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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원혼 유월 뻐꾸기

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그해 여름, 아버지는/ 세상에 왜 이리 춥느냐며/ 솜이불을 덮으셨고/ 어머니는/ 애성받친 메아리만 삼키며/ 산으로 들로 휘젓고 다니셨다// 끝내/ 형은/ 피다 그친 꽃잎 그대로/ 아카시아 우거진 무너미 계곡에서/ 일곱 개의 총알이 박힌 채/ 한 마리 뻐꾸기가 되어// 아버지는/ 시신에 박힌 총알을 빼내시고/ 칼끝에 묻어난 시혈을 삼켜/ 피멍진 가슴 쥐어뜯으며 속울음만 꾹꾹 울다가/ 그 이듬, 이듬해에 또/ 한 마리 뻐꾸기가 되어// 홀로 남은 어머니는/ 영영 치유하지 못할 가슴앓이/ 등피만 닦다가/ 다시는 울지 말아야제, 다시는 울지말야야제/ 한 맺힌 통일을 노래하다 또다시/ 한 마리 뻐꾸기가 되어// 오늘도 저렇게 가시나무 가지에 앉아/ 뻐꾹뻐꾹 달무리를 짓는다. - 「유월 뻐꾸기」 (1990 『현대문학』 8월호 발표, 『月刊文學』 9월호 이달의 작품 선정) 이인복 숙명여대 교수 문학평론가는, 柳熙玉의 「유월 뻐꾸기」는 현대 한국사에서 유월이라는 시간 속에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뻐꾸기의 寃魂으로 바뀌어갔는가를 노래한다. 시간이란 한 번 흐르면 결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일회적인 것인데 우리 인간들은 그것을 순환개념으로 바꾸어 도막쳐 놓는다. 여기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생기고 밤낮이 생긴다. 유월달이 생기는 것, 20세기, 21세기가 생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 번 흐르고 그만인 시간이라면 유월 뻐꾸기가 작년에도 울고 금년에도 또 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형님 뻐꾸기는 해마다 유월이면 찾아와 울더니 아버지 뻐꾸기와 어머니 뻐꾸기까지 만들어 냈는가를 따져 묻는다. 이 詩人의 물음에, 이 시인과 같은 시대, 같은 시간을 누리고 있는 우리들은 무엇이라 대답할 것인가? 시간이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시원스럽게 대답할 수 없는 우리들은 이 해답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그 해답이 유보되어 있는 동안, 유월 뻐꾸기는 내년에도 내명년에도 우리들 가슴 속에서 달무리를 지으며 울 것이다. 라고 평했다. 625가 발발한 지도 어언 칠십 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러나 어릴 적 어머니의 통곡과 배고픔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지난 6일 현충일날 문재인 대통령이 거론한 김원봉 관련 서훈 자격 논란이 정치권에서 일고 있다. 이를 본 6.25 세대들은 마음이 편치 않음이 사실이다. 김원봉은 일제 강점기 의열단을 조직하고 광복군 부사령관 등을 지낸 인물이다. 하지만 이후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고 고위직까지 지내, 그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논쟁이 적지 않다. 그런 자를 6.25도 겪어보지 않은 자들이 서훈 추서 등등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2018년 4월 개정된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 기준에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 및 적극 공조한 것으로 판단되거나 정부수립 이후 반국가 활동한 경우 포상에서 제외 한다고 명시돼 있다. 북한은 6.25 침략을 감행하여 동족 400만 명을 살상시키고 민족 전체를 참화에 빠뜨렸다. 더 나아가 천안함과 연평도, 금강산 등에서 폭침, 폭격, 총질을 감행해 왔다. 그러고도 모자라 우리 민족 수백만을 살상시킬 핵무기를 만들어 배치하고 위협하는 현실이다. 그런 체제를 만든 주역에게 훈장을 수여한단 말인가. 참으로 천인공노할 일이다.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키려고 순국한 호국영령들이 무덤을 박차고 벌떡 일어날 일이다. /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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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24 17:53

靑年들에게 무모한 도전을 許하자

한동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사람은 서울로 모이고, 출산율은 줄어들고,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지역들은 소멸 위기를 벗어나려 노력 중이다. 가장 위기감이 높은 경북은 이웃사촌 청년 시범 마을로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 1차적으로 지방소멸지수 1위인 의성군의 안계면 일대에 일자리와 주거, 교육, 의료, 복지 체계를 갖춘 청년 시범 마을을 만들어 70여명의 청년이 농사와 창업 시설을 확보하고, 2022년까지 청년 200여명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식품산업 클러스터, 반려동물산업단지 조성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마을 리모델링, 주택, 아파트 건립 등으로 청년 친화적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한다. 전남은 전남인구, 희망찾기 프로젝트로 기초지자체별 사업을 선정 추진하였다, 순천시는 원도심의 빈집을 활용한 청년공유공간인 공유로사업, 광양시는 창작 연구 실험공간인 상상 캠퍼스사업, 곡성군은 폐교를 청년문화 공간으로 조성해 외지 청년을 유입하는 청년작당사업, 보성군은 외지 청년예술인 정착을 위한 BLUE VILLAGE 공방촌 조성사업, 무안군은 귀농희망 청년에게 주거 공간 제공사업, 고흥군은 지역 출신 귀향청년의 유턴 정착을 위한 주거 체험 교육 공간 조성사업, 장흥군은 지역 농수축산특산물 마케터 양성 및 정착사업 등을 추진한다. 이에 발맞춰 서울시는 서울시 지역상생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서울 청년의 지방 창업에 대한 5000만원 사업비 지원사업, 한해에 60~70의 귀농 희망 가구를 선발하여 10개월간의 농촌체험사업, 농업 체험 복합공간인 농업공화국을 서울 마곡에 건립한다. 이런 시도는 무모해 보인다. 그 많은 산적한 문제들을 놓아두고, 성공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지역에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만나게 될 세상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다른 사회, 경제, 문화 시스템을 가지게 된다.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는 경제가 축소하고, 경제활동인구가 줄고, 청년들이 줄고 노인들이 늘고, 사람들의 욕망과 참여는 늘어나고, 도시집중화는 심화되고, 기후위기로 생존환경이 극악해지고, 자원은 부족하여,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한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특히 변화 속도는 너무 빠르게 진전되어 간신히 제도적, 법률적 체계를 갖추기 급급하고 사회 문화적으로는 그 지체현상은 너무 커져서, 세대간, 지역간 격차와 갈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또 모든 문제들은 서로 뒤엉켜 있고, 각 지역에서의 문제 원인, 해결 주체들의 상황, 해결 방안들이 너무 다르다. 이와 같이 예측불가능한 복잡계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프로젝트의 단위, 목표, 해결방법, 해결 주체들의 구성 등에서 현실에 기반한 무모한 시도들이 필요하다. 지구상에는 불가능을 넘어 도전하여 성공한 많은 사례들이 있다. 노키아의 폐허 위에서 유럽의 실리콘밸리 오타니에미 혁신단지를 만들어 낸 핀란드 알토대학,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며 플랫폼 협동조합을 만들어 가는 영국의 전환마을 토트네스, IT기업들의 사업공간으로 변화시킨 5400명의 일본 가미야마 시골마을, 노인만 있는 한계 마을라는 장애를 넘어서서 장식용 야채 사업으로 농가당 억대의 매출까지도 올리고 있는 도쿠시마현, 그림책 작가와 출판사의 성지가 된 아리다가와정. 이 모든 사례는 무모한 도전을 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한동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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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17 17:15

지리산의 염두고도(鹽·豆 - 소금과 콩) 소금길 이야기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우리 조상들은 조선팔도를 금수강산 살기 좋은 땅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정감록이라는 책에서는, 조선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열 군데를 지목했다. 이른바 십승지지가 그곳이고 그중에 지리산의 운봉현 고을이 있다. 지금의 운봉읍, 인월면, 아영면, 산내면을 관할했던 운봉현은 지리산 깊숙한 요새의 고을이었다. 조상들은 십승지지의 땅이란 예로부터 질병이 없고, 흉년이 들지 않으며, 전쟁이나 범죄가 적거나 없어서, 사람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러한 요건이 충분하지 못한 지리산 운봉고을이 십승지지에 든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고을 백성 모두가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치적 기능이 탁월한 고을을 만들어 왔다는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지리산 운봉은 가야시대로부터 삼국, 그리고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요충지였다. 이곳의 전쟁 기록과 구전과 흔적이 그것을 설명해 내고 있다. 거기에 고원지대의 특성으로 냉해가 심해서 농사가 잘되지 않았던 곳이었다. 이것만을 보면 조선 십승지지의 땅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인다. 운봉은 1930년대 신작로가 생겨나기 전까지는 아흔 아홉 고개를 넘어야 오갈 수 있었던 첩첩산중이었다. 그곳에 든 운봉은 지리산 분지 속에 있는 작은 나라와도 같은 고을이었다. 외부 세계와도 소통이 쉽지 않은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이곳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는 생활 세계를 가졌다. 먹는 것, 입는 것, 그리고 노는 것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교육의 방법까지도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을 가졌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자급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소금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리산에서 자라는 붉나무에서 소금을 얻어 생활을 했다. 소금나무라고 불리는 붉나무는 오배자 나무라고 불렀으며, 가을이 되면 이 열매껍질에 생긴 짠 성분을 소금대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사용하게 될 소금이 필요하여 지리산 벽소령을 넘어 화개장터까지 가서 소금을 구해왔다. 지리산의 소금 길은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 운봉 사람들이 오갔던 지리산 소금길의 시원은 1500여 년 전 가야 기문국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의 왕국이라는 가야의 나라 기문국은 첩첩산중 지리산 속에 든 나라였다. 사람살이에 가장 중요했던 소금을 구하기 위하여 바다로 나아갈 길은 지리산 화개재를 너머 하동으로 가는 길 뿐이었다. 그때로부터 생겨난 길은 운봉사람들이 서리 태 콩을 짊어지고, 화개재를 넘어 화개장터로 가서 소금으로 교환해 오는 소금길이 되었다. 화개장터의 유명했던 서리태콩 두부는 이렇게 해서 생겨났었다. 삼십 명으로 이루어진 운봉의 소금무데미들은 지리산 소금길을 넘나들면서 소금과 서리태 콩을 주고받으며 살았다. 그 소금무데미 선창 꾼은 훗날 동편제 소리꾼이 되기도 했다. 지금 지리산 소금 길에 놓여 있는 간장소, 소금장수무덤 같은 흔적과 하동댁과 운봉댁의 소금장수 이야기는 지리산 염두고도의 정체성이다. 중국의 운남성을 지나는 차마고도 보다도, 더 사람 냄새난다는 한국의 염두고도(鹽豆 - 소금과 콩)가 지리산에 있고, 그 출발지 운봉은 십승지지의 한 곳이기에 충분한 고을이었다. 사람살기 좋은 고을은 좋은 자연환경에 앞서 공동체 속에 든 사람 모두가 존재로 선행인 튼튼한 인문적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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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10 20:44

인증샷 찍기 좋은 국립전주박물관 만들기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국립전주박물관은 현재 변신 중이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러 오는 곳이었지만, 여기에 더해 맛있는 것을 먹으러, 재미있는 것을 즐기고 쉬고 위로받고 놀러오는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 박물관 입구에 전주에서 가장 큰 글자로 국립전주박물관이란 문패를 달았고, 밤에는 조명을 비추어 한층 더 멋스러워졌다. 이처럼 어수선한 박물관 입구를 국립전주박물관 격에 맞는 대문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박물관 앞에 교통표시판을 설치하고 도로노면에 방향표시도 했다. 그러나 도로 표지판이 바뀌면 관람객들이 쉽게 찾아올 수는 있어도, 많이 오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국립전주박물관이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는 단순히 접근성을 용이하게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 각종 온라인 포털 검색창에 전주여행, 전주명소를 치면 국립전주박물관이 나오지 않는다. 국립전주박물관의 가장 큰 적은 관람객으로부터 무관심이다. 국립전주박물관 만의 새로운 이슈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관람객의 인식 속에 강력하게 자리 잡히도록 전주시민도 오게 하는 콘텐츠, 전주에 여행오는 사람들도 오게 하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무관심을 깨기 위해는 이제까지의 국립전주박물관과는 전혀 달라야 한다. 전주 거기 갔어?, 전주에 그거 봤어?, 전주에 그거랑 찍었어? 요즘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콘텐츠는 사진찍기 좋은 곳이다. 요즘 여행객들은 인증샷을 중시한다. 이제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진이 예쁘게 찍히는 명소가 사람을 모은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문화재, 전시, 큰 건물 등의 국립전주박물관 관념에서 나아가 앞으로의 국립전주박물관이 인증샷 건지기 좋은 곳, 셀카 잘 나오는 곳,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 변모하면 어떨까! 누구나 한번씩은 부처가 되어보라고 부처님들은 자기의 목을 잘랐구나로 끝은 맺는 정호승 시인의 소년부처라는 시를 유물 설명문으로 삼고 목없는 부처님과 사진 찍으면 누구나 부처님 될 수 있는 장소도 만들었다. 이것을 기점으로 정문 국립전주박물관 문패와 함께 단순한 박물관의 사인물이 아닌 랜드마크 같은 선비 캐릭터를 개발하여 세우고 싶다. 선비 캐릭터는 국립전주박물관의 상징이자 랜드마크 되고, 사진찍기 좋은 명소로 만들어 주지 않을까. 또한 집모양 가야토기의 꼭대기에 고양이처럼 어린이박물관 옥상에 세상에서 가장 큰 고양이를 그리고, 박물관 곳곳에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앞으로 만들 것이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이제 막 이런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여름에 소나무 숲에 해먹을 설치하고 멍 때리고 쉬면서 위로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올 겨울에는 짚풀 놀이터를 만들려고 한다.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겨울에도 마음껏 박물관 야외에서 놀게 하고 싶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짚둥지 안에 들어가면 따뜻하다. 짚은 보온력이 뛰어나고 천연 자연재료다. 짚풀은 어린이놀이 재료로는 안성맞춤이다. 짚으로 둥지와 미로를 만들어 마음껏 뛰놀게 하고, 가끔식 동네 어르신들을 모셔와 새끼 꼬고, 멍석 만들고, 짚신 삼는 것을 보고 체득한다면 아이들은 책상머리 바보가 아닌 손재주 많고, 창발적인 존재로 성장해 가지 않을까! 일년 내내 제철보다는 철없이 나오는 과일과 야채를 먹고, 더위와 추위를 모르니 현대인들은 철이 없다. 철을 안다, 철이 났다, 철이 들었다는 계절의 변화를 알고 씨 뿌리고 기르고 수확하는 성인이 되고, 또한 성숙한 농군이 됐다는 의미이다. 앞으로 국립전주박물관에 자주 놀러 오셔서 인증샷도 건지고 철들 수 있는 많은 역사문화 콘텐츠를 즐기시길 바란다.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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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03 17:20

농촌 공동체의 결집체를 다양성의 포용에서 찾아보자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귀농귀촌이 사회적 화두다. 자신의 우월한 색깔을 내던 도시에서 전통적 통제 시스템 속으로의 삶터 이동이다. 귀농귀촌은 도시유전자와 농촌유전자의 충돌을 운명으로 가진다. 그 현상의 해법을 내는 정답은 거의 없다. 조상들의 단단했던 공동체 문화를 들여 다 보고 서로의 마음내기를 조금씩 키워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우리 조상들의 마을에는 공동체 살이의 지혜가 많다. 그 실체들은 마을의 이름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을에는 수많은 이름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내고 있다. 웃골목, 둔덕골목, 까치골목, 더턱굴, 가재골, 호랑골, 너럭바우, 제바우, 수랭소와 같은 어느 마을에서나 다 있음직한 이름들이 그것이다. 골목, 뒷산골짜기, 마을 앞 냇가에 있던 그러한 이름들은 종이에 기록하지 않고서는 다 외워내지 못할 정도다. 이러한 이름들에서 마을 공동체 문화의 속살을 살펴 볼 수 있고 그 이야기중 하나는 이렇다. 지리산의 어느 마을에 호랑이를 닮은 바위가 있었다. 지금은 호랑이 바위라고 부르게 되었지만, 당초에는 여러 개의 이름을 가졌었다. 그 사연의 구전은 이렇게 전해오고 있다. 이 마을에 처음 정착하게 된 사람이 마을 입구에 있는 바위를 개바위라고 불렀다. 그 사람은 개 말고는, 다른 동물을 보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몇 달 후에 한 사람이 이사를 왔다. 그 사람은 이 바위를 늑대 바위라고 불렀다. 이 사람은 개와 늑대를 모두 보았기에 개보다는 늑대의 모양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후 이사를 온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이 개와 늑대, 곰을 보았다며 이 바위를 곰바위라고 불렀다. 몇 년 후에 또 한사람이 이사를 왔다. 그는 개와 늑대 뿐 아니라, 곰과 호랑이도 보았다며 호랑이를 가장 많이 닮았으니 호랑이 바위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바위 하나가 개, 늑대, 곰, 호랑이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마을은 혼란스러워졌다. 마을 촌장은 회의를 했다. 서로의 주장이 팽팽하자 촌장은 결론을 내렸다.모두가 다 맞는 말이다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뒷산으로 사냥을 갔다. 마을 사람들은 사냥 도중에 개, 늑대, 곰, 호랑이를 모두 보게 되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그 바위가 무엇을 닮았는지 쉽게 생각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촌장은 사람들을 모아서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모두가 이 바위는 호랑이를 닮았다고 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이 호랑이 바위라고 부르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나그네들은 이 바위를 자기의 생각대로 불렀다. 개바위, 늑대바위, 곰바위와 호랑이바위등 마을 사람들과는 달리 좀처럼 호랑이바위로 부르는 것이 통일되지 않았다. 촌장은 바위 옆에 사당을 짓고, 그 안에 호랑이 그림을 걸어 두었다. 나그네들은 그곳을 지나면서 사당 안에 걸린 호랑이 그림을 보았다. 그러더니 호랑이의 영신이 바위로 변한 것이라며 누구나가 호랑이 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 조상들은 자신의 마을들을 튼튼한 공동체로 가꾸어 온 마중물을 가졌다. 그것의 도구는 구성원 개개인의 다름을 결집체로 묶어내는 촌장의 공심적 지도력이었다. 거기에 촌장의 지도력을 신뢰하는 구성원들의 따름은 큰 에너지를 내어 주었다. 지금의 농촌 공동체는 귀농 귀촌인의 증가로 각자의 색깔이 진해져 가는 삶터가 되어 가고 있다. 조상들의 지혜로운 삶에서 구성원과 지도자의 협치 공동체를 배워 보아야 할 때다.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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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27 20:07

생태계 복원

한동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따오기, 오랜만에 들어보는 정겨운 말이다. 따오기 40 마리가 우리나라에서 멸종된 지 40년 만에 우포의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따오기는 논과 같은 습지에서 미꾸라지와 개구리 등의 양서 파충류를 먹으며 살아가는 주변의 흔한 새였다. 허나 농약 살포 등 생태계 파괴로 개체 수가 줄어 1979년 비무장 지대에서 마지막으로 발견되고 한국에서 멸종되었고 한다. 우포 따오기복원센터에서 인공 자연부화로 따오기는 350여 마리로 늘어났고, 이 중 일부를 자연 방사하기 위해 따오기들은 3개월 동안 자연적응훈련 즉 둥지에서 먹이터까지의 비행훈련, 습지에서 먹이 잡는 훈련, 대인대물 적응 훈련 등을 했다고 한다. 이들 중 몇 마리의 따오기가 자연에서 생존하며 번식할 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인류는 2000년 이후 매년 우리나라의 산림 크기에 맞먹는 650만 ha의 산림이 사라졌고, 전체 동식물의 1/8 가량인 100만 종 이상 생물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이런 생물 다양성의 감소는 서식지의 감소, 인간의 무분별한 사냥, 기후변화가 원인이라고 한다. 이제 인류는 생산과 소비의 혁신적인 변화를 도모하지 않는다면, 이 현상은 더욱 가속될 것이다. 최근 영국의 멸종저항이란 환경단체는 1000여명이 구속되고, 런던 자연사 박물관까지 점거하는 등 강력한 요구를 하면서 탄소배츨량을 0으로 줄이기 위한 혁신적 변화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이런 다양성의 말살은 생물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의 자기증식을 위한 무차별적인 개발 생산 소비, 자연과 사회에 대한 착취로 지역이 지니고 있던 사회적, 문화적 다양성들이 말살되고, 블랙홀처럼 중앙으로 인구집중, 자본집중 현상들이 일어났고, 지역은 중앙 의존적인 환경이 조성되면서 사회, 문화, 산업적 생태계가 무너졌다. 특히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지식 산업을 육성하려면 더욱 지역의 독특함이 반영되고 세계화의 보편성과 함께 지역성이라는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 다양성의 복원은 한 생물종의 복원과 마찬가지로 지역의 생산과 소비가 혁신적인 변화하여 자기 완결적인 생태계가 조성되고 그 생물종이 그 생태계에 위치 지워질 때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 생활의 혁신적인 변화가 쉽게 이루질 수는 없다. 그래서 따오기의 자연 방사를 위해 방사가 가능한 생태계를 찾아내고, 인공적 환경에서 개체수를 늘여 가고, 다양한 훈련과 실험으로 그 환경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기존의 복원 활동은 개체 훈련도 없이 아무 곳에나 풀어 놓고 연명할 물만 조금씩 주면서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원론적 주장만 되풀이해 왔다. 이제 우리에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악마의 맷돌은 회전속도를 점점 높여가면서 지역적 토대를 20-30년 이내에 소멸시킬 것이다. 지역성의 중요성을 확산하고, 지속가능한 다양한 실험으로 각종 생물종들을 복원 방사하여 생존해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전국 각지에서 사회혁신 리빙랩이란 기치로 다양한 실험들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방사를 위한 훈련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방사한 따오기가 자연 속에서 번식하면 살아가려면 따오기 한 종의 복원으로는 불가능하다. 따오기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먹이사슬과 환경이 구축되어야 한다. 지역 생태계 조성은 다양한 분야와 장소에서의 리빙랩 실험들이 정착 확산되고, 상호작용하면서 우리들의 삶을 바꾸어 갈 때 가능해 질 것이다. /한동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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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20 20:12

미래, 150세 가공인간 탄생

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첨단 과학의 발달로 뇌와 기계가 결합된 인간이 태어난다. 돈 있는 사람들은 신체의 장기를 업그레이드해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산다. 신체의 일부가 로봇제품으로 대체되고 인간의 영혼을 구제한다던 종교도 사라지고 사람들이 신봉하는 것은 오직 과학기술뿐이다. 우리나라 국회미래연구원의 미래예측 보고서에서 2050년경에는 향후 인간 수명이 150세까지 연장되고 뇌의 핵심기능인 인지와 기억 등을 데이터화하는 기술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이 같은 추세는 세계적일 것이며, 허종호 국회미래연구원 위원은 개인의 뇌에 저장된 정보를 컴퓨터에 업로드할 수 있게 된다면 정신작용이라고 믿어 왔던 뇌를 신체에서 분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3년 미국 정부는 45억 달러를 투자해 뇌의 신경회로망을 분석해 데이터화하는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뉴럴 링크(Neural Link) 기업은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AI)을 결합하는 뉴럴 레이스(Neural Lace)를 연구 중이며, 이는 뇌에 칩을 심어 컴퓨터와 연동하는 이른바 뇌 임플란트의 기술이다. 우리나라 국회미래연구원에서도 2050년엔 영화 아바타처럼 인간의 생각만으로 로봇을 조종하는 뇌-컴퓨터 접속(BMI) 기술이 현실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미 미국 피츠버그대 앤드루 슈워츠 신경생물학과 교수는 2012년에 각각 원숭이와 인간의 뇌에 조그만 칩을 넣어 로봇 팔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 인간 수명의 연장과 트랜스 휴면의 등장으로 가족제도가 변화하고, 복제인간 등의 출현으로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새로운 가족 형태가 나올 것이며, 유전자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개념도 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11월 중국에서도 세계 최초 배아상태에서 유전자를 편집한 맞춤형 아기가 태어났다고 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로 부모가 원하는 유전자만 가진 아이를 만들 수 있고, 생식을 위한 여성의 출산이 사라지고 인공 자궁을 통한 생식이 상용화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면면 등을 볼 때 한국 사회는 어떻게 해야 디스토피아를 피할 수 있을까. 국회미래연구원은 인간 중심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체와 구성을 제시했다. 합의체에서는 앞으로 인간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생식과 성교를 분리해 공장식 출산을 허용할 것인지, 인간 유전자 실험을 해도 되는지 등의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허종호 연구위원은 기술의 발전 속도는 나라와 관계없이 매우 빠르기 때문에 미래에 나타날 문제들을 미리 고민하지 않으면 큰 혼란이 생길 수 있다며 한국이 앞서서라도 과학기술이 인간 행복을 높이는 용도로만 쓸 수 있도록 제도적인 담론의 장을 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처럼 새로운 기술 발전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기대와 걱정을 함께 한다. 솔직히 말하면 걱정이 더 앞선다.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대박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준비도 제대로 안된 채 맞을 충격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늘을 숭배하고 자연을 찬양하며 노래했던 백치미(bimbo)의 옛 세상이 그리워진다. /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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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13 20:01

전주, 선비, 박물관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요즈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좋은 뜻이 담겨있는 처음처럼이라는 글귀를 들려주면 원래의 의미를 생각하기 보다는 술의 이름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현대인들은 물질적 풍요에 비해 인간성 상실, 정체성과 소속감의 부재, 공동체문화의 해체 등으로 몸과 마음을 둘 곳도 둘 바도 모르면서 그저 단순히 처음처럼 술로만 세상과 인생을 잊으려고 하고 있지나 않은지 반문해 본다. 얼마 전에 김병일이 쓴『퇴계처럼』(글항아리, 2012),『선비처럼(나남, 2015)』두 권 처음처럼과 같은 처럼 돌림의 책을 읽었다. 『퇴계처럼』에서는 학식이 높고 근엄한 대학자로만 알았던 퇴계선생 아니라 평생토록 자신을 낮추고, 자신보다 지위나 신분이 낮은 사람과 얼마나 공감하고, 배려했는지, 그리고 상대 누구든지 간에 함부로 대하지 않았던 일상 실천적 삶을 살았다고 소개하고 있다. 퇴계는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겸손과 배려, 희생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선비와 선비정신은 동서고금을 통해 최고의 사회적 어른이며 인류보편의 정신적 자산이다. 선비는 수양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의 조화를 추구해나가는 인물이다. 선비가 도야하는 수양의 내용이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며, 자신에겐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박기후인(薄己厚人)의 정신을 근본으로 한다. 앞으로 선비의 고장 전주에서, 선비문화를 선도하는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선비문화의 가치를 조명하고 재발견하여, 창출하고 새롭게 선도해 나가려고 한다. 전주 지명 뒤에 양반, 선비라는 명칭을 붙여도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한다. 국립박물관 유일의 선비문화 중심은 국립전주박물관이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 선비의 모습을 제시하고, 특화된 공간콘텐츠를 구축하려고 한다. 선비문화를 조사연구하고, 상설전시와 특별전시, 어린이박물관 전시를 통해 가시적으로 구현하며, 선비아카데미와 다양한 교육을 통해 국립전주박물관은 명실 공히 국립박물관 유일의 선비문화를 지향하고 있다. 지금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선비, 글을 넘어 마음을 전하다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조선시대 선비의 편지글을 통해 우리가 알리 못했던 선비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현재 3천편 이상 연구논문이 나올 정도로 유명한 퇴계와 고봉의 100여 통 편지, 다산이 아내가 보낸 다홍치마에 아들과 딸을 위해 쓴 편지 『하피첩』과 『매화병제도』, 아들에게 고추장을 보낸다는 『연암선생서간첩』, 딸과 사위의 싸움은 타이르는 효종의 편지『숙명신한첩』, 기생과의 추문은 사실이 아니니 걱정마라고 아내에게 보내는 「추사의 한글편지」, 서른에 죽은 사랑하는 남편의 관 속에 넣은 가슴 저미는 애절한 「원이엄마편지」와 머리카락으로 만든 미투리신발 등 선비들의 편지와 사료를 전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 유물들은 보물, 중요민속자료 등으로 지정된 쉽게 만날 수도 없고 한자리에서 볼 수 없는 희귀한 자료들이다. 근엄하고 학문만 하는 선비들이 아니라 편지로 애틋한 우정, 따스한 사랑, 가족에 대한 애정을 나누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족과 함께 꼭 한번 관람 하시기를 강권한다 이제 선비와 선비정신에 대한 우리 시대의 왜곡과 편견을 걷어내고 새로이 탐구하고 구현해야 한다. 배려와 섬김이라는 선비와 선비정신을 현대에 다시 불러내어 오늘날의 새로운 가치관과 자신의 생활 지침으로 삼는다면, 풍요로운 정신문화를 이룩하는 데 해법이 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선비문화는 전주에서부터 출발한다.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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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06 19:05

진상품 문화 그 속살 들여 다 보기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조선시대에는 고을마다 왕에게 보낼 만큼 자랑스러운 특산품이 있었다. 그 지방의 땅과 기후에 가장 잘 적응해서 어느 지역의 것보다 우월한 산품이 그것이었다. 토질과 기후에 사람의 심성까지 들여지면 그것은 진상품이 되었다. 진상품은 고을 원님들의 무리한 아부경쟁으로 백성들의 원한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크고 작은 고을들의 브랜드를 키워내는 역할도 했다. 진상품은 그러한 외형적인 문화 외에도 내면의 속살을 가졌다. 그것은임금이 고을수령의 봉임 자세와 백성들의 형편을 알아보는 직접적인 소통의 도구라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왕이 지방고을 수령들의 봉임 자세를 깊고 세세하게 알아보는 방법은 별로 많지 않았다. 요즈음 같이 민원전달 시스템이 구축되지도 않았으니 지방의 수령들은 아방궁의 주인이었다. 간혹 암행어사 같은 제도를 활용하거나 상급기관의 감찰활동도 있었으나 너 좋고 나 좋은 일로 무마되기 일쑤였으니 지방 고을 수령들의 큰 통제수단은 스스로 수양된 선비정신이었다. 임금은 고을 수령들의 봉임 자세와 백성들의 형편을 알아보는 소통의 방법을 고민했고 그것의 방법은 각자의 고을들에서 올라오는 진상품의 실체를 점검해 보는 것이었다. 진상품은 왕실로 보내진 고을의 특산품이었다. 그러나 진상품의 실상은 왕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고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고을 사람들이 가장 잘 만들거나 가꾸거나 채취할 수 있었던 것이었기에 그랬다. 한양의 임금에게 올라간 진상품은 그 품질과 크기와 상품성이 해마다 기억되고 기록되었다. 흉년이 들었는데도 예년과 같은 좋은 진상품이 올라왔다면 그 고을 원님은 백성들에게도 좋은 상품을 기준으로 평년과 같이 조세를 과하게 부과징수 하고 있는지 점검했다. 그러나 흉년의 진상품이 흉년 수준이었다면 그 고을 원님은 아부적 충성이 아니라 정직한 것이니 백성들의 사정을 잘 알고 선정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고을들에서 한양으로 올리는 진상품은 백성과 임금의 소통도구인 셈이었고 그것을 통하여 수령의 봉임 자세와 백성들의 형편을 점검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임금에게 올리는 고을들의 먹는 진상품을 관리하는 곳은 공상청이었다. 조선팔도의 고을들에서 올라오는 진상품의 고을 형편을 가장 잘 아는 이는 소리꾼들이었다. 조선팔도를 유랑하며 고을들의 민심과 백성들의 형편과 산품들의 풍, 흉을 잘 알던 소리꾼들을 한양의 공상청에서 불러 조선팔도 고을들의 산품에 대한 형편을 점검하기도 했다. 동편제 판소리 창시자 가왕 송흥록은 경상도와 함경도까지 생의 흔적이 많은 명창이다. 그가 한양의 고관들과 인연을 많이 가지게 되었던 첫 번째 사연은 왕실 공상청의 부름으로 조선팔도 고을들의 진상품에 대한 실상을 제공해 주는 일을 하면서부터였다. 송흥록 명창은 조선최고의 명창이 되면서 활동영역이 조선팔도로 커졌다. 그러한 연유로 수많은 고을들의 사정을 잘 알 수 있었던 것이 그 일과의 인연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에 참여했던 또 다른 집단은 보부상들이었다. 전라도 보부상은 전라도 진상품을, 경상도 보부상은 경상도 진상품을 그러한 방법으로 조선팔도 고을들의 진상품은 백성들의 사정과 수령들의 백성 섬김 자세를 확인해 내는 도구이기도 했다. 진상품의 속살은 존재로 선행인 고을백성들의 형편을 제대로 살펴보고 고을 수령들의 봉임 자세를 묵시적으로 감시해내는 문화적 통치술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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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29 20:44

소셜 벤처를 육성하자

한동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독서기반의 커뮤니티 서비스로 사업하는 트래바리는 소프트뱅크 벤쳐스로부터 5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책을 읽지 않는 세상의 흐름을 역발상하여 국내 최초로 독서모임을 사업화하여 4600여명의 회원과 함께 압구정, 안국, 성수 아지트에서 약 300개의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사업을 꾸려가고 있다. 제주토박이이면서 도시재생스타트업 기업 다자요의 대표인 남성준씨는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하여 2억원을 모은 후 오래된 제주의 빈집 살리기 프로젝트로 서귀포시의 도순돌담집 1, 2호점을 독채 숙박시설로 운영 중이며, 2020년까지 공간 브랜딩과 체인점 영업으로 빈집 100 채를 공유하겠다는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을 소셜 벤쳐라고 부른다, 보통 소셜 벤처는 개인사업자, 기업,?비정부기구,?지역사회단체 등 다양한 조직을 기반으로, 외부 파트너를 모아 재정적 지원을 받거나, 제품 또는 서비스 판매로 사회적 사업의 비용을 조달하거나, 사업으로 이익을 창출하지만 사회적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그 이익을 재투자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소셜 벤처와 일반 벤처기업의 차이점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소셜 벤처는 빈곤, 불평등, 환경파괴, 교육격차 등 사회 문제 중에서 시장 경제나 정부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부분을 시민의 힘과 창의적 아이디어로 풀어나간다. 소셜 벤처 기업가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하며, 특히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매우 힘든 과정 중 하나이다. 한국의 대표적 소셜벤쳐 기업인 마리몬드는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한 분 한 분의 인생을 모티브로 한 꽃할머니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디자인제품, 콘텐츠, 커뮤니티를 통해 그 분들의 존귀함을 이야기한다. 사회적기업 컴윈은 전기, 전자폐기물의 재활용으로 환경을 지킴과 동시에 희귀 자원을 재활용하여 컴퓨터 제작사업까지도 하고 있다. 또한 국제적인 기업인 트리플래닛은 2010년 스마트폰 나무 심기 게임 사업으로 시작하여 크라우드 펀딩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심은 나무에서 지속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크라우드 파밍 사업과 숲 속 휴양문화 콘텐츠 개발 사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테라사이클은 국제적인 환경 스타트업 기업으로 재활용이 불가능한 제품을 재활용하고 자원순환 문화를 전 세계적으로 선도하고 있으며, 현재 21개국에 진출하여 제로웨이스트 박스를 이용하여, 담배꽁초, 과자 봉자 등을 재활용하고 있다. 소셜 벤처는 혁신적 비즈니스모델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며 사회혁신에 기여하고 있다. 서울 성수동에는 많은 소셜 벤쳐들이 모여 있고, 서울시에서는 2022년까지 5000억원 수준의 펀드를 조성하여 소셜 벤쳐 밸리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전라북도에도 올해부터 3년간 사업으로 사회적경제 혁신타운이 군산의 폐교 부지에 설립되고, 전문인력양성과 사회적기업 육성을 추진한다고 한다. 전북은 오래 전부터 혁신센터의 설립과 운영에 대해 많은 논의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전문교육, 팹랩 기반의 기술 혁신, 사회적경제에 적합한 금융지원, 사회적경제 전문연구 및 리빙랩을 통한 사회혁신연구 등의 기능 수행할 수 있는 혁신타운으로 조성되기를 바라며, 많은 활동가들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이 모여들어 전북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 /한동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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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22 18:47

꽃 등 걸기

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긴 겨울 속에서 우리는 따뜻한 봄을 기다려 왔습니다. 여느 해처럼 복수초, 변산바람꽃, 노루귀, 영춘화 등 봄의 전령사가 꽃을 피웠습니다. 그런데도 왠지 올봄은 봄 같지가 않습니다. 그건 아마도 계속된 미세먼지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이 온통 꽃밭으로 변하여도 누구든 집 밖으로 나오길 꺼리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하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불안한 듯 눈망울을 껌뻑거리며 걷고 있는 풍경이 일상화된 요즈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풍경이 있습니다. 앞에 누가 오든 말든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며 걷고 있습니다. 마침내 인공지능 시대가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십년 후를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물질문명으로 계속 이어가다 보면 백년 후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요즘 현대인들의 내면에 자욱한 미세먼지입니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공고히 유지되면서 일어나게 된 현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갈수록 핍진해가는 우리 영혼을 정화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새삼 미개했던 옛 세상이 그리워집니다. 하늘을 향하여 신비로 가득한 대자연을 찬양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그렇게 간절히 살아왔던 상고시대 말입니다. 조선 중기시대 승려인 서산대사(1520~1604)는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이리저리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라는 선시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국의 사찰 승려들을 독려, 승병을 일으켜 평양성을 탈환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또한 독립 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도 시국이 어지럽고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할 때마다 서산대사의 답설야(踏雪野)를 되새기면서 실행에 옮겼다고 합니다. 무릇 인간관계란 서로가 서로의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겸손한 마음으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며, 올바른 길로 가고자 합니다. 나도 누군가의 꽃길로 가는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면서-. 그들은 한결같이//좋은 곳을 찾아 떠나는/다리를 갖지 않았습니다//밉거나 예쁘다를 말할 줄 아는/입을 갖지 않았습니다//아름답다거나 추하다를 분별하는/눈을 갖지 않았습니다//주변이 소란스럽다거나 적적함 따위를/멀리하는 귀를 갖지 않았습니다//구릿하다거나 향기롭다는 물론/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향마저도 거부하는/코도 갖지 않았습니다//누구에게도 곁으로 와 달라거나 멀리하라는/수화마저 보낼 수 있는/손도 갖지 않았습니다//오직, /바람과 눈과 비와 구름과 해와 달과 별을 삭이며/생각마저도 버리는 선정(禪定)이/눈을 가진 모든 이들의 얼굴과 얼굴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없음에서 있음을 이루고/어둠에서 밝음을 여는/정령(精靈)의 화신(花神)이기 때문입니다. -「꽃이 되는 이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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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15 20:12

박물관장의 다섯 가지 기도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저는 매일 아침에 다섯 가지 기도를 합니다. 박물관에 근무하기 전에는 일신의 안녕과 개인의 영달을 위해기도했고, 박물관장이 되고 난 후에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기도하다가 최근에는 여기에 세 가지가 더해졌습니다.인류의 공존과 공영을 위해, 인종, 동물, 식물 등 자연생태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 우주질서의 안녕을 위해 매일 기도합니다 라고 하면 대부분 듣는 분은 피식 웃으시고 맙니다. 그런데 저의 기도가 마치 농이 섞인 말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희망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기도까지는 누구나 인정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 이후의 기도부터는 좀 의아해 할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초록별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선 인류가 타문화에 대해 다양성과 상대성을 인정하고, 공존과 공영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기도입니다. 그동안 저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인류공통의 문화요소인, 샤만, 혼례, 청바지, 소금, 장난감과 인형 등을 조사하여 전시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다루기엔 조금은 생소했던 주제 청바지는 19세기 중반 미국 서부광산 노동자의 작업복으로 탄생해 어떻게 세계인의 일상복이 되었는지를 조사하고 전시하여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웃을 잘못 만나면 이사가 가면 그나마 해결될 수 있지만 이웃나라를 잘못 만나면 나라를 옮길 수도 없고 아주 난처한 일입니다. 박물관을 통해 우리와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민족과 나라들을 이해하고 공존하고 공영할 수 있는 안목과 마음을 키워야 합니다. 세 번재 기도를 답하는 타문화, 인류학박물관은 전라북도에는 없습니다만 앞으로 국립전주박물관이 그 역할을 하겠습니다. 네 번째 인종, 식물, 동물 등 자연생태계의 균형을 위한 기도는 정말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인간들은 심심하면, 동물을 빗대어 욕지거리를 합니다. 그런데 동물세계에서 가장 나쁜 욕은 인간같은 놈일 것입니다. 인종이야 말로 지구의 주인인양 자연을 훼손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면서 지구 멸망을 앞당기고 있습니다. 인종 이외에 지구의 주인은 많습니다. 식물계, 동물계도 어엿한 지구의 주인들입니다. 2017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쓰레기전시를 통해 인간 문화에서 버린 모든 것이 얼마나 인류의 환경과 미래를 위협하는 지를 가늠해 보았습니다. 진시황도 결국 못찾았던 불로장생의 영약은 오늘날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스치로폼 물질로 나타났고, 18만년을 산 삼천갑자동박삭보다 더 오래 사는 유리?플락스틱?비닐 등 신 십장생이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물질입니다. 자연생태계의 획복과 균형을 위한 네 번째 저의 기도는 식물원, 동물원, 생태원, 자연사박물관에서 답하리라 믿습니다. 다섯 번째 우주질서의 안녕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명제입니다. 해가 뜨고 지고, 달이 뜨고 지고, 계절이 바뀌고,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은 반짝입니다. 이 모두가 어우러지는 하나의 질서와 조화 속에서 우주가 운행됩니다. 만에 하나 어느 하나라도 질서에서 벗어나면 대재앙이 지구에 닥칩니다. 얼마전 진주 인근에서 떨어진 운석도 어찌 보면 작은 우주질서의 반란입니다. 언론에서는 운석의 경제적 가치만 야단치레 따졌지,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중요한 과학적 증거라는 사실은 대부분 외면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주질서의 안녕에 대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기도는 우주항공박물관, 천문대 등에서 답을 구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에 놀러 오십시오. 박물관 존재의 필요성에 대한 철학적 바탕을 느끼게 될 이 다섯 기도의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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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08 20:46

고향의 씨앗 마을 이야기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사람은 누구나 고향이 있다. 도시나 농, 산촌 아니면 바닷가 그 어디에서든지 태어남과 자람이 있고 그 터전에 고향을 둔다. 고향의 속살은 그러한 터전에 이웃사촌하며 공동체의 삶을 들인 마을살이에 들어 있다. 마을은 사람살이의 현실적인 유토피아 공동체이다. 이웃사촌의 모둠이 모여 가장 생태적이고 인문사회적인 환경을 진화의 에너지로 삼으며 수 백 년을 이어오고 있으니 그렇다. 나는 지리산 농촌들의 마을들을 수십 년 동안 조사해왔다. 마을 속에 들어 있던 음식과 씨족이며 풍수와 생활문화 같은 것이 그것들이었다. 그 이야기 중 마을의 탄생 신화를 꺼내보고자 한다. 지리산의 마을들은 대부분 자연의 일부에 들어있고 마을 탄생의 이야기는 구전에 있다. 조선시대 전란이나 사화 같은 사회적 불안을 피해 새로운 삶터를 구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지리산 산중을 찾아들었다. 여기저기 다니던 한 사람이 사람살기 좋을만한 곳에 머물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노숙을 하며 비가 오기를 기다렸다. 비가 개이자 주변 곳곳에 불을 피웠다. 저기압의 영향을 받아 연기가 여러 갈래로 구불구불 산 계곡을 타고 올라갔다. 훗날 그 연기 길은 마을의 골목이 되었다. 풍수의 바람 길을 사람살이의 터전에 두고자 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노숙하던 주변에서 가장 습한 곳을 찾아 땅을 팠다. 물이 고였고 조금 지나 개구리며 소금쟁이 같은 미물들이 찾아들었다. 살아있는 물이 확인되었으니 풍수의 우물을 사람살이의 터전에 둘 수 있게 되었다. 바람과 물길을 알아냈으니 이번에는 주변에서 가장 큰 나무를 찾아갔다. 뿌리며 가지의 방향과 상처 등을 살펴서 태풍이며 가뭄이며 자연재해의 정보를 그 나무에서 얻고 그 댓가로 제를 올리며 당산나무로 섬겼다. 이만한 곳이면 일가친척을 불러 마을을 이루어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내고 그 터전에 집을 짓고 살게 되었으니 마을은 그렇게 생겨났다. 조상에게 새로운 터전의 마을 정착을 알리는 일 또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집에서 가져온 씨 간장을 집안의 가장 좋은 자리에 모셔두고 조상이 계신 곳을 향해 두 손 모아 고했다. 그 일들이 모두 끝나면 돼지를 들여 사람살이의 터를 지신에게 고했고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까지 집안에 들이게 되었다. 마을은 그렇게 수풍청(水風廳)삼합을 보듬으며 그것을 자양분 삼아 제대로 된 사람으로 자란다는 선조들의 생각은 마을의 정체성이다. 마을은 대부분 씨족집단이었다. 그래서 마을의 가장 큰 어른인 종가는 마을 공동체의 뿌리인 규범적 존재였다. 종가는 마을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했다. 마을에서 가장 좋은 자리는 어디일까? 수풍청(水風聽)의 삼합이 일 년 내내 집안에 존재하는 곳이었다. 우물과 바람과 자연의 소리가 가장 잘 들리는 곳이 종가의 집터가 되었다. 우물은 종가의 씨 간장 종자가 되었고, 흔들바람은 일 년 내내 새 기운을 불러 집터의 지기를 지켜내어 건강한 종손을 길러냈다. 그리고 사계절의 자연이 내는 소리 또한 사람을 소우주체로 단단하게 해주는 집안의 버팀목이 되게 했다. 사람들은 종가의 양택(陽宅)을 중심으로 집터를 골라 자리하며 마을을 이루었고 지금 우리는 그 후손들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대가로 풍성한 삶 속에 들었다하나 항상 갈구하는 자신의 정체성은 아직 미완의 행복이다. 물과 바람과 자연의 소리를 보듬은 고향에서 그 에너지를 들여 보자. 마을은 마음에 크게 두어야 할 삶의 이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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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01 20:28

청년들의 미래를 위한 청정의 전북을 기대하며

한동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스웨덴은 점점 더 나쁜 것들로 인해 뜨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학교 수업을 거부하고 스웨덴의 땅이 건강해지도록 노력하기를 촉구한다. 세계 최연소 노벨 평화상 후보인 스웨덴의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는 이러한 이유로 국회의사당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벌였다. 이 등교 거부 운동를 시작으로 지금은?#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ForFuture)이라는 해시태그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제는 호주, 영국, 벨기에, 미국 등 전 세계 270개 지역에서 10만 명 가까운 학생들이 등교 거부 운동에 함께 하였고, 지난 3월15일에는 전 세계 59개국, 524개 지역에서 전 세계적인 등교 거부 운동이 벌였다. 한국에서도 5대탄소발생국가라는 불명예에 기후악당 대한민국이란 피켓을 들고 온난화와 미세먼지 등 기상재난에 신속히 대응할 것을 호소했다. 툰베리는 기후변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우리 실존을 위협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중요한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지도 않았고 정치인들은 토론회에서 스웨덴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 정책의 본보기인 것처럼 말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스웨덴은 기후 변화에 모범적으로 대응해 온 국가 중 하나이고, 2045년까지 탄소 중립국을 목표로 하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기후관련 법안을 제정하기도 했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매년 1인당 11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기에 스웨덴의 정책은 충분치 않다고 툰베리는 생각했다. 2019년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툰베리는?세계 각국의 정상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우리들의 집에 불이 났어요. 불이 났다고 말하려고 여기 왔습니다. 다른 모든 곳들처럼 이곳 다보스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돈에 대해서만 얘기합니다. 돈과 성장이 우리의 주요한 관심사인 것 같습니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케이트 레이워스(Kate Raworth)는 도넛 경제학이란 책에서 21세기 인류가 맞닥뜨린 생태, 사회 문제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하고, 더 나아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장 중독에 빠진 주류 경제학에서 벗어나 지구 차원에서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공평하게 살 수 있는 방향으로 경제학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세계 개발 정책, 정부 정책, 기업 전략의 가이드로 자리 잡았다. 2015년 UN의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SDGs) 협상 과정에서도 경제 성장을 매우 함축적으로 묘사한 도넛이 번영을 위해 지켜야 할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세계가 내걸어야 할 여러 목표의 큰 그림을 상기시키는 기준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도 다시 선거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또 다시 미래보다는 표만을 생각한 무분별한 성장과 개발 공약만이 난무할 것으로 생각된다. 툰베리와 같은 청년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어른들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위해 우리 문명은 희생되고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어른들이 만든 정치 체제는 모두 경쟁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경쟁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우리는 협력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지구의 자원을 공평하게 공유해야 합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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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25 20:18

제주도에 뜬 무지개

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제주도에 무지개가 떴다. 제주도에 뜬 무지개가 왜 전북 사람인 나에게 부럽고 반가운 걸까. 우리 전라북도에도 하루속히 떠오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멀리 제주도에 뜬 무지개는 문학관 건립이다. 인구 70만 명밖에 안 되는 제주도에 연 면적 2,500㎡에 지상 4층의 규모란다. 거기에는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수장고, 세미나실, 북카페, 대강당, 창작 공간, 문인단체 사무실 등이 들어선다고 한다. 제주도민 70만 명에 비하면 전북도민은 180만 명이나 된다. 제주도보다 더 크고 다양성 있는 문학관이 건립되어야 함에도 전북문학관의 실태는 너무도 낙후되어 있고 초라하다. 전북문학관은 본래부터 문학관용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다. 1980년대에 전두환 대통령 영빈관, 도지사 관사 등으로 사용했던 것을 리모델링하여 쓰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단층 건물인데다 비좁고 오밀조밀하다. 현재 전북에는 몇 개의 문학관이 있다. 그중 전북문학관은 전라북도를 대표할 수 있는 문학관이다. 그럼에도 전북문학관이 가장 낙후한 상태로 남아 있어서야 되겠는가. 전북문학관은 예향 전북 도민들의 자존심이다. 문화의 고장이라 자칭하고 있는 전라북도문학관이 지금처럼 초라하게 서 있다면 우리 고장 전북의 위상과도 관련이 아니 된다 할 수 없다. 전북문학관의 신축이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전북문학관이 제대로 세워지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먼저 위치다. 문학인은 물론이요 일반 도민들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곳에 세워져야 한다. 전국 어디에서나 접근성이 용이하도록 위치를 선정해야 한다. 지금의 문학관 자리에 개축하는 것보다 장소 선정을 심사숙고하여 누구나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에 문학관 고유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신축해야 한다. 다음은 건물의 용도다. 현재 옛 도지사 관사를 문학관으로 개조하여 쓰고 있어서 너무 동떨어진 시설이다. 이제는 미래 지향적인 최첨단 시설의 철저한 설계를 갖춰야 한다. 그리고 도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다. 전북문학관 신축의 필요성은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에 젖어 있어서는 안 된다. 전북도민들의 능동적인 참여와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실천의지가 있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제주도의 경우 제주문학관 건립을 위하여 노력하던 중 2016년에 문학관 건립에 대한 국고 지원이 가능해지게 되자 바로 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켜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한다.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온다. 기다리는 사람만이 기회를 잡는다. 앞으로는 문화 사업이 먹고 사는 업종의 주요 분야가 된다고 한다. 직업 중에 많은 직업이 성쇠해도 사람들의 마음을 풍족하게 해주는 문화 분야의 직업이야말로 오히려 더 융성할 거라 한다. 특히 마음을 다스리고 살찌우는 데 문학이 큰 역할을 하고 있어 그 기대감이 크다. 이는 보이지 않는 정신이 보이는 형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전북은 일찍이 문화예술 분야에 눈을 떠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인들이 많다. 그분들에 대한 자취를 제대로 조명할 수 있는 전국적인 문학관이 들어서기를 바란다. 전북을 대표하는 새로운 문학관 건립에 모든 도민과 정치권과 사회단체들이 나서야 할 때이다. 예향의 고장 전북에 머지않아 전국적으로 소문난 전북문학관이 세워지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도 하루빨리 전북문학관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켜 제주도에 뜬 무지개가 전라북도에도 떠오르기를 고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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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18 20:18

박물관은 미래를 꿈꾸는 상상의 공간이다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박물관에 견학을 갔다가 공룡화석 밑에서 잠이 들어 다시 찾으러 갔던 아이가 바로 미국의 천재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였다고 합니다. 스필버그는 어린 시절 박물관에 드나들면서 무한한 탐구심과 상상력을 키웠다고 합니다. 박물관에서 키운 풍부하고 기발한 스필버그의 상상력은 현실을 뛰어넘어 미래를 내다보는 <쥬라기 공원>의 공룡으로, <인디아나존스>의 고고학 등으로 재현되어 영화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한 몸에 받던 공룡의 존재가, 신비한 피라미드 속의 유물과 상황이 영화 속에서 현실이 된 것입니다. 물론 엄청난 경제적 이익도 창출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오래된 물건과 고루한 생각을 박물관으로 보내라고 합니다. 박물관 큐레이터로 평생을 일해 온 저로서는 이 말에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박물관은 죽은 물건을 가져다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문화의 자궁이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면 박물관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박물관에 담겨 있는 선조들의 삶의 흔적을 통해 현재의 우리를 이해하고, 미래를 통찰하는 원천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물관 유물 속에는 자연, 역사, 생활, 문화, 경제, 과학도 있습니다. 조선의 풍속화가 신윤복이 그린 월하정인 그림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인문학에서만 연구되었는데, 천문학자 이태형 소장은 그림 속의 두 남녀가 만나고 있는 시각은 1798년 8월 21일 밤 11시 50분경으로 추론했습니다. 그 단서는 그림 속의 부분월식이 일어난 달 모양과 야삼경(夜三更)이라는 글 속에서 찾았습니다. 그림 속 달은 볼록한 부분이 위로 올라가 있는 독특한 모습으로 초승달도 그믐달도 아닌 개기월식이 일어난 달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이태형 소장은 달과 지구, 태양의 공전주기를 이용해 신윤복이 활동했던 시기인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약 100년 동안 일어난 월식을 우선 계산했습니다. 그 중 한양에서 관측할 수 있었던 월식은 신윤복이 26살이었던 1784년 8월 30일과 그로부터 9년 뒤인 1793년 8월 21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에는 당시 날씨가 1784년에는 비가 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월하정인이 그려진 날은 1793년 8월 21일이라는 것을알아낸 것입니다. 옛 그림과 천문학의 만남으로 얻은 답입니다. 어릴 때부터 박물관과 친해야 합니다. 박물관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보통 고고학자, 역사학자, 민속학자 등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박물관을 좋아하는 어린 관람객 속에서 스필버그처럼 천재적인 영화제작자, 세계적인 예술가, 창조적 디자인너, 인류를 책임질 과학자도 틀림없이 나올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박물관은 자연, 역사와 문화, 과학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공간입니다. 미래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어릴 때부터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게 많은 것을 경험하고 탐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물관이 바로 그 상상력의 주춧돌이 되는 곳입니다. 몇 천년 전의 조상들과 만날 수 있고, 지금도 흉내 낼 수 없는 찬란한 문화유산이 가득합니다. 마음껏 역사 속으로 유영하면 미래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역사와의 대화는 미래에 대한 상상입니다. 박물관은 과거가 아닙니다. 현재이고 미래입니다. 박물관에서 경험과 추억은 틀림없이 풍성한 미래를 꿈꾸게 만들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전시, 행사, 놀이 뿐만 아니라, 개인의 생일찬치, 유치원 졸업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통째로 돌려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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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11 20:35

속담 안에 든 전라도 사람들의 음식철학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전라도 음식을 먹고 엄지 척을 하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다. 전라도 음식은 누가 뭐라고 해도 맛이 자랑이기 때문이다. 전라도 음식은 좋은 식재료와 전통적인 손맛 그리고 숙성의 조상경험이 조합되어 밥상에 오른다. 전라도 음식의 맛을 내는 양념은 정성이다. 어느 지방의 음식인들 정성 없이 밥상에 오르겠는가마는 전라도 음식 속에는 맛의 유전자를 키워내는 인간 내면의 철학이 존재한다. 음식이 약이고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은 식재료의 착함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지리산의 구전자원을 조사하면서 할머니들의 공통된 생각을 들여 다 보았다. 음식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善)함을 들인 정성의 산물이라는 것이 그것이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면 이렇다. 우리들의 일상적인 음식 중에 청국장이 있다.콩 농사가 반찬의 절반이다라는 속담처럼 콩은 우리 식찬의 중요한 재료이다. 간장, 된장, 두부를 비롯하여 청국장에 이르기까지 콩이 주재료가 되는 음식은 오래되고 다양하다. 청국장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삶은 콩에 지푸라기를 꽂아서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씌워 놓으면 청국장이 된다. 이러한 청국장 제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하는 질문에 우리세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콩이라고 답한다. 그러면 조상들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선조들이 청국장 음식문화에 들인 정성의 실체는 이렇다. 청국장을 띄워주는 발효균은 지푸라기에 들어있고 그 발효균이 착해야 착한 청국장이 되어 그것의 음식이 착한 사람을 내고 마을 공동체가 이웃사촌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착한 청국장을 내는 방법은 착한 사람이 지은 농사의 볏짚을 집집마다의 청국장 발효에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조상들의 농촌에서는 연말이면 마을 총회 때 가장 착한 사람 한명을 선정해서 선행상을 주기도 했다. 그 상을 받은 농부가 일 년 동안 지어놓은 쌀농사 볏짚 속에는 착한 발효균이 살고 있으니 그 지푸라기를 집집마다 가져다 청국장을 만들었다. 그러면 착한 청국장이 되고 그 음식으로 착한 사람을 키워낸다는 생각이 전라도 사람들의 생활음식 철학이었던 것이다. 전라도 사람들이 음식에 들인 착한 마음은 음식속담에 크고 많다. 특히나 간장은 모든 음식의 감초이고 그 정체성은 집안의 기둥이었다. 그래서 장독에 들인 정한수와 할머니들의 정성이 오랜 세월 동안 그 속에 들여져 온 것이다. 전쟁 피난길에도 집안의 간장씨앗은 가장 먼저 챙겨야 했던 피난 짐 일호였고, 집에 불이 나도 간장독만 잘 지켜내면 집안을 다시 일으키는데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실천해 냈던 전라도의 음식 문화는 풍류와 예술과 고을공동체의 에너지가 되어왔다. 조상은 제사 때 집 간장 냄새를 따라 온다 집안이 망해도 집 간장은 팔지 않는다 오일 장터에 집 간장을 팔러 오는 사람 없다 노름빚에 집 간장은 없다와 같은 속담에 전라도 사람들이 음식에 들인 정성의 크기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집성체는음식은 약이고 사람을 낸다는 심성의 본체다. 입맛만 잘 맞게 해내는 음식솜씨는 손맛에서 나오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음식솜씨는 자연의 이치를 헤아려 내는 눈맛에서 나온다. 그래서 집안의 음식에 눈맛과 손맛을 가지게 하려는 며느리 십년 시집살이는 전라도 음식문화의 총아다. 음식은 천리 손님도 부른다며 극찬을 받았다는 전라도 음식은 하루에 세 번 착해지는 선행의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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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04 20:26

세대 간의 장벽 게임문화

한동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기대감을 지니며 한주 한주를 보냈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란 드라마가 생각난다. 4차 산업혁명에서 이야기 하듯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혼재되면서, 마법과 과학, 현대와 중세, 그라나다와 서울 등 어우러질 수 없는 분리된 경험들이 한 공간에서 일어난다. 바로 포켓 몬스터로 우리를 환상에 이끌었던 증강현실(AR) 기술, 혼합현실(MR) 기술을 전 국민에서 보여준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에 대해 많은 비평가들은 게임의 현실성이 잘 들어나지 않았고, 스토리 역시 정교하지 않았다고 평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게임을 소재로 드라마를 제작했다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게임을 소재로 하다 보니 이 드라마에서는 많은 게임 용어들이 등장한다. NPC, 동맹, 아이템, 퀘스트, 인스턴트 던젼 등. 과연 이를 시청자들은 이해하였을까? 아니면 옆에 있는 얘들에게 물어보며 드라마를 즐겼을까? 이 드라마는 게임 플레이어인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시시한 설정이었을 것이고, 게임을 모르는 시청자들은 이해 불가능한 이상한 세상 이었다. 게임에 의한 세대 간의 장벽은 점점 높아지고 있고, 특히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개임이 자녀의 학업과 인생을 망치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이기 때문에 장벽이 더욱 공고화된다. 하지만 세대 융합과 소통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네플릭스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빛의 아버지라는 일본 드라마는 60세가 넘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실의에 차 있던 아버지에게 「파이널 판타지 XIV」를 소개하고 게임 세계 속에서 아들임을 숨기고, 게임 속 친구들과 함께 아버지를 도와주어 게임을 끝내게 하고, 현실세계에서도 병을 완치하고 아들과 어린 시절의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는 이야기 이다. 이 드라마는 원래 마이디라는 닉네임을 가진 게임을 좋아하는 청년이 연재하였던 블로그 일기였는데, 일본에서 300만이 접속하면서 인기를 끌어 2017년?마이니치와?TBS에서 드라마도 방영되었고, 한국에서도 공개되었다. 이 드라마는 특이하게 작품 속의 게임 플레이 장면(에오르제아 파트)을 원작자인 마이디와 그의 동료인 자유부대원들이 직접 게임을 플레이한 내용을 촬영한 영상이 사용된다. 세계 최초로 게임 속에서 캐릭터를 조작해 드라마 대본에 맞게 연기 하였고, 이 과정은 제작사의 촬영용 서버나 클라이언트 지원을 받지 않고 제작사에서 실제 게임에 가까운 영상 재현을 위해 직접 촬영하였다고 한다. 이런 드라마가 나오게 된 이유는 원작자가 원래부터 온라인 게임을 좋아했기 때문에 초보자를 도와주는 플레이를 자주 하였고, 이 게임에서도 원작자가 부대장인 자유부대 지오비네짜는 초보자 지원 부대로 활약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대원들은 초보자가 스스로 게임 공략법을 익히게 하거나, 자신도 도전적으로 싸우려고 저 레벨 장비로 스스로 규칙을 부여해서?파고들기?플레이를 한다고 한다. 이제 게임은 문화이다. 특히 50대 이전 세대에게는 주도적 문화이며, 소통 수단이기도 하다. 시니어 세대들은 4차산업혁명이 가져올 새로운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세대 간의 소통을 이루기 위해 좀 더 노력해야 한다. 또한 정부와 산업계에서는 시니어 세대들이 다양한 문화를 누리고 세대 융합을 이루도록 게임 기술적 발전과 산업의 확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세대 융합을 문화로 특히 게임으로 풀어본다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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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25 20:17

세상이 열리는 창

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우리는 한 생을 살아가면서 비단보자기에 썩어가는 생선을 쌀 것인가? 무명보자기에 향기나는 허브를 쌀 것인가? 인류가 살고 있는 푸른 별의 오대양 육대주가 수억만 년 전 보이지 않는 내부 핵의 열에너지에 의해 맨틀 지각 변동으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지상의 만물이 고요한 함묵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경이롭게 나타내고 있다. 인간의 행위도 보이지 않는 마음이 온갖 동작을 짓게 하고 그 움직임에 따라 얼굴과 몸 매무새가 변형되어 그를 보고 그 사람의 인품을 가늠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삼라만상의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기저(基底)를 궁구하고 인류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인 영혼의 정수를 조명하고자 한다. 이에 BC 6세기경에 활동한 중국 제자백가 가운데 하나인 도가의 창시자인 노자의 《老子道德經》에서 도(道)는 본질적이고 덕(德)은 그 작용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노자 사상의 근본은 도에 있다. 노자가 말하는 도는 유교(儒敎)의 도덕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제1장에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이라 했다. 노자가 생각하는 도는 천지가 있기 이전부터 있는 것으로 빈〔虛〕것이며 무(無)인 것이며 존재 아닌 존재이기 때문에 무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저 그것은 크고 영원한 것이다. 그러니 도라는 말은 실은 도의 이름이 아니다.라고 했다. 필자의 사견으로는, 그의 깨달음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지에 이르러 이미 현대 천문학의 성과인 우주 빅뱅의 경이로움을 훤히 꿰뚫고 있었으며, 후세에 무어라 전언할 말을 찾던 중 그것을 도(道)라 일컬었으리라 본다. 그러나 스스로가 너무나 어줍잖은 표현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되어, 마치 도공이 도자기를 한 가마 빚어 놓고 꺼내 보니 자기 맘에 충족치 못하여 하나도 남김없이 두들겨 깨버리듯 그를 비상도(非常道)라 부정해버린 것이라 생각된다. 그는 또 이름 없는 것은 천지의 처음이고, 이름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다. 이름 없는 것은 도를 가리킨 것이고, 이름 있는 것은 하늘과 땅을 일컫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천지가 아직 생기기 전에 이름 없는 시원(始元), 즉 도(道)가 먼저 존재하여 그 도에서 천지라는 유형(有形)한 것이 생기고, 이미 유형하기 때문에 하늘이니 땅이니 하는 이름이 있게 되었으며, 그 형체 있고 이름 있는 천지가 있은 뒤에 만물이 생성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물에 이름을 붙임과 동시에 그 사물의 순수성은 이미 때묻어버린 것이므로 비상명(非常名)이라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마치 우리가 어린 아이를 낳아 이름을 붙이지 않을 때의 순수 그 자체의 그대로인 것이다. 이처럼 노자의 학문과 영혼은 얼마나 백지처럼 희디흰 본질의 세계를 갈구하며 향유했는지를 알 수 있으며, 우주의 창조 과정을 도천지만물, 이렇게 단계적으로 설파했다. 이러한 사상은〈구약성서〉에 나오는 하느님의 창조론과 역경(易經)에서 태극(太極)이 양의(兩儀) - 천지(天地)를 낳았다고 한 학설 등과 비교하면 더욱더 흥미진진하리라 본다. 그래서 그는 상무(常無), 즉 영원한 무(無), 영원히 형용할 수도 감각할 수도 이름 지을 수도 없는 도에서 지극히 미묘한 작용을 보고자하고, 상유(常有) 즉 영원불멸의 존재인 천지에서 천지만물의 귀착을 보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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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18 19:48

국립전주박물관은 새해 100만명의 관람객을 기다린다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기품이 있는 청기와 건물, 잘 조성된 소나무대나무 숲, 널찍한 주차장, 주위의 맛집 등 국립전주박물관은 역사문화 공간으로서 자리메김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국립전주박물관은 이러한 좋은 주위환경을 못 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년이면 개관 30주년인 국립전주박물관은 권위적인 박물관, 어려운 박물관, 재미없는 박물관, 먹거리가 없는 박물관 등의 이미지로 굳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저의 목표는 국립전주박물관의 변화와 변신을 통해 1년간 국립전주박물관 관람객 100만명 시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국립전주박물관부터 변하겠습니다. 박물관은 끊임없이 시대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스스로 정체성을 재정립하며 변화를 선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요된 지식과 고착화된 전달방식이 아니라, 신나게 놀면서 배울 수 있는 박물관입니다. 이는 모든 박물관 관람객에게 우선되어야 할 중요한 화두이기도 합니다. 박물관은 놀면서, 쉬면서, 위로받을 수 있는 쉼의 공간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박물관은 그저 과거의 유물을 전시하는 곳에서 벗어나 변화와 변신이 요구되는 새로운 장으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국립전주박물관의 문턱을 낮추고 열겠습니다.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오감으로 체험하고 놀 수 있는, 재미있는, 쉬러오는, 맛있는 박물관으로 바꾸어 나가겠습니다. 박물관의 변신은 무죄입니다. 국립전주박물관을 통째로 관람객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국립전주박물관을 즐길 마음의 준비만 하고 놀러 오면 됩니다. 2019년 국립전주박물관은 다양한 전시, 교육, 행사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다가가겠습니다. 우선 몇 가지 맛뵈기로 자랑하겠습니다. 조선의 선비문화의 특성화 올해 국립전주박물관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선비는 실천하는 지식인입니다. 지역명칭에서 양반이란 이름을 붙이는 곳은 전주와 안동뿐입니다. 국립박물관 중에서 유일하게 전주에서만 조선의 선비문화를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역과 세대를 뛰어 넘어 학문과 정을 나누었던 퇴계와 고봉의 편지, 다산 선생이 아들에게 보내는 하피첩, 죽은 남편에게 보내는 원이엄마 편지 등을 전시하는 선비, 글을 넘어 마음을 담다 특별전을 4월 중에 개최하겠습니다. 선비화가 이정직, 완주의 역사와 문화 특별전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선비아카데미, 선비어린이박물관도 올해 새롭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소나무 밭에는 작년에 이어 해먹을 설치하고, 한여름에 물총대전, 가을의 짚풀 놀이터를 개설하여 재밌게 즐기고 쉬는 박물관을 만들겠습니다. 무엇보다 맛있는 박물관을 위해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푸드트럭을 운영하고, 강당교육관영화관회의실야외전시장 등 박물관의 모든 시설과 공간을 공개하겠습니다. 누구나 박물관에서 동창회도 하고 계모임도 하고, 작은 결혼식도 올릴 수 있도록 박물관을 통째로 돌려 드리겠습니다. 예전에는 전주가 전국 5대 도시였는데, 지금은 많이 낙후되었다는 푸념을 하시는 소리를 가끔식 듣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속 박물관 중에서 관람객이 100만이 넘는 곳은 서울과 경주 정도이다. 만약 국립전주박물관의 관람객이 100만이 된다면 전국 제3의 박물관 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꿈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전북도민과 전주시민들은 꼭 한번 이상 국립전주박물관을 방문해 주셔야 합니다. 전북과 전주의 품격과 자존심을 위해 국립전주박물관으로 자주 놀러 오십시오. 국립전주박물관은 만반에 준비를 하고 기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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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11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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