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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지수의 의미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사람마다 복잡다단한 정의(情意)가 행복의 개념이다. 행복의 쾌감은 마음에서부터 일어난다. 수학적으로는 일생동안 즐겁고 좋았던 질량과 고통스러웠던 수량을 비교해서 말할 수 있고, 의학적으로는 노인이 되어서까지 건강 정도에 무게를 둘 것이고, 철학적으로는 주관적인 삶의 만족도로 정의(定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사람도 늘 행복에 취해있지는 않을 것이다. 행복은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자기가 해보고 싶은 일에 심취했을 때와 하고자했던 것들이 뜻대로 되었을 때,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짜릿한 느낌일 것이다. 주위사람들이 보기에 저 사람은 권세와, 지위와 경제력도 있으면서 자기가 바라는 대로 모두를 이뤄냈기에 행복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에게 지금의 생활이 매우 만족하시죠?라고 묻는다면 되돌아오는 응답은? 인간들은 모든 것을 채워갈려고 하는 데서 불만과 불평과 불안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체 오늘을 살아간다. 현대들은 문명화된 감옥 속에서 인스턴트 시대를 바쁘게 때로는 바쁜 척하면서 메마른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야만 낙오자대열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길을 가다가 아니면 운전을 하다가 빨간불과 파란불의 교차에 조급한 행동을 반사적으로 일으킬 때가 있다. 때로는 속도경기에서 적용되는 백분의 1초나 일천 분의 1초가 운명을 가른다. 초조하거나 정신이 혼미해질 때 잠깐 여유를 갖는 느슨하게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도 있으련만. 누구나 주관과 목표를 설정해놓고서 인생을 엮어가지만 희망과 절망이 수없이 교차되면서 의도와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도 있다. 낙원을 찾아가는 길은 벅찬 오르막도 있을 것이고, 생각처럼 되지 않는 내리막길도 있다. 때로는 지름길도 있고, 한참을 땀 흘리고 왔건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을 만나 돌아가야 하는 황당한 일도 있을 것이다. 급할 때 찾는 지름길이 길이라면 빠른 판단으로 돌아가는 길도 분명한 길이다. 영국의 리처드 브랜슨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대체로 인생을 신나게 즐기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즉 자신의 꿈을 좇으며 살라는 말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조건의 욕구는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결국 생각의 차원이 갈림길이다. 거울의 의미는 어떤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보여주는 것을 비유하는 물체의 명칭이다. 우리들은 날마다 거울 속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면서 하루를 시작해간다. 겉모습에만 도취하지 말고 냉철한 잣대로 거울 속에다 자신을 드러내야만 달성하려는 목표나 가치관의 실현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행위의 시작이 바로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한다. 히말라야 자락의 은둔 왕국인 부탄은 인구 70만 명에 국민총생산이 3000달러에 불과하지만 2016년 유엔이 조사한 세계행복지수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들보다 훨씬 부유한 당시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세계 96위였다고 하는데, 그들의 행복지수는 왜 그리 높았을까? 어떤 글쟁이가 얼굴과 이름을 알면 이웃이 되고, 성향과 색깔을 알면 친구가 되고, 인성과 모습을 알면 연인이 된다고 했다. 우리도 행복한 사람이 되려한다면 세상과 대립하거나 주위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고 과다한 욕심을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뭔가 덜 채워진 것 같은 아쉬움이 늘 곁에 머물지만 현실에서 뚜벅뚜벅 걷다보면 행복이란 환영도 서서히 다가오리라.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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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04 19:53

뿌린 대로 거둔다면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아빠. 왜 여기에 머리가 없어요? 고개를 숙이고 청소를 하는 아빠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4살 아들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묻는다. 일찌감치 시작된 탈모에 남몰래 가슴앓이 해온 남편은 속으로 눈물을 훔치며 답을 했다. 아빠가 열심히 일을 해서 머리가 많이 빠졌어.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남편에게 아이는 크게 외쳤다. 아빠! 걱정마세요. 제가 씨앗을 심어줄게요. 머리 씨앗을 심으면 자랄 거예요! 반짝이는 눈빛으로 전 세계 탈모인들을 위한 놀라운 처방전을 발표했으니, 바로 머리씨앗이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4살 아이가 어찌 알았을까. 이후에도 며칠 간 생각이 나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시부모님 덕분에 진짜 농사가 무엇인지 배우게 됐다. 언제 방문을 해도 손을 쉬지 못하시는 시부모님께 명절이라도 좀 쉬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지만 언제나 정직한 답이 돌아왔다. 지금 하지 않으면 농사를 망친다. 시간이 곧 수확으로 연결되는 농업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는다. 씨앗에서부터 농작물의 질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 때에 맞춰 준비를 하지 않으면 훗날 거둘 것이 없다는 것, 그리고 땀은 절대 배신을 하지 않는 다는 것, 인생의 가르침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어린 시절 심어야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이는 조기교육 열풍으로 이어졌고, 여러 우려를 낳으면서도 관심은 커져간다. 최근 영유아 사교육비가 연간 3조 7000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고 하고, 심지어 영어교육의 시작 시기도 점점 내려가며 초(超)저연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이병민 교수는 국내에서 특정 시기의 언어 교육은 필수가 아니며 불안이 만들어 낸 가설이라 주장하지만 부모들을 안심시키긴 어렵다. 그렇다면 시대가 변해 좋은 것들을 보고, 배우며 자란 자녀들은 그만큼의 효과를 보고 있을까? 최근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초중고 학생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은 총 549명이고, 4년 사이 55%나 증가했다. 정작 삶의 편의와 질 높은 교육은 제공됐지만, 중요한 가치와 인성, 성품에 대한 투자는 소홀하게 여겨졌기에 이상 결과가 나타났다. 결국 기회비용의 한계를 극복하고서라도 얻으려 한 건 기성세대의 위안일 뿐이라는 것이다. 19세기 독일의 교육학자이자 목사인 칼 비테는 발달장애를 보이는 미숙아 아들을 세계적인 학자로 키워냈다. 지적장애를 판단 받았던 아이는 열 살에 대학교에 입학, 열여섯 살에 법학대학의 교수가 됐다. 많은 이들이 그에게 남다른 교육법을 기대했지만, 칼 비테는 단순히 똑똑한 자녀 양육이 아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온화한 성품과 인성으로 세상의 도움이 되는 자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처럼 성공보다는 사랑을, 경쟁보다는 화합을, 자랑보다 공감의 능력을 심는다면 그러한 아름다운 열매들을 언젠가 맺을 수 있다. 성경 시편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편126:5)라는 교훈을 준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안다면 열정과 성의를 다해 뿌려야 할 것이다. 2020년 한 해, 무엇을 위해 어떤 것들을 심을 것인가. 우리의 선택으로 추수할 종목이 결정될 것이다. 탈모를 걱정하는 남편에게 효능 좋은 발모제 대신 당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사랑의 자신감을 심어줘야겠다.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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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28 17:17

정규분포에 대한 단상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제자리와 제모습을 지니고 있다. 미시적으로 보면 세상에 동일한 것은 하나도 없다. 거시적으로 볼 때 비슷한 점들이 드러난다. 이러한 다른 점과 같은 점을 토대로 우리는 세상의 것들을 분류하고 분석하여 이해하려 노력한다. 우리는 만상이 제자리를 지키고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름과 같음 사이에서 조화를 찾아가는 합리적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이성의 길이다. 활기가 넘치고 조화로운 세상 만물은 정규분포 안에 존재한다. 정규분포야말로 수학이 알려주는 우주의 조화법칙이다. 밤하늘을 바라보면 별들이 저마다의 빛을 발하고 있다. 별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분류될 수 있으며, 예를 들어 크기나 빛의 세기로 분류하면 결국은 종모양의 정규분포를 갖게 된다. 표준편차는 정규분포 중앙에서 양쪽을 적절히 포함하여 우리가 일반 다수라 일컽는 범위를 정하는 인위적 기준일 수 있겠다. 최고로 큰 별과 최고로 작은 별이 존재하고 최고로 빛나는 별과 육안으로 구별되지 않는 별도 있지만 별들의 세계는 조화롭다. 별에서 와서 별을 그리워하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사람들도 미시적으로 다른 점과 거시적 같은 점을 갖고 하루하루를 반짝이며 별처럼 살아간다. 성별도 있으며 각자의 체격도 성품도 자질도 같거나 다르다. 판단의 기준을 정해 따르면 개개인은 정규분포 중의 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결국 종모양의 정규분포 안에서 존재한다. 사회적으로 공공의 안녕을 위해 구성원의 분포특성을 살펴 적정 다수의 행복을 위해 기본 혜택이나 기본 의무를 주고, 표준편차 밖의 범위에 대해서는 정책적 추가 배려나 원칙에 따른 규제를 하게 된다. 그러나 표준편차를 너무 작게 잡으면 공정성이 결여돼특혜시비가 일고 너무 크게 잡으면 차별논란과 함께 문제 해결의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기가 어려워진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양극이 부딪혀 충돌하며 곳곳에서 특혜와 차별의 파열음을 내고 있다. 이성의 길을 벗어나 조화가 깨진 것이다. 성취 과정이나 결과에 대한 평가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 중인 시기에 이뤄지는 교육평가는 초미의 사회적 관심사로 소모적 갈등의 단초가 되고 있다. 교육평가는 줄을 세워 양극단을 차별하고 배제하기 위한 것 아니라 행복한 삶이라는 긍극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이해하고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교육의 좌표는 어디에 있는가. 평가를 위한 규칙의 공정함이 의심받고 있으며 수평적 교육은 하향평준화라는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획일화를 지양하던 교육이 획일화를 지향하게된 모순에 빠져 있다. 학생의 분포 특성을 외면하고 편차의 기준을 지워버린 결과다. 과정 자체가 목표가 되어 정책과 대상을 조율하지 못하고 배려나 규제의 일관성이 훼손되어 생긴 불합리며 부조화다. 다방면에서 학생의 특성에 맞게 이뤄지는 수월성 교육을 인정하는 것이 순리다. 적절한 배려와 규제도 필요하다. 그러나 평등도 행복한 삶의 목표를 향한 과정일 뿐이며 목표 그 자체는 아니다. 생동하는 우주의 별도 지상의 인간도 정규분포를 이루며 존재한다. 극단적으로 동일한 특성을 갖는 존재들을 한데 모아도 살아있는 집단은 다시 정규분포를 재현한다. 시간은 변화를 의미하고 획일화된 어떤 것들도 활기가 남아 있다면 결국 정규분포 상태로 환원된다. 다양성을 잃는다면 원기를 소진한 종말에 다름이 아니며 종말에 이른 것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정규분포는 활기의 증거며 조화를 향한 우주의 보편적 현상이다.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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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21 16:34

2020년,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길을

무언가 새롭게 나갔으면 하고 맞이한 2020년도 1월이 벌써 절반이나 지나간다. 세월의 덧없음을 신년 초부터 거론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마음먹은 일들이 차질 없이 진행되었으면 하는 우려와 바람 때문이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지나온 길을 돌아봐야 한다. 다짐은 반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작년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2% 정도라고 한다. 석유파동과 외환위기가 있었던 해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치다. 그것도 관 주도가 1.5%고 민간은 0.5%라고 하니 세금으로 경기 부양시킨 꼴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성장세는 계속 둔화해 왔고, 또 선진국들과 비교해 그리 나쁜 성적표는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꼭 수치로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실제 자영업자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더 힘들다고 한다. 사람들이 먹고 쓰는 것은 그리 줄인 것 같지는 않는데 실제 체감이 안 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온라인 거래의 비중 확대에 있을 것이다. 한때 책을 안 읽어서 서점이 문을 닫는다 했지만 이제는 책을 많이 읽어도 성업 중인 서점은 찾기 어렵다. 모두 인터넷으로 구매하기 때문이다. 미국 회사인 베타는 이런 점에 착안했다. 이 매장은 물건을 진열은 하지만 팔지는 않는다. 사는 건 아마존 같은 온라인 매장으로 가라고 한다. 소비자들은 여기서 물건을 비교하고 충분히 살펴본 후 구매는 스마트폰 앱으로 하면 된다. 구태여 물건을 팔라고 하면 팔기는 하되 매장 수수료는 없다. 판매 금액을 모두 제조사에 보낸다. 물건을 안 팔면 어떻게 매장이 유지가 될까? 판매 대신 전시 공간을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제조사가 8개 매장에 물건을 전시하는 조건으로 매월 2000달러(219만원)을 내고 있지만 전시하려는 기업이 줄을 섰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베타매장마다 한 달 방문객이 25,000명 정도다. 이러니 백화점마다 서로 공간을 내주며 입점을 유도한다. 베타 덕분에 백화점 경기까지 살아나기 때문이다. 베트남에 에버피아라는 한국 기업이 있다. 에버론이라는 브랜드로 침구를 만드는 회사인데 베트남 시장 점유율 1위이다. 처음에는 베트남의 낮은 인건비로 인공 솜인 패딩을 만드는 그저 그런 회사였다. 겨울 방한복 재료인 패딩을 8월 말쯤 실어 보내고 나면 할 일이 없었다. 이 회사 이재은 회장은 쉬는 장비와 인력을 이용해 이불을 만들기로 했다. 무더운 나라에서 솜이불을 만들어 판다고 하자 모두 미쳤다고 했지만 제품은 날개가 돋친 듯 팔렸고, 대리점들이 늘어났다.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제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은 패딩이 아니라 침구다. 얼마 전까지 회사 모델이던 톱스타 김태희와 최근 계약을 종료했다. 스타에 의존하기보다 SNS나 유튜버를 활용한 마케팅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그래서 벌인 이벤트가 잠 안 자기 대회였다. 인터넷을 통해 참가자 모집했다. 참가자들에게 먼저 운동을 시키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한 후 침구에 누워 누가 오래 버티는지를 겨루는 것이다. 물론 실황을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하노이의 대회가 알려지자 전국에서 대회 요청을 하고 있다. 발상의 전환이 새로운 길을 만든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고, 산업 구조나 경제 시스템도 예전과 다르다. 문명의 이기는 누리면서 자기 삶터와 방식은 안 바꾸려는 태도로는 지탱하기 어렵다. 2020년 새로운 길을 가려면 기존의 길을 되돌아보고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김판용(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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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14 15:42

숫자와 일상생활

김형중 시인前 전북여고 교장 우리들은 실타래처럼 엉킨 다른 사람들과의 이런저런 관계로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적동물이다. 대인관계가 인생행로의 나침반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혈육이나 이웃들에 대한 그리움의 표출도 어색한 세상이 되었다. 현대인들은 자연이나 생활에 편리한 과학문명의 혜택과 주위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얼마나 느끼면서 살고 있을까. 여러 분야에 얽힌 것들 중의 하나가 숫자와의 밀접한 관계가 아닌가 한다. 숫자는 천사오백 년 전에 처음으로 인도에서 발명되어 상인들에 의해 아라비아로 건너갔다가 다시 유럽으로 전해졌기에 인도숫자가 아닌 아라비아숫자라고 불린다. 수많은 숫자들 중에서 좋아하는 숫자와 싫어하는 숫자가 사람마다, 또는 각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나는데, 대체로 3, 7. 8. 9는 좋아하는 숫자에 4. 6, 13 등의 숫자는 싫어하는 숫자에 속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사람들은 대체로 3과 7을 좋아하는데, 특히 3은 심리적인 안정을 주면서 확신과 공정성의 시비를 막는다고 한다. 재판과정의 삼심제나 삼세판,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삼권분립제도를 비롯해 일상에서 회자되는 서당 개 3년, 작심삼일, 세살 버릇, 삼복더위 등 헤아릴 수 없이 생활문화 속에 살아있다. 만약에 1,2,3에서 9까지만 있었고 0이 없었다면 2019년과 219년을 그리고 1원과 10원을 어떻게 표시했을까. 그렇다면 0이라는 숫자가 없었다고 가정한다면 얼마나 불편했을까? 0의 숫자가 최초로 쓰인 것은 870년 경 인도에서부터였다고 한다. 0은 실체가 없었던 무(無)의 개념을 기호화 시켜 놓은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이 0의 발견을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중의 하나라 하여 매우 높이 평가한다고 한다. 사용하는 숫자들 중에서 0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고 비어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인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숫자가 크게 발달하지 못했던 이유는 대중적이지 못하고, 승려나 왕족들만 수학을 연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인도는 14억의 인구 숫자만큼이나 수학이 발달해서 인터넷이나 과학이 앞서가는 나라가 되었다 21세기의 사람들은 지난날들과 비교해 볼 때 모든 것들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너무 많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너무나 많은 비참함과 억울함과 슬픔과 비극을 낳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궁핍했던 지난 60년대 이전의 시대와 너무 많아서 넘쳐나는 시대적 차이는 그것들이 갖고 있는 존귀한 가치를 모두 상실해버린다. 아무 것도 없다는 제로를 나타내는 0과 반대로 너무나 많아 주체를 못하는 정보나 물질과의 비교가 시간을 멈추게 한다. 현대인들이 물질문명의 혜택을 멀리하고 1차 산업시대로 돌아간다면 그 불편함을 이겨낼 수 없듯이 젊은 사람들에게서 희망이나 지향하는 목표가 없다면 삶의 가치는 무미건조할 것이다. 제로상태이거나 없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절망이나, 의욕을 잃고 사는 것보다는 다가오는 것들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은 우리들의 인생을 좌우하는 갈래 길이 될 것이다. 사람들의 욕심과 능력은 저마다 성향에 따라 다르다. 머릿속에 그려진 숫자의 욕심을 절제하고 능력을 적재적소에 발휘한다면 환상적인 조합이 될 것이며, 덧붙여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시너지 효과와 더불어 삶의 질은 더욱 아름답게 격상될 것이다. /전 전북여고 교장 김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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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07 19:12

군산항과 새만금 신항

박정인 군산지방해양수산청장 내년도 예산안이 지난 10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와 함께 총사업비 2,200억원 규모의 새만금 신항 2선석 개발 예산도 확정되어 앞으로 5년 후면 신항을 본격적으로 가동할 수 있게 되었다. 도민의 염원이 이뤄낸 성과다. 새만금 신항이 계획대로 모두 완공되면 군산항의 하역능력에 버금가는 항만을 우리 지역이 또 하나 보유하게 되는 셈이다. 규모면에서 전국 7대 항만으로 도약하고, 5만톤급 대형 선박이 상시 입출항할 수 있는 서해권의 중추적인 교역 거점항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냉정히 짚어봐야 할 게 하나 있다. 바로 군산항과의 관계 정립 문제다. 그동안 지역 항만업계에서는 새만금 신항이 새로운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기존의 군산항 화물을 흡입하는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틀린 말은 아니다. 현재 새만금 산단 조성 공정률은 전체 면적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데다 분양실적 마저 더디다. 물론 신항 부두를 당초 민자에서 국가 재정사업으로 전환하여 조기 개발에 들어간 것은 새만금 지역에 대한 기업 유치를 촉진하고 내부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 당장의 물동량 처리 보다는 미래 성장 가능성에 무게를 두겠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신항이 본격 가동되는 시점이 되면 새만금 내부에서 발생하는 물량에 따라 양 항만 간 기능 조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냉정히 말해 군산항은 항만 여건만 놓고 보면 타 항만에 비해 그렇게 경쟁력이 높은 편이 아니다. 2018년 기준으로 한 해 준설 장소만 18개소로 전국 38개소의 절반에 이르는 데다, 준설비만도 181억원이 투입되어 전국 항만 준설예산의 42.5%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취약하다. 그렇다고 군산항을 포기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결코 포기할 수도 없고 또 그럴 상황도 아니다. 현재 군산항 물동량의 80% 이상이 군산항 배후와 익산, 서천 등 인근 지역에 소재한 기업의 화물이다. 새만금항을 이용하는 것보다 육상 물류 측면에서 유리하다. 항만배후에 전기차 등 기업 유치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게다가 군산항에는 부두와 싸이로 등 화물보관시설, 하역시설 등을 갖추는데 수 천억원의 민간 자본이 투자되었다. 군산항이 위축되면 이들 항만시설에 대한 투자비 회수는 막막해진다. 결국 원하든 원치않든 양 항만 간 물류 이동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동반자 역할을 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잘 유도해 줘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여건이 좀 다르긴 하지만 부산 북항?남항?감천항?다대포항과 경남 진해의 부산신항을 아우르는 부산항과 타 항만의 통합 운영 사례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면밀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경우 항만정책 방향을 세계 최대, 거대화로 잡고 올해부터 전국을 크게 5개로 나누어 항만 간 통합을 본격화하고 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물동량을 모조리 중국으로 끌어 가겠다는 심산이다. 산둥성의 경우 칭다오항을 중심으로 옌타이ㆍ웨이하이ㆍ웨이팡 등 7개 항이 산둥항으로 통합되었다. 군산항과 새만금 신항도 각각의 항만기능을 뛰어넘어 화물과 부가가치를 스스로 창출해내는 통합 항만으로 성장해 나가야한다. 양적 성장도 좋지만 그동안 소홀했던 내실 다지기도 필요하다. 군산항은 강점 분야 최고의 특화항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항만서비스를 개선하고 항만 연관산업 육성과 전문인력 양성에 좀더 신경을 써야 한다. 사업 역량을 키워야 신항 진출도 가능하다. 새만금 신항은 신항대로 시설을 투자해 놓으면 선사와 화주, 기업이 올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배후의 신속한 개발과 기업 유치도 절실하다. /박정인 군산지방해양수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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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17 17:05

순례길에 남겨진 기억들

한병성 전북대 명예교수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카미노데산티아고(스페인어: Camino de Santiago)로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를 목표로 다양한 길을 따라 걷는 것을 말한다. 주로 프랑스 각지에서 피레네 산맥을 통해 스페인 북부를 통과하는 길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 러시아, 핀란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유럽 각지로 부터 산티아고로 가는 길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프랑스 길은 프랑스 남부국경 생장피에드 (Saint-Jean-Pied-de-Port)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이르는 800km 여정이다. 프랑스인들이, 프랑스에서부터 오는 길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하루에 20여 km 씩 걷는다면 한 달 이상을 걸어야 한다. 연금술사 파올로 코엘료가 이 길을 걸어 더욱 유명해졌다. 2010년 한해만도 27만 명이 방문했다. 최종 목적지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중세시대에 기독교 순례자들의 중요한 순례길 중에 하나였다. 기독교 교리상 죄에 대한 보속으로 주어지는 대사 중에 산티아고 순례도 있었다 언제부터서 인가, 나이를 더해가면서 삶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그 정리 장소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생각하게 되었고, 이렇다 할 준비도 없이 어느 날 그냥 배낭을 메고 떠났다. 800km의 여정은 무리라는 가족들의 만류를 뒤로하고 떠난 길이기에 걱정 반 설레임 반이었다. 순례길에선 모두들 걷고 있었다. 프랑스인도, 헝가리 사람도, 호주, 미국, 이태리, 영국 또 우리 한국인들도 걸었다. 혼자서 또는 친구들과 함께, 가족들과 어우러져서 아님 순례길에서 처음 만나 우정을 나눈 낯선 친구와 걸었다. 나이 어린 청소년도, 젊은이도, 나이 지긋한 중년도, 머리 하얀 할머니 할아버지도 걸었다. 그런데 이들 모두에게는 이런 힘든 여정을 결심해야만 했던 서로 다른 사연과 스스로의 의지로 만들어진 각자 생각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 짐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묵묵히 짓 눌러오는 중력을 거부하지 않고 두 발로 버티어 내고 있었다. 누군가는 발가락이 부룹터서, 또 누군가는 근육통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전달되어 오는 통증을 인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모습 속에 한 가지 공통점 있었다. 스쳐 지나며 서로에게 전하는 부엔 까미노 (buen camino) 좋은 길 하는 인사다. 아니 어쩌면 힘내자고 포기하지 말자고 고통과 아픔을 향해 스스로를 응원하고 있었다. 길 안내 표지판 위에, 벽면에, 다리 난간에, 아스팔트 위에, 누군가 그들만의 언어로 아픔을, 사랑을, 희망을, 표현하고 있었다.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사랑이 얼마나 아팠을까, 껴안고 함께 울어 주고 싶었다. 출발선상에서 함께했던 지팡이가, 신발이, 양말이 버려져 있었다. 소원을 닮은 조약돌이, 몸에 지녔던 십자가가 놓여 있었다. 산다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삶의 매 순간 순간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곁에 두었던 손때 뭍은 것들을 하나 둘 버리는 연습이 아닐까. 아니 어쩜 익숙한 것으로 부터의 이별을 연습하고 있는 것 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날, 순례완주증명서를 받기위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은 환했다. 기쁨, 희망, 그리고 감사가 표현되고 있었다. 짊어지고 아파했던 생각의 무게들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옮기며 하나씩 하나씩 길가에 버렸나 보다. 등이 한결 가벼워 보인다. /한병성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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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10 20:05

세상 흐름과 N세대

구사회 선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나는 한국 고전문학 전공자로 대학에서 고전시가나 고전문학사와 같은 과목을 강의한다. 요즘에는 고전문학이라도 옛날처럼 칠판에 써가며 강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르치는 나도 배우는 학생도 파워포인트를 화면에 띄워놓고 발표하고 그것을 토론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발표 준비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가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실, 내가 가르치는 과목 내용은 내 낡은 자료집보다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잘 정리되어 있다. 게다가 구닥다리 교수인 나는 신세대 젊은이들의 컴퓨터 다루는 기술이나 인터넷 활용 능력을 따라갈 수가 없다. 흔히 요즘 젊은이들을 N세대라고 말한다. N은 Net을 말하고, 그것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들 N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을 무기로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당연히 여긴다. 이들이 기성세대와 다른 것은 기존의 텍스트보다 사진과 영상을 선호하여 그것을 통해 정보를 주로 습득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변화와 흐름을 즐기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반면에 우리 기성세대는 스스로 변화에 잘 적응한다고 자위하기도 하지만, 요즘처럼 흐름이 빨라진 현실에서 대처 능력이나 적응력이 뒤떨어진다. 우리 기성세대들은 변화와 흐름보다는 전통과 안정을 선호한다. 그러다가 자칫 광화문 앞의 태극기 부대처럼 고집불통의 노인네로 전락하고 만다. 대중문화의 향유에도 차이가 있다. 우리 기성세대는 그래도 하나 정도의 신문을 구독하여 읽고 저녁시간에는 정규 방송을 선호한다. 그런데 N세대는 그것보다는 팟캐스트나 유튜브를 선호하며 그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이들은 장래 희망으로 대학교수보다 유튜버를 선호한다. 몇 년 전에 젊은이들이 그렇게 선호했던 파워블로거도 지나간 직업이다. 이제 젊은이들은 유튜버가 되지, 파워블로거가 되겠다고 하지 않는다. 그만큼 세상 흐름도 빨라지고 젊은 세대의 직업 취향도 달라지고 있다. 몇 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가 힘들다. 참고로 이것은 예전의 우리 기성세대가 지망했던 안정된 직업관과 많은 차이가 있다. 요즘에는 과학기술만큼 문화 패턴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컴퓨터 분야는 전문가들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제반 흐름이 빠르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변화가 느리다는 국문학 분야도 오늘날에는 연구 영역이나 방법이 빠르게 확장되며 변모하고 있다. 요즘 젊은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예술 영역도 너무 새로워서 우리 기성세대는 따라가지 못한다. 심지어 최근 나오는 예술 영역은 아직 명칭이 마련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들이 만들어낸 예술은 한 장르에 연극도 있고 미디어도 들어가고 영화와 음악도 들어간다. 미술과 연극이 섞여 있기도 하다. 이처럼 N세대들이 향유하고 꿈꾸는 예술 세계도 기성세대가 지향하는 세계와 많이 다르다. 어차피 미래는 이들 젊은이들의 세상이다. 이들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고 주도할 날도 멀지 않았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며 바뀌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들 젊은이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지향하는지도 모르고, 정치인을 비롯한 우리 기성세대들은 헛발질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N세대는 우리 사회가 정의롭고 공정하기를 바라는데, 기성세대는 그것에 대한 감성지수가 낮다. 이들 젊은이들은 새로운 세상을 원하는데, 기성세대는 아직 반세기 이전의 냉전 이데올로기에 갇혀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구사회 선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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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03 19:50

개혁이 우선이다

임성진 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전주대 교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 내년 4월 15일이니, 총선이 불과 넉 달 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이렇게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아직 선거제도는 물론 선거구조차 획정되지 않아 출마 예정자와 유권자가 겪는 혼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촛불혁명이 요구한 정치개혁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대한민국 국회가 낳은 정치적 현실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지금도 식지 않았다. 현 정부 들어 민심의 창구로 발전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 글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정치개혁 분야이다. 최근 한 시민단체의 설문조사에서도 앞으로 집중해야 할 과제에 정치개혁이 압도적 1순위로 꼽혔다. 지난 주말에는 전국 57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정치개혁공동행동이 선거제 개혁을 위한 불꽃집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시국토론회와 기자회견이 연이어 열리고 있다. 이 모두 다음 총선의 최대 화두가 정치개혁이 될 것임을 보이는 움직임이다. 최근 조국 정국을 거치며 정치권도 이러한 심상치 않은 민심을 읽은 듯 총선대비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예고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철희, 표창원 의원을 시작으로 강기정 수석과 임종석 전 비서실장까지 불출마 선언이 이어지며 대규모 물갈이가 사실상 시작된 분위기이다. 3선 의원이 당 해체와 총사퇴까지 주장하며 불출마를 선언한 한국당도 생존을 위한 대폭적인 물갈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벌써부터 이번 총선에서의 현역 물갈이 폭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지대하다. 그런데 이러한 물갈이 열풍이 그다지 새롭지가 않다. 지금까지 총선 때마다, 특히 지지율이 급락한 정당을 중심으로 중진 공천 탈락의 깜짝 쇼가 매번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국회의원 초선 비율이 17대 62.5%, 18대 44.5%, 19대 49.3%, 20대 44%로 OECD에서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심지어 민주정부 출범 이후 정치개혁에 가장 인색한 평가를 받았던 19대 국회 때도 의원의 절반가량이 물갈이됐었다. 대의민주주의 선거는 국민의 의사를 잘 대변해줄 사람을 뽑는 절차이기 때문에 인물에 대한 쇄신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특히 지금처럼 혁신이 절실한 시기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물갈이는 정치개혁을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정치개혁의 마무리가 될 수는 없다. 즉,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변화의 내용과 방향을 규정하는 게 우선이고, 인적 쇄신은 그 내용을 이행하는 과정일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정치개혁 환경을 갖추는 데 필요한 선거법 개정조차 오리무중인 가운데 물갈이에만 관심이 집중된 지금의 분위기가 달갑지만은 않다. 특히 이번 개정안은, 비록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부분적 도입을 담고 있어 정치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기에 더 그러하다. 더욱이 지금은 새로운 시민민주주의의 등장에 걸맞은 정당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제도적 개혁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오늘 국회 본회의에 선거법 패스트트랙 개정안이 마침내 부의된다. 이제 표결까지 남은 얼마의 기간이 20대 국회의 개혁 의지를 확인할 마지막 기회이다. 국회가 지금이라도 자신의 총예산 동결과 의원의 특권 포기, 그리고 의원소환제와 같은 정치개혁 프로그램을 스스로 먼저 제시하기를 다시 한 번 기대해 본다. 그래야 비로소 의원정수 확대와 같이 막힌 문제도 풀릴 길이 열릴 수 있다. /임성진 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전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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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26 17:37

항만 사람들

박정인 군산지방해양수산청장 지역 경제 한파에 항만 업계도 울상이다. 물동량이 줄어들면 당연히 항만 연관산업과 종사자들의 생계도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군산항에 상시적으로 출입이 허용된 사람이 6천여명, 차량이 3천대 정도 된다고 하니 어림잡아 2만 5천여 가족이 군산항과 직간접적인 연을 맺고 살아간다. 항만은 단순히 선박이 접안하여 하역 작업만 하는 곳이 아니다. 화물과 여객의 수송?통관?환적 활동 뿐만 아니라 배후에서 화물의 집하?조립?재분류 등 부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다양한 업종과 종사자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돌아가는 종합물류 공간이다. 항만 산업으로 넓게는 해상운송업, 물류서비스업 등 헤아릴 수 없지만, 선박 청소, 급수업 등을 하는 항만용역업, 선용품공급업, 급유업, 선박 및 컨테이너수리업, 장비임대업, 창고업 등 자생적으로 성장한 항만의 뿌리산업들이 많다. 이 중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몇 개 업종을 소개해 볼까 한다. 먼저 해운대리점이다. 말이 대리점이지 하는 일의 범위가 상당히 넓고 다양하다. 선박 입출항, 수출입 화물의 통관, 검역, 출입국 관련 수속, 선석도선사예선 확보 외에도 선박 일정관리, 선원 외출 등 본선 요구사항을 처리한다. 군산항에는 18개사가 있는데 보통 줄잡이 등 항만용역업과 선용품 공급업도 함께 수행한다. 선박 입출항의 처음과 끝에는 줄잡이와 예선, 그리고 도선사가 있다. 줄잡이는 본선에서 던져주는 줄을 부두의 곡주에 걸어 주는 역할을 하는데 쉬어 보이지만 여간 위험하고 힘든 작업이 아니다. 수만 톤에 이르는 선박이 안전하게 계류하기 위해서는 10cm이상 되는 두꺼운 줄을 배의 앞뒤로 몇 개씩 잡아줘야 한다. 예선은 선박의 앞, 뒤 또는 옆에서 밀거나 당겨서 부두에 안전하게 이접안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보통 화물선은 전후진만 가능하기 때문에 자력으로 접안하기 힘들다. 대형선의 경우 여러 척의 예선이 동원된다. 예선은 덩치가 작지만 강력한 추진력에 360도 방향조정이 가능하다. 도선사는 항계 내 일정구간에서 선박을 안전한 수로로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한다. 선박이 입출항할 때는 비행기 이착륙 만큼이나 어렵다. 특히 조석 간만의 차가 크고 수심이 깊지 않은 군산항의 경우 더욱 그렇다. 선박이 접안하고 나면 하역사가 나선다. 하역업은 화물의 양적하 외에도 보관, 운송 등 항만의 중추 기능을 수행한다. 이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하역원이다. 이들은 군산항의 120년 역사를 함께 해왔다. 특정 업체에 고용되어 있지 않고 하역사의 요청에 따라 노무를 제공하는 노조 형태로 운영된다. 따라서 항만 물동량이 이들의 수입과 직결될 수 밖에 없다. 이 밖에도 생산자와 항만, 수요자를 연결하여 화물의 인수부터 인도까지 일체의 물류업무를 취급하는 국제물류주선업(포워더)이 있고, 화물의 수량과 용적, 중량을 계산하고 인도 인수를 증명하는 검수사와 검량사, 화물 및 선박 상태를 평가 하는 감정사, 컨테이너 등 화물을 선박에 고박하고 해체 작업을 하는 화물고정업(라싱), 본선과 육상 간에 택시 역할을 하는 통선업 등이 있다. 이들 모두가 항만을 움직이는 숨은 주역들이다. 항만의 부가가치는 대부분 이들을 통해서 창출된다. 따라서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항만 활성화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군산해양수산청에서는 이달 초 서해안 최대 고부가가치 항만 구축을 목표로 군산항 활성화 종합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군산항이 정말 선박과 화물로 넘쳐나 이들이 활짝 웃는 날이 하루 속히 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정인 군산지방해양수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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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19 17:44

공유경제

한병성 전북대 명예교수 지난 여름, 오랜만에 휴가를 가족들과 파리에서 보냈다.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파리는 역시 세계적인 관광도시임이 분명하다. 한 나라의 수도인 데다,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진 역사가 깊은 도시라 관광객도 많아 교통이 매우 복잡하다. 파리는 약 500년 전 프랑수아 1세(1515~1562) 때부터 지금과 같은 근대도시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도시로, 중세 때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려다 보니 도로가 좁고 일방통행이 많다. 그래서 한번 교통정체가 발생하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기본요금도 우리보다 비싼 데다 교통체증에 의한 할증까지 높아 택시타기가 두렵다. 거기다 택시 잡는 일도 녹록하지 않은 것이 파리의 상황이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들이 합류할 때까지만 해도 택시이용이 불편해도 당연하게 생각하며 받아들였다. 이런 상황을 접한 아들이 우버택시(공유택시)를 이용하자고 제의했다. 말로만 들었던 것이고 사용방법도 몰라 망설이자, 아들이 휴대폰에 이용 앱을 설치해 주고 사용방법도 가르쳐 주어서 그 후로는 우버택시를 이용했다. 우버택시는 참 편리하다. 우선 승객이 있는 곳까지 차가 와주고 가능한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 요금은 출발과 동시에 승객의 은행계좌에서 자동으로 지불되므로 직접 거래할 필요가 없고 또 요금이 출발 전에 정해지므로 도로상황에 따른 추가요금도 발생하지 않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택시보다 저렴하다. 이번 여행에서는 교통편뿐만 아니라 숙소도 호텔 대신 공유경제의 한 종류인 Airbnb(에어 비앤비)를 이용했다. 이 시스템은 일반인이 소유하고 있는 여분의 건물이나 방을 필요한 사람에게 대여해 주는 것으로, 이 또한 인터넷으로 예약과 결제가 이루어지며 호텔보다 값도 저렴하다. 이러한 공유경제 또는 플랫폼경제 활동이 아직은 우리에게 낯설지만, 선진국 또는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매우 보편화되고 있다. 아마 향후 이러한 공유경제 서비스가 경제활동에 큰 축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유경제란? 재화나 공간, 경험과 재능을 다수의 개인이 협업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나눠 쓰는 온라인 기반 개방형 비즈니스 모델을 일컫는다. 독점과 경쟁이 아니라 공유와 협동의 알고리즘이라 할 수 있겠다. 공유경제라는 이름은 2008년 미국 하버드대학 로렌스 레식 교수가 붙였지만,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주목받은 개념이다. 공유경제를 널리 알린 것은 미국의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Uber)와 숙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Airbnb)다(백과사전 인용). 또 다른 어학사전에서는 재화를 여럿이 공유하여 사용하는 공유 소비를 기본으로 하여 자원 활용을 극대화하는 경제 활동 방식.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특징인 20세기 자본주의 경제에 반하여 생겨났다고 풀이하고 있다. 최근 들어 우리주변에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는 카풀제도(승용차 함께 타기)도 공유경제의 한 형태다. 편리함과 저렴함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공유경제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향후 함께 고민해야 할 몇 가지 단점들이 있다. 우선 공급자와 소비자를 연결시켜 주는 중간자인 플랫폼의 독점을 통해 부의 편중이 발생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남는 자원을 공유한다고 하나 자원낭비를 초래할 수도 있고, 세금회피나 정부규제를 피할 수도 있다. 또 최근 우리나라에서 크게 이슈가 되었던 카카오택시처럼, 노동시장이 모호해지고 노동자 등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비록, 이런 부작용들이 예상된다 할지라도 공유경제를 향한 시장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도도하게 흐르고 있어, 우리도 하루 빨리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한병성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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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12 20:37

어머니의 삶과 기억, 그리고 일상의 구술사

구사회 선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고향 집에 가면 어머니 곁에서 잠을 잤다. 내가 어머니 곁에 가서 자는 게 아니고 어머니가 내 곁에 와서 주무셨다고 하는 표현이 정확하리라. 그건 내가 나이가 들어서 모처럼 아들이 오면 아들보다는 내가 아들과 함께 자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잠을 자려는 내 곁에서 불을 끄고 자라고 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동네의 이런저런 일들을 구술하셨다. 그건 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관계없이 한없이 이어졌다. 누구네 머슴이 섣달 그믐날에 도박하다가 일 년 새경을 모두 잃었다는 이야기, 누구네 부인이 바람나서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야반도주했다는 이야기, 누구네 집 아들이 서울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 등, 끝없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내가 잠이 들어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고 아쉬워하며 당신도 등을 돌려 주무시곤 하였다. 그리고 다음에 가면 이전의 이야기가 다시 반복되었다. 나는 들었던 이야기를 몇 번이고 다시 들어야 했다. 전주최씨이신 어머니는 김제군 공덕면 마현리가 고향이다.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인데, 외할머니의 성씨가 동래정씨이고 그곳에는 정여립 후손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란다. 선조 때 기축옥사로 정여립 직계가 몰살되었고, 그 방계는 김제군 공덕면 일대로 격리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전주최씨인 나의 외할아버지가 정여립 후손이며 동래정씨이신 나의 외할머니와 혼인하여 처가 동네로 이주한 셈이다. 내가 들었던 어머니 구술 중에는 어머니의 자부심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어머니가 일제강점기에 초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여 송아지를 받았다는 이야기, 나중에 영광스럽게 간호부로 가려고 하였는데 외할머니 반대로 가지 못했다는 아쉬운 이야기도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간호부 이야기를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근래에 이영훈 교수의 일제강점기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이었다는 주장으로 우리 사회가 시끄러워졌다. 문득 나는 느낀 바가 있어 어머니에게 넌지시 간호부 이야기를 여쭤보았다. 어머니 말씀은 처음에 동네 이장이 아침마다 찾아와서 간호부로 취직하면 외국에 가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설득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파출소 순사까지 찾아와서 약간은 으름장을 놓기도 하였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숨이 콱 막혔고 어머니께 속내를 드러낼 수 없었다. 혹시 어머니께서 평생을 간직해오신 추억과 자부심이 깨질까 두려웠다. 요즘에는 어머니의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해본다. 어머니는 이제 구순을 바라보는 노인네로 머잖아 총명도 잃으실 것이다. 어머니는 일제강점기와 대동아전쟁, 해방 정국과 남북 분단, 그리고 한국 전쟁, 이승만 정권과 419혁명, 516 군사쿠데타와 유신 독재, 5공 독재정권을 거쳐 민주화 시대인 오늘에 이르렀다. 한 마디로 어머니는 한국의 역사적 격변기를 모두 거치며 살아온 셈이다. 나의 전공은 구술사와 관련이 없다. 하지만 그것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대단한 거대담론이 아니더라도, 어머니께서 겪었던 집안의 소소한 일상사부터 주변의 보고들은 모든 이야기가 우리 가족사의 추억이 되고 기록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나중에 하나의 훌륭한 생활사 자료도 될 것이다. 나를 비롯한 우리 일반인들도 더 늦기 전에 가족과 주변의 일상을 글로 써보고 사진으로 찍어두거나 음성 기록으로 남겨보기를 새삼 권해본다. /구사회 선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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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05 20:03

새로운 민주주의와 시민, 그리고 시민사회

임성진 전주대학교 교수 지금의 조국 정국은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는 시민의 힘을,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사회의 외적인 위기와 내적인 진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광화문 광장에 모인 태극기와 성조기 부대가 87년 시민들이 외쳤던 민주화 구호를 반복하는 기막힌 현실은 시민사회의 자기성찰과 새로운 변화의 노력이 시급함을 깨닫게 한다. 현재와 같은 혼란은 본질적으로 시대적 환경과 시민의식이 급격히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정치사회체제가 낳은 구조적인 문제이다. 게다가 그동안 한국사회의 변화를 주도해온 시민사회운동마저 대안으로서의 중심동력을 잃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이유 중 하나이다. 시대적 변화를 이해하려면 민주주의의 내용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먼저 보아야 한다. 학자들은 현재의 민주주의가 절차적 민주성을 확보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던 선거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넘어 시민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로 발전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기존의 자유민주주의적 절차로는 자원 배분의 불공정과 불평등 문제를 예방하거나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수집단의 이해가 대표되고 합의주의가 존중되며 높은 수준의 정책적 반응성이 가능한 새로운 민주주의 양식이 등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변화는 민주화 이후 성장해온 시민의 자유주의 정향이 새로운 스마트 ICT기술을 매개로 서로 연결되고 공유되고 있는 상황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스마트 민주주의의 발달로 심의, 비판 능력을 갖춘 시민들은 자유롭고 신속한 소통을 통해 더는 권력에 제한되지 않고 스스로 변화를 추진해나갈 동기와 힘을 얻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일반시민들의 선호와 필요가 효과적이고 신속하게 합의에 반영되는 시민민주주의가 더욱 발달하기 때문이다. 시민민주주의에서는 특정한 공동체의 성원을 넘어선 개별적인 개인들이 무정형으로 네트워크화되어 시민사회의 주인으로 새롭게 등장했다. 이들은 선거나 정당을 통한 기존의 간접참여를 넘어 직접적으로 정치 과정에 개입하는 주체적이고 참여적인 시민공중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이제는 생산, 사용 및 소비에 있어 스스로 콘텐츠를 창조하는 프로슈머(prosumer)나 프로듀시지(produsage)의 등장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이 새로운 시민공중은 과거와 달리 보수세력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계급적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진보세력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개개인이 집단지성의 협력을 통해 강한 주도권을 행사하는 주체로서 진보와 보수의 주어진 틀 속에서 사회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재단하는 것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의 관심사는 오히려 양극화 해소, 참여, 자치, 생태와 같은 사회경제 생활이슈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상황은 사실상 혼란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민주주의와 정부, 그리고 더 강한 사회적 책임감과 공정성을 갖춘 시장체제를 만들어가는 진통의 과정이다. 그래서 고통스럽더라도 과감한 변화와 혁신이 그만큼 더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정치권과 엘리트층이 시대정신을 담아내지 못한 채 개혁에 더디고 불신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는 지금 같은 때일수록 권력을 감시, 비판, 견제하며 대안을 찾는 시민사회 본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민주주의와 시민공중의 등장에 발맞춘 시민사회의 진화와 미래를 향한 방향성 제시가 절실한 시기이다. /임성진 전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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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29 17:59

지역경제를 살릴 히든카드, 해양 신산업

박정인 군산지방해양수산청장 전북 지역내 총생산(GRDP)과 어음 부도율, 세수율이 전국 최하위권이라고 한다. 올 상반기 청년 고용률도 32.8%로 전국 평균 43.1%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중공업 사태 등의 여파도 있겠지만 1차 산업의 비중이 큰 데다 지역 경기를 주도할 만한 핵심 산업이 없는 구조적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돌파구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때 세계 휴대폰 시장의 절대강자였던 노키아의 몰락으로 수년간 극심한 불황에 시달려온 핀란드는 게임과 헬스케어 등 신산업 육성으로 매년 4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생길 만큼 예전의 활력을 되찾았다. 주력 석유산업이 위축되자 해양플랜트 등 신사업 구조로 재편한 미국의 휴스턴도 마찬가지다. 전북 지역의 산업 구조도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눈길을 해양으로 돌려보자. 해양 신산업의 글로벌 시장규모는 2017년 1,638억달러에서 2030년 5,000억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양 에너지, 해양 바이오, 치유 산업 등 발전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척박한 지역 경제를 떠받칠 신산업과 스타트업 등 미래 성장동력이 여기에 있다. 다른 지자체에서는 해양이 가진 무한한 잠재가치를 진작부터 주목하고 해양 신산업의 주도권 확보에 경쟁적으로 뛰어 들었다. 충남의 경우 지난 10일 대통령이 참석한 보고회에서 충남 해양신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하고 해양 치유산업, 해양 바이오 클러스터 조성 사업 등에 사활을 걸었고, 전남은 국가 공모 사업인 200억원대 해양치유 블루존 조성 사업을, 경북은 해양바이오산업 연구원을 통해 45건의 특허 출원과 핵심 기술 이전으로 해양 스타트업 지원에 발벗고 나서는 등 해양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한 움직임이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전북지역은 어떠한가? 해양신산업 분야 창업기업 육성을 위한 인큐베이팅 사업은 전국 대비 1.2%로 최하위다. 바다를 접한 웬만한 광역 자치단체라면 하나씩 있는 해양수산 창업투자 지원센터나 변변한 해양 전문 연구기관 하나 없다. 해양산업의 중소벤처기업 투자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 수준인지 짐작할 수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는 지난 10일 발표한 해양수산 신산업 혁신 전략에서 현재 3조원 수준의 해양 신산업 시장을 2030년까지 11조원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매출 1000억 원이 넘는 해양 스타트업, 오션스타 기업도 20개 이상을 발굴하여 지원하겠다고 한다. 해양산업 유망 중소벤처기업에 중점 투자하는 해양 정책펀드도 올해 처음으로 출시되었다. 앞으로 5년간 총 1500억원 이상을 조성하여 해양신산업에 투자할 예정이다. 우리 지역도 이제 나서야 한다. 해양자원은 다른 어느 시도 못지않게 풍부하다. 577㎞에 이르는 해안선, 여의도의 24배에 달하는 고창부안 갯벌과 천혜의 해양관광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 새만금의 농생명 단지 개발계획 등과 연계성도 용이하다. 지역적 강점을 살려 해양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해 나간다면 지역경제의 한 축으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 그러려면 해양신산업 각 분야의 성장 가능성을 분석해서 유망 사업에 대한 집중적인 육성 전략을 마련하고, 기술 개발부터 사업화 단계까지 지원할 수 있는 R&D 기반과 스타트업 육성 플랫폼 구축 등 창업투자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준비없이 기다리는 미래는 희망이 없다. 젊은 기업들이 바다와 더불어 원대한 꿈을 펼칠 수 있는 해양신산업의 무대가 하루 빨리 조성되길 고대해 본다. /박정인 군산지방해양수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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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22 17:42

지역불균형과 소외를 막는 선거구획정이 되려면

임성진 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전주대학교 교수 지역의 인구소멸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인구 20만 이하의 비수도권 중소도시 99곳 가운데 주민수가 정점 연도 대비 감소하지 않은 곳은 겨우 5곳에 불과하고, 인구감소율이 70%가 넘는 군 지역만 해도 25곳에 달한다. 또 작년 한국고용정보원의 보고서도 이들 중소도시의 81%에 해당하는 80곳이 이미 인구소멸 위험지역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농어촌지역이 많은 전북은 다른 지역보다 인구감소 문제가 특히 더 심각해 미래에 대한 걱정이 훨씬 크다. 2000년대 들어 이미 200만 명 선이 무너진 도내 인구는 언제 180만 아래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있고, 이렇게 가다간 현 14개 시군 중 임실, 무주, 장수, 진안 등의 순으로 10곳의 지역이 향후 30년 이내에 소멸할 위기이다. 여기에다 최근 수년 간 2029세의 젊은 층 감소폭이 전국에서 최고일 만큼 청년인구유출 또한 심각하다. 청년층 인구의 감소는 도내 고령인구비율의 급속한 상승과 맞물려 지역경제의 생산인구 감소와 생산력 저하, 재정부담 가중, 고용감소 등을 유발한다. 그리고 이것은 지역의 기본 정주여건과 기반시설의 약화로 이어지고 다시금 지역인구 유출의 가속화라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지역인구 감소와 경제적 낙후는 정치적으로도 지역의 대표성과 영향력이 약화되는 원인이 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인구수를 기준으로 한 선거구 개편과 이로 인한 지역 국회의원 수의 감소이다. 전북의 경우 헌재의 선거구 인구편차 축소 결정으로 15대 총선 때 14곳이었던 지역구가 이미 10곳으로 감소했다. 전체 국회의원 지역구에서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48.2%에 이르는 것과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상황이다. 제21대 총선을 불과 6개월 남겨놓고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강원도를 시작으로 지역의견을 청취하기 시작했다. 선거법 개정 여부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어떠한 결론이 나든 간에 정책 실패로 야기된 현재의 지역 간 불균형과 심각한 지역소외 문제는 선거구획정에 있어 정치권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국회에 상정된 개정안이 진정한 의미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될 수 있도록 국회의원 정수를 지금이라도 30~60석 정도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만 표의 등가성과 비례성 확대라는 원래의 취지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의원정수 확대에 대해서는 부정적 여론이 강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다수의 시민이 선거제도를 비례성 높은 연동형 제도로 개편하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이것은 만일 국회의 총예산 동결, 국회의원 특권 포기, 의원소환제 도입 등과 같은 진정성 있는 정치개혁이 함께 추진될 경우 의석수 확대도 수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조사결과이다. 현재 논의 중인 새 선거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일 현 선거법대로 총선이 치러질 경우, 전북과 같이 소외된 지역은 지역 대표성이 더 약화되지 않도록 현재의 지역구 10곳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마땅하다. 다행히 공직선거법 25조가 규정하는 선거일 15개월 전 인구 기준을 적용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전북은 지역구 축소 대상에 원칙적으로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또한 지역대표성을 유지, 확대하기 위한 정치적 관심과 적극적인 노력이 뒷받침됐을 때 확실해진다는 사실을 도민 모두가 인식해야만 한다. /임성진 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전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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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15 17:12

전북 전통의 혁신 사상과 호남 정신

구사회 선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전북의 역사를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과 일정한 흐름이 있었다. 전북지방은 지리적으로 한반도 서남부에 위치한다. 그리고 비옥한 호남평야를 중심으로 남북이 열려 있고 동쪽과 서쪽은 산과 바다로 이어진다. 성품이 온화하고 너그러운 편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개방성과 함께 전통을 중시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20세기를 전후로 격변기의 전북지역을 살펴보자. 전통적인 성리학을 견지하려는 간재학파가 있는가 하면, 반봉건의 기치를 부르짖던 동학 세력이 공존하였다. 전북지방의 매력을 꼽으라면 필자는 사상의 다양성을 꼽겠다. 예전에는 그와 같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쩌다가 고향을 떠나 타향에 살다 보니까 이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고향인 전북의 좋은 모습이 보인다. 현재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곳은 잘살든 못살든, 지식이 많든 적든, 대체로 수세적이고 보수적이다. 반면에 나의 고향인 전북은 개방성과 보수성이 적당하게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참에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전북이 보여준 근대 이전의 혁신 사상이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 변혁의 모태이자 미래 전북의 힘이 된다고 하겠다. 역사적으로 전북의 혁신 운동은 정치와 사상이 결합하는 특징이 있다. 그 중심에 모악산과 금산사가 있다. 8세기에는 김제 만경 출신의 진표율사가 민중을 교화했던 실천적 종교 운동이 있었다. 진표율사는 모악산 아래 금산사에서 고통에 허덕이는 중생을 구제하려 부처님이 내려온다는 미륵신앙을 펼쳤다. 어쩌면 이것은 한반도 미륵신앙의 시작으로 기록될 것이다. 10세기 신라 말기에 견훤은 금산사의 미륵신앙에 의지하고 세력을 규합하여 후백제를 세웠다. 16세기 조선 중기에는 정여립이 금산사를 거점으로 도참사상을 퍼뜨리고 사회 변혁을 꾀하면서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당시 정여립이 주창한 대동사상은 오늘날로 말하면 봉건체제의 근간을 부정하고 공화정을 주창하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사상이었다. 그리고 서세동점의 격변기였던 19세기 말엽에는 동학 지도자 전봉준이 나타나서 반외세, 반봉건의 사회 변혁 운동이자 민족해방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봉건 사회에서 벌어졌던 전북의 대표적인 혁신 운동이었다. 이들은 표면적으로 탄압을 받고 실패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사회 전체에 충격을 주면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전북지역에서 벌어졌던 혁신적인 종교 운동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전북지역에서의 종교 운동은 서로 달라도 실천 방식에서 하나같이 혁신적인 측면이 있었다. 동학혁명 이후로 강증산이 사회적 참상과 혼란을 목격하고 새로운 종교 운동을 펼쳤다. 그는 새로운 이념에 의지하여 과거의 이념이나 질서를 바로잡겠다며 후천개벽의 틀을 세웠다. 이어서 소태산 박중빈은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며 새로운 종교 운동을 주창하였다. 현재 같은 조계종이라도 금산사는 개혁 불교의 중심에 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전북의 천주교는 민주화에 열중하고 생명 운동에도 적극적이다. 그리고 개신교회도 다른 지역보다 진보적이고 실천적으로 사회정의에 힘쓰는 특징이 있다. 최근에 일고 있는 한국의 개혁 운동에 전북지역이 적극적으로 찬동하고 나서는 것은 그런 사상적 흐름과 무관하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구사회 선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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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08 16:41

누구시더라

한병성 전북대 명예교수 치매 요양병원에 입원중인 어머니를 만나고 온 친구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어두워 보인다. 아마 어머니의 상태가 많이 안 좋은 모양이다. 어떤 날은 병세가 호전되어 지난날의 추억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누고, 또 어떤 날은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여 처음 만난 사람처럼 누구시더라하며 인사를 하는 등 엉뚱한 말씀을 하신단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날이 갈수록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는데 있다. 친구는 어머니와 정답게 담소할 수 있는 시간들이 요즘 들어 더 줄어들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친구 어머니도 우리 부모님처럼 깊은 산골에서 일군 몇 두렁 척박한 땅으로 많은 가족들의 생계를 꾸리셨다. 따라서 가난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배고픔도 뒤따랐다. 이러한 어려운 형편을 해결하기 위해 허리끈을 불끈 졸라맸고, 특히 자식에게 만은 그 지긋지긋한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었다. 이런 어려웠던 상황들이 어머니와 자식 간에 오히려 끈끈한 감정의 교차점들을 더 많이 만들게 했나 보다. 치매가 무엇인가, 사람의 기억이란 창고에 쌓아둔 추억의 보고들을 야금야금 갉아 먹는 질병이 아닌가. 종국에 가선 주변사람들과 함께 공유했던 추억들이 모두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하얀 백색들로 가득 채워지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질병이다. 참 안타깝고 애처롭다. 실체는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생각을 서로 나누지 못한다는 것이. 이 일이 어찌 친구 어머니의 이야기로만 한정 지을 수 있겠는가. 요즘 우리사회는 개인 간, 가족 간, 계층 간, 조직 간 또는 추구하는 정치적 논리가 상이한 집단 간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모두 치매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상대편의 입장이나 의견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각자 생각의 프레임에 갇혀 사고가 고착화 되고 소통이 단절된 치매 상태가 되어 버렸다. 비록 나는 아니다. 나는 매우 정상인데, 상대가 비정상이다라고 항변한들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주변 모두가 치매상태라면 그들과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없으니 나 또한 치매라 할 수 밖에. 그러지 말자, 상대는 치매이고 나는 정상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주변 모두를 치매집단으로 정의해 놓고 혼자 정상인들 그것이 어찌 진정한 의미의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살아온 삶과 살아야 할 삶을 함께 이야기하며 공감할 수 있는 치매 없는 사회야 말로 꿈꾸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희미하게 꺼져가는 기억의 단편이나마 붙잡고 싶어, 어머니와 함께 했던 장소를 인지시켜 드리면서 지난날의 추억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친구의 몸부림이 안타까우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내 친구처럼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서 서로의 욕심, 이기심, 편견을 훌훌 털어 버리고 소통하는 삶,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는 천박한 삶이 아닌, 타인을 더 배려하는 멋진 삶을 꿈꾸어 보자. 내 소중한 친구 어머니도 병이 호전되시어 친구와 담소를 나누며 환하게 웃음 짓는 얼굴을 하루빨리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병성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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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01 20:24

‘쇠퇴’냐 ‘도약’이냐…갈림길에 선 군산항

박정인 군산지방해양수산청장 군산항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도 지난 8월 말 기준 물동량이 작년보다 8%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감소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비록 한국지엠 사태 등의 여파라고는 하지만 지역 항만행정에 책임이 있는 필자의 입장으로서는 여간 착잡한 게 아니다. 항만의 중요성이야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경제산업의 원천으로서 최근에는 종합물류 외에 도시형성 기능까지 그 역할이 확대되어 지역경제 상황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다. 그러나 군산항의 현실은 어떠한가? 2018년 기준으로 군산항의 물동량은 전국 31개 항만 물동량의 1.1%, 컨테이너는 0.3%에 불과할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하다. 연간 하역능력은 서해권 경쟁 항만인 목포항과 보령대산항보다 앞선 전국 7위권(2921만톤) 수준이지만 실제 화물처리량은 이들 항만보다 뒤진 11위권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군산항의 입지가 좁아진 사이에 평택항 등 주변 항만들이 맹렬한 기세로 부상하고 있다. 물론 군산항도 항만 마케팅 등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각 항만마다 신규 인프라 확충으로 처리능력이 늘어난 반면 물동량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군산항은 이대로 주저앉고 말 것인가? 한때 세계 5위권에서 지금은 자국 내 군소항으로 전락한 일본의 고베항과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인지, 1966년에야 첫 컨테이너선이 입항했지만 지금은 유럽 최고의 허브로 성장한 로테르담과 같은 항만으로 도약할 것인지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지금이라도 군산항의 현실을 냉철히 직시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다. 주요 국가물류망이 부산과 수도권에 몰려있는 데다 빈약한 배후산업, 심한 조수차와 토사 퇴적 등 취약한 여건 속에서 단순히 물동량 위주의 양적 경쟁을 해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 결국 타 항만에 비해 경쟁력이 우월한 특화항만을 만들지 않고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국내 자동차 물류처리 1위의 위상을 확고히 다진 평택항, 오일 허브를 꿈꾸는 울산항 등 특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후발 항만들이 그 분야에서 국내 주요 항만들을 압도하고 있다. 단순 선박 입출항과 화물 하역, 보관, 운송기능에 머물러 있는 군산항의 체질 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그렇다면 군산항만의 특화된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전략이 필요할까? 전문가와 업계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대체적으로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되는 것 같다. 첫째는 농수산식품 특화항만 육성이다. 국가식품클러스터 등과 연계해 식품의 저장가공배송을 위한 신선물류시스템 구축과 전문 물류기업의 투자 유치 등이 필요하다. 둘째는 중국 등과의 지리적 이점과 교역 흐름을 반영한 선제적 물류거점 구축이다. 인근의 대전 택배 허브를 십분 활용한 전자상거래 물류센터 구축과 신남방대중국 환적 화물 유통기지화, 신 물류 루트 개척 등을 통해 경쟁 우위의 고부가 사업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셋째는 배후산업에 최적화된 종합물류기지 구축과 맞춤형 항만서비스를 통한 신규 물동량 창출이다. 중고차 수출, 전기차 생산 등 배후산업과 연계된 원스톱 물류서비스, 스마트 항만, 항만배후의 대규모 복합물류단지 조성을 통한 물류산업 집적화가 그것이다. 쇠퇴와 도약의 기로에 선 군산항! 선택은 분명하다. 향후 1, 2년이 군산항의 도약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온 도민의 관심과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선박과 기업사람이 북적대는 자랑스러운 군산항을 꿈꿔 본다. /박정인 군산지방해양수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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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24 17:30

도약일까, 침체일까

한병성 전북대 명예교수 최근 들어 국가경제에 강한 먹구름을 드리우게 하는 한일 무역 갈등이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고 서로 대척 점을 향해 치닫고만 있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GSOMIA : 군사정보 보호협정) 파기를 선언하면서 서로 갈등을 고조 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자국 우선주의를 옹호하며 기존의 세계 무역질서를 크게 흔들고 있고, 한일 양국 간의 조정자로서의 역할마저 포기한 상황이라 해결될 전망이 밝지 않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과 상황극복 후 우리사회가 갖게 될 변화에 대한 예측을 과거 우리가 경험했던 외환위기에서 찾는 것도 좋을 것 같다. 1980년부터 1990년까지 우리경제는 유사 이래 최고의 호황기를 누려왔다. 그러다 1997년 한보 부도를 시작으로 우성과 삼미가 도산하면서 재벌들이 줄줄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해 말 11월 21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였다. 이 후 3개월 만에 3000여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률도 4.5%로 폭등하는 등 경제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민의 노력은 급기야 금 모으기 운동과 물건을 아껴 쓰고 나누어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아나바다'운동, 국산품 애용 운동으로 나타났다. 이런 단합된 국민들의 노력으로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나라 중 가장 빠르게 국제통화기금의 모든 부채를 조기 상환하고, 2001년 8월 IMF 관리 체제를 종료했다. 매우 힘든 여정이었으나 이런 과정을 통해, 절약문화 확산과 사회전반의 투명성이 제고되고, 구조조정을 통한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건전성 및 경쟁력도 확보했다. 한편 외환위기를 겪고난 후 우리사회에는 다양한 변화가 나타났다. 우선 우리 일부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면서, 한국경제가 글로벌 경제를 선제적으로 이끌어 나갔다. 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의 심한 격차와 세대 간 계층 간의 사회적 갈등과 반목의 골은 깊어져 갔다. 실업문제는 더욱 심화되고, 비정규직도 전보다 확대됐다. IT 관련 인프라 구축과 창업 열풍은 정보통신산업을 세계 경제의 선도 산업으로 이끌어 올렸으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여론 조작 등 심각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외환위기 못지않게 어려운 이번의 위기를 극복하고 보다 긍정적인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외환위기 때 보여주었던 단결된 모습과 위기를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만드는 슬기로운 지혜가 모아져야 한다. 어느 누구도 대중들이 갖고 있는 감정과 불만을 표출시키기 위한 통로로 이 상황을 이용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주자는 不治垣長 盜後悔(불치원장 도후회), 즉 담장을 미리 고치지 않으면 도둑맞은 후에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이 난관이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되도록 향후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아낌없는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 이러한 한일 양국의 갈등 구조가 양국 모두의 생산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두 나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사회발전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여러 상황들은 구조적 성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그 대응방식도 달라지고, 그 결과 역시 항상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될 수 있다. 이번 위기가 향후 국가발전의 전환점 역할이 되도록 단합된 힘과 지혜가 함께 모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병성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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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17 19:55

애향의식과 문화적 자부심

구사회 선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1841-1910)의 서화 전시회가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열린다. 석정 이정직 선생은 근대계몽기에 전북이 낳은 시인이자 문장가였고 예술가이자 실학자였다. 그의 학문과 예술은 시와 문장, 글씨와 그림, 문예이론, 성리학과 양명학, 천문과 역학 등의 여러 방면에 걸쳐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 서양 철학을 처음으로 도입하였고, 조선 후기의 당송고문인 한구정맥(韓歐正脈)을 호남에 정착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석정은 학문 이외에도 예술 분야인 서화에서 일가를 이뤘다. 그는 특별한 스승도 없이 오랜 세월에 걸쳐 스스로의 부단한 학습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한국 예술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흔히들 시와 글씨, 그리고 그림에서 두루 뛰어난 예술가를 시서화 삼절(詩書畵三絶)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나라 예술사에서 시서화를 두루 갖춘 인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굳이 꼽는다면 조선후기의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7),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9~1856) 정도이다. 그런데 근대계몽기에 호남에도 시서화 삼절을 갖춘 인물이 있었다. 그분이 바로 석정 선생이었다. 석정은 다른 인사들과 달리, 전북이라는 지방예단에서 일궈냈다. 석정의 학문과 예술은 교육을 통해 이곳 전북의 제자들에게 그대로 전수되었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와 해방 정국을 거치면서 석정의 학문과 예술은 오늘날 전북문화의 자양분이 되었다. 석정의 교학 성과를 짚어보건대, 그의 문하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다. 예로써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은 주로 도학과 글씨에서, 상곡(象谷) 정노식(鄭魯湜)은 판소리 연구와 사상가로 두각을 나타냈다. 오당(吾堂) 강동희(姜東曦)는 행정가로 성장하였다. 서화계에서는 벽하(碧下) 조주승(趙周昇), 설송(雪松) 최규상(崔圭祥), 유하(柳下) 유영완(柳永完) 등이 그의 문하에서 나왔다. 그래서인지 이번 국립전주박물관 전시회에서는 벽하 조주승과 유하 유영완의 작품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생각해보자. 우리 전북인은 태어나 고향에 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나 살고 있다. 이때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부모 형제나 자신이 태어난 산천, 그리고 성장하면서 먹고 마시며 보고들은 고향의 향토 문화를 잊지 못한다. 이것은 생득적이자 원초적이다. 반면에 고향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체험과 학습을 통해서 후천적으로 내면화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생 동안 고향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이번 국립전주박물관의 석정 이정직의 전시회가 무척 반갑다. 석정이야말로 우리 전북 문화의 유산이자 모두의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석정 이정직 서화 전시회는 전시로 그치지 않는다.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지역민이나 학생들과 다양한 콘텐츠로 소통하면서 전시회가 이뤄진다고 한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석정 이정직의 예술세계가 전북 사회에 굳게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석정 이정직은 이곳 지역민이나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전북 문화의 자부심으로 다가올 것이다. /구사회 선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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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1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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