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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나쁜 어린이표 등

△ 가짜 한의사 외삼촌 / 최미선 글 / 문원 / 9000원아이들은 좋아할 만하지만 엄마는 사 주고 싶지 않은 책일 수 있다. 사교육이나 영어 교육열풍 등 요즘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유쾌하게 풍자했다. 외삼촌은 '내'가 다니는 척척학원의 수학강사다. 그런데 이 외삼촌이 괴짜다. 학생들에게 느닷없이 병명을 알려주고는 엉터리 한방 처방을 한다. 수학 문제를 틀리지 않고 푼 창민이에게 문제푸는 로봇이 되는 걸 막아준다며 줄넘기 800번, 3분 동안 냉이꽃으로 얼굴을 쓰다듬으라는 처방을 준 것. 그걸 보고 주인공 나는 엄마들이 '신경성 점수 집착증'에 걸렸다고 여긴다. 영어교육을 위해 자식을 외국으로 입양시키려는 엄마를 아들의 눈으로 바라본 '사과꽃보다 달콤한 향기'도 눈여겨 볼만 하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그리고 자기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 보기를 원한다면 권할 만한 책이다. △ 나쁜 어린이표 / 황선미 글 / 웅진주니어 펴냄 / 7000원작가 황선미씨는 동화는 삶과 밀착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책 <나쁜 어린이 표>는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는 첫째 아이에게서 들은 것을 소재로 현실세계를 현장중계 하는 듯 생생하게 담았다. 건우네 반 선생님은 회초리를 드는 대신에 말썽 부린 아이들에게 '나쁜 어린이 표'라는 노란딱지를 발급한다. '착한 어린이 표'는 녹색이다.'나쁜 어린이 표'를 많이 받으면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선생님의 꾸지람을 들어야 한다. 매사에 적극적인 건우는 노란 표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번번이 노란 표를 받는다. 노란 표가 늘어날 수록 건우는 선생님도 밉고 학교도 가기가 싫다. 그러던 어느날 건우는 선생님 책상에 있던 노란 스티커 뭉치를 몽땅 찢어서 화장실에 버린다. 학교에서 쉽게 벌어질 수 있는 소재를 현실적으로 그려낸 동화다. 99년에 첫 발간, 최근까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 있다. △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 / 권정생 글 / 보리 / 9800원 6ㆍ25를 소재로 쓴 흔치 않은 동화. 부모ㆍ형제와 피란길에 올랐다가 폭격을 맞아 죽은 아홉 살 곰이와 전쟁 중 목숨을 잃은 인민군 오푼돌이 아저씨가 주인공이다. 동화에 등장하는 '오푼돌이'는 남북이 갈라져 모두 반쪽이 된 우리 민족을, '곰이'는 우직하고 순박한 우리 민족의 심성을 보여준다."아저씨, 전쟁을 피해 달아나려 했는데도 전쟁은 우리 뒤를 금방 따라온 거예요. 살려고 갔는데도 난 죽은 거예요."라고 곰이가 절규하자, 오푼돌이 아저씨는 "인민들을 위해 싸운건데, 죽은 건 모두가 가엾은 인민들 뿐이었어. 마찬가지로 나라를 위해 싸운 국군도 제 나라만 쑥밭으로 만들었고……"라며 전쟁의 참상을 들려주며 눈물을 흘린다. '호랑이와 오누이'란 전통 설화를 끌어 들여 전쟁의 최대 피해자일 수 밖에 없는 어린이들, 하지만 언젠가 이 땅의 통일을 열어갈 어린이들에게 작가는 간절하게 평화에 대한 호소를 전한다. △ 흔들리는 이는 빼야 해 /빌리 페르만 글 / 느림보 / 7500원 아이들에게 치과는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는 곳이다. 무섭게 생긴 도구에 무시무시한 드릴 소리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하기 때문. 아주 조금 아픈데도 왱왱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세 배쯤 아프게 느껴진다. 주인공 마르틴에게도 치과 가야 하는 날이 왔다. 여섯 번째 생일 다음 날 이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 두려움에 어떻게든 치과 안 가고 해결해보려는 마르틴. 이런 마르틴을 치과로 이끄는 건 친구들이다. 막스는 무시무시하게 펜치로 뽑아보자고 하고, 미리암은 "난 아무렇지도 않았는데"라며 으스댄다. 거들먹거리는 친구한테 발끈한 마르틴은 결국 치과행을 결정한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섬세하고 다정하게 묘사한 책이다.

  • 주말
  • 이화정
  • 2007.07.27 23:02

[책의 향기] 관람객 스스로 생각하는 그림

이 세상에는 ‘가수’나 ‘화가’ 말고도 ‘화수’(畵手)가 있다.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는 ‘화수’. 어정쩡한 폼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고한 목소리로 ‘화개장터’를 부르고, 그림이랍시고 화투패를 다닥다닥 붙여놓는 조영남. 그는 자기 자신을 ‘화수’라고 부른다. “영남씨, 이 그림은 무슨 뜻이에요?”그는 사람들이 음악을 가지고 “영남씨, 이 노래는 무슨 뜻이에요?”하고 묻는 질문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것은 음악보다 미술이 훨씬 어렵다는 얘기다. 조영남은 “자칭 화가인 내가 보기에도 현대미술은 너무 어렵다.”고 말한다. 그래서 하루 저녁에 꼬박꼬박 100쪽씩 썼다.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한길사).‘칸딘스키의 그림은 위 아래 양옆이 어딘지를 구별하기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칸딘스키 스스로가 그림을 뒤집어 놨다가 깜짝 놀랐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래서 본격 추상화가 시작됐다는 얘기다.’‘처음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을 보았을 때는 정말 생소하게 보였다. 저게 무슨 작품인가, 저게 무슨 조각인가. 그러나 10년 넘게 자주 보게 되자 점점 익숙해지고 점점 귀엽게 보이기 시작했다.’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그 때 그림들은 알아먹기가 쉬웠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거나 귀족의 초상화거나 진짜 과일보다 더 과일처럼 그려진 정물화였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부터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머리가 아파졌다. “형! 내가 현대인이잖아. 그런데 내가 현대미술을 보면 뭐가 뭔지를 모르겠는 거야. 내가 현대인인데 현대인인 내가 알아먹을 수 없으면 현대미술이 아니라 미래미술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냐?”언젠가 전유성이 조영남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라며 맞장구를 치는 조영남은 그러나 “현대인이 현대미술을 알기 위해선 먼저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자전거 타는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넘어지고 일어서고를 반복해야 하듯 말이다. 30년 넘게 독학한 조영남도 잘 모르듯 미술은 정녕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에 관한 책들은 평생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조영남. 10년 전 쯤 톰 울프가 뉴욕 미술에 한정해 쓴 「현대미술의 상실」을 읽고 현대미술에 관해서도 얼마든지 흥미로운 책을 쓸 수 있다는 걸 알게됐다는 그는 세계 현대미술 전체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고 한다. ‘문제아’로 낙인 찍힌 그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희박한 걸로 고른다는 것이 현대미술에 관한 책이기도 했다. 조영남은 “이제 우리는 현대미술의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150년 남짓한 현대미술에서 그는 지금까지 두 번의 ‘위대한 꺾임’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첫번째 꺾임은 고전미술과 단절하면서 관람객이 스스로 생각을 하게끔 그림을 그린 마네, 세잔, 피카소의 출현이며, 두번째 꺾임은 1900년대 초 뒤샹이 어느 회사에서 만든 제품인지도 모르는 변기통을 뗴어다가 전시장에 올려놓고 시치미를 뚝 뗀 사건이다. 이제 세번째 꺾임의 시대. 이를 최후의 꺾임이라 말하는 조영남은 영국에서 시작돼 미국으로 건너온 팝아트를 주목하고 있다.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에서 그가 다루는 화가들은 120명이 훌쩍 넘으며, 함께 수록된 작품도 150여점에 달한다. 책 말미에는 본문에 소개된 주요 인물을 소사전 형식으로 정리했다.

  • 주말
  • 도휘정
  • 2007.07.27 23:02

[책의 향기] 생각의 탄생 등

△ 생각의 탄생 로버트 루트번스타인·미셸 루트번스타인 지음, 박종성 옮김/에코의서재 펴냄/2만5000원 ‘다빈치에서 파이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정신’들의 경험을 둘러보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창조적인 일을 할 때 사람들은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생각의 도구’들을 사용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 등 역사 속에서 뛰어난 창조성을 발휘한 사람들은 ‘생각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으며, 생각하는 법을 어떻게 배웠을까. 관찰, 형상화, 추상,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 등 그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한 13가지 발상법을 단계적으로 정리했다. △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신경숙·츠시마 유코 지음/현대문학 펴냄/1만원“편지를 주고받은 1년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커다란 격려와 위로를 받으며 풍요로운 마음을 지닐 수 있었습니다. 국경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매일의 생활 속에 그대로 녹아든 자그맣지만 아름다운 선물 같은 경험이었습니다.”소설가 신경숙과 일본 작가 츠시마 유코가 번갈아 쓴 서간 에세이. 2006년 봄부터 1년간 두 여성작가가 매달 주고 받은 편지는 한국과 일본의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과 「스바루」에 동시연재됐었다. 유년시절부터 소설가로 살아가는 현재의 삶이 있기까지, 각자 자신의 가족과 문학, 사회에 대해 나눈 이야기다.

  • 주말
  • 도휘정
  • 2007.07.27 23:02

[책의 향기] 양계영의 행복한 책방이야기

작고 마른 체구에 늘 헐렁한 옷을 입고 테이프로 붙인 안경을 쓰고 다니며 친척집에 맡겨져 천대 받다가, 영국 최고의 마법 학교에 입학한 뒤 일약 세계적인 영웅 마법사가 된 소년. 바로 영국작가 조앤 롤링이 창조해 낸 ‘해리 포터’가 그 주인공이다. 21일 해리 포터 시리즈의 최종판인 7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도들」이 뉴욕과 런던에서 일제히 판매되는데 벌써부터 소설의 결말을 놓고 온 지구촌이 시끌시끌하다. 지금까지 소설의 줄거리를 아는 사람은 작가와 삽화가 등 20여명에 불과하고, 판매개시 전까지 내용이 유출되지 못하도록 포장박스가 밀봉된 상태며, 중간에 분실될 것을 우려해 배송차량에 GPS까지 부착하는 등 보안유지비용만 무려 180억원에 이른다 하니 그저 입이 딱 벌어질 따름이다. 지금까지 3억2500만부가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개봉하는 영화마다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소년이 300억원이 넘는 수입을 올리는 등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실제로 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하지만 철통같은 보안 덕분에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영문판이 판매된 후에야 번역을 시작할 수 밖에 없고, 결국 수개월을 더 기다려야 한글판을 만나볼 수 있으니, 목이 빠져라 7편을 기다리는 어린이들과 독자들을 생각하면 출판사와 책방 사람들은 그저 죄송한 마음일 뿐이다. /양계영(홍지서림 전무)

  • 주말
  • 전북일보
  • 2007.07.20 23:02

[책의 향기] 영조와 과거시험

고문서를 대할 때는 반드시 그 고문서가 작성된 시대적 상황과를 반드시 연결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그 고문서에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으며, 고문서와 나 사이가 "書自書 我自我”가 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조선시대 왕 가운데 정치를 잘한 왕으로 英祖를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지 않다. 영조는 우선 신료들이 당색에 빠져 私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폐단을 바로 잡고자 많은 힘을 쏟았다. 영조 48(1772) 蕩平科라는 이름의 과거도 실시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이 과거에는 소속된 黨이 없는, 즉 無黨派 유생만이 응시할 수 있었다. 영조는 탕평과를 치르기 전에 당색이 없는 사람들의 명단을 확보한 후 이들에게만 응시자격을 부여하였다. 영조가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인재정책이었다. 그는 黨色에 휘둘려 어느 특정 지역의 특정 사람만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지방인재의 등용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점을 실현하기 위해 영조가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인 부분 중의 하나가 문과제도의 개선이었다. 조선시대 사회에서 출세를 보장받을 수 있는 가장 분명한 길은 문과에 급제하는 것이었다. 과거는, 혈통을 중시하던 음서제와 달리 능력만으로 인재를 선발하자는 것이 본래 취지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면 문과는 원칙에서 벗어나 서울 세도가들이 독차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급제자를 선발하는 기준도 능력이 아니라 시험관과의 친분이 더 중요시 되는 일도 많았다. 지역적으로 고르게 인재를 선발한다는 원칙도 무너지고 있었다. 각종의 명분으로 남발된 특별시험은 결과적으로 서울 세도가들의 자제들, 특히 특정한 黨에 속한 사람들이 과거를 독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말았다. 그러나 과거의 급제가 특정 지역의 특정 사람들에게만 국한되는 일은 국가적으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과거를 독점한 자들이 권력집단을 형성하여 왕권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될 것이며, 과거에서 소외된 지방 유생들이 정부에 대해 불만을 가지리라는 점은 너무나 분명하였다. 영조는 원칙을 벗어나고 있는 이와 같은 폐단들을 시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한 영조의 노력 중 대표적인 예로는 面試制와 後庭試의 도입을 들 수 있다. 영조는 최종급제자 명단에 이름이 오른 자들을 일일이 면담하면서 그가 답안지에 썼던 글들이 진짜 실력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누가 대신 써 준 것인지를 확인하여, 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확인되면 급제를 취소시켰다. 그것이 면시제다. 그리고 후정시란 지방 유생들을 발탁하기 위해 마련한 시험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정시문과에서 지방유생들이 한 명도 급제하지 못하였을 경우, 영조는 지방 유생만을 상대로 후정시를 베풀어 급제자들에게는 문과의 최종시험인 전시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진짜 실력 있는 인재를 지역적으로 고르게 선발하고자 했던 영조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영조의 이러한 노력은 그러나 기득권층의 반발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영조는 조선시대의 왕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철저히 능력을 중시하고 지방인재를 등용시키고자 하였던 점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송만호(전주대 교수)

  • 주말
  • 전북일보
  • 2007.07.20 23:02

[책의 향기] 역사를 무서워하라

80년 민중항쟁을 총칼로 다스리고 체육관 선거를 통해 새로운 군사독제 체제를 출범시킨 신 군부는 새 시대라는 구호를 내걸고 민중들의 뜻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 무력의 힘으로 구축하려 한다. 힘에 의해 정권을 잡은 모든 세력들이 그러하듯 그러한 힘의 논리는 당연하게도 강력한 민중들의 저항에 부딪쳤다. 이러한 민중들의 정치적 참여는 더욱 구체적이고 계획적이며 그 범위가 확산되어갈 수밖에 없는 게 역사의 흐름 아니던가. 바야흐로 민중들의 정치세력화가 사회변혁의 의지로 확산일로에 들어선 게 80년대였다. 그 의지의 하나가 사회과학 서적의 출판이었다. 그 때의 출판 일은 민중운동의 일환이었고 지식인들의 은밀하고도 확실한 지원을 받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신군부는 정권을 잡자마자 사회에 영향? ?있는 출판물을 대대적으로 정리하게 되는데 그 때 정리(?)된 출판물이 바로 <창작과 비평><문학과 지성><뿌리 깊은 나무>였다. 음란 퇴폐 간행물을 정리한다며 그 잡지들을 싸잡아 폐간 시켜버린 것이다. 그 무렵 나는 문학에 대한 책들보다 해방전후에 대한 역사책들을 찾아 읽고 있었는데 어느 날 뉴ㅡ스 시간 말미에 희한하게도 이기백 선생의 <한국사 신론>이라는 역사책을 소개하고 있었다. '나는 이것들이 이제 희한한 일까지 선전을 다 하네, 또 좋은 선생 한분 망가지겠군' 하면서도 궁금해서 그 책을 사서 읽었다. <한국사 신론>은 통사인데 나는 그 때 한우근의 <한국 통사>를 읽으며 매우 감동을 받으면서도 뭔가 찜찜한 구석을 떨칠 수 없음을,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역사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역사는 민중들의 힘에 의해 발전하고, 역사는 준엄하고, 역사에는 용서가 없으며, 역사를 모르면 문학이고 뭣이고 간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얻었다. 나는 이 책을 세 ! 번쯤 읽었는데 이 책을 통해 역사의 향기를 맡게 되었던 것이다. 역사는 사람들의 모여 살아온, 살고 있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살아 왔으며 살고 있고 살아 갈 것임을 믿는다. 역사가 민중들의 진정한 힘에 의해 발전하며 역사가 우리 곁에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우리가 지금 새로운 역사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음을 이 책은 준엄하게 일러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한 시대적인 사명을 다 한 죽은 망령들과 힘들게 싸우고 있다. 우리들이 살고 살아가야 할 시대정신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우리 민중들의 몫이고 새로운 선택이 되어야 한다. 철지난 개발독제 귀신들을 몰아내자. 역사를 새로 쓰고 새로 읽으라. 역사를 무서워하라. 역사를 아는 이는 맑은 물에 갓끈을 씻는다.

  • 주말
  • 전북일보
  • 2007.07.20 23:02

[책의 향기] 건축을 쉽고 재미있게 쓴 답사기

“딸아, 요새 성적이 어떤가요?” “35등 했어, 아빠.”“뭐라고나! 한 학급이 몇 명인데요?” “36명.”더 놀라운 건 딸이 전혀 창피해하지 않는다는 것. “아빠, 난 의상 디자이너 할 건데 등수가 뭐가 중요해요.” 당당하다. 그래 좋다. 그럼 난 ‘인문학적인 딸’이나 만들어야겠다. ‘인문학적인 딸’이란 도대체 어떤 딸인가. “인문학 교육은 아빠의 몫”이라 외치는 택시기사. 지금도 일요일이면 처자식과 함께 문화재 답사에 나서는 이용재씨가 쓴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멘토). 문학도를 꿈꿨지만 군인아버지의 반대로 공돌이가 된 건축평론가에게 문화재 답사는 험난한 세상 딸에게 착하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인문학적 교육’이다.한 때 건축전문출판사를 설립, 내는 책마다 적자를 봤다. 현장으로 나갔지만 IMF로 전 재산을 날리고 감옥도 다녀왔다. 전업주부가 돼 재기를 모색, 건축현장에 감리로 취직했지만 부실공사에 대한 온갖 유혹에 맞서다 결국 ‘짤렸다’. 2002년 부터 시작하게 된 택시기사. 택시운행 중 스케줄을 짜두었다가 일요일이면 가족과 건축 답사를 가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 됐다. 그래서 이 책은 장르가 묘하다. 건축평론서이면서도 인문학 교육서이며, 동시에 여행기이기도 하다. 건축을 키워드로 역사와 미술, 문학, 정치, 사회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글쓰기. ‘막’ 쓴 것 같지만 쉽고 솔직한 데다 화끈하기까지 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 건축계 안에서만 유통되고 있는 난해하고 현학적인 글쓰기가 아니어서 좋다.책은 1장 ‘건축, 근현대사를 몸에 새기다’, 2장 ‘시대인물, 건축으로 남다’, 3장 ‘건축, 아트와 실용주의의 유쾌한 만남’, 4장 ‘건축 공간, 교양과 휴식의 장이 되다’로 구분돼 있다. 피비린내 나는 처형장을 죽은 넋들의 안식처로 승화시킨 ‘절두산순교성지’, 비운의 국모를 기리는 ‘명성황후 생가’, 길은 길이되 길이 아닌 건축물 ‘쌈지길’, 독특한 퓨전 한옥 ‘다물마루’, 구 대법원이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서울시립미술관’ 등이 소개돼 있다. 굳이 전북과 관련된 곳을 찾는다면 ‘미당 고택’. 고창 출신인 미당 서정주 시인이 살았던 서울 남현동 일대 예술인 마을이다. 미당이 살던 집은 대지 100평. 고창에 미당시문학관을 설계한 인연이 있는 김원이 미당 고택 살리기에 나섰다. 서울시 최초로 문인의 집을 문화공간으로 꾸민 사업이다. 이 책이 재밌는 것은 건축물 사진과 스케치, 배치도 및 평면도, 단면도, 지도 등은 물론, 사람 하나 정보 하나도 꼼꼼하게 챙겼기 때문이다. ‘미당 고택’을 소개하는 동안 등장한 서정주, 황순원, 이어령 등에 대한 소개, 리노베이션 등과 같은 건축용어에 대한 설명, 역대 ‘미당문학상’ 수상작까지, 관련 정보를 총정리, 교양서로서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길 위에 선 건축가. 그의 건축여행이 재밌는 건 그 옆에 서 있는 딸 덕분이다.

  • 주말
  • 도휘정
  • 2007.07.20 23:02

[책의 향기] 태진아 팬클럽 회장님 등

태진아 팬클럽 회장님 / 이용포 글 / 푸른책들 / 8500원공개방송에서 태진아 팬클럽 현수막을 들고 있는 할머니 부대를 바라보는 아이들 표정은 대략 난감이다.이렇듯 이 책은 5편의 동화를 통해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속내를 다양한 각도로 깊게 응시한다. 그러나 톡톡 튀는 문장과 가벼운 인터넷 언어, 정감있는 사투리들이 어우러져 신선한 감동을 준다.‘버럭 할배 입속엔 악어가 산다'는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본 남편과 손녀 뒷바라지까지 해야 했던 할머니의 감춰진 고독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수제비'는 홀로 고향집에 남아 애타게 자식을 그리는 노인의 외로움을 눈물겹게 그렸다. 이렇듯 이 책은 어린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까지 깊이있게 파고든다. 하지만 바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그렸다. 문제아 / 박기범 글 / 창작과 비평사 / 6000원소떼 방북, 결손가정 문제, 아빠의 손가락 무덤, 정리해고 등. 작가 박기범은 하나같이 기성 어린이문학 작가들이 다루기 꺼려했던 소재들을 다뤘다. 그러나 80년대 낯익은 사회문제를 이야기하면서도 갓 태어난 듯 생생하게 전달한다. 불량배들과 싸움을 벌이다 얼떨결에 문제아로 낙인 찍힌 아이, 집에는 읽을 책이 없어, 자기 마음대로 이야기를 창작해 독후감 숙제를 하는 아이,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선생님들의 편견에 마음 아파하는 아이.작가는 학교와 사회에서 애정을 받지 못하고 소외된 아이들을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행동하고, 말하고, 느끼듯 그렸다. 하지만 이들은 주위 환경에 대해 불만을 품거나 파괴적인 행동으로 반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을 헤아리지 못하는 어른들의 허물과 고민을 넉넉한 동심으로 껴안는다. 동심의 눈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예리하고 사려깊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우리동네는 시끄럽다 / 정은숙 글 / 푸른책들 / 8800원 '우리동네'에서는 하루 종일 지지고 볶고 재미난 일들이 넘쳐난다. 이 책은 소시민들의 삶의 풍경을 아기자기하게 풀어 놓았다. 모두 6 편의 단편을 연작 형식으로 실었다. '우당탕퉁탕, 백조는 지금 변신중'은 재건축 아파트 문제를 둘러싼 이웃의 갈등을 통해 어른들의 이기심을 보여준다. '신발 밑창에 구멍이 나는 이유'는 학급의 반장 선거와 동네의 통장 선거에 대한 얘기를 다루면서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반장에 당선되는 이야기를 실었다. 마지막에 실린 ‘팡팡 세탁소의 비밀’를 통해 어린이와 어른들의 비밀을 다루며 이웃과 친구를 이해하는 이야기를 담기도 했다. 이렇듯 동화집에는 다닥다닥 붙은 성냥갑 같은 아파트 한 채를 갖겠다고 아등바등하고, 승자가 되기 위해 주저 없이 다른 사람을 누루는 등 서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읽으면 슬슬 웃음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충경 할아버지의 옛날 그림 일기/ 김충경 글 / 예림당 / 8500원 ‘쩔겅쩔겅’ 소리가 나면 엿장수가 온 거란다. 엿장수는 “찢어진 고무신이나 빈 병∼ 쭈그러진 양은 냄비 받아∼요”라고 외쳐댄다.이 책은 가진 건 없어도 인심 후했던 시절 옛날 시절 이야기다. 컴퓨터도 휴대전화도 없을 때 할아버지들이 어떻게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알 수 있도록 그렸다. 호박에 말뚝 박고, 보릿짚으로 여치집도 엮고. 돼지오줌통에 바람을 넣어서 공놀이도 했던 시절. 다른 세상 얘기 같지만, 자연이 다 장난감이었던 그 때 그 시절. 작가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 마음은 똑같다고 말한다.

  • 주말
  • 이화정
  • 2007.07.20 23:02

[책의 향기] 파피용 등

△ 파피용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뫼비우스 그림, 전미연 옮김/열린책들 펴냄/9800원그가 썼기 때문에 읽고 싶다. 「개미」 「뇌」 「나무」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우주를 무대로 장편소설을 썼다.멸종의 위기에 처한 인류. 발명가, 억만장자, 생태학자, 항해전문가 등 각계각층에서 선발된 14만4000명의 마지막 지구인들이 인류의 미래를 건 ‘마지막 희망’ 프로젝트에 임하게 된다. ‘베르베르에게 있어서 책이나 문학은 인류의 실험실과도 같다’는 ‘라디오 프랑스’의 평대로 과학과 문학을 결합시키는 작가 특유의 재능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 흡인력이 강하다. 프랑스 현지에는 「파피용」에 나온 가설들을 바탕으로 우주선을 제작하기 위한 사이트가 개설되기도 했다. △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권정생 지음, 이담 그림/보리 펴냄/9800원“살아남은 사람은 전우들의 시체를 어떻게 할 지 당황하고 있는데 다행이 펑펑 쏟아진 눈이 죽은 전사자들을 따뜻하게 덮어주었다고 합니다. 그 때 죽은 인민군과 국군들, 지금 모두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푼돌이 아저씨와 곰이 지금도 달밤이면 서로 얘기를 주고받을까요?”동화작가 권정생.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는 지난 5월 작고한 그가 전두환 독재 시절인 1980년대에 쓴 작품으로, 그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작고 후에 출간됐다. 6·25전쟁을 배경으로 인민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책은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선 안된다는 권정생 선생의 간절한 외침이다.

  • 주말
  • 도휘정
  • 2007.07.20 23:02

[책의 향기] 초상 빚에 과거 빚

'쩐의 전쟁'이 높은 인기를 끌었던 것은 그 이야기가 TV드라마 속에만 존재하는 가공의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라고 어디 사정이 다르겠는가? 당시 작성된 각종 매매문서를 살펴보고 있느라면 '쩐' 때문에 금쪽같은 땅을 팔아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외마디 소리를 도처에서 들을 수 있다. 이들 문서에 오늘날의 부동산 매매문서와는 달리 매매의 사유가 적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문서는 '긴히 쓸 데가 있어서'라든가 '부득이한 형편으로'라는 따위의 상투적인 문구를 쓰고 있지만, 깊은 속사정을 드러내고 있는 문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흔히 눈에 띄는 것은 흉년으로 세금을 납부할 방법이 없어서 땅을 판다는 내용이다. 환곡(還穀)을 갚기 위해 전답을 파는 경우도 같은 범주에 포함된다. 환곡은 흉년이 들어 먹고 살 길이 막막한 백성들이 정부로부터 빌린 곡식을 가리킨다. 봄에 빌려 가을에 이자를 붙여 갚았지만 여기에 관리들이 농간을 부리고 폭리를 취하면서 많은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였다. 이 때문에 조상 대대로 갈아먹었던 전답을 팔고 길바닥에 나앉게 된 농민들이 상당수에 이르렀다. 과거에 응시하느라 지게 된 과채(科債)도 땅을 파는 주된 이유의 하나였다. 그깟 시험 하나 보는 데 무슨 빚이냐고 물을 지 모르겠지만, 조선시대의 과거가 어디 보통시험이던가. 특히 문과(文科)의 경우 응시자의 입장에서는 평생을 건 사업이자 도박이었다. 운 좋게 20대의 젊은 나이에 급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60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과장(科場)을 제집 안방처럼 드나드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더구나 오늘날처럼 교통편이 좋지도 않았기 때문에 지방에서 서울로 과거응시를 떠나는 일은 상당한 시간과 돈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니 낙방이 거듭되다 보면 집안 말어먹는다는 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이제 오늘의 문서에 촛점을 맞추어 또다른 매매 사유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림에 보이는 문서는 숙종 45년(1719)에 정홍립의 아내 이씨가 전라도 순창군 팔등면에 있던 논 2마지기를 최태제라는 사람에게 36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원래 이 논은 정홍립이 생전에 매입하여 경작해오다가 막내딸에게 물려주었던 것인데, 그 딸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초상을 치르게 된 이씨가 장례비용을 조달하기 위하여 이 논을 처분하였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이씨처럼 상채(喪債)를 짊어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심지어 부모상을 치렀는데도 상채를 짊어지지 않았으면 불효자라는 말조차 있었다. 조선조 유교사회의 독특한 일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라고 효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문중의 제사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애써 마련한 위토답을 몰래 팔아먹은 종손도 있었으니까 말이다./(유호석 전북대박물관 전문연구원)

  • 주말
  • 전북일보
  • 2007.07.13 23:02

[책의 향기] 딸들아 일어나라

내가 『테스』를 처음 읽은 것은 아마도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그때는 컴퓨터라든가 핸드폰 같은, 요즘 아이들에게는 너무도 흔한 오락거리가 없었던 시절이다. 텔레비전은 꽤 많이 보급되어 있었지만 내가 중학생 때는 우리 집에 아직 텔레비전이 없었다.뚜렷한 오락거리가 없던 우리 형제들의 유일한 낙은 딱 한가지였다. 책방에서 책을 빌려보는 것(물론 만화를 포함하여). 언니들이 빌려보는 세계고전문학 작품들을 나도 덩달아 빌려보았다. 그러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니 『부활』같은 작품들이 내게 쉬 이해될 리가 없었다. 명작이라니까, 그리고 언니들이 읽으니까 나도 폼 잡느라고 읽어넘겼을 뿐 특별히재미가 있었다거나 기억에 남는 작품은 별로 없다. 그런데 그 와중에 유독 나의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는 작품이 바로 『테스』다.톨스토이나 괴테의 작품처럼 방대하거나 심오하다기보다 오히려 약간 통속적인 느낌이 나는 이 소설이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나의 심금을 울린 것은 무엇보다 이 작품이 애틋한 연애소설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난한 집안의 아름다운 처녀 테스와 존경받는 목사집안의 이단아 에인절의 지고지순한 사랑, 그리고 테스의 순결을 빼앗고 기어이 살인까지 저지르게 함으로써 이들의 사랑을 훼방놓고 마는 무뢰한 알렉, 이 세 명의 인물이 엮어내는 운명의 장난에 가슴 졸이며 밤을 새워 책을 읽던 기억이 선명하다.그때는 테스가 어떻게든 알렉의 마수에서 벗어나 에인절과 맺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책을 읽었다. 테스가 결혼식 전날 밤 에인절의 방문 밑에 넣어둔 자신의 과거(처녀성을 상실하고 사생아를 낳았던 일)를 고백하는 쪽지가 무사히 전해지기를, 그리고 에인절이 테스를 용서해주고 받아들여주기를 얼마나 안타깝게 바랐던가.그런데 삼십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다시 읽는 『테스』는 무척 다르게 다가온다. 순결을 잃은 여자에게 1800년대 말의 영국 사회는 얼마나 엄격하고 혹독했던가를 대변하는 인물이 바로 에인절이며, 가난한 농부의 딸에게 유일한 생존전략은 처절한 노동 아니면 부유한 남성과 운좋게 결혼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여성에 대한 이런 편견과 굴레가 비단 한 세기 전의 영국 농촌에만 해당되는 일일까? 우리 사회의 가난한 딸들은 과연 테스보다 더 나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순결을 잃었으되 더 나은 계층의 남성과 결혼하고자 할 때, 그들이 비빌 언덕 하나 없이 가족의 생계를 오롯이 책임져야 할 때, 우리 사회는 테스가 살던 시대보다 더한 아량과 선택의 폭을 제공하고 있는 것일까? 혹은 그때나 지금이나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예쁘고 발랄하기만 하면 백마 탄 왕자가 정말 나타날 것이라고 은근히 속삭임으로써 현실 속의 숱한 테스들의 정당한 분노와 투쟁의지를 애써 잠재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몇 해 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끈 TV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나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완벽한 한국판 재현을 본다). 신데렐라가 되어 헛된 꿈을 꾸든가, 테스가 되어 비극적 종말을 맞든가, 가난한 딸들의 길이 이렇게 단 두 가지라면 그건 너무 절망스럽다. 더 나은 길, 더 건강한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라도 이 오래된 연애소설 『테스』는 다시 한 번 읽을 가치가 있다.

  • 주말
  • 전북일보
  • 2007.07.13 23:02

[책의 향기] 이병천 소설집 '사냥'

책 읽는 습관이 천박하여 한 번 읽은 책을 두 번 펼쳐보는 경우가 드물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은 지난한 독서의 반복이 싫어서이다. 타고난 재주도 없어 일독(一讀)으로 이해를 완성할 줄도 모르면서도 그렇다. 서투르기 그지없는 독서 습관이지만 혼잣속으로는 그렇게 책장을 닫아두는 게 오히려 독서 여백이 아닐까 생각한다.그러나 소설집 「사냥」만큼은 가까이 두고 늘 펼쳐본다. 이 책에는 중단편 소설 12편이 들어 있다. 하지만 맹세컨대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 책의 아무 곳이나 펼쳐서 읽지는 않았다. 먼저 표지의 제목을 읽고 차례대로 그 다음장을 넘기면 하얀 백지에 작가의 친필 서명이 있다. '1998년, 새 만남을 기억하며'라고 했으니 벌써 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그렇듯 나는 언제라도 먼저 이 한 문장을 일독하여 '고달픈 장정을 떠나기 앞서서 신발끈을 고쳐 매듯' 준비를 한다. 그리하여 한편 한편의 소설을 읽어가는 맛이란 풀코스 요리를 시켜놓고 다음에는 어떤 맛있는 음식이 나올 것인지 기대해 보는, 결코 남들에게 나눠주고 싶지 않은 은밀한 즐거움이 있다. 그러다가 중간에 책을 덮어도 좋다. 이 소설집의 미덕은 바로 거기에 있다. 한 장면, 혹은 한 페이지만 읽고 책장을 덮어도 그 감동이 장편소설 한 편을 읽은 것 못지않게 크고 넉넉하다. 그래서 또다시 책을 집어들게 만든다.그 가운데 책 제목으로 삼은 '사냥'이라는 단편소설은 매력적인 서러움을 준다. 서러움도 이만한 매력이면 참으로 빛난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 '덕대'를 체포하기 위해 작가가 장치해놓은 온갖 사냥술을 읽다보면 어느새 나는 이야기의 덫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 난감한 상황이 서럽지만 매력적이라는 말이다. 마치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인 것만 같아서, 어제를 살았던 너의 모습인 것만 같아서, 그리고 내일 또 힘겹게 살아가야 할 우리의 모습인 것만 같아서 그렇다는 말이다.대학 강의실에서 작가를 만났고, 처음으로 작가의 친필 서명본까지 얻었으니 일부러라도 다른 책들과는 그 의미를 달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코 그 사실만이 '사냥'을 재독, 삼독하게 만든 것은 아니다. 누구나 살아가다보면 인생의 전환점을 마주하게 된다. 대개 사람들은 그 시절을 두고 아쉬워하기도 하고 흐뭇해하기도 한다. 나 역시 「사냥」을 만남으로 해서 삶의 방향을 결정지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일까? 문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나는 자주 「사냥」을 펼쳐보며 내가 옳게 가고 있는지 자문하곤 한다. 그렇지만 나는 또한 경계한다. 그것이 전범(典範)으로 굳어지기 전에 스스로 헤어나올 수 있기를.1990년에 '사냥'이 나왔으니 지금은 구하기도 쉽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가까운 시기에 재출간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기억해두었다가 일독을 권한다. 그러면 누구라도 재독, 삼독으로 이어질 거라고 나는 믿는다. /문신(문화정보114 팀장, 시인)

  • 주말
  • 전북일보
  • 2007.07.13 23:02

[책의 향기] '파브르 곤충기' 철학자의 사색, 예술가의 관찰

철학자처럼 사색하고 예술가처럼 관찰하고 시인처럼 느끼고 표현하는 위대한 과학자. 「파브르 곤충기」에 평생의 신념을 담은 파브르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곤충학의 성경’으로 불리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파브르 곤충기」는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자연이나 과학 교과서 못지않게 필독서로 읽히고 있다.그동안 그림책, 동화책, 만화책 등 다양한 형식으로 옮겨져 왔지만,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들은 방대한 분량 중 재밌는 부분만 발췌한 번역본이나 요약본이 대부분이라는 것. 곤충학자로 우리나라 풍뎅이를 전문적으로 분류한 김진일씨가 「파브르 곤충기」 전 권을 옮기는 데 도전, 최근 2권을 내놨다.김씨에게 더 시선이 가는 것은 그가 파브르가 학위를 받은 프랑스 몽펠리에 이공대학교에서 유학했기 때문. 1978년 파브르와 같은 대학에서 곤충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파브르와 그의 곤충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시절 우리나라의 자연과 곤충을 비교하며 파브르가 관찰하고 연구한 곳을 발품 팔아 자주 돌아다녔던 그는 언젠가 프랑스어로 쓰인 「파브르 곤충기」 완역본을 우리나라에 소개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랜 꿈을 30년만에 이루게 된 그는 「파브르 곤충기」를 ‘소똥구리, 여러 종의 사냥벌, 매미, 개미, 사마귀 등 신기한 곤충들이 꿈틀거리는 관찰 기록만이 아니라 개인적 의견과 감정을 담은 추억의 에세이까지 10권 안에 펼쳐지는 곤충 이야기는 정말 다채롭고 재미있다’고 소개한다. 김씨는 개성적이고 문학적인 문체로 써내려간 파브르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파브르가 연구한 종은 물론, 관련 식물 대부분이 우리나라에는 없는 종이어서 우리나라 이름으로 처리하는 것 또한 문제였다. 곤충학이 학문으로 정상괘도에 오르지 못했던 시기였던 만큼, 잘못 기록된 학명은 현재 맞는 학명을 추적해 바꿨다. 본문에 실린 동식물은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종류와 가장 가깝도록 우리말 이름을 지었으며, 한국에도 분포하고 있는 종은 따로 표시해 ‘한국판 파브르 곤충기’를 만들려고 했다. 파브르에 빠져있다면 어린 시절 읽은 책으로는 부족하다. 이 책은 사진과 그림으로 책에 생명력을 더했다. 사진가 이원규씨는 생태사진전문작가며, 그림을 그린 정수일씨는 만화 뿐만 아니라 삽화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만약 ‘파브르 벌레기’였다면 어땠을까?”누군가 웃으며 질문을 던진다.‘벌레’라고 하면 혐오스럽고 더러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곤충’은 ‘애완용’까지 등장할 정도로 꽤 귀엽게 봐준다. 그러나 ‘곤충’과 ‘벌레’의 차이는 단지 ‘한문’과 ‘한글’이라는 것. 「파브르 곤충기」를 통해 ‘곤충’과 ‘벌레’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 주말
  • 도휘정
  • 2007.07.13 23:02

[책의 향기] 내이름은 삐삐롱 스타킹 등

△ 내이름은 삐삐롱 스타킹 / 아스트린드 린드그렌 / 시공주니어 / 6000원'말괄량이 삐삐'란 영화로 더 유명한 삐삐 시리즈 완역판. 삐삐 시리즈는 동화의 상식을 깬다. 혼자 사는 삐삐는 어른보다 힘이 세고 돈이 많다. 거짓말까지 잘해 착한 아이와는 거리가 멀다. 이 책은 이런 상식 밖의 전개 때문에 출간 당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불온한 책'이란 딱지보단 삐삐의 기발한 상상력을 엿보는 즐거움 때문에 결국 출간됐다. 삐비의 머릿속에는 제비집 요리가 싫어 5개월 동안 굶다 죽은 중국 꼬마에서 하루종일 캐러맬만 먹는 학교 이야기까지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엉뚱한 상상이 가득했기 때문. 출간된 지 꽤 됐지만, 삐삐 시리즈는 여전히 전세계 아이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내인생의 스프링 캠프 / 정유정 글 / 비룡소 / 9500원 스프링캠프는 프로야구 구단들이 본격적인 시즌을 앞두고 담금질 하는 기간.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인생을 너무 이리저리 재단하는 요즘 10대가 조금 아쉽다고 말한다. 10대들이 인생 본게임 전에 겪을 수 있는 온갖 모험과 여정을 직접 부닥치며 치열하게 경험하지 않기 때문이란다.1986년 8월. 열다섯 살 주인공 준호 등 세 아이가 서울을 떠나 전남 신안군 임자도로로 간다. 여기에 할아버지와 도베르만 개까지 가세한다. 작가는 이 다섯 동행자의 여행 모험담 속에 광주민주화운동 등 1980년대 시대 상황과 청소년들의 성장 고민을 한편의 로드무비를 그리듯 담았다.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 새들은 시험 안봐서 좋겠구나 / 한국 글쓰기 교육 연구회 글 / 보리 / 7500원'시험 날인데 / 나는 오늘도 놀았다 / 몇 점이나 나올까? / 밖을 내다보았다 / 새들이 나무에 앉아 논다 / 새들은 시험 안 봐서 좋겠구나''시험'이란 이 시에서 미소가 절로 번진다. 말 장난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보고 느낀 그대로의 솔직함이 묻어나는 동시집이다. '박스 줍는 할머니'에서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따뜻한 시선도 느껴진다. '학원 마치고 집에 갈 때 / 종이 줍는 할머니가 / 소정이네 집에 멈춰 서며/ … "박스 남는 거 있으면 / 좀 주시라요" / 소정이 할머니가 나왔다 / 종이 줍는 할머니가 / 더 나이 많아 보이는데 / 꼬박꼬박 존댓말을 해 가며 / 박스를 받는다' 교사 모임인 한국 글쓰기 교육 연구회가 1995년부터 10여 년 동안 모아온 어린 제자들의 동시 가운데 가려 뽑은 123 편의 우수 작품이 실려 있다. 모든 시마다 동심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 잘 담겨 있다.△ 하늘을 나는 교실 / 에리히 캐스트너 글 / 시공주니어 / 6000원‘하늘을 나는 교실’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키르히베르크의 기숙사 학교 김나지움. 이 곳 아이들은 이웃학교와 패싸움을 벌이고, 담장을 넘어 몰래 학교를 빠져 나간다. 심지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을 골려주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보다 훨씬 더 사실성이 돋보이는 작품. 작가 에리히 캐스트너가 학교 선생님의 경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작가는 선생님은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발전시키려 한다면 선생님 스스로가 먼저 발전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주말
  • 이화정
  • 2007.07.13 23:02

[책의 향기] 꽃아 꽃아 문 열어라 등

△ 꽃아 꽃아 문 열어라이윤기 지음/열림원 펴냄/1만2000원‘슬프고도 아름다운 곰 이야기’ ‘3의 비밀을 찾아서’ ‘닭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왕이여, 딸을 조심하라’….이 흥미로운 소제목들은 전부 우리 신화에서 나온 것들이다. 중견작가이자 탁월한 번역가인 이윤기씨가 우리 신화 에세이 「꽃아 꽃아 문 열어라」를 펴냈다. ‘단군과 웅녀’ ‘주몽과 유리태자’ ‘호동공주와 낙랑공주’ 등 문헌과 구비전설, 무가에 살아남은 우리 신화의 속살이 펼쳐진다. “신화를 읽을 때마다 나는 아이처럼 늘 들뜬다”고 고백하는 이윤기씨의 신화에 대한 애정과 구수한 문체가 돋보인다. △ 진보의 역설그레그 이스터브룩 지음, 박정숙 옮김/에코리브르 펴냄/1만8000원식량은 풍부해졌지만 ‘유전자 변형’이라는 낙인이 찍혀있으며, 자동차는 점점 더 안전해지는 반면 사람들은 거대한 SUV에 위협을 받는다. 이 책은 ‘우리는 왜 더 잘살게 되었는데도 행복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물질적 측면에서의 엄청난 성장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에 비례하는 행복감을 얻기 보다는 ‘더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경제학자 그레그 이스터브룩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이용해 이 문제의 원인을 찾고 나름의 치료법을 제시한다. 사회가 ‘물질적 요구’만이 아닌, ‘의미의 요구’까지 충족시켜야 행복한 사회가 성립된다는 것. ‘의미의 요구’를 채워주는 방법은 이타적이라고 여겨지는 특성들의 실천이다.

  • 주말
  • 도휘정
  • 2007.07.13 23:02

[책의 향기] 족징

'돈'이라는 한 글자에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하기도 하고, 돈을 빌려주고 빌리는 문제로부터 갚는 것에 이르기까지 예나 지금이 사람들이 하는 모양은 비슷하였다. 돈을 빌리는 연유야 사람들마다 제 각각이겠지만, 오죽이나 급했으면 남의 돈을 빌려 쓸까하는 점에 있어서는 예외가 없을 것이다. 또한 돈을 빌린 사람은 정해진 기한 내에 정해진 약속에 따라서 그 돈을 갚아야 하고 그것은 사회가 얼마나 건전한가를 가름할 수 있는 사회적 신용의 잣대이기도 하다.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양쪽 중에서 어느 한쪽이라도 다른 마음을 가질라치면 항상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돈을 빌려 간 사람이 갚지 않을 경우, 빌려 준 사람은 십중팔구 그 가족에게 돈을 갚도록 요구하기 마련이다. 가족이나 친척이라는 이유로 빚을 갚아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1861년에 순천에 사는 장전, 장형, 장숙 등은 일가인 장기열이 진 빛 4,600냥을 갚아야 하는 딱한 사정에 빠졌다. 장기열이라는 자가 4-5년 동안 서울 등지로 다니면서 진 빚을 채무자들이 문중 일을 하면서 빌려간 것이라고 소송을 해서 문중에 그 빚을 갚도록 수령의 판결을 받아 내었기 때문이다. 이에 장전 등은 300냥을 갚고서 도저히 갚을 길이 없었기에, 관찰사에 탄원서를 올려 개인적인 빚 때문에 억울하게 족징을 당할 이유가 없으므로 잘 처리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또한, 전라도 벽사역(碧沙驛)에 살던 방철두는 횡폭한 관리 때문에 빌리지도 않은 빚을 떠 안기도 하였다. 방철두는 벽사역 관리 방용기의 수탈을 피해서 장흥군 부평면으로 이주하였는데, 사람들의 속이고 재물을 편취하며 힘없는 주민들에게 잔학하게 굴던 방용기가 교활하게 공전(公錢) 70여냥을 빌리면서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였고, 또 영채(營債) 21냥을 빌려가 족징하는 등 4년여 사이에 230여냥을 편취 당하였다. 이에 방철두가 방용기와 옛 영주인(營主人) 채동렬을 고소하여 이 돈이 방용기가 빌려갔음을 기록하게 하였으나 채동렬이 이를 따르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에게 횡포를 부리니 원통하여, 관찰사에게 처리해달라고 호소하였다. 이처럼 친척이라는 이유로 또는 이름을 도용당한 것 때문에 돈을 대신 갚아야 하는 걸 족징(族徵), 징족(徵族)이라 하였다. 우리들이 흔히 조선후기 군역을 피하여 도피한 자가 있으면, 당사자가 납부하여야 할 군포를 이웃사람에게 부담시키거나, 그 친척들에게 징수하는 "족징”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소송 판결에 의해 국가로부터의 추징된 세금을 환급 받는 것은 너무나 힘든 것이었다. 성씨가 같다는 이유로 족징에 시달린 사람들은, 세금을 내라면 철렁거리는 가슴을 쓰다듬으면서 내고 마는 힘없는 민초들이었던 것이다.

  • 주말
  • 전북일보
  • 2007.07.06 23:02

[책의 향기] 양계영의 행복한 책방이야기

경제용어로 ‘규모의 경제’라는 말이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대량생산과 대량판매가 이뤄지면 수익구조가 큰 폭으로 증가한다는 뜻이라 한다. 그러나 그동안 이 법칙이 출판계에서만큼은 적용되지 않았었다. 특히 단행본 출판은 다른 산업분야와 달리 ‘규모의 경제’의 영향을 가장 덜 받는 분야로 알려져 왔다. 적은 자본이지만 책에 대한 열정과 애정만 있다면 1인 출판도 충분히 가능했고, 결과물의 수준에 따라 크게 성공을 거두는 출판인도 자주 등장했었다. 하지만 어느 출판인의 말처럼 이제는 이런 일들을 ‘전설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출판사의 양극화 현상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폭발적으로 시장점유율을 넓혀가고 있는 인터넷 서점에서 소규모 출판사의 책이 어느 한 구석에 자리를 잡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다. 그나마 우수도서를 선별하고 진열할 수 있는 오프라인 서점의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당분간 양극화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질 전망이다. 백발이 희끗한 노신사가 전국 주요서점을 돌며 자신이 기획하고 편집 제작한 인문서적을 홍보하고, 또 다음 책을 제작할 수 있을 정도의 넉넉한 판매대금을 수금해가는 모습은 이제 빛바랜 포스터처럼 아득한 옛 풍경이 되었다. 톡톡 튀는 창의력과 다양성이 생명인 출판문화계도 이 냉혹한 경제법칙을 이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스러지는 모습이 그저 아쉽기만 하다. /양계영 홍지서림 전무

  • 주말
  • 전북일보
  • 2007.07.06 23:02

[책의 향기] 스스로를 치료하는 법 배우기

"의사의 치료행위는 구체적인 철학이다.” 독일의 저명한 실존철학자이자 정신병리학자인 야스퍼스는 의술이 단순히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몸을 다루는 철학적 행위라고 말한다. 우리의 삶은 건강과 질병 속에 노출되어 있으며, 싫던 좋던간에 우리는 병원을 방문하고 의사를 만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병원에서 내 몸이 마치 하나의 기계처럼 의학적 관찰과 기술의 대상이 되는 불쾌한 경험을 하곤 한다.이러한 현대의학의 문제점과 우리가 병원에서 경험하는 근원적 불편함을 철학적으로 성찰하고 있는 책이 독일의 철학자 가다머의 『철학자 가다머 현대의학을 말하다』이다. 철학적 해석학을 통해 잘 알려진 그가 93세에 펴낸 이 책은 건강의 수수께끼, 현대과학과 의술, 철학과 실천의학, 치료와 대화, 불안 등의 문제에 대해 삶에서 우러난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척수성 소아마비에 걸려 극심한 척추통증을 경험했고 좌골통증을 앓았던 그는 자신의 육체적 고통을 통해 현대 의학이 품고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자신의 말년에 성찰하고 있다.가다머는 "여러 과학 가운데서도 의학은 결코 테크놀로지로써 이해할 수 없는 과학”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계량적 방법으로 객관적 표준값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건강과 질병을 이해하고자 하는 현대의학의 경향이 가장 큰 의학적 실수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환자의 눈으로 질병을 바라보거나 환자의 목소리로 질병에 귀기울이는 법을 배우는 대신 기술적으로 아주 복잡한 측정 도구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읽고 건강을 표준값에 의해 규정하려는 현대의학적 시도는 넌센스라는 것이다.그는 건강이란 삶의 리듬이고, 평형상태가 스스로의 균형을 잡아가는 지속적인 과정이며, 자기 자신과의 조화상태라고 보면서,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적합하게 치료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전문화가 우리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린 데 근대 문명의 비극이 있다고 보면서, 그는 이제 우리가 질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자연의 일부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신체가 유기적인 자체 방어 시스템으로 우리의 '내적' 평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자연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환자와 의사의 역할이라는 것이다.환자를 치료한다는 독일어 단어 '베한들른(behandeln)'은 손으로 조심스럽고 책임감있게 환자의 몸을 만져봄으로써 환자가 겪는 고통을 확인하고 고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환자의 노력과 긴장을 감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치료란 동시에 환자를 대우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또한 봉사한다는 뜻이 있다. 건강이란 이러한 세심한 배려와 존중 속에서 회복되는 것이다. 이 책은 진정한 건강이 무엇인지, 왜 치료에 인간적인 소통이 필요한지, 현대의학이 왜 따뜻한 의학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지 등과 같은 현대의학에 보내는 노철학자의 성찰적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김정현 교수(원광대 철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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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7.07.06 23:02

[책의 향기] 쥐를 잡자 등

△ 쥐를 잡자임태희 지음/푸른책들 펴냄/8800원출판사 푸른책들과 계간 「동화읽는가족」이 제정한 제4회 푸른문학상 ‘미래의 작가상’ 부문 수상작이다. 주인공은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고1 여학생 ‘주홍’. 미술대학 강사로 미혼모인 엄마는 딸의 임신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이제 막 발령을 받은 초보 담임선생님 역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성에 대해 무지한 우리 청소년의 현실을 돌아보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제목의 ‘쥐’는 주홍이 엄마에게는 아픈 기억으로, 초보교사에게는 두려움으로, 주홍이에게는 원치 않는 생명을 가리킨다. 저자 임태희는 연세대에서 아동학을 전공했으며, 지은 책으로는 「내 꿈은 토끼」가 있다. △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김진호 백찬홍 최형묵 지음/평사리 펴냄/1만3000원이 책의 부제는 ‘미국 복음주의를 모방한 한국 기독교 보수주의, 그 역사와 정치적 욕망’이다. 기독교인 안에서 조차 한국의 교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나오고 있는 현실에서, 이 책은 1907년 선교사들에 의해 주도됐던 ‘평양대부흥운동’을 기독교 보수화의 기원으로 보고 한국전쟁과 유신체제를 거치면서 특징화된 한국 기독교 보수주의의 본질을 파헤친다.특히 한국 기독교의 보수화·정치화 과정을 미국과 비교해 연대기별로 살펴본 것이나 저자 세명이 좌담을 통해 기독교 뉴라이트 운동을 비롯한 기독교계 합리적 우익의 등장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분석한 것이 인상적이다.저자들은 “한국교회가 올바른 자기부정 없이 대부흥운동을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것은 지난 시기 주류기독교 세력의 부정적인 행태를 재현하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 주말
  • 도휘정
  • 2007.07.06 23:02

[책의 향기] 신데룰라 등

* 신데룰라 / 엘렌 잭슨 글 / 보물창고 / 9500원딸이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좌절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멋진 남자와 결혼하면 평생 행복하게 살 거라는 환상을 갖지 않도록 하고 싶다면, 추천하고픈 책이다. 주인공 신데룰라는 고약한 새엄마와 언니들과 함께 사는 신데렐라와 비슷한 처지. 다만 삶을 대응하는 방식이 다르다. 신데룰라는 무도회에 갈 때도 자신이 모은 돈으로 드레스를 사고, 허름한 구두를 신는다. 결혼도 오두막에 살면서 재활용 공장을 운영하고, 재밌는 농담을 할 줄 아는 둘째 왕자를 만나 화려한 연회대신 소박하게 사는 삶을 선택한다.이 책은 아이들에게 스스로 찾아내고 선택한 삶에서 진정으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출간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무려 40번이 넘게 원고가 거절을 당했을 정도.하지만 출간된 후 하드커버로만 75,000부 이상이 팔려나갔고, 현재도 강력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 나는 무슨 씨앗일까 / 강영우 외 글 / 샘터사 / 9000원아직 씨앗 단계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꿈의 씨앗을 발견하고 키워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더욱이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여러 요리사를 거느린 총주방장이 되기 위해서는 감자부터 열심히 깎아야 한다는 박효남 총주방장의 이야기, 좋아하는 분야를 찾은 후 비로소 학문의 즐거움을 알게 된 최재천 박사의 이야기, 뭐 하나 잘하는 것 없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혔던 안철수의 어린 시절,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지경이라도 부지런히 그림을 그린 화가 김점선의 일화 속에서 어린이들은 화려해 보이는 성공 뒤에는 여러 가지 고난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9명의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심어준다. 이들이 체험으로 깨달은 삶의 교훈들은 부모들도 새겨볼 만하다.* 구비구비 사투리 옛 이야기 / 노제운 글 / 해와 나무 / 9800원함경도에서 제주도까지 전국 각 지역의 교훈과 감동이 깃든 전래동화를 사투리 문체로 담았다. 저자는 구전된 옛이야기의 맛을 살리기 위해 해당 지역에서 2대 이상 거주한 주민에게 일일이 사투리 감수를 받았다고 한다.노인 부부와 도둑이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사건을 다룬 경기도의 ‘콕 찍어 쏙 뺀다’, 어릴적부터 밥을 유난히 좋아해 덩치는 크지만, 겁 많은 뜅뜅 장군의 이야기를 그린 평안도의 ‘식퉁이 뜅뜅 장군’ 등 모두 9 편의 옛 이야기를 통해 생소한 발음의 단어들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사투리를 잘 모르는 어린이들이 읽기 편하도록 표준어 해설을 함께 달은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환경아 놀자 / 환경교육센터 글 / 한울림 / 1만2000원 환경지킴이 '푸름이'가 환경오염으로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의 하소연을 듣고 해결방법을 찾아주는 교육동화. 물 오염 문제를 다룬 방울이, 오염된 땅을 되살리려는 두더지, 엄마 곰을 위해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죽은 물고기를 보고 놀라는 반달이, 지구온난화로 갈 곳을 잃은 깃털이, 에너지 부족으로 빛을 잃어가는 꼬마전구, 몸에 안 좋은 환경호르몬에 시달리는 봄이가 그들이다.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라 그리 아름답지 않다. 대신 물의 순환, 지구에 있는 물의 양, 물의 쓰임새를 설명한 뒤 양치질할 때 컵 사용하기, 친환경세제 쓰기 등 물을 깨끗이 지키기 위한 방법을 보여준다.

  • 주말
  • 이화정
  • 2007.07.06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