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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 룰'의 오해

빌리 그레이엄 목사(1918년~2018년)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개신교 전도사였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교류하면서 놀라운 정치력을 발휘해 주목을 받기도 했던 그는 1950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복음협회를 설립해 본격적인 복음 활동에 나선 이후 대부분의 삶을 전도하는 일에 바쳤다. 그가 찾아다닌 나라만도 185개국에 이른다고 하니 그의 생애에 얼마나 많은 복음집회를 주도했을지 짐작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1948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집회때 그가 발표한 선언이 있다. 기독교인의 사역에 관한 내용을 담은 머데스토 선언이다. 이른바 크리스천의 윤리기준이 된 이 선언은 돈과 섹스, 권력, 거짓의 유혹을 떨쳐내고 정직을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특히 강조한 것이 성적 부도덕을 경계하라는 것이었다. 그 자신도 이를 위해 일종의 규칙을 만들었다. 아내가 아닌 어떤 여성과도 단둘이 만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남성들이 자신의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 단둘이 있을 때 성적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생각했던 그는 이 규칙을 평생 지켰다고 한다. 오늘날 빌리 그레이엄 룰이라고 불리는 규칙이다. 최근 미투(Metoo) 운동이 확산되면서 그 대응법(?)으로 등장한 용어가 있다. 펜스 룰이다. 펜스 룰(Pence Rule)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2002년 미국의 의회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는 단둘이 식사 하지 않고 아내 없이는 술자리도 참석하지 않는다고 말한데서 비롯된 용어지만 그 원전은 빌리 그레이엄 룰이다. 이 규칙들을 들여다보면 그 취지는 성직자의 본분을 지키고 성적 유혹에 빠지지 않겠다는 약속(빌리 그레이엄 룰)이거나 정치인으로서 언행을 조심하겠다는 약속(펜스 룰)이다. 그런데 미투 운동과 맞물려 최근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펜스 룰은 그 조짐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아예 여성을 멀리하겠다거나 대화조차도 조심해서 해야겠다거나 접촉의 기회를 차단하겠다는 펜스 룰은 교류의 단절로 이어지고 또 다른 성차별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펜스 룰 지지 관련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되고 있다. 펜스 룰의 합법화는 남성들의 최소 방어권이라고 주장하는 청원까지 올랐다고 한다. 미투 운동의 확산과 함께 펜스 룰의 확산이 새로운 과제로 부상한 형국이다. 정의롭고 도덕적인 사회로 이르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라면 피할 이유가 없겠지만, 성평등을 가로 막는 방어기제로 펜스 룰이 작동된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8.03.22 19:17

나는 놈 위에 현역

최근 전북도의회 의원 7명이 단체장 선거에 출마한다며 사퇴했다. 이들은 군산과 익산, 정읍, 김제, 남원 등 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군수 선거에 도전하려는 도의원 8명도 조만간 사직서를 낼 예정이다. 완주를 비롯해 진안, 무주, 장수, 고창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다. 이는 현역 단체장의 입지가 취약하거나 건강상 또는 3연임 제한 규정 등 사유로 불출마하기 때문이다. 견고한 현역 장벽이 무너졌거나 느슨해졌으니, 그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단체장 출사표를 앞다퉈 던지는 것이다. 군산은 3연임 한 문동신 시장이 출마하지 못하니 그야말로 무주공산이다. 익산은 현역 정헌율 시장이 민주평화당 소속이어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그를 만만하게 보는 형국이다. 익산갑 국회의원 이춘석은 집권여당 사무총장이고, 익산을에 공을 들여 온 한병도 전 국회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정무수석이다. 이들 거물급이 버티고 있으니, 더불어민주당 시장 후보경선만 통과하면 시장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익산지역 4명의 도의원 중 무려 3명(김영배, 황현, 김대중)이 줄사표 냈다. 정읍과 김제는 시장이 각각 선거법과 업무상배임 등 혐의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아 중도 낙마한 곳이다. 남원은 현역 시장이 버티고 있음에도 불구, 도의원 출신 이상현·윤승호와 국회의원 출신 강동원 등 정적들 움직임이 활발하하다. 최용득 군수 건강악화설이 파다했던 장수도 그의 불출마로 인해 어수선하다. 전주에서는 전주시와 전북도청에서 고위간부를 지낸 이현웅이 지난 15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 전주시장 경선에 뛰어들었다. 변호사 엄윤상도 전주시장 후보로 나섰다. 도지사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위원장을 지낸 김춘진 전 국회의원이 경선에 나섰다. 정의당 권태홍 예비후보도 뛰고 있지만,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후보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도전자들은 저마다 현역 단체장의 허점을 꼬집고, 자신의 장점을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현역이 ‘결정적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힘겨운 싸움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나는 놈 위에 현역’이 있다는 건 그동안 선거에서 드러나 있다. 그래서 도전자가 현역 꺾기란 ‘계란으로 바위치는 격’이란 말이 나온다. 현역은 법이 정한 사퇴시한까지 단체장 신분을 최대한 유지한 채 합법적 ‘선거운동’을 할 수 있지만, 도전자는 대로변에서 인사하고 손흔드는 것이 고작이다. 부안 김종규군수는 한때 ’사탕군수’로 유명했다. 그처럼 운동화 끈 질끈 매고 뛰어야 가까스로 현역 방패를 뚫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8.03.21 18:06

벌침

누구나 질병 앞에서 나약해진다. 정통의학에서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되면 대체의학에 솔깃해지기 마련이다. 대체의학은 서양의학과 한의학으로 통칭되는 정통의학 이외의 영역으로, 보완의학·제3의학·자연의학이라고도 부른다. 벌침도 대체의학의 한 분야로 각광을 받아왔다. 봉침요법이라고도 불리는 벌침요법은 정제한 벌의 독을 경혈에 주입함으로써 면역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원리다. 염증성 계통의 질병과 통증성 계통의 질병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과 일본·독일 등 법적인 보호 아래 시술할 수 있는 국가가 있으며, 국내에서도 벌침을 시술하는 한의원이 적지 않다. 벌침의 효용성 논란과 상관없는 문제로 지난해부터 지역사회가 벌침을 놓고 벌집이 됐다. 전주의 한 장애인단체의 대표인 여성 이모씨가 지역의 여러 유력 정치인들에게 벌침 시술을 했느냐를 놓고서다. 의사면허 없는 일반인의 벌침 시술은 그 자체로 불법이다. 치료비를 받지 않는 자원봉사라고 하더라도 의료법 위반이다. 그러나 무면허 의료행위더라도 상습적인 영리목적이 아닌 한 보통 약식재판으로 끝난다. 그럼에도 이씨의 벌침 시술이 파장을 낳고 있는 것은 유력 정치인들의 연루설과 이에 따른 음습한 이야기들이 곁들여지면서다. 이씨의 벌침 시술이 사회적 이목을 끈 데는 소설가 공지영씨가 있다. 공씨는 사기혐의 등으로 피소된 이씨의 재판을 방청하며 사건의 축소·은폐 의혹을 제기해왔다. 공씨는 광주의 모 장애인학교에서 자행된 성폭력 사건 실화를 다룬 소설 <도가니>의 작가로, 봉침 시술을 제2 도가니 사태로 보는 것 같다. 허위 경력증명서로 장애인 단체를 설립한 뒤 수억원의 기부금을 가로챈 이씨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나, 자치단체가 단체등록 말소 및 시설 폐쇄 등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 등이 이씨를 비호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공지영씨는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이 알기로 이씨로부터 봉침시술을 받은 이가 10명이 넘는데, 검찰은 단 1건만 기소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씨의 혐의로 볼 때 의료법 위반이 핵심이 아닌 데도 이를 문제 삼는 것은 그 대상자가 정치인이고, 그 정치인들이 이씨를 비호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펴고 있는 셈이다. 전주 평화주민사랑방 등 시민단체들은 이씨 사건을 ‘봉침게이트’로 규정하고, 사건의 전면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평화당이 최근 ‘봉침대책 TF’를 구성해 진실 규명에 나서겠다고 했다. 과연 비호세력의 실체가 있는지, 아니면 일각의 침소봉대인지 두고 볼 일이다. 정치적 이해를 떠나 지역사회를 흉흉하게 만들고 있는 장막은 걷혀야 한다.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8.03.20 18:39

인촌 김성수

‘疑人勿用(의인물용) 用人勿疑(용인물의)’ 열국지에 나오는 것으로 믿지 못할 사람은 쓰지 말 것이며, 일단 한번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는 의미의 고사성어다. 기업인은 물론, 고위 정치인, 공직자들중 상당수가 매일 아침 출근전 이 고사성어를 가슴에 새긴다고 한다. 명확한 식견을 가진 사람도 주변 사람의 아부나 이간질에 의해 사람을 보는 눈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현대사를 되짚어봐도 고건 전총리,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 인촌 김성수 등은 예외없이 ‘의인물용, 용인물의’를 인사원칙으로 삼았다. 군산 출신 고건 전 총리는 언젠가 자신과 함께 일했던 국무위원들에게 ‘열국지’를 선물한 적이 있다고 한다. 열국지는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다룬 역사소설인데 진나라 시황제가 천하통일을 이루기까지 550년의 역사를 다루고있다. 지난 1979년 10·26 사건 이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사퇴한 고 전 총리는 야인으로 있으면서 열국지를 탐독했고, 거기에서 얻은 좌우명이 바로 이 구절이라고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삼성그룹의 모태는 1938년 대구에서 설립된 삼성상회인데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 또한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 用人勿疑)’라는 좌우명으로 유명하다. 고창 출신 인촌 김성수의 좌우명은 ‘공선사후(公先私後)’이지만, 그 역시 평생 ‘의인물용, 용인물의’를 강조했다. 경성방직 사장·동아일보 사장·보성전문학교 교장·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및 평의원 등을 역임한 인촌 김성수는 광복 후 민주국민당 최고위원·제2대 부통령 등도 지냈다. 많은이의 존경을 받기도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인촌 김성수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달라지고 있다. 며칠전 국가보훈처는 인촌의 생가와 동상 등 5개 시설물에 대해 현충시설 해제를 결정했다. 이미 대법원에서 친일행위가 인정돼 정부가 56년 만에 서훈을 박탈했기에 인촌 관련 기념물들이 현충시설 지위를 잃게된 것이다. 국가 서훈 박탈에 따라 현충시설이 해제된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현충시설에서 해제된 인촌 관련 시설물은 동상 2개와 장소 3곳이다. 현충시설에서 해제된 인촌 관련 시설물은 고려대 서울캠퍼스와 고창 새마을공원에 있는 동상, 서울 계동에 있는 인촌의 숙소 터와 고택, 고창 생가 등이다. 한때 전북이 자랑하던 인물 인촌은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하고 모금운동을 벌여 고려대를 설립하는가 하면 동아일보를 운영하는 등 혁혁한 공이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징병이나 학병을 찬양하는 등 친일행위 사실이 밝혀지면서 지난해 친일 확정판결을 받았고 정부는 지난달 인촌이 받았던 건국공로훈장 복장(複章·지금의 대통령장)을 취소했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죽는다고 끝나는게 아니라는 것을 인촌 김성수는 다시한번 알려준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8.03.19 21:16

눈도장 찍기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알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 있다. 그 만큼 사람 마음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 선거는 사람 마음을 훔치는 작업이다. 각 후보들은 어떻게해야 자기를 지지하도록 할까 고민이 많다. 정치 신인들은 아무리 명함을 건네도 인지도가 높게 안 나온다. 죽어라 하고 명함 돌리고 인사를 하고 다녀도 막상 여론조사를 해보면 지지도가 두자리수로 올라서지 않는다. 선거에서 한표 한표가 그냥 나오지 않는다. 다 찍는 이유가 있다. 그게 속 마음인데 유권자들이 그 속내를 쉽게 드러내 주지 않아 선거가 어렵다. 농촌 유권자는 이해관계가 철저하다. 평상시 자기 애경사에 왔다 갔는지부터 따진다. 오지 않았으면 그건 틀린 것이다. 도시는 시골보다 낫다. 애경사 참석여부가 판단기준으로 크게 작용하지는 않다. 그러나 전혀 무시할 순 없다. 선거직에 나서려면 애경사때 봉투를 직접 들고 찾아가는 게 기본이다. 바빠서 못 갈 때는 봉투라도 전달해야 한다. 김영란법이 있지만 아직도 다다익선이다. 표시나게 넣어주면 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 마음의 표시를 돈 액수로 표시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출판기념회 때도 똑같다. 상재(上梓)라고 써서 책 값만 달랑 넣어주는 사람도 있지만 5만원짜리 고액권을 두툼하게 넣어주는 사람도 있다. 좁은 지역에 살다보면 이리 얽히고 저리 얽혀 선거사무실 개소 때나 출판기념회에 가보지 않을 수 없다. 선거사무실 개소식 때 봉투를 전하는 게 위법이므로 대부분 출판기념회 때 성의표시를 한다. 봉투를 뜯어보면 그 사람의 지지여부도 안다. 마지 못해 온 사람인가 그렇지 않고 진정으로 지지한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 90일 전까지만 출판기념회를 할 수 있어 지난주로 출판기념회는 끝났다. 여러 건이 주말 같은 시간에 몰려 돈봉투 갖고 이쪽 저쪽으로 오가느라 바빴다. 한마디로 눈도장 찍기에 바빴다. 이 체면 저 체면 때문에 안 갈 수도 없다고 한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1월 20일에 열린 서거석 전 전북대총장의 출판기념회가 가장 성황을 이뤘다. 토요일 1시 반부터 전주 롯데백화점 앞에서부터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시군에서 골고루 참석한 지지자들로 전북대 삼성문화관이 행사내내 북새통을 이뤘다. 줄잡아 5000명 이상이 참석해 참석자들 스스로가 놀랐다. 민주평화당 정동영의원도 이 정도면 교육감을 바꾸는데 성공적이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전북대 총장을 두번 역임하면서 학교위상을 크게 끌어 올린 점이 작용한 것 같다. 홈 그라운드 이점을 충분히 살린 점도 있지만 평소 마당발이었다는 게 증명됐다. 다음으로 지난 11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민주당 도지사 경선에 나선 김춘진 전의원의 출판기념회도 그런대로 성황이었다. 3000명 정도가 다녀 갔지만 서 전총장 때보다 열기는 덜했다. 부안 등지에서 동원된 사람도 있었고 눈도장 찍으려고 온 사람도 많았다. 동원했든지 안했든지간에 출판기념회를 통해 세과시를 하려는 게 하나의 통과의례로 굳어졌다. 오늘도 유력주자한테 눈도장 찍기는 계속된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8.03.18 17:07

루게릭병과 스티븐 호킹 박사

미국의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New York Yankees)에는 4번 선수가 없다. 1920년대와 30년대 양키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설의 타자 루 게릭(Henry Louis Gehrig 1903~1941)을 기리기 위해 구단이 등 번호 4번을 영구 결번((Retired Number)으로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루 게릭은 10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메이저리그가 배출해낸 수많은 스타 선수 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선수다. 1923년 스무 살에 입단한 그의 평균 타율은 3할 4푼, 1939년 은퇴할 때까지 493개의 홈런과 연속 2130경기 출장이라는 기록을 세운 그를 팬들은 ‘철인’이라 불렀다. 그런데 1938년 갑자기 그의 타율이 3할 이하로 떨어졌다. 피곤하고 팔다리에 힘이 없어지는 이상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증상이 더 심해져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이듬해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근육이 마비되어 음식을 삼키지도 못하고 더 이상 걸을 수도 먹지도 못하게 되는 이 병의 이름은 ‘근위축성측색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뇌와 척수에 있는 운동신경원이 손상되는 질환이니 운동선수로서는 더욱 치명적인 병이다. 원인이나 과정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고 치료법도 없는 이병이 처음 보고 된 것은 1869년이지만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39년 루 게릭이 이 병을 앓게 되면서 부터였다. 루 게릭은 투병한지 3년 만에 사망했는데, 이후 이 병의 이름은 ‘루게릭병’으로 불리게 됐다. 운동세포나 근육은 파괴되지만 의식은 또렷해 더 큰 고통을 안게 되는 이 병은 발병 3~5년 사이에 대부분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적적으로 수명을 연장한 사람도 있다. 천재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다. 호킹 박사는 1963년, 스물한 살 때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그 역시 근육이 마비되고 걷지 못하고 음식을 먹지 못하는 고통을 비켜갈 수 없었으나 혼자 숨 쉬는 일조차도 어려운 극한 상황에서도 천재적인 연구능력으로 우주의 생성과 운영의 원리를 비롯한 놀라운 이론들을 내놓으며 과학의 대중화를 이끌어냈다.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컴퓨터 음성 재생 장치와 모니터, 적외선 통신 등을 이용해 의사소통을 하면서도 루게릭병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학문적 업적 못지않게 저술과 강연회, TV 프로그램 등 다양한 통로로 대중들을 감동시켰다. 놀라운 정신력으로 세계의 수많은 물리학자들을 키우고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했던 시대의 영웅, 호킹 박사가 지난 14일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루게릭병이 그에게 온지 55년. 기적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8.03.15 18:49

미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4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검찰이 이날 MB를 소환한 것은 그의 큰 형 이상은 다스회장을 지난 1일 불러 참고인 조사 하는 등 그동안 벌인 수사를 통해 ‘다스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MB의 큰 범죄 혐의는 16가지나 된다.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액 60억 원, 국정원 특수활동비 17억 원,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으로부터 건네진 22억 원, 김소남 전 의원이 준 4억 원 등 100억 원이 넘는 뇌물죄가 포함돼 있다, 그렇지만 진짜 핵심 혐의는 ‘도곡동 땅과 다스’의 진짜 주인이 MB라는 것이다. 2007년부터 야당 등이 문제를 제기하고 검찰이 수사했지만 의혹으로 남겨졌던 시비다. 검찰은 이상은 회장 등 다스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에서 이를 상당부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MB 형 이상은 회장과 이회장의 아들 이동형 다스 부사장 등은 ‘MB 아들 이시형씨가 이동형으로부터 도곡동 땅을 매각한 후 남은 돈이 들어 있는 이상은 회장 명의 통장을 가져가 10억 원 가량을 썼다’고 진술했다. 그 돈의 실제 주인이 MB라는 사실정황으로, 검찰의 확신을 키웠다. 이상은이 도곡동 땅 매각대금 150억 중 일부로 다스 지분을 확보, 다스 회장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검찰은 땅 매각대금 주인도, 다스 주인도 MB라고 확신하는 것 같다. 처음 이 사건이 불거진 2007년 대선 당시 검찰과 특검은 ‘이상은 회장 몫의 도곡동 땅 판매대금이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었다. MB가 다스 실소유주라면, 대통령 후보로서 거짓말 한 MB는 애초 대통령 후보 자격도 없었다. 그런 거짓말로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해도 선거법상 허위 재산신고를 했기 때문에 당선 무효였다. 이번 검찰 조사에서 모든 실체적 진실이 제대로 규명돼야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막장 드라마가 끝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4일 오전 9시25분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서 전직대통령으로서 하고 싶은 말도 많지만 말을 아끼겠다고 했다. 역사에서 이런 일이 마지막이 되었으면 한다고도 했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 후 철퇴를 내리친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에 대한 정치보복을 받고 있다고 소리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게 정치보복이든 아니든, 어쨌든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진실로 반성하지 않는 것은 유감이다. 그는 누군가의 저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교묘하게 장치한 미늘에 걸려 만신창이가 된 채 철창에 갇힐 처지가 됐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8.03.14 19:38

출구전략

GM이 군산공장 폐쇄 방침을 밝힌 지 한 달이 지났으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GM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군산공장 카드를 활용한 후 종국에는 군산공장 재가동에 나설 것이란 낙관론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오히려 군산공장 폐쇄가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전북은 근 한 달 가까이 온통 한국지엠 군산공장 사태에 짓눌렸다. 전북도와 군산시,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등은 거의 매일 군산공장 정상화를 부르짖었고, 지난주에는 서울에서 대규모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결정 철회 및 정상화를 위한 범도민 총 궐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전북도민들의 군산공장 정상화를 위한 이런 몸부림과 함성에 지엠은 꿈쩍도 않는 것 같다. 되레 GM의 입지만 키워주는 건 아닌지 자괴감마저 든다. 과연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재가동될까. 냉철하게 한국지엠의 의지나 정부의 자세를 보면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 사이에 출구전략 이야기가 솔솔 나온다. 애써 외면했을 뿐이지 출구전략의 필요성은 GM의 군산공장 폐쇄방침이 나온 직후부터 나왔다. 정부에서 내놓은 군산지역 산업위기특별대응·고용위기지역 지정도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한국지엠 군산공장의 재가동 보다는 폐쇄쪽에 무게를 둔 대책이었던 셈이다. 출구전략(exit strategy)은 베트남전쟁에 발이 묶인 미국이 승산 없는 싸움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군대를 철수할 방안을 모색할 때 사용된 용어로 알려졌다. 오늘날에는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후유증을 최소화하면서 정상으로 되돌리는 방책을 찾을 때 통상적으로 쓰는 용어가 됐다. 어떤 사안이 위기상황이나 답보상태에 놓였을 때 출구전략이 필요한지,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면 어느 시점에서 사용하는 게 효과적인지 판단이 중요하다. 출구전략이 거론되는 지엠 군산공장은 어떤가. 엊그제 여야 5당 ‘한국지엠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공동으로 주최한 ‘군산공장 폐쇄 특별대책토론회’에서 김재록 인베스투스글로벌 회장의 제안이 눈길을 끌었다. 군산공장을 부평·창원공장과 분리해서 오픈 플랫폼 형태로 만들어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한 GM의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생산기지로 활용할 경우 인근 새만금지역을 전기차·자율주행차 모범도시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북도는 출구전략의 시기상조론에 방점을 두는 것 같다. 자율주행차로의 전환까지 시간이 걸리고, 그 과정 또한 순탄할 수만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더 나은 출구전략을 위해서도 군산공장 정상화 방침의 고수가 필요하다고도 판단하는 것 같다. 지금은 출구전략이 아닌, 군산공장의 정상화에 힘을 모을 때라는 전북도의 판단을 믿어보자.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8.03.13 20:46

전군가도 백리길

해마다 이맘때면 울려퍼지는 노래가 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라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 이다. 2012년 3월 발매된 이래 7년째 봄 캐럴로서의 저력을 과시한다. 그만큼 벚꽃은 봄의 전령사라는 얘기다. 진해 군항제에는 해마다 100만명에 육박하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고 있고, 여의도 일대에서 벚꽃축제가 열리면 서울 서남부권의 교통흐름이 크게 바뀐다. 완주 송광사, 마이산, 전주동물원 야간개장때 화려한 조명을 머금은 벚꽃을 보기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것을 보면 반일 감정과는 별개로 일본 국화인 벚꽃(사쿠라)은 그 나름의 매력이 있는것 같다. 국내에서 벚꽃을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게 바로 전군가도 백리길이다. 원래 전군가도는 한일합방 직전인 1908년 전주에서 군산까지 장장 46km에 걸쳐 만든 신작로였다. 일제는 호남곡창지대에서 수탈한 쌀을 이 도로를 통해 운반, 군산항을 거쳐 일본으로 가져갔다. 1975년 정부예산에 재일교포들의 성금을 합쳐 총 6400여 그루 벚나무가 식재되면서 국내에서 가장 긴 100리 벚꽃터널로 전국에 알려졌다. 군산시 대야면 백마산 공원, 익산 목천포, 김제 유강검문소 옆 만경강 제방 길은 벚꽃축제로 상춘객들이 몰려들곤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제대로 꽃을 피워내지 못한 벚나무가 많아졌고, 차량매연과 잦은 교통사고로 인해 벚꽃터널의 명성은 쇠락해갔다. 길가에 있는 굵은 벚나무는 교통사고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이름만 대면 알만 기업인 M씨 역시 전군가도에서 교통사고로 하직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쨌든 시대가 바뀌면서 자동차전용도로가 생기면서 벚꽃축제는 없어졌고, 전군가도(=번영로) 100리 벚꽃길도 뇌리에서 잊혀졌다. 전군가도를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전군마라톤’ 이다. 전주∼군산간을 수놓은 환상의 벚꽃 백리길에 철각들의 힘찬 행진이 이어졌다. 2000년 4월 유종근 당시 지사가 만들어낸 이 대회에는 국내외에서 1만여명의 선수들이 몰려들었다. 이봉주, 황영조, 김완기, 형재형, 오미자 등 국내의 기라성같은 선수들이 참가하는 국가대표 선발대회였고, 케냐 등지의 유명 선수들도 참가하는 명실상부한 국제대회로 성장했다. 전군대회는 단번에 동아일보 동아마라톤,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중앙일보 중앙마라톤에 이은 국내 4대 대회의 반열에 올라섰으나 민원 등을 이유로 8년만에 흐지부지 없어졌다. 강현욱 지사에서 김완주 지사로 바뀌는 등 지역 주도세력의 교체는 전군마라톤대회의 폐지를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최근 전북도는 전주·군산·익산·김제 등 4개 시와 함께 30억원을 들여 벚꽃길 100리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번영로 벚꽃길 되살리기’ 사업을 올해부터 5년간 추진키로 했다. 벚나무를 새로 심고 주변 문화와 역사적 경관을 새롭게 조성하는 한편, 마라톤이나 사이클 등 국제스포츠대회 유치도 검토한다니 그 결과가 크게 기대된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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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18.03.12 20:07

구설수에 오른 골프정치인

골프 만큼 재미있는 운동은 없을 것이다. 그 만큼 골프는 흥미진진한 운동이다. 희노애락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운동은 골프 밖에 없을 것이다. 한번 치고 나면 또 치고 싶을 정도로 유혹과 중독기능이 강하기 때문이다. 골퍼들 한테 골프의 장단점이 뭣이냐고 물으면 너무 재미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비슷한 상황은 있어도 똑같은 일이 없어 라운딩 할 때마다 긴장과 갈등의 연속으로 끝난다. 너무 재미있어서인지 말도 많고 보이지 않게 마(魔)도 뒤따른다. 현충일에 공직자들한테 골프장 금족령이 내려져도 가명을 써가면서까지 기를 쓰고 골프를 친다. 심지어 노무현 정권때 실세총리로 불렸던 이해찬 전총리는 2005년 식목일에 대형산불이 발생했는데 골프를 쳤다가 결국 낙마했다. 지난달 24일 이낙연 총리 일행이 폐쇄 결정키로 한 한국지엠 군산공장을 방문했는데 그 자리에 민주당 김윤덕 도당위원장이 참석치 않고 대선 때 안희정측에 몸담았던 캠프출신들과 군산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골프 치기 하루 전날 김춘진 전 위원장의 사퇴로 생긴 도당위원장에 임명됐다. 그 당시는 GM이 군산공장 철수를 발표한지 열흘이 지난 시점으로 1만1000여명이 길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 비상시국이어서 이 총리가 군산현장을 방문해 여야가 GM총괄부사장 노동자들과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있던 시간이었다. 골프를 마친 후 이들은 장소를 전주 한옥마을로 옮겨 골프를 함께쳤던 안희정 캠프출신과 오는 6·13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시장 군수 후보들까지 전국에서 20여명이 참석해 만찬을 즐겼다. 골프와 만찬자리를 마련했던 김 도당위원장은 지난 19대 전주 완산갑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초선으로 지난해 민주당 경선 당시 안희정후보 전북지역 총책임자로 활동했다. 문제는 총리까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나머지 군산 현지에 내려오고 또 민주평화당까지 적극 나서 동분서주하던 그 시각에 집권당 도당위원장이 차기 유력 대권주자 측근들을 골프 모임 모시기에 바빴다는 사실이다. 그의 눈에는 노동자 생존권이 걸린 문제는 완전히 뒷전이었던 셈이다. 더 가관인 것은 지난 6일 밤 안희정 성폭행 사건을 놓고 도당 비상근 조직국장이 “위계 강압, 술 마시니까 확 올라오네. 제 목적을 위해서일까, 알듯 모를 듯 성 상납한 것 아냐. 지금 와서 뭘 까는데”라는 성폭력사건을 옹호하는 글을 올리자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현실인식이 그러한데 어찌 아랫사람이라고 가만히 있겠냐”면서 그를 힐난했다. 야당과 도민들은 당시 골프회동과 만찬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명단과 골프 및 음식비용을 누가 결제했는지 낱낱이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현역의원을 제치고 원외위원장이 도당위원장을 맡은 이후 발생한 이번 사건에 이춘석 사무총장이 사과했으나 상당수 도민들은 “군산사태가 엄중한데도 그와 아랑곳 하지 않고 안희정측 사람들과 골프를 친 것은 단순한 사과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면서 “김위원장이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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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8.03.11 20:48

2005년 조용필의 평양 공연

2005년 여름, 평양에서 가수 조용필의 공연이 열렸다. SBS가 광복 60주년 특별기획으로 추진한 ‘조용필 평양 2005’였다. 공연단 규모만도 120여명. 참관인 40여명까지 합하면 160여명이 이 공연을 위해 평양으로 갔다. SBS의 특별기획 공연은 어렵게 성사된 것이었다. SBS는 이 공연을 위해 3~4년 전부터 준비했고, 공연 1년 전부터는 본격적인 협의를 진행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남북관계는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기 일쑤여서 일정이 여러 차례 번복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나마 대중가수의 평양공연이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SBS가 오래전부터 추진해온 남북교류사업 덕분이었다. 남북겨레말 큰 사전 사업, 사랑의 연탄모음 후원사업, 북한비닐하우스 건립 지원 등이 평양공연으로 이어진 셈이었다. ‘조용필 평양2005’가 열린 유경 정주영 체육관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꾸준히 추진해왔던 대북사업의 결실이었다. 유경 정주영 체육관은 1만2000석을 갖춘 대규모 실내체육관이었지만 무대를 설치하느라 객석을 7000석으로 줄여 공연장으로 활용됐다. 8월 23일 오후 6시, 조용필 공연이 시작됐다. 객석은 공연이 시작되기 30분 전 이미 가득 찼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북한에서도 ‘모나리자’로 널리 알려진 조용필 공연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아 엄청난 값의 고가 암표가 나돌았다고 했다. 첨단의 영상 장비를 활용한 무대장치와 강렬한 록비트의 조용필 공연에 북한주민들은 환호했다. 객석의 관객들은 공연 마지막, 조용필이 부르는 ‘아리랑’을 따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참관단으로 동행해 3일 동안 머물렀던 그해 여름 평양의 풍경은 특별했다. 시내는 온통 아파트와 고층 건물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겉으로는 번듯해 보이지만 대부분 건물이 70년대와 80년대 초반의 낡은 건물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어디를 가나 광장이 있는 곳에서는 마스게임 연습을 하고 있는 학생들도 인상적이었는데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60주년을 기념하는 횃불행진을 위한 대대적인 준비였다. 2000년대 중반 단절됐던 남북한 예술교류가 다시 시작되는 모양이다. 오늘 4월 열릴 예정인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이 남한예술단을 초청하면서다. 지난달에는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대표단으로 온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오찬장에서 만난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에게 평양 발레 공연을 제안해 관심을 모았다. 공식적으로 남한예술단을 구성해 평양에서 공연한 것은 2002년 9월, KBS교향악단이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과 연합오케스트라를 구성해 연주한 것이 마지막이다. 다시 시작되는 남북한 예술단 교류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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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8.03.08 20:04

미투, 카드 도둑질

20년 전이다. 잇따르는 경찰관 비위 사건이 터지자 한 간부가 아쉬움을 쏟아내며 이런 말을 했다. “우리 경찰이 15만 명에 달한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는 법이다. 게다가 그동안 경찰관 채용은 허술했고, 저학력자도 많았다. 인성 정도가 불명확한 사람도 이런 저런 이유로 경찰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제 경찰에도 대졸자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실력있고, 수준높은 경찰대생들이 계속 배치되고 있다. 경찰관 수준이 전반적으로 좋아지고 있다. 조금 기다려 보라” 20년이 지났다. 경찰관 학력 수준이 좋아지고, 이미지나 성과도 좋아져 보인다. 그런 여세로 수사권 독립에 나섰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바람 잘 날’이 드물지 않은 건 매한가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비교 하자면, 과거 경찰보다 ‘많이 배우고 머리 좋다’는 검사나 판사 쪽에서 부는 바람 정도를 가늠할라치면, 과거 경찰 쪽에서 들쭉날쭉했던 비위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인가라고, 20년 전 그 경찰간부는 기자 앞에서 말하고 싶었을 것 같다. 검찰이 사고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없던 일이 되는 게 어디 한둘인 줄 아느냐는 둥 말이다. 당시 도지사 비서실장이 회식 자리에서 전주지검 검사가 내리친 맥주병에 눈두덩이를 맞아 피범벅이 된 사건이 유야무야 된 반면 이런 저런 경찰 비위는 모조리 공개되다시피 돼 경찰 위상을 떨어뜨렸으니, 경찰 속앓이가 작지 않았을 것이다. 검경을 이야기의 실례로 들었지만, 언론계가 자유스럽다는 건 아니다. 얼마 전 세상 떠들썩하게 했던 송주필 사건처럼 언론계에도 들보가 적지 않다. 아직 미투하지 않았지만, 한 공무원은 어떤 중진기자에게 거액을 ‘카드 도둑질’ 당한 억울함을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미투운동 초점이 일단 성폭행에 맞춰져 있지만, 그런 부류의 갑질이 어디 성폭행에 딱 한정된 것인가. 미투운동이 확산되면서, 럭비공이 어디로 튈지 몰라 표정관리하며 납작 엎드려 입 다물고 있는 야누스의 얼굴들,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동서고금으로 권력에 취한 자들은 안하무인 하고, 호가호위했다. 급기야 지록위마도 불사했다. 요즘 드러나는 성폭행 가해자들이 그랬다. 20년 전 경찰 간부 말대로 학력 수준이 높아지면 적어도 상식 수준의 도덕성이 확보돼야 마땅할 터이지만 도덕성은 지식정도와 비례하지 않는다. ‘나도 당했다’가 아니라 ‘나도 고백하고 사죄한다’ 운동이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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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8.03.07 20:29

대나무숲

가히 광풍이다. ‘미투’를 빼놓고 대화가 되지 않을 지경이다. 검찰에서 출발한 ‘미투’가 문화예술계, 대학가를 거쳐 정치권으로 넓혀가고 있다. 그 끝이 어디일지 예측하기 어렵다. 미투운동과 함께 SNS의 ‘대나무숲’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대나무숲’을 통해 성폭력 관련 글이 잇따라 게재되면서다. 전북지역 인권단체 활동가가 대학 강사 시절 여러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폭로도 페이스북 계정인 ‘전북대 대나무숲’에 오르면서 알려졌다. ‘대나무숲’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신라 경문왕 설화에서 이름이 나왔다. 세상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자신만 알고 있다는 사실을 참을 길 없었던 두건 만드는 노인이 대나무 숲에서 토해냈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다. 2012년 한 출판사 직원이 익명으로 ‘출판사X’라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회사의 부조리를 공개하는 글을 올린 것이 그 출발이었다. 이 계정이 사라진 것을 아쉽게 여겨 만들어진 트위터 계정이 최초의 대나무 숲인 ‘출판사 옆 대나무 숲’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익명으로 억울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퍼지기 시작한 ‘대숲’은 대학가의 이슈 메이커로 작동하면서 유명해졌다. 도내 여러 대학들도 페이스북 계정의 대숲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에 따라서는 ‘대숲’기능의 다른 이름인 ‘대신 말해드립니다’ ‘대신 전해드립니다’등의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술자리 강요와 막걸리 세례, 선배 졸업반지 선물비 걷기, 단체기합에 성희롱 등의 학내 이슈들도 바로 이 계정들을 통해 공론화됐다. 물론, 대숲에서 사회적 발언이 주류는 아니다. 수강신청을 위해 교수의 성향과 실력을 묻고, 시험기간에는 출제 관련 이야기를 공유하는 등 소통의 장으로 활용되는 게 보편적이다. 대학마다 학내 사이트가 많이 있기 때문에 대학 전체적으로 볼 때도 대숲은 변방이다. 그럼에도 대학의 공식 웹사이트가 아닌 대숲이 주목을 받는 것은 자유분방한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자신을 드러내놓고 불만을 토로하기 힘든 대학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리라. 온라인상 대자보인 대숲의 팔로워와 트위터가 늘어나는 것은 사회 전반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음습한 단면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당나귀 귀를 마음껏 외칠 공간마저 없다면 우리가 어찌 임금님 귀를 알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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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용
  • 2018.03.06 21:04

황방산 터널

우리나라 최초의 터널인 경의선(서울~신의주) 아현터널, 의영터널은 1904년 만들어졌다. 서울의 남산 1호(필동~한남동), 2호(장충동~이태원동), 3호터널(이태원동~회현동)은 오늘날 강북과 강남을 잇는 주요 도로의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으나 애초 남산터널의 구상은 교통이 아닌 안보 차원에서 이뤄졌다. 바로 1968년 발생한 1·21 사태다. 흔히 ‘김신조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이 사태는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 세검정까지 침투한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은 ‘서울요새화계획’을 만드는데 이는 일단 유사시 최대 40만명의 시민이 대피할 수 있는 지하보호시설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교통량이 급증하면서 남산터널의 통행량도 증가, 지금은 시민 대피공간이 아닌 주요 교통로가 됐다. 강원도의 경우 백두대간에 의해 영동과 영서지역의 역사, 문화가 오랫동안 크게 달랐으나 오늘날엔 터널에 의해 하나의 문화권으로 통합됐다. 서쪽의 인제 주변에서 고성, 속초, 강릉 등지의 영동으로 가려면 진부령, 미시령,한계령, 대관령 등을 넘어야 했으나 오늘날엔 21.75km에 달하는 대관령터널 등에 의해 가까워졌다. 전주 역시 진북터널, 어은터널의 사례에서 보듯 산을 넘어가거나 크게 우회해서 돌아가야 했던 먼 길이 가까워진 경우도 있다. 새만금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전주와의 접근성이 중시되고, 전북혁신도시, 만성지구, 여의지구를 중심으로 한 전주서부권이 급속히 팽창하면서 최근들어 ‘황방산 터널’을 개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전북도 분석 자료를 보면 전북혁신도시 통과 차량은 하루 23만8708여대에 달하고 있고, 퇴근 시간대(오후 6~7시)에만 2만4807대가 통행한다. 앞서 전북연구원은 ‘이슈브리핑’을 통해 혁신도시 제2진입도로(=황방산 터널) 개설을 제안한 바 있다. 먼 훗날의 얘기처럼 들렸으나 국민연금공단을 중심으로 금융허브가 가시화 하고, 만성법조타운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서 이같은 주장이 새삼 조명받고 있다.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가로놓인 황방산(해발 217m)은 전주화산공원보다 남북이 1.5배로 길다. 하지만 동서간 도로는 오직 황방산 남쪽의 지방도 716호선과 북쪽의 서부우회도로 밖에 없기에 황방산 터널 개통 필요성이 크다고 한다. 다만 생태환경을 파괴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황방산은 모악산으로 이어지는 전주권 주요 생태축이자 시민휴식의 숲이기 때문에 터널을 개설하면 생태축의 기능이 크게 훼손되고 주민들도 매연·소음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찬반 양론이 있으나, 하루가 다르게 혁신도시와 만성법조타운 주변 교통량이 폭증하는 상황을 제대로 인식, 당장 전문가 공청회 등을 통해 여론을 수렴해 터널을 설치하거나 아니면 다른 교통해소 대책을 세워야 한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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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18.03.05 18:54

애타는 송지사

새 봄이 왔는데도 도민들이 죽을 맛이다.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으로 치러지는 동안 군산GM공장이 문 닫기로 함에 따라 평지풍파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문 닫은지 불과 7개월만에 또다시 GM공장이 철수키로 함에 따라 군산시는 물론 전북 전체가 패닉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왜 부평 창원 공장은 놔두고 유독 군산공장만 문 닫기로 한 것인가에 대해 군산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군산시민들이 날마다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외쳐대도 대꾸 없이 한낱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고 있다. 군산시민들은 그간 GM공장이 있어 자동차도시라는 자존감을 갖고 살아왔는데 설 이틀전 군산공장 폐쇄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지금 군산시민들은 지난해 군산조선소 문 닫을 때보다 훨씬 큰 충격에 휩싸여 있다. 경주와 포항에 지진이 발생한 것 보다도 충격이 크다. 군산시민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 살길이 막막해졌다고 아우성들이다. 실직자 뿐만 아니라 협력업체 음식점 숙박업소 원룸업자에 이르기까지 직간접으로 입는 피해규모가 엄청나다. 군산경제가 반토막 났다고 말한다. 그간 군산시민들은 GM차가 잘 안팔려 혹시라도 문 닫을까봐서 너나 할 것 없이 차 한대라도 사주는 등 GM공장 살리기에 적극 동참해왔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에 분노를 느끼고 있다. 지난해 군산조선소의 문 닫는 과정을 지켜본 군산 시민들은 ‘이낙연 총리가 왔다 가는 등 지난해와 똑같은 판박이가 재연됐다’면서 ‘정부나 정치권이 GM공장을 살리려는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정부를 성토했다. 특히 군산공장의 폐쇄설이 간헐적으로 흘러 나왔는데도 사전에 감지하지 못하고 대책 마련을 못한 것에 분통을 터뜨렸다. 이미 외국사례에서 보듯 GM이 먹튀논란에 휩싸여 있는데도 정부와 산업은행이 보인 일련의 무기력한 행태에 더 분노한다. 지난번과 같이 이번 사태에도 가장 애 타는 사람은 송하진 지사다. 송 지사는 사태해결을 위해 서울 군산 전주를 오가며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아직까지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송 지사는 어떻게든 군산공장을 정상화시키려고 하지만 정부의 정책이 전북도가 요구한 것과 달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송지사는 직접 이해당사자가 아니어서 운전석에 앉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른다. 정부는 정확한 실사 등을 거쳐 부평 창원공장이라도 문 닫지 않도록 지원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딱 버티고 있어 자칫 밑빠진 독에 물붓기로 끝날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송 지사가 GM군산공장 살리느데 역점을 두지만 아직껏 사태의 추이만 지켜볼 뿐 이렇다할 해결책이 나오지 않아 속만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김제시장선거에 출마한 한 사람이 새만금신항만을 김제시로 행정구역 관할권을 편입해야 한다고 뜬금없이 주장한 바람에 더 군산시민을 열받게 했다. 이웃사촌이 불행을 겪고 있는 이 때에 하필 이런 주장을 해야 하는지 되묻고 싶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8.03.04 19:34

썰매의 역사와 금메달

스켈레톤은 봅슬레이, 루지와 함께 3대 썰매 종목을 이룬다. 머리를 아래로 두고 엎드린 자세로 썰매를 조정해 빠른 속도로 1200미터 이상의 트랙을 내려오는 방식이어서 위험성이 적지 않다. 1928년 생모리츠 동계 올림픽 때 정식 종목으로 지정되었지만 두 차례나 중단되었다가 20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 때 비로소 영구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설날 아침, 평창올림픽에서 안겼던 윤성빈의 금메달이 바로 이 경기다. 올림픽에서의 스켈레톤 금메달은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 선수로도 처음이이다. 그만큼 의미가 더 크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열악한 여건에서도 오늘의 한국 썰매 종목 역사를 있게 한 주인공 이야기다. 올림픽에서 빛나는 메달을 얻지 못하고도 이름을 널리 알린 스타. 강광배 국제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부회장이다. ‘대한민국 썰매의 역사’로 불리는 그는 1998년 나가노를 시작으로 2010 밴쿠버까지 루지와 스켈레톤, 봅슬레이 등으로 동계올림픽에 출전했다. 썰매 3개 종목 전 경기 출전은 그가 세계 최초이자 유일하다. 스위스 IOC박물관에는 그가 2006 토리노동계올림픽에 입고 출전했던 운동복과 모든 장비가 전시되어 있을 정도다. 이쯤 되면 그의 성장 과정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는 전주 토박이다. 고등학교 시절 유도를 했던 그는 전주대 체육학과 1학년 때 무주리조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스키를 만나 선수가 됐다. 각종 스키대회를 휩쓸었으며 최연소로 스키강사 자격증을 땄다. 그가 가르쳤던 ‘코흘리개’ 무주 산골 아이들은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가 됐다. 그 역시 스키로 성장하고 싶었지만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얻고 포기했다. 절망하지 않고 루지 국가대표선수 선발에 도전했다. 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루지 국가대표 선수로 첫 출전할 수 있었지만 고난의 과정을 거쳐 루지 대신 스켈레톤으로 종목을 다시 바꾸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동계스포츠 역사가 일천한 한국의 여건상 국가대표로 자격을 얻지 못하고 개인자격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해야 했던 그는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이 국제연맹에 가입한 후에서야 비로소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는 스켈레톤으로,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는 봅슬레이로 출전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썰매 전 종목에 출전한 선수가 됐다. 밴쿠버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한 이후 그는 우수한 선수를 키워내는 지도자로 헌신해왔다. 윤성빈도 그가 발굴한 선수 중 한명이다. 우리도 이제 썰매의 빛나는 역사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외로운 길을 개척해온 그의 도전 정신 덕분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8.03.01 20:47

전북연극계 '미투'

전북연극협회가 10년 전 <전북연극사 100년>을 출간했다. 지역의 원로중견 연극인 등을 중심으로 엮은 이 책을 통해 전북연극이 어떤 길을 걸으며 오늘에 이르렀는지 확인할 수 있다. 지역의 연극사를 정리했다는 점을 넘어 전북연극의 자긍심을 높이게 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근대연극의 뿌리를 창극으로 보고, 판소리의 창극화에 공헌한 고창 출신의 동리 신재효 선생을 주목했다. 전북이 한국 연극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드러낸 셈이다. 전북연극사를 들여다보면 지역 연극인들이 참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문화예술이 서울로 향했던 시절에 척박한 지역에 씨를 뿌리고 꽃을 피웠으니 말이다. 60년대부터 여러 극단이 창단되고 소멸되는 과정을 거쳤던 전북연극이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80년대 이후다. 특히 창작극회와 극단 황토는 80년대파벌 싸움을 벌인다고 할 만큼 무대 안팎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전북연극발전을 이끈 양대 축이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전국연극제 대통령상을 거머쥐기도 하고, 자체 소극장을 마련해 상설 공연에 나선 것도 이 시기였다. 이후 익산과 군산, 정읍, 남원 등지에도 극단이 생기면서 양적질적 발전을 더했다. 매년 전북연극제를 비롯해 전북소극장연극제영호남 연극제를 열어 무대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다른 지역에 앞서 전주시에 시립극단이 탄생한 것도 전북연극의 저력이었다. 시립극단은 지금도 전국에 몇 개 되지 않는다. 전북연극이 오늘날 단단히 뿌리내리는 데 큰 역할을 한 분이 박동화 선생(1911~1978)이다. 일본 유학시절 극단 활동을 했던 박동화는 1950년대 중반부터 전북대신문 편집국장으로 활동하며 대학연극반을 만들었고, 여기 출신들을 모아 창작극회를 결성한 이다. 창작극회가 1964년 전국연극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그의 극작(두 주막)과 연출을 통해서다. 그의 연극적 업적을 기려 전주체련공원에 박동화선생 동상이 세워졌고, 대표작 <나의 독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가 사후에 발간됐으며, 20년 넘게 박동화연극상이 시상되고 있다.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와 선배를 가진 전북연극계가 요즘 한 극단 대표의 여배우 성추행 문제로 물의를 빚고 있다.미투 열풍 속에 나온 8년 전의 일이라고 하지만, 전북연극계 일각의 민낯을 드러낸 셈이다. 더욱이 지역 연극계 일각에서오태석이윤택을 복사한 괴물이 근처에 살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걸 보면 이번 극단 대표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나의 독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연극계 대선배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환골탈태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8.02.28 19:54

미투, 성폭력 뿐이랴

미투, 나도 당했다. 여자로서, 딸로서, 엄마로서, 누이로서 그 얼마나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고백인가. 씻을 수 없는 상처는 자존감을 무너뜨렸다. 망가진 영혼은 그늘 속에서 떨었고, 일상 삶마저 힘들게 했다. 약자였다. 갑이 아닌 을이었다. 갑자기, 혹은 끈질기게 추근댔다. 처음에는 따뜻한 선배, 선생의 손길인 줄 알았다. 다정하고 호의적인 그가 느닷없이 괴물, 늑대의 발톱을 드러냈다. 꼼짝없이 당했다. 다행히 세상에는 용기 있는 사람이 많았다. 미국 등 외국에서 몰아친 미투 운동에 국내 피해자들이 앞다퉈 미투를 외치고 있다. 그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치욕과 아픔을 짓누르고 대중 앞에 선 그들은 아귀의 탈을 뒤집어 쓴 성폭력범들을 당당히 고발하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섰다. 최근 미투운동에서 드러난 피해사례들을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는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사이다. 최영미 시인이 괴물이라고 폭로한 고은 시인은 원로 대접을 받는 문인이다. 연출가 이윤택은 연극계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해당 분야에서 실력을 쌓아 크게 성공한 선생님이다. 당연히 그들처럼 성공한 인생을 추구하는 후배들이 따르고 싶고 또 본받고 싶었을 것이다. 가까이 하고 싶었을 것이다. 괴물들은 그런 점을 악용했다. 미국 체조 대표팀과 대학 체조팀 주치의로 일하면서 265명의 선수들을 성폭행하거나 성추행한 혐의가 드러나 징역 140~360년 형을 선고받은 래리 나사르는 선수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친절하고 가까운 의사 선생님이었다. 일반적인 성폭력범도 주변 인물이 많다. 아동 성폭력범 또한 낯선 사람보다는 주변 인물이 70~80%를 차지한다는 보고가 있다. 괴물은 멀리 있지도 않았고, 낯선 이방인도 아니었다. 나의 친구였다. 나를 이끌어주고, 보살펴주는 친절한 지인이었지만, 실은 야누스 얼굴을 한 괴물이었다. 미투, 억울한 피해 사건은 과연 은밀한 성폭력 뿐일까. 이번 미투운동에서 알 수 있듯이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2차, 3차 가해와 보복 등이 두려워서 피해 사실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위축된 상태의 그들이 느끼는 주변의 냉소는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피해는 성폭력 뿐 아니라 상거래관계, 직장 내 상하관계 등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만연하는 게 현실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을은 교묘한 폭력에 제대로 맞서지 못한다. 그게 상대적 을인 인간의 비애다. 인간이 인도적 세상을 추구한다면, 이제 나는 고백한다에 대한 미투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8.02.27 18:44

법조타운 불패

국내의 내로라하는 로펌의 지난해 매출 순위는 김앤장, 태평양, 광장, 율촌, 세종, 화우 순이다. 김앤장이 매출 1조144억원으로 1위에 올랐고, 태평양이 2761억원, 광장이 2637억원, 율촌이 1911억원, 세종이 1676억원, 화우가 1205억원 등이다. 6대로펌만을 놓고볼때 시장점유율은 김앤장이 49.9%, 태평양이 13.6%, 광장이 13.0%, 율촌 9.4%, 세종 8.2%, 화우 5.9% 등이다. 말이 연매출 1조원이지 1152명의 전문가를 지니고 있는 김앤장 하나가 올린 실적은 가히 놀랄만하다. 186만명의 도민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전북도의 연간 예산이 6조5000억원 남짓한 것을 고려하면 김앤장의 매출 1조는 어마어마한 수치임을 알 수 있다. 이들 대형 로펌은 종로나 강남 등지에 산재해 있으나 변호사 사무실이 밀집돼 있는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안팎에서 대형 로펌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기만 하다. 법원과 검찰이 있는 법조타운은 단순히 판사와 검사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수많은 변호사와 법무사, 행정사는 물론, 엄청난 이해관계인들이 아침저녁으로 찾는 공간이다. 그래서 서울 서초동에 있는 법조타운 뿐 아니라 전국 주요도시는 법조타운 불패라는 말이 있을만큼 부동산 측면에서도 늘 핫(hot)한 곳으로 통한다. 도내에서도 요즘 만성동 주변에서 법조타운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현재 덕진동 가련산 기슭에 있는 법원검찰 등 법조타운이 내년에 만성지구로 옮겨오기 때문이다. 덕진동 현재 타운 면적이 2만8270㎡인데 만성지구 법조타운은 3만2900㎡이다. 청주, 순천 등지의 사례에서 나타났듯 법조타운 주변은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에 도시의 판도를 바꾸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문제는 덕진동 현 청사가 내년에 떠난뒤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하는 점이다. 새 법조타운이 번영을 구가할때 기존 법조타운은 불꺼진 도시나 되지 않을까 우려가 크다. 자칫 종합경기장 개발의 제2라운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시각도 있다. 전북도와 전주시가 전주지방법원과 검찰청 이전 부지 활용 방안에 대해 큰 시각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상황을 보면 전주시는 법원과 검찰청의 건물을 보존해 미래 유산으로 활용하고 근린공원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돌려준다는 방침이나 전북도는 이 부지를 호텔 건립 용도로 전환하는방안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자칫하면 대법원, 전북도, 전주시의 입장이 서로 달라 덕진동 일대가 도심속의 섬으로 전락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해 국감때 이춘석 의원이 덕진동 일대 법원 기존 부지 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법원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바로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앞으로 1년뒤 법원과 검찰이 만성지구로 떠났을때 폐허가 될게 뻔한 덕진동 옛 법조타운 부지를 어떻게 살려낼지 치열한 고민과 논쟁이 뒤따라야 한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8.02.26 22:25

정치적 악용

군산이 흐느끼고 있다. 한번도 아니고 연례행사격으로 두번이나 공장폐쇄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으면서 군산 경제가 반토막 났다. 지금 군산 시민들 한테는 그 어떤 위로의 말이 필요 없다. 폐쇄키로 한 군산GM을 살려 내지 않으면 군산은 불꺼진 항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창올림픽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평화올림픽으로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있지만 군산은 시민들의 치밀어 오른 분노와 배신밖에 없다. 그간 군산시민들은 행여 공장이 문 닫을까봐 노심초사하면서 차 한대라도 더 사주려고 발버둥쳤다. 이런 헌신적인 노력은 오간데 없고 급기야 공장폐쇄라는 극약처방이 내려져 시민들의 억장을 무너 뜨렸다. 정부와 정치권이 군산사태를 바라보면서 해결책을 강구하는 모습이 백가쟁명식이다. 당리당략에 따라 소리만 요란하다. 이번 사태를 놓고 국민의당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나눠지면서 613지선에서 마치 이슈를 선점하려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 창당 때 마땅한 이슈가 없었는데 메가톤급 악재가 터지자 때는 이때라고 순발력있게 대응하고 나선 것. 양 당이 민주당 대항마로 호남에서 서로가 지지율 확보를 위해 사생결단식으로 나선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 목표가 왜곡되거나 정략적으로 흘러 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군산GM 사태는 산업구조가 취약한 전북한테는 아킬레스건이었다. 협력업체까지 합치면 실직자가 1만명이 넘는다. 4인 기준으로 하면 하나의 작은 도시가 없어지는 것이나 다를바 없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폐쇄로 그 악몽이 잊혀질뻔 했는데 또다시 되살아 나면서 살길이 막막하다. 정부나 정치권이 폐쇄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 군산사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 폐쇄를 막아 내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다. 정부와 전북도가 해결책을 놓고 상충되는 면이 발생할 수 있다. 요즘 군산사태 해결을 위해 눈물나게 뛰는 송하진 지사는 사즉생의 각오로 더 뛰어야 한다. 도민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있기 때문에 잠시도 주저하거나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정치권과 협치를 통해 공장이 폐쇄되는 것을 막아내야 한다. 미리서부터 겁먹고 선택과 집중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면 작년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다시금 전략과 전술을 가다듬어 어떻게든 군산공장을 살려 내겠다는 일념으로 임해야 한다. 도민들은 이 문제를 지사 한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성을 갖고 해결책을 강구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안보와 경제를 하나로 묶어 생각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편 것이 결국 군산공장 폐쇄라는 결론을 이끌었다. 정부가 GM을 살리려고 재정지원 방안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겠지만 무작정 원칙없이 끌려 가면 안된다. 자칫 도미노현상이 뒤따라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도 도민들의 아픈 상처를 위로하는 척 하면서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8.02.25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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