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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신비로운 백제, 익산 미륵사 - 김영원

국가마다 정책, 사상, 신앙, 관습 등에 따라 탄생한 대단한 건축물들이 전해온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 용문과 운강의 수많은 석굴 사원들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익산 미륵사, 경주 황룡사, 석굴암 등도 그 반열에 속한다.익산 미륵사는 백제 무왕(600-641)과 관련된 창간 배경에서부터 학술적으로 수많은 추측과 주장을 불러일으킨 매우 신비로운 역사 속에 있다. 특히 ??삼국유사??의 서동설화에 근거한 여러 주장들은, 그 설화체계나 상징을 잘못 해석함으로써 사실과 전혀 다른 결론을 제시한 경우가 적지 않다. 설화에서는 인간세계에서 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진다. 예컨대 과부가 용과 관계하여 아이를 낳고, 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며, 밤 사이에 금을 신라로 보내고 미륵사를 짓기 위해 산(당시 용화산, 현재 미륵산)을 무너뜨려 못을 평지로 만드는 등의 일들이 그것이다. 또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해도, 그토록 빈번하고 처절한 전쟁을 벌인 백제 무왕과 신라 진평왕이 어떻게 혼인 관계로 맺어지는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설왕설래하던 미륵사의 신비가 최근 발굴된 사리장엄구의 명문을 통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즉 무왕의 비가 신라 진평왕의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좌평의 따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왕후가 백제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사리장엄구를 기해년인 639년에 봉안했다는 확실한 연대가 제시되었다.그러나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문제도 있다. ??삼국사기??에는 법왕에 이어 무왕이 완성한 '부여의 왕흥사'를 '미륵사'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따르면 익산 미륵사와 부여 왕흥사의 존재가 불분명하다. 또 익산의 옛날 명칭인 '금마저金馬渚'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익산이 물길로 이어지는 매우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음에도 천도나 역사적 의미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엇갈리는 상황이다.익산 미륵사의 신비는 서서히 벗겨질 것이다. 어떤 유적에서 어떤 획기적인 유물이 나올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지금까지 밝혀진 익산 미륵사의 역사적 중요성을 말해 주는 몇 가지를 요약해 본다.백제는 미륵사에 당대 최대의 석탑을 축조했다. 석탑이지만 목탑식이다. 무왕이 혼인한 분은 백제 좌평의 따님이다. 따라서 서동설화에서 선화공주는 당시 백제에서 유행한 미륵신앙의 미륵선화를 상징한 것이다. ??삼국유사??의 신라 선덕왕 643년의 기록과 같이, 황룡사 9층탑이 미륵사 9층탑을 지은 기술을 갖춘 백제인에 의해 세워졌다. 이것만으로도 당시 성숙했던 백제의 역사와 신앙과 문화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미륵사 창건시기(639)는 백제가 멸망한 660년에서 20여 년 전이다. 이때 백제의 문물은 세련의 극에 달했고 목탑식 석탑을 세울 정도로 앞서나갔다.그런데 지금 우리는 당시 백제의 선진성과 비교해 볼 때 어떤가. 약 5년 후에 정비가 마무리될 미륵사 탑과 그 유적과 주변 환경이 과거 미륵사의 위상에 맞는가. 현재의 우리의 삶과 이 유적을 어떻게 조화롭게 접목시켜야 할까. 문화적인 세련미와 심미안이 맞물린 청사진이 절실하다./김영원(국립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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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2.23 23:02

[전북칼럼] 수용과 관용의 사회로 - 김원호

로마는 광범위한 지중해 연안지역을 점령하면서 점령지역의 주민과 문화를 제국 안으로 수용함으로써 오랜 기간 강력한 제국으로 발전하였다. 금세기 로마제국과 비교될 수 있는 미국도 자국의 발전에 필요한 전문 인력은 물론 타 국가의 문화를 과감히 수용함으로써 강력한 국가로 존재할 수 있었다. 19세기 말, 우리나라는 개방과 쇄국이라는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는 사이에 일제 강점기를 맞이하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 당시 개방을 주장하는 새로운 세력이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기존 보수 세력 모두 사회의 지도계층으로서 많은 학식과 경륜을 갖추고 있었지만, 눈앞의 개인적인 이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면서 나라를 빼앗기는 설움을 온 국민에게 안겨 주게 된다. 참으로 슬픈 역사적 사실이다.원자력 발전으로 전력의 70% 이상을 공급하는 유럽의 강국 프랑스, 문화와 관광의 도시 파리 - 볼거리가 많은 파리 관광이 지루해 질 만 하면, 곧 다가오는 느낌은 지저분하고 어지럽게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과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진 파리가 무척이나 어수선하게 느껴진다. 또한 파리지엥의 자유로움은 방임에 가까울 정도로 제 멋대로 인 것처럼 보인다. 도무지 질서가 없어 보인다.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어수선한 프랑스의 파리와 방임에 가까운 파리지엥의 자유로움을 간직한 채, 유럽의 강국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그 힘은 똘레랑스(tolerance, 관용)라고 한다.우리도 유럽과 일본을 포함한 중국, 인도, 몽고, 베트남, 필리핀, 네팔 등 아시아 국가로 부터 약 100만이 넘는 이국인이 함께 살고 있는 다문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뿌리 깊은 유교적 정신문화를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이국인, 다문화 가정을 보수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受用과 寬容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곰씹어 봐야 할 시기가 아닌가? 어려서부터 교육을 통하여 오천년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동방의 횃불, 은둔의 나라, 단일 민족으로 인식되어 온 우리의 생각이 크게 흔들리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 얼마나 우리 것을 지켜야 하는지? 이렇게 서로 상반되는 개념을 조화롭게 융합하여야 하는 일은 늘 우리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기 마련이다.올해는 1859년"종의 기원"을 발표하여 생물학은 물론 서양 철학에 진정한 혁명을 몰고 온 찰스 로버트 다윈이 탄생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진화론의 핵심원리는 자연생명체가 자신의 생존습성에 적응하기 위하여 환경과 필요에 따라 자연 선택적으로 적응해간다는 사실이다. 생물학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진화론의 원리는 사회 현상에도 적용할 수 있어 보인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 것을 지키는 것과 우리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수용하는 문제는 환경과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서로 충돌하면서 환경과 필요에 따라 조정되고 선택적으로 수용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다른 것을 수용하는 것도 끊임없이 진화하는 과정의 일부분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자연 선택적으로 이루어지는 생물학적 진화와는 달리 사회의 구성원 또는 지도자 그룹이 그 환경과 필요를 조성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 진화는 자연 선택적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선택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우리는 이동과 통신 수단의 발달로 지구촌이 하나로 엮어지는 개방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세계적인 변화의 물결 속에 더 이상 닫힌 사고와 이기적인 생각으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스스로 만들고 선택해 가는 사회적 진화 과정에서 受用과 寬容이라는 열린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조화롭게 융합시켜 나가는데 매우 큰 충돌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受用과 寬容이라는 열린 생각이 풍만한 사회로 다가 가야만, 급격한 변화의 물결 속에 휩쓸리지 않으며 새로운 환경과 필요에 원만하게 적응해 나가게 될 것이다./김원호(정읍방사선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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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2.16 23:02

[전북칼럼] 다큐멘터리 2009년의 봄 - 안홍엽

오늘은 정월 대보름날, 상달에 상원(上元)이다. 입춘대길(立春大吉), 정월은 한해를 시작하는 달로서 도가(道家)에 따르면 천지인(天地人) 삼자가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달이라고 했다.매년 정월이면 으레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지함(토정)선생의 비결에도 기축 년 소의 해는 여유와 평화의 해라고 했다. 많은 역술인들마저 모든 국민이 전례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자갈밭을 가는 황소(石田耕牛)처럼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마침내 좋은 세상을 만날 것이라고 격려의 말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2009년엔 그저 수그리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수그리라는 충고는 겸손과 이해를 뜻하는 말인 듯싶다. 지도자들이 새겨들을 얘기다.부딪치면 깨지기 마련이고 자꾸만 부딪치면 화합은 더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화합의 전제는 역지사지(易地思之)다. 링컨대통령은 "그 누구에게도 적의를 품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호의를 갖자"고 역설하여 미국을 하나로 통합하고 국민적 화합을 이끌어 냈다. 44명의 미국 대통령 가운데 인기순위 1위의 비결이었다. 소통과 화합을 강조하면서도 단절과 이간을 부채질 하는 우리 정치지도자들에게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한배를 탔으면서도 8개월만의 어색한 만남 끝에 단 2분으로 대화를 끝낸 대통령과 박근혜, 국민은 이 만남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방한하는 힐러리 장관의 소감이 충격적일 것 같다. 밤잠을 설치며 경제를 걱정한다는 야당은 국가 비상국회가 아니라 용산국회를 운영하며 극한적인 정치투쟁으로 난국을 넘으려 한다. 국민은 이를 두고 과연 어떻게 느낄까.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王者以民爲天)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民以食爲天)(이지함 선생의 글)는데 허기에 지친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들이다.4.29 재선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30여명 우리 지역 명사들도 다음 물음에 확실한 대답이 없는 한 단 꿈을 접어야 한다.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였는가? 진정 국민을 하늘로 생각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여론조사에 나타난 참신한 인물이란 이 질문에 자신 있는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본연의 업무는 부단체장에게 맡겨 놓고 사실상 선거운동에 나서고 있다는 자치단체장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것이 오늘날 난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간 환경이라면 어디 서러워서 살겠는가. 정말 국민노릇 못해먹겠다.소리마당에서 "얼씨구" "좋다" 추임새가 없으면 그 판은 버린 판이다. 판의 주인은 소리꾼이 아니라 관객이라는 뜻이다. 앵콜과 박수가 없는 음악회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모든 일이 이처럼 위민(爲民)의 기초 위에 이루어지고 성취되어야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세상사는 그렇지를 못하다.입춘이 지났으니 이제 바야흐로 봄, 하동 홍쌍리 농장의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렸다고 한다.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매화꽃을 보라. 모진 북풍한설을 이겨 내고 희망의 전령사로 그 다소곳한 자태를 내민 것이다. 경제는 말이 아니고 정치는 X판이라도 매화꽃보다도 아름다운 선량한 우리에게 이 봄은 분명 희망의 찬가를 불러 주리라 믿는다. 남원에서 올라간 10살 여진이의 소원처럼 "우리 엄마 울지 않도록 만 해 주세요"가 대통령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세상이라면 우리의 앞날이 꼭 슬프지만은 않을 것이다. "폭풍이 지난들에도 꽃은 피고 지진에 무너진 땅에서도 맑은 샘은 솟아오른다." 다큐멘터리 2009년의 봄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안홍엽(필애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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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2.09 23:02

[전북칼럼] 2월은 역사의 분기점 - 윤찬영

역사적으로 2월은 중요한 달이었다. 1917년 러시아 짜르체제를 붕괴시켰던 것이 2월 혁명이다. 이것은 11월 볼셰비키혁명으로 이어져 사회주의 소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또한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으로 전환시켰고, 유럽 전역에 혁명과 통일의 기운을 전파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985년 2?12총선은 민주화의 도화선이 되었다. 엄혹했던 전두환 정권 시절에 신한민주당이 선거혁명을 통해 제1야당으로 부상하면서 대통령직선제 개헌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니까 2?12총선은 1987년 6월 항쟁의 전주곡이었던 셈이다.계절의 면에서도 2월은 혹독한 겨울이 물러가고 생명이 소생하는 봄을 맞는 시점이다. 그래서일까, 2월에는 역사적으로 중대한 분수령이 되는 사건들이 많았던 것 같다. 혹독하게 기승을 부렸던 황제, 절대왕정, 군사독재 등이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는 물꼬를 트는 계기가 2월에 나타났던 것이다.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도 2월은 중요한 국면으로 다가왔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22년 만에 각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대국민대회를 열었다. 소위 MB악법을 놓고 2월 임시국회에서 여야 간 대격돌을 벌이게 되어 있다. 만일, 이 법들이 통과되게 되면 우리는 다시 70년대로 돌아가야 한다. 한나라당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며 펄쩍 뛴다. 그러면서도 공개적인 국민적 토론의 장을 제대로 마련하지도 않는다.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서울대생 박종철군이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경찰의 발표는 결국 정권의 무덤을 파헤치는 결정적인 패착이 되었다. 올 해 1월에는 공교롭게도 남영동 근처에 같은 용산구에서 생존권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철거민들이 결창의 강경진압에 의한 화재로 5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자는 경찰 1명을 포함하여 6명이다. 22년 전에도 고 박종철군의 사인을 놓고 이를 호도하려는 정부당국과 이에 저항하는 국민들 사이의 힘겨루기가 이루어졌고 결국 국민적 항쟁으로 이어졌다.당시와 비교해보면, 끔찍한 참사가 모두 서울 용산구에서 벌어졌다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일을 저지르고 어설프게 무마하려 해서 일을 아주 크게 만든 것이 경찰이었다는 점도 같다. 이런 점에서 경찰은 민주화의 공신이다.또한 당시에는 고 박종철군의 사체를 부검한 의사가 기자에게 고문 흔적이 있었다는 점을 실토하여 경찰과 정권을 궁지로 몰았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라는 단일한 민주화 목표 아래 재야 양심세력과 야당이 단결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야당 및 시민사회진영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이 부분이 관건인 것 같다. 그래서 이번 2월은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제1야당인 민주당이 이번 2월에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가? 일단, 용산참사의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주력해야 한다. 법안 처리를 우선적으로 다루게 되면 결국 한나라당에 끌려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맞서 민생 해결을 위한 법안을 제시하고 관철을 위해 싸워야 한다. 이런 대안 없이 MB악법 저지에만 매달리면 결국 패배한다. 또한 재보궐선거에서 정파의 이익 관철을 위해 공천과정에서 꼼수를 부린다든지, 특정 정치인의 입지를 세우는 데 주력한다든지, 국회에서 싸우는 척하다가 결국 숫자의 열세를 명분으로 적당히 타협한다든지 하면 민주주의 역사에서 역적이 될 것이다. 죽으려 하면 산다고 했다. 민주당은 죽을 각오를 하는가? 죽을 자신 있는가?/윤찬영(전주대 사회과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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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2.02 23:02

[전북칼럼] 전주 상념 - 김영원

전주를 처음으로 나에게 이어준 고리는 박물관이었다.국립전주박물관으로 발령이 난 1993년 가을, 터덜터덜 혼자 박물관 정원으로 들어섰다. 지금 생각하면, 참 외롭고도 서글프기까지 한 장면이었다. 다행히 동료와 함께 발령이 나서, 낯선 곳에서도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됐고 또 한줄기 위로가 되었다. 이때부터 전주, 그리고 전북과의 인연이 깊어만 갔다.대학교수이던 선친(불문학자 金鵬九)은 늘 말씀하셨다. 퇴임하면 전주에 가서 여생을 보내겠다고. 병환으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못 이룬 그 염원이 곧 나에게서 발현되는 듯한 느낌이 온몸을 감쌌다. 그 분은 전주를 무척 좋아하셨다. 한옥이 고즈넉한 거리를 이루고, 음식이 맛깔스러우며, 사람들은 점잖다고 했다. 선친께서 들려준 70년대 전주 이야기다.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전주를 말하라고 하면, 오래된 전동성당, 아직도 조성 중인 한옥마을, 그리고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을 그려낸다. 특히 전동성당은 고풍古風 속에서 20세기 초의 서양풍을 접할 수 있는 신선한 전통 그 자체이다. 봄의 영화 축제, 가을의 소리 축제도 주목받고 있다. 또 여러 종류의 술이 개발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무주의 머루와인, 부안의 복분자주와 이름도 재미있는 뽕주(오디주) 등은 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애주가의 반열에 올리고 있다.이런 감성과 감각을 즐겁게 하는 음식과 술, 그리고 예술 축제에다가 역사의식과 소양을 보완다면, 전북의 문화생활이 풍요로워짐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여기에는 박물관의 역할이 보탬이 될 것이다. 유적을 조사하고 각종 특별전을 개최함으로써 전북의 역사를 복원해 내는 작업이 그것이다. 특히 며칠 전 공개된 익산 미륵사지 출토품들을 보면, 문헌으로는 밝힐 수 없던 우리나라의 역사가 크게 보완될 판이다. 과연 우리가 찾아내야 할 전북의 역사 문화의 핵심과 원류는 무엇일까.전북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다. 그런데 이후의 역사 유물을 보면, 마한, 백제, 통일신라 말기의 후백제, 고려, 조선 시대에 전북의 고유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필자는 미술사 중에서도 도자사를 전공하는 이유로, 조선시대 도요지(도자기를 만들던 곳)을 찾아 1996년 약 1년간 전북을 구석구석 헤맸다. 그래서인지 전북의 마을들은 속속들이 눈앞에 선하고 정겹다. 다만 몇 군데 훼손된 도요지의 모습은 아직도 안타깝기만 하다.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낡고 구태의연한 작업이 아니다. 오히려 그 지역에 활력을 불어 넣어 준다. 뿌리가 없는 나무가 곧 시들어버리고, 사람이 본능적으로 부모를 찾고, 못 찾으면 풀이 죽듯, 뿌리가 없이는 식물도, 사람도, 도시도 생생하게 발전할 수 없다.이 곳을 떠난 지 10여년이 지난 2008년 10월 늦가을, 박물관은 나와 전주의 인연을 다시 이어주었다. 전북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힘쓰라는 숙명인 듯 여겨진다./김영원(국립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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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1.28 23:02

[전북칼럼] 서로 믿는 사회가 위기 극복의 길로 - 김원호

원자력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면서 늘 마음속에 남아있는 의문이 있다.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이 경주 봉길리 지역으로 유치 결정됨에 따라, 경주 시민들과 그 외의 사업을 유치하기 위하여 경합하였던 지역의 시민들은 지금 이러한 결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리고 정읍 방사선과학연구소의 설립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을 돌이켜 보면, 이러한 과거의 결정이 잘 한 결정이었을까? 아니면 잘 못된 결정이었을까? 민주사회에서는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여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면 민주적인 결정이 되고, 힘 있는 사람이 단독으로 결정하면 독재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인가? 소수의 의견은 무시되어도 괜찮은가? 무엇이 옳은 의사결정 방법인가? 이러한 질문은 의사결정 방법에 대하여 특별히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다.직장이나 가정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우리는 순간순간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에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이 조그만 일이든 큰 일이든. 때로는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때로는 결정을 미루기도 한다. 중요한 문제를 다루면서, 중요하기에 오랜 시간을 고민하면서도 결정하는 순간은 아주 순간적으로 짧게 이루어지게 된다.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결정된 일을 추진하다 잘못된 점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열띤 토론과 오랜 경험을 가진 전문가의 의견을 바탕으로 사업 안(案)을 수립하고, 공청회와 여러 번의 회의를 거쳐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여 제안된 사업의 시행을 결정하는 것이 우리의 통상적인 의사결정 방법이다.대부분 우리는 분명히 목적에 적합하고 원칙적인 의사결정 방법에 따라 일이 결정되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어떤 사업이 결정되어 가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사업이 진행되었으며 과연 사업 목적에 걸 맞는 결과를 얻었느냐? 하는 점이다. 즉, 어떤 일이 결정되고 추진되어 가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잘 한 일, 잘 못된 일이란 과정보다는 항상 일의 수행결과에 따라 결정되어 지게 마련이다. 정당한 절차에 따라 추진되었던 사업도 사업 책임자에 의하여 원래의 목적이 왜곡되거나, 사업에 참여하는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이 개입되어 사업이 중단되거나 부실덩어리 사업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때로는 누구의 관심도 없이 언제 그런 사업이 결정되고 추진되었는지도 모르게 흐지부지 중단되기도 한다.그래서 중요한 사업은 엄격한 절차에 따라 사업이 결정되고, 사업의 책임자뿐만 아니라 감독자도 선임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중요한 사업이든, 사사로운 작은 사업이든, 간혹 실패한 사업이 발생하기도 한다. 왜 일까? 주변 환경변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사업 책임자의 능력과 도덕성, 그리고 사업 수행에 참여하는 다수의 성실함과 정직함이 부족한 것이 주된 이유가 아닐까? 사업의 성공 여부가 개인의 능력, 도덕성, 성실함, 그리고 정직함 등 어느 누구도 정량적으로는, 다시 말하자면, 숫자로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기준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특히, 사업을 감독하는 감독자의 윤리적 책임, 흔들림이 없는 공정성은 사업을 성공적으로 끝마치는데 매우 중요한 것이다.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사람 됨됨이가 잘 갖추어진 사람이 책임자, 또는 감독자로 선정되고, 책임자는 훌륭한 리더쉽을 발휘하여야 일하는 사람들에게 혼을 불어 넣을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임있는 리더가 하는 일은 적어도 실패하지 않고 무난히 성공할 것이라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 신년 초, 개인이나 회사, 또는 기관에서는 많은 일들이 계획 진행되고 있는데, 우리 사회도 모든 일에 믿음이 가장 우선시 되는 건전한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서로가 믿을 수 있는 사회만이 현재의 어려운 위기를 극복하는 지름길이자, 보다 나은 선진 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김원호(정읍방사선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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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1.19 23:02

[전북칼럼] 정초에 자살을 들먹이는 이유 - 안홍엽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치매에 대한 공포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권총자살을 했다.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은 대통령의 무책임한 말장난으로 한강에 투신했다. 자살의 원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아서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단연 세계 으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정치인의 자살은 지금까지 한건도 없다는 것이다. 왜 일까? 자살이란 사랑과 저주사이에서 생긴 고민의 결과인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저주에 휘몰리면서도 아무런 고민 없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리더십의 부재로 조직을 지리멸렬 시킨 결과 그것이 온통 국민의 고통과 절망으로 돌아오게 했으면서도 비이성적 난동과 무질서를 끝내려 하지 않는다. 거대 다수는 소수의 폭력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한심한 정치현장이다.독일, 미국, 프랑스에서 최근 잇달아 일어난 세계적 거부들의 자살사건은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던져 준다. 하나 같이 선대가 이룩해 놓은 부를 지킬 수 없다는 공포와 수많은 종업원들에게 고통을 안겨 줄지 모른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자살은 강한 책임감의 표현이자 신뢰상실에 대한 자기반성이다. 그런데도 국민의 간절한 소망을 무참하게 짓밟고 나라의 위신을 시궁창에 떨어트린 그들은 반성의 기미는 없고 국민에게서 위임 받은 권력만을 즐기고 있다.두 명의 국회의원이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1심판결을 받았을 때 만약 이런 사태가 현실로 나타난다면 우리는 함께 자폭을 하자고 울분을 토 했다. 과연 어떻게 되고 있는가? 자폭은 고사하고 죽은 자의 무덤 위에서 영화를 찾기 위해 수많은 인걸(?)들이 기웃거리고 있다. 그 면면을 살펴보라. 한마디로 가증스럽다. 마치도 하이에나의 잔치마당을 보는듯하여 전율을 느낀다. 무정하게 떠났던 수구초심의 정객도 대선의 추억을 잠시 접고 이름을 오르내린다. 하지만 이제는 제발 좀 냉정해지자. 지방선거가 1년도 훨씬 더 남았는데 후보를 미리 정해서 여론을 선점하자는 계획이 일각에서 추진되고 있는 모양이다. 순리를 무시하는 구시대적 작태일 뿐 아니라 국가적 위기상황에 대한 외면이다. 전임 대통령 네 명이 백악관에 모여 경제난국 극복을 위해 오바마 당선자에게 힘을 더해 주자고 다짐했다는 소식도 못 들었는가. 우리는 염원한다. 책임과 신뢰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지도자가 나오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그리고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리더를 고대한다. 미국역대대통령 가운데 인기 1위는 노예해방이 아니라 미국의 통합을 이룩한 링컨이었다.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도 간절히 염원하면 통하게 돼 있다. 돼도 좋고 안 돼도 좋고가 아니라 반드시 돼야 한다는 염원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총체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러한 때 지도자가 할 일은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간절한 염원을 갖는 것이다. 국민을 함부로 팔지 말고 머리와 가슴과 입으로 국민을 위하는 염원을 말해야 한다. 견위수명(見危授命)의 의지라면 가능하다.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없다. 항상 우리다. 모든 것이 회생하는 봄, 그 찬란한 봄과 함께 고달픈 질곡의 삶을 끝내기 위하여 우리 모두 염원하자! 희망을 노래하자! 정초에 자살을 들먹이는 이유를 상기하자./안홍엽(수필가필애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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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1.12 23:02

[전북칼럼] 그래도 역사는 진보한다 - 윤찬영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역사는 진보하는가? 역사에 대해서 던지는 기본적인 질문들이다. 그러나 정답은 없다. 역사를 한낱 과거의 사실 자체로 이해하는 사람부터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숭고한 진리가 작동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까지 그 진폭은 참으로 넓다.과거 군사독재체제에서 민주화운동을 했던 세대들은 역사의 법칙을 과학적으로 이해하지는 못 했다 하더라도 역사의 진보를 신앙처럼 믿었던 것 같다. 독재권력의 폭력 앞에서 피가 터지고 죽어가지만 그래도 끝내 진리가 승리할 것이라는 강고한 믿음이 없었다면, 이 땅의 민주주의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기 시작했을 때 얼마나 감개무량했었던가? 영원할 것 같았던 권력의 부패를 도려낼 때 얼마나 카타르시스를 느꼈던가? 피 흘린 만큼 꽃피우는 역사의 진리를 체험하며 온 몸의 떨림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역사는 70~80년대를 향하여 거꾸로 가고 있다.중고등학교 사회과목에서부터 대학의 경제학을 배울 때까지 '실업'이라는 단어는 시험 출제용으로만 유용한 개념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경제는 매년 큰 폭으로 성장하였고, 일자리는 계속 늘어났기 때문에 실업문제를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약 40년 가까이 그랬다. 그러다가 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거꾸로 가는 경제, 실업문제를 뼈와 살이 아프도록 경험했다.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나나 했더니 이제 더 큰 공황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마이너스 성장까지 거론되고 있다.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도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다시 역사에게 묻는다. 역사는 진보하는가? 어떤 이는 파동처럼 굴곡은 있어도 크게 봐서 역사는 진보한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역사는 나선형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도무지 알 수 없다. 꾸준한 관찰과 성찰을 통해 필자가 파악하기로 역사는 단진동을 하면서 진보한다. 세기의 단위에서 보면 역사는 진보한다. 그러나 몇 년 또는 몇 십 년 내의 범위에서 역사는 후퇴하기도 한다. 독일의 이상적인 국가 바이마르공화국이 실패로 끝나고 히틀러의 파시즘이 지배했던 것, 419 이후 이승만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선진적인 내각책임제를 도입했으나 민생은 더욱 도탄에 빠지고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와 장기적인 독재체제가 등장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우리 인간의 수명이 세기를 넘지 못하다보니 혹자는 역사의 진보시기에 활동하다 죽어가고, 어떤 이들은 후퇴기에 살다가 죽어간다.2007년 대선 정국을 돌이켜 보자. 한나라당 경선이 한참일 때, 필자는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예상했다. 불길한 예측은 모두 맞아떨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정치는 급격히 후퇴할 것으로 예측했고, 경제는 대통령의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정치는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하기 때문에 주로 국내적 범주에서 대통령의 의지대로 움직이지만, 경제는 세계적 범주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경선 때부터 퇴보하는 역사를 걱정했다. 역사의 후퇴기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각오는 했지만, 이건 너무 한 것 같다.이제 우리는 역사 후퇴의 진폭과 기한을 단축하고 다시 전진하도록 역량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살고, 지역이 살고 우리가 산다. 역사는 범민주세력의 결집을 명하고 있다. 험한 길로 나서라고 부르고 있다./윤찬영(전주대 사회과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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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1.05 23:02

[전북칼럼] 3일만 볼 수 있다면 - 안홍염

또다시 한해가 서산에 걸렸다. 과거나 미래로의 시간여행을 상상해 보지만 시간의 역사가 규명해 줄 수밖에 없는 가고 옴의 오묘한 조화다.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선정한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서강대학교 장영희 교수의 글로 접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쓴 "헬렌 켈러"는 앞 못 보는 맹인으로 2차 대전 때 부상병구제운동을 주도해 "자유의 메달"을 받은 미국인이다. "헬렌켈러"는 눈을 뜨고 볼 수 있는 3일 동안 친절과 겸손과 우정, 밤낮이 바뀌는 웅장한 기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며 집에 돌아와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다시 암흑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1933년에 발표된 이 글은 당시 대공황의 후유증에 허덕이던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헬렌켈러"가 그토록 보고자 소망했던 일들을 우리는 날마다 일상 속에서 특별한 대가도 없이 보고 있다."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들의 지저귐을 들어 보라. 내일이면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아보라. 내일이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처럼 세상을 보라." 75년이 흐른 오늘 우리에게 "헬렌켈러"의 글이 새삼 간절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안목이 필요해서다.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자칫 역사를 수십 년 뒤로 돌려놓을지 모르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투쟁이 아니라 협력이고 분열이 아니라 통합이며 부정이 아니라 긍정이고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다. 또한 살고 죽음이 삶의 한 과정이듯 고통과 시련도 삶의 한 과정이라면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거기에서 찾도록 해야 한다.뒤 돌아 보기에는 너무나 아쉽고 민망한 2008년, 회고하기 조차도 무서운 한해였다. 해돋이와 함께 오는 새해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상이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세계경제가 최악을 기록할 것이라는 어두운 소식에도 우리에게 극복의 꿈만 있다면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행운이 오리라 믿는다.그래서 우리는 다짐을 한다. 한 점의 착오도 없도록 하기 위하여 새해에는 우선 삶에 쉼표를 찍으면서 살아야겠다고... 작가 정연희씨는 "쉼표가 없는 일상은 대패밥이나 톱밥처럼 우리들 본래의 삶에서 시나부로 깎여저 나가는 부스러기가 되고 말 것이다. 쉼표가 없는 문장을 읽으려면 숨도 차고 얼른 터득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긍정의 힘을 신앙처럼 굳게 믿겠노라고... 인생을 바꾸는 "긍정의 힘", No가 Yes로 바뀔 때 모든 일은 해피엔딩으로 장식 된다. 수세기 동안 단 1%만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은 놀랍게도 긍정의 힘이었다.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당선, 미국의 역사에 기록될 대사건도 긍정의 힘 때문에 일어났다. "Yes, We Can." 이 한마디가 미국을 열광케 했다. 변화를 추구하고 희망을 일구어가는 국민임을 세계에 과시했다. 모든 유기체는 변화 않고 생존할 수 없음을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 소의 해 2009년의 화두는 느림의 미학을 되새기며 긍정의 힘으로 희망을 추구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다.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타고르). 2009 파이팅!/안홍엽(수필가, 필.애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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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2.29 23:02

[전북칼럼] 개인행복시대, 공생 안전망 절실 - 이흥재

'혼·자·서·잘·살·자'라며 얄밉도록 자기 자신에 푹 빠져 사는 사람들이 많다. 행복을 찾은 다양하다. 성형수술 같은 외모치중파도 있고, 남에게 한없이 베풀며 스스로 행복을 채우는 삶도 있다. 이른바 지금은 개인행복, 절대행복시대이다. 행복추구는 개인목표일 뿐만 아니라 국가나 사회차원에서도 중요한 과제로 되었다.이 같은 트렌드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는 소시민의 작은 행복을 지킬 안전망이 너무나도 취약하다. 고속성장사회를 거치면서 허둥지둥 지내느라 최소한도의 자기안전망조차도 소홀히 해왔다. 하물며 사회안전망은 더할 나위 없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개인 가처분 소득증대라고 하는 말이 무색할 '이름뿐인 책임사회'이다.누가 뭐래도 우리는 공존 · 공생 · 공진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맑고 밝은 사회에서 살 권리가 있다. 그래서 세금내면서 국가라는 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공공질서와 공익에 승복하는 것은 이러한 사회안전망을 만들어 보호해주는 국가의 역할을 각자가 받아들이기 때문이다.그런데 너 나 없이 부르던 행복노래가 해넘이 인사 메일을 보내는 요즘 좀 우울하다. 스치는 경제소식들을 외면한 채 잘 될 거라고 너스레를 떨면 기만이 될 것 같다. 어떤 이 들은 새해를 내다보며 큰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지만, 혹여나 그 틈새에서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삶들이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지금은 모두 어렵다. 모두가 공생에 힘을 모아야 한다. 세상이 소용돌이치면서 한계선상에 방치되는 대상이 점점 넓혀지고 있다. 사회안전망이란 기본적으로 의료복지시스템이지만, 이럴 때 일수록 정신건강도 함께 챙겨줘야 한다. 가벼운 우울증이나 가슴앓이에서 시작되어 스트레스나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인터넷, 위험한 장소, 약품들이 너무도 쉽게 방치되어있다.한계선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성간의 사랑, 이혼이나 별거, 사회적 고립, 실직, 기업도산, 학력부진, 질병 악화, 약물 중독, 위험한 일터 등은 함정이다. 이들을 사회적 안전망으로 보호해줘야 한다. 더 말할 것 없이 이제는 당연히 사회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접근해야한다. 막말로 자살로 생기는 GDP손실금액을 그대로 공생정책에 투입한다면 수 조원에 이를 것이고, 그 결과는 어찌 수치만으로 계산할 수 있겠는가.IMF위기 시절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 주변사람들의 고통은 또 어떠할 것인가. 신문보도에 따르면, 2007년 우리나라 자살 사망률은 인구 10만명 당 28.8명으로 OECD국가들 가운데서 가장 높다. OECD 평균(2006년)은 11.2명으로 우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 다음을 잇는 일본(19.1명), 핀란드(18명)와도 큰 차이가 있다. 자살왕국이라 불리던 일본은 '자살대책기본법'(2007)을 만들고 관련 종합대책을 범 부처차원에서 추진해 효과를 거두고 있다. 국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 사업주, 학교, 관련 민간단체 등이 서로 밀접하게 연계하여 추진할 책무를 정하고 있다. 모든 자치단체들이 2008년도에 '대책연락협의회'를 설립하고, 주무부처는 '대책가속화계획'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터놓고 이야기 나눌 사람 단 한명만 있어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는 말을 정책으로 보호해야 한다.우리는 IMF 즈음의 일들을 어설프게 넘기고 잊고 있다. 또 다시 그런 일이 없어야겠다. 절대행복, 공생시대라는 말에 알맞은 최소안전망이 절실하다. 자기안전망도 이제는 사회안전망으로 승화시켜야한다./이흥재(전주정보영상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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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2.22 23:02

[전북칼럼] 씨앗을 지키는 농부의 마음으로 - 강신재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촉발된 세계경제의 위기국면이 지속되면서 국내외적으로 많은 우려를 낳고 있는 와중에 우리경제도 2008년 하반기로 들어서면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세계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미국 경제위기의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미국 경제위기의 표면적인 원인은 달러 유동성 과잉에 따른 자산의 버블붕괴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 제조업의 붕괴로 인한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작금의 미국의 경제위기는 일시적인 금융문제만이 아닌 금방 회복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라 할 수 있다.이러한 미국의 경제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바로 건실한 핵심기술 제조업을 가지고 있는 국가만이 튼튼한 경제구조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며, 제조업이 튼튼한 나라가 금융 산업도 안정된 기반 하에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즉, 한 나라의 경제를 나무에 비유하면 금융 산업은 잎가지열매로 볼 수 있다면 제조업은 뿌리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후와 날씨가 거칠어 잎과 가지가 상해도 그 뿌리가 견실하면 언제든지 다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지만 뿌리가 부실하면 나무는 쓰러지게 마련이다.미국은 확충된 금융자본을 금융 및 제조업에 재투자해야 했지만 금융 및 부동산에만 집중한 결과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다.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10년 전 IMF 구제금융의 위기 때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특정업종에만 국한되지는 않았지만 특히 이공계 연구원들이 가장 먼저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다는 사실은 우리사회의 제조업에 대한 인식을 극명하게 나타낸 사례라 하겠다.따라서 당분간 이번 위기로 불거진 한국경제의 침체는 불가피한 것이겠지만, 세계경제가 다시 활성화 될 때까지 우리의 성장 동력을 유지강화시킬 필요가 있으며 그 중심에 서있는 분야가 '핵심 부품소재'분야이다.현재 국내 부품소재의 가장 큰 문제는 세계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핵심제품과 기술이 크게 부족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핵심제품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이유는 무엇보다 기술개발 노력과 투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며, 선진 해외기업들은 매출의 8~10%를 투자하는데 반해 국내 기업들은 1~4%를 투자하는데 그치고 있다고 교육과학기술부는 밝히고 있다.따라서 국가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지역에서도 미래의 한국경제전북경제라는 나무를 크고 튼튼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그 뿌리를 이루는 제조업발전에 역량을 쏟아야 할 것이며, 그 핵심을 이루는 부품소재산업의 발전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농자아사 침궐종자(農者餓死 枕厥種字)라는 말이 있다. 농부는 굶어죽을 지언정 내년에 심을 종자는 먹지 않는다는 말인데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미래의 희망인 '씨앗'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우리의 미래를 준비해야 하겠다./강신재(전주기계탄소기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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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2.15 23:02

[전북칼럼] 수도권 집중 대한민국, 타이타닉 되고 있다 - 윤찬영

그렇게 인기 없었던 노무현 정부의 정책 중에서 그나마 국민적 지지를 얻었던 것은 지역균형발전정책이었다. 1960년대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집중된 지독할 정도의 불균형적인 현상을 깨뜨리고 건강한 발전을 도모하려는 참여정부의 시도는 행복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정책으로 나타났다. 그 밖에도 지방언론과 지방대학을 살리려는 다양한 정책들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마저도 뒤집어버리는 수도권 규제 완화를 고집하면서 입으로는 여전히 지방을 위한다고 한다. 지역언론과 대학들은 안중에 도 없다.정부와 정치권의 유력인사들, 중앙언론의 유력인사들, 유명 지식인들, 강남과 부자지역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도 출신지역은 대개 지방이다. 그들은 자신의 고향이나 연고지에 대해 지방에서 기대하는 것만큼 절실하지 못하다. 자신들이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의 발전과 개인의 이익을 위해 생각하고 움직일 뿐이다. 그런데 지방에서는 수도권에 있는 출향인사들에게 매우 우호적이고 낭만적인 기대를 걸고 있다.수도권과 지방이 이렇게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경제방식과 밀접하다.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대세였던 경제방식은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더 이상 이윤추구가 어려워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당시에는 집중적인 불균형 성장론이 먹혀들어갔다. 그래서 집적된 대도시를 중심으로 경제를 일으켰었다. 수도권 집중이 당연시되었다. 그나마도 부동산 투기 등 각종 투기로 돈을 벌어 경제를 해 왔으니 건강할 리가 없다. 처음부터 예견되었던 것이지만, 이러한 방식이 위기에 처했다.장기간의 수도권 집중으로 인해서 우리는 가라앉고 있는 거대한 타이타닉호를 타고 있는 꼴이 되었다. 전혀 새로운 배로 갈아타기 위해서라도 균형적인 분산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새로운 배는커녕 구조선이 올 때까지도 버티지 못한다. 세계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운명이 흔들리고 있는 마당에 산업자본주의시대의 건설산업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그 동안의 경제방식은 양극화라는 난치병을 가져왔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 제1항이 무색해진다. 소위 함께 화합한다는 '공화국(共和國)'에서 이렇게 격차가 벌어지게 만드는 정책을 일관하고 강화시킨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불균형 성장방식은 급속한 성장을 가져왔지만 비만과 기아가 공존하는 경제였다. 수도권은 비만으로 죽고 지방은 말라 죽을 것이다. 수도권이 넘쳐난다고 해서 그것이 지방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소위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는 없었다. 기존의 방식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비전과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새로운 경제방식이 어떤 것일지라도 지역과 계층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오래 전에 필자는 당시 전주시장과 대담을 한 적이 있다. 전주를 제발 서울의 아류로 만들지 말아달라는 호소를 했다. 서울식으로 개발하면 영원히 뒤처지고 발전하지 못한다며 지역 특유의 경제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었다. 너무 어려운 주문이었을까? 지금 전주는 서울의 허름한 변두리처럼 변해가고 있다. 하기야 전국의 모든 지방도시들이 서울의 모퉁이처럼 변모해왔다. 서울에 기대지만 말고 우리 자체의 역량을 뜨겁게 그리고 지혜롭게 모아보자./윤찬영(전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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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2.08 23:02

[전북칼럼] 백혈병 소년의 아름다운 소원 - 안홍엽

천지에 죽은 낙엽만 뒹구는 11월은 어쩐지 잊혀 진 본능처럼 죽음을 생각하기에 걸맞은 때인지도 모른다. 10월의 자지러질듯 화려한 세상, 다가오는 새해와 함께 스러졌던 희망이 다시 생기는 12월, 그 사이에 끼여 신음하는 11월은 만물에게 절망의 늪일 수밖에 없다.그 11월, 지구 저쪽에서 날라 온 열한 살 소년의 갸륵한 얘기는 우리에게 감동적인 한편의 시요 천상의 아름다운 소리와도 같았다. "어머니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지금은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배고픈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싶어요." 병원에서 돌아온 길, 추위에 떨고 있는 늙은 노숙자를 보고 뇌까리는 소년의 말이었다. 그러나 브래드군은 어머니가 노숙자들을 위해 마련한 잔치가 끝나기도 전에 환한 미소를 남기고 열한 살 짧은 일생을 마감했다. 이 소식이 전해진 미국의 씨애틀에서는 당장 트럭 여섯 대 분의 음식과 6만 달러의 성금이 모아졌다. 브래드군은 2주간의 남은 시간을 불우이웃 돕기에 쓴 셈이다. 사형집행까지 남은 시간 5분을 옆 사람과 마지막 인사, 자신의 삶 돌아보기, 그리고 자연을 둘러보는데 썼던 도스토예프스키에 비해서도 시간의 소중함과 가치를 훨씬 더 드높인 셈이다. 꺼져가는 생명에 집착하지 않고 불우 이웃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이다.도스토옙스키는 "선과 악의 투쟁은 사랑하려는 힘과 사랑하지 못하는 힘의 대결"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사랑하지 못하는 힘에 편들거나 억눌리고 있다. 노블리스 오브리제도 화려한 논리에 지나지 않는 말잔치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나 논리 보다는 사랑이 먼저다. 사랑은 반드시 논리보다 앞서야 한다. 국민여동생 문근영의 몸에 익힌 사랑도 이상한 논리에 짓밟힐 번했지만 괘념치 않겠다는 다부짐으로 사랑의 위대함을 실증해 보였다. 해마다 12월이면 몰래 돈뭉치를 동사무소에 갖다 놓고 살아진 사람은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선행을 홍보하는데 열을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랑의 열매를 액세서리로 꽂고 다니는데 만족하는 이웃사랑도 넘쳐 나는 12월이다. 동전 세 닢을 바친 여인을 크게 칭찬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해야한다. 급식비를 내지 못하여 점심을 굶어야 하는 결식아동이 많다는 사실은 남의나라 얘기가 아니다. 12월이 되면 사랑의 연례행사들이 봇물을 이루게 된다. 왜 하필 12월일까? 꼬깃꼬깃 가슴에 쌓아 두었던 사랑의 힘이 한꺼번에 분출되는 거라고 가정해 두자. 그러나 사랑은 생명 이전의 것이고 죽음이후의 것이라고 했다.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 이미 사랑은 존재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사랑은 시간도 공간도 없음을 일러주고 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을 경건하게 묵상해야 할 개념들이다.희망과 절망이 교차 되는 12월,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 앞으로 12월을 몇 번이나 더 맞이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건 사랑 없는 지옥에서 속절없이 지내기에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비록 2주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랑이라는 영원한 가치를 실천이라는 선물로 남기고 간 11살 브래드군의 명복을 빈다. 지구촌을 달군 이 훈훈한 사랑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 옆에 등장할 자선냄비에 가득 찬 세모가 되었으면 좋겠다./안홍엽(수필가필애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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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2.01 23:02

[전북칼럼] '그린 핸드' - 이흥재

'그린 핸드'는 내가 지어낸 낸 말이다. 지난 여름이었다. 뙤약볕에서 어떤 할머니가 잔디밭 잡풀을 뽑으며 뭐라고 중얼중얼하는 것이었다. 좀 이상한 분인가 보다 했는데 가만 들어보니 풀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애야, 미안하다. 좋은 곳으로 다시 태어나거라". "미안하다".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묻자, 저도 살려고 나왔는데 보기 싫다고 뽑아버리는 게 미안하다는 것이다. 놀랬다. 녹색 사랑 할머니의 마음 씀씀이에... 나는 장갑조차 없이 투박한 그 할머니의 손을 '그린 핸드'라고 이름 붙여 경의를 표했다.내가 만난 또 다른 그린 핸드는 공공기관에 꽃을 보내주는 분이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얽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볼 수 있고, 우선 일하는 분들이 즐겁게 일하는데 보탬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정성껏 화분을 다듬는 그 손길을 그린 핸드라고 붙여주는데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이 같은 녹색사랑 마음뿐만 아니라 생명 외경심에 대해서까지도 이 이름을 붙이겠다. 내 어릴 적에 할머니는 닭을 잡을 때면 꼭 나무아니타불을 중얼거리시곤 했다. 왜 그러냐는 철없는 손자에게 할머니는 "닭고기가 맛있으라고"그런다고 말을 흘리셨다.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 퍼덕거리는 닭.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을 읊으시며, 그 모가지를 움켜쥐느라 힘줄이 돋던 할머니 손을 나는 지금 그린 핸드라고 부르고 싶다.또 다른 그린 핸드는 오늘 점심시간에 만났다. 모처럼 구두도 닦아달라며 구둣방 아저씨에게 바닥이 떨어진 너덜거리는 슬리퍼를 내밀었다. 본드를 붙이기만 해도 되는데 질긴 실로 야무지게 바닥을 꿰매주었다. 버려도 될 것을 가져온 나에 대한 감사라는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그의 검은 손은 내가 귀히 여기는 그린 핸드다. 생명도 없는 아니 생명이 다한 것을 살려낸 손이다. 실 값으로 내민 오백원에 쑥스러워 하는 그 아저씨 표정은 그린 스마일이다.좀 과장일지 모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림에서 그린 핸드를 찾을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 '천지창조'는 신의 손과 아담의 손이 닿을락 말락 하고 있다. 서로 움켜쥔 손보다도 그 정도의 간격에 이르는 마음이 더욱 아름답다. 그래서 그 손도 그린 핸드라 이름 붙이고 싶다. 미술해설서 가운데 이설을 끄집어 내 재미 보는 책들에서는 이 그림은 흔히 알려져 있듯이 신의 손길을 인간이 받아들이는 장면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신이 인간의 손을 놓아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책값을 뺏어간다. 구원의 손길을 뻗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 주는 두 손을 모두 그린 핸드라고 새겨두고 싶다. 이 그림과 관련해서 오히려 재미있는 이야기는 작가 미켈란젤로의 열정이다. 조그만 그림을 그리느라 천정에 매달려 땀 흘리는 작가에게 친구가 말했다. "누가 보고 알겠느냐 대충대충 해치우라". "내가 안다"고 하며 아랑곳없이 열정을 쏟아 작가는 정성을 다했고 오늘 날 명작으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에 마음속에 일하는 동기를 확실히 지니고 추진하면 성공한다는 의미로 '미켈란젤로의 동기'라는 격언이 생겨났다고 한다.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일하거나 동기의식 없이 떠밀려가며 일하는 요즘 적당주의 세태에 되새겨볼만한 대목이다. 미켈란젤로의 페인트 뭍은 손은 그린 핸드다. 그가 흘린 땀방울은 그린 다이아몬드다.요즘 경제가 어렵다고들 한다. 세상이 어지럽다고 한다. 그린 핸드는 마음이다. 그린 핸드가 아름답다. 그린 핸드는 이 시대의 새로운 경쟁력이다. 녹색을 사랑하는 사람,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 도움을 주고받거나,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는 열정파, 그들이 바로 이 시대의 정신이고 힘이다./이흥재(전주정보영상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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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1.24 23:02

[전북칼럼] 하얀 제국 검은 대통령의 등장 - 윤찬영

미국 제44대 대선에서 역사상 최초로 흑인 버락 오바마(Barak Hussein Obama)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이것은 역사적 사건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우리에게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 역시 미국이라는 제국의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인들이 지배해 온 사회에서 비록 백인의 피가 섞였지만 흑인의 후손이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은 미국사회의 엄청난 변화를 말해 준다.오바마의 당선을 보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각이 났다. 우리 정치사에서 지긋지긋했던 전라도 몰매의 역사가 떠올랐다. 영남 정권에 의해 조작된 터무니없는 호남인의 품성론은 비호남인들에게 오랫동안 먹혀들어 갔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이런 의식들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정치권은 여전하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소위 '고소영 내각'에서 볼 수 있듯이 현 정권은 영남 편중 정권이다. 과거 영남 정권과 다르다면, 영남 출신이지만 서울과 수도권에서 성공한 사람들에 집중된다보니 영남지역과 대립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수도권을 위해 지방을 희생의 제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역사적으로나 세계적으로 모든 시대에 모든 사회는 지배세력들이 자신들의 지배구조를 정당화하고 지속시키기 위해 정치적 속죄양 집단을 만들어 냈다. 독일은 유대인, 미국은 흑인, 일본은 조선인, 우리나라는 전라도 사람들을 속죄양으로 삼았다. 모든 문제는 이들 때문이며, 따라서 이들은 차별, 감시, 통제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다. 따라서 지배자와 속죄양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이다. 모든 사회의 약자들은 식민통치의 대상이었다. 장기간의 통치는 피지배자들의 의식조차 분재처럼 변형시킨다. 그리고 분열시킨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지배자의 생각에 자신을 맞추어가며 적응해왔다. 만일 지배의 부당성에 맞서 저항하면 죽음과 파멸로 내몰리기 때문에 스스로자기 부정을 하는 것이 사는 길이었다. 살기 위해 서로 분열하고 경쟁해야 했다. 호남인으로서의 의식이 전혀 없는 올림픽 스타들의 부모 또는 조부모의 연고를 내세워 전북인의 쾌거라고 떠들었던 언론의 모습은 참으로 눈물겹다.양극화가 심회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시대에서도 이러한 왜곡된 통치와 의식은 지속되고 있다. 자신이 노동자, 서민이면서도 잘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흉내를 내려고 한다. 본인이 열심히 하면 부자의 대열에 들 것처럼 착각한다. 환란 이후 우리 사회에 널리 펴졌던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말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말로 받아들여졌지만, 실제로는 진실을 왜곡하고 현실의 모순을 은폐시키는 이데올로기적 환각제였다. 부자는 가만히 있어도 훨씬 더 부유해지고 그들을 좇던 중산층도 갈수록 서민층으로 전락하고, 잘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서민들은 살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하는데 더욱 살기 어려워진다. 그래도 부자 되라는 그 말에 위안을 느끼며 산다. 이 얼마나 허위인가?과거 알제리 독립운동에 나섰던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저작을 통해 식민지 흑인들의 정신적인 분열과 자기 주체성을 상실하고 부정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박노자의 "하얀 가면의 제국"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시하여 동양인들에 내재하고 있는 서구중심적 사고에 대해서 일갈한다.우리 지역의 객관적 지위와 조건에 따라 주체성을 가지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이나 수도권이 우리의 전범(典範)은 아니다. 호남인은 대한민국의 흑인이었다. 황색이면서도 백인과 동일시하는 정부에 돈 달라고 매달리는 것도 현실적으로 필요하겠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내부적으로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윤찬영(전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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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1.10 23:02

[전북칼럼] 축제, 꽃과 나비어라 - 안홍엽

이석형PD는 프로그램 구상에 몰두하면서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다. 그 결과 한적했던 시골 마을은 일약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PD출신 이석형 함평군수의 스토리텔링 줄거리다. 인구 3만 6천의 작은 고을에 2백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직간접 수익 2천억원을 헤아리게 되었으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함평 나비축제", "나비"라는 한 가지 주제를 살려 다양한 콘텐츠로 사람들의 감각을 매료시킨 결과물이다.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는 연간 6백만명을 끌어 모으는 대표적 수익축제로 자리매김 되었고 삿보로 눈축제, 리우 카니발, 등 세계적인 축제들은 한결같이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여 성공을 거둔 사례들이다. 이석형 함평군수는 PD적인 통찰력과 기획력으로 나비라는 사랑스러운 자연에 살포시 접근하여 가히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것이다. 나비는 벌과 달리 꿀을 따러 꽃에 가더라도 벌처럼 공격적이 아니라 춤을 추며 온갖 교태를 다 부리며 접근한다. 축제는 이렇게 주민의 환심에 싸여 꽃과 나비처럼 달콤한 속삭임이 있어야 생명력이 있다. 정말로 재미와 의미가 있는 축제라면 주민들은 열렬히 함께하게 된다. 경축하며 벌이는 큰 잔치와 제사, 축제 속에는 모든 예술이 망라되어 있을뿐 아니라 엄숙한 종교성까지도 녹아 있어야 한다. 축제에 예술성이 없고 구성력이 빠지면 혼이 없는 몸짓에 불과하다. 오늘날의 축제는 대부분 본래 의미를 잃고 먹자판, 놀이판, 팔자판으로 변질되었다. 판으로 변질되려면 철저하게 판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는데 엉뚱하게도 지방수령들의 생색내기 판으로 둔갑하여 일회성이 아니면 돈 먹는 하마로 전락돼 버렸다. 그리하여 붕어빵을 닮은 행색으로 바뀌어 중심이 되어야할 주민들의 철저한 외면 속에 그들만의 잔치로 타락해 버렸다. 화천의 산천어 축제가 100만명의 관광객을 모으자 인근 고을에서 메기축제를 벌렸지만 물론 형편없는 실패를 했다. 오늘날 지역축제의 자화상이고 현주소다.내용이 엇비슷한 "판박이 축제", 노래자랑은 단골 메뉴고 농악놀이, 연예인 초청행사, 그리고 먹자판의 난장 등 고만 고만한 레퍼터리로 채워지고 있는 축제마당에는 해마다 사람이 줄고 적자 결산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우리고장의 축제 현장, 한마디로 한심하다. 50여개나 되는 축제에 연간 130억원의 예산을 쓴다는데 그 90%이상이 혈세라고 한다. 지방수령들의 생색내기로 전락한 축제라면 혈세의 낭비는 배신이며 범죄행위다. 행사는 있되 평가가 없는 결과다. 평가를 통해 정확한 손익계산서도 작성되지 않았다. 23억이 들어간 세계소리축제는 총수익이 얼마인가? 세계라는 어휘사용에 손색이 없었던가? 예술성은 얼마나 살렸던가? 주민의 단합과 참여는 만족할 수준이었던가? 원칙에도 어긋나고 국적도 없는 자기들만의 무대는 아니었던가? 에 자신 있는 대답을 해야 된다. 모든 축제가 같은 질문에 부끄럽지 않은 응답을 해야 한다. 그리고 평가를 위한 평가, 그들만의 평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축제의 계절이 끝났다. 허영의 이상은 그림자처럼 살아졌다. 쓰나미처럼 휩쓸고 간 그 자리엔 진한 아쉬움과 못다 한 미련과 그리고 흉한 쓰레기만 남았다. "오 마이 갓" 제발 이런 축제는 우리 곁에서 열리지 않게 하소서.꽃과 나비의 향연처럼 꿀맛이 있고 신명이 나는 그런 축제만 남게 하소서./안홍엽((주)필애드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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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1.03 23:02

[전북칼럼] 창>조 시대, 창조 도시 - 이흥재

요즘 창조도시를 주제로 한 논의가 부쩍 늘어났다.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는 '창조도시와 문화예술경영'(서울, 10.10)을 주제로, 일본 가나자와시도 '세계창조도시포럼 2008'(가나자와, 10.17)을 연바 있다. 한국문화경제학회도 '창조도시 중심의 문화예술과 지역발전'(원주, 11.8)을 준비 중이다.논의 핵심은 고도정보사회 환경에서 지역특성을 어떻게 살리고, 기획 초점은 어디에 두며, 어떤 방식으로 전개할 것인가에 맞춰질 것이다. 결론은 '조(造)에서 창(創)으로' 초점을 바꾸자는 데 모아질 것이다. 그동안 모든 생각과 정책이 '조'에 몰려있었던 바 이제는 '창'에 힘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조(造)에서 창(創)으로여러 분야에서 이 흐름이 일고 있다. 지역농산물을 예로 들어보면, 예전에는 생산애로 타개, 상품개발을 축으로 하는 판로개척, 자본회전율 향상이 중요했으나 이제는 농산물브랜드화와 PR, 품종개량이 더 중요하다.상업 쪽에서 보면 더 확실해진다. 이제는 '창'의 관점에서 시장 확대를 전제로 해서 어떻게 하면 고객이나 판매자의 만족도를 높일까를 생각해야한다. 기획, 이벤트, PR이 중요해졌고 한발 더 나아가 산업, 역사, 관광과 연결해야한다. 판로확대를 위해 개량, 변혁, 전환, 도입 등 새로운 '창'에 관련된 방안이 필요하다.도시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공동화문제 해결도 창조도시론에서 찾을 수 있다. 도시재생방식의 접근보다는 적극적이기에 '조'보다는 '창'을 강조하는 축으로 바꿔야한다. 극심한 지역 업종 기업 간 과다경쟁을 피하기 위해서 더욱 산업의 '창'을 강화시켜야 한다. 우선 도시산업의 구조 전환을 위해 연기 국경 자원제약이 없는 '3무 산업'을 중심에 세워야 한다.기업의 경영전략도 바꿔야 한다. 축적된 기술에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여 이를 마케팅하는 '창'을 확대 강조해야한다. 기업들은 축적기술과 신기술을 조합하여 새로운 기술을 쌓아야한다. 비용지출은 제조 못지않게 개발비용에 할애하는 구조로 바꿔야한다. 생산결과를 유지하는 지적소유권에 관한 노하우도 길러야 한다. 기업이윤의 일정부분을 신산업창출사업에 투자해야 한다. 기획 제조 판매 시스템을 포함한 사업 경영력을 키워야 한다.▲생각의 공동화를 넘어서개인이 맨 먼저 바뀌어야 한다. '창'을 위해 개인은 '생각의 공동화'를 뛰어넘고 일상 언어생활 속에서부터 '별것 아닌', '되지 않을', '어쩔 수 없이', '어차피'와 같은 자해적인 말을 멀리해야 한다. 지식정보화 시대에 창의적 전문가는 육성되기보다 '자기화'를 통해 만들어진다. 기존 지식에 새로운 지식을 연결하고, 차이를 스스로 인식해서 문제를 발견해 내는 '발견적 문제해결'을 생활화해야 한다.단체들은 창조도시운동에 동참해야한다. 이는 문화와 산업의 창조활동을 통해서 도시를 보다 더 혁신적이고 부드러운 사회경제시스템으로 만들어 가는 움직임이다. 따라서 창조환경을 조성하는데 기본을 둬야한다. 문화친밀권 밖의 사람들을 끌어들여 예술의 사회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예술창조와 향유의 유동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린이문화아카데미, 레지던스 프로그램, 아웃리치 활동, 예술가초청 학교수업 등을 앞장서 실천해야한다./이흥재(전주정보영상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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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0.27 23:02

[전북칼럼] 창의적 열정 - 강신재

지난 50년간 우리는 서양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철강, 자동차, 조선, 반도체, IT산업과 같이 20세기 인류가 성취한 첨단 산업들을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정착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는 우리가 자원, 인구, 영토가 풍부한 대국들처럼 천연적으로 받은 것은 별로 없지만 성실하게 땀 흘리면서 값진 것을 만들어내는 특유의 잠재력을 부여받았고 이 능력을 실증해 보인 것이다.현재 지구상에는 지하자원이 풍부한 중동 및 아프리카 국가들이 많이 있으나 중동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잘사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 나라보다는 자원을 도입하여 첨단제품으로 설계가공해내는 기술을 가진 나라들이 훨씬 잘 산다는 것을 알고 있다. 비유적인 예를 들면, 제철회사의 경우 톤당 60달러의 철광석과 90달러의 석탄을 수입하여 톤당 900달러의 철판을 만들어 자동차회사에 팔고 자동차 회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톤당 1만 달러의 자동차를 만든다. 이는 원료보다 100배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자원빈국이지만 기술부국인 선진공업국들이 잘사는 것이며 이는 원자재와 공업제품의 무게 당 값이 기술투입에 따라 부가가치를 얼마나 올리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지하자원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머리에 묻혀있는 것을 개발해 낼 창의적 생각과 이를 실현할 열정적인 노력이 더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롭게 변화된 21세기 과학기술 환경에서는 창의적 생각과 열정적인 태도를 중시하는 추세가 점점 더 심화되어가고 있다.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배포한 '창의적 괴짜의 형상화 능력'동영상에 따르면 창조적인 과학자 및 예술가들의 남다른 특징은 바로 '형상화 능력'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형상화 능력'이란 여러 가지 상황을 세부적으로 상상해내고,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있으며, 그 상상을 현실에서 정교하고 열정적으로 구현하는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각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훌륭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은 '형상화 능력'이 탁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능력들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지원 환경과 본인의 쉼 없는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흔히 천재 과학자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인 아인슈타인의 경우 창의적 과학자의 대표로 생각되고 있는데,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그의 창의성의 비밀은 아주 기본적이고 평범한 데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아인슈타인은 학창시절에는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으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끝까지 집요하게 파헤치는 끈기와 열정은 남다른 점이 있었다고 한다. 아울러 그는 세간의 이미지와는 달리 혼자서만 모든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 아니라 주변의 인적, 지적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하였다고 한다. 즉 상대성 이론과 같은 업적은 아인슈타인 개인의 초인적인 능력에 힘입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이룩된 것이 아니라, 매우 오랜 준비 기간과 사회적 지원 배경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요컨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창의적 인재의 능력을 우리사회가 존중하고 꿈을 현실로 이룰 수 있는 인프라를 조성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우리지역과 나라의 미래를 위한 필수 요건이라 생각한다./강신재(전주기계산업리서치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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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0.20 23:02

[전북칼럼] 모악산은 말이 없네 - 윤찬영

프로야구 열기가 뜨겁다. 그 핵심에 부산 사직구장이 있다. 부산의 야구팬들이 사직구장에 모여 '부산 갈매기'를 합창하며 자기 지역 팀을 열렬하게 응원하는 모습이 부럽다. 다 함께 부르는 지역의 노래가 있다는 것이 더 부럽다. 부산을 소재로 한 유명한 노래는 또 있다. 국민가수 조용필씨가 불렀던 '돌아와요 부산항에"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개 노래방에서 불렀거나 들었던 노래다.지역을 소재로 한 노래 중에서 인기곡들이 많다. '목포는 항구다', '대전 블루스', '영일만 친구', '토함산', '연안부두', '만리포 사랑', '울릉도 트위스트', '서울의 찬가', '서울 서울 서울', '비 내리는 영동교', '신사동 그 사람', '제3한강교', '서울', '59년 왕십리', '한계령', '춘천 가는 길', '신라의 달밤', '꿈꾸는 백마강', '울고 넘는 박달재', '비내리는 고모령', '유달산아 말해다오', '내고향 삽다리', '화개장터' 등 대충 떠오르는 곡만 늘어놓아도 한참 이어진다.그런데 전북지역을 소재로 한 노래는 찾기 힘들다. 필자가 아는 노래는 송창식씨가 부른 '선운사' 한 곡이다. 선운사의 동백꽃을 노래한 곡인데, 우리 전북에는 이보다 유명한 것들이 많지 않은가? 그런데 가요의 소재는 되고 있지 못하다. 군산항이나 격포항, 심포항을 노래한 곡도 없고, 예쁜 이름의 섬도 많은데 섬 노래 한 곡 없다. '김밥'이라는 노래도 한 때 유행했었고 '팥빙수'라는 노래도 여름이면 방송에서 많이 나오는데, '비빔밥' 노래는 없다. 유명한 '개똥벌레'라는 노래는 무주 반딧불 축제 이전에 나왔으니 우리 지역 노래라고 하기엔 너무 억지인 것 같고, 김제 '지평선 축제'가 유명하지만 '지평선'이라는 노래는 못 들어봤다. 고창 복분자도 유명하지만 광고음악으로 요즘 '복분자'노래가 좀 뜨고 있는 정도이다. 내장산 단풍이 전국적으로 유명하지만 노래는 없다.필자는 타지역을 방문했을 때 그 지역의 지인들과 어울려 노래방에 가면 우선 그 지방과 관련된 노래를 한 곡 부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그 지역 사람들 모두 좋아한다. 전북이나 전주에 관련된 유명한 노래가 있고 외지인들이 우리 지역에 왔을 때, 우리와 함께 그 노래를 열창할 수 있다면 참 신날 것 같다. 최근 조사에서 전북이 전국에서 비호감 1위라고 하던데 노래라도 한 곡 있으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가을이 되니 가을노래들이 유난히 와 닿는다. 가을이 되면 언제 써 봤는지 기억도 없는 편지를 써보고 싶기도 하고, 가을엔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떠나지 말아주길 바라는 애틋한 마음도 들고, 10월의 어느 멋진 날을 기대해 보기도 한다. 이게 다 노래 탓인 것 같다. 부산사람들이 운동장에서 하나 되어 '부산 갈매기'를 열창하는 모습에 질투도 느껴진다.가을 운동회나 행사에서 우리 지역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부를 만한 우리 노래 한 곡 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감상에 젖어 이 글을 쓴다. 지역의 단체장이나 정치인들도 개발이나 돈 되는 것만 생각지 말고, 문화의 고장이라는 우리 지역에서 우리의 아픔이나 꿈을 멋지게 표현하는 노래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져주면 안 될까? 그래도 모악산은 말이 없네/윤찬영(전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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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0.13 23:02

[전북칼럼] 우리가 뼈를 묻을 땅인데… - 안홍엽

전국 국민 호감도 조사에서 꼴찌라니 기막힐 일이다. 호감의 반대는 비 호감, 싫어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조사의 설문도 예스(yes)냐 노(no)냐다. 호감도 15%의 뜻은 no가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애향운동을 벌렸던 고장이라 시기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고위직에 임명을 받고서야 그 사람의 고향이 전북인 것을 아는 것은 흔한 경우였다. 많은 사람들이 본적을 서울로 옮긴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고향땅 현안들이 혼란에 빠졌을 때 서울의 모모한 출향 인사들은 도대체 관심도 없었다. 품위 없는 쌍욕으로 상대를 찍어 눌렀다. 이번 조사결과와 무관하지 않은 사례들이다. 그동안 절실히 요구 됐던 지도자들의 리더십도 그 하나다.1930년대 대공황에서 미국을 구한 것은 뉴딜정책이 아니라 탁월한 리더십이었고 루스벨트라는 사람의 신념과 용기였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를 외우며 느림의 미학에 도취될 때가 아니다. 월가의 파탄을 야멸차게 추궁하고 있는 미국 국민을 보면서 시대는 많이 변하고 있음을 실감한다.좌다 우다 진보다 보수다 하여 편 가르기에 몰두했던 소위 우리 지도자들은 정말로 이번 조사결과도 강 건너 불 보듯 할 것인가. 지난 3년 동안 우리 지역 국회의원들은 모두 천4백여억원의 교부금을 얻어 왔다지만 그것이 리더십의 척도는 물론 아니다. 사이비 지도자들의 천국에 열린 "분노의 포도"가 지금 무르익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컨셉 안에서 전북을 생각할 수 있다면 노벨상을 받은 저명한 작가가 한국을 예찬한 작품 들을 통하여서도 이미 전북은 호감도 높은 고장으로 인정을 받은 셈이다. 펄 벅이 좋아한 한국은 그 축소판으로 전북을 꼽아도 반대할 사람 별로 없다.대통령을 두 번씩이나 만들어 낸 것은 분명 자랑일 수도 없고 자긍심일 수도 없다. 정치적 편향이고 철저한 편 가르기였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에서 편향을 덜어내야 한다. 공인들의 위민의식이 강조 되어야 한다. 몽리부리는 공인이 많고 소신 없는 공인이 많으면 그 동네는 물어볼 것 없이 no다. 이런 것들만 덜어내도 경제는 따라 오고 호감도 좋아질 수 있다.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면 본격적인 브랜드 개발이 필요해 진다. 이미지 개선이 앞서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전북에는 파워가 있는 브랜드가 없다. 국제화 시대에 골목대장으로서는 힘을 쓸 수가 없다. 명품으로 소문이 나야 한다. 샤넬보다도 더 향내 짙은 우리나라 유일의 명품이 전북에서 발상을 했는데 가꾸지도 못하고 차지하지도 못하고 있다. 브랜드 개발은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에 파워를 싣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어차피 우리는 글과 멋과 맛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2 제3의 "혼불"이 쓰여 져야 하고 제2 제3의 "국화 옆에서"가 쓰여 져야 하고 도민이 힘을 모아 노벨문학상을 받도록 하면 금상첨화다. 전라북도는 모처럼 의욕적으로 시작한 일이라면 한건의식에 빠지지 말고 먼저 이미지를 개선하는 일부터 차근차근 진행하라. 브랜드는 이미 개발이 돼 있으니까. 여우도 죽을 때는 태어난 굴 쪽으로 머리를 두르며(首丘初心) 북쪽에서 온 말은 북쪽을 바라보며 죽는다(胡馬望北)는 말이 절대 허구가 아님을 보여주도록 하자. 우리가 뼈를 묻을 땅이니까./안홍엽((주)필애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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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0.0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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