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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건방진 도도군 등

건방진 도도군 / 강정연 글 / 비룡소 / 8500원도도한 애완견 요크셔테리어 도도. 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건방진 도도군’은 유쾌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동화다. 강아지의 시선을 통해 우리들이 사회에서 얼마만큼 필요한 존재인가 유쾌한 물음을 던지는 작품. 뚱뚱하다는 이유로 버려졌다가 결국 집에서 다시 탈출한 도도는 떠돌이 개 뭉치, 누렁이와의 만남, 폐품 수집 할머니와의 짧은 행복, 동물 보호소 생활 등 크고 작은 모험이 끝에 결국 청각 장애인의 귀가 되어주는 보청견 역할을 하게 된다. 애완동물마저도 쉽게 버리는 인간 세상에 대한 세태를 풍자하며 진정한 관계, 이해와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책이다. 져야 이기는 내기 / 조지 섀년 글 / 베틀북(프뢰벨) / 7000원이 책에는 한국, 필리핀, 멕시코, 에티오피아, 미국, 유럽 등 세계의 민담 열다섯 편이 들어 있다.'반딧불이 한 마리가 어떻게 원숭이 백 마리와 싸워 이길 수 있을까?', '크림이 가득 찬 나무 양동이 속을 헤엄치던 개구리가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양동이를 빠져 나온 방법은?'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린이들이 나름의 해답을 찾으면서 상상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을 만하다. 펜만으로, 하나의 색만 써서 그린 그림이 시선을 끈다. '철학 동화' 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이다. 장건우한테 미안합니다/ 이경화 글 / 바람의 아이들 / 6800원초등학교 교실에서 일어나는 선생님과 어린이들의 심리적 갈등을 실제 상황처럼 실감나게 그린 창작 동화. 부잣집 아들이자 학급 반장인 장건우. 통솔력도 있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다. 하지만 김진숙 선생님의 알 수 없는 차별과 편견 때문에 건우는 우울하다. 선생님은 소영이와 미진이처럼 부모 없는 아이, 가난한 아이, 말썽쟁이 아이들을 좋아하기 때문. 결국 건우네 담임선생님이 보여준 독특한 편애는 또 다른 아이를 외톨이로 만드는 실패작으로 귀결된다. 이 책은 아무런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돌그늘에 걸린 바람 / 강원희 글 / 세상모든책 / 8500원이 책은 충남 태안군 몽산포에서 돌그물을 5대째 지켜 온 실제 인물을 소재로 한 동화. 돌그물은 조수 간만의 차이가 심한 바다에 돌을 쌓아 밀물에 들어왔던 고기가 썰물이 되면 쌓아 놓은 돌무더기에 걸리도록 만든 전통적인 고기잡이 방식이다.소년 은배는 할아버지를 도와 돌그물에서 고기를 잡아 생활한다. 20년 가까이 이어온 돌그물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몽산포를 떠날 수 없는 은배. 한 평생 바친 돌그물이 향토 문화재로 지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눈을 감는다. 점점 사라져가는 전통을 묵묵히 지키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가슴에 잔잔한 울림을 주는 글이다. 만길이의 봄 / 조경숙 글 / 비룡소 / 8500원‘사람들은 나의 세계를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작가의 글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책이다.‘만길이의 봄'은 죽음을 앞둔 조선 시대 대표 화가 단원 김홍도가 사춘기 소년과 나이를 떠나 서로를 아끼고 이해하는 참된 우정을 일깨워 주는 이야기. 어느 시골 초가에서 죽음에 다가서며 쓸쓸한 시간을 보내던 김홍도는 마을에 사는 열세 살 난 만길이와 우연한 만남을 갖는다. 김홍도가 유명한 화가였다는 얘기와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정성껏 보살피는 만길이로 인해 김홍도는 다시 붓을 쥐고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며 희망을 찾는다.

  • 주말
  • 이화정
  • 2007.06.08 23:02

[책의 향기] 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 유쾌한 발견 등

△ 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 유쾌한 발견성석제 지음/하늘연못 펴냄/1만2000원“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아까운 이야기, 모두 다 알고 있지만 나만 몰랐던 어떤 것, 보고 들으면 유쾌하고 흥미로우며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지는 생각과 느낌을 담으려고 했다.”소설가 성석제의 산문집. 동서양 고금을 넘나드는 역사적인 사건과 사례에 관한 기록들을 작가 특유의 유쾌한 입담으로 풀어냈다. ‘이야기 박물지’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지식·상식·과학·문화·예술 등 다양한 박물지적 세계를 담아낸 흥미로운 지식의 보고서다.‘성석제’라는 이름만으로 손이 가는 책이다.△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박노자 지음/한겨레출판/1만5000원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인 러시아 출신 박노자. 그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가 원하는 ‘동아시아’는 어떤 모습일까?기존과는 다른 동아시아 담론과 전통들을 끄집어낸 그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졌던 ‘전통에 대한 뼈를 깎는 반성과 전통을 아주 새롭게 계승,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서술하고 있다. ‘진흙 속의 연꽃:동아시아 휴머니즘의 계보’ ‘21세기를 휘젓는 20세기의 망령’ ‘두 얼굴의 근대인, 잊혀진 근대의 비극과 향기’ ‘남성 우월주의, 가부장적 독재로부터의 탈주’ ‘근대의 유라기공원:제국, 개인, 양심’ 등 총 5부로 구성돼 있다.

  • 주말
  • 도휘정
  • 2007.06.08 23:02

[책의 향기] 조선시대 토지 매매 단위

현재 토지를 매매하는 단위로 법적으로는 미터법을 쓰고 있으나, 일상에서는 평(坪)과 마지기를 쓰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어떤 단위로 토지를 거래하였을까. 위의 문서는 1894년에 과부 신씨가 구례 용천면 용정동촌에 있는 성자답(成字畓) 1두(斗) 5도락지(刀落只)이면서, 4부(負)인 토지를 55냥을 받고 어떤 사람에게 팔면서 건네준 문서다. 여기에 사용된 몇 가지 용어를 살펴보자. 먼저 성자답(成字畓)은 무엇일까. 조선시대에는 20년에 한 번씩 전국에 있는 토지를 조사하고 이를 책으로 만들었다(量案). 이 과정에서 일정 지역의 각 토지마다 천자문의 순서대로 한문을 이용하여 번호를 매겨놓았다(地番). 그러므로 이것은 용천면에 있던 성(成)이라는 지번을 가진 토지이다. 다음으로 1두 5도락지는 한말 닷 되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면적이라는 의미이다. 도(刀)는 되(升)의 이두식 표현이다. 흔히 사용되는 마지기(斗落只)는 1말의 씨앗이 떨어지는 면적, 즉 1말의 씨앗을 뿌려 생육시킬 수 있는 면적을 의미하기 때문에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절대 면적에는 차이가 난다. 지금은 200평을 1마지기라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150평 또는 300평이 한마지기가 되기도 하였다. 1평은 사방 6자, 즉, 사방 약 180㎝정도이므로 1평은 대략 3.24㎡정도다. 4부(負)는 수확량을 기준으로 설정한 것이다.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수확량을 기준으로 하였으며, 이것을 결부법(結負法)이라 하였다. 이는 수확할 때에 한 줌씩 베어서 놓은 것을 1파(把)라 하고, 10주먹이 한 다발(1束), 10속이 1 짐(1負), 100부가 1결(結)이 된다. 이 결부법은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절대 면적은 토지가 비옥하면 줄고, 척박하면 증가한다. 그러므로 4부는 400속을 수확할 수 있는 면적이며, 이에 해당하는 세금이 부과되는 단위이기도 하다. 한편, 이 문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매매되는 토지가 몇 배미(夜味)인가를 적은 문서도 있다. 이때 배미는 면적에 관계없이 논이나 밭의 가장자리로 낮게 쌓여진 둑이나 언덕인 두렁으로 구분된 구역이다. 그러므로 평지에서의 한 배미는 넓지만, 산간에서는 좁다. 삿갓배미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머리에 쓰는 삿갓만큼 좁은 논이나 밭을 의미한다. 이 외에도 위의 문서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몇 가지 있다. 먼저 토지 주인이 여성인 과부 신씨이다. 또한 그녀는 이 땅을 직접 경작하지 않고 소작을 주어 세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문서상에서 여성은 수결을 하지 않고, 먹물을 묻힌 도장을 찍거나, 손바닥 모양을 그리는 손도장[手掌]을 하였다. 이 문서에서도 신씨는 왼쪽 손바닥 모양을 그려 놓았다. 그런데 손바닥을 대고 그린 것이 아니라 손바닥 모양만을 흉내 내어 그려 놓았다. 앞으로는 전통적인 단위개념은 사용하지 못하고 미터법만 사용하게 한다고 한다. 그 이유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단위가 미터법이기 때문에 이렇게 바꾸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지. 어쩌면 남북한이 통일 된 뒤의 혼란을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른다. 현재 북한에서는 미터법만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홍성덕(전북대 박물관 학예연구사)

  • 주말
  • 전북일보
  • 2007.06.08 23:02

[책의 향기] 양계영의 행복한 책방이야기

해마다 5월과 6월은 가을철과 함께 전통적으로 출판서점업계의 비수기이다. 일반 서점에서 보면 3월 신학기가 마무리 되는 시기이고, 출판계에선 여름철을 대비한 기획도서로 인해 신간 발행이 주춤한 때이다. 하지만 책방 사람들은 오히려 5월과 6월이 더 바쁘다. 판매가 많아서 바쁜게 아니라 미처 판매되지 못한 책들을 모아서 출판사에 반품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피와 땀이 어린 소중한 원고를 받아 편집하고 교정하고 디자인해서 훌륭하게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던 그 수많은 책들 중 대부분이 독자의 손길한번 스치지 못한 채로 박스에 묶여 반품당하는 신세를 생각하면 책방 사람들의 마음도 편치 못하다. 2006년 기준으로 문화관광부에 등록한 출판사는 모두 25,931개이며 1년에 출판되는 신간은 약 4만5000종이다. 하루에 약 125종의 새책이 쏟아져 나오는 셈이다. 매장면적 100평 이상의 중대형 서점이라 하더라도 이들 신간도서가 판매대 위에서 독자의 손길을 기다릴 수 있는 기간은 고작 한달도 채 되지 못한다. 한정된 판매공간 때문에 잘 만든 좋은 책을 다 진열하지 못하는 책방 사람들의 마음이 정작 책을 만들어 낸 저자나 출판사의 안타까운 마음보다 더 크지야 않겠지만, 매일매일 들어오는 정말 좋은 책들의 일부만이라도 고스란히 독자들 손에 쥐어졌으면 하는 소박한 희망을 품어본다. /양계영 홍지서림 전무

  • 주말
  • 전북일보
  • 2007.06.08 23:02

[책의 향기] 남북 화해와 상생의 길은 어디에

외세에 의한 점령과 분단으로 시작되는 한국현대사는 그 어느 시대보다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좌우·남북의 대립과 갈등은 급기야 한국전쟁으로 이어져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각인했다. 한국전쟁은 남북의 분단정권이 서로 무력으로 통일을 추구한 결과의 산물이다. 북한정권은 남한을 일제로부터 아직 해방되지 않은 지역으로 간주했고, 남한정권은 북한을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소위 ‘빨갱이’ 정권으로 규정했다. 북한은 1949년 중국내전이 종결되자 이제는 우리 차례라는 식으로 치밀한 전쟁준비를 거쳐 ‘조국해방전쟁’이라는 명분으로 남침을 개시했다. 서전에서는 그들이 생각한 대로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유엔군(미군)의 개입으로 전황은 역전되었고 이제는 남한정권이 ‘북진통일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38도선을 넘어 북진했다. 꿈이 거의 실현되려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중국의 개입으로 전황은 다시 역전되어 후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후 전쟁은 38도선 부근에서 교착상태에 빠졌고 결국 휴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와 같이 한국전쟁은 남북이 서로 무력으로 통일을 해보려고 했으나 외세의 개입으로 ‘꿈’을 이루지 못하고 막대한 손실만 남기고 좌절된 전쟁이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는 무력통일은 불가능하며 평화통일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 것을 한국전쟁은 역사적 교훈으로 우리들에게 던지고 있다. 전쟁의 과정에서 북한정권이 무자비한 숙청을 자행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남한정권과 미군이 자행한 ‘빨갱이’ 사냥은 반공교육 속에서 은폐되고 왜곡되었다. 특히 북한에 진주한 이후 북한지역에서 자행된 살육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황석영의 소설 「손님」(창비사)은 한국전쟁시 황해도 신천지역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실을 문학적 상상력을 가지고 그려낸 걸작이다. 형제간에 얽힌 아픈 과거를 소재로 한국전쟁과 남북현대사로 이어져온 민족의 한과 상처를 작가 특유의 리얼리즘으로 어루만지며 화해와 위로의 메시지를 던져준다.미국 브루클린에 사는 류요섭 목사는 고향방문단 일행으로 북한에 가게 되는데, 방북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그의 형 류요한 장로가 숨을 거두는 일이 발생한다. 그 후 알 수 없는 꿈과 환영에 시달리기 시작한 류요섭은 유품으로 남은 수첩에서 요한 형이 박명선이란 여인을 만나기로 했다는 메모를 발견하고 그녀를 찾아 로스앤젤레스로 향하지만, 양로원에서 홀로 살아가는 박명선은 류요한 장로에 대한 깊은 원한을 풀지 않고 동생 요섭에게도 냉대로 일관한다. 결국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한 요한은 화장하고 남은 형의 뼛조각 하나를 가지고 평양으로 떠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르는데, 홀연 망자의 유령이 나타나 고향으로 가는 그와 동행하게 된다. 류요섭은 초현실화 속에 걸어들어 온 듯 멍한 기분으로 평양에서 며칠을 머물다가 고향인 황해도 신천으로 향하고, 한국전쟁 당시 ‘미제’에 의해 자행된 양민학살사건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된 ‘학살박물관’을 참관한다. 그곳에서 류요섭은 당시 기독청년이던 형과 연관된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고는 몸서리치며 눈물짓는다. 미군에 의해 저질러졌다지만 사실은 우익기독세력에 의해 자행된 학살만행이었다. 작가도 밝히듯이 ‘손님’이란 주체적 근대화에 실패한 우리에게 외부에서 이식된 ‘기독교’와 ‘맑스주의’를 가리킨다. 작가는 1950년 황해도 신천 대학살사건을 배경으로 이 땅에 들어와 엄청난 민중의 희생을 강요하고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긴 이 두 가지 이데올로기와 그 소용돌이에 휩쓸렸던 인간군상들의 원한과 해원을 그려냄으로써, 이제야 겨우 냉전의 얼음이 녹기 시작한 한반도에 화해와 상생의 새 세기가 열려나가기를 희망한다. 「손님」은 형식적인 면에서도 황해도 진지노귀굿의 얼개를 차용하여 작가 특유의 리얼리즘을 전개한다. /이규태(한일장신대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 주말
  • 전북일보
  • 2007.06.08 23:02

[책의 향기]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닫힌 왼쪽 눈뜨기

음주가무도 덧없어지던 대학 새내기의 6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선배들의 자취방과 동아리방에 숨겨진 책을 찾아 뒤적이는 일. 일종의 ‘금서탐닉(禁書耽溺)’이었다. 저자가 대개 ‘편집부’였거나 복사본이었던 책들.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국가와 자본」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제국주의론」 「그람시와 혁명전략」 「마르크스와 프로이드」 「모순론」 「뗏목을 이고 가는 사람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바로 보는 우리 역사」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껍데기를 벗고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책들을, 나는 오기로 읽었다. 실은 단어를 눈에 스치며 페이지만 넘겼다. 재미라고는 한 줄도 찾을 수 없던 이 별난 취미를 몇 달 동안 지속했던 이유는, 누가 볼까 호들갑떨며 책을 감추던 선배들의 유난스런 표정과 ‘선택된 후배’들만 묵은 체취를 경험할 수 있던 ‘두툼한 책에 대한 질투’때문이었다. 자주와 민주·진보, 합법과 비합법에 대한 논쟁이 수그러들지 않았을 무렵이었고, 선배들마다, 동아리마다 읽는 책이 틀렸으며, 같은 책을 읽어도 해석이 달랐던 때였다. 어느 날 나에게도 책 한 권이 던져졌다. 이끼 짙은 개울물빛의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소나무·1992). 아쉽게도 ‘금서’는 아니었다. 각주가 반 이상을 차지하는 논문식 구성, 경제사 중심의 서술, 한없이 딱딱하고 늘어지는 문장. 그러나 공식 출판물이었던 이 책은 한반도의 숨겨진 진실을 너무도 명확하고 강렬하게, 차분하고 입체적으로 이해시켰다.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는 고(故) 박현채 교수(조선대)를 비롯해 박명림 김혜진 양동주 공제욱 김동춘 김광덕 허상수 등 정치학·경제학·사회학을 전공한 당시 소장학자들이 1945년부터 1991년까지 분단 50년의 현대사를 시기별로 심층 조명한 책이다. 대부분의 다른 저작들과 달리, 민족과 계급의 이분법적 시각을 넘어 거시적인 안목에서 접근한다. 뒤틀린 역사, 그래서 좌절과 분노로 점철된 역사를 감성적 차원을 넘어 투명한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우리 현실에 기반한 역사의 흐름을 서술해 간다. 왜곡된 역사에 대한 단순한 분노가 논리를 갖추게 되고, 내 주위를 설득할 수 있게 된다. 개운하다. 닫혔던 한 쪽 눈을 뜬 것처럼, 유쾌하다. 모처럼 이 책을 다시 펼쳤다. 자신이 제기한 민중경제론이 1990년대 초 소련의 몰락과 함께 현실을 잘못 진단한 쓰레기 이론 취급을 당했던 박현채 선생. 그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진다. /최기우(극작가·최명희문학관 기획실장)

  • 주말
  • 전북일보
  • 2007.05.25 23:02

[책의 향기] 인세 나눔실천 아름다운 작가

얼마 전 100쇄를 돌파한 「연어」의 작가 안도현씨가 100쇄의 인세 수익을 모두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기로 해 화제가 됐다.이같은 작가들의 ‘인세 나눔’과 출판사의 수익 기부 등으로 2002년부터 올해 3월까지 아름다운재단에 모인 금액이 8억6천여만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아름다운재단은 “현재 재단을 통해 인세를 나누는 작가는 31명이며 출판 수익을 기부하는 출판사도 13곳”이라며 “아직 인세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기부를 약속한 작가도 100여명에 이른다”고 23일 밝혔다.2002년 재단에 인세 나눔을 약속한 첫 작가인 도종환 시인은 2004년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를 출간하자마자 약속을 지켰고, 최근 출간한 「꽃잎의 말로 편지를 쓴다」의 인세 수익 1%도 기부하기로 했다.또 김용택 시인은 지난해 시집 「그래서 당신」의 초판 인세 50%와 출판기념회 수익을 재단에 기부했고 소설가 신경숙씨도 2002년 「바이올렛」을 시작으로 꾸준히 인세 수익을 기부해왔다.전우익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와 유용주의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의 인세 수익금과 출판수익금은 각각 ‘농어촌 도서관 만들기 기금’과 ‘소년소녀가장 주거 안정 기금’으로 조성됐다.이밖에 「식객」의 허영만 화백은 2004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상금을 기부했고 출판사 샘터, 책향, 차이나하우스, 해와나무도 출판 수익의 1%를 기부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책을 통해 지식과 통찰을 전하는 작가들이 독자들과의 만남으로 얻어진 인세를 통해 또 한번 세상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 주말
  • 전북일보
  • 2007.05.25 23:02

[책의 향기]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었다. 읽는 내내 두려웠다.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자면, 「남한산성」은 나를 자기 안전에 대한 ‘마음-졸임’의 상태로 끌고 갔고 또 그 상태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남한산성」은 그만큼 역사에 대한 혁신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 아니, 「남한산성」은 우리가 지니고 있던 역사상을 물구나무 세워 버렸다.한국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순간이라 할 만한 병자호란을 다룬 「남한산성」은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 듯하게 들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라니! 지독한 모순 아닌가! 그렇다. 지독한 모순이고 처절한 아이러니이다. 하지만 「남한산성」은 이렇게 지독한 모순으로 가득 찬 시공간이, 다시말해 서울을 버려야만 서울로 돌아올 수 있고 서울을 지키고자 하면 서울로 올 수 없었던 시공간이 병자호란 당시의 상황이라고 말한다. 세계악인 ‘칸’이 조선을 침략해 남한산성을 둘러싸는 순간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전도되었다고나 할까. 이제 죽는 것은 사는 것이요, 사는 것은 죽는 것이 되어 버린다. 즉 왕을 위시한 조선인 모두가 육체적인 죽음을 결행해야만 정신적인 고결함을 유지할 수 있고 또 육체적인 삶을 이어가려면 영혼을 더럽혀야 하는 이율배반에 빠져 버린 것이다. 「남한산성」은 이 이율배반의 상황에서 어떤 이정표도 없는 길을 찾으려는 그 처절한 쟁투에 초점을 맞춘다. 「남한산성」은 대담하게도 당시 주전파와 주화파의 갈등을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의 선택으로 파악한다. 죽어서 사는 것은 분명하고 선명하되 길찾기를 아예 포기하는 것이며, 죽은 듯 사는 것 역시 진정한 길찾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격렬할밖에. 처절할밖에. 결국 조정은 치욕을 감내하면서 ‘살아서 죽는’ 길을 택한다. 깨끗한 영혼을 유지하기 위해 이제까지의 민족구성원 모두를, 그 민족구성원의 삶 속에 각인된 민족의 역사 전부를 포기할 수는 없으므로. 「남한산성」의 작가는 당시 조정의 이러한 선택에 그것이 비록 최악은 아니더라도 차선도 안되는 것이라는 냉정한 시선을 보낸다. 「남한산성」의 작가는 무엇보다 먼저 당시 조정이 남한산성에서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진 것 자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당시 조정이 고립무원에 빠진 것은 그들이 백성들의 후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고, 백성들의 후원이 없었던 것은 당시 조정이 철저하게 왕족이나 양반 중심의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고통받는 자’들을 배려하지 않은 정치가 최선의 길을 물론 차선의 길마저 불가능하게 했다는 성찰인 셈이다. 이는 이제까지의 역사상에 대한 날선 비판이자 의미 있는 역사상이 발명되는 순간이라 할 만하다. 한마디로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그때그곳의 다양한 사건과 인물들을 하나로 묶어 그야말로 전혀 새로운 세계상을 발명해내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남한산성」을 계기로 우리는 이전에 역사를 보던 방식대로 더 이상 과거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두렵게도. 아니, 다행스럽게도.또, 사족 하나. 「남한산성」을 읽다보면 그때그곳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쉽게 감정이입이 된다. 우리 역시 세계악에 둘러싸여 있거나 악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남한산성’에 갇혀 그들이 자꾸 되씹던 질문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해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곱씹어야 할 질문은, 하여,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살되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 주말
  • 전북일보
  • 2007.05.25 23:02

[책의 향기] 수선된 아이 등

수선된 아이 / 김기정 외 글 / 푸른책들 / 8800원긴박감 넘치는 짧은 문장으로 단락 없이 이어지는 도입부터가 시선을 확 끈다. 전학 가기 전날 밤 민화의 아픈 심정을 소름끼칠 정도로 잘 묘사해 낸 것. 그런 두려움에 휩싸인 민화앞에 인조 피부에 금속과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를 가진 커다란 '수선된 아이'가 등장한다. 자신보다 더 아픈 모습의 '수선된 아이'를 눈물로 바라보던 민화는 친구에게 '괴롭히지 말라'고 말하면서부터 따돌림의 상처가 점차 치유되어 간다. 이 밖에도 핵가족화나 장애인에 대한 편견, 소외된 이웃 등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진지하게 담아낸 '버럭 할배 입 속엔 악어가 산다', '천타의 비밀', '견우랑 나랑'도 눈길을 끈다. 명혜 / 김소연 글 / 창비 / 8500원1910년대 조선을 배경으로 신학문에 목마른 10대 소녀가 구세대의 인습에 맞서 의사의 꿈을 키우는 과정을 그린 장편동화다. 경기도 수원의 부잣집 딸인 명혜는 학문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지만 제 또래처럼 겁이 많고 주저하기도 하는 평범한 아이. 작가는 영웅이 아닌 평범한 소녀가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해내며 신여성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양반 집안 이야기를 충실하게 그렸으며, 일제에 대한 부자간의 상반된 태도, 민족 문제와는 또 다른 층위로 존재하는 여성 문제 등을 구체적인 사건 속에서 실감나게 전한 수작이다. 귀신이 곡할집 / 권지현 외 글 / 바람의 아이들 / 7000원<귀신이 곡할 집>에는 이 책은 화자를 리모컨으로 내세워 상상을 초월할 만큼 정리정돈이 안되는 미솔이와 솔미네 집 이야기를 그렸다. 아버지는 양말, 어머니는 립스틱, 미슬이는 색종이를 찾느라 안 그래도 뒤죽박죽인 집 안이 더욱더 엉망이 돼 버린다. 모두들 결국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며 물건 찾기를 포기. 물건들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다리로 또다시 자리를 옮기며 자신들의 얘기를 늘어놓아 사람들이 자주 잃어버리는 물건과 관련된 이야기가 재미를 더한다. 강아지를 잃고 쓸쓸해하는 개집을 화자로 내세워 새 친구와 새 강아지를 한꺼번에 얻는 <개집>의 이야기 등을 담았다. 지구별에 온 손님 / 모디캐이 저스타인 글 / 보물창고 / 8500원연날리기를 좋아하는 남자 아이. 그 아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더 넓은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어른이 된 그의 일상은 너무나 바쁘다. 결혼을 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기 때문. 결국 그는 천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생전에 꿈꾸던 넓은 세상을 그리며 새 인생을 선택한다. 따뜻하고 편안한 미소를 지닌 부모님과 함께, 전생에 살아보지 못했던 여자 아이가 되서 살게 되는 것. 이 책은 아이들에게 삶과 죽음, 사후 세계와 환생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던져주면서도 따뜻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진짜진짜 좋은 학교 / 샤론 크리치 글 / 보물창고 / 9500원틸리는 학교생활을 즐기는 평범한 학생. 학교를 너무너무 자랑스러워하는 교장 선생님으로 인해 공부를 하게 되는 것 빼고 말이다. 틸리의 학교 가방 여기저기에는 영어시험 오늘, 퀴즈 일요일, 또 시험 일요일 등이 붙은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고민 끝에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는 틸리. 교장선생님과 틸리의 대화 부분이야말로 이 책의 절정이다. 진짜 소중한 것이라서, 진짜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이유로 정작 주체가 되어야 하는 아이들을 반대로 질질 끌려다니게 만드는 어른들의 실수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 주말
  • 이화정
  • 2007.05.25 23:02

[책의 향기] ‘하우 투 리드(HOW TO READ)’ 시리즈(전 10권) 등

△ ‘하우 투 리드(HOW TO READ)’ 시리즈(전 10권) 레이 몽크 등 지음, 김병화 등 옮김/웅진지식하우스 펴냄/9만원 세상을 살다보면 꼭 읽어야만 하는 책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책들은 대부분 양도 방대하며 너무 전문적이거나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우 투 리드’ 시리즈는 숙달된 안내자의 인도 아래 독자들을 원전 텍스트 자체와 대면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시리즈에 포함된 책들은 비트겐슈타인, 셰익스피어, 마르크스, 니체, 히틀러, 다윈, 프로이트, 라캉, 데리다, 성경.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작가로 잘 알려진 레이 몽크, 동구권 지식인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슬라보예 지젝 등이 필진으로 참여, 원전 텍스트와 그에 대한 해석을 함께 실었다. 필진들이 다루고 있는 사상가들의 사상과 필진들의 시각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또라이 제로 조직로버트 서튼 지음, 서영준 옮김/이실MBA 펴냄/1만2000원어느 조직이든 ‘또라이’가 있다. ‘또라이’란 단어 자체가 과격하기는 하지만, ‘무서워서’라기 보다는 ‘더러워서’ 혹은 ‘골치아파서’ 피하게 되는 이들을 말한다. 조직 혁신과 조직 행동 분야의 권위자인 스탠포드대학교 교수 로버트 서튼은 ‘또라이’들은 개인의 감정 문제 차원을 넘어서 조직 전체의 건강과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을 펼친다. 조직이 대책없이 떠안고 있는 ‘막대한 또라이 총비용’과 조직 내 ‘또라이’를 알아챌 수 있는 방법, 스스로 ‘또라이’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테스트 등이 실렸다. 생각보다 정독을 요하는 책이지만, 수긍하게 되는 대목이 많다. 만약, 공감할 수 없다는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주위에 ‘또라이’가 없기 때문이다.

  • 주말
  • 도휘정
  • 2007.05.25 23:02

[책의 향기] 자기 분야 최고에 도전한 18세기 인물들

한가지에 미쳐 아흔아홉가지를 잊고 사는 사람들. 옛 사람들을 그들을 가리켜 ‘벽(癖)’과 ‘치(痴)’라고 불렀다.조선을 뒤덮었던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자신의 영역에서, 자신의 시선으로, 자신의 시대를 만들어간 10명의 사람들. 18세기 ‘벽’과 ‘치’가 21세기에 들어 ‘프로페셔널’이란 이름을 얻게됐다. 「조선의 프로페셔널」(휴머니스트)을 엮은 고전학자 안대회 명지대 교수. 그는 “그들은 목숨과도 바꿀만한 매력적인 자기의 분야를 개척하여 최고가 되기 위해 조건 없이 한 가지 일에 도전한 사람들”이라며 “그래서 케케묵은 문헌의 검은 글자들 사이에서 그들을 불러 깨우는 작업이 내내 즐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지금 보기에는 정말 진정한 프로라고 말하기에 부족하고, 그들의 의식도 낭만적이고 승부욕도 약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진정성은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프로 정신이 금전으로 바로 계산되지만 당시에는 금전보다는 역사와의 승부였습니다.”안교수는 지금까지 역사가 주목하지 않는 분야의 프로페셔널을 찾았다. 바둑기사, 여행가, 책장수 등 역사교과서는 커녕 자유롭게 서술한 역사책에도 한 줄 소개되지 않았던 분야와 사람들이다. 무주에서 태어난 최북. 그는 괴팍한 성격과 행동으로 기인 소리를 들었지만 천재화가였다. 원하지 않는 그림은 그리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제 눈 한 쪽을 찔러 멀게 했으며, 늙어서도 안경알 하나만을 걸쳤다. 명나라 화가 서위가 송곳으로 제 귀를 뚫고 네덜란드 화가 고흐가 제 손으로 귀를 자른 광기를 최북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천하 모든 땅을 내 발로 밟으리라”고 했던 여행가 정란, 승부의 외나무다리를 걸으며 반상의 제왕에 오른 바둑기사 정운창, ‘조선의 다빈치’ 조각가 정철조, 검무로 18세기를 빛낸 무용가 운심, “책이 있는 한 책을 팔러 다니겠다”고 했던 조선 최고의 출판 마케터 책장수 조신선, 번잡한 세상을 등지고 ‘꽃나라’를 세운 원예가 유박, “그래, 나는 종놈이다”라고 외친 천민 시인 이단전, 나는 학을 내려앉게 한 현악기의 거장 음악가 김성기, 자명종 발명에 삶을 던지 과학기술자 최천약. 안교수는 “우연의 일치인지 이들 인물들 가운데 지배집단에 속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며 “힘든 길을 걸으면서 이들이 자신을 다진 것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과 자존심,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 그리고 오기였다”고 말했다. 조선 제일의 국수가 되기 위해 10년을 오로지 바둑만을 두었던 정운창, 남의 집 종인 이단전은 신분에 걸맞지 않게 시인이 되고자 밤새우기를 10년간이나 했고, 정철조는 서양서라면 무조건 모으기 위해 당파가 다른 정승 판서의 집이라도 반드시 선을 넣어 책을 빼냈다. 자기가 선택한 한가지에 몰두함으로써 이들은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프로페셔널, 마니아, 그리고 폐인까지. 한 가지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했던 그들을 역사는 훗날이라도 꼭 기억하는 법이다.

  • 주말
  • 도휘정
  • 2007.05.25 23:02

[책의 향기] 조흘첩(照訖帖)

옛날에 조금 살았다 싶은, 양반임을 자랑스럽게 증명해보는 고문서 중에 대표적인 것이 교지(敎旨)이다. 교지란 임금이 내린 문서라는 뜻을 갖는 것으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과거시험 합격증과 관직임용장이다. 특히 과거시험 합격장은 과거 답안지와 함께 집안에서 소중하게 보관해 온 대표적인 고문서이다. 조선시대 시험이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는 대부분의 양반들이 갖고 있던 삶의 목표이기도 했다. 물론 꼭 과거를 통해서만 관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조선시대 전 기간 동안 과거는 엘리트를 선발하는 통로로서 확고한 지위를 점하고 있었던 것만큼은 자명한 사실이다. 조선시대 과거는 소과ㆍ문과ㆍ무과ㆍ잡과의 네 종류가 있으며 시험주기에 따라 정기시와 부정기시의 구분이 있었다. 정기시는 쥐띠, 토끼띠, 말띠, 닭띠의 해에 치루어지는 식년시를 말하며, 기타 증광시, 별시, 알성시, 정시, 춘당대시 등은 부정기시험에 해당한다. 식년시와 증광시의 경우 네 종류의 과거가 다 열리는 반면, 나머지 부정기시험은 문과와 무과만이 열렸다. 따라서 과거시험에 응시하고자 하는 사람은 시험의 종류와 시행주기에 따라서 만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과거라는 정규적은 코스를 밟아서 관리가 되고자 했던 양반이 맨 처음에 보아야 하는 것은 소과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었다. 생원과 진사를 뽑는 소과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과거시험이 열리는 장소에 무조건 가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시험장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필히 제시해야 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소과에 응시할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주는 조흘첩이라는 문서였다. ‘조흘(照訖)’은 대조필ㆍ확인필이라는 의미로 과거를 보기 전에 과거 응시에 결격사유가 없는 자인지를 확인하고, ≪소학≫을 시험보아 응시할 수 있는 실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과거시험장에 입장하는 수험생들은 들어갈 때는 물론 나올 때에도 조흘첩을 제시해야 했으며, 시험 중에도 소지 여부를 검열받기도 했다. 허위 문서를 소지하거나 조흘첩이 없는 자는 면제 받았던 군역을 지도록 할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되었다. 1854년(철종 5) 8월에 전라도 곡성현에 살고 있던 29세의 조창기 역시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서 ≪소학≫ 테스트를 받고 성균관으로 부터 조흘첩을 받았다. 조흘첩을 받기 위해서는 4등급 중 3등급에 해당하는 ‘조(粗)’ 이상의 성적을 받아야 했다. 말하자면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글공부도 하지 않은 시정잡배들이 함부로 조흘첩을 받기 위해 응시했다가 잘못 읽거나 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불통(不通)’을 받을 경우에도 처벌을 감수해야 했으니, 시험을 대하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 주말
  • 전북일보
  • 2007.05.18 23:02

[책의 향기] 양계영의 행복한 책방이야기

지난 1999년 개봉한 영화 <노팅힐>에서 주인공인 윌리엄 태커(휴 그랜트 분)는 런던에서 여행도서 전문서점을 운영하는 청년으로 나온다. 또 1998년 개봉한 <유브 갓 메일>의 여주인공 캐슬린 켈리(맥 라이언 분)가 뉴욕에서 운영하는 서점은 아동도서 전문서점이다.매달 적자를 면치 못하고 옆에 생긴 초대형 서점체인 때문에 폐업까지 고민할 정도로 심각하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직업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주변에는 영화에서처럼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분야의 전문서점을 차려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그리고 이를 현실로 이루어 낸 부산의 ‘인디고 서원’이 있다.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을 모토로 2004년 부산 수영구에 13평 규모로 개점한 ‘인디고 서원’은 학습지와 참고서를 팔지 않는다. 대형서점이 집계하는 베스트셀러도 없으며 도서정가제를 고수하고 마케팅 도서도 취급하지 않는다. 대신 청소년을 위해 주인이 직접 선정한 책들이 판매대에 가득하고 매달 한 번씩 독서세미나를 개최한다. “책을 상품으로 팔 것인지 새로운 문화를 이끌어 내는 문화인이 될 것인지 서점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주인의 말은 우리 가슴을 뜨끔하게 하지만, ‘인디고 서원’이 걸어가는 길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많은 서점인들에게 작지만 의미 있는 표지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양계영 홍지서림 전무

  • 주말
  • 전북일보
  • 2007.05.18 23:02

[책의 향기] 삶의 절절함, 가슴에

내가 힘들고 어려운 판단을 해야 할 때마다 나는 그 분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의미 있는’ 가난한 삶을 사는 권정생 선생님을 생각한다. 선생님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우리들이 지금 이렇게 풍요로운 생활과 거침없는 소비로 자연을 파괴하며 사는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일까. 이러한 생활이 몰고 올 미래를 우리는 과연 낙관할 수 있을까. 이따금 푸른 하늘을 볼 때마다 저나마 푸른 하늘은 언제까지 푸를 것이며, 물은, 공기는 언제까지 안전할까. 생각하면 두려움은 끊임없지만 우리들은 벼랑을 향해 치달리는 이 과속 열차에서 아무도 내리려 하지 않는다. 곳곳에서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들이 널려 있다. 자연의 재앙과 전쟁과 테러와 폭력, 어쩌면 우리는 지금 생명의 보장 없이 순간순간을 모면하며 살아가고 ? 獵쩝?모른다. 이러한 삶의 모습들이 불러올 공포에 가까운 반 문명, 반문화적인 현상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러한 반성 없는 질주만 하는 현실에 채찍질을 드는 사람들은 많지만 자기의 삶을 옳은 생각에 맞추어 사는 사람들은 드물다. 말은 쉽지만, 그 말을 실천하기는 우리가 너무 멀리 와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권정생 선생님은 동화와 소설과 동시로 파괴되어 가고 버려지고 소외당하고 업심 여김을 당하는, 그러나 한없이 소중한 것들에게 끝없이 연민의 눈길로 우리들의 가슴에서 식어가는 따스한 훈김을 되살려주는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이다. <우리들의 하느님>은 권정생 선생님의 첫 산문집인데 선생님의 사심 없는 애정과 따스한 사랑의 손길이 읽는 이의 살에 와 닿는 것 같은 글들로 가득 차 있다. 선생님이 태어나 유랑 걸식 끝에 경상도 두메 교회 문간방으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이 짧은 글속에 손에 잡힐 듯이 그려져 있다. 식민지시대와 전쟁과 굶주림을 거쳐 교회의 종지기로 살며 겪었던 정겹고 눈물겹던 이야기들이 꾸밈없이 다 담겨져 있다. 이 책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교회이야기는 ‘우리들의 하느님’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의 글들은 우리들을 울먹이게 한다. 평생을 농사지으며 살다 인생 말년에 버림받은 농촌 마을 노인들의 이야기는 눈물이 아니고는 읽을 수가 없다. 이 산문집은 옛날 말이 되어버린 것 같은 슬픔. 눈물. 가련함. 불쌍함. 인정. 정겨움. 가난함 느림 이러한 말들이 광란. 풍요. 광폭. 질주. 탐욕. 이러한 말들과 충돌하게 한다. 당신들이 숨 쉬고 사는 것이 지금 안전하며 행복한가. 인간들만 호의호식하면 그만인가. 그가 묻고 또 묻는다.<새벽기도가 끝나 모두 돌아가고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와 비출 때, 교회 안을 살펴보면 군데군데 마루 바닥에 눈물자국이 얼룩져있고 그 눈물은 모두 얼어 있었다.> 는 가난한 옛 교회당 이야기는 나를 울게 한다. 눈물로 울게 하는 것 이 아니라, 눈물보다 더한 그 어떤 것으로. 그러한 삶의 절절함이 네 가슴에 지금도 있는가 하고 이 책은 묻고 또 묻는다. 조금은 오래 되었지만 나는 이 책을 이따금 손에 잡는다.

  • 주말
  • 전북일보
  • 2007.05.18 23:02

[책의 향기] 얼굴 빨개지는 아이 - 장 자끄 상빼

"그 마르슬랭 까이유라는 애, 아주 착한 것 같아. 가끔씩 아주 멋진 색깔의 얼굴로 돌아오기도 하고. 아아츄!”"어, 재채기하는 소리가 들려. 분명히 르네 라토일거야. 한밤중에 이렇게 친구의 목소리를 듣다니, 너무 좋아….”언젠가부터 부담없는 책들이 인기다.그리고 사람들은, 특별한 내용이거나 아름다운 그림이 아닌데도, 자꾸만 이 책을 펼친다. 장 자끄 상뻬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열린책들). 1999년에 초판이 나온 한참된 책이지만, 간직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떠오르는 5월에 잘 어울리는 책이다. 이 가슴 따뜻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얼굴 빨개지는 아이'와 '재채기를 하는 아이'다.아무런 이유 없이 얼굴 빨개지는 병을 가진 마르슬랭. 정작 얼굴을 붉혀야 할 순간에는 빨개지지 않는 마르슬랭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노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감기 기운이 없는데도 자꾸만 재채기를 하는 병을 가진 르네도 마찬가지다. 수준 높은 음악회에서 재채기를 해 한때 사람들 사이에 얘깃거리가 됐던 르네도 혼자 강가를 산책할 때에만 겨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서로 닮은 두 꼬마. 르네가 이사를 가고 마르슬랭은 다시 혼자가 되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둘은 더 깊어진 우정을 느낀다.가끔 사람들은 세상을 두 개로 나눈다.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시도때도 없이 재채기를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하지만 세상은 그런 것이다.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자꾸만 재채기를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함께 어우러진 곳.'그들은 정말로 좋은 친구였다. 그들은 짓궂은 장난을 하며 놀기도 했지만, 또 전혀 놀지 않고도, 전혀 말하지 않고도 같이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 전혀 지루한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은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마르슬랭과 라토가 아무말 없이 앉아있는 장면이다. 진정한 우정이란 바로 그런 모습이기 때문이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콤플렉스를 안고 있지만 우정과 사랑으로 서로의 아픔을 달래며 성장해 가는 두 사람에 대한 동화 같은 소설이다. 책에 실린 투명한 그림 역시 상뻬의 솜씨.상뻬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소년 시절, 악단에서 연주하는 것을 꿈꾸며 재즈 음악가들을 그리면서 부터다. 1960년 르네 고시니를 알게돼 함께 「꼬마 니콜라」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1962년 첫번째 작품집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가 나왔다. 그의 나이 올해, 일흔다섯이다.

  • 주말
  • 도휘정
  • 2007.05.18 23:02

[책의 향기] 대한민국 민주화운동 이야기 등

대한민국 민주화운동 이야기 / 이차석 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9500원1945년 광복부터 2007년까지의 한국 민주화운동을 그린 역사교양만화. 6월 항쟁 2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민주화운동 자체에 초점을 맞춘 만화책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의미있는 성과다. 이 책은 이승만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의 ‘나랏머슴’들의 공과를 그리며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현대사 이해를 도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평가, 전두환 전 대통령은 ‘폭군 중의 폭군’으로 그렸다. 4·19 혁명, 6월 민주항쟁 등 민주화운동의 발생원인을 알아보고 한일협정과 베트남 전쟁 등 교과서에서 자세히 다뤄지지 않는 국제관계에 대한 분석도 시도한다. 아르헨티나 할머니 / 요시모토 바나나 글 / 믿음사 / 8000원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소설. 그녀의 소설이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상처를 담담하면서도 행복하게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고독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많은 공감을 일으키기 때문. 이 책은 어머니를 잃고 슬픔에 잠긴 소녀 미쓰코가 아르헨티나 할머니를 만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동화적인 색채와 섬세한 문체를 통해 그려냈다. 어머니가 떠난 뒤 아버지가 탱고 선생님인 아르헨티나 할머니와 동거에 들어가자 미쓰코는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찾아간 할머니 집에서 아버지가 타일로 만다라를 만들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아내와 사별한 이후의 고통과 평생을 몸담은 석공 일에서 밀려난 아픔을 달래고 있었던 것. 미쓰코도 그 집을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 / 코르네이 추콥스키 글 / 양철북 / 9800원 작가가 긴 투병 끝에 의사로부터 일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받고 어느 해안의 오두막에서 지내던 시절. 그는 해안 모래밭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친해지면서 아이들의 언어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과 낯선 세상에 끊임없이 탐구하는 생명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아이들이 특정 단계에 어떤 사물이나 개념을 파악하는지 알아내고, 사고체계에 어떤 규칙이 작용하는지 발견하고 있는지 동화. 콩트 같은 재미있는 일화로 쉽게 알려준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성에 대해 언제 어떻게 알려주어야 할지, 죽음에 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이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고민하는 부모나 교사들이 참고할 만하다. 기관사 아저씨 딸기 드세요 / 신현득 글 / 위즈덤 하우스 / 9000원고희를 훌쩍 넘겨서도 흙장난하는 아이마냥 즐겁게 쓰신 신현득 시인의 신작 동시집. 이 시집에는 우리 산천을 자유로이 넘나들지 못하고 휴전선에 멈춰 선 기관차를 통해 민족의 아픔을 노래한 표제작을 비롯해 모두 62 편의 작품이 담겨 있다. 어린이들의 맑은 동심과 생활(‘씽씽이 운전 기사’), 서민들의 삶(‘붕어빵’), 우리의 민족 의식(‘태극기 붙인 것과 아닌 것’), 시골 이야기(‘감자 캐는 날’), 우주 세계(‘지구의를 돌리며’) 등 시 곳곳에서 대화체를 활용해 시상을 전개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안녕히 계세요 / 남찬숙 글 / 우리교육 / 8500원'사랑을 주제로 한, 사춘기 소년의 성장통을 담은 창작 동화. 이 책이 감동을 자아내는 진짜 이유는 '화해'와 '사랑'의 메시지가 페이지 곳곳에 묻어 있어서다. 6학년 진영이는 30살 먹은 엄마와 단 둘이 산다. 친구들의 빈정거림에 엄마가 가출했을 때 잠깐 의지했던 열여덟 살 남자가 아빠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진영이는 혼돈에 빠진다.갈팡질팡하는 진영이의 마음을 다잡아 준 건 옥탑방 아저씨. 열여덟 살 아빠도 아마 아빠가 되는 것이 무서웠을 거라고, 또 혼자 힘으로 아이를 손수 키워낸 엄마가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난 뒤 마음이 평온해진다. 동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다양한 종류의 사랑이다. 끈끈한 모녀의 사랑, 같은 반 친구 혜인이에 대한 진영이의 풋사랑, 엄마와 장애인인 세탁소 아저씨의 사랑이 그것이다.

  • 주말
  • 이화정
  • 2007.05.18 23:02

[책의 향기] 사람에게 가는 길 등

△ 사람에게 가는 길김병수 지음/마음의숲 펴냄/1만2000원이 세상과 공존하는 사람들. 하루하루를 서로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은 어떤 것일까. 유기농업가이자 농촌공동체운동가인 김병수씨가 3년 동안 세계 21개국 38개의 공동체 마을을 탐방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알코올과 마약 중독자 치료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휴메니버서티, 팔레스타인과 이슬람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북아일랜드의 코리밀라 공동체, 행동주의 철학을 기반으로 자폐아동들을 치료하는 멕시코의 로스 오로꼬네스 등 다양한 공동체의 모습이 ‘계획’ ‘교육’ ‘농촌’ ‘명상’ ‘평화’를 주제로 분류됐다.‘경제경영서나 처세술이 판치는 요즘, 오랜만에 참으로 좋은 책을 만났다’는 독자 리뷰가 와닿는다.△ 남한산성김훈 지음/학고재 펴냄/1만1000원김훈이 또한권의 책을 내놨다. 「현의 노래」 이후 3년만에 발표한 신작 장편. 배경은 병자호란이다.남한산성에 갇힌 무기력한 인조 앞에서 벌어지는 주전파와 주화파의 다툼. 그리고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서 고통받는 민초들의 삶.김훈은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며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묘사는 그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될 수 없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그의 소설적 상상력은 역사적 사실과 만나 그 당시 그 인물들을 생생하게 되살린다. 평소 스스로 소설과 거리가 멀다고 말해온 남성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 주말
  • 도휘정
  • 2007.05.18 23:02

[책의 향기] 족보에 이름 올리려 땅팔아 명하전 납부

인지하기 어렵겠지만, 족보는 조선시대 이래 정기적으로 출판되는 최대의 책이다. 지극히 제한적으로 배포ㆍ판매되는 이 책은 또한 거의 읽히지 않고 책장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가 한번쯤 빛을 발하는 때가 있으니, 그 때는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이나 초등학교 학생들이 과제를 받아 왔을 때이다. 시조부터 현재 살아있는 후손들까지를 모두 망라하고 있는 족보는 한국사회의 특징을 대변하고 있는 문화코드이다. 족보가 사회적으로 크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족보 등재 여부에 의해 초래되는 이익ㆍ불이익이 없어서인지, 집안의 족보가 있는지 자신의 이름이 올라 있는 족보가 있는지에 대한 인식은 많이 약해졌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지 읽을 줄도 볼 줄도 모르는 족보를 놓고 자식들에게 너희는 뼈대 있는 양반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어른들이 있는 한 족보의 사회적 의미는 상실되었다고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족보는 흔히 30년(20년, 40년, 50년 단위로도 함)마다 수정 증보하여 간행하는 데, 족보를 간행하는 것은 일족의 가장 큰 거사이기도 했다. 족보간행위원회를 구성하고 각 위원회에서 전국에 흩어진 각 파에 족보제작의 사실을 통지하게 딘다. 각 파에서는 그 일족 구성원들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고 각 가족구성원들에 대한 명단을 제출받아 간행위원회에 제출한다. 전국에서 모인 자료들을 수합해서 이전에 제작된 족보들과 대조 확인하고 올라 있지 않은 사람들을 추가로 넣어 간행하게 된다. 족보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족보에 이름을 올릴 때 명하전(名下錢, 單錢)을 납부해야만 하였다. 명하전의 금액은 종중마다 차이를 보이고 있었지만, 삶이 넉넉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가지고 있던 땅까지 팔아야 할 정도로 부담이었다. 1849년(헌종 15)에 고한두는 족보를 만들 때에 일족의 명하전을 낼 도리가 없어서 부득이 종답(宗畓) 6마지기를 팔았으며, 편찬업무를 맡고 있는 보소(譜所)의 도유사들은 족보 편찬 비용의 납부를 독촉하기도 하였으며, 자금 확보가 용이하지 않아서 족보 편찬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빚에 쪼들려 부채 탕감을 종중에게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 족보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땅을 팔아야 했던 고한두의 처지는 ‘족보’에 대한 애착과 집착만은 아니었다. 신분에 의해 사회ㆍ경제적 처지가 달라졌던 전 근대 시대에 있어 족보 소장의 유무, 족보에 이름이 올라 있는지 아닌지의 판단은 내가 어느 집안의 후손이라는 나의 정체성 찾기 이전에 군역과 같은 세금의 납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명하전을 몰래 거두어 유용하는 사례가 있는 것을 보면, 서푼짜리 양반들에게 있어 족보에 이름을 올리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함이 남달랐던 모양이다./홍성덕(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 주말
  • 전북일보
  • 2007.05.11 23:02

[책의 향기] 바로 그것이 거기에 있었다

내가 사는 집 거실 벽에는 눈에 잘 띄는 곳에 한 장의 커다란 사진이 붙어 있다. 바다를 향해 길쭉하게 벋은 방파제와, 방파제 끝에 외로이 서 있는 교통표지판 같은 기둥이 보인다. 방파제가 모래사장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방파제 너머는 그저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만 보이는, 평범하고 쓸쓸한 느낌의 사진이다.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어느 여행에서 찍은 이 평범한 사진을 볼 때마다, 그러나 나는 어떤 경이로움을 느낀다. ‘내가 몇 년 전에 바로 그곳에 있었다’라는 사실 때문이다.바다를 좋아해서 섬나라인 영국의 바닷가를 무던히도 쏘다녔을 뿐만 아니라, 동쪽 끝 바다에서 서쪽 끝 바다까지 하루만에 왔다갔다 하기도 한 경험도 있는지라, 도대체 언제 어디서 찍은 사진인지 도무지 생각이 나진 않지만(사진에도 장소를 알려줄만한 아무런 단서가 없다), 그래도 어느 특정한 순간에 내 자신이 저 낯선 곳에 서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새삼스럽게 경이로 다가오는 것이다.‘바로 그것이 거기에 존재했다’, 혹은 ‘바로 그러한 일이 그 순간에 일어나고 있었다’라는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점이야말로 사진의 본질적 특색 중의 하나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강조하고 인식하는 데서 사진에 대한 탐색을 시작한 책이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식인 롤랑 바르뜨(Roland Barthes)가 쓴 <카메라 루시다 Camera Lucida>(‘밝은 방’이라는 뜻)라는 짧은 에세이집이다. 다재다능하긴 했지만 그 자신 사진작가가 아닌지라, 사진의 기술적 특색이나 전문용어같은 것은 이 책에서 자리잡을 여지가 없다. 단지 그는 “사진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고 탐색하고 명상할 따름이다.바르뜨로 하여금 사진에 대한 통찰을 시작케 한 것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어릴 적 사진 한 장이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와 단둘이 산 바르뜨는 노환으로 어머니를 잃은 후 견딜 수 없는 비통함 속에 칩거하면서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한다. 유품 중에는 마땅히 사진들도 많다. 그런데 최근에 찍은 사진에서조차 그는 어머니를 떠올리지 못한다. 어머니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 냉정한 사실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워진 그 앞에 문득 아주 오래된 옛날 사진 한 장이 발견된다. 바르뜨가 알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 다섯 살 가량의 어리고 수줍은 소녀는 오빠의 등 뒤에 살짝 숨은 채 카메라를 향해 수줍게, 그러나 의연히 미소짓고 있다. 비로소 바르뜨는 어머니를 발견한다. 그가 알고 있던 어머니, 언제나 상냥하고, 절대로 잔소리를 하지 않고, 겸손하고, 자신을 사랑하였으며 말년에 앓아누웠을 때는 바로 바르뜨의 어린 아이가 되었던 어머니. 그 모든 어머니의 특질이 이 한 장의 사진에서 마치 전기가 통하듯이, 혹은 바늘에 콕! 찔리듯이 자신에게로 전달되어 오는 것을 바르뜨는 느낀다. 바르뜨는 사진의 본질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임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래서 바르뜨는 그가 좋아하는 다른 유명사진가들의 사진은 실었지만 사진에 대한 통찰을 시작케 한 이 ‘문제의 사진’은 에세이집에 싣지 않았다. 그를 ‘바늘’에 찔린 것처럼 전율시키는 이 사진이 자신의 어머니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한 장의 가족사진에 불과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조차 한 권의 사색적이고도 멋진 에세이집으로 생산해내는 바르뜨의 지적인 재능에 그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책이 바로 <카메라 루시다>이다. ‘스투디움studium' 이라든가 ’푼크툼 punctum'같은 낯선 용어들이 더러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 바르뜨의 독특한 시각으로 재해석된 멋진 사진들을 감상하면서 동시에 읽는 이로 하여금 사진에 대한 나름대로의 명상의 경지로 이끌어가는 책, 꼭 한 번 일독을 권한다.

  • 주말
  • 전북일보
  • 2007.05.11 23:02

[책의 향기]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등

△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해냄 펴냄/1만2000원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존재가 여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여성의 심리 정도를 다룬 책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여성의 존재를 변질시킨 각박한 시대와 그를 둘러싼 사회제도, 교육, 종교 등을 하나하나 꼬집고 있는 이 책은 결국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화두로 던진다. 여성이란 존재가 가진 힘을 위트와 재치로 풀어낸 이외수의 글과 화가 정태련이 3년 동안 전국을 떠돌며 화폭에 담은 55점의 꽃그림이 어우러졌다. ‘레드카드가 무서워 축구를 그만 두는 축구선수를 본 적이 있는가’ ‘세상에는 슬픔 없이 벙그는 꽃이 없고 아픔 없이 영그는 열매가 없다’ 등 간직하고픈 글귀들을 건져내는 재미도 있다. △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이레 펴냄/1만4000원“건축물은 말을 한다. 건물은 우리의 기억과 이상의 저장소가 되어 일상을 부식시키는 온갖 불운에서 비껴난 이상화된 삶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건물은 우리의 열망에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한다. 인간의 약함을 채워준다. 다시 말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알랭 드 보통에게 건축물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밑그림을 그리는 도구다. 테라스가 딸린 소박한 집에서 부터 세계의 유명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물을 조명했다. 개인주택과 공공건물이 인간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분석한 대목은 특히 흥미롭다. 건축이 우리 삶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행복의 건축」은 건축과 철학, 심리학을 아우르며 설명한다.

  • 주말
  • 도휘정
  • 2007.05.11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