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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지켜온 역사적 공간, 생명의 숲이 되어야 한다

엄혁용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내가 사는 전주에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전주에서는 처음으로 전국체전을 유치하기 위해 시민들까지 한마음으로 나서 건립된 공간. 바로 전주 종합경기장과 야구장이다. 1963년 2월 착공된 전주 종합경기장은 전주시민들이 뜻을 모은 성금으로 건설비용을 만들었다. 지역의 건설회사가 참여하고 건축에 필요한 자갈과 모래는 전주천에서 가져왔으니 이 공간이야말로 의미 있는 역사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경기장은 전주가 꾸준한 도시 재편을 겪어오는 과정에서도 심장부의 위치를 그대로 지키고 있으니 그만큼 전주시민들에게는 상징적인 공간인 셈이다. 전주에서는 전주 종합경기장이 만들어진 1963년 이래 4회의 전국체전을 치렀고 함께 만들어진 야구장은 1990년부터 전주 최초의 프로야구팀인 쌍방울의 홈그라운드로서 역할을 하였다. 프로야구 경기가 열릴 때면 쌍방울 야구팀 모자를 쓴 수많은 청소년들이 경기장 근처에서 상기된 얼굴로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경기를 기다리던 때가 생각난다. 나도 쌍방울 경기를 보기위해 경기장을 찾아 환호하고 마음을 졸이며 응원했었다. 그때 그 감성을 기억하는 청소년들은 이제 30~40대 성숙한 청년이 되어 지역사회를 이끄는 세대가 되었을 것이다. 이제 전주 시민들이 기억과 감성으로 공유하는, 전주의 얼마 남지 않은 근현대유산인 그 종합경기장과 터가 활용도를 놓고 전주의 중요한 과제로 부상해있다. 재작년 학술대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다녀왔다. 일정이 끝나고 뉴욕 맨해튼의 중심에 위치한 센트럴 파크를 방문했었다. 도심 속에서 느낄 수 없는 여유와 자유로움을 품고 있는 풍광은 그 자체로 감동이어서 미국 전역을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공원으로 꼽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뉴욕의 심장부에 있는 센트럴 파크는 많은 나무와 호수, 그리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30여 점에 가까운 조각품이 공원의 격을 한층 높여 준다. 19세기 뉴욕의 지식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과감히 제안해 미국 최초로 조성된 공립공원인 센트럴 파크는 도시의 한복판에서 자리 잡은 거대한 숲이다. 덕분에 뉴욕은 산소통의 역할뿐만 아니라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을 품어주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 같은 훌륭한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도시 환경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진 상황에서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결국은 뉴욕시민들의 현명한 선택이 가져온 결과일 것이다. 전주에도 이런 훌륭한 도시 공원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전주종합경기장 공간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됐다. 지친 현대인들을 위로해주고 시민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높여주는 문화의 숲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우리에게도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도시재생의 관점에서도 전주의 중심에 있는 종합경기장을 어떻게 활용해야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공간의 큰 프레임을 보존하면서 일부분의 공간을 미술관과 박물관, 문화복합시설이 포함된 생태 숲과 함께 세계적인 규모의 국제조각공원을 만드는 일은 어떨까. 전주역 마중길에서 시작되는 전주의 첫인상과 전북대학교, 덕진공원과 전주동물원 그리고 종합경기장 터를 활용한 문화예술공원으로 이어지는 도시의 풍광을 생각해본다. 1963년 전주 종합경기장이 완공되고 세워진 비문에는 이러한 구절이 적혀있다. 우리의 마음과 마음을 모으고 힘과 정성을 기울여 이 종합경기장을 마련함이니 이 땅의 아들과 딸들이여 우리의 뜻을 영원히 저버리지 말라 그리고 세월과 역사는 이것을 지켜 비와 바람으로 하여 이지러지지 말게 해 다오. 지금은 대부분 작고했을 전주시민들이 후대를 위해 건립한 이 뜻을 온전히 새겨 다시 우리 후대에게 전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공간은 그 틀을 유지하면서 잘 다듬어 가장 가치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시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백번 맞다. 더구나 문화특별시를 지향하고 있는 전주는 무엇보다도 역사와 문화, 예술이 살아 숨 쉬는 특별한 공간들을 잘 보존하고 제대로 살려야 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저급한 개발도시와는 다른 선택이 필요한 이유다. 계획의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면 다시 풀어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꿰어야 한다. 일의 속도를 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다.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큰 화를 불러온다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의 역사에서 충분히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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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택수
  • 2018.12.10 20:33

문화 복지 양극화 시대와 예술인들의 역할

조미애 시인전북시인협회장 화려했던 단풍잎이 지고 난 가지가 무척이나 쓸쓸해 보인다. 길을 멈추고 가까이 다가서니 나무 아래 낙엽들이 수북하다. 아직은 붉은 빛이 남아 햇살에 반짝인다. 조심스레 나뭇잎을 밟아본다 발아래 느껴지는 감촉이 부드러워 마음마저 편안하고 포근해진다.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북풍이 찾아오면 나무는 홀로 추위를 견뎌야할 것이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772년~846년)는 이맘때의 풍경을 <취중대홍엽醉中對紅葉>에서 임풍초추수臨風?秋樹 대주장년인對酒長年人 취모여상엽醉貌如霜葉 수홍불시춘樹紅不是春(가을 끝머리 을씨년스런 나무 술잔 마주하고 앉은 쓸쓸한 노인 취한 모습 서리 맞은 나뭇잎 같아 얼굴 불그레하지만 청춘은 아니라네)라고 읊었다. 초추?秋는 절기상으로 소설과 대설사이에 늦가을 단풍이 초겨울 한설寒雪과의 석별이 못내 아쉬어 발걸음을 쉬 옮기지 못하는 기간을 말한다. 사람이나 나무도 청춘의 시절을 보냈으니 편히 쉬어도 좋은데 옷깃을 여미지 못하고 한 잔 술로 온기를 대신하는 노인의 모습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소득 분배 지표가 지난 2007년 이후 11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어지는 경기침체와 분배제도의 미비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는 현 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문화예술도 그동안 향유하고 누릴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만 기회를 제공한 것은 아닌지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선택의 기회는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하면서 문화예술을 향유하도록 권유하는 것은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지 못한 사람들 또는 집단을 배제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늘날 문화예술분야는 상당부분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에 의해 운영되고 활성화되고 있다. 재정적으로 지원을 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규제하는 것보다 훨씬 적극적인 개입이 된다. 그러므로 문화예술발전을 위해 투입되는 재정은 공적 가치의 추구에 철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적가치를 추구할 경우에는 재원이 투입되는 것이 정당화되지만 특정 개인들의 사적 자유를 신장해주기 위해서 국가 재원이 투입될 경우에는 논란의 여지가 많을 수밖에 없다. 특정 분야에 깊이 있는 지식이나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우리는 전문가라고 한다. 전문가로서 문화예술인은 당연히 권리와 책무가 필요하며 공동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 정치사회경제문화적 경쟁에서 모든 사람들은 똑 같은 조건에서 출발할 수 없다.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사적 자유를 폭 넓게 허용하는 공적 가치가 추구되어야 한다. 사회에는 자유의 허용만으로도 충분한 집단이 있는 반면 제도의 보장에 의해서만 그 자유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문화 복지마저 양극화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오늘날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각종 행사들이 마무리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누릴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새로운 구상을 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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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03 20:20

우리 옷, 한복을 입자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 또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다사다난했던 2018년의 화두를 꼽으라하면 국가적으로는 단연 남북한 평화협상일 것이다. 전라도 입장에서 하나 더 보탠다면 정도 1,000년이 아닐까 한다. 전라도는 조선 팔도 중에서 가장 먼저 생긴 도(道)로 두 번째인 이웃 경상도보다 무려 300여년이나 앞섰다고 한다. 이에 부합하는 전라도의 정신, 문화와 예술은 우리의 정체성이고 나아가 민족의 긍지이며 자랑이다. 이에 말석에서나마 고향의 예술 진흥에 깜냥을 하고 있는 소리꾼으로서 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일상생활에서 한복입기에 앞장서자고 제안합니다. 격식을 갖추는 자리에는 으레 정장(正裝)을 차리고 오라는 주문이 있고, 사람들은 당연히 양복 또는 양장을 차리고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원피스나 투피스를 입어야만 도리를 다 한 것인 양 떳떳해 하고 만족해한다. 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다. 군인의 정장은 군복이고. 의사나 간호사의 정장은 가운이며, 교복이 있다면 학생의 정장은 교복이다. 왜냐하면 정장은 격식이나 의식에 맞게 차리는 복장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의 정장은 양복과 양장이겠지만, 이 땅의 일반인에게 있어서 두루 통하는 정식의 복장, 이 땅의 정장은 우리 옷, 한복이다. 모두가 우리 옷, 한복은 아름답다고 자랑한다. 그런데 잘 입지 않는다. 평상시에 입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젊은이의 경우, 청바지는 한 두 벌씩 갖추어 놓고 산다. 그러나 우리 옷, 한복 한 벌을 제대로 갖춘 젊은이는 별로 없다. 어른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결혼식 때 해 입은 한 벌로 일생을 살다가 자녀들 결혼이나 본인 칠순 때 정도에 한 번 더 입는 옷이 한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다행히 요즘 전주한옥마을에 가면 비록 1회성이긴 하지만 각양각색의 한복을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띈다. 패션 감각을 얘기하고, 옷 입기의 격식과 교양, 또는 매너를 얘기하지만 우리 옷, 한복의 격식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서양의 의생활에 관계되는 절차와 격식을 모르면 부끄러워한다. 교양과 지식의 척도가 서양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사대주의이다. 중동이나 동남아시아의 정치인에게서 자기 나라 고유의상을 보게 되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다. 국제회의 등 외교적인 무대에서 그들은 너무나 당당하게 자기나라의 고유한 입성을 정장으로 입고 있으며 다른 나라 사람에게 권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인들은 어떠한가? 우리 옷을 입은 정치인이나 외교관 찾기가 힘들다. 만약 한복을 입고 정사를 살핀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민족과 역사를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국회의 일상화된 싸움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새해 첫날, 의회 개원식, 국경일에 공인들을 비롯한 각계 지도층들이 한복을 갖추어 입으면 입을수록 이에 따른 책임감과 역사의식이 깊어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복장은 인간의 행동을 규정하고 사고의 틀을 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한복을 입는 것 그것은 대한민국의 긍지와 자존감을 세우는 일이다. 한복 갖춰 입기 운동은 전라도가 선도해야 한다. 전라도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전라도는 우리의 정신, 우리의 문화, 우리 예술의 본향(本鄕)이기 때문이다. 명절날, 국경일 등 뜻을 새겨야 하는 기념일에 격식있게 차려 입은 한복자락이 넘실거리는 전라도의 거리거리를 흐뭇하게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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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26 20:01

전주정신 ‘꽃심’과 문화시민

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전주에는 시민의 발걸음을 기다리는 전주역사박물관과 최명희 문학관이 있다. 최명희 문학관이 기리고 있는 최명희 작가는 장편소설 혼불에서 세월이 가도 결코 버릴 수 없는 꿈의 꽃심을 지닌 땅. 그 꿈은 지배자에게 근(根)이 깊은 목의 가시와도 같아서 기어이 뽑아 내버리고자 박해, 냉대, 소외의 갖은 방법을 다하게 했다.라고 온전한 고을 전주가 지닌 꿈의 꽃심을 이야기 했다. 이 꽃심 안에 깊이 내장되어 존재해 온 꿈의 힘은 이제 21세기 전주정신으로 되살아났다. 21세기 전주 사람들이 이 꽃심을 전주정신으로 합의해 낸 것이다. 정신 혹은 공동체 등의 개념들이 관심 있는 사람들의 합의에 의해 존속되며, 어느 시점에서 그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전승되고 혹은 소멸되는 것이므로 이 전주정신이 어떻게 생존을 지속해나갈 지, 얼마나 개화할 지는 이제 우리들의 손에 달렸다. 전주시는 2009년 제10회 전주학 학술대회에서 전주정신 대토론회를 개최한 이후 2015년 2월에 전주정신정립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총 23회의 회의와 워크숍을 열었으며, 시민들을 중심으로 4천여 부의 설문조사도 실시했다. 전공분야와 세대 간의 차이 등에 따른 각기 다른 의견들을 조율하여 2016년 6월 9일에는 드디어 전주정신이 선언되었고, 현재 전주역사박물관은 시민들과 아동, 전입자들과도 이 전주정신을 공유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주정신을 도출하기 위하여 견지했던 4대 원칙은 역사성, 보편성, 현재성, 미래성이었다. 즉 전주 역사의 지속적 특질 속에서 전주정신이 발굴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전주정신은 일부 계층의 것이 아닌 시민 보편적인 것이어야 하고, 전주 시민들의 현재 삶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어야 하며, 미래를 진취적으로 재창조해나갈 특징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정립된 전주정신도 네 가지로 모아졌다. 타인을 포용하며 함께 하는 대동정신, 문화예술을 애호하는 풍류정신, 의로움과 바름을 지키는 올곧음정신, 그리고 전통을 토대로 새로운 기회와 문화를 창출해나가는 창신정신이다. 이 네 가지의 전주정신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모두 함께 풍류와 올곧음으로 새로운 세상과 문화를 창출해나간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전주정신에는 21세기의 사회가 원하는 인간상, 21세기의 평화와 공존을 실천할 수 있는 세계관이 잘 함축되어 있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꽃심 정신, 즉 전주정신을 실천하는 시민인가라고 풀어서 자문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매일매일 사람들과 같이 가는가? 바르게 가는가? 새롭게 가는가? 즐기며 가는가? 전주정신을 현실 속에서 발현하거나 행동으로 실천해내기 어려운 이유는 아마도 혼자 가는 것이 편하고, 바르게 가지 않는 것이 편하고, 하던 일이 편하고, 즐기지 않는 것이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같이 가려면 다른 사람의 다른 의견을 듣고 조정해야 하며, 바르게 가려면 때로는 손해를 무릅써야 하고, 새롭게 일을 하려면 새로운 고민을 해야 하고, 즐기려면 즐길 것을 찾고 생각하며 그에 따른 시간 관리도 해야 하니 즐기는 것을 포기하는 게 편할 수 있다. 불편하더라도 같이 하고, 바른 길을 찾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이 모든 과정에서 문화예술을 즐기는 지혜를 발휘한다면 결국 전주정신은 문화시민을 만들고, 그 문화시민들은 온전한 고을 전주에 계속적으로 활력을 불어 넣고, 그 활력의 날개 짓은 모두 같이 행복할 전라북도, 대한민국, 아시아, 지구촌 세계를 향해 훈훈한 훈풍으로 다가가리라는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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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19 20:34

전주시립미술관 건립, 이제 행정이 손을 뻗어 이끌어야 한다

엄혁용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예술과 문화 수준은 도시의 힘이다. 문화 수준이 한 도시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된 것은 그를 증명한다. 정부도 문화예술융성을 과제로 제시하고 문화 기본법과 지역 문화진흥법을 제정해 국민의 문화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환경 조성에 나섰다. 덕분에 시민들의 문화향유권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이제 자치단체마다 큰 목표가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전주 역시 그런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공장의 가동이 중단 된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카세트 공장을 개조하여 예술가 스튜디오와 전시공간, 시민들을 위한 문화시설로 탈바꿈시킨 팔복예술공장도 그런 노력의 결실이다. 팔복동 주민 뿐 아니라 시민들과 관광객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는 팔복예술공장의 등장은 도시재생의 새로운 성과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역할이 기대된다. 2017년 5월 개통된 전주역 앞의 첫마중길 도 전주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마중길이 조성된 초기에는 온갖 비판과 우려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비판은 호감으로 변하고 지금은 전주시민과 전주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전주시만의 특색 있는 첫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무엇보다 큰 가능성과 힘을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의 영향력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도시의 홍보, 관광수입의 극대화 같은 대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실제 거주하고 있는 시민들의 문화를 통한 삶의 질을 높이는 목적으로써 문화향유의 역할이 가능한 공간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근래 전주에도 문화예술 발전의 바탕이 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다양한 통로로 문을 열고 있다. 문화공간의 확대는 시민들의 문화 향유권 확대로 이어지기 마련이니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아쉬움이 있다. 문화예술의 뿌리가 탄탄한 전주에 아직도 시립미술관이 없는 환경이다. 전북에는 공립미술이 적지 않다. 완주군 모악산 밑에 자리하고 있는 전북도립미술관, 무주의 최북미술관, 순창의 옥천골미술관, 정읍의 정읍시립미술관, 그리고 올해 문을 연 남원의 김병종미술관이다. 정읍의 시립미술관은 도서관으로 활용됐던 낡은 건물을 미술관으로 만든 예다. 정읍도 전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밀도를 갖고 있지만, 정읍시민들의 시립미술관을 활용하고 마주하는 자세는 그 어떤 도시의 시민들보다도 자부심이 넘친다. 공립미술관을 갖고 있는 도시의 시민들은 다양한 기획 전시를 통해 미술이 갖는 힘을 향유하고 교육을 통해 감성과 자기 계발의 기회를 갖는다. 그만큼 예술에 대한 자긍심도 크기 마련이다. 최근 들어 전주에도 사립미술관과 갤러리가 늘고 있지만 사설 공간과 공립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전주에는 다행히 시립미술관으로 활용할만한 좋은 공간이 많이 있다. 혁신도시로 이주예정인 전주 법원과 평화동에 있는 교도소도 그 중 하나다. 이들 공간은 모두 나름의 특색을 갖고 있는 전주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 공간을 활용하여 전주시민들에게 시립미술관이란 선물을 안겨주면 어떨까. 사실, 전주의 시립미술관 건립추진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있어 왔다. 2008년에는 전주미술협회가 전주지역과 미술에 긍정적인 역할을 도모하고자 전주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시의원과 문화예술인들도 꾸준히 전주시립미술관 건립을 촉구해왔다. 미술관 건립은 문화예술의 창작과 보급, 시민의 문화예술지원 교류와 전주만의 대표문화 콘텐츠 발굴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전주시의 문화정책에 맞게 거시적인 관점에서 제안되고 추진되는 것이 맞다. 전주시립미술관 건립이 문화정책 우선 사업으로 논의되고 추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제는 전주시가 미술관 건립을 위해 나서 손을 뻗어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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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12 19:31

융합의 도시! 아름답게 꽃 피울 문화예술

조미애 시인전북시인협회장 벽에는 그림이 걸려 있고 그 아래 들꽃이 있는 전시장에 있었다.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상상 속으로 침잠하는 발걸음을 붙드는 것은 옹기그릇에 핀 작은 꽃들이었다. 여류 문인들은 그림과 들꽃이 전시된 미술관에서 문학세미나를 가졌다. 문학과 미술이 꽃밭에서 놀던 날이었다. 문학이 미술과 음악, 마임 등과 융합하여 더욱 아름다운 행사로 기억되는 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도해 온 일이지만 몇 번의 경우는 지금도 잊히지 않고 회자되고 있다. 최근 전북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전주익산완주산업단지와 국가식품클러스터 그리고 민간육종단지 등이 국가혁신융복합단지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특정 지역에 대한 투자가 집중하여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균형발전 전략 추진을 위해 지역성장의 거점으로 중점 육성한다는 것인데 특히 융복합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간다. 융합融合이란 본래 둘 이상의 사물을 섞거나 조화시켜 하나로 합한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몇 년 전부터 교육 및 사회 각 분야에서 학문간, 교과간, 교과내 융합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였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미 과학기술분야 우수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 스템(STEM)교육을, 독일에서는 민트(MINT)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학교육 분야에서 STEM에 인문예술(Arts) 요소를 덧붙여 스팀(STEAM)이라고 불리는 융합인재교육을 하고 있다. 독일의 민트(MINT)교육은 수학(Mathematik), 정보통신(Informatik), 자연과학(Naturwissenschaft), 기술(Technik)교육을 강화하는 것으로 정치, 경제, 사회적 요구에 의한 정책이다. 미국의 스템(STEM)은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 공학(Engineering), 수학(Mathematics) 등 4개 분야 각각에 중점을 두는 교육이다. 우리나라의 융합인재교육은 학문적인 영역에 예술 요소를 덧붙임으로써 창의성을 길러 4차 산업혁명시대를 대비하는데 그 목표가 있다. 융합(convergence)은 통섭(consilience)과 밀접하게 연계된다. 통섭通涉이란 막힘이 없이 여러 사물에 두루 통한다는 것으로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는 의미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범학문적 연구를 일컫는다.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이 1998년에 『통섭: 지식의 대통합(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이라는 저서를 출간하면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용어다. 이렇듯 교육 분야에서 시작한 융합과 통섭이 융복합단지라는 이름으로 이제 도시 발전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초록이 사라지면서 단풍이 든 가로수 길에는 낭만이 가득하다. 바람이 불고 지나갈 때마다 노란 은행잎이 춤을 추듯 날아오른다. 이맘때가 되면 낙엽이 수북한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걷다가 잠시 멈춰 깊은 숨을 들이마시면 서늘한 바람이 몸속까지 청량해지는 기분이다. 통섭이나 융합은 가을날 단풍이 든 나무와 숲의 모습을 닮았다. 벌써부터 새롭게 변화할 국가혁신클러스터와 혁신도시에 어떻게 문화예술이 접목될지 궁금하다. 거리에 심을 나무 한 그루도 계획단계부터 철저히 준비함으로써 융합의 도시에서 인문학적 요소와 문화예술이 함께 어우러짐으로써 아름다운 숲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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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05 19:39

진짜 보수(保守)에 관하여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 보수의 수준이 높아져야 대한민국의 수준이 높아진다. 이 말은 정치판에서 비롯된 말이지만 전통예술에 종사하는 필자는 이 명제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왜냐 하면 보수는 합의되고 검증된 전통을 지키는 것이고, 보수주의자는 옛것을 사랑하면서 옛 질서를 옹호하고 오래된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보수주의자는 남의 나라보다 자기 나라를 사랑합니다. 다른 민족의 이익보다는 자기 민족의 이익을 우선하는 자들로 민족의 이익에 외골수로 집착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내 민족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다른 민족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우리나라 보수의 표본으로 김구선생을 꼽습니다. 김구선생님은 <나의 소원>에서 우리 민족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 한다. 이러한 김구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는 참된 보수주의자들이 많아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보수주의자는 자신의 땅에서 싹트고 배양된 의식주(衣食住)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역사의 터전이요 삶의 토대인 우리의 산하를 먼저 배우고 익히는 것이 전통이고 보수이기 때문입니다. 정신과 문화는 풍토를 기반으로 탄생하기에 보수는 한 알의 곡식에서도 한 소절 가락에서도 이 땅과 관련된 의미를 찾을 줄 알아야 하고 국악, 한식, 한옥, 한복, 등 우리의 전통문화와 예술이 왜 계승되고 발전되어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설득력 있게 자신의 논리로 펼칠 줄 알아야 합니다. 필자가 생각하는 참되고도 멋진 보수의 덕목은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함은 물론 우리의 말결을 잘 살려 글을 짓고, 고전을 즐겨 읽으며 시의적절하게 고전의 한 구절을 낭송하면서 삶을 가다듬고 그 뜻을 오늘에 맞게 새길 줄 아는 사람, 한복을 즐겨 입으며 명절 때면 멋지게 옷고름을 매고 먼저 어른들을 찾아 인사드리고 젊은이들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 나이 어린 사람들을 존대하려고 애쓰는 사람, 공경의 자세가 몸에 배어있으며 <단가(短歌)> 한 곡이나 판소리 한 대목쯤 멋들어지게 불러 재끼며 우리 국악을 듣고 추임새 한 자락으로 흥을 돋울 수 있는 사람, 등.. 이러한 덕목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진정한 보수, 멋진 보수주의자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보수는 통일을 꿈꾸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북이 통일을 꿈꾸는데 있어 가장 시급한 문제는 오랜 세월 분단으로 인해 단절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참된 보수라면 언어와 풍속, 영토를 공유했던 우리 역사에 대한 그리움과 열망을 지니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수의 특징 중의 하나가 자기의 원칙을 우선하는 단순성입니다. 따라서 보수주의자는 민족이 하나 되면 힘이 생기고, 나뉘면 힘이 약해진다는 선명한 사실에만 집중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단극복에 앞장 서는 사람이 참된 보수일 것입니다. 이런 보수주의자들이 더 많아지기를 진정으로 희망합니다. 마무리 삼아 시사(示唆) 하는 바가 큰 언어유희를 하나 소개합니다. 잘 못된 것을 손보며 수리하는 것이 보수이고, 다른 사람보다 부지런히 보수(補修)하고 또 보수하는 진짜 보수가 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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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29 19:48

고령층도 문화로 행복한 전라북도 만들기

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우리나라는 2017년 하반기에 이미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2000년에 7%의 고령인구로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17년 만에 14%의 고령사회가 되었다. 일본이 25년 만에 고령사회에 된 것에 비해서 8년을 앞당겼다.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고 미덕이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오래 살고 싶지 않아도, 아프고 싶지 않아도, 아프면서까지 오래 살 수밖에 없는 21세기가 되었다. 20세기 중엽에는 인구 증가가 가속화되면서 인구 과잉에 대처하여 출산율을 낮추기 위한 운동을 전개했지만, 이 21세기에는 저출산율로 인해 오히려 생산인구가 부족한 것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걱정의 전제는 고령층은 비생산인구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령층이 비생산인구라는 것은 분명 차별적이고 신체능력을 중심으로 한 편의적 관점이다. 고령층에게도 여전히 일자리는 최우선 과제이며, 그래서 문화분야에서도 고령층에 대한 문화 일자리 혹은 문화 일거리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일자리 외에도 고령층은 많은 고민을 안고 있다. 사실 고령층의 생활패턴이나 희망사항은 무척 다양하다. 즉 연령별, 성별, 지역별, 경제력별로 고령층은 조금씩 다른 생각과 다른 꿈을 꾼다. 연령도 65세, 70세, 75세, 80세, 85세 등 각각에 따라 삶의 방식이 다르고, 여성과 남성 고령층의 희망도 다르고, 경제력 여부에 따라서도 삶에서 차지하는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또한 대도시 혹은 소도시 혹은 농촌 등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서 문화프로그램에 대한 접근성도 달라진다. 그래서 이 고령층의 다름에 따른 문화정책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방송 등에서는 고령층을 한 두부류의 집단으로 취급한다. 늙고 느리며, 고집 세고 불평이 많으며 수시로 울컥 화를 내어 불쌍하지만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태도를 지닌 존재, 그리고 자식들을 무척 그리워하면서도 표현을 못하는 존재들로 묘사한다. 부분적으로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고령층은 방송에서와 같은 부정적인 스테레오 타입으로만 살지 않는다. 따라서 방송계나 시민단체 등에서는 고령층 모니터단을 조직해서 부정적인 스테레오 타입이 유포되고 강화되는 지점을 찾아내고 조정해야 한다. 인생의 산 경험이 풍부한 고령층이 이 사회의 멘토가 될 뿐 아니라, 스스로 즐기는 자율적이고 문화적인 존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층으로 구성된 전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취타대나 농악대의 눈부신 활동, 고령층 직원들이 직접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본 오사카 고령대학, 한국문화원연합회의 어르신문화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진 유명인들의 사례들은 고령층만이 아니라 모든 세대들이 문화적 삶을 영위하는 데 모범 혹은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전국에 약 31개의 작은영화관이 있는데, 전라북도 지역은 9개로 가장 많은 작은 영화관을 가지고 있다. 전라북도 지역이 시민들에 대한 문화서비스를 중시하고 있다는 바람직한 증명인 셈이다. 이러한 작은영화관에서 멀리 떨어진 고령층이 접근할 수 있도록 셔틀버스가 정기적으로 제공되고, 고령층이 즐겨 가는 경로당에서 식사 나눔과 함께 외부의 문화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이동수단을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문화정책이 마련된다면 농촌과 산촌 지역 고령층의 삶에 활력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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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22 17:56

다시 찾고 싶은 전주의 특별한 문화 벨트를 꿈꾸며

엄혁용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최근, 심심치 않게 주변 사람들로부터 전주한옥마을 방문객들의 숫자가 줄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올해 극심했던 여름의 불볕더위로 전주를 찾는 관광객 숫자가 일시적으로 줄어든 측면도 있겠으나 여름이 지나고 여행하기 좋은 가을에도 회복세가 보이지 않는다니 원인을 찾고 대책을 모색하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사실 전주를 찾는 관광객 감소는 수년전부터 예견되었던 부분이다. 예전처럼 전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한옥마을을 둘러보고 정작 전주에서는 숙박하지 않고 다른 도시로 떠나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은 안타깝다. 전주를 찾는 여행객들의 상당수가 한옥마을을 끝으로 전주 여행을 마감하는 상황은 전주가 한옥마을 이상의 여행콘텐츠가 없거나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여행은 세대를 초월해 남녀노소 누구나 만족감을 얻어야 좋은 여행이 될 수 있다. 태국 촌부리주의 작은 해양도시인 파타야는 이름 없는 작은 어촌에 불과하던 곳이었지만 1961년, 베트남전쟁의 휴가병들을 위한 휴양지로 개발되면서 아시아의 대표적인 휴양지가 됐다. 지금은 해마다 5백만 명이 넘는 해외 관광객들과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인파로 북적이는 관광도시가 되었으니 주목을 끌만하다. 지난여름 필자가 가족과 함께 찾았던 파타야는 특별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도 빼어났지만 여느 휴양지 부럽지 않은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한 이 작은 섬도시의 여행은 매력적이었다. 특히 초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테마파크에서 우리는 아주 훌륭한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공간이 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즐겁고 신비한 체험을 할 수 있었던 증강현실, 트릭아트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7년 동안 문 닫고 방치되었던 나이트클럽을 활용, 지난 2013년 1200평 규모의 세계에서 가장 큰 증강현실-트릭아트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트릭아트미술관은 이후 태국뿐 아니라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그리고 최근에는 호주에도 설립돼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이들 미술관이 오랜 건물이나 폐공장을 허물지 않고 재생의 관점으로 접근해 예술가들이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전라남도 순천은 2017년부터 지역의 어린이와 전문가, 그리고 행정기관이 함께 손잡고 만든 신개념의 놀이터인 기적의 놀이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 놀이터는 기존의 틀에 박힌 시설물에서 벗어나 자연소재를 사용해 어린이들에게 도전과 모험정신을 기를 수 있도록 조성된 것인데 개장 이후 전국 200여개의 기관 단체가 벤치마킹을 다녀가면서 시작과 함께 전국적 관광명소가 되었다. 순천시는 2020년까지 10개의 기적의 놀이터 완성을 목표로 어린이와 부모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나간다는 계획이라니 이 또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파타야나 순천의 예를 보면서 문득 전주에는 진정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 있는가 묻게 된다. 사실 전주는 그 어느 도시보다도 풍부한 유형무형의 문화자산이 많다. 어린이를 위한 공공시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도 적지 않다. 전주시 팔복동의 폐공장 터와 철길을 보자. 이 공간을 활용하여 전주의 예술가들과 행정기관이 손을 잡고 아트 플레이그라운드를 만들어내면 어떨까. 전주만의 특색 있는 어린이 전용 쉼터와 놀이터는 전주시민 뿐 아니라 전주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도 큰 선물이 되지 않을까. 전주가 다양한 연령대의 방문객들이 즐기고 의미 있는 여행지가 될 수 있으려면 전주만의 문화 벨트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편향된 콘텐츠와 다양함의 부재는 건강한 여행문화를 만들어 나가려는 전주의 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친구들과 가족들과 전주를 찾은 여행객들이 하루 더 머물다 가고 싶은 전주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전주는 콘텐츠의 다양성과 깊이를 더하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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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15 20:29

피고 지는 데는 선후가 있어도 모두가 가을꽃

조미애 시인전북시인협회장 서늘한 바람에 잠이 깼다. 문이 열려 있나 싶어 자리에서 일어서니 유리창에 부딪힌 햇살에 눈이 부시다. 문틈으로 새어 든 바람마저 차게 느껴지는 것은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는 것이리.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곱게 피던 나팔꽃이 지고 그 자리에는 왕관모양으로 씨가 들어섰다. 초록의 잎은 갈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날이 선선해지면서 더위에 자라지 못했던 화초들이 늦게 싹이 나고 줄기도 굵어지더니 하얗게 고추 꽃이 피고 연이어 풍선덩굴과 분꽃도 피었다. 지난여름 폭염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피어났을 것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이제라도 꽃을 선물해준 그들이 고맙다. 가을이 되면 상허 이태준의 수필이 생각난다. 그는 과꽃은 가을이 올 때 피고 국화는 가을이 갈 때 이운다. 피고 지는 데는 선후가 있되 다 마찬가지 가을꽃이다국화를 위해서는 가을밤도 길지 못하다. 꽃이 이울기를 못 기다려 물이 언다. 윗목에 들여놓고 덧문을 닫으면 방안은 더욱 향기롭고 품지는 못하되 꽃과 더불어 누울 수 있는 것, 가을밤의 호사다.라고 했다. 상상만으로도 풍경들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지난밤에 찬비를 맞으며 돌아온 우산이다. 아침에 나와 보니 거죽에 조그만 나뭇잎 두엇이 아직 젖은 채 붙어 있다. 아마 문간에 선 대추나무 가지를 스치고 들어온 때문이리라. 그러나 스친다고 나뭇잎이 왜 떨어지랴 하고 보니 벌써 누릇누릇 익은 낙엽이 아닌가! 글에서 가을날의 온도를 느낄 수 있다. 몇 해 전에 나팔꽃씨 몇 개를 가져와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 심었는데 잘 자라서 여름이면 울창한 숲이 되어 꽃그늘을 이루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노란 꽃이 피었던 분꽃을 살펴보니 어느새 꽃이 진 자리에 씨가 맺혀있다. 풍선덩굴도 올해 두 개가 열렸다. 아직은 녹색이지만 탱탱한 햇살을 받고나면 잘 익은 씨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씨를 받게 되면 분양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문화행사가 많은 가을이다. 지역문화축제를 비롯하여 음악, 미술, 무용 등의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소식을 들을 때면 가끔은 행사를 위한 행사인 것 같기도 하고 지나치게 요란한 것이 시끄럽고 버겁기도 하지만 풍성한 볼거리가 있고 참여하는 사람들의 웃음이 있어서 좋다. 다만 해마다 계속되는 축제나 문화행사가 모든 사람을 위한 자리가 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축제와 행사가 제한된 소수 사람들만의 잔치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모름지기 축제라면 지역의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하여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시간과 공간을 배려함으로써 진정한 마을 굿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문단의 가을은 꽃밭처럼 풍성하다. 각각의 색깔과 향기를 지닌 책들이 출판되고 있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은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자세히 보면 예쁜 작은 꽃이다. 작가의 맑고 곧은 정신이 담긴 씨앗이면 충분하다. 세상에 하고 많은 꽃 중에서 나와 인연이 되고 씨앗을 맺어 더욱 소중한 것처럼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황량한 들판이면 어떠하리. 동인지 출간과 문학상 소식들이 꽃씨가 되어 날아온다. 문단의 주인은 좋은 작품을 쓰는 사람! 꽃밭에서 꽃들이 피고 지는 것처럼 피고 지는 데에는 선후가 있어도 모두가 가을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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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08 19:24

이 땅의 음악은 국악이다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 원장 이 땅의 음악은 마땅히 국악이어야 하고, 국악이 이 나라 음악의 주인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인가 음악이라는 말이 서양음악을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국악이라는 말은 이러한 음악과는 별개의 장르를 뜻하는, 협의의 개념으로 쓰이면서 가치에 편견이 매겨져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양악은 고급스럽고 우월한 것이며 국악은 진부하고 무언가가 부족한 변방의 음악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하는 현실이며 주객이 전도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 밥 먹는다 라고 하면 당연히 한식(韓食)으로 이해하고 말한다라고 하면 당연히 국어인 우리말을 하는 것으로 이해되듯이, 당연히 음악이라는 말은 우리음악을 뜻해야 옳다. 서양을 통해 수입된 음악은 서양음악, 양악(洋樂)으로 불려야하고 음악을 한다고 하면 당연히 우리음악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중심의 사고 체계와 의식의 각성이 있어야 한다. 몇 해 전 이탈리아에서 <수궁가>완창을 한적이 있다. 그때 성악을 공부하고자 유학을 온 학생한테 들은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법 노래를 잘 한다고 인정받던 학생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학생들 틈에서 뒤떨어지지 않게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어느 한 학기를 마치고, 동료학생들끼리 종강 파티에서 각자 자기나라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그는 자기 순서에서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혼신의 힘을 다해 불렀다고 한다. 노래를 마치고 많은 박수를 기대했는데 생각만큼 환호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서운함을 달래면서 한참을 서 있었는데 앙코르가 뒤늦게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내 노래에 앙콜이 없다니 그게 말이나 될 법이냐 하면서 미소로 신청곡을 받았는데, 그들의 요청인즉 너희 나라 노래를 불러보라고 청하더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리운 금강산은 코리아의 노래가 아니었다. 그들의 귀에 그 노래는 서양의 노래이었던 것이다. 아! 코리아의 노래, 무엇이 한국의 노래란 말인가?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한국의 색깔과 냄새를 느끼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십 수 년을 먹고 자랐지만 막상 부르려고 찾아보니 아는 노래가 없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이 땅에 태어난 우리는 한국말을 먼저 배우고, 우리의 음식을 먼저 먹으면서 자랐지만 음악의 경우는 정반대였다. 서양음악을 음악으로 알고 먼저 듣고 배우고, 또 불렀던 것이다. 그 학생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망설이다 궁여지책으로 찾아 부른 노래가 삼천만의 노래,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본조 아리랑>....... 그리 큰 공력을 들여 부른 것은 아니었지만, 그 때서야 그들은 제대로 된 노래를 감상했다는 듯 만족해하면서 원더풀! 을 외치더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참으로 괴로웠다고 한다. 왜냐하면 또 다시 시키면 부를 노래가 없었기 때문에 매우 참담했었다고 나에게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서양음악은 수십 개 씩 소화하면서 민요 하나 제대로 부를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나라,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는 현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에서 우리 음악을 하는 것이 유별나고 특별한 일을 하는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이런 식의 척박한 풍토가 이어지는 한 우리의 정체성은 확립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전개될 치열한 문화전쟁에서 살아남지 못 할 것이다. 음악의 주체는 국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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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01 19:36

‘첫마중길’을 걷다, 전주의 첫인상을 보다

엄혁용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전주역 앞 도로에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2015년부터 전주시가 도시재생사업과 지역 활성화를 위해 추진해 만든 길 위의 길, 첫마중길이다. 전주역은 전주를 찾는 많은 여행객이 전주를 처음 마주하게 되는 첫 관문이다. 역을 빠져나와 만나게 되는 눈 앞 풍경은 자연히 전주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처음 첫마중길이 만들어졌을 때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찬반 여론에 비판과 호평이 부딪쳤다. 그러나 1년여가 지난 지금 첫마중길은 전주만의 문화 예술적인 특색을 보여줄 수 있는 명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전주를 찾는 여행객에게는 아름다운 첫인상을, 전주시민들에게는 쉼터기능을 더해 도시 속의 자연과 문화를 어우르는 생태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전주시의 도시 철학이 이제 비로소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무엇보다도 역 앞을 무섭게 달렸던 차량들의 속도 변화가 반갑게 느껴진다. 도시지역 차량 제한속도가 10km 감소하면 교통사고 비율이 24%나 감소한다는 국가교통안전연구센터의 연구 결과를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중심이 되는 안전한 도로와 길을 갖추는 일은 좋은 도시가 갖추어야할 덕목이다. 실제 도심의 운전 제한속도를 기존보다 10km로 낮추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다. 전주의 첫마중길처럼 도시의 역과 터미널 앞에 예술광장과 문화거리를 조성해 활용하고 있는 세계적 도시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6년 연속 1위를 차지한 호주의 멜버른이 대표적 예다. 멜버른시가 플린더스 스트리트역 앞에 조성한 페데레이션 스퀘어는 여행객들이 편안하게 휴식하며 교류하는 만남의 장소로 이름이 높다. 필자 역시 멜버른을 처음 방문했을 때 페데레이션 스퀘어에 걸터앉아 눈앞에 펼쳐진 야라 강변을 보며 멜버른 여행 계획을 세우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뉴욕도 포드 어소리티 터미널 근처에 타임스퀘어가 있다. 이 곳 역시 대중교통을 이용한 많은 방문객에게 뉴욕시만의 열정적이고 활기찬 첫인상을 전하는 공간이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역 앞의 문화공간도 수많은 여행객들에게 부다페스트를 아름답고 따뜻한 도시로 기억하게 하는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전주시는 그동안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문화예술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첫마중길, 팔복문화공장, 풍남문과 객사를 잇는 전라감영 테마거리 등 전주시의 외관을 다듬는 일이나 전주시 곳곳의 소중한 이야기를 복원하고 발굴해 시민들과 여행객들이 함께 공유하는 공공재개념으로서 활용하는 사업들이다. 작년 7월, 2017아시아 도시경관상에 전주의 첫마중길이 선정됐다. 유엔 해비타트 후쿠오카 본부와 아시아 인간주거환경협회, 아시아경관디자인학회, 후쿠오카 아시아 도시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2017아시아 도시경관상은 도시경관 형성에 훌륭한 실적을 쌓아 널리 모범이 될 수 있는 사업을 선정해 수상하는 상이다. 조건 없는 부를 축적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질이 더 큰 화두로 자리 잡은 지금, 첫마중길은 전주시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좋은 기준이 됐다. 그러나 아직 전주시가 세계적인 문화예술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첫마중길처럼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쉼터의 기능을 가진 야외문화공간을 늘려나가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뉴욕에 오래된 기찻길을 사람들이 걷고 쉴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든 하이라인이 있다면 우리에겐 팔복동 공단 철로가 있다. 전주를 찾는 여행객들이 첫마중길에서 아름다운 첫인상을 만났다면 도심 곳곳에서도 그 첫인상을 유지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과 거리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도시 전주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지금, 더 치열한 고민과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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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17 19:39

전북문인들의 책이 풍성한 작은도서관

조미애 시인전북시인협회장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낭군의 얼굴이 유난히도 밝고 환하다. 오랜만에 찾아간 도서관에서 좋은 책을 발견하여 빌려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책이 있어 대여해 왔다고 두툼한 한 권을 보여주는데 상기된 얼굴에 목소리마저 들떠 있다. 비슷한 책이 집에 있는 것 아니냐고 하니 그것과는 다르다면서 기뻐한다. 요즘 같으면 집안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가는 것이 책이다. 매월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잡지들과 지인이 보내오는 책들, 거기에 필요에 의해 구입하는 책까지 하여 나날이 집안 곳곳에 쌓이고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책은 언제나 반갑다. 평소 필요한 책은 사서 읽는 편이지만 도서관은 소장해 둘 책을 미리 볼 수 있고 절판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편리하다. 엄청난 양의 도서를 보유하고 있는 대학도서관은 물론이고 시립도서관과 작은도서관 역시 상당수의 도서를 보유하고 있다. 평소 보지 못했던 귀한 서적을 가까운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을 만큼 되었으니 누구든지 책을 읽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지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춘 셈이다. 굳이 어떤 책을 찾아서 읽겠다고 계획하지 않아도 도서관 책장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을 보면서 눈에 띄는 대로 한 두 권을 골라서 읽는 재미도 특별하다. 아는 문인의 글을 발견하여 가볍게 다시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전주에서 유일했던 경원동 시립도서관을 찾아 친구들과 공부하러 다니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 예전에 법원이 있던 자리였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말 현재 전라북도에는 총 61개소의 공공도서관과 132개소의 작은도서관이 있으며 도서관 하루 이용자는 3만 300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폭염이 연일 계속되고 있던 어느 날 집근처 도서관을 찾아 나섰다. 냉방이 잘되어 있는 도서관에서 한나절 책을 읽겠다는 생각이었다. 얼마나 기온이 높았는지 도서관 출입문 옆 대형 유리가 마치 무색의 스테인 글라스처럼 균열이 가고 있었다. 더위에 유리창이 깨지는 모습은 처음이라 위험이라고 써 붙이고 주위에 가림 막을 치긴 했으나 어린 학생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는 것이 크게 염려되었다. 우려와 달리 열람실은 만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책상 앞에 앉아 독서삼매에 빠져 있었다. 한편에 마련된 마루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벽에 기대거나 바닥에 엎드려서 책을 보고 있었다.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읽을 책을 찾아 진열대를 둘러보면서 행여 아는 문인들의 책이 있는지 살펴보는데, 실망스럽게도 눈에 띄질 않는다. 과거 잠깐씩 전라북도와 전주시에서 전북문인들의 신간을 일정량 구입하여 도서관 등에 보급한 적이 있었는데 그나마도 찾을 수가 없었다. 좋은 일은 계속되어야 하는데 한때 전북문인들의 도서를 구입했던 사업은 아주 짧은 기간 그것도 소수 몇몇 사람들에게만 해당된 단기적인 기회였던 것이다. 새롭게 성장을 도모하는 도서관에서 전북 문인들의 책이 풍성하게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우리 학생들이 내 고장 문인들의 글을 찾아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지금 도서관의 기능은 단순히 시민들이 찾아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장소만이 아니라 책과 관련한 여러 문화 행사를 기획하고 시민이 성장하는 도서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변화하는 도서관에서 전북문인들의 다양한 활동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낙후된 전북의 미래가 달려 있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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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10 19:20

'우리 것'일수록 더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 <우리>라는 어휘가 내포한 의미와 풍기는 이미지의 폭은 아주 넓다. 마음과 뜻을 같이 한다, 모두가 손잡고 함께 해야 하는 구성원, 책임을 같이 지는 한 덩이 등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고 우리 식구, 우리 학교, 우리나라, 우리 집, 우리 엄마, 우리 편 등의 말에서 찾아 볼 수 있듯이 <우리>라는 말이 붙으면 익숙하고 편안하다는 느낌이 다른 이미지보다 강하게 다가오는 단어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우리>라는 말이 붙는 일은 격식이 없어도 되는 일, 시간과 절차가 생략될 수 있는 일, 부담이 없는 것,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익힐 수 있는 것등 아주 쉬운 일, 가벼운 일로 치부하면서 만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그러한가? 우리 말인 국어가 노력 없이도 익혀지던가, 우리 글을 쓰는 일이 쉬운 일인가, 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우리 것일수록 진지하게 접근해야 하며 정성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깨지기 쉽고 상처받기 쉽다. 우리 음악에 대한 접근도 마찬가지이다. 준비 없이 들어도 쉽게 와 닿는 게 아니다. 음악을 감상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애정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 양악(洋樂)을 이해하기 위해 쏟은 시간과 노력을 생각해 보라. 무슨 교향곡의 몇 악장을 알기 위해서 숨을 죽이며 듣느라고 얼마나 많이 인내했던가? 학창 시절에 시험을 보기 위해서,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교양의 일환으로 우리는 양악에 아주 많은 시간을 쏟았었다. 덕분에 모차르트, 베토벤, 브라암스, 헨델 등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고전주의, 낭만주의 등 음악의 사조에 대해서도 대충은 알게 되었다. 양악의 이해를 위해서 기울인 우리의 관심과 노력은 실로 지대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정작 애지중지 보듬고 가야 할 우리 음악에 대한 우리의 대접은 어떠한가? 참으로 반성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다. <영산회상>, <수제천>, <여민락>을 들어 본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이며, 전판 <판소리>를 듣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참을성을 발휘한 사람은 또 몇이나 있겠는가. 가야금과 거문고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국악기를 서양악기만큼 설명할 수 있는가. 우륵을 아는가. 악성(樂聖)옥보고를 아는가. 신재효를 아는가. 가왕(歌王) 송흥록을 아는가. 최초의 여류 명창 진채선을 아는가. 한 번에 이해하고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뜨거운 애정이 있어야 하고,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감상을 위한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양악을 필수 교양의 반열에서 이해하기 위해 쏟았던 노력보다도 몇 십 배 더 큰 부담과 당위성을 가지고 접근을 해야 한다. 우리 음악은 조상들의 뼈를 깎는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진 선율로 그 속에 우리의 역사와 문화, 정제된 의식이 담겨 있는 총체적인 세계이다. 일조일석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신과 애환이 장구한 세월에 걸쳐 걸러지고 켜켜이 쌓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국악도 마찬가지이다. 문화적 사대주의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며 국악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극복되어야 한다. 자중자애(自重自愛)하면서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문화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국악(國樂) 사랑이 곧 나라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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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03 19:55

세속적 성공과 문화 활동

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성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우리는 정확히 알고 있을까? 안다는 것 자체가 정보의 인지, 사실에 대한 판단과 느낌 등의 영역을 포함하는 다소 광범위한 개념이라서 이 질문에 응답하기가 간단치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성공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머뭇거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성공이 과연 어떤 내용을 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적 차원에서도 질문을 던지고 검토하고, 사회적으로도 소통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대가 움직이면서 가치가 달라지고, 그 가치를 추구해나갈 방법도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인권과 같은 기본가치는 시대와 공간을 불문하고 성공적으로 추구되어야겠지만, 세계사를 보면 이 기본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진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되기 전에는 인권이 그야말로 인류 중 몇 퍼센트의 존재들만 누리던 권리였다. 대부분의 인류가 인권적 측면의 성공사회가 아닌 폭력과 차별과 억압을 당연한 사회질서로 수용하고, 그 안에서의 생존과 생활의 성공을 추구했던 것이다. 우리 역사도 1945년 이전에는 제국주의의 억압을 우리 민족 전체가 떠안고 있었고, 우리 민족은 그 질서 안에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질서를 깨뜨릴 성공을 추구하였다.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성공은 과연 어떠한가. 성공은 사전적 의미로 목적한 바를 이루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에 충실하자면, 매일매일 성공할 수도 있고, 단기적으로 성공할 수도 있고,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도 있다.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성공 여부가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사회에서 요구하는 몇 가지 관혼상제와 같은 통과의례 단계에 따라 그 의례를 멋지게 통과하는 것만이 성공은 아니다. 성공의 순간이나 성공의 상태를 고대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이다. 성공의 반대라고 할 수 있는 실패의 순간이나 실패의 상태를 즐기는 가학적 존재는 없으리라. 세속적 삶과는 다른 영역, 예컨대, 산 속의 수도생활이나 국외의 선교활동이나 희생적 봉사활동을 하는 자들도 그 목적을 이루어내고자 하는 것이 보편적 지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을 어떤 기능적인 분야에서 특별히 업적을 이루어내는 탁월한 한, 두 사람의 것으로 제한하여 그들을 영웅시 하거나 우상시 하는 사회적 풍토는 나머지 모든 시민들을 상대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자로 잠재적 낙인을 찍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균형 잡힌 사소한 성공들의 집합체가 될 때 시대와 공간에 부끄럽지 않은 보편적이고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특별히 문화 활동은 주변의 이웃들과 나눌 수 있는 성공, 오래가는 성공, 깊이 느껴질 수 있는 성공을 담보해주는 공감능력을 키워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공감능력은 상대방의 말에 아! 그렇군요. 네! 맞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등으로 천천히 맞장구치면서 상대방의 의견을 일단 인정해주고, 동의하여 대화와 소통을 지속시킬 수 있는 기본감각과 이해에서 출발한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는 이른바 성공모델들이 특정 기능에만 오로지 집중하여 삶을 영위할 때 이런 기본감각에 소홀해질 수 있다. 즉 문화 활동 경험이 빈약한 성공모델들이 지도력을 행사하는 사회는 인간과 인권에 대한 공감 자체가 미비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을 기계와 동일시하는 기능주의적 성공의 잣대만이 판칠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 활동의 소재가 되는 모든 장르의 작품과 활동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자, 단절된 관계, 지구의 문제, 그리고 아름다움과 슬픔과 분노의 원인들을 다룬다. 따라서 문화 활동은 인간의 삶에 대한 공감의 폭을 넓혀주고 깊게 해줄 수 있다. 공감능력을 기반으로 매일 매일의 성공적 삶을 위한 재설계를 시도하는데, 어떠한 시점이라도 늦지 않다. 늦는 시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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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27 20:08

뮌스터 거리에서 전주를 생각하다

엄혁용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독일의 북서쪽에 있는 뮌스터는 인구 26만 명 정도의 크지 않은 도시다. 중세의 사원과 교회, 시청사 등 사적이 많이 남아 있어 구 시가지가 특히 아름다운 이 도시에서는 10년마다 한번 대규모 미술행사가 열린다. 베니스비엔날레, 카셀도큐멘타와 함께 유럽의 3대 미술행사로 꼽히는 세계 최고의 공공미술 축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다. 작년 여름, 제자들과 함께 이 축제를 찾았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와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카셀도큐멘타, 10년에 한 번씩 열리는 뮌스터 조각프로젝트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우리에게 정말 큰 축복이었다. 기대한 만큼 눈호사를 누릴 수 있는 전시는 얼마든지 많았다. 이들 축제 중에서도 나의 관심은 10년에 한 번 열리는 뮌스터 프로젝트에 닿아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중세도시 뮌스터를 거대한 야외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키는 조각과 설치미술과 영상미술로 이름이 높다. 1977년에 시작되었으니 40년이 지났지만 이제 다섯 번째 축제를 치렀으니 그 느린 호흡과 여유(?)만으로도 놀라운 미술축제다. 뮌스터 조각프로젝트의 감동은 한둘이 아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웠던 것은 뮌스터 시내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자전거 행렬이었다. 게다가 미술축제가 열리는 동안 시민들은 물론이고 많은 관광객들이 작품 지도를 들고 자전거를 타고 도시 곳곳에 놓여 있는 작품들을 찾아다니는 모습은 특별한 풍경이었다. 아름다운 도시 풍경에 눈을 빼앗기다보면 또한 마주치게 되는 곳곳에 숨어있는 작품들은 어느새 도시와 한 몸이 되어 관객을 맞고 있었다. 기획자의 의도가 숨어있겠지만 뮌스터 프로젝트의 모든 작품을 단 하루 만에 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시내에 숙소를 잡고 도시의 깊은 향기를 맡으며 머물렀던 뮌스터에서의 그 며칠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시간이 되었다. 오늘에 이르러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뮌스터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뮌스터프로젝트도 초기에는 시민단체와 예술계의 거센 비판과 반대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당시 뮌스터 시립미술관 관장이었던 클라우스 부스만과 큐레이터 카스퍼 쾨니히의 뮌스터에 대한 애정과 끈질긴 노력이 결국은 긍정적인 여론을 만들어냈다. 보수적인 뮌스터 시민들을 지속적인 예술교육과 대화로 설득해나간 뮌스터 시장의 역할도 뮌스터 프로젝트의 역사적인 걸음을 뗄 수 있게 만든 주된 원동력이었다. 뮌스터에 머무는 동안 불쑥불쑥 내가 살고 있는 전주의 거리가 생각났다. 세계적으로 핫한 여행 도시가 된 전주는 한옥마을 중심의 1000만 명 관광도시로 이름을 올렸다. 불과 몇 년 사이 관광도시로서의 양적 성장은 놀라울 만하다. 그러나 전주가 앞으로도 관광객들이 다시 찾아오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뮌스터 거리를 거닐면서 전주가 떠오른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전주 거리 곳곳에 아름다운 미술품이 놓인 거대한 야외미술관. 자전거를 타고 한옥마을과 전라감영과 객사와 풍남문을 거쳐 남부시장에서 미술품을 만나고 팔복동 예술공장의 예술품들과 대화하며, 덕진공원과 전주 곳곳에 숨어있는 쌈지공원과 천변 길에 설치된 작품들로 전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난다면, 그리하여 천년 역사가 깃든 전주를 매력적인 도시로 기억할 수 있게 된다면........ 긴 안목으로 미술프로젝트를 만들어 세계적인 명소가 된 뮌스터의 사례는 세계적인 문화여행 도시를 꿈꾸는 도시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은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에서 끝나는 일차원적인 관광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문화와 예술로 치유되고 정화되는 품격 있는 여행의 시대다. 전주는 그러한 여행의 품격을 갖출 수 있는 좋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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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20 21:53

승강장에 걸린 시는 어디로 갔을까

▲ 조미애 시인전북시인협회장 최근 전주시내버스승강장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예술이 숨쉬는 승강장이 되어 시민들에게는 이용의 편리를 도모하고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쾌적한 인상을 주기 위해 현대적인 모습으로 하나 둘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전주시 전역을 지붕 없는 미술관과 예술관으로 만들기 위한 큰 행보라고 한다. 천년의 빛과 천년의 숨을 주제로 했다는 소식이다. 승강장 하나에도 예술을 접목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런데 전주시내버스승강장이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던 날에 그곳에 걸려 있던 시(詩)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 우리 협회 카페에는 특별한 글이 올라왔다. 전주를 방문한 경기도의 한 여성이 버스승강장에서 만나게 된 시 한 편에 대한 감동을 적은 글이었다. 전북도청 버스정류장에 있는 글이었는데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여 카페를 찾아 글을 남긴 것이었다. 우연히 만난 시에 대한 여운과 함께 사진으로 찍어간 시를 캘리그라퍼 지인이 작품으로 만들어주었다면서 족자와 부채로 만들어진 사진까지 올려 둔 것이다. 공개된 자리에 연락처까지 남긴 그분의 정성은 한 줄기 소나기처럼 신선하고 고마웠다. 그동안 전주시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버스승강장에 전주 시인들의 시를 승강장 벽의 옆면에 새겨 시민들이나 전주를 찾는 관광객이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버스승강장에 시인들의 작품이 걸리던 날 전주는 다른 그 어느 도시에서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해낸 것만으로 문화예술도시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승강장문학작품은 점차 상업적 광고에 밀려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당시 나의 시는 전북대학교 승강장에 있었는데 빠르게 커다란 광고 한 장이 그 위를 덮어버렸다. 이후 승강장 시 걸기는 한 차례 더 시도되었고 그때 걸었던 작품은 다행히 아직 남아 있다. 한때는 기와를 얹어 고전적인 도시로써의 풍모를 자랑하였는데 이제 현대적인 감각의 조형물로써 승강장 자체가 예술적인 위엄을 담아 고전과 현대가 병존하는 전주시의 모습을 승강장에서도 볼 수 있는가 보다. 승강장이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새롭게 건축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예술이 숨쉬는 승강장 바로 그곳에서 시인들의 아름다운 작품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시에서는 오래전부터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시를 써서 보여주고 있다. 서울에 가는 날에는 지인들의 시를 읽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지하철을 이용하곤 한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지하철 시를 읽고 있을 것이다. 바쁜 걸음으로 그냥 스치는 인연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편의 시가 친구가 되어 고단한 일상을 위로하고 있을 것이다. 서울시가 처음 지하철에 시를 걸기로 했을 때에는 전국의 시인들에게 청탁을 하여 시를 모았으며 최근에는 시인들의 시와 함께 시민들의 작품도 받아서 올리고 있다.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시가 있는 승강장의 풍경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새로운 단장이 모두 끝나고 나면 공사 기간 중 잠시 보관해 둔 시를 찾아서 시내버스승강장에 다시 걸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전주를 찾은 사람들로부터 승강장에 걸린 시를 읽고서 보내오는 반가운 소식을 오래도록 선물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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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13 19:23

추억의 부채

▲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 요즘같이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와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 조그마한 부채 하나쯤 손에 쥐고 있으면 그래도 약간은 더위를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에 큰 위안이 된다. 부채는 고향이요, 어머니이다. 여름이면 으레 고향집 마당에는 평상(平床)이 펴져 있었고 그 평상에서 우리 가족의 인정(人情)과 여름이 익어갔다. 밤이면 마당 한 켠에서 피어오르는 매캐하고도 구수한 모깃불 연기를 온몸에 감고 어른들의 얘기를 들으며 내 나름 세상일을 가늠했었다. 그런 밤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평상에 누우면 총총한 밤하늘의 별은 내 눈에 쏟아졌고, 어머니의 옛날 이야기는 내 귀에 켜켜이 쌓여 갔다. 그때 어머니의 손에는 언제나 부채가 들려 있었고, 하염없는 어머니의 그 부채질 속에서 나는 잠이 들곤 했다. 모기와 더위를 함께 쫓아 주었던 어머니의 부채는 부정한 것들을 몰아내어 자식의 앞날을 순탄하게 펼쳐주고자 했던 마음속 깊고 깊은 축원이었으리라. 그립기만 한 어머니의 그 손길,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요, 아련한 풍경이다. 부채는 새로운 기운(氣運)이요 다짐이다. 단오절에 나누는 선물로 부채는 빼놓을 수 없는 품목이었다. 특히 단오절에 임금은 신하들에게 무엇보다 우선으로 부채를 하사했는데, 임금이 내리는 그 부채는 단순한 선물의 차원을 뛰어넘는 엄숙한 의미의 신표(信標)였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듯, 이 나라 종묘사직에 새로운 기풍을 진작(振作)시켜 달라는 임금의 간곡한 부탁과 조정(朝廷)의 다짐을 서로 담았기 때문이다. 나는 소리꾼이다. 소리꾼에게 부채는 실과 바늘이다. 부채는 판소리꾼에게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멋도 멋이지만 소리판을 쥐락펴락하는 상징적 도구로, 그리고 소리의 이면(裏面)을 그려내는 약속의 기호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춘향가에서는 춘향의 애절한 옥중편지로, 심청가에서는 심봉사의 눈을 대신해주는 지팡이로, 흥보가에서는 박을 가르는 톱으로, 그 변용의 양상은 장면의 상황만큼이나 다양하다. 이처럼 부채는 소리의 사설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장면을 실감나게 형상화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하나의 무대장치이고, 지휘봉이기도 하다. 보통 소리꾼들이 사용하는 부채는 전주의 특산품인 합죽선을 쓴다. 일반 부채와는 격이 다르고 값의 차이가 크다. 이런 이유에서 1980년 처음 소리에 입문한 시절에는 합죽선을 구해 쓸 여력이 없어 지하철역 입구나 노점에서 파는 값싼 줄 부채를 사서 사용했었다. 지금은 나를 아끼는 시인 묵객들의 글과 그림이 있어 꽤나 값나가는 30여개의 합죽선을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갖지만, 지금도 새 부채를 손에 쥘 때면 판소리 초년시절을 떠올리며 그때의 각오와 다짐을 되새기곤 한다. 바라건데 나의 소리가 어머니의 부채가 되어 이 시대의 끝자락에서나마 인정으로 피어나고, 나의 소리가 새로운 기풍을 진작시키는 이 시대의 바람으로 털끝만큼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소리꾼으로서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나의 판소리가 더불어 함께 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나는 오늘도 부채를 손에 움켜쥐고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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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6 20:07

불안한 개인과 문화 활동

▲ 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과 노동이 결합되어 상품이 생산된다. 생산된 상품은 팔려야 한다. 팔리지 않으면 그 상품의 가치는 인정되지 않고, 폐기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 팔리지 않지만 의미 있는 상품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안타까워하지만, 이 생산과 유통과 소비 단계의 전 과정은 엄격한 편이고, 결과적으로 냉정하다. 우리 개인들은 이 생산과 소비의 전체적인 순환 과정에서 두 가지 이상의 정체성을 갖는다. 생산자이고, 소비자이기도 하다. 물론 유통과정에 관계되기도 한다. 생산자일 때는 소비자의 수요를 고려하지만, 소비자일 때는 사실 생산자를 고려하는 경우가 드물다. 소비자일 때는 거의 대부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된다. 다만, 이 욕망이 간단치가 않다. 소비자로서 뭔가를 소비하고자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외 없이 망설인다. 욕망을 충족시킬 최적의 상품을 선택하기 위한 판단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욕망의 변덕이나 무가치한 욕망에 대한 고려는 주로 생략되는 것이 이 시대의 특성이기도 하다. 너무 망설이는 경우로 인해 최근에는 결정 장애라는 개념도 생겨났다. 망설이는 이유는 선택 행위 이후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후회가 예상된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든가, 적절한 것이 선택되지 않았다든가, 더 좋은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든가하는 부정적 자책이 꼬리를 문다. 게다가 성장기 내내 부모나 스승에게 질책당해 온 역사도 자책을 강화시킨다. 자책의 경험이 누적되면 자신이 선택한 것을 믿을 수 없게 되며, 결국에는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불안한 삶의 경계에서 오락가락 하게 된다. 물론 소비할 자원이 풍족해 후회 없이 관련 상품을 모두 구매해 버리면 망설임이 줄어들지 모른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이라면 최소한의 자원은 있으므로, 자원의 양만이 중요변수는 아니다. 불안은 문화 활동을 통한 즐거움과 자존감 회복으로 극복이 가능하다. 물론 문화 활동이 늘 즐거운 것은 아니다. 예컨대 예술 장르 중 악기 연주의 경우 기능적인 연습시간에는 뜻대로 되지 않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시기를 넘기고 나면 조금씩 즐길 수 있게 된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머리와 몸을 맑게 하고 나면 삶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노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고, 노는 자신을 허용하게 된다. 삶에 여유가 생긴다. 즐기는 시간에는 불안이 범접하지 못한다. 즐기지 않는 생명체가 있을까. 물론 그 즐거움도 지속되지 않는다면 참으로 허무할 것이다. 따라서 즐거움도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욕망이 품고 있는 가치에 대한 고려를 생략하는 이 시대의 트렌드를 거슬러 욕망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는 지혜도 요청된다.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 저자 오연호가 만난 덴마크 인이 덴마크 사회는 불평등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했듯이 모든 인간은 각기 장점을 살려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많이 아는 사람은 나눠 줘야 하고, 필요 정보는 적극 섭취해야 한다. 나누고 배우는 관계는 언제나 역전될 수 있다. 루스 그레엄(Ruth Graham)의 묘비명은 공사 끝. 그동안 참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End of construction, Thank you for your patience)이다. 우리는 주로 공사 중인 채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도 평등하다. 그 와중에 주어지는 문화 활동할 수 있는 시간들에 감사하며 즐기고 나누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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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30 19:10

지붕 없는 미술관, 세병호에 거는 꿈

▲ 엄혁용 전북대 미술학과 교수 지난해 학회 참석차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방문했다. 2000년에 개관해 10여년 만에 한해 400만 명의 관람객이 찾아오는 런던의 명소로 자리잡은 이 미술관의 전신은 놀랍게도 화력발전소다. 2000년대 이후, 국가와 도시의 번성을 이끌었던 산업유산이 생명력을 잃은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새롭게 변신해 도시 발전의 동력이 되고 있는 예는 많다. 테이트모던 또한 그 대표적인 공간이다. 특히 프랑스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 등 거대한 조형물들이 설치된 테이트모던 앞 광장은 런던 시민들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의 휴식공간이 되었으니 예술의 힘을 새삼 깨닫게 된다. 탄광산업의 쇠락으로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빠져있던 영국의 작은 탄광도시 게이츠 헤드 또한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북방의 천사조각상으로 이름을 얻어 해마다 수십 명이 찾아오는 도시로 탈바꿈했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공간을 색다른 예술적 시각으로 재생시켜 도시를 활성화시키고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 성공적 사례들이다. 몇 년 전부터 전주 에코시티에 위치한 세병호 호수공원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애초 35사단이 있던 이 호수공원은 아직 부대를 상징하는 기념물이 남아 있지만, 넓게 펼쳐지는 잔디마당이 일품이다. 35사단이 이전한 이후 에코시티로 이 일대가 개발되면서 세병호를 둘러싼 산책로와 공원은 인근 아파트 주민들뿐 아니라 전주시민들이 찾아오는 소중한 휴식공간이 되었다. 나도 그 중 한사람인데, 어느 날 세병호 산책길을 걷다가 문득 갖게 된 생각이 있다. 아름답게 펼쳐지는 호수공원의 잔디마당을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만드는 일이다. 넓디넓은 잔디 광장에 자연과 호흡하는 다양한 조형물이 놓이는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조각을 전공한 나에게는 무거운 짐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제자들의 창작열정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부재한 지역의 문화 환경이다. 조각은 공간성과 장소성이 확보되어야 작품의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는 특별한 영역이다. 전주는 문화예술의 도시라는 수식어만큼 다양한 예술 분야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유독 조각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미흡하고 야외 전시공간(조각공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그 때문에 이제 막 새롭게 나아가려는 젊은 작가들이 꿈을 포기하거나 지역을 떠나는 현실은 안타깝다. 젊은 청년 작가들이 의욕을 잃지 않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을 이제부터라도 만드는 것은 어떨까. 좋은 통로가 있다. 세병호 지붕 없는 미술관 설립이다. 대단한 예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자치단체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세병호를 둘러싼 잔디마당에 야외 조형물을 설치할 수 있도록 기반만 조성하면 전주도 훌륭한 야외조각공원을 가질 수 있다. 해마다 졸업을 앞둔 예비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기성 작가들은 실험정신으로 구현해낸 조형물들로 교류하며 관객들은 일상에서 예술을 향유하는 공간. 말 그대로 지붕 없는 야외 미술관이 되는 것이다. 야외 조각공원(혹은 지붕 없는 미술관)은 단순히 작가들의 야외작품을 설치하고 감상하는 전시장으로서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다. 긴 안목으로 보자면 문화예술의 씨앗을 심는 중요한 토양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조형물들은 회색의 도시를 생동감 있게 변화시키고, 장소가 갖고 있는 역사와 힘을 기억하게 해주는 통로도 된다. 여름 폭염에도 비지땀을 흘리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제자들을 본다. 지붕 없는 미술관 설립의 꿈이 더 간절해진다. △엄혁용 교수는 홍익대 미술대학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민대 디자인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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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2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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