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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온 미래와 포스트 코로나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들은 그 여파가 커서 구성원들의 의식은 물론 사회 시스템마저 바꿔버린다. 전쟁이나 전염병과 같은 재앙에 부딪히면 기존 질서의 민낯이 드러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 무섭던 양반과 남성들의 무기력이 드러났고, 이후 신분제의 모순과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상대적으로 활발해진 경우이다. 관성적으로 유지되던 생활습관과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고민은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이어진다. 제2차대전 이후 최악의 재앙이라는 코로나19의 파장도 그렇게 퍼져 나갈 것 같다. 우리나라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지만 세계적 확산 일로에 있다. 그리고 이 싸움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내년으로 연기된 동경올림픽마저 개최가 불투명하다고 하니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 대혼란은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이런 가운데 한쪽에서는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주도권을 잡겠다는 야심이다. 지난주 연예기획사 SM은 세계 최초로 소속 그룹 슈퍼엠의 온라인 공연을 진행했다. 이 공연에 세계 109개국, 7만5000명의 관객이 참여했다. 관람료가 한화 3민3000원 정도니 입장료만으로도 최소 25억을 벌어들였다. 며칠 전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역시 파이팅 콘서트를 온라인으로 중계했다. 뮤지컬이나 연극 등이 시나브로 안방으로 향한다. 코로나 환경과 디지털 기술이 빚은 비대면 공연 문화이다. 코로나19 예방의 핵심은 비대면이다. 개학을 미루다 원격수업으로 전환한 학교, 그러나 이런 비대면 교육이 일시적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온라인 교육으로 급격하게 기울면서 교사들의 수업 능력을 시험하려 들 것이다. 대표적 온라인 교육기관 미네르바대학이 하버드대보다 합격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비대면이 그리 생소한 것도 아니다. 은행을 가지 않고도 금융거래를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됐다. 대면 진료에 의존하고 있는 병원 역시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모든 환자가 꼭 내원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떤 이는 대중교통의 종말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교통정책 전반을 재조정해야 하는 문제라서 쉽지는 않겠지만 소형화, 자율주행 등으로 나갈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무엇보다 온라인 중심 거래가 가속화 될 것이다. 미국의 백화점 삼분의 일이 이미 문을 닫았다. 몇백억 들여 화려한 백화점 건물을 지을 이유가 없다. 배달앱의 출현으로 소위 상권의 위력이 약해져 가듯 임대료도 급격히 낮아질 것이다. 조리기구만 있으면 외곽에서도 음식을 만들어 배달앱 플랫폼에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속설이 옛말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국제 관계도 다소 폐쇄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항공산업의 그림자가 어두울 것이란 전망이다. 그 외에도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떠났던 제조업의 리쇼어링이 본격화되고, 인건비에 대응할 스마트 공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선진국의 일자리는 늘겠지만 제품의 가격도 오를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뉴노멀, 갑자기 다가온 미래에 빨리 대응해야 한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망하기 때문이다. 디지털카메라를 먼저 개발하고도 내부 필름 기득권에 밀린 코닥의 몰락, 최초로 스마트폰을 내놓고도 퓨처폰 세력의 고집으로 시판을 못 하고 결국 문을 닫은 노키야의 사례를 타산지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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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05 15:50

‘벌써’라는 의미의 아쉬움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창밖을 바라보니, 라일락이 만발하는 5월이 먼발치서 화사한 미소로 다가오고 있다. 계절의 여왕으로 칭송받는 5월이라는 감정보다는 덧없는 세월의 무상에 벌써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현재의 시간이 현실에서 잘게 부서져간다. 벌써 라는 단어가 지난 세월을 아쉬움으로 몰아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누구의 인생이든 기를 써가며 살아 온 젊은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아른 거릴 것이다. 아직도 못 다한 일들이 남아있는데 이를 어찌할까하고 말이다. 우리는 각자의 이정표에 인생을 다르게 설계하며 삶의 철학을 얘기한다. 산다는 것은 사람마다의 색깔 있는 꿈을 갖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그 꿈을 이뤄내려고 치열하게 꿈틀대는 전쟁이다. 저녁놀을 바라보면서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은 노인의 길목에 들어선 증거라고 한다. 하얀 새치가 하나둘 거울 속에 나타날 때,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은 인생을 음미해가는 사람이며, 할아버지라 부를 때, 웃는 얼굴로 받아들이면 그는 성숙한(?) 사람이라고 한다. 세월의 무게에 밀려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삶의 맛을 천천히 곱씹으면서 영글어간다고 그럴듯한 포장으로 위안을 받으려 한다면 그는 분명 센스 있는 사람이다. 오랜 세월을 건너오는 동안에 당신의 마음에는 무엇들이 걸려 있었을까. 스쳐간 인연들, 지난날들에 얽힌 회한, 못다한 그리움의 감정들, 즐겁고 아파했던 청춘을 돌아보며 이제부터는 가슴속이야기를 털어놓을 사람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 놓아야 여생이 편안하지 않을까? 누구나 다양하고 바쁘게 이어온 과거는 현재의 나를 만드는데, 단단한 기저가 되었겠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미래가 오염되지 않도록 과거를 미련 없이 흘려보내야 한다. 우리의 조상들이 흰옷만을 입을 수밖에 없었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가령 빨간색이나 노란색을 입고 싶었어도 염색하는 기술이 없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감미롭고 순결하고 깔끔한 의미의 하얀색이 때로는 두려움을 연상하는 붉은색보다 더 많은 공포를 부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시작되었을까. 인자한 모습의 성모마리아상, 로댕의 생각하는 남성조각상 등은 왜 하얀색이었을까? 하고 생각해본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우리가 누구인지를 따지지 않고 슬픈 일, 기쁜 일들은 언제나 우리들 곁에 머물고 있듯이, 하얀색과 빨간색들이 어느 곳이나 펼쳐져 있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이겨내는 것이 우리들의 오늘이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했다. 일그러진 운명이 다가왔을 때, 회피하기보다는 주어진 일에 모든 힘을 쏟아낸다는 뜻이 아니었을까하고 해석해본다. 여럿이 모이면 하나의 주제에서 의견이 다르듯, 굳이 나를 그 속에 묻어버릴 필요는 없다. 벌써라는 아쉬움이나 아직이라는 단어에 이끌려 다니는 것보다는 초조해하지 말고 나름의 철학을 믿고 자기라는 인생을 꾸준하게 일궈가는 것이다. 모든 일에 자기를 나타내려한다거나 조바심을 내는 사람은 옆에서 치켜세우는 겉치레의 칭찬에 잘 속아 넘어간다. 생각이 빗나간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혐오감도 모른 체, 자기의 존재가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받는 줄 알고 흐뭇해하는 사람이다. 라고 했다. 석양노을의 바닷가를 거니는 나그네의 가슴이 출렁거리는 것은 노년기를 맞이하고 있는 비탈진 고비길 인생일 것이다.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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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28 20:32

용서하기 힘들 때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사회의 구성원으로 진짜 성인(成人)이 되었다고 인지할 때부터 인생은 왜 쉽지 않을까?를 묻고 또 물었던 기억이 있다. 살다보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가 너무 많다. 열심히 학창시절을 보내면 입시가 기다리고 있고, 입시 후에는 취업, 어렵사리 취업을 해 결혼까지 골인한다고 해도 새로운 시작일 뿐이었다. 수십 년간 따로 살던 배우자와 맞춰가는 것도 힘든데, 시댁 또는 처가 식구들이 딸려온다. 사랑 속에 태어난 자녀들이지만 인내심의 한계를 자극할 때, 내가 이러려고 결혼을 했나 싶어 복잡한 마음이 든다. 이런 저런 생채기가 깊어질 무렵 분노로 폭발하고 만다. 때로는 더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믿었던 배우자의 배신, 재정의 궁핍, 사업의 실패, 고된 질병, 사춘기 자녀의 방황, 남모르는 아픔에 눈물을 훔친다. 잔소리와 회초리로 변화될 수 있다면 해보겠건만, 닦달하는 외침에 갈등만 커지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사랑하는 이가 준 상처는 마음에 깊이 파고들어 용서 할 수 없다는 사연이 라디오에 도착한다. 별다른 해결 방도를 찾지 못해 시간만 보내고, 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너무 멀리 건너왔다며 아쉬워하는 이들을 보며, 용서가 진정 어려운 일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작하는 생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유달리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았던 날, 퇴근 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데 이솝우화 해님과 바람을 오랜만에 펼치게 됐다. 해님과 바람이 누가 더 강한지 티격태격하다 힘겨루기를 한다. 지나가는 사나이의 외투를 누가 벗길 수 있는지 내기를 하며 바람이 먼저 세게, 더 세게 바람을 불어보지만 사나이는 옷깃을 여밀 뿐이었다. 이번에는 해님이 햇살을 강하게 비추자 더워진 나그네는 옷을 벗었다. 진정한 강함이 무엇인지를 오랜만에 읽은 이야기를 통해 곱씹어본다. 강한 힘, 강압적인 방법이 결코 능사는 아니라는 것. 부드러운 온기로, 따뜻함으로 포용해 줄 때, 긍휼의 자비가 임한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은 용서의 위대함을 절실히 보여주는 소설이다. 빵을 훔친 대가로 19년의 옥살이를 하고 나온 장발장은 은접시를 훔친 위기의 상황에서 그의 부족함을 덮어준 미리엘 신부의 따뜻한 말 한마디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되길 다짐했다. 장발장이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체벌과 감금이 아니라 갚을 수 없는 감사를 느끼게 한 용서였다. 용서의 힘을 묵상한다. 용서는 먼저 내민 손이고, 새로운 기회로 이어지는 희망과 용기다. 이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아내지 못한 진심이며, 자존심을 이겨낸 용기이고, 삶의 또 다른 이유가 된다. 의학 전문가들도 말하길 자발적인 용서는 심신의 안정감을 주고, 부교감신경계를 활성화하며 혈압을 낮추고 각종 질병의 위험을 감소시킨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진정한 용서는 남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한 성숙한 의례 행위이자 인격 수양의 최고봉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를 주저하게 만들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과감히 떨쳐내고, 미래를 향해 시선을 돌릴 때, 용서가 결국 홀로 쥐고 있던 내면의 상처와 부정적인 감정을 치유하는, 스스로를 위한 일임을 깨닫게 된다. 마하트마 간디는 용서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용서는 용기 있고, 용감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죄를 용서할 만큼 강한 사람만이 사랑하는 법을 안다. 용서하기 힘들 때, 이제는 나를 생각하자. 상처 준 그들을 위해서가 아닌, 사랑받을 만 하고 세상에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나의 존재를 위해 이제는 외쳐보자. 나는 너를 용서한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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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21 19:40

출산율 회복의 조건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10년 전 합계출산율이 1.23명이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92명이었으며 2019년11월 처음으로 사망수가 출생수를 앞서 인구감소가 현실이 되었다. 과거 적극적 산아제한 정책의 영향으로 다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지금도 집단무의식 속에 각인되어 있으며, 청년들의 가치관 변화와 함께 사회경제적 어려움으로 비혼의 증가가 더해져 인구문제는 더 절박해졌다. 그간 국가와 지자체가 내놓은 저출산 대책들도 유효한 출구를 찾지 못했으니 저출산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따져보고 방향을 다시 점검해보아야 한다. 과거에 공중부양 같은 황당한 주장으로 얘깃거리가 된 한 대선 후보의 결혼수당 1억과 출산수당 3000만원 지급이라는 공약이 기억난다. 지난 2년간 저출산문제와 관련하여 쏟아부은 재정이 58조가 넘고 올해만 37조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생각하면 그 공약을 황당한 소리로만 치부할 수 없게 되었다. 근래 전시회에서 그림을 출품한 모 은사님과 담소하던 중에 들려준 말씀 한 토막은 다음과 같다.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너희들 인생은 너희가 알아서 할 바니 상관하지 않겠다라고 해서는 안되며 나를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너희는 국물도 없다라고 말해야 한다. 인구문제를 비켜 생각해도 손주를 바라보며 사랑에 빠진 할머니의 말씀으로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무튼 인구감소 문제를 그냥 자녀들의 독립적 인생관과 판단에만 맡겨둘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 분명하다. 지금의 추세를 반전시키지 못하면 훗날 지도 상에서 지워질 이유로 핵전쟁이나 치명적 전염병, 환경변화에 따른 재앙 등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인구문제의 열쇠는 청년세대이다라는 명제는 우리의 시대적 화두다. 현재 저출산에 대한 대책은 격려와 보상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는 필요충분조건이 요구되는데 필요만 주어지고 충분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것이다. 물론 청년세대의 취업이나 육아와 교육 및 주거문제 등을 개선하고 보조하며 출산에 적절히 보상을 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정도의 문제일뿐 최소한의 필요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충분조건이 성립되지 않으면 이민자의 대량 유입이 아닌 한 인구감소를 되돌리기란 어려울 것이다. 청년세대가 인구문제의 열쇠이기 위한 충분조건은 의식의 변화다. 이는 성년 이전에 받아온 제도권의 교육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가정에서 이뤄진 학습의 결과다. 생의 가치 중 무엇이 우선 순위인가 하는 문제다. 인생에서 출산 즉 생명체로서 유전자의 세대연속을 당연한 자연의 이치로 생각했고 생의 우선 가치로 여겼던 베이비 부머 세대와 달리, 자아 실현과 행복을 위해 결혼도 출산도 미루거나 포기할 수 있는 현재와 미래의 많은 청년들에게 충분조건이 추가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결혼이나 출산과 양육은 행복을 방해하는 것이며 피하고 싶은 선택일 것이다. 비혼과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는 국가적 필요성만 내세워서는 해결할 수 없다. 생명과 인권, 생명체의 의무로서 세대의 연속성 등 삶의 가치관점으로 바라봐야 출구가 보일 것이다. 행복한 삶에 대한 개인의 가치관을 국가적 문제 해결의 충분조건으로 연결하는 것은 가임세대 개개인과 그들이 속한 가정, 학교, 사회가 합의와 협의를 통해 이뤄야야 하는 난제다. 현재 그리고 미래의 청년들이 출산이란 자신들을 통해 한 생명이 찾아오는 것이며 이를 삶에 있어 우선되는 고귀한 가치로 받아들일 때, 격려와 보상도 그 문을 여는 유효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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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14 16:22

코로나19와 문화적 자부심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인류 사회의 발전 중의 하나는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망 확장일 것이다. 인접한 국가와의 갈등에서 벗어나 다양한 대륙의 많은 국가들과 관계를 넓혀 가면서 경제적 번영은 물론 늘 싸웠던 이웃나라와도 비교적 평화롭게 지내게 되었다. 우리 역시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지만 최근 70년이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기간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교역과 왕래가 마냥 꽃길이 아님을 이번 코로나19는 명확히 보여줬다. 중국의 우한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현재 209개국에 120만 명 이상을 감염시켰다. 계속 환자가 쏟아지고 있으니, 어느 정도 규모로 나갈 지 알 수가 없다. 벌써 사망자만 6만 명을 훌쩍 넘겼다. 과거 페스트가 유럽에 국한되었다면 지금의 코로나19는 세계적 재앙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유난히 전염력이 높은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인류의 보폭이 그만큼 넓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러자 일부 국가에서는 입국을 통제하고, 국경을 봉쇄하는가 하면, 이미 착륙한 비행기를 돌려보내는 등 전례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렇다고 서운하단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위기에 본질은 드러난다. 코로나19는 문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국제관계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위상이 분명하다.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들은 그렇지 못한 나라에 비해 우수한 자본과 기술을 문화적 우월성으로 여겼다. 최근 소위 선진국들이라 자처하는 그들의 문화적 우월감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코로나19를 미개한 동양인들에게나 옮겨 붙는 허접한 바이러스라 여기고 인종차별적 태도를 보였다. 마스크를 쓴 동양인을 바이러스 취급하고 혐오하는가하면 심지어는 테러를 자행하기도 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가장 많은 환자가 유럽과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 또 선진국의 의료 시스템도 얼마나 허술한가를 보여줬다. 의료는 산업이기도 하지만 전쟁이나 전염병 창궐 시에는 국방이다. 나라를 지키는 시스템인 것이다. 단순히 산업으로만 여기고 돈이 되는 쪽으로만 발전시킨 첨단 의료 시스템이 코로나 정국에서 얼마나 무기력한가를 보여줬다. 우리가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의료인들의 태도다. 환자를 두고 병원을 떠나버리는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보여준 행태일 것이다. 코로나 위기 경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모여서 파티를 즐기고, 정작 위험이 닥치자 생필품을 사재기했다. 나만 먹고, 나만 살자는 이기적인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과연 이게 선진국민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런가 하면 그들이 그토록 무시했던 동양, 아시아 국가에서 사재기를 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코로나19로 드러난 서구의 민낯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문화적 상대성으로 스스로 움츠려들지 않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무엇이 발전된 국가의 모습인가? 적극적이고 투명한 방역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은 국가, 환자에게 헌신적인 의료인, 또 국가적 위기에 함께 동참하는 국민들 이게 선진국이고 문화국가의 모습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임에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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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07 17:02

삶은 생각 따라 달라지는 것을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기발한 해프닝성의 거짓말로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게 해주는 사월의 첫날이다. 16세기 후반 무렵부터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영국과 미국을 거친 서양의 전통문화가 바다를 건너와 이제는 추억으로 묻혀가는 만우절(April Fools Day)날이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가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온 국민들이 가뜩이나 긴장을 풀지 못한 채로 하루하루를 넘어가고 있다. 세상인심이 일상을 외로운 삶으로 끌고 가는 것은 아닌가 하고 모두의 마음이 무거울 것이다. 자연의 섭리는 수은주를 끌어올려 겨우내 움츠렸던 수줍은 생명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렇게 푸른 날개를 펴가며 생동하는 희망의 달(?)인데도 영국의 시인 토머스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왜 잔인한 달이라고 읊었을까? 우리들 모두 거울에 비추이는 내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현실에서의 자신을 한 번쯤 되돌려 짚어보면 어떨까. 어떤 일이 종료된 뒤 개운치 않은 찌꺼기 같은 것들이 남아 있을 때, 그 상황을 때로는 나 자신을 돌아다보며 바로잡으려하거나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이런 때일수록 새삼스레 삶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정리해서 도전해보는 것도 틀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똑같은 상황에서 헤쳐 나가는 수단과 방법이 다른 것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정도와 그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가 돌부리에 부딪히면 누구는 걸림돌이라 투덜대고, 어떤 사람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면서 지나칠 것이다. 눈이 떠 있는 동안에 걸림돌과 난관들을 수없이 겪어 가면서 그것들을 딛고 가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경험으로 축적이 된다. 컵에 물이 반절이 남았을 때, 반절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람과 아직도 반절이나 남았다고 여유를 갖는 사람과는 인생을 운전하는 모습이 다르듯이. 인생살이에서 정답은 없다. 저 사람은 부유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잘 생겼기 때문에, 당신은 머리가 좋기 때문에 그들 모두는 매우 행복할 것이다. 라는 논리는 그 원인이 소멸되거나 약해지면 바로 무너질 수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음에도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시험에 여러 차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끝내 시련을 견뎌내면서 보란 듯이 일어서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집념은 뭐든지 해낼 수 있는 강인한 의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실패한 핑계를 찾아내어 변명을 늘어놓지만, 하고자 한 일을 이뤄낸 사람은 어떻게든 해내야겠다는 굳은 의지로 방법을 모색했을 것이다. 방법의 모색과 핑계거리 찾기, 긍정적 사고와 부정적인 시각은 종이 한 장의 차이에서 오는 가치관과 생각의 차이다. 혼돈의 갈림길에서는 명확한 선을 그어야 거기에 알맞은 정답을 끌어 낼 수 있다. 현재는 과거를 바탕으로 한다. 매순간 우리들이 마주하는 것들이 쌓여가면서 탄탄한 미래가 이뤄지듯, 주어진 환경에서 자기를 보살피고 단련시켜 만들어가는 노력이 삶을 윤택하게 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가겠노라고 생각만 하고 망설이다가 첫발을 내딛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평생을 그 자리에 머물러있어야만 한다. 삶에 필요한 지혜는 모든 환경과 경험과 대인관계에서 차곡차곡 쌓여간다. 현실이 조금은 답답하더라도 목적을 향해 전력을 다하면 생각이 현실로 바꿔져 있을 것이다.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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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31 16:40

경청.해.봄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퇴근하며 들어오는 엄마에게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서 질문으로 반겨준다. 엄마! 경청의 정의를 알아요? 어린이집을 다니며 두 달에 한 번씩 새로운 성품을 공부하는데 이번 달 배운 성품 노래를 꽤나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경청의 정의를 불러봅시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잘~ 집중하여 들어~ 상대방이 얼마나 소중한지 인정해~ 주는 것! 흔히들 경청(傾聽)을 말할 때 잘 듣는 것 정도로 생각하지만 귀를 기울여 듣기를 넘어 듣는 것으로 상대방이 소중한 존재임을 알려주는 단계에 이르기, 이것이 경청의 핵심이다. 사실 듣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데 사람들은 어렵다 말한다. 스토리텔링이나 발표 기술(Presentation Skill)에 큰 비중을 두며 말하기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온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며, 개인의 취향과 성향에 대해 알아주기를 바라고, 오히려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하는 이들을 생태 낙오자처럼 여긴다. 들리긴 하는데 공감하지 못하고, 듣긴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는 어디에서도 잘 듣는 방법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다. 정신과 전문의 윤홍균이 지은 <자존감수업>이라는 책에서 부부 생활에서 만족도가 떨어지는 남편들은 대부분 아내의 무시 속에서 자존감이 저하되어 있고, 아내는 자신의 감정을 공감 받지 못 할 때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상담 치료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헤아리는 훈련을 하며 듣기 시작할 때, 굳었던 마음은 녹는다. 그러고 보면 잘 듣는 것, 들으며 상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려주는 행위만으로도 꼬인 매듭은 풀리고, 긴장의 관계는 완화된다. 경청이 가져오는 치유의 능력이다.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WTC)가 끔찍한 테러를 당한 뒤 아픔과 혼란 속에 신음할 때, 한 비영리 단체는 뉴욕 도심에서 Free Prayer 캠페인을 펼쳤다. 이는 생명의 위협과 공포 속에서 두려워하던 시민들에게 다가가 고민을 들어주고 기도하며 위로하는 운동이었다. 인종과 종교를 뛰어넘는 많은 이들이 곳곳에 설치된 야외 상담소를 찾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상처는 조금씩 아물었다. 일본에서도 2011년 쓰나미로 일어난 대지진과 원전 사고로 인해 수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 속에서 시작된 것이 경청상담소였다. 그곳에서는 상담자가 30분씩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했다. 현실적인 처방은 없었지만 그곳에서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고, 이후 후쿠시마를 중심으로 100여 개의 상담소가 생기며 사람들을 치유했다. 우리 지역에서도 경청의 위로를 나누고자 2015년 여름 당신을 위해 기도해드립니다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길가 상담텐트에서 오고가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픔을 위로하고 함께 기도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의 아픔, 2015년 메르스의 공포가 스치고 간 자리에 세워진 상담텐트에는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외로웠고, 대화가 필요했다. 잠시의 상담 시간이었지만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말씀하시던 분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의 지혜를 떠올린다. 경청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가장 진솔한 방법이다. 그리고 모든 소통과 대화의 첫 출발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요즘, 심리적 거리마저 멀어져 외로움에 아파하는 이들이 있다면 해처럼 따뜻하게, 봄처럼 싱그럽게 경청해봄은 어떨까. 영화 심야식당 마스터의 요리가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됐던 것은 그가 먼저 들어줬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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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24 17:38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극복을 위해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SARS-CoV-2로 명명된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질환(COVID-19)은 의학교과서에 없던 새로운 감염병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대해 미국립과학원회보(PNAS)나 미국의 의학저널(NEJM) 등에 발표한 논문과 여러 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기존의 바이러스 감염병과는 다른 걱정스러운 내용이 담겨 있다. 무증상 환자의 바이러스 전파나 공기전염 가능성, 원인 바이러스의 놀랄만한 인체세포 친화력, 그리고 비정형적이고 예측이 어려운 임상경과를 보인다. 또 이란의 확산사태를 보면 겨울이 간다고 단기간에 소멸될 것 같지 않으며 잠복과 유행을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 현실적으로 큰 문제는 아직도 임상시험을 마친 백신이나 특효적 치료약제가 없으며 그것이 개발되어 사용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실험실의 결과와 인체에서 나타나는 결과는 전혀 다를 수 있으므로 신약이 개발되더라도 임상시험을 거쳐 안전성과 효능을 검증하고 일반 환자들에게 적용하기 때문이다.그 사이 불안한 심리를 노린 사이비 의료정보들이 난무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온라인 통신정보망이 고도로 발달하여 잘못된 정보로 부정한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사이버 공간은 국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을 만큼 개방되어 잘못된 정보의 파급 속도도 어느나라보다 빠르며 그만큼 피해가 클 수 있으므로 잘못된 정보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오프라인 현실에서는 인구밀도가 높고 평소 대중교통, 다양한 집회나 모임, 대중문화행사 등, 심지어 상가나 식당까지 사람들이 밀집하여 움직이는 상황이 바이러스에게 유리한 것은 분명하다. 마스크는 재채기나 기침으로 비말감염원을 공기 중에 배출시키지 않을 목적의 타인에 대한 배려며, 감염원과 밀접한 접촉의 위험이 있을 경우 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한다. 따라서 합리적 사용설명이 필요한 시기에 무조건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해로운 주장이다. 지금의 마스크 대란은 마스크 공급관리의 혼선과 공포심리에 따른 수요 폭증에 기인한다. 어떤 경우라도 마스크는 방역과 치료현장의 환자, 의료진과 방역팀에 우선 공급되어야 한다. 일상에서 감염의 문제로 마스크를 사용한다면 사적 공간에서 착용할 필요는 없으며 실외보다 공용공간의 실내에서 그리고 실외에서라도 운집한 대중 속에서 사용하는 것은 필요하다. 일상 생활 중에는 수술용 마스크나 KF80 마스크도 유효하다. 감염우려가 큰 병원 근무자나 의료진, 방역팀이라면 F94이상, N95 방역 마스크가 필요하겠으나 일상 생활에서 숨쉬기가 거북한 방역수준 마스크를 장시간 사용하는 것은 특히 어린이, 노약자, 폐질환 환자에게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으니 사회적 접촉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국내 지역사회감염이 확산하고 세계적으로 대유행에 진입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현재의 질병관리와 이후의 재유입까지 고려한 방역노력과 함께 개개인은 대중이 접촉하는 물건을 자주 소독하고 손세척이나 손과 얼굴 접촉주의, 기침예절, 마스크의 적절한 사용 등 위생을 철저히 하며 무엇보다 다중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사회적 행동이 절실한 시점이다. 앞으로 우리 모두 치료약제가 나오고 바이러스 재생산이 사라질 때까지 질병관리본부와 전문가의 의견을 따라 협조하여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겠다.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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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17 17:06

공존의 숙명, 애증의 이웃 나라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공간적으로 가까이 사는 사람을 이웃이라고 한다. 의도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이웃이 된다. 이웃은 가장 가까운 공간에 살고 있기에 비교적 서로를 잘 안다. 언제 나갔다 들어오는지, 무슨 음식을 먹는지, 싸우는지 등을 소리로, 냄새로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사이가 좋으면 사촌이지만, 갈등이 생기면 원수가 되는 게 이웃이다. 가깝고도 먼 사이인 이웃은 어떻게든 신경이 쓰이는 존재이다. 부딪혀야 하기에 예의를 갖추고 배려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런 예의와 배려, 그리고 적당한 긴장감은 숙명적으로 맞대고 사는 이웃과 공생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관계는 무너진다.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이웃 나라인 만큼 애증이 깊다. 일단 역사적으로 전쟁을 가장 많이 치른 상대가 바로 이웃 나라다. 이웃집과는 잘 지낼 수도 있지만 이웃 나라와 잘 지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외교에서 이웃 나라의 법칙이 있다. 원교근공(遠交近攻), 멀리 떨어진 나라와 친교 관계를 만들어 위협적인 가까운 나라를 치라는 것이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신라가 당나라 군사를 끌어들여 백제나 고구려를 무너뜨린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대체로 세 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파키스탄과 인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아랍 주변국들처럼 아예 국교도 단절하고 상시 전쟁 상태를 유지하는 극단적 적대관계이다. 이 경우가 가장 위험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호주와 뉴질랜드, 스위스와 이탈리아, 미국과 캐나다처럼 서로 적대적 악감정 없이 적당한 긴장감으로 유지되는 관계도 있다. 많은 경우는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과 포르투갈,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처럼 서로 사이는 안 좋아도 활발하게 교류와 협력을 해나가고 있다. 새로운 상황과 상대의 대응 정도에 따라서 두 나라 간의 관계는 널뛰기한다. 이미 경제적 사회적으로 떼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악화하면 그 피해가 정말 커진다.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얽힌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본과는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등 과거사와 영토문제로가 심각하다. 중국과는 미세먼지나 사드 등 환경이나 군사적으로 복잡하다. 그래도 경제교류는 활발해서 기업들은 서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발전해 왔다. 여행객들이 서로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지구촌이 혼란스럽다. 이 가운데에도 우리 정부의 대응은 정말 의료선진국답게 적극적이고 투명하다. 그러나 단순 수치만 가지고 입국을 거부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어 안타깝다. 먼 나라들이야 상황을 잘 모르니 그렇다 치더라도 뻔히 알고 있는 이웃 나라의 행태는 괘씸하기 그지없다.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자국민 보호나 안보라고 포장해 자신의 정치적 득실을 따지는 위정자들의 결정은 서로 피해를 가중할 뿐만 아니라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작년 7월 일본 아베 내각의 경제 제재로 양국이 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데, 여기에 코로나19를 빌미로 입국을 거부함으로써 갈등의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있다. 같이 갈 수밖에 없는 숙명의 관계라면 적절한 긴장감 속에서도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국이 코로나로 심각할 때 우리 정부가 마스크를 보낸 것처럼 어려움을 함께 풀어내려는 예의와 배려만이 발전의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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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10 17:18

욕망은 인간의 본질이다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유행성 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어수선한 채 검은 구름을 머금은 2월도 역사 속으로 숨겨져 갔다, 나이테를 쌓아가고 세상을 알아가면서 구릉에서 올라와 산등성이를 걷던 걸음마다에 겪어야 했던 숱한 사연들이 하나둘 영상처럼 스쳐가고 있다. 늘 부족을 느끼며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갈망하는 꿈의 목표가 돈과 사랑과 명예를 찾아가는 일이 아닌가 한다. 누구의 삶이든 살아있다는 것은 목표를 실현하기위한 부단한 활동이며, 그런 욕망은 욕구의 부족과 결핍이 원인이 되어 뭔가를 하고 싶다로 이어진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 권력과 재력을 갖고 싶다.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고 싶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 등의 욕구가 충족되어질 때, 오감(五感)에 젖어드는 성취감과 짜릿한 희열을 맛볼 것이다. 욕망은 인간의 원천적인 본질에서 시작되기에 그것들을 이뤄보려는 과정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가야 한다. 그토록 온 힘을 다해 갈망하는 목표를 달성해내지 못하는 것은 계획의 어설픔이나 선택의 착오였으리라. 자신의 능력을 부풀려 믿어가며, 무작정 그려가는 욕망은 절대로 이뤄낼 수 없다는 깨달음은 먼 훗날의 몫이다. 삶의 고비마다 선택의 갈등을 반복해가며. 목표의 궤도를 흔들림 없이 끝까지 버티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누구의 인생이든 분명한 인생관과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 피타고라스(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철학자)는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즉 인생을 꾸려가는 방법과 바르게 사는 지혜를 설파한 것이다. 감정에서 우러나온 자연스런 행동을 이성으로 억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구나 살아 온 생을 뒤돌아보면 꿈을 이뤄가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이 치열했을 것이다. 인간이 품고 있는 욕망의 끝자락은 어디까지일까. 불철주야 끙끙대면서 운행했던 인생열차가 멈춰 설 때까지 포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욕망 즉 꿈은 청소년시절에 잘 못 설정하면 그 꿈은 불행하게도 신기루 같은 환영(幻影)으로 끝날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신기루(蜃氣樓)는 드넓고 아득한 사막 한가운데서 목마름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지평선 너머에 있을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달콤한 이정표다. 그 어떤 꿀맛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로수와도 같은 존재,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이 이뤄내고 싶어 하는 꿈이라는 존재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명하고 신중한 선택이 앞장서야 한다. 21세기의 현대인들은 혼탁으로 뒤범벅된 세상을 살아가느라 존재가치를 측정하는 저울이 흔들려 제대로 된 이성으로는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개의 얼굴을 지니고 사는 영악한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온전한 얼굴을 그려가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시선의 각도와 생각하는 상황에 따라 다른 현상으로 그려져 간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두고 어떤 사람은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라고 느낄 것이고, 어떤 이는 너무 느리다.고 표현할 것이나, 그것은 속도와 흐름이 달라서가 아니라, 서로의 삶이 다른데서 오는 착각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 얘기꽃을 피워가면서 맛보는 오붓한 시간이 소시민들의 가정에 오래오래 머물러 있기를 기원해본다.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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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03 20:30

사랑이 이긴다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1985년, 꿈에도 그리던 제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식이 열렸다. 남측에서 35명, 북측에서 30명이 참석한 역사적인 만남의 순간, 국내외 모든 취재진의 이목을 끈 이들이 있었으니 35년여 만에 만난 70대 노부부였다. 이윽고 마주한 두 사람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모두가 숨죽이고 기다리는 순간, 남쪽에서 오신 할머니가 첫 마디를 여셨다. 당신 나 사랑했어? 퉁명스럽지만 진심이 스며든 짧은 질문에 북쪽 할아버지가 곧이어 쑥스러운 듯 대답을 한다. 고럼. 기다렸다는 듯 상기된 얼굴로 할머니는 대답을 한다. 그럼 됐어.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만남은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후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평소 뭇 여성들과 사교성 좋게 지내던 할아버지는 북쪽으로 나들이를 갔고 이후 이산가족이 됐다고 했다. 북쪽에 여자를 만나러 갔던 것은 아니었는지, 남편이 정녕 자신을 사랑했는지, 수십 년의 시간 동안 할머니는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을 홀로 수절하며 자녀들을 키운 그 모진 시간들이 눈 녹듯 녹아내렸으니, 생사도 모르던 남편의 한 마디 당신을 사랑했었다는 확증이 모든 것을 이기게 했다. 제작, 진행하는 생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중 라디오는 사랑을 싣고라는 코너가 있다. 라디오를 통해 청취자들이 직접 고마운 마음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시간이다. 어느 날, 결혼생활 11년차 아내의 편지가 도착했고, 생방송 시간 중에 남편과 아내 각각 전화 연결을 했다. 평소 감사한 마음을 적은 편지를 아내는 눈물로 읽었다. 두 자녀를 둔 이 부부는 지난 10년 간 가족여행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고, 현재 남편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서울에서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주말에만 집에 온다고 했다. 가장으로 가정을 위해 고생하는 남편에게 아내는 고맙다고 말했고, 남편은 사랑한다며 고생하는 아내를 위로했다. 어느새 그 둘과 스튜디오의 진행자들, 청취자 모두는 울고 있었다. 모두에게 전해진 사랑으로 부부는 현재의 어려움을 잘 극복해나갔을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알더퍼(C. Alderfer)는 인간의 욕구를 ERG 이론으로 설명했다. 인간의 기본적인 존재의 욕구(Existence needs)가 채워지면 사랑을 받고 마음을 나누는 관계의 욕구(Relatedness needs)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것들이 충족된 다음에서야 존경과 자아실현의 욕구인 성장의 욕구(Growth needs)가 따른다는 것인데, 결국 사랑이 충족될 때 자신의 역할에서 성장하고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몇 해 전 출판된 책 <아침 키스가 연봉을 높인다>에서 말하기를 아내의 아침 키스를 받고 출근한 남편의 연봉이 20%가 높다고 한다. 사랑과 응원을 받은 남편은 세상에서도 당당하게 싸워 이기게 하는 동기부여가 되었고, 성장의 욕구 단계로 거침없이 이르게 한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진리도 사랑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 이렇게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게 하고 감당하게 한다. 사랑의 정의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에서도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 정의한다. 별을 연구하는 한 철학자는 하늘만 바라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먼 곳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을 살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우리의 삶을 이기게 하는 것은 먼 곳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 숨 쉬는 그 사랑이다.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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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25 20:10

알빙(RVing)에 필요한 것들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많은 사람들의 로망 중 하나가 캠핑카(캠핑용 자동차나 트레일러, recreational vehicle, RV)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캠핑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최근에는 자동차법을 개정하여 캠핑카 제작을 위한 구조변경 규제를 대폭 완화하였다. 서구 선진국은 넓은 국토나 이동 반경, 오랜 캠핑역사를 토대로 알빙(RVing, 캠핑카를 이용한 활동)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지정학적으로 섬이 되어버린 좁은 국토, 캠핑카에 대한 배타적 태도, 협소하고 열악한 자동차 캠핑장 시설 등 인프라는 알빙 후진국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알비어(RVer, 캠핑카를 운용하는 사람)들은 자동차 캠핑장 시설 부족과 함께 운용 중 전기와 물 공급, 오하수 처리나 보관 주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먼저 알비어들의 준법과 공공의식이 전제되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부족한 시설 확충과 수용적 문화를 권해야 할 것이다. 최근 도내 웅포 관광지 예로, 협소한 국민관광지에 지자체가 운영하는 캠핑장이 있어 관광지 주차장에 캠핑카의 야영활동이 아닌 주차 자체를 금하고 있었다. 지자체 홈페이지에도 다수 민원이 제기되어 있었으며 답변에 금지 이유가 일부 캠핑카의 물과 전기 무단사용이었다. 그러나 불법적 행위를 단속해야지, 대중이 모두 이용하는 관광지에 접근하기 위한 잠시 주차조차 금하는 것은 지나친 조치다. 캠핑카 운전자 모두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처사로 온라인 상에서도 회자되어 해당 지자체 뿐만 아니라 전북의 평판을 해치고 있다. 국민관광지라는 명칭에 맞게 무조건 금지보다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 개선해주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캠핑카의 오수 처리는 환경의 문제다. 그러나 전국 어디를 가도 캠핑카의 오수 배출시설을 찾기가 어렵다. 급증하는 캠핑카들이 도로나 산간 등에 오수를 투기한다면 우리 강산에 심각한 오염원이 될 것이다. 기존의 화장실이나 오수시설에 간단한 배관을 추가하면 시설이 되므로 규정을 만들어 자동차 캠핑장은 캠핑카의 오수를 배출할 수 있는 배관 설치를 의무화하고 주요 거점 공공 화장실에도 설치하여 오하수의 배출을 유도해야 한다. 또 휴게소나 주유소에서 주유와 함께 물을 채우고 오수를 비울 수 있다면 서로 좋을 것이라는 유용한 제언도 있다. 물론 유료라도 알비어들은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설의 제공과 함께 당국은 앞으로 증가할 캠핑카에서 강산에 해로운 물질이 무단 투기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좁은 국토에 자동차가 넘치니 아파트나 주택지에 캠핑카의 보관주차가 주민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캠핑카를 구입하기 전에 주차 문제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아파트의 경우 캠핑카 구입 전 규약을 확인해서 단지 내 주차가 허용되는지 확인해야한다. 증가하는 캠핑카의 수요에 맞추어 공공 주차장이나 공동 주차장 확보 등 대책이 필요하며 일정기준 이상의 캠핑카는 등록된 차고지를 갖게 하므로서 주차로 인한 갈등을 줄여야 한다. 알빙은 저마다 자녀와 함께, 부부끼리, 친구들과 함께, 또 치열한 삶터에서 지친 사람들이 심신을 회복하기 위한 웰빙 활동이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으나 필요한 시설과 환경 속에서 알빙문화가 발전하기를 바라면서 캠핑카의 공급 장려와 함께 우리 현실에서 대두되는 제한점들이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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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18 21:10

졸업식, 그 풍경과 상처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졸업 시즌이다. 일찍 마친 학교도 있지만, 다수의 학교가 이번 주에 졸업식과 종업식을 치르고 학년 말 방학에 들어갈 것이다. 졸업은 통과의례다. 대학교는 다르지만, 초중등학교의 경우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학교 과정을 마친데 대한 격려와 축하의 자리가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다. 다른 것들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서 졸업을 임하는 자세 역시 많이 바뀌고 있다. 생애 처음 맞던 초등학교 졸업식장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하고 노래가 시작되면 여기저기서 훌쩍이곤 했었다. 특히 이 초등학교를 끝으로 더는 책가방을 들 수 없는 친구들에게 이날은 특히 남달랐다. 정든 학교, 그리고 친구들과 헤어져 대처로 나가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이니 졸업식은 어쩌면 황량한 삶의 사막으로 가는 의식 같았을 것이다. 결국, 식장은 울음바다가 돼 축하하러 온 부모님들까지 눈물을 훔치시던 기억이 난다. 중고등학교는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졸업식을 맞았다. 까만 교복이 지겨웠던 것일까? 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교복에 밀가루를 뿌리고 계란을 던지곤 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계란과 하얀 가루를 뒤집어쓴 행색은 무슨 귀신영화의 주인공처럼 괴기가 감돌았다. 그런 몰골로 교복을 찢으며 한풀이를 하듯 학교를 벗어나던 친구들의 모습도 눈에 선하다. 이 풍경은 필자가 교사로 있던 시기에도 이어졌다. 졸업식 당일 학생부 교사들이 단속을 벌여 밀가루와 계란을 미리 압수하기도 했지만, 식이 진행되는 가운데 다시 들여오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작별의 서운함에 눈물에 젖었던 졸업식이 바뀌어 억압의 생활을 끝내고 해방을 맞는 그들만의 축제처럼 보여 씁쓸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무엇이든 지나치면 화가 된다. 졸업식의 분위기가 학교 밖으로 이어져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해방감에 술을 마시고, 알몸으로 시내를 질주하는 추태로 번졌고, 결국 이런 광란의 파티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러자 경찰까지 나서 졸업식 일탈을 단속하게 되자 졸업식 파티는 조용해졌다. 졸업식장 풍경도 바뀌었다. 학교장 회고사에 이어지는 내빈들의 축사, 그리고 상장 수여식과 장학금 전달식까지 결국 상도 장학금도 못 받는 학생들은 기가 죽어 앉아 있다가 나와야 했다. 그러던 졸업식이 점점 권위적인 관행을 걷어내고, 학생들의 축제가 돼 간다. 부모들 앞에서 스스로 이렇게 성장했노라고 보여주는 무대는 따뜻하다. 그러나 올해는 어떤 졸업식 풍경도 볼 수 없게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졸업식이 취소되거나 축하객 없이 종례를 하듯 각 교실에서 치르게 된 것이다. 번거롭게 졸업식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홀가분한 일일 것이나, 서로 격려하고 감사하는 자리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계기는 또 다른 변화로 이어진다. 취소했거나 외부인 없이 간소하게 치른 졸업식이 어떤 변화로 이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학생들을 격려하고 축하하며, 또 그들의 앞날을 축복하는 자리라는 것이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그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초라한 졸업식일지라도 졸업생 모두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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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11 16:51

행복지수의 의미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사람마다 복잡다단한 정의(情意)가 행복의 개념이다. 행복의 쾌감은 마음에서부터 일어난다. 수학적으로는 일생동안 즐겁고 좋았던 질량과 고통스러웠던 수량을 비교해서 말할 수 있고, 의학적으로는 노인이 되어서까지 건강 정도에 무게를 둘 것이고, 철학적으로는 주관적인 삶의 만족도로 정의(定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사람도 늘 행복에 취해있지는 않을 것이다. 행복은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자기가 해보고 싶은 일에 심취했을 때와 하고자했던 것들이 뜻대로 되었을 때,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짜릿한 느낌일 것이다. 주위사람들이 보기에 저 사람은 권세와, 지위와 경제력도 있으면서 자기가 바라는 대로 모두를 이뤄냈기에 행복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에게 지금의 생활이 매우 만족하시죠?라고 묻는다면 되돌아오는 응답은? 인간들은 모든 것을 채워갈려고 하는 데서 불만과 불평과 불안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체 오늘을 살아간다. 현대들은 문명화된 감옥 속에서 인스턴트 시대를 바쁘게 때로는 바쁜 척하면서 메마른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야만 낙오자대열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길을 가다가 아니면 운전을 하다가 빨간불과 파란불의 교차에 조급한 행동을 반사적으로 일으킬 때가 있다. 때로는 속도경기에서 적용되는 백분의 1초나 일천 분의 1초가 운명을 가른다. 초조하거나 정신이 혼미해질 때 잠깐 여유를 갖는 느슨하게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도 있으련만. 누구나 주관과 목표를 설정해놓고서 인생을 엮어가지만 희망과 절망이 수없이 교차되면서 의도와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도 있다. 낙원을 찾아가는 길은 벅찬 오르막도 있을 것이고, 생각처럼 되지 않는 내리막길도 있다. 때로는 지름길도 있고, 한참을 땀 흘리고 왔건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을 만나 돌아가야 하는 황당한 일도 있을 것이다. 급할 때 찾는 지름길이 길이라면 빠른 판단으로 돌아가는 길도 분명한 길이다. 영국의 리처드 브랜슨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대체로 인생을 신나게 즐기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즉 자신의 꿈을 좇으며 살라는 말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조건의 욕구는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결국 생각의 차원이 갈림길이다. 거울의 의미는 어떤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보여주는 것을 비유하는 물체의 명칭이다. 우리들은 날마다 거울 속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면서 하루를 시작해간다. 겉모습에만 도취하지 말고 냉철한 잣대로 거울 속에다 자신을 드러내야만 달성하려는 목표나 가치관의 실현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행위의 시작이 바로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한다. 히말라야 자락의 은둔 왕국인 부탄은 인구 70만 명에 국민총생산이 3000달러에 불과하지만 2016년 유엔이 조사한 세계행복지수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들보다 훨씬 부유한 당시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세계 96위였다고 하는데, 그들의 행복지수는 왜 그리 높았을까? 어떤 글쟁이가 얼굴과 이름을 알면 이웃이 되고, 성향과 색깔을 알면 친구가 되고, 인성과 모습을 알면 연인이 된다고 했다. 우리도 행복한 사람이 되려한다면 세상과 대립하거나 주위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고 과다한 욕심을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뭔가 덜 채워진 것 같은 아쉬움이 늘 곁에 머물지만 현실에서 뚜벅뚜벅 걷다보면 행복이란 환영도 서서히 다가오리라.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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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04 19:53

뿌린 대로 거둔다면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아빠. 왜 여기에 머리가 없어요? 고개를 숙이고 청소를 하는 아빠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4살 아들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묻는다. 일찌감치 시작된 탈모에 남몰래 가슴앓이 해온 남편은 속으로 눈물을 훔치며 답을 했다. 아빠가 열심히 일을 해서 머리가 많이 빠졌어.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남편에게 아이는 크게 외쳤다. 아빠! 걱정마세요. 제가 씨앗을 심어줄게요. 머리 씨앗을 심으면 자랄 거예요! 반짝이는 눈빛으로 전 세계 탈모인들을 위한 놀라운 처방전을 발표했으니, 바로 머리씨앗이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4살 아이가 어찌 알았을까. 이후에도 며칠 간 생각이 나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시부모님 덕분에 진짜 농사가 무엇인지 배우게 됐다. 언제 방문을 해도 손을 쉬지 못하시는 시부모님께 명절이라도 좀 쉬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지만 언제나 정직한 답이 돌아왔다. 지금 하지 않으면 농사를 망친다. 시간이 곧 수확으로 연결되는 농업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는다. 씨앗에서부터 농작물의 질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 때에 맞춰 준비를 하지 않으면 훗날 거둘 것이 없다는 것, 그리고 땀은 절대 배신을 하지 않는 다는 것, 인생의 가르침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어린 시절 심어야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이는 조기교육 열풍으로 이어졌고, 여러 우려를 낳으면서도 관심은 커져간다. 최근 영유아 사교육비가 연간 3조 7000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고 하고, 심지어 영어교육의 시작 시기도 점점 내려가며 초(超)저연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이병민 교수는 국내에서 특정 시기의 언어 교육은 필수가 아니며 불안이 만들어 낸 가설이라 주장하지만 부모들을 안심시키긴 어렵다. 그렇다면 시대가 변해 좋은 것들을 보고, 배우며 자란 자녀들은 그만큼의 효과를 보고 있을까? 최근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초중고 학생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은 총 549명이고, 4년 사이 55%나 증가했다. 정작 삶의 편의와 질 높은 교육은 제공됐지만, 중요한 가치와 인성, 성품에 대한 투자는 소홀하게 여겨졌기에 이상 결과가 나타났다. 결국 기회비용의 한계를 극복하고서라도 얻으려 한 건 기성세대의 위안일 뿐이라는 것이다. 19세기 독일의 교육학자이자 목사인 칼 비테는 발달장애를 보이는 미숙아 아들을 세계적인 학자로 키워냈다. 지적장애를 판단 받았던 아이는 열 살에 대학교에 입학, 열여섯 살에 법학대학의 교수가 됐다. 많은 이들이 그에게 남다른 교육법을 기대했지만, 칼 비테는 단순히 똑똑한 자녀 양육이 아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온화한 성품과 인성으로 세상의 도움이 되는 자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처럼 성공보다는 사랑을, 경쟁보다는 화합을, 자랑보다 공감의 능력을 심는다면 그러한 아름다운 열매들을 언젠가 맺을 수 있다. 성경 시편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편126:5)라는 교훈을 준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안다면 열정과 성의를 다해 뿌려야 할 것이다. 2020년 한 해, 무엇을 위해 어떤 것들을 심을 것인가. 우리의 선택으로 추수할 종목이 결정될 것이다. 탈모를 걱정하는 남편에게 효능 좋은 발모제 대신 당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사랑의 자신감을 심어줘야겠다.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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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28 17:17

정규분포에 대한 단상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제자리와 제모습을 지니고 있다. 미시적으로 보면 세상에 동일한 것은 하나도 없다. 거시적으로 볼 때 비슷한 점들이 드러난다. 이러한 다른 점과 같은 점을 토대로 우리는 세상의 것들을 분류하고 분석하여 이해하려 노력한다. 우리는 만상이 제자리를 지키고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름과 같음 사이에서 조화를 찾아가는 합리적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이성의 길이다. 활기가 넘치고 조화로운 세상 만물은 정규분포 안에 존재한다. 정규분포야말로 수학이 알려주는 우주의 조화법칙이다. 밤하늘을 바라보면 별들이 저마다의 빛을 발하고 있다. 별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분류될 수 있으며, 예를 들어 크기나 빛의 세기로 분류하면 결국은 종모양의 정규분포를 갖게 된다. 표준편차는 정규분포 중앙에서 양쪽을 적절히 포함하여 우리가 일반 다수라 일컽는 범위를 정하는 인위적 기준일 수 있겠다. 최고로 큰 별과 최고로 작은 별이 존재하고 최고로 빛나는 별과 육안으로 구별되지 않는 별도 있지만 별들의 세계는 조화롭다. 별에서 와서 별을 그리워하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사람들도 미시적으로 다른 점과 거시적 같은 점을 갖고 하루하루를 반짝이며 별처럼 살아간다. 성별도 있으며 각자의 체격도 성품도 자질도 같거나 다르다. 판단의 기준을 정해 따르면 개개인은 정규분포 중의 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결국 종모양의 정규분포 안에서 존재한다. 사회적으로 공공의 안녕을 위해 구성원의 분포특성을 살펴 적정 다수의 행복을 위해 기본 혜택이나 기본 의무를 주고, 표준편차 밖의 범위에 대해서는 정책적 추가 배려나 원칙에 따른 규제를 하게 된다. 그러나 표준편차를 너무 작게 잡으면 공정성이 결여돼특혜시비가 일고 너무 크게 잡으면 차별논란과 함께 문제 해결의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기가 어려워진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양극이 부딪혀 충돌하며 곳곳에서 특혜와 차별의 파열음을 내고 있다. 이성의 길을 벗어나 조화가 깨진 것이다. 성취 과정이나 결과에 대한 평가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 중인 시기에 이뤄지는 교육평가는 초미의 사회적 관심사로 소모적 갈등의 단초가 되고 있다. 교육평가는 줄을 세워 양극단을 차별하고 배제하기 위한 것 아니라 행복한 삶이라는 긍극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이해하고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교육의 좌표는 어디에 있는가. 평가를 위한 규칙의 공정함이 의심받고 있으며 수평적 교육은 하향평준화라는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획일화를 지양하던 교육이 획일화를 지향하게된 모순에 빠져 있다. 학생의 분포 특성을 외면하고 편차의 기준을 지워버린 결과다. 과정 자체가 목표가 되어 정책과 대상을 조율하지 못하고 배려나 규제의 일관성이 훼손되어 생긴 불합리며 부조화다. 다방면에서 학생의 특성에 맞게 이뤄지는 수월성 교육을 인정하는 것이 순리다. 적절한 배려와 규제도 필요하다. 그러나 평등도 행복한 삶의 목표를 향한 과정일 뿐이며 목표 그 자체는 아니다. 생동하는 우주의 별도 지상의 인간도 정규분포를 이루며 존재한다. 극단적으로 동일한 특성을 갖는 존재들을 한데 모아도 살아있는 집단은 다시 정규분포를 재현한다. 시간은 변화를 의미하고 획일화된 어떤 것들도 활기가 남아 있다면 결국 정규분포 상태로 환원된다. 다양성을 잃는다면 원기를 소진한 종말에 다름이 아니며 종말에 이른 것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정규분포는 활기의 증거며 조화를 향한 우주의 보편적 현상이다.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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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21 16:34

2020년,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길을

무언가 새롭게 나갔으면 하고 맞이한 2020년도 1월이 벌써 절반이나 지나간다. 세월의 덧없음을 신년 초부터 거론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마음먹은 일들이 차질 없이 진행되었으면 하는 우려와 바람 때문이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지나온 길을 돌아봐야 한다. 다짐은 반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작년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2% 정도라고 한다. 석유파동과 외환위기가 있었던 해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치다. 그것도 관 주도가 1.5%고 민간은 0.5%라고 하니 세금으로 경기 부양시킨 꼴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성장세는 계속 둔화해 왔고, 또 선진국들과 비교해 그리 나쁜 성적표는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꼭 수치로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실제 자영업자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더 힘들다고 한다. 사람들이 먹고 쓰는 것은 그리 줄인 것 같지는 않는데 실제 체감이 안 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온라인 거래의 비중 확대에 있을 것이다. 한때 책을 안 읽어서 서점이 문을 닫는다 했지만 이제는 책을 많이 읽어도 성업 중인 서점은 찾기 어렵다. 모두 인터넷으로 구매하기 때문이다. 미국 회사인 베타는 이런 점에 착안했다. 이 매장은 물건을 진열은 하지만 팔지는 않는다. 사는 건 아마존 같은 온라인 매장으로 가라고 한다. 소비자들은 여기서 물건을 비교하고 충분히 살펴본 후 구매는 스마트폰 앱으로 하면 된다. 구태여 물건을 팔라고 하면 팔기는 하되 매장 수수료는 없다. 판매 금액을 모두 제조사에 보낸다. 물건을 안 팔면 어떻게 매장이 유지가 될까? 판매 대신 전시 공간을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제조사가 8개 매장에 물건을 전시하는 조건으로 매월 2000달러(219만원)을 내고 있지만 전시하려는 기업이 줄을 섰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베타매장마다 한 달 방문객이 25,000명 정도다. 이러니 백화점마다 서로 공간을 내주며 입점을 유도한다. 베타 덕분에 백화점 경기까지 살아나기 때문이다. 베트남에 에버피아라는 한국 기업이 있다. 에버론이라는 브랜드로 침구를 만드는 회사인데 베트남 시장 점유율 1위이다. 처음에는 베트남의 낮은 인건비로 인공 솜인 패딩을 만드는 그저 그런 회사였다. 겨울 방한복 재료인 패딩을 8월 말쯤 실어 보내고 나면 할 일이 없었다. 이 회사 이재은 회장은 쉬는 장비와 인력을 이용해 이불을 만들기로 했다. 무더운 나라에서 솜이불을 만들어 판다고 하자 모두 미쳤다고 했지만 제품은 날개가 돋친 듯 팔렸고, 대리점들이 늘어났다.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제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은 패딩이 아니라 침구다. 얼마 전까지 회사 모델이던 톱스타 김태희와 최근 계약을 종료했다. 스타에 의존하기보다 SNS나 유튜버를 활용한 마케팅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그래서 벌인 이벤트가 잠 안 자기 대회였다. 인터넷을 통해 참가자 모집했다. 참가자들에게 먼저 운동을 시키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한 후 침구에 누워 누가 오래 버티는지를 겨루는 것이다. 물론 실황을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하노이의 대회가 알려지자 전국에서 대회 요청을 하고 있다. 발상의 전환이 새로운 길을 만든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고, 산업 구조나 경제 시스템도 예전과 다르다. 문명의 이기는 누리면서 자기 삶터와 방식은 안 바꾸려는 태도로는 지탱하기 어렵다. 2020년 새로운 길을 가려면 기존의 길을 되돌아보고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김판용(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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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14 15:42

숫자와 일상생활

김형중 시인前 전북여고 교장 우리들은 실타래처럼 엉킨 다른 사람들과의 이런저런 관계로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적동물이다. 대인관계가 인생행로의 나침반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혈육이나 이웃들에 대한 그리움의 표출도 어색한 세상이 되었다. 현대인들은 자연이나 생활에 편리한 과학문명의 혜택과 주위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얼마나 느끼면서 살고 있을까. 여러 분야에 얽힌 것들 중의 하나가 숫자와의 밀접한 관계가 아닌가 한다. 숫자는 천사오백 년 전에 처음으로 인도에서 발명되어 상인들에 의해 아라비아로 건너갔다가 다시 유럽으로 전해졌기에 인도숫자가 아닌 아라비아숫자라고 불린다. 수많은 숫자들 중에서 좋아하는 숫자와 싫어하는 숫자가 사람마다, 또는 각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나는데, 대체로 3, 7. 8. 9는 좋아하는 숫자에 4. 6, 13 등의 숫자는 싫어하는 숫자에 속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사람들은 대체로 3과 7을 좋아하는데, 특히 3은 심리적인 안정을 주면서 확신과 공정성의 시비를 막는다고 한다. 재판과정의 삼심제나 삼세판,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삼권분립제도를 비롯해 일상에서 회자되는 서당 개 3년, 작심삼일, 세살 버릇, 삼복더위 등 헤아릴 수 없이 생활문화 속에 살아있다. 만약에 1,2,3에서 9까지만 있었고 0이 없었다면 2019년과 219년을 그리고 1원과 10원을 어떻게 표시했을까. 그렇다면 0이라는 숫자가 없었다고 가정한다면 얼마나 불편했을까? 0의 숫자가 최초로 쓰인 것은 870년 경 인도에서부터였다고 한다. 0은 실체가 없었던 무(無)의 개념을 기호화 시켜 놓은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이 0의 발견을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중의 하나라 하여 매우 높이 평가한다고 한다. 사용하는 숫자들 중에서 0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고 비어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인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숫자가 크게 발달하지 못했던 이유는 대중적이지 못하고, 승려나 왕족들만 수학을 연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인도는 14억의 인구 숫자만큼이나 수학이 발달해서 인터넷이나 과학이 앞서가는 나라가 되었다 21세기의 사람들은 지난날들과 비교해 볼 때 모든 것들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너무 많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너무나 많은 비참함과 억울함과 슬픔과 비극을 낳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궁핍했던 지난 60년대 이전의 시대와 너무 많아서 넘쳐나는 시대적 차이는 그것들이 갖고 있는 존귀한 가치를 모두 상실해버린다. 아무 것도 없다는 제로를 나타내는 0과 반대로 너무나 많아 주체를 못하는 정보나 물질과의 비교가 시간을 멈추게 한다. 현대인들이 물질문명의 혜택을 멀리하고 1차 산업시대로 돌아간다면 그 불편함을 이겨낼 수 없듯이 젊은 사람들에게서 희망이나 지향하는 목표가 없다면 삶의 가치는 무미건조할 것이다. 제로상태이거나 없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절망이나, 의욕을 잃고 사는 것보다는 다가오는 것들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은 우리들의 인생을 좌우하는 갈래 길이 될 것이다. 사람들의 욕심과 능력은 저마다 성향에 따라 다르다. 머릿속에 그려진 숫자의 욕심을 절제하고 능력을 적재적소에 발휘한다면 환상적인 조합이 될 것이며, 덧붙여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시너지 효과와 더불어 삶의 질은 더욱 아름답게 격상될 것이다. /전 전북여고 교장 김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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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07 19:12

군산항과 새만금 신항

박정인 군산지방해양수산청장 내년도 예산안이 지난 10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와 함께 총사업비 2,200억원 규모의 새만금 신항 2선석 개발 예산도 확정되어 앞으로 5년 후면 신항을 본격적으로 가동할 수 있게 되었다. 도민의 염원이 이뤄낸 성과다. 새만금 신항이 계획대로 모두 완공되면 군산항의 하역능력에 버금가는 항만을 우리 지역이 또 하나 보유하게 되는 셈이다. 규모면에서 전국 7대 항만으로 도약하고, 5만톤급 대형 선박이 상시 입출항할 수 있는 서해권의 중추적인 교역 거점항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냉정히 짚어봐야 할 게 하나 있다. 바로 군산항과의 관계 정립 문제다. 그동안 지역 항만업계에서는 새만금 신항이 새로운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기존의 군산항 화물을 흡입하는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틀린 말은 아니다. 현재 새만금 산단 조성 공정률은 전체 면적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데다 분양실적 마저 더디다. 물론 신항 부두를 당초 민자에서 국가 재정사업으로 전환하여 조기 개발에 들어간 것은 새만금 지역에 대한 기업 유치를 촉진하고 내부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 당장의 물동량 처리 보다는 미래 성장 가능성에 무게를 두겠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신항이 본격 가동되는 시점이 되면 새만금 내부에서 발생하는 물량에 따라 양 항만 간 기능 조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냉정히 말해 군산항은 항만 여건만 놓고 보면 타 항만에 비해 그렇게 경쟁력이 높은 편이 아니다. 2018년 기준으로 한 해 준설 장소만 18개소로 전국 38개소의 절반에 이르는 데다, 준설비만도 181억원이 투입되어 전국 항만 준설예산의 42.5%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취약하다. 그렇다고 군산항을 포기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결코 포기할 수도 없고 또 그럴 상황도 아니다. 현재 군산항 물동량의 80% 이상이 군산항 배후와 익산, 서천 등 인근 지역에 소재한 기업의 화물이다. 새만금항을 이용하는 것보다 육상 물류 측면에서 유리하다. 항만배후에 전기차 등 기업 유치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게다가 군산항에는 부두와 싸이로 등 화물보관시설, 하역시설 등을 갖추는데 수 천억원의 민간 자본이 투자되었다. 군산항이 위축되면 이들 항만시설에 대한 투자비 회수는 막막해진다. 결국 원하든 원치않든 양 항만 간 물류 이동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동반자 역할을 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잘 유도해 줘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여건이 좀 다르긴 하지만 부산 북항?남항?감천항?다대포항과 경남 진해의 부산신항을 아우르는 부산항과 타 항만의 통합 운영 사례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면밀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경우 항만정책 방향을 세계 최대, 거대화로 잡고 올해부터 전국을 크게 5개로 나누어 항만 간 통합을 본격화하고 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물동량을 모조리 중국으로 끌어 가겠다는 심산이다. 산둥성의 경우 칭다오항을 중심으로 옌타이ㆍ웨이하이ㆍ웨이팡 등 7개 항이 산둥항으로 통합되었다. 군산항과 새만금 신항도 각각의 항만기능을 뛰어넘어 화물과 부가가치를 스스로 창출해내는 통합 항만으로 성장해 나가야한다. 양적 성장도 좋지만 그동안 소홀했던 내실 다지기도 필요하다. 군산항은 강점 분야 최고의 특화항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항만서비스를 개선하고 항만 연관산업 육성과 전문인력 양성에 좀더 신경을 써야 한다. 사업 역량을 키워야 신항 진출도 가능하다. 새만금 신항은 신항대로 시설을 투자해 놓으면 선사와 화주, 기업이 올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배후의 신속한 개발과 기업 유치도 절실하다. /박정인 군산지방해양수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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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17 17:05

순례길에 남겨진 기억들

한병성 전북대 명예교수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카미노데산티아고(스페인어: Camino de Santiago)로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를 목표로 다양한 길을 따라 걷는 것을 말한다. 주로 프랑스 각지에서 피레네 산맥을 통해 스페인 북부를 통과하는 길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 러시아, 핀란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유럽 각지로 부터 산티아고로 가는 길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프랑스 길은 프랑스 남부국경 생장피에드 (Saint-Jean-Pied-de-Port)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이르는 800km 여정이다. 프랑스인들이, 프랑스에서부터 오는 길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하루에 20여 km 씩 걷는다면 한 달 이상을 걸어야 한다. 연금술사 파올로 코엘료가 이 길을 걸어 더욱 유명해졌다. 2010년 한해만도 27만 명이 방문했다. 최종 목적지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중세시대에 기독교 순례자들의 중요한 순례길 중에 하나였다. 기독교 교리상 죄에 대한 보속으로 주어지는 대사 중에 산티아고 순례도 있었다 언제부터서 인가, 나이를 더해가면서 삶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그 정리 장소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생각하게 되었고, 이렇다 할 준비도 없이 어느 날 그냥 배낭을 메고 떠났다. 800km의 여정은 무리라는 가족들의 만류를 뒤로하고 떠난 길이기에 걱정 반 설레임 반이었다. 순례길에선 모두들 걷고 있었다. 프랑스인도, 헝가리 사람도, 호주, 미국, 이태리, 영국 또 우리 한국인들도 걸었다. 혼자서 또는 친구들과 함께, 가족들과 어우러져서 아님 순례길에서 처음 만나 우정을 나눈 낯선 친구와 걸었다. 나이 어린 청소년도, 젊은이도, 나이 지긋한 중년도, 머리 하얀 할머니 할아버지도 걸었다. 그런데 이들 모두에게는 이런 힘든 여정을 결심해야만 했던 서로 다른 사연과 스스로의 의지로 만들어진 각자 생각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 짐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묵묵히 짓 눌러오는 중력을 거부하지 않고 두 발로 버티어 내고 있었다. 누군가는 발가락이 부룹터서, 또 누군가는 근육통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전달되어 오는 통증을 인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모습 속에 한 가지 공통점 있었다. 스쳐 지나며 서로에게 전하는 부엔 까미노 (buen camino) 좋은 길 하는 인사다. 아니 어쩌면 힘내자고 포기하지 말자고 고통과 아픔을 향해 스스로를 응원하고 있었다. 길 안내 표지판 위에, 벽면에, 다리 난간에, 아스팔트 위에, 누군가 그들만의 언어로 아픔을, 사랑을, 희망을, 표현하고 있었다.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사랑이 얼마나 아팠을까, 껴안고 함께 울어 주고 싶었다. 출발선상에서 함께했던 지팡이가, 신발이, 양말이 버려져 있었다. 소원을 닮은 조약돌이, 몸에 지녔던 십자가가 놓여 있었다. 산다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삶의 매 순간 순간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곁에 두었던 손때 뭍은 것들을 하나 둘 버리는 연습이 아닐까. 아니 어쩜 익숙한 것으로 부터의 이별을 연습하고 있는 것 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날, 순례완주증명서를 받기위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은 환했다. 기쁨, 희망, 그리고 감사가 표현되고 있었다. 짊어지고 아파했던 생각의 무게들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옮기며 하나씩 하나씩 길가에 버렸나 보다. 등이 한결 가벼워 보인다. /한병성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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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1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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