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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것'일수록 더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 <우리>라는 어휘가 내포한 의미와 풍기는 이미지의 폭은 아주 넓다. 마음과 뜻을 같이 한다, 모두가 손잡고 함께 해야 하는 구성원, 책임을 같이 지는 한 덩이 등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고 우리 식구, 우리 학교, 우리나라, 우리 집, 우리 엄마, 우리 편 등의 말에서 찾아 볼 수 있듯이 <우리>라는 말이 붙으면 익숙하고 편안하다는 느낌이 다른 이미지보다 강하게 다가오는 단어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우리>라는 말이 붙는 일은 격식이 없어도 되는 일, 시간과 절차가 생략될 수 있는 일, 부담이 없는 것,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익힐 수 있는 것등 아주 쉬운 일, 가벼운 일로 치부하면서 만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그러한가? 우리 말인 국어가 노력 없이도 익혀지던가, 우리 글을 쓰는 일이 쉬운 일인가, 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우리 것일수록 진지하게 접근해야 하며 정성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깨지기 쉽고 상처받기 쉽다. 우리 음악에 대한 접근도 마찬가지이다. 준비 없이 들어도 쉽게 와 닿는 게 아니다. 음악을 감상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애정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 양악(洋樂)을 이해하기 위해 쏟은 시간과 노력을 생각해 보라. 무슨 교향곡의 몇 악장을 알기 위해서 숨을 죽이며 듣느라고 얼마나 많이 인내했던가? 학창 시절에 시험을 보기 위해서,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교양의 일환으로 우리는 양악에 아주 많은 시간을 쏟았었다. 덕분에 모차르트, 베토벤, 브라암스, 헨델 등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고전주의, 낭만주의 등 음악의 사조에 대해서도 대충은 알게 되었다. 양악의 이해를 위해서 기울인 우리의 관심과 노력은 실로 지대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정작 애지중지 보듬고 가야 할 우리 음악에 대한 우리의 대접은 어떠한가? 참으로 반성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다. <영산회상>, <수제천>, <여민락>을 들어 본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이며, 전판 <판소리>를 듣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참을성을 발휘한 사람은 또 몇이나 있겠는가. 가야금과 거문고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국악기를 서양악기만큼 설명할 수 있는가. 우륵을 아는가. 악성(樂聖)옥보고를 아는가. 신재효를 아는가. 가왕(歌王) 송흥록을 아는가. 최초의 여류 명창 진채선을 아는가. 한 번에 이해하고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뜨거운 애정이 있어야 하고,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감상을 위한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양악을 필수 교양의 반열에서 이해하기 위해 쏟았던 노력보다도 몇 십 배 더 큰 부담과 당위성을 가지고 접근을 해야 한다. 우리 음악은 조상들의 뼈를 깎는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진 선율로 그 속에 우리의 역사와 문화, 정제된 의식이 담겨 있는 총체적인 세계이다. 일조일석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신과 애환이 장구한 세월에 걸쳐 걸러지고 켜켜이 쌓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국악도 마찬가지이다. 문화적 사대주의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며 국악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극복되어야 한다. 자중자애(自重自愛)하면서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문화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국악(國樂) 사랑이 곧 나라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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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03 19:55

세속적 성공과 문화 활동

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성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우리는 정확히 알고 있을까? 안다는 것 자체가 정보의 인지, 사실에 대한 판단과 느낌 등의 영역을 포함하는 다소 광범위한 개념이라서 이 질문에 응답하기가 간단치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성공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머뭇거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성공이 과연 어떤 내용을 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적 차원에서도 질문을 던지고 검토하고, 사회적으로도 소통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대가 움직이면서 가치가 달라지고, 그 가치를 추구해나갈 방법도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인권과 같은 기본가치는 시대와 공간을 불문하고 성공적으로 추구되어야겠지만, 세계사를 보면 이 기본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진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되기 전에는 인권이 그야말로 인류 중 몇 퍼센트의 존재들만 누리던 권리였다. 대부분의 인류가 인권적 측면의 성공사회가 아닌 폭력과 차별과 억압을 당연한 사회질서로 수용하고, 그 안에서의 생존과 생활의 성공을 추구했던 것이다. 우리 역사도 1945년 이전에는 제국주의의 억압을 우리 민족 전체가 떠안고 있었고, 우리 민족은 그 질서 안에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질서를 깨뜨릴 성공을 추구하였다.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성공은 과연 어떠한가. 성공은 사전적 의미로 목적한 바를 이루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에 충실하자면, 매일매일 성공할 수도 있고, 단기적으로 성공할 수도 있고,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도 있다.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성공 여부가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사회에서 요구하는 몇 가지 관혼상제와 같은 통과의례 단계에 따라 그 의례를 멋지게 통과하는 것만이 성공은 아니다. 성공의 순간이나 성공의 상태를 고대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이다. 성공의 반대라고 할 수 있는 실패의 순간이나 실패의 상태를 즐기는 가학적 존재는 없으리라. 세속적 삶과는 다른 영역, 예컨대, 산 속의 수도생활이나 국외의 선교활동이나 희생적 봉사활동을 하는 자들도 그 목적을 이루어내고자 하는 것이 보편적 지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을 어떤 기능적인 분야에서 특별히 업적을 이루어내는 탁월한 한, 두 사람의 것으로 제한하여 그들을 영웅시 하거나 우상시 하는 사회적 풍토는 나머지 모든 시민들을 상대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자로 잠재적 낙인을 찍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균형 잡힌 사소한 성공들의 집합체가 될 때 시대와 공간에 부끄럽지 않은 보편적이고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특별히 문화 활동은 주변의 이웃들과 나눌 수 있는 성공, 오래가는 성공, 깊이 느껴질 수 있는 성공을 담보해주는 공감능력을 키워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공감능력은 상대방의 말에 아! 그렇군요. 네! 맞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등으로 천천히 맞장구치면서 상대방의 의견을 일단 인정해주고, 동의하여 대화와 소통을 지속시킬 수 있는 기본감각과 이해에서 출발한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는 이른바 성공모델들이 특정 기능에만 오로지 집중하여 삶을 영위할 때 이런 기본감각에 소홀해질 수 있다. 즉 문화 활동 경험이 빈약한 성공모델들이 지도력을 행사하는 사회는 인간과 인권에 대한 공감 자체가 미비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을 기계와 동일시하는 기능주의적 성공의 잣대만이 판칠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 활동의 소재가 되는 모든 장르의 작품과 활동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자, 단절된 관계, 지구의 문제, 그리고 아름다움과 슬픔과 분노의 원인들을 다룬다. 따라서 문화 활동은 인간의 삶에 대한 공감의 폭을 넓혀주고 깊게 해줄 수 있다. 공감능력을 기반으로 매일 매일의 성공적 삶을 위한 재설계를 시도하는데, 어떠한 시점이라도 늦지 않다. 늦는 시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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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27 20:08

뮌스터 거리에서 전주를 생각하다

엄혁용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독일의 북서쪽에 있는 뮌스터는 인구 26만 명 정도의 크지 않은 도시다. 중세의 사원과 교회, 시청사 등 사적이 많이 남아 있어 구 시가지가 특히 아름다운 이 도시에서는 10년마다 한번 대규모 미술행사가 열린다. 베니스비엔날레, 카셀도큐멘타와 함께 유럽의 3대 미술행사로 꼽히는 세계 최고의 공공미술 축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다. 작년 여름, 제자들과 함께 이 축제를 찾았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와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카셀도큐멘타, 10년에 한 번씩 열리는 뮌스터 조각프로젝트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우리에게 정말 큰 축복이었다. 기대한 만큼 눈호사를 누릴 수 있는 전시는 얼마든지 많았다. 이들 축제 중에서도 나의 관심은 10년에 한 번 열리는 뮌스터 프로젝트에 닿아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중세도시 뮌스터를 거대한 야외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키는 조각과 설치미술과 영상미술로 이름이 높다. 1977년에 시작되었으니 40년이 지났지만 이제 다섯 번째 축제를 치렀으니 그 느린 호흡과 여유(?)만으로도 놀라운 미술축제다. 뮌스터 조각프로젝트의 감동은 한둘이 아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웠던 것은 뮌스터 시내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자전거 행렬이었다. 게다가 미술축제가 열리는 동안 시민들은 물론이고 많은 관광객들이 작품 지도를 들고 자전거를 타고 도시 곳곳에 놓여 있는 작품들을 찾아다니는 모습은 특별한 풍경이었다. 아름다운 도시 풍경에 눈을 빼앗기다보면 또한 마주치게 되는 곳곳에 숨어있는 작품들은 어느새 도시와 한 몸이 되어 관객을 맞고 있었다. 기획자의 의도가 숨어있겠지만 뮌스터 프로젝트의 모든 작품을 단 하루 만에 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시내에 숙소를 잡고 도시의 깊은 향기를 맡으며 머물렀던 뮌스터에서의 그 며칠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시간이 되었다. 오늘에 이르러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뮌스터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뮌스터프로젝트도 초기에는 시민단체와 예술계의 거센 비판과 반대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당시 뮌스터 시립미술관 관장이었던 클라우스 부스만과 큐레이터 카스퍼 쾨니히의 뮌스터에 대한 애정과 끈질긴 노력이 결국은 긍정적인 여론을 만들어냈다. 보수적인 뮌스터 시민들을 지속적인 예술교육과 대화로 설득해나간 뮌스터 시장의 역할도 뮌스터 프로젝트의 역사적인 걸음을 뗄 수 있게 만든 주된 원동력이었다. 뮌스터에 머무는 동안 불쑥불쑥 내가 살고 있는 전주의 거리가 생각났다. 세계적으로 핫한 여행 도시가 된 전주는 한옥마을 중심의 1000만 명 관광도시로 이름을 올렸다. 불과 몇 년 사이 관광도시로서의 양적 성장은 놀라울 만하다. 그러나 전주가 앞으로도 관광객들이 다시 찾아오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뮌스터 거리를 거닐면서 전주가 떠오른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전주 거리 곳곳에 아름다운 미술품이 놓인 거대한 야외미술관. 자전거를 타고 한옥마을과 전라감영과 객사와 풍남문을 거쳐 남부시장에서 미술품을 만나고 팔복동 예술공장의 예술품들과 대화하며, 덕진공원과 전주 곳곳에 숨어있는 쌈지공원과 천변 길에 설치된 작품들로 전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난다면, 그리하여 천년 역사가 깃든 전주를 매력적인 도시로 기억할 수 있게 된다면........ 긴 안목으로 미술프로젝트를 만들어 세계적인 명소가 된 뮌스터의 사례는 세계적인 문화여행 도시를 꿈꾸는 도시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은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에서 끝나는 일차원적인 관광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문화와 예술로 치유되고 정화되는 품격 있는 여행의 시대다. 전주는 그러한 여행의 품격을 갖출 수 있는 좋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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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20 21:53

승강장에 걸린 시는 어디로 갔을까

▲ 조미애 시인전북시인협회장 최근 전주시내버스승강장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예술이 숨쉬는 승강장이 되어 시민들에게는 이용의 편리를 도모하고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쾌적한 인상을 주기 위해 현대적인 모습으로 하나 둘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전주시 전역을 지붕 없는 미술관과 예술관으로 만들기 위한 큰 행보라고 한다. 천년의 빛과 천년의 숨을 주제로 했다는 소식이다. 승강장 하나에도 예술을 접목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런데 전주시내버스승강장이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던 날에 그곳에 걸려 있던 시(詩)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 우리 협회 카페에는 특별한 글이 올라왔다. 전주를 방문한 경기도의 한 여성이 버스승강장에서 만나게 된 시 한 편에 대한 감동을 적은 글이었다. 전북도청 버스정류장에 있는 글이었는데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여 카페를 찾아 글을 남긴 것이었다. 우연히 만난 시에 대한 여운과 함께 사진으로 찍어간 시를 캘리그라퍼 지인이 작품으로 만들어주었다면서 족자와 부채로 만들어진 사진까지 올려 둔 것이다. 공개된 자리에 연락처까지 남긴 그분의 정성은 한 줄기 소나기처럼 신선하고 고마웠다. 그동안 전주시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버스승강장에 전주 시인들의 시를 승강장 벽의 옆면에 새겨 시민들이나 전주를 찾는 관광객이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버스승강장에 시인들의 작품이 걸리던 날 전주는 다른 그 어느 도시에서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해낸 것만으로 문화예술도시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승강장문학작품은 점차 상업적 광고에 밀려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당시 나의 시는 전북대학교 승강장에 있었는데 빠르게 커다란 광고 한 장이 그 위를 덮어버렸다. 이후 승강장 시 걸기는 한 차례 더 시도되었고 그때 걸었던 작품은 다행히 아직 남아 있다. 한때는 기와를 얹어 고전적인 도시로써의 풍모를 자랑하였는데 이제 현대적인 감각의 조형물로써 승강장 자체가 예술적인 위엄을 담아 고전과 현대가 병존하는 전주시의 모습을 승강장에서도 볼 수 있는가 보다. 승강장이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새롭게 건축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예술이 숨쉬는 승강장 바로 그곳에서 시인들의 아름다운 작품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시에서는 오래전부터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시를 써서 보여주고 있다. 서울에 가는 날에는 지인들의 시를 읽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지하철을 이용하곤 한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지하철 시를 읽고 있을 것이다. 바쁜 걸음으로 그냥 스치는 인연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편의 시가 친구가 되어 고단한 일상을 위로하고 있을 것이다. 서울시가 처음 지하철에 시를 걸기로 했을 때에는 전국의 시인들에게 청탁을 하여 시를 모았으며 최근에는 시인들의 시와 함께 시민들의 작품도 받아서 올리고 있다.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시가 있는 승강장의 풍경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새로운 단장이 모두 끝나고 나면 공사 기간 중 잠시 보관해 둔 시를 찾아서 시내버스승강장에 다시 걸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전주를 찾은 사람들로부터 승강장에 걸린 시를 읽고서 보내오는 반가운 소식을 오래도록 선물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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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13 19:23

추억의 부채

▲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 요즘같이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와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 조그마한 부채 하나쯤 손에 쥐고 있으면 그래도 약간은 더위를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에 큰 위안이 된다. 부채는 고향이요, 어머니이다. 여름이면 으레 고향집 마당에는 평상(平床)이 펴져 있었고 그 평상에서 우리 가족의 인정(人情)과 여름이 익어갔다. 밤이면 마당 한 켠에서 피어오르는 매캐하고도 구수한 모깃불 연기를 온몸에 감고 어른들의 얘기를 들으며 내 나름 세상일을 가늠했었다. 그런 밤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평상에 누우면 총총한 밤하늘의 별은 내 눈에 쏟아졌고, 어머니의 옛날 이야기는 내 귀에 켜켜이 쌓여 갔다. 그때 어머니의 손에는 언제나 부채가 들려 있었고, 하염없는 어머니의 그 부채질 속에서 나는 잠이 들곤 했다. 모기와 더위를 함께 쫓아 주었던 어머니의 부채는 부정한 것들을 몰아내어 자식의 앞날을 순탄하게 펼쳐주고자 했던 마음속 깊고 깊은 축원이었으리라. 그립기만 한 어머니의 그 손길,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요, 아련한 풍경이다. 부채는 새로운 기운(氣運)이요 다짐이다. 단오절에 나누는 선물로 부채는 빼놓을 수 없는 품목이었다. 특히 단오절에 임금은 신하들에게 무엇보다 우선으로 부채를 하사했는데, 임금이 내리는 그 부채는 단순한 선물의 차원을 뛰어넘는 엄숙한 의미의 신표(信標)였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듯, 이 나라 종묘사직에 새로운 기풍을 진작(振作)시켜 달라는 임금의 간곡한 부탁과 조정(朝廷)의 다짐을 서로 담았기 때문이다. 나는 소리꾼이다. 소리꾼에게 부채는 실과 바늘이다. 부채는 판소리꾼에게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멋도 멋이지만 소리판을 쥐락펴락하는 상징적 도구로, 그리고 소리의 이면(裏面)을 그려내는 약속의 기호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춘향가에서는 춘향의 애절한 옥중편지로, 심청가에서는 심봉사의 눈을 대신해주는 지팡이로, 흥보가에서는 박을 가르는 톱으로, 그 변용의 양상은 장면의 상황만큼이나 다양하다. 이처럼 부채는 소리의 사설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장면을 실감나게 형상화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하나의 무대장치이고, 지휘봉이기도 하다. 보통 소리꾼들이 사용하는 부채는 전주의 특산품인 합죽선을 쓴다. 일반 부채와는 격이 다르고 값의 차이가 크다. 이런 이유에서 1980년 처음 소리에 입문한 시절에는 합죽선을 구해 쓸 여력이 없어 지하철역 입구나 노점에서 파는 값싼 줄 부채를 사서 사용했었다. 지금은 나를 아끼는 시인 묵객들의 글과 그림이 있어 꽤나 값나가는 30여개의 합죽선을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갖지만, 지금도 새 부채를 손에 쥘 때면 판소리 초년시절을 떠올리며 그때의 각오와 다짐을 되새기곤 한다. 바라건데 나의 소리가 어머니의 부채가 되어 이 시대의 끝자락에서나마 인정으로 피어나고, 나의 소리가 새로운 기풍을 진작시키는 이 시대의 바람으로 털끝만큼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소리꾼으로서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나의 판소리가 더불어 함께 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나는 오늘도 부채를 손에 움켜쥐고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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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6 20:07

불안한 개인과 문화 활동

▲ 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과 노동이 결합되어 상품이 생산된다. 생산된 상품은 팔려야 한다. 팔리지 않으면 그 상품의 가치는 인정되지 않고, 폐기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 팔리지 않지만 의미 있는 상품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안타까워하지만, 이 생산과 유통과 소비 단계의 전 과정은 엄격한 편이고, 결과적으로 냉정하다. 우리 개인들은 이 생산과 소비의 전체적인 순환 과정에서 두 가지 이상의 정체성을 갖는다. 생산자이고, 소비자이기도 하다. 물론 유통과정에 관계되기도 한다. 생산자일 때는 소비자의 수요를 고려하지만, 소비자일 때는 사실 생산자를 고려하는 경우가 드물다. 소비자일 때는 거의 대부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된다. 다만, 이 욕망이 간단치가 않다. 소비자로서 뭔가를 소비하고자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외 없이 망설인다. 욕망을 충족시킬 최적의 상품을 선택하기 위한 판단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욕망의 변덕이나 무가치한 욕망에 대한 고려는 주로 생략되는 것이 이 시대의 특성이기도 하다. 너무 망설이는 경우로 인해 최근에는 결정 장애라는 개념도 생겨났다. 망설이는 이유는 선택 행위 이후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후회가 예상된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든가, 적절한 것이 선택되지 않았다든가, 더 좋은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든가하는 부정적 자책이 꼬리를 문다. 게다가 성장기 내내 부모나 스승에게 질책당해 온 역사도 자책을 강화시킨다. 자책의 경험이 누적되면 자신이 선택한 것을 믿을 수 없게 되며, 결국에는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불안한 삶의 경계에서 오락가락 하게 된다. 물론 소비할 자원이 풍족해 후회 없이 관련 상품을 모두 구매해 버리면 망설임이 줄어들지 모른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이라면 최소한의 자원은 있으므로, 자원의 양만이 중요변수는 아니다. 불안은 문화 활동을 통한 즐거움과 자존감 회복으로 극복이 가능하다. 물론 문화 활동이 늘 즐거운 것은 아니다. 예컨대 예술 장르 중 악기 연주의 경우 기능적인 연습시간에는 뜻대로 되지 않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시기를 넘기고 나면 조금씩 즐길 수 있게 된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머리와 몸을 맑게 하고 나면 삶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노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고, 노는 자신을 허용하게 된다. 삶에 여유가 생긴다. 즐기는 시간에는 불안이 범접하지 못한다. 즐기지 않는 생명체가 있을까. 물론 그 즐거움도 지속되지 않는다면 참으로 허무할 것이다. 따라서 즐거움도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욕망이 품고 있는 가치에 대한 고려를 생략하는 이 시대의 트렌드를 거슬러 욕망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는 지혜도 요청된다.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 저자 오연호가 만난 덴마크 인이 덴마크 사회는 불평등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했듯이 모든 인간은 각기 장점을 살려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많이 아는 사람은 나눠 줘야 하고, 필요 정보는 적극 섭취해야 한다. 나누고 배우는 관계는 언제나 역전될 수 있다. 루스 그레엄(Ruth Graham)의 묘비명은 공사 끝. 그동안 참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End of construction, Thank you for your patience)이다. 우리는 주로 공사 중인 채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도 평등하다. 그 와중에 주어지는 문화 활동할 수 있는 시간들에 감사하며 즐기고 나누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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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30 19:10

지붕 없는 미술관, 세병호에 거는 꿈

▲ 엄혁용 전북대 미술학과 교수 지난해 학회 참석차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방문했다. 2000년에 개관해 10여년 만에 한해 400만 명의 관람객이 찾아오는 런던의 명소로 자리잡은 이 미술관의 전신은 놀랍게도 화력발전소다. 2000년대 이후, 국가와 도시의 번성을 이끌었던 산업유산이 생명력을 잃은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새롭게 변신해 도시 발전의 동력이 되고 있는 예는 많다. 테이트모던 또한 그 대표적인 공간이다. 특히 프랑스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 등 거대한 조형물들이 설치된 테이트모던 앞 광장은 런던 시민들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의 휴식공간이 되었으니 예술의 힘을 새삼 깨닫게 된다. 탄광산업의 쇠락으로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빠져있던 영국의 작은 탄광도시 게이츠 헤드 또한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북방의 천사조각상으로 이름을 얻어 해마다 수십 명이 찾아오는 도시로 탈바꿈했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공간을 색다른 예술적 시각으로 재생시켜 도시를 활성화시키고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 성공적 사례들이다. 몇 년 전부터 전주 에코시티에 위치한 세병호 호수공원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애초 35사단이 있던 이 호수공원은 아직 부대를 상징하는 기념물이 남아 있지만, 넓게 펼쳐지는 잔디마당이 일품이다. 35사단이 이전한 이후 에코시티로 이 일대가 개발되면서 세병호를 둘러싼 산책로와 공원은 인근 아파트 주민들뿐 아니라 전주시민들이 찾아오는 소중한 휴식공간이 되었다. 나도 그 중 한사람인데, 어느 날 세병호 산책길을 걷다가 문득 갖게 된 생각이 있다. 아름답게 펼쳐지는 호수공원의 잔디마당을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만드는 일이다. 넓디넓은 잔디 광장에 자연과 호흡하는 다양한 조형물이 놓이는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조각을 전공한 나에게는 무거운 짐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제자들의 창작열정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부재한 지역의 문화 환경이다. 조각은 공간성과 장소성이 확보되어야 작품의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는 특별한 영역이다. 전주는 문화예술의 도시라는 수식어만큼 다양한 예술 분야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유독 조각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미흡하고 야외 전시공간(조각공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그 때문에 이제 막 새롭게 나아가려는 젊은 작가들이 꿈을 포기하거나 지역을 떠나는 현실은 안타깝다. 젊은 청년 작가들이 의욕을 잃지 않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을 이제부터라도 만드는 것은 어떨까. 좋은 통로가 있다. 세병호 지붕 없는 미술관 설립이다. 대단한 예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자치단체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세병호를 둘러싼 잔디마당에 야외 조형물을 설치할 수 있도록 기반만 조성하면 전주도 훌륭한 야외조각공원을 가질 수 있다. 해마다 졸업을 앞둔 예비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기성 작가들은 실험정신으로 구현해낸 조형물들로 교류하며 관객들은 일상에서 예술을 향유하는 공간. 말 그대로 지붕 없는 야외 미술관이 되는 것이다. 야외 조각공원(혹은 지붕 없는 미술관)은 단순히 작가들의 야외작품을 설치하고 감상하는 전시장으로서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다. 긴 안목으로 보자면 문화예술의 씨앗을 심는 중요한 토양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조형물들은 회색의 도시를 생동감 있게 변화시키고, 장소가 갖고 있는 역사와 힘을 기억하게 해주는 통로도 된다. 여름 폭염에도 비지땀을 흘리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제자들을 본다. 지붕 없는 미술관 설립의 꿈이 더 간절해진다. △엄혁용 교수는 홍익대 미술대학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민대 디자인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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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23 20:01

섬세한 상징 폭력에 반하여

▲ 조미애 시인전북시인협회장 한때는 이름 난 화가의 전시회나 동숭동 연극을 관람하기 위해서 밤 열차를 예매하고 이웃집 아이들과 집단을 이루어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한 모습이 사라지게 된 것은 분명 민선지방자치 시대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주민의 선택을 받은 지방의 수장들이 지역문화예술정책을 공약하고 실천함으로써 굳이 서울행 버스를 타지 않아도 상당 수준의 문화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발전한 지역문화예술이 전문예술인과 예술동호인들의 간극과 차별화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적인 문화예술 영역은 본질적으로 일반인들의 문화적 인식과 구별된다. 예술동호인들의 다양한 활동은 개인적 만족감을 넘어 지역 주민의 삶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주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전문 예술인들의 태도는 예술동호인들과는 서로 다른 아비투스를 생산한다. 예술동호인들의 행위는 전문예술인들의 형식을 모방하는데 주위를 집중하는데 반해 전문예술인들은 새로운 문화를 개발함으로써 더욱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행동은 우월한 것과 저급한 것이라는 이분법적 대립이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서 평가되기 때문에 전문인과 동호인에 대한 정체성의 충돌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전문예술인들은 스스로 문화의 대중화를 선호하다고 하고 있지만 희소성의 객관적 토대인 문화적 독특함을 보존하는 데는 불안해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에 살았던 장자(莊子)는 뛰어난 시인이었다. 그는 대지한한(大知閑閑) 소지간간(小知間間)이라고 했다.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여유가 있고 작은 지혜를 지닌 사람은 남의 눈치만 살핀다는 말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겸손하고 너그럽지만 지혜가 부족한 사람은 자신을 내세우려고 애쓰며 사소한 것에도 시비를 가리려 한다. 그러기에 전문가는 진지하면서도 너그러워야한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은 분명해야 하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항상 이겨야한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 이러한 장자의 가르침은 오늘 날 많은 시인들에게 문학적 상상력을 북돋아 주었으며 이것은 곧 예술적 상상력으로 승화되어 문화와 예술이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사실 정통문화에 대해 예술인들의 논쟁은 문화자본과 사회적 권력의 지배원리를 규정하기 위한 투쟁의 한 단면일 수 있다. 상당 부분 문화는 사회 계층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문화는 섬세한 상징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예술인들이 자신의 영역을 고집하고 생활동호인의 비전문적이고 비문화적인 요소를 비판만 계속한다면 지금보다 더 고립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게 될 것이 자명하다. 사회적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각각의 영역에서 서로 다른 자본을 동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양과 학식을 동일시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예술 작품은 구별 관계를 객체화한다. 예술동호인의 활동은 화려하게 활성화되어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다지만 전문예술인의 질적 성장을 추월할 순 없다. 높은 수준의 문화예술 미학은 유치하지 않으며 질박하고 소박하다. 더구나 수단의 절약과 같은 미덕에 가치를 둔다. 그럼에도 민선시대 문화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양적인 평가만을 우선시함으로써 질적으로 우수한 문화적 가치가 무시되고 상대적으로 지원이 부족한 것은 깊이 우려되는 일이다. △조미애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이사이며 시집 <꽃씨를 거두며>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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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16 20:29

고향 사랑으로 전북의 몫을 찾자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 [달님이시여! 높이 높이 돋으시어 멀리 멀리 비춰 주십시오] 이 노래는 현재 전해지고 있는 백제 유일의 가요로 알려진 정읍사(井邑詞)의 첫 머리입니다.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이 노래에 대한 배경과 그의 증표에 해당하는 망부석이 잘 소개되고 있으며 노래는 악학궤범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읍사에는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한(恨)이 담겨 있습니다. 백제의 노래 정읍사는 남도의 노래입니다. 남도의 노래 판소리는 한(恨)의 예술입니다. 정읍이 고향인 나는 소리꾼입니다. 나의 세포 하나 하나는 전라북도의 바람과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는 태생적으로 전북을, 남도의 한을 노래 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고향(故鄕)! 불씨처럼 가슴에 담고 사는 말. 내 가슴속에는 전북의 산천이 언제나 펼쳐지고 굽이쳐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산업화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고향의 현실에 미치면 울분을 떨칠 수 없는 면이 있기도 하지만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곳, 생각할수록 아늑한 내 영혼의 안식처, 그곳이 바로 내 고향 전북입니다. 나는 40여년 가까이 서울에 사는 동안 경동시장에 가기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특히 모과와 석류가 나오는 가을에는 꼭 한 차례씩 들르곤 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고향의 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무신으로 개울물 품어 가며 잡았던 미꾸라지가 추억을 거슬러 올리듯 꿈틀대고 있고 어머니와 같은 과일, 모과가 있기에 그곳에 갑니다. 모과를 보면 어머니가 생각나고, 어머니를 생각하면 고향이 떠오릅니다. 모과 향기는 어머니의 손길입니다. 나무 등걸처럼 굽어진 손으로 배앓이 배를 쓰다듬어 주시고, 골 깊게 패인 주름 속 잔잔한 눈길로 머리맡을 지켜주신 어머니를 나는 모과로 하여 만나곤 했습니다. 나에게 어머니는 고향입니다. 내 고향 전북은 모과처럼 은근한 곳이고, 어머니의 손길처럼 인정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해거름엔 저녁 짓는 연기가 낮게 깔려 갔던 고향마을! 판소리꾼인 나는 내 영혼의 원천인 그곳의 삶처럼 은근한 소리, 속 깊은 소리를 하고 싶습니다. 그 시장에 가면 부지런한 사람들이 있고, 화장기가 없기에 더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으며, 목청을 높이며 악착을 보이는 아줌마가 있고, 큰 돈보다 한 푼이 더 소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논에 발을 묻고 허리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했던 어머니가 그곳에 있습니다. 9남매를 기 안 죽이고 거두기 위해서, 남들만큼은 가르쳐 보겠다고 두 팔을 걷어 부쳤던 생전 어머니의 모습을 그곳에서 보게 됩니다. 판소리꾼인 나는 고향사람들처럼 건강한 소리, 어머니처럼 생명력이 약동하는 소리를 하고 싶습니다. 나아가 정읍사의 달처럼 높이 돋아서 우리 소리 판소리를 백두에서 한라까지 이 강산 구석구석에 메아리치게 하는데 손색없는 전북인으로 활약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우리 전북인은 더욱 높이 높이 돋아서 이 나라 이 민족의 앞길을 밝히는 빛나는 존재로, 내 고향 전북은 문화와 예술이 숨 쉬는 고장으로 거듭날 것이라 확신합니다. 올해는 전라도 명명 천년이 되는 해입니다.이제 웅비하는 전라북도, 새로운 천년을 준비할 때입니다. △왕기석 원장은 제31회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명창부 장원이며 전북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예능보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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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09 18:46

사소한 문화 활동과 심리적 자본

▲ 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문화 활동은 예술 행위를 포함하여 사회관계 속에서 취하는 삶의 방식과 가치와 신념과 전통적 활동 등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특히 예술은 장르별로 인식되기도 하고, 최근에는 장르별 융합이 자주 일어난다. 이렇듯 예술을 포함하는 문화 활동이라는 것은 사회 구성원의 고유한 정신과 물질, 지적감성적 특성의 총체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문화 활동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생활 속에서 우리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예술 행위이건 지적 대화이건, 전통에의 몰입이건 간에 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분명 폭력적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리적인 폭력 혹은 정신적인 폭력 혹은 그 둘 다 일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신이 무엇인가를 통해 즐기지 못하는 경우에는 늘 주변의 누군가를 대상으로 하여 삶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특성을 지닌 생명력 있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고, 움직임은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나타난다. 때로는 희생이라는 생활양식으로 누군가 상대방을 위한다는 생활방식을 끝내 고집하다가 결국 그 상대방을 함정에 빠뜨리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희생을 즐기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삶의 방식일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현재 즐거운 상태인가를 확인할 책임이 있다. 즐겁지 않다면 곧바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예술 장르로 돌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최소한 영화관이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PC방으로라도. 그래야 비로소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활동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 프레드 루턴스(F. Luthans)는 2006년에 심리적 자본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가 말하는 심리적 자본은 모두 네 가지로, 희망(hope), 자기효능감(Efficacy), 복원력(resiliency), 낙관주의(optimism)이다. 이 네 가지 심리적 자본의 앞 글자만 따서 단어를 만들면 영웅(HERO)이 된다. 우리가 심리적 자본을 스스로의 방식으로 잘 축적하면 어느새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비유적 해석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어느 순간에도 이러한 심리적 자본이 자기 통장에서 제로 상태 혹은 마이너스 상태가 아닌지 꺼내보아야 할 것이다. 어디서나 손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통해서, 손쉽게 볼 수 있는 영화를 통해서, 손쉽게 읽을 수 있는 만화나 시나 소설을 통해서 이러한 심리적 자본을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다면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굳이 부러워할 필요가 없으리라. 심리적 자본과 유사한 개념으로는 정서지능 혹은 감성지수라는 것도 있다. 피터 샐로베이(Peter Salovey)와 존 메이어(John D. Mayer)가 일반적인 지능지수(IQ)와는 질이 다른 정서지능을 언급하였다. 즉 마음의 지능지수라는 것이다. 첫째, 자신의 진정한 기분을 자각할 수 있으며, 이를 존중하는 자기인식이다. 둘째 충동을 자제하고 불안이나 분노 같은 스트레스를 제어하는 자기관리 지능이다. 셋째, 어떠한 목표를 추구하다가 그 추구가 실패로 끝났을 때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격려할 수 있고, 계속적으로 동기유발을 하는 자기확신이다. 넷째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다. 다섯째 집단 내에서 조화를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할 수 있는 사회적 지능이다. 프레드 루턴스가 언급한 자기효능감과 복원력이라는 심리적 자본과 공통점이 있음을 눈치 채셨을 것이다. 정서적 지능은 아직 정형화된 테스트 방법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최소한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심리적 자본이 튼실해지는 여름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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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02 19:46

시선으로부터의 여유

▲ 김승희 국립전주박물관장 여름 바캉스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이국의 풍광을 즐기기 위해 국외로 떠나는 여행객들이 매년 늘어나고 청년 이상 중년의 사람들이 모이면 해외여행 이야기로 대화의 꽃을 피우기 일쑤다. 굳이 발품을 팔지 않아도 TV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안방에서도 충분히 해외 여러 나라의 자연과 문화를 감상하는 호사를 누린다. 그 중에서 요즘 나의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노래 잘하는 가수들이 유럽의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래뿐 아니라 유명 팝송들도 기량을 다해 불러주어 시청자가 충분히 귀호강을 할 수 있게 하고, 더불어 고풍스런 건축물들을 품은 아름다운 그 나라의 자연을 감상하는 눈호강도 하게 해준다. 그들은 내가 아는 한, 또는 느끼는 한, 우리나라 탑가수들이다. 당연히 거리의 구경꾼들은 그들의 노래에 감탄하고 소박한 환호의 박수를 보내는데, 마음 조리던 그 가수들은 그런 반응에 안도하고 시청자도 함께 뿌듯해하고 으쓱해한다. 이봐, 우리가 코레안이야, 우리 이 정도야, 알겠어? 하는 느낌이랄까. 아직도 한국인은 외국인의 호응에 유난히 배고파한다. 그리고 어린사람들의 음악이라고 관심 없던 K팝이 미국 빌보드에 상위권을 차지하면 그 그룹을 평소에는 몰랐어도, 노래를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어도 덩달아 어깨 으쓱하며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좋아한다. 방탄소년단이 그만큼의 칼군무와 노래실력을 갖추기까지 기울였던 피나는 노력, 그것을 뒷받침한 소속사 스텝들의 노력이 국위를 선양하기 위해 있었던 건 아니지 않겠는가. 그들의 아름다운 성공일 뿐이다. 그들의 성공을 애국으로 연결 짓는 행위는 요즘 젊은이들에겐 좀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전후세대라 불리는 기성세대가 살아온 세상은 국가의 탄탄한 설립 위에 개인의 성공도 있어왔지만 그 2세, 3세들에겐 국가의 존재감이 개인의 존재감보다 옛날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지향해나가는 국가발전형태도 개인과 인권이 우선 존중되고 국가는 서비스의 기능에 충실해져야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모티프를 딴 그 신선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온전히 릴렉스하게 즐기지만은 못하는 시청자 부류의 한 사람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한번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시청자로서 유명가수들의 노랫소리를 충분히 즐기는 것은 물론 호강이고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어디서든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고 충분히 자리매김되어 있는 가수들이다. 그들보다 아직 자리매김에 허기진 신인, 또는 무명의 실력있는 가수들(혹은 가수지망생들)이 우리나라에 많고 많은 걸 안다. 버스킹이란 그런 이들에게 주어져야 할 무대가 아닐까. 외국인들이 우리 프로가수들의 노래실력에 얼마만큼 감탄하는지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었다면, 실력파 아마추어들이 도전하는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으로 포커스를 옮기는 건 어떨까 싶다. 그 아마추어들도 충분히 박수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박수를 받지 못해도 좋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승자독식으로 만연한 사회의 일면을 이 아름답고 여유로운 프로그램에서까지 내비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한다. 저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하는 두려움보다 그냥 나는 무엇을 어떻게 얼마만큼 보여줄까에 핵심을 두는 여유로운 사회가 늘 그리운 심정에서 한번 욕심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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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25 18:41

남북교류에 문학이 가장 앞서야 하는 이유

▲ 윤철 전북수필문학회장 세기적 사건인 612 북미정상회담이 잘 끝났다. 지난주에는 어느 자리에서나 북미정상회담이 화두였다. 일부에선 성과를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처참한 전쟁까지 겪었던 지난날의 대립과 갈등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화해와 평화의 온기를 느끼기에 충분한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작년 이맘때를 돌이켜보자. 내 책상에 핵 단추가 있다라는 김정은의 말 폭탄과 핵실험, 미사일 발사에 미국은 코피 전략으로 북한 핵 관련 시설을 정밀 타격하겠다는 북미 간의 대립이 고조되어 이 땅에 전운이 감돌고 대다수 국민은 불안에 떨지 않았던가. 이제 전쟁의 위협은 사라졌다. 통일의 시야를 가리던 짙은 안개도 지난 여섯 달 사이에 빠르게 걷혀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통일이 보인다. 제대로 된 통일의 밑그림을 그리고 준비해야 하는 『통일의 시대』가 온 것이다. 나뉜 땅덩어리가 합해지고 남북한의 기존체제를 무너뜨려 새로운 단일체제가 태어난다고 해서 그것을 진정한 통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통일이란 땅 위의 경계선을 허물고 하나로 합하는 물리적 개념뿐 아니라 같은 민족으로서 혈연적 유대성, 지역적 인접성, 문화적 동질성, 정서적 연대성, 즉 생활문화를 공유하는 정신적 개념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지난 73년 세월 동안 남과 북의 생활문화는 정반대 방향으로 너무나 다르게 변화하고 발전하였다. 격차 또한 극심해진 탓에 충분한 준비 없이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조정하기 어려운 사회 혼란으로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탈북자들의 남한 사회 적응을 모델로 통일 이후의 문제점을 꼼꼼히 짚어봐야 한다. 탈북자 대부분이 적응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가 생활문화 차이 때문이란다. 이념과 체제에 의한 통제가 정당화된 획일적 사회주의 체제에서 교육받고 세뇌된 사고와 가치 기준으로는 갑작스럽게 주어진 자유를, 경쟁이 치열한 시장 경제를, 이질적인 것이 공존하는 다변화 사회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음은 당연한 현상이다.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이것이 사회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제 남북한은 문화적 동질성, 정서적 연대성만으로 본다면 단일 민족이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생각한다. 체제 안전을 보장받은 북한의 다음 수순은 경제발전을 위한 개혁개방이다. 북한의 개혁개방 결과로 남북 사이에 사람과 교통수단의 왕래가 자유롭게 되고, 전화와 편지 인터넷 통신에 제한이 없으며, 관세나 수량 등의 규제 없이 상품을 교역할 수 있다면 그것이 실질적인 통일이리라.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져 서로를 이해하는 섞임과 스밈 가운데 문화 격차가 자연스레 줄어들고 없어진다면 휴전선의 있고 없음을 떠나 통일은 완성될 것이다. 따라서 남과 북의 심각한 생활문화 격차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해소를 위한 노력이 진정한 통일의 디딤돌이며 통일 이후 사회 혼란과 통일 비용을 가장 최소화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평생 직접경험으로 체득하는 것보다 간접경험으로 알고 익히는 것이 훨씬 많다. 지금으로선 남과 북이 서로를 직접 경험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간접경험을 통해 생활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밖에 없다. 간접경험으로나마 서로의 생활문화 차이를 이해하고 습득하며 단절점을 이어 붙이는 유용한 방법을 찾자면 문학만 한 장르가 없다. 보통 수준의 사고와 가치 기준이 바탕을 이루는 일상의 삶을 진솔하게 그려낸 문학작품은 미지의 사회를 간접 경험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북교류에 문화교류가, 그것도 문학이 가장 앞에 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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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8 18:50

배고픈 예술계

▲ 염광옥 한국무용협회 전북지회장 문화예술이 밥 먹여 주냐? 이런 비아냥은 이제 구식이다. 지금 이 시대에는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밥만 먹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요즘 세상에서 문화는 어느 한 지역이나 나라의 대외 이미지를 좌우하는 브랜드로서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술가를 가장 빈번하게 수식하는 단어는 가난 아닐까 싶다. 가난은 모더니즘 사조가 예술계를 지배하던 시기부터 예술가들을 따라다녔던 꼬리표였다. 예술 그 자체만을 위한 예술이라는 가치 아래 가난은 예술작품의 고결함과 깊이를 더해주는 혹독한 주문이 되었다. 음악의 아버지라 추앙받는 바흐도 가족의 생계를 걱정했고, 세기의 천재 모차르트도 빚에 쪼들렸다. 가곡의 왕으로 불리는 슈베르트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니 말이다. 그래도 반 고흐에 비할까.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채 고독하고 비참하게 살다 권총 자살로 37세의 삶을 마감했으니 말이다. 지금이야 반 고흐의 작품들이 모두 엄청난 고가에 거래되고 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생전에 단 하나의 작품밖에 팔지 못했다. 다른 나라 예술가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비운의 천재 화가 이중섭의 인생도 극심한 빈궁과 처자식을 일본으로 보낸 후의 애절한 고독으로 가득하다. 예술가의 숙명이라고 해야 하나. 예술가의 가난은 시대가 변해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물론 본질적으로 예술의 미학적 가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의 노동과는 대항적 위치에 놓여야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 예술가들이 처한 현실적 상황을 직시하면 예술가처럼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노동 착취를 당하는 직업군도 찾기 어렵지 않을까 한다. 시간제 아르바이트의 시급에도 못 미치는 대가와 전문적 기능과 기술을 제공하면서도 사회적으로 받는 무시와 편견은 이들로 하여금 자기 직업에 대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각종 예술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직업적 특성을 감정노동이라는 단어를 생성시킴으로써 설명하듯 예술 노동 또한 무엇보다도 정신노동이라는 기본 전제를 그 특징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 행위는 육체적 노동을 수반하는 정신적 노동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술인복지법이 만들어지고 복지재단도 설립됐다지만 예술가들의 빈궁한 처지가 개선됐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예술가를 돕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자기가 좋아 선택한 예술인데 왜 국가가 나서서 이들을 도와야 하느냐는 것이다. 자영업자가 망하면 국가가 도와주는 것을 보았냐는 말이 덧붙는다. 어떤 이들은 예술가는 가난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믿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일한 대가만큼은 정당하게 지급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예술가는 가난하기 마련이라고 외면해야 할까. 열심히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상황이 정상은 아니다. 예술가들도 돈 버는 일이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경제에만 매달려 물질적인 예술을 창조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문화예술은 지역국가의 브랜드로서만이 아니라 국민과 지역 주민으로 하여금 문화 체험과 예술 경험을 통해 긍정적 판타지와 인생의 전환점을 경험하고 사회와 삶을 진지하게 탐색할 수 있도록 이끄는 매개이기도 하다. 문화예술은 건강한가? 아직도 문화예술인들이 춥고 배고픈 세상은 한낱 공허한 빈 수레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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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1 19:04

선거와 문화다양성

▲ 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6월 13일을 앞두고 있어 길거리가 활력이 넘친다. 한편 소음 때문에 괴롭다는 분들도 있다. 피곤할 때는 소음이 더욱 힘겹다. 이 소음이 전국의 공간에서 6월 12일이라는 시간까지는 지속될 것이므로 공간과 시간의 양 측면에서 견디는 경험이 축적될 기회이다. 오히려 소음이라는 현상에 시선을 두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나 취미활동 쪽으로 신속히 방향을 전환해 듣거나 보거나 뭔가 하는 것이 현명한 대응일 수 있겠다. 후보들은 시민들에게 자신을 지지해주기를 호소한다. 자신의 경력 중 장점 그리고 정책 공약을 타 후보와 차별화해 제시한다. 경력 중의 장점은 선명한 편이지만 정책 공약은 미래에 대한 약속이므로 그 근거나 공약의 준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불명확하고 자기중심적인장담에 가깝다. 그래서 정책 공약에 대한 유권자들의 판단은 후보자의 논리적 설득력뿐 아니라, 후보자가 보여주는 확신에 찬 태도나 신념에 의존하기도 한다. 하지만 후보자가 가진 신념은 객관적이고 진정한 안목을 지닌 시민들과 소통과 공유 되지 않을 경우, 스스로 거는 최면에 그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신념은 그 시대와 공간의 제도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선택되는 것이고, 유권자의 공통적인 희망사항과 맞닿을 때 이해되며, 특히 자신의 이익에 기반 하지 않은 모양새이지만 실은 자신의 이익에 기초하는 예측성 명제들이기 때문이다. 일자리 증가나 국가예산 증액 등의 공약 수단과 신념은 시민으로 하여금 풍요에의 접근과 행복의 증진이라는 미래의 열매를 기대하게 한다. 결국 이런 꿈들을 현실화 시킬 수 있다고 믿는 후보자 자신을 선택하여 주기를 원하고, 선택 받으면 해당 임기 동안 자신의 정치적 힘을 행사할 것이다. 그리고 그 권력은 합의된 선거제도로 보장한다. 현재 선거운동을 보면 공약이 크게 다르지 않듯이, 문화적으로 다양한 표현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름이 적혀 있는 현수막과 명함, 정당 이름과 번호와 후보자 이름으로 장식된 소형 트럭의 확성기와 간혹 소형 트럭에 서 있는 후보자들, 교차로에서 율동을 하는 선거운동원들의 모습에서 성별, 연령별, 분야별, 지역별 표현의 다양성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들의 획일적인 노동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어찌 보면 정치적인 의정과 행정활동이라고 하는 기능적 혹은 전문적 탁월성을 중시하는 분야에서 문화다양성을 논의하는 것이 부적절해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모든 부서가 인간과 인권중시, 과정과 소통중시, 관계와 지속성 중시, 예술과 놀이와 휴식을 중시하는 문화적 부서가 되는 날을 꿈꾸는 문화계의 입장에서는 선거에서도 문화다양성이 발현되기를 바란다. 짧은 선거운동 기간이라는 한계 상황에서 효과적인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가장 효율적이라고 여겨지는 선거운동 방식으로 획일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조차 다양한 표현과 행동 방식이 자연스럽게 여겨지고 펼쳐지는 선거운동의 풍경을 기대한다. 오전에는 선진국 버스기사였다가 오후에는 개발도상국, 저녁에는 후진국 기사가 된다는 허혁 작가의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라는 책에서 볼 수 있듯이, 이번 선거 결과 우리 시민들이 오전에는 선진국 시민이었다가 오후에는 개발도상국, 저녁에는 후진국 시민이 되지 않고, 늘 선진국 시민으로 생활할 수 있는 사회가 앞당겨지기를 바란다. 버스기사들, 정치인들, 회사원들, 농민들, 교사들, 청년 직업 대기자들, 학생들 너나 할 것 없이 선진국에서 선진국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나의 이웃들이 이 선거기간 동안에 무례한 상황에 놓이지 않는 선진국 시민으로 생활하도록 나는 나의 의무를 충실히 행하고 예를 갖출 수 있을까. 그리고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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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04 20:04

좀비 영화를 보며 정치를 생각한다

▲ 김승희 국립전주박물관장 지방선거가 가까워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매번 선거 때마다 어떤 기준으로 일꾼을 뽑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러던 중 최근에 우연히 좀비를 다룬 영화를 접하게 되었다. 이러한 영화들이 자꾸 만들어지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우리 역사 속에서 좀비와 비슷한 귀신을 살펴보고자 하는 흥미가 생겼다. 우리의 전통 귀신은 보통 죽은 자의 혼을 말한다. 귀신은 보고 들을 수는 있지만 붙잡을 수 없는, 즉 질료적인 한계가 분명한 존재이다. 그런데 일부 억울하게 죽은 자의 귀신이 이승에 개입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한 귀신은 한 사회 집단의 존속을 방해하는 존재가 된다. 반면에 좀비는 질료적 한계는 없으나 가사(假死)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그 형상에서는 내면화된 분노를 표상하고 있다. 그들은 떼를 지어 다니며 전염을 통한 무한 증식을 한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우리나라는 작은 빙하기라 불리는 소빙기(小氷期)를 맞는다. 기후학자들은 이 소빙기의 절정을 1550~1700년에 걸친 약150년으로 상정하는데, 이때 조선 사회는 커다란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선조 때(1567~1608)에는 전쟁과 절대적인 기아상태에서 사람들은 시체를 베어가고 서로를 잡아먹기에 이른 적도 있었다. 그리하여 1594년에는 식인행위를 금지하는 조치가 내릴 정도였다. 숙종대의 을병대기근(1695~1699) 때에는 400여만 명이 죽었는데, 전체인구의 23~33%로 추정한다. 이 시기에 서양에서는 종교개혁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전쟁과 반란이 끊이지 않았고, 기근과 역병으로 1693~1694년 프랑스에서는 1/10의 인구가 사망하였다. 조선 사회에 불어닥친 기근과 혹독한 재앙은 백성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으며, 민간에 떠도는 흉흉한 귀신 이야기는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한 반영 내지는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도 있는 죽음에 대한 불안 심리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에 국가에서는 불안한 민심을 잡기 위한 정치적 대안이 필요하였다. 조선사회에서는 유교의 천도관(天道觀)에 따라 천재지변의 책임이 인간에게 있으므로, 인간사회의 질서를 바로 잡는 방도에 천착하여 이를 해결해나가고자 하였다. 당시 조선은 유교 이념에 따라 예(禮)를 강조하는 사회로 가고 있었음에도, 한편으로는 불교의식인 천도재를 열어 억울한 귀신을 위로하는 정책을 펼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천도재는 죽음으로 비롯된 사회적 갈등과 모순을 해결하는 정치적인 행사였던 것이다. 이렇듯 재앙으로 인하여 국가적 상황이 위급할 때에는 설령 통치 이념에 반하는 것이라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게 바로 정치의 일인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좀비를 다룬 영화나 소설 등의 매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좀비는 모순으로 가득한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에 미국 영화에 처음 등장했다. 좀비는 원하지 않는 전쟁에 동원되거나 노동시장에 몸을 맡겨 사물화한 인간을 상징하고 있다. 좀비의 행태는 온라인의 익명성을 이용해 하나의 이슈에 몰려들거나 쇼핑몰을 배회하며 해방감을 찾는 모습과 비교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귀신은 치자(治者)가 죽음 뒤의 세계에까지 뻗은 사회적 화합의 통찰을 보여준 예라면, 좀비는 삶과 죽음의 권리 자체도 박탈당한 채 세계와 절연된 적개심에 가득 찬 존재를 투사한 모습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좀비를 자신의 자화상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런 젊은이들의 아픔을 읽고 포용할 정치적 리더가 선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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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28 19:39

'문화예술인 지원 펀드' 설치를 제안한다

▲ 윤철 전북수필문학회장 문화예술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예술가라고 한다. 예술가의 삶이 늘 새로움을 추구하며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개척해가는 탓인지 사람들은 예술가를 고상하고 특별한 사람으로 선망하기도 한다. 예술가는 분명 보통사람과 다른 면이 있지만 먹고사는 일에서는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다. 본인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면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문화예술 활동이 밥이 되고 돈이 되어 생계수단으로 충분하다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직업은 없겠지만 2016년 3월에 발표된 예술인 실태조사를 보면 1년간 예술 활동을 통한 수입의 중간값이 300만 원이며 36.1%는 수입이 전혀 없었다. 일부 유명 예술가들의 높은 소득을 포함해도 평균수입이 1255만 원에 불과하다. 문화예술 활동으로 생계 해결을 넘어 부자가 되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생활에 구애받지 않고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극소수다. 주업은 교수나, 교사로 교육자이면서 창작 활동을 하는 겸업 예술가들은 신이 내린 사람이고 예술가의 절반이 예술과 전혀 다른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도 프리랜서나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보니 노후 대책의 보루인 국민연금 가입률은 56.8%에 불과하다. 대부분 전업예술가는 지금도 막막하고 미래는 더 불안한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술가 다섯 명 중 한 명은 자치단체의 보조금을 받은 경험이 있을 정도로 창작 활동 경비를 외부 지원에 많이 의존한다. 그러나 그 보조금이란 것이 정말 새 발의 피다. 병아리 눈물만큼 주는 보조금도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하다. 그나마 것에 목을 매는 예술가의 약점을 이용하여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못된 발상까지. 예술은 우리의 얼이며 자존심이다. 그것이 생활 속에 녹아들어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를 이루고 한참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는 전통문화로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게 된다. 천혜의 자연경관도 없이 관광 대국을 이룬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나라를 보자. 왕실과 귀족의 뒷받침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던 예술가들은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이 문화유산이 후대에 와선 소득 창출의 자산이 되고 있지 않은가. 예술은 단순소비재가 아니다. 회임 주기가 다소 길다뿐이지 생산재임이 틀림없다. 한국지엠을 살리는 데 정부가 7조7000억 원을 투자한단다. 말이 7조7000억 원이지 보통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지방정부도 기업 유치나 생산 지원을 핑계로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에 몇백 억 원 정도는 아깝지 않게 퍼준다. 그러면서도 문화예술지원엔 좀생이 짓을 하는 지방자치단체는 각성해야 한다.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세계적인 문화예술품을 창작하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소모적 경비가 아니라 미래의 먹거리를 만드는 생산적 투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하고 싶은 일에 신명을 바칠 수 있는 바람직한 일자리 창출의 방법임을 알아야 한다. 예술가들은 먹고사는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창작 활동만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흔히 최고은 법이라고 부르는 예술인복지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뿐 아니라 생계까지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문화예술인지원펀드를 자치단체마다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공감은 하지만 재원이 없다고 예산 타령부터 할 것이 분명하다. 자치단체장들이 지지표를 사기 위해 꼼수로 여기저기 분산해 놓은 선심성 예산만 제대로 모아도 작은 자치단체는 몇십 억, 큰 자치단체는 몇백 억 원의 재원 마련이 그리 어렵진 않을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뽑히는 자치단체장들의 통 큰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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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21 20:58

문화예술과 정치

▲ 염광옥 (사)한국무용협회 전북지회장 예술분야에 활동하는 사람은 당연히 자기만의 창작 생활에 만족하며 사는 건 어쩌면 최고의 행복일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어느 때 부터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정치를 하 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것 또한 한계의 벽에 부딪히게 되고 예술인들이 정치인들에게 끌려가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 도 지금의 상황이다. 세상은 변하고 여기저기 문화발전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많은 변화들이 생겼지만 정작 예술인들에게는 여전히 배고픔이 난무한 사회다.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하며 예술인들이 어떤 방법으로 지혜를 모아 해결해야 하는지 진심을 다해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정치인들의 내건 공약들 대부분도 지역개발 같은 인기 영함 주위의 공약이 대부분인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 가운데 문화예술 공약은 빈약하다 못해 거의 전무했다. 문화예술 공약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은 후보자들의 머릿속에 전라북도의 문화예술은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눈에 뛰는 공약을 살펴보자면 문화 예술 활동 기획 지원의 일원화 정도이다. 사실상 나머지 문화예술 공약은 지금까지 지역에서 논의돼 왔던 공약들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전라북도 예술계를 지켜 줄 수 있는 후보도 없는 마당에 예술사업의 장밋빛 전망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과한 욕심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화예술의 양적, 질적 발전을 기대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전라북도 문화예술의 과제와 올바를 시책 추진 방향에 대해 논의가 지금부터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은 그동안 주체적으로 활동하기보다는 주변인의 입장에 서있었다고 보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예산을 쥐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에 얽매여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제는 문화예술인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당당히 요구하는 변화된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문화예술인 스스로가 문화예술발전을 위한 올바른 정책을 제시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힘을 하나라도 모아야한다. 예술기금확대와 예술인 창작확대는 물론이고 문화예술분야 고용확대를 위한 정책 수립을 요구하는 등 지원책 마련도 당당히 요구해야 할 것이다. 예산 몇 푼을 위해 끌려 다닌 다면 전라북도의 문화예술의 퇴보는 물론이고 문화예술이 주인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문화예술계는 소위 정치면에서 득표로 연결이 잘 되지 않는 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문화예술을 표로 연결시키려는 의도가 불쾌하기는 하지만 정치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원인의 한축에는 문화예술계의 책임도 반드시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예술계가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문제와 스스로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데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한 달 뒤에는 변화가 일어나겠지만 전라북도 문화예술인들은 이번 선거 공약을 유심히 지켜보고 판단해 주었으면 한다. 장 미셸 지앙의 문화는 정치다라는 말도 문화예술인 모두가 정치인이 돼야 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세상을 풍요롭게 바꾸는 일에 문화예술이 관여를 해야 하며, 정치도 결국은 이를 함께 해야 한다는 말로 해석하고 싶다. 지금 한창 선거 기간이다. 전라북도의 문화예술 정책을 제대로 된 시각으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대책 방안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리더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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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14 18:45

축제 마당과 문화다양성

▲ 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축제일에 비가 오면 관객과 연출가 모두 마음이 어수선해진다. 행사를 간단히 취소할 수 없어서다. 물론 돌풍과 같은 자연의 위력으로 관객의 생명 자체가 위험해진다면 취소를 결단하겠지만, 바람이 동반되지 않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곧 그칠 듯 기대를 부풀린다. 이렇게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질서 앞에 사람은 무력해진다. 하지만, 이 경험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후속 조치를 낳지는 않는다. 자연의 질서에 대한 경험들을 반성의 재료로 활용하는가 아니면 무력감이라는 본능적인 불쾌함을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그녀 혹은 그에게 떠맡겨버리는 방식으로 처리하는가에 따라 사람 간의 관계 맺는 방식과 생활태도 는 달라질 수 있다. 비 오는 축제 마당에도 전문적인 예술행사와 생활문화프로그램과 체험부스는 다양하게 구성된다. 어르신들은 민요와 장구 협연을 하시고, 중년들은 7080 음악을 즐기고, 어린이들은 동요와 무술퍼포먼스에 환호하며, 청년들은 시음과 나이트 뮤직 쇼에 참여한다. 축제에서 펼쳐지는 세대별 혹은 성별 문화다양성은 프로그램 외에도 주차장이나 도로나 장터에서 교통을 통제하는 스태프들과 관객들의 접촉에서도 드러난다. 축제 현장에서 프로그램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행동에서 성별, 세대별 문화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 다만 상대방을 무시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언어와 행동은 문화다양성이 아니라, 폭력으로 해석되는 것이 정확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주행하고자 하는 도로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교통을 통제하는 여성 스태프에게 분노하여 차에서 내려 반말을 하며 삿대질을 하고 스태프의 몸을 밀치는 중년 남성의 언행양식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여성에게는 반말을 하거나 손찌검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생활해 온 경험들이 반성 없이 계속 축적되고 강화된 결과일 것이다. 마치 최근 공감되고 있는 갑질 고성과 욕설의 문제와 닮았다. 이것은 문화다양성이 아니고 인권 침해 및 업무 방해 행위이다. 애초에 교통 통제가 없는 축제는 불가능한 것일까? 마을이나 동 단위의 축제로 기획하여 규모를 줄인다면 축제의 숫자는 늘어나더라도 교통 통제와 같은 불쾌한 강제는 사라질 수 있다. 만일 불가능하다면 교통 통제를 자연 질서처럼 수용하고 느긋하게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약간 불편한 질서를 지켜야 하는 국면에서 여유가 나타나려면 개인이 일상 속에서 행복한 삶을 운영해 원망의 습관이나 태도가 축적되지 않아야 한다. 또한 화부터 내고 보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그렇게 해서 일단 상대방을 윽박지르려는 문화는 반성과 복기의 가치를 값없이 여기는 사회에서 태어난다. 우리 사회는 반성을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고귀한 성찰활동이라기보다 열등한 자들의 자책으로 비하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고용 및 복지정책과 함께 행복감의 원천을 발굴해내고, 행복을 느끼는 방법론을 공유하는 교육이나 문화정책, 술과 폭력에 의존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서적 표현이 가능하도록 이끌어주는 문화사업, 타인을 거칠 게 대하는 것이 힘이라고 가르쳐 온 권위주의적 생활양식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정밀하고 구체적인 정책과 사업들이 반성과 복기의 힘으로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동시에 모색되어야 한다. 그리고 모색된 정책과 사업들은 사회의 지도자 그룹에 시범 적용하여 폭력이 아닌 진정한 문화다양성이 발현될 수 있도록 파급효과를 높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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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07 16:27

전북에서 만나는 가야이야기

▲ 김승희 국립전주박물관장 최근 가야사 연구와 복원이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 가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대두되고 있다. 그동안 한반도 고대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중심으로 서술되었고, 가야에 대한 사료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런 이유로 가야의 역사는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나마 1970년대 이후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가야 유적이 발굴조사 되고 있으며,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서 가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크게 나아졌다. 그러나 영남지역 밖의 가야에 대해서는 아직도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특히 전북 동부 산악지역에 위치한 가야는 아직도 미지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다행히 전북지역 연구자들의 관심과 노력의 결과로 최근 많은 가야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1982년 남원 월산리 고분군을 시작으로 최근의 장수 동촌리 고분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유적이 발굴조사 되어 우리 지역 가야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전북지역에서 확인된 무덤들은 기본적으로 땅을 깊게 파서 돌로 덧널을 만드는 구덩식 돌덧널무덤이라는 구조에 많은 토기와 무기 등을 부장하는 가야의 장례풍습을 따르고 있다. 부장된 토기의 모양이나 조합 관계는 대체로 경남 고령지역 대가야의 것과 유사하다. 흔히 고고학에서의 장례문화는 상당히 보수적이어서 큰 사회적?정치적 변화가 없다면 오랜 기간에 걸쳐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진다고 본다. 이런 연유로 많은 연구자들이 전북 동부 산악지역의 가야 유적을 대가야와 관련지어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전북 지역 가야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대가야와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토기는 형태적으로는 대가야와 유사하지만 보다 곡선적이며 무게의 중심이 아래쪽으로 쏠리는 등 세부적인 면에서 약간의 차이점이 확인된다. 또 이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은 영남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 중국 청동거울과 중국 남조에서 만들어진 천계호(天鷄壺)라고 부르는 닭머리 모양 주둥이를 가진 청자 주전자, 그리고 금동신발 등이 출토된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당시 최고위층이 사용했던 것으로 백제 중앙정부가 주변지역의 여러 작은 나라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건낸 위세품들이다. 이러한 유물이 나왔다는 것은 백제가 이 지역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이다. 흔히 역사학자들은 『일본서기』나 「양직공도(梁職貢圖)」 등에서 나오는 기문국(己汶國)을 섬진강 유역으로 비정한다. 그리고 이 지역 정치세력이 백제와 대가야 사이에 있으면서 번갈아 복속되었던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 유물의 출토 양상은 어느 한 세력의 일방적인 형태가 아니라는 점에서 결코 그렇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는 전북 동부지역을 기반으로 했던 정치세력들이 인접한 가야의 장례문화를 받아들여 가야와의 동질의식을 표방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꾀하면서도 백제와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독립적 존재로서의 위상을 찾고자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오늘날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러한 특성은 문화의 혼종화나 혼합문화가 당시 성립되어 있음을 표상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간 전북 가야 의 독자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천오백년 전 전북 동부 산악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꿈과 살아가던 모습을 무덤 속, 또는 여러 생활터전에 남겨 놓았다. 그들이 남겨놓은 꿈과 다양한 흔적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기술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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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30 18:39

균형있는 문화정책이 아쉽다

▲ 윤철 전북수필문학회장 문화만큼 멋진 말도 드물다. 민중문화, 청년문화, 사회문화, 조직문화처럼 어떤 단어에 붙여도 어색하거나 불편하지가 않다. 다소 부정적 의미의 단어와도 적절히 호응하며 뭔가 있어 보이는 것처럼 격을 높이기까지 한다. 예술이란 단어도 그렇다. 예술은 문화와 분명히 다른 개념이지만 전문 예술가에 의한 순수예술의 영역을 넘어 대중화에 이르면 문화와 예술의 이미지가 서로 융합되어 구분이 어려워진다. 요즘엔 아예 한데 묶어 문화예술이란 복합어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고 정책 분야에서도 문화와 예술을 포괄하는 문화정책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이러한 언어적 변화를 굳이 따지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정책이 대중예술에 편중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어서다. 동네 주민자치센터 곁을 지나다 보면 낭자한 장구 소리가 따스한 봄볕처럼 온몸을 휘감을 때가 있다. 나는 그럴 때 만화방창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이후로 주민자치센터나 문화의 집에 가면 노래, 춤, 요가, 서예, 글쓰기 같이 예술이든 문화든 여가를 즐기며 끼를 발산할 수 있는 꺼리가 아주 많다. 마음만 먹으면 이곳저곳을 순회하며 하루 종일 취미 생활을 누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지천에 널렸다. 이것들의 대부분은 대중예술분야임에도 그냥 대중문화라고 부른다. 어쨌든 지방자치로 인해 대중문화가 만화방창의 호시절을 맞은 건 사실이고 칭찬의 박수를 받을 일이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소프트웨어적인 대중문화 프로그램은 양적, 질적으로 크게 팽창했지만 하드웨어적인 문화기반시설은 상대적으로 더욱 취약해졌다.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지난 20여 년 동안 자치단체가 주도적으로 건립한 문화시설이 몇 군데나 되는지 손을 꼽아보면 그 실상을 쉽게 알 수 있다. 선출직들은 임기 내에 성과를 드러내고 그것을 표로 연결해야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으므로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이 조급하다. 그러니 장기간이 소요되고 예산이 엄청나게 필요한 문화기반의 확충보다 시간과 돈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고 효과가 속 빠른 대중예술 프로그램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문화정책에 대한 이런 인식이 20여 년 이상 누적된 결과, 주민들의 대중문화 향수 기회는 크게 늘었지만 우리 도내의 문화시설은 부끄러울 정도로 낙후되어 있다. 전라북도예술회관은 건립된 지 35년도 넘어 화장을 진하게 한 노파의 주름진 얼굴 형상이다. 지역 문화의 계발과 전승을 주도하도록 지방문화원진흥법에 의해 설립된 전주문화원은 어떠한가? 전국 문화원의 작년도 예산 평균이 4억9000만 원인데 비해 전라북도는 2억4000만 원으로 전국평균의 절반을 밑돈다. 그나마 도청소재지인 전주문화원은 1억3000만 원에 불과하여 문화진흥사업은커녕 겨우 숨만 쉬고 있는 실정이다. 독립된 원사(院舍)도 없이 과거에 동사무소로 사용되던 건물의 한 모퉁이를 빌려서 쓰고 있다. 도청소재지는 물론 우리 전주와 규모가 비슷한 도시 중 독립된 문화원 건물을 가지지 못한 도시는 전주가 유일하다. 인접한 논산시의 경우 문화원만 해도 대지 2000평에 건물이 525평 규모로 우리 도의 예술회관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부럽기도 하고 우리의 현실이 부끄럽기도 하다. 우리 지역 자치단체장들의 균형 있는 문화정책이 아쉬운 대목이다. 건물이나 시설이 그 지역 문화예술의 척도는 아니지만 문화기반시설은 문화예술발전과 지원에 대한 정책적 의지의 표현에 다름없다. 누가 뭐래도 전주는 문화예술의 도시 아닌가. 대중문화 확산에 걸맞게 전주의 랜드마크로도 손색이 없는 문화시설 하나쯤 건립한다고 해서 토를 달거나 반대할 시민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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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2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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