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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고려 왕실 청자의 자부심, 부안 - 김영원

고려는 통일신라부터 내려온 오랜 불교적 전통을 바탕으로 화려한 미술품을 남겼다. 세계적인 명품으로 꼽히는 고려 불화(佛畵: 불교 관련 그림)와 여러 공예품-도자공예, 금속공예, 칠기공예 등이 있다. 특히 공예품들은 실생활에서 직접 사용되고, 감상용이나 장식용으로 만들어진 탓에 당시의 사상과 철학, 관습, 사용하는 이의 취향, 장인(匠人)의 감성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고려의 대표 공예품인 청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고려 청자에는 불교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푸른 비취를 모방한 유색[釉色: 비색翡色]이 아름답거니와 보살과 동자 등의 형태, 연꽃과 연봉오리와 연꽃 줄기 등의 장식들에서 청자는 불교와 깊게 관련된다. 다양한 불교적 요소로 장식된 세련된 청자들은, 왕실용임을 과시하듯 왕의 무덤에서 속속 출토되었다. 아울러 절터에서도 다량 발굴되었다. 이 발굴품들 중에는 청자로 된 각종 불교 법구와 절의 이름과 용도가 표시된 청자들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청자가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3천년쯤 전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통일신라 말인 9세기 후반 만들어진 것과 비교하면, 청자의 시작은 중국보다 2천 년 정도 늦다. 그럼에도 고려 청자는 아름다운 색과 형태 등으로 같은 시대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매우 갖고 싶어 한 귀중품이었다.고려 청자의 대표적 가마로 최근 부안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세련된 청자들이 부안에서 대량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종전에 청자 가마로 전남 강진을 우선 꼽았음은 굳이 부인할 필요 없다. 그런데 부안과 강진 청자를 보면, 거리상 꽤 떨어진 두 곳에서는 서로 비슷한 청자를 생산했음을 알게 된다. 아마도 고려시대에 유행한 청자 스타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부안 청자와 강진 청자를 구별하는 일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부안 청자가 특별한 것은 그 제작 시기에 있다. 즉, 고려가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강진 청자가 세련기로 진입하는 11세기경부터 부안에서도 청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안 가마가 문을 닫는 시기는, 고려가 쇠망하기 약 50년 전이다. 이는 고려가 쇠망할 때까지 계속 청자를 제작한 강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그래서 강진에서는 완전히 퇴락한 청자들도 대량 발견된다. 이에 비해 부안에서는 고려가 쇠망할 무렵의 청자는 발견되지 않는다. 부안의 장인들은 청자의 화려한 아름다움을 계속 간직하고 싶었나보다.부안 청자는 왕실 청자로서, 귀족 관료의 청자로서, 대 사찰의 청자로서, 그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자태를 은근히 뽐낸다.중국과 일본에서 부러워한 고려 청자. 고려 청자 중에서도 왕실 청자로 우뚝 선 부안 청자. 부안 청자는 강진과 함께 고려 청자의 유행과 변화를 이끌어간 그 시대의 원동력이었다.고려의 왕실 청자는 부안이 강진과 함께 이룬 한국의 국보, 보물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전북에서 고려의 왕실 청자들을 만날 수 있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고려 왕실 청자들을 모아 6월 1일부터 약 한달 간 전시한다./김영원(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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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5.18 23:02

[전북칼럼] 창조도시를 키우는 막걸리집 - 원용찬

그 날도 막걸리 집은 흥겨웠다. 조기 찌게, 해물전, 고등어조림이 안주로 날라 오고 왁자지껄한 식탁 위로 주전자도 쉴 새 없이 비워지고 있었다. 널찍한 가게를 가득 메운 손님들 속에서 한 두 사람 정도는 아는 사람이 있기에 술값도 대신 내주거나 얻어먹기도 하는 막걸리 집은 전주를 가장 잘 상징해주는 풍경이랄 수 있다.한때 전주의 막걸리 집을 씁쓰레한 눈으로 보기도 했다. 지역경제가 위축되면서 실업자가 늘어나고, 한 집안의 가장 대신에 솜씨 좋은 전주 미향(味鄕)의 어머니들이 할 수 있는 직종은 빈 가게에 막걸리 집을 여는 것이었다. 공급은 수요와 맞아 떨어져야 한다. 점차 호주머니가 가벼워지는 시민들의 분주한 발걸음은 또한 막걸리 집을 번창시켰던 것이다.◆ 열정, 관용, 감성은 새로운 잠재력막걸리 집은 전주경제의 우울한 지표이기도 해서 뒷맛은 개운치가 않았지만 지금은 보는 눈이 달라졌다. 양질전환(量質轉換)이라 했던가. 지금 전주의 막걸리 집은 양적 증가와 더불어 새로운 질적 전환을 보여준다는 느낌이다. 끓는 물이 일정한 비등점에서 수증기로 전환되듯이 전주도 막걸리집이 군집되면서 지역 공간의 생태계 지형을 새롭게 그리고 있다.물론 전주 막걸리 집이 모델이 되어 전국적으로 체인점이 구축되는 것이나, 일본의 여성들이 막걸리에 고급색깔을 입힌 수 십 가지의 칵테일을 사랑하는 일도 대단하다. 이제는 전주가 한식산업의 진원지가 되는 과정 말고도 막걸리 집이 뿜어내는 전주의 문화 창조력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전주 막걸리 집에서 느끼는 새로운 열정, 관용, 혼융, 감성은 우리 지역을 특유한 문화 창조 도시로 이끄는 잠재력이라 하겠다.창조경제를 처음으로 주창한 플로리다는, 창조성과 도시의 조건으로 기술(Technology), 인재(Talent), 관용(Tolerance)을 경제성장의 세 가지 모델로 주장한다. 지식과 아이디어에 기반한 기술은 더 이상 홀로 고독한 천재의 몫은 아니다. 디지털시대의 기술 지식은 쌍방향으로서 서로 상호작용하며 '언제 어디서'(유비쿼터스) 누구든지 창조할 수 있다는 특성을 지닌다. 인재는 잘나고 특출 난 사람이 아니다. 플로리다의 말대로 "인간은 누구든 창조적이다." 누구든지 함께 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기꺼이 맞이하고 마음을 열어주는 관용정신이 있어야 한다.◆ 서로 연결망 속에서 싹트는 창조에너지도시 공간에서 인적자본의 결합 속도가 빠를수록 경제성장도 가속화된다. 인적자본은 단순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군중이나 다중(多衆)을 의미하지 않는다. 백화점에서 붐비는 수많은 인파는 고객의 취향과 기호, 에스컬레이터로 인도되는 쇼핑길목은 모두가 자본이 우리들의 신체공간을 감시하는 장소일 따름이다. 사람들이 군집하고 스쳐가는 자본의 공간이 아니라 어우러짐의 열린 무대가 있어야 한다.그날도 막걸리 집은 시끄러웠다. 아마도 밀실의 고통을 벗어나 막걸리 광장에서 새로운 세계와 대면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연대의 망을 펼치는 듯 하였다. 전주 막걸리 집에 몰린 사람과 툭 터진 공간은 창조도시의 잠재력과 인간의 경제를 보여 준다. 인간의 경제를 제대로 풀어보면 인(人)간(間), 즉 사람과 사람이 함께 있으면서 서로 어우러지고 흥겨움으로 가득 차고 중간도시의 준(準) 익명성으로 지인을 만나고 낯모르는 사람에게도 마음을 열어준다.농경문화의 보수적이고 가족 공동체 기질이 아직도 남아있는 전주로서 막걸리집의 열린 문화는 그래서 더욱 반갑다. 가볍게 막걸리 한 주전자를 다른 탁자로 선물하는 호혜와 배려의 정신은 전주 막걸리 집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전주 막걸리집은 지금 음식산업의 범주를 뛰어넘어 창조와 아이디어, 열정, 혼융, 관용을 지역의 새로운 창조에너지로 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원용찬(전북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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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5.12 23:02

[전북칼럼] 바로 '그 때' 위해 꾸준히 연구한다 - 김원호

지난 해 미국 내 거대 금융기관과 글로벌 대기업의 부실로 세계 경제대국으로 그 위세를 뽐내던 미국 경제가 심각하게 흔들리게 되었다. 거미줄보다 복잡하게 얽힌 세계 경제의 중심인 미국의 경제 위기는 유럽과 일본은 물론 우리 경제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언제쯤 우리 경제가 다시 회복될 것인지 누구도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경제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상관없이 대한민국 부모들의 자녀교육은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가정사(家政事)이다. 한 가정이 지출하는 소비항목 중 사교육비 지출이 1,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의 부모들은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자녀교육에 많은 투자와 자기희생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시험으로 경쟁하고 학력이 곧 능력이라고 평가받는 우리 사회이기에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이런 와중에서도 자녀들은 부모로 부터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공부를 하는데도 "때"가 있으니 지금 열심히 하라는 말이다. 이것저것 관심이 많았던 젊은 시절에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어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 당시 어머니가 말씀하시던 그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회에서 대한민국 야구대표팀과 일본대표팀의 결승전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스코어 3대2로 우리 대표 팀이 한 점을 뒤지고 있던 9회 말 투아웃에서 터진 이범호 선수의 적시타(適時打)에 온 국민이 환호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야구 경기에서 1루타이던 홈런 한 방이던 점수로 이어지는 안타를 적시타라 한다. 끝나가던 승부를 한 순간에 돌려놓은 이범호 선수의 좌중간 안타는 정말 중요한 "때"에 터진 적시타인 것이다. 운동경기뿐만 아니라 사업에서도 "때"가 중요하다. 90년 대 중반 체인점 영업권(프랜차이즈, franchise)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한 사업가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이후에 햄버거판매점, 치킨판매점, 커피전문점 등 다양한 체인점으로 재미를 본 사업가들은 따로 있었다. 전자(前者)의 사업가는 체인점을 우리 사회에 홍보한 꼴이 되었고, 후자(後者)의 사업가는 사회에서 체인점을 필요로 하는 바로 그 "때"를 만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졸업하면 취업을 할 수 없다고 하여 점점 신입생이 줄어들었고, 대학에서는 수학과를 폐지하거나, 다른 전공학과에 편입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 보안의 중요성이 인지되면서 수학 전공자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언제가 바로 그"때"일까? 과연 그"때" 우리가 원하는 바대로 적시타가 터져줄까? 정확하게 그"때"를 알 수는 없지만, 다가오는 그"때"를 위하여 꾸준히 준비하는 것이다. 충분한 능력을 가진 자와 준비된 자는 바로 그"때"적시타를 쳐 내어 슈퍼스타가 되는 것이다.정부출연연구소인 우리 연구소는 방사선과 방사성동위원소 이용 분야의 전문능력을 배양하고, 국내 방사선 산업진흥에 필요한 기반기술을 구축하고 있다. '연구'란 무언가를 깊이 있게 조사하고 생각하여 진리를 따져 보는 일이라고 우리말 사전에서 풀이하고 있다. 연구자는 지나 온 경험을 바탕으로 앞일을 예측하여 다가 올 미래의 바로 그"때"에 적시타를 터뜨리기 위하여 꾸준히 사물의 이치를 따져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단기적인 성과도 얻는다면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즐거운 일이다. 연구원들은 적어도 자기 전공분야의 전문가들이다. 그들이 설사 매년 눈에 보이는 성과를 창출하지 못 하더라도, 국가가 전문가 집단을 보유하고 그들의 능력을 배양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자산이고 자랑거리인 것이다./김원호(정읍 방사선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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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5.11 23:02

[전북칼럼] 나도 그런 형이 될 수 있었으면 - 안홍엽

풀잎은 풀잎대로/바람은 바람대로/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5월/하늘이 잘 보이는 숲으로 가서/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오이해인 수녀님은 "5월의 시"에서 빛을 향해 눈 뜨는 빛의 자녀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천진스러운 아기의 웃음 같은 5월, 살아 있다는 자체가 경이롭고 감사한 이 생명의 5월은 그 자체가 축제다. 인간에 대한 존엄과 자연에 대한 외경이 일상으로 살아 있기 위해 자비와 사랑과 희생과 봉사를 함축해 놓은 상징적 기념일이 즐비한 5월이다.부처님 오신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5.16과 5.18도 생각해 보면 자비와 사랑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역사의 업보일 수 있다. 모진 세월의 질곡 속에서도 오늘을 살 수 있는 바탕에는 분명 5월의 소중한 가치들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장영희님의 글에서 읽은 얘기다.자전거를 열심히 닦고 있는 사람에게 구경하던 한 소년이 물었다. "이 자전거 비싸요?" "글쎄, 우리 형이 사 준건데" 소년은 "나도"라는 말만으로 끝을 맺지 못했다. 소년의 마음은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는 동생에게 이런 자전거를 사줄 수 있는 형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의 마음은 이러하지만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어린 아이의 열린 마음을 점점 잃어버리고 나만의 성을 쌓아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본래의 자신이 아닌 변종된 나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의 말로를 우리는 역역히 보고 있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만이 남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법이다. 하물며 지도자라는 위치에서야. 그러나 과연 그러 한가. 옛날에는 선비들도 돈전(錢)자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는데 대통령의 자리를 돈 버는 수단으로 삼았는가 하면 모든 죄를 집사람에게 미루는 대통령도 만나고 있다. 집권 여당의 당내 서열 10위의 국회의원이 포리스 라인을 넘었다고 해서 수갑을 채워 연행하는 미국의 예를 사진으로 보았다. 국격을 형편없이 추락 시켰고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전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감정을 똑바로 읽어 주어야 한다. 전임 대통령이라고 해서 법 위에 모셔야만 하는 것인가. 대통령이었기에 법의 잣대는 더욱 엄격해야한다. "죄송합니다. 면목 없습니다."는 대통령 했던 사람의 할 말이 아니다. 이미 대통령이 아니었음을 국민 앞에 고백한 거나 마찬가지다. 노랑 장미꽃을 아름 따다 가는 길에 뿌리며 손 흔들어 인사하는 선량한 국민들을 배신한 것이다.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재보선이 끝나 제 각각 의미들을 평가하고 있지만 정작 국민들에게 있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행인 것은 우리지역의 정치 정서도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지역 두 사람의 당선자에게 한마디씩의 고언으로 축하를 대신하고자 한다. 정동영씨는 스마일 형으로 입을 열고 정권을 되찾아 오겠다는 결의에 앞서 진정 동생에게 자전거를 사주고 싶어 하는 형의 마음부터 가져주기 바란다. 70에 초선의원이 된 신건씨는 당선 소감의 말대로 확실한 전주사람이 되어 실제로 동생에게 자전거를 사주는 형이 되어야 한다. 사랑과 정성은 부메랑 같아서 베풀면 언젠가는 꼭 내게 돌아온다는 것을 신앙처럼 믿는 지도자가 되기를 바라는 뜻이기도 하다. 빛과 사랑의 계절, 빛을 향해 사랑을 위해 우리 모두는 그들의 자녀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자./안홍엽(필 애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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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5.04 23:02

[전북칼럼] 후보사퇴의 감동 - 윤찬영

지난 주 서울에서 학회가 열려 다녀왔다. 이번 학회에서는 차기 회장을 선출하는 총회가 열렸다. 대개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점심까지 1박 2일로 열리는 학술대회의 토요일 분위기는 썰렁했다. 특히 서울에서 열리는 학회일수록 더욱 그랬다. 그러나 이번 총회는 차기 회장 선출이 있어서, 토요일 점심시간을 넘기며 진행됐지만 비교적 많은 회원들이 남아 있었다.학회장 입후보자는 3명이었다. A후보는 정년퇴임이 임박한 원로교수로서 부회장을 포함하여 학회의 모든 요직을 거쳐, 이제 마지막으로 학회장에 도전하는 분이었다. B후보는 자신의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데, 그 대학의 학과에서 가장 선임교수였고, 이번 학술대회를 자신의 대학에 유치하였다. C후보는 원로교수들이 돌아가며 나눠먹는 식으로 학회장을 맡아 학회가 부실해졌다며 학회개혁을 요구하는 소장파 회원들이 추대하여 출마한 50대 초반의 교수였다.총회 전날 밤, A후보의 대학 후배들이 모여 그에게 명예롭게 퇴진하시라고 간곡하게 읍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A후보는 투표 직전 거행된 정견발표를 통해, 자신의 과거 업적과 공약을 밝혔다. 매우 자신있고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후배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후보를 사퇴한다며 울먹였고, 자신의 뜻을 기억해 달라는 호소를 보냈다. 청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그에게 화답하였다.접전을 벌인 결과 결국 C후보가 6표 차이로 B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많은 동문들을 대거 신규회원으로 가입시키는 동원전략으로 자기 대학에서 치러지는 선거에서 당선을 노렸던 B후보는 고배를 들고 말았다. 당선된 C후보는 다른 후보들의 공약을 적극 수렴하여 좋은 학회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선언하였다.아무튼, 이 날 가장 많은 지지와 환호를 받았던 것은 당선자보다 사퇴를 결단했던 A후보였고, 많은 회원들은 총회장을 나서면서 A후보의 용기에 대해 칭찬하는 분위기였다. 그는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뒷풀이 자리에서 4?29 재선거 이야기가 나왔고, 필자가 함께 한 연유 때문인지 전주 재선거 이야기가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정동영과 민주당 이야기, 정동영-신건 연합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전주보다 서울에서 더 알려진 민주당 김근식 후보 이야기도 나왔다. 저마다 입장에서 다양한 소견을 밝혔지만, 대개 일치하는 얘기는 이번 재선거의 돌아가는 모습은 썩 좋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이번 선거는 공약이나 정치적 의제에 대한 토론은 없고, 누가 출마를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누가 공천을 받아야 하는가 받지 말아야 하는가, 공천을 못 받으면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하는가 하는 쟁점만 난무하였다. 결국, 전형적인 편가르기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도대체 국회의원을 왜 뽑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조차 있다. 역대 선거에서 공약이라는 것이 대개 부실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번 재선거에서는 유난히 심한 것 같다. 유권자의 표는 출세주의자나 싸움꾼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헌신할 각오와 준비가 구체적으로 갖추어진 후보를 선택하여 뽑아야 하는 것이다.민의를 받아들여 기꺼이 학회장 후보를 사퇴한 원로교수의 모습과 저마다 표를 호소하는 전주 재선거 후보자들의 면면이 겹치면서 입 안에 씁쓸한 맛이 돈다./윤찬영(전주대 사회과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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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4.27 23:02

[전북칼럼] 노년의 태조와 청년 영조 - 김영원

태조 이성계(1335~1408)의 초상화는 그분이 이룬 '조선 건국'이라는 역사적 대업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태조 어진御眞(왕의 초상화) 앞에 서면, 창업 군주로서의 위풍당당한 면모에 보는 이들은 숙연해지며 압도된다. 태조의 역사적 위대함은 그림의 여러 부분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그림 속의 태조는 푸른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의자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거의 실제 인물 크기로 그려졌기 때문에 왕을 직접 마주보는 듯하다.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센 노년의 왕에게서는 위엄이 느껴진다. 태조가 입고 있는 곤룡포와 의자에는 왕을 상징하는 용이 그려져 있고, 용의 5개 발톱 역시 지존을 의미한다. 청색 옷과 적색 의자는 색상에서도 강하게 대비된다. 단정한 대칭 구도의 태조 어진은 엄격하고 권위적이며 강렬하다.조선시대에는 도화서圖畵署라는 그림 그리는 일을 맡았던 관청이 있었다. 이 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원畵員들은 왕실의 초상화, 궁궐 내 각종 의례와 행사 등을 그렸다. 따라서 왕과 왕비의 초상화는 도화서 화원들이 그렸다. 그런데 초상화 외에 왕실의 잔치나 왕의 행차 등을 그린 그림에선 왕이나 왕비의 모습은 그리지 않았다. 다만 그 분들을 상징하는 물건을 두어 암시적으로 표현했다.조선은 건국 초부터 태조 어진의 특별 관리를 위해 전국적으로 6곳에 어진을 모시는 건물인 진전眞殿을 세웠다. 그 하나가 전주의 경기전慶基殿이며, 다른 곳의 태조 어진은 모두 없어지고 경기전의 어진만 유일하게 남았다. 더욱이 왕의 초상화로 태조 어진만큼 온전히 전해 오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 가치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경기전의 태조 어진은 태조가 돌아가신 후 2년째 되는 1410년 처음 그려졌다. 이후 어진이 낡게 되자 1872년 원본을 그대로 베껴 그렸는데, 그 모사본(베껴 그린 그림)이 현재 경기전에 소장된 것이다. 모사본이라도 1410년 원본을 그대로 그렸고, 왕의 초상이기에 그 의미는 각별하다.경기전의 태조 어진과 관련된 숙종 때의 일은, '어진의 모사'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숙종이 전주 경기전의 태조 어진을 한양에 모셔다 모사한 일이 있었다. 숙종은 이 모사 작업을 직접 지휘했다. 그리고 완성된 모사본을 한양에 모심으로써 국초의 전통과 기강을 세우고 조정의 세력을 제압할 수 있었다. 태조 어진이 한양에 도착할 때와 전주에 되돌아 갈 때, 숙종은 직접 마중 나가고 배웅했다. 이처럼 어진은 모사본이라도 특별한 장엄의 의미를 갖는다.노년에 접어든 왕을 그린 태조 어진이 일주일 후 국립전주박물관 전시실에서 내려온다. 환경에 민감한 유물이므로 일정기간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그 뒤를 영조(1694~1776)의 초상화가 오른다. 아직 왕세제로 책봉되기도 전, 연잉군延?君 시절의 초상화이다. 원본은 1714년 그려졌고 전시품은 모사본이지만, 청년 영조의 모습을 잘 전해 준다. 숙종의 아들로 탕평책을 이끌고 사도세자의 애환을 품은 영조. 21살 청년 영조의 모습이 궁금해진다./김영원(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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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4.20 23:02

[전북칼럼] RFT 비즈니스 밸리의 앞날을 생각하면서 - 김원호

녹음(綠陰)이 우거진 여름에는 풀벌레가 가득하고 내장산 가을단풍 못지않게 아름다운 겨울설경이 펼쳐지는 정읍에 큰 변화가 생기고 있다. 내장산 국립공원 초입에 남쪽으로 입암산을 내다보고 있는 정읍시 신정동 일대에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읍 방사선과학연구소, 한국생명과학연구원 정읍분원, 안전성평가연구소가 위치하고 있으며, 방사선 융합기술(RFT, Radiation Fusion Technology)을 연계한 첨단 산업단지를 조성하기 위하여 주변지역의 토지매입이 진행 중에 있다. 전북도와 정읍시에서 투자한 RFT 실용화 센터가 금년 말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읍 방사선과학연구소연구소 안에 설립될 예정이다. 연구소에서 얻어지는 연구결과와 새로운 기술이 창업기업이나 기존 산업체에 이전되어, 기업이 실질적인 이익을 창출하는 것은 실험실에서 우수한 연구결과를 얻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마케팅 전략을 기반으로 상용화하는 과정, 대량 생산, 그리고 광고, 판매, 유통 등 기술적인 부분을 제외한 여러 분야의 성공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RFT 실용화 센터는 기술을 이전받은 창업기업이나 기존 산업체가 입주하여 연구원과 함께 기술을 상용화하면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데 필요한 incubator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연구소와 기업이 쌍방향으로 긴밀히 협력하고 측정시험에 필요한 고가의 장비를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강소(强小)기업을 일으키는데 꼭 필요한 지원조직이다. 'RFT 비즈니스 밸리 조성 사업'이라고 불리고 있는 첨단 산업단지 조성 사업은 지역경제에 활력을 주고 고용을 창출하기 위하여 전략적으로 계획되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유성에서 신탄진으로 향하는 호남고속도로와 국도 주변인 대전광역시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대덕연구단지는 국가 정책으로 추진하려는 연구와 기술개발을 목적으로 조성되었던 국내 최초의 대단위 연구단지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이주를 시작한 지 30년이 지난 현재 대덕연구단지에는 28개 출연기관, 15개 국공립기관, 6개 교육기관과 함께 약 900여 개의 기업이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다. 초창기의 대덕연구단지는 넓은 들녘에 몇 몇 정부출연연구소와 연구소원을 위한 아파트, 무척이나 넓어 보였던 한가로운 도로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현재 대전광역시 인구는 약 150만 명이지만, 당시 대전에 거주하던 인구는 50만이 채 안되었다. 외국(주로 미국)에서 활동하거나, 학위를 취득한 젊은 과학자들을 높은 연봉과 아파트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대덕연구단지에 유치하였지만, 그들의 자녀를 키우는데 필요한 학교와 병원 등 주변 생활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교육 관계자와 함께 학부모의 노력으로 대덕연구단지 내 초중고등학교는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학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대전 시내에 거주하는 학생들도 연구단지 내 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했다. 세월이 지나 연구단지가 제 모습을 갖추면서 외부에서 유입되었던 연구원들과 대전지역 주민과 서로 보이지 않는 질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도시가 확대되고 교통이 편리해 지면서 연구단지와 대전 시내의 구분도 없어지게 되었다. 모두가 대전광역시 안에 살고 있으며, 모든 생활환경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내장산과 입암산으로 둘러싸인 정읍시 신정동 일대에 조성중인 연구소와 첨단 산업단지가 비록 규모는 작지만, 지금은 초창기의 대덕연구단지 모습과 닮은 점이 많아 보인다. 전략적인 계획 아래 추진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은 규모이기에 보다 짧은 기간 내에 완성되리라 생각된다. 대덕연구단지는 정부출연연구소나 대기업 연구소를 중심으로 조성되고 처음부터 기업을 유치하지는 않았지만, 점진적으로 기술을 활용하려는 기업이 900여 개나 자연스럽게 자리하게 되었다. 정읍 또는 내장/입암 연구단지(가칭) 조성 계획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금 보다 더 많은 연구소가 유치되어야 한다. 그리고 충분한 기간 동안 많은 연구소들의 연구 활동이 진행된다면, 자연스러운 기업 유치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연구소 퇴근시간 무렵, 혼자 보기에는 아까운 아름답고 환상적인 일몰(日沒)을 바라보면서 이 연구단지의 앞날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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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4.13 23:02

[전북칼럼] 시인은 잔인한 4월이라 했지만 - 안홍엽

피천득은 그의 수필 "조춘"에서 십년이나 입어 정이 든 외투지만 봄이 되어 외투를 벗는다는 것은 더 없이 기쁜 일이라고 했다. 우리네 소박한 심성을 생긴 대로 표현한 글이다. 삼월 삼질이 지났는데 봄을 물고 온다던 제비는 강남에서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왔었는데 우리는 언제나 봄을 맞이할 수 있을런지 기약이 없다. "TS 엘리엇"은 이런 일들을 짚어 사월을 황무지 같고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가보다. 겨울이 지나 새봄이 오면 만물은 긴 잠에서 깨어나 재생과 부활의 기쁨에 젖는 것이 자연의 오묘한 순리이건만 새봄이 왔는데도 새로운 생명을 피워 내지 못하고 깊은 악몽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우리 사는 세상이 황무지 같고 잔인 하달 수밖에.아침에 일어나 밝은 태양을 볼 수 있고 별빛 달빛 흐르는 밤을 즐기며 스치는 바람에 향을 맡으면서도 우리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21세기의 춘궁(春窮)을 겪고 있다. 마음의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고 있다. 서정과 낭만을 즐길 여유가 없다. 춘궁은 참아서 이겨내면 되고 보릿고개는 허리띄 졸라서 넘으면 된다지만 절망이 끝을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그러나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4월이다. 시를 통하여, 그림을 통하여 잃었던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것처럼 춘궁을 통하여 인내의 기쁨을 맛보고 보릿고개를 통하여 절제의 미덕과 여유를 배워야 한다. 고진감래(苦盡甘來), 인고의 아픔을 통하여 행복을 찾아 가는 기쁨을 맛보아야 한다. "메테르링크"가 행복을 간직한 파랑새를 머리맡에 숨겨 두었던 것처럼 파랑새는 분명 우리 곁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천진스러운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머리맡에서 찾은 행복이 곧 우리 것일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말자.4월은 희망이 있고 생명이 있고 부활을 꿈꾸는 달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내려 준 축복이요 사랑이다. 그러나 우리들 주변을 보라. 자살 이혼 출산으로 계산한 가족통합지수는 OECD나라가운데 꼴찌요 어머니가 공부하란다고 100미터 이내 접근 금지를 법에 신청한 딸이 있는가 하면 당리당략에 빠진 정치권은 이조 사색당쟁의 뺨을 치며 민의의 전당을 격투기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초등학교 출신의 한 기업가는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정관계 검찰 경찰 등 내노라 하는 어르신들을 떡 주므르듯 데리고 놀았다. 교육자들은 논문표절과 이념투쟁으로, 연예인들은 끊이지 않은 충격 스캔들로, 산업현장은 막장 정치 투쟁으로, 가치관이 실종되어버린 말기적 현상을 보이고 있다.전주이야기는 더더욱 빼놓을 수 없다. 18대 총선에서 역대 최고의 치욕을 연출한 지역답게 다시 치루는 재선거판도 역시 역대 최고의 아수라장이다. 빚이 산더미 같다는 전주시가 금쪽같은 외화를 뿌리며 김연아의 눈물 어린 국위선양의 그 현장에서 추태를 벌린 얘기는 이 또 무슨 해괴한 일인가. 양반의 고장이었던 전주의 추락은 도대체 누가 주도를 했으며 또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리고 무슨 일로 하여 추락이 이어질 것인가 걱정 되고 무섭다.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는 솔로몬의 지혜마저 무색해질까 겁난다.아무쪼록 간절히 바라옵건대 우리 모두가 죄인이오니 그리고 죄를 모르고 산 바보이오니 이 모든 일들을 용서하여 주시고 악몽의 나날들을 까맣게 잊을 수 있는 내일이 되도록 은총을 주소서. 그리하여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괴로워한 시인의 마음에 위로를 보내도록 하여 주소서./안홍렵(필.애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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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4.06 23:02

[전북칼럼] 무기력과 무례함의 정치 벗어나기를 - 윤찬영

참으로 착잡하다. 경제침체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현 정부와 한나라당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어떤 힘도 보이지 않는다. 촛불집회와 용산참사를 겪으면서 언론도 시민단체도 왠지 무기력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온갖 비판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더니 결국 이렇게 되어버리는 것 같다.그렇다면 야당은 어떠한가?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도가 밑바닥인데, 제1야당이라는 민주당은 너무 무기력하다. 오히려 지지도는 여당보다 낮다. 의석 숫자에서 밀린다고 하지만 도무지 매서운 맛이 없다. 미디어 관련 악법의 처리도 결국 시한만 연장했을 뿐 동의해준 셈이고, 거대여당 앞에서 너무 맥없는 모습이다. 그래서 4?29 재선거를 이명박 정부 심판의 계기로 삼겠다고 호언했는데, 정동영 출마선언과 박연차리스트에 부딪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설상가상이다. 이제 민주당이 정동영 전 장관을 공천하든 아니든 민주당과 정동영 전 장관은 함께 추락할 운명에 처하게 됐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도 덧셈정치도 모두 놓치게 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민심과 멀어진다는 것이다. 경제난국에서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선거라면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는 정책적 해법을 놓고 열렬한 토론의 장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이 보여주는 모습은 이런 것과 거리가 멀다.그 동안 민주당은 촛불민심을 정치적으로 승화시키지도 못했고, 용산참사의 문제를 본원적으로 규명하는 정치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경제난국을 돌파하는 해법은 더더욱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동영 전 장관 역시 출마선언을 하면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자신의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양측은 서로에게 자신의 출마와 공천배제라는 요구만을 반복할 뿐이다. 정세균 대표나 정동영 전 장관이나 모두 이명박 대통령과의 승부에서 진 사람들이다. 패자들끼리 연대하여 후일을 도모하기는커녕 패자부활전을 치르듯 격돌하고 있다.일차적인 잘못은 정동영 전 장관에게 있다고 본다. 민주당의 고문을 맡고 있으면서 당 지도부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민주당을 고문하고 있지 않은가? 돌출적인 출마선언은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무례하거나 무모한 도전이다. 반면에 정세균 대표는 너무 시간을 끌면서 우물쭈물하다가 주도권을 놓치는 버릇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담판, 한나라당과의 싸움도 시간을 끌면서 분명하거나 단호한 태도보다는 우유부단하게 대처하다 결국 그들의 요구대로 들어주는 꼴이 되지 않았나? 이번에도 과거와 같은 태도를 보인다면 결국 정동영 전 장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까 싶다.오랫동안 지역주민의 선택을 받아 온 민주당은 이제 지역에서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새천년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의 분당, 다시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통합, 이제 다시 분열할 것인가? 분당이든 합당이든 시대정신과 정치철학을 근거로 한다면 반대할 일은 아니다. 제 밥그릇 챙기기와 상대방 죽이기를 위한 분당이나 합당은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윤찬영(전주대 사회과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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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3.30 23:02

[전북칼럼] 전북이 꼭 기억해야 할 사람 - 김영원

전북이 역사적으로 내세울만한 구체적인 대상이 누구이고, 또 무엇인지. 몇 달 전부터 문서, 책자 등의 관련 유물과 유적들을 살피던 중 박물관에 근무하는 우리들에게 뛸 듯이 기쁜 일이 생겼다.다름 아닌 전북을 대표할 인물과 관련된 유물들이 여러 점 우리 국립전주박물관에 기증된 것이다. 이 인물은 조선시대의 묵암(墨巖) 이계맹(李繼孟, 본관 전의全義) 선생이다. 선생은 세조 4년(1458) 전북 여산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성장했고, 중종 18년(1523) 김제에서 돌아가셨다. 문과에 3등으로 급제하여 중앙의 요직을 두루 거친 관운이 남다른 분이다.묵암 선생이 거친 관직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전라도경기도평안도의 관찰사, 한성부 좌윤, 예문관 제학, 형조 예조호조병조의 판서, 대사헌 등등. 이렇듯 선생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그런데 필자는 선생의 또 다른 업적을 부각하고 싶다. 그것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인임의 아들이며 고려 왕을 4명이나 죽였다'는 중국 명나라의 잘못된 기록을 바로 잡은 점이다. 선생은 명 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대명회전(大明會典: 명나라 법전)'에서 잘못된 기록을 발견하고 조정에 보고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597년(선조 30) '대명회전'의 잘못된 기록을 고치게 되었다. 태조 이성계에 대한 중국 역사의 잘못을 고치기까지 조선은 건국 후 무려 200여년이 걸렸다.만일 중국 역사에서 잘못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조선 왕실의 계보를 돌이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점이 고려되어 선생은 돌아가신지 70년 가까이 지난 1590년(선조 23) '광국공신(光國功臣)'으로 책봉되었다. 선생의 행적은 대외적으로 조선의 역사를 바로 세운 공로로 높이 평가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생각해봐도 달리 평가될 수 없다.선생에 대해 기록한 '묵암선생실기(墨巖先生實紀)'의 행장(行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선생은 사람됨이 맑고 가지런하며, 대범하고 기개가 빼어났다. 안으로 강하고 밖으로 조화로웠으며, 지조를 지켜 한결 같았다. 당대의 이름난 사람들이 사귀려 했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모두 심취했다. 주변에 사정이 급한 사람이 있거나 환난이 닥치면 반드시 힘써 도왔다.' 또 '세상의 흐름에 따르지 않고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는 선생의 인품은 시류(時流)에 민감한 현대인들에겐 호흡을 조절할 여지를 준다. 선생의 국정을 처리하는 자세에 대해선, '반드시 여러 번 살펴 처음부터 끝까지 지극히 마땅한 결론에 이르게 했다.'고 소개했다.김제에 있는 선생 묘소의 신도비는 창강(滄江) 조속(趙速 : 1595~1668)이 김제 군수로 있으면서 1648년에 세웠다. 조속은 조선 후기의 서화가로도 이름난 분이다. 신도비의 글은 충절로 유명한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이 짓고, 조속이 글씨를 썼다.태조 이성계의 역사를 바로 잡은 묵암 이계맹. 그래서 더 전북이 기억해야 할 묵암 선생. 그 최초의 전시가 국립전주박물관에서 4월 7일~5월 17일 개최된다./김영원(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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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3.23 23:02

[전북칼럼] 과학분야의 노벨상 수상을 꿈꾸며 - 김원호

6.25 전쟁이 끝나고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었던 우리 정부는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이라는 새로운 과학 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1959년 2월 정부기관으로 원자력원을 설립하였다. 이후 원자력청으로 이름을 바꾸고 산하의 원자력연구소, 방사선의학연구소, 방사선농학연구소 등 3개 연구소를 통합하여 1973년 한국원자력연구소로 민영화하였다. 한국원자력연구소는 다시 한국원자력연구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올해로 설립 5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1965년 한미 정상회담이 있은 후 당시에는 국내에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현대식 연구소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그 이듬해 설립되었다. 국내 학자들과 해외유치 과학자들을 주축으로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연구와 기술 개발에 막을 올리게 되었다. 초창기의 연구소들이 설립된 지 반세기가 지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수입대체 효과가 큰 연구대상을 찾아 국내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연구개발이 주된 목적이었다. 따라서 과학 선진국에서는 이미 개발이 끝나거나 관심이 없어진 모방형 연구개발도 언론과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흔히 copy성 연구라 일컫는 그러한 연구 결과도 나름대로의 부가가치가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독창적이고 단 하나 밖에 없는 연구 결과와 기술만이 세계 일류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지난해 가을에는 이웃나라 일본의 과학자 3인이 노벨 물리학상을 독식하였고, 미국인과 함께 노벨 화학상마저 공동 수상하면서 일본은 총 1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국가별 수상자 수를 따지자면, 미국영국독일을 선두로 일본은 유럽의 덴마크오스트리아와 함께 세계 10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현재까지 노벨 평화상 수상자 한 명을 배출하였을 뿐,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단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한 우리들에게는 몹시 속상한 일이다. 그동안 노벨상 수상자 한 번 배출하자고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연구기술개발에 그토록 많은 예산과 정성을 쏟아 부었던 정부와 정치인들 역시 마음이 심란하기는 매 마찬가지인 것 같다. 더욱 더 기초과학에 투자하여야 한다고 과학기술 정책 방향을 바꿔 보기는 하지만, 마음만 급할 뿐 기초학문을 연구하는 여건이 나아지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2002년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했던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4강 신화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 축구대표팀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꿈이 있었고, 대표선수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조건없는 축구협회의 지원이 우리의 꿈을 실현케 한 것이다. 언론과 함께 꿈을 가진 모든 이들의 사랑과 관심은 국가대표팀의 어깨를 무겁게 하기도 했지만, 월드컵 4강을 만들어 내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려는 우리의 과학기술 분야는 어떠한가?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보다는 운동 경기의 결과가, 그 보다는 연예인의 일거수 일투족(一擧手 一投足)이 우리 사회의 더욱 더 큰 관심사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 과학자들의 꿈인 노벨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을까?아직은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인지 먹을거리 창출을 위한 기술 개발이 우선인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부가가치가 크고 세계 최고의 연구결과와 기술이 단 시간에 얻어지기 힘든 점을 고려한다면, 참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어려운 살림에 과수나무를 심고 나서 뿌리는 잘 내리고 있는 지 궁금한 나머지 매년 흔들어 본다면 그 나무가 잘 자랄 수 있을까? 감 놔라 배 놔라 남의 일에 간섭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연구실에서 독창적인 생각을 하고 고민하며 실험을 통하여 우수한 결과를 얻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오랜 고민 끝에 제안한 연구기획물을 시장에서 물건 사듯이 연구예산을 흥정하는 것도 우리 연구자를 좌절하게 한다. 모르고 저지르는 실수와 자신을 속이면서 진실을 회피하는 것은 대단히 다른 것이다. 연구자와 기술자 그리고 연구행정을 하는 우리 모두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속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올바른 생각을 하는 젊은 후배 과학자가 우리 보다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우리도 과학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을 것이다. /김원호(정읍 방사선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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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3.16 23:02

[전북칼럼] 봄은 왔어도 봄 같질 않습니다 - 안홍엽

"떠나길 주저하는 겨울의 끝자락에서 새싹 움 트는 소리에 골짜기는 진동하리라"고 상기된 언어로 시인은 노래하지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어도 봄 같지를 않습니다. 글로벌 경제 파국이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드디어는 정신적 공황으로 이어지는 미증유의 재난 앞에 우리는 속수무책입니다. 솔로몬의 지혜로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인 듯합니다. 최후의 심판이 진행되고 있는 거라고 성급한 진단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질서의 축이 새로 설정되고 진행되는 과정일 것이라고 애써 위안을 해 봅니다.우리들 처지에서 보면 위기가 곧 기회일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해 보지만 끝이 보이지 않은 터널을 어떻게 벗어날지가 걱정입니다. 이것은 굳이 경제에서만도 아닙니다. 오히려 정신적인 패닉에 빠질까봐 걱정입니다. 사즉생(死則生)의 결연한 용기와 정신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를 인용하여 분발을 요구했지만 그 강도가 너무나 빈약합니다. 하시모토 오사가 지사처럼 청사부터 후미진 곳으로 옮기고 간부의 봉급을 16%나 깎으며 "실패하면 저와 함께 죽어 주십시요"라고 공무원들을 압박한 촌철살인의 비장함이 필요합니다.그런데 우리 지도자들은 그런 비장함도 진지한 고민도 없어 보입니다. 세계만방에 깡패 정치판, 난장판 국회를 들어내 보여 국민의 자존심에 씻을 수 없는 먹칠을 하였습니다. 놀면서 싸우면서 엄청난 세비만 챙기는 그들,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두 퇴출 대상들입니다. 그도 모자라 명색이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대한민국은 독재국가다"라는 동영상을 5개 국어로 만들어 160여개 나라 하루 2억명이 방문하는 유튜브에 올렸다니 기가 막히다 못해 기절할 노릇입니다. 도대체 이런 나라가 이 지구상 어디에 또 있는지 물어봅시다. 3대 세습을 진행하고 있는 북한과 더부러 한반도는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눈을 우리 동네로 돌려 봅시다. 정동영의 출마여부로 재선거판은 뒤죽박죽이며 조작된 임실의 기적은 전북교육의 치욕으로 기록 되었습니다. 프래카드만 요란한 재탕 경제 살리기 행사는 이어지고 죽으나 사나 새만금에 향토의 운명을 걸어야 하는 딱한 처지, 이것이 오늘날 우리 동네 실상입니다."지금 난 미쳐 버릴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이 끔직한 시기를 견디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투신자살 직전에 남편에게 남겨 놓았던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유서를 어느 책에선가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 이웃에는 이런 유서라도 쓰은 처절한 심정들이 부지기수로 많습니다.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시간도 우리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영광도, 믿음도, 땅도, 하늘도 심지어 역사는 더더욱 우리 것이 아닙니다. 고스란히 물려주어야 할 유산입니다.위대한 정신적 지도자의 선종으로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조문행렬 속에서 우리 국민의 참 마음을 읽었습니다. 한사코 낮은 곳을 향하여 불살랐던 그분의 사랑 앞에 우리 모두는 피보다 진한 참회의 눈물을 흘렸고 그 사랑을 본받기로 마음속에 다짐했습니다. 우리에게 남기고 떠난 그분의 고귀한 사랑을 따른다면 비록 험난한 십자가의 길인들 어찌 감당하기 어렵겠습니까.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 솔로몬의 지혜를 마음에 새기고 간다면 새벽은 결코 머지않았습니다. 전국으로 번지는 사랑의 장기 기증대열을 보면서 그래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음을 확인합니다. 사랑합시다./안홍엽((주)필애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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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3.09 23:02

[전북칼럼] 총체적 난국에서 4·29 재선거 - 윤찬영

마치 봅슬레이 경기를 하듯이 정치와 경제 모두 빠른 속도로 하강하고 있다. 보는 이조차 아찔하다. 경제성장이 당연히 일자리를 증진시켰던 과거의 경제는 이미 사라졌고, 한 동안 고용 없는 성장의 모습을 보이더니, 이제는 성장도 고용도 모두 주저앉는 모양이다. 여기에다 대통령과 여당은 과거 회귀로 치닫고 있다. 지지율이 바닥 수준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 또한 낮은 지지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과부적을 호소하며 온 몸으로 여당에 저항하고 있지만, 아직은 국민들에게 별로 먹혀드는 것 같지 않다. 국민들이 마음을 둘 곳이 없다는 얘기이다.이런 상황에서 이번 4월 29일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선거는 민심의 성향과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인천 부평과 경주, 그리고 전주의 완산갑, 덕진 등 4곳에서 재선거가 치러진다. 전국적으로는 MB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또는 심판의 의미를 갖는 재선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전주의 재선거는 민주당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강하다. 재선거를 하게 됐다는 것 자체가 지난 해 총선에서 민주당이 공천을 잘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그러므로 이번 재선거에 임하는 민주당은 환골탈태의 자세로 국민들과 지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대 해야 한다. 한나라당 역시 이 지역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강현욱 전 지사를 내세워서라도 전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역시 이번 기회에 진정한 제도권 야당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강기갑 대표와 권영길 의원, 노회찬, 심상정 대표가 전주에 진을 치고 분투해야 한다. 이런 정도의 성의도 없다면 앞으로 민주당에 대해 지역당 또는 호남당이라는 비판을 삼가야 할 것이다.이 와중에 정동영 전 장관의 덕진 선거구 출마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두고 말들이 많다. 그의 출마여부는 개인적인 선택이지만, 그 의미 속에는 민주당과 전주지역이 모두 연루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찬반을 논하는 것 같다. 지지자들은 힘없이 밀리고 있는 민주당의 모습을 보면서 정동영 전 장관에 대한 향수가 강한 것 같다. 그러나 그를 지지하면서도 출마를 반대하는 이들도 많다. 지역구를 채수찬 전 의원에게 넘겨주고 대권에 도전했던 그가 다시 덕진에 출마한다는 것은 격이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창피스럽다는 생각마저 하는 것 같다. 오히려 부평 출마 또는 다음 기회에 수도권에 도전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그가 덕진에 출마한다면 당선은 될 것이라는 게 모든 사람들의 판단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정동영 전 장관이 선거에 나오든 안 나오든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정치판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주당이 힘을 받지도 못한다. 물론 민주당이 그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다면 사정은 조금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금 그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현재로서 차기 대권주자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만이 돋보인다. 확실한 고정표를 예약한 주자로 현 정권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아 대안으로 손꼽히고 있다. 정동영 전 장관은 박근혜, 이재오 등 한나라당 대권주자들과의 일전에 대비하여 내공을 쌓아야 할 것이다. 또한 원외에서 자유롭게 할 일이 많다. 이렇게 하기엔 지금 너무 배고프고 힘들다면 덕진 재선거에 올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일단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더 이상의 정치적 기대는 갖기 어렵게 될 것이다.입법전쟁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민주주의의 역사가 해체될 위기에 처해 있다. 북한은 계속 무력충돌 위협을 하고 있고, 언론노조는 총파업에 돌입하고 정권퇴진운동까지 시사하고 있다. 환율은 치솟고 경제는 추락하고 있는데,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재선거는 예비후보자들만의 구호만 요란하다. 정치와 시장의 봄은 올 것인가?/윤찬영(전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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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3.02 23:02

[전북칼럼] 신비로운 백제, 익산 미륵사 - 김영원

국가마다 정책, 사상, 신앙, 관습 등에 따라 탄생한 대단한 건축물들이 전해온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 용문과 운강의 수많은 석굴 사원들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익산 미륵사, 경주 황룡사, 석굴암 등도 그 반열에 속한다.익산 미륵사는 백제 무왕(600-641)과 관련된 창간 배경에서부터 학술적으로 수많은 추측과 주장을 불러일으킨 매우 신비로운 역사 속에 있다. 특히 ??삼국유사??의 서동설화에 근거한 여러 주장들은, 그 설화체계나 상징을 잘못 해석함으로써 사실과 전혀 다른 결론을 제시한 경우가 적지 않다. 설화에서는 인간세계에서 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진다. 예컨대 과부가 용과 관계하여 아이를 낳고, 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며, 밤 사이에 금을 신라로 보내고 미륵사를 짓기 위해 산(당시 용화산, 현재 미륵산)을 무너뜨려 못을 평지로 만드는 등의 일들이 그것이다. 또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해도, 그토록 빈번하고 처절한 전쟁을 벌인 백제 무왕과 신라 진평왕이 어떻게 혼인 관계로 맺어지는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설왕설래하던 미륵사의 신비가 최근 발굴된 사리장엄구의 명문을 통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즉 무왕의 비가 신라 진평왕의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좌평의 따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왕후가 백제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사리장엄구를 기해년인 639년에 봉안했다는 확실한 연대가 제시되었다.그러나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문제도 있다. ??삼국사기??에는 법왕에 이어 무왕이 완성한 '부여의 왕흥사'를 '미륵사'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따르면 익산 미륵사와 부여 왕흥사의 존재가 불분명하다. 또 익산의 옛날 명칭인 '금마저金馬渚'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익산이 물길로 이어지는 매우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음에도 천도나 역사적 의미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엇갈리는 상황이다.익산 미륵사의 신비는 서서히 벗겨질 것이다. 어떤 유적에서 어떤 획기적인 유물이 나올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지금까지 밝혀진 익산 미륵사의 역사적 중요성을 말해 주는 몇 가지를 요약해 본다.백제는 미륵사에 당대 최대의 석탑을 축조했다. 석탑이지만 목탑식이다. 무왕이 혼인한 분은 백제 좌평의 따님이다. 따라서 서동설화에서 선화공주는 당시 백제에서 유행한 미륵신앙의 미륵선화를 상징한 것이다. ??삼국유사??의 신라 선덕왕 643년의 기록과 같이, 황룡사 9층탑이 미륵사 9층탑을 지은 기술을 갖춘 백제인에 의해 세워졌다. 이것만으로도 당시 성숙했던 백제의 역사와 신앙과 문화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미륵사 창건시기(639)는 백제가 멸망한 660년에서 20여 년 전이다. 이때 백제의 문물은 세련의 극에 달했고 목탑식 석탑을 세울 정도로 앞서나갔다.그런데 지금 우리는 당시 백제의 선진성과 비교해 볼 때 어떤가. 약 5년 후에 정비가 마무리될 미륵사 탑과 그 유적과 주변 환경이 과거 미륵사의 위상에 맞는가. 현재의 우리의 삶과 이 유적을 어떻게 조화롭게 접목시켜야 할까. 문화적인 세련미와 심미안이 맞물린 청사진이 절실하다./김영원(국립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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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2.23 23:02

[전북칼럼] 수용과 관용의 사회로 - 김원호

로마는 광범위한 지중해 연안지역을 점령하면서 점령지역의 주민과 문화를 제국 안으로 수용함으로써 오랜 기간 강력한 제국으로 발전하였다. 금세기 로마제국과 비교될 수 있는 미국도 자국의 발전에 필요한 전문 인력은 물론 타 국가의 문화를 과감히 수용함으로써 강력한 국가로 존재할 수 있었다. 19세기 말, 우리나라는 개방과 쇄국이라는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는 사이에 일제 강점기를 맞이하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 당시 개방을 주장하는 새로운 세력이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기존 보수 세력 모두 사회의 지도계층으로서 많은 학식과 경륜을 갖추고 있었지만, 눈앞의 개인적인 이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면서 나라를 빼앗기는 설움을 온 국민에게 안겨 주게 된다. 참으로 슬픈 역사적 사실이다.원자력 발전으로 전력의 70% 이상을 공급하는 유럽의 강국 프랑스, 문화와 관광의 도시 파리 - 볼거리가 많은 파리 관광이 지루해 질 만 하면, 곧 다가오는 느낌은 지저분하고 어지럽게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과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진 파리가 무척이나 어수선하게 느껴진다. 또한 파리지엥의 자유로움은 방임에 가까울 정도로 제 멋대로 인 것처럼 보인다. 도무지 질서가 없어 보인다.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어수선한 프랑스의 파리와 방임에 가까운 파리지엥의 자유로움을 간직한 채, 유럽의 강국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그 힘은 똘레랑스(tolerance, 관용)라고 한다.우리도 유럽과 일본을 포함한 중국, 인도, 몽고, 베트남, 필리핀, 네팔 등 아시아 국가로 부터 약 100만이 넘는 이국인이 함께 살고 있는 다문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뿌리 깊은 유교적 정신문화를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이국인, 다문화 가정을 보수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受用과 寬容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곰씹어 봐야 할 시기가 아닌가? 어려서부터 교육을 통하여 오천년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동방의 횃불, 은둔의 나라, 단일 민족으로 인식되어 온 우리의 생각이 크게 흔들리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 얼마나 우리 것을 지켜야 하는지? 이렇게 서로 상반되는 개념을 조화롭게 융합하여야 하는 일은 늘 우리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기 마련이다.올해는 1859년"종의 기원"을 발표하여 생물학은 물론 서양 철학에 진정한 혁명을 몰고 온 찰스 로버트 다윈이 탄생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진화론의 핵심원리는 자연생명체가 자신의 생존습성에 적응하기 위하여 환경과 필요에 따라 자연 선택적으로 적응해간다는 사실이다. 생물학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진화론의 원리는 사회 현상에도 적용할 수 있어 보인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 것을 지키는 것과 우리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수용하는 문제는 환경과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서로 충돌하면서 환경과 필요에 따라 조정되고 선택적으로 수용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다른 것을 수용하는 것도 끊임없이 진화하는 과정의 일부분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자연 선택적으로 이루어지는 생물학적 진화와는 달리 사회의 구성원 또는 지도자 그룹이 그 환경과 필요를 조성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 진화는 자연 선택적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선택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우리는 이동과 통신 수단의 발달로 지구촌이 하나로 엮어지는 개방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세계적인 변화의 물결 속에 더 이상 닫힌 사고와 이기적인 생각으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스스로 만들고 선택해 가는 사회적 진화 과정에서 受用과 寬容이라는 열린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조화롭게 융합시켜 나가는데 매우 큰 충돌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受用과 寬容이라는 열린 생각이 풍만한 사회로 다가 가야만, 급격한 변화의 물결 속에 휩쓸리지 않으며 새로운 환경과 필요에 원만하게 적응해 나가게 될 것이다./김원호(정읍방사선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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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2.16 23:02

[전북칼럼] 다큐멘터리 2009년의 봄 - 안홍엽

오늘은 정월 대보름날, 상달에 상원(上元)이다. 입춘대길(立春大吉), 정월은 한해를 시작하는 달로서 도가(道家)에 따르면 천지인(天地人) 삼자가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달이라고 했다.매년 정월이면 으레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지함(토정)선생의 비결에도 기축 년 소의 해는 여유와 평화의 해라고 했다. 많은 역술인들마저 모든 국민이 전례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자갈밭을 가는 황소(石田耕牛)처럼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마침내 좋은 세상을 만날 것이라고 격려의 말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2009년엔 그저 수그리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수그리라는 충고는 겸손과 이해를 뜻하는 말인 듯싶다. 지도자들이 새겨들을 얘기다.부딪치면 깨지기 마련이고 자꾸만 부딪치면 화합은 더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화합의 전제는 역지사지(易地思之)다. 링컨대통령은 "그 누구에게도 적의를 품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호의를 갖자"고 역설하여 미국을 하나로 통합하고 국민적 화합을 이끌어 냈다. 44명의 미국 대통령 가운데 인기순위 1위의 비결이었다. 소통과 화합을 강조하면서도 단절과 이간을 부채질 하는 우리 정치지도자들에게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한배를 탔으면서도 8개월만의 어색한 만남 끝에 단 2분으로 대화를 끝낸 대통령과 박근혜, 국민은 이 만남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방한하는 힐러리 장관의 소감이 충격적일 것 같다. 밤잠을 설치며 경제를 걱정한다는 야당은 국가 비상국회가 아니라 용산국회를 운영하며 극한적인 정치투쟁으로 난국을 넘으려 한다. 국민은 이를 두고 과연 어떻게 느낄까.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王者以民爲天)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民以食爲天)(이지함 선생의 글)는데 허기에 지친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들이다.4.29 재선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30여명 우리 지역 명사들도 다음 물음에 확실한 대답이 없는 한 단 꿈을 접어야 한다.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였는가? 진정 국민을 하늘로 생각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여론조사에 나타난 참신한 인물이란 이 질문에 자신 있는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본연의 업무는 부단체장에게 맡겨 놓고 사실상 선거운동에 나서고 있다는 자치단체장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것이 오늘날 난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간 환경이라면 어디 서러워서 살겠는가. 정말 국민노릇 못해먹겠다.소리마당에서 "얼씨구" "좋다" 추임새가 없으면 그 판은 버린 판이다. 판의 주인은 소리꾼이 아니라 관객이라는 뜻이다. 앵콜과 박수가 없는 음악회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모든 일이 이처럼 위민(爲民)의 기초 위에 이루어지고 성취되어야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세상사는 그렇지를 못하다.입춘이 지났으니 이제 바야흐로 봄, 하동 홍쌍리 농장의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렸다고 한다.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매화꽃을 보라. 모진 북풍한설을 이겨 내고 희망의 전령사로 그 다소곳한 자태를 내민 것이다. 경제는 말이 아니고 정치는 X판이라도 매화꽃보다도 아름다운 선량한 우리에게 이 봄은 분명 희망의 찬가를 불러 주리라 믿는다. 남원에서 올라간 10살 여진이의 소원처럼 "우리 엄마 울지 않도록 만 해 주세요"가 대통령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세상이라면 우리의 앞날이 꼭 슬프지만은 않을 것이다. "폭풍이 지난들에도 꽃은 피고 지진에 무너진 땅에서도 맑은 샘은 솟아오른다." 다큐멘터리 2009년의 봄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안홍엽(필애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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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2.09 23:02

[전북칼럼] 2월은 역사의 분기점 - 윤찬영

역사적으로 2월은 중요한 달이었다. 1917년 러시아 짜르체제를 붕괴시켰던 것이 2월 혁명이다. 이것은 11월 볼셰비키혁명으로 이어져 사회주의 소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또한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으로 전환시켰고, 유럽 전역에 혁명과 통일의 기운을 전파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985년 2?12총선은 민주화의 도화선이 되었다. 엄혹했던 전두환 정권 시절에 신한민주당이 선거혁명을 통해 제1야당으로 부상하면서 대통령직선제 개헌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니까 2?12총선은 1987년 6월 항쟁의 전주곡이었던 셈이다.계절의 면에서도 2월은 혹독한 겨울이 물러가고 생명이 소생하는 봄을 맞는 시점이다. 그래서일까, 2월에는 역사적으로 중대한 분수령이 되는 사건들이 많았던 것 같다. 혹독하게 기승을 부렸던 황제, 절대왕정, 군사독재 등이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는 물꼬를 트는 계기가 2월에 나타났던 것이다.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도 2월은 중요한 국면으로 다가왔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22년 만에 각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대국민대회를 열었다. 소위 MB악법을 놓고 2월 임시국회에서 여야 간 대격돌을 벌이게 되어 있다. 만일, 이 법들이 통과되게 되면 우리는 다시 70년대로 돌아가야 한다. 한나라당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며 펄쩍 뛴다. 그러면서도 공개적인 국민적 토론의 장을 제대로 마련하지도 않는다.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서울대생 박종철군이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경찰의 발표는 결국 정권의 무덤을 파헤치는 결정적인 패착이 되었다. 올 해 1월에는 공교롭게도 남영동 근처에 같은 용산구에서 생존권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철거민들이 결창의 강경진압에 의한 화재로 5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자는 경찰 1명을 포함하여 6명이다. 22년 전에도 고 박종철군의 사인을 놓고 이를 호도하려는 정부당국과 이에 저항하는 국민들 사이의 힘겨루기가 이루어졌고 결국 국민적 항쟁으로 이어졌다.당시와 비교해보면, 끔찍한 참사가 모두 서울 용산구에서 벌어졌다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일을 저지르고 어설프게 무마하려 해서 일을 아주 크게 만든 것이 경찰이었다는 점도 같다. 이런 점에서 경찰은 민주화의 공신이다.또한 당시에는 고 박종철군의 사체를 부검한 의사가 기자에게 고문 흔적이 있었다는 점을 실토하여 경찰과 정권을 궁지로 몰았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라는 단일한 민주화 목표 아래 재야 양심세력과 야당이 단결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야당 및 시민사회진영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이 부분이 관건인 것 같다. 그래서 이번 2월은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제1야당인 민주당이 이번 2월에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가? 일단, 용산참사의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주력해야 한다. 법안 처리를 우선적으로 다루게 되면 결국 한나라당에 끌려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맞서 민생 해결을 위한 법안을 제시하고 관철을 위해 싸워야 한다. 이런 대안 없이 MB악법 저지에만 매달리면 결국 패배한다. 또한 재보궐선거에서 정파의 이익 관철을 위해 공천과정에서 꼼수를 부린다든지, 특정 정치인의 입지를 세우는 데 주력한다든지, 국회에서 싸우는 척하다가 결국 숫자의 열세를 명분으로 적당히 타협한다든지 하면 민주주의 역사에서 역적이 될 것이다. 죽으려 하면 산다고 했다. 민주당은 죽을 각오를 하는가? 죽을 자신 있는가?/윤찬영(전주대 사회과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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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2.02 23:02

[전북칼럼] 전주 상념 - 김영원

전주를 처음으로 나에게 이어준 고리는 박물관이었다.국립전주박물관으로 발령이 난 1993년 가을, 터덜터덜 혼자 박물관 정원으로 들어섰다. 지금 생각하면, 참 외롭고도 서글프기까지 한 장면이었다. 다행히 동료와 함께 발령이 나서, 낯선 곳에서도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됐고 또 한줄기 위로가 되었다. 이때부터 전주, 그리고 전북과의 인연이 깊어만 갔다.대학교수이던 선친(불문학자 金鵬九)은 늘 말씀하셨다. 퇴임하면 전주에 가서 여생을 보내겠다고. 병환으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못 이룬 그 염원이 곧 나에게서 발현되는 듯한 느낌이 온몸을 감쌌다. 그 분은 전주를 무척 좋아하셨다. 한옥이 고즈넉한 거리를 이루고, 음식이 맛깔스러우며, 사람들은 점잖다고 했다. 선친께서 들려준 70년대 전주 이야기다.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전주를 말하라고 하면, 오래된 전동성당, 아직도 조성 중인 한옥마을, 그리고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을 그려낸다. 특히 전동성당은 고풍古風 속에서 20세기 초의 서양풍을 접할 수 있는 신선한 전통 그 자체이다. 봄의 영화 축제, 가을의 소리 축제도 주목받고 있다. 또 여러 종류의 술이 개발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무주의 머루와인, 부안의 복분자주와 이름도 재미있는 뽕주(오디주) 등은 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애주가의 반열에 올리고 있다.이런 감성과 감각을 즐겁게 하는 음식과 술, 그리고 예술 축제에다가 역사의식과 소양을 보완다면, 전북의 문화생활이 풍요로워짐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여기에는 박물관의 역할이 보탬이 될 것이다. 유적을 조사하고 각종 특별전을 개최함으로써 전북의 역사를 복원해 내는 작업이 그것이다. 특히 며칠 전 공개된 익산 미륵사지 출토품들을 보면, 문헌으로는 밝힐 수 없던 우리나라의 역사가 크게 보완될 판이다. 과연 우리가 찾아내야 할 전북의 역사 문화의 핵심과 원류는 무엇일까.전북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다. 그런데 이후의 역사 유물을 보면, 마한, 백제, 통일신라 말기의 후백제, 고려, 조선 시대에 전북의 고유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필자는 미술사 중에서도 도자사를 전공하는 이유로, 조선시대 도요지(도자기를 만들던 곳)을 찾아 1996년 약 1년간 전북을 구석구석 헤맸다. 그래서인지 전북의 마을들은 속속들이 눈앞에 선하고 정겹다. 다만 몇 군데 훼손된 도요지의 모습은 아직도 안타깝기만 하다.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낡고 구태의연한 작업이 아니다. 오히려 그 지역에 활력을 불어 넣어 준다. 뿌리가 없는 나무가 곧 시들어버리고, 사람이 본능적으로 부모를 찾고, 못 찾으면 풀이 죽듯, 뿌리가 없이는 식물도, 사람도, 도시도 생생하게 발전할 수 없다.이 곳을 떠난 지 10여년이 지난 2008년 10월 늦가을, 박물관은 나와 전주의 인연을 다시 이어주었다. 전북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힘쓰라는 숙명인 듯 여겨진다./김영원(국립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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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1.28 23:02

[전북칼럼] 서로 믿는 사회가 위기 극복의 길로 - 김원호

원자력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면서 늘 마음속에 남아있는 의문이 있다.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이 경주 봉길리 지역으로 유치 결정됨에 따라, 경주 시민들과 그 외의 사업을 유치하기 위하여 경합하였던 지역의 시민들은 지금 이러한 결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리고 정읍 방사선과학연구소의 설립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을 돌이켜 보면, 이러한 과거의 결정이 잘 한 결정이었을까? 아니면 잘 못된 결정이었을까? 민주사회에서는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여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면 민주적인 결정이 되고, 힘 있는 사람이 단독으로 결정하면 독재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인가? 소수의 의견은 무시되어도 괜찮은가? 무엇이 옳은 의사결정 방법인가? 이러한 질문은 의사결정 방법에 대하여 특별히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다.직장이나 가정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우리는 순간순간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에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이 조그만 일이든 큰 일이든. 때로는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때로는 결정을 미루기도 한다. 중요한 문제를 다루면서, 중요하기에 오랜 시간을 고민하면서도 결정하는 순간은 아주 순간적으로 짧게 이루어지게 된다.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결정된 일을 추진하다 잘못된 점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열띤 토론과 오랜 경험을 가진 전문가의 의견을 바탕으로 사업 안(案)을 수립하고, 공청회와 여러 번의 회의를 거쳐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여 제안된 사업의 시행을 결정하는 것이 우리의 통상적인 의사결정 방법이다.대부분 우리는 분명히 목적에 적합하고 원칙적인 의사결정 방법에 따라 일이 결정되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어떤 사업이 결정되어 가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사업이 진행되었으며 과연 사업 목적에 걸 맞는 결과를 얻었느냐? 하는 점이다. 즉, 어떤 일이 결정되고 추진되어 가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잘 한 일, 잘 못된 일이란 과정보다는 항상 일의 수행결과에 따라 결정되어 지게 마련이다. 정당한 절차에 따라 추진되었던 사업도 사업 책임자에 의하여 원래의 목적이 왜곡되거나, 사업에 참여하는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이 개입되어 사업이 중단되거나 부실덩어리 사업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때로는 누구의 관심도 없이 언제 그런 사업이 결정되고 추진되었는지도 모르게 흐지부지 중단되기도 한다.그래서 중요한 사업은 엄격한 절차에 따라 사업이 결정되고, 사업의 책임자뿐만 아니라 감독자도 선임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중요한 사업이든, 사사로운 작은 사업이든, 간혹 실패한 사업이 발생하기도 한다. 왜 일까? 주변 환경변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사업 책임자의 능력과 도덕성, 그리고 사업 수행에 참여하는 다수의 성실함과 정직함이 부족한 것이 주된 이유가 아닐까? 사업의 성공 여부가 개인의 능력, 도덕성, 성실함, 그리고 정직함 등 어느 누구도 정량적으로는, 다시 말하자면, 숫자로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기준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특히, 사업을 감독하는 감독자의 윤리적 책임, 흔들림이 없는 공정성은 사업을 성공적으로 끝마치는데 매우 중요한 것이다.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사람 됨됨이가 잘 갖추어진 사람이 책임자, 또는 감독자로 선정되고, 책임자는 훌륭한 리더쉽을 발휘하여야 일하는 사람들에게 혼을 불어 넣을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임있는 리더가 하는 일은 적어도 실패하지 않고 무난히 성공할 것이라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 신년 초, 개인이나 회사, 또는 기관에서는 많은 일들이 계획 진행되고 있는데, 우리 사회도 모든 일에 믿음이 가장 우선시 되는 건전한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서로가 믿을 수 있는 사회만이 현재의 어려운 위기를 극복하는 지름길이자, 보다 나은 선진 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김원호(정읍방사선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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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1.19 23:02

[전북칼럼] 정초에 자살을 들먹이는 이유 - 안홍엽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치매에 대한 공포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권총자살을 했다.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은 대통령의 무책임한 말장난으로 한강에 투신했다. 자살의 원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아서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단연 세계 으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정치인의 자살은 지금까지 한건도 없다는 것이다. 왜 일까? 자살이란 사랑과 저주사이에서 생긴 고민의 결과인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저주에 휘몰리면서도 아무런 고민 없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리더십의 부재로 조직을 지리멸렬 시킨 결과 그것이 온통 국민의 고통과 절망으로 돌아오게 했으면서도 비이성적 난동과 무질서를 끝내려 하지 않는다. 거대 다수는 소수의 폭력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한심한 정치현장이다.독일, 미국, 프랑스에서 최근 잇달아 일어난 세계적 거부들의 자살사건은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던져 준다. 하나 같이 선대가 이룩해 놓은 부를 지킬 수 없다는 공포와 수많은 종업원들에게 고통을 안겨 줄지 모른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자살은 강한 책임감의 표현이자 신뢰상실에 대한 자기반성이다. 그런데도 국민의 간절한 소망을 무참하게 짓밟고 나라의 위신을 시궁창에 떨어트린 그들은 반성의 기미는 없고 국민에게서 위임 받은 권력만을 즐기고 있다.두 명의 국회의원이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1심판결을 받았을 때 만약 이런 사태가 현실로 나타난다면 우리는 함께 자폭을 하자고 울분을 토 했다. 과연 어떻게 되고 있는가? 자폭은 고사하고 죽은 자의 무덤 위에서 영화를 찾기 위해 수많은 인걸(?)들이 기웃거리고 있다. 그 면면을 살펴보라. 한마디로 가증스럽다. 마치도 하이에나의 잔치마당을 보는듯하여 전율을 느낀다. 무정하게 떠났던 수구초심의 정객도 대선의 추억을 잠시 접고 이름을 오르내린다. 하지만 이제는 제발 좀 냉정해지자. 지방선거가 1년도 훨씬 더 남았는데 후보를 미리 정해서 여론을 선점하자는 계획이 일각에서 추진되고 있는 모양이다. 순리를 무시하는 구시대적 작태일 뿐 아니라 국가적 위기상황에 대한 외면이다. 전임 대통령 네 명이 백악관에 모여 경제난국 극복을 위해 오바마 당선자에게 힘을 더해 주자고 다짐했다는 소식도 못 들었는가. 우리는 염원한다. 책임과 신뢰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지도자가 나오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그리고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리더를 고대한다. 미국역대대통령 가운데 인기 1위는 노예해방이 아니라 미국의 통합을 이룩한 링컨이었다.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도 간절히 염원하면 통하게 돼 있다. 돼도 좋고 안 돼도 좋고가 아니라 반드시 돼야 한다는 염원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총체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러한 때 지도자가 할 일은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간절한 염원을 갖는 것이다. 국민을 함부로 팔지 말고 머리와 가슴과 입으로 국민을 위하는 염원을 말해야 한다. 견위수명(見危授命)의 의지라면 가능하다.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없다. 항상 우리다. 모든 것이 회생하는 봄, 그 찬란한 봄과 함께 고달픈 질곡의 삶을 끝내기 위하여 우리 모두 염원하자! 희망을 노래하자! 정초에 자살을 들먹이는 이유를 상기하자./안홍엽(수필가필애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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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1.1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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