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의 숲을 만들자
김호석 수묵화가전 전통문화대 교수 제사 때 쓰이는 신위는 반드시 밤나무로 제작된다. 제기는 노각나무가 사용된다. 노각나무의 주산지는 지리산이다. 무분별한 벌채로 노각나무가 없어지자, 노각나무는 거제수 나무로, 그리고 물오리나무로 대체되었다. 1967년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벌목을 할 수 없게 되자, 은행나무가 제기의 주된 재료로 떠올랐다.
먹감은 곶감과 식초를 만드는데 최적이다. 이 나무의 중심 부위에는 탄닌이 산소와 결합하면서 생성시킨 검은 색 무늬가 있다. 조선 목가구의 단순하면서 쾌활한 멋은 이런 재료 선택에서 나온다. 지금도 임실과 고산의 먹감나무는 한국을 대표하는 진귀한 자원임이 분명하다. 전통 악기 특히 거문고에 사용되는 중요한 재료는 오동나무이다. 한국산 오동나무는 가볍고 탄성이 커 진동을 잘 전달한다. 울림이 풍부하고 음향 교환률이 높다. 나이테가 조밀하여 연륜 폭이 좁고 균일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무가 소리를 만들었다. 현실은 타이완산 오동나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중국산 오동나무로 만든 악기는 공명이 적다. 우리는 옛 악기의 소리를 잃어버리고 있다.
옻나무는 가장 검은 색을 구현한다. 칠흑 같은 밤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옻은 따뜻하고 부패를 방지한다. 전국 어느 곳이든 잘 자란다. 옻은 한국 특유의 색상으로 깊고 공간이 숨 쉬는 특유의 서사가 숨어 있다. 대부분의 목조 문화재는 옻칠과 관련돼 있다. 도료로서 옻은 즙을 채취하여 생칠로 사용한다. 옻의 생즙 채취는 원주가 유일하다. 품질이 뛰어난 옻은 일본으로 수출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쓰이는 옻은 대부분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 옻을 외면하는 사이에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은 옻칠로서 세계 공예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충북 옥천군이 옻나무 생산 단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신선하다. 전북은 칠보, 쌍치, 복흥, 장수, 진안 등 곳곳에 옻나무 자생지가 널려 있다. 찬란하고 섬려한 문화유산이 후손들의 무지로 시대의 주목을 받지 못함은 부끄러운 일이다.
나무만 그런가. 고려조선시대 섬려한 문화를 창출했던 쪽 풀이 사라졌다. 지금 쪽 염색에 사용되고 있는 식물은 일본산이다. 1980년대 토착화 된 조선쪽이 사라진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예용해 선생이 일본으로부터 쪽 씨를 국내로 들여 온 이래 현재에 이르렀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염장은 일본산 쪽 풀로 염색하며 한국의 색을 자랑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문화재의 재료가 되는 나무와 풀은 위에서 거론한 실례를 훨씬 뛰어 넘는다. 소나무, 돌배나무, 느티나무, 솔송나무, 물푸레나무, 대나무, 신이대, 시누대, 참죽나무, 황칠나무, 닥나무, 꾸지나무, 애기닥나무, 산뽕나무, 황벽나무, 모시풀, 삼. 목화 등은 중요한 문화적 근거가 된 일차 재료다. 이런 재료들이 한반도에 어떻게 분포하는지, 경제적 수령이 된 나무가 얼마나 되는지, 실태 조사한 보고서를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고건축에 사용되는 소나무에 대한 실례는 있다. 2008년 숭례문 화재 사건이 나면서 삼척의 준경묘에 있는 것을 사용한 것이 처음이다. 그러나 이 소나무 숲마저 문화재의 숲으로 지정된 것은 아니다. 산림청에서 지정한 문화재의 재료는 없다. 이것이 후손들이 계승하고 발전시켰다는 이 땅 임산자원의 현주소다.
지금부터라도 최소 100년을 내다보고 문화재의 재료가 되는 다양한 수종의 숲을 조성해야 한다. 문화재 별로 복원에 필요한 정확한 재료와 최적의 숲 조성을 위한 로드맵을 만들자.
전북은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임실의 먹감나무와 순창의 돌배나무, 닥나무. 부안의 소나무, 꾸지나무. 위봉산의 거제수나무. 대아의 애기 닥나무. 고창의 동백나무 등은 이미 최적의 자생지로서 의미를 지닌다. 전라북도는 산림을 자원화 할 수 있는 산림환경 연구소가 있다. 지금 부터라도 전국 최초로 문화재의 재료가 되는 나무를 모두 조사하여 전북 자체만이라도 산림문화를 선점해 나가야 한다. 눈 밝은 단체장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