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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전주 어진박물관

김호석 수묵화가전 전통문화대 교수 초상화에서 어진(御眞)은 정점에 있다. 태조 어진에는 새 왕조가 지닌 자신감과 당당함 그리고 위엄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는 6년간 재임했지만 그의 권위는 조선왕조 500년 내내 계속 되었다. 최근 경기전을 찾았다. 어진을 모시는 공간은 50년 전이나 똑 같았지만 1872년에 이모한 어진이 1999년 모사한 것으로 대체되어 있는 것만이 달랐다. 어진의 정신적인 힘보다는 형식화한 공허함이 느껴졌다. 새로 모사 한 어진은 족자의 향 좌측 비단이 훼손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족자의 세로축 면이 안으로 말려 누추하기 이를 데 없었다. 150여 년 전에 완성한 어진과 장황이 지금도 날이 선 것처럼 반듯한데 이모한지 겨우 20년밖에 안된 모사본이 뒤틀려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몹시 불편했다. 지금의 어진 박물관은 태조 어진 박물관이라 명명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경기전과 어진 박물관에는 태조 어진이 5점이나 소장되어 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태조어진이 6번 모사된 것에 비해 최근 들어 특별한 계기도 없이 많이 그렸다. 문제는 같은 초본에 옷 색만 다르게 하거나 얼굴만 다르게 한 복제본이다. 특히 1837년 준원전 태조 어진에 대해 실록은 홍색의 용포 홍곤포라고 분명히 기술되어 있고 《영정모사도감의궤》에 안료 등 물량에 대한 내용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어 성급히 판단하고 사업이 진행 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어진은 공산품이 아니다. 어진 박물관은 관내에 닫집을 만들어 어진을 모시고 있다. 닫집의 크기를 건물에 맞추다 보니 실제보다 작아졌다. 이러한 착오 때문에 어진과 공간이 만들어 내는 신성함과 당당함은 사라졌고 단순히 관람객을 위한 관찰의 대상이 되었다. 더욱이 어진을 고정시키는 방식도 전통 방식이 아닌, 서양식 강철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곳에 1872년 본 어진이 1년에 한번 전시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 감실은 비워 놓은 채 문을 닫아야 옳다. 어진은 어진에 맞는 격을 갖춰야 한다. 어진의 배치 및 박물관의 관람동선도 문제다. 남향으로 모신 어진을 중심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난 지금의 동선은 어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건물 구조상 어진을 봉심하는 기본적인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다. 나아가 어진 박물관이란 명칭에 걸맞게 어진을 그리는 목적이나 재료, 제작 과정, 장황의 단계와 장식 요소 그리고 완성 후 봉심에 이르기까지 전 제작 과정을 남겼어야했다. 이에 대한 전시 내용은 없었다. 박물관의 지하에는 모사된 다른 왕의 어진 6점이 전시되고 있다. 과거 왕의 어진은 모두 동일한 의미와 위치를 갖는다. 그런데 어떤 왕은 위에, 어떤 왕은 아래에 걸려있는 등 원칙이 없다. 형식 또한 액자와 족자로 기준이 없다. 어진에는 창작자의 이름을 명기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어진은 숭배의 대상이자, 왕조의 상징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진 중에는 화가의 이름이 전면에 병기되어 있는 것이 있다. 또 자신의 낙관까지 보란 듯이 찍었다. 참람한 일이다. 어진의 위엄을 훼손하는 일이다. 전시관의 위치도 문제이다. 정전은 남쪽을 향한다. 어진 박물관은 정전의 뒤쪽인 북쪽에 건립했다. 어진이 가지는 의미와 역사성을 볼 때 정전 뒤쪽에 어진을 모시는 것이 타당한가? 터 잡기 할 때 규봉은 극히 꺼리는 법이다 박물관에서 어진이 바라보는 방향은 전동성당의 종탑과 일치한다. 이런 점은 과거 고종이 영희전에 모신 어진의 방향이 명동성당의 종탑인 것을 알고 부끄럽다 며 진영을 경령전으로 옮긴 과거의 교훈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정신을 그린 찬란한 역사가 있다. 그것의 중심이 전주였다. 붓이 다하였어도 뜻만은 영원한 법이다. /김호석 수묵화가전 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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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23 16:59

전북의 역사, 문화예술작품으로 거듭나야한다

문병학 전북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일정이 여의치 않아 그동안 애만 태웠던 전북관광 브랜드 공연 뮤지컬 홍도 1589를 지난 주말에 관람하였다. 시내버스 광고판이나 거리에 게시된 배너 등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홍도? 홍도?? 고개를 갸웃거렸다지만, 이미 원작 소설을 읽은 나는 이 작품이 임진왜란 이전에 전라도를 중심으로 조직된 정여립의 대동계(大同契)를 빌미삼아 1589년 전라도와 충청도 등 전국의 수많은 선비들을 죽음으로 내몬 이른바 정여립 모반사건으로 알려진 기축옥사(己丑獄事)를 다룬 뮤지컬이며, 전북문화관광재단이 심혈을 기울인 전북관광 브랜드 공연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공연 관람을 위해 전북예술회관 긴 계단을 오르는 동안 연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울에서 온 이들은 지인의 권유로 전주한옥마을과 뮤지컬 홍도 1589를 연계하여 관람하고자 한 달 전에 입장권을 예매한 후 전북을 방문하였다고 했다. 전라북도가 문화관광 트렌드 변화에 발맞춰 전북의 역사를 문화예술작품으로 재구성하여 상품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그 성과가 이렇게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도민 한 사람으로서 흐뭇하였다.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나라 혹은 도시에는 상징적인 기념물이나 시설물들이 있기 마련이다. 스페인 바로셀로나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이라든가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1889년 준공된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미국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가 선물한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그리고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광장, 러시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 등등이 그 나라와 해당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land mark)다. 한편, 기념시설물 이외에도 해당 국가와 도시를 상징하는 문화예술 공연들이 있는데, 중국 북경의 경극(京劇)이나 일본 도쿄의 가부키(歌舞伎) 등이 그것이다. 중국의 오페라라고도 불리는 경극은 베이징 관광의 필수코스로 포함되기도 하고, 전통음악과 춤, 연극을 융합시킨 일본의 가부키 공연장도 일본 관광의 필수코스로 포함되기도 한다. 말하고 싶은 것은 21세기 문화관광의 트렌드 변화에 발맞춰 우리 전북에서는 무엇을, 어디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가? 이점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답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 20세기 관광은 특정 국가나 도시를 찾아 유명한 기념시설물 앞에서 김치~하고 사진을 찍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21세기 문화관광은 그 나라와 도시의 문화를 느끼고 체험하는 패턴으로 확연하게 변화하였다.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전북에서도 그동안 새만금상설공연, 전주세계소리축제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런 속에서 지난 해 전북문화관광재단에서 뮤지컬 홍도 1589를 기획제작하여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상설공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이 21세기 전북관광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브랜드 공연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전라북도의 적극적인 지원과 전북도민의 다함없는 성원이 절실한 것 같다. 조선중기 정여립이 추구한 대동세상이 조선후기 동학농민혁명 최고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에 이르러 구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정여립과 전봉준 등 전북의 역사와 인물을 문화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거듭남을 모색하는 것이 21세기 초입(初入) 전북문화관광 발전의 엄중한 시대적 요청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언사(言辭)일까? /문병학 전북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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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16 17:27

전주(全州) - 한복(韓服)을 입다!

이종훈 전주시립극단 예술감독 전통한옥 양식으로 지은 전주역사(驛舍)는 전북을 대표하는 정거장 답지 않게 작고 아담해서 소담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 안으로 들어서니 한복을 입은 안내원이 밝은 미소로 전주를 찾아온 승객을 맞는다. 손님을 맞이하는 친절함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주변을 보니 편의점과 커피숍의 판매원들도 개량 한복을 입고 분주히 손님을 맞는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아 정감이 어린다. 밖으로 나와 택시를 기다리는데 의외로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아, 청바지에 재킷을 걸친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택시를 타자 친절한 미소로 안녕하세요, 어디로 모실까요라며 인사하는 기사님이 선글라스에 개량 한복을 입었는데 구레나룻이 너무 멋져 꼭 영화배우 같다. 전주역을 벗어나 S자로 휘어진 마중길로 들어서니 밝고 화사한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뜨인다. 명주한복을 입은 두 중년부인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화안대소하는 표정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전북대 한옥 정문 앞에 이르자 염색을 한 듯 다양한 한복을 입은 삼삼오오 무리의 젊은 대학생들로 인해 마치 조선시대 향교 앞을 연상시킨다. 택시가 백제대로에서 팔달로 방향으로 좌회전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거리에는 마고자를 입은 남자와 두루마기 차림의 남자들이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양반걸음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나는 순간 이 택시가 나를 조선 시대로 안내하는 거로 착각하고 설렘에 들뜨기 시작한다. 기사 아저씨. 지금 이곳이 어디인가요? 예, 저기 건물 가운데 한옥 지붕이 보이는 곳이 전주 시청이지요. 두루마기와 마고자 차림의 남자분들은 시청 공무원들이고요. 전주시 공무원들은 한복차림으로 근무하는 걸 큰 자긍심으로 여긴답니다 이제 나는 오백 년 전의 조선 시대 한가운데로 와있다고 생각한다. 중앙시장 앞에 이르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사이로 무명 한복차림의 아주머니가 백설기처럼 보이는 떡을 분주히 나른다. 무지개떡과 꿀떡 덕분인지 기름이 반지르르한 무명한복에도 무지개가 아른거리다 사라진다. 시장의 골목길을 바라보다 도착한 한옥마을은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로 인산인해다. 조선 시대에 이처럼 많은 외국인이 있었던가? 청사초롱 아래 파란 눈의 어린아이부터 금발의 팔순 노인네까지 다양한 한복 차림의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느라 좁은 길을 헤쳐 나가기가 힘들 지경이다. 너무 많은 인파에 밀려서 들어온 경기전 안에도 형형색색의 한복들을 입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베여 있고, 한국적인 정(情)과 전주의 꽃심이 고즈넉하게 담겨있는 옷인데 언제부터 외국인들에게 이처럼 사랑받는 옷이 됐단 말인가? 이곳은 전주-꽃심의 도시이자 양반의 도시요, 한복의 도시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민족 고유의 전통 복장을 하는 도시로 알려져, 세계 각 나라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라 시민들의 한복에 대한 자긍심과 애착이 뛰어난 곳이다. 올 추석 한가위-전주는 한복으로 인해 행복해지는 원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먼저 한복을 입고 전주 시내로 나설 때 전주는 행복한 한복의 도시로 탈바꿈한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시는 한복의 일상화가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생활이 되도록 뒷받침한다면 한복의 도시, 전주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한복으로 활기가 가득한 곳, 전주가 한복의 도시임을 전 세계에 알리는 날도 머지않았다. /이종훈 전주시립극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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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09 17:10

확대냐 축소냐 기로에 선 유료회원제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7월 1일 예술의전당은 연회비 10만원인 골드회원 기프트카드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세종문화회관은 신규회원가입을 중단했다. 유료회원제란 극장이 충성 관객을 확보하기 위하여 일정회비를 내면 일반 고객이 누릴 수 없는 입장권 할인을 비롯하여 주차, 연계 상품 및 부대시설 이용권과 할인, 회원 무료 초청공연, 특강, 공연안내물 발송 등의 혜택이 따른다. 나아가 무대 리허설 관람과 백스테이지 투어에 이르기까지 혜택의 영역은 끝없이 개발되고 있다. 그러자 공연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무료와 할인혜택만 쏙쏙 빼먹는 영악한 회원들이 생겨났으니 이른바 체리피킹족이다. 이들의 급증은 극장운영에 손해를 가져올 정도로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예술의전당은 1989년부터 골드, 블루, 그린회원 등 3등급으로 유료회원제를 시행하여 현재 1만5천명 인데, 신임 대표의 독려 속에 이런 서비스 부담을 감내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미래 관객 발굴은 물론, 10만 계좌를 유치하면 생기는 100억 원을 창작기금화 한다고 쾌도난마의 기세로 진행 중이다. 한편 세종문화회관은 예술의전당보다 11년 뒤인 2000년 유료회원제를 도입하여 현재 연회비 5만원의 골드회원, 연회비 10만원의 프리미엄 회원등 2천500여 명이 가입되어 있는데 공연 할인, 선예매, 주차권, 식음료 교환권 등이 제공된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주차권과 프로그램북 제공 등 간접비용은 계속 증가하는데 충성고객 발굴 효과는 감소하고 있다. 또 인기 공연을 먼저 예약하려고 유료회원제에 가입했다가 바로 해지해버리는 일도 다반사 라고 하며 이미 할인이 적용된 시즌제 티켓에 유료회원 추가할인까지 중복되는 문제도 있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그렇다고 유료회원제 자체를 폐지하는 건 아니다. 기존 회원 혜택은 유지하되 신규가입만 잠정 중단하고, 내년에 새로운 회원제를 론칭할 계획이라며 무료회원을 대상으로도 다양한 마케팅을 진행하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유료회원제에 대한 위기는 점차 대규모 극장들로 확산되어가고 있다. 이와 같은 위기의 배경에는 체리픽킹 문제 외에도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1987년 호암아트홀을 시작으로 2010년대 초반까지 유료회원카드는 문화예술 애호가들의 자랑으로써 급성장 추세였다. 이를 주시하던 결제카드사들의 회원확보와 공연계 및 극장들의 수익증대 욕구가 맞아 떨어져 회원제와 별도로 할인혜택을 주기 시작하였고, 이제는 유료회원카드의 혜택과 크게 차이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티켓전문 사이트에서 유료회원제보다 훨씬 파격적으로 할인하는 사례가 늘어나 유료회원 가입자들의 공분을 사는 경우도 왕왕 생기고 있다. 하여 점차 유료회원제 존치에 대한 회의가 심각히 거론되고 있는데 한편에선 이제껏 무관심했던 무료회원들에 대한 혜택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번 양대 극장의 대조적인 대처법이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데 보여주고 있다. 그럼 우리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의 회원제는 안녕하신가? 한편으로는 예술의전당의 적극성과 세종문화회관의 고민이 부럽기도 하다. 회원제를 확대할 것이냐 축소할 것이냐 하는 문제로 고민 좀 해 봤으면 싶다. 물론 우리전당도 관리비용 대비 회원확대지침을 마련하여 실행 중이다. 아직은 여유가 있고 새롭게 독신자를 위한 회원제도 마련하였으니 누구나 바로 가입하시어 마음껏 혜택을 누리시라고 안녕함을 전한다.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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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02 17:42

전북도립미술관의 쇄신을 위한 제언

김호석 수묵화가전 전통문화대 교수 전북도립미술관은 도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다. 또 문화 전북의 위상을 높이는 디딤돌이다. 그런데 도립미술관이 심하게 앓고 있다. 특정 문화 권력의 횡포와 인사권 전횡, 관장의 미래 비전을 방해하는 악습 등이 그것이다. 이런 내용은 국감이나 특별 감사를 통해 바로 잡아가야 할 일이다. 뜻있는 미술인들은 도립미술관의 구태를 일소하지 않은 이상 어떤 능력 있는 미술관장이 부임해도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나는 누구보다 전북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도립미술관의 환골탈태를 위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전시 기획력이다. 전시 기획은 미술관의 꽃이다. 학예사는 전시로 말한다. 그래서 기획력은 역량을 평가하는 잣대다. 상당수 전북의 주요 미술가들은 기획력 부재를 첫 손에 꼽는다. 그 원인의 하나로 학예직이 비전공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거론한다. 현재 관장이외에 미술관학이나 미학 미술 비평, 미술사 등을 전공한 전문가가 없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문가로는 미술관의 순기능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고 한 목소리를 낸다. 둘째, 합리적인 인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술관은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의 미술관이 5년 임기 계약을 하는 이유는 창의력을 생명으로 하는 직업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혁신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전문가를 과감히 고용하여 정체된 미술관을 쇄신해야 한다. 그러나 전북도는 학예사 선발과 운용에서 전문성과 능력을 위주로 선발하지 않았다. 관장도 동의하지 않았고 도에서도 재임용을 거부 한 인사를 공모 형식을 통해 임용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심지어 특정인을 선발하기 위해 면접 때 질문 할 내용까지 상의했다는 소문이 미술계에 파다하다. 능력 있는 큐레이터가 절실한 상황이다. 셋째, 아카이브 구축에 대한 완성도 문제다. 전북 미술은 전북만의 독특성을 담고 있다. 문인화 정신과 선비문화 그리고 수준 높은 풍류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이런 인문 지리적 환경은 전북만의 예술적 성과물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대한민국 문화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왔다. 전통성의 구심점에 서있는 이삼만, 이정직, 최석환, 채용신, 송기면, 송성용 등은 전북 미술의 보배이면서 한국 서화의 원형 자원이다. 이들에 대한 아카이브가 얼마나 완성도 있게 구축 되어 있는지, 전담 학예사가 있는지 전공자에 의한 연구 성과는 어느 단계까지 진척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넷째, 도민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문화 향유 기회다. 전북 미술만의 정체성 이해와 한국 미술의 흐름 그리고 세계 미술의 현장도 중요하다 그러나 자기 차원을 문화적으로 향상 시킬 수 있는 실현 방안을 찾는 게 더 절실한 문제일 수 있다. 다섯째, 전북지역과 당대의 대표적인 미술품 수집과 평가 문제다. 미술관은 의미 있는 작품 수집에 집중해야한다. 시대와 역사의식을 반영한 작품 탄생 배경과 제작 과정까지 소상히 채록하고 연구해야한다. 작가의 작업 노트와 완성에 이르는 흔적까지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전북 지역에서 활동했던 작가, 예를 들면 군산지역에서 활약했던 박래현, 전주에서 간판 집을 하며 전통 수묵화의 재창조를 위해 예술혼을 불 태웠던 이응로부터 한국 수묵화의 국제적 위상 정립을 완성 시키려한 송수남까지, 이들에 대한 자료 수집과 작품 연구의 진척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묻고 싶다. 도립 미술관은 수집된 작품을 통해 도민의 문화 갈증을 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바로 줄탁동시의 조화다. 아울러 문화를 통해 동락과 대동 세상을 만들어가는 공간이 돼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기득권을 넘어 문화 창달을 위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작금의 사태가 일종의 춘화현상과 같은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상처는 치유 되어야 한다. /김호석 수묵화가前 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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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26 16:09

탈구입아, 일본은 서구에서 벗어나 아시아로 귀환하라

문병학 전북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온 나라가 뜨겁다. 한여름인데다가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강화 조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배제에 따라 항일 촛불집회와 함께 일제 불매운동이 불붙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올 여름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씀이 각별하다. 역사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사실을 바탕으로 그 역사적 맥락을 잘 살펴야 한다. 특히, 한국근대사에서 동학농민혁명 전후 10년의 맥락을 면밀히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동학농민혁명 10년 전 갑신정변이 일어났고, 10년 후 러일전쟁이 일어났다. 2019년 여름 일본이 도발한 경제전쟁의 본질과 문제해결의 실마리 또한 이 시기를 찬찬히 살피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884년 갑신정변은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가 주도하여 3일천하로 끝난 실패한 정변이었다. 정변을 주도한 세력이 일본의 근대계몽사상가이자 엔화 1만엔권 초상화 주인공인 후꾸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와 그가 설립한 사립학교 게이오 기주쿠(慶應義塾) 등으로부터 사상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놓치지 말아야할 대목은 갑신정변 직후 후꾸자와 유키치를 비롯한 일본 지배계층의 움직임이다. 갑신정변 당시 청나라는 프랑스와 베트남 지배권을 두고 전쟁 중이었음에도 조선에 군대를 보내 정변을 진압했다. 이런 상황은 김옥균 등 개화파를 움직여 조선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던 일본에게 낭패스러운 것이었다. 그 낭패감은 갑신정변 사후처리를 위해 청나라와 일본이 맺은 텐진조약(1885.3.4.) 직후인 3월 16일 일본의 일간신문 시사신보(時事新報)를 통해 후꾸자와 유키치가 주창한 이른바 탈아입구(??入歐,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구라파로 들어간다)에 여실히 드러난다. 이후 일본은 영국, 프랑스 등과 연계하여 근대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특히 군사전략과 무기체계의 근대화에 혈안이었다. 일본의 이런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한 조선은 동학농민혁명 때 섬나라 일본이 대국 청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며, 설령 일으킨다 해도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있었다. 현실은 정반대로 일본이 청나라를 물리치고 승리하였다. 그리고 다시 10년 뒤 러일전쟁에서도 영국 등 서구의 지원을 받은 일본이 승리하였다. 그 연장선상에 을사늑약(乙巳勒約)이 놓여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19년 여름 일본이 국제질서를 어지럽히며 대한(對韓) 경제도발에 나섰다. 우리는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면서 항일 촛불집회, 일제 불매운동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일본의 경제도발 근원과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였는가를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한편, 동아시아와 세계 지성(知性)에게 물어야 한다. 태평양 패권을 장악하려는 세력과 그 행동대를 자처하면서 군국주의 부활에 사활을 건 아베와 일본의 극우세력을 두고만 볼 것인가? 탈아입구 이후 동학농민군 대학살, 난징대학살을 비롯하여 세계대전 당시 도처에서 행해진 양민학살과 성노예 문제 등 일본이 저지른 천인공로 할 만행을 잊었단 말인가? 일본에게 경고와 함께 강력히 요구한다. 아시아의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하여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책임 있는 사죄와 함께 즉시 탈아입구를 폐기하고, 탈구입아(?歐入?), 서구를 벗어나 아시아로 귀환하라! /문병학 전북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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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19 17:05

연극은 영혼의 치유소!

이종훈 전주시립극단 예술감독 20세기의 출발과 함께 시작된 한국연극의 여정은 가파르게 변화하는 정치사와 경제적인 곡선에 따라 수많은 장애물을 만나면서 소용돌이와 정체를 거듭하며 힘겹게 굴러왔다. 여기에는 배우와 단체와 연극의 생성과 소멸, 유입과 변형, 갈등과 화해, 도전과 반응의 흔적들이 산재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활동하고 있는 전북연극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전북에서 활동하는 연극인에 의하면, 연극만을 통한 자신의 월 평균 수입이 30만원 정도라는 말을 들었다. 연봉 사백만원에도 못 미치는 이 액수는 도시 서민의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수치라 망신스럽기도 하고, 예술의 자존심과 관계되어 차마 주변 사람들에게는 밝히기가 어려웠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공연(연극) 시장은 외형적으로는 서울을 중심으로 눈부시게 성장되었지만 지역은 하드웨어에 속하는 공연장만 설립되었을 뿐 소프트웨어인 창작콘텐츠 발굴과 연극인들의 창작 활동 지원 분야는 아직도 미세하고 불안정하여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형상이다. 전북의 연극인들 대다수는 지원금에만 의존하든지, 연극인 강사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수입을 창출한다. 따라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창작 활동을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지원금을 타기 위한 정체모를 생소한 단체들, 눈을 씻고 들여다봐야 알 수 있는 공연 홍보, 그나마 공연 횟수 1~2회, 연극적 가치는 찾아보기 힘든 민망스런 열정만 돋보이는 연극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 전북연극의 현실이다. 이는 소액 다건의 지원금들이 주는 폐해들이다. 잘 쓰인 작품을 발굴하고 개발하여 집중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좋은 작품을 만드는 안목이 절실하다. 또한 미래의 관객 시장 확보를 위해 일찍부터 어린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치고 관람하게 하여 문화가 자연스럽게 생활화되는 예술교육의 습관을 키워야 한다. 미국의 <국립예술교육협회> 선언문은 미국인들의 연극에 대한 의식을 잘 드러내 놓고 있다. 우리들이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연극은 과학이기 때문입니다. 연극은 수학입니다. 연극은 외국어와 같습니다. 연극은 역사입니다. 연극은 신체훈련입니다. 연극은 말하기를 가르쳐주는 예술입니다. 연극은 사업입니다. 연극은 기술입니다. 연극은 경제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극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칩니다. 학생들에게 연극을 전공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연극을 공연할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편하게 쉬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재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알게 하고> <세련된 감각을 유지하게 하고> <세상 속에 감춰져 있는 무한한 것에 다가가게 하기 위해서> <더 많이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 <더 많은 동정심과> <점잖음과> <착한 것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 한 마디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것인지 학생들이 알 수 있도록 우리는 학교에서 연극을 가르칩니다 연극은 삶이요, 학교요, 영혼의 치유소다 라는 말처럼 연극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주는 좋은 문장으로 우리가 깊이 음미해 볼 부분이라 생각한다. /이종훈 전주시립극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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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12 15:42

기획자들의 타산지석, 고 남기남 감독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7월 24일, 남기남 영화감독께서 돌아가셨다. 평생을 소위 B급 영화감독이라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당당하게 살아오신 발자취를 관조해보면 누구보다도 자기만의 일관된 선택을 해 오신 삶이었다. 그는 영화계에서 짜투리 필름을 남기지 않아 필름을 왜? 남기남으로 불렸고 영화 빨리찍기의 대가로서 외화쿼터(quota)제에 얽힌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외화쿼터제는 1963년부터 1987년까지 외화수입으로 번 돈을 열악한 한국영화 발전에 재투자하게 하는 정책으로 일정 편 수 이상의 영화를 제작하거나, 영화상을 수상한 제작자에게, 외화수입권을 주는 제도였다. 이에 연말이면 의무제작 편수를 못 채운 영화사들은 편수 채우기에 피가 말랐고, 이들의 구세주가 촬영 5일에 편집 3일, 후반작업 2일, 합해서 열흘이면 뚝딱 영화를 만들어내는 남감독이었다. 이를 방증하는 유명한 일화가 출연 배우들이 상대 배우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남감독이 시키는 대로 자기 대사만 찍고 현장을 떠났고 스텝들도 너무 빨리 찍어 뭘 찍었는지 모르겠다 하는데도 나중에 남감독이 편집한 완성본을 보면 영화문법상으로 완벽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지금같이 현장에서 바로 확인하는 편집기가 있던 시절도 아닌데 남감독은 자신이 콘티요 편집기인 천재이셨던 것이다. 아마도 지금쯤 남감독께서는 하늘나라에 들어섰을 것이고 세계 각처에서 먼저 와 있던 수많은 영화천재들로부터 경배를 받고 있지 않을까 상상을 해 본다. 그는 24세 때부터 10여 편의 조감독을 거쳐 서른에 내 딸아 울지마라(1972 김지미 주연)로 데뷔하였고 다시 5년간 조연출을 한 후 불타는 정무문(1977), 불타는 소림사(1978)등 액션영화와 한국 B급 영화를 대표하는 평양맨발(1980)을 감독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87년 쿼터제가 폐지되기 전까지 빨리찍기 대가로서 명성을 쌓았고 이후 저예산, 속성제작, 어린이 관객, 개그맨 영입, 유행어를 전략화 한 남기남식영화제작기법을 완성한다. 이 5가지 전략은 당시 아이들의 유행에 맞춘 것으로 심형래 등 젊은 개그맨들을 끌어들여 기상천외하고 좌충우돌 활극인 아동영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그는 영구와 땡칠이9(1989)로 270만이라는 당대 최고의 관객동원을 기록한다. 이후 영구시리즈를 이어가던 그는 심형래씨가 영화제작에 뛰어들자 슬쩍 비켜서며 2000년대의 신세대 개그맨들과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2003)를 선보이는 등 노년에도 왕성하게 제작활동을 하셨다. 고희를 바라보며 달무리(2011년) 라는 작품을 준비하신다 들었고, 3년 전에 옛 제자들과 술잔을 기울이시는 모습을 충무로에서 보았다는 지인의 전언 이후 근황을 몰랐었는데...그동안 당뇨로 투병생활을 하던 중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40여 년 동안 100여 편의 영화를 남긴 그는 제47회 영화의 날(2009년)공로영화인상을 받았다. 내게는 아직도 평양맨발의 결투 장면이 생생하다. 삭풍이 불어대는 평양 강변에서 빵꾸 난 란닝구를 입은 이주일씨가 박치기를 하자! 갑자기 화면이 빨간 번개장면으로 바뀌며 뼈 부스러지는 뿌드드 소리와 함께 슬로모션으로 쓰러져가던 일본악질 마영달씨!- 남감독님의 부고를 받고 오히려 기획자로서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의 기상천외한 도전정신과 창의력, 영화콘티와 편집의 천재성, 흥행본능 등은 A급 기획자들에게도 타산지석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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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05 17:32

문화재의 숲을 만들자

김호석 수묵화가전 전통문화대 교수 제사 때 쓰이는 신위는 반드시 밤나무로 제작된다. 제기는 노각나무가 사용된다. 노각나무의 주산지는 지리산이다. 무분별한 벌채로 노각나무가 없어지자, 노각나무는 거제수 나무로, 그리고 물오리나무로 대체되었다. 1967년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벌목을 할 수 없게 되자, 은행나무가 제기의 주된 재료로 떠올랐다. 먹감은 곶감과 식초를 만드는데 최적이다. 이 나무의 중심 부위에는 탄닌이 산소와 결합하면서 생성시킨 검은 색 무늬가 있다. 조선 목가구의 단순하면서 쾌활한 멋은 이런 재료 선택에서 나온다. 지금도 임실과 고산의 먹감나무는 한국을 대표하는 진귀한 자원임이 분명하다. 전통 악기 특히 거문고에 사용되는 중요한 재료는 오동나무이다. 한국산 오동나무는 가볍고 탄성이 커 진동을 잘 전달한다. 울림이 풍부하고 음향 교환률이 높다. 나이테가 조밀하여 연륜 폭이 좁고 균일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무가 소리를 만들었다. 현실은 타이완산 오동나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중국산 오동나무로 만든 악기는 공명이 적다. 우리는 옛 악기의 소리를 잃어버리고 있다. 옻나무는 가장 검은 색을 구현한다. 칠흑 같은 밤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옻은 따뜻하고 부패를 방지한다. 전국 어느 곳이든 잘 자란다. 옻은 한국 특유의 색상으로 깊고 공간이 숨 쉬는 특유의 서사가 숨어 있다. 대부분의 목조 문화재는 옻칠과 관련돼 있다. 도료로서 옻은 즙을 채취하여 생칠로 사용한다. 옻의 생즙 채취는 원주가 유일하다. 품질이 뛰어난 옻은 일본으로 수출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쓰이는 옻은 대부분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 옻을 외면하는 사이에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은 옻칠로서 세계 공예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충북 옥천군이 옻나무 생산 단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신선하다. 전북은 칠보, 쌍치, 복흥, 장수, 진안 등 곳곳에 옻나무 자생지가 널려 있다. 찬란하고 섬려한 문화유산이 후손들의 무지로 시대의 주목을 받지 못함은 부끄러운 일이다. 나무만 그런가. 고려조선시대 섬려한 문화를 창출했던 쪽 풀이 사라졌다. 지금 쪽 염색에 사용되고 있는 식물은 일본산이다. 1980년대 토착화 된 조선쪽이 사라진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예용해 선생이 일본으로부터 쪽 씨를 국내로 들여 온 이래 현재에 이르렀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염장은 일본산 쪽 풀로 염색하며 한국의 색을 자랑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문화재의 재료가 되는 나무와 풀은 위에서 거론한 실례를 훨씬 뛰어 넘는다. 소나무, 돌배나무, 느티나무, 솔송나무, 물푸레나무, 대나무, 신이대, 시누대, 참죽나무, 황칠나무, 닥나무, 꾸지나무, 애기닥나무, 산뽕나무, 황벽나무, 모시풀, 삼. 목화 등은 중요한 문화적 근거가 된 일차 재료다. 이런 재료들이 한반도에 어떻게 분포하는지, 경제적 수령이 된 나무가 얼마나 되는지, 실태 조사한 보고서를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고건축에 사용되는 소나무에 대한 실례는 있다. 2008년 숭례문 화재 사건이 나면서 삼척의 준경묘에 있는 것을 사용한 것이 처음이다. 그러나 이 소나무 숲마저 문화재의 숲으로 지정된 것은 아니다. 산림청에서 지정한 문화재의 재료는 없다. 이것이 후손들이 계승하고 발전시켰다는 이 땅 임산자원의 현주소다. 지금부터라도 최소 100년을 내다보고 문화재의 재료가 되는 다양한 수종의 숲을 조성해야 한다. 문화재 별로 복원에 필요한 정확한 재료와 최적의 숲 조성을 위한 로드맵을 만들자. 전북은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임실의 먹감나무와 순창의 돌배나무, 닥나무. 부안의 소나무, 꾸지나무. 위봉산의 거제수나무. 대아의 애기 닥나무. 고창의 동백나무 등은 이미 최적의 자생지로서 의미를 지닌다. 전라북도는 산림을 자원화 할 수 있는 산림환경 연구소가 있다. 지금 부터라도 전국 최초로 문화재의 재료가 되는 나무를 모두 조사하여 전북 자체만이라도 산림문화를 선점해 나가야 한다. 눈 밝은 단체장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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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29 17:05

동학농민혁명 문화콘텐츠 개발 절실하다

문병학 전북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전봉준이다. / 한 지경(地境, 고부군)의 인민이 강제로 빼앗김을 당하는 해(害)를 입었는데 너는 홀로 해를 입지 않았다 하니 무슨 까닭인가? 학구(學究)로 업을 삼아 전답(田畓)이라 하는 것이 3두락(斗落)밖에 되지 않아 아침에 밥을 먹고 저녁에 죽을 먹을 뿐이니 빼앗길 게 없었다. / 너는 해를 입은 것이 없는데 왜 난을 일으켰는가? / 일신의 해를 위해 기포(起包)함이 어찌 남자의 일이겠는가! 중민(衆民)이 원통하여 한탄(恨歎)하는 까닭에 백성을 위하여 해를 제거코자 일어섰다. / 다시 (삼례에서) 기포한 이유는 무엇인가? 너희(일본)가 개화(開化)라 칭하고 한 마디 말도, 한 장의 격서도 없이 군사를 거느리고 도성(都城)에 들어와 야반(夜半)에 왕궁을 격파하여 국왕을 핍박하기에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마음으로 일어나 너희들과 접전(接戰)하여 그 책임을 묻고자 했다. 위 문답은 전봉준 장군이 붙잡혀 서울로 압송된 후 일본 영사와 조선정부의 법무아문 심문관에게 조사를 받은 첫 번째(1895년 2월 9일) 심문기록의 부분이다. 동학농민혁명이 부정부패로 얼룩진 낡은 중세사회를 개혁하여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추구하였고, 일제의 침략에 맞선 반일구국항쟁이었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은 일제강점기와 해방이후 세계사적 차원의 동서냉전체제 구축시기에 빚어진 민족내부의 좌우대립, 민족분단,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반란사건으로 왜곡축소된 채 역사의 뒤안길에 버려져왔다. 그러다가 지난 1994년 혁명 100주년을 전후하여 전국에서 역사바로세우기운동이 전개되었고, 그 결실로 2004년 3월 「동학농민혁명참여자등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이 제정되었다. 그로부터 15년 후인 지난 2월 동학농민혁명 국가 기념일(5월 11일)이 제정되었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주관으로 제125주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그동안 역사학계, 시민사회단체, 문화예술단체 등이 중심이 되어 동학농민혁명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민주운동, 근대민족운동, 근대개혁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자 노력하였다. 이제는, 국가기념일이 제정된 지금 기념사업의 새로운 지평 모색에 나서야할 때인 것 같다. 새로운 지평을 모색함에 있어 이성보다 감성에 어필하는 문화예술작품을 제작하여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제작공연된 뮤지컬 [금강]이나 음악극 [천명]을 비롯한 여러 연극이나 마당극 작품들은 대체로 갑오년의 역사를 한국사의 범주에서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에 방점이 두어졌다고 볼 수 있다. 흔히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말한다. 이제는 동학농민혁명의 동아시아, 세계사적 의미와 그 위상을 되찾아 21세기 한반도의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문화콘텐츠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열흘 전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녹두꽃]이라는 방송드라마가 종영(終映)되었다. 지난 4월부터 총 48부작으로 제작방영된 이 드라마는 본격 역사드라마로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첫 번째 사례로 그 의미가 크다. 국가기념일 제정 등으로 형성된 이런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문화예술계에서 동학농민혁명 문화콘텐츠 개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인 것 같다. 세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프랑스혁명을 꽃피운 뮤지컬 [레미제라블]과 같은 동학농민혁명 주제 문화예술작품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는가? /문병학 전북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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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22 17:01

도시는 꽃심으로 활력에 넘쳐야 한다

이종훈 전주시립극단 예술감독 지난해(2018년) 10월 <전주시립예술단>의 전속단체인 <전주시립극단>의 상임연출로 부임한 다음 날, 주말을 맞아 산책을 할 겸 집 근처인 조경단을 찾았다. 전주 이씨의 시조인 사공 이한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라기에 전주 이씨인 나는 족보 책에서만 읽었던 조상님을 뵙는다는 마음에 감회가 새로웠다. 허지만 조경단 문이 잠겨있어 들어가지 못하고 아쉬움에 문틈으로 묘역과 비각만 바라보면서 조상님께 인사를 올렸다. 주차장으로 내려온 나는 주변의 울창한 나무숲을 바라보다 주차장 나뭇잎 사이에 가려진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연극인 박동화선생의 흉상이었다. 연극인 흉상이 숲속에 설치된 것은 전국에서 오직 하나뿐이다. 전주에 와서 연극을 하게 된 나로서는 전북을 대표하는 연극계 원로선생님을 뵙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흉상 앞에 잠시 묵념을 드렸다. <소리의 전당> 공연장인 연지홀 앞이나, 연극인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에 자리 잡았더라면 더욱 좋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전북 연극인들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발길을 돌려 지척에 있는 전주의 대표적인 소설가 최명희 묘가 있는 <혼불 문학공원>을 향했다. 문학공원이라 이름 붙여져 많은 사람이 오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사람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고 낙엽만 바람에 실려 바닥을 쓰는 모습이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돌 판에 새겨진 작가의 글들을 읽으니 혼불의 등장인물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글을 읽을 때마다 청암부인, 강모, 허요원의 삶의 흔적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꽃심의 작가 최명희는 전주를 꽃심의 도시로 만들어 주었지만, 그녀의 묘에는 빛바랜 꽃잎이 볼품없이 떨어진 꽃다발 세 개가 몸을 비틀며 주인을 지키고 있었다. 전주 시민이 된 지 8개월이 지난 요즈음 건지산을 산책하며 즐거운 상상력에 빠진다. 전주는 꽃심의 도시고, 전주의 정신이라고 하는데 꽃을 피워내는 힘, 새로운 문화와 세상을 열어가는 강인한 힘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는 없을까? 전주를 처음 찾는 사람들에게 아, 이래서 전주를 꽃심의 도시라고 하는구나 라고 보여줄 그 방법은 무얼까? 꽃심 전주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특징이 무엇일까라는 고민 때문이다. 연극을 하다 보니 상상력은 나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은 미래의 시사회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전주역 앞의 마중길을 사시사철 꽃길로 장식하면 어떨까? 마중길은 850m라는데 너무 짧지 않을까? 경기장 사거리 로터리까지 꽃길로 장식하고 로터리엔 대형 꽃밭을 만들어 꽃심의 정점(꽃심을 상징하는 조각상)을 설치한다. 나는 전주를 찾는 사람들이 자신을 마중하는 꽃길을 보며 전주가 꽃심의 도시임을 떠올리는 생각을 하며 즐거워한다. 전주는 한옥마을로 대표되는 도시다. 그래서 양반의 도시라고도 하는데 한옥마을엔 양반이 없다. 어딜 가면 양반들을 볼 수 있을꺄? 아니다, 양반들을 거리로 불러내자! 품격있는 양반 조각상들을 만들어 전주시내 광장이며, 정거장, 공원, 쉼터로 불러내자! 다양한 모습의 양반 조각상으로 그들을 도시의 시각적 이미지로 디자인하자! 뉴욕의 황소상(charging bull)과 겁 없는 소녀상처럼! 도시는 꽃심과 양반으로 활력에 넘쳐야 한다! /이종훈 전주시립극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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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15 17:20

귀한 만남의 초심을 늘 간직하겠습니다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올 1월 나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를 맡은 이래 바쁘게 지내오며 간간이 틈이 날 때면 한 분을 찾아보곤 했다. 18년 전인 2001년 개관을 앞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의 예술감독을 맡아 밤새워 일을 해도 -그 덕분에 9월 11일 새벽, 잠을 쫓으려고 켜 놓았던 TV에서 뉴욕 무역센터가 재난영화의 한 장면같이 무너지는 현장을 전율 속에 지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손으로는 끊임없이 일을 하며- 시간이 부족하던 때에 큰 도움을 주신 분이셨다. 어린 딸아이와 사내아이를 둔 어머니셨는데 개관 초창기 홍보와 관객 모으기에 당신의 일처럼 참여하셨고, 극장예절 정착에도 솔선수범 하셨으며, 자녀들 또한 적극 참여시켜 당시 오즈의 마법사 공연에 동물역으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고마워하는 우리에게 그분은 아이들에게 문화가 무엇인지 어려서부터 알게 하고, 본인도 문화활동에 참여한다는 즐거움 때문이라 하셨다. 개관 후에 나는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떠나게 되었고, 그후 늘 이분께 고마움을 전하지 못한 부담을 느껴왔다. 그래서 부임 후 나는 우리전당의 회원명부도 들여다보고, 개관 때부터 근무 중인 직원들에게도 물어보고 했지만 어디서도 그분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3월 12일 오후 2시 11분. 우리직원이 외부에서 온 전화인데 대표님을 찾는다고 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하니 맞아, 목소릴 들으니 서현석 감독님이 맞네요. 저 ㅇㅇㅇ예요, 감독님. 순간 나도 알았다. 바로 내가 찾던 분이라는 걸. 너무 기뻐 눈물이 날 것 같다는 말씀에 나도 눈물이 날 뻔했다.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서현석? 혹시나 동명이인인가? 확인하고자 전화를 하셨다니 잊지를 않고 계셨음에 가슴이 잠에서 깨어나듯 뭉클 하는 것이었다. 이후 그분과 나는 서로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등등 얘기 끝에 내가 아이들도 많이 컸겠네요 하니 웃으시며 딸아이는 시집을 갔고 아들은 대학 졸업반이에요.라고 하셨다. 아직도 내 마음 속에는 그저 똘망똘망 아이들로 남아 있었던 거였다. 나도 올 9월이면 할아버지가 된다는 등 신변얘기가 이어졌고, 빠른 시일 내에 뵙기로 하고 나의 전화번호를 알려드렸다. 그 때가 오후 2시20분경 이었다~ 반가움을 가라앉히고 업무 중인데 4시가 조금 넘었을까, 웬 아저씨가 내 사무실로 들어 오길래 손님이신가보다 했더니 꽃배달을 왔다며 수령증에 싸인을 하라셨다. 싸인을 하며 1월에 축하 꽃은 거의 받았는데 누구지? 하며 예쁜 카드가 있어 열어보니 바로 ㅇㅇㅇ 어머님께서 보내신 꽃바구니가 아닌가! 아마도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보내셨나 보다. 이렇게나 큰 감격은 내 아내가 드디어 결혼해주겠다고 한 순간 이후 처음이었다.18년 동안을 잊지 않고 나에 대해 궁금해 하고 찾으셨다니, 이런 대접을 언제 또 받을 것인가! 너무나 고마운 마음에 또 한 번 울컥. 나에게 전당을 떠나 있던 18년은 안타깝지만 잊어야 하는 아릿한 추억의 편린이 아니라 숙성의 시간이었던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깨닫도록 자긍심을 북돋아주신 고마운 그분께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내년 개관 20년을 맞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예향 전북의 자랑이요 도민의 삶 속에 한부분이 되도록 더욱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ㅇㅇㅇ어머님 같은 도민 여러분의 성원과 참여가 더해지면 금상첨화가 될 것입니다! 도민 여러분의 행복과 번창을 기원합니다.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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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08 17:18

한지를 한지라 하지 못하고…

김호석 수묵화가전 전통문화대 교수 한지는 없다. 아니 지금까지 우리가 한지라고 부르고 있던 종이는 한지가 아니다. 전주는 조선시대 최상품 한지 생산지였다. 그 한지 위에서 맑고 투명한 조선 미술이 꽃을 피웠다. 다양한 기록들이 세계적 유산이 되었다. 그러던 한지가 중국, 일본에 밀려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이다. 중국 전통 종이인 쉔지는 2009년, 일본 전통 종이인 와시는 2014년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 이유에 대해 짧은 글로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 한지의 우수성을 연구 용역을 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한, 한지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첨단 과학시대, 현대 한지의 질은 어떤가. 조선시대의 것과 비교했을 때 물리화학적 특성에서 크게 뒤떨어진다. 전국의 한지 장인 대부분을 참여시켜 조선 정조 시대의 한지를 재현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기준이 되었던 전통한지와 재현한 한지를 비교한 결과 전반적으로 차이가 두드러졌다. 이에 대해 한 한지 전문가는 이 시대의 장인들이 조선시대 수준의 한지를 만들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원형을 되살려 재현한 한지로 정부포상을 수여하려는 계획도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전통문화의 원형을 발굴, 조사하여 미래 자원을 위한 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연구는 일회성에 그쳤다. 더 나아가지 못했다. 문화수준의 한 단면을 보는 듯 했다. 한지에 관하여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서화와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기본이 되는 바탕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전주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지 원형 재현 사업은 늦었지만 고무적이다. 조선시대의 종이를 재현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해 지난날의 잘못과 한계를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조선시대 한지 제작 방식을 알지 못한다. 특히 한지의 특성인 질기고 윤기가 있는 수준의 품질은 현재의 장인 기술로 따라가기 힘들다. 한지 수명을 결정짓는 섬유의 배향과 인쇄성을 높이는 평활도는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다. 둘째, 한지의 재료가 되는 닥나무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부족하다. 한국 토종인 닥나무가 애기닥과 꾸지나무와의 사이에서 생성된 잡종임은 최근에 밝혀졌다. 닥나무 품종에 관한 기본 연구조차 안 되어있다. 조선시대에는 각 지역마다 특색이 있는 닥나무가 존재했다. 지역 특산 닥나무 품종에 대해 실태 파악도 안 되어 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통일되어 단품종 만이 존재한다. 이 또한 암컷만 있음으로 인해 종이의 품질이 향상되지 못했다. 제대로 된 연구를 위해서는 애기닥나무와 꾸지나무를 키워 1대 잡종인 닥나무를 생육 시켜야 한다. 닥 섬유의 연구는 한지 연구의 출발이며 기본이다. 과학적이고 실천적인 연구가 절실하다. 셋째, 정부가 시행한 정책과 사업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정부는 한지의 본질적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지에 대한 개념 정립이 안 되어 있고 품질 기준조차 없다. 심지어 K.S 표준조차 터무니없다. 문화재 수리 규정에 전통 한지를 사용하라는 규정조차 없다. 정부 부문에서조차 한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정부의 이러한 무지는 현재까지 진행된 주먹구구식의 한지사업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넷째, 민간부문에서 전통한지 소비 시장이 무너졌다. 한지에 대한 품질 규정이 없으니 공예용 한지가 주를 이룬다. 이러다보니 전통한지를 구입하려해도 구입 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한지제조 업체가 1996년 64곳이었던 것이 2018년 현재 21곳으로 줄었다. 이에 대해 중요무형문화재인 지장은 인간문화재가 된 것은 가문의 영광이지만 국가에서 종이 한 장 사가지 않아서 서운했다는 말을 남겼다. /김호석 수묵화가전 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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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01 18:02

6·25 원혼 유월 뻐꾸기

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그해 여름, 아버지는/ 세상에 왜 이리 춥느냐며/ 솜이불을 덮으셨고/ 어머니는/ 애성받친 메아리만 삼키며/ 산으로 들로 휘젓고 다니셨다// 끝내/ 형은/ 피다 그친 꽃잎 그대로/ 아카시아 우거진 무너미 계곡에서/ 일곱 개의 총알이 박힌 채/ 한 마리 뻐꾸기가 되어// 아버지는/ 시신에 박힌 총알을 빼내시고/ 칼끝에 묻어난 시혈을 삼켜/ 피멍진 가슴 쥐어뜯으며 속울음만 꾹꾹 울다가/ 그 이듬, 이듬해에 또/ 한 마리 뻐꾸기가 되어// 홀로 남은 어머니는/ 영영 치유하지 못할 가슴앓이/ 등피만 닦다가/ 다시는 울지 말아야제, 다시는 울지말야야제/ 한 맺힌 통일을 노래하다 또다시/ 한 마리 뻐꾸기가 되어// 오늘도 저렇게 가시나무 가지에 앉아/ 뻐꾹뻐꾹 달무리를 짓는다. - 「유월 뻐꾸기」 (1990 『현대문학』 8월호 발표, 『月刊文學』 9월호 이달의 작품 선정) 이인복 숙명여대 교수 문학평론가는, 柳熙玉의 「유월 뻐꾸기」는 현대 한국사에서 유월이라는 시간 속에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뻐꾸기의 寃魂으로 바뀌어갔는가를 노래한다. 시간이란 한 번 흐르면 결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일회적인 것인데 우리 인간들은 그것을 순환개념으로 바꾸어 도막쳐 놓는다. 여기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생기고 밤낮이 생긴다. 유월달이 생기는 것, 20세기, 21세기가 생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 번 흐르고 그만인 시간이라면 유월 뻐꾸기가 작년에도 울고 금년에도 또 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형님 뻐꾸기는 해마다 유월이면 찾아와 울더니 아버지 뻐꾸기와 어머니 뻐꾸기까지 만들어 냈는가를 따져 묻는다. 이 詩人의 물음에, 이 시인과 같은 시대, 같은 시간을 누리고 있는 우리들은 무엇이라 대답할 것인가? 시간이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시원스럽게 대답할 수 없는 우리들은 이 해답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그 해답이 유보되어 있는 동안, 유월 뻐꾸기는 내년에도 내명년에도 우리들 가슴 속에서 달무리를 지으며 울 것이다. 라고 평했다. 625가 발발한 지도 어언 칠십 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러나 어릴 적 어머니의 통곡과 배고픔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지난 6일 현충일날 문재인 대통령이 거론한 김원봉 관련 서훈 자격 논란이 정치권에서 일고 있다. 이를 본 6.25 세대들은 마음이 편치 않음이 사실이다. 김원봉은 일제 강점기 의열단을 조직하고 광복군 부사령관 등을 지낸 인물이다. 하지만 이후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고 고위직까지 지내, 그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논쟁이 적지 않다. 그런 자를 6.25도 겪어보지 않은 자들이 서훈 추서 등등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2018년 4월 개정된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 기준에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 및 적극 공조한 것으로 판단되거나 정부수립 이후 반국가 활동한 경우 포상에서 제외 한다고 명시돼 있다. 북한은 6.25 침략을 감행하여 동족 400만 명을 살상시키고 민족 전체를 참화에 빠뜨렸다. 더 나아가 천안함과 연평도, 금강산 등에서 폭침, 폭격, 총질을 감행해 왔다. 그러고도 모자라 우리 민족 수백만을 살상시킬 핵무기를 만들어 배치하고 위협하는 현실이다. 그런 체제를 만든 주역에게 훈장을 수여한단 말인가. 참으로 천인공노할 일이다.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키려고 순국한 호국영령들이 무덤을 박차고 벌떡 일어날 일이다. /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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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24 17:53

靑年들에게 무모한 도전을 許하자

한동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사람은 서울로 모이고, 출산율은 줄어들고,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지역들은 소멸 위기를 벗어나려 노력 중이다. 가장 위기감이 높은 경북은 이웃사촌 청년 시범 마을로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 1차적으로 지방소멸지수 1위인 의성군의 안계면 일대에 일자리와 주거, 교육, 의료, 복지 체계를 갖춘 청년 시범 마을을 만들어 70여명의 청년이 농사와 창업 시설을 확보하고, 2022년까지 청년 200여명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식품산업 클러스터, 반려동물산업단지 조성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마을 리모델링, 주택, 아파트 건립 등으로 청년 친화적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한다. 전남은 전남인구, 희망찾기 프로젝트로 기초지자체별 사업을 선정 추진하였다, 순천시는 원도심의 빈집을 활용한 청년공유공간인 공유로사업, 광양시는 창작 연구 실험공간인 상상 캠퍼스사업, 곡성군은 폐교를 청년문화 공간으로 조성해 외지 청년을 유입하는 청년작당사업, 보성군은 외지 청년예술인 정착을 위한 BLUE VILLAGE 공방촌 조성사업, 무안군은 귀농희망 청년에게 주거 공간 제공사업, 고흥군은 지역 출신 귀향청년의 유턴 정착을 위한 주거 체험 교육 공간 조성사업, 장흥군은 지역 농수축산특산물 마케터 양성 및 정착사업 등을 추진한다. 이에 발맞춰 서울시는 서울시 지역상생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서울 청년의 지방 창업에 대한 5000만원 사업비 지원사업, 한해에 60~70의 귀농 희망 가구를 선발하여 10개월간의 농촌체험사업, 농업 체험 복합공간인 농업공화국을 서울 마곡에 건립한다. 이런 시도는 무모해 보인다. 그 많은 산적한 문제들을 놓아두고, 성공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지역에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만나게 될 세상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다른 사회, 경제, 문화 시스템을 가지게 된다.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는 경제가 축소하고, 경제활동인구가 줄고, 청년들이 줄고 노인들이 늘고, 사람들의 욕망과 참여는 늘어나고, 도시집중화는 심화되고, 기후위기로 생존환경이 극악해지고, 자원은 부족하여,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한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특히 변화 속도는 너무 빠르게 진전되어 간신히 제도적, 법률적 체계를 갖추기 급급하고 사회 문화적으로는 그 지체현상은 너무 커져서, 세대간, 지역간 격차와 갈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또 모든 문제들은 서로 뒤엉켜 있고, 각 지역에서의 문제 원인, 해결 주체들의 상황, 해결 방안들이 너무 다르다. 이와 같이 예측불가능한 복잡계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프로젝트의 단위, 목표, 해결방법, 해결 주체들의 구성 등에서 현실에 기반한 무모한 시도들이 필요하다. 지구상에는 불가능을 넘어 도전하여 성공한 많은 사례들이 있다. 노키아의 폐허 위에서 유럽의 실리콘밸리 오타니에미 혁신단지를 만들어 낸 핀란드 알토대학,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며 플랫폼 협동조합을 만들어 가는 영국의 전환마을 토트네스, IT기업들의 사업공간으로 변화시킨 5400명의 일본 가미야마 시골마을, 노인만 있는 한계 마을라는 장애를 넘어서서 장식용 야채 사업으로 농가당 억대의 매출까지도 올리고 있는 도쿠시마현, 그림책 작가와 출판사의 성지가 된 아리다가와정. 이 모든 사례는 무모한 도전을 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한동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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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17 17:15

지리산의 염두고도(鹽·豆 - 소금과 콩) 소금길 이야기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우리 조상들은 조선팔도를 금수강산 살기 좋은 땅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정감록이라는 책에서는, 조선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열 군데를 지목했다. 이른바 십승지지가 그곳이고 그중에 지리산의 운봉현 고을이 있다. 지금의 운봉읍, 인월면, 아영면, 산내면을 관할했던 운봉현은 지리산 깊숙한 요새의 고을이었다. 조상들은 십승지지의 땅이란 예로부터 질병이 없고, 흉년이 들지 않으며, 전쟁이나 범죄가 적거나 없어서, 사람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러한 요건이 충분하지 못한 지리산 운봉고을이 십승지지에 든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고을 백성 모두가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치적 기능이 탁월한 고을을 만들어 왔다는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지리산 운봉은 가야시대로부터 삼국, 그리고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요충지였다. 이곳의 전쟁 기록과 구전과 흔적이 그것을 설명해 내고 있다. 거기에 고원지대의 특성으로 냉해가 심해서 농사가 잘되지 않았던 곳이었다. 이것만을 보면 조선 십승지지의 땅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인다. 운봉은 1930년대 신작로가 생겨나기 전까지는 아흔 아홉 고개를 넘어야 오갈 수 있었던 첩첩산중이었다. 그곳에 든 운봉은 지리산 분지 속에 있는 작은 나라와도 같은 고을이었다. 외부 세계와도 소통이 쉽지 않은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이곳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는 생활 세계를 가졌다. 먹는 것, 입는 것, 그리고 노는 것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교육의 방법까지도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을 가졌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자급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소금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리산에서 자라는 붉나무에서 소금을 얻어 생활을 했다. 소금나무라고 불리는 붉나무는 오배자 나무라고 불렀으며, 가을이 되면 이 열매껍질에 생긴 짠 성분을 소금대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사용하게 될 소금이 필요하여 지리산 벽소령을 넘어 화개장터까지 가서 소금을 구해왔다. 지리산의 소금 길은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 운봉 사람들이 오갔던 지리산 소금길의 시원은 1500여 년 전 가야 기문국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의 왕국이라는 가야의 나라 기문국은 첩첩산중 지리산 속에 든 나라였다. 사람살이에 가장 중요했던 소금을 구하기 위하여 바다로 나아갈 길은 지리산 화개재를 너머 하동으로 가는 길 뿐이었다. 그때로부터 생겨난 길은 운봉사람들이 서리 태 콩을 짊어지고, 화개재를 넘어 화개장터로 가서 소금으로 교환해 오는 소금길이 되었다. 화개장터의 유명했던 서리태콩 두부는 이렇게 해서 생겨났었다. 삼십 명으로 이루어진 운봉의 소금무데미들은 지리산 소금길을 넘나들면서 소금과 서리태 콩을 주고받으며 살았다. 그 소금무데미 선창 꾼은 훗날 동편제 소리꾼이 되기도 했다. 지금 지리산 소금 길에 놓여 있는 간장소, 소금장수무덤 같은 흔적과 하동댁과 운봉댁의 소금장수 이야기는 지리산 염두고도의 정체성이다. 중국의 운남성을 지나는 차마고도 보다도, 더 사람 냄새난다는 한국의 염두고도(鹽豆 - 소금과 콩)가 지리산에 있고, 그 출발지 운봉은 십승지지의 한 곳이기에 충분한 고을이었다. 사람살기 좋은 고을은 좋은 자연환경에 앞서 공동체 속에 든 사람 모두가 존재로 선행인 튼튼한 인문적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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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10 20:44

인증샷 찍기 좋은 국립전주박물관 만들기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국립전주박물관은 현재 변신 중이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러 오는 곳이었지만, 여기에 더해 맛있는 것을 먹으러, 재미있는 것을 즐기고 쉬고 위로받고 놀러오는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 박물관 입구에 전주에서 가장 큰 글자로 국립전주박물관이란 문패를 달았고, 밤에는 조명을 비추어 한층 더 멋스러워졌다. 이처럼 어수선한 박물관 입구를 국립전주박물관 격에 맞는 대문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박물관 앞에 교통표시판을 설치하고 도로노면에 방향표시도 했다. 그러나 도로 표지판이 바뀌면 관람객들이 쉽게 찾아올 수는 있어도, 많이 오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국립전주박물관이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는 단순히 접근성을 용이하게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 각종 온라인 포털 검색창에 전주여행, 전주명소를 치면 국립전주박물관이 나오지 않는다. 국립전주박물관의 가장 큰 적은 관람객으로부터 무관심이다. 국립전주박물관 만의 새로운 이슈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관람객의 인식 속에 강력하게 자리 잡히도록 전주시민도 오게 하는 콘텐츠, 전주에 여행오는 사람들도 오게 하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무관심을 깨기 위해는 이제까지의 국립전주박물관과는 전혀 달라야 한다. 전주 거기 갔어?, 전주에 그거 봤어?, 전주에 그거랑 찍었어? 요즘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콘텐츠는 사진찍기 좋은 곳이다. 요즘 여행객들은 인증샷을 중시한다. 이제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진이 예쁘게 찍히는 명소가 사람을 모은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문화재, 전시, 큰 건물 등의 국립전주박물관 관념에서 나아가 앞으로의 국립전주박물관이 인증샷 건지기 좋은 곳, 셀카 잘 나오는 곳,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 변모하면 어떨까! 누구나 한번씩은 부처가 되어보라고 부처님들은 자기의 목을 잘랐구나로 끝은 맺는 정호승 시인의 소년부처라는 시를 유물 설명문으로 삼고 목없는 부처님과 사진 찍으면 누구나 부처님 될 수 있는 장소도 만들었다. 이것을 기점으로 정문 국립전주박물관 문패와 함께 단순한 박물관의 사인물이 아닌 랜드마크 같은 선비 캐릭터를 개발하여 세우고 싶다. 선비 캐릭터는 국립전주박물관의 상징이자 랜드마크 되고, 사진찍기 좋은 명소로 만들어 주지 않을까. 또한 집모양 가야토기의 꼭대기에 고양이처럼 어린이박물관 옥상에 세상에서 가장 큰 고양이를 그리고, 박물관 곳곳에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앞으로 만들 것이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이제 막 이런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여름에 소나무 숲에 해먹을 설치하고 멍 때리고 쉬면서 위로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올 겨울에는 짚풀 놀이터를 만들려고 한다.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겨울에도 마음껏 박물관 야외에서 놀게 하고 싶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짚둥지 안에 들어가면 따뜻하다. 짚은 보온력이 뛰어나고 천연 자연재료다. 짚풀은 어린이놀이 재료로는 안성맞춤이다. 짚으로 둥지와 미로를 만들어 마음껏 뛰놀게 하고, 가끔식 동네 어르신들을 모셔와 새끼 꼬고, 멍석 만들고, 짚신 삼는 것을 보고 체득한다면 아이들은 책상머리 바보가 아닌 손재주 많고, 창발적인 존재로 성장해 가지 않을까! 일년 내내 제철보다는 철없이 나오는 과일과 야채를 먹고, 더위와 추위를 모르니 현대인들은 철이 없다. 철을 안다, 철이 났다, 철이 들었다는 계절의 변화를 알고 씨 뿌리고 기르고 수확하는 성인이 되고, 또한 성숙한 농군이 됐다는 의미이다. 앞으로 국립전주박물관에 자주 놀러 오셔서 인증샷도 건지고 철들 수 있는 많은 역사문화 콘텐츠를 즐기시길 바란다.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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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03 17:20

농촌 공동체의 결집체를 다양성의 포용에서 찾아보자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귀농귀촌이 사회적 화두다. 자신의 우월한 색깔을 내던 도시에서 전통적 통제 시스템 속으로의 삶터 이동이다. 귀농귀촌은 도시유전자와 농촌유전자의 충돌을 운명으로 가진다. 그 현상의 해법을 내는 정답은 거의 없다. 조상들의 단단했던 공동체 문화를 들여 다 보고 서로의 마음내기를 조금씩 키워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우리 조상들의 마을에는 공동체 살이의 지혜가 많다. 그 실체들은 마을의 이름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을에는 수많은 이름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내고 있다. 웃골목, 둔덕골목, 까치골목, 더턱굴, 가재골, 호랑골, 너럭바우, 제바우, 수랭소와 같은 어느 마을에서나 다 있음직한 이름들이 그것이다. 골목, 뒷산골짜기, 마을 앞 냇가에 있던 그러한 이름들은 종이에 기록하지 않고서는 다 외워내지 못할 정도다. 이러한 이름들에서 마을 공동체 문화의 속살을 살펴 볼 수 있고 그 이야기중 하나는 이렇다. 지리산의 어느 마을에 호랑이를 닮은 바위가 있었다. 지금은 호랑이 바위라고 부르게 되었지만, 당초에는 여러 개의 이름을 가졌었다. 그 사연의 구전은 이렇게 전해오고 있다. 이 마을에 처음 정착하게 된 사람이 마을 입구에 있는 바위를 개바위라고 불렀다. 그 사람은 개 말고는, 다른 동물을 보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몇 달 후에 한 사람이 이사를 왔다. 그 사람은 이 바위를 늑대 바위라고 불렀다. 이 사람은 개와 늑대를 모두 보았기에 개보다는 늑대의 모양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후 이사를 온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이 개와 늑대, 곰을 보았다며 이 바위를 곰바위라고 불렀다. 몇 년 후에 또 한사람이 이사를 왔다. 그는 개와 늑대 뿐 아니라, 곰과 호랑이도 보았다며 호랑이를 가장 많이 닮았으니 호랑이 바위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바위 하나가 개, 늑대, 곰, 호랑이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마을은 혼란스러워졌다. 마을 촌장은 회의를 했다. 서로의 주장이 팽팽하자 촌장은 결론을 내렸다.모두가 다 맞는 말이다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뒷산으로 사냥을 갔다. 마을 사람들은 사냥 도중에 개, 늑대, 곰, 호랑이를 모두 보게 되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그 바위가 무엇을 닮았는지 쉽게 생각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촌장은 사람들을 모아서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모두가 이 바위는 호랑이를 닮았다고 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이 호랑이 바위라고 부르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나그네들은 이 바위를 자기의 생각대로 불렀다. 개바위, 늑대바위, 곰바위와 호랑이바위등 마을 사람들과는 달리 좀처럼 호랑이바위로 부르는 것이 통일되지 않았다. 촌장은 바위 옆에 사당을 짓고, 그 안에 호랑이 그림을 걸어 두었다. 나그네들은 그곳을 지나면서 사당 안에 걸린 호랑이 그림을 보았다. 그러더니 호랑이의 영신이 바위로 변한 것이라며 누구나가 호랑이 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 조상들은 자신의 마을들을 튼튼한 공동체로 가꾸어 온 마중물을 가졌다. 그것의 도구는 구성원 개개인의 다름을 결집체로 묶어내는 촌장의 공심적 지도력이었다. 거기에 촌장의 지도력을 신뢰하는 구성원들의 따름은 큰 에너지를 내어 주었다. 지금의 농촌 공동체는 귀농 귀촌인의 증가로 각자의 색깔이 진해져 가는 삶터가 되어 가고 있다. 조상들의 지혜로운 삶에서 구성원과 지도자의 협치 공동체를 배워 보아야 할 때다.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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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27 20:07

생태계 복원

한동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따오기, 오랜만에 들어보는 정겨운 말이다. 따오기 40 마리가 우리나라에서 멸종된 지 40년 만에 우포의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따오기는 논과 같은 습지에서 미꾸라지와 개구리 등의 양서 파충류를 먹으며 살아가는 주변의 흔한 새였다. 허나 농약 살포 등 생태계 파괴로 개체 수가 줄어 1979년 비무장 지대에서 마지막으로 발견되고 한국에서 멸종되었고 한다. 우포 따오기복원센터에서 인공 자연부화로 따오기는 350여 마리로 늘어났고, 이 중 일부를 자연 방사하기 위해 따오기들은 3개월 동안 자연적응훈련 즉 둥지에서 먹이터까지의 비행훈련, 습지에서 먹이 잡는 훈련, 대인대물 적응 훈련 등을 했다고 한다. 이들 중 몇 마리의 따오기가 자연에서 생존하며 번식할 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인류는 2000년 이후 매년 우리나라의 산림 크기에 맞먹는 650만 ha의 산림이 사라졌고, 전체 동식물의 1/8 가량인 100만 종 이상 생물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이런 생물 다양성의 감소는 서식지의 감소, 인간의 무분별한 사냥, 기후변화가 원인이라고 한다. 이제 인류는 생산과 소비의 혁신적인 변화를 도모하지 않는다면, 이 현상은 더욱 가속될 것이다. 최근 영국의 멸종저항이란 환경단체는 1000여명이 구속되고, 런던 자연사 박물관까지 점거하는 등 강력한 요구를 하면서 탄소배츨량을 0으로 줄이기 위한 혁신적 변화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이런 다양성의 말살은 생물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의 자기증식을 위한 무차별적인 개발 생산 소비, 자연과 사회에 대한 착취로 지역이 지니고 있던 사회적, 문화적 다양성들이 말살되고, 블랙홀처럼 중앙으로 인구집중, 자본집중 현상들이 일어났고, 지역은 중앙 의존적인 환경이 조성되면서 사회, 문화, 산업적 생태계가 무너졌다. 특히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지식 산업을 육성하려면 더욱 지역의 독특함이 반영되고 세계화의 보편성과 함께 지역성이라는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 다양성의 복원은 한 생물종의 복원과 마찬가지로 지역의 생산과 소비가 혁신적인 변화하여 자기 완결적인 생태계가 조성되고 그 생물종이 그 생태계에 위치 지워질 때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 생활의 혁신적인 변화가 쉽게 이루질 수는 없다. 그래서 따오기의 자연 방사를 위해 방사가 가능한 생태계를 찾아내고, 인공적 환경에서 개체수를 늘여 가고, 다양한 훈련과 실험으로 그 환경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기존의 복원 활동은 개체 훈련도 없이 아무 곳에나 풀어 놓고 연명할 물만 조금씩 주면서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원론적 주장만 되풀이해 왔다. 이제 우리에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악마의 맷돌은 회전속도를 점점 높여가면서 지역적 토대를 20-30년 이내에 소멸시킬 것이다. 지역성의 중요성을 확산하고, 지속가능한 다양한 실험으로 각종 생물종들을 복원 방사하여 생존해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전국 각지에서 사회혁신 리빙랩이란 기치로 다양한 실험들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방사를 위한 훈련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방사한 따오기가 자연 속에서 번식하면 살아가려면 따오기 한 종의 복원으로는 불가능하다. 따오기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먹이사슬과 환경이 구축되어야 한다. 지역 생태계 조성은 다양한 분야와 장소에서의 리빙랩 실험들이 정착 확산되고, 상호작용하면서 우리들의 삶을 바꾸어 갈 때 가능해 질 것이다. /한동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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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20 20:12

미래, 150세 가공인간 탄생

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첨단 과학의 발달로 뇌와 기계가 결합된 인간이 태어난다. 돈 있는 사람들은 신체의 장기를 업그레이드해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산다. 신체의 일부가 로봇제품으로 대체되고 인간의 영혼을 구제한다던 종교도 사라지고 사람들이 신봉하는 것은 오직 과학기술뿐이다. 우리나라 국회미래연구원의 미래예측 보고서에서 2050년경에는 향후 인간 수명이 150세까지 연장되고 뇌의 핵심기능인 인지와 기억 등을 데이터화하는 기술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이 같은 추세는 세계적일 것이며, 허종호 국회미래연구원 위원은 개인의 뇌에 저장된 정보를 컴퓨터에 업로드할 수 있게 된다면 정신작용이라고 믿어 왔던 뇌를 신체에서 분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3년 미국 정부는 45억 달러를 투자해 뇌의 신경회로망을 분석해 데이터화하는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뉴럴 링크(Neural Link) 기업은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AI)을 결합하는 뉴럴 레이스(Neural Lace)를 연구 중이며, 이는 뇌에 칩을 심어 컴퓨터와 연동하는 이른바 뇌 임플란트의 기술이다. 우리나라 국회미래연구원에서도 2050년엔 영화 아바타처럼 인간의 생각만으로 로봇을 조종하는 뇌-컴퓨터 접속(BMI) 기술이 현실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미 미국 피츠버그대 앤드루 슈워츠 신경생물학과 교수는 2012년에 각각 원숭이와 인간의 뇌에 조그만 칩을 넣어 로봇 팔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 인간 수명의 연장과 트랜스 휴면의 등장으로 가족제도가 변화하고, 복제인간 등의 출현으로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새로운 가족 형태가 나올 것이며, 유전자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개념도 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11월 중국에서도 세계 최초 배아상태에서 유전자를 편집한 맞춤형 아기가 태어났다고 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로 부모가 원하는 유전자만 가진 아이를 만들 수 있고, 생식을 위한 여성의 출산이 사라지고 인공 자궁을 통한 생식이 상용화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면면 등을 볼 때 한국 사회는 어떻게 해야 디스토피아를 피할 수 있을까. 국회미래연구원은 인간 중심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체와 구성을 제시했다. 합의체에서는 앞으로 인간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생식과 성교를 분리해 공장식 출산을 허용할 것인지, 인간 유전자 실험을 해도 되는지 등의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허종호 연구위원은 기술의 발전 속도는 나라와 관계없이 매우 빠르기 때문에 미래에 나타날 문제들을 미리 고민하지 않으면 큰 혼란이 생길 수 있다며 한국이 앞서서라도 과학기술이 인간 행복을 높이는 용도로만 쓸 수 있도록 제도적인 담론의 장을 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처럼 새로운 기술 발전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기대와 걱정을 함께 한다. 솔직히 말하면 걱정이 더 앞선다.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대박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준비도 제대로 안된 채 맞을 충격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늘을 숭배하고 자연을 찬양하며 노래했던 백치미(bimbo)의 옛 세상이 그리워진다. /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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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1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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