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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파(無黨派)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거나 모르겠다고 응답한 사람이 40%를 차지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0.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때 19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여론조사에서 이같이 드러났다. 다음으로 한나라당 32.7% 민주당 21.7% 민노당 3% 국민참여당 1.4% 진보신당 1.3% 순으로 나타났다. 이미 최대 정파로 자리잡은 무당파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돌풍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서울 뿐 아니다.도내 민심도 빠르게 변했다. 남원시장과 순창군수 재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겼으나 내용면에서는 졌다. 남원시장 선거는 무소속 후보의 난립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이겼고 순창은 유력한 무소속 후보가 후보 매수 혐의로 구속돼 96표차로 신승했다. 종전 선거와는 판이하다. 이제는 민주당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간 민주당은 전북 등 호남에서는 말뚝만 꽂아도 당선은 떼논 당상쯤으로 여겼다.하지만 지금은 천만의 말씀이다. 민주당이 도민들과 젊은층으로부터 지지를 못 받는 이유는 민주당이 내세우는 가치가 현실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과거 전력만을 믿고 반 한나라당 정서에 호소하면서 자신들이 다시 새로운 대안이 돼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 웃기는 일이라는 것. 김대중 노무현정권을 거치면서 민주당의 이미지가 오늘의 한나라당 만큼이나 낡아 빠졌기 때문이다.지금 전북의 장래를 걱정하는 도민들은 ‘그간 도내서 줄곧 여당 역할을 해온 민주당이 지역발전은 고사하고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의지도 없는 세력이라’고 비판한다.‘과거 민주화운동의 후광으로 얻은 이미지만이 전부인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과거와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일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야권대통합을 통해 변화와 혁신을 가져오므로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항변할 것이다.그렇지만 도민들은 현역들을 갈아 치우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다. 민주당을 먼 옛날 시발택시 같은 고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주자 지지도에서 안철수서울대교수가 부동의 1위를 전북에서도 지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선거가 닥치면 어떤 여론이 형성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은 등소평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처럼 쥐 못잡는 고양이는 팽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백성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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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1.11.30 23:02

아웃도어 가격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학생을 보면 다 등산가는 줄로 안다. 하나 같이 아웃도어를 걸쳐 입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학생, 주부 너나 할 것 없이 아웃도어 열풍이다. 이젠 외출할 때는 물론이고 예식장에서도 아웃도어 하객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등산 갈 것도 아니면서 비싼 돈 주고 기능성 아웃도어로 치장하는 건 문제다.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아웃도어 매출액은 지난 2009년 2조2000억 원, 지난해 3조 원대, 올해는 4조3000억 원대로 급성장했다. 최고의 호황이다. 지난해에는 `노스페이스`가 아웃도어 브랜드 사상 최초로 매출액 5000억 원을 달성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 브랜드인 노스페이스는 원래 부도난 기업인데, 영원무역 자회사인 골드윈코리아가 1997년 우리나라에 도입해 라이선스 형태로 운영하는 브랜드다. 아웃도어를 등산 전용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각인시켰고 10대 청소년들한테 대박난 게 주효했다. ‘토종’ 코오롱스포츠가 바짝 뒤쫓고 있다.그런데 가격이 너무 비싼 게 부담이다. 기능성 재킷과 셔츠, 속옷, 배낭, 바지, 등산화까지 차리고 나서면 200∼300만 원대에 이른다. 이런 차림이라면 히말라야 등반에 나서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등산객들끼리 농담을 던진다. 아웃도어가 비싼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기능성 의류는 일반적인 천연소재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개발한 신소재 원단이다. 고어텍스(Gore-tex) 같은 건 미국 고어사가 개발해 특허를 갖고 있기 때문에 고어사에 로얄티를 주어야 한다. 또 제조사 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브랜드 광고비와 광고 모델로 내세운 인기 연예인 몸값이 비용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백화점 판매 수수료율도 평균 33%에 이른다. 알게 모르게 이런 비용이 다 제품가격에 반영돼 있다. 그러나 가격 뻥튀기기도 있는 모양이다. 제조사가 일정 가격을 유지하도록 대리점들한테 압력을 넣는다는 것이다. ‘비싸야 잘 팔린다’는 고가판매 전략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8개 아웃도어 제조사를 대상으로 이런 의혹에 대해 조사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이 기회에 소비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잘못된 가격구조를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제품의 질이나 가격 등은 비교해 보지도 않고 무작정 브랜드만 보고 선택하는 소비심리가 더 큰 문제이긴 하지만./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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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1.11.29 23:02

일본의 에도시대

일본에서 가장 평화스러웠던 시대는 ‘에도시대’였다. 그리고 조선과 일본이 서로 평화를 유지하면서 좋은 관계를 지속했던 시대도 역시 일본의 에도 시대, 250년이었다. 우리는 흔히 임진왜란을 연상하면서 일본을 앙숙으로만 알고 있는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국립 전주박물관이 지난 18일부터 27일까지 문화 체험 전시실에서 특별전으로 ‘평화와 번영: 에도시대 이시카와 문화전’을 열었다. 일본의 대명(大名)이란 서양의 중세시대의 영주(領主)와 같은 존재들인데 이들이 입었던 갑옷 그리고 조선 통신사들의 유물도 전시됐다고 한다.임진왜란이 끝난후 조선에서는 일본을 가리켜 ‘불구 대천지 원수(不俱戴天之怨讐)’라고 했는데 이말은 하늘을 같이 처다보면서 살 수 없는 원수라는 뜻이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정권을 다시 잡은 사람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세키카 하라’ 전투에서 승리한후 일본의 통치자가 됐다.그는 임진왜란에 참가를 하지않은 노회(老獪)한 영주였던것 같다. 그는 일본의 통치권자가 된 후 경직된 조선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임진왜란에는 자기는 참전하지 않았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조선은 임진왜란때 강제로 잡혀간 조선의 포로들을 데리고 올겸해서 결국은 에도시대 250년간, 12차례 사신단을 일본에 보내기도 했었다 1607년 조선 통신사의 부사로 일본에 갔었던 경섬의 기록이 바로 ‘해사록’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정사는 여우길, 종사관은 정호관이었으며 일행은 504명이었다. 이들의 정식명칭은 ‘회답겸 쇄환사’였다. 통신사 일행은 1607년 1월12일, 조정에 하직인사를 하고 한양을 출발 2월 27일에 부산에서 배를 타고 대마도로 건너갔다.3월 3일부터 20일까지 대마도 이즈하라에 머문다음 시모노세키로부터 세토나이 항로를 거쳐 오사카, 교토에 이르러 에도, 즉 지금의 도쿄에 도착한 것은 5월 24일이었다. 이와같은 일본과의 교린은 1604년 사명대사, 유정과 손문욱이 화친을 위해 대마도를 방문한후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조선과 평화적 관계를 맺었던 에도시대를 일본은 배워야한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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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1.28 23:02

오페라 ‘라보엠’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La Boheme)’은 요즘처럼 스산한 계절에 맞는 작품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랑이 싹텄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비극적으로 사랑이 끝난다는 배경 때문이다. 토스카, 나비부인과 함께 푸치니의 3대 명작으로 꼽히는 라보엠은 1896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초연됐다.4막으로 된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1830년대,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보헤미안 기질을 가진 예술가들의 방랑과 우정, 사랑을 그리고 있다.이 가운데 백미는 가난한 시인 로돌프와 수 놓은 처녀 미미의 사랑이다. 이웃에 사는 이들은 촛불을 붙이려 왔다 사랑이 싹트지만 지독한 가난과 질투 때문에 헤어진다. 그리고 1년 뒤 다시 만났으나 폐결핵이 깊어진 여주인공 미미는 끝내 숨지고 만다. 이 과정에서 그 유명한 ‘그대의 찬 손’과 ‘내 이름은 미미’라는 아리아가 불려진다. ‘그대의 찬 손’은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 세계 최정상의 테너들이 불러 더욱 유명세를 탔다.가난한 시인 로돌프의 방에서 미미는 촛불을 붙여 나가다 그만 열쇠를 잃어버린다. 다시 들어 와 열쇠를 찾으려다 불까지 꺼져 버린다. 로돌프는 이미 열쇠를 찾았지만 못찾은 척 하고 같이 열쇠를 찾기 위해 더듬거리다 잡게 된 미미의 찬 손…. 어둠 속에서 그 찬 손을 잡으며 “처음 만났지만 그대를 따뜻하게 해 주고 싶어요”라고 고백한다. 당신으로 인해 사랑의 희망이 생겼다는 조심스럽고 가슴 설레는 아리아다. 이에 ‘내 이름 미미’는 “흰 눈을 녹이는 봄의 첫 햇살을 제일 만저 받는다”며 수줍은 듯 화답한다.이 라보엠이 호남오페라단 창단 25주년 기념으로 지난 18~20일 한국소리문화전당 모악당에 올려졌다. 특별히 이번 무대에는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라스칼라 주연가수 2명이 동참해, 성가를 높였다. 주인공 로돌프와 미미 역이다. 거구의 이들 주역은 풍부한 성량으로 무대를 팽팽하게 만들었다.2000여 석을 꽉 채운 무대는 전주지역 공연예술단체들이 총출동하다시피 했다. 오페라단원은 물론 전주시립합창단과 전북연극협회, CBS소년소녀합창단 등이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판소리 등 국악의 탯자리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최근 민간 오케스트라로 새롭게 출발한 클나무필하모닉 등과 함께 왕성한 활동으로 전북의 음악판이 질적·양적으로 풍성해졌으면 싶다.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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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진
  • 2011.11.25 23:02

중앙병(中央病)

정운찬 동반성장 위원장이 지난 20일 이명박 대통령이 동반성장 의지와 더불어 양극화문제를 해결하려는 결연한 의지가 없는것 같다고 하면서 위원장 사퇴 등 중대한 결단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사회의 양극화 문제는 심각한 수준에 와있다. 서울에서만도 반(半)지하에서 생활하는 가구가 무려 15만 가구라고 한다. 1가구당 5명으로 계산한다면 약 75만명이 열악한 주거 환경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강남은 먼나라쯤으로나 보일것이다. 서울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서울의 지나친 비대증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원들도 선거철에만 지역구에서 부산을 떨뿐 낙선하면 대부분 서울에 정착해 서울시민이 돼버린다. 국회의원에 낙선한 뒤에도 고향에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국인들은 유달리 중앙을 좋아한다. 오래전에 지방도시의 각종 간판을 조사한바 있는데 가장 선호하는 상호(商號)가 ‘중앙’이요 다음이‘서울’이었다고 한다. 예를 든다면 ‘중앙식당’ ‘중앙상사’ ’중앙 유치원’식이다. 서울권 인구가 1000만명 넘는 이유도 바로 한국인의 ‘중앙병’이 그 원인의 하나이다. 한국인의 중앙병은 삼면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를 정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통일 신라 이후 외곽으로 진출하려는 원심력은 줄어들고 가운데로만 파고만 들려는 구심력이 반비례해서 더욱 커져 버린 것이다. 삼국시대 이후 우리나라는 중앙집권제로 통치되다 보니 정치 경제 문화가 중앙인 서울로 집중된 것이다.그래서인지 우리 한국사람들은 감정이나 용기나 지혜도 신체의 중심부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뱃심이 좋다든지 배짱이 좋다드니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드니 담이 크다드니 하는 것이 모두 이런 식인 것이다. 신라 진평왕때 설계두라는 청년이 골품제니 문벌만을 따지는 신라땅에서 답답해서 못살겠다고 하면서 서쪽으로 가서 비상한 공을 세워 천자옆에서 호령하고 싶다고 하면서 신라를 떠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기록상으로도 먼 인도로 순례를 떠난 스님만도 혜초를 바롯해서 10명이 있다고 한다. 중앙병은 개척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서울 중심적 중앙병 이대로는 안된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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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1.24 23:02

사랑의 실천

그 사람의 인물됨됨이를 평가할 때 재산 유무는 중요한 잣대다. 특히 선출직이나 공직자들의 재산형성 과정을 보면 그 사람의 살아온 내력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부동산 투기를 해서 큰 돈을 벌었는지도 알 수 있다. 국회의원에 나설 사람이면 부동산 투기 만큼은 안해야 옳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개발 정보를 빨리 알아차려 부동산을 사서 돈만 벌면 그만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국회의원 하겠다고 들먹인다. 한마디로 웃긴다.민주당 국회의원의 평균 재산은 18억 4300만원이다.도내 출신으로는 신건 의원이 94억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정세균, 조배숙, 강봉균, 김춘진 의원이 평균을 넘었다. 이춘석과 유성엽의원은 3억대로 하위권이다. 국회의원들은 돈에 관해서는 안전장치를 확실하게 만들었다. 후원금을 모을 수만 있지 축·부의금을 받는 사람이 10배의 과태료를 물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국회의원 재산이 해마다 늘어 나는 이유를 알 것 같다.예로부터 가난하게 사는 걸 부끄럽지 않게 여긴 선비들이 많았다. 가난하면 유혹을 물리 치기가 쉽지 않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당장 끼니 때울 것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런데도 선비들은 청렴하게 공직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쳤다. 돈은 잘 써야 탈이 안난다. 정당하게 벌어서 잘 써야 존경 받는다. 정치도 똑같다.남의 돈 갖고 정치하려다 결국은 패가망신하고 만다.그런 점에서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자신의 재산 절반을 사회에 환원한 것은 귀감(龜鑑)이 되기에 충분하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나눔과 섬김이다. 환원액수가 1500억원이라는 사실도 놀랍지만 어려운 이웃의 교육을 위해 내놓은 점이 더 눈길을 끈다. 정치를 하든 안하든지간에 이미 그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훌륭한 일을 했다. 말로만이 아닌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천했다.안 교수의 재산 환원은 우리 사회에 깊은 감명을 줬다. 당장 대권주자들한테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한수 가르쳐 준 셈이 됐다. 따라서 하기도 그렇고 안하기도 그렇고 참 어중간한 사람들이 됐다. 안교수가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이유는 진정으로 사랑을 실천한 사람이었기에 더 그렇다. 도내 정치인들도 깝죽거리지 말고 안 교수처럼 통크게 자신을 비워 나눔에 동참했으면 한다. 백성일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1.11.23 23:02

분열의 정치

“김생기 시장님 축사가 있겠습니다. 나오셨습니까?” 아무런 응답이 없자 불참을 확인한 뒤 “(오산에서) 제 출판기념회 때에는 오산 시장님이 나오셔서 노래하고 춤도 추면서 통 큰 정치를 했는데…. 엄중한 메시지를 담은 박수를 부탁합니다.” 지난 17일 국회 유성엽 의원의 ‘정읍의 길, 대한민국의 길, 나의 길’ 책 출판기념회가 열린 정읍 국민체육센터. 1500여명의 축하객들이 찾아왔고 실내에는 1000여명이 앉아 있었다. 사회를 보던 민주당 안민석 의원(경기 오산·45)이 참석한 인사들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김생기 정읍시장을 호명하면서 장내 하객들한테 한 말이다. 짝짝짝, 박수가 터져 나왔다.안 의원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재선 의원으로, 유 의원의 부탁으로 사회를 맡았다. 안 의원은 그러면서 “(유성엽 의원은) 민주당이 품어야 할 사람이라고 다들 말한다”고 말했다. 당연히 복당해야 할 인물인데 복당이 안되고 있다는 투로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유성엽 의원은 다 아는 것처럼 김원기 전 의원과의 갈등으로 민주당을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1월12일 정동영, 신건 의원과 함께 복당원서를 제출했으나 민주당은 유 의원의 복당을 불허했고 지금까지 무소속으로 남아 있다. 관계가 껄끄럼한 김생기 시장이 유성엽 의원의 출판기념회 자리에 참석할 리 만무하고, 이런 걸 너무나 잘 아는 안민석 의원이 조크를 던진 것이다. 원고에 나와 있지 않은 것이라며 오해하지 말라고 당부까지 했다. 민주당은 민주당 공천 후보와 싸워 이긴 무소속의 정동영 신건 의원을 복당시켰고, 전주 완산 갑 지역구의 경우 민주당 경선에 참가했다가 떨어지자 탈당한 뒤 무소속 후보를 도왔던 사람까지도 복당을 허락했다. 이런 민주당이 유독 유성엽 의원만은 복당을 시키지 않고 있다. 분열의 정치가 계속된다면 지역민심이 갈라지고 김원기 전 의원의 정치적 명성도 훼손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 통합과 혁신을 외치고 있다. 손학규 대표는 그제 “우리 안의 작은 사욕, 당리당략을 내려놓자.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대의를 보고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작은 지역 하나 통합시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민주세력 대통합을 실현하겠다는 건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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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1.11.22 23:02

화폐 전쟁

우리는 미국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미국은 미국의 일부에 불과하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코끼리는 그 전모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외국인이 한국생활을 5년쯤 하면 한국을 대충 알수있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그만큼 마국사회가 깊다는 이야기이다.미국의 화폐인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가 된지는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는다. 기축통화의 역사를 보면 BC 5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지중해권의 기축통화는 ‘은화(銀貨) 드라크마’였고 17세기 세계 무역의 기축통화는 네덜란드의 ‘길더’였으며 18세기에는 영국의 ‘파운드’가 세계무역의 기축통화였다. 20세기에 와서 미국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정치적 파워 때문에 달러가 세계무역의 기축통화가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천문학적 재정적자는 달러의 위상을 다시 생각게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달러의 정체를 잘 모르고 있다. 반면에 중국의 위안화가 떠오르고 있다. 근래에 “쑹훙빈”이라는 중국사람은 ‘화폐전쟁“이라는 책을 써서 베일속에 감춰진 미국의 속살을 폭로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미국의 달러와 직접 관계있는 ’미연방 준비은행’에 대해서이다. 쑹훙빙에 의하면 오늘날까지도 ’미연방 준비은행‘이 사실상은 개인들이 운영하는 ’민영 중앙은행‘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것이다. ’연방‘이라는 단어가 붙어있을뿐 ’미연방 준비은행 (Federal Reserve Bank,)‘은 ‘연방’도 없고 ‘준비금’도 없으며 그래서 ‘은행’이라고 할수도 없다는것이다. 그에 의하면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미국 정부가 달러를 발행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에는 화폐를 발행할 권한이 아예 없다고 한다. 1963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후로 미국 정부는 그나마 남아있던 ‘은 달러’의 발행권마저 박탈당했다는 것이다.미국 정부는 달러가 필요할 경우 국민들이 납부할 세금을 민영은행인 ‘연방준비은행’에 담보로 잡히고 ‘연방 준비은행권’을 발행케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달러’라 한다. 이상하게도 연방준비은행의 이런 성격과 내력을 논의하는것을 미국 학계와 언론계의 금기시 하고 있다고 한다. 이상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달러의 실체에 대해서 놀라지 않을수 없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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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1.21 23:02

오송회 사건

오송회(五松會)…소나무 밑에서 5명이 모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만 얼핏 들으면 꽤 낭만적으로 들린다.하지만 이는 29년 전, 전북에서 있었던 권력에 의한 만행의 다른 이름이다. 시집 한 권 때문에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인권을 철저히 짓밟힌 용공조작 사건이기 때문이다.이 사건은 1982년 군산시내 한 버스에서 발견된 오장환 시집‘병든 서울’의 필사본이 발단이다. 도종환 시인에 따르면 사연은 이렇다. 이 책은 군산 제일고 교사였던 이광웅 시인이 신석정 시인 집에서 빌려 와 필사한 것이다. 이를 동료교사가 복사했고 한 제자가 빌려가 버스에 두고 내렸다. 버스 안내양이 이 유실물을 경찰에 갖다 주었는데 경찰은 전북대 철학과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 교수는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 등의 구절을 지적하며 “지식인 고정간첩이 복사해 뿌린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러자 경찰은 내사를 시작했고 시집 겉장에 싼 종이가 인문계 고교 국어시험 문제지인 것에 주목했다. 석달 이상을 추적한 끝에 독서클럽을 꾸린 교사 등 9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전주 대공분실 지하실로 끌려가 북한과의 연계, 광주항쟁과의 관계 등을 추궁당했다. 당시 40일간 통닭구이 고문, 물고문, 전기고문 등을 반복해서 받았다.실제로 이들이 한 행동은 그 해 4월 19일 학교 뒷산에서 4·19가 기념일에서 제외된 것을 한탄하며 막걸리를 마셨고 이때 5·18 얘기가 나와 희생자를 위해 잠시 묵념을 드린 것이 전부였다.이후 전주지검은 이들의 허위 자백을 그대로 법원에 갖고 갔다. 1심 판사는 이들을 대부분 풀어줬다. 그 보고를 받은 전두환 대통령은 “빨갱이를 풀어 주는게 법관이냐?”고 불호령을 내렸고 이들은 다시 구속돼 2심에서 1-7년 형을 선고 받았다. 1심 판사는 옷을 벗어야 했고 2심 판사는 승승장구해 헌법재판소 재판관까지 올랐다. 그 후 이들의 삶은 신산고초 그 자체였고 일부는 세상을 등졌다. 진실화해위는 2007년 “국가는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킬 것”을 권고했고, 이듬해 광주고법은 재심에서 관련자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법원을 대신해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그리고 대법원은 지난 10일 “국가는 피해자들에게 15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시 있어선 안될 야만 시대의 국가폭력이었다./조상진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조상진
  • 2011.11.18 23:02

잘못된 교육

학교교육과 가정교육, 이 두가지 교육이 모두 망가져 가는 것이 오늘의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특히, 여권(女權)이 강화되고 신장되는 과정에서 가정교육은 거의 실종상태에 놓여있다. 옛날에는 학교 육성회를 ‘학부모회’ 또는 집안 형님도 부모 역할을 한다고해서 ‘학부형회’라고 불렀다.그러나 지금은 아예 아버지들이 학교 육성회에 잘 나오지를 않고 어머니의 입김이 세다보니 학교 육성회는 ‘자모회’라는 명칭으로 변했다. 그리고 요즈음 자녀들 인내심이 극히 부족한 이유중의 하나는 부모들이 자기주장을 너무 내세워 말다툼을 하는 광경을 자주 보기때문이라는 지적도있다. 옛날에는 어머니쪽이 참았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TV 드라마를 보면 여자쪽의 목소리가 더 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중산층 이상의 부모가 자녀들의 일에 너무 많이 개입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렇게 되면 어린아이들이 주인의식을 잃는다는 것이다. 자녀들의 실수를 옆에서 지켜만 봐주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실수를 통해서 자녀들은 배우고 느끼는것이다.도덕교육은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없다. 오로지 공부만 잘하라고 한다. 예를들어 옛날에는 애들이 밖에서 싸우고 들어오면 예전의 어머니들은 차라리 맞는것이 이기는 것이다 라고 가르쳤지만 지금의 젊은 엄마들은 바보같이 맞지말고 피를 내서라도 이기고 오라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를 감싸주라고 가르치는것이 아니라 그런 애들하고는 놀지말라고 가르친다는 것이다.이런식의 교육이 사회를 폭력사회로 만드는 것이다.약자에 대한 배려의식이 부모에 대한 효심도 낳는것이다. 그것을 젊은 엄마들은 모르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왕따현상과 폭력사태는 모두다 가정교육과 관계한다. 학교교육에서 체육시간이 별로 없는것도 문제이다. 한창 성장기에 몸 운동을 하지않으니 비만, 그리고 뇌발달에도 지장을 준다.영어 조기교육도 문제이다. 유치원때부터 우리 언어권과는 전혀 다른 영어를 가르치면 뇌발달에도 많은 지장을 준다는 주장을 경청해야한다. 우리 교육은 성공하는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라기 보다는 남을 딛고 군림하는 출세(出世)의 인간을 목표로 하는 약육강식형 교육일 뿐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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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1.17 23:02

기형적 정치구조

눈길을 밖으로 돌리면 각 지역마다 난리법석이다. 부산과 거제도를 이어준 8.2㎞의 거가대교만해도 그렇다. 20년 걸친 새만금 사업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6년만에 2조2천345억을 들여 완공했다. 부산 해운대와 광안리해수욕장은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돼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변했다. 고운 최치원선생이 머물렀던 해운대는 2005년 아시아 태평양경제협의회 정상회의(APEC) 개최 이후 국내외 관광객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전북은 지난 20여년간 발전의 사각지대가 됐다. 주변이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마치 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편 이조 말 같다. 특정 정당 하나만 매달린 결과가 결국은 고도(孤島)를 만들었다. 남이 만든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든 셈이다. 전북은 새만금사업 하나만 덩그러니 매달려 왔다. 마치 오헨리의 작품 ‘마지막 잎새’처럼 새만금 사업이 어느덧 숙명이 됐다.전북이 새만금사업 한가지에만 매달려 있는 동안 다른 지역은 엄청나게 발전했다. SOC 확충을 통한 기업유치에 박차를 가했기 때문이다.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 많은 기업을 유치했다. 원래 인구가 늘면 그 지역이 발전하는 것이다. 돈이 잘 돌아 장사가 잘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북은 어떠한가. 밤 10시가 넘으면 전주는 죽은 도시다.야간 경제활동 인구가 많지 않아서인지 도시가 활기가 없다. 어둑 컴컴한 분위기가 축 쳐진 느낌을 준다.‘슬로시티’ ‘조용한 도시’를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다.그 러나 연중 거룩하고 고요한 밤이다. 백제로 기린로 팔달로 등 에 고층건물이 없고 그나마 있는 건물도 불 꺼진 항구 같다. 구 도청과 한국은행 등 구시가지는 적막강산이다. 원래 관공서 주변이 그렇지만 도청과 교육청이 옮겨간 이후에는 죽은 지역이 됐다. 건설의 굉음이 사라진지도 오래다. 군산 익산 정읍 남원 김제시도 다 그렇다.기업유치 여건이 안 좋고 정치적으로 중앙과 연결고리가 없어 더 힘들다. 문제는 전북도나 지역 국회의원들이 지역 문제가 안풀리면 무작정 정부측에 그 책임을 전가시키기 때문에 더 일이 안된다.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가지고 놀기 좋은 ‘꽃놀이패’나 다름 없다. 지금처럼 민주당 일당 체제의 정치지형을 그대로 유지하면 발전 할 수 없다.중앙에 통로를 마련할 수 있는 정치 구조를 만들어야 지역에 희망이 생긴다.백성일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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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1.11.16 23:02

‘아시아적 가치’

1970~1980년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 요인을 유교적 가치에서 찾았던 적이 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龍)’으로 불린 한국·홍콩·타이완·싱가포르 등 신흥공업국들의 경제성장이 아시아의 뿌리 깊은 유교적 전통에 기인한다고 보고 이를 서구 학자와 언론이 ‘아시아적 가??箚?주장했다.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일부 국가들이 구제금융을 받게 되자 이들은 “아시아의 기적은 사라졌다.”며 폄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시아 경제는 1년도 채 안돼 다시 살아났다. 사실 영국이 산업혁명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아시아가 세계 중심이었다. 중국과 인도는 경제력과 군사력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된 지역이었다. 세계 4대 발명품인 화약·나침반·제지·활자기술 등 당시 최첨단기술과 산업이 모두 아시아에서 꽃피워졌다. 그러던 것이 산업혁명과 해양무역, 자동차경제, IT와 금융혁명 시대를 거치면서 미국의 시대를 만들었다. 그렇긴 해도 지금은 중국과 한국, 일본, 타이완 등 아시아가 제조하는 물건이 없으면 서방세계의 슈퍼와 마트는 지금 당장 모두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메이드 인 아시아’에 의존하는 상황이 됐다. 그 중심에 옛 맹주였던 중국이 다시 서 있다. 미국과 중국이 지금 아시아 지역의 패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무역 군사 식량 등 어느 것 하나 녹록한 게 없다. 그들의 영향력은 드러나 있는 것 이상으로 크다. ‘아시아에 가장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을 물었더니 미국 대통령(53%)과 중국의 국가주석(42%)을 꼽았다. 하지만 정책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았다. 중국과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에 대해서는 각각 71%와 49%가 불만족스럽게 생각했다. ‘만족’은 각각 2%와 6%에 그쳤다. ‘아시아적 가치 공유’를 모토로 지난 11일 창간한 AsiaN(www.asia-n.asia)이 아시아기자협회와 함께 전북일보 등 한국의 신문· 통신·방송사와 인터넷신문 기자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반응이다. AsiaN(발행인 이상기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은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최초의 온라인 매체다. 영향력은 인정하되 정책에 대해선 불만이라면 한국은 정책마다 고단수의 외교능력을 발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지도자들이 할 일이다. 그런데 FTA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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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1.11.15 23:02

노년의 행복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거의 80세가 되면서 노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가 세간의 화두가 되었다. 오래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행복하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자연 수명보다 건강수명이 더욱 중요하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노년의 행복 조건으로 첫째는 건강, 둘째는 품위있게 지낼 수 있는 적당한 돈, 그리고 셋째는 대화를 나눌수 있는 친구, 넷째는 원만한 가족관계를 들었다.위의 네가지 조건중 하나 하나가 쉬운 조건이 아니다.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수 있는 친구를 갖는 것도 어려운 일이며 원만한 가족관계를 유지하는것 역시도 만만치 않은일이다. 얼마전에 시인 신달자씨가 남이섬에서 ‘제2회 독서 나눔 콘서트’를 열고 노년의 삶에 대해서 강의를 한 바 있다. 그 강의에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 같다. 앞으로 평균수명은 더욱 늘어날 것을 예상하면 혼자 노는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 노는법이란 무엇인가. 바로 책을 읽는 독서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여자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습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우리 교육은 독서를 기피하게 만들었고 참고서 위주의 교육과 암기위주의 교육이 독서를 질리게 만든 것이다. 책 읽기를 싫어하다 보니 깊게 사고하는 것을 귀찮게 생각하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신달자씨의 지적대로 우르르 몰려다닌다는 것이다.어떤 농담에 조폭과 한국 아주머니의 공통점을 들었는데 첫째는 떼지어 다니다는 점, 둘째는 용감하다는 점, 셋째는 형님이라고 부른다는 점, 넷째는 칼을 쓴다는점 다섯째는 조폭은 몸에 문신을 하고 아주머니들은 눈썹문신을 한다는 점이다. 성인의 독서율이 점차적으로 감소추세에 있다는 조사도 있다. 지난해 10명 가운데 3명은 책을 한권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독서를 통해 정보를 얻기보다 TV나 일반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독서는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것이며 자기성찰의 기회를 갖는것이다. 노년의 생활속에서 대화 상대자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도 독서는 필요하며 또 우리 삶의 영역을 넒혀주는 것이다. 독서에 대한 교과서적인 정의가 되겠지만 이것이 노년의 행복을 지켜주는 중요한 방법임을 새삼 인식해야 할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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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1.14 23:02

매창(梅窓)

‘부안에 가거든, 격포의 일몰과 내소사, 월명암의 달빛만 보고 오지 말기를. 부탁하노니, 찾는 이 하나 없고 울어 줄 이 하나 없는 두 여인의 무덤에 꽃 한 송이씩 바쳐주기를. 푸르른 나이에 외롭게 떠난 시인 이매창과 명창 이중선의 묘소는 서로 지척이니 한번 들러 혼백이나마 위로해 주기를. 세월은 험해도 소쩍새는 울더라고, 이승의 시절 안부나마 전해 주기를…’1990년대 말 장안의 지가를 올렸던 김병종 교수(서울대 미대)가 ‘화첩기행’에 올린 글 중 일부다. 화려하면서도 정감이 뚝뚝 묻어나는 문체다.하지만 하나 틀린게 있다.‘찾는 이 하나 없다’는 대목이다. 기녀(妓女) 매창은 처음에 공동묘지에 쓸쓸히 묻혔다. 그러나 400년이 지난 지금, 그 자리는 매창공원이 들어서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1573년 부안에서 아전인 이탕종(또는 양종)의 서녀로 태어난 매창은 조선조 최고의 여류시인이었다. 흔히 북의 황진이, 남의 매창이라 했듯 그녀는 시조와 한시, 거문고에 능했다. 그녀와 10년 동안 교분을 나눴던 허균의 ‘조관기행(漕官紀行)’에 따르면 그녀는 ‘얼굴이 비록 아름답지는 못했지만’ 재주와 정취가 뛰어났다. 그래서 첫 만남에서 ‘하루 종일 술을 나눠 마시며 서로 시를 주고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불세출의 문장가 허균은 매창이 죽자‘한 바탕 운 다음’ 2편의 시를 지어 그녀를 추도했다.또한 매창은 같은 천민 출신으로 시재(詩材)에 출중한 유희경과는 시와 사랑을 함께 나누었다. 그녀가 남긴 유명한 시조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는 그를 생각하며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매창의 작품은 500여 편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후손이 없어 사라질 뻔한 것을 사후 58년 뒤, 부안 아전들이 구전으로 전하는 것을 모아 개암사에서 ‘매창집’으로 간행했다. 여기에 그녀의 한시 57편이 전해진다. 그녀는 죽어 부안읍 봉두뫼 공동묘지에 묻혔고 이곳이 소위 ‘매창뜸’이다. 부안군은 1997년에 다른 분묘들을 이장하고 이 일대 5000여 평에 매창공원을 조성했다.최근 부안에 석정문학관이 개관했다. 한국 서정시의 굵은 끈을 이어 온 석정은 1958년 매창집을 대역(對譯)한 바 있다. 두 시인 사이에는 300년 이상의 차이가 나지만 변산반도의 정서가 흐르는 듯하다.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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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진
  • 2011.11.11 23:02

정치 포퓰리즘

미국의 전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진저 박사는 오늘날은 진정한 정치 지도자가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이 실감나는 부분이 바로 그리스와 이탈리아다. 심지어 그리스의 경우, 전 근로자의 4분의 1이 공무원이라고 하니 그리스는 공무원 공화국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우선 공무원의 숫자부터 줄이는것이 급선무이겠으나 공무원들의 완강한 반대가 두려워 악역을 자처하는 지도자가 없는 것이다. 2천년전에 고대 그리스에서 플라톤이라는 철학자는 민주주의 가장 큰 병폐는 중우정치(衆愚政治)에 있다고 갈파한 적이있다. 어리석은 대중들이 우선 듣기에 좋은 정책을 내세우는 정치가에게 표를 던지거나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의 평등의식으로 무장하는 것을 지적했다. 사회나 국가의 먼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이 아닌 당장 듣기에 좋은 정책에 현혹되는 대중을 경계했다. 키신저의 지적도 바로 국민들의 인기에만 영합하려는 지도자들이 현대와 와서 너무 많다는것이다. 그의 지적은 오늘의 우리 정치 지도자들에도 그대로 적용되어도 무방하다.국가적인 어떤 목표나 정치적 가치를 추구하는 그런 정치가가 아니라 권력만을 탐하는 정치인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다. 정치가는 역사의식이 있어야 하며 역사적 관점에서 오늘의 문제도 진단해야 하는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영국의 윈스턴 처칠 전 수상의 행적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곤경에 처한 영국에게 독일의 나치정부는 줄기차게 평화협정을 제의했다. 영국 국내에서도 나치와의 협상을 지지하자는 소리가 지배적이었다. 심지어 처칠 내각의 핼리팩스 외교부 장관까지도 나치와의 협상을 주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처칠은 그 모든 제안을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오직 무조건 독일의 항복만을 강경하게 요구했다.처칠에게 보여진 독일의 나치정부는 도저히 용서할수없는 범죄집단이었다. 융통성이 전혀 없이 원칙만을 고집했던 처칠의 주장이 옳았음은 역사가 증명했다. 2차대전이 끝난후 처칠은 선거에서 졌지만 그의 명성에는 하등의 금이 가지않았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정치 포퓰리즘을 극히 경계해야 할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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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1.10 23:02

국회의원 깜

10·26 재·보선이 끝나면서 도민들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기존의 낡은 정치 판을 이제부터 확 바꿔줘야 한다는 쪽으로 변했다. ‘안철수신드롬’이 민주당 아성을 뒤흔들면서 더 그렇게 됐다. 민주당 쪽으로 출마할려는 신인들은 마치 여론이 자신들을 지지한 양 착각하고 있다. 대다수 유권자들이 현역들한테 등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되면서 흥분해 있다. 지금 같아서는 도민들이 당 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갈 것 같다. 변화와 혁신의 바람을 타고 486들이 대거 정치판에 미친듯이 뛰어 들었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면 깜도 안되는 사람이 끼어 있다. 어중이 떠중이 같다.꼴두기가 뛰니 망둥어가 뛰는 격이다. 깜도 안되는 사람들이 온 방죽 물을 흐리고 다닌다. 깜이 된다 안된다는 상식에 속한다.현역들이 자신의 지지도를 착각하는 것처럼 입지자 중에는 본인이 국회의원 깜이 되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누가 지역서 국회의원 나선다고 해도 별 반응이 없다. 워낙 정치권이 불신을 받고 있는데다 아직 공천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서 그렇다.입지자들은 인지도와 지지세 확보를 위해 출판기념회를 여는 등 부산을 떨고 있다.말타면 경마 잡히고 싶은 것처럼 물갈이 여론이 확산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출사표를 던진다. 용기는 가상해 보이지만 여론은 아니다다. 유권자들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바꿔주고 싶지만 아직 마땅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예전보다 다선의원에 대한 교체 여론은 높다. 그간 좋았던 DJ와 노무현 정권시절 지역에다 해 놓은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중앙에서 큰 정치를 하는 것도 아니어서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야권 통합이 어떻게 갈지 예측하기가 어렵지만 유권자들은 이번 만큼은 인물 중심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안철수서울대교수와 박원순변호사 같은 사람이 국회의원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도민들은 민주당이고 한나라당이고 다 싫어한다.도민을 위해 진정으로 봉사할 줄 아는 사람이 나와서 정치하길 바라고 있다.이런 판인데 짝뚱 486 한테 신경이나 가겠는가. 민주화와 거리가 먼 사람이 무늬만 486이라고 달고 다닌다.그래서 빈껍데기는 가라는 것이다. 시대정신을 담아 내지도 못할 사람이면 아예 정치판에 기웃거리지도 말라는 뜻이다. 국회의원은 아무나 하는 자리가 아니다. /백성일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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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1.11.09 23:02

입동지절(立冬之節)에

“오, 기억해주기 바라오/ 우리의 행복했던 나날들/ 그 시절 인생은 지금보다 더 아름다웠고/ 태양은 더 뜨겁게 우리를 비추었다오/ 무수한 고엽이 나뒹글고 있다오/ 추억도 그리움도 그 고엽과 같다는 것을/ 북풍은 그 고엽마저 차거운/ 망각의 밤으로 쓸어가 버린다오…”이브 몽땅의 ‘고엽’(枯葉)이란 노래다. 사랑 이별 인생을 그린 프랑스 시인 프레베르(J. Prevert)의 서정적인 시에 곡을 붙혀 만들었다. 이 노래는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불후의 명곡으로 남아 있다. 깊고 그윽하고 감미로운 분위기는 요즘처럼 깊어가는 늦가을에 딱 어울린다. 곱게 물든 형형색색의 단풍은 어느새 낙엽이 되어 길거리에 수북이 쌓여 있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이 마음을 더 서글프게 한다. 차 한잔에 이브 몽땅의 ‘고엽’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이런 감상적인 분위기도 어울리지만 보다 현실적인 치열함이 생각나는 시도 있다. 고 2때 교련 거부로 뭉둥이찜을 당한 뒤 학교를 박차고 나온 논산 출신의 시인 장석주(56)의 ‘입동’(立冬)이 그런 시다. “들판에 서리꽃이 폈다/ 고엽이 죽은 새떼마냥/ 뒹구는 새벽 들판/ 장롱 속 겨울내복 꺼내 입을 때/ 가난한 집 애들 생각을 한다/ 겨우내 맨발로 사는 그집/ 서리들판에서 이삭줍는/ 들쥐네 자식들 발 시리겠다” 먹고 살기 어렵던 시절, 추운 겨울로 접어든 농촌 풍경과 따뜻한 인정을 생각케 하는 시다. 오늘(8일)이 입동이다. 겨울의 시작이고 문턱이다.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다 했지만 지나고 보면 화살보다 더 빠른 게 세월이다. 잎이 푸르렀는가 싶더니 단풍이 들고, 단풍이 곱다 싶었는데 어느새 낙엽이 져 겨울채비를 해야 할 때다. 어려운 계층의 삶이 걱정이다. 생계를 걱정해야 할 극빈층이 부쩍 늘었다. 비정규직이 600만명을 넘었고 베이비부머들의 은퇴도 본격화하는 시기다. 경쟁 개방의 신자유주의 질서가 가난한 사람의 설 곳을 잃어가게 만든다. 없는 사람의 마음이 더욱 시린 계절이다. 낙엽이 뒹그는 을씨년스런 계절에 따뜻한 보살핌이 있어야 겠다. 논어에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라 했다. 날씨가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공동체적 가치는 송백(松栢)의 가치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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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1.11.08 23:02

가을 단상(斷想)

우리나라의 가을은 외국의 가을에 비해 유달리 아름답다고 칭찬을 많이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가을이 짧아져 가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과 정취를 감상할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늦가을의 추수 풍경을 서정적으로 노래한 시(詩)중의 하나가 바로 이 고장 출신, 시인이었던 가람 이병기 선생이다.그의 시 ‘저무는 가을’은 이렇게 나아간다. “들마다 늦은 가을 찬바람이 움직이네 . 벼 이삭 수수 이삭 으슬으슬 속삭이고 밭머리 해그림자도 바쁜듯이 가누나. 무배추 밭머리에 바구니 던져주고 젖먹는 어린아이 안고 앉은 어미마음 늦가을 저문 날에도 바쁜줄을 모르네”. 가을을 소재로 한 유럽의 명시(名詩)들은 우울한 이미지를 띠고 있는 반면에 우리의 가을시(詩)들은 그렇지가 않다. 인간의 정서는 대부분 그들이 놓여진 자연환경을 닮아간다. 고위도(高緯度) 지방인 유럽에 있어 생존을 위협하는 그 지루하고 혹독한 겨울의 전주곡인 가을은 그들에게 있어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 그래서 가을은 인생에다 비유하면 중노인(中老人)이요 하루에 비유하면 석양이며 그리스도교에서는 최후의 만찬이다. 방향으로 치면 가을은 해저문 서쪽이요 빛깔로 비유하면 하얀빛, 맛으로 치면 떫은맛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우울한 이미지의 가을을 계절의 범주속에 넣기를 꺼려했으며 되도록 소외시키려고 했다는것이다. 완연한 가을인 10월 중순경을 ‘리틀 섬머’라고 불렀는데 이는 ‘조그만 여름’이라는 뜻이다. 11월 초순을 ‘ 올 해로운 섬머’로,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중순경을 ‘성(聖 ) 마틴의 섬머’로 불러 가을을 여름 호칭에 묶어 두어 가을을 계절에서 왕따시켰던 것이다. 영국에서는 14세기까지만 해도 한해를 여름과 겨울 두 계절로 나누었을 뿐이다. 가을이라는 단어는 ‘초서’라는 문인이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그러나 가을은 한국이 위치한 풍토대에 자리잡은 소수의 나라에게만 주어진 신(神)의 혜택인것이다. 그래서 우리 한국인은 사철가운데 가을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전쟁으로 할퀴고 발기고 해도 가을만은 제자리에 두어주십시오….”라고 노산(鷺山) 이은상씨가 읊었던것이다. 그래서도 가을이 점점 짧아져 가는것이 아쉽다./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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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1.07 23:02

고려청자

부안지역은 옛부터 도자기를 빚고 유통하는데 필요한 3박자를 모두 갖춘 곳이다. 풍부한 땔감과 좋은 흙, 이를 운반할 바닷길이 그것이다.부안은 우선 변산반도를 끼고 있어 나무가 풍부했다. 고려 중엽의 대문호 이규보는 1199년 전주 사록(司錄)겸 서기로 부임, 1년 4개월을 전주에서 보냈다. 이 기간 중 벌목사(伐木使)로 변산반도에 들렀고, 그 때 이 곳을 ‘나라의 재목창고’라 표현했다. 그 만큼 수목이 울창했다는 뜻이다.또한 부안지역은 도자기를 빚는데 필수적인 좋은 흙이 있었다. 흔히 고령토라 부르는 태토(바탕흙)는 일반 흙과 다르다. 끈적거리는 점성(粘性)과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는 가소성(可塑性)이 뛰어나야 한다. 이들 흙은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보안면 유천리와 우동리, 진서면 진서리 등에 널리 분포돼 있다. 그 가운데서도 회백색을 띠는 가장 양질의 태토가 묻혀 있는 곳이 지난 4월 부안 청자박물관이 들어선 유천리 일대다.그리고 부안은 고대부터 한·중·일 해상루트를 잇는 기항지였다. 중국 남쪽과 아시아 남방의 문물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격포의 죽막동 해양제사유적이 그것을 증거한다. 이곳에서 생산된 도자기는 해상교통로를 통해 개경으로 공납되었다.이같은 3박자에다 탁월한 도공의 예술혼이 불어 넣어져 부안의 고려청자가 탄생한 것이다. 도자기의 형태나 문양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다. 김종운 박사(부안군청 문화재전문위원)는 그 시기를 1270-1320년대로 보고 있다.부안 유천리 가마터는 1929년 일본인에 의해 처음 발굴됐으며 일부가 국보로 지정됐다. 또 유천리 청자는 2002년 비안도 앞바다에서 3000여 점이 인양돼, 천년 신비의 얼굴을 드러냈다.700여 년전 줄포만 일대를 상상해 보라. 줄포만을 중심으로 고창과 부안일대가 도자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도요가 즐비한 산업단지였다는 사실을…. 그 청자들은 왕실이나 귀족관료, 사찰 등에서 귀하게 대접받았다. 나아가 중국황실과 일본, 대만, 실크로드를 건너 이란까지 퍼져 나갔다. 부안 청자는 고려 내내 청자를 생산했던 전남 강진과 비교해 너무 소홀한 느낌이다. 최정상급 자리에 올랐다 홀연히 사라진 스타와도 같았던 부안청자에 좀더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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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진
  • 2011.11.04 23:02

종말론

앞으로 다가올 2012년은 어느때보다도 중요한 한해가 될것같다. 우리에게는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한해이며 미국 역시 대선이 있는 한해이다. 북한은 2012년을 강성대국으로 진입하는 해로 지목을 했지만 여러가지 여건상 불가능하다는 것은 그쪽에서 더 잘알고있다. 특히 2012년을 지구 종말의 해로 지목하는 예언이 있다. 대표적인 예언이 바로 마야문명의 달력이라 말하는 예언이다. 마야문명은 지구가 5125년을 대주기로 해서 운행된다고 믿고 그 주기에 맞추어 달력을 제작했다고 한다. 마야의 달력은 세가지로써 주식인 옥수수 성장에 맞춘 280일 달력과 지구의 공전을 주기로 계산한 365일 달력, 그리고 5125 년을 한 주기로 계산한 마야의 장기달력이라고 한다.이 마야달력의 시작일로부터 끝나는 날이 바로 내년 2012년 12월 21일이라는 것이다. 과거부터 유명한 예언가는 프랑스 출신의 노스트라다무스라는 사람이다. 그 역시도 2012년을 지구의 멸망의 해로 잡고 있다. 그러나 과거도 그랬지만 그의 예언을 놓고 잡다한 해석이 있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그리고 중국의 주역을 통해 예언한 사람이 2000년 미국의 과학자 테랜스 메케나였다. 그는 주역의 64괘의 변화를 분석해서 내놓은 예언에 의하면 2012년 12월 21일이 종말일이라는 것이다. 마야 달력의 예언과 서로 맞아 떨어지는것이 신기하다. 서양의 예언이 지구 종말의 어둠을 말한다면 우리 조선의 예언자는 미래를 그렇지 않았다. 조선 중기때 남사고라는 선생이 ‘격암유록’이라는 예언서를 내놓았다. 이 격암유록에서 남사고 선생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일합방, 세계 2차대전 중국의 국공분열, UFO, 종교전쟁까지도 예언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격암유록’의 책을 위서(僞書)로 폄하하기도 한다. 우리들에게 잘알려진 예언서는 ‘정감록(鄭鑑錄)’이다. 조선 중기 이후 민간에 널리 펴진 에언서가 ‘송하비결’과 ‘격암유록’ 그리고 ‘정감록’이다. 우라나라의 에언서는 우리 백성들이 국가라는 제도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경제적 신분적 어려움속에서 사는 과정에서 한가닥 희망을 주기위해 나온 메시지였던것 같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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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1.0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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