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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꽃 백리길

▲ 정군수 석정문학관 관장 전주 군산 간 26번 국도를 번영로, 전군도로, 전군가도 등으로 부르고 있다. 이 길은 처음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하고자 1908년에 일제가 만든 신작로이기도 하다. 전군간 자동차 전용도로가 나기 전에는 전주, 익산, 김제, 군산으로 통하는 혈맥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길이었다. 이 곳에 벚꽃을 심어 벚꽃 백리길 이라는 명성을 얻은 것은 1975년 전북지역 재일동포들이 고향에 기탁한 성금으로 벚나무를 심어 벚꽃 터널이 생긴 뒤부터라고 한다. 이 길은 봄철만 되면 전국에서 상춘객들이 몰려들어 장관을 이루었고, 매스컴에서도 헬기를 띄워 벚꽃 백리길을 따라가며 생중계를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옛날의 화려했던 명성은 사라지고 고목이 된 벚나무가 드문드문 서있을 뿐이다. 벚나무의 수령이 50년 정도라 하니 심은 햇수로 보아 남은 나무들도 고령으로 쓰러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진지 오래고 벚꽃 백리길 이라는 수식어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요즈음 번영로에 접해있는 일부 지자체에서는 옛날의 명성을 되찾고자 예산을 세워 다시 벚꽃길을 조성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다. 죽어가는 벚나무를 보고 고심 끝에 나온 방책이라 할 수 있지만, 필자는 더 숙고해서 수종을 다시 정하라고 건의하고 싶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벚꽃은 상춘객을 불러 모으는 인기 품목이었지만, 지금은 각 지자체에서 무차별 공격을 하듯 많이 심어 발길 닿는 곳마다 넘쳐나는 것이 벚나무다. 그러나 개화 시간과 수령이 짧고 10월이면 칙칙한 잎으로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 다른 나무는 연륜이 깊어갈수록 고고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벚나무는 흉물스런 모습으로 노년을 맞는다. 필자는 번영로에 벚꽃 백리길 대신 무궁화꽃 백리길을 조성하라고 건의하고 싶다. 한 때는 벚나무 원산지가 제주도이고 또 벚꽃이 일본 국화가 아니라는 말들로 위로를 삼았지만, 번영로의 벚꽃 백리길은 이제 한 번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도 없는 무궁화꽃 백리길을 만들어 벚꽃축제 대신 무궁화꽃 축제를 우리 전북에서 열면 좋겠다. 우리의 무궁화를 미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에서 심고 가꾸겠는가? 이제 번영로는 도로의 기능보다는 무궁화와 더불어 관광과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조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궁화는 8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9,10월을 보내고 가을저녁 산들 바람에 가슴이 시려올 때까지 끊임없이 피는 청초한 아름다움이 있는 꽃이다. 무궁화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어서 깨끗하게 떨어진다 하여 조개모락화(朝開暮落花)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인용한 고금주(古今註)에는 군자지국 지방천리 다목근화 (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우리나라 지방 천리마다 무궁화가 많이 핀다) 라는 말이 나온다. 조선을 근역(槿域)이라고 부른 것도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양하씨는 「무궁화」 수필에서 자기 키만한 나무에서 수백송이의 꽃을 볼 수 있으며, 피고 지는 꽃송이를 센다면 몇 천 송이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권력의 무상함을 비유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무궁화와는 거리가 먼 말이다. 무궁화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 국민과 함께 수난을 당한 꽃이다. 일제는 우리 민족정신을 말살하려고 무궁화에 혐오스러운 누명을 씌웠다. 이제는 그 잔상에서 벗어났지만 아직 편견이 남아있는 듯하다. 무궁화는 우량한 품종으로 많이 개량되었다. 생명력과 병충해도 강하고 아름다운 빛깔로 많은 꽃을 피운다. 하루 빨리 우리 전북에서 열리는 무궁화꽃 축제에서 무궁화꽃 백리길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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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01 18:21

깨달음의 빛, 온누리에!

▲ 황인철 원불교 화산교당 주임교무 오는 28일은 원불교 대각개교절이다. 소태산대종사의 대각(大覺)을 기념하며, 원불교 열린 날과 전 교도의 공동생일을 겸하여 원불교의 근원이 되는 날로 이를 축하하는 경절이다. 원불교는 이웃종교들과 달리 소태산대종사의 탄생일을 경축하는 것보다 대각한 날을 경축한다. 물론 탄생도 경축일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세상에 오신 것과 대각을 이룬 것을 비교해 보면 큰 깨달음을 얻은 날이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대각개교 경축기간에 원불교인은 영산성지를 순례하며 소태산대종사의 깨달음의 여정과 원불교 초기 교단의 창립정신을 체험한다. 인도의 성자 라마크리슈나는 말했다. 성지 순례하는 사람이 허리에 차고 간 물병은 성지를 모두 순례했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물병으로 남아있다. 세속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도 이와 같은 것이다.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무어냐고 사람들에게 물으면 많은 사람이 행복이라 한다. 그러고 보면 참 수많은 인류가 그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종교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깨달음을 얻고, 행복을 찾기 위해서다. 깨달음을 얻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공자(孔子)도 아침에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지 않았는가. 깨침이 없으면 진정한 내 것이 아니다. 여전히 물병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깨침은 몸으로 실행하고 마음으로 증득하는 정성이 필요하다. 아는 것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열매 없는 꽃과 같다. 깨달아 아는 것을 실행하면 지혜로운 삶이 되며, 행복한 삶이 된다. 용은 여의주를 얻지 못하면 조화를 부리지 못하고 하늘로 날아오를 수도 없다. 용에게는 여의주가 다시없는 보물이다. 사람들도 여의주를 가지고 싶어 한다. 행복을 쉽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여의보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욕심을 떼고,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에 자유자재하고 보면 그것이 곧 여의보주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큰 부자라고 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십 분의 육만 뜻에 맞으면 그에 만족하고 감사를 느끼며, 또한 모든 것이 다 뜻에 맞을지라도 그 만족한 일을 혼자 차지하지 아니하고 세상과 같이 나누어 즐기므로, 그로 인하여 재앙을 당하지 않을뿐더러 복이 항상 무궁하다고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이게 바로 여의보주를 얻는 방법인 것이다. 행복을 만드는 것,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마디 따뜻한 말로도 가능하다. 평생 잊지 못할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을 한 번 깨닫고 보면 모두가 은혜이고 감사이며 행복이 된다. 한 사람이 행복하면 그 옆 사람이, 또 그 옆 사람이 함께 행복해 질 수 있다. 사소한 것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실 너무 많은 정보에 의하여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너무 많은 욕심으로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작고 하찮은 것이지만 실행하고 증득하는 데에서 위력이 나타난다. 경산종법사는 대각개교 경축법문에서 시대적 변화를 바르게 선도해 나갈 줄 아는 공부인, 희로애락의 감정에 끌리지 않는 진리적 인격을 갖춘 공부인, 진리의 광명을 따라 허위와 진실을 판단할 줄 아는 공부인, 그리고 우리의 교법을 현실에 구현해 나가는 용기 있는 공부인이 되어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는 주인공으로 살자고 부촉해주셨다. 깨달음의 빛이 온 누리에 비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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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24 18:29

'노자 섭생론'에서 암의 해법 찾는다

▲ 김윤세 인산가 회장전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우리는 오늘날, 각종 암, 난치병, 괴질의 창궐로 인해 사망자 10명 중 3명이 암으로 죽고 3명이 심혈관, 뇌혈관 질환으로 사망하는 병든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의 삶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가라는 명제를 놓고 역사적으로 수많은 성현에 의해 적지 않은 가르침이 제시됐는데 그중 노자(老子)의 섭생론(攝生論)은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에도 수많은 사람에게 자연의 섭리(攝理)에 따른 삶의 이정표로서 그 역할과 기능을 다 하고 있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제50장에서는 섭생을 잘 하는 사람에게는 죽을 땅이 없다(善攝生者 無死地) 즉 우주 자연의 이치에 부합하는 순리적 삶을 사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죽을 땅으로 들여보내지 않는다라는 묘한 메시지를 만나게 된다. 이 말은 너무나도 간명하므로 수많은 다양한 해석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고 그런 해석들을 접하노라면 노자께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참뜻을 이해하기란 더더욱 어려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필자는 나름대로 오랜 세월 연찬하며 고민한 끝에 아마도 노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뜻이었을 것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려 본다. 생지에서 나가서 사지로 들어간다(出生入死). 생지에서 제 명대로 사는 사람들이 열에 셋은 되고(生之徒 十有三) 사지에 들어가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비명(非命)에 죽어가는 사람들 또한 열에 셋은 된다(死之徒 十有三). 생지에서 있으면서도 오래지 않아서 제 발로 사지로 이동해가는 사람들 역시 열에 셋쯤 된다(人之生動之死之者 亦十有三). 대체 왜 그런가(夫何故) 자기 자신의 삶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한 채 그저 살아 있으니까 살고, 살던 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以其生生之厚). 생지에서 사지로 가든, 사지에서 생지로 가든 모두 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이끌고 어디론가 가는 것이다. 과거 삼풍백화점이 무너질 때 그 속에 있다가 무너지기 직전에 나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깥에 있다가 무너지는 순간에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 있었다. 그때 그 사람에게는 그곳이 사지이다. 섭생을 정말 잘하는 사람은(蓋聞善攝生者) 육지에 다니면서도 물소에게 받힐 일이 없고 호랑이한테 긁힐 일이 없다(陸行不遇?虎). 전쟁터에 들어가서도 칼이나 화살에 맞을 일이 없다(入軍不被甲兵). 물소가 받을 곳이 없고(無所投其角), 호랑이가 발톱으로 칠 데가 없다(虎無所措其爪). 또 칼이나 활이 파고 들어갈 곳이 없다(兵無所容其刃). 왜 그럴까(夫何故) 그에게는 죽을 땅이 없고 따라서 그는 죽을 땅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以其無死地). 노자의 가르침대로 섭생을 잘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암, 난치병, 괴질을 자초하여 사지로 갈 일도 없으려니와 설혹 몹쓸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자연(自然)으로 돌아가서 순리적 삶을 영위하면서 제 몸 안의 자연치유능력을 극대화해 암, 난치병, 괴질을 자연스럽게 물리치도록 하는 현명한 섭생과 지혜로운 치병(治病)의 길을 선택하여 스스로 활로(活路)를 찾아 사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세상으로 나온 인간에게 발생한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일수록 최상의 현명한 해법은 반드시 자연으로부터 나온다는 엄연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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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17 18:34

전북사회복지계가 6·13 지선에 거는 기대

▲ 서양렬 전북희망나눔재단 운영위원장 613 지방선거 전북사회복지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613 지방선거 전북사회복지특별위원회는 전북 사회복지계의 다양한 현안들을 정책화시켜 후보자 및 각 정당에 제안하고, 도민들의 사회복지 서비스의 양적, 질적 확대 및 사회복지 현장의 더 나은 발전을 통한 행복한 복지전북을 만들어가기 위해 활동한다. 지난 2월 구성된 613 지방선거 전북사회복지특별위원회는 우리 도내 사회복지 직능단체 연석회의에서 구성을 결의하여 사회복지 각 직능별 대표 20여명으로 구성되었으며, 공동대표는 전라북도사회복지협의회 이병관 회장, 전라북도사회복지사협회 배인재 회장이 맡았으며, 위원장에는 이연숙 전라북도사회복지협의회 상임부회장, 부위원장에는 권영세 전북종합사회복지관 협회장이 활동하고 있다, 전북사회복지특별위원회는 현재까지 매주 정례모임을 개최하여 보편적 복지권 확대와 도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나갈 수 있는 복지공약 4대 현안과 11대 과제를 선정했다. 613 지방선거 전북사회복지특별위원회가 선정한 4대 현안은 전라북도 도민을 위한 보편적 복지권 확대, 전라북도 현장 복지 인력에 대한 지원 강화, 복지 협치 강화를 위한 민관 협력 강화, 전라북도 복지 재정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과제를 제안 하였다. 첫째, 보편적 복지권 확대는 전라북도 복지기준선 마련 및 실행체계 운영 강화, 도민 생애주기 및 영역별 공약제시, 전북도민 인권감수성 향상을 위한 사업 등이 제시되었다 둘째, 현장 복지 인력 지원강화 분야에서는 전북형 사회서비스 진흥원 설립, 사회복지종사자 처우개선 및 근로여건 개선(비정규직 문제 포함), 사회복지시설 및 기관 기능편재 재구조화(기관의 수요에 따른 기능전환과 지역적 불균형 해소), 사회복지종사자 동일직종/동일임금 체계 마련, 민간위탁 표준안 마련 등이 제시되었다. 셋째, 민관 협력강화를 위해서는 민관정 복지 정책협의구조 정례화, 사회복지정책특보 개방형 임명이 요구되었으며, 넷째, 전라북도 복지 재정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는 사회복지 자주재원의 확대 및 합리적 배분 등이 요구되었다. 지난 정부 10년 동안 대한민국은 국가복지정책의 실패로 엄청난 퇴행을 경험해 왔다. 특별히 복지 분야에서는 주민들의 보편적 복지권 확대를 위한 질적인 고민보다는 현상유지도 못하고 퇴행만 일삼아 온 복지정책, 공적 책임 강화보다는 민간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복지 정책, 복지시장화를 통해서 수익사업으로 변질되어 버린 복지 현장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그 후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경험해오고 있으며,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들을 지방에 이전시키고, 지방은 민간을 찾아야 하는 답답한 현실을 살아오고 있다.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는 거침없이 민영화와 시장화로 질주하는 복지현장이 사람중심의 현장으로 바뀌어가고, 사람이 먼저다 !를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가치가 제대로 실현되고, 사람을 위한 보편적 복지권의 확대가 제대로 이루어져서, 우리 서민들의 삶에 실질적이고 질적인 변화가 찾아와서 국민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벗으로 기대고 살 수 있는 나라다운 나라가 시작되는 꿈을 간곡하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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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10 18:15

문학관 다시보기

▲ 정군수 석정문학관 관장 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이며 인간에 대한 이해를 본질로 한다. 문학관은 이러한 문학의 본질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공간이므로 인문학적 가치를 발현하고 바람직한 사회를 만드는데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또한, 문학의 영역을 확장하고 계승하여 많은 사람이 정서적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문학관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하는 공간은 그 이름 외에 문학의 집, 문학촌, 문학마을, 문학공원, 기념관 등으로 지칭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것은 특정작가나 지역 작가를 이러한 문학공간에 전시대 또는 동시대에 향유했던 가치 있는 문화적 감각들을 구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문학관은 단순한 기념공간이 아닌 작가의 정신세계를 문학적으로 재조명한 탐구의 세계이다. 문학관은 작가나 작품이 속해 있던 시대상이나 시대정신을 중요시해야 하며 그들이 공유했던 공간적 의미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수행되었을 때, 이용자들은 당시 문학의 통시성과 공시성은 물론 작가나 작품이 지닌 문화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이러한 인문학적 가치를 인지한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문학관을 통해 지역의 문화적 위상을 제고하고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우리 전북에도 전북문학관(전주), 김환태문학관(무주), 채만식문학관(군산), 미당시문학관(고창), 아리랑문학관(김제), 혼불문학관(남원), 최명희문학관(전주) 가람문학관(익산), 석정문학관(부안) 등이 건립되어 예향의 면모를 부족함 없이 보여주고 있다. 장르로 보면 시(시조), 소설, 평론 등 한국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전북이라는 땅을 자양분으로 삼아 문학을 부흥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문학관은 한 지역의 인문학적 자산을 홍보하고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문학관을 설립한 지자체에서는 문학관이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문학관으로 인하여 지역의 인문학적 가치를 선양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문학관 길잡이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문학기록을 수집하여 보존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그러나 문학관이 수집한 문학기록은 보존하는데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문학작품의 연구, 문학을 향유하는 사람들을 위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활용되어야 한다. 과거의 문학관은 소장하고 있는 문학기록 및 작가의 유품을 전시하여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박물관 기능의 역할에 만족하였다. 하지만 오늘의 문학관은 관람객 참여를 배제한 이러한 보여주기식의 기능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문학관은 소통의 공간으로, 교육의 공간으로 활성화하는 관계망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전문가와 연구자들을 위한 자료의 열람, 학술세미나,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예교실의 운영, 각종 문학 강연 및 시낭송회, 작품내용 재현과 체험을 위한 세미나실 및 공연시설의 제공을 통해 문학과 관련된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이렇듯 문화적 영역을 수행하면서 소통의 문이 열려 있는 문학관은 미래 지향적인 문학관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초기 문학관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작가의 작품을 보존하기 위한 기념형 문학관으로 머물러 있는 곳은 문학의 의미를 재생산하지 못하고 사회적 가치탐구에도 한계가 있어 답보상태에 머물고 말 것이다. 이제 문학관은 정체의 공간에서 생동의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웃고 숨 쉬며 얻음과 깨달음을 주는 문학관으로 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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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03 20:05

가벼워지고 싶다면 비워라

▲ 황인철 원불교 화산교당 주임교무 원불교가 세상에 드러나기 전, 소태산대종사가 교단 창립을 준비하던 곳인 변산에 와서 봄기운에 끌리듯 나는 천천히 한 바퀴를 둘러본다. 능가산내소사 현판이 걸려있는 일주문을 지나니 길이 살짝 굽어있다. 일주문 밖에서는 도무지 내소사를 짐작할 수 없다. 굽은 길에 들어서서야 전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상으로 600여 미터 길게 이어진 길이 보인다.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춘분을 지나 봄기운 완연한 바람이 전나무 숲을 지나 코끝을 간질이고, 왼편으로는 계곡물소리가 귀를 맑게 한다. 그 전나무 터널을 지나면 금강교가 나오고, 전나무에 비해 키가 작은 벚꽃길이 환하게 이어진다. 춘분에 내린 눈 속에서 꽃눈이 툭툭 불거지고 있다. 천왕이 눈을 부릅뜨고 삿된 마음을 잡아내는 사천왕문을 통과하여 시원한 마당을 지나면 2층 누각인 봉래루가 눈앞을 가린다. 봉래루는 자연석 주춧돌(덤벙주초)의 울퉁불퉁한 모양대로 나무기둥의 아랫부분을 도려내어 음양의 각을 맞춤으로써 집의 무게를 감당하게 한 그랭이법으로 세웠다. 이렇게 오목하고 볼록한 것을 맞추니 이질적인 돌과 나무가 서로 하나가 된다. 조상들의 자연에 순응하는 지혜와 미적 감각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맞배지붕을 올린 2층 누각, 그 봉래루의 마루 밑을 지나서 만나는 자연석 계단은 속세에서 선경으로 오르는 길을 보여주는 것인가. 계단 위에 오르니, 천년을 살아낸 느티나무가 위용을 드러내고, 3층 석탑 너머로 날아갈 듯한 팔작지붕의 대웅보전 그늘 속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협시를 받으며 인자하게 중생을 맞이한다. 대웅보전 뒤로는 관음봉 바위능선이 병풍처럼 둘러 서있다. 변산 내소사 풍경이다. 봉래루를 자세하게 묘사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예전에는 봉래루를 지나려면 기둥의 높이가 낮아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지날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개축을 했는지는 지난날의 모습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으나 주춧돌이 볼썽사납게 드러나 있다. 10여 년 전, 함께한 일행들에게 덤벙주초와 그랭이법에 대한 조상의 지혜를 설명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나그네가 한마디 했었다. 맞는 말씀인데, 봉래루는 이제 의미가 없어졌어요.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지날 수 있게 됐거든요. 부처님 앞에 서려면 먼저 자신을 낮추는 자세부터 가르치려한 조상의 지혜를,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편안하게 봉래루 아래를 지나갈 수 있도록 오직 편의성 위주로 개조해 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였다. 재백이고개 넘어 직소폭포와 봉래구곡의 물을 품은 저수지 분옥담은 깊이를 알 수 없이 푸르다. 만 골짜기 천 봉우리의 가느다란 빗물을 받아들이는 저수지는 스스로를 낮추어 품을 열고 있다. 그리고 다 차면 무넘이로 흘려보낸다. 저수지가 높은 곳에서 벽을 쌓고 있다면 물은 흘러 들어갈 수 없는 법. 지식이 가득 찬 제자의 작은 찻잔이 넘침에도 불구하고 계속 차를 따르는 스승의 모습은 아만심과 욕심에 차있는 우리들에게 비워야 거듭날 수 있다는 진리를 새삼 깨우쳐 주고 있다. 비우고 낮추면 삶이 행복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우리는 자칫 공적이 있으면 알아주기를 바라고, 작은 지식과 재주에 경박해지기 쉬우며, 말 잘하면 실행이 부족할 수 있다. 앎이 많을수록 신중하고, 재주 있을수록 노력해야 하며, 말 잘하면 실행에 더욱 힘쓰고, 공성신퇴(功成身退)해야 함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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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27 19:01

암보다 더 무서운 병

▲ 김윤세 전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물도 끊기고 산길도 사라져 더 나아갈 데가 없으려니 여겼더니 버들 푸르고 꽃 붉은 곳에 또 하나의 동네가 보이네 (水窮山盡疑無路 柳綠花紅又一村) 옛적 어느 선사(禪師)의 시구(詩句)처럼 길이란, 찾는 사람에게 보이는 법이다. 더 이상 길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극한 상황에서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잘 찾아보면 반드시 열린 길이 있게 마련이다. 종종 현대 의학적으로 더 이상 치료방법이 없다는 소견에 말기 암 환자나 기타 불치병이라 간주된 병을 앓는 환자들이 그야말로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나라 잃은 난민(難民)처럼 이리저리 떠돌다가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 지리산 산골 인산문(仁山門)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세상의 일반적 의료방식으로 비록 고칠 수 없다 하더라도 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 선생(1909~1992)에 의해 세상에 제시된 인산(仁山)의학에서는 혹시 길이 있을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 한 가닥에 의지한 채 살길을 찾아서 오는 것이다. 필자는 가끔 그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다 보면 암이나 난치병보다 더 무서운 병이 따로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의학에 대한 절망과 치료에 대한 자포자기야말로 화타편작이라도 고치기 어려운 불치병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질병은 자연계나 신(神)의 선물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만들어 건네준 것도 아니다. 제 병은 제가 만드는 것이고 공해 증가와 생활환경의 악화에 따른 외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건강을 회복 내지 증진시킬 자연치유능력은 자신의 몸 안에 있는 것이다. 또 극단으로 치닫는 성격이나 분노의 마음, 원한, 과음, 과색(過色), 과로, 운동 부족 등 내적 요인에 의한 병증 역시 부단한 심신 수련과 자기혁신을 통해 미연에 방지하거나 순리적 치료를 통해 원상으로 회복시킬 힘 역시 자신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제 병증의 근원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사람들은 암이나 난치병에 걸렸을 때 마음을 비운 채 자신의 사고방식과 생활습관에서의 문제점을 살펴 차분하게 그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하지 않고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더 이상 길이 없다고 여겨 마침내 자포자기해버린다. 인산의학은 현대 의학적 소견이 어떻든 간에 세상의 난치불치병에 대한 나름의 독특한 처방과 약물을 제시하고 있다. 자연계의 법칙에 근거하여 주변의 흔한 음식물이나 기타 물질을 이용해 순리적으로 병을 고치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그 처방과 약물, 치료원리 등을 명명백백하게 일련의 서적들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1980년에 간행한 <우주와 신약(神藥)>을 위시하여 1986년의 <神藥>, 1992년 선화(仙化) 이후의 유저 <신약본초(神藥本草)> 등 인산의학 관련 제 서적들에는 고금동서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창조적 신의학 이론을 제시한 인산 선생의 생래적 혜안과 경험의 산물이 집대성되어 있다. 이 책들은 한결같이 쉽고 간단한 묘방과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흔한 물질, 예컨대 집오리, 명태, 오이, 다슬기, 옻 껍질, 마늘, 대파, 홍화씨, 죽염, 쥐눈이콩 등을 활용해 각종 암, 난치병을 해결 극복할 수 있도록 독특한 자연치유묘방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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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20 18:39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를 실질적 민·관협력으로

▲ 서양렬 전북희망나눔재단 운영위원장 보건복지부는 복지전달체계 강화 및 개편을 위해서 동 복지기능강화 시범사업을 2014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 사업은 방문상담 및 민간서비스연계, 사례관리 등을 통해서 국민의 복지 체감도를 높이겠다는 의미에서 시작한 사업으로 2014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16년 933개, 2017년 2100개, 2018년 3500여개 전체 읍면동으로 확대하여 읍면동 중심으로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는 위기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복지제도를 잘 알지 못하거나,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복지공무원이 복지통(이)장과 읍면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 등 지역사회 주민들과 함께 찾아가 필요한 공적 급여지원과 전문적 통합사례관리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소득재산기준 초과 등으로 인해 공적급여 및 서비스를 받지 못하지만 실질적인 생활의 어려움에 처해 계신 분들께는 지역사회 내 다양한 민간 자원을 찾아 서비스를 연계하기 위한 사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공적기관이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문제해결방법을 찾아주기 위한 노력자체는 참 의미 있는 일이다. 특별히, 복지전달체계를 강화해 건강한 사회복지생태계를 이루려는 노력과 지역사회 단위에서의 복지생태계 확장, 주민들에게 복지제도를 알려나가기 위한 적극성, 주민을 위한 사례관리강화, 민간기관과의 연계강화 등은 당연히 필요한 사업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복지 현장에서는 현재와 같은 찾아가는 보건복지사업에 대해서 불편함과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첫째, 제대로 된 민관 협력에 대한 의구심이다. 현장 복지기관 중에서는 찾아가는 복지와 복지사각지대 발굴이라는 취지와 상이하게 단순 실적 중심으로 본 사업이 운영되고 있어서 본질이 왜곡되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가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소규모 지역단위에서 민과 관이 지혜를 모을 수 있는 자리를 꾸준하게 만들어나가야 하며, 관과 민의 역할이 적합하게 나누어 질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 민과 관의 실질적 협력한 방안이 만들어져야 한다. 둘째, 자원 및 업무의 쏠림현상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되고 있다. 공공의 자원독점이 실적 추구와 자원연계로 이어져 한정된 지역자원의 기부피로도 향상으로 민간복지기관에 대한 지원이 감소하고 있으며, 민간복지기관의 생태계가 상당부문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주민의 자발적인 복지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공공과 민간이 함께 협력해 나가야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민간기관과 경쟁하는 공공기관의 모습은 매우 불편하다. 관의 역할이 민간생태계를 지원하고 민간의 자생력 강화에 있음을 기억할 때, 더 나은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주민들의 삶의 문제를 직접 찾아나서는 국가의 모습은 참 멋진 모습이다. 다만, 그 모습이 지나치게 권위적이거나, 공공위주로 운영하면서 민간복지기반을 위축시키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복지 현장에서(613 지방선거 전북사회복지특별위원회)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서양렬 운영위원장은 한국노인복지관협회 전북지회장전주시사회복지사협회장 등을 역임했고 금암노인복지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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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13 20:46

무녀의 눈물

▲ 정군수 석정문학관장 음력 정월 초사흗날, 부안군 위도면 대리마을에 띠배굿이 벌어졌다. 만조시간이 되자 포구 앞바다는 가슴까지 바닷물이 밀려와 출렁이고 있다. 상쇠쇳소리 따라 풍악이 울리고 대장군 영기는 세차게 바람에 나부꼈다. 띠배를 띄울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손을 얼게 했지만 칠산바다에서 분명 봄은 오고 있다. 사람들이 선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동편당산제도 끝났고 주산돌기와 마중굿도 끝났다. 원당에서 열두 성황신에게 올리는 독축과 무녀의 춤도 끝나고 화주 화장 풍물패들이 산에서 내려오고 있다. 이제 용왕굿과 띠배띄우기만 남았다. 이 마을에 거주하는 김상선, 이종순 할아버지의 배치기소리와 가래질 소리가 후렴을 주고받으며 느리게 물살을 타고 바다로 간다. 몇 십 년을 불렀을까, 묵은 세월을 견뎌온 당산나무처럼 격하거나 다급함이 없다. 끊길 것 같다가 이어지고 잦아들 것 같다가 솟아난다. 대를 이어가며 섬마을에서 살았던 어부의 애환이 물길을 타고 흐른다. 용왕 제상에는 삼색과일과 떡시루가 오르고 핏물 든 생돼지갈비가 드러누워 있다. 돼지간도 고스란히 올라와있다. 태평소가락이 까끔산 마루로 넘어가고 풍악은 고조되었다. 덩실덩실 춤추던 무녀가 맺힌 곱을 풀려고 느리베를 하늘로 띄웠다가 가슴으로 내리고 다시 하늘로 올리며 덩실 돌아 제 자리로 온다. 이 맺힌 곱을 푸는 것이 무녀의 신통력이다. 마디마디 맺힌 곱은 오늘 띠배에 실려 칠산바다로 나갈 섬마을 사람들의 시름이며 비원이다. 그리고 먼 바다에 버려야할 재액이다. 이것이 이루어지려면 느리베에 맺힌 곱이 풀려야 한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다. 다시 돌아 춤을 추어도 풀리지 않는다. 무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만 보았을까. 그 눈물이 내 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무녀는 춤을 멈추고 다시 곱을 맺는다. 풀리지 않는데 다시 곱을 맺는 것이다. 아, 그러자 놀랍게도 곱이 풀린다. 바다를 볼 때 한 곱이 풀리고, 하늘로 손이 올라갈 때 또 한 곱이 풀린다. 무녀의 춤사위에 희열이 돌았다. 다시 맺어야 풀리는 역설을 무녀는 알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풍악을 따라 춤을 추었다. 그리고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켰다. 오늘 행사는 띠배띄우기로 대미를 맺는다. 띠배는 아침부터 주민들이 띠풀과 억새와 새끼를 꼬아서 엮어 만든 것이다. 그 안에는 짚으로 만든 일곱 제웅과 주작현무천 깃발이 꽂혀 있다. 풍악이 선창을 울리고 무가가 하늘로 오르자 모선인 해운호가 띠배를 끌고 먼 바다로 나간다. 오늘 행사의 절정이다. 띠배띄우기는 유희가 아니라 재액을 실어가고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모선의 뒤를 주영호가 따랐다. 나도 거기에 끼었다. 원당이 있는 산이 멀어지고 노란 조기떼가 가득했던 칠산어장으로 띠배가 간다. 모선에서 울리는 풍악소리와 무가가 아스라이 먼 바다로 잠기어간다. 해군함정 한 척이 수평선 저만치 떠있다. 이날은 버스도 밥도 술도 자연산 홍합도 모두 공짜다. 우리 일행은 또 공짜 버스를 타고 파장금에서 격포로 나오는 배를 탔다. 일행 중 하나가 배낭에서 소주병을 꺼냈다. 반갑다. 종이컵에다 가득 따라준다. 원샷, 소주맛이 달다. 또 원샷, 달아오는 볼을 식히려고 갑판으로 나왔다. 봄이 벌써 내 안에 들어와 있다. 뒤로 달아나는 위도를 보며 무녀의 눈물을 생각했다. 나를 전율케 했던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신통력에 대한 절망, 접신에 이르지 못한 자탄, 그것도 아니면 섬사람들의 비원 하나를 빠뜨려 곱으로 맺지 못한 회한. 나는 아직 그것을 모른다. 무녀의 눈물은 가슴에 남아 시가 될 것이다. 벌써 격포가 눈앞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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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06 21:04

영원한 강자

▲ 황인철 원불교 화산교당 주임교무1919년 3월 1일 정오, 일제의 압박에 항거, 전 세계에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온 민족이 총궐기하여 평화적 시위를 전개하였다. 내일이 3월 1일! 3·1 만세운동 99주년이다. 소태산대종사는 3·1만세운동을 ‘개벽을 재촉하는 상두소리’라며 제자들에게는 창생을 위한 기도를 시키셨다. 그리고 ‘갑동리와 을동리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강자가 되는 길을 열어주셨다. “갑동리에는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을동리에는 부자면서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을동리 사람들이 갑동리 사람들을 업수이 여겨, 여러 가지로 둘러먹으며 문서 없는 노예를 삼고 압제를 하면 갑동리에서는 어찌하겠느냐. 갑동리에서는 그 압제를 할 수 없이 받는다. 그들 중 몇몇은 압제 받는 것이 원통하여 을동리에 반항하다 갇히고 죽는 등 설움을 당하고 또 다른 몇몇은 압박 받는 원인을 생각하면서 가난하고 무식한 까닭인 줄을 자각하게 된다. 을동리와 같이 강자가 되리라 굳게 결심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강자의 위치에 앉게 되면, 분풀이 하고 싶어 을동리에 대항하지만 을동리는 모두 강자라 오히려 갑동리 사람만 희생하게 된다. 갑동리에 참 정신을 가진 자가 있었으면 생명 하나 희생하지 않고 강자가 되는 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법은, 을동리의 강자들이 압제를 하면, 종노릇을 잘해주며 약자의 분수를 지키고 밖으로는 어리석고 못난 체하여 강자가 안심케 하고, 안으로 자본금을 세우고 교육기관을 설치하여 가르치며 배우고 서로 권고하되 ‘우리는 돈 없고 배운 것 없어서 약자가 된 것이니 아무쪼록 각성하여 근검저축하며, 배우기를 힘쓰며, 우리 동리가 일심단체가 되고 보면 무엇이 두려우리오. 우리는 을동리 이상의 강자가 되자’하며 와신상담(臥薪嘗膽) 노력하면 곧 풍요롭고 지식인이 사는 동리가 될지라, 그러면 을동리의 강자들은 갑동리의 형세를 보고 과거의 무리한 행동을 회고하고 전날의 잘못을 후회하며 용서를 청할 것이니 갑동리 약자들은 스스로 제 일을 했건마는 을동리 이상의 강자가 되었다. 이러한 빠른 법을 놓고 사람들은 약자가 되면 약자된 것만 원망하고 한탄하며 지리한 압제를 면치 못하고, 또는 혹 선각자라도 편심이 되어서 여러 사람에게 덕으로서 감화시키지 못하고 단독으로 서둘다가 생명을 희생하나니 어리석다 아니할 수 없구나.” 갑동리와 을동리로 강자와 약자를 비유한 이 이야기는 당시의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사회와 세계의 구조적 투쟁관계를 통찰하고 화합과 협력으로 평화 공존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갈 원리와 방법을, 약자로서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그 원인을 자기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하며, 강자로 진화할 방법도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갑동리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다. 요즘 트럼프 미국 정부가 보여주는 한미FTA 폐기와 보복관세 예고,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 등 강대국의 압박이 극에 달하고 있다. 약자인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이미 100여 년 전에 소태산대종사는 길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기는 사람은 물론 강하다. 그러나 자기를 이기는 사람은 더 강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 자기를 능히 이기는 사람은 천하의 어떤 사람이라도 능히 이길 힘이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나, 욕심에 불타는 나, 방종에 흐르는 나를 이겨서 마음의 자유를 얻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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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7 18:44

영초(靈草) 활용한 무병(無病) 건강법 이야기

시작도 끝도 없이 흐르는 시간의 강물이 어느덧 무술(戊戌)년 우수(雨水)의 이정표를 지나 경칩(驚蟄)절을 향해 내닫고 있다. 한국 약재의 보고(寶庫)라 불리는 지리산기슭의 한 산골 마을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암, 난치병 환자들에게 대가 없는 인술(仁術)을 베풀어 재생의 희망과 기쁨을 선사하면서 전설처럼 살다가 선화(仙化)한 이의 이야기가 전한다. 바로 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 선생(1909~1992)이다.지난 1986년 6월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70만 부가 넘게 보급된 <신약(神藥)>이라는 저술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인산식 건강법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들은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에 달한다. 그들 중 인산 마니아로 불리는 상당수의 사람은 해마다 우수절을 기점으로 생명의 불을 지피기 위해 쑥뜸을 뜨는 이들이 적지 않다.올봄에도 곳곳에서 쑥뜸을 통해 뜨거움의 고통보다 훨씬 큰 대가를 수확하고 있다는 소식이 잇달아 들려온다. 현대 난치병불치병을 극복하고 새 삶의 희망과 기쁨을 얻었다는 얘기부터 정신세계의 새로운 경지를 체험했다는 사례까지 다양한 체험담들을 접하면서 자연의 보물은 역시 노력하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다.<신약>, <신약본초(神藥本草)>를 통해 인산문(仁山門)에서 제시한 유황오리, 밭 마늘, 홍화씨, 죽염, 토종 돼지, 쥐눈이콩 등 천연물의 약성이 새롭게 밝혀졌고 특히 영구법(靈灸法)으로 불리는 인산 쑥뜸법의 경우 1장 타는 시간이 5분 이상 되는 큰 뜸을 뜨도록 하는 등 그 방법의 특이성과 효과의 탁월함으로 인해 세인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우선 콩알만 한 크기의 뜸 장을 3장에서 9장가량 뜨게 하는 전통 한의학의 쑥뜸 법에 비해 큰 밤알 크기의 뜸 장을 적게는 79장부터 많게는 하루 4050장까지 뜨도록 하는 등 서로 판이한 점이 적지 않다. 쑥뜸을 접하는 이들은 대부분 중심부의 순간 최대 온도가 섭씨 700도에 달하는 높은 온도의 뜸 쑥을 맨살 위에 올려놓고 태우는 것인 만큼 그에 따른 부작용 또는 생각지 못했던 다른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그러나 이미 전국적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직접 체험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한 바 있고 인산 쑥뜸 법의 창시자인 인산 선생께서도 40년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의 몸에 직접 뜸 쑥불을 붙이셨으며 필자 역시 30년 세월 허구한 날 중완단전족삼리혈에 쑥뜸을 뜸으로써 적지 않은 건강증진 및 질병 치료 효과를 거둔 바 있다.약쑥은 지중(地中)에서 오르는 불기운과 하늘에서 비치는 볕기운(陽氣)에 의해 생겨난 영초(靈草)라 하겠다. 인체의 기(氣)가 약화되는 것을 약쑥의 불기운을 이용해 회복시키는 방법이 바로 인산 쑥뜸법이다. 인체 내의 원기가 약화되면 없던 병도 생기게 되고 원기를 돋워주면 있던 병도 맥을 못 추거나 물러가는 이치를 이해한 사람들은 인산 쑥뜸법의 불가사의한 작용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올봄에는 인산 쑥뜸법으로 우주에 충만한 생기(生氣)색소를 받아들여 만병을 물리치고 최상의 건강상태를 유지하며 자연계로부터 부여받은 천수(天壽)를 온전히 누리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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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1 23:02

조선시대 한지 갑옷을 보며

전자기기가 종이를 대신하는 페이퍼리스(Paperless)시대이고 보니 우리의 한지 역시도 한 묶음 신세의 생활문화로 변했다. 20여 년 쯤 서른 여 곳에 달하던 전주의 전통한지 제조업체는 이제 불과 6곳, 전주권으로 확대해 봐야 두어 군데를 더할 수 있을 뿐이다. 시장이 사라졌다는 사회 환경적 요인도 있지만 대부분 손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힘든 제조 여건과 한정된 생산량으로 인한 가격 경쟁력 같은 것 때문에라도 버틸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생존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져가는 현실에서 장인정신과 사명감만을 강조하며 전주한지라는 고유의 수록지(手 紙)를 계속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억지나 다름없다. 루브르박물관이나 교황청의 중요 문화재를 한지로 복원했거나 고종황제가 보냈던 칙서를 복원해 다시 교황에게 직접 전달함으로써 전주한지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높였음이 매우 자랑스럽지만 그러나 그것이 한지 수요 창출의 근본적 돌파구가 되지 못함이 아쉽다.전통한지의 원형을 지키고 쓰임새를 넓혀 보자고 명함에서부터 정부 부처의 상장이나 훈, 포장용지 등으로 사용범위를 넓혀 가고 있지만 묘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특정교과서 용지와 수묵화 작가들을 위해 전통한지를 제공하고, 조선왕조실록 복본화나 궁중의 가례도감 재현같은 기록문화유산 보존사업, 재외공관의 한지를 이용한 공간구성 사업 그리고 한지공예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 같은 것으로 활로를 강구하고 있지만 역시 수요 창출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음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전통한지의 지속적인 생산과 유통, 판매의 실효를 위해서는 결국 국가의 실질적인 정책과 투자가 절실하다는 판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닥나무의 계약재배 확대와 전주 흑석골에 조성될 전통한지 생산시설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또 지난 해 발의된 한지문화산업진흥법같은 법령의 제정 시행이 절실하고, 다른 한지관련 제안이나 논의들 역시 행사성이라는 단발 형태의 공허함에서 벗어나 명쾌한 해결책 제시로 이뤄져야 한다는 욕심이며 그 모든 것들이 새로운 수요 창출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바람을 갖는다.나아가서는 실생활과 한지의 자연스런 접목이다. 주거형태가 많이 변했음에도 최근 한지로 만든 벽지를 선호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이면에는 승방 같은 비움 또는 여백의 공간에서 무소유의 편안함을 통해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는 정서가 숨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전당 전시관에 있는 조선시대 한지로 만들어진 실물크기 갑옷 모형을 보면서도 같은 류의 생각을 해 본다. 가벼워 휴대와 착용이 용이 하면서도 조총으로도 뚫지 못하는 견고함, 한지로 갑옷을 만들겠다는 그런 선조의 지혜가 오늘의 현장에 두루 적용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기계화된 한지 제조 체계와 한지를 이용한 첨단 기능성 옷감의 실용화를 보면서 더욱 확대된 산업화를 그려보게 된다. 각종의 인테리어 소재나 식품 포장재, 닥나무에서 유효 성분을 추출해 만든 기능성 화장품 등의 개발과 사업화가 우리 전당을 비롯해서 규모를 키운 한지 제조업체에서 시도되고 있다. 전통의 비법과 한지 고유의 기능 그리고 새하얀 한지의 비움을 바탕으로 전통과 첨단이 결합하여 전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널리 유용되기를 희망한다. 전통은 그 자체로 소중하지만 한지(韓紙)가 한지(恨紙)로 자조되지 않고 세계 속으로 지평을 넓혀가야 하는 전주한지의 명예를 위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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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14 23:02

소에 대한 소고

먼 옛날부터 소는 인간의 생활에 풍족함을 가져다주는 동물이었다. 알타미라동굴이나 퐁드곰동굴암벽화에는 소가 그려져 있어 수렵생활부터 인간은 소에게서 생활의 윤택함을 기원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목축생활로 접어들면서 야생동물 중에서 소를 가축으로 길들인 것이나, 신석기시대 유물로 돌보습이 남아있는 것을 볼 때 인간은 이미 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지증왕 때 소를 이용한 농업으로 생산량이 증가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한다. 좁은 논길과 산길, 소규모의 농토를 가지고 경작을 해야 하는 우리의 생활에서 소는 꼭 필요한 가축이었다. 소는 농가의 조상이다 라는 말은 소는 살림에 매우 중하므로 조상같이 귀한 존재라는 뜻일 것이다. 이렇게 사람과 같이 살면서 사람의 손으로 길들여진 소는 언제 보아도 어린아이 같은 유순함과 어른 같은 넉넉함을 지닌 짐승이었다.소는 우직함으로 인하여 멸시와 사랑을 함께 받아온 짐승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멸시보다는 그 우직함을 더 사랑하였다. 이광수의 우덕송을 보면 소는 동물 중의 인도주의자라 하였고, 만물이 점점 고등하게 진화되어 가다가 소가 된 것이라고 칭송하였다. 그리고 소가 늙어 힘이 없어 인간을 돕지 못하게 될 때는 도살장으로 끌려가 내리치는 쇠메를 맞고 마지막 우는 울음을 이제 다 이루었도다 라는 만족의 울음이라고 하였다. 인간에게 마지막까지 피와 가죽과 뼈까지도 다 주고 가는 것도 소가 인간에게 베푸는 귀한 희생이라 할 수 있다.소는 그리움의 상징이다. 정지용 향수는 국민노래처럼 사랑을 받는다. 시인은 고향을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라고 읊고 있다. 1920년대 그림과 같은 그의 시를 생각하면 이북으로 간 시인의 삶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중섭의 그림에는 잃어버린 행복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아내와 자식을 만나고 싶은 그리움의 감정을 소에 실어 나타냈다. 소는 바다 건너에 있는 가족을 향하여 달려가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두 차례나 소떼를 싣고 판문점을 넘어 북으로 갔다. 그때 많은 국민들은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왜 일까? 한 마리 소를 훔친 돈으로 거부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에 대한 경이감, 아니면 천여 마리라는 거창한 소의 숫자, 통일에 대한 기대감,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소라는 짐승 때문이었다. 소 대신에 천 대의 자동차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간다 한들 그것은 물질과 돈에 불과 할 뿐,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실어 가는 그 소만은 못 할 것이다.사람과 함께 살아오며 애환을 같이해온 짐승 -고향의 전설을 전해 줄 것 같은, 해설피 울음을 우는 어느 실향민의 모습 같은, 문명도 모르고 빈부도 모르는 알타미라동굴의 암벽화에 나오는 소- 그 소가 새해에 큰일을 저질렀다. 김영란 법을 바꾼 것이다.김영란법이 제정되면서 농민들의 원성이 높았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소였다. 농축산물 선물비용이 5만원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소고기 소비가 위축되었다. 어쩔 수없이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김영란법이 개정되었고, 농축산물 선물금액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우직한 소가 칼날 같은 김영란법을 바꾸어놓은 것이다. 소는 김영란법도 바꾼다는 소에 관한 또 하나의 말이 생겼다. 올 설에도 소가 설음식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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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07 23:02

인과가 그리 빠를 줄이야!

참으로 안타깝다. 콩 심은데 콩 난다는 속담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호리도 틀림이 없는 인과의 진리를 굳이 외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우리나라의 대통령들은 가족이나 측근이 월권을 일삼아 떳떳하지 못한 길을 걸었고 법의 심판을 받았다. 그런 일이 되풀이 되는 것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경은 참담하다. 헌법에 대통령 임기가 5년이어서 우리는 5년마다 대통령을 뽑는다. 권세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어찌 생각 못할까. 대통령이 되는 것을 개인의 영광으로만 여겨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중요한 책무가 뒷전으로 밀리는 것인가.불과 50년밖에 안된 옛날이야기다. 생활관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할 화장실이 있던 시절, 밭에서 키우는 농작물을 사람이 먹고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다시 밭으로 돌아갔다. 자연 순환이었다. 밭두렁에는 제법 큰 거름통을 만들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거름을 삭여서 농작물에 주면 무럭무럭 자랐다.우리들은 밭에 나가 자갈을 주워내고 고랑을 만들어 정성껏 손질을 했다. 밭두렁 옆의 거름통에는 거름이 가득 채워졌다. 며칠 지나니 기어 다니는 뭇 생명들이 생겨났다. 그때 들쥐들이 거름통 위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마음대로 배를 채웠다.그 모습을 그윽히 바라보시던 스승님은 지금은 저 쥐가 벌레들을 마음대로 주워 먹으나 며칠 안에 저 쥐가 벌레들에게 먹히는바 되리라고 예언하셨다. 우리들은 스승님의 말씀 뜻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여 삼세인과가 어찌 그리 빠르리오. 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에 과연 그 쥐가 거름통에 빠져 썩기 시작하자 뭇 벌레가 그 쥐를 빨아먹고 있었다.스승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며칠 전에 한 말을 이상하다 생각했지? 나는 다만 그 기틀을 보고 말한 것뿐이야. 당시에는 거름통이 가득 채워져 있으니 쥐가 그 위를 횡행하며 벌레를 주워 먹었지만, 채소밭을 매고서는 응당 그 거름을 퍼서 쓸 것 아니냐. 그러면 그 통 속은 깊어져서 주의 없이 드나들던 저 쥐가 반드시 통 속에 빠져 죽을 것이고, 그러면 뭇 벌레의 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미리 추측한 것이지. 하시고 사람의 죄와 복에 대한 인과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배를 채우기 급급하여 인과를 읽지 못한다면 거름통에 빠진 쥐와 다름이 무엇이겠는가.전거복 후거계(前車覆後車誡). 앞의 수레가 엎어지면 뒤의 수레에 경계가 된다고 하였다. 하, 은, 주의 삼대는 오래도록 번영하였는데, 그 이유는 지난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나라는 몹시 빨리 멸망하였다. 어떻게 하여 멸망하였는지는 그 수레바퀴의 자국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그 바퀴 자국을 피하지 않는다면, 뒤에서 오는 수레는 필경 엎어질 것이다. 무릇, 나라의 존망과 다스림과 혼란의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서(漢書)에 나온다.원불교화산교당 응접실에는 작지만 귀한 서각 작품이 벽에 걸려있다. 석전 황욱 선생의 글씨다. 단구무괴아심(但求無愧我心). 다만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기를 구할 뿐이다라는 내용이다.포토라인에 서서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다고 장담 하였지만, 어느 날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며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이고 만다.행여 하늘과 땅을 속일지라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을 기만하는 사람일수록 고위직이요, 재벌이요, 권력의 실세라면 그런 세상이 난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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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31 23:02

연말까지 '처음처럼'…소원 이루기를

하루의 시간이 자시(子時)에 시작되듯이 1년의 세월 역시 자월(子月)의 한복판에 해당하는 동짓(冬至)날부터 시작된다고 보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그래서 한 해의 액운(厄運)과 질고재앙(疾苦災殃)을 물리치고 길상(吉祥)과 건강, 행복을 간구(懇求)하는 마음으로 동짓날에는 양기(陽氣)를 상징하는 대표적 식품인 팥죽을 쑤어서 온 가족들은 물론이고 이웃 사람들까지 다 같이 나눠 먹곤 한다.선대의 지혜로운 이들께서는 우주 자연(天)의 양기(陽氣)는 동짓달(子月)부터 시작되지만, 사람의 새해는 인월(寅月)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파악하여 사람 중심의 기준점을 세워 설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그에 따르면 올해 무술(戊戌)년의 경우 음력으로 정월 초하루는 양력 2월 16일에 해당한다.물론, 좀 더 높은 차원의 철학적인 의미에서는 영겁의 시간과 광대무변한 공간은 본래 시작도 끝도 없다는 것이 한민족의 세상을 처음 열었던(開天) 단군(檀君) 왕 검(王儉)의 지혜로운 가르침이고 그 내용은 천부경(天符經)에 시작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無始無終)라는 말로 요약되어 나타나고 있다.그러나 태생적으로 유한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보통사람들의 경우 순환 무단의 영속적인 시간의 한 허리를 도려내어 시작과 끝을 정하여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인생의 고귀한 시간을 잘 관리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이게 마련이다.자연현상의 시작이든, 인간 만사의 시작이든 시작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그 의미를 반감시키고 퇴색시키는 결정적 계기는 시작할 때의 간절한 마음과 비장한 각오를 초지일관 한결같이 유지하지 못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흐지부지하다가 마침내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내는 예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세계적으로 위대한 철인(哲人) 노자(老子)는 그의 저서 도덕경(道德經)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인생의 시간 관리를 그런 식으로 하면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기 어렵다는 지적에 이어 시작과 끝이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고언(苦言)을 아끼지 않았다.천 리를 가려는 계획도 발밑에서 시작되는 법이다(千里之行 始於足下) 그런데 무리한 욕심을 가지고 뭔가를 하려고 하므로 실패하고(爲者敗之) 집착할 대상이 아닌데도 집착을 함으로써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執者失之). 보통의 사람들이 하는 많은 일이 늘 거의 완성단계에 가서 실패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따라서 마지막까지 신중을 기하여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면 실패할 일이 없을 것이다(愼終如始則無敗事).-도덕경 제64장우리 인생의 시간에서 무술년 한 해를 빛나는 삶의 한 페이지로 완성하려면 부디 연초에 마음먹은 그대로 작심삼일(作心三日)이 아니라 작심 삼백육십오일(作心三百六十五日)로, 연말까지 초지일관(初志一貫) 시종여일(始終如一)한 자세를 잃지 않고 계획하였던 일을 차질없이 성취시키려는 주도면밀한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겠다.곧 다가오는 입춘(立春) 절에 이어 설날을 맞으면서 시작될 올 한해는 우리 모두 마음속의 여의주(如意珠)를 득(得)하여 소원하는 모든 일이 뜻한 바대로 원만히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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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24 23:02

수공예 비즈니스

교육장 맨 앞자리에서 열심히 강의를 듣는 60대의 한 수공예가는 인체에 무해한 옷감으로 인형 캐릭터를 개발해 한 축제에 참여해서는 수백만 원의 수입을 얻었다. 또 한 사람은 자신의 작은 업체에서 한지로 여러 조형물을 만들며 체험과 연계해 연간 억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현재 우리 전당에서 실시중인 수공예 상용화 교육 장소에서 직접 들은 얘기들이다. 수공예가로 이미 입지한 사람, 또는 그렇게 되어 보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 새로운 정보를 얻고자 강의실 열기가 늘 뜨겁다.전주에는 수제작 관련 업체가 대략 200개 정도 되고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은 600명 정도가 된다. 한복을 비롯한 섬유 관련 업체가 40% 이상을 차지하고 한지, 장신구, 도자, 목조각 등을 만드는 업체의 수공예가들이 나름대로의 제품(작품)을 만들어 내며 전통문화도시 속 한 분야의 역할을 맡고 있다.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만들어 내는 것의 대부분이 획일적인 것인데다 생계유지를 걱정해야 할 만큼 판로에 애로를 겪고 있다는 것이며 그들 종사자 중 상당수는 60대 이상의 연령층이라는 사실이다. 또 직접 판매 비율이 80% 이상이어서 가게에 사람이 드나들지 않으면 수입을 기대할 수 없어 더 좋은 수입원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지금의 직업에서 손을 떼고 싶어 한다는 것. 그러니 더는 같은 기술을 배우려 하는 사람이 없고 그 때문에 결국은 머지않아 그 맥이 끊길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전주는 기능분야 무형문화재만 24명이나 될 만큼 수공예의 전통적 기반이 풍부하다. 전통의 본질이 훼손될 것으로 우려되는 것은 잘 전수해서 그 가치가 손상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보존과 계승을 근저에 두되 동시대의 생활상과 요구에 맞게 우리의 수공예가 재창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공예는 자신만의 감성이 가장 요구되는 작업임에 틀림없으나 자신의 솜씨만을 고집하는 한계에서 벗어나 내 밖에 있는 솜씨와 정보와 지혜를 보태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수공예 분야에서도 새로운 흐름으로 확장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그런 점에서 수공예의 요즘 화두는 대개 체험과 융복합, 마케팅 등이다. 빈 공간을 잘 활용해서 색다른 체험의 기회를 만들고 소재와 디자인을 변화시켜 관심을 집중시키며 가격과 패키지에도 신경을 써 판로를 개척하자는 것 등인데 그래야 소비자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노련한 멘토의 도움도 중요할 것이고 성실성 또한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우리 전당 입주업체의 경우 전통 한옥 소제에 3D 프린팅 기술을 접목시킨 조형물로 젊은 층을 공략해 이미 억대의 매출을 넘기고 있는가 하면 음질이 뛰어 난 탄소해금을 개발하여 작금 블루오션을 공략하고 있는 이, 또 단 한 사람의 체험객에게 정성을 다한 결과 블로거를 통해 600명이 넘는 고객을 만들어 매출을 고공 상승시키고 있는 사례가 있다. 부(富)를 추종하자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부(富)와 함께 내 일의 자긍심을 가져온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오늘날 천만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는 우리 전주 한옥 마을의 인기 그 저변에는 시대 흐름에 맞춰 도시 속에서 잘 변화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수공예도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 속에서 그런 변화의 과정이 절실하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오태수 원장은 KBS 전주방송총국장백제예술대학교 방송연예과 교수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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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17 23:02

새해의 언어

언어와 사고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사소통을 하고 사고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그러므로 언어가 신중하고 깊으면 사고도 깊다고 할 수 있다. 이글에서는 우리 선인들의 언어 표현에는 어떤 사고가 나타나 있는가를 살펴보고, 새해에는 어떤 언어로 바람직한 생활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우리 선인들은 많은 역사를 거쳐 오는 동안 문학적 수사로 우리의 언어를 꽃피워왔다. 그 중에서 속담은 오랜 세월 동안 선인들의 삶의 모습과 애환을 통해 얻은 학습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속담은 생활의 체험으로 이루어진 관용적 표현이기 때문에 그 속에는 우리 선인들의 생활과 의식이 축적되어 있다. 속담사전을 보면 말에 관한 속담이 제일 많이 나온다. 그 이유는 우리는 하루도 말을 않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거나 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속담이 있다. 속담은 어떤 개념이나 사실을 다른 대상에 빗대어 풍자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이 속담에도 함축적 의미가 담겨있지만, 전자는 언어가 지닌 훈훈한 인간적 감동을, 후자는 언어가 지닌 인간적 난폭성을 풍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새해에는 혀 아래 도끼보다는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보은의 해가 되기를 희망한다.우리 선인들은 한해가 시작되는 날을 신일(愼日)이라 하여 말을 삼가고 몸가짐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였다. 나의 말로 인하여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내 탓으로 욕을 먹으면 일 년 내내 순탄치 못한 일들이 생긴다하여 근신의 날로 삼았다. 말로 받은 상처는 치유하기가 힘들다는 것도 우리 선인들은 알고 있었다. 어른들은 덕담으로 새해의 빛을 열어주고 아랫사람들은 세배로 그 언어에 보답하였다. 그 분들은 언어에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보낸 덕담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새해에는 이러한 힘이 있는 신일의 언어를 많이 쓰면 좋겠다.우리 선인들은 말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었다. 정화수를 떠놓고 소원을 빌거나 축문을 읽으며 하늘에 소망을 기원했다. 먼 길 가는 사람에게나 시험을 치르러 가는 사람에게는 험한 말이나 맺힌 말을 삼갔다. 어린 아이에게도 금기시된 말을 하지 않았다. 입춘에는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입춘방을 붙여 놓는 것도 말에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의나 악의에서 나온 독 묻은 말은 화살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간다는 엄청난 언어의 신비함도 알고 있었기에 우리 선인들은 더욱 말을 아꼈고 다듬어 썼다. 새해에는 이처럼 언어의 신비한 힘을 믿는 소망스런 말을 쓰면 좋겠다.요즈음은 막말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인터넷이나 SNS에서 올라온 말들로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많다. 때로는 이로 인해 법의 심판을 받는 연예인이나 낙마하는 정치인이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들은 말에는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과 독 묻은 부메랑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언어는 사고 과정에서 인식의 틀 또는 세상을 보는 창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어떠한 모양의 틀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지는 물건이 달라지고, 어떤 색깔의 창을 통해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대상의 색깔이 달라지듯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사고도 달라진다. 새해에는 이와 같은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이해하여 정갈한 언어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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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10 23:02

난세를 무사히 살아갈 비결

무술년(戊戌年)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해 우리는 다사다난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일을 겪고 새날을 맞았다. 권세와 명예, 재력과 건강의 무상함을 극명하게 바라보며 보낸 세월이었다.새해가 되면 언제나 떠오르는 법문이 있다. 원불교 교조이신 소태산대종사가 세배를 받고 답례로 준 난세를 무사히 살아갈 비결이다.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부드러운 것이 제일 귀하고(處世柔爲貴), 단단하고 굳셈은 재앙의 근본이니라(剛强是禍基). 말할 때는 어눌한 듯 조심히 하고(發言常欲訥), 일 당하면 바보인 듯 삼가 행하라(臨事當如痴). 급할수록 그 마음을 더욱 늦추고(急地尙思緩), 편안할 때 위태할 것을 잊지 말아라(安時不忘危). 일생을 이 글대로 살아간다면(一生從此計), 그 사람이 참으로 대장부니라(眞個好男兒).라는 선현(先賢)의 시(詩) 끝에 이대로 행하는 이는 늘 안락하리라.라고 첨언해 주셨다.이 시는 월파 유팽로(月波 柳彭老 15541592)의 한시로 추정된다.유팽로 선생이 성균관에 재직하던 중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고 서울을 떠나 고향인 옥과현으로 돌아가던 4월 20일 순창의 대동산 앞들에서 500여 명의 군사들을 규합하여 임진왜란 최초로 의병의 기치를 올렸던 분이다. 그 후 유팽로 선생은 전라도 연합의병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7월 10일 금산 전투에서 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고경명 장군을 치려는 적장의 칼을 대신 받음으로써 39세로 순절하셨다.그런데, 정말 명쾌하지 않은가! 반어법으로 세상을 살아갈 비결을 밝힌 내용이 400여년을 지난 오늘에도 한 치의 어김이 없다.세상 사람들은 강하고 굳세기를 원한다. 강하고 잘나야 사람들에게 대접받고,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부드러운 것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연약한 물이 바위를 뚫고, 봄바람이 동장군 보다 더 힘이 세며, 부드러운 혀가 이빨보다 오래 남아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결국 오래 남아 있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달변이나 웅변보다도 더듬거리면서 하는 진정어린 말이 사람을 쉽게 설득하는 힘이 있다. 말을 삼가고 행동을 삼가면 인간관계의 성공이 그 가운데 있다.급할수록 돌아가라. 돌아가는 길이 되려 지름길이 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두 번쯤은 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급할수록 그 마음을 더욱 늦추고, 편안할 때 위태할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우주가 음과 양이 서로 관계하는 이치를 따라 존재하는 것과 같이 인간에게는 선과 악의 인과보응으로 존재하게 되고, 천지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인간은 생로병사로 변화하면서 끝없이 돌고 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곳에 있으면 모든 것을 놓고 안일에 빠지기 쉬운 것이 바로 사람이다. 험준한 산길에서는 오히려 잘 넘어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넘어지기 쉬우며, 역경을 딛고 성공하기는 쉬우나 순경에 방심하지 않기는 어렵다는 것이 바로 이 안시불망위(安時不忘危) - 편안할 때 위태할 것을 잊지 말고 미리 준비하라는 것이다.그러나 아무리 좋은 말씀도 몸소 실천하지 않으면 허공에 뜬 말씀에 불과하니, 무술년 새아침에는 이 비결을 마음에 새겨 난세를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황인철 교무는 원불교신문사 사장과 원음방송 사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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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03 23:02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

블루마블이라는 보드게임이 있다. 주사위를 굴려 말을 이동하고 게임판의 땅을 최대한 많이 사들이고 건물을 올린다. 상대 플레이어가 자기 땅을 밟으면 임대료와 비슷한 통행세를 받고 상대가 돈을 다 잃고 파산하게 만들면 이기는 게임이다. 이 게임의 원조는 모노폴리(독점)라는 게임인데 이 모노폴리에도 원조가 있다. 바로 1904년 만들어진 지주게임(The Landlords Game)이다. 지주게임은 독특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다.엘리자베스 매기는 당시 미국에서 토지사유제로 인해 나타나는 폐해를 고발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 게임을 만들었다. 땅을 많이 소유한 플레이어가 결국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파산하는 게임의 내용은 당대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런 폐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토지공개념 사상 또한 알리고자 했다.토지공개념이란 무엇일까. 토지는 모든 국민들의 국토라는 특성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재산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모두 갖는데 이 중 국토로서의 공공성(公共性)을 강조하는 것이 토지공개념이다. 이 토지공개념은 최근 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언급하면서 더욱 알려졌는데 그 사상적 기원은 1800년대 후반의 경제학자인 헨리 조지까지 올라간다. 헨리 조지는 당시 뉴욕에서 도시는 성장하는데 빈민의 삶은 더욱 열악해지는 모순을 바라보며 그 원인이 어디에서 왔는지 깊이 고민하였다.그 고민의 결과로 저 유명한 진보와 빈곤이라는 저서를 집필하였고, 그 책에서 그는 토지소유자들이 도시의 발전으로 인해 창출되는 부의 대부분을 불로소득으로 취득하게 되면서 가난한 이들은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곧 사회적 불평등을 양산하는 핵심은 토지에서 발생하는 소득의 전적인 사취라는 것이다. 헨리 조지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토지가치세를 부과하여 불로소득의 일정 부분을 국가에서 환수할 것을 제안한다.최근 토지의 공공성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다. 헨리 조지 포럼이 국회의원과 함께 지대개혁 토론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개헌을 앞두고 시민단체가 모여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시하자는 토론회를 열기도 한다. 사회가 성숙해져가면서 공적인 자원, 즉 모두의 것의 공공성을 회복시키는 것에 사회가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공공성의 회복은 우리 사회의 오랜 병폐인 승자독식 문화에 대한 저항이기 때문이다. 공공성을 회복해야 할 모두의 것은 토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의 대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지대는 여러 가지 모습을 띠고 있다. 토지 뿐 아니라 석유, 가스, 광물, 석탄 등의 천연자원의 가치에 지대가 부과될 수 있다. 그 밖에도 지대는 독점을 비롯한 다양한 원천에서 발생한다. 한국 사회 공공성의 회복을 위해서는 모두의 것에 대한 모노폴리(독점)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를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사람들이 옷깃을 단단히 여밀 만큼 날이 추워지니 거리 곳곳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빨간색 자선냄비와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 즈음에 공공성의 회복에 대해 생각해본다. 예수는 어떤 시대를 살아갔던가? 예수가 꿈꾸었던 하나님 나라는 무엇이었을까? 이어지는 고민과 성찰 속에 그가 가르쳐준 기도의 한 구절을 한 글자씩 되짚어본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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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2.27 23:02

전주가 조선의 4대 길지(吉地)

영조 33년(1757) 홍양한의 <여지도서>에 덕진연지(德津蓮池)는 덕진지(德眞池)라고도 하는데 전주관아 북쪽 10리에 있다라면서 고을 땅의 형세가 서북쪽 방향이 텅 비어 전주(全州)의 땅기운이 새어나간다. 고로 서쪽 가련산(可連山)으로부터 동쪽 건지산(乾止山)까지 큰 둑을 쌓아 새어나가는 땅기운을 멈췄다라 했다. 건지산은 마이산으로부터 와 전주부의 진산(鎭山)이 되었다. 부의 남쪽 3리에 곤지산(坤止山), 안산(案山)으로 부의 남쪽 3리에 완산(完山)이 있는데, 모두 고덕산(高德山)으로부터 내려왔다고 했다.이규보는 <남행월일기> 속에 전주에는 중자산(中子山)이란 크고 웅장한 산이 있는데 부의 남쪽 남천너머 나지막한 완산의 이름을 따서 전주의 지명을 삼았는지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 하였다. 본디 백제 완산은 비사벌(比斯伐), 비자화(比自火), 온다라, 온드르라 했고, 신라 진흥왕 16년(555)에 완산주, 경덕왕 15년(756)에 지금의 전주로 바꾸어 9주(州)를 두었다.덕진지는 그 모양이 연꽃형상이고 건지산은 연잎모양이어서 석물이 있으면 물속에 가라앉음으로 조선 태조 이성계의 21대조 신라 사공(司空)공 이한(李翰)의 묘소가 있는 조경단에는 돌비나 상석 등이 일체 없다. 본디 전주는 태조의 본관향임으로 전라감영터를 정할 때 명나라로부터 두 번씩이나 퇴를 당하였지만, 가련산(可連山)을 그려 보내고서야 인정을 받았다는 설화가 고려대 나옹(懶翁)과 무학이 남긴 <금감록(金鑑錄)>, 혹은 <삼이록(三移錄)>의 비기( 記)에 전해온다. 전주는 개성, 평양, 한양과 더불어 조선의 4대길지로 손꼽았다.특히 덕진연못의 연꽃은 조선건국이념인 유교의 성리철학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성리학의 태두 주돈이(1017-1073년)가 여산 연화봉(蓮花峰) 아래 염계(濂溪)에서 남긴 <애련설(愛蓮說)>이 그것이다. 진나라 도연명은 홀로 국화를 사랑했고, 당나라 이래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사랑하였다. 나는 유독 진흙 속에서도 더러워지지 않고, 요염하지 않으며,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 맑고 오뚝한 모습으로 깨끗하게 서 있어 좋아한다는 연꽃설이 고산의 <오우가> 중 대나무의 속성을 노래한 것과 같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킨 거며 속은 어찌 비었느냐/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라는 무욕(無慾)과 정직(正直), 불변(不變)의 선비적 고결(高潔)성이 짙게 풍겨난다.태종 11년(1410) 전주, 경주, 평양에 태조의 어진전(御眞殿)을 세웠는데, 세종 때 경기전이라 개칭하였다. 영조 때 건지산 조경단에 조경묘(肇慶廟)를 세워 사공공 이한(李翰), 동비 경주김씨 위패를 모셨고, 고종조에 대한조경단(大韓肇慶壇)이란 고종의 친필석비를 세웠다. 발산에 목조 이안사의 유허비, 오목대에 태조의 주필유지비를 남겨 전주가 조선조의 본향임을 웅변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완전한 땅, 우리 전주가 조선 4대 길지(吉地)라는 옛 명성을 되찾았으면 얼마나 좋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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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2.2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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