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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지족(吾唯知足)의 교훈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나는 가끔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 뒤에서 흉을 보는 사람들, 시샘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왜 그랬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내가 그리 잘 못 살았었나? 아니면 하는 짓들이 미워서였을까. 어찌했든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데는 상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차례에 걸쳐 거울 앞에서 웃어 보이기도 하고 옷매무새를 고쳐도 보고, 이런저런 표정을 바꿔가며 만족할 때까지 자신을 속이려든다. 거울을 보며 더 나은 모습을 보이려는 것도 결국은 사람들과의 관계정립을 잘해보려는 의도일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삶을 이어가는데 스쳐가는 사람까지 헤아린다면 엄청난 숫자일 것이나, 그들 중에서도 연결고리의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에게만 관심을 갖는다. 아름다운 진실은 마음가짐을 바꾸면 자기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은 평생 끊임없는 내면의 갈등과 크고 작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언어사용의 선택, 사랑의 선택, 직업의 선택, 친구의 선택, 가치관의 선택 등 헤아릴 수 없을 지로(支路)의 순간들, 이 모든 것들은 이성적 사회적 제약과 심리적인 순간의 갈등에서 일어난다. 후회와 더불어 자신의 선택과 행동은 도덕과 사회적 기준에 맞춰 평가를 받는다. 사회생활에서는 소위 규정이라고 하는 도덕이나 규칙 등이 상식의 선을 강제 받아야하지만 우리내부에서 꿈틀대는 욕망과 쾌락, 질투와 미움이 저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어 이것들을 합리적인 이성으로 억제하기는 매우 복잡한 틈바구니에서 삶이 지속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자신에 대해 만족하라.는 의미의 오유지족(吾唯知足)은 즉 작은 것으로 만족할 줄도 알아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지극히 평범한 것들조차도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알량한 자존심과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일상의 무관심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자기에게 유리한 기준만을 적용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한다. 나이가 든 만큼, 지식과 지혜가 쌓인 만큼, 살아 온 세월만큼의 경륜으로 냉정하게 객관적인 잣대로 자신을 가늠해야만 품격을 높여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영국의 기업인 리처드 브랜슨의 성공을 위한 열 가지 중에 내 생각을 믿어라. 자신의 계획과 생각을 스스로 믿고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렇게 해주겠나라고 했는데 이 조언을 잘못 해석하다보면 이기주의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기가 자기를 믿지 못하거나 버렸을 때, 자괴감과 고립의 함정이 작용할 수도 있다. 지난 1월 20일경부터 오랜 시간 동안 피로에 지친 정신력과 움츠러든 경제가 우리들을 괴롭게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의 의미는 고립이 아닌 군중 속에서의 세상을 더 깊고 더 넓게 바라보는 자기성찰이 가능한 고독을 회복하는 시간이 아닐까 한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면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의존해 살고 있음을 의식하자. 혼란을 불러온 팬데믹으로 인해 주위환경의 갑작스런 변화는 추억과 질서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면서 익숙했던 생활문화가 우리들 곁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생각과 삶의 틀이 어쩔 수 없이 변화해가는 현실에서 아이러니는 필연의 가면(假面)이 되어버린 상황을 이해해가며 펼쳐진 자신의 생활에서 만족을 느껴보자.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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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23 16:44

오늘을 산다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화려한 20대를 보냈다. 누구나 젊음은 그러겠지만 나의 20대도 찬란했다. 큰 꿈을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멋진 여성으로 성장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며, 새로운 삶과 맞닥뜨렸다. 무지에 의한 용기 덕분인지 국위를 선양하는 사람이 되자며 뭐든 열심을 다했다. 국제적인 기관에서 인턴십도 하고, 타향살이 외로움에 지지 않으려고 시작한 운동 덕분에 미인대회에 출전하여 한 지역 대회에서 진(眞)에 당선되는 영예도 얻었다. 열심히 달려온 삶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고, 수고한 열정을 기특하게 여겼다. 시간은 흘러 어느 사이 결혼을 하고, 20대 꿈 많던 소녀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거울 속 모습은 어느덧 내가 아닌 내가 되었다. 그래도 괜찮았던 이유는 과거의 기억과 디지털화 된 사진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화려한 과거의 기억들을 오늘을 살게 하는 자양분으로 여겼지만 현실의 위로와 우울 사이를 오가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무렵,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더니 손에 잡힌 외장형 하드를 내동댕이쳤다. 순식간이었다. 지난 십여 년의 모든 기록이 담긴 기록을 복구하려 국내 제일 유명하다는 업체까지 찾아갔으나 결국 비용은 비용대로 들고 얻어지는 결과물은 없었다. 갓 돌 지난 아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고, 며칠이 지나서야 과거의 흔적과 증거들을 쉽사리 떠나보내지 못하던 미련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는 꼭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 이제 정신 차리고, 엄마답게 좀 살아요! 그때 머리를 강타한 문구가 있었으니, Good-bye Yesterday, Hello Today! 빛나는 왕관을 쓴 모습이 현실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현재였다. 아이 덕분에 나는 과거에 집착하는 삶을 벗어나 지금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외장형 저장장치의 사망과 함께. 심리상담 전문가들은 과거에 사로잡히면 집착이 되고, 미래에 사로잡히면 망상이 되어 현재에 행복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즉, 오늘은 있는 모습 그대로의 도형(figure), 어제는 배경(background), 내일은 전경(foreground)으로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현재를 바라보지 못하고, 미래에 꿈과 희망을 두면 실체가 없어 현실과의 괴리 속에 정신분열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만 집착하며 현실을 부정한다면 탓의 늪에 빠져버릴 것이고, 달라질 미래만 기대한다면 원망을 가져와 현재를 부정한다는 것인데, 행복의 비결은 신비롭게도 현재에 있었다. 다시 거울을 본다. 예전만큼의 상큼하고 파릇파릇함은 사라졌지만 자꾸 보니 뭔가 예뻐 보인다. 시간을 조금 더 살았다고 삶에 여유도 생기고, 조바심 내지 않는 나이가 마음에 든다. 화려한 삶은 아니어도 소소한 일상이 주는 감격에 하루하루가 채워진다. 이것이 현재가 주는 만족이다. 작년에 열렸던 제55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배우 김혜자의 수상소감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오늘을 과거에만 사로잡혀 후회한다면 내일도 역시 후회로만 가득 할 것이다. 불필요한 기억과 기대로 이젠 더 이상 오늘을 낭비하지 말자. 누군가 그러지 않던가. 현재(現在)는 신이 우리에게 준 선물(Present)이라고! 우리 지금 바로 여기에서 오늘을 살자. Here and now.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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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16 19:55

의학과 의술, 코로나19의 과제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의학은 독립되고 정형화된 학문이 아니라 경험과 여러 분야의 연구결과에 근거하여 지식을 축적해가는 통합적 실용학문이다. 아직도 감염병, 만성질환, 암 등의 많은 질환에서 의학지식의 행간이 비어 있으며 의학은 다양한 학문 분야의 도움과 함께 빈자리를 채워갈 것이다. 인류는 감염병과 부단히 싸우며 의학을 발전시켜왔다. 지금의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새로운 질환들이 의학의 능력과 한계를 계속 시험할 것이다. 수년마다 갱신 간행되는 의학 교과서들은 의사들의 평생 스승이다. 더불어 의사들은 쏟아지는 논문을 읽고 학회와 연수강좌 등을 통해 각자 전문분야 의술에 필요한 의학지식을 계속 보수한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하여 의료계도 국내외의 현장 학술교류가 급격히 줄었다. 반면 가상공간의 의학정보 교류는 활발해 의사들의 의학지식 보수 방식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웹세미나(webinar)가 현장의 대면 학술모임을 대신하고 온라인 저널이나 화상강의나 의학지식을 신속히 전달하는 중요 수단이 되고 있다. 의술은 단순한 기계적 행위가 아니라 확립된 의학지식을 복잡한 판단과정을 통해 환자에게 적용하는 예술적 행위(medical art)다. 의학과 의술은 동의어가 아니며 수준의 격차가 있을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보았듯이 우리나라 의술과 시설은 세계 최고의 수준임을 자타가 인정하고 있으나 의학적 역량은 아직도 분발이 필요하다. 의료보험제도 하에서 규격화된 진료와 임상의학의 양적 확대, 논문양산에 치우친 학술지원의 결과 질환의 기전 규명과 신약이나 백신개발 등에 필요한 의학의 기초체력이 부실해진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19사태를 계기로 의사 간 진료정보의 원격공유뿐만 아니라 한시적으로 허용된 의사 환자 사이 제한적인 비대면 진료와 처방도 경험하게 되었다. 기술적으로는 현재도 인공지능이 일부 의사를 대신할 수 있으며 처방을 위한 원격진료나 로봇을 이용한 원격수술도 이미 가능한 시대다. 최근 묶여있는 원격의료의 제도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우리나라의 경우 안전성 문제와 함께 진료 결과에 대한 법적 책임의 소재가 불명확하고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차의료기관의 몰락과 국가 의료체계 붕괴를 염려하며 반대하고 있다. 보건위기의 상황에서 의료역량은 의학과 의술을 담아내는 국가보건의료체계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는 전국민의료보험이 사회보장제도로 시행되고 있으면서 공공의료보다 민간의료가 주축이 되어 있어 공공의료 확충, 공공의대 설립 등이 회자되고 있다. 민간의료와 공공의료의 장단점은 논외로 하고 이번 코로나19 세계적 확산에서 유럽 선진국들의 사회주의 공공의료제도가 보여주는 무력함이나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미국식 의료시스템에서 드러나는 허점과 한계에서 우리는 중요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국가보건의료제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료계와 정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안타깝게도 그간 국가적 우환에도 의정 간 갈등이 지속되어 왔다. 정부와 의료계는 갈등을 해소하고 진심을 담은 대화를 해야 한다. 그리고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 가능성에 대비하여 방역과 진료에 필요한 인력 시설 장비 등 의료자원를 조율하고 공공의료와 민간의료의 역할, 의료와 정보통신 공학기술의 접목에 관련된 사항들을 신중히 살피고 의견을 나눠야 한다. 총론적으로 기초와 임상의학의 균형적 발전, 공공의료와 민간의료의 조화, 의료전달체계나 질병관리체계의 개선 등 보건의료제도의 적정화는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주는 과제다.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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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09 16:54

건강한 시민운동을 위한 제언

김판용 시인전주경실련 고문 권위주의를 무너뜨린 것은 의식 있는 시민들이었다. 지배자가 권력을 순순히 내려놓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민주주의는 그래서 투쟁의 피로 이룬 결과물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5?18 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혁명까지 깨어있는 시민의 힘으로 억압의 시대를 물리치고 자유를 얻은 것이다. 시민들을 이끈 것은 시민단체였다. 다수의 시민을 하나로 모아 나갔기에 힘이 있었다. 민주주의 역사에서 시민단체가 기여한 바는 헤아릴 수 없이 크고 위대하다. 또 이런 단체들이 굳건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데에는 생계를 포기하고 헌신해 왔던 활동가들의 공이 전적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어려운 일을 맡아 한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이다. 최근 정의기억연대와 이용수 할머니로부터 촉발된 갈등을 접하면서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진실이 드러나면 모든 것은 가려지겠지만 이 기회에 우리 시민운동의 방향을 재정립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올 것이 온 것이다. 아직도 80년대식 방식의 진영논리에 갇혀 있거나, 시민사회의 기득권이 자신들에게만 있다고 여기는 활동가들로는 안된다. 건강한 시민운동을 위해 몇 가지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조직이 건강해야 한다. 건강한 조직의 척도는 시민들의 참여에 있다. 단순히 재정적 지원이 아닌, 의사 결정까지도 구성원 중심이어야 한다. 또 임기를 채우고 나면 반드시 대표는 바뀌어야 한다. 대표도 못 바꾸는 조직은 허약하다. 우리 주위에 한 번도 대표가 바뀌지 않는 단체들이 있다. 사정이야 있겠지만 건강한 조직이 아님을 그 대표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이다. 둘째, 정치 중립적이어야 한다. 억압받던 시절 시민사회는 그에 대항하는 소수 권력을 도왔다. 당연한 행보이다. 또 시민운동의 경험과 전문성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목적이 정치에 있다면 평가는 달라진다. 더구나 선거에 관여하고 기여금을 비롯한 어떤 댓가를 받는다면 썩은 정치권에 기댄 기생적 행태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부조리를 지적하고 비판할 수 있겠는가? 셋째, 이번 정의연 사태에서 드러나듯 회계가 투명해야 한다. 어렵게 살림을 꾸리던 시절이야 좋은 의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아니 재정이 열악해 활동가들이 아르바이트로 재원 마련하기도 했었다.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국민 대다수가 시민단체의 회계 감사를 원하고 있다. 물론 활동가들에게는 일한 만큼의 정당한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언제까지 그들의 희생에만 기댈 수는 없다. 넷째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단체인지 모호한 단체가 있다. 약자를 대변한다면서 약자는 보이지 않고, 활동가들만을 위한 단체는 이제 간판을 내려야 한다. 약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거나 출세를 하려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신뢰할 수 있겠는가? 지난 30여 년간 우리 사회를 민주적이고 정의롭게 하는데 시민단체의 힘은 지대했고, 앞으로도 그 힘은 필요하다. 그러나 시대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누구를 비판하기에 앞서 단체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 성찰을 통해 시민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단체로 나갈 수 있는 계기인 것이다. /김판용 시인전주경실련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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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02 17:41

어른과 꼰대 이야기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5월은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어린이 날과 어버이날 그리고 스승의 날이 함께한 가정의 달이다. 1958년 5월부터 스승의 날이 있었다. 스승으로 존경받는 선생님은 먼저 태어나서 더 많은 것들을 알기에 배울 점과 본받을 점이 많다는 의미의 존칭이다. 학생들로부터 진정으로 존경받으며 스승으로 기억되는 선생님들은 이 땅에 몇 분이나 계시려나? 후학들에겐 스승이나 어른은 닮고 싶은 사람이면서 미래의 표본으로 경외의 뜻이 담겨 특별한 가르침을 준 사람을 인생의 스승 또는 큰 어른이라고 부른다. 교사의 날도 선생님의 날도 아닌 스승의 날이라 이름 지어진 것은 나름의 깊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선생님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사제 간의 정마저 거부하는 냉정하고 기계화된 사회현상이지만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들로 남아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꼰대라는 단어는 선생님에 대한 학생들의 호칭이며, 1960년경부터 아버지나 교사, 또는 직장상사에게 젊은이들 사이에서 쓰이던 늙은이의 은어(隱語)다. 자기의 경험이나 지식을 자녀 또는 직원들에게 자신들이 겪었던 낡은 사고방식을 강요하거나, 시대착오적 설교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주위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가장 극복해내기 어려운 감정 중의 하나가 주위의 시선과 자신만이 느끼는 열등감이라고 한다. 그것도 가까운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이나 패배감은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삶을 바꿀 수 있는 길로 안내하거나 자신감을 심어주는 멘-토가 되는 역할이 바로 스승이나 어른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은 선생님의 따뜻한 말씀 한 마디로 용기를 얻어 빗나가던 삶을 전환시켜 평생 동안 가슴에 안고 자기인생을 경영해간다. 그런가하면 개념 없이 뱉은 선생님답지 않은 말로 인생이 망가진(?) 학생 또한 없지 않았으리라.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습관적으로 던지는 폭언이나 빈정거림은 젊은 학생들의 가슴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가 되어 뇌리에 박힐 것이다. 너는 도대체 커서 뭐가 될래, 그 꼴 참 좋다 이게 다 네놈 때문이다 네 형 반만 닮아봐라 등 자녀나 학생들에게 버릇처럼 뱉어내는 실망하는 감정의 패턴은 그 사람을 헤어나지 못하는 구렁텅이로 몰고 간다.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했던가? 선생님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잘못하거나, 눈 밖에 난 학생이 있더라도 한 번 더 웃어주고, 등을 두드리며 칭찬해준다면 그에겐 새로운 변곡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종편 방송 Top 7 프로그램의 김호중이라는 가수는 가정사로 인해 포기에 가까운 삶을 이어가던 조손(祖孫)가정의 말썽꾸러기 학생이었다고 한다. 운명적으로 만난 선생님의 진정한 뒷바라지로 지금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불우한 과거를 씻어가는 제2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고령사회가 되면서 노인들은 늘어가지만 어른다운 어른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세상에서 제일 가까워야 할 부모와 자식 사이 스승과 제자 사이가 부적절한 언행과 이기적인 행동으로 관계의 벽이 갈수록 높아져만 간다. 선생님 그리고 어른들이여! 훌륭한 스승으로까지는 아니더라도 2세들의 미래를 가로막는 꼰대라는 호칭은 듣지 않아야겠지요?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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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26 20:21

삶으로 가르치다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엄마 게와 아들 게가 길을 가고 있다. 아들아, 옆으로 가지 말고 앞으로 가라! 아들이 답을 한다. 엄마, 저는 엄마를 따라 가고 있습니다. 엄마가 가는 대로 옆으로 기는 것, 그것은 아들이 보고 배운 유일한 방법이었다. 앞으로 가지 못하는 엄마 게가 아들 게에게 너는 왜 옆으로 가냐고 타박을 한다면 누구의 잘못일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보이는 대로 배우는 것이 있다. 말하는 방식과 행동, 식성, 취향, 가치관, 서서히 알게 모르게 습득 되는 수많은 것들, 그것은 허용의 범위이며 포용 가능한 생활 습관이 된다. 때로 이는 긍정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반면 나쁜 씨앗이 되어 고질적인 버릇으로 남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고, 자녀는 그 부모의 열매라고 하는데, 체화된 가르침은 얼마나 고약한지 쉽사리 바뀌지가 않는다. 엄격한 아버지 슬하에 체벌로 눈물 흘리던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되지 않기로 다짐하면서도 어느새 동일한 모습으로 자녀를 대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는 고백을 듣는다. 상처는 기억으로 남아 행동으로 표출된다. 보고 자라는 것이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 결국 삶의 교육이 인성을 사로잡는다. 두뇌교육전문가인 홍양표 박사는 현대 사회 성공하는 자녀의 덕목으로 자신의 서열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자신의 역할을 아는 것이 관계를 맺는 힘이 되고, 사회성이 좋은 아이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열은 어디에서부터 정해질까? 우리의 삶의 터전, 바로 가정이다. 가정에서부터 가장의 권위가 서고,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순서로 이어질 때, 불필요한 싸움은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모두가 마주 앉은 식탁에서 최고 권위자가 수저를 들 때까지 밥을 먹지 않는 것, 아버지가 퇴근하시면 먼저 반기고 환영해주는 것, 자녀들 앞에서 배우자 험담을 하지 않는 것, 먹는 것은 형이 동생에게 나누어주는 것, 이런 사소한 일상의 행위들이 삶을 가르치는 교육이 되어 성공하는 인품으로 성장하게 한다니 기초 인성 교육이 성화(聖化)의 핵심이었다. 비행기에서 위급 시에는 보호자가 우선 산소마스크를 쓰고 난 다음 아이들을 도우라고 한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어린 아이들이 먼저 보호 받아야 마땅하다 싶어 마스크를 먼저 씌워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른들이 먼저 살아야 위급한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으로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어른이 살아야 아이도 산다는 것, 삶을 먼저 살아본 이가 본이 되어야 그것을 표본으로 삼고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네덜란드에서 500명의 아이들에게 날씨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는지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아이들의 절반은 그렇다고 했고, 나머지는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아이들의 엄마도 동일하게 대답을 했다는 것인데, 결국 날이 좋아 엄마가 기분이 좋으면 아이들도 기분이 좋아졌고, 날이 흐려 엄마가 우울해지면 아이들도 그렇다는 것이었다. 날씨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내 선택과 모습으로 바꿔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르침으로 받는다.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보며 배우고, 청년은 먼저 어른이 된 이들을 보며 꿈을 꾸고, 세상은 먼저 살아간 이들의 모습으로 기록에 남는다. 우리의 발자취가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걷게 하는 이정표가 된다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 가정의 달을 보내며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남는다는 진리가 우리 모두에게 책임감으로 전해지길 소망한다.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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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19 18:06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는 현재진행형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대구 경북의 신천지 교회 코로나19 집단 감염사태는 전화위복의 쓴 약이 되었다. 화는 대구 경북의 시민들이 입었으며 그 화로 인한 복은 전체 국민에게 돌아갔다. 지난달 대구에서 한 요양병원을 운영하던 원장님에게 힘내시라고 연락을 드렸다.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던 때 요양병원 전수조사 중 그곳은 양성 환자가 발생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부를 물었는데 편치 않은 마음이라며 우리 모두의 일이며 함께 극복해야 한다고 공동체적 답변을 들려주셨다. 먼저 대구 경북 시민들의 문명적 태도와 자발적 봉쇄, 의료진의 노고와 헌신에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지난 2월 7일로 돌아가면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중앙임상위원회 의료진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코로나19 환자 중에 인공호흡기나 에크모, 신장투석기 등 중환자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없으며 증상으로 보아 중증질환이 아니라는 취지의 발표를 하였다. 발표내용은 매우 성급한 것이었으나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충정이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책임감 있는 분들이라면 특히 대구 경북을 비롯한 전국의 코로나19 환자와 의료인을 포함한 전 국민에게 송구스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미국 시카고 근처에 거주하는 수학자 의형이 3월 중순에 전주를 방문하고 싶다고 1월말에 알려왔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19 사태가 위중하니 신중하시라 만류하였다. 그러나 회신은 함께 여행할 자제의 의견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미국 내에서 연일 보도 되는 뉴스는 독감 정도로 취급하고 있으니 예정대로 한국에 와서 전주 한옥마을의 한옥 숙박체험을 해보고 싶다는 전언이었다. 초기에 한국과 미국 모두 사태를 오판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여행을 취소하시라 권유하였으며 형님은 그 충고를 따랐다. 그런데 지금 방역에 실패한 미국보다 우리나라가 더 안전한 곳이 되었다. 초기에 잘못된 정보에 따라 대책 없는 일상활동으로 코로나19가 은연중 미국 전역에 퍼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신천지교회 집단감염으로 대구 경북의 환자수가 급증하자 중앙대책본부와 질병관리본부의 적극적 대응, 시민들의 자발적 봉쇄, 의료진의 노력과 함께 온 국민의 걱정어린 성원이 전국적 방역에 힘이 되어 지금 통제 가능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만일 신천지 집단감염이라는 돌출상황이 없었고 일부 성급한 발표에 근거하여 자유롭게 생활했더라면 집단 활동이 활발한 우리는 코로나19의 지역사회 감염이 조용히 그러면서도 급속히 전파되고 임계점을 넘어 환자가 전국적으로 폭증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의료시스템 붕괴와 통제불능의 상황이 되었을 수 있다. 초기 신천지교회 집단감염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이유다. 아직도 코로나19 원인체의 발생과 변이, 전파과정의 역학, 임상적 특징과 치료방법, 회복 후 후유증이나 면역력 획득 여부, 백신의 가능성이나 효과 등 코로나19 정체가 완전히 파악되지 않았다. 이제는 2차 유행에 대비하여 재확산의 단초가 될 무증상 환자를 관리할 방법을 찾기 위해 표본 지역사회 전체인구를 대상으로 바이러스나 항체 양성여부에 대한 전수조사 연구도 필요하다. 지금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으나 코로나19는 현재진행형이다. 일상으로의 복귀, 특히 각급 학교의 개학은 재확산의 계기가 될 수 있으며 또 여름이 지난 후 더 큰 2차 유행이 염려되고 있다. 코로나19의 완전퇴치에 이를 때까지 일상생활에서 개인위생과 방역지침을 철저히 지켜야 하겠다. 코로나19를 벗어날 각국도생의 1차 결승선은 치료제와 백신의 완성시점이다. 모두 합심하여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우리나라를 다시 한번 진일보시키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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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12 16:55

다가온 미래와 포스트 코로나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들은 그 여파가 커서 구성원들의 의식은 물론 사회 시스템마저 바꿔버린다. 전쟁이나 전염병과 같은 재앙에 부딪히면 기존 질서의 민낯이 드러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 무섭던 양반과 남성들의 무기력이 드러났고, 이후 신분제의 모순과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상대적으로 활발해진 경우이다. 관성적으로 유지되던 생활습관과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고민은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이어진다. 제2차대전 이후 최악의 재앙이라는 코로나19의 파장도 그렇게 퍼져 나갈 것 같다. 우리나라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지만 세계적 확산 일로에 있다. 그리고 이 싸움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내년으로 연기된 동경올림픽마저 개최가 불투명하다고 하니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 대혼란은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이런 가운데 한쪽에서는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주도권을 잡겠다는 야심이다. 지난주 연예기획사 SM은 세계 최초로 소속 그룹 슈퍼엠의 온라인 공연을 진행했다. 이 공연에 세계 109개국, 7만5000명의 관객이 참여했다. 관람료가 한화 3민3000원 정도니 입장료만으로도 최소 25억을 벌어들였다. 며칠 전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역시 파이팅 콘서트를 온라인으로 중계했다. 뮤지컬이나 연극 등이 시나브로 안방으로 향한다. 코로나 환경과 디지털 기술이 빚은 비대면 공연 문화이다. 코로나19 예방의 핵심은 비대면이다. 개학을 미루다 원격수업으로 전환한 학교, 그러나 이런 비대면 교육이 일시적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온라인 교육으로 급격하게 기울면서 교사들의 수업 능력을 시험하려 들 것이다. 대표적 온라인 교육기관 미네르바대학이 하버드대보다 합격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비대면이 그리 생소한 것도 아니다. 은행을 가지 않고도 금융거래를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됐다. 대면 진료에 의존하고 있는 병원 역시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모든 환자가 꼭 내원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떤 이는 대중교통의 종말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교통정책 전반을 재조정해야 하는 문제라서 쉽지는 않겠지만 소형화, 자율주행 등으로 나갈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무엇보다 온라인 중심 거래가 가속화 될 것이다. 미국의 백화점 삼분의 일이 이미 문을 닫았다. 몇백억 들여 화려한 백화점 건물을 지을 이유가 없다. 배달앱의 출현으로 소위 상권의 위력이 약해져 가듯 임대료도 급격히 낮아질 것이다. 조리기구만 있으면 외곽에서도 음식을 만들어 배달앱 플랫폼에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속설이 옛말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국제 관계도 다소 폐쇄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항공산업의 그림자가 어두울 것이란 전망이다. 그 외에도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떠났던 제조업의 리쇼어링이 본격화되고, 인건비에 대응할 스마트 공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선진국의 일자리는 늘겠지만 제품의 가격도 오를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뉴노멀, 갑자기 다가온 미래에 빨리 대응해야 한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망하기 때문이다. 디지털카메라를 먼저 개발하고도 내부 필름 기득권에 밀린 코닥의 몰락, 최초로 스마트폰을 내놓고도 퓨처폰 세력의 고집으로 시판을 못 하고 결국 문을 닫은 노키야의 사례를 타산지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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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05 15:50

‘벌써’라는 의미의 아쉬움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창밖을 바라보니, 라일락이 만발하는 5월이 먼발치서 화사한 미소로 다가오고 있다. 계절의 여왕으로 칭송받는 5월이라는 감정보다는 덧없는 세월의 무상에 벌써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현재의 시간이 현실에서 잘게 부서져간다. 벌써 라는 단어가 지난 세월을 아쉬움으로 몰아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누구의 인생이든 기를 써가며 살아 온 젊은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아른 거릴 것이다. 아직도 못 다한 일들이 남아있는데 이를 어찌할까하고 말이다. 우리는 각자의 이정표에 인생을 다르게 설계하며 삶의 철학을 얘기한다. 산다는 것은 사람마다의 색깔 있는 꿈을 갖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그 꿈을 이뤄내려고 치열하게 꿈틀대는 전쟁이다. 저녁놀을 바라보면서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은 노인의 길목에 들어선 증거라고 한다. 하얀 새치가 하나둘 거울 속에 나타날 때,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은 인생을 음미해가는 사람이며, 할아버지라 부를 때, 웃는 얼굴로 받아들이면 그는 성숙한(?) 사람이라고 한다. 세월의 무게에 밀려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삶의 맛을 천천히 곱씹으면서 영글어간다고 그럴듯한 포장으로 위안을 받으려 한다면 그는 분명 센스 있는 사람이다. 오랜 세월을 건너오는 동안에 당신의 마음에는 무엇들이 걸려 있었을까. 스쳐간 인연들, 지난날들에 얽힌 회한, 못다한 그리움의 감정들, 즐겁고 아파했던 청춘을 돌아보며 이제부터는 가슴속이야기를 털어놓을 사람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 놓아야 여생이 편안하지 않을까? 누구나 다양하고 바쁘게 이어온 과거는 현재의 나를 만드는데, 단단한 기저가 되었겠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미래가 오염되지 않도록 과거를 미련 없이 흘려보내야 한다. 우리의 조상들이 흰옷만을 입을 수밖에 없었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가령 빨간색이나 노란색을 입고 싶었어도 염색하는 기술이 없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감미롭고 순결하고 깔끔한 의미의 하얀색이 때로는 두려움을 연상하는 붉은색보다 더 많은 공포를 부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시작되었을까. 인자한 모습의 성모마리아상, 로댕의 생각하는 남성조각상 등은 왜 하얀색이었을까? 하고 생각해본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우리가 누구인지를 따지지 않고 슬픈 일, 기쁜 일들은 언제나 우리들 곁에 머물고 있듯이, 하얀색과 빨간색들이 어느 곳이나 펼쳐져 있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이겨내는 것이 우리들의 오늘이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했다. 일그러진 운명이 다가왔을 때, 회피하기보다는 주어진 일에 모든 힘을 쏟아낸다는 뜻이 아니었을까하고 해석해본다. 여럿이 모이면 하나의 주제에서 의견이 다르듯, 굳이 나를 그 속에 묻어버릴 필요는 없다. 벌써라는 아쉬움이나 아직이라는 단어에 이끌려 다니는 것보다는 초조해하지 말고 나름의 철학을 믿고 자기라는 인생을 꾸준하게 일궈가는 것이다. 모든 일에 자기를 나타내려한다거나 조바심을 내는 사람은 옆에서 치켜세우는 겉치레의 칭찬에 잘 속아 넘어간다. 생각이 빗나간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혐오감도 모른 체, 자기의 존재가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받는 줄 알고 흐뭇해하는 사람이다. 라고 했다. 석양노을의 바닷가를 거니는 나그네의 가슴이 출렁거리는 것은 노년기를 맞이하고 있는 비탈진 고비길 인생일 것이다.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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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28 20:32

용서하기 힘들 때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사회의 구성원으로 진짜 성인(成人)이 되었다고 인지할 때부터 인생은 왜 쉽지 않을까?를 묻고 또 물었던 기억이 있다. 살다보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가 너무 많다. 열심히 학창시절을 보내면 입시가 기다리고 있고, 입시 후에는 취업, 어렵사리 취업을 해 결혼까지 골인한다고 해도 새로운 시작일 뿐이었다. 수십 년간 따로 살던 배우자와 맞춰가는 것도 힘든데, 시댁 또는 처가 식구들이 딸려온다. 사랑 속에 태어난 자녀들이지만 인내심의 한계를 자극할 때, 내가 이러려고 결혼을 했나 싶어 복잡한 마음이 든다. 이런 저런 생채기가 깊어질 무렵 분노로 폭발하고 만다. 때로는 더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믿었던 배우자의 배신, 재정의 궁핍, 사업의 실패, 고된 질병, 사춘기 자녀의 방황, 남모르는 아픔에 눈물을 훔친다. 잔소리와 회초리로 변화될 수 있다면 해보겠건만, 닦달하는 외침에 갈등만 커지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사랑하는 이가 준 상처는 마음에 깊이 파고들어 용서 할 수 없다는 사연이 라디오에 도착한다. 별다른 해결 방도를 찾지 못해 시간만 보내고, 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너무 멀리 건너왔다며 아쉬워하는 이들을 보며, 용서가 진정 어려운 일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작하는 생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유달리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았던 날, 퇴근 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데 이솝우화 해님과 바람을 오랜만에 펼치게 됐다. 해님과 바람이 누가 더 강한지 티격태격하다 힘겨루기를 한다. 지나가는 사나이의 외투를 누가 벗길 수 있는지 내기를 하며 바람이 먼저 세게, 더 세게 바람을 불어보지만 사나이는 옷깃을 여밀 뿐이었다. 이번에는 해님이 햇살을 강하게 비추자 더워진 나그네는 옷을 벗었다. 진정한 강함이 무엇인지를 오랜만에 읽은 이야기를 통해 곱씹어본다. 강한 힘, 강압적인 방법이 결코 능사는 아니라는 것. 부드러운 온기로, 따뜻함으로 포용해 줄 때, 긍휼의 자비가 임한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은 용서의 위대함을 절실히 보여주는 소설이다. 빵을 훔친 대가로 19년의 옥살이를 하고 나온 장발장은 은접시를 훔친 위기의 상황에서 그의 부족함을 덮어준 미리엘 신부의 따뜻한 말 한마디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되길 다짐했다. 장발장이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체벌과 감금이 아니라 갚을 수 없는 감사를 느끼게 한 용서였다. 용서의 힘을 묵상한다. 용서는 먼저 내민 손이고, 새로운 기회로 이어지는 희망과 용기다. 이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아내지 못한 진심이며, 자존심을 이겨낸 용기이고, 삶의 또 다른 이유가 된다. 의학 전문가들도 말하길 자발적인 용서는 심신의 안정감을 주고, 부교감신경계를 활성화하며 혈압을 낮추고 각종 질병의 위험을 감소시킨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진정한 용서는 남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한 성숙한 의례 행위이자 인격 수양의 최고봉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를 주저하게 만들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과감히 떨쳐내고, 미래를 향해 시선을 돌릴 때, 용서가 결국 홀로 쥐고 있던 내면의 상처와 부정적인 감정을 치유하는, 스스로를 위한 일임을 깨닫게 된다. 마하트마 간디는 용서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용서는 용기 있고, 용감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죄를 용서할 만큼 강한 사람만이 사랑하는 법을 안다. 용서하기 힘들 때, 이제는 나를 생각하자. 상처 준 그들을 위해서가 아닌, 사랑받을 만 하고 세상에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나의 존재를 위해 이제는 외쳐보자. 나는 너를 용서한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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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21 19:40

출산율 회복의 조건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10년 전 합계출산율이 1.23명이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92명이었으며 2019년11월 처음으로 사망수가 출생수를 앞서 인구감소가 현실이 되었다. 과거 적극적 산아제한 정책의 영향으로 다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지금도 집단무의식 속에 각인되어 있으며, 청년들의 가치관 변화와 함께 사회경제적 어려움으로 비혼의 증가가 더해져 인구문제는 더 절박해졌다. 그간 국가와 지자체가 내놓은 저출산 대책들도 유효한 출구를 찾지 못했으니 저출산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따져보고 방향을 다시 점검해보아야 한다. 과거에 공중부양 같은 황당한 주장으로 얘깃거리가 된 한 대선 후보의 결혼수당 1억과 출산수당 3000만원 지급이라는 공약이 기억난다. 지난 2년간 저출산문제와 관련하여 쏟아부은 재정이 58조가 넘고 올해만 37조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생각하면 그 공약을 황당한 소리로만 치부할 수 없게 되었다. 근래 전시회에서 그림을 출품한 모 은사님과 담소하던 중에 들려준 말씀 한 토막은 다음과 같다.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너희들 인생은 너희가 알아서 할 바니 상관하지 않겠다라고 해서는 안되며 나를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너희는 국물도 없다라고 말해야 한다. 인구문제를 비켜 생각해도 손주를 바라보며 사랑에 빠진 할머니의 말씀으로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무튼 인구감소 문제를 그냥 자녀들의 독립적 인생관과 판단에만 맡겨둘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 분명하다. 지금의 추세를 반전시키지 못하면 훗날 지도 상에서 지워질 이유로 핵전쟁이나 치명적 전염병, 환경변화에 따른 재앙 등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인구문제의 열쇠는 청년세대이다라는 명제는 우리의 시대적 화두다. 현재 저출산에 대한 대책은 격려와 보상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는 필요충분조건이 요구되는데 필요만 주어지고 충분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것이다. 물론 청년세대의 취업이나 육아와 교육 및 주거문제 등을 개선하고 보조하며 출산에 적절히 보상을 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정도의 문제일뿐 최소한의 필요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충분조건이 성립되지 않으면 이민자의 대량 유입이 아닌 한 인구감소를 되돌리기란 어려울 것이다. 청년세대가 인구문제의 열쇠이기 위한 충분조건은 의식의 변화다. 이는 성년 이전에 받아온 제도권의 교육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가정에서 이뤄진 학습의 결과다. 생의 가치 중 무엇이 우선 순위인가 하는 문제다. 인생에서 출산 즉 생명체로서 유전자의 세대연속을 당연한 자연의 이치로 생각했고 생의 우선 가치로 여겼던 베이비 부머 세대와 달리, 자아 실현과 행복을 위해 결혼도 출산도 미루거나 포기할 수 있는 현재와 미래의 많은 청년들에게 충분조건이 추가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결혼이나 출산과 양육은 행복을 방해하는 것이며 피하고 싶은 선택일 것이다. 비혼과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는 국가적 필요성만 내세워서는 해결할 수 없다. 생명과 인권, 생명체의 의무로서 세대의 연속성 등 삶의 가치관점으로 바라봐야 출구가 보일 것이다. 행복한 삶에 대한 개인의 가치관을 국가적 문제 해결의 충분조건으로 연결하는 것은 가임세대 개개인과 그들이 속한 가정, 학교, 사회가 합의와 협의를 통해 이뤄야야 하는 난제다. 현재 그리고 미래의 청년들이 출산이란 자신들을 통해 한 생명이 찾아오는 것이며 이를 삶에 있어 우선되는 고귀한 가치로 받아들일 때, 격려와 보상도 그 문을 여는 유효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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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14 16:22

코로나19와 문화적 자부심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인류 사회의 발전 중의 하나는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망 확장일 것이다. 인접한 국가와의 갈등에서 벗어나 다양한 대륙의 많은 국가들과 관계를 넓혀 가면서 경제적 번영은 물론 늘 싸웠던 이웃나라와도 비교적 평화롭게 지내게 되었다. 우리 역시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지만 최근 70년이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기간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교역과 왕래가 마냥 꽃길이 아님을 이번 코로나19는 명확히 보여줬다. 중국의 우한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현재 209개국에 120만 명 이상을 감염시켰다. 계속 환자가 쏟아지고 있으니, 어느 정도 규모로 나갈 지 알 수가 없다. 벌써 사망자만 6만 명을 훌쩍 넘겼다. 과거 페스트가 유럽에 국한되었다면 지금의 코로나19는 세계적 재앙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유난히 전염력이 높은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인류의 보폭이 그만큼 넓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러자 일부 국가에서는 입국을 통제하고, 국경을 봉쇄하는가 하면, 이미 착륙한 비행기를 돌려보내는 등 전례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렇다고 서운하단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위기에 본질은 드러난다. 코로나19는 문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국제관계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위상이 분명하다.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들은 그렇지 못한 나라에 비해 우수한 자본과 기술을 문화적 우월성으로 여겼다. 최근 소위 선진국들이라 자처하는 그들의 문화적 우월감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코로나19를 미개한 동양인들에게나 옮겨 붙는 허접한 바이러스라 여기고 인종차별적 태도를 보였다. 마스크를 쓴 동양인을 바이러스 취급하고 혐오하는가하면 심지어는 테러를 자행하기도 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가장 많은 환자가 유럽과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 또 선진국의 의료 시스템도 얼마나 허술한가를 보여줬다. 의료는 산업이기도 하지만 전쟁이나 전염병 창궐 시에는 국방이다. 나라를 지키는 시스템인 것이다. 단순히 산업으로만 여기고 돈이 되는 쪽으로만 발전시킨 첨단 의료 시스템이 코로나 정국에서 얼마나 무기력한가를 보여줬다. 우리가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의료인들의 태도다. 환자를 두고 병원을 떠나버리는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보여준 행태일 것이다. 코로나 위기 경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모여서 파티를 즐기고, 정작 위험이 닥치자 생필품을 사재기했다. 나만 먹고, 나만 살자는 이기적인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과연 이게 선진국민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런가 하면 그들이 그토록 무시했던 동양, 아시아 국가에서 사재기를 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코로나19로 드러난 서구의 민낯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문화적 상대성으로 스스로 움츠려들지 않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무엇이 발전된 국가의 모습인가? 적극적이고 투명한 방역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은 국가, 환자에게 헌신적인 의료인, 또 국가적 위기에 함께 동참하는 국민들 이게 선진국이고 문화국가의 모습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임에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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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07 17:02

삶은 생각 따라 달라지는 것을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기발한 해프닝성의 거짓말로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게 해주는 사월의 첫날이다. 16세기 후반 무렵부터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영국과 미국을 거친 서양의 전통문화가 바다를 건너와 이제는 추억으로 묻혀가는 만우절(April Fools Day)날이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가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온 국민들이 가뜩이나 긴장을 풀지 못한 채로 하루하루를 넘어가고 있다. 세상인심이 일상을 외로운 삶으로 끌고 가는 것은 아닌가 하고 모두의 마음이 무거울 것이다. 자연의 섭리는 수은주를 끌어올려 겨우내 움츠렸던 수줍은 생명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렇게 푸른 날개를 펴가며 생동하는 희망의 달(?)인데도 영국의 시인 토머스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왜 잔인한 달이라고 읊었을까? 우리들 모두 거울에 비추이는 내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현실에서의 자신을 한 번쯤 되돌려 짚어보면 어떨까. 어떤 일이 종료된 뒤 개운치 않은 찌꺼기 같은 것들이 남아 있을 때, 그 상황을 때로는 나 자신을 돌아다보며 바로잡으려하거나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이런 때일수록 새삼스레 삶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정리해서 도전해보는 것도 틀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똑같은 상황에서 헤쳐 나가는 수단과 방법이 다른 것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정도와 그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가 돌부리에 부딪히면 누구는 걸림돌이라 투덜대고, 어떤 사람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면서 지나칠 것이다. 눈이 떠 있는 동안에 걸림돌과 난관들을 수없이 겪어 가면서 그것들을 딛고 가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경험으로 축적이 된다. 컵에 물이 반절이 남았을 때, 반절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람과 아직도 반절이나 남았다고 여유를 갖는 사람과는 인생을 운전하는 모습이 다르듯이. 인생살이에서 정답은 없다. 저 사람은 부유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잘 생겼기 때문에, 당신은 머리가 좋기 때문에 그들 모두는 매우 행복할 것이다. 라는 논리는 그 원인이 소멸되거나 약해지면 바로 무너질 수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음에도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시험에 여러 차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끝내 시련을 견뎌내면서 보란 듯이 일어서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집념은 뭐든지 해낼 수 있는 강인한 의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실패한 핑계를 찾아내어 변명을 늘어놓지만, 하고자 한 일을 이뤄낸 사람은 어떻게든 해내야겠다는 굳은 의지로 방법을 모색했을 것이다. 방법의 모색과 핑계거리 찾기, 긍정적 사고와 부정적인 시각은 종이 한 장의 차이에서 오는 가치관과 생각의 차이다. 혼돈의 갈림길에서는 명확한 선을 그어야 거기에 알맞은 정답을 끌어 낼 수 있다. 현재는 과거를 바탕으로 한다. 매순간 우리들이 마주하는 것들이 쌓여가면서 탄탄한 미래가 이뤄지듯, 주어진 환경에서 자기를 보살피고 단련시켜 만들어가는 노력이 삶을 윤택하게 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가겠노라고 생각만 하고 망설이다가 첫발을 내딛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평생을 그 자리에 머물러있어야만 한다. 삶에 필요한 지혜는 모든 환경과 경험과 대인관계에서 차곡차곡 쌓여간다. 현실이 조금은 답답하더라도 목적을 향해 전력을 다하면 생각이 현실로 바꿔져 있을 것이다.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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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31 16:40

경청.해.봄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퇴근하며 들어오는 엄마에게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서 질문으로 반겨준다. 엄마! 경청의 정의를 알아요? 어린이집을 다니며 두 달에 한 번씩 새로운 성품을 공부하는데 이번 달 배운 성품 노래를 꽤나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경청의 정의를 불러봅시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잘~ 집중하여 들어~ 상대방이 얼마나 소중한지 인정해~ 주는 것! 흔히들 경청(傾聽)을 말할 때 잘 듣는 것 정도로 생각하지만 귀를 기울여 듣기를 넘어 듣는 것으로 상대방이 소중한 존재임을 알려주는 단계에 이르기, 이것이 경청의 핵심이다. 사실 듣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데 사람들은 어렵다 말한다. 스토리텔링이나 발표 기술(Presentation Skill)에 큰 비중을 두며 말하기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온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며, 개인의 취향과 성향에 대해 알아주기를 바라고, 오히려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하는 이들을 생태 낙오자처럼 여긴다. 들리긴 하는데 공감하지 못하고, 듣긴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는 어디에서도 잘 듣는 방법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다. 정신과 전문의 윤홍균이 지은 <자존감수업>이라는 책에서 부부 생활에서 만족도가 떨어지는 남편들은 대부분 아내의 무시 속에서 자존감이 저하되어 있고, 아내는 자신의 감정을 공감 받지 못 할 때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상담 치료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헤아리는 훈련을 하며 듣기 시작할 때, 굳었던 마음은 녹는다. 그러고 보면 잘 듣는 것, 들으며 상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려주는 행위만으로도 꼬인 매듭은 풀리고, 긴장의 관계는 완화된다. 경청이 가져오는 치유의 능력이다.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WTC)가 끔찍한 테러를 당한 뒤 아픔과 혼란 속에 신음할 때, 한 비영리 단체는 뉴욕 도심에서 Free Prayer 캠페인을 펼쳤다. 이는 생명의 위협과 공포 속에서 두려워하던 시민들에게 다가가 고민을 들어주고 기도하며 위로하는 운동이었다. 인종과 종교를 뛰어넘는 많은 이들이 곳곳에 설치된 야외 상담소를 찾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상처는 조금씩 아물었다. 일본에서도 2011년 쓰나미로 일어난 대지진과 원전 사고로 인해 수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 속에서 시작된 것이 경청상담소였다. 그곳에서는 상담자가 30분씩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했다. 현실적인 처방은 없었지만 그곳에서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고, 이후 후쿠시마를 중심으로 100여 개의 상담소가 생기며 사람들을 치유했다. 우리 지역에서도 경청의 위로를 나누고자 2015년 여름 당신을 위해 기도해드립니다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길가 상담텐트에서 오고가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픔을 위로하고 함께 기도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의 아픔, 2015년 메르스의 공포가 스치고 간 자리에 세워진 상담텐트에는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외로웠고, 대화가 필요했다. 잠시의 상담 시간이었지만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말씀하시던 분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의 지혜를 떠올린다. 경청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가장 진솔한 방법이다. 그리고 모든 소통과 대화의 첫 출발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요즘, 심리적 거리마저 멀어져 외로움에 아파하는 이들이 있다면 해처럼 따뜻하게, 봄처럼 싱그럽게 경청해봄은 어떨까. 영화 심야식당 마스터의 요리가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됐던 것은 그가 먼저 들어줬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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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24 17:38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극복을 위해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SARS-CoV-2로 명명된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질환(COVID-19)은 의학교과서에 없던 새로운 감염병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대해 미국립과학원회보(PNAS)나 미국의 의학저널(NEJM) 등에 발표한 논문과 여러 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기존의 바이러스 감염병과는 다른 걱정스러운 내용이 담겨 있다. 무증상 환자의 바이러스 전파나 공기전염 가능성, 원인 바이러스의 놀랄만한 인체세포 친화력, 그리고 비정형적이고 예측이 어려운 임상경과를 보인다. 또 이란의 확산사태를 보면 겨울이 간다고 단기간에 소멸될 것 같지 않으며 잠복과 유행을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 현실적으로 큰 문제는 아직도 임상시험을 마친 백신이나 특효적 치료약제가 없으며 그것이 개발되어 사용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실험실의 결과와 인체에서 나타나는 결과는 전혀 다를 수 있으므로 신약이 개발되더라도 임상시험을 거쳐 안전성과 효능을 검증하고 일반 환자들에게 적용하기 때문이다.그 사이 불안한 심리를 노린 사이비 의료정보들이 난무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온라인 통신정보망이 고도로 발달하여 잘못된 정보로 부정한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사이버 공간은 국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을 만큼 개방되어 잘못된 정보의 파급 속도도 어느나라보다 빠르며 그만큼 피해가 클 수 있으므로 잘못된 정보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오프라인 현실에서는 인구밀도가 높고 평소 대중교통, 다양한 집회나 모임, 대중문화행사 등, 심지어 상가나 식당까지 사람들이 밀집하여 움직이는 상황이 바이러스에게 유리한 것은 분명하다. 마스크는 재채기나 기침으로 비말감염원을 공기 중에 배출시키지 않을 목적의 타인에 대한 배려며, 감염원과 밀접한 접촉의 위험이 있을 경우 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한다. 따라서 합리적 사용설명이 필요한 시기에 무조건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해로운 주장이다. 지금의 마스크 대란은 마스크 공급관리의 혼선과 공포심리에 따른 수요 폭증에 기인한다. 어떤 경우라도 마스크는 방역과 치료현장의 환자, 의료진과 방역팀에 우선 공급되어야 한다. 일상에서 감염의 문제로 마스크를 사용한다면 사적 공간에서 착용할 필요는 없으며 실외보다 공용공간의 실내에서 그리고 실외에서라도 운집한 대중 속에서 사용하는 것은 필요하다. 일상 생활 중에는 수술용 마스크나 KF80 마스크도 유효하다. 감염우려가 큰 병원 근무자나 의료진, 방역팀이라면 F94이상, N95 방역 마스크가 필요하겠으나 일상 생활에서 숨쉬기가 거북한 방역수준 마스크를 장시간 사용하는 것은 특히 어린이, 노약자, 폐질환 환자에게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으니 사회적 접촉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국내 지역사회감염이 확산하고 세계적으로 대유행에 진입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현재의 질병관리와 이후의 재유입까지 고려한 방역노력과 함께 개개인은 대중이 접촉하는 물건을 자주 소독하고 손세척이나 손과 얼굴 접촉주의, 기침예절, 마스크의 적절한 사용 등 위생을 철저히 하며 무엇보다 다중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사회적 행동이 절실한 시점이다. 앞으로 우리 모두 치료약제가 나오고 바이러스 재생산이 사라질 때까지 질병관리본부와 전문가의 의견을 따라 협조하여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겠다.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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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17 17:06

공존의 숙명, 애증의 이웃 나라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공간적으로 가까이 사는 사람을 이웃이라고 한다. 의도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이웃이 된다. 이웃은 가장 가까운 공간에 살고 있기에 비교적 서로를 잘 안다. 언제 나갔다 들어오는지, 무슨 음식을 먹는지, 싸우는지 등을 소리로, 냄새로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사이가 좋으면 사촌이지만, 갈등이 생기면 원수가 되는 게 이웃이다. 가깝고도 먼 사이인 이웃은 어떻게든 신경이 쓰이는 존재이다. 부딪혀야 하기에 예의를 갖추고 배려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런 예의와 배려, 그리고 적당한 긴장감은 숙명적으로 맞대고 사는 이웃과 공생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관계는 무너진다.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이웃 나라인 만큼 애증이 깊다. 일단 역사적으로 전쟁을 가장 많이 치른 상대가 바로 이웃 나라다. 이웃집과는 잘 지낼 수도 있지만 이웃 나라와 잘 지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외교에서 이웃 나라의 법칙이 있다. 원교근공(遠交近攻), 멀리 떨어진 나라와 친교 관계를 만들어 위협적인 가까운 나라를 치라는 것이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신라가 당나라 군사를 끌어들여 백제나 고구려를 무너뜨린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대체로 세 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파키스탄과 인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아랍 주변국들처럼 아예 국교도 단절하고 상시 전쟁 상태를 유지하는 극단적 적대관계이다. 이 경우가 가장 위험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호주와 뉴질랜드, 스위스와 이탈리아, 미국과 캐나다처럼 서로 적대적 악감정 없이 적당한 긴장감으로 유지되는 관계도 있다. 많은 경우는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과 포르투갈,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처럼 서로 사이는 안 좋아도 활발하게 교류와 협력을 해나가고 있다. 새로운 상황과 상대의 대응 정도에 따라서 두 나라 간의 관계는 널뛰기한다. 이미 경제적 사회적으로 떼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악화하면 그 피해가 정말 커진다.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얽힌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본과는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등 과거사와 영토문제로가 심각하다. 중국과는 미세먼지나 사드 등 환경이나 군사적으로 복잡하다. 그래도 경제교류는 활발해서 기업들은 서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발전해 왔다. 여행객들이 서로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지구촌이 혼란스럽다. 이 가운데에도 우리 정부의 대응은 정말 의료선진국답게 적극적이고 투명하다. 그러나 단순 수치만 가지고 입국을 거부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어 안타깝다. 먼 나라들이야 상황을 잘 모르니 그렇다 치더라도 뻔히 알고 있는 이웃 나라의 행태는 괘씸하기 그지없다.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자국민 보호나 안보라고 포장해 자신의 정치적 득실을 따지는 위정자들의 결정은 서로 피해를 가중할 뿐만 아니라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작년 7월 일본 아베 내각의 경제 제재로 양국이 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데, 여기에 코로나19를 빌미로 입국을 거부함으로써 갈등의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있다. 같이 갈 수밖에 없는 숙명의 관계라면 적절한 긴장감 속에서도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국이 코로나로 심각할 때 우리 정부가 마스크를 보낸 것처럼 어려움을 함께 풀어내려는 예의와 배려만이 발전의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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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10 17:18

욕망은 인간의 본질이다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유행성 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어수선한 채 검은 구름을 머금은 2월도 역사 속으로 숨겨져 갔다, 나이테를 쌓아가고 세상을 알아가면서 구릉에서 올라와 산등성이를 걷던 걸음마다에 겪어야 했던 숱한 사연들이 하나둘 영상처럼 스쳐가고 있다. 늘 부족을 느끼며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갈망하는 꿈의 목표가 돈과 사랑과 명예를 찾아가는 일이 아닌가 한다. 누구의 삶이든 살아있다는 것은 목표를 실현하기위한 부단한 활동이며, 그런 욕망은 욕구의 부족과 결핍이 원인이 되어 뭔가를 하고 싶다로 이어진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 권력과 재력을 갖고 싶다.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고 싶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 등의 욕구가 충족되어질 때, 오감(五感)에 젖어드는 성취감과 짜릿한 희열을 맛볼 것이다. 욕망은 인간의 원천적인 본질에서 시작되기에 그것들을 이뤄보려는 과정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가야 한다. 그토록 온 힘을 다해 갈망하는 목표를 달성해내지 못하는 것은 계획의 어설픔이나 선택의 착오였으리라. 자신의 능력을 부풀려 믿어가며, 무작정 그려가는 욕망은 절대로 이뤄낼 수 없다는 깨달음은 먼 훗날의 몫이다. 삶의 고비마다 선택의 갈등을 반복해가며. 목표의 궤도를 흔들림 없이 끝까지 버티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누구의 인생이든 분명한 인생관과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 피타고라스(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철학자)는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즉 인생을 꾸려가는 방법과 바르게 사는 지혜를 설파한 것이다. 감정에서 우러나온 자연스런 행동을 이성으로 억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구나 살아 온 생을 뒤돌아보면 꿈을 이뤄가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이 치열했을 것이다. 인간이 품고 있는 욕망의 끝자락은 어디까지일까. 불철주야 끙끙대면서 운행했던 인생열차가 멈춰 설 때까지 포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욕망 즉 꿈은 청소년시절에 잘 못 설정하면 그 꿈은 불행하게도 신기루 같은 환영(幻影)으로 끝날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신기루(蜃氣樓)는 드넓고 아득한 사막 한가운데서 목마름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지평선 너머에 있을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달콤한 이정표다. 그 어떤 꿀맛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로수와도 같은 존재,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이 이뤄내고 싶어 하는 꿈이라는 존재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명하고 신중한 선택이 앞장서야 한다. 21세기의 현대인들은 혼탁으로 뒤범벅된 세상을 살아가느라 존재가치를 측정하는 저울이 흔들려 제대로 된 이성으로는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개의 얼굴을 지니고 사는 영악한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온전한 얼굴을 그려가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시선의 각도와 생각하는 상황에 따라 다른 현상으로 그려져 간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두고 어떤 사람은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라고 느낄 것이고, 어떤 이는 너무 느리다.고 표현할 것이나, 그것은 속도와 흐름이 달라서가 아니라, 서로의 삶이 다른데서 오는 착각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 얘기꽃을 피워가면서 맛보는 오붓한 시간이 소시민들의 가정에 오래오래 머물러 있기를 기원해본다.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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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03 20:30

사랑이 이긴다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1985년, 꿈에도 그리던 제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식이 열렸다. 남측에서 35명, 북측에서 30명이 참석한 역사적인 만남의 순간, 국내외 모든 취재진의 이목을 끈 이들이 있었으니 35년여 만에 만난 70대 노부부였다. 이윽고 마주한 두 사람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모두가 숨죽이고 기다리는 순간, 남쪽에서 오신 할머니가 첫 마디를 여셨다. 당신 나 사랑했어? 퉁명스럽지만 진심이 스며든 짧은 질문에 북쪽 할아버지가 곧이어 쑥스러운 듯 대답을 한다. 고럼. 기다렸다는 듯 상기된 얼굴로 할머니는 대답을 한다. 그럼 됐어.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만남은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후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평소 뭇 여성들과 사교성 좋게 지내던 할아버지는 북쪽으로 나들이를 갔고 이후 이산가족이 됐다고 했다. 북쪽에 여자를 만나러 갔던 것은 아니었는지, 남편이 정녕 자신을 사랑했는지, 수십 년의 시간 동안 할머니는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을 홀로 수절하며 자녀들을 키운 그 모진 시간들이 눈 녹듯 녹아내렸으니, 생사도 모르던 남편의 한 마디 당신을 사랑했었다는 확증이 모든 것을 이기게 했다. 제작, 진행하는 생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중 라디오는 사랑을 싣고라는 코너가 있다. 라디오를 통해 청취자들이 직접 고마운 마음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시간이다. 어느 날, 결혼생활 11년차 아내의 편지가 도착했고, 생방송 시간 중에 남편과 아내 각각 전화 연결을 했다. 평소 감사한 마음을 적은 편지를 아내는 눈물로 읽었다. 두 자녀를 둔 이 부부는 지난 10년 간 가족여행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고, 현재 남편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서울에서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주말에만 집에 온다고 했다. 가장으로 가정을 위해 고생하는 남편에게 아내는 고맙다고 말했고, 남편은 사랑한다며 고생하는 아내를 위로했다. 어느새 그 둘과 스튜디오의 진행자들, 청취자 모두는 울고 있었다. 모두에게 전해진 사랑으로 부부는 현재의 어려움을 잘 극복해나갔을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알더퍼(C. Alderfer)는 인간의 욕구를 ERG 이론으로 설명했다. 인간의 기본적인 존재의 욕구(Existence needs)가 채워지면 사랑을 받고 마음을 나누는 관계의 욕구(Relatedness needs)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것들이 충족된 다음에서야 존경과 자아실현의 욕구인 성장의 욕구(Growth needs)가 따른다는 것인데, 결국 사랑이 충족될 때 자신의 역할에서 성장하고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몇 해 전 출판된 책 <아침 키스가 연봉을 높인다>에서 말하기를 아내의 아침 키스를 받고 출근한 남편의 연봉이 20%가 높다고 한다. 사랑과 응원을 받은 남편은 세상에서도 당당하게 싸워 이기게 하는 동기부여가 되었고, 성장의 욕구 단계로 거침없이 이르게 한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진리도 사랑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 이렇게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게 하고 감당하게 한다. 사랑의 정의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에서도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 정의한다. 별을 연구하는 한 철학자는 하늘만 바라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먼 곳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을 살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우리의 삶을 이기게 하는 것은 먼 곳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 숨 쉬는 그 사랑이다.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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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25 20:10

알빙(RVing)에 필요한 것들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많은 사람들의 로망 중 하나가 캠핑카(캠핑용 자동차나 트레일러, recreational vehicle, RV)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캠핑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최근에는 자동차법을 개정하여 캠핑카 제작을 위한 구조변경 규제를 대폭 완화하였다. 서구 선진국은 넓은 국토나 이동 반경, 오랜 캠핑역사를 토대로 알빙(RVing, 캠핑카를 이용한 활동)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지정학적으로 섬이 되어버린 좁은 국토, 캠핑카에 대한 배타적 태도, 협소하고 열악한 자동차 캠핑장 시설 등 인프라는 알빙 후진국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알비어(RVer, 캠핑카를 운용하는 사람)들은 자동차 캠핑장 시설 부족과 함께 운용 중 전기와 물 공급, 오하수 처리나 보관 주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먼저 알비어들의 준법과 공공의식이 전제되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부족한 시설 확충과 수용적 문화를 권해야 할 것이다. 최근 도내 웅포 관광지 예로, 협소한 국민관광지에 지자체가 운영하는 캠핑장이 있어 관광지 주차장에 캠핑카의 야영활동이 아닌 주차 자체를 금하고 있었다. 지자체 홈페이지에도 다수 민원이 제기되어 있었으며 답변에 금지 이유가 일부 캠핑카의 물과 전기 무단사용이었다. 그러나 불법적 행위를 단속해야지, 대중이 모두 이용하는 관광지에 접근하기 위한 잠시 주차조차 금하는 것은 지나친 조치다. 캠핑카 운전자 모두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처사로 온라인 상에서도 회자되어 해당 지자체 뿐만 아니라 전북의 평판을 해치고 있다. 국민관광지라는 명칭에 맞게 무조건 금지보다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 개선해주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캠핑카의 오수 처리는 환경의 문제다. 그러나 전국 어디를 가도 캠핑카의 오수 배출시설을 찾기가 어렵다. 급증하는 캠핑카들이 도로나 산간 등에 오수를 투기한다면 우리 강산에 심각한 오염원이 될 것이다. 기존의 화장실이나 오수시설에 간단한 배관을 추가하면 시설이 되므로 규정을 만들어 자동차 캠핑장은 캠핑카의 오수를 배출할 수 있는 배관 설치를 의무화하고 주요 거점 공공 화장실에도 설치하여 오하수의 배출을 유도해야 한다. 또 휴게소나 주유소에서 주유와 함께 물을 채우고 오수를 비울 수 있다면 서로 좋을 것이라는 유용한 제언도 있다. 물론 유료라도 알비어들은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설의 제공과 함께 당국은 앞으로 증가할 캠핑카에서 강산에 해로운 물질이 무단 투기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좁은 국토에 자동차가 넘치니 아파트나 주택지에 캠핑카의 보관주차가 주민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캠핑카를 구입하기 전에 주차 문제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아파트의 경우 캠핑카 구입 전 규약을 확인해서 단지 내 주차가 허용되는지 확인해야한다. 증가하는 캠핑카의 수요에 맞추어 공공 주차장이나 공동 주차장 확보 등 대책이 필요하며 일정기준 이상의 캠핑카는 등록된 차고지를 갖게 하므로서 주차로 인한 갈등을 줄여야 한다. 알빙은 저마다 자녀와 함께, 부부끼리, 친구들과 함께, 또 치열한 삶터에서 지친 사람들이 심신을 회복하기 위한 웰빙 활동이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으나 필요한 시설과 환경 속에서 알빙문화가 발전하기를 바라면서 캠핑카의 공급 장려와 함께 우리 현실에서 대두되는 제한점들이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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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18 21:10

졸업식, 그 풍경과 상처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졸업 시즌이다. 일찍 마친 학교도 있지만, 다수의 학교가 이번 주에 졸업식과 종업식을 치르고 학년 말 방학에 들어갈 것이다. 졸업은 통과의례다. 대학교는 다르지만, 초중등학교의 경우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학교 과정을 마친데 대한 격려와 축하의 자리가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다. 다른 것들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서 졸업을 임하는 자세 역시 많이 바뀌고 있다. 생애 처음 맞던 초등학교 졸업식장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하고 노래가 시작되면 여기저기서 훌쩍이곤 했었다. 특히 이 초등학교를 끝으로 더는 책가방을 들 수 없는 친구들에게 이날은 특히 남달랐다. 정든 학교, 그리고 친구들과 헤어져 대처로 나가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이니 졸업식은 어쩌면 황량한 삶의 사막으로 가는 의식 같았을 것이다. 결국, 식장은 울음바다가 돼 축하하러 온 부모님들까지 눈물을 훔치시던 기억이 난다. 중고등학교는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졸업식을 맞았다. 까만 교복이 지겨웠던 것일까? 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교복에 밀가루를 뿌리고 계란을 던지곤 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계란과 하얀 가루를 뒤집어쓴 행색은 무슨 귀신영화의 주인공처럼 괴기가 감돌았다. 그런 몰골로 교복을 찢으며 한풀이를 하듯 학교를 벗어나던 친구들의 모습도 눈에 선하다. 이 풍경은 필자가 교사로 있던 시기에도 이어졌다. 졸업식 당일 학생부 교사들이 단속을 벌여 밀가루와 계란을 미리 압수하기도 했지만, 식이 진행되는 가운데 다시 들여오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작별의 서운함에 눈물에 젖었던 졸업식이 바뀌어 억압의 생활을 끝내고 해방을 맞는 그들만의 축제처럼 보여 씁쓸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무엇이든 지나치면 화가 된다. 졸업식의 분위기가 학교 밖으로 이어져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해방감에 술을 마시고, 알몸으로 시내를 질주하는 추태로 번졌고, 결국 이런 광란의 파티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러자 경찰까지 나서 졸업식 일탈을 단속하게 되자 졸업식 파티는 조용해졌다. 졸업식장 풍경도 바뀌었다. 학교장 회고사에 이어지는 내빈들의 축사, 그리고 상장 수여식과 장학금 전달식까지 결국 상도 장학금도 못 받는 학생들은 기가 죽어 앉아 있다가 나와야 했다. 그러던 졸업식이 점점 권위적인 관행을 걷어내고, 학생들의 축제가 돼 간다. 부모들 앞에서 스스로 이렇게 성장했노라고 보여주는 무대는 따뜻하다. 그러나 올해는 어떤 졸업식 풍경도 볼 수 없게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졸업식이 취소되거나 축하객 없이 종례를 하듯 각 교실에서 치르게 된 것이다. 번거롭게 졸업식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홀가분한 일일 것이나, 서로 격려하고 감사하는 자리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계기는 또 다른 변화로 이어진다. 취소했거나 외부인 없이 간소하게 치른 졸업식이 어떤 변화로 이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학생들을 격려하고 축하하며, 또 그들의 앞날을 축복하는 자리라는 것이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그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초라한 졸업식일지라도 졸업생 모두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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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1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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