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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하구둑

"금강(錦江)…. 높이 솟구친 갈재와 지리산 두 산의 산협 물을 받아 가지고 장수로 진안으로 무주로 이렇게 역류하는 게 금강의 남쪽 줄기다. 그 놈이 조치원을 지나면 거기서 비로서 오래두고 찾던 남쪽 줄기와 마주 만난다. 백마강은 공주 곰나루에서 부터 시작하여 백제 흥망의 꿈자취를 더듬어 흐른다. 예서부터가 옳게 금강이다. 형은 서서남으로 빗밋이 충청 전라 양도의 접경을 골타고 흐른다. 이로 부터서 물은 조수까지 휩쓸려 더욱 흐리나 그득하니 벅차고 강넓이가 훨씬 퍼진 게 제법 양양하다.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군산시 임피면에서 태어난 작가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첫 머리다. 중간 중간 떼어 길게 인용한 것은 남한에서 세번째 긴 금강을 잘 표현한 압권이기 때문이다.당서(唐書)에 금강은 웅진강(熊津江)이라 기록하고 있다. 금(錦)은 원어 곰(熊)의 사음(寫音)이다. 금강은 3개의 큰 담수호를 품고 있다. 1980년 대전의 신탄진 부근에 건설한 대청댐과 2001년 진안에 들어선 용담댐, 그리고 1990년 완공한 금강하구둑이 그것이다. 이 중 금강하구둑은 충남 서천군 마서면과 전북 군산시 성산면을 연결하는 1841m의 방조제와 20개의 배수갑문으로 되어 있다. 수자원 확보와 금강 상류지역의 홍수조절, 염해 방지, 관광개발을 위해 건설한 것이다. 총 저수량은 1억3800만 톤이며 전북과 충남에 연간 3억4000만 톤의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덕분에 뱃길로 오가던 군산-서천간 교통이 개선됐고 관광산업 발전 효과도 크다. 그런데 최근 전북과 충남 사이에 갈등이 일고 있다. 서천군이 2009년부터 서천측 하구둑 인근에 80만톤의 토사가 쌓여 수질이 나빠지고 생태계가 훼손됐다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하구둑 일부 200m쯤을 철거해 기수역(汽水域·강물과 바닷물이 접하는 지역)을 복원하자는 주장이다. 이같은 해수유통에 대해 군산 익산 김제시 등은 농공업용수 공급에 차질을 빚고 저지대 침수 피해가 우려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국토해양부의 용역실시 결과도 부정적이다.그러자 충남도는 영산강 낙동강지역 자치단체와 3대강 해수유통협의회를 구성, 대선공약으로 추진할 움직임이다. 물 분쟁이 이웃간 선린관계를 해치지 않았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조상진
  • 2012.05.21 23:02

'외눈화가' 최북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 1712~1786년경). 그의 이름을 들어본 독자 분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무주 최 씨로 알려진 최북은 조선후기에 활동했던 직업 화가다. 타고난 재능과 남다른 개성으로 다양한 소재의 그림을 그렸던 그는 조선 후기 화단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일정한 틀에 갇히지 않고 종횡무진 하는 필치로 주목 받았던 그는 전통화풍으로서 뿐 아니라 당대에 유행했던 한국 진경화풍에도 빼어난 명작을 남겼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생애를 온전히 알 수 있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최북의 이야기는 그의 예술세계를 흠모한 옛사람들의 평전으로 전해지는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기인다운 일화가 적지 않다. '정열화가'라거나 '기행화가' '광화사' 등으로 불리는 것도 이러한 일화가 바탕이다. 그의 기인적 행적은 그가 '외눈화가'가 된 사연에서 절정을 이룬다. 가난하고 내놓을 것 없는 가문출신이었던 그는 직업화가로서 오로지 그림을 그려 생계를 유지해야했다. 붓으로 먹고 사는 일을 해야 하는 처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먹고사는 일보다 화가로서의 자존감을 굳게 지켰다. 그는 그림을 주문한 사람의 의도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스스로 자신의 한 눈을 찔러 멀게 했다. 이밖에도 전해지는 그의 기행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는 한 시대, 기행을 일삼으며 재능만을 과시하다 떠난 화가가 아니다. 대부분 작품들은 시와 글에도 깊이 있는 세계를 섭렵했던 지식인으로서의 최북을 보여준다. '못 그리는 것 없는 조선 최고의 화가' 최북을 만날 수 있는 귀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국립전주박물관이 마련한 특별전시회다. 올해는 최북 탄생 300년이 되는 해. 박물관은 연대기적 의미를 기념해 '최북'을 초대했다. 그동안에도 그의 전시회가 있긴 했지만 소품 위주로 공개되었을 뿐 이처럼 본격적인 전시는 처음이다. 전주박물관은 이 전시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 전국의 10여개 기관에서 유물을 빌려왔다. 그중에는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도 있다. 이 전시회의 기획의미나 과정의 노고를 감안하면 오랜 시간 전시되는 것이 마땅한데, 아쉽게도 이 전시는 6월 17일에 끝난다. 유물 대여기간이 6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옛글에 '알기만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만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고 했다. 한 시대를 치열한 예술적 열정으로 살다간 '자유로운 영혼의 화가'를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을 놓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2.05.18 23:02

순창 고추장의 역설

우리나라 고추장의 대명사격인 순창고추장이 지역 생산농가의 소득향상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을까.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이 출간한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에 따르면 순창에 13개 고추장 공장이 있는데 연간 매출이 3000억원에 이른다. 일하는 사람은 375명, 한 사람이 8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제조업 평균 4억5000만원 보다 배 가까이 높다. 반면 가내수공업 형태로 만드는 순창지역 전통적인 고추장 생산농가 72곳의 매출은 모두 합해서 400억원 정도. 일하는 사람은 300명 정도다. 한 농가당 평균 매출액은 5억5500만원으로, 고추장 공장의 한사람 매출에도 못 미친다. 순창고추장이 식품 대기업에 의해 잠식당하면서 전통적인 고추장 생산농가들이 설 땅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순창고추장의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생산농가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이원재 소장은 이를 빗대어 "순창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고 진단했다. 전통적인 고추장 생산농가의 생산성은 대기업 공장의 6분의 1 수준도 안된다. 고용 인원은 많지만 생산성은 뒤떨어지니 가격경쟁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대기업 고추장 공장들이 순창지역에 들어서면서 지역 농산물 수요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무늬만 순창고추장일 뿐 순창에서 생산되는 고추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값싼 중국산이 순창고추장으로 포장되고 있는 사실을 다수의 국민들은 잘 모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일 농진청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농사짓는 사람이 부지런히 일해서 농사를 지으면 돈은 식품회사가 다 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 식품회사들은 대형 회사들로, 자기 분야뿐만 아니라 농업 분야에서 연구개발(R&D) 투자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주문했다. 어렵게 전통을 지켜 온 순창고추장의 명성을 이용해서 손쉽게 그 과실을 따먹고 있는 대기업들이 지역과 농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관료들도 기업유치만이 능사가 아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기업의 탐욕과 자본주의 먹이사슬의 표본이 순창이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2.05.17 23:02

음식 창의도시

국제영화제를 성공리에 마친 전주시의 이름 값이 모처럼만에 높아지게 됐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가 전주시를 국내 첫번째 음식창의도시로 15일 지정했기 때문이다. 2004년 유네스코 이사회에서 시작된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사업'은 문학·디자인·음악·음식·민속예술·영화·미디어아트 등 7개 분야로 구성돼 있다. 음식분야에는 콜롬비아의 포파얀, 중국의 청두, 스웨덴의 외스테르순드 등 3개 도시가 지정돼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이 디자인으로 경기도 이천이 민속공예로 지정됐다.전주시는 유네스코 음식 창의도시로 명명돼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이름 값이 하룻 밤 사이에 천정부지로 뛰어 음식이라는 전주의 브랜드 가치를 높혔고 세계적으로 홍보가 이뤄지게 됐다. 민선 자치시대들어 전주시가 꾸준히 한스타일 문화 사업을 벌여온 결과가 이제야 결실을 본 것이다. 일찍이 한지· 한식·한옥·한복·한글로 대표되는 한스타일 사업을 전주시가 도시컨셉으로 잡고 뛰어든 성과물이다. 전통문화가 돈 된다는 사실을 전주시가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이다.이번에 음식 창의도시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은 전주가 한국 전통음식이 가장 잘 보존돼 있고 전통을 이어온 가정 음식이 잘 발달된 점 때문이었다. 여기에 전주비빔밥축제나 국제발효식품엑스포 등을 개최해오면서 전주 음식의 저변 확대가 잘 이뤄진 점이 꼽혔다. 글로벌시대에 전주 음식의 역사성과 전통성을 세계적으로 인정 받았다. 그간 맛과 멋의 고장이라는 한국적 이미지를 이제는 세계인을 상대로 뽐낼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전주시가 전통의 매력을 지녀 경쟁력을 확보했다. 음식 맛은 신뢰여서 음식점들이 신뢰를 잃지 않도록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창의도시 지정 이후가 더 중요하다. 전주시가 음식 창의도시로 지정돼 도시 브랜드 가치가 한층 높아졌다. 도시의 이름 값은 경쟁력이다. 요즘 전주 완주 통합이 이슈다. 전주서는 찬성자가 많고 완주군에서 예전 같지는 않아도 반대가 있지만 브랜드 가치면에서 볼 때 전주 완주를 통합하는게 더 큰 이익이 생길 수 있다. 글로벌시대에 완주군이라는 이름 갖고서는 국내외적으로 한계가 있다. 전주 완주가 통합되면 완주군도 전주시의 브랜드 가치를 함께 나눠 가질 수 있다./백성일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2.05.16 23:02

착잡한 스승의 날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1958년 당시 충남 강경여고 청소년적십자(현 RCY) 단원들이 세계적십자의 날(5월8일)을 맞아 병중에 있는 전· 현직 교사들을 방문해 봉사활동했던 것이 배경이다. 선행을 확산시키기 위해 '은사의 날'을 정했고 1963년 10월 서울과, 1964년 4월 전주에서 RCY 각도 대표가 모여 사은행사를 갖기로 결정했다. 이듬해엔 명칭을 '스승의 날'로, 날짜는 5월26일로 바꿨다. 65년 4월에는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15일을 스승의 날로 다시 바꿨다. 정부는 73년 스승의 날을 폐지했지만 한국교총 등이 강력하게 건의해 9년만인 82년 국가지정 기념일로 정식 선포됐다. 오늘 스승의 날 31주년을 맞게 된 연유다. 우여곡절 끝에 스승의 날이 탄생했지만 이 날을 맞는 스승의 감회는 착잡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교권 침해와 추락이 도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현실에 순응하면서 '직장인'이 돼 가고 있는 교육자들이 많다. 유능한 교사들이 명퇴하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교권은 안중에도 없이 학생인권만 외치는 일부 사회풍토도 스승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교총이 전국 교원 32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원인식 설문조사 결과는 이런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다. '교직에 대한 만족도 및 사기가 최근 1∼2년간 어떻게 변화했느냐'는 질문에 81%가 '떨어졌다'고 응답했다. 4년 연속 내리막길이다. 그 이유로는 '학생 생활지도의 어려움'이 29.8%로 가장 높았다.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학부모의 태도'(22.6%), '교직에 대한 사회적 비난'(21.1%), '학생교과지도 및 잡무의 어려움'(14.0%) 순이었다. 명퇴 원인으로는 '교육환경 변화'(94.9%)가 가장 많았고, 교육환경 변화로는 '학생인권조례 추진 등으로 학생지도의 어려움 및 교권추락 현상'(70.7%)을 가장 높게 꼽았다.교직만족도와 사기가 이런 데도 우리 사회는 교육자들한테 페스탈로치의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교권 없이는 제대로 된 수업과 학생 생활지도가 이루어질 수 없다. 교육의 질은 결코 교원의 능력을 능가할 수 없는 법이다. '교사는 있지만 스승은 없다'고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왜 존경받는 스승이 사라지고 있는지부터 고민해야 할 일이다. 스승의 날을 맞아 한번쯤 우리사회가 던지고 대답해야 할 화두다. /이경재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2.05.15 23:02

공산당 최고 원로 김철수

지운(遲耘) 김철수(1893-1986)는 남북 분단의 현실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독립운동에 앞장섰지만 사회주의자(빨갱이)라는 이유로 평생 남한 공안당국의 감시대상 1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또 민족적인 성향 때문에 북한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다.그러나 그는 우리나라 초창기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었고 해방공간에서 좌우합작에 노력한 공산당 최고 원로였다. 2005년 광복 60년을 맞아 뒤늦게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부안군 백산면 출신인 지운은 군산 금호학교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을 다닌 엘리트 지식인이었다. 일본과 러시아 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과 코민테른 등 사회주의 활동을 벌였으며 1926년 제3차 조선공산당(일명 ML당) 결성시 책임비서를 맡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두차례에 걸쳐 13년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해방 후에는 좌익과 우익의 가교역할을 자임했고 이승만-박헌영 회담을 추진하는 등 통일정부 수립에 노력했다. 하지만 극심한 죄우익 세력다툼과 박헌영과의 노선투쟁, 여운형의 암살 등에 환멸을 느껴 1947년 낙향했다. 선영 옆에 움막을 짓고 꽃과 나무를 벗하며 살았다. 가난이 멍에처럼 따라 붙었으나 이승만 정부 때 입각제의를 받고 친일파와 함께 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거물급 사회주의자였기에 그의 활동은 주목되는 바 컸다. 그는 해방 직후 조직된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7인의 전형위원으로 참여했다. 당시 예비내각은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여운형, 김규식 외무, 김구 내무, 허헌 법무, 김성수 문교, 김일성 군사위원장' 등이어서 흥미롭다. 또 오늘날 중국의 대부 모택동과는 1921년 4월 상해에서 신우회(新友會) 결성시 만났다. 두 사람은 사회주의에 대해 강한 열정을 갖고 있었고 동갑이어서 친했다고 한다. 또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대한애국부인회 김마리아와의 동지적인 애틋한 사랑은 그가 로맨티스트였음을 보여준다. 그는 허백련 오지호 등 예술인과 교류했고 서예도 수준급이었다. 지난 10일 서울에서 지운의 글씨를 모은 회고전이 끝났다. 모택동 사망시 지은 만사(輓詞)와 1935년 서대문형무소 중병자 감방에서 지은 시 '달도 하얗고, 국화도 하얗고, 내 마음도 하얗다(月白鞠白 我心白)' 등이 전시되었다. 최근 통합진보당 등 진보진영의 한없는 도덕적 추락을 보며 한국 사회주의의 새벽을 열었던 지운의 청교도적 삶을 돌아보게 된다. /조상진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조상진
  • 2012.05.14 23:02

세계박람회(엑스포)

2012여수세계박람회(EXPO)가 내일(12일) 개막한다. 지난 1997년 엑스포 유치전에 뛰어들었으니 준비해온지 15년만이다. 엑스포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축제로 꼽힌다. 근대적 의미에서 최초의 세계박람회는 1851년 영국에서 개최된 '수정궁(Crystal Palace) 만국산업박람회'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의 성공으로 최대 공업국가로 성장했다. 자연히 각 국가와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덕분에 다양한 신기술이 개발되고 문화가 양산되었다. 엑스포는 영국의 이러한 사회경제적 배경으로 탄생됐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엑스포 개최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행사의 질적저하와 참여국과 개최국 사이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등 문제점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국제박람회기구(BIE)다. 1928년 파리에서 설립된 'BIE'는 박람회의 개최지를 결정하고 개최 및 참가에 따른 각종 기준을 설정해 박람회의 질적 수준을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기념비적 건축물과 기술력을 통해 각 국가마다의 국력을 과시하는 성격으로 시작된 엑스포는 그동안 새로운 발명과 성과를 통해 세계 경제와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했다. 전화기(1876년 뉴욕박람회) 상용자동차(1885년 앤트워프박람회) 비행기구(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 텔레비전(1939년 뉴욕박람회)도 모두 엑스포를 계기로 출시됐다. 그러나 오늘날의 엑스포는 단순히 과학 기술 발전의 기폭제로서만 기능하지 않는다. 엑스포는 평화로운 발전과 화합·공존이라는 개념을 전파하고 다양한 문명·문화를 교류하는 세계 화합의 장이다. 특히 매스미디어 시대인 오늘날에는 국가 이미지를 홍보하고 세계인의 주목을 환기시키는, 대중외교의 장으로서의 기능이 더 돋보인다. BIE가 공인하는 세계박람회는 두 가지. 광범위한 주제를 갖고 전시면적에 제한 없이 참가국이 자비로 국가관을 짓는 '등록박람회(Register ed Exhibitions)'와 특화한 주제로 전시면적이 25만㎡ 이하인 곳에서 전시기간이 3개월 이하로 제한되는 '인정박람회(Recognized Exhibit ions)'다. 여수엑스포는 '인정박람회'다. 8월 12일까지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The Li ving Ocean and Coast)'을 주제로 열리는 여수엑스포에는 105개국이 참가한다. 여수엑스포 조직위원회는 당초 800만 명으로 예상했던 관람객을 1000만여 명으로 높여 잡았다. 생산유발 12조2000억 원에 일자리 7만8800개 창출의 부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여수엑스포의 성공을 바란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2.05.11 23:02

또 무산된 프로야구 10구단

전북 도민들의 염원을 모아 추진했던 프로야구 10구단이 또 다시 무산됐다. 그제 열린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에선 "10개 구단으로 가는 것이 기본적으로 맞지만, 좀 더 다각적으로 심층 검토하고 신중하게 결정하기로 했다"면서 기약 없이 뒤로 미뤘다. 그러면서 KBO 이사회는 10구단 창단과 관련한 사안을 실행위원회로 다시 떠넘겼다. 서로 핑퐁 치듯 10구단 창단 안건이 이사회와 실행위를 오락가락 하면서 시간만 축내고 있다.이 같은 KBO 행태에 속 터지는 것은 10구단 유치에 나선 전북과 수원이다. 가타부타 결론을 내려야 자치단체도 행정력을 허비하지 않을텐데 엉거주춤한 상태로 KBO 처분만 바라보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실망감에 빠진 시민들의 추진 열기도 시들고 연고 기업유치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창단 의지가 있을 때 추진해야지 자꾸 늦춰지다 보면 기업의 상황과 여건이 바뀔 수 있고 그럴 경우 기업이 발을 뺄 가능성도 높다.사실 10구단 문제가 겉돌고 있는 것은 기존 구단의 탐욕 때문이다. 커지는 프로야구 시장의 파이를 9구단에 이어 10구단에 까지 나눠주기는 싫다는 심산이다. 그래서 제9구단 NC 다이노스 창단 때도 일부 구단이 반대했었고 이번 10구단 문제도 형식적인 논의만 하고 결정은 뒤로 미룬 연유이다. 하지만 당초 NC 다이노스의 내년 1군 진입을 반대했던 구단들은 "기형적인 홀수구단 체제로는 안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홀수구단 체제로 그냥 가겠다는 입장이다. 논리도 명분도 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각 구단의 야구감독들도 홀수구단 체제에 껄그러운 입장이다. 홀수 팀으로 리그를 운영하면 8팀이 4경기를 하고 나머지 한 팀은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경기나 팀 운영에 파행이 예상되고 흥행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프로 야구인들도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해 10구단 체제가 꼭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미국은 내셔널과 아메리칸 양대 리그에 30개팀이, 일본은 센트럴과 퍼시픽 리그에 12개팀, 쿠바와 멕시코는 16개팀, 캐나다는 10개 팀이 활약하고 있다. 우리 프로야구 관중이 지난 2007년 410만명에서 올해 800만명을 목표로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한국 야구의 발전을 위해선 국민들 여망에 더 이상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된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2.05.10 23:02

호가호위(狐假虎威)

그간 변화를 갈망했던 도민들의 바람이 현실로 이뤄져 국회의원 7명이 물갈이 됐다. 국회의원을 새로 당선시키는 것 보다 낙선시키는 게 더 어렵다. 그 만큼 기득권을 털어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권한이 예전만은 못해도 그래도 선망이다. 단체장이나 지방의원 공천권을 갖고 있어 지방권력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산중에서 짐승들끼리 회의할 때 호랑이 같은 존재나 다름 없다.이번에 국회의원을 대거 신진들로 바꾼 것은 지방권력을 물갈이 하자는 신호탄이었다. 국회의원 자신이 몇선하는 동안 해 놓은 일이 별로여서 팽 당했겠지만 그 이면에는 옆에 붙어 호가호위 하는 사람 때문에 벼락 맞을 수 있었다. 원래 국회의원 자리는 지역 일을 잘해도 선거때가 닥치면 유권자들이 리트머스 시험지를 들이대면서 흔들어대는 자리다. 경쟁자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다.지금까지 민주당 일당 독식 구조가 20여년간 지속돼 와 각 지역구별로 선거때마다 나름대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잘 먹고 산 사람들이 생겨났다. 자질과는 상관없이 지역구 국회의원과 관계여부에 따라 지역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이 사람들은 국회의원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표 깎아 먹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국회의원들은 면전복배하는 그들을 내팽개치질 못하고 함께 간 게 화근일 수 있다. 전국책(戰國策)에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고사가 나온다. 호랑이를 뒤에 세우니 모든 동물들이 여우에게 머리를 숙였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선거가 끝나고 난 이후에는 호랑이 힘을 믿고 마냥 설쳐대는 여우가 나타날 수 있다. 선거 때 도왔던 지방의원부터 시작해서 측근들이 발호할 수 있다. 돈이나 권력도 모두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 같다. 호랑이가 사라졌을 때 늑대 등이 과연 자그마한 여우에게 절을 하겠는가.선거 때 알게 모르게 힘써 준 사람들이 있다. 거의 가족이나 친인척들 빼고는 조건없이 그냥 도움 준 사람은 없다. 당선되고 나면 뭔가를 바란다. 당선자들이 이 점을 경계해야 한다. 요즘 대형비리의 시작이 자신의 심복이었던 운전사들이 사진 찍어 내놓은 증거 때문에 속속 드러난다. 세상에 비밀이란 없다. 당선자들은 여우들 한테 책잡힐 빌미를 제공하지 않아야 임기를 잘 마칠 수 있다. /백성일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2.05.09 23:02

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다르다. 어릴 적 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사람, 아는 것이 정말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사춘기에 들어서면 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거나, 세대차이가 나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20대가 되면 "기성세대는 갔다"며 반발심이 발동하고, 30대 때는 "하긴 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라는 식으로 태도가 바뀐다. 40대에 들어서 비로소 "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아버지의 의견을 한번 들어봅시다"며 아버지의 존재감을 인정한다. 50대에 들어서면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셨어"라고 말한다. 자식 키우고 느낀 동병상련 탓이리라. 그리고 60대에 이르면 "아버님께서 살아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 텐데…"하며 아쉬워한다. 세대별 아버지의 인상이 그럴듯 하다. 아버지가 하루에 하는 일을 자식들이 거울처럼 들여다 본다면 어찌 될까.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을 자식이 없을 것이다. 결재판을 들고 다니며 직장 상사한테 연신 굽신거리고 때로는 혼쭐이 나는 모습, 부하 직원을 어르고 달래느라 곤욕을 치르고 경우에 따라선 치받치기도 하는 광경, 승진하기 위해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하고근무평정을 잘 받기 위해 아첨도 떨면서 술자리에선 딸랑딸랑 상사의 비위를 맞추고 헛웃음 짓는 일 등이 비일비재할 터이다. 모두 가족을 지탱하기 위한 '인내와 헌신'이다. 이런 행동거지를 자식들이 훔쳐본다면 경외감(?)에 사로잡히지 않을까. 오늘날 아버지들은 끝 없는 일과 피로, 직장 상사에게 받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러니 집에서 좋은 아버지 역할을 하기도 힘들다. 세월이 흐르다 보면 어느새 무심한 아버지가 돼 있다. 밖에서 시달리고 가정에서 대우 받지 못하는 아버지들의 어깨가 축 처져 있다. 특히 50대는 부모를 모실 줄 아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식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첫 세대라는 점에서 서글픈 '낀세대'다. 직장에서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면서도 자녀 교육비에 자녀 부양까지 힘겨운 생활을 하는 세대다. 오늘은 어버이 날이다. 3중고에 시달리는 낀세대 아버지들도 흠뻑 격려받는 날이었으면 좋겠다.'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 '아버지의 최고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라는 걸 자식들은 알까 모를까.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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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2.05.08 23:02

전주 덕진연못

요즘 전주를 찾는 사람들은 무조건 한옥마을부터 들르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전주를 대표하는 명소는 덕진공원이었다. 덕진공원에는 넓은 호수가 있어 경관이 빼어났고 연인들끼리 보트도 탈 수 있었다. 또 인근에 한강 이남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도 구경거리였다. 지금은 전북대와 체련공원, 건지산 편백나무숲, 조경단, 소리문화의 전당, 혼불문학공원 등에 둘러싸여 오히려 왜소해진 느낌이 없지 않다.덕진공원의 핵심은 단연 덕진연못이다. 4만5000평의 공원부지 중 2/3인 3만 평이 연못이다. 호수 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현수교와 함께 여름 내내 호수 절반을 차지하는 연잎과 그 위에 하얗게 핀 연꽃은 장관이다.옛부터 덕진채련(德津採蓮)이라 하여, 전주 8경 중 하나였다. 풍월정에 앉아 저녁 노을과 달빛을 끼고 뜸부기 우는 호면(湖面)의 피리소리 실은 어화에 젖은 채 맞은 편 승금정을 내다보는 던진연못의 풍경을 이름이다. 단오에는 연꽃을 보고 창포물에 머리를 감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이같은 덕진연못은 언제쯤 생겼을까. 명쾌한 기록이 없긴 하나 몇가지 유래가 내려온다. 하나는 1100년 전인 900년,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면서 도성방위를 위해 늪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고려 때 이미 자연호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조선 초기에 전주 용왕제가 덕진연못에서 행해진 기록으로 보아 꽤 오래된 것만은 틀림없다.하지만 오늘날의 덕진연못은 풍수지리설과 관련이 깊다. 전주부성은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태로 북서쪽이 공허하여 지기(地氣)가 빠져 나간다고 생각했다. 이 지기가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건지산과 가련산을 제방으로 연결하여 연못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전라도관찰사를 지낸 이서구가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덕진공원은 일제때 호남갑부였던 박기순이 이 일대에 사설공원을 설치할 목적으로 1917년에 30년간 임대를 했다. 1927년 취향정을 짓는 등 여러 시설을 했고 1929년 전주시에 기부채납했다.그런데 이 덕진연못의 수질이 최악이라고 한다. 수질측정 결과 '등급 외'라는 것이다. 음악 분수대에서 나오는 물보라가 피부에 닿으면 질병이 우려되고, 심한 물비린내로 공원 이미지가 훼손될 지경이라고 한다. 서울의 석촌호수나 일산호수처럼 오염처리시설을 하루 빨리 갖춰, 사랑받는 공원으로 거듭 났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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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진
  • 2012.05.07 23:02

익산 왕궁리 유적의 진실

1971년, 일본에서 육조시대의 옛 문헌기록이 발견됐다.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관세음이 경험한 신비한 사례들을 모은 문헌이었다. 그런데 이 문헌에 백제 관련 기록이 담겨 있었다. "무광왕(백제 무왕)이 '지모밀지(枳慕蜜地)'라는 곳에 천도해 새로운 건축물들을 많이 지었는데 제석사에 벼락이 떨어져 석탑이 무너졌다. 초석부분은 남아 사리함를 열어보니 그 안 유리병에 있던 사리가 없어졌다. 무왕은 발정이라는 스님에게 일러 참회법회를 보게 했는데 이후 다시 보니 사리가 다시 놓여있었다. 이에 감격한 무왕은 사찰을 건립해 그곳에 사리함을 모셨다"는 내용이었다. 역사학계는 이 내용에 주목했다. 지난 65년,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해체 수리때 발견된 푸른 유리병을 담고 있는 사리함과 '금강반야경 ' 등과 비교해 그 내용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무왕이 건립했다는 제석사와 왕궁리 오층석탑이 있는 유적은 불과 1.3Km의 거리. 왕궁터의 비밀을 밝혀내는 단서가 된 이 기록은 백제 말 '익산 천도설'을 뒷받침 해줄 중요한 근거 중 하나다. 학계는 '무광왕'을 '무왕'(재위 600-641), '지모밀지'를 전북 익산시 금마의 옛 지명인 '지마마지'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익산의 금마와 왕궁면 일대 역사유적지구에는 백제 왕궁 터와 삼국시대 최대 사찰인 미륵사지,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알려진 쌍릉, 그리고 현존하는 백제 석불 중 최대의 석불이 있는 석불사 까지 많은 백제 유적이 남아 있다. 이러한 공간의 구조만으로도 왕궁터의 역사적 배경은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익산이 백제의 왕도였음을 증명해줄 '익산 천도설'은 여전히 미완이고 수수께끼다. '관세음응험기' 말고는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백제역사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다음 달에는 등재를 지원하는 추진단이 출범한다. 전북도, 익산시와 충남도, 공주시, 부여군이 함께 기금을 출연해 설립하는 이 추진단은 세계유산 등재 추진지원뿐 아니라 등재 이후 문화유산의 보존관리 업무까지 맡게 된다. 2010년 세계문화유산 잠재목록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2015년 본 등재가 목표다. 그런데 등재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왕궁터의 실체를 규명하는 일이다. 고고학적 발굴 성과로 왕궁 터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긴 하지만 천도의 진실은 아직 명료하지 않다. 기록과 유물이 없는 역사는 야사로 묻히거나 설화로 남는다. 왕궁터는 기록도 있고 유물도 있다. 역사적 실체를 드러내는 일만 남아 있는 셈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2.05.04 23:02

여류시인 이매창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라부안출신 조선중기 여류시인 이매창(李梅窓, 1573~1610)이 첫사랑 유희경을 그리며 쓴 유명한 한글시조 '이화우 흩날릴 제'다. 부안현 아전의 서녀로 태어난 매창은 시와 거문고에 능통했지만 출생의 한계 때문에 기생으로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시작(詩作)은 400여년을 뛰어 넘은 우리에게도 심금을 울리고 있다.북의 황진이, 남의 매창이란 말처럼 이매창은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여류시인으로 꼽힌다. 시인 신석정 선생은 황진이 서경덕 박연폭포의 '송도삼절'에 견주어 이매창과 유희경 직소폭포를 '부안삼절'이라 칭했다.당시 한시와 시조 가무 등에 다재다능한 매창의 소문은 전국에 알려졌고 같은 천민 출신으로 시재(詩材)에 출중한 유희경이 매창을 찾으면서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동병상련이랄까. 스무 살 꽃다운 매창과 스물여덟이나 더 많은 유희경은 첫 눈에 반해 시(詩)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노래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희경은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고 면천을 받아 양반으로 신분상승과 함께 관직에 나가 종2품 가의대부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런 유희경에 대한 소식을 접한 매창은 마음의 거리가 갈수록 더 멀어짐을 느끼면서 사무치는 그리움과 회한을 시로 승화시켰다. 15년의 긴 기다림 끝에 다시 만난 유희경은 열흘간의 짧은 재회를 뒤로하고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매창과 10년동안 교류했던 문재(文才) 허균도 매창이 죽자 2편의 시를 지어 그녀를 추도했다. 매창의 작품은 500여편이 넘는다고 전하지만 현재까지 시조 1수와 부안현 아전들이 구전되는 것을 모아 1668년 개암사에서 간행한 '매창집'에 수록된 한시 58수에 불과하다. 부안군과 부안문화원은 지난 2001년 매창의 묘지 주변을 정비해서 매창공원을 조성하고 매년 매창문화제를 열고 있다. 올해는 오늘부터 6일까지 부안 매창공원과 스포츠파크 일대에서 매창시비 제막식과 추모제 백일장 사생대회 등으로 꾸며진다. 또 미국 하버드대학에 보관중인 매창집 원본을 사진으로 처음 공개한다. 이번 주말엔 꽃비 속에서 400여년전 매창의 시심에 빠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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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순택
  • 2012.05.03 23:02

통합 셈법

왜 김완주지사가 전주 완주 통합에 나섰을까. 3년전만해도 무관심했던 김지사가 적극 나선 배경은 명분도 좋고 잘만 추진하면 큰 일 한번 할 수 있다는데서 비롯됐을 수 있다. 두번이나 전주시장을 역임했던 그로서는 통합의 필요성을 잘 알고 LH 유치 실패 이후 반대 여론을 잠재울 만한 아이템이 없던 터라 이를 붙잡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김지사의 통합 중재에 반신반의했다. 최규성의원은 물론 군 관내 기득권 세력들이 일관되게 반대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지사가 기회 있을 때마다 의지를 피력한 것은 우선 당장 LH 무산에 따른 반대 여론을 무마시키고 레임덕 방지 등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LH 유치 실패 이후 도가 중앙에 요구한 5가지의 실현 가능성이 낮아지자 국면돌파용으로 통합쪽에다 승부수를 걸었다.때마침 총선 결과가 좋게 나온 게 행운이었다. 그에게 정치적으로 부담돼온 정동영과 정세균이 서울로 떠난 이후 힘의 공백을 신예들로 대거 채워져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길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3선인 최규성과 이번 선거에서 혼쭐났던 김춘진도 조직면에서 김지사를 당해내기가 버거워 김지사 3선 진출이 한결 쉬워졌다. 다만 무소속 유성엽의 도전이 어떤 형태로 다시 이뤄질지와 LH책임론에 따른 퇴진운동을 어떻게 비켜 가느냐만 남았다. 최규성의 입지가 김지사의 선점효과로 좁혀진 것도 관심사다. 3선이어서 도지사에 출마하거나 상임위원장 자리나 대선 때 킹메이커 역할을 해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 나갈 수 있지만 항상 '형 문제'가 족쇄처럼 따라 붙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도당위원장인 김춘진도 30%대의 낮은 득표율로 도지사 선거전에 나설 동력을 잃었다.김지사의 통큰 결단 요구에 부담 가졌던 송하진 시장은 완주군에 큰 선물을 안겨줘 유약한 이미지는 벗었다. 김지사가 3선 출마를 포기하지 않는 한 송시장은 자력으로 지사선거에 나서기가 껄끄러워 오히려 통합시장 자리를 놓고 한판 승부를 벌여야할 것이다. 지사 관사에서 통합키로 해놓고 오락가락했던 임군수는 정치적으로 송시장과 대등한 관계를 형성,가장 큰 이득을 챙겼다. 통합시장이냐 아니면 국회로 나갈 것이냐가 그의 예상 진로다. 하지만 송시장에 비해 전주 국회의원 3인방과 인간적 끈이 약해 부담이 커 보인다. 아무튼 통합 3인방의 정치적 운명이 어떻게 결말날지 예측 불허다. /백성일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2.05.02 23:02

로컬푸드 직매장

요즘 유행하고 있는 로컬푸드(local food) 운동의 원조는 일본이다. 1981년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그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이른바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이 일본에서 펼쳐졌다. 이 운동을 로컬푸드의 시작으로 보는 게 정설이다. 당시에는 식생활 개선 차원이었지만 최근에는 농촌지원 활성화 차원에서 확대되고 있다. '지산지소'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농림수산성 산하 농림수산정책연구소의 시노하라 다카시 소장이다. 로컬푸드는 장거리 운송을 거치지 않은 반경 50㎞ 이내 지역농산물을 일컫는다. 유통단계를 생략해 직접 판매함으로써 소비자는 신선하고 믿을 만한 농산물을 값싸게 구입할 수 있고 생산자는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먹을거리는 농업이 세계화되면서 글로벌푸드화된 지 오래다. 글로벌푸드는 다량의 방부제가 첨가되고, 식탁에 오르기까지 온갖 감염위험에 노출돼 있다. 자원낭비와 공해유발도 심각하다. 더욱이 지역 고유의 전통음식과 식문화의 소멸을 알게 모르게 부채질한다. 이런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도 결국엔 로컬푸드다. 국내 로컬푸드운동의 원조는 완주군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멘토로 알려져 있다. 2008년 당시 자원순환운동을 벌이던 박 시장과 임정엽 완주군수 일행이 일본을 방문, 20∼30평 규모의 소규모 매장에서 생산자-소비자 직거래가 이뤄지고 호응도 컸던 것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미쯔노예끼'('길의 역'=街の驛)라고 부르는 직매장이다. '꾸러미 밥상'과 고산에 설립된 영농조합법인 '로컬푸드 건강한 밥상'은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작년 매출이 18억, 올해 목표는 50억원이다. 로컬푸드운동을 벤치마킹하러 전국에서 연간 200여팀 5000여명이 완주군을 찾고 있다. 이런 환경에 힙입어 국내 첫 로컬푸드 직매장이 지난달 27일 완주 용진농협에 개장됐다. 지역내 100여명의 농민이 신선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매일 아침 포장해 공급한다. 가격도 저렴하고 '1일 유통' 원칙을 지킨다. 협동조합인 농협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등한히 해 왔다. 완주군의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늦게나마 눈을 떠 다행이다. 농협이 생산자와 소비자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모델케이스다. 직매장을 개설할 곳이 도시 주변에 너무 많다./이경재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2.05.01 23:02

신경준 탄신 300주년

"하나의 근본에서 만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은 산이요, 만 가지 다른 것이 모여서 하나로 합하는 것은 물이다. …중략, (산은) 백두산으로 부터 12산으로 나누어지며, 12산은 나뉘어 8로(路)가 된다." 조선 후기의 뛰어난 실학자 여암(旅菴) 신경준(1712-1781)이 편찬한 '산수고(山水考)'의 첫 대목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국토의 뼈대와 핏줄을 이루고 있는 산과 강을 거시적인 안목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지리서로 꼽힌다. 흔히 백두대간 등의 명칭으로 조선의 산줄기를 정리해 널리 알려진 '산경표'의 모태라 할 수 있다.이 책의 저자 신경준은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출신으로 지리는 물론 어문학 등에 폭넓은 영향을 미친 대학자다. 그의 집안이 순창에 정착하게 된 것은 조선 건국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친은 공조참판을 지낸 신장으로 슬하에 5형제를 두었다. 세조때 영의정을 지낸 신숙주가 셋째요, 다섯째가 말주(末舟)다. 당시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고 정권을 잡자 말주는 벼슬을 버리고 부인의 고향인 순창으로 내려왔다. 이곳에서 귀래정을 짓고 시문을 벗삼아 지냈다.그의 부인 순창 설씨(薛氏)는 자질이 총명하고 문장력이 뛰어난 여인이었다. 그녀는 순창 강천산에 사찰을 짓는데 직접 권선문(勸善文)을 쓰고 아름다운 경치 속에 세워질 절의 그림까지 그려 서화첩을 만들었다. 이 서화첩을 돌려 시주를 권한 것이다. 보물 728호로 지정된 서화첩은 양쪽 표면과 내용이 16폭으로 되어 있다. 신경준은 말주의 10대 직계 후손으로 늦은 나이에 벼슬길에 올라 승지 북청부사 순천부사 제주목사 등을 역임했다. 하지만 그의 역량은 다방면에 걸친 저작물에서 빛을 발했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가장 깊이 문자론을 전개한 '운해훈민정음'(세칭 훈민정음운해)을 비롯해 '문헌비고'의 '여지고(輿地考)'를 썼고 '동국여지도'를 감수했다. 또한 일본증운(日本證韻) 거제책(車制策) 병선책(兵船策) 등 숱한 저작을 남겼다.그는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보다 50년 먼저 태어나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그 동안 저평가된 감이 없지 않다.마침 전북대와 순창군이 10월 5일 신경준 탄생 3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사학 문학 어학 과학 지리학 등 5개 분야로 나눠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크다./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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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진
  • 2012.04.30 23:02

영원한 영화인 탁광선생

전주국제영화제가 어제 개막했다. 2000년에 첫 막을 열었으니 벌써 열 세 번째다.'대안과 독립, 소통'이란 다소 낯선 주제를 내세우고 출발했던 전주영화제는 이제 주목받는 영화제로 성장했다. 전주영화제의 성장은 그 의미가 특별하다. 전주는 한국영화의 고향이다. 1950-60년대, 서울 충무로와 함께 지방으로는 유일하게 전주에서 영화가 제작됐다. 한국 전쟁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피아골'과 '아리랑'이 만들어졌고 최초의 컬러영화 '선화공주'와 '애정산맥''성벽을 뚫고''애수의 남행열차''붉은 깃발을 들어라' 등 당대의 흥행작 여러 편이 이곳에서 제작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주의 영화역사는 오랫동안 기억되지 못했다. 잊혔던 영화사를 되살리고 기록으로 만들어 우리 앞에 내놓은 사람이 영화인 탁광선생(1923-1999, 본명 탁형연)이다. 전북영화사의 산증인이었던 선생은 생전에 그 누구보다도 50-60년대 화려했던 전주영화의 부활을 갈망했다. 들여다보면 전주국제영화제가 만들어진 바탕에도 선생의 지치지 않는 열망과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해방직후 경찰에 투신했던 선생은 전주경찰서 후생극장인 백도극장 지배인을 맡으면서 영화기획, 제작, 극장경영은 물론 무대사회자와 심지어 변사로까지 활동했다. 1953년에는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영화제작에도 나섰다. 당시 전북에서의 영화제작 여건은 척박했지만 전북의 영화인들은 열정으로 뭉쳐 16㎜ 극영화를 만들어냈고 이 영화는 전국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도 여럿이었다. '선화공주'며 '피아골' 등 수편의 영화 제작 현장 중심에는 언제나 선생이 있었다. 영화 말고도 이 지역 문화예술 안팎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평생을 살아왔지만 '영원한 영화인'이 앞세워졌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선생은 부산과 부천에서 국제영화제가 만들어져 영화문화가 새롭게 꽃피우고 있는 것을 부러워했다. 그래서 늘 전주가 다시 한 번 한국영화의 꿈을 키우는 곳이 되어야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전주영화제가 개최된다고 했을 때는 "큰 꿈이 이제야 이루어졌다"며 기뻐했다. 그러나 선생은 전주영화제를 바로 눈앞에 두고 세상을 떠났다. "나이 들수록 마음이 조급해진다"던 선생은 말년, 기억을 더듬어 전북의 영화사를 구술과 기록으로 남겼다. 오랫동안 간직했던 빛바랜 사진과 가장자리 다 닳아진 포스터도 함께 놓였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2.04.27 23:02

정권 임기말 증후군

최근 잇따라 터지는 대통령 주변의 권력형 비리를 보면서 정권 말기가 어찌 그렇게 판에 박은 듯 똑같을까 하는 착잡한 생각이 앞선다. 마치 TV 사극의 재방송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번 장면은 과거 정권에 비해 등장인물이 매우 광범위하고 자주 등장한다.지난 2008년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씨가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자리를 받아주겠다며 30억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된 것은 친인척 비리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지난해 12월 제일저축은행 로비사건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처남인 김재홍씨와 동서 황태섭씨가 구속되었고 손위 동서인 신기옥씨는 최근 BBK 사건과 관련해 김경준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되는 '가짜 편지'의 배후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MB정권에서 '만사형통'으로 통하던 친형 이상득 의원 역시 저축은행 구명 청탁과 함께 4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의원을 그림자처럼 보좌해 온 박배수 보좌관은 지난해 말 제일저축은행과 SLS그룹으로부터 10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 의원은 이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19대 총선에 불출마했지만 여러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내곡동 사저 문제와 관련해서는 민주당의 고발로 김인종 청와대 경호처장이 엊그제 조사를 받은데 이어 아들 시형씨가 검찰조사를 앞두고 있다.측근비리는 지난해 초부터 불길한 조짐을 보였다. 이른바 함바집 비리사건으로 배건기 청와대 감찰팀장과 최영 강원랜드사장 장수만 방위사업청장 등 대통령 측근들이 옷을 벗은데 이어 대선캠프 법률지원단장과 BBK 대책반장을 맡았던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이 부산저축은행 사건으로 구속된 것은 서막 수준이다. MB정권 최고 실세로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는 '방통대군'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왕차관이라는 별명을 가진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이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 연루사실이 드러나면서 '본게임은 이제 시작'이라는 말도 나온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지난해 9월 30일 청와대 확대비서관 회의에서 발언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파이시티는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정권의 근간을 뒤흔드는 뇌관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다. 국민들로부터 박수 받으며 청와대를 떠나는 대통령이 언제나 나올지 아쉬움이 커진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2.04.26 23:02

전북인의 고민

도민들의 선택 폭이 제한돼 있다. 지금도 DJ나 노무현 그늘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411 총선서 무소속과 통합진보당에 2석을 내줬지만 그래도 다수가 민주통합당을 선택했다. 익산서 이춘석 의원만 78%로 과거처럼 높은 득표를 했을 뿐 나머지 8명의 민주당 당선자들은 정당지지도 65.57%를 밑돌았다. 표심이 변했다는 증거다. 그렇다고 민주당을 내팽개친 건 아니었다. 전주 완산을서 예측불허의 싸움을 벌였지만 MB심판론이 먹혀들면서 '미워도 다시한번이' 승리했다.이번 총선은 12월 대선을 가늠할 수 있어 그 의미가 컸다. 예상과 달리 여대야소가 만들어졌지만 수도권서 새누리당이 패배해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졌다. 친노가 민주당을 장악해 부산의 문재인 당선자와 김두관경남지사가 탄력을 받을 것이다. 너무 좌클릭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온 정동영의원은 강남을서 고배를 마셔 대선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가 경제민주화를 외치면서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는 모르지만 지지도가 낮아 예전 같은 정치력은 행사하기 힘들 것 같다.여야를 통틀어 신사로 알려진 정세균의원은 종로서 새누리당 홍사덕의원을 꺾어 정치적 입지가 한층 강화됐다. 친노진영과도 가깝고 당선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그가 이끄는 국민시대를 중심으로 대권행보가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문제는 전북 출신이라는 한계다. 경선과정서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세를 키워 나갈 수 있지만 지금까지 지지도가 너무 낮아 자칫 킹 메이커로 그칠 우려도 있다.연말 대선은 새누리당 대 민주당 1대1 구도로 갈 공산이 짙다. 이 대로 가면 51대 49로 결말 날 수도 있다. 아마 전북 유권자들은 이번 총선 때처럼 MB심판론을 내세우며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민주당 후보에 표를 던질 것이다. 정운천 후보가 애써 얻은 36%도 상당히 희석될 우려가 높다. 대선서 세대간 투표가 이뤄지겠지만 지역주의가 되살아 날 가능성이 높다.아무튼 도민 대다수가 대선 때도 총선 때처럼 민주당 후보를 지지할 전망이어서 대선 후보가 누가 되느냐가 관심거리다. 鄭丁 둘 중 하나가 되길 바라겠지만 그 가능성이 약하면 젊은층과 호남서 폭넓게 지지를 받는 안철수 서울대교수를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전북인의 고민은 그래서 생긴다. /백성일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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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2.04.25 23:02

꽃구경 단상

매서운 겨울을 이겨내고 매화가 피는가 했더니 목련이 피었다. 나무에서 피는 연꽃이라 해서 목련이다. 목련은 봄의 전령사다. 목련이 자태를 뽐내자 진달래가 수줍은 모습을 드러냈다. 진달래 피고 새가 울면은 두고두고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는 봄철이다. 지난주엔 벚꽃이 만개했다. 꽃구경을 나갔다. 전주천을 끼고 삼례로 이어지는 둑방길 벚꽃, 전주천변 벚꽃이 장관을 이루었다. 완주 화심에서 두부 한 모 먹고 소양 벚꽃축제에 갈려던 계획이 초입부터 찻길이 막혀 둑방길을 택했다. 그냥 놔두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할 터인데 축제란 걸 갖다 붙여 많은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꼴이 꼭 후진국이다. 내친 김에 전주∼금산사 길로 향했다. 벚꽃 색깔이 선명하고 곱기로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개화시기가 조금 일렀다. 다음을 기약했지만 엊그제 비바람에 벚꽃이 다 날리고 말았다. 벚꽃이 만개해 폼 잡을 즈음이면 꼭 비바람이 불어닥친다. 매년 그런다. 이젠 듬성듬성 막 피기 시작한 산 벚꽃이 유혹하고 있다. 꽃구경엔 가장 한국적인 가수 장사익의 '꽃구경'도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아들이 꽃구경을 가자며 어머니를 업고 산엘 간다. 어머니는 처음에 좋아라 하고 업혀 갔지만, 점점 길어지는 발걸음에 꽃구경이 아니라 '고려장'이라는 걸 알게 되고 솔잎을 뿌린다. 아들이 되돌아 가는 길 헤맬까 걱정하며 솔잎을 뿌리는 장면을 연상하면 애절하다. 이걸 장사익의 목소리로 읊조리니 눈물 흘리지 않을 사람이 없다. 꽃은 저절로 피는 게 아니다. 인고의 기간을 견뎌낸 뒤 꽃망울을 터뜨린다. 실은 나무의 순이나 눈은 이미 가을에 생겨져 있다. 가을에 이파리를 들어보면 새로 생긴 순들을 볼 수 있다. 나무는 봄을 위해 여름이나 가을부터 자신을 준비하고 겨울에 차가운 비바람을 맞으며 담금질하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사람들은 나무가 차가운 겨울바람에 자신을 담금질하듯 내일을 위해 미리 생명력을 준비하고 세찬 경험을 통해 자신을 담금질한 뒤 비로소 화려한 인생의 봄을 맞이한다. 화려한 봄날 꽃구경 한번 가지 못하고 보낸 세월이 많다. 막걸리 몇잔 걸치고 지난날을 곱씹으며 흥얼거려 보자. 한영애의 '봄날은 간다'가 제격이다. 한낮은 벌써 여름이다./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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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2.04.2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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