로 정부는 농업을 미래 신성장산업으로 전환하고 청년층을 이끄는 스마트농업을 활성화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인구유인책이 필요한 장수군은 정부의 국정과제에 발맞춰 지역특화 임대형 스마트팜 조성, 농군사관학교 운영 등을 통해 청년 농업인을 유입시켜 지역소멸의 위기 속에서 극복의 기회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장수군은 ‘지역특화 임대형 스마트팜 조성사업’을 위해 기금 120억, 국비 159억, 도비 156억, 군비 228억 등 총 663억 원을 투입해 8ha 규모의 임대형 스마트팜 조성을 목표로 1단계는 2024년까지 두산리 일원에 4ha 규모의 스마트팜을 조성하고, 2단계로는 올해 4ha 규모의 사업부지를 선정한 후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최훈식 군수는 “최근 농업의 중요성과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스마트팜, 농촌체험, 치유농장 등 다양한 농업 관련 사업들이 발굴되고 있다”며 “군도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농업인들이 스마트팜을 활용해 경제적인 비용으로 스마트농업을 실현할 수 있도록 군에서 시설지원은 물론, 교육까지 그 기틀을 철저히 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기획
  • 이재진
  • 2023.05.31 17:58

[창간호] 창간 73주년 전북일보에 바란다

방향성과 중심 잃지 않고 매의 눈으로 바라보는 언론 되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도로마저 휘어가게 만들며 존재감을 발휘한 소덕동 팽나무는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역사의 산증인이며 공동체를 지켜준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강한 상징적 의미로 등장합니다. 실제 500살 나이의 이 나무는 경남 창원 한 마을의 당산목이던 것이 이젠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이 마을의 새로운 자랑거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우리네 소식을 기록하고 주민의 권리를 대변해온 지역의 오랜 대표 신문 또한 역사의 산증인이며 공동체의 버팀목이라는 의미에서 이런 당산나무에 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1950년 이래로 도민과 동고동락하며 지역 전통과 역사를 기록해온 전북일보가 오늘로 창간 73주년을 맞았습니다. 긴 세월 동안 우리에게 힘과 위로가 되었고 필요할 때 질타를 마다하지 않은 정론지의 존재는 소덕동의 그 팽나무처럼 전북인의 자랑과 든든함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북일보의 창간 73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낍니다. ICT 기술과 미디어 환경의 급속한 변화로 초래된 종이신문과 지역 언론의 위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과감한 자기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이미 해외 언론시장에서도 지역 언론 간 네트워크 협업, 시장과 채널의 다양화, 쌍방향 소통 등 다채로운 발전의 길이 모색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를 때일수록 올바른 방향성과 중심을 잃지 않도록 매의 눈으로 바라보는 지역 대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특히 전라북도가 특별자치도로 거듭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갈 지금과 같은 시기에 그 책무는 더욱 큽니다. 오랜 세월 정론을 신념으로, 도민을 주인으로 여기며 변화를 거듭해온 전북일보가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성공적으로 부응해 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도민의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전북의 대표지로서 승승장구하기를 기원합니다. /임성진 전북일보 독자권익위원회 위원장 전북에 이익되는 뉴스 더 전해주길 평범한 대학생시절 전북일보는 전북의 각 지자체의 시보 군보 등을 전해주는 가장 빠른 언론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북에서 제일 큰 전북일보의 뉴스가 가장 정확하고 빠른 뉴스를 전달한다고 믿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점차 세상을 보는 폭이 넓어질수록 많은 언론사를 접하게 됐고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언론사는 편집자가 누구냐에 따라, 쓰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많은 견해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긍정적인 소식도 부정적이게 생각될 수 있고, 부정적인 생각도 긍정적이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전북일보는 한결같이 중립적인 의견과 최대한 전북에 이익이 될 수 있게 기사를 쓰는 것 같습니다. 이에 따라 20대의 관점에서 전북일보가 앞으로도 어떤 언론사보다 전북에 이익이 될 수 있는 뉴스와 소식을 많이 전해주기를 바랍니다. /20대 회사원 이경서 씨 청년 관심 높이도록 디지털 분야 새 도전을 오래 전부터 전북일보를 봐왔는데 요즘엔 인터넷을 통해서 지역 곳곳의 소식을 새로 알아 유익하게 보고 있습니다. 최근 격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전북일보는 인터넷 홈페이지 개편으로 다채로운 구성과 편집이 돋보인다고 느낍니다. 요즘 MZ세대들은 SNS를 통해서도 타인과 교류하고 교감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종이신문에 안주하지 않고 웹을 통한 전북일보의 디지털 소통 부분은 독자의 눈길과 손길이 가기도 합니다. 특히 요즘 사진과 영상을 통한 뉴스를 찾는 젊은이들의 수요가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전북일보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전북을 대표하는 정론지로서 청년층의 관심을 높이도록 디지털 분야에 있어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길 바랍니다. /30대 경찰공무원 오성택 씨 소외된 이웃·소상공인 삶·어려움 적극 반영도 코로나19 이후 위축된 지역 경기가 되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써왔던 마스크를 벗고 홀가분하게 일상으로 복귀를 한 대한민국의 저력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전북일보를 보면 지역의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하고 앞장서서 소외된 이웃을 조명하는 부분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언론의 현장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다양한 소식을 전하기 위한 사명을 다하는 전북일보의 창간을 축하합니다. 아직까지도 코로나19의 어두운 부분이 많지만 내일의 희망을 품고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을 더욱 더 조명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전북일보가 앞으로도 도민들의 민의를 대변하는 지역사회 등불 역할을 하면서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주변 소상공인들의 어려움도 지면에 적극 반영해주길 바랍니다. /40대 교사 김수정 씨 전북만 가진 문화·자연 등 콘텐츠로 채워줘야 눈을 뜨자마자 뉴스를 틀어 전국 소식은 방송 뉴스에서, 지역 소식은 지역 신문을 통해 접하고 있습니다. 지역 방송 뉴스도 있지만 우리 지역 사회의 문제와 행정은 전북일보를 통해서 더욱 면밀하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신문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창간 73주년을 맞이하는 전북일보에 보다 자세한 전북의 소식이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전북의 소외된 이웃과 지역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파헤쳐서 알리면 지역 주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전북의 이야기가 많아질 것 같습니다. 다른 언론에서 이미 접한 내용과 접할 수 있는 소식이 아닌 조명이 필요한 지역과 이야기로 채워진 지면을 바랍니다. 또 전북의 숨은 명인, 젊은 예술인 등 전북의 인적자원과 전북만이 가지고 있는 자연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더욱 재밌는 지면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50대 회사원 전용무 씨 오랜 세월 정론을 신념으로, 도민을 중장년 세대에게 고향 소식은 늘 궁금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점을 전북일보는 지속적인 기획 기사와 취재로 지역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 노릇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북일보는 반세기 넘도록 지역에서 꿋꿋하게 자리매김을 하며 지역의 여론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곤 했습니다. 앞으로 100년 동안에도 지역을 대표하는 신문사로서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도민과 함께 지역과 함께하는 신문이 되길 고대합니다. 전북은 인구 감소와 지역경제의 어려움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전북일보가 도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경제적인 어려운 요소들을 부각시켜 지역발전에 함께 앞장서주길 바랍니다. 도민과 전북일보가 함께 최선을 다한다면 더욱 발전된 전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60대 농민 김흥석 씨

  • 기획
  • 기고
  • 2023.05.31 17:29

[창간호 - 전북 ‘자치’의 역사] 고대 이주민·토착민 결합 자치 실현⋯민족 융화의 장

'축소'와 '침체'. 1945년 해방 이후 전북의 역사를 함축하는 단어다. 그간 전북은 광주‧전남에 밀려 중앙의 철저한 소외와 배제를 받아 왔으며, 오늘날에도 낙후된 인프라로 인해 나날이 지역을 떠나는 청년들이 줄을 잇고 있는 암울한 형국에 놓여있다. 내년부터 출범하는 ‘전북특별자치도’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전북 도민은 중앙 정부의 간섭없이 전북만의 자치를 통해 지역 발전과 성장의 달콤함을 처음으로 맛볼 수 있기를 염원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감은 역사적 경험에 의한 기대심리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전북은 고대부터 수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독자적인 ‘자치의 역사’를 써왔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 고대 : 전북에 정착한 고조선‧고구려인들 '자치(自治)'는 주민들 스스로 책임지고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의 정부가 직접 통제하고 주관하는 통치형태인 '관치(官治)'의 반댓말로 쓰인다. 고대 전북의 자치는 민족을 아우르는 '융화'의 역사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한반도 최초의 국가 고조선부터 다양한 민족이 이곳에 들어와 토착 세력과 결합해 새로운 자치 집단을 형성하는 과정을 수차례 밟아왔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여 년 전, 고대 전북 지역에 고조선의 지배층이 바닷길을 통해 대거 유입됐다. 삼국지 동이전 등 중국사서는 기원전 194년경 고조선의 준왕이 신하인 위만에게 왕위를 뺏긴 후 이곳으로 이동해 스스로 '한왕(韓王)‘에 올라 '마한'을 건국했다고 전한다. 이때 준왕이 남하해 온 지역의 위치는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고문서를 검증했을 때, 오늘날 익산과 부안 지역에 해당한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당시 준왕이 자칭한 '한'이란 명칭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원이 됐으며, 전북을 기점으로 한반도 남부를 수백년 간 지배한 삼한 연맹체가 형성됐다. 이후 삼국시대를 거쳐 670년경, 전북 지역에 다시 낯선 이주민이 들어왔다. 668년 고구려가 당에게 멸망하자 왕족 고안승이 고구려인을 거느리고 익산 지역에 내려와 '보덕국'을 건국한 것이다. '전북의 고구려' 보덕국은 신라와 연합해 당나라와 맞서 싸우고, 매년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는 등 엄연한 자치국가로서 존속했다. 그러나 676년 신라가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보덕국은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 당나라의 위협을 물리친 신라가 보덕국을 자국 영토로 편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보덕국은 684년 신라의 압력에 저항하고자 수 개월간 무력 봉기를 일으켰으나, 이내 진압돼 15년만에 완전히 소멸하고 말았다. 비록 나라는 멸망했지만, 보덕국의 고구려인은 전주와 남원 지역으로 이주해 그 명맥을 이어갔다. 신라는 수도를 대신해 지방을 관할하던 5소경 중 하나인 남원경에 대다수 고구려 유민을 이주시켜 살게 했다. 이들이 백제인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신라에 동화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전북 지역이 고대부터 고조선 등의 이주민과 지역 토착민이 스스로의 자치를 통해 하나의 집단으로 동화하는 민족 '융화의 장'이었음을 보여준다. △ 중세 : 전국을 호령한 또 하나의 백제 '후백제' 중세 전북 자치는 '팽창'의 역사였다. 통일신라 말기, 전국은 여러 군웅이 할거하는 대 혼란기를 맞았다. 이때 전북지역은 전주를 수도로 하는 '후백제'가 자리잡았다. 후백제는 신라의 군인이었던 '견훤'이 900년에 건국했으며, 중국에 사신을 보내고, '정개(正開)'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는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다. 전북인이 중심이 된 후백제는 신라의 수도를 함락시키고 고려를 수 차례 격파하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후백제는 신라의 9주 중 6주를 차지할 만큼 강력한 국력을 자랑했으며, 삼국 통일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후백제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935년 견훤이 아들 신검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고려에 귀순해버린 것이다. 나라의 창업자가 적국에 망명한 최악의 상황에 놓인 후백제는 급격히 무너졌다. 결국 후백제는 고려와의 '일리천 전투'에서 패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후백제는 비록 존속기간이 36년에 불과한 단명 왕조라 존재감은 낮지만, 수도였던 전북 일대에서는 후삼국 시대 혼란기 속에서 전국을 호령하던 당당한 자치 국가, 후백제 계승 의식이 남아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 근세 : 이름없는 민초의 손으로 ‘집강소’ 근세 전북 자치는 '변혁'의 역사였다. 강력한 중앙집권국 고려와 조선의 행정력 아래 천년 넘게 이어지던 전근대적인 통치 질서가 전북에서 발발한 동학농민혁명으로 인해 무너지고, 민중 중심의 자치가 실현된 것이다. 1894년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들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봉기한 동학농민군은 순식간에 전라도 전역을 석권하고 조정과 '전주화약'을 맺었다. 전주화약 이후 전주성에서 철수한 농민군은 각 지역에 농민 자치조직인 집강소를 설치하고, '신분제 철폐', '토지개혁' 등 농민들이 염원하던 개혁 내용이 담긴 폐정개혁안을 실천하고자 했다. 전주와 김제 원평을 중심으로 전라도 53개 고을마다 설치된 집강소는 동학교도가 우두머리인 '집강'이 되어 지방의 행정과 치안 전반을 담당했다. 기존 군수나 현감은 이름뿐으로 형식상 존재할 뿐, 실질적인 지방 권력은 농민이 장악하게 됐다. 당시 동학농민군은 구성면에서 소농, 빈농에 신분면에서는 백정, 노비 등 천민이 대다수였다는 점에서 집강소의 등장은 양반 기득권 중심의 지방 권력이 피지배층인 일반 민중에게 넘어온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사실상 집강소 운영을 통해 전북에서 우리 역사상 최초로 민중 중심의 지방 자치권의 대변혁이 시작된 셈이다.

  • 기획
  • 이준서
  • 2023.05.31 17:09

[지난 주 '핫클릭' : 5. 21~26] 원아 없어 문 닫는 어린이집들

△5월 21일~ 26일 5월 넷째 주 전북일보 홈페이지 방문자들은 김태경 기자의 '전북 어린이집, 아이가 없어요'를 가장 많이 클릭했다. 이 기사는 저출산 현상 속 최근 5년새 전주 아파트단지 내 어린이집들이 원아를 못 구해 19곳이 폐업하는 등 전북 지역 어린이집 324곳이 문을 닫은 상황과 이유를 들여다봤다. 두 번째는 이환규 기자의 '군산에 제2의 서울 경리단길 조성 기대감'. 이 기사는 군산시가 2025년까지 200억 원을 투입, 사정삼거리∼옛 군산화물역 2.6㎞ 폐철도 철길숲을 따라 조성하는 '도시바람길 숲' 계획을 소개했다. 서울의 경리단길과 같은 지역 대표 관광명소로 기대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 다음으로는 문정곤 기자의 '새만금 재생에너지 현주소···장밋빛 청사진은 어디로'이다. 태양광·해상풍력 등 문재인 정부 때 야심차게 추진됐지만, '계약 불발'·'취소 소송' 등 잇단 암초에 걸려 난항을 겪고 있는 '새만금 재생에너지 사업'을 진단했다. 이밖에 송승욱 기자의 '싸이 흠뻑쇼 2023 익산 온다', 육경근 기자의 '전주 신흥학교 총동문회장 이·취임식 성료..신임회장에 이광연 원장', 김윤정 기자의 '부산 가덕도신공항 공단 설립 급물살, 새만금 국제공항은 감감무소식' 등이 관심을 끌었다.

  • 기획
  • 이용수
  • 2023.05.27 13:44

[기획] 동아시아문화도시 일본 시즈오카현에 가다

최근 일본 시즈오카현에서는 공항과 현청 등 도심 곳곳에서 전주 맛집 등 관광정보가 담긴 지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23동아시아문화도시'에 함께 선정된 인연 덕분이다. 전주시를 비롯해 일본 시즈오카현, 중국의 청두·메이저우시가 함께 선정됐는데, 이 3개국 4개 도시는 '동아시아 문화권'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문화교류의 장을 이어 나가고 있다. 지난달 부터 각 나라에서는 2023 동아시아문화도시 개막식이 연이어 열렸다. 전주시 개막식이 열린 지난달 26일에도 한·중·일 3개국이 모여 전주에 모여 우호관계를 다졌다. 3개국 중 마지막 순서로 지난 2일 일본 현지에서 열린 시즈오카현 개막식에서는 각 도시의 전통예술공연이 펼쳐졌다. 전주시 공연단으로 참석한 합굿마을의 기접놀이 무대에는 뜨거운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일본 최초의 공립극장을 갖추고 문화예술을 육성해 온 시즈오카현 무대예술센터(SPAC)의 작품도 전주의 마음을 두드렸다. 동아시아 문화의 진한 향기로 채워지는 5월, 전주와 교류의 꽃을 피우고 있는 일본 시즈오카에 다녀왔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10주년 맞은 후지산 지난 2013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지산은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이를 알리기 위해 만든 후지산 세계유산센터는 후지산 전경 뿐 아니라 '후지산의 모든 것'을 담은 시설로 세계인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후지산을 거꾸로 놓은 듯한 외관 디자인이 시선을 먼저 사로잡고, 내부를 살펴보면 후지산에 담긴 신앙심과 미술작품과 고서적 속에 녹아든 후지산의 진면모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일본 중심부에 자리한 산 답게 높이 3776m로 가장 높은데, 그래서인지 예부터 일본인의 정신과 문화의 원천이었다. 사진애호가들과 풍경을 감상하기 위한 방문객들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패러글라이딩 체험도 있다. 후지산은 7~8월 두 달간 만 등산이 가능하다. 정상 주변에는 눈이 쌓여 있어 낮은 기온 등에 대비해야 하지만, 다양한 등산코스가 있어 사전에 준비를 하고 적당한 휴식을 취하면서 걸으면 초심자도 도전할 수 있다. △녹차·와사비 등 풍부한 미식자원의 향연 일본에서 가장 깊은 만인 스루가만을 품고 있는 시즈오카현은 온난한 기후로 일조량이 많고 수원이 풍부해 '식재료의 왕국'으로 불린다. 특히, 차 재배에 적합한 기후와 생산기술이 발달해 일본 전체 녹차의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덕분에 시즈오카현 곳곳에는 녹차 수확과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녹차에 대해 보다 깊이 알고 싶다면 '후지노쿠니 차 박물관'에 가보면 좋다. 세계 각국의 찻잎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차의 역사와 일본 전통의 차실과 정원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다도부터 다양한 체험코너도 인기다. 흐르는 깨끗한 물에서만 자란다는 와사비도 세계농업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시즈오카현의 자랑으로 꼽히고 있다. 이와 함께 잘 어울리는 장어, 벚꽃새우도 봄철 입맛을 돋우는 효자 식재료다. 특히, 가다랑어, 금눈돔, 시라스(치어) 등 해산물이 풍부하고 검은 국물이 특징인 '시즈오카 오뎅'도 현지인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다. △손에서 탄생하는 장인의 혼을 느끼고 싶다면 후지산의 정기를 받은 맑은 물과 장인의 기술이 더해진 니혼슈(술)는 맛이 달콤하고 마시기 쉽다. 시즈오카 사케는 풍부한 물과 쌀, 선조들의 노력이 더해져 맛 좋기로 이름이 났다. '후지 다카사고 주조'는 시즈오카현에 자리한 100년 역사의 전통술 주조공장으로 후지산 지하수와 엄선된 지역산 쌀로 사케를 만들어 사랑받고 있다. 양조공장과 주류 숙성 창고를 둘러볼 수 있으며, 이곳에서 제조한 술도 구매할 수 있다. 프라모델의 천국 '반다이 하비센터'는 건담을 비롯한 다양한 캐릭터 프라모델의 생산과정을 견학할 수 있는 친환경 공장이다. 일본 전통공예 체험시설인 '순푸 다쿠미슈쿠'에는 염색, 대나무 공예, 도예, 목공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방이 모여있다. 시즈오카산 차를 사용한 차 염색과 우아한 곡선미가 돋보이는 대나무 공예품이 눈길을 끈다. 체험공방을 지나면 민속 공예품을 판매하는 갤러리와 지역 특산품으로 만든 먹거리를 판매하는 카페도 운영 중이어서 많은 발길을 불러모은다. △후지산 시즈오카 공항 운영, 교류 활기 코로나19로 멈췄던 후지산 시즈오카 공항이 3년 만에 운행을 재개했다. 인천공항에서 직항으로 시즈오카현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열린 것. 접근성이 확대된 데다 이 공항을 통하면 후지산의 풍광을 보면서 비행기가 착륙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공항에 내리면 렌터카를 빌려 시내 곳곳을 여유롭게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시즈오카현은 서울 사무소를 두고 있어 사전에 관광정보를 얻기에도 용이하다. 동아시아문화도시 교류는 이제 시작이다. 내달 중에는 '한중일 문화도시의 세 울림'을 주제로 온라인 교류행사가 예정돼있고, 동아시아 청소년이 함께하는 문화축제도 추진 중이다. 오는 10월 28일에는 한국문화의 날을 맞아 주일한국문화원이 주최하는 한국문화체험행사도 예정 돼있다. 전통놀이, 현재미술, 무형유산, 음식문화, 음악공연 등 도시의 특색이 담긴 문화자원을 알리면서 그 멋을 나누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김태경 기자

  • 기획
  • 김태경
  • 2023.05.25 17:08

[참여&공감 2023 시민기자가 뛴다] 전주시 도시계획 이슈와 지속가능한 도시관리

최근 전주시의 주거 상업용지의 용적률 대폭 상향과 한옥마을과 역사도심 대규모 개발허용 등 원도심 규제 완화를 두고 찬반 의견이 뜨겁다. 한쪽에서는 도시의 정체성과 난개발로 인해 망가지는 도시의 모습을 우려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규제완화로 각종 개발 사업을 통해 지역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어느 방향이 되었든 우리가 살아갈 도시를 위해서, 미래세대를 위해서 올바른 방향이 어디인지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건폐율과 용적률이란 이번 전주시 도시계획 이슈에 대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개념들이 있다. 바로 건폐율과 용적률이다. 건축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일반 시민들에게는 다소 낯선 단어이다. 간단하게 용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건폐율이란 대지 면적에 대한 건축면적의 비율을 말한다. 즉 대지 위에 얼마나 많은 면적의 건축물이 들어가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예를 들어 100평짜리 대지에 50평짜리 건물을 짓는다면 건폐율은 50%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건폐율 규제를 통해 대지 안에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여 건축물의 과밀을 방지하여 일조, 채광, 통풍 등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화재나 재해 발생시에 불길을 차단하거나 피난등에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는데도 목적이 있다. 용적률이란 대지 면적에 대한 연면적의 비율을 말한다. 여기서 연면적은 건축물 각 층의 바닥면적의 합계(지하층 제외)를 말한다. 즉, 용적률은 대지 위에 얼마나 높은 층수의 건축물이 들어가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예를 들어 100평짜리 대지에 바닥면적이 50평인 건물을 4층으로 짓는다면 연면적은 200평이고 용적률은 200%가 되는것이다. 이러한 용적률의 규제를 통해 도시 내 인구 밀도와 교통량 등을 조절하고 도시 경관과 조망권 등을 보호한다. 이러한 도시의 건폐율과 용적률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규정되어 있으며, 각 지방자치단체 특성과 상황에 맞게 조례로 정해놓았다. △ 전주시의 도시계획 조례는 어떠한가? 전주시는 지난 3월 '주거지역, 상업지역용적률을 상향 정비하여 재개발·재건축 등의 활성화를 통한 도시정비 및 발전 도모'를 이유로 주거지역은 법정 최고치로, 상업지역의 용적률은 대도시 수준으로 대폭 상향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전주시 도시계획 조례 일부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에 전북환경운동연합은 '전주시 주거·상업지역 용적률 대폭 상향 중단촉구'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도시의 환경과 경관 훼손, 주거 불평등 심화 등 도시난개발을 우려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반면에 전주시 건축사협회와 재개발 재건축조합은 상업지역 용적률 상향에 따른 주거시설 확대를 규제하기 위한 장치인 '용도용적제' 신설에 반발하고있다. △개발 규제 완화 정말 필요한 일인가? 이번 '전주시 도시계획조례 일부개정(안)'에 대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지난 5월11일 전북환경운동연합과 한승우 전주시의원 주최로 '전주시 도시계획 이슈와 지속 가능한 도시관리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는 주거· 상업지역의 용적률 대폭 상향과 원도심 규제 완화를 중심으로하는 개발 정책이 주거환경과 경관, 도시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보완하기 위해 마련됐다. 기조 발제에는 도시설계와 도시 재생 분야에서 연구와 현장 경험이 풍부한 서울 시립대 도시공학부 정석 교수가 맡았다. 정석 교수는 미국 시애틀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도시혁신 사례를 들면서 "아름다운 도시경관은 엄격한 용적률 규제와 공공 기여에 따른 용적률 보너스로 사업자를 유도하고, 아래로부터의 시민 참여를 통해 만들어졌다"라며 "도시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는 도시가 제대로 된 도시이고 아름다운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진 주제발표는 전주지속협 도시계획협의회 박정원 위원장과 장우연 독립연구자가 맡아 각각 '주거환경을 고려한 용적률 관리방안'과 '전주 한옥마을과 역사도심의 도시관리 이슈와 과제'에 대하여 발표하며 도시계획의 방향성과 도시의 정체성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지정토론이 이어지며 각 토론자들은 섣부른 도시의 규제 완화가 불러올 여러 문제점들을 이야기했다. 좌장을 맡은 원광대 이양재 명예교수는 "도시의 용도 변화와 높이를 올리는 도시계획은 기후위기, 인구 감소 등 시대의 변화에 부합해야 하고, 규제완화와 개발 위주의 정책이 전주시의 바람직한 미래상과 부합하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토론회를 마무리했다. △'전주'라는 도시 오래된 역사문화 도시라는 정체성을 살리며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천만 관광도시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획적인 도시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묻지마식 상향', '획일적인 상향'보다는 심도 있는 논의와 토론 등 투명한 절차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보완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도시의 모든 공간에서 높이와 경관을 규제할 필요는 없다. 다만 도시를 지탱하는 다양한 기능에 맞춰 개발과 보존이 조화롭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 도시전체를 저층 빌딩으로 규제할 필요가 없듯이 도시 전체가 고층 빌딩으로 덮여 빌딩숲을 만들 이유 또한 없는것이다.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은 다른 도시와 다를바 없는 건물과 빌딩을 보러 오는것은 아닐것이다. 전주만의 멋과 맛, 뚜렷한 정체성을 가진 '전주다움'을 보고, 느끼기 위해 찾아 오는것이라 생각한다. 1500만 관광객 유치가 목표라면 도시의 규제 완화와 개발중심의 도시계획이 아닌 다른 도시들과는 다른 전주만의 도시의 차별성과 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장진호 전북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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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24 15:47

[후백제 역사, 다시 일으키다-문헌사료로 본 후백제] ⑦익산지역 마한∙백제∙후백제 역사 유적

△견훤은 왜 익산에 주목했는가 조선 18세기 중반 읍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견훤이 까치재 고개에 진을 치고 있을 적에 … 갑자기 기(旗)가 쓰러져 넘어졌다. 이를 보고 견훤은 자신이 반드시 패망할 것을 알고 좌우에 이르기를 내가 죽으면 모악산이 보이는 곳에 묻어 달라고 하였다. … ." <여지도서>. 현재 견훤왕릉은 논산군 연무읍 금곡리 산 17번지에 있다. 견훤의 희망에 따라 그의 릉은 남쪽으로 미륵산이 보이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만경강을 넘어서면 모악산도 보인다. 미륵산은 백제 금마저(金馬渚)의 중심산으로 미륵산, 용화산 등으로 불리었고 정상에는 전라북도의 최대 규모의 기준성 또는 미륵산성으로 알려진 산성이 자리한다. 견훤은 인생을 마감하는 자리에 왜 이곳을 선택했을까? 익산은 견훤 백제의 시작이자 종착역이었다. 견훤은 900년 완산주인 전주를 순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견훤이 서쪽으로 순행하여 완산주(完山州)에 이르니 … 견훤이 인심을 얻을 것을 기뻐하여 좌우에게 말하기를, '내가 삼국의 시초를 찾아보니, 마한이 먼저 일어나고 후에 혁거세가 일어났다. 그러므로 진한과 변한은 그를 뒤따라 일어난 것이다. 이에 백제는 금마산(金馬山)에서 개국하여 600여 년이 되었는데 총장 연간 당 고종이 신라의 요청으로 … 백제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지금 내가 감히 완산에 도읍하여 의자왕의 오래된 울분을 씻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마침내 후백제왕을 자칭하고 관부를 설치하고 관직을 나누니 이때는 당 광화 3년(900)이며 신라 효공왕 4년이었다. … ." <삼국사기> 견훤전. 백제의 개국왕인 온조를 모를 리 없는 견훤이다. 그럼에도 백제를 금마와 연결하는 견훤의 의향은 무엇인가. 견훤은 삼국의 시초를 마한으로 이를 계승한 백제는 금마산에 후백제는 완산에 세우고자 하였다. 삼국 통일에 외세를 빌린 신라도 비판하고 있으며 시기적으로 마한-백제-후백제를, 지역으로 익산(금마산)-완산을 계승한다는 관념을 보여준 선언이다. 더하여 일통삼한(一統三韓)의 의지도 강하게 나타낸다. △준왕이 자리잡은 곳, 금마의 마한 견훤이 주목한 후백제의 원류인 마한은 한반도 서남쪽에 자리잡았던 고대의 연맹체 국가이다. 중국사서인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 <진서(晉書)> 동이열전에 54개국 또는 56개국으로 소개되고 있다. 특히 익산의 금마는 <제왕운기>와 <고려사>에 고조선 준왕이 기원전 194년에 위만의 난을 피해 남천하여 마한을 세운 곳으로 나타난다. "위만이 조선을 공격하자 조선의 준왕은 … 바닷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한의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마한이라 하였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준왕이 금마군으로 옮겨가 정착하여 도읍을 세우고 군인이 되었다." <제왕운기>. 마한의 고지는 준왕이 남천하기 이전 한지(韓地)로 소개되고 있다. 그 물질문화는 세형동검과 점토대토기문화로 대변된다. 토광묘가 등장하고 유력한 수장들은 적석목관묘를 사용하는데 대략 기원전 3세기 경이다. 금강 유역의 대전 괴정동을 비롯하여 전남의 화순 대곡리, 전북의 익산 다송리, 군산 선제리, 전주 여의동·원만성·효자4, 김제 대동리유적 등에서 이 적석목관묘를 살펴볼 수 있다. 또 하나 고대국가의 성립에 중요한 한 축은 치수(治水)와 관련된 행위이다. 세계의 고대문명 대부분은 범람하는 강의 물을 조절함으로서 안정적인 국가 체계와 도시 구조, 잉여 생산물을 가능하게 하였다. 여기에서 호남평야의 익산 황등제(黃登堤), 김제 벽골제(碧骨堤), 정읍 눌제(訥堤)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김제 벽골제호를 경계로 전라도를 호남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문헌비고(文獻備考)>에도 나라의 가장 큰 제언으로 호남 3호를 언급한다. 17세기 실학자였던 반계 유형원도 <반계수록(磻溪隧錄)>에 김제의 벽골제와 고부의 눌제, 그리고 황등제를 나라 안에서 가장 큰 제언이자 가장 중요한 조세의 근원으로 밝혔다. 황등제는 2019년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기원전 5세기~3세기에 축조되었다. 벽골제는 330년 축조 기사가 전한다. 눌제도 <정읍군사(井邑郡史)>에 마한~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후 일부 발굴조사에서 황등제나 벽골제와 비슷한 공법이 확인되었다. 위의 고대 수리시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앞서 고조선 준왕은 위만의 세력에 밀려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남으로 향하였다. 남쪽에는 일찍부터 풍요로운 땅과 바다와 산이 있는 호남평야를 바탕으로 중국 전국이나 전한, 고조선과 교류하는 세력이 있었다. 한 나라를 옮기거나 세우는데 기반이 전혀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준왕의 남천에는 불모지 익산이 아니라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이미 고도화된 정치체를 고려하지 않았을까. △마한과 백제·후백제의 땅, 만경강 익산과 완주, 전주는 공간적으로 만경강 중상류를 점유하고 있다. 마한 소국의 정확한 위치와 지명 비정은 사료의 음가에 의하고 있으나 최근의 고고학적 성과는 이러한 작업에 신중을 기하게 한다. 분명한 것은 고고학 자료의 집중도가 소국의 위치를 어느 정도 말해주고, 그렇다면 완주 상운리·봉동 수계리, 전주 여의동·만성동, 익산 사덕유적 등 이 일대가 하나의 소국을 형성할 만큼 동일한 문화권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완주 상운리 분구묘를 중심으로 마한시기부터 백제 영역화 이후까지 고도의 철기제작 기술을 소유한 유력집단이 그 문화적 전통을 유지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나아가 백제 한성말기~사비기에 조영된 완주 배매산성·삼례토성·구억리산성 등의 군사시설로 보아 익산 백제 이전에 만경강을 중심으로 고대문화의 맥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도 익산 백제와 견훤 백제 무왕은 600년에 즉위하여 금마에 새로운 수도를 기획하였다. 금마에는 백제의 지방군 치소인 금마저(金馬渚)가 있었으며 무왕과 관련된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금마를 중심으로 궁성인 왕궁성과 오금산성, 미륵산성, 금마저토성, 낭산산성, 용화산성 등의 성곽 유적, 미륵사지, 제석사지, 사자사, 왕궁사, 석불사, 오금사, 태봉사 등의 사찰 유적, 그리고 무왕의 능으로 알려진 쌍릉과 무왕의 탄생 설화가 있는 용샘이 존재한다. 이 유적들은 고도 익산 백제에 대한 명백한 증거이며 ‘백제가 금마산에서 개국하여 600년이 되었다’는 견훤의 시각은 마한을 이어 백제의 후예임을 자처하고 이를 계승하겠다는 분명한 뜻이었다. 특히 미륵사는 무왕이 어려운 세상을 극복하고 정토인 미륵의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세운 사찰로 이곳에도 견훤의 행적이 담겨있다. "6년(920)에 견훤이 보병과 기병 10,000명을 거느리고 대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진례성(進禮城)으로 군대를 옮겼다." <삼국사기> 견훤전. "3년이 지나 금산사 의정(義靜) 율사의 계단에 나아가 구족계를 받았다. … 용덕 2년(922) 여름 특별히 미륵사(彌勒寺) 개탑(開塔)의 은혜를 입어, 이에 선운산의 선불장(選佛場)에 나아가 단에 올라 설법했을 때 천상의 꽃이 이리저리 날렸다. 이로 말미암아 도의 명예가 더욱 빛났다." <갈양사혜거국사비문>. 견훤은 무왕의 노력에도 성공하지 못한 합천의 대야성을 920년에 함락하고 김해의 진례성까지 진격하였다. 이어 922년에는 이곳 미륵사에서 개탑의식을 갖고 고창 선운사에서 승려를 뽑는 과거인 선불장을 열었다. 미륵사 개탑은 백제의 신라 공략에 대한 오랜 한을 풀었다는 상징적인 의미이며 선불장은 신라 쇠락의 가장 핵심 요소인 골품제의 폐단을 극복하고 승과를 통해 공정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통치이념을 나타낸 것이다. 개탑의 행위는 실제 탑의 중수로도 볼 수 있으나 국가의 큰 행사를 맞이하여 부처님의 사리를 대중에 공개하는 영불골(迎佛骨) 의식과 같은 정치적 행사로도 볼 수 있다. 익산 왕궁리 석탑에서도 후백제와 유사한 시기인 10세기 초 경의 금동불상과 함께 유리병, 금제사리함, 금강경 등의 사리장엄구가 일괄 출토되었다. 최근의 연구에 금강경의 문구와 경판의 사용흔을 바탕으로 백제 제작설이 제기되는데 이 또한 기존의 왕궁탑을 다시 세우는 의식이 있었을 가능성도 유추해본다. 금마저에 위치한 많은 유적에서는 토기, 자기, 기와, 금속공예품 등 수 만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백제유물보다는 통일신라 이후의 것들이 더 많다. 시기별, 제작 주체별 연구 또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550여 편의 중국자기를 2023년에 새롭게 정리하고 있다. 중국자기에는 견훤과 밀접한 오월의 월주요도 포함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후백제 문화상을 밝히는 작업은 이제 시작이다. /최흥선 국립익산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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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23 15:56

[한국전쟁 정전 70년] 최후의 전쟁, 백마고지 전투

1951년 5월16일부터 22일까지 인제군 현리에서 6·25전쟁기 중 국군의 가장 큰 패배로 일컬어지는 ‘현리전투’가 벌어졌다. 9사단을 포함한 우리 국군과 중공군 사이에 벌어진 현리 전투에서 국군은 별다른 교전도 벌이지 못하고 와해되고 동부전선은 위기를 맞는다. 다음해인 1952년 10월초, 현리전투에서 중공군에 패했던 우리 국군은 철원 서쪽의 이름없는 395고지(백마고지)에서 또다시 중공군과 맞선다. 이 때 395고지를 지키고 있던 국군은 9사단. 하지만 395 고지의 9사단은 1년 전 중공군의 공격에 물러선 부대가 아니었다. 중공군 3개 사단과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시종일관 유리하게 전황을 이끌었고 결국 395고지에서 중공군을 완전히 몰아낸다. 백마고지 전투 승리로 국군과 유엔군은 군사 요충지를 확보하고 휴전회담에서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었다. 또 백마고지 전투 승리는 드넓은 평야를 품은 철원지역 일대를 우리 땅으로 만드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시작된 휴전회담 그리고 예고된 혈전=유엔군과 공산군은 6·25전쟁이 시작된 후 1년여 만인 1951년 7월부터 전쟁 휴전과 포로교환 등을 위한 회담을 시작한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없이 시간은 지나가고 공산군은 휴전회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한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중공군이 주도하는 고지 쟁탈전이었다. 당시 고지 쟁탈전은 중공군이 국군과 유엔군이 장악한 고지를 먼저 공격해 차지하고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이를 다시 되찾는 형태의 전투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1952년 가을께 포로문제에 대해 유엔군과 공산군의 협상이 난항을 겪었고 한반도 중앙의 최고 요충지 '철의 삼각지대'로 관심이 집중됐다. 국군 9사단이 주둔 중인 395고지, 철원평야와 평강고원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한반도 중부의 심장부인 이곳에서의 치열한 전투는 피할 수 없었다. △철의 삼각지대=철원과 김화, 평강을 잇는 지리적 삼각지대를 ’철의 삼각지‘라 부른다. 이 지역은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과 역시 원산으로 향하는 국도 5호선이 지나는 교통의 중심지로 지리적, 군사적으로 피아 간 절대 빼앗길 수 없는 중부 지역의 가장 중요한 요충지다. 철의 삼각지의 확보 없이는 중부전선 전체를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이는 곧 6·25전쟁 중 최대 혈전이 벌어지게 된 이유가 된다. 철의 삼각지는 평강으로 향할 수록 지대가 높아져 수비를 하는 국군과 유엔군 입장에서는 불리한 조건이고 공세에 나서는 북한군과 중공군에 있어서는 유리한 지형이다. 이에 중공군은 유리한 지형과 우세한 병력을 앞세워 군사·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철원 일대를 확보하기 위해 395고지를 노리고 대규모 공세를 감행한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395고지를 비롯한 철원평야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고 9사단은 395고지 일대에 주둔해 중국군 3개 사단에 맞선다. △열흘 간의 격전, 백마고지 전투=1952년 10월6일 새벽, 395고지 주봉에 대한 중공군의 공격이 시작됐다. 6일부터 9일까지 9사단과 중공군은 주로 포격전을 벌였다. 중공군은 유엔군에 비해 화력의 열세를 절감하면서 포병화력을 대대적으로 증강시킨 상태였다. 물론 유엔군에 비해서는 무기와 장비 등에서 열세를 보였지만 중공군의 화력 보강은 국군과 유엔군에게는 분명 부담으로 다가왔다. 미군은 9사단이 지키고 있는 395고지 사수를 위해 항공기를 투입, 중공군 포병부대에 대해 대대적인 폭격을 실시했다. 인근 국군과 미군의 포병부대도 중공군을 향해 포탄을 퍼부었다. 중공군도 9사단이 사수하고 있던 395고지 정상에 집중적으로 포격을 가하며 한편으로는 국군의 증원 및 군수지원 등을 방해하기 위해 395고지 북쪽에 위치한 봉래호의 수문을 폭파해 국군의 후방에 위치한 역곡천을 범람시켰다. 7일부터 11일까지는 국군 9사단과 중공군과의 직접적인 전투, 즉 고지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화력에 열세를 보이던 중공군은 야간에 공격을 감행해 9사단이 방어하는 395고지를 점령했고 밀려난 9사단은 신속하게 예비대를 동원, 반격에 나서 고지를 재탈환 하기를 반복했다. 395고지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투가 벌어졌다. 총성과 포격이 멈춘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을 만큼 치열한 공방이 계속됐다. 당시 9사단장 김종오 장군과 주요 지휘관들은 395고지 쟁탈전에서 적절한 시기에 강력한 예비대를 투입하는 등 효율적인 부대 운영과 작전을 펼쳤고 전체적으로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어갔다. 395고지에서는 12차례의 고지 쟁탈전이 벌어졌고 7번이나 고지 주봉의 주인이 바뀌는 혈투가 벌어졌다. 11, 12일 이틀동안은 395고지 주봉을 차지한 9사단의 방어전이 진행됐다. 9사단의 계속된 방어에 중공군은 많은 병력을 잃었고 화력에서도 유엔군에 열세를 드러냈다. 결국 9사단은 395고지 북쪽의 낙타능선상의 전초진지를 탈환하면서 중공군을 완벽하게 몰아내는데 성공하며 백마고지 전투의 신화를 만들었다. △백마고지 전투 승리 요인=9사단은 1951년 8월부터 8주동안 국군 사단 중 처음으로 미 제1군단이 주관한 FTC(the Field Training Center)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이를 통해 지휘관들의 부대 지휘역량이 크게 강화됐고 전투원들의 전투수행능력도 높아졌다. 또 사단 자체 교육훈련도 꾸준히 진행했다. 백마고지전투 승리는 유엔군의 막강한 화력 지원과 함께 9사단 지휘관들의 신속한 예비부대 투입 등 탁월한 부대지휘, 전투원들의 전투수행능력 등이 맞물리며 중공군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 끝내 백마고지를 지켜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물론 백마고지를 지켜내야 한다는 부대원들의 불굴의 투지도 한 몫한 결과였다. △집중된 화력과 병력…너무 컸던 피해=국군과 유엔군은 열흘 동안 이어진 395고지전투에서 무려 22만여발의 포탄을 발사했다. 중공군도 5만5,000여발의 포탄을 395고지에 퍼붓는 등 피아간 총 28만여발의 포탄이 집중 사용됐다. 유엔군은 9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항공기를 750여회 출격시키는 등 395고지 사수에 집중했다. 치열한 백병전과 함께 수십만발의 포탄이 395고지를 타격하자 고지의 수목은 사라졌고 하얗게 된 민둥산의 모습은 흡사 하얀 말이 누워있는 것 처럼 보였다. 이에 국군은 이때부터 395고지를 백마고지로, 9사단은 백마부대로 부르게 됐다. 당시 전투에서 9사단은 3,500여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중공군은 무려 1만4,000여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백마고지 전투로 중공군 제38군 예하 3개 사단은 와해됐다. △기억해야 할 백마고지전투=휴전선 남쪽, 철원읍 산명리에는 백마고지전투를 기리는 백마고지 전적지가 조성돼있다. 전투 승리를 기념하는 전적비와 충혼비, 위령비, 백마고지전투 현황 등이 기록된 기념관, 대형 태극기 계양대 등이 설치돼있다. 전적지에서는 서쪽으로 백마고지와 함께 드넓은 철원평야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백마고지 전적지를 찾은 관광객과 모내기에 나선 농부들, 불과 수㎞ 거리의 DMZ초소의 모습이 교차되면서 평화는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름없던 395고지에서 적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우리 군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다. 강원일보=김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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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22 16:11

[뉴스와 인물] 양오봉 전북대총장 "해현경장(解弦更張) 자세로 '대학혁신' 줄 고쳐 매겠다"

오는 27일 취임 100일을 맞이하는 양오봉 전북대 총장은 매일매일을 새로운 의욕을 다지며 '대학혁신'을 위해 업무에 임하고 있다. 학령인구 급감 등 사회변화 속에서 대학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사회 요구에 부응하는 대학으로의 변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양 총장은 “해현경장(解弦更張), 거문고 소리가 맞지 않으면 줄을 풀어 새롭게 매야 하는 것처럼 대학 교육이 사회의 요구에 맞게 혁신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현 상황에서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고 강조했다. 양 총장이 단과대학을 순회하며 역설한 학사구조 개편안에서도 그 목적이 확연히 읽힌다. 학과 간 벽을 허물어 학생들의 전공 선택 폭을 넓히고 산∙학∙연∙관 협력의 허브화를 통해 지역산업의 수요에 맞는 인재양성 등 학생을 중심에 둔 대학 운영과 사회 요구에 부응하는 대학 혁신에 방점을 두었다. 취임 이후 글로컬대학 사업 유치를 위해 학사구조 개편안과 지역사회와의 상생 전략 마련에 동분서주하고 있는 양오봉 총장을 19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27일, 취임 100일을 맞는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벌써 취임 100일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기간 동안 내∙외부의 많은 분들을 만나 대학혁신을 위한 정책과 비전을 설명하는 기회를 많이 가지려 노력했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써가며 많은 분들을 만나 고견을 듣고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을 설명했다.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소멸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인다는 절박함에 마음이 급하다. 그러나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는 일이기에 지속적인 소통과 공감대 형성에 나서고 있다." 긴밀한 소통을 하신 것으로 안다. 구성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 "천원의 아침밥이나 중간시험 간식나눔, 호프데이 등을 통해 학생들과 가깝게 소통하려 했고, 최근엔 17개 단과대학을 돌며 변화의 당위성과 정책을 설명했다. 좋은 얘기도, 쓴소리도 있었지만 모두 대학발전을 위한 고견이라 생각한다. 총장 이전과는 확실히 시각 자체가 달라졌다. 그래서 더 많이 들으려 한다. 특히 겸손한 자세로 동료 교수님들이나 직원 선생님들, 우리 학생들과 소통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하니 마음과 마음이 맞닿고 있다는 것도 느꼈다." 최근 대외적으로도 매우 역동적인 전북대를 접할 수 있는 것 같다. "전북대가 글로컬대학으로 나아가기 위해 구성원뿐 아니라 지역의 여러 기관들에 변화와 혁신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글로컬대학 30 사업’을 준비하면서 지자체나 국내 최고의 연구소, 기관, 기업, 해외 대학에 이르기까지 14건의 공식 협약을 체결했다. 수치로만 보면 취임 이후 우리대학이 일주일에 한번 꼴로 여러 기관들과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것이다. 이 사업을 위해 전북대가 얼마나 과감하고 열정적으로 움직이는지, 이 사업이 얼마나 우리에게 꼭 필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취임 100일 동안 성과도 많았을 것 같다. 대표적인 성과를 소개해준다면. "취임 초부터 개혁의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었고,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소기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3월 초 2145억 원이 투입되는 RIS 사업 선정은 우리대학뿐 아니라 지역 전체에 큰 성과였다. 지역발전의 대전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외에도 우리지역이 K-푸드의 메카로 도약할 ‘푸드테크 계약학과 공모사업’, 비수도권 대학 유일의 6년 연속 ‘실험실 특화형 창업선도대학 사업’ 선정, 베트남 대학에 수의학과를 설립하는 ‘국제협력선도대학 육성지원사업’ 등 정부 사업에도 잇달아 선정됐다. 최근엔 필리핀 마닐라 시의회와 한인회, 최고의 사립대학 등과 긴밀한 협력을 하기로 했고 한옥도 수출했다.특히 수요가 급증할 2차전지 분야 인력양성을 선점하고, 배터리 분야 특성화를 내건 우리 지역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내년 ‘배터리융합공학 전공’을 신설, 첨단 분야 5개 학과에서 96명(순증 71명, 편입학 여석 활용 25명)의 정원이 증원된 것도 좋은 소식이었다." 수도권 쏠림과 학령인구 감소 등 지방대학이 매우 어려운 시기다. 이를 타개할 방안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대학 입학자원이 당장 내년부터 40만 명 아래로 떨어진다. 2031년부터는 급격히 가속화 되어 2040년엔 18세 인구가 26만 명 수준에 놓인다. 신입생 2000명 규모의 대학 100개가 문을 닫아야 하는 대학붕괴의 거친 파도가 밀려오는 것이다. 혼자서는 파도에 휩쓸리기 쉽지만, 함께 손을 맞잡으면 파도를 극복하고 당당한 걸음을 옮길 수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해 대학과 지자체, 연구기관, 지역기업 할 것 없이 범지역적인 공유와 연대가 필요하다. 때문에 지역과 상생하는 대학의 기반을 닦는 것이 당면 과제다. 우선 지역거점대학인 전북대가 구심점이 돼야 한다. 지역의 씽크탱크로서 지자체나 지역기관, 기업 등과 협력을 강화하고 지역 내 타 대학들과도 상생을 모색해야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플래그십 대학’의 모습이 이런 것이다. 총장님이 강조하시는 ‘플래그십 대학’, 생소하다. "플래그십(Flagship)은 본래 해군 함대의 기함을 뜻하는 말이다. 군함 중에 지휘관이 타는 배에 깃발(Flag)를 걸었는데, 이를 플래그십이라고 했다. ‘플래그십 대학’은 이 군함처럼 전북대가 지역발전을 이끌고 나가겠단 의미다. RIS사업이나 이달 본격 착공하는 산학융합플라자사업, 캠퍼스혁신파크 등의 사업들이 다 플래그십 대학으로 나아가는 데 큰 자산이 될 사업들이다. 우리대학이 미래 수송기기 등 지역 성장 동력산업 분야에서 지역 혁신의 허브가 되고, 미래형 대학교육 혁신을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았다. 지역의 대변혁을 주도할 ‘혁신셀’의 위치에 서 있다. 대학 내부 정책적으로도 이러한 방향으로 나서기 위해 지역의 씽크탱크 역할을 할 ‘JBNU 지역발전연구원’을 설립하려 하고 있다. 14개 시군의 특화산업을 중심으로 지역발전연구소 14곳의 설립도 추진 중이다. 이미 3월 남원시와 협약으로 남원발전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했고, 익산발전연구소도 추진 중에 있다. 전북대를 지역 발전을 이끄는 플래그십대학으로 육성해 최종 목표인 세계적인 글로컬대학으로 나아가려 한다." 대학 내에선 어떠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나. "학생들이 오고 싶고, 다니고 싶고, 공부하고자 하는 전공을 폭넓게 선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학의 체질을 확 바꾸는 학사개편안을 마련했다. 융·복합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적극 대응하고, 학과나 단과대학 간 벽을 허물어 우리 학생들이 전공을 더욱 폭넓게 선택하도록 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전체 정원은 줄이지 않는 방향에서 유사 교과목을 통합 운영해서 교육 효율성을 높이고, 특히 통합 학부 내에서 사회 수요에 대응하는 유연한 맞춤형 전공도 운영할 수 있다. 학제 간 협력과 집단연구가 활성화 되어 세계 100위권에 진입하는 학문 분야 육성에도 가시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전북대가 글로컬대학으로 더 큰 걸음을 걸어 나가는 데 꼭 필요한 변화다." 학생들이 다니고 싶은 대학을 만들겠다 하셨다. 남다른 계획도 들려달라. "우리대학이 시대의 흐름에 맞는 미래형 교육을 선도하려 한다. AI와 반도체, 그린에너지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갈 인재 양성을 위해 ‘인공지능 교육원’을 설립하고,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입학에서 졸업까지 학생 맞춤형 지원을 해줄 ‘AI 선배’ 멘토링 시스템도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성과형 장학금, 학·석사 연계 과정 장학금, 전일제 대학원생 장학금 등 학생 재정 지원과 단과대학 스터디카페 운영, 이미 시행 중인 천원의 아침밥, 반값 커피 등 학생 밀착형 지원책을 세심하게 마련하고 있다. 유학생들이 가장 복잡하게 생각했던 재정 보증 문제를 해결하고, 상담 및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 운영해 우수 외국인 유학생을 5000명 이상 유치하겠다." 대학 지탱의 또 하나의 핵심 축인 연구 분야 경쟁력 방안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우리대학엔 1100여 명의 최고급 두뇌들이 있다. 이들이 신나게 연구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제공돼야 좋은 연구가 나온다. 올해 적극적인 연구개발 과제의 수주를 독려하기 위해 ‘연구과제 추진비’와 함께 ‘국제 학술연구발표 경비’ 지원을 신설해 국제적 연구 교류 촉진에 나서겠다. 세계 최고 연구소나 연구자들과 최근 연구 동향을 공유하고, 공동 연구를 수행하면서 더 좋은 연구들이 이뤄지는 기반이 될 것이다. 또한 교수님들의 논문 게재 경비 지원을 늘리고, 업적 평가제도나 연구년 총량제 도입 등의 지원책을 늘려 탄탄한 기반을 만들어 나가겠다. 특히 교수님들의 우수한 연구가 대학에만 머물면 안되고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게 연결돼야한다. 그 방안으로 ‘JBNU 지역 지식선도 네트워크’를 구축해 외부기관에서 지원하는 연구 사업에 대한 수주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여러 사업 추진을 위해 재정이 필수다. 재정, 어떻게 늘릴건가. "취임부터 줄곧 ‘세일즈 총장’이 되겠다고 했다. 대학회계 규모를 대폭적으로 늘리고, 1500억 규모의 연간 연구비를 2500억 원으로 확대하려 한다. 발전기금도 수도권 명문대학에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에 기업의 기부를 늘리려 한다. 취임 이후에만 12억 원이 넘는 발전기금이 모금됐다. 특히 대형 국책사업 유치는 대학재정 확충에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에 좋은 사업들을 따내기 위해 지역발전연구소를 통한 14개 시군의 특화산업과 관련된 국책사업을 발굴하고 이를 추진하겠다. 대학과 지역에 모두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RIS사업 이후 최대 정부 지원사업인 ‘글로컬대학 30 사업’ 유치를 위해 대학뿐 아니라 범 지역적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총장의 발품이 반드시 필요하다. 뛰고 또 뛰며 적극적으로 우리대학을 세일즈 하겠다." 임기 마지막에는 어떤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나. "대학과 지역의 긍정적 변화를 이끈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이를 위해선 화합을 통해 구성원 각자가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환경과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이 총장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확신한다. 임기를 마치는 날 교수님들에게는 ‘가르치고 연구할 맛 나는’, 직원 선생님들에게는 ‘일 할 맛 나는’, 학생들에게는 ‘공부할 맛 나는’ 환경을 만들어 준 총장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역민들에게는 대학과 지역의 상생 발전의 기반을 닦아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총장으로 기억된다면 가장 행복할 것 같다." 양오봉 총장은 전주고와 고려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장과 대통령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문위원, 에너지-AI융합대학원 인력양성사업단장, 에너지신사업 혁신공유대학사업단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전북 지역혁신협의회 위원, 전북특별자치도 국민지원위원장, 대통령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문위원, 국무국무총리 산하 새만금위원회 토지개발분과위원장 등 정부 정책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를 통해 지금까지 140편의 국내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고, 38건의 국내외 특허를 보유하는 등 에너지 분야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력도 보유하고 있다. 그간 지식경제부 장관상과 모로코 에너지자원환경부 장관 표창, 국제태양광컨퍼런스(CPVC) 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 기획
  • 육경근
  • 2023.05.21 17:26

[지난 주 '핫클릭' : 5. 14~19] '모두의 축제, 아태'⋯영탁도 팬들도 멋졌다

△5월 14일~ 19일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5월 셋째 주, 전북 지역은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마스터스대회'로 뜨거웠다. 전북일보 홈페이지 방문자들도 지난 1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전북 아시아·태평양 마스터스대회' 개회식 축하공연을 다룬 이준서 기자의 '아·태 마스터스 개회식 흥행 주인공 가수 영탁'에 가장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날 대회 개회식에서는 가수 진성, 국악인 김주리, 가수 나태주, 걸그룹 오마이걸 등이 축하공연을 선보였으며, 특히 가수 영탁의 흥겨운 무대는 압도적. 본부석 좌측 관람석을 채운 6000여 명 팬들의 응원과 일사불란한 모습도 호평을 받았다고. 두 번째는 박정우 기자의 '임실 옥정호 붕어섬, 작약꽃 만발'이 차지했다. 이 기사는 붕어섬 생태공원 5만 4000㎡부지에 심은 2만 4000여 본의 작약꽃이 최근 만개, 관광객 기념촬영 장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을 전했다. 세 번째는 이환규 기자의 '군산에 제2의 서울 경리단길 조성 기대감'으로, 군산 사정삼거리∼옛 군산화물역 2.6㎞ 폐철도를 따라 철길숲을 따라 조성하는 '도시바람길 숲'을 담았다. 군산시는 2025년까지 200억 원을 투입할 계획으로, 원도심과 신도심을 잇는 특색 있는 녹지공간으로 주목. 네 번째는 김보현 기자의 '전주 부동산 스터디하자⋯억대 투자사기에 전주시민들 피눈물'가 주목을 받았다. 피해금액은 소액부터 8000만 원대까지 다양한데, 오픈채팅방을 매개로 소시민의 ‘내 집 마련’ 꿈을 악용한다는 점에서 피해 확산 우려가 크다는 점을 짚었다. 이밖에 김종표 논설위원의 '베드타운 전주의 인구위기', 송은현 기자의 '비위 백화점 전북경찰 왜 이러나' 등이 홈페이지 방문자들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 기획
  • 이용수
  • 2023.05.20 13:44

[동행, 2023 전북지플] (3) 협약식-실행의제 본격 가동

2023 전북지역문제해결플랫폼(이하 전북지플)이 올해 실행 의제 사업의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했다. 전북 도민이 직접 지역의 문제를 발굴하고, 지자체와 각계 기관 등과 공동 협력체를 구축하는 등 민‧관‧공이 협업해 최적의 해결방안을 모색해 나간다는 것이 핵심이다. 전북지플은 18일 오후 2시 전주대학교 본관에서 의제 실행팀과 대학 전문가‧공공기관 관계자 등 30명의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올해 실행 의제 협약식 및 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협약은 전북지플과 지난달 25일부터 진행된 도민 의제 공모를 통해 선정된 의제 실행팀 간 공동 협약으로, 지역사회 발전을 견인하고 전북에 산재한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등 사회적 가치 실현의 장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협업 체계 구축의 장이었다. 올해 전북지플이 선정한 신규 실행 의제는 총 14건으로, 도내 취약계층의 난방환경 개선을 위한 탄소섬유 지원 사업을 비롯해 자립 청년 창업 지원 프로젝트, 민간거점을 활용한 재활용폐기물 수거체계 구축 사업, 스마트 건강 장수 마을 만들기 등 일상생활에서부터 복지와 환경 분야까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다. 전북지플은 지난해에 이어 연속 추진되는 △무장애 도시 진안만들기 △민관공 협력 제로플라스틱 운동 △커피찌꺼기 활용 수거체계 구축 등 공통 의제 3건을 포함한 총 17건의 의제를 도내 7개 시군에서 참여 기관과 함께 진행하며 점차 지역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날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도민 주도로 발굴한 실행의제의 취지와 계획 등을 설명하며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원활한 사업 추진을 다짐했다. 지역‧도시재생 관련 의제를 제안한 김진경 간람록 관계자는 “전주 시내 버려진 빈집을 활용해 이곳을 방문한 여행객에게 지역을 소개할 수 있는 관계안내소로 조성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체류 시간과 관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을 찾는 관계인구를 적극 유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주거‧커뮤니티 관련 의제에 참여한 민형선 하이하우징 대표는 “여전히 100여 년 전, 일제시대부터 사용하던 연탄 난방시설에서 벗어나지 못한 도내 취약계층이 많다”며 “그간 1000건이 넘는 다양한 사회적 지원 활동을 통해 에너지 취약계층에게 친환경 소재인 탄소섬유 난방을 지원해왔다. 이번 사업을 통해 난방 지원을 더욱 폭 넓게 추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한편, 전북지플은 지난해 8월 출범하여 도민이 발굴한 17개 의제를 실행한 바 있다. 올해 선정된 신규 의제는 계획을 고도화하고 전북도 등 연계 기관과 힘을 모아 6월부터 10월까지 5개월간 실행에 옮길 예정이다.

  • 기획
  • 이준서
  • 2023.05.18 17:52

내일을 준비하는 든든한 학습 파트너 '평생학습도시' 김제

평생학습도시 김제시는 모두가 누리는 학습의 일상화를 목표로 지역평생교육활성화를 위한 김제시 평생교육 4대 지표를 설정, 평생교육을 통한 전북권 4대 도시로의 웅비를 기약했다. 2006년 평생학습도시로 지정된 김제시는 시민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는 평생학습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지역의 열악한 평생교육 인프라를 극복하고 학습의 일상화를 위한 평생학습 지원체계 구축을 위해 노력해 오고 있다. ‘내일을 배우는 학습문화 정착의 해’가 되기 위해 미래를 준비하는 든든한 학습파트너 역할을 수행하여 모두에게 평등한 열린학습도시 육성에 중점을 두고 시민 누구나 학습을 통한 미래설계가 가능하도록 지역 평생교육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학습 일상화 위한 '중단없는 학습지원' 확대 김제시는 거주지 가까운 곳에서 언제든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근거리학습망’ 구축해 누구나 생활 반경 내에서 원하는 학습에 참여할 수 있게 다양한 학습 참여 경로를 만들고 주민의 학습 수요와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교육과정으로 구성, 학습패턴과 선호에 맞는 학습을 선택하여 배움이 일상화 될 수 있도록 폭넓은 학습지원에 나섰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더욱 빨라진 비대면형, 디지털학습으로의 대전환 시기를 맞아 지역내 누구든 시・공간적 제약을 벗어나 원하는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가-광역-지역의 온라인 학습과정을 연계, PC와 스마트폰을 이용 학습에 참여할 수 있는 '365 상시학습시스템'을 운영해 K-MOOC 등 수준높은 전문강의를 비롯하여 지역강사가 참여하는 로컬-MOOC 학습콘텐츠 등 디지털학습시대를 맞이하여 중단 없는 학습참여가 이루어지도록 비대면 학습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평생교육 거점기관인 “김제시 평생학습관”은 미래설계를 지원하는 학습파트너 역할을 수행하는 모두배움터로 조성, 전문자격취득을 위한 직업능력향상과정을 비롯하여 생활문화, 인문교양, 직장인을 위한 야간과정 등 정규과정이 연간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2023년도에 새롭게 설치될 디지털 모두배움터 조성과 옥외실습장 증축으로 정보화 분야 및 실습형 교육이 더욱 쾌적한 학습환경으로 제공될 예정이다. 고른학습기회 제공 '통합적 학습복지' 실현 모두에게 평등하고 공정한 학습기회 제공을 위한 통합적 학습복지실현을 위해 김제시는 단 한 명의 학습자도 놓치지 않도록 ‘능동형 평생교육사업 확대 시행’ 계층별, 대상별 맞춤형 학습설계를 통한 평생교육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비문해학습자가 평생교육 참여를 통한 교육기본권 확보, 기초학력증진 및 학력인정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추진하는“성인문해교육”과정을 비롯하여 모두가 누리고 배울 수 있는 시민의 자율적 학습권리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학습소외계층을 위한 찾아가는 평생학습교실을 학습형/체험형/공연형의 테마형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2006년부터 시민의 지식충전소 역할을 하고 있는 김제지평선아카데미는 시민의 지적 호기심과 배움의 갈증을 풀어주는 김제시 대표 학습브랜드로 현재 660여 회차를 운영해오고 있으며 주민참여포인트제 연동, 읍면동 IPTV 실시간 강연송출 및 사이버학습센터 내 강연 탑재로 시민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해주고 있다. 동반성장 '협력형 평생교육사업' 추진 학습을 통한 지역 발전과 성장을 위하여 김제시에서는 평생교육기관・동아리의 우수 프로그램을 발굴 육성하여 시민이 중심이 되는 풀뿌리 평생학습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배움이 이웃을 위한 지식나눔의 매개체가 될 수 있도록 학습자원활동과 연계하여 학습참여-지원육성-학습자원활동으로 이어지는 순환형 학습 생태계를 형성, 시민이 주도하고 이끌어가는 자생적 학습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를 위해 김제시에서는지역의 열악한 학습인프라를 극복하기 위해 “모두배움터 조성사업”을 추진하여 학습하기 좋은 환경 조성과 동반성장을 위한 협력형 공유 학습시대를 열어갈 계획이다. 자생적 학습이음 보람 있는 학습지원체계 구축 김제시는 주민이 학습의 중심이 되고 나를 위한 학습에서 이웃을 위한 배움 나눔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평생교육사업 참여자들의 학습자원 활동을 교육활동에 포함하여 교육을 실행하여 자생적 학습지원 순환체계를 유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배움으로 소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학습교류의 장인 “김제시 평생학습한마당”을 개최하고 있다. 지역 내 120여 평생교육관련 기관·단체가 참여하여 학습교류를 통한 자생적 학습이음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학습체험, 전시, 발표로 구성, 시민과 함께하는 상생의 학습네트워크 장이 되고 있다. 김제시는 이밖에도 지역 내 가속화되고 있는 인구 고령화와 독거노인 증가에 따라 “안전”이 지역주민 정주여건 조성의 필수조건이 되고 있어 생명을 지키는 학습도시 조성을 위해 김제시에서는 거주지 중심의 생활안전망 구축을 목표로 “민주시민교육-생활안전교실”을 운영, 학습을 통해 나 자신과 이웃을 위한 생명지킴이 활동으로 이어지게 지속적 교육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정성주 김제시장 “평생학습 내일를 준비하는 또 다른 삶의 기회와 미래” 정 시장은 "김제시 평생교육사업의 목표는 배움이 있는 일상이 행복한 평생학습도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시민 모두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평생교육사업 추진으로 평생학습이 내일를 준비하는 또 다른 삶의 기회와 미래를 열어가는 모티브가 될 수 있도록 학습파트너 역할을 수행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 기획
  • 최창용
  • 2023.05.18 17:10

[참여&공감 2023 시민기자가 뛴다]왜 환경인가? 기후혁신 통해 탄소중립 이끌어야

“날씨가 좋은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기후변화로 인한 대응의 필요성과 절박함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른바, ‘기후악당’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보여지는, 느껴지는 날씨가 아니다. 날씨만을 느끼며 기후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간 발전에만 초점을 둔 정책을 줄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정책들이 절실하다. 우리는 잠시 빌려 쓰고,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미래세대를 위한 충분한 배려가 있어야 우리의 시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최근 들어 대한민국은 ESG 열풍에 휩싸여 있다. 기관·단체는 물론 공기업, 사기업 모두가 ESG 정책을 마련하고, 추진하고 있다. 환경문제, 사회문제, 지배구조 문제를 건강한 사회 작동으로 사회공동체적 가치와 조화를 이뤄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오는 2040년 안에 지구 표면 온도가 산업혁명 전보다 1.5℃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IPCC에 따르면 산업혁명이 가속화된 1850년부터 2019년까지 누적 탄소 배출량은 2160~2640 기가이산화탄소톤(GtCO₂)에 달한다.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경우 2019년 한 해 동안 52.4~65.6 기가이산화탄소톤(GtCO₂-eq)으로, 2010년보다 12% 증가했다. 특히 IPCC는 온난화를 1.5℃로 제한하기 위해선 2030년까지 2019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43%, 2℃로 제한하기 위해서 27% 감축할 것을 주문했다. 탄소중립(넷제로) 달성을 위해서는 2030년까지 메탄가스 배출량을 34% 감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환경문제는 단순히 한 개인의, 한 도시의,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류가 생명과 존속을 위해 풀어야 할 숙제라는 것이다. “가깝게는 10년, 멀게는 30년 이내에 우리가 멸종위기종이 되지 않게 해달라” 가까운 미래의 주인이 될 세계 수백만 명의 10대 청소년들도 이렇듯 목소리를 높였다. 기후변화의 주범인 환경오염의 원인행위를 범하고 있는 주체가 어른임에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청소년들이 감수해야 한다. 이는 청소년들이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 그리고 준비하고 있지 않다는 어른들을 향한 경고로 해석된다. 탄소 감축이 가야 할 길이 상수라면 그 실천은 인류 생존을 가르는 변수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해 2023 UN청소년환경총회 청소년대표단으로 활동 중인 최재유(전주신흥중 3학년) 학생은 “지금은 기후 위기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한다” 며 “골든타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특히 “홍수와 가뭄, 해수 온도 상승에 따른 해양 생태계의 변화 등 자연 생태계는 우리에게 이미 신호를 줬다” 면서 “우리는 잠시 이 터전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미래 세대에게 물려줘야 한다. 이러한 터전을 지키려는 노력, 건강하게 만들려는 노력도 없다면 미래는 멈추게 된다”고 하며 “전 세계 국가들의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 등 다각적인 이행계획을 내놓고, 실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개개인과 주변에서부터 변화를 넘어선 혁신적인 삶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나의 생활환경의 변화에서 시작된 ‘기후혁신’이 지속가능한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기후혁신’을 위한 노력은 있을까? 대표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비대면 음식 배달, 카페 1회용품 허용 등으로 1회용 플라스틱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 생활폐기물 처리가 지역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정부는 2050년까지 탈(脫) 플라스틱 사회 전환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키로 했다. 우선, 2030년 중간목표까지 끌어 올리겠다고 발표하면서 저(低) 탄소생태계 작동을 예고했다. 전북도 역시 탄소중립 기본계획 수립 및 실행과제 발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에너지 사용량 절약 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탄소포인트제와 자동차 탄소포인트제 사업을 하고 있다. 일상에서 탄소중립 생활을 실천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사업이다. 또한 전북도의회,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등과 손잡고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전북형 실행과제 발굴을 위해 긴밀한 협력체제를 갖췄다. 전라북도 지속가능협의회의 경우 시대와 세대를 공감하는 지속 가능한 탄소중립 생활 실천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전환을 주도할 수 있는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다음달 3일 전북도청에서 열리는 ‘그린웨이환경축제’가 바로 그것이다. 크고 작은 기업들도 ESG 경영 가속으로 사업구조가 친환경적으로 전환 중이며, 자기 신념을 잘 표현하는 MZ세대의 경우 가치 소비의 중심축이 되어 삶의 소비트랜드로 변화 중이다. 전북 자활사업도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상생협력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전북지역 내 공공기관과 공기업, 자활센터와 자활기업 등 민·공·관이 함께하는 자활 자원순환경제 조성사업이 그것이다. 이 사업을 통해 카페에서 나오는 1회용 컵을 수거해 자원으로 활용하고 쓰레기로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는 화분, 연필 등으로 재순환하고 있다. 1회용 종이컵을 비롯해 PET컵, 우유팩은 자활기업에 납품하고, 아이스팩은 재자원화를 통해 소상공인에게 무료로 지원했다. 친환경 아이스팩을 제작해 판매하기도 한다. 특히 이 사업은 버려지거나 불태우는 과정에서 치명적 환경오염원으로 작용하는 쓰레기를 자원화하는 모델을 지향한다. 쓰레기를 자원화하는 모델은 네 가지의 굵직한 사업효과를 기대하고 있는데, 쓰레기에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취약계층의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과 공공기관과 자활센터 카페 사업장 시민단체 함께 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드높이고 지속가능한 친환경 상생협력 사업을 선도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다회용기나 다회용컵(TURN블러) 사용을 통한 1회용품 줄이기 사업도 진행 중이다. 장례식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1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장례식장에 다회용기를 제공하고 수거 세척하는 사업이다. 다회용컵(TURN블러)은 카페에서 사용하고 있는 종이컵 및 1회용컵 사용을 줄이기 위한 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관련 법이나 조례 등이 없어 사업에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 고은하 전주지역자활센터장과 박준홍 전주덕진지역자활센터장은 “하루빨리 관련 법령이나 조례 등이 만들어서 탄소중립을 실천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으면 한다” 며 “민·공·관이 함께하는 자활 순환경제 조성 및 상생형 일자리사업으로, 자원 선순환체계구축, 사회적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업모델 제시, 공동선 실행을 위한 사회가치 창출, 일자리를 통한 저소득층 자립지원 등 사회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영규 전북광역자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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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17 17:16

[후백제 역사, 다시 일으키다-문헌사료로 본 후백제] ⑥후백제의 군사력과 고려와의 전쟁

△후백제 군대가 강성한 이유 진훤 왕은 지금의 순천만 일원에서 신라 조정에 반기를 들고 거병했다. 필자가 1998년에 출간한 <진훤이라 불러다오>에서 언급하였다. 그는 “장성하면서 체격과 용모가 뛰어나게 기이했고, 뜻과 기상이 빼어나서 평범하지 않았다”고 한 특출난 자질의 소유자였다. 진훤 왕은 “서남해로 부임하여 수자리를 지켰는데, 창을 베고 적을 기다렸다. 그 용기가 항상 사졸의 으뜸이 되도록 일하였기에 비장이 되었다”고 했다. 비장은 조선 후기 희극소설 <배비장전>에 등장하는 아전 류와는 다르다. 진훤 왕은 북원경(강원도 원주)을 거점으로 예하에 국원경(충주)과 서원경(청주)까지 장악한 대호족 양길에게 비장 직을 수여했다. 비장은 고위직임을 알 수 있다. 거병 당시 진훤 왕은 해적 소탕을 통해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정규군을 거느렸다. 그는 한 달만에 5000에 달하는 병력을 결집시켰다. 이들이 후백제 군단의 주축이 되었다. 진훤 왕이 파죽지세로 서남부 지역을 장악한 데는 잘 훈련된 관군 장악과 무관하지 않았다. 게다가 인구와 물산이 풍부한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했다. 후백제 강성 요인이었다. △후백제와 고려의 격돌 조물성 전투 후백제와 고려는 918년~924년까지 전쟁이 없었다. 궁예를 축출하고 집권한 왕건은 시급한 내정 문제에 급급했다. 그렇기에 화호(和好)를 요청하며 궁예 때와는 달리 전쟁이 없는 시대를 열었다. 왕건은 웅진(공주)과 운주(홍성) 등 10여 주현(州縣)을 후백제에 넘겨 주었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는 외적 상황이 안정되어야 했었다. 이후 양국은 격돌이 없었다. 대신 진훤 왕은 신라 지역으로의 진출을 시도했다. 924년 7월 진훤 왕은 왕자 수미강을 시켜 조물성(경북 의성 금성산성)을 공격하였다. 구원 요청을 받은 왕건은 장군 애선을 보냈지만 후백제군에 살해되었다. 이듬해 925년 10월 진훤 왕이 3천 기병으로 내려오자 왕건 역시 정예 병력을 이끌고 몸소 내려와서 대적했다. 국왕으로서 두 사람 간의 첫 대결이었다. 이때의 전황을 “그때 진훤의 군사가 매우 날래서 승부를 내지 못하였다. 태조는 임시로 강화를 해 그 군사를 지치게 하려고 편지를 보내 강화를 빌었다(<삼국사기>진훤전)”고 했다. 이와는 달리 “유검필이 군대를 이끌고 내려와 합치자 진훤이 겁을 먹고 강화를 빌었다(<고려사>태조 8년 10월)”고 하였다. 강화를 요청한 주체를 서로 다르게 기록했고, 인질을 교환하고 전쟁을 마무리했다. 이로 보면 무승부처럼 비치지만 실마리가 잡힌다.<고려사>박수경전에는 고려의 상군과 중군은 패했고, 하군만 승리했다고 한다. 왕건이 속한 중군을 포함해 고려군 3분의 2가 패하였다. 왕건은 이때 진훤 왕을 존칭인 상보(尙父)로 일컬었다. 열세인 왕건이 자신의 장기인 립서비스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다. 강화를 요청한 주체가 왕건이었음을 알 수 있다. 왕건의 패배였고, 이후 양국은 격렬하게 격돌하였다. △공산 전투 927년 가을 진훤 왕은 신라 경애왕이 왕건과 내통해 사직을 넘기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경주를 급습했다. 진훤 왕이 왕건에게 보낸 격서(檄書)에서도 신라의 종묘사직이 고려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경주에 왔음을 밝혔다. 경애왕의 비극을 듣고 왕건은 5천 기병을 이끌고 내려왔다. 그는 후백제군의 귀환로인 공산(대구 팔공산)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려군은 오히려 후백제군에게 역포위되고 말았다.<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한결 같이 “심급(甚急)”이라고 했다. 왕건은 몹시 위급한 상황에 놓였고, 대장 신숭겸과 김락이 몸으로써 막다가 모두 전몰하였다. 공산 전투와 관련해 생겨난 지명인 ‘파군치(破軍峙)’는 동화사와 파계사(把溪寺)로 갈라지는 길목의 재 이름이다. 후백제군이 고려군을 격파한데서 연유했다. 그리고 양군이 격전을 치를 때 화살이 쌓여 강을 이루었다는 ‘살내[箭灘]’가 있다. 그리고 왕건이 밤에 포위망을 뚫고 도망칠 때 한밤 중에 새벽달이 떠 있기에 ‘반야월(半夜月)’로 불렀다고 한다. 도망치던 왕건이 얼굴이 밝아졌다는 ‘해안’, 왕건이 도망치다가 안심했다고 하는 ‘안심’ 등의 지명이 보인다. 그 밖에 대구광역시 앞산 공원 일대 여러 사찰에는 왕건이 숨었거나 쉬어갔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이때의 전장은 대구 팔공산 뿐 아니라 영천 및 칠곡과 성주 일원까지 미쳤다. 공산 대첩 이후 진훤 왕의 정치적 위상은 한껏 고양되었다. 그가 왕건에게 보낸 격서에서 “··· 강하고 약함이 이와 같으니 승패는 알만함이니, 기약하는 바는 평양 문루에 활을 걸어두고 패강(대동강)에 말의 목을 축이는 데 있도다!”고 하지 않았던가? 진훤 왕의 위세는 “전주왕 진훤이 수십주(數十州)를 쳐서 병합하고 대왕을 칭했다”고 일본에까지 알려졌다. 공산 대첩 이후 나주를 비롯한 숱한 세력들이 고려에서 이탈해 후백제에 붙었다. 공산 대첩은 키가 크고 지략이 많았다는 진훤 왕의 넷째 아들 금강 왕자의 작품으로 보인다. △강주 점령 진훤 왕은 지금의 경남 진주에 치소를 둔 강주를 점령하려고 군사력을 쏟았다. 일진일퇴가 거듭되었다. 928년 1월 강주를 구원하기 위해 파견된 고려군이 패하였다. 후백제군이 강주를 포위했음을 알 수 있다. 이어 진훤 왕은 그해 5월 강주에서 지금의 경남 고성으로 양곡을 옮기려 떠난 틈을 타서 기습했다. 고려군은 급히 회군했지만 패했고, 강주장군 유문은 항복하였다. 이후 진훤 왕의 둘째 아들 양검 왕자가 강주도독이 되었다. 진주 촉석루 의암 부근에서 출토된 오월국 연호 ‘보정寶正’(926~931) 명문 기와는 후백제 통치의 산물이었다. △영남 북부 지역에서의 전투 928년 10월 진훤 왕은 부곡성(군위)을 함락했다. 그리고 진훤 왕은 11월 고려의 오어곡성(예천군 하리면)을 함락시켜 1천 명을 전사시키고 고려 장수 6명의 항복을 받았다. 이때 왕건은 전군을 집결시켜 6인의 처자를 군사들 앞에서 조리돌리고 기시(棄市)했을 정도로 격분했다. 이어 진훤 왕은 5천의 중무장한 정예 병력을 이끌고 의성부(경북 의성)를 공격해 성주 홍술을 전사시켰다. 비보를 접한 왕건은 “내가 양쪽 손을 잃었다”고 말하면서 통곡했다. 왕건의 충격이 컸음을 뜻한다. 진훤 왕은 여세를 몰아 안동과 예천의 중간에 소재한 순주(안동시 풍산면)를 공격하였다. 장군 원봉은 성을 버리고, 그것도 야반도주했다. 진훤 왕은 순주의 주민들을 붙잡아 전주로 이주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왕건은 분노하여 후백제 영토가 된 순주의 이름을 하지현(下枝縣)으로 격하시켰다. 왕건의 심기가 무척 불편했음을 뜻한다. 929년 12월 진훤 왕은, 고창군(안동)에서 고려군 3천 명을 포위했다. 그러자 왕건이 직접 구하러 왔다. 이듬해 1월까지 이어진 전투에서 후백제군은 8천 명의 전사자를 내고 물러섰다. 이후 안동과 청송을 비롯한 30여 군현과 동해변 110여 성이 고려에 항복했다. 신라 지역 호족들이 고려로 대거 넘어갔다. △새로 찾아낸 쾌거, 발성(勃城) 전투 932년 9월 후백제군 선단은 고려의 수도인 개성과 접한 예성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후백제 수군은 3일간 예성강에 머물면서 염주(황해도 연안)와 배주(황해도 배천)·정주(개성 풍덕), 이 세 고을의 선박 100척을 불사르고 저산도(황해도 연안)의 목마 300필을 빼앗아 개선했다. 후백제군의 공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해 10월 진훤 왕은 해군 장수 상애를 시켜 대우도(평북 용천)를 공격했다. 후백제 수군은 압록강 하구까지 강타하였다. 고려군은 패하여 쫒겨갔다. 후백제군은 왕건이 출동시킨 사촌 동생 만세의 군대마저 밀어냈다. 후백제군은 고려의 해군력을 궤멸시키다시피 했다. 근심했다고 할 정도로 왕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진훤 왕은 통쾌하게 보복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발성의 싸움에서 태조가 포위당하자, 박수경이 온힘을 다해 싸운 덕에 힘입어 (빠져) 나올 수 있었다(<고려사>박수경전)”는 전역(戰役)을 주시해 본다. 고려 왕궁을 이루는 성벽 발어참성의 '어참(禦塹)'은 '방어하기 위한 참호' 즉 해자가 있는 성을 뜻한다. 발어참성은 곧 '발성'을 가리킨다. 그러한 고려 수도에서는 한 시대를 진동시킨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932년 9월 예성강을 거슬러 온 후백제 선단이 개성에 상륙해 고려 왕궁을 덮쳤다. 왕건 생애에 다시금 찾아온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는 부하 장수의 분전에 힘입어 겨우 탈출하였다. 그랬기에 귄위를 실추시킬 수 있는 발성 패전은 공식 편년 기록에서는 지웠다. 부하의 충성심 현양과 관련한 자료를 통해 우연히 드러난 것이다. 박수경의 딸이 왕건의 제28비(妃)가 되었다. 발성 위기에 대한 보은이었다. 후백제군은 고려 심장부를 강타해 왕건을 전율하게 했다. 이때의 전장은 개성 만월대 일원뿐 아니라 예성강유역 풍덕, 황해도 연안과 저산도 및 배천까지 포괄했다. △마지막까지 웅강한 국가 후백제 후백제는 933년 제2차 경주 진공 작전을 펼쳐 신라를 다시금 공포에 몰아넣었다. 934년 9월 진훤 왕은, 중무장한 병력 5천을 이끌고 운주(홍성)에서 왕건과 싸웠으나 패하였다. 그 여파로 웅진(공주) 이북의 30여 후백제 성들이 고려에 항복했다. 후백제와 고려의 마지막 전투는 936년 9월 일리천(선산‧구미)에서였다. 이 전투에서 진훤 왕은 고려군 진영에 있었다. 그랬기에 대통합이 이루어졌다. 후삼국 역사의 시작과 끝은 진훤 왕이었다. 후백제 왕국은 시종 웅강함을 잃지 않았다. 진훤 왕의 사위 박영규 장군이 자신의 아내에게 “대왕께서 근로한 지 40여 년에 공업(功業)이 거의 이루어지려 했는데 하루 아침에 집안의 화(禍)로 나라를 잃고 고려에 가서 의탁하였소”라고 했다. 멸망 시점까지도 여전히 후백제는 강성했었고,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했음을 뜻한다. 현전하는 후백제 관련 기록의 왜곡을 반증한다. /이도학(한국전통문화대학교 명예교수) 백제와 후백제 군사력의 바탕, 최강 국력 군사력은 자고로 인구와 경제력, 그리고 군사들의 사기와 숙련도로 판정난다. 이와 관련해 후백제는 사비성 도읍기 백제 영역이나 주민 상황과 겹친다. 동일한 시기 백제 인구는 고구려 말기 인구 69만 7천 호를 상회하는 76만 호였다. 게다가 경제력은 백제가 고구려를 훨씬 웃돌고 있었다. 조선시대인들의 백제 국력에 대한 평가와도 다르지 않았다. 예조참판에도 올랐던 이승소(李承召)는 1478년에 “옛적에 백제는 삼국 가운데 가장 강한(强悍)하였고, 전투를 좋아했다(<三灘集>)”고 했다. ‘강한’은 용맹하고 사납다는 뜻이다. 1623년(인조 1) 인조는 정경세(鄭經世)와의 경연(經筵)에서 “삼한시절에 백제가 가장 강했다(<經筵日記>)”고 단언하였다. 저명한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도 “삼한 가운데 백제가 가장 강하였다(<與猶堂全書>)”고 했다. 삼한 즉 삼국 가운데 고구려를 제끼고 백제가 ‘가장 강했다(最强)’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삼국 중에 가장 군사력이 강대한 나라가 백제였다. 백제의 유산을 물려받은 후백제 진훤 왕은 말년에 자신의 군사가 북군 곧 고려 군대보다 갑절이나 더 많았다고 회고했다. 이조참판을 역임한 유계(俞棨. 1607~1664)도 “삼한을 침탈하기 40여 년 동안, 그 재력의 부유함과 갑병(甲兵)의 막강함은 족히 신라와 고려보다 뛰어나서 먼저 드날렸다”고 평가했다. <오하기문>에서도 “호남 한 도(道)는 우리나라의 남쪽 울타리로 자연 경관도 빼어나게 아름다울 뿐 아니라 생산물 또한 풍부하다. 국가는 이용후생에 필요한 전체 재원의 절반을 호남에 의존하고 있다. 호남 지역에는 재주가 있고 민첩하며 여러 가지 일에 능숙한 인물이 많아 옛날부터 지략과 지모를 갖춘 걸출한 선비가 종종 배출되었다. 그래서 백제가 그들을 기용해 신라‧고구려와 병립하는 구도를 만들어냈고, 진훤도 그들을 발탁하여 왕건에게 지지 않고 맞설 수 있었다”고 설파했다. /이도학(한국전통문화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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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16 17:58

[이 기자의 슬기로운 보디빌딩](1) 출근 전 운동으로 달라진 하루를

'100세 시대'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 얼마 되지 않는 휴식 시간을 쪼개 운동에 투자하는 일명 '운동하는 직장인'이 점차 늘고 있다. '이 기자의 슬기로운 보디빌딩' 기획을 통해 그들의 삶을 체험하고 소개하고자 한다. 고단한 일상에 지친 직장인 모두가 재밌게 운동하며 건강한 몸을 가질 수 있도록 현장 그대로를 담아본다. 군 입대 직전 가슴 아픈 실연을 당한 적이 있다. 당시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을 올리기 위해 몸뚱이(?)라도 바꿔 보잔 생각에 홀로 헬스를 시작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점점 운동과 거리가 멀어졌다. 많은 직장 선배들이 '너도 조만간 배가 나올거다'고 자신 있게 예언했다. 그런 위기속에서 문득 '출근 전 운동을 하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 한 두시간 덜 잔다고 죽기야 할까. 16일 오전 6시, 굳은 몸을 애써 일으키며 프로틴 한 잔을 들이켰다. 평소라면 곯아떨어질 시간, 내면의 또 다른 자아가 속삭인다. '헛짓거리 말고 잠이나 자라'. 달콤한 수면의 유혹을 이겨내고 헬스장으로 향한 보상은 만족스러웠다. 시끌벅적한 평소와 달리 인적이 드문 고요한 헬스장의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어린 시절 서울의 유명 놀이동산을 처음 방문했을 때와 같은 설렘이 느껴졌다. 운동에 앞서 고카페인 260mg이 가득 담겨 있는 음료를 입에 붓는다. 아침에 일어난 직후, 공복 상태에 카페인을 섭취하면 몸 안의 혈류를 끌어와 더 큰 힘을 낼 수 있게 도운단다. 잡지에서 봤다. 그닥 눈에 띄는 효과는 없는 것 같지만 운동 직전 반드시 카페인을 섭취하는 편이다. '오늘 운동 잘 되게 해주세요'를 비는 일종의 의식이다. △ 이미 출근 전 운동하는 직장인은 많았다 오늘 운동할 부위는 가슴. '대흉근'이라 불리는 근육이다. 80년대 미국을 주름잡았던 보디빌더이자 영화배우 아놀드 슈왈츠 제네거의 태평양처럼 넓은 대흉근을 떠올리며 탈의실을 나선다. 기자는 운동할 때마다 일종의 '자기 세뇌'를 한다. 자신이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올림픽 결승전에 참가한 '국가 대표 선수'라고 암시한다. 온 힘을 다해 모든 체력을 쏟아 부어 덤벨을 밀어 올린다. 오전 7시30분부터 약 한 시간가량 처절한 가슴운동을 했다. 아직 몸이 덜 풀려서인지 평소보다 낮은 무게로 운동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활성화되고 활기가 돌았다. 뭔가 '자기 계발에 철저한 부지런한 직장인'이 된 것만 같았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 첫 아침운동을 진행하며 한 가지 놀라운 점이 있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생각보다 헬스장을 찾은 30∼40대 직장인과 60대 이상 어르신이 많았다. 그동안 아침에 조금이라도 더 자기 위해 알람을 출근 직전까지 촉박하게 맞춰온 과거의 기자 자신에게 회의감이 들었다. △ 운동 후 탄·단·지 섭취는 필수 운동을 마친 뒤, 출근 시간인 9시에 맞춰 서둘러 사무실로 향했다. 유산소 운동을 대체하기 위해 걸어갔다. 졸린 눈으로 애써 하품을 참으며 일터로 향하는 다른 직장인과 과거의 기자 모습이 겹쳐 보였다. 활기차게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휴게실에서 닭가슴살과 바나나, 초코바를 섭취했다. 단백질과 탄수화물, 지방의 적절한 조화를 갖춘 가벼운 식단이다. 운동 직후 1시간∼2시간 내외로 적절한 영양소를 갖춘 식사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운동과 식단, 휴식이라는 3박자가 갖춰져야 더욱 강하고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다. 운동은 열심히 하면서 영양소를 고루 갖춘 식사는 소홀히 하는 것은 그저 단순 '노동'을 하는 것과 같다고 다수의 헬스 관련 전문가는 말한다. 운동으로 근육에 손상을 입혀놓고 더 크고 강한 근육을 위해 회복하는 과정에 영양소를 넣어주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운동하지 않는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장순옥 수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지난 2011년 발표한 '단백질 섭취기준: 단백질 필요량과 추정 방법 및 단백질에너지 적정비율' 논문에 따르면, 가장 건강한 영양소 섭취 비율은 '탄수화물 5, 지방 3, 단백질 2'로 나타났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평소 식사량의 15∼20% 정도는 단백질을 섭취해야 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 출근 전 운동하자…자신감이 차올랐다. 퇴근한 뒤, 불어난 두꺼운 지방층을 보며 '운동해야겠다'란 생각이 들어도, 밀린 약속이 잡혀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직장을 다니면서 운동을 하기 위해선 출근 전, 아침에 하는 것이 제격이었다. 그러나 아침운동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원래 많은 에너지를 쓰는 운동을 출근 전에 선행하면, 쉽게 무기력해져 직장 생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 사실 오전에 1시간 더 잠을 청한다고 해서 얼마나 피로가 풀리겠느냐만은, 단지 더 자고 싶었다. 이번 도전을 통해 장벽을 완벽히 허물었다. 오히려 아침운동으로 더 건강하고 잔뜩 커진 기자 자신의 몸을 보니 활기가 돌았다. 공작새가 경쟁 상대를 향해 날개를 힘껏 펼치듯, 나 자신은 대단한 사람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차올랐다. 아침운동의 좋은 점은 또 있었다. 오전부터 몸을 활성화하자, 두뇌 회전이 빨라졌달까. 점심을 먹고 나서야 제대로 일을 시작했던 과거와 달리 오전부터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사이쇼 히로시 작가가 자신의 저서 '아침형인간'에서 시종일관 주장한 '일어나자마자 아침운동 등을 통해 뇌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말이 근거 없는 낭설이 아니었다. 운동이 직장 생활을 방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실타래처럼 얽히고 섥혀 시도조차 못했던 여러 문제를 다양한 각도로 접근하는 등 이전보다 높은 업무 효율을 보였다. 김갑수 단국대학교 체육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해 지난 2001년 발표한 '출근 전 아침운동이 직장인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서 "아침 운동에 참여한 직장인이 그러지 않은 직장인보다 대부분 정신건강지수가 높게 나타났고, 우울증 예방에도 효과를 보였다"며 "퇴근 후 저녁운동보다 기상 후 1시간 이내의 근력 운동을 주 3∼4회 진행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 기획
  • 이준서
  • 2023.05.16 17:56

취임 1주년 맞은 이장호 군산대 총장 “산업인재 육성 및 세계적인 경쟁력 강화 앞장”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듯 국립 군산대가 지난 2021년 교육부 일반재정지원대학에 탈락한 아픔을 딛고 새로운 비상을 하고 있다. 이는 대학 구성원 모두가 위기의식을 갖고 모두가 함께 움직이고, 노력하고, 실천에 옮기는 희생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그 중심에 이장호 총장은 취임 직후부터 과감한 대학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고강도 개혁을 단행해 짧은 기간 내에 미래지향적인 교육시스템 전환 등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다. 이제 군산대는 지역과 협업하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글로컬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상황. 이에 이장호 총장을 만나 취임 1주년 소감과 향후 대학 운영 방향 및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취임 1주년을 맞았습니다. 먼저 소감 부탁드립니다. “지난 1년간 군산대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시간들을 뒤돌아보니 먼저 ‘감사’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군산대의 경우 지난 2021년 교육부의 일반재정지원 대상에서 탈락했다가 이후 대학대전환을 위한 강도 높은 개혁 작업을 펼친 끝에 지난해 추가 지원 대학에 선정, 다시 한 번 경쟁력을 입증 받았습니다. 그 동안 군산대에 여러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났는데 이는 누구 한 사람에 의한 결과보다는 내부 구성원들의 노력과 뭔가 변화시키려는 의지들이 모아져 낸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학의 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내부 구성원들이 새롭게 맞게 되는 변화에 부담을 느끼고, 경우에 따라서는 희생도 요구됩니다. 그러나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해 뜻을 같이하고 소통하는 노력들이 실질적인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군산대를 응원하는 시민들과 지역사회 덕분에 위기를 기회로,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모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날 지방대학이 위기이고 군산대 역시 가야할 길이 멉니다. 그러나 지역사회와 신중하게 지혜를 모아 지금의 상황에 새로운 변화를 준다면, 군산대는 분명 더욱 강한 대학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 전 구성원이 합심하여 함께 움직일 때 성장과 변화를 이뤄낼 수 있듯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초심을 잃지 않고 지금의 추진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1년간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일과 성과가 궁금합니다. “총장 취임 후 대학 대전환을 위해 수요자 중심의 학사구조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기존의 7개 단과대학을 2개 단과대학인 HASS대학(Humanities, Arts, and Social Sciences)과 ONSE대학(Ocean, Natural Sciences, and Engineering)으로 통합했고, 본부 직속 특성화대학부로 법행정경찰학부‧글로벌비즈니스학부‧간호학부‧소프트웨어 학부‧자율전공학부를 두는 등 2개 단과대학, 8개 학부, 35개 학과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특히 군산대는 개편된 시스템으로 2023학년도 신입생을 모집한 결과 지난해 대비 신입생 충원율이 대폭 상승하기도 했습니다. 군산대가 주력하고 있는 ICC(Industry-Community-Coupled Cooperation Center) 기반 특성화대학부제는 지역산업기반 특성화를 통해 쌍방향 기반 산학협력을 체질화하며, 수요자인 학생과 기업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수채용방식에서도 전공 지원 장벽을 허물고 ‘자율분야 채용방식’을 도입해 33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보이는 등 새로운 도전을 통한 교육혁신 사례를 차근차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학생복지차원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학생통학버스를 신입생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을 대폭 높였고, 통학버스 노선도 늘여 원거리 통학생의 편의를 도모하면서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와이파이사각지대, CCTV사각지대, 조명사각지대 등 캠퍼스 사각지대 제거작업을 통해 안전하고 효율적인 캠퍼스 환경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국제교류에서도 몽골국립교육대학, 몽골국립과학기술대학, 몽골국립농업대학,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케냐 등과의 교류활성화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했으며, 미국 푸에블로 커뮤니티대학과의 교류협력을 통해 현장실습 및 학생 취업, 국제교육활동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 등 글로벌 교류영역도 확장했습니다.” 지역사회의 발전 및 상생을 위한 노력은 무엇이 있었나요? “지역대학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길은 단연코 대학 자체 역량을 강화하는 일입니다. 지역사회에서 대학은 행·재정적 네트워크, 산학연관 활동, 지역 상권 및 지역민의 삶 등 큰 규모에서부터 일상적인 일에까지 세세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국립대학은 지역사회와 함께 움직이고, 성장하며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그런 모습들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군산대는 산단 내 기업들과 꾸준하게 산학협력을 펼쳐왔으며 이를 통해 지역의 미래 먹거리이자 주요 전략산업에 코드를 맞추고 연구력 및 우수한 현장 기반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시스템을 꾸준히 업그레이드시키고 있습니다. 실례로 강수특구가 선정된 후 이 사업을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산업 생태계의 허리 축인 R&D 기술력 기반의 탄탄한 중소‧중견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투자환경 개선으로 건강한 일자리를 창출해 나가는 데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지역민들과 다양한 교류는 물론 국립대학으로서 공적가치 추구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며 소통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교류 행사를 꼽으라면 지난해 캠퍼스를 개방해서 시민들과 함께 월드컵 축구경기를 관람하며 응원했던 일입니다. 특히 응원전의 열기를 높이기 위해 월드컵 경기에 앞서 교내 풋살장에서 지역민과 함께 하는 풋살대회를 개최, 친목과 화합을 다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우수 학생들을 선발해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학습지원에 나선 점도 매우 인상적인 사업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고착화되어가는 신분의 편차 등을 줄이기 위해 국립대학으로서,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여러 이유로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 자녀들을 위해 교육 지원 프로그램(방과후수업)을 시범적으로 운영했는데 반응이 매우 좋아 올해도 확대 적용할 계획입니다. 국립대학의 책무 가운데 하나가 지역의 교육력을 높이는 것으로 그러한 교육 편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지역의 중심 국립대학인 군산대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지역사회와 소통의 폭을 넓히기 위해 군산대가 운영하고 있는 미술관을 개방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작품을 전시할 수 없는 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 동안 지역 미술교사‧대학 졸업생‧지역 전업 작가 등을 대상으로 다양한 전시화가 열려 지역 문화예술 발전 및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대학마다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학령 인구 감소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로 인해 대학 입학 진학률도 계속 떨어지고 있는 등 지방대학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학생들이 대학을 더 이상 과거처럼 80~90% 가는 게 아니고 70%대로 떨어졌다고 봐도 무방하고 더욱이 대학 모집 정원하고 입학하는 학생들의 편차가 14만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이는 1000명 정도 모집하는 대학교가 140개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입니다. 지방 국공립대학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역산업 및 지역사회와의 강한 연대의식을 가지고 상호보완하면서 발전하는 플랫폼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취임 직후부터 미래지향적인 교육시스템 전환, 학생복지증대, 군산시청 및 군산시의회, 총동문회 등 지역사회와의 유대강화에 많은 신경을 쓰며 지역 내 군산대의 긍정적 이미지를 다져왔습니다. 군산대는 군산국가산단, 새만금산단, 장항국가산단를 배후로 하면서 국가산업단지가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큰 역할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RIS)사업’의 에너지신산업 중심대학으로 융합인재양성, 탄소중립실현을 통한 친환경에너지 선도 기술 확보, 산학연 협업을 통한 신산업 육성 등을 중점 추진하며 지역 핵심사업 및 국가 전략사업에서 중심 역할을 하기 위한 기반을 닦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의 학사구조 개편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는 고객의 수요를 만족하기 위한 노력이며, 그 고객은 학생과 기업입니다. 특히 학생들이 선호하는 것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군산대는 최근 3년 동안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를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수치를 통해 대학이 뽑고자 하는 학과와 지원하는 학생들의 미스 매칭을 줄이고, 더 나아가 지역 인재가 유출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나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유연한 학사구조와 교육의 수월성을 확보하기 위해 과감하게 단과대학을 통폐합하고 수요자 중심의 ICC기반 특성화 대학부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다른 대학과 비교해 군산대만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외국에 나갈 때 베트남‧몽골 등 외국대학들이 군산대를 특별히 부러워하는 것이 있다면 군산 국가산단 및 새만금 산단 등 큰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핵심인재를 양성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몽골이나 인도‧베트남 등 이런 나라에서 우리 대학에 학생들을 보내 현장 실습을 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갈수록 수요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군산대는 산학협력이 잘 되는 대학으로서 지리적 요건과 산업 환경을 잘 활용할 경우 취업률 하나만큼은 전국 최고가 될 수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이 굉장히 큰 대학입니다. 또한 인천부터 목포까지 통틀어서 군산대학이 해양산업 해양수산업에 관련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유일한 고등교육기관이라는 점도 강점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대학은 사회변화와 산업수요를 반영해 에너지신산업 분야, 미래자동차분야, 해양바이오 분야를 특성화 분야로 정했고 그 외 하이퍼튜브, 해상풍력산업, 농생명 바이오, 미래형수송기기 등 전북과 새만금군산지역 특화 및 주력산업에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글로컬대학30 선정을 위한 노력들은 무엇인가요. “글로컬대학30은 비수도권대학을 세계적 수준의 특성화대학으로 육성하는 사업으로 성장 잠재력을 혁신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대학 30곳을 선정해 대학 당 한곳에 5년 동안 1000억 원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글로컬 대학에서 제시된 유형이 많은데요. 군산대학은 ‘글로벌 유형’을 선택했으며 ‘지역과 함께 글로벌을 지향합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습니다. 군산대가 글로벌 유형을 선택한 배경은 대학 인근 새만금 산단에 다양한 기업들이 유치되고 있고, 이에 따라 현장 실무 인력을 비롯해 관리자 인력, 석·박사 연구 인력 등 다양한 인재가 필요한 상황인데 군산대학이 이 모든 고객의 수요를 맞추겠다는 의미로 보시면 됩니다. 우리대학은 지난 4월 선포식과 함께 △내국인 학생의 세계화(GLOBALIZATION) △외국인 학생의 지역화(GUNSAN-LOCALIZATION) △세계적 수준의 대학 거버넌스(GOVERNANCE) 구축 △지역과 국가가 함께 성장(GROWTH) △세대(GENERATION)간 장벽을 뛰어넘는 5G 교육혁신을 제시했습니다. 지금까지 대학은 주로 관리자형이나 연구인력을 양성했지만, 우리는 새만금캠퍼스를 기반으로 현장에서 일할 실무인재도 많이 양성해 필요한 곳에 공급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폴리텍 대학 익산캠퍼스와 전북캠퍼스, 전주기전대학 등 전문대학과도 학점 및 학생 교류를 위한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또한 우리 대학이 가지고 있는 컨셉은 베트남·인도·몽골 등 글로벌 캠퍼스를 온라인 캠퍼스로 활성화시켜 온라인 플랫폼을 탄탄하게 구축하는 것입니다. 2+2 학위제 등의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2년 정도는 온라인으로 가르치고, 이렇게 해서 3년 차에 새만금캠퍼스로 와 현장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새만금국가산단에 글로벌기업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푸에블로의 씨에스-윈드는 미국 현지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비즈니스를 하고 있으며 군산대학이 이런 기업과 손을 잡고 노력하면 글로벌 대학이 되기 위한 노력을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이의 일환으로 올해 일단 20명 정도를 시범으로 선발해서 미국에 현장실습을 보낼 예정인데, 푸에블로시와 푸에블로커뮤니티대학과도 이미 합의가 된 내용입니다. 외국인 학생들을 국내에서 글로벌 인재로 키우고, 우리 학생들도 외국에 보내 현지전문가형 글로벌 인재로 성장시키는 쌍방향 플랫폼을 만드는 일, 그런 일을 우리 대학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향후 계획과 시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군산대학을 도와주신 시민들과 지역사회에 보답하는 길은 지역 거점 국립대학으로서 지역과 함께 세계화를 이끌고 더 나아가 군산이 세계적인 도시가 되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앞장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군산대학이 힘든 시기가 겪고 있었을 때 지역사회의 응원 덕분에 다시 힘을 내고 일어날 수 있었던 만큼 이제는 군산대가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목표가 세계적인 대학입니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현대 추세에 맞게 군산대를 디지털 온라인대학으로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최근 미국의 명문 주립대들이 온라인 코스를 많이 개설했는데,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애리조나 대학입니다. 애리조나대학은 오프라인 대학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온라인 대학이 10배 성장해서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했습니다. 군산대도 이처럼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또한 새만금캠퍼스에 기숙사를 유치해서 정주 여건을 개선할 계획이며 현재 교육부와 협의 중입니다. 새만금캠퍼스에 기숙사를 유치해서 인도·베트남·몽골 등의 유학생은 물론 기업 고객을 위한 인재양성 플랫폼을 구축할 예정입니다. 이와함께 지역 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더 많이 실행하며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시민들이 좀 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학내 멀티플렉스를 유치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누구나 24시간 안전하게 군산대학교 캠퍼스를 산책도 하고 즐길 수 있게 학교를 완전 개방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으며 CCTV 사각지대, 와이파이 사각지대, 조명 사각지대를 없애는 작업을 통해 군산대학교 캠퍼스를 안전캠퍼스화하고 있습니다. 항상 지역 사회의 든든한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전 직원과 함께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 기획
  • 이환규
  • 2023.05.14 15:43

[지난 주 '핫클릭' : 5. 7~12] "핏줄은 못 속여" 가족이라는 이름의 따뜻함

△5월 7일~ 12일 5월 둘째 주 전북일보 홈페이지 방문자들은, 지난주에 이어 2주 연속 문정곤 기자의 '군산에 이런 곳도 있었네⋯황금연휴 가볼 만한 곳'을 가장 많이 살펴봤다. 두 번째는 그리운 어머니와 가족의 소중함을 담담하게 담아낸, 유대성 왱이집 대표의 기고글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배운다'이다. 유 대표는 "어머니가 조그만 책상 위에 책을 펼쳐두고 뭔가를 쓸 때면 슬그머니 그 옆에 가서 책 읽는 시늉을 하곤 했다. 가끔 책 읽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실 뿐이었다"며 누가 따로 시키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세 번째는 문민주 기자의 '여의도 3분의 2 군산 금란도 개발 6월 윤곽, 관건은 민자 유치'다. 지역의 숙원사업인 군산 금란도 개발은 총사업비만 1조 4000억 원으로 예상되면서, 세계적인 경기 불황 속 민간투자 유치가 관건이 될 전망이라고. 이밖에 전주시가 민선 8기 들어 LH와 협의를 거쳐 재추진하고 있지만, 1000억 원에 달하는 지하차도 개설문제로 또다시 난항을 겪고 있다는 이종호 기자의 '또다시 제동 걸린 전주 역세권 복합개발 사업',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한국 방문 첫 일정으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참배했다는 내용을 담은 '기시다, 일본 총리로는 12년 만에 현충원 참배' 등이 관심을 끌었다.

  • 기획
  • 이용수
  • 2023.05.13 13:44

[전북 가담항설] (4)'콩쥐팥쥐' 고향은 - 전주성 서문 밖 30리 '완주 앵곡마을'

전북엔 도민 사이에서 전해오는 수많은 전래동화가 곳곳에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전래동화를 꼽자면, 단연 ‘콩쥐팥쥐전’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권선징악형 전래동화라 할 수 있는 콩쥐팥쥐전은 전북에서 탄생한 향토 동화다. 그러나 콩쥐팥쥐전은 알아도 그 유래의 배경이 전북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도민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어린이에겐 다소 잔혹한 콩쥐팥쥐전의 결말도 여러 이야기가 뒤섞여 중구난방식으로 세간에 떠돌고 있기까지 하다. 이에 도내 한 작은 마을에서 탄생한 전북의 이야기, 콩쥐팥쥐전의 유래와 현황에 대해 자세히 파헤쳐본다. △콩쥐‧팥쥐의 고향은 어디? ‘전주성 서문 30리 밖 최만춘 댁’. 콩쥐팥쥐전에서 밝힌 주인공 콩쥐와 팥쥐의 집 주소다. 물론 콩쥐와 팥쥐 모두 실존 인물은 아니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콩쥐팥쥐전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 분포를 보이던 관련 설화를 1914년 대창서원에서 각색해 출판한 고전소설이기 때문이다. 콩쥐팥쥐전의 배경인 ‘전주성 서문 밖 30리’는 오늘날 완주군 이서면과 김제시 금구면 일대를 지칭한다. 인근 도로 명칭도 ‘콩쥐팥쥐로’인 만큼 이곳 지역과 콩쥐팥쥐의 연관성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완주군과 김제시는 지난 2005년부터 지역에 남아있는 콩쥐팥쥐 관련 명칭을 근거로 서로 ‘콩쥐팥쥐의 본고장’임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완주군은 이서면 앵곡마을, 김제시는 금구면 둔산마을이 '콩쥐팥쥐의 고향'이라고 각각 주장했다. 실제로 완주군 앵곡마을과 김제시 둔산마을은 거리상 200m 떨어진 이웃 마을이기에 두 마을의 주장 모두 어느 정도 신빙성을 갖췄지만, 학계는 여러 고문헌 등을 근거로 완주군의 손을 들어줬다. 콩쥐팥쥐전의 배경인 ‘전주성 서문 밖 30리’의 정확한 위치는 완주군 이서면과 정확히 들어 맞으며, 이곳에 '콩죽이 팥죽이' 등 관련 지명이 상당수 남아있는 점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어린이 동화맞아?” 콩쥐를 죽인 팥쥐를 처단해 계모 배 씨에게 먹인 원님 완주군 앵곡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콩쥐팥쥐전의 줄거리를 간단히 살펴보면, 전주성 서문 밖에 사는 최만춘은 아내 조씨에게서 콩쥐라는 딸을 두었다. 이후 아내 조 씨가 세상을 떠나자, 최만춘은 팥쥐라는 딸을 가진 배 씨를 후처로 맞아들였다. 배 씨는 친자식인 팥쥐만을 총애하면서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한 시련을 주는 등 콩쥐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착한 콩쥐는 여러 동물의 도움을 받아 여러 난관을 헤쳐나가고, 선녀가 준 꽃신의 인연으로 고을 원님과 혼인까지 하게 된다. 이후 콩쥐를 괴롭히던 팥쥐와 계모는 벌을 받고, 콩쥐는 원님과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콩쥐팥쥐전은 이처럼 아름다운 묘사만이 가득한 동화는 아니다.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 다소 어린이가 받아들이기에는 잔혹한 부분이 내포돼있기 때문이다. 실제 원작이라 할 수 있는 대창서원판 ‘콩쥐팥쥐전’의 결말 부분에 따르면, 팥쥐는 원님과 혼인한 콩쥐를 연못에 빠트려 익사시키고 자신이 콩쥐 행세를 하며 원님을 속인다. 이후 부활한 콩쥐에 의해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원님은 팥쥐를 거열형(사지를 밧줄에 묶어 수레의 힘으로 각각 반대 방향으로 당겨 찢어 죽이는 형벌)에 처한 뒤, 그 시체를 젓갈로 담가 계모 배 씨에게 보낸다. 이에 배 씨는 극도로 큰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즉사하고 말았다. 이처럼 콩쥐팥쥐전의 결말은 오늘날 받아들이기엔 잔혹한 부분이 농후해 시중에 유통되는 어린이용 동화나 책에서는 ‘팥쥐와 계모 배 씨가 죄를 뉘우치고 콩쥐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형식으로 순화돼 출판되는 경우가 많다. 콩쥐팥쥐전의 본고장인 앵곡마을에 남아있는 이야기 속에서도 이 같은 잔혹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지역 전래동화 활용한 관광 콘텐츠 마련 앞서 콩쥐팥쥐 쟁탈전에서 우위를 점한 완주군은 콩쥐팥쥐를 완주 대표 브랜드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콩쥐팥쥐 살림집과 외갓집, 연못 등을 재현한 테마마을 조성과 함께 군립 도서관의 명칭을 '콩쥐팥쥐도서관‘으로 짓는 등 관련 콘텐츠를 개발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자체 차원에서의 노력에도, 여전히 전래동화 콘텐츠를 통한 관광 효과는 미비한 실정이다. 현재 콩쥐팥쥐마을의 방문객이 하루 평균 100여 명에 불과하고, 대부분 이곳을 단순 캠핑장이나 숙박시설로 알고 찾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남원시 아영면에 조성된 '흥부마을'도 마찬가지다. 전래동화 '흥부전'의 본고장인 이곳 역시 관련 테마마을을 조성했지만, 여전히 눈에 띄는 관광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콩쥐팥쥐마을 관계자는 "방문객을 상대로 자체적으로 이곳이 콩쥐팥쥐 본고장임을 알리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앞으로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전래동화를 접목한 다양한 관광 문화콘텐츠 마련에 힘썼으면 한다"고 말했다.

  • 기획
  • 이준서
  • 2023.05.1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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