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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시네마, ‘지시적’ 영화 보기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영화 어떻게 봐야 해요? 많이 받는 질문이다. 한 유명 감독은 그냥 보세요라고 말한다. 중국집 가서 짜장면 먹을 때 주방장 불러놓고 무엇을 넣었고 맛의 비결은 무엇인지 묻느냐며. 다양한 관점을 강조한 말인 줄 알지만, 힐링시네마 생각은 조금 다르다. 레시피는 물론 맛의 깊이를 알아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힐링의 숲으로 안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시적, 연상적, 정화적 접근법이 있다고 전술한 바 있으며 먼저 지시적 접근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지시적 접근(The Prescriptive Way)은 영화를 교육적지시적 목적으로 보고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영화를 정보제공의 원천으로 여기며 교훈이나 모델링을 위한 도구로 가정한다. 치유요인을 세 가지로 소개한다. 첫째 객관화이다. 주관적인 시각을 제삼자적 관점으로 돌려 자기를 돌아보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경험과 생각을 보며 대리로 세상을 알게 하는 심리적 거리 두기 기법이다. 세상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말하는 중학생들에게 영화 <안티고네>를 보여 줬다. 안티고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베 왕 오이디푸스의 딸이다. 전쟁터에서 죽은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체에 모래를 뿌려 장례 의식을 행하였다가 처형당했다. 안티고네는 캐나다 정착을 위해 몸부림치는 한 이민 가정의 여학생 이름이다. 어느 날 큰 오빠가 총에 맞아 절명하고, 작은 오빠가 감옥에 갇힌다. 안티고네는 약자를 마구 대하는 불합리한 사회제도와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 둘째 생각과 행동의 명료화이다. 생각과 감정을 보다 잘 이해하도록 돕고 이를 언어화명료화하는 것이다. 처한 상황에 대하여 더 나은 관점을 개발하도록 해준다. 기발하기도 하고 합리적이기도 한 등장인물을 보며 이를 기준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도록 도와준다. 우리 영화 <더 킹>에는 건달 아버지를 둔 말썽꾸러기 고등학생 태수가 나온다. 어느 날 아버지가 검사에게 혼쭐이 나는 것을 보면서 자기도 검사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지독한 노력 끝에 서울대를 나와 검사가 된다. 정치 검사들의 번지르르한 모습에 매료되어 그 길을 따라 걷다가 검찰에서 쫓겨난다. 셋째 모델링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이 자신과 비슷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여 주고, 다양한 문제 해결책을 제시한다. 캐릭터의 문제 해결방식을 그대로 모사하거나 자신의 문제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좋은 모델과 나쁜 모델의 변별력을 갖는 게 중요하다. 태국영화 <배드 지니어스>는 시차를 이용하여 SAT(미국 대학입시 자격시험) 국제 커닝을 하는 천재 학생의 심리와 이를 둘러싼 주변 인물의 반응을 다룬다. 주인공 린은 포스터에 대고 나쁘지만 다 하고 싶잖아!라고 쓰고 있다. 중학교 또래 상담에서 나쁘지만 다 하고 싶은 것을 물어보니 게임이라는 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 개인의 생각을 물었는데 사회적 인식을 말하고 있다. 프랑스 영화 <까밀 리와인드>에 나인홀드 니부어의 기도문이 등장한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평정. 그리고 그 차이를 아는 현명함. 주인공 까밀은 삶을 원하는 지점으로 리와인드(되감기) 해줘도 예전처럼 산다. 지시적 접근은 길잡이가 필요하다.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경계, 영화에서 찾아보자.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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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30 16:32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

송준호 우석대 교수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가진 것을 알아서 주거나 뺏어간 적 없는데도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누군가 얼마나 못마땅한 짓을 일삼으면 그런 소리를 다 할까. 그 반대말은 받는 것 없이 예쁜 사람이겠다. 물론 그보다 훨씬 마음에 차는 건 내가 가진 것을 얼마든지 내주어도 예쁜 사람일 것이다. 동료교수가 부친상을 당해서 고창에 갔다가 후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전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후의 한적한 국도를 달리는데 이른 가을비가 참 예쁘게 내리고 있었다. 이런 날 저녁에는 파전에 막걸리가 딱인데, 아니 그렇습니까? 후배는 그렇게 말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 말뜻을 모르지 않았지만 가족모임이 잡혀 있어서 나로서는 그와 함께할 수가 없는 게 좀 아쉽고 미안했다. 괜찮아요. 제가 아는 술꾼들 중에 어느 한 친구한테는 틀림없이 연락이 올 거예요. 아니면 뭐, 빗소리 안주 삼아 혼술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죠? 이런 날 술 마시자고 연락하는 놈 하나 없다고, 가끔 투덜거리곤 했던 게 떠올라서 나는 빙긋 웃고 말았는데, 바로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블루투스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후배가 전화로 나누는 이야기를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후배의 친구 하나가 거의 1년 만에 전주를 다니러 왔다. 그 친구는 후배에게 이따가 저녁에 만나서 소주나 한잔 하자고 말했다. 그런데 후배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다. 아이고, 하필이면 이 노릇을 어쩌냐? 사실은 우리 학과 선배 교수님 한 분이 부친상을 당하시는 바람에 문상을 하려고 지금 부산으로 내려가는 중이거든. 밤늦게나 내일 새벽에 돌아올 것 같아서 말야. 자네가 모처럼 와서 연락을 주었는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나로서는 그 말이 좀 의아스럽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통화를 서둘러 끝낸 후배는 그런 내 속내를 눈치채고는 씁쓰레한 미소부터 내비쳤다. 제 고등학교 동창이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를 만나면 한마디로 피곤하고 짜증이 나서요. 듣는 사람 생각은 않고 지 자랑만 실컷 늘어놓기 일쑤거든요. 주식 투자를 해서 얼마를 벌었다느니, 상가 건물 세입자들이 월세를 제때 안 내서 골치가 아프다느니 하는 식이죠. 하긴 그 정도까지는 친구 사이에 못 들어줄 것도 없죠. 그런데 이 친구가 좀 취했다 하면 주위 사람들하고 시비 붙는 게 일이라서.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은 애초부터 세상에 없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연락을 준 친구라 해도 그와 술 한잔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간절히 보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런 마음이 별로 안 드는 사람도 있는 것이었다.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문자라도 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먼저 연락해 온 안부 문자조차 씹어버리고 싶은 사람도 있는 것이었다. 전화 연락을 준 친구한테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낸 후배에게도 어쩌다 연락을 받으면 웬만한 약속은 뒤로 미뤄서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왜 없겠는가. 문상을 마치고 돌아온 그날 나는 숙제 하나를 얻은 기분이었다. 나를 알고 있는 적지 않은 이들에게 나는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세상 그 어떤 일도 다 저 할 탓이라고 했던 어른들의 말이 떠올랐다. 미운 사람이든 예쁜 사람이든 그들의 생각을 결정하는 건 나 자신일 게 분명했던 것이다. /송준호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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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23 16:36

8·15, 독립인가 해방인가 광복인가?

김병기(전북대 명예교수) 지난 15일은 제76주년 광복절이었다. 그런데 혹자는 독립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해방이라고 했다. 광복이라고 하는 사람은 오히려 많지 않았고 해방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았다. 8월 15일, 같은 날에 대해 이렇게 독립, 해방, 광복이라는 말을 다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결코 아니다. 독립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유사 이래 우리의 모든 역사가 예속의 역사가 되고 만다. 그래서 노태우 정부 때 천안에 독립기념관을 지을 때에도 큰 논란이 있었다. 우리의 국권을 우리 스스로 행사하기 위해 싸운 선열들을 독립투사라고 부르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8월 15일을 독립기념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본래부터 독립국이었기 때문이다. 본래 독립국인 우리의 주권을 일제가 강탈했으므로 독립투사들은 그것을 되찾기 위해 피 흘려 싸워 마침내 주권을 회복했다. 이 회복을 마치 우리의 역사상 처음으로 독립을 얻은 것으로 표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중문대사전》은 한국의 한에 대해 1897년에 중국으로부터 독립하여 국호를 한국이라고 고쳤다. 일본에 병탄되었다가 2차 세계대전 후에 독립하였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우리 역사 전체를 중국의 속국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우리 스스로 독립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유사 이래 처음으로 독립을 맞은 민족을 자처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해방(解放)이라는 말은 더더욱 사용해서는 안 된다. 풀어줄 해와 놓을 방을 쓰는 해방은 타동사이므로 링컨이 노예를 해방하다처럼 목적어를 갖는데 바로 우리가 목적어가 되어 일본이나 미국으로부터 풀어 놓아 줌의 은혜를 받은 꼴이 되고 만다. 독립투사들의 노력도 허사가 되고 김구 선생의 임시정부도 의미를 잃는다. 게다가 미군은 남한에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으로 들어와 3년 동안 미국 군정을 실시했다. 북한이 소련의 군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내걸고 김일성이 실권을 행사한 것과 많이 다르다. 중국이 사용하는 해방은 중국 공산당이 봉건지주의 착취로부터 인민을 해방했다는 의미이다. 8월 15일은 광복절이고 우리는 당연히 광복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 빛 광과 회복할 복을 쓰는 광복(光復)은 빛을 회복함이라는 뜻이다. 한 국가가 일시적으로 나쁜 일을 당하여 체면을 손상당하고 실색했다가 사태가 호전되어 실색했던 빛을 회복함으로써 본래의 제 빛을 찾는 것이 광복이다. 중국 진(晉)나라의 장수 환온(桓溫)이 올린 상소를 보고 황제가 옛 수도를 광복하고자 하는 뜻을 알겠다.라고 답한 데에서 광복이라는 말이 처음 쓰였다. 우리는 1945년 8월 15일에 처음 독립한 것도 아니고, 일제나 미국이 해방을 해준 것은 더욱 아니다. 우리 스스로 노력하여 국권을 되찾아 나라의 빛을 회복하는 광복을 하였다. 광복을 위해 임시정부는 광복군을 조직하여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였다.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그런 법통을 이었기 때문에 광복절이라는 이름으로 국경일을 제정하였다. 더 이상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왜곡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는 독립이나 해방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고 역사적 사실 그대로를 반영하고 우리의 정당한 투쟁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우리의 국격을 세울 수 있는 용어인 광복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 /김병기(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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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16 16:55

심리적 거리 좁히기

송희 전 전북시인협회장 삶은 관계이다. 소속, 누구의 부모, 직업 등, 여타 관계를 떠나 이름만으로 나를 설명하기 어렵다. 코로나로 인해 밀착해 있던 일, 사람, 상황 등 물리적 관계마저 제 대로 할 수 없는 시대에 돌입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대적 고통을 겪으며 성장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소통이 끊긴 것으로 보이나, 내면적 성장을 가져올 좋은 기회이다. 몇 년 전부터 음주가무 문화가 줄고 삼삼오오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커피숍 문화로 변했다. 마음을 터놓고 담소를 나누는 것이 얼마 만인가, 조짐이 따뜻하다. 정서적 갈증을 분출하는 풍경이다. 본격적으로 삶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변한 것은 우리에게 그런 세상이 필요해서 온 것이라 본다. 각종 미디어가 세계의 많은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공유해준다. 각자의 능력, 존재감을 온라인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유명세, 근거 상관없이 확인된 바 없는 정보도 받아들인다. 모든 것을 드러내어 가며 개인이 특별해지는 시대로 변했다. 개의식의 공간에서 공동의식의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공동선을 지향하는 세계적 협업의 시대로 진입했다. 우리가 지향하는 온전한 시대가 오는 조짐으로 보면 어떨까?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인도의 신비가 이고 철학자 이며 세계의 교사로 알려진 krishnamurti (1895~1986)의 책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 부분을 인용한다. 혁명, 개혁, 법률과 이데올로기에 의한 종교조차도 인간의 본성을 바꾸는데 실패했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도 완전히 실패했다. 경쟁과 잔인성과 공포에 기초한 이 사회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가? 마음이 선해지고 새로워지고 천진天眞해져서 완전히 다른 세계를 이룩할 수 있을까? 인간으로서 세계의 어떤 곳에서 살게 되었고, 또 어떤 문화에 속하게 되었든지 간에 세계 전반의 상태에 대해 전적인 책임이 각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에만 그런 세계를 세울 수 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인지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귀한 일인가? 자식을 때려죽이고 창밖으로 던지는 사건도 뉴스일 뿐인, 이 세상은 수시로 침략과 치욕을 당한 우리 각자의 두려움과 공격성의 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전투적일 수밖에 없는 내 행동만큼, 세상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세상이 바뀐다는 것이다. 타인을 조종하고, 돈으로 명예를 사고파는 작금의 현실에서 상상도 안 된다. 이 시점에 가당키나 한가 싶지만 삼강오륜(三綱五倫)에서의 알맞은 관계가 절실해진다. 관계에서의 적당한 거리두기가 존중의 품새로 해석된다. 존중 속에는 관대와 자비가 포함되어 있다. 곧 사랑이다. 사랑이란 사람이나 사물을 몹시 귀하고 아끼는 마음이다. 심리학에서의 해석은 사랑이란 상대가 피어나도록 온전한 여유 공간을 넓혀주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전 세계가 바이러스 공포를 공동운명처럼 겪으며 하나로 어우러지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실감이 나지 않지만 조심스럽게 단언한다. 에고가 줄고 집단지성, 인류의 지혜가 부상하는 중이라고. 원래 살았던 그 시대, 베풀고 나누기 좋아하는 서로 의존적인 시대로 돌아 갈 것이라고. 자신이 스스로에게 정직해지는 것으로부터 자유가 얻어진다. 내가 잘 사는 것은 자연과 주변의 덕이라는 감사가 회복될 때, 따뜻하고 안정된 세상이 당겨질 것이다. 그런 세상을 물려준다면 후손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 /송희 전 전북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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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09 16:22

힐링시네마, ‘자기 조력’을 위한 영화 보기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자기 조력(Self Help)이란 스스로 돕는 것을 말한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또 고난과 역경에 처했을 때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기 힘으로 해결하는 지혜이자 능력이다. 무엇이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존감, 자기효능감이 쑥쑥 올라가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나의 첫 기억은 중학교 1학년 때 자전거를 배운 일이다. 페달에 발도 닿지 않던 나는 하숙집 아저씨에게 자전거를 빌리고, 옆방 형에게 뒤를 잡아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삼중고를 겪어야 했다. 땀에 범벅이 된 채 꼬라박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훗날 형을 뒤에 세워놓고 시원하게 달릴 때의 쾌감을 잊을 수 없다. 성인이 되어 무엇인가 내 힘으로 해결하고 득의양양할 때면 어김없이 자전거의 추억이 떠오른다. 자기 조력의 방법은 각 분야에 다양하게 존재할 터지만, 힐링시네마에서는 긍정적 정서, 자기성찰, 인간관계, 인지적 틀, 삶에 대한 태도와 지혜에 초점을 맞춘다. 생애 주기별로 적용하고 노년층에 대해서는 삶에 대한 깊은 이해로 자아 통합을 이루도록 돕는다. 지식기술의 충전을 강조하는 평생학습, 자기조절 능력을 강조하는 자기 주도적 학습과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강박이 똑똑>이란 스페인 영화가 있다. 강박증에 노출된 여섯 사람(남, 여 각 3명)이 서로 힘을 합쳐 강박장애를 극복한다는 내용이다. 이들은 숫자, 세균, 반복, 선(線을 밟지 못하는), 건망증, 틱 등의 강박이 있다. 영화의 처방은 자기 개방과 스스로 해결하기이다. 중년 여성 열 명이 이 영화를 같이 보고 자기 조력에 대하여 나누고 있다. 시작할 때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불안과 걱정이다. 코로나, 남편, 아이, 경쟁 환경, 돈, 돈...... 건망증, 결벽증, 잡생각,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떨고, 반복적으로 숫자를 헤아리고, 버리지 못하는 습성 등. 망설임 없이 자기 개방을 하는 모습에서 집단과 영화의 힘을 느낀다. 그동안 자기와 세상에 대하여 이해하던 생각과 행동을 조금씩 바꿔보자는 쪽으로 목표를 정하고 계속하고 있다. 자기 조력을 위한 중고등학생 대상 추천 영화로 <극한직업>을 꼽고 싶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으면 찌질이들을 가리킨다. 임무 수행을 잘못하는 형사들을 보며 공부 앞에서 자꾸 작아지는 자신과 동일시한 것 이리라. 영화에서 형사들이 통닭집을 열고 반전을 꾀하는 모습을 함께 보며 자신의 꿈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탐색한다. 영화는 나를 비추는 천 개의 거울이란 말이 있다. 영화 속에서 천 개도 넘는 자기를 발견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영화 볼 때 몸을 비틀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자꾸만 치고 올라오는 생각이 있다. 흘려보내지 말고 연상 작업을 해보자. 영화가 관객의 삶에 브리징(다리 놓기)을 시도하는 것이니. 자꾸 말을 거는 영화를 선정해서 자기 삶과 연결하면 무엇인가 발견하게 되고 해법도 찾을 것이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남주인공 데니스가 여주인공 카렌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를 다른 사람의 삶의 끝에서 발견하고 싶지 않아요. 내 삶은 내가 책임져요. 자기에게 스스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삶, 아름답지 않은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했다.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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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02 16:38

우리 같은 어르신 분들

송준호 우석대 교수 우리말을 처음 배우는 외국인들이 몹시 어려워하는 게 있다. 다양한 존대 표현을 올바르게 가려 쓰는 일이다. 어쩌랴. 그게 한국어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것을. 동방예의지국다운 언어 특성을 두고 딴지를 걸자는 게 아니다. 요즘 들어 그런 존대 표현이 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아서다. 존댓말의 인플레라고나 할까. 커피 나오셨어요.라든가 모두 6,500원이세요.와 같은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쯤은 이제 상식에 든다. 그래도 딱 한 번만 더 짚어보자. 이런 해괴한 말 습관이 나타난 까닭은 무엇일까. MZ 세대의 기본적인 상식 부족 탓인가. 그런 점도 있겠지만, 천만에다. 까닭은 다른 데 있다. 갑질을 경계하다 보니 생겨난 말 습관이라는 것이다. 고용주와 손님은 갑이고, 카페나 편의점 알바생은 당연히 을이다. 그런데 그것도 관계에 따라 돌고 돈다. 음식점 사장도 자신이 직접 서빙할 때는 음식 나오셨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던가. 어느 옷 매장 알바생이라고 절친한테까지 그 빨간 티가 정말 잘 어울리세요.라고 말할 리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를 3인칭으로 가리켜 부르는 말이 있다. 그놈, 그 자식, 그 새끼 등에는 악감정이 담겨 있다. 무난한 건 그이나 그 사람이다. 상대를 높여 이를 때는 그분을 쓴다. 그런데 요즘 들어 높임말 분이 가는 곳마다 차고 넘친다. 고객분들, 관객분께서 등이 그런 경우다. 고객님분들도 들은 적 있다. 팬분들도 빼놓을 수 없다. 팬(fan)은 운동선수나 인기 연예인 같은 이들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운동선수나 연예인들 입장에서 팬들은 모르긴 해도 손아랫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런데도 분을 꼬박꼬박 갖다 붙인다. 팬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식이다. 그냥 팬들의 기대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팬분들이야말로 갑이라는 걸 잘 아는 까닭이다. 그냥 갑이 아니라 숫제 슈퍼갑이다. 어쩌다 실수로 말이나 행동 하나라도 잘못 까딱했다가는 SNS를 통해 뭇매를 두들겨 맞을까 두려운 것이다. 알아서 기는 거라고나 할까. 이와 비슷한 현상을 보여주는 말이 또 있다. 바로 어르신이다. 어른보다 한 단계 위에 드는 존대 표현이 어르신이라는 것쯤 누가 모를까. 어르신은 본디 남의 아버지를 높여 직접 부를 때 써온 말이다. 그런데 이게 언젠가부터 노인을 대신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60세 이상 어르신들의 백신 접종 예약률이 70%에 이른다.라는 식이다. 3인칭으로 가리켜 부르는 말이므로 그냥 60세 이상 노인들의라고 계속해서 쓰면 안 되는 걸까. 노인이 무슨 비하하는 말도 아니지 않은가. 혹시 사사건건 간섭하면서 꼬장이나 부린다고 늙은이나 꼰대라고 불렀던 게 마음에 걸려서 이제라도 인심을 쓰는 거라면 또 모르겠다. 하긴 미국에서도 요즘에는 old man 대신 senior citizen을 쓴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다.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듣다가 실소한 적이 있다. 어떤 행사를 리포터가 찾아가서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소개하는 코너였는데, 그 노인회 대표분께서 이렇게, 그것도 아주 활기찬 목소리로 말하는 걸 들었던 것이다. 우리 같은 어르신 분들 입장에서는 이런 행사를 자주 열어줘야 건강에도 좋은 겁니다. /송준호 우석대 교수 △송준호 교수는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소설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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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26 16:26

코로나19시대를 사는 지혜

김병기(전북대 명예교수) 코로나19의 신규 확진자가 1500명 선을 넘나들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집콕을 하자니 답답함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폭염까지 기승을 부리니 짜증이 더한다. 최근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장기간 자가격리와 거리두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 멍한 느낌이 지속되는 팬데믹 브레인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를 했다고 한다. 늘 하던 일의 순서를 잊어버리거나 TV드라마를 보면서도 줄거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답답한 생활을 계속해야 할까? 코로나19사태를 맞기 전, 어쩌면 우리는 지나칠 정도로 동적이고 외부지향적인 생활을 했는지도 모른다. 주말이면 으레 들로 산으로 여행을 떠났고 휴가철이면 해외여행을 즐겼다. 각종 스포츠 경기를 구경하며 응원의 함성 속에서 열광했고 불금이면 음식점과 술집, 노래방 등은 불타는 정열을 발산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이처럼 몸을 움직여 운동하고 춤추고 노래하면서 즐거움을 갈구했고, 가슴에 쌓인 것들을 외부로 거침없이 발산하면서 속 시원함을 추구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 가족과 주말여행을 가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체력단련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테니스나 골프, 등산 등 동적인 취미활동을 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여기며 아등바등 그 길을 향해 달렸다. 이에 반해 안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집안에 앉아 독서나 명상을 한다든지 고전음악을 듣거나 서예를 하면서 영혼의 청정함을 추구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처럼 동적인 활동과 외부를 향한 발산의 문화를 편애하던 우리에게 갑자기 코로나19가 닥쳐 발을 묶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주말여행을 가지 못하고 불금을 즐기지 못하는 현실이 마치 감옥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짜증은 날로 더하고 다투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19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안으로 나를 돌아보고 들여다보는 생활을 일상화할 필요가 있다. 옛 사람들은 온갖 감정을 외부로 발산하기 보다는 안으로 수렴하여 청정하게 승화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생활을 추구했다. 굳이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와유오악(臥遊五岳:자리에 누운 채 오악에 노닒)하고 좌견천리(坐見千里:앉아서 천리를 내다봄)하는 지혜를 터득했고 몸을 움직여 발산하는 춤을 추지 않아도 춤 이상의 흥과 여유를 누리는 생활을 했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학(鶴)」 이라는 시에서 학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누가 널더러 춤을 잘 춘다고 하더냐? 한가롭게 서 있을 때가 더 아름답던 걸(誰謂爾能舞 不如閒立時). 코로나19 시대에 우리는 춤만 추려들지 말고 잠시 서있는 지혜를 터득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이전의 우리는 돈을 벌어 돈을 쓰며 온갖 감정을 다 발산하면 갈증이 풀리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 행복하기는커녕 오히려 맹물을 마실 수 있는 청정한 행복을 팔아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설탕물을 사서 들이켰는지 모른다. 갈증이 풀릴 리 없다. 이제 코로나19 앞에서 우리는 한번쯤 기대해볼 필요가 있다. 동적 정열과 외적 발산을 절제하고 내적 수렴과 성찰과 각성을 추구하는 청정한 삶을 지향할 때 코로나19는 언제 사라진지도 모르게 우리 곁에서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김병기(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교수는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했으며, 강암연묵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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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19 16:44

글로벌 바이러스

전 세계가 글로벌 바이러스를 경험하고 있는 지금, 하루 수만 명이 죽어가고 있다.이 바이러스는 인간이 공동으로 만들어 낸 창조물이다. 예언가들은 문명의 괴물이 만들어질 거라고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힘든 상황을 해결할 것인가? 인간의 본성이 순수함과 아름다운 상태로 돌아갈 수는 있을까? 일단 우주의 순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물질세계인 우주는 중력의 법칙, 부력의 법칙, 관성의 법칙과 같은 법칙에 의해 좌우된다. 물질의 법칙에 대한 발견과 이해는 과학과 기술의 대단한 발전을 이끌었다. 중력의 법칙으로 비행기를 발견할 수 있었고, 관성의 법칙은 전기산업에 놀라운 발전을 일으켰다. 기본 법칙의 이해와 적용은 위대한 발전을 위한 필수 요소이다. 삶 또한 법칙들에 의해 움직인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삶을 좌우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고대문명은 우주흐름에도 패턴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 리듬은 네 가지 사이클인데 첫 번째는 의식과 물질이 따로 존재할 수 없다고 보는 황금기이다. 이 시대에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성했으며, 자연과 소통하는 시기였다. 두 번째 사이클은 물질이 조금씩 진화되면서 모든 생명이 근본적으로 하나라는 관점이 다소 약해지는 은의 시대이다. 의식과 물질이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물질의 중요도가 커진 시대이다. 세 번째 사이클은 의식이 물질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느끼는 청동기시대, 물질과 의식의 격차가 심한 시대이다. 마지막 사이클은 물질에는 전혀 생명이 없으며 의식의 노리개 정도라고 인식하는 철의 시대이다. 지금의 시대인 철의 시대는 인성(人性)보다는 물성(物性)이 압도적으로 강하게 드러난다. 인간이 기능적으로 발달하고, 공격성이 극에 달한 시점인 것이다. 우주는 이 사이클로 순환하고 있으며, 이 사이클이 한 바퀴 도는 데는 2만6400년 정도 걸린다. 마지막 사이클이 끝날 때가 2012년이었다. 일부 예언가들이나 선각자들이 지구의 멸망이 올 거라 예언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2012년은 마지막 네 번째 사이클이 끝나는 시점이었다. 지구멸망을 부르짖은 집단도 있었고, 그 정보로 지구멸망에 관한 상상적 영화도 많이 등장했다. 물론 지구의 핵 부분이 더 과열되어서 파괴될 수도 있었겠지만 아슬아슬하게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자생할 힘을 찾는 동안, 우리는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지금 겪고 있는 네 번째 사이클이 지나가면 지구가 폭발하지 않는 한, 다시 첫 사이클, 황금기로 돌아간다. 우리는 넷째와 첫째 사이클을 경험하고 목격하는 중대한 시기에 걸쳐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누렸다. 위태로운 이 시대에 후손에게 물려줄 지구를 살려내는 소명에 앞장서야 한다. 적어도 이 혼란이 지나가면 황금기의 사이클에서 정신적 물질적 평화를 경험하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철의 시대의 영향으로 황금기가 안정적이 되기까지는 앞으로도 10여 년이 더 필요하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으로 인구는 계속 줄어들 것이다. 우리는 우수한 민족이다. 지구를 몸으로 비유하자면 우리나라는 간(肝)과 같다. 쓰러져도 빠르게 회복하는 저력이 있다. 바이러스와의 종식에도 선두가 돼야 한다. 절망에 빠진 온 세계가, 몇 년 전부터 한류를 부르짖으며, 우리나라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은 한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 한다고 했던 많은 선각자의 예언을 떠올리게 한다. /송희 전 전북시인협회장 △송희 전 회장은 전북문화관광재단 이사와 인문학 강사로 활동하며 상담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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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12 16:43

힐링 시네마(Healing Cinema)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치유 의미로 사용하는 Healing의 어원은 그리스어 Holos에서 찾아볼 수 있다. Health의 어원이기도 한 Holos는 Holy(신성한)와 Whole(전체성)을 뜻한다. 전체성이란 매우 복잡하고 다의적인 용어인데, 칼 융의 개성화란 말을 통해 이해하자면 인간 속에는 정신의 분열을 지양하고 통일하게 하는 요소가 내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자기, 혹은 본연의 자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영화로 힐링한다고 하니 질문이 많다. 한 어르신은 영화 보면 암이 나아요? 이렇게 물었다. 세상에 치유 도구가 많이 있는데요. 영화도 그중 하나입니다. 어떤 치유 도구든 활용해서 도움받으세요. 이 어르신 조금 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를 보고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린 후 말했다. 내가 저렇게 살았어! 덕수는 한국전쟁 이후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 캐릭터다. 되고 싶었던 것, 하고 싶었던 것도 많았지만 가족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다가 늙었다. 영화를 치유의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연구하고, 임상에 적용하고, 인력을 양성하는 일을 주로 하는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가 창립 13주년을 맞았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을 영상영화심리상담사 라고 하며 현재 국내에 13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힐링 시네마란 교육, 상담, 심리치유 시 영상과 영상매체를 활용하는 모든 방법을 지칭한다. 주재자가 피교육자나 내담자에게 치유를 촉진할 수 있는 영화를 선택하고 주재자-내담자(피교육자)-영화 간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대안적인 해결 방법을 습득하거나 자신과 타인에 대해 정서적인 통찰을 깨우치도록 하는 과정이다. 개인의 성장과 치유를 위해 영화를 활용하는 것은 구어체가 시작되면서 유래한 이야기 하기와 자기 반영 사이의 오랜 연장선에 있다. 영화 보고 자기를 반영 하는 것, 치유의 핵심이다. 방법을 개략적으로 소개하자면 첫째, 영화 보고 목록을 작성한다. 대상은 아동청소년, 가족, 부부, 페미니즘, 노인 등 생애 주기별로 나눈다. 이후 연도별, 국가별, 사용 빈도별로 범주를 세분화한다. 둘째, 영화 만들기 작업이다. 시나리오 작성에서부터 영화 촬영 기법, 상영회까지 주관한다. 청소년 영화(진로, 또래 관계, 학교폭력, 성교육, 자존감, 다문화 등 다양), 가족영화 앨범, 영상 자서전 등 적용 범위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셋째, 사진 작업이다. 사진 찍기와 사진 지각의 주관성에 초점을 맞춘다.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내담자(피교육자)가 반응하기까지 심리적 과정, 감각, 지각, 인지를 다룬다. 넷째, 내담자와 함께 영화를 보고 영화 속 메시지를 현실과 연결하고 포커싱 한다. 항상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영화를 보며 지각하는 것은 객관적인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라는 사실이다. 주요 기법으로는 영화를 통해 통찰하도록 안내하는 지시적 접근, 잊힌 경험과 기억에 접촉하도록 돕는 연상적 접근, 감정의 방출과 정서의 환기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연결하는 정화적 접근이 있다. 영화는 경험과 접촉하고 무의식으로 이끌며, 이를 통해 의식을 확장하고 다른 세상과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다. 방어를 해제하고 본연의 자기와 만나 기쁨을 만끽하도록 하는 경지, 힐링 시네마가 추구하는 세계다.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이승수 회장은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단비심리상담센터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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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05 17:00

알바트로스와 자전거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팔복예술공장 <크리스 조던:아름다움 너머> 전시를 보며 말문이 막혔다. 시작부터 충격을 받았다. 작품 「침묵의 봄」은 농약으로 숨진 18만 3천 마리의 새들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새들임을 알 수 있는 형상 외에, 구별할 수 없는 무수히 작은 점들마저 모두 인간에 의해 사라진 새들이었다. 분명 아름다웠지만, 너무 아픈 아름다움이었다. 전시의 마지막 순서였던 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는 마음이 아파 끝까지 보지도 못했다. 함께 사는 생명체들에게 인간이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지를 다시 통렬하게 실감했다. 보들레르는 시집 『악의 꽃』, 「알바트로스」에서 이렇게 썼다. 뱃사람들은 아무 때나 그저 장난으로, / 커다란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네, / 험한 심연 위로 미끄러지는 배를 따라 / 태무심하게 나르는 이 길동무들을. / 그자들이 갑판 위로 끌어내리자마자 / 이 창공의 왕자들은, 어색하고 창피하여, / 가엾게도 그 크고 흰 날개를 / 노라도 끄는 양 옆구리에 늘어뜨리네. / 이 날개 달린 나그네, 얼마나 서투르고 무력한가!알바트로스는 거대한 날개 때문에 활주 공간이 없으면 날아오르지 못한다. 인류 문명은 알바트로스의 활주공간을 계속해서 파괴했고, 더는 날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크리스 조던의 작품 중에 「미드웨이 : 자이어의 메시지」라는 것이 있다. 나선형, 소용돌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Gyre는 아일랜드 태생의 시인 예이츠가 인류 문명이 2천년 주기로 순환한다는 이론을 만들었을 때 사용하기도 했다. 자이어론을 문명발전론에 대입한다면 같은 모습이 순환하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명이 순환하며 점진적으로 나아간다는 이론을 거부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문명은 그렇게 변모해왔다. 그런데 그런 이해가 인간의 삶을, 멈추는 순간 쓰러지는 무한질주의 자전거타기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중학교 시절, 체육대회 때마다 빠지지 않았던 경기가 자전거 천천히 타기였다. 넘어지지 않고 가장 늦게 결승점에 닿는 사람이 승리하는 경기였다. 지금 우리는 그 경기 규칙을 배워야 한다. 문화는 거꾸로 가면 안 된다고 믿겠지만, 얼마든지 거꾸로 갈 수도 있고 어쩌면 지금은 바로 그렇게 해야 하는 시간인지 모른다. 이제껏 질주하며 만든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후세에게 물려줄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멈추고 뒤돌아서는 것도 문화다. 앞으로만 질주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전의 문화를 불완전하고 미개한 수준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맞는 생각일까? 우리가 찬양하는 모든 문화는 과거의 것이다. 한편으로는 찬양하며, 한편으로는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은 근본적으로 불일치를 갖고 있다. 구르는 것은 언젠가는 멈춘다. 시간의 장단이 있을 뿐이다. 인류는 지금의 예측치보다 더 오래 구를 수 있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을 실현하며 구를 수 있었다. 앞으로도 더 구르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이끼는 끼지 않는데, 바퀴를 부식시키는 독이 자꾸 끼고 있다. 바퀴를 더 잘 구르게 하려고 윤활유를 쳤는데, 그게 독이어서 바퀴를 부식시키고 있다. 자전거는 멈출 때의 자세가 중요하다. 너무 속도를 낸 자전거는 멈추기 어렵다. 속도를 줄인 뒤에야 안정적으로 멈출 수 있다. 멈추자는 것이 아니다. 천천히 달리며 더 많은 풍경을 오래 보자는 것이다. /천세진(문화비평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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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28 17:29

힘이 되는 문화예술경영…창작활동과 행정지원의 뉴딜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오늘날 예술 활동은 개인의 자유로운 생각, 감정 등을 창작할 수 있는 순수함이 있지만 르네상스시대만 하더라도 후원이란 주문자였고 작가와는 주종관계에 가까웠다. 그 시대에는 모든 예술분야를 장려하고 후원하는 진정한 의미 보다는 특정가문의 사회적 지위상승과 정치권력을 강화하기 위한수단으로 삼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거장 중 한 사람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는 피에타(성모 마리아가 죽은 아들 예수를 안고 있는 슬픈 모습을 묘사한 예술작품의 통칭) 조각 작품을 23세의 젊은 나이에 완성했으니 천재 중의 천재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작품의 명성으로 미켈란젤로는 당대 최고의 스타가 되었고 피에타로 인한 명성에 힘입어 1501년에는 미켈란젤로의 예술 여정에 정점을 찍는 작품제작 주문을 받는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 다비드(다윗)을 조각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대리석의 크기가 5m 정도 거대한 돌덩이를 다룬다는 것은 당시의 유명조각가들도 엄두를 내지 못할 작업이었으나 26세의 패기 넘치는 미켈란젤로는 감동적으로 완성을 했다. 다비드를 조각해 나갈 때 재미있는 갑과 을의 일화가 하나 있다. 다비드 작품을 주문한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위원회의 위원들은 간혹 작품에 대한 말 한마디씩을 던지곤 했는데 다비드상의 머리 부분이 너무 크지 않느냐고 계속 시비를 걸어 왔다. 원래 말도 없고 사교성이 없던 미켈란젤로는 대꾸도 하지 않고 작업에만 여념이 없었는데, 하루는 머리가 커 보인다는 시비에 견디다 못해 돌가루를 한줌 쥐고 조각상 위로 올라가 조각도로 깍아 내는 시늉을 하면서 돌가루를 떨어뜨리자 위원들은 그제 서야 입을 닫았고 다비드상은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사람의 큰 키 높이정도 되는 단 위에 설치되었는데 관람객들은 상당한 높이에 위치한 조각상을 보기 위해 고개를 젖혀 올려다 보아야 한다. 멀리 있는 부분은 실제보다 작아 보이니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 제대로 된 비례로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미켈란젤로의 생각을 성당의 추진위원들은 알 리가 없었다. 행정적인 지원을 하는 위원회와 작업현장의 미켈란젤로의 심리적 갈등은 서로의 입장에서 근본적으로 이해를 달리할 수밖에 없다. 미켈란젤로가 로마에서 활동할 수 있었고 천지창조, 최후의심판 등 위대한 작품들을 탄생시킨 배경에는 당시 교황 율리우스2세의 초청에 의한 것이었고 거대한 과시적 목적과 작업에 열광하는 두 사람의 의기충천 하는 기질의 충돌은 주와 종의 관계 또는 갑과 을이 되어 이루어진 결과물들이다. 예술지원행정과 실행되는 예술의 현장은 상호 의존 관계지만 예술경영, 현장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은 작가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의 권한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기 때문이다. 기관은 공적 자원을 집행하기 때문에 공익실현과 절차상의 투명성 등 신뢰성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진행에 개입할 수밖에 없지만 예술 활동의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수직적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적 파트너십의 적극적인 협치가 필요하다. 예술가들은 전문성, 소통, 이해의 부족을 구실로 행정부서를 갑 이라 하고 행정부서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리한 요구와 민원제기로 한계를 넘어서는 예술인들을 오히려 갑이라고 하는 불편한 진실을 자유로운 창의성 보장과 행정지원의 효율성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뉴딜, 즉 새로운 계약관계가 이루어지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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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21 17:37

한(恨)과 천이두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그의 쑥대머리를 기억한다. 서울, 누구의 혼인식(1998년 1월)에 참석했다가 전주로 돌아오는 관광버스 안에서 찰지게 쑥대머리를 불렀던 것이다. 일국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당대 최고의 문학평론가인 분이 관광버스 안에서 판소리를 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천이두 교수이다. 그는 근대문학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김소월, 서정주, 김동리, 황순원 등의 작품뿐만 아니라 1970년대를 풍미한 작품들까지 면밀히 분석했다. 첫 저서인 『한국 현대소설론』(1969, 형설출판사)에 수록된 「한과 인정」을 통해 한(恨)을 언급한 이래 『한의 구조 연구』(1993, 문학과지성사)에 이르기까지, 한에 몰두한 연구가이기도 했다. 그는 한에 슬픔이 내재된 것은 사실이지만 원(怨)과는 차원이 다른 웅숭깊은 정신문화임을 밝혔고 이를 멋과 슬기로까지 끌어올렸다. 한국 정신문화의 뿌리인 한(恨), 여기에 깃든 슬픔의 내력을 천이두 교수도 비껴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슬픔은 폭이 넓고 깊었다. 평생을 뙤약볕에 그을려 얼굴이 더 이상 하얘질 가망이 없는 민중의 삶을 사랑했다. 갯벌에서 바지락 캐다가 저녁놀과 눈 맞추는 잠깐, 산자락에서 취를 뜯다가 한숨 쉬는 잠깐, 감자 캐다가 논두렁 깎다가 깻잎 따다가 시름 뉘어보는 잠깐에 선명히 새겨지는 이 땅의 집단적 그리움을 아꼈고 아파했다. 갑오년 죽창과 일제의 수탈과 분단과 625의 떼죽음, 보릿고개와 유신독재와 5월 광주의 학살로 모질게 이어지는- 근현대사의 비참한 숨소리가 아직도 삶과 역사를 핍박한다는 사실에도 집중했다. 그의 글줄 안팎에 철저하리만큼 한국적 빛깔이 충만해 있음은 이를 증명한다. 이 지점에서 그는 한(恨)을 만났을 것이다. 사람들이 형벌처럼 짊어진 슬픔 속에 슬픔을 넘어서고 싶은 욕망이 도사리고 있음을 꿰뚫어본 지점도 삶의 현장일 터이다. 여기서 그는 한이 불행한 삶을 견디게 하는 동력이자 윤리적 조절정치라는 탁견에 닿았고, 진정한 화해를 바라는 정한(情恨)에 이르렀으리라. 모두가 정의에 굶주려 원통절통함에 갇혀 있을 때 천이두 교수는 역사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민중의 억울함을 한(恨)으로 껴안고 피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글은 엄정하다. 모순으로 점철된 시대의 한복판에서 붓끝을 벼렸으되 그의 언어미학은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다. 예술에 앞서 삶이 먼저라는 것을 깨친 냉철한 학자였던 것이다. 한을 멋과 슬기로 끌어올린 어른. 그의 업적은 단지 업적만으로 치부될 수는 없다. 콜라와 햄버거와 AI를 끼고 사는 세대에게 한국 문화의 원천인 한(恨)을 명징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유는 또 있다. 외국 문예이론과 사회담론에 속박됨 없이 시와 소설과 판소리를 명쾌하게 분석해간 글줄을 읽다보면 제발, 한국의 자존심을 지키고 살라는 그의 엄한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천이두 교수는 오래 전부터 겨레의 스승이었다. 요즘 그를 기억하는 이가 드물다고 들었다. 부귀영달과 먼 분이었으므로 갈수록 잊힐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의 품에서 일가를 이룬 학자들과 시인작가들은 오늘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은사님의 학문적 순결성과 치열성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오는 7월 7일이 천이두 교수의 4주기이다. 당신의 제사상에 찰진 쑥대머리 한 자락 올려야 하리라./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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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14 16:45

이제 겨우 시작인 일들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열 한 살 아들의 입에서 뜻밖의 질문이 흘러나왔다. 엄마,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떤 대답을 해줘야 할지 순간 멍해졌다. 아이의 눈에도 지구가 빠르게 병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나 보다. 자신의 하루만 봐도 플라스틱을 쓰는 일은 너무 많고, 학교에서 재활용교육을 받고 분리수거를 해도 교문 밖만 나가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문구점에서부터 정체모를 비닐과 플라스틱에 담겨있는 과자를 먹는 일부터 시작해서 친구들이 플라스틱에 들어있는 음료수를 날마다 먹는다고 말한다. 아들이 이 질문을 던진 것은 환경의 날을 앞두고 시작된 크리스 조던 : 아름다움 너머 전시회를 팔복예술공장에서 보고 나온 직후였다. 7월 11일까지 진행되는 크리스 조던 사진전은 우리에게 자연 생태계의 위기를 보여주며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의미있는 전시다. 크리스 조던은 환경예술 분야의 독보적인 작가로 손꼽히지만, 본인 스스로는 환경운동가나 예술가가 아니라며, 현재의 삶을 직시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전하는 메신저일 뿐이라 말한다. 인디고서원에서 출판된 크리스 조던의 책에는 「세상에서 존재하는 모든 슬픔에 대해서 느끼려고 하는 것, 아름다움을 알려고 하는 것, 이 세계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자연에 대한 슬픔까지도 온전히 알아주는 일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의 대표작인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 찬 알바트로스의 사진은 지금의 인류가 만든 환경 문제의 비극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플라스틱 조각을 먹이로 착각하고 자신의 새끼에게 먹이는 알바트로스는 결국 이유도 모른채 죽임을 당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너무 편리하기만한 소비문화와 산업성장이라는 이유로 분별력을 상실한 채 쓰레기를 생산해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겨우 탄소발자국과 제로웨이스트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직은 다수가 아닌 소수다. 그럼에도 고마운 것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차츰 빨대가 사라지고 있으며, 환경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점이다. 책방을 운영하며 생태코너의 책들에 늘 주목했다. 1회용품을 쓰지 않기 위해 나부터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갔다. 그러나 개인이 하는 것에는 늘 한계가 느껴졌고 매일매일 무섭게 쌓여가는 배달음식들의 플라스틱 쓰레기나 택배박스들을 보면 순간 절망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크리스 조던의 전시회를 통해 다시금 지구의 슬픔과 분노를 직시하며 극복해야 하는 용기와 마주했다. 그리고 주위를 다시 둘러보니 이를 함께 하는 청년들이 있었다. 1회용품과 플라스틱제품을 전혀 쓰지 않고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마켓을 지향하는 불모지장 팀은 전주의 가게들과 연합하여 우유팩과 플라스틱 뚜껑을 모아 재활용을 시작하고, 플라스틱 화장품 용기를 바꾸기 위해 화장품회사를 공격하는 캠페인을 벌이며 두려움을 희망으로 바꾸고 있다. 음식가게에서 음식을 담기 위해 용기(그릇)를 내기 시작했다는 용기캠페인처럼 우리는 지구를 위해 모든 용기를 총동원해야한다. 그리고 아들에게 절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을, 우리가 살아있는 한 희망은 계속되어야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기 위해서라도.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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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07 14:54

트롱프뢰유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사실이나 진실일까? 1670년경, 플랑드르 출신의 화가 코르넬리스 헤이스브레흐트는 <그림의 뒷면>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그림을 보면, 실제의 캔버스 액자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림들을 언뜻 보기에 현실로 착각하게 하는 효과를 가진 그림이라는 뜻의 프랑스어트롱프뢰유(trompe-loeil)라고 불렀다. 당시에 유행했던 트롱프뢰유는 그림으로 착시를 만들 수 있다는 기술적인 의미가 컸다. 트롱프뢰유는 17세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었다. 신라의 솔거가 황룡사 벽에 그린 <노송도>나, 고대 그리스 시대에 제욱시스와 파라오시스가 대결을 펼치며 그린 그림들도 트롱프뢰유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전반까지는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이 유행했다. 유행은 지났지만, 지금도 극사실주의 그림들은 계속해서 그려지고 있다. 극사실주의 작품은 사진을 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정말 실제 같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한편으로는 왜 사진과 같은 그림을 그리는 가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극사실주의는 트롱프뢰유의 현대적 재현이라는 의미만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실제처럼 보이는 허구를 굳이 만들어, 우리가 믿고 있는 어떤 것들을 뒤집으려는 것일까? 사물이나 현상을 뒤집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기술적 방식이고, 하나는 내용적 방식, 즉, 사유의 전복이다.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뉘지만, 우리 눈에 먼저 다가오는 것은 기술적 방식의 산물인 미술작품이고, 내용적 방식조차도 작품을 보고 난 후의 해석에서 끌어내어진다. 현대인들은 선호하는 매체와 정도는 다르지만 거의 모두 SNS를 하고 있다. SNS를 통해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의 대부분은 이미지다. 현대인의 삶은 이미지 속에 들어있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기술들과 동거하고 있는 셈이다. 마셜 맥루언은 기술이 확장하는 것은 인간의 신체와 감각이라고 했다. 현대문명의 기술들은 여러 측면에서 예술의 영역을 확장했다. 극사실주의가 그 증거 중 하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확장해야 할 것은 감각과 신체가 아니라, 사유다. 삶은 비슷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상업적 사물을 통해 드러낼 경우에는 여러 범주(알고리즘)의 하나에 해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다름을 얻는 방법은 다른 이들의 것과는 다르게 해석되는 내용을 갖는 것이다. 누구도 기술적 양식들을 피해가며 살기는 어렵다. 하지만 트롱프뢰유처럼 보이는 삶은 피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예술적으로 표현했을 때 트롱프뢰유 단계인지, 그걸 넘어서 사유의 전복 단계에 이르렀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삶의 명작처럼 보이는 대중 스타의 삶을 베낀다고 해서 멋진 삶이 되지는 않는다. 가짜를 보고 날아간 참새가 될 수도 있다. 멀리서 선망하는 삶이 실제로 보일지라도, 가까이 다가가 보면 꾸민 것일 수 있고, 알맹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처럼 다를 수 있다. 이것이 나의 삶이라고 내놓은 이미지가, 체험으로 일군 풍경들에서 얻은 이미지가 아니라, 누군가 만들어 놓거나 제공한 것들에서 얻은 이미지라면, 그 삶은 트롱프뢰유에 깜박 속은 시간의 이어짐일 뿐이다. 언젠가 가짜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공허밖에 남지 않는다. 삶은, 이미지를 넘어선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천세진(문화비평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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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31 18:11

색채로 얘기하고 색채에 빠져보자!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우리는 색채 속 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고대에서 시작되어 시각적, 감성적인 부분에서부터 미학, 디자인은 물론 심리, 물리, 경영, 사회, 의학 등의 영역까지도 활용 되어 왔다. 4차 산업 혁명을 선도하는 것은 디지털문화뿐만이 아니다. 색채도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밀접하게 존재해 있으며 지구촌의 환경문제에 있어서도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정부에서는 컬러리스트 자격증시험을 실시해서 학문으로서의 전문가를 생산하고 있고 컬러리스트들은 기업에서 컬러마케팅이라는 기획단계에서 부터 눈부신 활동을 하고 있다. 컬러마케팅 이란 기업들이 시장에 상품을 내 놓을 때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색상으로 포장하여 관심을 끌어 대박으로 연결되어지게 하는 역할이다. 색상의 선택은 생산 과정 중 가장 심도 있게 결정을 한다. 정해지는 색상에 따라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시켜 매출로 이어지게 하는 소비자의 시각적 선택에 높은 비중을 두는 감성 마케팅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C-19로 인해 마음이 우울한 시기에는 어두운 색채 보다는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화려한 색채의 상품들이 인기가 높다. 컬러마케터들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가오는 계절의 변화와 경제의 호, 불황으로 예견되는 사회의 상황에 맞는 색채발굴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 전에는 자동차의 색상이 흰색,은색,검정색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빨강,주황,파랑등 다양한 색채로 제작되어 출고되고 있으며 냉장고 세탁기도 백색에서 벗어나 유명화가의 그림이 사용되기도 하고 컬러리스트에 의해 개발된 특별한 색상으로 변신하여 소비자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한편 색채가 심리적으로도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지면관계상 몇가지 기본색채만 살펴보자면 해방이후의 빨강색은 부정적인색채로 인식되었고 현재도 간혹 정치판에 이 색채가 튀어나와 설전을 벌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미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빨강색의 위력을 실감한 적이 있고 국가대표 축구선수 유니폼의 고정색채 이기도 하다 빨강색이주는 따뜻함 외에도 자극성과 활성이 강하고 유대감의 형성과 감정의 고조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노란색은 일단경고의 의미를 준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낙천적이며 가을을 탄다 보라색과 더불어 예술적인 색채라고도 한다. 그림을 그리다가 엎드려 잠든 아이의 손에는 녹색크레파스가 쥐어져 있기도 한다. 감정과 격한 흥분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기 때문이다. 희망을 상징하며 경쾌함과 창조성을 증가시켜주는 파랑색은 거쉬인의 피아노곡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에서 우울함으로 벤쳐스악단의 나의 푸른 창공(My Blue Heaven)에서 청명과 희망을 주는 양면성이 있다. 물체와 풍경 고유의 색채를 보지 않고 반사 되어 나온 빛을 그렸던 인상파화가들은 빛의 강약에 따라 형태와 느낌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색채로 표현 하였다. 6월이 온다 원색의 계절이다 맑은 색채로 표현되는 청음의 계절, 톡쏘는 냄새로 미각을 돗구는 와인색, 은은한 향기가 매력적인 연한보라의 라일락색, 다정하게 말하는 것은 따뜻한색 계열, 차갑고 각을세운 대화는 찬색계통이다.우물쭈물 의미 없는 말소리는 흐릿한 저채도 색채이므로 기왕에 말을 할 때에는 선명한 고채도 색채의 목소리를 내어보자.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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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24 18:00

오월, 무덥던 날

이병초 전북작가회의 회장 그날,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진압작전을 예감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은 전남도청에 남은 어린 학생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너희들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제 너희들은 집으로 돌아가라. 우리들이 지금까지 한 항쟁을 잊지 말고, 후세에도 이어가길 바란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자로 만들 것이다. 윤상원의 말을 글로 읽은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실제로 시민군은 계엄군에 떼죽음을 당했다. 그 뒤 2007년, 한 여고생의 시를 읽고 사람들은 또 한번 말을 잃었다.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불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 것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 떨어져부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 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재.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 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정민경, 「그날」, 전문. 시의 정황이 급박하다. 사람보다 총구가 먼저 보이는 상황은 전시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다. 주인공의 자전거 짐칸에 웬 어린놈이 다짜고짜 올라타서는 어른더러 어서 가자고 보채던, 그 어린놈을 총구녕이 데리고 간 시적 긴장은 팽팽하다. 전라도 토박이말이 시행에 쩍쩍 들어붙는다. 계엄군 앞에서 입이 안 떨어졌지만, 자신을 사촌 형님이라고 둘러대는 어린놈 말이 사실이 아님을 밝힌 순간 주인공은 어린놈을 계엄군에 내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총구를 벗어나기 위해 자전거를 정말로 허벌나게 몰았을 주인공은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서 교복을 입고 있는 어린놈을 본다. 총구 앞에서 엉겁결에 둘러댄 언행이, 살고 싶은 욕망에 충실했던 제 목숨이 버거웠을까.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멀리하고 어린놈의 환청을 듣는 주인공, 목이 다 쇠가꼬 어서 가자고 보채던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으로 맺어지는 시상은 그라고라는 입말에 들어붙어 피가 마른다, 5월, 무덥던 날- 계엄군에 떼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트럭에 실려 어디로 갔던가. 대한민국을 집어삼키려했던 신군부 쿠데타 세력에 저항했던 광주여. 이 땅의 산천은 2021년 5월 18일 오늘도 어린놈의 뒤가 궁금해서 그라고 흰꽃들을 한꺼번에 피우는가. /이병초 전북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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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17 18:10

구호보다 중요한 것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다음 카카오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100이 있다. 당신의 습관이 되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100일 동안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자유로이 선택한 다음 꾸준히 그것을 해나가는 것을 함께 체크하고 100일까지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다. 책방 손님들과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매일 한 문장 쓰기라는 것을 3월 20일경부터 시작했다. 매일 책에서 발견한 마음에 드는 문장을 노트에 적어 사진을 찍어 올려야 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책을 뒤적이며 문장을 골라 쓰는 일이 처음엔 꽤 즐겁고 보람 있었다. 문제는 주말이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을 차리다보면 어느새 잊고 있어서 놓칠 뻔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제 겨우 반 지나왔는데, 딱 하루를 빠트려서 나는 98%의 실천율을 갖고 있다. 100일간 완벽하게 하려던 실천에 차질이 생겼지만 남은 기간 동안 만큼은 지키기 위해 노력중이다.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상투적으로 쓰는 100일이라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는 것이다. 백일기도의 정성이 그저 허투루 하는 기도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실천이라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며, 뭐든 해보지 않고서는 이 또한 모를 일이니 쉬이 어떤 것을 하겠다고 말을 못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5월이 되고부터는 여기저기에 실천 없는 구호들이 떠다니는 것을 보고 있다. 갑자기 거리에 화려한 현수막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지방선거는 내년이라 아직 멀었지만 물밑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5월은 특히나 첫날부터 노동절로 시작해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518 민주화기념일까지 의미 있는 날로 가득하다. 이런 날들은 구호를 만들기에 좋은 기회를 주기 때문에 현수막은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에는 어김없이 하나씩 걸려있었다. 구호들을 살펴보니 속이 빤하다. 개인적으로 들어본 이름도 있고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언제까지 이런 뻔한 구호들로 선거경쟁을 해야 하는지 나는 시민의 입장으로서 아쉬움이 많다. 누구 하나 어떤 실천을 통해 감동을 주었다든지 어떤 행동에 노력을 기울였다라든지의 소식을 들을 수 없다. 물론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시점에는 분명히 움직임이 클 것이다. 그러나 구호를 기획하고 외치기 전에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은 없는지,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실천하는 목소리가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시민들은 이제 휘날리는 현수막의 문구보다 진짜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남은 기간 동안이라도 어떤 구체적인 실천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100일이 생각보다 짧지 않다. 100일 동안이라도 어린이를 위해, 또는 청소년을 위해, 또는 노동자를 위해 무언가 프로젝트를 해보는 일은 어떨까. 큰 실천이 아니라 아주 작은 실천도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늘 말은 쉽다. 정치인들이 그래서 입으로 정치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제는 움직이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선한 움직임을 준비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의 구호는 헛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신념을 실천하는 것, 나의 전문 분야는 행동이다라고 말했던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되새기며, 반짝이는 구호보다 단 한 번의 실천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이제는 만나고 싶다.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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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10 17:49

색의 과소비 시대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좋아하는 꽃이 달라졌어. 색 때문인 것 같아. 꽃을 구경하던 이의 말이었다. 봄은 꽃이 피어나는 계절이니, 색이 피어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꽃의 정체(正體)는 형태, 색상, 향기다. 그 셋을 모두 음미한 후에야 꽃의 정체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있다. 좋아하는 꽃이 달라졌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인 것일까. 그냥 시간의 일이고, 색의 일이고, 취향이 달라진 정도의 일일까? 꽃의 정체 중 하나인 색은 문화의 정체이기도 하다. 도시의 거리를 걸을 때면 현란한 색들을 만나게 된다. 거리의 간판들이 무채색이었다면 우리 눈은 훨씬 심심했을 것이다. 거리의 간판들이 보여주는 색은 원칙이 없다. 그걸 본다면 누구든 자유로운 색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게 될 것이다. 정말 색은 지금 자유로운 것일까? 색채전문가 미셸 파스투로(1947)는 『파랑의 역사』에서 색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일반적 경향이나 분석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 복잡한 문화 구조라 할 수 있다. (중략) 색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현상이다. 문화를 초월한 색의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쓰고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색은 자유보다는 통제와 구분을 위한 장치였고, 자유롭지 못한 역사가 대부분이었다. 조선시대의 붉은색은 서민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귀한 색이었고, 군부독재 시대에는 사상적 불온함을 담았다는 의미로 읽혀 금단의 색이었다. 한국인의 옷은 흰옷이라는 상징이 있지만, 『경국대전』에서 일반 백성의 흰옷은 금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흔한 옷 색이 되었다. 색이 계급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동양보다 먼저 자유를 찾은 유럽에서도 2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색의 세계인 미술 작품 속에서도 인상주의 시대에 들어서서야 색은 자유를 얻었다. 색은 계급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문화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색은 신화, 상징, 메시지다. 색이 다양하다는 것은 신화, 상징, 메시지가 넘쳐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색을 만날 때마다 신화, 상징, 메시지를 얻는 것은 아니다. 이제 신화는 사라졌고, 상징은 수시로 바뀌며, 고작 메시지를 얻을 뿐이다. 그 메시지조차도 상업적이고, 어지럽게 다가온다. 색을 가장 많이 탄생시키는 것은 기업들이다. 기업들이 보여주는 색은 소비 욕망과 닿아 있다. 플라스틱과 포장지에 입힌 색은 현란하고 육감적이다. 색은 분명 문화다. 하지만 색도 과소비의 경계가 있다. 현시대의 색들은 그 경계를 넘은 것 같다. 다양한 색은 자유를 의미하지만, 색의 다양함이 곧 자유의 수준까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업이나 정당, 이익단체, 사상단체 같은 곳에서 유포하는 색의 굴레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색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고, 색이 만들어내는 문화가 풍성해진다. 인류의 시간이 색을 계급적, 경제적, 종교적, 정치적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길을 달려왔지만 아직 멀었다. 코로나시대에도 색은 과거의 악습으로 살아나고 있다. 코로나 증오범죄는 유색 혐오와 맞닿아 있다. 봄꽃 핀 들판 같은 색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지만, 색은 문화적 소비물이다. 과도한 상징이나 메시지를 퍼부으며 함부로 소비되는 색은 세계와 사람들의 문화적 수준을 높여주지는 못한다. 과소비도 문화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어느 것도 넘쳐서 아름다운 것은 없다. /천세진(문화비평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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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03 17:35

선(線)의 미학, 손보다 머리를 먼저 작동해야 한다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형상들은 선(線)으로부터 시작된다. 드로잉 이란 주로 선으로 그리는 회화적 표현이며 일반적 개념으로 보면 많은 선이 그어져서 입체적 작업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 속에 데생이라는 용어로 구분되지만 드로잉과 데생은 작품을 완성해 가는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도형의 기본요소가 점선면이라면 그중에서도 선(線)이 지닌 역할은 인간으로 해야 할 역할을 지탱해온 가장 위대한 정신활동이라 할 수 있다. 점이 움직여 시작된 선의 기능은 시간예술이라 하는 음악과 공간예술이라 하는 미술 창작을 리드하는 인간의 우뇌로부터 생성 된다고 볼 수 있다. 르네상스를 태동시킨 문학의 단테는 명확한 언어로 메시지를 드로잉 하듯 표현하였고 서양화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지오토는 기하학적인 드로잉의 형태에서 현실적인 드로잉을 구사하여 르네상스의 전성기에 공기원근법, 스푸마토 기법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피렌체 대성당과 같은 거대한 돔 건축양식과 회화와 조각 등을 드로잉이라는 조형언어를 통해 공간예술의 원천으로 승화시켰다. 동양화에서도 선으로 윤곽을 나타내는 구륵법(鉤勒法)이나 먹의 농담으로 선과 명암을 표현하는 몰골법(沒骨法) 같은 묘법 드로잉이 있다. 선(線)의 예술은 기원전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에서 보여주는 드로잉에서부터 2018동계 올림픽 때 첨단 기기를 이용 창공에 그려진 드론들의 드로잉과 빙상경기장 피겨스케이트의 날에 의해 그려진 수많은 선들은 인간의 창조적인 천재성이 만들어낸 시공을 초월한 최고의 작품들이다. 드로잉은 인류의 보편적인 조형문화 활동이다. 꼭 필기구와 같은 표현 도구가 아닌 정신적 표현 활동으로서의 드로잉은 인간만이 창조활동으로서의 환희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마당에 막대기로 또는 벽에 숯덩이로 그어대던 그리기 놀이는 본능적 감각의 표출이며 창작의 기본적 놀이행위였다. 창의적 사고에서 비롯된 모든 선은 의도적이든 우연적이든 자신의 자아를 표현하는 행위로서 결정된 명확한 이미지를 더해 형성된 결과물을 만들어 가는 기술이 바로 드로잉 이다. 드로잉이 미술의 기본교육이나 단순한 밑그림 또는 습작 차원의 논리로 미술시장에서는 값싼 의미로 해석된 적도 있었으나 근대 이후의 드로잉은 혁신적 표현을 추구한 인상파와 추상표현주의로 이어지는 미술의 다변화에 따른 새로운 조형 활동은 미래의 가치관을 만들어가는 콘텐츠로서의 가장 중요한 창조행위로 재인식되고 있다. 한국의 드로잉(線) 미학은 우수함이 차고 넘친다, 농악 중 상모놀이는 모자에 매단 기다란 띠가 허공에 그려 대는 공간 드로잉이고 한복의 저고리에서 치마 버선으로 이어지는 곡선미는 3차원의 입체 드로잉이며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유려한 드로잉을 바탕으로 완성된 현대종합예술의 극치이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를 따라가는 손은 그저 따라갈 뿐이다. 손보다 머리를 먼저 작동해야 한다라고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말했다. 머릿속에 과녁의 이미지를 그리고 손끝으로 화살을 당겨 과녁 중앙에 명중시키는 세계 최강 우리나라 양궁 궁사들의 드로잉처럼 팬데믹 사태로 복잡한 우리네 희로애락을 각자의 자아를 찾아 종착점에 이를 때까지 수없이 많은 선을 쌓아보자 반복되는 드로잉의 과정 속에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예술가들과 더불어 우리 모두 드로잉이라는 언어로 편하게 그려보고 대화해 보자.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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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26 17:47

시를 쓰는 여자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말끝이 쌉싸름한 여자. 안방 벽에 죽창과 개펄을 그려놓은 여자.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제 여성성을 지우고 싶은 여자. 담배 연기를 배꼽 아래까지 깊게 빨아들이던 여자. 염소 떼 몰고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는 그녀를 못 만나고 뒤를 돌아본다. 산과 산 사이 오목한 곳에 비스듬히 기운 집들이 오종종 모여 있는 동네, 이 너덜겅을 벗어나면 전북 남원시 인월면 소재지가 눈앞일 거라고 연초록 잎사귀에 햇살이 반짝인다. 눈 씻고 봐도 깡촌인, 산자락이나 부쳐 먹는 게 고작일 사람들에 섞여 그녀도 하루 품을 팔았을 것이다. 어떻게 쓰는 게 시(詩)이고 무엇을 써야만 시가 되는가. 이 문제를 붙들고, 현실이냐 미학이냐를 붙들고 골머리 앓고 있을 때 우리는 그녀를 만났다. 부조리한 현실을 도외시한 언어미학은 시의 직무유기에 속하는 반편이 문학이었고, 언어미학을 고려하지 않은 시의 현실적 문제제기 또한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쳐갈 때쯤이었다.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 전에 자신의 생활 태도가 일상에 누가 되는 것은 아닌지를 먼저 살피던 시절, 신영복 선생이 어떤 글에선가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제자이자 스승이다.라고 적었는데 그 글귀를 되새겨보던 시절에 그녀는 글판에 샘물같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녀의 시는 농경문화에 뿌리박힌 너나들이의 삶에 관심을 쏟았다. 가난해도 삶의 온기를 잃지 않은 이웃을 아꼈고 살뜰한 언어의 결을 매만지듯 괭이질과 호미질로 양식을 구했으며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의 이치에 닿은 삶의 행위를 시에 담았다. 누구든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잣대를 확실히 부러뜨려야겠지만- 입만 열면 정치와 경제를 끄집어내는 말짱 허드렛것들의 치기, 불평등한 현실에 맞서 동료와 결정적인 행동을 보여야 할 때 자신만 쏙 빠지는 노예근성을 그녀의 시는 경멸했다. 대승적 차원이란 말을 입에 달고 범민주적 정의를 내세우다가도, 돈만 보면 전혀 딴 얼굴로 제 잇속에 침이 튀는 일부 지식인의 근천기를 그녀의 시는 단칼에 베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녀의 시는 자본 또는 문명의 취향과 거리를 두었다. 엄경희가 문명의 위장된 편리함과 편안함에 자신을 내어준 자가 치러야 할 대가는 자유의 박탈이다.(『시인동네』, 2018년 9월호)라고 언급한 대목처럼 그녀의 시는 문명의 이중성에 단호했다. 시 바깥에서 함부로 유랑하는 너무 낡았다, 빨리빨리, 미래에 대한 안목이 근시안적이다.라는 담론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늘 새롭고 매사 빠릿빠릿하고 미래에 대한 안목이 거시적이라면 이런 삶의 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이냐, 문명과 자본에 길들여져 살라고 강요하는 노회한 세력에 소용되는 것 아니냐, 그녀의 시는 냉철했다. 도끼로 손전화를 박살낸 여자. 무한경쟁에 짠지가 되어버린 세상일수록 시가 필요하다고 붓끝을 벼리는 여자. 시의 갱신을 잡곡밥알처럼 꼭꼭 씹어 삼키며 한국시의 미래는 바다 밖 강대국에서 오는 게 아니라 죽창과 개펄의 상상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줄 여자. 된장 풀어 끓인 아욱국같이 어진 사람들에게 목마치는 여자. 장끼가 길게 목 빼는 이 너덜겅을 오가며 제 마음 속 죽간에 글씨 새기듯 시를 쓴 여자. 이맛머리 쓸어 올리며 시의 지도(地圖)를 그려갔을 여자. 오늘도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염소 떼와 더불어 시가 된 여자.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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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1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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