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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의 생존법

한동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10년 전인 2009년 11월 22일 KT는 한국 최초로 아이폰 예약 가입을 진행하였다. 그 후 우리들은 하루의 스케줄, 온갖 구매 및 예약서비스, SNS를 통한 지인과의 소통 및 뉴스, 은행 관련 업무, 사진 및 동영상 촬영 등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스마트폰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 앞으로 10년 후는 또 어떻게 바뀔까? 인공지능기술은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켜 단순 반복적인 일들에서 벗어나서 창조적인 업무로 전환하고,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창조적인 노동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지속적인 돌봄과 같은 복지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우미 로봇이나 지능형 의료 시스템을 제공해 주는 인공지능 맞춤형 복지 서비스가 확대 될 것이다. 일예로 일본 도요타에서는 2020년까지 노인들의 생활을 보조하거나 청소나 세탁 등의 가사 업무를 지원하는 가정용 로봇을 개발하고 생산할 것이라고 한다. 또한 자연어 처리 및 사물 인식 능력 등이 향상되면서 인간과 같이 보고, 듣고, 말하는 기능을 갖게 되어 기계와의 소통이 더욱 수월하게 된다. 요사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 인공지능 스피커를 보더라도 아마존(Amazon)의 에코(Echo)라는 스마트 스피커 제품을 이용하여 영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한국에서도 여러 인공지능 스피커들과 농담을 주고 받고 있다. 또 사용자가 필요한 물건을 주문해주거나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여 실시간으로 대응해주는 개인비서 서비스 등도 실현되었다. 허나 즐겁지 만은 않다. 자신과 자녀들의 미래에 어떤 일자리가 남아 있을까? 독일 지멘스(Siemens)의 스마트 공장은 인공지능으로 공장의 기계들과 부품들을 지능적으로 관리하여 제품생산 자동화를 통해 제품 불량률을 0.001% 수준으로 낮추고 에너지 비용을 30% 감소시키고 있다고 하고, 아마존(Amazon)은 창고 정리 자동화 시스템인 키바(Kiva)를 도입하여 물류 시스템 효율이 2-3 배 가량 증가, 총 비용은 20% 정도 감소시켰다고 한다. 인공지능은 단순 노동 업무뿐만 아니라, 변호사나 의사들이 수행하는 고비용의 지적인 업무까지 대체하여 생산성이 대폭 높이고, 판단 오류의 가능성을 줄여가고 있다. 미래 일자리 보고서(WEF) 따르면 현재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 중 65%는 현존하지 않는 직종에 종사하게 될 것이며, 20년 까지 약 710만 개의 입자리가 사라지고 약 2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일자리와 관련된 여러 전망 중에서 인간의 직업 중 45% 정도는 컴퓨터가 대체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완벽한 자동화로 완전히 대체 가능한 직업은 5%에 불과할 것이고, 대부분의 경우는 주로 인공지능과 인간이 협업하는 형태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공 지능사회에서는 일자리를 기계가 대체하여 실업이 발생하게 되지만 인공지능기술의 개발 및 보유로 이익을 얻은 일부 소수 계층으로 부의 집중 현상이 야기되면서 인류 역사의 어느 때 보다도 사회적 양극화 심화될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 군산형 일자리는 바로 이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다.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제 등으로 부의 집중을 완화하고, 인간의 노동을 문화 예술과 같은 창조적인 노동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면, 인간의 삶의 질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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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8 19:35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류희옥 전북문인협회장 한국문학의 발생을 삼국시대 이후 조선 말기까지 살펴보면 모든 문학 장르의 작자, 작품, 배경, 사건 등이 전북지역에서 형성되었다는 역사적 근거와 사실은 명백하다. 첫째, 백제시대 가요를 전북 정읍에 살았던 한 여인이 지어 불렀다는 점이다. 여염집 한 행상인의 부인이 남편의 무사 귀가를 기원하면서― 둘째, 삼국유사 소재 향가 14수 중에서 그 첫 번째 작품으로 삼국시대 백제 30대 무왕의 「서동요」가 있다. 서동설화는 백제 무왕이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를 연모하여 서라벌에 가서 선화공주와의 은밀한 만남과 통정을 4구체 향가 형식의 「서동요」라는 동요를 불러 퍼뜨린 데서부터 시작된다. 셋째, 고려시대 작자와 연대 미상의 노래 가운데 백제 가요의 영향을 받은 「선운산곡」이라는 제목과 해설이 『고려사』속악조와 『증보문헌비고』에 각각 「선운산」「선운산곡」이라는 제목과 해설이 전해오고 있다. 넷째, 고려말엽에 시 형태가 완성된 것으로 추측되는 시조는 천년을 이어오는 한국고유의 정형시이다. (자수율 생략) 우리 고장의 가람 이병기 선생의 혁신풍 시조 형식이다. 지금은 이 혁신풍의 현대 시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다섯째, 조선시대 가사의 효시 작품으로 정읍 태인 사람 불우헌 정극인의 「상춘곡」이 있다. 정극인은 단종이 폐위되자 벼슬을 사퇴하고 고향인 태인에 은거하면서 후진을 양성할 때 「상춘곡」을 지었다고 전한다. 속세를 떠나 자연에 묻혀, 봄 경치를 감상하며 안빈낙도하는 생활을 노래한 가사다. 작품 내용은 서사(序詞)춘흥취락결사의 4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춘곡」의 가풍(歌風)은 이후 송순(宋純)의 「면앙정가(?仰亭歌)」로 이어져 강호가도(江湖歌道)라는 시풍을 형성했다. 여섯째, 판소리 사설 역시 고창의 가객 신재효 씨가 판소리 다섯 바탕의 사설을 정립하였고, 이 판소리 사설이 우리 국문소설의 원류요 모태가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당시대 국문소설의 작자나 연대를 밝히지 않고 전래되어 왔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지만 작자, 작품, 배경 등이 모두 전북지역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일곱째, 김시습의 한문 단편소설 다섯 편, 즉 그의 『금오신화』에 수록된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등의 작품이 있다. 또한 판소리 사설을 모태로 지어진 국문소설 「춘향전」, 「흥부전」등 역시 작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남원지역의 인물, 배경, 사건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이다. 여덟째, 조선 말기 숙종38년(1712년)에 태어난 순창출신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의 유고집 『여암유고(旅菴遺稿)』에 수록된 『시칙(詩則)』은 한시의 원리와 작법을 다룬 한국문학사상 최초의 시 이론서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위와 같은 여덟 가지 항목에 걸쳐 규명해 본 한국문학 발생의 역사적 위엄은 명백한 사실임과 동시에, 전라북도가 한국고전문학 내지는 한국문학의 메카, 즉 한국문학 발생의 본산지요 성지라는 사실로 하여금 전북지역을 문향, 또는 시향이라고 호칭하는 것도 당연한 처사라 하겠다. ※위 글은, 우리 전라북도가 한국문학의 메카라는 당위성이 총체적으로 잘 정리된, 전북문학관 초대 관장이었던 이운룡 박사의 글을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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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1 19:49

전주살이의 첫 새해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새해는 최고의 길몽(吉夢)이자 재복(財福)을 상징하는 돼지가 주인공인 기해년(己亥年)입니다. 서울에서 박물관 생활을 1988년 8월부터 만 30년간 하고, 2018년 7월 1일자로 국립전주박물관 책임자로 발령을 받았고, 주민등록까지 옮겨서 가족과 함께 전주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저에겐 새해가 전주살이의 첫 해입니다. 직접 살기 전에 저에게 전주는 한옥마을과 경기전, 전주양반, 한지, 소리, 서예, 국제영화제, 모악산과 금산사, 비빔밥, 삼천동 막걸리, 콩나물국밥, 모주, 가맥, 남부시장, 수제 초코파이 이었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전주살이를 하면서 이들 전주를 일단 즐기느라고 눈, 코, 입, 귀가 정말로 호강을 했습니다. 전주살이에서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고 잘 한 일은 지난해 음력 7월 초하루 경기전 초삭례에 헌관으로 참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관람객이 아닌 헌관으로 참여했으니 안동 촌놈이 전주에 와서 최고의 예우를 받는 순간이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민속박물관은 내가 근무할 당시에 이들 기관들은 경복궁 안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는 30년 동안 경복궁으로 매일 아침에 입궐하고, 저녁에 퇴궐한다고 평소 자랑했는데, 그 공덕으로 경기전 헌관의 영광이 온 것 같았습니다. 이 날 저는 관을 쓰고, 손에 홀을 들고, 흑초의를 입고, 패옥 후수, 폐슬, 대대, 버선, 제화 등으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완벽하게 갖춰 입은 헌관이 되었습니다. 경기전 안으로 들어가 태조어진 앞에서 분향을 하고, 4배를 올렸다. 저절로 그 마음과 정성, 그 경건함으로 대한민국, 전라북도, 전주, 박물관의 앞날을 기원했습니다. 이 순간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장면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문화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문화는 체험이고 소통입니다. 문화 소비자들은 역사와 문화 현장에서 직접 참여하여 체험하고 체득하기를 원합니다. 참여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진정 사랑하게 됩니다. 겉으로만 보아왔던 경기전에 헌관으로 직접 참석하면서 전주를 알게 되었고, 사랑하게 되었고, 이미 온전하게 전주사람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전주에 새로 부임하는 기관의 책임자들에게 저처럼 경기전 초삭 분향례에 직접 참여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음력 매월 초하루에 행하니 일 년이면 12명의 기관장이 참석할 수 있습니다. 참석한 분들은 아마 전주의 최고 최상의 문화와 만나게 될 것이고, 평생 전주를 마음에 담고 응원할 것입니다. 전주는 신석기시대 농사혁명 이후 몇 천년동안 최첨단 물질인 쌀을 생산하는 오늘날 실리콘밸리 같은 첨단기술 단지였습니다. 오랫동안 풍부한 물산이 생산되고 모이는 곳이었으니 자연스레 다양한 문화유산이 배태되고 전승되어 왔습니다. 인류문화는 이제 농경시대를 지나 산업화, 정보화, 4차산업 등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전주의 미래는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들 변화에 대응할 만한 구심점은 바로 전주의 전통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전주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꿰고, 갈래짓고, 알고, 찾고, 가꾸어야 합니다. 세계사의 변화 소용돌이 속에서 그 중심이 되고 주인공이 되는 핵심에는 전주의 역사와 문화, 예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주살이의 첫 새해를 시작하는 저로서는 국립전주박물관의 새롭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전주로 구현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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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14 19:55

소리판의 속살 다양한 사회적 기능의 비밀코드 해제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전라도는 소리의 고장이다. 동편제 서편제가 전라도 속에 들어있고 수많은 명인명창들의 소리 유전자 또한 전라도 색이 짙다. 그러나 전라도처럼 소리문화의 우월한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일지라도 판소리의 일반적인 이해의 정도는 여타한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소리꾼과 고수와 청중이 한마당에 들어 소리와 장단과 추임새를 가진 공동체놀이 정도라는 것이 그것이다. 판소리 문화는 그러한 외형의 모습 외에 어떤 속살을 가졌을까? 필자는 지난 30여 년 동안 소리꾼들의 후손을 찾아서 집안의 구술문화를 조사해 왔다. 그것들을 정리하고 보니 공통된 것 중에 가장 먼저이고 큰 것은 판소리의 사회적 기능이었다. 그 이야기 중 한 토막을 엮어서 펼쳐보면 이렇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평양감사 환영연도 열 폭 병풍 중에 명창 모흥갑이 능라도 연회장에서 소리하는 장면이 있다. 축하 받을 평양감사를 중심으로 소리꾼과 고수와 청중 거기에 엿장수와 어린 아이까지 보이는 이른바 사농공상, 남녀노소, 추임새가 넘쳐나는 한마당 잔치의 모습이다. 그 소리판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소리꾼은 평양감사 환영을 위한 공연소리 말고도 조선팔도의 고을 사정을 재담 섞어 쏟아냈다. 전라도 어느 고을의 수령은 흉작에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원성이 높다는 이야기에서부터 경상도 어느 고을 백성들의 하늘을 찌르는 원성의 소리, 그리고 충청도 어느 고을에서는 원님의 선정으로 백성들의 칭찬이 자자하다는 등 조선팔도의 고을 실정들이 소리판에서 재담소리로 쏟아졌다. 소리꾼의 입을 통해 소리판으로 쏟아지는 조선팔도 고을들의 사정은 한양에서 평양감사를 따라온 사람에게 기록되었고 훗날 임금에게 보고되었다. 임금은 평양감사 축하 소리판 현장에서 들어온 정보를 토대로 각각의 해당 지방에 암행어사를 보내어 조선팔도에 정의의 법치와 왕권의 준엄함을 실행했다. 그 당시 평양은 어떤 곳이었을까? 평양은 국내와 중국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유통되는 정보 터미널이었다. 중국으로 들어가는 사신과 선비와 장사꾼 그리고 중국에서 조선으로 나오는 물건과 사람들이 지나야 했던 곳이었다. 그러하니 평양은 국내외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의 사회적 정보는 곧 바로 한양으로 보고되었고 그 역할을 수행하던 평양감사는 조선최고의 신뢰를 받은 요직이었다. 그래서 그 좋은 평양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평양감사의 환영 소리판은 자신의 축하연을 빌어 조선의 많은 고을 정보를 한자리에서 살펴보기 위한 비밀업무 수행의 일환이었고 그 매개체는 소리꾼이 쏟아내는 재담소리에 들어 있었다. 조선팔도를 유랑하며 고을의 사정을 가장 잘 알게 된 소리꾼들을 초청하여 벌인 평양 능라도 소리판은 조선팔도 관리들의 비선 정보 수집 처인 셈이었다. 소리꾼들의 또 다른 사회적 역할 하나는 민방의학의 정보를 백성들에게 제공하여 생명과 환자를 구하는 것이었다. 소리꾼들은 조선팔도의 유랑자들이다. 오라는 곳이 많고 가야할 곳도 많은 사람들이었으니 그곳에서마다 사람들이 잘 활용하고 있던 민방의학 정보를 몸에 익혔고 그 정보를 다른 지방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소리꾼에게 물어도 모르는 병은 나을 수 없다는 말이 백성들에게서 생겨났다. 소리꾼들의 후손에게서 들어온 구술에는 소리문화의 사회적 역할이 크게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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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7 19:45

인구 축소 시대, 다른 생각

한동숭 전주대 교수게임콘텐츠학과 전 세계의 출산율은 여성 1명당 평균 2.4명이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은 최소한의 인구 유지를 위한 출산율 2.1명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보다 더해서 2018년 4분기의 경우 0.97명으로 떨어졌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는 지난 13년 동안 200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출산율은 더 떨어지기만 했다. 그래서 최근 출산장려정책보다는 모든 세대의 삶의 질을 보장하고 미래세대에 대한 사회 투자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저출산 고령화 정책의 중심을 옮기기로 했다고 한다. 인구가 줄고, 고령화되면 좋은 점도 있을까? 우선 지구라는 자연과 갈등 없이 잘 지내게 될 것이다. OECD의 자료를 보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 증가할 때마다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배출량은 1.55% 감소하고, 한 연구에 의하면 아이를 한 명 덜 가질 때마다 탄소 발생량이 연간 58t 감소한다고 한다. IPCC 보고서에서처럼 지구 온도상승 억제폭인 1.5도를 달성하려면 2030년에는 지금보다 탄소배출량을 55%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자연적 감소를 이룰 수 있는 좋은 계기이다. 두 번째로 좋은 점은 4차산업혁명에 의한 인공지능과 로봇들로 인한 일자리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AI, 로봇 등이 산업 현장에서 투여되면 더 이상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며, 군대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생산력 발전의 여정에서 인간은 많은 노력을 통해 소비문화의 변화, 공유 가치의 확산, 세대 간 공존의식의 확산 등으로 삶의 방식에 변화를 얻게 될 것이다. 노동하는 인간에서 놀이하는 인간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다. 실제로 청년인구의 감소에 의해 오히려 경제활동인구의 부족을 걱정해야 하는 마당에 건강한 노령층을 80세까지 일을 하도록 하여 청년들의 부양 부담을 감소시키고 세대 간의 융합을 이룰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경제는 발전할까? 국민 소득이 높은 유럽의 나라들은 모두 인구가 많아서 그런가? 대부분의 나라들은 우리보다 인구가 적다. 한 연구에 의하면 출산율 감소에도 경제는 발전했고 나아가 공중 보건 개선, 유아 사망률 하락 등으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출산율이 하락하면서 여자들은 학교에 가고 일을 하면서 아이들 몇 명 낳을지에 대한 가족계획을 세우게 되는 등 여성 교육에 큰 진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생산가능인구의 비율이 높은 것보다는 40~49세 인구의 교육수준이 훨씬 더 한 나라의 경제성장을 좌우한다고 한다고도 한다. 특히나 인공지능 시대에 창의적 인재에 대한 요구는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 경제의 성패가 인구 문제로만 귀착되는 것이 아니라, 충실한 교육의 힘도 중요하였다. 출산률 감소와 고령화는 민족의 측면, 국가의 측면, 경제성장의 측면에서는 비관적인 미래로 보이지만, 인류 보편주의, 기후변화의 완화, 지속가능한 삶의 측면에서는 낙관적인 미래를 보여준다. 외형적 확장에 의한 성장을 도모하기 보다는 사회, 경제, 문화적인 측면에서 내적인 성장을 이루고 각 부분의 사회적 공동체들을 활성화하고 이들의 힘으로 고용 보장과 사회보장을 위한 기반제도를 구축하여 삶의 질을 향상해야 인간 사회와 지구라는 자연이 어우러져 지속가능한 사회를 도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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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1 00:05

우리 음악과 세계문화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 문화를 얘기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말이 획일성이다. 우리 영화를 세계에 알리고, 우리의 문화를 세계 속에 소개하는데 지대한 공이 있는 임권택 감독이 어느 외국 영화제 수상소감으로,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지구촌을 황폐한 꽃밭에 비유하고 이러한 세상을 아름답게 가꿔내는데 영화도 한 몫 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한반도라는 땅의 삶과 문화적 개성을 영화라는 꽃으로 피워내 꽃밭을 채우겠노라고 약속했다 한다. 그 실천으로 만든 영화가 우리나라 영화로는 최초로 칸느 영화제 본선에 올라간 <춘향뎐>이다. 임권택 감독은 이렇게 반문한다. 세계 영화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미국 영화를 아름답고 화려한 장미라 합시다. 그렇다고 장미 일색의 획일적인 꽃밭을 참다운 꽃밭이라 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 장미가 아름답다고 해서 모든 꽃밭이 장미로만 채워진다면 이 얼마나 살풍경(殺風景)한 세상인가? 실제로 그는 우리의 삶과 문화를 담은 영화, <씨받이> <서편제> <취화선> <천년학> 등을 통해 세계적인 감독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세계의 영화를 다양하게 하고 풍성하게 하는데 공을 세우고 있다.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담는 영화를 제작하여 세계의 영화사에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작업은 우리의 문화가 나아갈 길에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바람직한 문화의 구축은 자기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자세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지구촌의 음악이 서구음악 일색으로 통일되었을 때를 상상해 보라. 그 얼마나 삭막한 세상인가? 우리음악이 살아나야 세계의 음악이 풍성해지고 나아가 세계의 문화가 다양성을 띠면서 왕성한 생명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 음악의 위상을 바로 잡는 일은, 대한민국에 국한된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세계사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 음악은 고유성을 유지해야 하고, 새로 창조되는 음악은 전통을 토대로 우리의 맛과 멋을 제대로 녹여낸 작품이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음악이 나아갈 길에 대한 나름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모든 음악은 세계적인 보편성과 개별적인 특수성을 동시에 지닌다. 특수성으로 인해 각 민족의 음악이 구별되고, 고유성이 인정된다. 음악에는 자기다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보편성의 기준이 서양화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 보편성을 강조한 나머지 우리다움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화와 서양화는 구별되어야 한다. 바람직한 현대화는 전통에 근거를 두고 이루어진다. 서양 음악사가 이를 반증한다. 서양 음악에서 전통음악은 단절 없이 이어져 왔다. 이러한 음악정신은 세대를 넘어서 계승되어 왔으며 그들의 새로운 음악은 전승에 뿌리를 두고 탄생한다. 바흐, 헨델,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음악은 400년, 200년 전의 옛 음악이다. 그러나 누구도 예전 음악이기에 현대인에게 부적당한 음악이라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고전의 원형 그대로를 사랑하면서 새로운 음악을 창조해 온 것이다. 우리는 이점을 본 받아야 한다. <溫故而知新-옛것을 익히고 나아가 새로운 것을 안다> 즉, 우리도 고전과 전통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고유성을 바탕으로 보편성이 충족된 음악을 창조하여 문화의 생명인 다양성을 확보하고. 나아가 풍요로운 인류문화 창달에 이바지해야 한다. 이것은 필자의 사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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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24 19:15

아시아 모든 도시의 ‘아시아문화심장터’

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우리는 현대사 속에서 우리 스스로를 제대로 보고 살아오지 못했다. 우리 지역도, 우리나라도, 아시아도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기 보다는 서울 지역, 선진국으로 불리는 다른 나라, 아시아보다는 유럽이나 북미를 바라보며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제야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비로소 우리 지역과 우리나라와 아시아를 바라보게 되었는데, 우리나라가 소속된 아시아 권역에 대해서는 여전히 거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주로 유럽이나 미주지역의 학자들이 아시아를 품평해온 결과를 인용하면서, 우리가 마치 유럽이나 미주 지역의대변인인 것처럼 착각하는 습관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듯하다. 사실 전주문화가 전북과 호남문화의 일부이고, 우리나라 전체문화를 형성하며, 아시아와 세계의 문화를 일으켜 세운다. 전주가 당당해야 하며, 전북과 호남이 당당해야 하고, 대한민국과 아시아가 당당할 때, 다른 권역 즉 아프리카, 유럽, 중남미, 북미, 중동과 함께 세계의 인류문화는 당당한 문화로 평등하게 공존하게 될 것이다. 물론 당당함이 일방적 오만으로 오해되는 지점은 누구라도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아시아는 동맹, 친구라는 의미를 가진 아쑤바(assuva)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5개 권역-동북, 동남, 중앙, 서, 남아시아-안에 각 국가들이 다양한 민족, 언어, 생활양식, 풍속, 종교, 예술 등을 지닌 문화다양성의 보물창고이다. 미래 지구촌의 문화적 풍요와 경제 상생과 평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성취해낼 권역이다. 아시아 각 도시에는 아시아문화심장터가 있다. 그 도시만의 고유성으로 활력을 뿜어내고, 문화를 전달하고 수용한다. 전주 전체 6천만 평 중 구도심 1백만 평은 전라감영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고유문화를 순환시킬 심장터로 기대되고 있다. 전주 전역으로 문화의 활력을 전달하고, 순환시키는 심장터이며,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쉼 없이 시민들의 삶 속에 행복을 불어 넣고, 다른 도시의 문화심장터들과 함께 아시아 문화다양성의 숲에 다다르고, 다시 힘을 합하여 세계 문화다양성의 바다에 도달할 것이다. 전주는 조선 본향의 역사 위에, 우리 고유문화를 펼쳐 보여줄 한글서체인 완판본체, 한옥, 한식, 한복, 판소리, 한국화, 한지, 한국공예, 마당창극 등 유?무형 유산을 종합적으로 간직한 도시이다. 한주먹만한 심장처럼 작지만 강하며, 깊고 넓게 온 몸, 온 아시아,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뜨거운 열기를 전할 것이다. 이 심장터의 박동은 따뜻한 설렘과 두근거림, 쉼, 안정, 감동을 제공하기 위해 심장같이 붉고 힘차게 그러나 소리 없이 쉼 없이 뛸 것이다. 아시아와 세계로 고유문화를 내보내고, 다시 아시아와 세계로부터 다양한 문화를 수용할 것이다. 19세기 이후 잔존하는 서구중심주의와 아시아가 단일하다는 무모한 본질주의 및 물질만능의 골수 이념인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도시 모델이 되는 날을 기다린다. 전통과 동시대 문화의 조화로 시민의 삶이 회복되고, 예술인과 시민, 민간단체와 공무원들이 협치의 정신과 실천으로 상생 경제 및 문화민주주의 도시를 만드는 날까지 문화심장은 멈추지 않으리라. 모든 인간에게 따뜻한 심장이 있듯이, 아시아의 모든 도시에는 문화심장터가 있으니, 그 박동으로 아시아의 문화는 따뜻한 체온을 유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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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7 19:58

시민이 지켜온 역사적 공간, 생명의 숲이 되어야 한다

엄혁용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내가 사는 전주에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전주에서는 처음으로 전국체전을 유치하기 위해 시민들까지 한마음으로 나서 건립된 공간. 바로 전주 종합경기장과 야구장이다. 1963년 2월 착공된 전주 종합경기장은 전주시민들이 뜻을 모은 성금으로 건설비용을 만들었다. 지역의 건설회사가 참여하고 건축에 필요한 자갈과 모래는 전주천에서 가져왔으니 이 공간이야말로 의미 있는 역사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경기장은 전주가 꾸준한 도시 재편을 겪어오는 과정에서도 심장부의 위치를 그대로 지키고 있으니 그만큼 전주시민들에게는 상징적인 공간인 셈이다. 전주에서는 전주 종합경기장이 만들어진 1963년 이래 4회의 전국체전을 치렀고 함께 만들어진 야구장은 1990년부터 전주 최초의 프로야구팀인 쌍방울의 홈그라운드로서 역할을 하였다. 프로야구 경기가 열릴 때면 쌍방울 야구팀 모자를 쓴 수많은 청소년들이 경기장 근처에서 상기된 얼굴로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경기를 기다리던 때가 생각난다. 나도 쌍방울 경기를 보기위해 경기장을 찾아 환호하고 마음을 졸이며 응원했었다. 그때 그 감성을 기억하는 청소년들은 이제 30~40대 성숙한 청년이 되어 지역사회를 이끄는 세대가 되었을 것이다. 이제 전주 시민들이 기억과 감성으로 공유하는, 전주의 얼마 남지 않은 근현대유산인 그 종합경기장과 터가 활용도를 놓고 전주의 중요한 과제로 부상해있다. 재작년 학술대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다녀왔다. 일정이 끝나고 뉴욕 맨해튼의 중심에 위치한 센트럴 파크를 방문했었다. 도심 속에서 느낄 수 없는 여유와 자유로움을 품고 있는 풍광은 그 자체로 감동이어서 미국 전역을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공원으로 꼽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뉴욕의 심장부에 있는 센트럴 파크는 많은 나무와 호수, 그리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30여 점에 가까운 조각품이 공원의 격을 한층 높여 준다. 19세기 뉴욕의 지식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과감히 제안해 미국 최초로 조성된 공립공원인 센트럴 파크는 도시의 한복판에서 자리 잡은 거대한 숲이다. 덕분에 뉴욕은 산소통의 역할뿐만 아니라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을 품어주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 같은 훌륭한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도시 환경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진 상황에서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결국은 뉴욕시민들의 현명한 선택이 가져온 결과일 것이다. 전주에도 이런 훌륭한 도시 공원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전주종합경기장 공간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됐다. 지친 현대인들을 위로해주고 시민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높여주는 문화의 숲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우리에게도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도시재생의 관점에서도 전주의 중심에 있는 종합경기장을 어떻게 활용해야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공간의 큰 프레임을 보존하면서 일부분의 공간을 미술관과 박물관, 문화복합시설이 포함된 생태 숲과 함께 세계적인 규모의 국제조각공원을 만드는 일은 어떨까. 전주역 마중길에서 시작되는 전주의 첫인상과 전북대학교, 덕진공원과 전주동물원 그리고 종합경기장 터를 활용한 문화예술공원으로 이어지는 도시의 풍광을 생각해본다. 1963년 전주 종합경기장이 완공되고 세워진 비문에는 이러한 구절이 적혀있다. 우리의 마음과 마음을 모으고 힘과 정성을 기울여 이 종합경기장을 마련함이니 이 땅의 아들과 딸들이여 우리의 뜻을 영원히 저버리지 말라 그리고 세월과 역사는 이것을 지켜 비와 바람으로 하여 이지러지지 말게 해 다오. 지금은 대부분 작고했을 전주시민들이 후대를 위해 건립한 이 뜻을 온전히 새겨 다시 우리 후대에게 전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공간은 그 틀을 유지하면서 잘 다듬어 가장 가치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시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백번 맞다. 더구나 문화특별시를 지향하고 있는 전주는 무엇보다도 역사와 문화, 예술이 살아 숨 쉬는 특별한 공간들을 잘 보존하고 제대로 살려야 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저급한 개발도시와는 다른 선택이 필요한 이유다. 계획의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면 다시 풀어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꿰어야 한다. 일의 속도를 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다.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큰 화를 불러온다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의 역사에서 충분히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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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택수
  • 2018.12.10 20:33

문화 복지 양극화 시대와 예술인들의 역할

조미애 시인전북시인협회장 화려했던 단풍잎이 지고 난 가지가 무척이나 쓸쓸해 보인다. 길을 멈추고 가까이 다가서니 나무 아래 낙엽들이 수북하다. 아직은 붉은 빛이 남아 햇살에 반짝인다. 조심스레 나뭇잎을 밟아본다 발아래 느껴지는 감촉이 부드러워 마음마저 편안하고 포근해진다.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북풍이 찾아오면 나무는 홀로 추위를 견뎌야할 것이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772년~846년)는 이맘때의 풍경을 <취중대홍엽醉中對紅葉>에서 임풍초추수臨風?秋樹 대주장년인對酒長年人 취모여상엽醉貌如霜葉 수홍불시춘樹紅不是春(가을 끝머리 을씨년스런 나무 술잔 마주하고 앉은 쓸쓸한 노인 취한 모습 서리 맞은 나뭇잎 같아 얼굴 불그레하지만 청춘은 아니라네)라고 읊었다. 초추?秋는 절기상으로 소설과 대설사이에 늦가을 단풍이 초겨울 한설寒雪과의 석별이 못내 아쉬어 발걸음을 쉬 옮기지 못하는 기간을 말한다. 사람이나 나무도 청춘의 시절을 보냈으니 편히 쉬어도 좋은데 옷깃을 여미지 못하고 한 잔 술로 온기를 대신하는 노인의 모습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소득 분배 지표가 지난 2007년 이후 11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어지는 경기침체와 분배제도의 미비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는 현 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문화예술도 그동안 향유하고 누릴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만 기회를 제공한 것은 아닌지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선택의 기회는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하면서 문화예술을 향유하도록 권유하는 것은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지 못한 사람들 또는 집단을 배제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늘날 문화예술분야는 상당부분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에 의해 운영되고 활성화되고 있다. 재정적으로 지원을 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규제하는 것보다 훨씬 적극적인 개입이 된다. 그러므로 문화예술발전을 위해 투입되는 재정은 공적 가치의 추구에 철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적가치를 추구할 경우에는 재원이 투입되는 것이 정당화되지만 특정 개인들의 사적 자유를 신장해주기 위해서 국가 재원이 투입될 경우에는 논란의 여지가 많을 수밖에 없다. 특정 분야에 깊이 있는 지식이나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우리는 전문가라고 한다. 전문가로서 문화예술인은 당연히 권리와 책무가 필요하며 공동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 정치사회경제문화적 경쟁에서 모든 사람들은 똑 같은 조건에서 출발할 수 없다.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사적 자유를 폭 넓게 허용하는 공적 가치가 추구되어야 한다. 사회에는 자유의 허용만으로도 충분한 집단이 있는 반면 제도의 보장에 의해서만 그 자유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문화 복지마저 양극화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오늘날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각종 행사들이 마무리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누릴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새로운 구상을 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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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03 20:20

우리 옷, 한복을 입자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 또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다사다난했던 2018년의 화두를 꼽으라하면 국가적으로는 단연 남북한 평화협상일 것이다. 전라도 입장에서 하나 더 보탠다면 정도 1,000년이 아닐까 한다. 전라도는 조선 팔도 중에서 가장 먼저 생긴 도(道)로 두 번째인 이웃 경상도보다 무려 300여년이나 앞섰다고 한다. 이에 부합하는 전라도의 정신, 문화와 예술은 우리의 정체성이고 나아가 민족의 긍지이며 자랑이다. 이에 말석에서나마 고향의 예술 진흥에 깜냥을 하고 있는 소리꾼으로서 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일상생활에서 한복입기에 앞장서자고 제안합니다. 격식을 갖추는 자리에는 으레 정장(正裝)을 차리고 오라는 주문이 있고, 사람들은 당연히 양복 또는 양장을 차리고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원피스나 투피스를 입어야만 도리를 다 한 것인 양 떳떳해 하고 만족해한다. 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다. 군인의 정장은 군복이고. 의사나 간호사의 정장은 가운이며, 교복이 있다면 학생의 정장은 교복이다. 왜냐하면 정장은 격식이나 의식에 맞게 차리는 복장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의 정장은 양복과 양장이겠지만, 이 땅의 일반인에게 있어서 두루 통하는 정식의 복장, 이 땅의 정장은 우리 옷, 한복이다. 모두가 우리 옷, 한복은 아름답다고 자랑한다. 그런데 잘 입지 않는다. 평상시에 입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젊은이의 경우, 청바지는 한 두 벌씩 갖추어 놓고 산다. 그러나 우리 옷, 한복 한 벌을 제대로 갖춘 젊은이는 별로 없다. 어른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결혼식 때 해 입은 한 벌로 일생을 살다가 자녀들 결혼이나 본인 칠순 때 정도에 한 번 더 입는 옷이 한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다행히 요즘 전주한옥마을에 가면 비록 1회성이긴 하지만 각양각색의 한복을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띈다. 패션 감각을 얘기하고, 옷 입기의 격식과 교양, 또는 매너를 얘기하지만 우리 옷, 한복의 격식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서양의 의생활에 관계되는 절차와 격식을 모르면 부끄러워한다. 교양과 지식의 척도가 서양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사대주의이다. 중동이나 동남아시아의 정치인에게서 자기 나라 고유의상을 보게 되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다. 국제회의 등 외교적인 무대에서 그들은 너무나 당당하게 자기나라의 고유한 입성을 정장으로 입고 있으며 다른 나라 사람에게 권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인들은 어떠한가? 우리 옷을 입은 정치인이나 외교관 찾기가 힘들다. 만약 한복을 입고 정사를 살핀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민족과 역사를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국회의 일상화된 싸움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새해 첫날, 의회 개원식, 국경일에 공인들을 비롯한 각계 지도층들이 한복을 갖추어 입으면 입을수록 이에 따른 책임감과 역사의식이 깊어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복장은 인간의 행동을 규정하고 사고의 틀을 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한복을 입는 것 그것은 대한민국의 긍지와 자존감을 세우는 일이다. 한복 갖춰 입기 운동은 전라도가 선도해야 한다. 전라도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전라도는 우리의 정신, 우리의 문화, 우리 예술의 본향(本鄕)이기 때문이다. 명절날, 국경일 등 뜻을 새겨야 하는 기념일에 격식있게 차려 입은 한복자락이 넘실거리는 전라도의 거리거리를 흐뭇하게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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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26 20:01

전주정신 ‘꽃심’과 문화시민

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전주에는 시민의 발걸음을 기다리는 전주역사박물관과 최명희 문학관이 있다. 최명희 문학관이 기리고 있는 최명희 작가는 장편소설 혼불에서 세월이 가도 결코 버릴 수 없는 꿈의 꽃심을 지닌 땅. 그 꿈은 지배자에게 근(根)이 깊은 목의 가시와도 같아서 기어이 뽑아 내버리고자 박해, 냉대, 소외의 갖은 방법을 다하게 했다.라고 온전한 고을 전주가 지닌 꿈의 꽃심을 이야기 했다. 이 꽃심 안에 깊이 내장되어 존재해 온 꿈의 힘은 이제 21세기 전주정신으로 되살아났다. 21세기 전주 사람들이 이 꽃심을 전주정신으로 합의해 낸 것이다. 정신 혹은 공동체 등의 개념들이 관심 있는 사람들의 합의에 의해 존속되며, 어느 시점에서 그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전승되고 혹은 소멸되는 것이므로 이 전주정신이 어떻게 생존을 지속해나갈 지, 얼마나 개화할 지는 이제 우리들의 손에 달렸다. 전주시는 2009년 제10회 전주학 학술대회에서 전주정신 대토론회를 개최한 이후 2015년 2월에 전주정신정립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총 23회의 회의와 워크숍을 열었으며, 시민들을 중심으로 4천여 부의 설문조사도 실시했다. 전공분야와 세대 간의 차이 등에 따른 각기 다른 의견들을 조율하여 2016년 6월 9일에는 드디어 전주정신이 선언되었고, 현재 전주역사박물관은 시민들과 아동, 전입자들과도 이 전주정신을 공유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주정신을 도출하기 위하여 견지했던 4대 원칙은 역사성, 보편성, 현재성, 미래성이었다. 즉 전주 역사의 지속적 특질 속에서 전주정신이 발굴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전주정신은 일부 계층의 것이 아닌 시민 보편적인 것이어야 하고, 전주 시민들의 현재 삶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어야 하며, 미래를 진취적으로 재창조해나갈 특징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정립된 전주정신도 네 가지로 모아졌다. 타인을 포용하며 함께 하는 대동정신, 문화예술을 애호하는 풍류정신, 의로움과 바름을 지키는 올곧음정신, 그리고 전통을 토대로 새로운 기회와 문화를 창출해나가는 창신정신이다. 이 네 가지의 전주정신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모두 함께 풍류와 올곧음으로 새로운 세상과 문화를 창출해나간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전주정신에는 21세기의 사회가 원하는 인간상, 21세기의 평화와 공존을 실천할 수 있는 세계관이 잘 함축되어 있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꽃심 정신, 즉 전주정신을 실천하는 시민인가라고 풀어서 자문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매일매일 사람들과 같이 가는가? 바르게 가는가? 새롭게 가는가? 즐기며 가는가? 전주정신을 현실 속에서 발현하거나 행동으로 실천해내기 어려운 이유는 아마도 혼자 가는 것이 편하고, 바르게 가지 않는 것이 편하고, 하던 일이 편하고, 즐기지 않는 것이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같이 가려면 다른 사람의 다른 의견을 듣고 조정해야 하며, 바르게 가려면 때로는 손해를 무릅써야 하고, 새롭게 일을 하려면 새로운 고민을 해야 하고, 즐기려면 즐길 것을 찾고 생각하며 그에 따른 시간 관리도 해야 하니 즐기는 것을 포기하는 게 편할 수 있다. 불편하더라도 같이 하고, 바른 길을 찾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이 모든 과정에서 문화예술을 즐기는 지혜를 발휘한다면 결국 전주정신은 문화시민을 만들고, 그 문화시민들은 온전한 고을 전주에 계속적으로 활력을 불어 넣고, 그 활력의 날개 짓은 모두 같이 행복할 전라북도, 대한민국, 아시아, 지구촌 세계를 향해 훈훈한 훈풍으로 다가가리라는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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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19 20:34

전주시립미술관 건립, 이제 행정이 손을 뻗어 이끌어야 한다

엄혁용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예술과 문화 수준은 도시의 힘이다. 문화 수준이 한 도시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된 것은 그를 증명한다. 정부도 문화예술융성을 과제로 제시하고 문화 기본법과 지역 문화진흥법을 제정해 국민의 문화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환경 조성에 나섰다. 덕분에 시민들의 문화향유권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이제 자치단체마다 큰 목표가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전주 역시 그런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공장의 가동이 중단 된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카세트 공장을 개조하여 예술가 스튜디오와 전시공간, 시민들을 위한 문화시설로 탈바꿈시킨 팔복예술공장도 그런 노력의 결실이다. 팔복동 주민 뿐 아니라 시민들과 관광객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는 팔복예술공장의 등장은 도시재생의 새로운 성과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역할이 기대된다. 2017년 5월 개통된 전주역 앞의 첫마중길 도 전주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마중길이 조성된 초기에는 온갖 비판과 우려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비판은 호감으로 변하고 지금은 전주시민과 전주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전주시만의 특색 있는 첫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무엇보다 큰 가능성과 힘을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의 영향력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도시의 홍보, 관광수입의 극대화 같은 대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실제 거주하고 있는 시민들의 문화를 통한 삶의 질을 높이는 목적으로써 문화향유의 역할이 가능한 공간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근래 전주에도 문화예술 발전의 바탕이 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다양한 통로로 문을 열고 있다. 문화공간의 확대는 시민들의 문화 향유권 확대로 이어지기 마련이니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아쉬움이 있다. 문화예술의 뿌리가 탄탄한 전주에 아직도 시립미술관이 없는 환경이다. 전북에는 공립미술이 적지 않다. 완주군 모악산 밑에 자리하고 있는 전북도립미술관, 무주의 최북미술관, 순창의 옥천골미술관, 정읍의 정읍시립미술관, 그리고 올해 문을 연 남원의 김병종미술관이다. 정읍의 시립미술관은 도서관으로 활용됐던 낡은 건물을 미술관으로 만든 예다. 정읍도 전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밀도를 갖고 있지만, 정읍시민들의 시립미술관을 활용하고 마주하는 자세는 그 어떤 도시의 시민들보다도 자부심이 넘친다. 공립미술관을 갖고 있는 도시의 시민들은 다양한 기획 전시를 통해 미술이 갖는 힘을 향유하고 교육을 통해 감성과 자기 계발의 기회를 갖는다. 그만큼 예술에 대한 자긍심도 크기 마련이다. 최근 들어 전주에도 사립미술관과 갤러리가 늘고 있지만 사설 공간과 공립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전주에는 다행히 시립미술관으로 활용할만한 좋은 공간이 많이 있다. 혁신도시로 이주예정인 전주 법원과 평화동에 있는 교도소도 그 중 하나다. 이들 공간은 모두 나름의 특색을 갖고 있는 전주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 공간을 활용하여 전주시민들에게 시립미술관이란 선물을 안겨주면 어떨까. 사실, 전주의 시립미술관 건립추진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있어 왔다. 2008년에는 전주미술협회가 전주지역과 미술에 긍정적인 역할을 도모하고자 전주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시의원과 문화예술인들도 꾸준히 전주시립미술관 건립을 촉구해왔다. 미술관 건립은 문화예술의 창작과 보급, 시민의 문화예술지원 교류와 전주만의 대표문화 콘텐츠 발굴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전주시의 문화정책에 맞게 거시적인 관점에서 제안되고 추진되는 것이 맞다. 전주시립미술관 건립이 문화정책 우선 사업으로 논의되고 추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제는 전주시가 미술관 건립을 위해 나서 손을 뻗어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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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12 19:31

융합의 도시! 아름답게 꽃 피울 문화예술

조미애 시인전북시인협회장 벽에는 그림이 걸려 있고 그 아래 들꽃이 있는 전시장에 있었다.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상상 속으로 침잠하는 발걸음을 붙드는 것은 옹기그릇에 핀 작은 꽃들이었다. 여류 문인들은 그림과 들꽃이 전시된 미술관에서 문학세미나를 가졌다. 문학과 미술이 꽃밭에서 놀던 날이었다. 문학이 미술과 음악, 마임 등과 융합하여 더욱 아름다운 행사로 기억되는 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도해 온 일이지만 몇 번의 경우는 지금도 잊히지 않고 회자되고 있다. 최근 전북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전주익산완주산업단지와 국가식품클러스터 그리고 민간육종단지 등이 국가혁신융복합단지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특정 지역에 대한 투자가 집중하여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균형발전 전략 추진을 위해 지역성장의 거점으로 중점 육성한다는 것인데 특히 융복합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간다. 융합融合이란 본래 둘 이상의 사물을 섞거나 조화시켜 하나로 합한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몇 년 전부터 교육 및 사회 각 분야에서 학문간, 교과간, 교과내 융합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였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미 과학기술분야 우수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 스템(STEM)교육을, 독일에서는 민트(MINT)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학교육 분야에서 STEM에 인문예술(Arts) 요소를 덧붙여 스팀(STEAM)이라고 불리는 융합인재교육을 하고 있다. 독일의 민트(MINT)교육은 수학(Mathematik), 정보통신(Informatik), 자연과학(Naturwissenschaft), 기술(Technik)교육을 강화하는 것으로 정치, 경제, 사회적 요구에 의한 정책이다. 미국의 스템(STEM)은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 공학(Engineering), 수학(Mathematics) 등 4개 분야 각각에 중점을 두는 교육이다. 우리나라의 융합인재교육은 학문적인 영역에 예술 요소를 덧붙임으로써 창의성을 길러 4차 산업혁명시대를 대비하는데 그 목표가 있다. 융합(convergence)은 통섭(consilience)과 밀접하게 연계된다. 통섭通涉이란 막힘이 없이 여러 사물에 두루 통한다는 것으로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는 의미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범학문적 연구를 일컫는다.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이 1998년에 『통섭: 지식의 대통합(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이라는 저서를 출간하면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용어다. 이렇듯 교육 분야에서 시작한 융합과 통섭이 융복합단지라는 이름으로 이제 도시 발전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초록이 사라지면서 단풍이 든 가로수 길에는 낭만이 가득하다. 바람이 불고 지나갈 때마다 노란 은행잎이 춤을 추듯 날아오른다. 이맘때가 되면 낙엽이 수북한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걷다가 잠시 멈춰 깊은 숨을 들이마시면 서늘한 바람이 몸속까지 청량해지는 기분이다. 통섭이나 융합은 가을날 단풍이 든 나무와 숲의 모습을 닮았다. 벌써부터 새롭게 변화할 국가혁신클러스터와 혁신도시에 어떻게 문화예술이 접목될지 궁금하다. 거리에 심을 나무 한 그루도 계획단계부터 철저히 준비함으로써 융합의 도시에서 인문학적 요소와 문화예술이 함께 어우러짐으로써 아름다운 숲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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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05 19:39

진짜 보수(保守)에 관하여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 보수의 수준이 높아져야 대한민국의 수준이 높아진다. 이 말은 정치판에서 비롯된 말이지만 전통예술에 종사하는 필자는 이 명제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왜냐 하면 보수는 합의되고 검증된 전통을 지키는 것이고, 보수주의자는 옛것을 사랑하면서 옛 질서를 옹호하고 오래된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보수주의자는 남의 나라보다 자기 나라를 사랑합니다. 다른 민족의 이익보다는 자기 민족의 이익을 우선하는 자들로 민족의 이익에 외골수로 집착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내 민족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다른 민족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우리나라 보수의 표본으로 김구선생을 꼽습니다. 김구선생님은 <나의 소원>에서 우리 민족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 한다. 이러한 김구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는 참된 보수주의자들이 많아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보수주의자는 자신의 땅에서 싹트고 배양된 의식주(衣食住)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역사의 터전이요 삶의 토대인 우리의 산하를 먼저 배우고 익히는 것이 전통이고 보수이기 때문입니다. 정신과 문화는 풍토를 기반으로 탄생하기에 보수는 한 알의 곡식에서도 한 소절 가락에서도 이 땅과 관련된 의미를 찾을 줄 알아야 하고 국악, 한식, 한옥, 한복, 등 우리의 전통문화와 예술이 왜 계승되고 발전되어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설득력 있게 자신의 논리로 펼칠 줄 알아야 합니다. 필자가 생각하는 참되고도 멋진 보수의 덕목은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함은 물론 우리의 말결을 잘 살려 글을 짓고, 고전을 즐겨 읽으며 시의적절하게 고전의 한 구절을 낭송하면서 삶을 가다듬고 그 뜻을 오늘에 맞게 새길 줄 아는 사람, 한복을 즐겨 입으며 명절 때면 멋지게 옷고름을 매고 먼저 어른들을 찾아 인사드리고 젊은이들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 나이 어린 사람들을 존대하려고 애쓰는 사람, 공경의 자세가 몸에 배어있으며 <단가(短歌)> 한 곡이나 판소리 한 대목쯤 멋들어지게 불러 재끼며 우리 국악을 듣고 추임새 한 자락으로 흥을 돋울 수 있는 사람, 등.. 이러한 덕목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진정한 보수, 멋진 보수주의자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보수는 통일을 꿈꾸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북이 통일을 꿈꾸는데 있어 가장 시급한 문제는 오랜 세월 분단으로 인해 단절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참된 보수라면 언어와 풍속, 영토를 공유했던 우리 역사에 대한 그리움과 열망을 지니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수의 특징 중의 하나가 자기의 원칙을 우선하는 단순성입니다. 따라서 보수주의자는 민족이 하나 되면 힘이 생기고, 나뉘면 힘이 약해진다는 선명한 사실에만 집중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단극복에 앞장 서는 사람이 참된 보수일 것입니다. 이런 보수주의자들이 더 많아지기를 진정으로 희망합니다. 마무리 삼아 시사(示唆) 하는 바가 큰 언어유희를 하나 소개합니다. 잘 못된 것을 손보며 수리하는 것이 보수이고, 다른 사람보다 부지런히 보수(補修)하고 또 보수하는 진짜 보수가 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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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29 19:48

고령층도 문화로 행복한 전라북도 만들기

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우리나라는 2017년 하반기에 이미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2000년에 7%의 고령인구로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17년 만에 14%의 고령사회가 되었다. 일본이 25년 만에 고령사회에 된 것에 비해서 8년을 앞당겼다.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고 미덕이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오래 살고 싶지 않아도, 아프고 싶지 않아도, 아프면서까지 오래 살 수밖에 없는 21세기가 되었다. 20세기 중엽에는 인구 증가가 가속화되면서 인구 과잉에 대처하여 출산율을 낮추기 위한 운동을 전개했지만, 이 21세기에는 저출산율로 인해 오히려 생산인구가 부족한 것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걱정의 전제는 고령층은 비생산인구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령층이 비생산인구라는 것은 분명 차별적이고 신체능력을 중심으로 한 편의적 관점이다. 고령층에게도 여전히 일자리는 최우선 과제이며, 그래서 문화분야에서도 고령층에 대한 문화 일자리 혹은 문화 일거리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일자리 외에도 고령층은 많은 고민을 안고 있다. 사실 고령층의 생활패턴이나 희망사항은 무척 다양하다. 즉 연령별, 성별, 지역별, 경제력별로 고령층은 조금씩 다른 생각과 다른 꿈을 꾼다. 연령도 65세, 70세, 75세, 80세, 85세 등 각각에 따라 삶의 방식이 다르고, 여성과 남성 고령층의 희망도 다르고, 경제력 여부에 따라서도 삶에서 차지하는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또한 대도시 혹은 소도시 혹은 농촌 등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서 문화프로그램에 대한 접근성도 달라진다. 그래서 이 고령층의 다름에 따른 문화정책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방송 등에서는 고령층을 한 두부류의 집단으로 취급한다. 늙고 느리며, 고집 세고 불평이 많으며 수시로 울컥 화를 내어 불쌍하지만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태도를 지닌 존재, 그리고 자식들을 무척 그리워하면서도 표현을 못하는 존재들로 묘사한다. 부분적으로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고령층은 방송에서와 같은 부정적인 스테레오 타입으로만 살지 않는다. 따라서 방송계나 시민단체 등에서는 고령층 모니터단을 조직해서 부정적인 스테레오 타입이 유포되고 강화되는 지점을 찾아내고 조정해야 한다. 인생의 산 경험이 풍부한 고령층이 이 사회의 멘토가 될 뿐 아니라, 스스로 즐기는 자율적이고 문화적인 존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층으로 구성된 전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취타대나 농악대의 눈부신 활동, 고령층 직원들이 직접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본 오사카 고령대학, 한국문화원연합회의 어르신문화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진 유명인들의 사례들은 고령층만이 아니라 모든 세대들이 문화적 삶을 영위하는 데 모범 혹은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전국에 약 31개의 작은영화관이 있는데, 전라북도 지역은 9개로 가장 많은 작은 영화관을 가지고 있다. 전라북도 지역이 시민들에 대한 문화서비스를 중시하고 있다는 바람직한 증명인 셈이다. 이러한 작은영화관에서 멀리 떨어진 고령층이 접근할 수 있도록 셔틀버스가 정기적으로 제공되고, 고령층이 즐겨 가는 경로당에서 식사 나눔과 함께 외부의 문화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이동수단을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문화정책이 마련된다면 농촌과 산촌 지역 고령층의 삶에 활력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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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22 17:56

다시 찾고 싶은 전주의 특별한 문화 벨트를 꿈꾸며

엄혁용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최근, 심심치 않게 주변 사람들로부터 전주한옥마을 방문객들의 숫자가 줄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올해 극심했던 여름의 불볕더위로 전주를 찾는 관광객 숫자가 일시적으로 줄어든 측면도 있겠으나 여름이 지나고 여행하기 좋은 가을에도 회복세가 보이지 않는다니 원인을 찾고 대책을 모색하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사실 전주를 찾는 관광객 감소는 수년전부터 예견되었던 부분이다. 예전처럼 전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한옥마을을 둘러보고 정작 전주에서는 숙박하지 않고 다른 도시로 떠나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은 안타깝다. 전주를 찾는 여행객들의 상당수가 한옥마을을 끝으로 전주 여행을 마감하는 상황은 전주가 한옥마을 이상의 여행콘텐츠가 없거나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여행은 세대를 초월해 남녀노소 누구나 만족감을 얻어야 좋은 여행이 될 수 있다. 태국 촌부리주의 작은 해양도시인 파타야는 이름 없는 작은 어촌에 불과하던 곳이었지만 1961년, 베트남전쟁의 휴가병들을 위한 휴양지로 개발되면서 아시아의 대표적인 휴양지가 됐다. 지금은 해마다 5백만 명이 넘는 해외 관광객들과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인파로 북적이는 관광도시가 되었으니 주목을 끌만하다. 지난여름 필자가 가족과 함께 찾았던 파타야는 특별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도 빼어났지만 여느 휴양지 부럽지 않은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한 이 작은 섬도시의 여행은 매력적이었다. 특히 초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테마파크에서 우리는 아주 훌륭한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공간이 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즐겁고 신비한 체험을 할 수 있었던 증강현실, 트릭아트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7년 동안 문 닫고 방치되었던 나이트클럽을 활용, 지난 2013년 1200평 규모의 세계에서 가장 큰 증강현실-트릭아트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트릭아트미술관은 이후 태국뿐 아니라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그리고 최근에는 호주에도 설립돼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이들 미술관이 오랜 건물이나 폐공장을 허물지 않고 재생의 관점으로 접근해 예술가들이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전라남도 순천은 2017년부터 지역의 어린이와 전문가, 그리고 행정기관이 함께 손잡고 만든 신개념의 놀이터인 기적의 놀이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 놀이터는 기존의 틀에 박힌 시설물에서 벗어나 자연소재를 사용해 어린이들에게 도전과 모험정신을 기를 수 있도록 조성된 것인데 개장 이후 전국 200여개의 기관 단체가 벤치마킹을 다녀가면서 시작과 함께 전국적 관광명소가 되었다. 순천시는 2020년까지 10개의 기적의 놀이터 완성을 목표로 어린이와 부모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나간다는 계획이라니 이 또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파타야나 순천의 예를 보면서 문득 전주에는 진정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 있는가 묻게 된다. 사실 전주는 그 어느 도시보다도 풍부한 유형무형의 문화자산이 많다. 어린이를 위한 공공시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도 적지 않다. 전주시 팔복동의 폐공장 터와 철길을 보자. 이 공간을 활용하여 전주의 예술가들과 행정기관이 손을 잡고 아트 플레이그라운드를 만들어내면 어떨까. 전주만의 특색 있는 어린이 전용 쉼터와 놀이터는 전주시민 뿐 아니라 전주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도 큰 선물이 되지 않을까. 전주가 다양한 연령대의 방문객들이 즐기고 의미 있는 여행지가 될 수 있으려면 전주만의 문화 벨트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편향된 콘텐츠와 다양함의 부재는 건강한 여행문화를 만들어 나가려는 전주의 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친구들과 가족들과 전주를 찾은 여행객들이 하루 더 머물다 가고 싶은 전주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전주는 콘텐츠의 다양성과 깊이를 더하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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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15 20:29

피고 지는 데는 선후가 있어도 모두가 가을꽃

조미애 시인전북시인협회장 서늘한 바람에 잠이 깼다. 문이 열려 있나 싶어 자리에서 일어서니 유리창에 부딪힌 햇살에 눈이 부시다. 문틈으로 새어 든 바람마저 차게 느껴지는 것은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는 것이리.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곱게 피던 나팔꽃이 지고 그 자리에는 왕관모양으로 씨가 들어섰다. 초록의 잎은 갈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날이 선선해지면서 더위에 자라지 못했던 화초들이 늦게 싹이 나고 줄기도 굵어지더니 하얗게 고추 꽃이 피고 연이어 풍선덩굴과 분꽃도 피었다. 지난여름 폭염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피어났을 것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이제라도 꽃을 선물해준 그들이 고맙다. 가을이 되면 상허 이태준의 수필이 생각난다. 그는 과꽃은 가을이 올 때 피고 국화는 가을이 갈 때 이운다. 피고 지는 데는 선후가 있되 다 마찬가지 가을꽃이다국화를 위해서는 가을밤도 길지 못하다. 꽃이 이울기를 못 기다려 물이 언다. 윗목에 들여놓고 덧문을 닫으면 방안은 더욱 향기롭고 품지는 못하되 꽃과 더불어 누울 수 있는 것, 가을밤의 호사다.라고 했다. 상상만으로도 풍경들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지난밤에 찬비를 맞으며 돌아온 우산이다. 아침에 나와 보니 거죽에 조그만 나뭇잎 두엇이 아직 젖은 채 붙어 있다. 아마 문간에 선 대추나무 가지를 스치고 들어온 때문이리라. 그러나 스친다고 나뭇잎이 왜 떨어지랴 하고 보니 벌써 누릇누릇 익은 낙엽이 아닌가! 글에서 가을날의 온도를 느낄 수 있다. 몇 해 전에 나팔꽃씨 몇 개를 가져와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 심었는데 잘 자라서 여름이면 울창한 숲이 되어 꽃그늘을 이루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노란 꽃이 피었던 분꽃을 살펴보니 어느새 꽃이 진 자리에 씨가 맺혀있다. 풍선덩굴도 올해 두 개가 열렸다. 아직은 녹색이지만 탱탱한 햇살을 받고나면 잘 익은 씨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씨를 받게 되면 분양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문화행사가 많은 가을이다. 지역문화축제를 비롯하여 음악, 미술, 무용 등의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소식을 들을 때면 가끔은 행사를 위한 행사인 것 같기도 하고 지나치게 요란한 것이 시끄럽고 버겁기도 하지만 풍성한 볼거리가 있고 참여하는 사람들의 웃음이 있어서 좋다. 다만 해마다 계속되는 축제나 문화행사가 모든 사람을 위한 자리가 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축제와 행사가 제한된 소수 사람들만의 잔치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모름지기 축제라면 지역의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하여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시간과 공간을 배려함으로써 진정한 마을 굿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문단의 가을은 꽃밭처럼 풍성하다. 각각의 색깔과 향기를 지닌 책들이 출판되고 있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은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자세히 보면 예쁜 작은 꽃이다. 작가의 맑고 곧은 정신이 담긴 씨앗이면 충분하다. 세상에 하고 많은 꽃 중에서 나와 인연이 되고 씨앗을 맺어 더욱 소중한 것처럼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황량한 들판이면 어떠하리. 동인지 출간과 문학상 소식들이 꽃씨가 되어 날아온다. 문단의 주인은 좋은 작품을 쓰는 사람! 꽃밭에서 꽃들이 피고 지는 것처럼 피고 지는 데에는 선후가 있어도 모두가 가을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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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08 19:24

이 땅의 음악은 국악이다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 원장 이 땅의 음악은 마땅히 국악이어야 하고, 국악이 이 나라 음악의 주인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인가 음악이라는 말이 서양음악을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국악이라는 말은 이러한 음악과는 별개의 장르를 뜻하는, 협의의 개념으로 쓰이면서 가치에 편견이 매겨져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양악은 고급스럽고 우월한 것이며 국악은 진부하고 무언가가 부족한 변방의 음악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하는 현실이며 주객이 전도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 밥 먹는다 라고 하면 당연히 한식(韓食)으로 이해하고 말한다라고 하면 당연히 국어인 우리말을 하는 것으로 이해되듯이, 당연히 음악이라는 말은 우리음악을 뜻해야 옳다. 서양을 통해 수입된 음악은 서양음악, 양악(洋樂)으로 불려야하고 음악을 한다고 하면 당연히 우리음악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중심의 사고 체계와 의식의 각성이 있어야 한다. 몇 해 전 이탈리아에서 <수궁가>완창을 한적이 있다. 그때 성악을 공부하고자 유학을 온 학생한테 들은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법 노래를 잘 한다고 인정받던 학생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학생들 틈에서 뒤떨어지지 않게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어느 한 학기를 마치고, 동료학생들끼리 종강 파티에서 각자 자기나라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그는 자기 순서에서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혼신의 힘을 다해 불렀다고 한다. 노래를 마치고 많은 박수를 기대했는데 생각만큼 환호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서운함을 달래면서 한참을 서 있었는데 앙코르가 뒤늦게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내 노래에 앙콜이 없다니 그게 말이나 될 법이냐 하면서 미소로 신청곡을 받았는데, 그들의 요청인즉 너희 나라 노래를 불러보라고 청하더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리운 금강산은 코리아의 노래가 아니었다. 그들의 귀에 그 노래는 서양의 노래이었던 것이다. 아! 코리아의 노래, 무엇이 한국의 노래란 말인가?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한국의 색깔과 냄새를 느끼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십 수 년을 먹고 자랐지만 막상 부르려고 찾아보니 아는 노래가 없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이 땅에 태어난 우리는 한국말을 먼저 배우고, 우리의 음식을 먼저 먹으면서 자랐지만 음악의 경우는 정반대였다. 서양음악을 음악으로 알고 먼저 듣고 배우고, 또 불렀던 것이다. 그 학생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망설이다 궁여지책으로 찾아 부른 노래가 삼천만의 노래,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본조 아리랑>....... 그리 큰 공력을 들여 부른 것은 아니었지만, 그 때서야 그들은 제대로 된 노래를 감상했다는 듯 만족해하면서 원더풀! 을 외치더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참으로 괴로웠다고 한다. 왜냐하면 또 다시 시키면 부를 노래가 없었기 때문에 매우 참담했었다고 나에게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서양음악은 수십 개 씩 소화하면서 민요 하나 제대로 부를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나라,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는 현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에서 우리 음악을 하는 것이 유별나고 특별한 일을 하는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이런 식의 척박한 풍토가 이어지는 한 우리의 정체성은 확립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전개될 치열한 문화전쟁에서 살아남지 못 할 것이다. 음악의 주체는 국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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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01 19:36

‘첫마중길’을 걷다, 전주의 첫인상을 보다

엄혁용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전주역 앞 도로에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2015년부터 전주시가 도시재생사업과 지역 활성화를 위해 추진해 만든 길 위의 길, 첫마중길이다. 전주역은 전주를 찾는 많은 여행객이 전주를 처음 마주하게 되는 첫 관문이다. 역을 빠져나와 만나게 되는 눈 앞 풍경은 자연히 전주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처음 첫마중길이 만들어졌을 때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찬반 여론에 비판과 호평이 부딪쳤다. 그러나 1년여가 지난 지금 첫마중길은 전주만의 문화 예술적인 특색을 보여줄 수 있는 명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전주를 찾는 여행객에게는 아름다운 첫인상을, 전주시민들에게는 쉼터기능을 더해 도시 속의 자연과 문화를 어우르는 생태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전주시의 도시 철학이 이제 비로소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무엇보다도 역 앞을 무섭게 달렸던 차량들의 속도 변화가 반갑게 느껴진다. 도시지역 차량 제한속도가 10km 감소하면 교통사고 비율이 24%나 감소한다는 국가교통안전연구센터의 연구 결과를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중심이 되는 안전한 도로와 길을 갖추는 일은 좋은 도시가 갖추어야할 덕목이다. 실제 도심의 운전 제한속도를 기존보다 10km로 낮추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다. 전주의 첫마중길처럼 도시의 역과 터미널 앞에 예술광장과 문화거리를 조성해 활용하고 있는 세계적 도시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6년 연속 1위를 차지한 호주의 멜버른이 대표적 예다. 멜버른시가 플린더스 스트리트역 앞에 조성한 페데레이션 스퀘어는 여행객들이 편안하게 휴식하며 교류하는 만남의 장소로 이름이 높다. 필자 역시 멜버른을 처음 방문했을 때 페데레이션 스퀘어에 걸터앉아 눈앞에 펼쳐진 야라 강변을 보며 멜버른 여행 계획을 세우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뉴욕도 포드 어소리티 터미널 근처에 타임스퀘어가 있다. 이 곳 역시 대중교통을 이용한 많은 방문객에게 뉴욕시만의 열정적이고 활기찬 첫인상을 전하는 공간이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역 앞의 문화공간도 수많은 여행객들에게 부다페스트를 아름답고 따뜻한 도시로 기억하게 하는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전주시는 그동안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문화예술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첫마중길, 팔복문화공장, 풍남문과 객사를 잇는 전라감영 테마거리 등 전주시의 외관을 다듬는 일이나 전주시 곳곳의 소중한 이야기를 복원하고 발굴해 시민들과 여행객들이 함께 공유하는 공공재개념으로서 활용하는 사업들이다. 작년 7월, 2017아시아 도시경관상에 전주의 첫마중길이 선정됐다. 유엔 해비타트 후쿠오카 본부와 아시아 인간주거환경협회, 아시아경관디자인학회, 후쿠오카 아시아 도시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2017아시아 도시경관상은 도시경관 형성에 훌륭한 실적을 쌓아 널리 모범이 될 수 있는 사업을 선정해 수상하는 상이다. 조건 없는 부를 축적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질이 더 큰 화두로 자리 잡은 지금, 첫마중길은 전주시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좋은 기준이 됐다. 그러나 아직 전주시가 세계적인 문화예술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첫마중길처럼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쉼터의 기능을 가진 야외문화공간을 늘려나가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뉴욕에 오래된 기찻길을 사람들이 걷고 쉴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든 하이라인이 있다면 우리에겐 팔복동 공단 철로가 있다. 전주를 찾는 여행객들이 첫마중길에서 아름다운 첫인상을 만났다면 도심 곳곳에서도 그 첫인상을 유지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과 거리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도시 전주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지금, 더 치열한 고민과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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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17 19:39

전북문인들의 책이 풍성한 작은도서관

조미애 시인전북시인협회장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낭군의 얼굴이 유난히도 밝고 환하다. 오랜만에 찾아간 도서관에서 좋은 책을 발견하여 빌려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책이 있어 대여해 왔다고 두툼한 한 권을 보여주는데 상기된 얼굴에 목소리마저 들떠 있다. 비슷한 책이 집에 있는 것 아니냐고 하니 그것과는 다르다면서 기뻐한다. 요즘 같으면 집안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가는 것이 책이다. 매월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잡지들과 지인이 보내오는 책들, 거기에 필요에 의해 구입하는 책까지 하여 나날이 집안 곳곳에 쌓이고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책은 언제나 반갑다. 평소 필요한 책은 사서 읽는 편이지만 도서관은 소장해 둘 책을 미리 볼 수 있고 절판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편리하다. 엄청난 양의 도서를 보유하고 있는 대학도서관은 물론이고 시립도서관과 작은도서관 역시 상당수의 도서를 보유하고 있다. 평소 보지 못했던 귀한 서적을 가까운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을 만큼 되었으니 누구든지 책을 읽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지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춘 셈이다. 굳이 어떤 책을 찾아서 읽겠다고 계획하지 않아도 도서관 책장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을 보면서 눈에 띄는 대로 한 두 권을 골라서 읽는 재미도 특별하다. 아는 문인의 글을 발견하여 가볍게 다시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전주에서 유일했던 경원동 시립도서관을 찾아 친구들과 공부하러 다니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 예전에 법원이 있던 자리였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말 현재 전라북도에는 총 61개소의 공공도서관과 132개소의 작은도서관이 있으며 도서관 하루 이용자는 3만 300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폭염이 연일 계속되고 있던 어느 날 집근처 도서관을 찾아 나섰다. 냉방이 잘되어 있는 도서관에서 한나절 책을 읽겠다는 생각이었다. 얼마나 기온이 높았는지 도서관 출입문 옆 대형 유리가 마치 무색의 스테인 글라스처럼 균열이 가고 있었다. 더위에 유리창이 깨지는 모습은 처음이라 위험이라고 써 붙이고 주위에 가림 막을 치긴 했으나 어린 학생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는 것이 크게 염려되었다. 우려와 달리 열람실은 만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책상 앞에 앉아 독서삼매에 빠져 있었다. 한편에 마련된 마루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벽에 기대거나 바닥에 엎드려서 책을 보고 있었다.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읽을 책을 찾아 진열대를 둘러보면서 행여 아는 문인들의 책이 있는지 살펴보는데, 실망스럽게도 눈에 띄질 않는다. 과거 잠깐씩 전라북도와 전주시에서 전북문인들의 신간을 일정량 구입하여 도서관 등에 보급한 적이 있었는데 그나마도 찾을 수가 없었다. 좋은 일은 계속되어야 하는데 한때 전북문인들의 도서를 구입했던 사업은 아주 짧은 기간 그것도 소수 몇몇 사람들에게만 해당된 단기적인 기회였던 것이다. 새롭게 성장을 도모하는 도서관에서 전북 문인들의 책이 풍성하게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우리 학생들이 내 고장 문인들의 글을 찾아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지금 도서관의 기능은 단순히 시민들이 찾아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장소만이 아니라 책과 관련한 여러 문화 행사를 기획하고 시민이 성장하는 도서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변화하는 도서관에서 전북문인들의 다양한 활동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낙후된 전북의 미래가 달려 있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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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1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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