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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처방전

▲ 황인철 원불교 화산교당 주임교무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하나. 남산아래 구리개골에 약방주인 박 서방은 가끔 감기나 체증에 한두 첩, 첩약이나 팔아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남루한 차림의 남정네가 약방에 들어서더니 다짜고짜로 안방 아랫목에 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다. 사흘 밤낮을 내리 자더니 긴 하품을 하고 일어나 앉았다. 박 서방이 개다리소반에 밥을 차려 들여보내니 먹고는 또 아랫목을 차지하였다. 그날 저녁 어스름에 다급히 할머니가 뛰어 들더니, 손자가 갑자기 눈을 뒤집고 까무러쳤으니 살려달란다. 재촉도 재촉이려니와 진맥도 못한 상황에 무슨 약을 쓸지 난감하였다. 그때 안방에서 곽향정기산 두 첩!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박 서방은 귀를 의심했다. 난데없이 소화불량이나 곽란에 처방하는 흔한 약을? 그것도 겨우 두 첩? 잠깐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하고 곽향정기산 두 첩을 얼른 지어 할머니 손에 들려 보낸 후 걱정으로 밤을 보냈다. 다음날 새벽, 할머니는 만면에 웃음 짓고 백배 인사했다. 신통하게도 한 첩을 먹이니 아이가 금새 호흡이 평온해지고 새벽에 마저 먹이니 씻은 듯 나았다는 것이다. 박 서방은 어리둥절한데 안방 노인네는 태평하기 그지없다. 그날, 조용하던 약방에 젊은이가 뛰어 들어오면서 아내가 산통을 겪고 있는데 아이는 나올 기미가 없고 산모는 숨이 넘어가니 살려내라고 아우성이다. 박 서방이 난감해하고 있을 때, 안방에서 곽향정기산 세 첩!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이번에도 하는 수 없이 곽향정기산 세 첩을 지었다. 산통에 소화제라니. 그런데, 다음 날 남정네가 순산했다고 인사를 왔다. 이제 동네 밖까지 입소문이 났다. 웬만하면 구리개골 약방으로 가 보라고. 박 서방은 계속해서 곽향정기산만 두 첩이고 세 첩이고 지어 주면 만병 통치였다. 약방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러던 어느 날, 안방 노인네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박 서방은 약방을 걷어치우고 그를 찾아 헤매다 천신만고 끝에 상봉하여 스승으로 모시고 신의(神醫)가 되었다. 이 이야기를 어린 시절에 읽었는데, 신의가 되는 과정은 기억에 없고 곽향정기산 두 첩!만 뇌리에 남아 있다. 소태산대종사는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고 하셨다. 이 법문을 대할 때마다 나는 곽향정기산이 생각난다. 소태산대종사가 인생 상담을 하면 이런 처방을 내리지 않았을까? 대종사님! 친구들이 괴롭혀요.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를 하루에 다섯 번 실행해라! 대종사님! 저는 며느리가 하는 짓이 미워요. 그래?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를 하루에 열 번 실행해라! 이 처방전은 만병통치다. 감사생활하자는 것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를 찾자는 것이다. 감사할 일에 감사하는 것은 쉽고 당연하지만 원망할 일에서 감사를 찾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소태산대종사는 중생들은 열 번 잘해준 은인이라도 한 번만 잘못하면 원망으로 돌리지만 도인들은 열 번 잘못한 사람이라도 한 번 잘하면 감사하게 여긴다. 중생들은 은혜 속에서도 해(害)를 찾아 난리를 불러오고, 도인들은 해에서도 은혜를 발견하여 평화를 불러온다.고 하셨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소소한 일상에 만족하고 어떤 일에서도 감사를 찾으며 이웃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살면서 다생겁래에 쌓인 무거운 업력도 벗어내고 몸과 마음이 닿는 곳마다 복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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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9 20:55

'지족의 삶'이 건강을 부른다

▲ 김윤세 전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인산가 회장 일없이 사는 사람 오막살이집 아무도 찾는 이 없네 깊은 숲속이라 새들이 모여들고 너른 시내엔 물고기들 노니네 아이 데리고 산 과일 따고 아내와 함께 언덕 밭을 맨다 집안에 무에 있겠는가? 다만, 몇 권의 책이 있을 뿐 茅棟野人居 門前車馬疎 林幽偏聚鳥 谿闊本藏魚 山果携兒摘 皐田共婦鋤 家中何所有 唯有一狀書 중국 당나라 때 전설처럼 살다가 기이한 일화와 주옥같은 시 300여 수를 남기고는 홀연 사라져버린 한산(寒山)의 시다. 평이한 문체와 꾸밈없는 표현도 더없이 좋지만, 그 잔잔한 시어 속에 은연 중 드러나는 무욕(無欲)의 삶의 자세는 권력이나 명예의 달콤한 유혹에 개의치 않고, 넘쳐나는 지혜의 빛을 갈무리하여(和其光) 풍진 세상을 한평생 야인으로 담담하게 살아가는(同其塵) 질박한 모습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꾸미거나 다듬지 않은 질박한 모습으로 자연과 하나 되어 세상사를 잊고 한가롭게(無事自閑) 욕심 없이(無欲) 자족(自足)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21세기 급류 초입의 한 모퉁이에 서서 나아갈 방향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 동분서주하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 적지 않으리라. 무엇이 사람을 병들게 하는가. 마음도, 몸도 피로에 지치고 스트레스에 골병들고 병마의 고통에 신음하게 되는 근본 원인은 진정 무엇일까? 질병의 원인에 대한 시각과 견해는 동서 의학자 간에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지만 대체로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한 감염과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른 여러 가지 요인, 즉 환경호르몬에 오염된 음식섭취, 운송수단 발달에 의한 운동 부족, 대기수질오염,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 지나친 음주흡연, 수면 부족, 피로 누적 등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이를 요약하여 설명하자면 모든 질병의 근저에는 유위(有爲)와 유욕(有欲), 유사(有事)의 근원적 병폐가 자리하고 있다 하겠다. 좀 더 생산성효율성을 높이고 편리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인위(人爲)인공(人工)조작(操作)의 산물이라 할 각종 문명의 이기들이 대거 쏟아져 나옴으로써 많은 이익과 편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지만, 신체 각 부위의 퇴화와 균형 상실, 부조화를 초래하고 환경공해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예기치 못했던 병마의 잇따른 출현을 초래하여 적지 않은 희생과 피해를 낳기도 하였다. 자연을 잃어버린 사람들, 자연환경을 파괴하면서 머지않아 부서지거나 부수어야 할 거대한 건축물과 구축물들을 끊임없이 건설하는 사람들. 금세기에 자행한 자연 파괴행위의 과보(果報)는 지금 세대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고 한두 가지 대가로 그치지도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앞선다. 스스로 번잡스러운 일과 인연을 만들어 누에가 제 몸에서 실을 뽑아 고치 속에 자신을 가두듯 스스로 만든 그 속박의 굴레와 번민으로 인해 병마를 자초하지 말고 무사자한의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할 필요가 있겠다. 그것이 바로 재산과 명예권력을 갖기 위한 세속적 욕망 추구를 자제하고 만족할 줄 아는 참된 부(知足者富), 죽어도 사라지지 않을 훌륭한 업적과 이미지를 남겨 영원히 사는 참된 수명(死而不亡者壽)을 확보할 수 있는 바른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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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2 18:49

민생 살리는 길이 나라다운 나라의 시작

서양렬 전북희망나눔재단 운영위원장 정권이 바뀌고, 나라가 변해가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평화를 통한 희망이 움트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비정상이 정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제대로 보이지 않던 것이 반듯하게 보이게 되고, 수 십년을 발목 잡아오던 불안전한 휴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변해가고 있다. 모두가 환영하고 기대할 만한 일이다. 꼭, 이번 기회에 종전이 선언되고 평화체제가 완전히 구축되길 온 맘으로 기대한다. 평화가 일상이 된 세상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계기임에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제이다. 이 모든 일들을 이끌고 계시는 분들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묻는다. 정권이 바뀌고, 내 삶이 바뀌었는가? 정권이 바뀌고, 서민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가? 정권이 바뀌고, 우리 삶은 왜 여전한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적폐청산을 통해서 새로운 나라를 기대했지만 여전히 내 삶은 그대로이고. 서민의 삶은 그다지 변함이 없고, 여전히 희망을 꿈꾸기에는 너무나 미약한 상황이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우리는 여전히 관람하고 바라보고 있다가 지쳐가고 있다. 언제쯤이나 되어야 제대로 된 나라에서 국민의 삶이 나아지는 꿈을 가질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 1년에 대해서 경제 정책 전문가들은 SWOT 분석을 통해서 강점, 약점, 기회, 위협요인을 분석하였다. 강점은 축전된 기술력과 우수한 인적자원, 중소벤처기업성장, 양호한 거시지표, 정부의 안정감이다. 약점은 일자리문제, 구조조정지체, 수출경쟁력 약화, 저출산고령화, 사회경제적 양극화, 지나치게 높은 대외 의존도로 분석했다. 기회는 남북관계개선, 동남아 신흥시장부상,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분석했으며, 위협요인으로는 중국의 추격, 미국 발 보호무역주의와 통상마찰, 국제경쟁 격화 등을 지적했다. 분석결과에 비추어 보아도 여전히 우리는 서민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문제가 매우 취약한 약점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일자리 및 사회경제적 양극화 문제는 지난 1년 동안 매우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 야권의 평가를 100%로 동의할 수 는 없지만, 민생을 챙기는 일을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밀고 나가야하며, 소득주도의 성장을 서민들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도록 하기 위한 전 방위 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취임 1주년 기념사에서 국민의 삶으로 보면 여전히 그 세상이 그 세상 아닐까 싶다고 밝히셨던 것처럼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 그래서 적어도 이번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서민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진지하게 정책을 제시하고 답을 찾아나가길 기대해본다. 허울 좋은 일자리 숫자로 시민들을 현혹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기업들의 기를 어떻게 살릴 것이며, 서민들의 일자리문제, 일하는 사람들의 소득성장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주길 기대해본다. 적어도, 정권이 바뀌니 내 삶도 달라졌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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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05 18:37

봄날에 그리는 그림

▲ 정군수 석정문학관 관장 427 남북정상회담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장면은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이다. 두 정상은 손을 잡기도 하고 어깨를 맞대기도 하며 판문점 도보의 다리를 걸었다. 세상의 눈과 귀가 판문점으로 쏠렸지만 무성필름처럼 두 사람 대화는 들리지 않았다. 파란 페인트가 칠해진 오십 미터 도보의 다리를 걸어 두 정상은 마주 앉았다. 하얗게 핀 꽃도 보였다. 따라온 북한의 기자를 가라고 김 위원장이 손짓하였다. 단 둘의 만남, 일대 일의 만남. 우리는 이것을 독대라 하였던가. 두 정상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 정착할 때부터 쓰던 우리말로 서로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다. 통역관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밀담이었다. 그 두 정상이 건넨 말들은 무엇일까. 들리지 않아서 비밀스럽고, 비밀스러워 더 큰 의미로 전달되는 저 밀담의 내용은 무엇일까? 세상이 다 드러나는 백주대낮에 수많은 카메라를 불러놓고, 카메라로 찍히지 않는 둘만의 소리로, 어떻게 하면 알 것도 같은, 알아도 도무지 형상화하기 어려운 비밀을 두 정상은 그 곳에서 만들어냈다. 건곤일척의 담론이 아니라도, 한 촌부의 이야기라도 좋았다. 도보다리에서 두 정상의 만남은 구어체로 풀어내기 힘든 정치적 상징이었다. 드라마에서는 도저히 연출할 수 없는 역사의 한 획을 두 정상은 서슴없이 긋고 있었다. 북쪽의 찬바람이 가슴을 뻥 뚫고 남으로 내려오듯, 아니 남쪽 더운 바람이 DMZ를 지나 북으로 치닫듯, 그 정치적 상징은 크고 위대해 보였다. 열강들 틈에서 작고 초라했던 두 동강난 한반도가 광개토대왕 때처럼 커보였다. 남루를 걸치고 살았던 동포의 자존심이 한 순간 살아나는 듯했다. 들리지 않는 소리가 판문점을 지배한 시간은 사십 분, 그 시간은 가장 찬란한 빛과 가장 질긴 그늘을 날금과 씨금으로 해서 짜낸 비단이었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육십 여년의 길고도 먼 시간을 사십 분이라는 시간으로 압축하여 짜낸 피륙이었다. 그 비단은 우리 후손들이 이 땅에서 누리고 살아갈 시간이며 세월이었다. 소리가 있었다. 두 정상의 무성필름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낮말을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했던가. 훤한 대낮, 꽃그림자 속에서, 풀숲에서, 나무위에서 배경음악처럼 새소리가 들렸다. 공개된 비밀장소에서 두 정상의 밀담을 새들은 알고 있었을까. 알아도 모른 채했을까. 배경음악은 들리는데 두 정상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조류학자는 그 곳에서 열세 종류의 새소리가 들렸다 한다. 꿩, 박새, 청딱다구리, 직박구리, 산솔새. 새들에게는 휴전선이 없으니 남과 북이 없다. 어디 남한의 새가 있고 북한의 새가 있으랴. 그들의 하늘은 자유의 하늘이고 평화의 하늘이다. 새들은 DMZ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면 남북을 오고간다. 새들 뿐이랴. 풀꽃들도 바람에 풀씨를 날려 남북을 오고간다. 그 하늘은 미국의 하늘이나 중국의 하늘이 아니라 우리의 하늘이다. 조류학자가 굳이 새소리를 찾아서 열거한 것은 통일에 대한 비원이 서려있는 우리의 마음을 알아서 일까. 그렇게 해서 봄날은 갔다. 그 뒤 5월 26일 판문각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보물상자 같기도 하고 판도라상자같기도 한 내용들이 쏟아진다. 평화협정은 정치적, 국제법적으로 평화를 보장해주는 가장 확실한 분쟁 종식 방법이지만, 산은 험하고 물은 깊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로 위로를 하고 있지만 하늘에는 예측할 수 없는 비구름이 있고 햇볕이 있어 언제 천둥 번개가 치고 볕이 뜰지 모른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경천동지할 대타협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일장춘몽이라든지, 남가일몽이라는 말이 오늘의 한반도에 다시없기를 두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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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29 18:46

손해 보거라

▲ 황인철 원불교 화산교당 주임교무 그동안 직위 때문에 가끔 결혼 주례를 섰다. 너무 젊은 나이에 주례를 서면 안 된다는 모친의 지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후진들의 주례를 맡은 것은 인생 선배로서 격려와 조언을 주고픈 마음이었다. 얼마 전 주례를 맡게 된 신랑 신부와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행복한 결혼생활이 그 주제였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의 꿈이니까. 먼저 신랑에게 물었다. 직장 동료 중에서 가장 늦게 결혼하는 거지? 또래 중에서는 가장 늦게 결혼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동료들의 결혼생활을 지켜봤을 것이다. 이제 자신의 결혼생활을 동료들과 비교하는 일이 생길 것이고, 그건 아마 신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먼저 결혼 한 오빠와, 주변의 인연들의 삶을 지켜봤을 테니 자연스레 자신과 비교를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로 비교하지 말자는 조언을 해 주었다. 저 사람과 나를 비교하고, 내 남편과 남의 남편을, 나의 부인과 다른 사람의 부인을, 그리고 내 상황과 다른 이의 상황을 자꾸 비교하는 데서 불행은 시작하는 것이다. 비교기준이 높을수록 불행의 심도는 그에 비례한다. 동기 부여를 벗어 난 비교는 갈등과 대립을 양산할 뿐이다. 행복하려면 상처 되는 비교는 시작도 말고 둘이 손 꼭 잡고 성실하게 두 사람의 길을 가는 것이다. 두 사람에게 물었다. 이번 결혼은 누가 이익을 보았느냐고. 얼른 신랑이 대답 했다. 이번 결혼은 제가 이익을 크게 보았습니다. 신부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이렇게 어른들이 좋아하실 정답을 이야기해요. 그래서 나는 두 번째의 조언으로 손해 보는 삶을 살라고 해주었다. 원불교를 창건하신 소태산대종사의 삶에 대한 셈법은 조금 달랐다. 오는 것이 곧 가는 것이 되고, 주는 것이 곧 받는 것이라는 셈법은 이해하기는 쉽지만 실행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쉬운 셈법으로 손해 보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진리는 반드시 그 손해에 대해서 작은 보상을 해 주실 것을 믿으며 살라는 것이다. 그 작은 보상이 늘 마음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 다른 가문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다. 두 가문은 전혀 다른 문화와 가풍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신랑과 신부는 서로 상대편의 문화와 가풍을 이해하려 노력해야한다. 두 가문의 접점은 이 두 사람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다른 가족 어느 누구보다 상대편의 가문을 이해하는 데 노력해야한다. 오로지 본가의 가풍을 고집하면 불화의 씨가 되기 때문이다. 신랑은 매우 과묵하면서도 배려심이 많은 청년이다. 신부는 매우 활달한 성격이다. 이 두 성격을 장점으로 조화를 이루면 좋은 가정을 이룰 수 있다. 그것은 상대를 수용하고 이해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서로 상대방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다. 신랑은 좋은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만능 스포츠맨으로서의 꿈도 있었다. 신부도 음악을 전공하고 예술치료의 장을 마련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서로 꿈을 이뤄주는 보조자로, 든든한 후원자로 살아가기를 부탁했다. 배우자의 성공이 바로 자신의 성공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최초의 단위인 가정을 이루는 신랑과 신부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많이 있지만, 이 네 가지를 간곡히 부탁한다며 저녁식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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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22 19:21

'인물 됨됨이와 능력'이 관건이다

눈 덮인 산야를 걸을 적에는 절대로 어지러이 걸으면 안 되리라 오늘 걸어간 나의 발자취는 뒤에 오는 이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蹟 遂爲後人程 ▲ 김윤세 인산가 회장전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오늘날의 서울대학교에 해당하는 조선조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유생(儒生) 몇 명이 지리산 구경을 왔다가 그중 한 명이 뜻한 바 있어 상경(上京)을 포기하고 제도교육과는 거리가 먼 구도(求道)의 길로 들어선다. 당시(서기 1540년 무렵) 20대 초반의 그 청년은 각고의 수행 노력을 기울인 끝에 마침내 도(道)를 성취하여 당대의 명망(名望)을 한 몸에 받는 정신적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되었고 뒷날 임진왜란(서기 1592년)이 일어나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울 때 어명(御命)에 의해 의승병(義僧兵)들을 모병(募兵)하여 바람 앞의 등불 같았던 나라의 운명을 돌려놓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그는 보통 서산(西山)대사라는 별호로 더 많이 알려진 조선 중기의 고승 청허 휴정(淸虛休靜) 선사로서 80 평생의 거룩한 발자취가 청사(靑史)에 빛나는 존재이다. 이러한 청허 선사가 자기 삶의 철학의 핵심을 스무 글자로 축약하여 빚어낸 위의 시 한 수는 420여 년 세월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하여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잔잔한 감동을 주면서 동시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이 시의 메시지에 부합하는 올곧은 삶의 발자취를 남긴 민족의 훌륭한 지도자 김구(金九) 선생께서 평생 애송하고 즐겨 휘호로 남겼던 까닭에 어떤 이들은 이 시를 김구 선생께서 지은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오는 6월 13일, 광역기초자치단체장, 도의회 및 시군의회 의원 선출 등의 선거로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국을 맞고 있는 지금 우리 각 지자체의 도민, 시민, 군민들은 적지 않은 후보들의 면면을 잘 살피고 그들의 지금까지의 행적과 앞으로의 정책 구상, 내 건 공약의 실현 가능성 등을 종합하여 훌륭한 일꾼을 뽑아야 하는 중차대한 판단과 선택을 앞두고 있다. 일꾼 잘못 뽑아 도나 시군 지역의 발전이 지연되거나 궁극적으로 피해를 보는 일이 없어지려면 내용보다 간판을 중시하고 인물 됨됨이와 능력보다는 끼리끼리 나눠 먹는 패거리 문화와 지역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반드시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이고 구성원들의 능력과 팀워크이다. 그런데도 아는 사람 찾고, 친한 사람 우선이고, 같은 지역 사람끼리 어울리고 하면서 인물됨과 능력이라는 본질을 외면해 국가나 지역사회발전의 저해를 야기하고 국제경쟁력의 약화를 스스로 초래하는 어리석은 짓들을 거리낌 없이, 부끄러움 없이 반복해온 과오를 이번 선거부터라도 제발 되풀이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적어도 나라 발전에 전혀 도움 되지 못하는 이러한 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는 후보만이라도 절대 발붙이지 못하도록 올바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겠다. 청허 선사가 시를 통해 이야기한 것처럼 제 인생의 행로를 떳떳하고 바르게 살아온 사람, 세상에 큰 업적을 남길 수 있는 유능한 후보자들을 잘 가려내 빛나는 한국을 건설하는 중차대한 일에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잘 행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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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15 18:47

고령사회준비위원회를 설치하라

▲ 서양렬 전북희망나눔재단 운영위원장 우리사회가 본격적인 고령사회 진입과 노인 인구 천만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통계청이 발간한 2017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707만6000명(13.8%)을 기록해 노인인구가 14%를 넘어서는 고령사회로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극심한 인구감소와 노령화로 2026년에는 노인인구가 1,083만명(20.8%)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이며, 2030년 1269만명(24.3%)으로 두배 이상 증가한 후, 2040년이 되면 1650만명(32.3%)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2040년에는 전체 인구 3명중 1명이 노인으로 예측되고 있고, 인구의 30%가 노인인 사회가 쉴틈 없이 밀려오고 있다. 우리 지역의 경우에는 2016년 34만 1203명으로 18.3%에 이며, 2020년에는 21.5%, 2025년에는 25,7%, 그리고 2030년에는 29.8%로 30%에 접근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고령사회로의 진입에 대해서 큰 위기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수없이 많은 학자들과 전문가들이 고령사회를 체계적으로 준비하라고 제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와 같다. 베이비부머 세대(1955년에서 1963년까지)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되면서 고령자의 경제문제, 여가문제, 일자리, 사회참여 등의 문제가 폭발적으로 증가 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적절한 정책적 고민과 미래에 대한 준비는 여전히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심지어 지난 정권 10년 동안은 인구정책 위주로 고령사회 정책을 바라보면서 고령사회로의 진입을 위한 준비, 고령사회로 인한 사회구조적 변화, 연금정책, 노인연령조정 등은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서 어떤 논의도 진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한 느낌마저 든다. 아직도 우리는 10년 뒤의 우리사회의 모습을 그려보지도 못하고 있으며, 향후 20년 뒤 우리의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는 누구도 상상하려 하지 않는다. 가까운 일본도 100세대 위원회와 정년연장, 연금조정, 노인연령조정 등에 대한 논의를 다양한 방향에서 논의하고 있지만 우리는 논의 자체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노년을 맞이할 것인가 ? 여전히 개인의 문제이다. 어떤 고령사회로 만들어 갈 것인가 ?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고령사회로 나아가는 길. 먼 나라 가까운 일본처럼 초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길. 불과 13년이면 찾아온다.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다.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이 없다. 이제라도 고령사회의 산업구조, 사회구조, 생태적 변화 등에 대해서 전 사회적인 대책 마련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고령사회준비위원회로 신속하게 재편해서 나이 들어가는 것이 재앙이 아니라 축복인 사회를 함께 만들어갈 준비를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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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08 19:20

무궁화꽃 백리길

▲ 정군수 석정문학관 관장 전주 군산 간 26번 국도를 번영로, 전군도로, 전군가도 등으로 부르고 있다. 이 길은 처음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하고자 1908년에 일제가 만든 신작로이기도 하다. 전군간 자동차 전용도로가 나기 전에는 전주, 익산, 김제, 군산으로 통하는 혈맥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길이었다. 이 곳에 벚꽃을 심어 벚꽃 백리길 이라는 명성을 얻은 것은 1975년 전북지역 재일동포들이 고향에 기탁한 성금으로 벚나무를 심어 벚꽃 터널이 생긴 뒤부터라고 한다. 이 길은 봄철만 되면 전국에서 상춘객들이 몰려들어 장관을 이루었고, 매스컴에서도 헬기를 띄워 벚꽃 백리길을 따라가며 생중계를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옛날의 화려했던 명성은 사라지고 고목이 된 벚나무가 드문드문 서있을 뿐이다. 벚나무의 수령이 50년 정도라 하니 심은 햇수로 보아 남은 나무들도 고령으로 쓰러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진지 오래고 벚꽃 백리길 이라는 수식어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요즈음 번영로에 접해있는 일부 지자체에서는 옛날의 명성을 되찾고자 예산을 세워 다시 벚꽃길을 조성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다. 죽어가는 벚나무를 보고 고심 끝에 나온 방책이라 할 수 있지만, 필자는 더 숙고해서 수종을 다시 정하라고 건의하고 싶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벚꽃은 상춘객을 불러 모으는 인기 품목이었지만, 지금은 각 지자체에서 무차별 공격을 하듯 많이 심어 발길 닿는 곳마다 넘쳐나는 것이 벚나무다. 그러나 개화 시간과 수령이 짧고 10월이면 칙칙한 잎으로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 다른 나무는 연륜이 깊어갈수록 고고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벚나무는 흉물스런 모습으로 노년을 맞는다. 필자는 번영로에 벚꽃 백리길 대신 무궁화꽃 백리길을 조성하라고 건의하고 싶다. 한 때는 벚나무 원산지가 제주도이고 또 벚꽃이 일본 국화가 아니라는 말들로 위로를 삼았지만, 번영로의 벚꽃 백리길은 이제 한 번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도 없는 무궁화꽃 백리길을 만들어 벚꽃축제 대신 무궁화꽃 축제를 우리 전북에서 열면 좋겠다. 우리의 무궁화를 미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에서 심고 가꾸겠는가? 이제 번영로는 도로의 기능보다는 무궁화와 더불어 관광과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조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궁화는 8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9,10월을 보내고 가을저녁 산들 바람에 가슴이 시려올 때까지 끊임없이 피는 청초한 아름다움이 있는 꽃이다. 무궁화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어서 깨끗하게 떨어진다 하여 조개모락화(朝開暮落花)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인용한 고금주(古今註)에는 군자지국 지방천리 다목근화 (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우리나라 지방 천리마다 무궁화가 많이 핀다) 라는 말이 나온다. 조선을 근역(槿域)이라고 부른 것도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양하씨는 「무궁화」 수필에서 자기 키만한 나무에서 수백송이의 꽃을 볼 수 있으며, 피고 지는 꽃송이를 센다면 몇 천 송이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권력의 무상함을 비유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무궁화와는 거리가 먼 말이다. 무궁화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 국민과 함께 수난을 당한 꽃이다. 일제는 우리 민족정신을 말살하려고 무궁화에 혐오스러운 누명을 씌웠다. 이제는 그 잔상에서 벗어났지만 아직 편견이 남아있는 듯하다. 무궁화는 우량한 품종으로 많이 개량되었다. 생명력과 병충해도 강하고 아름다운 빛깔로 많은 꽃을 피운다. 하루 빨리 우리 전북에서 열리는 무궁화꽃 축제에서 무궁화꽃 백리길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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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01 18:21

깨달음의 빛, 온누리에!

▲ 황인철 원불교 화산교당 주임교무 오는 28일은 원불교 대각개교절이다. 소태산대종사의 대각(大覺)을 기념하며, 원불교 열린 날과 전 교도의 공동생일을 겸하여 원불교의 근원이 되는 날로 이를 축하하는 경절이다. 원불교는 이웃종교들과 달리 소태산대종사의 탄생일을 경축하는 것보다 대각한 날을 경축한다. 물론 탄생도 경축일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세상에 오신 것과 대각을 이룬 것을 비교해 보면 큰 깨달음을 얻은 날이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대각개교 경축기간에 원불교인은 영산성지를 순례하며 소태산대종사의 깨달음의 여정과 원불교 초기 교단의 창립정신을 체험한다. 인도의 성자 라마크리슈나는 말했다. 성지 순례하는 사람이 허리에 차고 간 물병은 성지를 모두 순례했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물병으로 남아있다. 세속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도 이와 같은 것이다.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무어냐고 사람들에게 물으면 많은 사람이 행복이라 한다. 그러고 보면 참 수많은 인류가 그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종교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깨달음을 얻고, 행복을 찾기 위해서다. 깨달음을 얻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공자(孔子)도 아침에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지 않았는가. 깨침이 없으면 진정한 내 것이 아니다. 여전히 물병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깨침은 몸으로 실행하고 마음으로 증득하는 정성이 필요하다. 아는 것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열매 없는 꽃과 같다. 깨달아 아는 것을 실행하면 지혜로운 삶이 되며, 행복한 삶이 된다. 용은 여의주를 얻지 못하면 조화를 부리지 못하고 하늘로 날아오를 수도 없다. 용에게는 여의주가 다시없는 보물이다. 사람들도 여의주를 가지고 싶어 한다. 행복을 쉽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여의보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욕심을 떼고,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에 자유자재하고 보면 그것이 곧 여의보주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큰 부자라고 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십 분의 육만 뜻에 맞으면 그에 만족하고 감사를 느끼며, 또한 모든 것이 다 뜻에 맞을지라도 그 만족한 일을 혼자 차지하지 아니하고 세상과 같이 나누어 즐기므로, 그로 인하여 재앙을 당하지 않을뿐더러 복이 항상 무궁하다고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이게 바로 여의보주를 얻는 방법인 것이다. 행복을 만드는 것,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마디 따뜻한 말로도 가능하다. 평생 잊지 못할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을 한 번 깨닫고 보면 모두가 은혜이고 감사이며 행복이 된다. 한 사람이 행복하면 그 옆 사람이, 또 그 옆 사람이 함께 행복해 질 수 있다. 사소한 것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실 너무 많은 정보에 의하여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너무 많은 욕심으로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작고 하찮은 것이지만 실행하고 증득하는 데에서 위력이 나타난다. 경산종법사는 대각개교 경축법문에서 시대적 변화를 바르게 선도해 나갈 줄 아는 공부인, 희로애락의 감정에 끌리지 않는 진리적 인격을 갖춘 공부인, 진리의 광명을 따라 허위와 진실을 판단할 줄 아는 공부인, 그리고 우리의 교법을 현실에 구현해 나가는 용기 있는 공부인이 되어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는 주인공으로 살자고 부촉해주셨다. 깨달음의 빛이 온 누리에 비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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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24 18:29

'노자 섭생론'에서 암의 해법 찾는다

▲ 김윤세 인산가 회장전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우리는 오늘날, 각종 암, 난치병, 괴질의 창궐로 인해 사망자 10명 중 3명이 암으로 죽고 3명이 심혈관, 뇌혈관 질환으로 사망하는 병든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의 삶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가라는 명제를 놓고 역사적으로 수많은 성현에 의해 적지 않은 가르침이 제시됐는데 그중 노자(老子)의 섭생론(攝生論)은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에도 수많은 사람에게 자연의 섭리(攝理)에 따른 삶의 이정표로서 그 역할과 기능을 다 하고 있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제50장에서는 섭생을 잘 하는 사람에게는 죽을 땅이 없다(善攝生者 無死地) 즉 우주 자연의 이치에 부합하는 순리적 삶을 사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죽을 땅으로 들여보내지 않는다라는 묘한 메시지를 만나게 된다. 이 말은 너무나도 간명하므로 수많은 다양한 해석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고 그런 해석들을 접하노라면 노자께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참뜻을 이해하기란 더더욱 어려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필자는 나름대로 오랜 세월 연찬하며 고민한 끝에 아마도 노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뜻이었을 것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려 본다. 생지에서 나가서 사지로 들어간다(出生入死). 생지에서 제 명대로 사는 사람들이 열에 셋은 되고(生之徒 十有三) 사지에 들어가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비명(非命)에 죽어가는 사람들 또한 열에 셋은 된다(死之徒 十有三). 생지에서 있으면서도 오래지 않아서 제 발로 사지로 이동해가는 사람들 역시 열에 셋쯤 된다(人之生動之死之者 亦十有三). 대체 왜 그런가(夫何故) 자기 자신의 삶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한 채 그저 살아 있으니까 살고, 살던 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以其生生之厚). 생지에서 사지로 가든, 사지에서 생지로 가든 모두 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이끌고 어디론가 가는 것이다. 과거 삼풍백화점이 무너질 때 그 속에 있다가 무너지기 직전에 나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깥에 있다가 무너지는 순간에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 있었다. 그때 그 사람에게는 그곳이 사지이다. 섭생을 정말 잘하는 사람은(蓋聞善攝生者) 육지에 다니면서도 물소에게 받힐 일이 없고 호랑이한테 긁힐 일이 없다(陸行不遇?虎). 전쟁터에 들어가서도 칼이나 화살에 맞을 일이 없다(入軍不被甲兵). 물소가 받을 곳이 없고(無所投其角), 호랑이가 발톱으로 칠 데가 없다(虎無所措其爪). 또 칼이나 활이 파고 들어갈 곳이 없다(兵無所容其刃). 왜 그럴까(夫何故) 그에게는 죽을 땅이 없고 따라서 그는 죽을 땅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以其無死地). 노자의 가르침대로 섭생을 잘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암, 난치병, 괴질을 자초하여 사지로 갈 일도 없으려니와 설혹 몹쓸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자연(自然)으로 돌아가서 순리적 삶을 영위하면서 제 몸 안의 자연치유능력을 극대화해 암, 난치병, 괴질을 자연스럽게 물리치도록 하는 현명한 섭생과 지혜로운 치병(治病)의 길을 선택하여 스스로 활로(活路)를 찾아 사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세상으로 나온 인간에게 발생한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일수록 최상의 현명한 해법은 반드시 자연으로부터 나온다는 엄연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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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17 18:34

전북사회복지계가 6·13 지선에 거는 기대

▲ 서양렬 전북희망나눔재단 운영위원장 613 지방선거 전북사회복지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613 지방선거 전북사회복지특별위원회는 전북 사회복지계의 다양한 현안들을 정책화시켜 후보자 및 각 정당에 제안하고, 도민들의 사회복지 서비스의 양적, 질적 확대 및 사회복지 현장의 더 나은 발전을 통한 행복한 복지전북을 만들어가기 위해 활동한다. 지난 2월 구성된 613 지방선거 전북사회복지특별위원회는 우리 도내 사회복지 직능단체 연석회의에서 구성을 결의하여 사회복지 각 직능별 대표 20여명으로 구성되었으며, 공동대표는 전라북도사회복지협의회 이병관 회장, 전라북도사회복지사협회 배인재 회장이 맡았으며, 위원장에는 이연숙 전라북도사회복지협의회 상임부회장, 부위원장에는 권영세 전북종합사회복지관 협회장이 활동하고 있다, 전북사회복지특별위원회는 현재까지 매주 정례모임을 개최하여 보편적 복지권 확대와 도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나갈 수 있는 복지공약 4대 현안과 11대 과제를 선정했다. 613 지방선거 전북사회복지특별위원회가 선정한 4대 현안은 전라북도 도민을 위한 보편적 복지권 확대, 전라북도 현장 복지 인력에 대한 지원 강화, 복지 협치 강화를 위한 민관 협력 강화, 전라북도 복지 재정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과제를 제안 하였다. 첫째, 보편적 복지권 확대는 전라북도 복지기준선 마련 및 실행체계 운영 강화, 도민 생애주기 및 영역별 공약제시, 전북도민 인권감수성 향상을 위한 사업 등이 제시되었다 둘째, 현장 복지 인력 지원강화 분야에서는 전북형 사회서비스 진흥원 설립, 사회복지종사자 처우개선 및 근로여건 개선(비정규직 문제 포함), 사회복지시설 및 기관 기능편재 재구조화(기관의 수요에 따른 기능전환과 지역적 불균형 해소), 사회복지종사자 동일직종/동일임금 체계 마련, 민간위탁 표준안 마련 등이 제시되었다. 셋째, 민관 협력강화를 위해서는 민관정 복지 정책협의구조 정례화, 사회복지정책특보 개방형 임명이 요구되었으며, 넷째, 전라북도 복지 재정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는 사회복지 자주재원의 확대 및 합리적 배분 등이 요구되었다. 지난 정부 10년 동안 대한민국은 국가복지정책의 실패로 엄청난 퇴행을 경험해 왔다. 특별히 복지 분야에서는 주민들의 보편적 복지권 확대를 위한 질적인 고민보다는 현상유지도 못하고 퇴행만 일삼아 온 복지정책, 공적 책임 강화보다는 민간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복지 정책, 복지시장화를 통해서 수익사업으로 변질되어 버린 복지 현장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그 후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경험해오고 있으며,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들을 지방에 이전시키고, 지방은 민간을 찾아야 하는 답답한 현실을 살아오고 있다.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는 거침없이 민영화와 시장화로 질주하는 복지현장이 사람중심의 현장으로 바뀌어가고, 사람이 먼저다 !를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가치가 제대로 실현되고, 사람을 위한 보편적 복지권의 확대가 제대로 이루어져서, 우리 서민들의 삶에 실질적이고 질적인 변화가 찾아와서 국민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벗으로 기대고 살 수 있는 나라다운 나라가 시작되는 꿈을 간곡하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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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10 18:15

문학관 다시보기

▲ 정군수 석정문학관 관장 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이며 인간에 대한 이해를 본질로 한다. 문학관은 이러한 문학의 본질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공간이므로 인문학적 가치를 발현하고 바람직한 사회를 만드는데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또한, 문학의 영역을 확장하고 계승하여 많은 사람이 정서적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문학관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하는 공간은 그 이름 외에 문학의 집, 문학촌, 문학마을, 문학공원, 기념관 등으로 지칭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것은 특정작가나 지역 작가를 이러한 문학공간에 전시대 또는 동시대에 향유했던 가치 있는 문화적 감각들을 구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문학관은 단순한 기념공간이 아닌 작가의 정신세계를 문학적으로 재조명한 탐구의 세계이다. 문학관은 작가나 작품이 속해 있던 시대상이나 시대정신을 중요시해야 하며 그들이 공유했던 공간적 의미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수행되었을 때, 이용자들은 당시 문학의 통시성과 공시성은 물론 작가나 작품이 지닌 문화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이러한 인문학적 가치를 인지한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문학관을 통해 지역의 문화적 위상을 제고하고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우리 전북에도 전북문학관(전주), 김환태문학관(무주), 채만식문학관(군산), 미당시문학관(고창), 아리랑문학관(김제), 혼불문학관(남원), 최명희문학관(전주) 가람문학관(익산), 석정문학관(부안) 등이 건립되어 예향의 면모를 부족함 없이 보여주고 있다. 장르로 보면 시(시조), 소설, 평론 등 한국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전북이라는 땅을 자양분으로 삼아 문학을 부흥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문학관은 한 지역의 인문학적 자산을 홍보하고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문학관을 설립한 지자체에서는 문학관이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문학관으로 인하여 지역의 인문학적 가치를 선양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문학관 길잡이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문학기록을 수집하여 보존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그러나 문학관이 수집한 문학기록은 보존하는데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문학작품의 연구, 문학을 향유하는 사람들을 위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활용되어야 한다. 과거의 문학관은 소장하고 있는 문학기록 및 작가의 유품을 전시하여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박물관 기능의 역할에 만족하였다. 하지만 오늘의 문학관은 관람객 참여를 배제한 이러한 보여주기식의 기능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문학관은 소통의 공간으로, 교육의 공간으로 활성화하는 관계망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전문가와 연구자들을 위한 자료의 열람, 학술세미나,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예교실의 운영, 각종 문학 강연 및 시낭송회, 작품내용 재현과 체험을 위한 세미나실 및 공연시설의 제공을 통해 문학과 관련된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이렇듯 문화적 영역을 수행하면서 소통의 문이 열려 있는 문학관은 미래 지향적인 문학관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초기 문학관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작가의 작품을 보존하기 위한 기념형 문학관으로 머물러 있는 곳은 문학의 의미를 재생산하지 못하고 사회적 가치탐구에도 한계가 있어 답보상태에 머물고 말 것이다. 이제 문학관은 정체의 공간에서 생동의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웃고 숨 쉬며 얻음과 깨달음을 주는 문학관으로 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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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03 20:05

가벼워지고 싶다면 비워라

▲ 황인철 원불교 화산교당 주임교무 원불교가 세상에 드러나기 전, 소태산대종사가 교단 창립을 준비하던 곳인 변산에 와서 봄기운에 끌리듯 나는 천천히 한 바퀴를 둘러본다. 능가산내소사 현판이 걸려있는 일주문을 지나니 길이 살짝 굽어있다. 일주문 밖에서는 도무지 내소사를 짐작할 수 없다. 굽은 길에 들어서서야 전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상으로 600여 미터 길게 이어진 길이 보인다.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춘분을 지나 봄기운 완연한 바람이 전나무 숲을 지나 코끝을 간질이고, 왼편으로는 계곡물소리가 귀를 맑게 한다. 그 전나무 터널을 지나면 금강교가 나오고, 전나무에 비해 키가 작은 벚꽃길이 환하게 이어진다. 춘분에 내린 눈 속에서 꽃눈이 툭툭 불거지고 있다. 천왕이 눈을 부릅뜨고 삿된 마음을 잡아내는 사천왕문을 통과하여 시원한 마당을 지나면 2층 누각인 봉래루가 눈앞을 가린다. 봉래루는 자연석 주춧돌(덤벙주초)의 울퉁불퉁한 모양대로 나무기둥의 아랫부분을 도려내어 음양의 각을 맞춤으로써 집의 무게를 감당하게 한 그랭이법으로 세웠다. 이렇게 오목하고 볼록한 것을 맞추니 이질적인 돌과 나무가 서로 하나가 된다. 조상들의 자연에 순응하는 지혜와 미적 감각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맞배지붕을 올린 2층 누각, 그 봉래루의 마루 밑을 지나서 만나는 자연석 계단은 속세에서 선경으로 오르는 길을 보여주는 것인가. 계단 위에 오르니, 천년을 살아낸 느티나무가 위용을 드러내고, 3층 석탑 너머로 날아갈 듯한 팔작지붕의 대웅보전 그늘 속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협시를 받으며 인자하게 중생을 맞이한다. 대웅보전 뒤로는 관음봉 바위능선이 병풍처럼 둘러 서있다. 변산 내소사 풍경이다. 봉래루를 자세하게 묘사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예전에는 봉래루를 지나려면 기둥의 높이가 낮아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지날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개축을 했는지는 지난날의 모습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으나 주춧돌이 볼썽사납게 드러나 있다. 10여 년 전, 함께한 일행들에게 덤벙주초와 그랭이법에 대한 조상의 지혜를 설명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나그네가 한마디 했었다. 맞는 말씀인데, 봉래루는 이제 의미가 없어졌어요.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지날 수 있게 됐거든요. 부처님 앞에 서려면 먼저 자신을 낮추는 자세부터 가르치려한 조상의 지혜를,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편안하게 봉래루 아래를 지나갈 수 있도록 오직 편의성 위주로 개조해 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였다. 재백이고개 넘어 직소폭포와 봉래구곡의 물을 품은 저수지 분옥담은 깊이를 알 수 없이 푸르다. 만 골짜기 천 봉우리의 가느다란 빗물을 받아들이는 저수지는 스스로를 낮추어 품을 열고 있다. 그리고 다 차면 무넘이로 흘려보낸다. 저수지가 높은 곳에서 벽을 쌓고 있다면 물은 흘러 들어갈 수 없는 법. 지식이 가득 찬 제자의 작은 찻잔이 넘침에도 불구하고 계속 차를 따르는 스승의 모습은 아만심과 욕심에 차있는 우리들에게 비워야 거듭날 수 있다는 진리를 새삼 깨우쳐 주고 있다. 비우고 낮추면 삶이 행복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우리는 자칫 공적이 있으면 알아주기를 바라고, 작은 지식과 재주에 경박해지기 쉬우며, 말 잘하면 실행이 부족할 수 있다. 앎이 많을수록 신중하고, 재주 있을수록 노력해야 하며, 말 잘하면 실행에 더욱 힘쓰고, 공성신퇴(功成身退)해야 함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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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27 19:01

암보다 더 무서운 병

▲ 김윤세 전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물도 끊기고 산길도 사라져 더 나아갈 데가 없으려니 여겼더니 버들 푸르고 꽃 붉은 곳에 또 하나의 동네가 보이네 (水窮山盡疑無路 柳綠花紅又一村) 옛적 어느 선사(禪師)의 시구(詩句)처럼 길이란, 찾는 사람에게 보이는 법이다. 더 이상 길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극한 상황에서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잘 찾아보면 반드시 열린 길이 있게 마련이다. 종종 현대 의학적으로 더 이상 치료방법이 없다는 소견에 말기 암 환자나 기타 불치병이라 간주된 병을 앓는 환자들이 그야말로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나라 잃은 난민(難民)처럼 이리저리 떠돌다가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 지리산 산골 인산문(仁山門)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세상의 일반적 의료방식으로 비록 고칠 수 없다 하더라도 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 선생(1909~1992)에 의해 세상에 제시된 인산(仁山)의학에서는 혹시 길이 있을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 한 가닥에 의지한 채 살길을 찾아서 오는 것이다. 필자는 가끔 그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다 보면 암이나 난치병보다 더 무서운 병이 따로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의학에 대한 절망과 치료에 대한 자포자기야말로 화타편작이라도 고치기 어려운 불치병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질병은 자연계나 신(神)의 선물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만들어 건네준 것도 아니다. 제 병은 제가 만드는 것이고 공해 증가와 생활환경의 악화에 따른 외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건강을 회복 내지 증진시킬 자연치유능력은 자신의 몸 안에 있는 것이다. 또 극단으로 치닫는 성격이나 분노의 마음, 원한, 과음, 과색(過色), 과로, 운동 부족 등 내적 요인에 의한 병증 역시 부단한 심신 수련과 자기혁신을 통해 미연에 방지하거나 순리적 치료를 통해 원상으로 회복시킬 힘 역시 자신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제 병증의 근원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사람들은 암이나 난치병에 걸렸을 때 마음을 비운 채 자신의 사고방식과 생활습관에서의 문제점을 살펴 차분하게 그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하지 않고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더 이상 길이 없다고 여겨 마침내 자포자기해버린다. 인산의학은 현대 의학적 소견이 어떻든 간에 세상의 난치불치병에 대한 나름의 독특한 처방과 약물을 제시하고 있다. 자연계의 법칙에 근거하여 주변의 흔한 음식물이나 기타 물질을 이용해 순리적으로 병을 고치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그 처방과 약물, 치료원리 등을 명명백백하게 일련의 서적들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1980년에 간행한 <우주와 신약(神藥)>을 위시하여 1986년의 <神藥>, 1992년 선화(仙化) 이후의 유저 <신약본초(神藥本草)> 등 인산의학 관련 제 서적들에는 고금동서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창조적 신의학 이론을 제시한 인산 선생의 생래적 혜안과 경험의 산물이 집대성되어 있다. 이 책들은 한결같이 쉽고 간단한 묘방과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흔한 물질, 예컨대 집오리, 명태, 오이, 다슬기, 옻 껍질, 마늘, 대파, 홍화씨, 죽염, 쥐눈이콩 등을 활용해 각종 암, 난치병을 해결 극복할 수 있도록 독특한 자연치유묘방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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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20 18:39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를 실질적 민·관협력으로

▲ 서양렬 전북희망나눔재단 운영위원장 보건복지부는 복지전달체계 강화 및 개편을 위해서 동 복지기능강화 시범사업을 2014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 사업은 방문상담 및 민간서비스연계, 사례관리 등을 통해서 국민의 복지 체감도를 높이겠다는 의미에서 시작한 사업으로 2014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16년 933개, 2017년 2100개, 2018년 3500여개 전체 읍면동으로 확대하여 읍면동 중심으로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는 위기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복지제도를 잘 알지 못하거나,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복지공무원이 복지통(이)장과 읍면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 등 지역사회 주민들과 함께 찾아가 필요한 공적 급여지원과 전문적 통합사례관리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소득재산기준 초과 등으로 인해 공적급여 및 서비스를 받지 못하지만 실질적인 생활의 어려움에 처해 계신 분들께는 지역사회 내 다양한 민간 자원을 찾아 서비스를 연계하기 위한 사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공적기관이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문제해결방법을 찾아주기 위한 노력자체는 참 의미 있는 일이다. 특별히, 복지전달체계를 강화해 건강한 사회복지생태계를 이루려는 노력과 지역사회 단위에서의 복지생태계 확장, 주민들에게 복지제도를 알려나가기 위한 적극성, 주민을 위한 사례관리강화, 민간기관과의 연계강화 등은 당연히 필요한 사업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복지 현장에서는 현재와 같은 찾아가는 보건복지사업에 대해서 불편함과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첫째, 제대로 된 민관 협력에 대한 의구심이다. 현장 복지기관 중에서는 찾아가는 복지와 복지사각지대 발굴이라는 취지와 상이하게 단순 실적 중심으로 본 사업이 운영되고 있어서 본질이 왜곡되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가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소규모 지역단위에서 민과 관이 지혜를 모을 수 있는 자리를 꾸준하게 만들어나가야 하며, 관과 민의 역할이 적합하게 나누어 질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 민과 관의 실질적 협력한 방안이 만들어져야 한다. 둘째, 자원 및 업무의 쏠림현상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되고 있다. 공공의 자원독점이 실적 추구와 자원연계로 이어져 한정된 지역자원의 기부피로도 향상으로 민간복지기관에 대한 지원이 감소하고 있으며, 민간복지기관의 생태계가 상당부문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주민의 자발적인 복지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공공과 민간이 함께 협력해 나가야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민간기관과 경쟁하는 공공기관의 모습은 매우 불편하다. 관의 역할이 민간생태계를 지원하고 민간의 자생력 강화에 있음을 기억할 때, 더 나은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주민들의 삶의 문제를 직접 찾아나서는 국가의 모습은 참 멋진 모습이다. 다만, 그 모습이 지나치게 권위적이거나, 공공위주로 운영하면서 민간복지기반을 위축시키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복지 현장에서(613 지방선거 전북사회복지특별위원회)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서양렬 운영위원장은 한국노인복지관협회 전북지회장전주시사회복지사협회장 등을 역임했고 금암노인복지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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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13 20:46

무녀의 눈물

▲ 정군수 석정문학관장 음력 정월 초사흗날, 부안군 위도면 대리마을에 띠배굿이 벌어졌다. 만조시간이 되자 포구 앞바다는 가슴까지 바닷물이 밀려와 출렁이고 있다. 상쇠쇳소리 따라 풍악이 울리고 대장군 영기는 세차게 바람에 나부꼈다. 띠배를 띄울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손을 얼게 했지만 칠산바다에서 분명 봄은 오고 있다. 사람들이 선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동편당산제도 끝났고 주산돌기와 마중굿도 끝났다. 원당에서 열두 성황신에게 올리는 독축과 무녀의 춤도 끝나고 화주 화장 풍물패들이 산에서 내려오고 있다. 이제 용왕굿과 띠배띄우기만 남았다. 이 마을에 거주하는 김상선, 이종순 할아버지의 배치기소리와 가래질 소리가 후렴을 주고받으며 느리게 물살을 타고 바다로 간다. 몇 십 년을 불렀을까, 묵은 세월을 견뎌온 당산나무처럼 격하거나 다급함이 없다. 끊길 것 같다가 이어지고 잦아들 것 같다가 솟아난다. 대를 이어가며 섬마을에서 살았던 어부의 애환이 물길을 타고 흐른다. 용왕 제상에는 삼색과일과 떡시루가 오르고 핏물 든 생돼지갈비가 드러누워 있다. 돼지간도 고스란히 올라와있다. 태평소가락이 까끔산 마루로 넘어가고 풍악은 고조되었다. 덩실덩실 춤추던 무녀가 맺힌 곱을 풀려고 느리베를 하늘로 띄웠다가 가슴으로 내리고 다시 하늘로 올리며 덩실 돌아 제 자리로 온다. 이 맺힌 곱을 푸는 것이 무녀의 신통력이다. 마디마디 맺힌 곱은 오늘 띠배에 실려 칠산바다로 나갈 섬마을 사람들의 시름이며 비원이다. 그리고 먼 바다에 버려야할 재액이다. 이것이 이루어지려면 느리베에 맺힌 곱이 풀려야 한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다. 다시 돌아 춤을 추어도 풀리지 않는다. 무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만 보았을까. 그 눈물이 내 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무녀는 춤을 멈추고 다시 곱을 맺는다. 풀리지 않는데 다시 곱을 맺는 것이다. 아, 그러자 놀랍게도 곱이 풀린다. 바다를 볼 때 한 곱이 풀리고, 하늘로 손이 올라갈 때 또 한 곱이 풀린다. 무녀의 춤사위에 희열이 돌았다. 다시 맺어야 풀리는 역설을 무녀는 알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풍악을 따라 춤을 추었다. 그리고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켰다. 오늘 행사는 띠배띄우기로 대미를 맺는다. 띠배는 아침부터 주민들이 띠풀과 억새와 새끼를 꼬아서 엮어 만든 것이다. 그 안에는 짚으로 만든 일곱 제웅과 주작현무천 깃발이 꽂혀 있다. 풍악이 선창을 울리고 무가가 하늘로 오르자 모선인 해운호가 띠배를 끌고 먼 바다로 나간다. 오늘 행사의 절정이다. 띠배띄우기는 유희가 아니라 재액을 실어가고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모선의 뒤를 주영호가 따랐다. 나도 거기에 끼었다. 원당이 있는 산이 멀어지고 노란 조기떼가 가득했던 칠산어장으로 띠배가 간다. 모선에서 울리는 풍악소리와 무가가 아스라이 먼 바다로 잠기어간다. 해군함정 한 척이 수평선 저만치 떠있다. 이날은 버스도 밥도 술도 자연산 홍합도 모두 공짜다. 우리 일행은 또 공짜 버스를 타고 파장금에서 격포로 나오는 배를 탔다. 일행 중 하나가 배낭에서 소주병을 꺼냈다. 반갑다. 종이컵에다 가득 따라준다. 원샷, 소주맛이 달다. 또 원샷, 달아오는 볼을 식히려고 갑판으로 나왔다. 봄이 벌써 내 안에 들어와 있다. 뒤로 달아나는 위도를 보며 무녀의 눈물을 생각했다. 나를 전율케 했던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신통력에 대한 절망, 접신에 이르지 못한 자탄, 그것도 아니면 섬사람들의 비원 하나를 빠뜨려 곱으로 맺지 못한 회한. 나는 아직 그것을 모른다. 무녀의 눈물은 가슴에 남아 시가 될 것이다. 벌써 격포가 눈앞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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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06 21:04

영원한 강자

▲ 황인철 원불교 화산교당 주임교무1919년 3월 1일 정오, 일제의 압박에 항거, 전 세계에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온 민족이 총궐기하여 평화적 시위를 전개하였다. 내일이 3월 1일! 3·1 만세운동 99주년이다. 소태산대종사는 3·1만세운동을 ‘개벽을 재촉하는 상두소리’라며 제자들에게는 창생을 위한 기도를 시키셨다. 그리고 ‘갑동리와 을동리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강자가 되는 길을 열어주셨다. “갑동리에는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을동리에는 부자면서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을동리 사람들이 갑동리 사람들을 업수이 여겨, 여러 가지로 둘러먹으며 문서 없는 노예를 삼고 압제를 하면 갑동리에서는 어찌하겠느냐. 갑동리에서는 그 압제를 할 수 없이 받는다. 그들 중 몇몇은 압제 받는 것이 원통하여 을동리에 반항하다 갇히고 죽는 등 설움을 당하고 또 다른 몇몇은 압박 받는 원인을 생각하면서 가난하고 무식한 까닭인 줄을 자각하게 된다. 을동리와 같이 강자가 되리라 굳게 결심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강자의 위치에 앉게 되면, 분풀이 하고 싶어 을동리에 대항하지만 을동리는 모두 강자라 오히려 갑동리 사람만 희생하게 된다. 갑동리에 참 정신을 가진 자가 있었으면 생명 하나 희생하지 않고 강자가 되는 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법은, 을동리의 강자들이 압제를 하면, 종노릇을 잘해주며 약자의 분수를 지키고 밖으로는 어리석고 못난 체하여 강자가 안심케 하고, 안으로 자본금을 세우고 교육기관을 설치하여 가르치며 배우고 서로 권고하되 ‘우리는 돈 없고 배운 것 없어서 약자가 된 것이니 아무쪼록 각성하여 근검저축하며, 배우기를 힘쓰며, 우리 동리가 일심단체가 되고 보면 무엇이 두려우리오. 우리는 을동리 이상의 강자가 되자’하며 와신상담(臥薪嘗膽) 노력하면 곧 풍요롭고 지식인이 사는 동리가 될지라, 그러면 을동리의 강자들은 갑동리의 형세를 보고 과거의 무리한 행동을 회고하고 전날의 잘못을 후회하며 용서를 청할 것이니 갑동리 약자들은 스스로 제 일을 했건마는 을동리 이상의 강자가 되었다. 이러한 빠른 법을 놓고 사람들은 약자가 되면 약자된 것만 원망하고 한탄하며 지리한 압제를 면치 못하고, 또는 혹 선각자라도 편심이 되어서 여러 사람에게 덕으로서 감화시키지 못하고 단독으로 서둘다가 생명을 희생하나니 어리석다 아니할 수 없구나.” 갑동리와 을동리로 강자와 약자를 비유한 이 이야기는 당시의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사회와 세계의 구조적 투쟁관계를 통찰하고 화합과 협력으로 평화 공존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갈 원리와 방법을, 약자로서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그 원인을 자기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하며, 강자로 진화할 방법도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갑동리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다. 요즘 트럼프 미국 정부가 보여주는 한미FTA 폐기와 보복관세 예고,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 등 강대국의 압박이 극에 달하고 있다. 약자인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이미 100여 년 전에 소태산대종사는 길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기는 사람은 물론 강하다. 그러나 자기를 이기는 사람은 더 강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 자기를 능히 이기는 사람은 천하의 어떤 사람이라도 능히 이길 힘이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나, 욕심에 불타는 나, 방종에 흐르는 나를 이겨서 마음의 자유를 얻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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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7 18:44

영초(靈草) 활용한 무병(無病) 건강법 이야기

시작도 끝도 없이 흐르는 시간의 강물이 어느덧 무술(戊戌)년 우수(雨水)의 이정표를 지나 경칩(驚蟄)절을 향해 내닫고 있다. 한국 약재의 보고(寶庫)라 불리는 지리산기슭의 한 산골 마을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암, 난치병 환자들에게 대가 없는 인술(仁術)을 베풀어 재생의 희망과 기쁨을 선사하면서 전설처럼 살다가 선화(仙化)한 이의 이야기가 전한다. 바로 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 선생(1909~1992)이다.지난 1986년 6월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70만 부가 넘게 보급된 <신약(神藥)>이라는 저술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인산식 건강법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들은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에 달한다. 그들 중 인산 마니아로 불리는 상당수의 사람은 해마다 우수절을 기점으로 생명의 불을 지피기 위해 쑥뜸을 뜨는 이들이 적지 않다.올봄에도 곳곳에서 쑥뜸을 통해 뜨거움의 고통보다 훨씬 큰 대가를 수확하고 있다는 소식이 잇달아 들려온다. 현대 난치병불치병을 극복하고 새 삶의 희망과 기쁨을 얻었다는 얘기부터 정신세계의 새로운 경지를 체험했다는 사례까지 다양한 체험담들을 접하면서 자연의 보물은 역시 노력하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다.<신약>, <신약본초(神藥本草)>를 통해 인산문(仁山門)에서 제시한 유황오리, 밭 마늘, 홍화씨, 죽염, 토종 돼지, 쥐눈이콩 등 천연물의 약성이 새롭게 밝혀졌고 특히 영구법(靈灸法)으로 불리는 인산 쑥뜸법의 경우 1장 타는 시간이 5분 이상 되는 큰 뜸을 뜨도록 하는 등 그 방법의 특이성과 효과의 탁월함으로 인해 세인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우선 콩알만 한 크기의 뜸 장을 3장에서 9장가량 뜨게 하는 전통 한의학의 쑥뜸 법에 비해 큰 밤알 크기의 뜸 장을 적게는 79장부터 많게는 하루 4050장까지 뜨도록 하는 등 서로 판이한 점이 적지 않다. 쑥뜸을 접하는 이들은 대부분 중심부의 순간 최대 온도가 섭씨 700도에 달하는 높은 온도의 뜸 쑥을 맨살 위에 올려놓고 태우는 것인 만큼 그에 따른 부작용 또는 생각지 못했던 다른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그러나 이미 전국적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직접 체험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한 바 있고 인산 쑥뜸 법의 창시자인 인산 선생께서도 40년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의 몸에 직접 뜸 쑥불을 붙이셨으며 필자 역시 30년 세월 허구한 날 중완단전족삼리혈에 쑥뜸을 뜸으로써 적지 않은 건강증진 및 질병 치료 효과를 거둔 바 있다.약쑥은 지중(地中)에서 오르는 불기운과 하늘에서 비치는 볕기운(陽氣)에 의해 생겨난 영초(靈草)라 하겠다. 인체의 기(氣)가 약화되는 것을 약쑥의 불기운을 이용해 회복시키는 방법이 바로 인산 쑥뜸법이다. 인체 내의 원기가 약화되면 없던 병도 생기게 되고 원기를 돋워주면 있던 병도 맥을 못 추거나 물러가는 이치를 이해한 사람들은 인산 쑥뜸법의 불가사의한 작용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올봄에는 인산 쑥뜸법으로 우주에 충만한 생기(生氣)색소를 받아들여 만병을 물리치고 최상의 건강상태를 유지하며 자연계로부터 부여받은 천수(天壽)를 온전히 누리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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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1 23:02

조선시대 한지 갑옷을 보며

전자기기가 종이를 대신하는 페이퍼리스(Paperless)시대이고 보니 우리의 한지 역시도 한 묶음 신세의 생활문화로 변했다. 20여 년 쯤 서른 여 곳에 달하던 전주의 전통한지 제조업체는 이제 불과 6곳, 전주권으로 확대해 봐야 두어 군데를 더할 수 있을 뿐이다. 시장이 사라졌다는 사회 환경적 요인도 있지만 대부분 손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힘든 제조 여건과 한정된 생산량으로 인한 가격 경쟁력 같은 것 때문에라도 버틸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생존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져가는 현실에서 장인정신과 사명감만을 강조하며 전주한지라는 고유의 수록지(手 紙)를 계속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억지나 다름없다. 루브르박물관이나 교황청의 중요 문화재를 한지로 복원했거나 고종황제가 보냈던 칙서를 복원해 다시 교황에게 직접 전달함으로써 전주한지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높였음이 매우 자랑스럽지만 그러나 그것이 한지 수요 창출의 근본적 돌파구가 되지 못함이 아쉽다.전통한지의 원형을 지키고 쓰임새를 넓혀 보자고 명함에서부터 정부 부처의 상장이나 훈, 포장용지 등으로 사용범위를 넓혀 가고 있지만 묘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특정교과서 용지와 수묵화 작가들을 위해 전통한지를 제공하고, 조선왕조실록 복본화나 궁중의 가례도감 재현같은 기록문화유산 보존사업, 재외공관의 한지를 이용한 공간구성 사업 그리고 한지공예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 같은 것으로 활로를 강구하고 있지만 역시 수요 창출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음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전통한지의 지속적인 생산과 유통, 판매의 실효를 위해서는 결국 국가의 실질적인 정책과 투자가 절실하다는 판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닥나무의 계약재배 확대와 전주 흑석골에 조성될 전통한지 생산시설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또 지난 해 발의된 한지문화산업진흥법같은 법령의 제정 시행이 절실하고, 다른 한지관련 제안이나 논의들 역시 행사성이라는 단발 형태의 공허함에서 벗어나 명쾌한 해결책 제시로 이뤄져야 한다는 욕심이며 그 모든 것들이 새로운 수요 창출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바람을 갖는다.나아가서는 실생활과 한지의 자연스런 접목이다. 주거형태가 많이 변했음에도 최근 한지로 만든 벽지를 선호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이면에는 승방 같은 비움 또는 여백의 공간에서 무소유의 편안함을 통해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는 정서가 숨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전당 전시관에 있는 조선시대 한지로 만들어진 실물크기 갑옷 모형을 보면서도 같은 류의 생각을 해 본다. 가벼워 휴대와 착용이 용이 하면서도 조총으로도 뚫지 못하는 견고함, 한지로 갑옷을 만들겠다는 그런 선조의 지혜가 오늘의 현장에 두루 적용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기계화된 한지 제조 체계와 한지를 이용한 첨단 기능성 옷감의 실용화를 보면서 더욱 확대된 산업화를 그려보게 된다. 각종의 인테리어 소재나 식품 포장재, 닥나무에서 유효 성분을 추출해 만든 기능성 화장품 등의 개발과 사업화가 우리 전당을 비롯해서 규모를 키운 한지 제조업체에서 시도되고 있다. 전통의 비법과 한지 고유의 기능 그리고 새하얀 한지의 비움을 바탕으로 전통과 첨단이 결합하여 전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널리 유용되기를 희망한다. 전통은 그 자체로 소중하지만 한지(韓紙)가 한지(恨紙)로 자조되지 않고 세계 속으로 지평을 넓혀가야 하는 전주한지의 명예를 위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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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14 23:02

소에 대한 소고

먼 옛날부터 소는 인간의 생활에 풍족함을 가져다주는 동물이었다. 알타미라동굴이나 퐁드곰동굴암벽화에는 소가 그려져 있어 수렵생활부터 인간은 소에게서 생활의 윤택함을 기원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목축생활로 접어들면서 야생동물 중에서 소를 가축으로 길들인 것이나, 신석기시대 유물로 돌보습이 남아있는 것을 볼 때 인간은 이미 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지증왕 때 소를 이용한 농업으로 생산량이 증가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한다. 좁은 논길과 산길, 소규모의 농토를 가지고 경작을 해야 하는 우리의 생활에서 소는 꼭 필요한 가축이었다. 소는 농가의 조상이다 라는 말은 소는 살림에 매우 중하므로 조상같이 귀한 존재라는 뜻일 것이다. 이렇게 사람과 같이 살면서 사람의 손으로 길들여진 소는 언제 보아도 어린아이 같은 유순함과 어른 같은 넉넉함을 지닌 짐승이었다.소는 우직함으로 인하여 멸시와 사랑을 함께 받아온 짐승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멸시보다는 그 우직함을 더 사랑하였다. 이광수의 우덕송을 보면 소는 동물 중의 인도주의자라 하였고, 만물이 점점 고등하게 진화되어 가다가 소가 된 것이라고 칭송하였다. 그리고 소가 늙어 힘이 없어 인간을 돕지 못하게 될 때는 도살장으로 끌려가 내리치는 쇠메를 맞고 마지막 우는 울음을 이제 다 이루었도다 라는 만족의 울음이라고 하였다. 인간에게 마지막까지 피와 가죽과 뼈까지도 다 주고 가는 것도 소가 인간에게 베푸는 귀한 희생이라 할 수 있다.소는 그리움의 상징이다. 정지용 향수는 국민노래처럼 사랑을 받는다. 시인은 고향을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라고 읊고 있다. 1920년대 그림과 같은 그의 시를 생각하면 이북으로 간 시인의 삶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중섭의 그림에는 잃어버린 행복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아내와 자식을 만나고 싶은 그리움의 감정을 소에 실어 나타냈다. 소는 바다 건너에 있는 가족을 향하여 달려가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두 차례나 소떼를 싣고 판문점을 넘어 북으로 갔다. 그때 많은 국민들은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왜 일까? 한 마리 소를 훔친 돈으로 거부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에 대한 경이감, 아니면 천여 마리라는 거창한 소의 숫자, 통일에 대한 기대감,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소라는 짐승 때문이었다. 소 대신에 천 대의 자동차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간다 한들 그것은 물질과 돈에 불과 할 뿐,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실어 가는 그 소만은 못 할 것이다.사람과 함께 살아오며 애환을 같이해온 짐승 -고향의 전설을 전해 줄 것 같은, 해설피 울음을 우는 어느 실향민의 모습 같은, 문명도 모르고 빈부도 모르는 알타미라동굴의 암벽화에 나오는 소- 그 소가 새해에 큰일을 저질렀다. 김영란 법을 바꾼 것이다.김영란법이 제정되면서 농민들의 원성이 높았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소였다. 농축산물 선물비용이 5만원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소고기 소비가 위축되었다. 어쩔 수없이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김영란법이 개정되었고, 농축산물 선물금액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우직한 소가 칼날 같은 김영란법을 바꾸어놓은 것이다. 소는 김영란법도 바꾼다는 소에 관한 또 하나의 말이 생겼다. 올 설에도 소가 설음식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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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0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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