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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인협회장 후보에 조미애·백봉기 최종 등록

전북문인협회가 제33대 신임 회장 선거를 치르기 위한 후보 등록을 마감한 가운데 2파전으로 압축됐다. 이로써 지난 2020년 김영 회장이 단독 후보로 무투표 당선된 이후 3년 만에 후보들 간 치열한 선거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19일 전북문협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후보자 등록을 접수한 결과 조미애 표현문학회 회장과 백봉기 전북수필문학회 회장이 최종 후보자로 등록했다. 기호 1번 조미애 회장은 전남 진도 출생으로 한국문인협회 이사와 전북문인협회 부회장, 전북여류문학회 회장, 전북과학교사교육 연합회장,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한 바 있다. 주요 수상경력으로는 새천년 한국문인상, 전북예술상, 전북여류문학상, 전북문학상, 전북시인상 등을 포함해 2017년 올해를 빛낸 인물대상, 2022년 올해를 빛낸 문화예술 대상 등을 받았다. 기호 2번 백봉기 회장은 군산 출생으로 KBS PD로 활동했으며 전북예총에서 사무처장으로 10여 년 넘게 근무했다. 주요 수상경력은 군산시문화장과 전북문학상, 몽골문학상, 전북수필문학상, 대한민국예술문화 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회장 선거는 내년 1월 13일 오전 10시 전북문학관에서 진행된다.

  • 문학·출판
  • 김영호
  • 2023.12.19 17:40

[2024 전북일보 신춘문예 예심] “완성도 높아졌지만 이야기 전개 부분 미흡”

‘2024 전북일보 신춘문예’ 공모에 총 779명이 1993편을 응모했다. 지난 8일 공모 마감 결과 시 부문에 344명이 1308편, 수필 부문에 183명이 412편, 단편소설 부문에 149명이 161편, 동화 부문에 103명이 112편을 응모했다. 지난해(614명, 1649편)에 비해 응모자 수는 165명 늘었고 출품작 수는 344편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에도 10대부터 80대 응모자까지 비교적 고른 연령층이 응모했으며 10대와 20대 등 젊은 층에서 높은 참여율을 보였다. 지역별로는 전북보다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응모자들이 많아 전국에서 높은 관심을 나타냈고 해외에서 보낸 작품도 적지 않았다. 신춘문예 예심은 지난 14일 전북일보 본사 3층 역사전시실에서 진행됐다. 심사는 전북일보 문우회(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모임) 회원인 경종호·기명숙·김근혜·김영주·김헌수·박태건·안성덕·오은숙·이경옥·이진숙·장은영·장창영·정숙인·최기우·최아현·황지호 작가 등 14명이 함께했다. 올해는 가족 등 전통적인 소재와 자연 등 보편적인 주제의 작품과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많았다. 다만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미흡해 다소 아쉬웠다는 의견이 많았다. 시 부문 예심 심사위원들은 35편을 본심에 올렸다. 심사위원들은 “연륜이 묻어나는 단어와 산문시가 많았다”며 “다만 필요 이상의 산문화된 긴 작품이 많아 아쉬움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수필 부문에서는 18편이 본심에 올랐다. 심사위원들은 “지난해에 비해 문학성과 사고의 깊이가 남달랐다”면서 “대상을 바라보는 눈이 섬세하고 사유의 감각, 정서화한 작품들이 많아 선정에 고민이 많았다”고 밝혔다. 단편소설 부문에서는 15편이 본심에 올라갔다. 심사위원들은 “시대를 반영하는 패기 있는 이야기가 드물었지만 안정된 문장과 구성력, 확장된 서사 공간 등을 바탕으로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 많았다”면서도 “작품 초반의 강한 흡인력을 가진 작품이 적었던 점은 아쉬웠다”고 평했다. 동화 부문에서는 5편의 작품을 본심에 올렸는데 판타지, SF 등 소재와 주제가 다양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심사위원들은 “의인화 동화가 주를 이뤘지만 소재부터 주제 선정이 지난해에 비해 다양하고 신선했다”면서도 “어린이가 직면한 문제와 상황을 드러내기보다 어른의 시선에서 단편적으로 드러낸 작품이 많아 동화란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였다”고 평가했다. 당선작은 본심을 거쳐 2024년 1월 2일자 본보 신년호를 통해 발표한다. 당선자에게는 개별 통보한다.

  • 문학·출판
  • 김영호외(1)
  • 2023.12.17 17:03

[전북의 문학 명소] 10. 문학으로 읽는 아프고 당찬 역사

△혼은 쉽사리 소멸하지 않는다, 만인의총 만인의총은 정유재란 때 남원성을 지키기 위해 왜적과 항전하다 전사한 군·관·민을 합장한 무덤이다. 그곳 광장에 서 있는 노래탑 <오늘이 오늘이소서>는 아무리 정교한 정책으로 민족문화를 말살하려 해도 그 혼은 쉽사리 소멸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새겨 있다. 정유재란 때 남원성을 함락한 왜군은 조선의 도예기술을 얻기 위해 이삼평·박평의 등 2백여 명의 도공을 일본으로 끌고 갔다. 이들은 일본에서 도예촌을 형성했고, 그 후손들은 지금 일본 도자기산업을 이끄는 중심인물이 됐다. 이삼평은 아리따야끼의 도조로 일본 도자기의 조상으로 추앙받으며, 박평의는 사쓰마야끼를 만들어 일본 도자기의 양대 산맥을 이끌고 있다. 사쓰마야끼의 심수관 가문은 현재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노래 <오늘이 오늘이소서>가 이들의 삶에 깊이 다가선 것은 대한해협에서 큰 불덩이 하나가 날아와 마을 뒷산에 떨어지면서부터다. 사람들은 이 일을 모두 화목하게 살라는 단군의 계시로 해석했고, 그 자리에 단군 사당인 옥산궁을 짓고 해마다 음력 9월 14일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이때 부르는 노래가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에 오늘이소서 저물지도 새지도 마시고 날이 샌다 해도 언제나 오늘과 같은 날이 되게 하소서’라는 내용의 <오늘이 오늘이소서>이다. 고려 말에서 조선 중기까지 불렸던 이 노래는 고달픈 현실에서 오늘만을 헤아려 기다려 왔으니 마음껏 놀아보자는 내용의 노동요다. 실제로 남원에서 채록돼『청구영언』(1728)에 실렸다. 조선 도공의 후손들은 1988년 광한루에서 귀향음악회를 열었고, 이때 이 노래가 채록된 남원에 노래를 돌려주는 전수식을 했다. 남원문화원에서는 이 노래의 역사적 의의를 잊지 않기 위해 1995년 노래탑을 세웠다. 탑 전면에 악보를 새겼고, 후면에는 가사를 담았다. 일본에서 여러 대에 걸쳐 한국의 성(姓)을 유지하며 뿌리를 지킨 그 정신세계와 찬란한 예술 세계는 춘향테마파크에 2011년 개관한 심수관전시관에서 엿볼 수 있으며, 후손들의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는 김양오의 동화『도자기에 핀 눈물꽃』(빈빈책방·2020)에도 담겨 있다. △하늘 같은 사람을 향해 열려 있는 길, 대둔산 기암괴석이 기치창검처럼 늘어선 대둔산은 이름의 유래도 갖가지다. 옛 이름은 ‘한듬산’. 계룡산의 지세와 겨루다 패해 한이 맺힌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우리말로 ‘크다’는 뜻의 ‘한’과 ‘덩이’라는 뜻의 ‘듬’을 한자로 만들면서 대둔산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한 맺힌 산’이라는 이름처럼 이곳 역사는 순탄치 않았다. 임진왜란 때는 대둔산 일대에서 김제군수 정담(?∼1592)이 이끄는 의병대와 권율(1537∼1599) 장군의 군대가 왜군과 맞서 ‘이치대첩’으로 불리는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대둔산에서 뻗어 내린 배티재 정상에 이치대첩비가 있다. 조선 말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동학농민군도 이곳에서 일본군과 마지막 항전을 벌였다. “내가 향해 갈 곳이 한 군데 있긴 있소.” 은명기가 잠시 신일균의 얼굴을 보았다. 아직 그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버릇처럼 그의 얼굴을 살핀 것이다. 신일균이 그런 기색을 눈치 챘는지 잠자코 고개를 숙였다. “신형, 그곳이 고산현의 대둔산이오. 저 장형이 살렸다는 최대웅도 거기에 있을 거외다. 내가 망설인 이유는 신형이 때아닌 고생을 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소.” “염려해주시니 고맙습니다만, 신일균은 이미 그를 보냈던 관군에서도 죽었고 내 마음속에서도 죽은 지 오랩니다. 대둔산에 가거든 어디를 찾아야 하오이까?” “안심사에 가면 아마 길이 열릴 것이오.” ∥이병천의 소설『마지막 조선검 은명기3』 대둔산 마루 삼선계단 부근 ‘대둔산 동학군 최후항전지’ 표지가 있어 이 역사를 후세에 알리고 있으며, 전투에서 ‘홀로 남은 어린 소년의 이야기’는 완주 출신 이병천의 장편소설 「마지막 조선검 은명기」에 담겨 있다. 소설가 송기숙의 대하소설『녹두장군』에도 대둔산이 나온다. 그들이 대둔산 기슭의 당마루란 동네에 이르렀을 때는 새벽닭이 두홰를 치고 있었다. 이 당마루는 진안과 무주에서 올라오는 길과 이쪽 고산에서 올라가는 길이 만나는 삼거리다. 여기에는 대둔산에 산채를 가지고 있는 임문한의 졸개 김오봉이가 주막을 내고 있었다. ∥송기숙의 소설『녹두장군1』 운무에 가렸다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대둔산의 기암들. 대둔산의 바위산들이 장사들의 근육처럼 보이는 이유는 이름 없이 스러져 간 민초들의 한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한 많은 역사를 간직한 회문산 회문산은 한 많은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동학농민혁명과 구한말 항일투쟁의 근거지였으며, 1948년 여순사건 이후에는 빨치산들이 도당본부를 이곳에 옮기고 마지막까지 투쟁했던 ‘저항의 산’이며, ‘피의 산’이며, ‘피난의 산’이다. 사방에서 밀려온 수백 명의 전투원들이 눈에 핏발을 세우고 중부능선을 시퍼렇게 덮으며 밀려오는 국군부대에게 총탄과 수류탄을 퍼붓고 있었다. 여기저기 흥건히 고인 빗물이 피와 흙으로 뒤범벅이 되어 부상자고 전투원이고 이미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바로 생지옥이었다. ∥이태의 소설 「남부군」 부분 회문산은 소설『남부군』(두레·1988)이 출간되면서 이곳이 빨치산의 마지막 결전지였음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1988년 출간돼 50만 부 이상 팔린 이 책의 저자는 한국전쟁 당시 합동통신 기자였던 이태(1922∼1997)이다. 그는 서울에서 인민군에게 체포돼 북한 조선통신 기자가 되었으며, 전주에서 통신업무를 보다가 연합군이 상륙한 1950년 9월 전북도당 간부들을 따라 순창 구림면 여분산(엽운산·774m)에 들어가 조선노동당 전북도당 유격사령부 대원이 되었다. 이후 회문산으로 옮겨 이현상의 남부군에 편입됐고, 1952년 3월 토벌대에 체포될 때까지 17개월 동안 빨치산으로 활동한다. 그래서 저자는 서슬선 칼날 위를 걷는 듯한 빨치산의 하루하루와 극단적인 정황 속에서 나누는 남녀의 애환 등을 너무도 생생하게 펼쳐 놓았다. 1951년 초봄, 투구바위. 1만여 명으로 구성된 토벌대의 대규모 작전이 펼쳐졌지만, 그 포위를 뚫고 식량을 구하러 떠나는 빨치산 유격대가 있었다. ‘뜨물국 같은 멀건 죽’으로 ‘비장한 향연’을 벌이지만, 화력에서 밀리는 빨치산들은 전열도 가다듬지 못하고 흩어져 지리산과 변산반도로 탈출한다. 숱한 전화(戰火) 탓에 회문산에서는 고목을 찾기 힘들고, 빨치산의 훈련장이었던 곳에 체력단련장이 들어서면서 옛 모습을 찾기도 어렵지만, 비목공원과 빨치산사령부 자리 등의 안내판이 당시의 역사를 짐작게 한다. 그래도 숲은 언제나 호젓하다. 회문산 자락을 끌어안은 채 흐르는 섬진강 풍경도 늘 푸근하고 정겹다. 강 따라 길도 흐른다. 강물이 구부러지면 모진 역사도 슬며시 굽이돌지만, 길은 계속 이어진다. / 최기우(극작가)

  • 문학·출판
  • 기고
  • 2023.12.17 10:00

[전북의 문학 명소] 9. 시와 소설에 담긴 사찰 풍경

△사천왕의 전형을 만나는 완주 송광사 867년 창건한 천년고찰인 송광사는 국내에서 드물게 평지에 지어진 사찰이다. 지붕 맞대고 울타리 잇대 사는 여느 집처럼 들어앉은 품새가 허물없이 속내 나누고 사는 마을의 한 이웃 같다. 일주문부터 금강문, 천왕문, 대웅전까지 일직선으로 서 있는 것도 송광사의 특징이다. 절 앞에 서면 일주문 안으로 금강문이, 그 문 안으로 천왕문이, 또 그 문안으로 대웅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최명희는 소설 「혼불」에서 승려 도환이 입을 빌려 ‘완주 송광사 사천왕을 사천왕의 전형으로 보았다.’라고 말한다. 현존하는 소조 사천왕으로는 가장 오래된 존상이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소승이 보기에는 완주 송광사 사천왕이, 흙으로 빚은 조선 사천왕 존상들 가운데 가장 빼어난 조형으로서, 높이 십삼 척의 위용도 웅장하고, 그 큰 신체 각 부위 균형이며 전체 조화가 놀랍도록 알맞게 어우러져 큰 안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얼굴의 표정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조각되어, 깊이 패인 이마의 주름살에 미간의 찌푸림, 우묵히 들어갔다 튀어나온 눈두덩, 그리고 눈자위와 눈밑의 굵은 주름들을 보고 있으면, 도무지 투박한 진흙을 주물러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극채 찬란한 색깔들.” ∥최명희의 장편소설 「혼불」 사천왕은 단 한 위도 같은 상이 없다. 동․남․서․북 각 방위 천왕의 신모(神貌)가 서로 다른 것은 물론이고, 같은 이름의 북방다문천왕이라고 해도 사찰마다 특성이 있어 비파의 생김새며 사현(四弦)을 누르고 튕기는 손가락의 모양과 위치, 얼굴 모색에 눈썹․눈․코․입술․이․수염의 형태가 다 달라서 빚는 손, 바치는 마음이 인간을 넘어 정토와 십계에 사무친다. 눈썹 하나만 보더라도 천편일률적으로 무조건 시커멓게 먹칠한 솔잎처럼 곤두선 것이 아니다. 선운사 북방은 완연히 웃음을 띤 주름의 노안에 어질고 부드러운 흰 눈썹 다보록이 눈을 덮어 나부끼는 데다가, 수염도 맑은 은실 다발을 빗어 내린 듯 투명하다. 송광사 북방은 가장 사천왕다운 장엄 용맹의 풍모로 눈썹 터럭 한 올 한 올 힘차게 박아 세운 것이 장비 수염과 함께 어울려 서슬 푸른 바람 소리를 낸다. 그러나 그 서슬을 누그리며 중생을 달래는 것은 코밑의 수염이었으니 터럭이 길어 여덟 팔(八)자로 드리워진 숱이 짙고 검었다. 임진왜란 때, 송광사는 승병 사령부였다. 하지만 석가모니에게 ‘살생의 성공’을 기원할 수는 없는 법. 하여 승병들은 사천왕에게 승리를 기도했고, 그 흔적이 남아 지금도 사천왕 앞에는 촛불과 향이 타오른다. △쓸쓸한 심사를 달래기에 좋은 실상사 남원 산내면 아늑한 들판 가운데 있는 실상사는 눈 내리는 겨울에 찾아 들어 쓸쓸한 심사를 달래기에 제격이다. 드넓은 논과 밭을 떠돌이처럼 헤매도 보고, 절 입구에 있는 돌장승들에 하소연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상사는 시인과 소설가의 출입이 유난히 잦고, 시와 소설로도 자주 읽힌다. 도종환의 시 「실상사-정도상에게」, 신경림의 시 「실상사의 돌장승-지리산에서」, 신용목의 시 「실상사에서의 편지」, 정동철의 시 「실상사 철조여래좌불을 만나다」 등이다. 실상사를 배경으로 한 정도상의 소설 실상사는 「봄 실상사」, 「여름 실상사」, 「가을 실상사」, 「겨울 실상사」, 「내 마음의 실상사」 등 다섯 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집이다. 「봄 실상사」는 통일 운동을 하며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힘겨워하는 주인공이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 찾아간 실상사에서 운동권 시절 헤어졌던 첫사랑 운서와 마주치는 모습을 환상적으로 그렸다. 「여름 실상사」는 명품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추구하며 술집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영혼과 육신이 피폐해진 여대생 국희가 실상사에서 상처를 치유 받는 과정을, 「가을 실상사」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병에 걸린 시골 청년 현우의 죽음을 시간의 해체와 정신분석적 기법 등을 동원해 그렸다. 「겨울 실상사」는 권력과 언론과 결탁해 성공을 거둔 타락한 벤처사업가 김성철의 분열된 자아를 드러내며, 「내 마음의 실상사」는 소설가이자 사회운동가인 나(화자)가 육체노동자인 친구를 통해 허명과 허위의식을 깨닫는 과정을 보여 준다. 통일 운동을 해온 작가의 체험담이 생생하게 들어있는 이 소설을 읽으면, 작가에게 실상사는 힘들고 지칠 때면 무작정 찾아가 쉬고 싶은 곳이다. 왜 왔냐며 묻지 않고, 잘못을 타박하지 않는 곳, 그곳은 고향일 수도, 엄마 품일 수도 있다. 어디 작가뿐이랴. 작가의 글을 접한 이들은 실상사에 가지 않았어도 이미 실상사는 고향이고, 엄마의 품인 것을…. △잘 늙은 절 한 채, 화암사 이유 없이 힘들거나 외로울 때가 있다. 완주군 불명 자락의 화암사는 그런 마음이 들 때 찾아가면 좋은 곳이다. 화암사는 현대 문명의 헛바람을 맞지 않고 오랜 세월 ‘곱게 늙어 온’ 절이기 때문이다. 화암사에는 보물 제662호인 우화루가 있다. 비가 꽃처럼 떨어지는 다락. 현판은 투박하고, 낡았다. 글씨는 흐릿하고, 벽은 까맣게 때가 묻었다. 그래서 더 애잔하니 곱다. 우화루 옆 작은 대문이 경내로 들어가는 문이다. 문지방은 움푹 파인 달문이다. 문턱에 둥글게 휘어진 나무를 대서 천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이룬 문을 들어서면 적묵당, 극락전, 우화루, 요사채가 고만고만한 크기로 서로 네 귀를 맞추듯 서 있다. 절 입구에 있을 법한 일주문도 사천왕상도 없이 경내로 들어서려면 작은 문 하나를 통과해야 한다. 잊을 수 없다. 세월에 닳은 문턱을 처음 넘어설 때, 나는 마치 어릴 적 외갓집 대문을 넘어 마당으로 발을 들여놓을 때와 똑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실제로 ㅁ자형 구조를 가진 경내로 들어가면 그곳은 절이 아니라 여염집의 편안한 안마당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때의 적막은 또 얼마나 큰 위안인가. ∥안도현의 수필 「잘 늙은 절, 화암사」 우화루는 절의 앞쪽에서 보면 우람한 다섯 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2층 누각이지만 경내에서 바라보면 단층구조다. 우화루 왼쪽 돌담을 끼고 돌아가면 정갈하게 지어진 해우소가 정겹고, 오른쪽에 사시사철 멈추지 않고 뿜어내는 약수가 맑다. 화려한 단청이 미치지 못할 격을 지니고 수수하게 나이 들어가는 사적들. 극락전은 이 땅에 유일하게 남은 백제 시대 건축의 유구다. 건축학자들은 극락전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하앙구조를 갖추고 있는 법당이라고 자랑한다. 극락전 안에선 유난히 정교한 아름다움을 지닌 닫집과 조선 시대 동종을 볼 수 있다. 이 동종은 예전에 사람이 종을 치지 않아도 밤이면 저절로 울려 스님들과 불공을 드리러 온 신도들을 깨웠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가 전해진다. 특히, 일제강점기 전쟁에 쓸 무기를 만들기 위해 조선의 쇠붙이를 강탈하던 일본 헌병들이 화암사로 몰려올 때, 동종은 스스로 울었고, 스님들은 동종을 땅에 묻어 두었다가 해방 후에 꺼내 오늘까지 무사히 보존하게 되었다. 화암사는 낡고 작고 허름하다. 세월에 부대껴 기둥은 까매졌고, 단청은 희미해졌다. 목어에는 두껍게 먼지가 내려앉았다. 그러나 너무 커서 위압적이지 않고, 화려해서 행인을 주눅 들게 하지도 않는다. 세월에 지치고 늙어가서 더 마음이 가는 절, 그게 화암사다. /최기우(극작가)

  • 문학·출판
  • 기고
  • 2023.12.16 10:00

전북작가회의, 12월 송년 ‘문학 산책’ 연다

전북작가회의(회장 김자연)는 15일 오후 6시 30분 벽계가든에서 문학 산책과 송년회를 개최한다. 이날 행사는 송년을 맞아 1부와 2부로 나눠 진행된다. 1부 문학 산책은 문신 평론가(시인)의 신작 평론집 <서로의 표정이라서>와 안성덕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깜깜>을 소개한다. 문 평론가는 2004년 전북일보와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며 활동을 시작했다. 평론집 <서로의 표정이라서>는 시인 문신에게 있어 시를 창작하는 일 이전에 시에 대한 절실한 사랑이 있었음을 고백하는 평론집이다. 안 시인은 200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깜깜>은 작고 따뜻한 생명력에 담긴 생과 사의 비밀을 찬찬한 걸음으로 톺아보며 가까운 곳에 있으나 쉽게 지나치는 것들의 고유성을 존중하는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2부 모임에서는 250여 명의 회원이 60여 권의 작품집과 4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한 올해를 되돌아본다. 김자연 회장은 “작가들의 1년 창작 농사를 마무리 짓는 2023년 마지막 문학 산책”이라며 “두 작가의 품 안에서 뛰쳐나온 문장들과 두 손 맞잡고 어울리는 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문학·출판
  • 김영호
  • 2023.12.14 18:48

김완순 에세이집 ‘결혼도 큰 스트레스다’

현대인들은 예전보다 많은 부분에서 풍요로움을 느끼지만 관계 맺는 법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매끄럽지 않은 가족 간의 문제로 대화가 단절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관계 개선의 노력보다는 덩달아 외로움을 느끼는 고민들도 늘어나는 세태다. 김완순 가족상담 전문가의 에세이집 <결혼도 큰 스트레스다>(생각나눔)는 결혼과 가족 간의 관계 맺기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덜어주기 위한 안내서다. “차분히 상담을 하다보면 행복한 결혼생활과 건강한 가족을 이루려는 갈증과 목마름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어요.” 저자는 다양한 상담 사례를 통해 결혼에 대한 너무 큰 기대는 자신과 배우자 사이에 필요한 노력에 비례했을 때 감당하기 어려운 큰 스트레스를 가져온다는 것을 절감했다. 이로 인해 배우자와 가족의 마음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사랑할 때 스스로가 존중받을 수 있으며 타인 역시 존중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책에서는 배우자와 자녀 등 가족 관계 개선의 노력도 현대인들이 지녀야 할 자기계발의 하나라고 제시한다. 저자는 배우자와 자녀가 당연히 무엇인가 해주기를 기대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고 존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대상임을 일러준다. 배우자와의 갈등은 곧 자녀에게로 향해 가족 문제로 불거진다. 부모가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면 자녀 또한 자신처럼 살아갈까 봐 불안한 마음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것으로 인해 자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봐주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아이로 자라게 하려다 보니 갈등도 생기고 마찰이 일어나면서 힘들어진다. “옛날 속담에 ‘자신이 먹을 것은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어요. 자녀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그 아이가 분명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으로 잘하든 못하든 믿음으로 기다려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김 소장은 결혼 생활과 가족 문제 등으로 얻게 되는 스트레스를 잘 감당하면 어떤 관계보다도 더 많은 행복을 부부와 가족 안에서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관계 맺기와 관련해 가장 훌륭한 학습장소는 바로 가정입니다. 사이좋은 행복한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행복을 위한 노력을 하게 됩니다.” 김 소장은 가정을 건강하게 하는 시민의 모임 전북지부 사무국장과 군산시 건강가정지원센터 상담팀장을 역임했으며 한일장신대 외래교수,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상담위원 및 자녀 양육위원, HD 행복연구소 감정코칭 수석강사, 군산부부가족상담연구소장을 맡아서 부부 및 가족상담 전문가이기도 하다.

  • 문학·출판
  • 김영호
  • 2023.12.13 17:47

강제규 요리이야기 ‘소방관들을 위한 특별한 한 끼’

쌀쌀해진 날씨에 솔직담백한 이야기가 있는 따뜻한 요리책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 군산 출신인 강제규(25) 작가의 에세이집 <소방관들을 위한 특별한 한 끼>(책나물)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일상에 눈길을 돌린 술회를 적은 책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가족을 위해 저녁밥을 만들었을 만큼 요리를 사랑하고 자신이 만든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 사람들을 보며 기뻐하던 그가 이번엔 주방 대신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 소방관들은 누가 해준 밥을 먹고 지낼까. 갑자기 울리는 출동 벨, 1초가 아까운 구조 환경 탓에 컵라면을 자주 먹을지도 모른다. 소방 복무요원으로서 119안전센터에 근무하게 된 작가는 밥 때도 놓치며 헌신하는 소방대원들을 위해 119안전센터의 요리사를 자처하며 따뜻한 밥을 차려냈다. 식당 이모가 휴가를 낸 어느 날 한번 요리해보겠다며 수줍음 많은 성격에 용기를 낸 것이다. “요리사 자격증도 있고 레스토랑에서 일했으니 어렵기만 한 일은 아니겠지.” 이후로도 식당 이모의 휴가 때가 되면 그는 특식 요원으로 변신해 식비 예산 단돈 5만 원 안에서 소방관들을 위한 끼니를 정성껏 준비했다.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마음이 춤추며 하는 요리 앞에 모두가 즐겁다.” 작가는 소방관들의 밥을 지은 이야기를 담백하고 유쾌하게 풀어썼다. 돼지 앞다리 살 수육, 필살기인 마파두부, 매콤한 맛이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김치찌개와 쫄면, 특식 중의 특식인 삼계탕까지 모두 소방대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그가 만든 특식을 두 그릇씩 맛나게 비우는 센터장의 생활 조언도 인상적이다. 틈날 때마다 턱걸이를 열 개씩만 하면 삶이 달라진다고. 사람들은 한 사람으로 그 조직을 평가하니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는 특히 깔끔해야 한다고. 누구에게든 무엇이든 배우라고. 그렇게 사람 냄새 가득한 119안전센터에서 뭐라도 배우려 애쓰는 청년작가는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책으로까지 펴내게 됐다. 출동 다녀오느라 제때 식사를 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단 한 명분의 음식이라도 데워서 식지 않게 내놓은 작가의 마음 씀씀이에 읽는 이의 마음도 따스해진다.

  • 문학·출판
  • 김영호
  • 2023.12.13 17:47

서정적 태도로 전하는 시 정신⋯함기석 시인, '모든 꽃은 예언이다’발간

“친구 아내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냇가를 혼자 오래 걸었다/ 어쩌면 저 색색 예쁜 꽃망울들은 모두/ 꽃의 종양일지 몰라/ 걸을수록 길이 아프다/ 나도 혹시 아내 인생의 물혹이 아닐까 싶어서/ 살구나무아래 휠체어 하나/ 난소를 떼어낸 여자, 오래 냇물만 바라보고”(시 ‘오래’) 함기석 시인이 시집 <모든 꽃은 예언이다>(걷는사람)을 펴냈다. 함 시인의 8번째 시집인 이번 책은 ‘1부 숯의 영혼’, ‘2부 서쪽에 쓰는 편지’, ‘3부 발목만 남은 눈사람’, ‘4부 나는 영원히 시인이 되지 못할 것이다’ 등 총 4부로 구성돼 70여 편의 신작이 담겨 있다. ‘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에서부터 시작하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사회 구조 속에서 희생된 이들의 이름을 직접 호명하며, 자본주의 흐름 안에서 빠르게 대체되는 공석을 재조명한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맡은 남승원 문학평론가는 “이번 8번째 시집에서는 구체적인 사회 현실을 세세하게 그리는데 주목하고 있어 과거 작품과 비교해 생소한 감정이 묻어난다”며 “이번 책을 통해 보여 주는 서정적 태도로 단순한 시문학의 하위 개념이 아닌 함 시인만의 시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함 시인은 현 시대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현대 시의 특징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오랫동안 흔들리지 않고 서 있는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함 시인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1992년 <작가세계>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저서로는 <국어선생은 달팽이>, <착란의 돌>, <뽈랑 공원>, <오렌지 기하하>, <아무래도 수상해>, <수능 예언 문제집> 등이 있다. 또 그는 박인환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이상시문학상, 신동문학상 등을 받았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3.12.13 17:47

최명희문학관 ‘작고 문학인 세미나’ 열려

혼불기념사업회와 최명희문학관은 지난 10일 최명희문학관에서 ‘김순영·최명희 작가’ 작고 문학인 세미나를 열었다. 최명희(1947~1998) 소설가의 추모일(12월 11일) 하루 전에 진행된 세미나의 좌장은 문학평론가인 문신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맡았다. 올해의 경우 정읍 출신으로 전주에서 생활하며 글을 쓴 김순영(1937∼2019) 수필가의 작품을 통해 문학 세계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196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동화 ‘샛별 질 무렵’)와 삼남일보 신춘문예(수필 ‘외투’),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수필 ‘묵은 책’) 등으로 문단 활동을 했다. 저서로 수필집 <꼭 하고 싶은 이야기>(1991), <어느 하루도 같은 아침은 없다>(1992), <일하는 여성은 아름답다>(1994), <그때 거기서 지금 여기서>(2002), <다시 가을에>(2003) 등과 전북문학상(1991), 전라북도문화상(1992), 신곡문학상(1996), 전북여류문학상(1999), 한국수필문학상(2001), 전북수필문학상(2003), 전북예총하림예술상(2012) 등을 받았다. 최기우 극작가는 “신석정, 김해강, 신근 작가 등과 1960~70년대 폭넓은 문단 활동을 통해 전북문인협회와 전북여류문학회 창립에 이바지하는 등 전북 문학사의 지평을 넓혔다”고 밝혔다. 이날 세미나는 김용옥 시인이 ‘내가 사랑한 수필가 김순영’을 주제로 이야기를 들려줬으며 김근혜, 김영주, 이경옥 동화작가, 이진숙 수필가, 최아현, 황지호 소설가는 작가의 수필집을 읽고 서평을 발표했다. 이어서 김미영 문학박사와 최기우 극작가는 수필을 통해 고향의 훈훈했던 인정과 풍경, 일상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전한 최명희 소설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 문학·출판
  • 김영호
  • 2023.12.13 17:46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정경 시인-페터 춤토르 '분위기'

나의 근무지는 팔복예술공장이다. 2019년의 첫 출근길에 나를 태운 택시 기사는 “여기는 뭘 만드는 공장이에요?”라고 물었고, 그 뒤로도 더러 그런 일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 폐업하기 전까지 카세트테이프 공장이었던 이곳은 이후 16년 동안 방치되다가 이제는 전시와 예술교육,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실행되는 현장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팔복예술공장에 방문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기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단순히 오래되고 낡은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공간이 고유의 분위기를 갖게 되었다는 말이겠다. 페터 춤토르의 『분위기』에 매료된 것은 그야말로 ‘분위기’ 때문이다. 그의 건축물이 간직한 분위기. 이 책은 2003년에 ‘독일 문학·음악축제’에서 <분위기. 건축적 환경. 주변의 사물>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춤토르의 강연을 바탕으로 한다고 밝혀두고 있다. ‘분위기’는 춤토르가 오랫동안 관심을 두고 생각해온 주제이며, 그에게 분위기는 미학적 범주에 속한다. 이 책의 첫 장에 인용한 영국의 화가 윌리엄 터너가 1844년에 비평가 존 러스킨에게 보낸 편지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분위기는 나의 스타일이다” 스위스의 건축가 춤토르는 2009년에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그의 수상은 당시만 해도 의외로운 결정이라고들 했다. 이전 수상자들은 국가 차원의 대규모 프로젝트로 이름을 세계에 알린 건축가들이었던 반면 춤토르는 스위스 알프스의 작은 마을에서 일하는 은둔형 건축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축의 본질을 끈질기게 탐구한 구도자와 같은 그의 건축 철학을 인정한 건축계에서는 이미 ‘건축가들의 건축가’로 통하는 인물이었다. 『분위기』는 춤토르가 건물을 설계하면서 깨달은 아홉 가지 사실에 대해 다룬다. 그는 건축물의 분위기는 시각적인 부분 외에도 소리나 몸이 감지하는 온도, 습도, 주변 사물과의 조화 등 여러 측면이 공간의 분위기를 인지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말한다. “건축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시간예술이다. 건물 내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방식을 떠올리면 된다. 나는 작업할 때 여러 지점들을 고려한다. 온천 프로젝트로 설명하겠다. 우리에게는 편안하게 거닐 수 있는 환경, 지시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유혹하는 분위기,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병원의 복도는 사람들에게 지시한다. 그와 달리 사람들이 긴장을 풀고 느긋하게 걷게 만드는, 부드럽게 유혹하는 기술은 건축가의 몫이다.” - 『분위기』 41쪽 그가 언급한 온천 프로젝트는 스위스 그라우뷘덴주 발스에 있는 온천이다. 그는 알프스산맥에서 나는 편마암 6만여 개와 콘크리트, 그리고 빛을 활용해 ‘테르메 발스(Therme Vals)’를 완성했다. 알프스의 자연경관, 천장과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 물의 온도와 소리 등을 섬세하게 계산해 설계했다. 스위스 작은 마을에 세운 나뭇잎 모양의 ‘성 베네딕트 교회(Saint Benedict Chapel)’와 독일 바렌도르프 들판에 있는 클라우스 형제 예배당(Bruder Klaus Field Chapel)도 감탄을 넘어선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클라우스 형제 예배당은 천장의 작은 구멍을 통해 빛이 내려오는데 내부를 지지하던 나무 거푸집을 3주 동안 태워 만든 검은 벽과 대비되어 신비로움을 불러일으킨다. 그 어떤 화려한 장식 없이 놀랍도록 아름답다. “아무리 고심해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으면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한다.”라고 건축이 ‘아름다운 형태’를 간직해야 함을 춤토르는 강조한다. 그는 성상이나 정물에서 아름다운 형태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평범한 일상의 도구들, 하나의 문학작품, 한 곡의 음악에서도 아름다운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라고 이 책을 맺는다. 당신은 어떤 분위기를 사랑하는가? 그곳에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거기에 머무는 동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끼게 되리라. 김정경 시인은 201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 '검은 줄'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골목의 날씨>가 있다. 자칭 ‘산책중독자’. 오래된 골목을 유람하며 채집한 이야기로 시도 쓰고, 산문도 쓰며 살고 있다. 현재 전주문화재단 문예진흥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3.12.13 17:46

전북작가회의 '불꽃문학상' 정동철 시인 선정

척박한 지역 문단에서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작품 활동에 매진한 올해의 작가들과 작품들이 발굴됐다. 전북작가회의(회장 김자연 아동문학가)는 제16회 ‘불꽃문학상’에 정동철 시인, 제14회 ‘작가의눈’ 작품상에 김경나 소설가가 각각 선정됐다고 10일 밝혔다. 불꽃문학상은 전북작가회의가 주관하며 지난 2006년 처음 제정된 이후 문학상으로 어둠과 혹한 속에서 빛을 발하는 불꽃처럼 문학의 길을 걸어가는 작가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제16회 불꽃문학상은 올 한 해 작품집을 출간한 모든 전북작가회의 작품집을 대상으로 선정했으며 심사 결과 사라져가는 지역 토속어로 지역만의 이야기를 잘 형상화해낸 시집 <모롱지 설화>를 집필한 정동철 시인에게 수상의 영광이 돌아갔다. 불꽃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심사평을 통해 “삶의 구절구절에 녹아든 언어적 색감의 원형질은 공동체 삶을 시의 화두로 삼았다”며 “전북 토박이말이 순 날것으로 빛나는 지점이 곧 한국의 문화사이자 역사임을 깨치게 했다”고 평했다. 또한 올해 14회를 맞는 ‘작가의눈’ 작품상은 김경나 소설가의 단편소설 <둘째 언니와 셋째 언니>가 선정됐다. 작가의눈 작품상은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하는 전북작가회의 작가들을 격려하고자 2011년 제정된 상으로 통권 29호 <작가의눈>에 실린 전북작가회의 회원들의 작품이 심사대상이다. 총 150여 편으로 이뤄진 작가의눈 심사를 통해 심사위원들은 김경나 소설가의 단편소설 <둘째 언니와 셋째 언니>를 작품상으로 꼽았다. 심사위원들은 “소설 속 어린 화자의 눈을 통해 상처 입은 가족 구성원들의 세계를 무덤덤하게 그려냈다”며 “사연을 파헤치지 않으면서도 독자를 아이의 시선으로 끌어들여 이야기를 쫓게 하는 김경나 소설가의 섬세한 문장과 이야기의 구조가 앞으로도 기대된다”고 밝혔다. ‘불꽃문학상’은 상금 300만 원과 상패 그리고 ‘작가의눈’ 작품상은 상금 100만 원과 상패가 수여된다.

  • 문학·출판
  • 김영호
  • 2023.12.10 16:20

종합문예지 지필문학 겨울호 출판기념회 및 문학상 시상식 열려

종합문예지 지필문학은 최근 군산JB문화공간에서 올해 겨울호 출판 및 문학상 시상식을 개최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번 지필문학대상에는 신재훈 수필가가, 신인문학대상에는 박승한 시인이 영광의 수상자로 선정됐다. 겨울호에서는 제96기 신인문학상 수상자로 유중현, 김종엽 시인과 박선희 수필가가, 제97기 신인문학상은 노영희, 제서현, 정문비 시인이 각각 수상했다. 이로써 지필문학은 올 한 해 동안 18명의 신인 문학인을 발굴했다. 신성호 회장은 “다양한 문학 장르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문학인들이 지필문학의 등용문을 통해 등단하도록 문학의 길을 마련해 주고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작가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창작활동에 매진하는데 중추적인 도움의 역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신 회장은 “특히 올해에는 21년의 역사를 가진 대한문학을 재창간하게 돼 종합 문예지의 쌍두마차로 더욱 넓은 문학세계에 누구나 참여하고 함께하는 종합 문예지로서의 역할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지필문학과 대한문학의 2024년 봄호의 원고는 내년 1월 중순까지 접수 받아 2월 중에 발간될 예정이며 3월초에 출판기념행사를 갖는다.

  • 문학·출판
  • 김영호
  • 2023.12.10 16:19

[전북의 문학 명소] 8. 삼례·춘향·혼불, 오로지 문학의 향연

△문학에 진심인 삼례문학기행 딸기, 순대국밥, 닭튀김, 삼례문화예술촌, 삼례역참, 만경강 등 내세울 것이 많은 삼례의 바탕에 문학이 있다. 삼례의 역사·문화 콘텐츠는 다양한 문학 자원들이 돼 시와 소설, 희곡과 수필로 탄생하며 사람을 끄는 동력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동학농민혁명이다. 1892년 11월 3일 동학 교단이 주관한 집회가 삼례 역참(현재 삼례동부교회)에서 열렸다. 이날 동학교도들은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1824∼1864)의 사면복권과 동학에 대한 공인(公認), 동학교도에 대한 침탈금지를 요구했다. 전주성 함락 후 부임한 전라감사가 머물며 정무를 관장한 곳도, 전봉준(1955∼1895) 장군이 1894년 9월 10일 대일항쟁을 준비하며 대도소를 설치한 곳도 삼례다. 역참이 있는 삼례는 도로가 사방으로 통하는 지리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례에는 삼례집회와 삼례봉기를 기념하기 위한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역사광장’이 있으며, 송기숙(1935∼2021)의 소설 「녹두장군」 제2권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에서 ‘삼례대집회’와 제11권 <팔도로 번지는 불길>에서 ‘다시 삼례로’에 삼례에 모인 백성의 진솔한 삶과 분노와 도탄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삼례는 전라 좌우도의 길이 합쳐 한양으로 향하는 삼거리였다. 따지고 보면, 진산이나 금산을 거쳐 충청좌도로 가는 길도 여기서 나뉘니 삼거리가 아니고 사거리인 셈이었다. 그래서 삼례에는 전라도에서 가장 큰 역이 있었다. 장도 전주 다음으로 크게 섰다. (중략) 9월 14일. 두령들이 삼례로 모였다. 이번에는 광주 손화중도 왔다. 지난번에 모였던 두령들을 비롯해서 30여 고을 4,50명이 모였다. 몇 고을 두령들은 젊은이들을 데리고 왔다. 지금 와 있는 젊은이들과 대거리를 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송기숙의 장편소설 「녹두장군」 문학과 관련한 문화시설들도 생겼다. ‘삼례는 책이다’라는 문장을 앞세운 그림책미술관은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그림책을 내건 미술관으로 2021년 문을 열었다. 삼례책마을문화센터는 오래되고 낡은 양곡 창고를 개조해 잊혀 가는 고서적을 다시 숨 쉬게 했다. 북갤러리, 북하우스, 책마을센터, 책박물관으로 구성됐다. 삼례문화예술촌 자리도 동화로 탄생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일제가 수탈을 위해 창고를 지으면서 맹꽁이와 금개구리가 사라진 곳. 유수경은 이 이야기를 그림책 「한내천에 돌아온 맹꽁이와 금개구리」에 담았고, 완주연극협회는 가족뮤지컬 ‘삼례, 금와의 꿈!’으로 각색해 역사의 현장인 삼례문화예술촌 공연장에서 선보였다. 완주향토예술문화회관에서는 완주군을 소재로 한 다수의 창작극이 무대에 오른다. 삼례는 비비정·삼례시장·삼례역·우석대학교를 비롯해 크고 작은 공간과 작고 사소한 것까지 문학이 되고 있다. 이곳에서 대학을 다니며 삼례와 인연을 맺은 김헌수·문병학·송하선·신병구·안도현·유강희·이병초·장현우·정양·진창윤 등이 삼례를 소재로 한 작품을 쓰며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민족의 연인을 만나는 춘향문학기행 남원에는 춘향의 사연이 얽혀 있는 곳이 많다. 전주에서 완주와 임실을 거쳐 남원으로 들어오는 17번 국도 이름부터 ‘춘향로’다. 그 길에서 먼저 행인을 반기는 건 한양으로 떠나는 몽룡과 춘향이 애통절통 이별했다는 오리정 이별고개. 감옥에 갇힌 춘향이 ‘쑥대머리’에서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 오리정 정별 후로 일장서를 내가 못 봤으니’ 하며 눈물바람한 곳이다. 한양으로 떠나는 몽룡을 바라보며 눈물깨나 흘렸다는 ‘눈물방죽’이 옆에 있고, 몽룡을 향해 뛰어가다가 버선이 벗겨졌다는 ‘버선밭’이 가까이 있다. 「춘향전」의 근원설화 중 하나인 박석티설화에서 못생겼다는 이유로 이도령에게 버림받은 춘향을 불쌍하게 여긴 남원 사람들이 이도령이 떠난 고개에 그녀를 장사 지냈다는 ‘박석티’도 그 옆이다. 남원에서 전주로 향하는 이 고개를 사람들은 ‘춘향고개’, ‘오리정 이별 고개’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남원 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광치동과 사매면의 경계인 곳에 「춘향전」에서 ‘박석고개’로 나오는 ‘이도령고개’가 있다. ‘이도령고개’를 지나는 터널 이름은 ‘춘향터널’이다. 춘향의 이야기가 더 현실감 있게 느껴지는 것은 두 사람의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 광한루가 남원 한복판에 있기 때문이다. 광한루원은 황희(1363∼1452)가 선대의 서재를 ‘광통루’로 새로 짓고, 정인지(1396∼1478)가 ‘광한루’라 이름 짓고, 견우와 직녀가 칠월칠석날 은하수 오작교를 건너 만난다는 등 다양한 사연이 있는 정원인데, 춘향전이 이곳을 배경으로 삼고 난 후, 춘향과 관련된 여러 유적이 들어섰다. 요천 건너 춘향테마공원에는 철저한 고증을 거쳐 세워진 춘향마을이 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과 드라마 <쾌걸춘향>을 촬영한 곳이다. 사부작사부작 걷다 보면, 춘향을 소재로 한 여러 시편이 새겨진 시비들도 볼 수 있다. 지리산 정령치로 향하는 길목인 구룡계곡(육모정) 입구에는 ‘성옥녀지묘’라고 쓰여 있는 춘향묘가 있다. 매년 봄에 펼쳐지는 춘향제는 연륜이 깊은 세계적인 사랑 축제다. 사랑과 절개의 상징인 춘향을 기리기 위한 이 전통문화축제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축제다. 남원 땅은 어디든 춘향의 무대다. 전반부는 봄날 햇살같이 눈 부시고, 후반부는 가을 강물처럼 차고 명징한 우리 시대의 걸작 춘향전. 봄이면 지리산 운봉에 화사한 철쭉이 피어나고 노고단의 부드러운 녹음과 운해가 펼쳐지는 곳. 여행객의 마음에는 벌써 춘향이 웃음 같은 봄바람이 살랑거린다. △혼불문학기행 남원 사매면을 주요 배경으로 한 최명희(1945~1998)의 「혼불」은 1930~40년대 몰락하는 종가를 지키는 종부 3대와 이씨 문중의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거멍굴 사람들의 삶을 그린 대하소설이다. 한국인의 생활사와 풍속사, 의례와 속신의 백과사전일 뿐 아니라, 우리 문화 전승의 전범으로 불린다. 설화와 민요, 무가, 속담 등이 널리 인용돼 있고, 무당굿과 점복, 풍수, 동제, 삼신, 조상단지, 속신 등 민속신앙의 유래와 이치와 의미가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풍물과 판소리, 노래, 놀이도 두루 등장한다. 관혼상제를 중심으로 한 일생의례와 정월 대보름과 단오 등의 세시풍속, 취락과 모듬살이의 모습, 생활관습, 종가와 종부 등의 친족조직 등의 사회상 역시 실감 나게 그려져 있으며, 각종 살림살이와 민구, 의식주 생활, 두레와 같은 농사 관행 등에 관한 정보도 만만치 않다. 심지어 염료 제조법, 옷감의 때와 얼룩을 빼는 갖가지 세탁법 등 한국인 생활의 모든 면모를 지극 상세하게 구성해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 바탕이 남원을 비롯한 전라도다. 먼동이 틀 때/ 눈부시게 기지개를 켜던/ 당신의 모습 보여 주옵소서/ 임이시여 사랑이시여/ 노적봉을 바라보던/ 당신의 다사로운 눈빛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혼불의 이야기를/ 후손으로 이어갈/ 아름다운 남원 땅/ 여기 발길/ 머무는 이들에게/ 길이길이/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정군수 시인의 시 「그임의 하늘 아래서」 혼불문학기행은 「혼불」을 디오라마 형식으로 소개한 혼불문학관과 청암부인이 마을 사람들과 만들었다는 청호저수지, 효원이 신행을 오고 강모가 전주와 만주로 떠나던 구 서도역 영상촬영장에 그치지 않는다. 「혼불」을 펼치면 걸음을 재촉하는 꽤 많은 이야기가 있다. 놀부와 흥부 형제 이야기(흥부마을), 왜장 아지발도를 물리친 이성계 장군 이야기(황산대첩비), 만복사지에서 탑을 돌던 양생의 이야기(만복사지), ‘사천왕의 전형’이라고 평한 완주의 송광사, 옛 양반가 고택을 세밀하게 묘사한 임실 둔덕마을의 이웅재고가 등도 꼭 살펴야 한다. 특히,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 춘성정 종가’인 이웅재고가는 작가가 작품을 쓰면서 노봉마을의 종갓집뿐 아니라 이웅재고가의 안채·사랑채·행랑채·대문채·사당·솟을대문 등 집 구조와 돌담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살펴 작품에 묘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기우(극작가)

  • 문학·출판
  • 기고
  • 2023.12.10 10:00

[최명희문학관의 어린이손글씨마당] 86. 오늘은 엄마의 생일!

△글제목: 오늘은 엄마의 생일! △글쓴이: 성예린(인천논곡초 4년) 2023년 8월 24일 목요일 날씨: 에어컨아! 나 살려라! 오늘은 엄마의 생일! 그동안 가족들의 생일이라면 케이크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축하만 해주면 되는 날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번엔 엄마에게 케이크와 손편지를 선물해서 엄마를 감동하게 해 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에 들러 정성껏 예쁘게 손편지를 쓰고 빵 가게로 향했다. 빵 가게에 들어서자 맛있는 냄새가 솔솔~ 하지만 그것도 잠시, 케이크를 고르려는 순간 난 어깨가 축 처지고 힘이 빠졌다. 케이크가 이렇게 비쌀 줄이야. 아빠가 사 오시던 케이크만 먹던 나는 케이크가 이렇게 비쌀 거란 걸 상상도 못 했다. 내 지갑에 있던 돈은 만 칠백 원. 케이크는 내 돈의 세 배는 되었다. 그동안 떡볶이랑 간식 좀 덜 사서 먹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하는 수 없이 내 돈을 탈탈 털어 케이크 대신 엄마가 좋아할 만한 빵 몇 개를 골랐다. 집에 가자마자 엄마에게 편지와 빵을 드리며 미안함에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엄마는 “우리 예린이 다 컸네~ 예린이가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예쁘고 고마워~” 라며 나를 꼭 껴안아 주셨다. 엄마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흐뭇해졌다. 오늘 저녁, 내가 사 오려 했던 케이크는 아니지만, 아빠가 사 오신 케이크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가족들 모두 엄마의 생일을 축하했다. 비록 내가 계획했던 대로는 못했지만, 날 대견해하시는 엄마를 보며 기분이 정말 좋았고, 내년 엄마 생일엔 용돈을 아껴 써서 꼭 멋진 선물을 해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엄마! 생일 축하드리고, 정말 정말 사랑해요~ ※ 이 글은 2023년 전북일보사·최명희문학관·혼불기념사업회가 주최·주관한 <제17회 대한민국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 수상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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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09 13:30

[전북의 문학 명소] 7. 문학에 담긴 소리꾼의 삶

삶의 다양한 밑그림들이 판소리의 바탕이 된다. 수궁가·심청가·적벽가·춘향가·흥부가 등 판소리 다섯 바탕은 어느 특정한 예술가가 어느 날 갑자기 창작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판을 거듭하며 여럿이 어우러져 이뤄냈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쌓여 풀어지고 익고 삭아야 혼이 담긴 사설을 담을 수 있고, 눈이 부시게 서러운 자기 수련을 제대로 겪어야 좋은 소리를 얻을 수 있다. 문학과 판소리는 하나다. 남원시·순창군·완주군·임실군에는 판소리와 관련된 곳이 많다. 광한루원, 남원고전소설문학관, 변강쇠백장공원, 오리정·버섯밭, 춘향묘, 춘향테마파크, 흥부마을(아영면·발복지), 흥부마을(인월면·태생지)은 판소리 다섯 바탕의 배경지이고, 구룡계곡(국창권삼득유적비), 송흥록·박초월 생가, 용진읍 원구억마을(권삼득 생가·묘역·소리굴)은 명창과 관련이 깊다. 국립민속국악원, 안숙선명창의여정, 춘향문화예술회관, 순창국악원, 완주향토예술문화회관, 필봉문화촌은 판소리가 다양한 매체로 변화하며 시민을 만나는 현장이다. △판소리 동편제의 탯자리 운봉읍 비전마을 남원의 풍류는 판소리 동편제의 탯자리라는 자부심에서 시작된다. 남원은 국악의 본거지라 할 만큼 수많은 명인과 명창이 나왔다. 그 시작은 판소리사에 가장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며 철종 10년(1859) 정삼품 통정대부의 벼슬을 제수받은 송흥록과 송광록, 송우룡, 송만갑(1865∼1939) 가문이다. 지리산 아래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은 동편제 판소리의 창시자인 송흥록이 태어난 곳이며, 명창 박초월(1917∼1983)이 성장한 소리의 고향이다. 송흥록의 아우로 한때 형의 고수로 지내다가 소리를 연마해 형에 버금가는 명창이란 소리를 들은 송광록도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판소리사에서 가장 많은 제자를 길러낸 송만갑은 구례 출신이지만, 송광록의 손자이니 이 마을과 무관하지 않다. 박초월 명창은 13살에 성악의 묘를 체득해 명창이 된 전설적인 인물이다. 남원, 그중 운봉은 말 그대로 ‘국악의 성지’다. 동편제 명창들의 여러 이야기는 윤영근의 장편소설 「동편제」(삼신각·1993)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4대를 이어온 가업인 한의사로 일하면서도 소설가의 삶 또한 소홀함 없이 꾸려온 윤영근은 수필 「작가에게 고향은 무엇일까」(『월간문학』 2021년 11월호)에 ‘중학교 시절 어렴풋이 장차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간직한 이후 70년 세월을 늘 글감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라고 고백하며 소리꾼들과의 인연을 밝혔다. 어린 시절 그의 집 사랑채는 소리꾼들의 사랑방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임방울·송만갑·이화중선 같은 소리꾼이 찾아와 며칠씩 머물다 갔다. 소리꾼이 오면 마당에서는 자연스레 소리판이 벌어졌다. 그때 들었던 명창들의 소리는 그에게 <쑥대머리> 한 대목을 흥얼거릴 수 있게 했고, 소설 「동편제」와 「각설이의 노래」, 「가왕 송흥록」, 「이화중선」 등을 쓸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목청을 틔우려고 피를 토하며 독공을 했던 얘기며, 창극단 공연을 다니다가 불온한 대목을 불렀다 하여 경찰서에 끌려가 일본 순사에게 모진 고문을 당한 얘기들은 그대로 내 소설의 소재가 되었다. (중략) 동편제의 가락을 '지리산 천왕봉에서 집채만 한 바위가 굴러 내려오는 소리'로 비유하고 있다. 어쩌면 남원이 동편제의 본향이 된 것도 지리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리산의 우람한 산세가, 골짜기마다 숨어 있는 크고 작은 폭포가 수많은 명창들을 길러 냈는지도 모르겠다. 지리산의 넉넉한 품 안에서 절차탁마하여 명장으로 우뚝 선 소리꾼들은 또 내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지리산은 내게 얼마나 고마운 산인가. 남원의 동편제, 동편제를 부른 남원 출신의 소리꾼들, 그리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명창을 길러낸 지리산은 내 소설 속의 또 다른 주인공이 아닐 수 없다. ∥윤영근의 수필 「작가에게 고향은 무엇일까」 작가는 고향의 산, 들, 강,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야 하며, 그것이 고향에 보은하는 길이라고 말하는 작가 윤영근. 그의 소설들을 읽으면 <춘향가>나 <흥보가> 한 대목은 흥얼거릴 줄 알고, 젓가락 장단일망정 고수 흉내를 낼 줄 알며, 송흥록이 <귀곡성>을 부르면 귀신이 화답했다는 일화 하나쯤은 꺼내놓을 줄 알게 된다. △숱한 명창을 배출한 판소리의 고장 순창 순창은 김세종·박유전·장재백·장판개 명창을 배출한 판소리의 고장이다. 복흥면 서마리 마재마을 출신인 박유전(1834~1904)은 ‘서편제의 아버지’로 불린다. 대원군이 그의 소리에 ‘제일강산’(천하에서 제일)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무과 선달의 명예직 벼슬을 내리기도 했다. 동계면 가작리 쑥대미 출신이라고도 하고, 팔덕면에서 나서 인계면에서 살다가 죽었다고도 전하는 김세종(1825~1898)은 신재효의 집에서 판소리 선생을 지내면서 장재백·김찬업·이동백·이선유 등 많은 명창을 배출했다. 최초의 여성 명창 진채선을 가르친 것도 김세종일 가능성이 크다. 그의 수제자로 적성면 운림리 매미터 출신인 장재백(1849~1906)은 순창과 남원 일대의 동편제 법통을 전승했으며, 일제강점기 최고의 여성명창인 이화중선·이중선·박록주 등이 적성면에서 그에게 소리를 배웠다. 금과면 연화리 삿갓데마을 출신인 장판개(1885~1937)는 송만갑의 제자 중 첫손에 꼽힌다. 1904년 고종황제에게 참봉 벼슬을 하사받기도 했다. 이들 명창이 뿌린 소리의 맥은 순창국악원에서 잇고 있다. 국악원은 판소리·민요·난타·창극·무용·가사‧가곡·농악 등 국악의 전 분야를 아우르는 강의로 국악 동호인을 넓혀가고 있다. 순창 출신 판소리연구가 최동현이 쓴 『순창의 판소리 명창』(민속원·2023)은 김세종, 박복남, 박유전, 배설향, 성점옥, 이화중선, 장득주, 장득진, 장영찬, 장재백, 장판개, 주덕기, 한애순 등 스무 명에 가까운 순창 지역 판소리 명창을 소개하면서 우리 판소리사에서 순창의 역할을 가늠하게 했다. 그가 2011년에 낸 『소리꾼-득음에 바치는 일생』(문학동네)은 소리꾼이 득음하기까지의 혹독한 과정을 김세종·박유전·장재백·장판개 명창의 삶을 빗대 들려준다. △조선 최초의 ‘비가비 명창’ 권삼득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는 최초의 ‘비가비 명창’인 권삼득(1771∼1841)이 나고 자란 곳이다. 동네 굿판에서 판소리에 매료된 그는 글공부를 팽개치고 소리 공부에만 매달렸다. 그 이유로 죽을 고비를 맞지만, 멍석에 휘말린 그는 “소리 한마디만 하고 죽게 해 달라!”라고 청했다. 아 말이 판소리지, 그게 광대아닝가아, 광대. 그 집안으 아부지 형님들이 양반 가문에 일대 치욕이라 해서, 판소리 공부를 아조 포기허게 헐라고 왼갖 방법을 다 써봐도 끝내 안 듣거등. 지금이라고 머 달러진 것도 없지마는, 그때는 더 했을테지맹. 집안에 광대 나먼 온 집구석 쑥대밭 되는 것으로 안 알었능가잉? ∥최명희의 장편소설 「제망매가」 마지막 가는 길에 하나 소청이 있노라 허드랑게. 그게 뭔고 허니 가조 일곡을 부르고 죽겄노라 허는 거 아니겄어? 기왕지사 직이기로 작은 혔으니 죽는 사람 소원 하나 못 풀어주랴 허락을 허고 모두 빙 둘러서 듣는디 거적 밑에서 새나오는 가조 일곡이 그만 사람으 오만간장을 다 녹이지 않았더라고? 울음바다가 됐당게로. 그래 하도 가긍허여 문중이 다시 의논을 혔지야. 족보에서 활적하고 내쫓기로 혔다이.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중에서 거적에 덮여 부르는 <춘향가> 중 십장가. 슬프고 애달픈 그의 소리에 감동한 문중 사람들은 그를 죽이는 대신 족보에서 제명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 길로 권삼득은 완주의 위봉폭포와 남원의 구룡폭포 등 세상을 떠돌며 설움을 떨치고 소리 공부를 했다. 소리 때문에 가문에서 쫓겨난 그는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고 들고 맞으며 세상사 설움을 떨쳤다. 폭포의 굉음에 맞서 목에 시퍼런 핏줄을 세우고 온몸의 기운을 상청으로 뽑아냈다. 신재효(1812∼1884)가 <광대가>에서 높은음을 길게 질러 내는 권삼득의 소리를 ‘천층절벽 불끈 소사 만장폭포 월렁궐렁 문기팔대 한퇴지’라 하며,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에 비유한 것은 이 때문이다. 권삼득은 노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고단한 소리꾼의 삶을 끝냈다. 용진면 구억리에 안동권씨 집성촌과 사당이 있고, 용진면사무소에서 구억리 방향으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의 나지막한 산에 그의 무덤이 있는데, 무덤 옆에 ‘소리구멍’이라고 불리는 조그마한 구멍이 뚫려 있다. 더질더질. /최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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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09 10:00

[최명희문학관의 어린이손글씨마당] 85. 책에게 쓰는 편지

△글제목: 책에게 쓰는 편지 △글쓴이: 장지우 (전주온빛초 1년) 안녕 책아? 난 전주 온빛초등학교에 다니는 1학년 지우야. 나는 네가 참 좋아. 너의 재미있는 이야기도 듣고 예쁘고 귀여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엄마가 나를 부르는 소리도 들리지가 않아. 그래서 가끔 혼나기도 하지. 헤헤~ 나는 하루 중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책을 읽는 시간이 제일 행복해. 코로나 19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여행도 수영장도 못 가고 친구들도 자주 만날 수 없어서 속상하지만 네가 있어서 정말 고마워. 너를 읽으면 보고 싶은 고모가 있는 멕시코도 갈 수 있고 큰아빠가 있는 싱가포르도 갈 수 있어. 그리고 나는 책을 읽으면 세종대왕님도 만날 수 있고 베토벤도 만날 수 있지. 옛날로 간 것 같은 기분이야. 정말 멋지지 않아? 그래서 내 꿈은 동화작가야. 벌써 내가 만든 동화책도 있어. 엄마 아빠는 내 동화책이 제일 제일 재미있다고 하시지. 동화 속 주인공 중 라푼젤, 헨젤과 그레텔, 백설공주, 더 많은 종류의 공주들, 요정들, 요정들, 상상 속 동물들이 있어서 난 동화책을 특히 좋아해. 난 네가 잔뜩 있는 도서관도 좋아해. 우리 집도 책이 많지만,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면 도서관처럼 책이 엄청~ 많은 집을 지을 거야. 책아 항상 나를 즐겁게 해줘서 고마워. 나도 너를 아끼고 소중하게 대해줄게. 내 동생 승우가 너를 찢고 망가뜨릴 수 있으니 잘 숨겨줄게. 그럼 다음에 또 만나서 이야기하자 안녕~ 사랑해~ -꼬마 동화작가 장지우가- ※ 이 글은 2021년 전북일보사·최명희문학관·혼불기념사업회가 주최·주관한 <제15회 대한민국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 수상작품입니다. 이 공모전은 매년 4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작품을 모집합니다. 문의: 063-284-0570(최명희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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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08 13:30

최명희문학관, 10일 ‘김순영·최명희 작가’ 작고문학인세미나 연다

혼불기념사업회와 최명희문학관은 최명희(1947~1998) 소설가의 추모일(12월 11일)을 앞두고 10일 오후 3시 최명희문학관에서 ‘김순영·최명희 작가’ 작고문학인세미나를 연다. 작고문학인세미나는 2007년부터 해마다 전북 출신 문학인을 선정하고 있다. 올해 정읍 출신으로 전주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며 글을 쓴 김순영(1937∼2019) 수필가의 작품을 통해 문학 세계를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다. 김순영 수필가는 196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동화 ‘샛별 질 무렵’)와 삼남일보 신춘문예(수필 ‘외투’),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수필 ‘묵은 책’) 등으로 문단 활동을 했다. 1960~70년대에는 신석정, 김해강, 신근 작가 등과 문단 활동을 했고 전북문인협회와 전북여류문학회 창립에 이바지하는 등 폭넓은 문학 활동으로 전북 문학사의 지평을 넓혔다. 주요 저서로 수필집 <꼭 하고 싶은 이야기>(1991), <어느 하루도 같은 아침은 없다>(1992), <일하는 여성은 아름답다>(1994), <그때 거기서 지금 여기서>(2002), <다시 가을에>(2003) 등을 냈으며 전북문학상(1991), 전라북도문화상(1992), 신곡문학상(1996), 전북여류문학상(1999), 한국수필문학상(2001), 전북수필문학상(2003), 전북예총하림예술상(2012) 등을 받았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김순영 수필가의 절친한 동료이자 후배 문학인인 김용옥 시인이 ‘내가 사랑한 수필가 김순영’을 주제로 정직하고 성실하며 사리분별이 분명했던 작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최기우 극작가가 ‘수필가 김순영의 삶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지역 안팎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김근혜, 김영주, 이경옥 동화작가, 이진숙 수필가, 최아현, 황지호 소설가는 작가의 수필집을 읽고 쓴 서평을 발표한다. 또한 김미영 문학박사와 최기우 극작가는 수필을 통해 고향의 훈훈했던 인정과 풍경, 일상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전한 최명희의 작품 세계도 들려준다. 세미나의 좌장은 문학평론가 문신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맡는다. 최기우 최명희문학관 관장은 “작고 문학인을 생각하는 세미나를 통해 전북의 자랑스러운 문학 자산인 김순영, 최명희 작가와 그의 작품들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서 지역의 긍지를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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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호
  • 2023.12.07 17:55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