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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통계

고문서중에서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종류 중 하나이다. 매매문서에 기록되는 내용은 왜 토지를 매매했는가, 어디에 있는 무엇을 얼마에 사고 팔았는가, 사고 판 사람은 누구인가. 증인은 누구이고, 글쓴이는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내용 중에서 무엇을 왜 매매하게 되었는가, 사고 판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내용은 당시의 사회상을 엿보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오늘 소개할 문서는 토지를 매입한 주체가 동계(洞契:마을계)로 되어 있어 우리의 흥미를 끈다. 동계는 대동계(大洞契)·이중계(里中契)·동중계(洞中契)·동리계(洞里契)·촌계(村契)라고도 불렀는데, 우리나라에서 계의 기원은 삼국시대까지 올라간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리고 각종 동계의 형성도 기원이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전통 촌락에서는 대부분 마을의 공동행사를 위한 경비를 조달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를 위해서 마을에서는 각 가구로부터 평등하게, 또는 등급을 정하여 현물이나 금전을 각출하여 공동재산을 형성하였으며, 이를 관리하기 위해서 계를 조직하였다.그러나 공동재산을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토지를 매입하여 그곳에서 나오는 수입을 공동기금으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오늘 문서는 어느 마을인지는 모르겠지만 동계에서 1837년(헌종 3) 12월 1일에 같은 마을 사람으로 보이는 김일노(金一老)로부터 토지를 매입하면서 받은 문서이다. 이때 마을계에서는 김일노가 어떤 필요한 일이 있어 팔게 된 영촌(嶺村)에 있는 발자답(髮字畓) 3마지기를 27냥을 주고서 매입하였다. 김일노는 이 논을 외가로부터 상속받은 것이었다. 이는 김일노의 어머니가 친가에서 물려받은 토지를 다시 물려받은 것으로, 조선후기 재산 상속에서 이때까지도 여성도 재산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또한 이 거래에 장영오(張榮五)라는 사람이 증필(證筆)로 참여하였다. 이때 증(證)은 토지를 매매하는 과정에서 증인으로 참가한 사람이며, 필(筆)은 문서를 작성한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문서의 말미에 재산을 파는 사람과, 이때 참여한 증인, 문서를 작성한 사람 등 세 명의 이름을 기록한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이 문서와 같이 증인이 직접 문서를 작성하기도 하며, 증인 없이 재주(財主)가 문서를 직접 작성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동계의 기금으로 처리했던 일들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먼저, 조선 후기에는 세금이 각 마을마다 총액을 정해서 부과되기도 하였는데, 이때 마을에서는 마을에 부과된 세금을 공동 기금인 동계의 기금으로 납부하였다. 또는 마을에서 서당을 운영하면서, 이에 필요한 각종 경비를 부담하거나,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각종 행사의 경비로도 충당되었다. 이처럼 전통 마을에서는 마을 사람들의 단합과 공동의 일을 처리하기 위한 동계가 조직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대 산업화의 과정에서 농촌이 해체되어 가면서 마을의 공동 조직들이 해체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한미FTA의 체결로 농촌 공동체 문화의 해체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생각되어 아쉽기만 하다. /(박노석 - 전주대학교 전임연구원)

  • 주말
  • 전북일보
  • 2007.04.13 23:02

[책의 향기] 아동문학가 박예분의 새학년 책읽기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친구들은 어떤 친구들일까?’새 학년이 되면 몹시 궁금하고 설레는 건 학생이나 학부모나 마찬가지다. 겨울을 보내고 새 기분으로 맞이하는 첫 봄처럼, 새 학년에 대한 기대가 크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아이들은 비교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예전처럼 동그라미 안에 스물 네 시간을 나누어 놓고 매일 반복적인 생활을 하는 계획표가 아니다. 영어 단어는 하루에 몇 개를 외우고, 수학은 어디까지 선행학습을 할 것이며, 책은 일주일에 몇 권을 읽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는 스스로 열심히 하면 점차적으로 해결이 된다. 하루의 반을 학교나 학원에서 보내는 아이들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다. 아이들은 가족과의 관계, 선생님과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복잡한 감정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아동기는 신체적으로나 지적·정신적으로 미숙해 이런 문제에 부딪혔을 때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부족하다.친구나 부모님에게 마음을 터놓고 의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수많은 꽃과 과일을 보며, 저마다 모양이나 향, 맛이 다른 것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듯,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다양성을 존중해야만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선생님이나 친구관계가 좋지 않으면 학교생활도 즐겁지 않다. 바른 인성이 밑바탕이 될 때 아이는 건강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 새 학년이 된 아이들의 마음을 껑충 성장시켜 줄 책 몇 가지를 소개한다.

  • 주말
  • 박예분
  • 2007.04.13 23:02

[책의 향기]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너무도 어려운 문제가 차고 넘치는 이 시대, 200년 전의 다산(茶山) 정약용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했을까? 사회 경제 정치적인 난제에 대해 가치판단과 주의주장이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경우가 많은 오늘날 신중하게 떠올려 볼 법한 의문이다. 그러나 다산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기가 녹녹한 일이 아니다, 자칫 자기주장을 정당화시키는 견강부회와 아전인수로 흐를 위험이 있다. 정민 교수의 『다산선생 지식경영법』(김영사)을 정독하고 나면 난마와 같이 얽혀 정답을 찾기 불가능할 것 같은 문제들에 대한 답이 어렴풋이나마 떠오르는 '통찰'의 체험을 할 수 있다. 다산은 한없이 잘게 쪼개고 해체하는 접근만 가능한듯한 이 시대에, 종합적 통분야적 문제 해결방식의 전범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문예부흥기의 다빈치처럼 못하는 것이 없이 사통팔달했던 이들을 '르네상스 맨'이라고 불렀다면 조선의 문예부흥기 영정조 시대의 인물 다산이야말로 전무후무한 르네상스 맨이었다. 걸출한 경학자(經學者), 예학자(禮學者)요, 교육학자이자 사학자였던, 진정으로 통합적인 인문학자였다. 그런가하면 수원 화성의 축성을 총지휘하고 필요한 기계설비들을 설계한 토목공학자이자 기계공학자였고, 지리학자였으며 의학자인, 실용적 과학자이기도 하였다. 또한 법학자이자 국어학자였고, 시인이자 문예비평가였다. 전설적인 참 목민관, 즉 행정가이자 탁월한 교육자였음은 물론이다.(정민)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분야에서 동시에 탁월한 성취를 이룩할 수 있었을까? 이 경이(驚異)이자 불가사의에 대한 답을 저자 정민은, 다산이 널려있는 정보를 수집 정리해서 체계적이고 유용한 지식으로 탈바꿈시킬 줄 알았던 탁월한 지식편집가요 전방위적 지식경영가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조선의 23대 국왕 정조는 참으로 빼어난 군주였다. 근본적인 개혁으로 누습을 혁파하고 피폐한 사회를 되살려 국가의 부흥을 꾀하는데 정조와 다산은 진정 환상의 콤비였다. 그들의 경륜이 수십년 더 펼쳐졌더라면 조선의 역사는 전혀 다른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조가 일찍 승하하고(독살설도 있는데) 다산은 정적들에 의해 축출되어 20년 가까운 유배생활을 보낸다. 그는 이 처절한 좌절과 절망의 시기에 역으로 조선 사상사와 학술사상 찬란한 업적을 이룩하여 과연 인간이 뜻을 세우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공부와 저술, 편찬에 몰두하느라 방바닥에서 떼지 않은 복사뼈에는 세 번 구멍이 났고 이와 머리카락도 다 빠졌다. 집안은 몰락하고 후손들의 벼슬길은 다 막혔고 역경은 험준한 산과 같았지만 늘 한없는 따뜻함과 깊은 감성으로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학정과 가렴주구, 기근과 역병에 시달리는 민초들의 삶에서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초당에 정원을 꾸미고 풍류를 잃지 않았다.다산의 인간과 학문의 위대성을 갈파한 많은 저술이 있었지만 정민은 이 책에서 다산식 학문하기와 실천하기의 '과정'에 대하여 바로 그 다산식의 검토 분석을 놀랍게 해내었다. 정민은 이 책의 집필과정에서 "어느 순간부터 그가 내속으로 걸어 들어와 내 사고를 지배하고 자기 생각을 나를 시켜 말하는 느낌마저 들었다”고 술회하였다. 이 말이 허사가 아님을 실감한다. 2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산이 이 암울하고 어지러운 시대에 애타는 그러나 확신에 찬 시선을 우리에게 던지는 느낌이다. 이 책을 통해서 많은 이가 다산과 설레임으로 만나서 그의 애민심(愛民心)과, 지혜와 통찰, 견인불발의 실천력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면 저승에서 다산의 기쁨이 클 것이다./최효준(전북도립미술관장)

  • 주말
  • 전북일보
  • 2007.04.13 23:02

[책의 향기] ‘당나귀 귀’ 등

‘당나귀 귀’ 등 3부작 / 세르주 페레즈 글 / 산하주간 / 6000원“레이몽 귀는 당나귀 귀” 주인공 레이몽은 선생님이 하도 귀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귀에 모가 나 ‘당나귀 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같은 반 아이들에게 하루 종일 시달리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의 트집, 아빠의 발길질, 채찍질 등 폭력에 괴롭힘을 당하는 신세. 정신치료가 필요하다며 등 떠밀려 가게 된 요양센터에서 생애 처음으로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아이러니가 나타난다.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 할 가정과 학교가 편협함과 위선으로 뭉친 어른들로 인해 가장 예리하게 상처를 입히는 공간이 되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책이다. 라이카는 말했다 / 이민희 글 / 느림보 / 9000원처음으로 우주여행을 떠난 지구생물은 ? ‘라이카’라는 강아지다. 이로써 무중력상태에서도 지구 생물이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그런데 대체 ‘라이카’는 어떻게 됐을까. 인공위성을 대기권으로 진입시키는 데만 신경 써 회수기술까지는 개발하지 못했던 ‘라이카’는 우주 떠돌이 신세가 됐다. 인간에 의해 이용만 당하고 버려진 라이카가 얼마나 힘들어했을지. 작가는 그냥 그렇게 잊혀지는 라이카의 존재를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해 반전을 시켰다. 현대 문명에 대한 풍자로 약한 자에 대한 희망과 기적의 바람을 담고 있는 셈. 이 책은 2006 한국안데르센상 출판미술부문 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빨간 물고기를 따라간 날 / 장원저 글 / 산하주간 / 8500원주인공 반짝이가 자꾸 화를 내게 되는 것은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운이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데다 선생님도 자신을 꾸짖기만 하고, 아빠마저 강아지를 잃어버린다. 그래서 홀로 먼 길을 떠나는 반짝이. 산 속에 혼자 살고 있을 외할머니니 만큼은 자신을 잘 받아줄 것 같아서다. 우연히 만난 빨간 물고기를 쫓아 시냇물을 거슬러 올라가자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을 만나게 되는데... 견디기 힘든 현실에 처한 소녀가 낯선 세계에 가서 위안을 받고 돌아오는 풍경이 맞물린 동화다. 흙으로 만든 귀 / 이규희 글 / 바위솔 / 7000원임진왜란 당시 왜구들이 전공을 인정받기 위해 조선인의 주검에서 귀를 잘라 본국으로 가져간 역사적 사실을 저학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노력한 책이다. 초등학교 3학년 주인공 수영이는 “귀를 찾아 달라”는 귀울음(이명)을 듣는다. 아빠와 함께 일본을 가서 자기 또래 여자아이 시내를 만나게 되고 또 다른 전쟁의 희생자 이야기를 듣게 된다. 시내의 할아버지 역시 태평양 전쟁 당시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온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눈여겨 대목은 시미즈 영감의 등장이다. 비록 “종군 위안부는 그들의 부모가 생계를 위해 팔아버린 딸”이라는 망언이 계속되더라도 말이다. 까마귀 소년 / 야시마 타로 글 / 비룡소 / 8000원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혼자였고 아이들은 그를 ‘땅꼬마’라고 부르며 따돌린다. 새로 부임한 선생님은 땅꼬마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학예회에서 발표할 수 있는 자리를 주는데, 여섯 해 동안 학교로 오가는 길에 들었던 까마귀 소리를 들려준다.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마다 까마귀들이 내는 울음소리에 집중하고 흉내내기 시작했던 것. 이 책은 대인기피증이 있거나 꼴찌를 면치 못하는 아이들이 보기 좋다. 파랑, 빨강, 노랑, 먹색 등 4원색을 겹쳐 색을 낸 점이나 크레용과 붓의 투박한 터치로 질감을 낸 점은 미학적으로도 아름답다.

  • 주말
  • 이화정
  • 2007.04.13 23:02

[책의 향기]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 은희경

“나는 아름답고 낯설고 허망한 소설을 좋아한다. 그러나 잘 쓰지는 못한다. 대개 내 소설은 질문과 고민을 포함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은희경의 신작이 나왔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창비). 제목부터가 아름답고도 낯설고 허망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2005년 「비밀과 거짓말」을 내며 은희경이 쓴 ‘작가의 말’을 꺼냈다. 그러고는 ‘이 말은 믿을 게 못된다.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로 말하자면, 질문과 고민이 응축되어 있는 이야기인 채로 아름답고 낯설고 끝내 허망하기까지 하다.’고 평했다.은희경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독창적인 소설 미학에 그는 ‘이 소설의 장르는 그래서 그냥 ‘은희경’이다’고 말한다. 아홉번째 책을 내는 작가에게 이 얼마나 가슴 뿌듯한 칭찬인가.표제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제목만으로도 시선을 끈다. 세상을 사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한번쯤은 느껴봤을 기분. 그러나 주인공은 남자다. 마른 사람이 울면 비련의 주인공이 되고, 뚱뚱한 사람이 울면 코믹이나 청승이 되어버리는 세상. 가족을 버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뚱뚱했던 아들은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지난해 황순원문학상 최종후보에까지 올랐던 이 작품은 「비밀과 거짓말」이나 「상속」에 나왔던 ‘가족’과 ‘아버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1990년대 ‘냉소’를 향하던 그의 소설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터 ‘고독’을 달고나온 것도 달라진 점이다. ‘고독의 발견’의 만년 고시생 K도, ‘의심을 찬양함’의 유진도 모두 고독하다. 몽상가 소녀 B의 상상 속 세계와 상상과는 너무 다른 현실이 교차하는 ‘날씨와 생활’은 오디오북으로도 나왔다. 성우들이 작품을 읽고 은희경이 육성으로 직접 해설을 했다.“소설 한편을 쓰고 나면 이로써 또 한번 한국문학을 빛내주었다는 생각이 들어야 할 텐데 다만 가까스로 한가지의 고독을 이겨냈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잠깐이나마 낙관적이 되는데, 그때 짓게되는 안도의 웃음이 바로 소설 쓰는 체력이 돼주는 것 같다.”“소설은 혼자 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는 은희경. 웃지 않으면 자칫 표정에 풍상이 엿보이는 나이.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일부러 큰 소리로 웃기로 결심했는데, 소설 속에서도 역시 그 여정이 조금쯤 보이는 듯하다고 한다. 참, ‘아름답고도 낯설고 허망한’ 책 제목은 시집을 뒤져 골랐다.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에서 골라낸 문장 하나로부터 표제작의 제목이 생겨났다.

  • 주말
  • 도휘정
  • 2007.04.13 23:02

[책의 향기] 전유성의 구라 삼국지 등

△ 전유성의 구라 삼국지전유성 지음/소담출판사/1만원그는 왜 삼국지를 썼을까?「전유성의 구라 삼국지」는 개그맨 전유성이 새롭게 쓴 삼국지 이야기다. 정확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풍자하고 패러디한 작품. 기존의 삼국지 스토리를 현대의 에피소드와 인물들과 대비해 그려냈다. 사이 사이 등장하는 ‘구라 심리학’ 코너는 심리학자 김효창 박사가 집필한 것. 삼국지 속 등장인물들과 현대인의 심리에 대한 해설을 담고있다. 르포작가 이남훈, 사직작가 김관형 등 여러 스탭들이 4년 간 자료조사와 기획, 중국 현지답사를 거쳐 집필했다. 올 8월까지 전 10권으로 완간될 예정. 현재 1권 ‘조심하라, 첫인상은 영원하다’와 2권 ‘눈앞에서 진짜임을 증명하려는 건 가짜다’가 나와있다. △ A리스트 프로젝트앨리샤 섀퍼 지음/최소영 옮김/쌤앤파커스/1만3500원제니퍼 애니스톤의 가느다란 팔과 제시카 심슨 같은 가슴 만들기, 우마 서먼 같은 목과 어깨 라인 만들기, 패리스 힐튼의 탄탄한 복부, 비욘세 같은 유연하고 섹시한 S라인 만들기. 그녀들의 아찔한 몸매는 타고난 것이 아니다. 핵심 노하우를 모르면 죽어라 운동해도 백날 똑같다. 안젤리나 졸리의 트레이너가 나의 개인 트레이너가 되는 방법. 「A리스트 프로젝트」에 숨겨져 있다. 할리우드 배우들의 백만불짜리 몸을 만든 트레이너들은 ‘조각같은 몸매 만들기에는 정교하고 과학적인 방법론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운동에 정통한 10명의 트레이너가 각 운동에서 뽑아낸 가장효율적인 부위별 운동법과 차별화된 복합동작을 공개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 ‘12주 프로그램’도 소개한다.

  • 주말
  • 도휘정
  • 2007.04.13 23:02

[책의 향기] 종이로 만든 사람들 등

△ 종이로 만든 사람들살바도르 플라센시아 지음, 송은주 옮김/이레/1만4000원멕시코 이민자로 미국에서 성장한 작가 살바도르 플라센시아의 데뷔작이다. 1976년생으로 스물아홉에 「종이로 만든 사람들」을 쓴 그는 이 소설로 움베르토 에코, 오르한 파묵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소속된 와일리 에이전시 작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소설은 세 개의 세계를 오간다. 소설 속 꽃마을 엘몬테 사람들의 세계, 소설 밖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 플라센시아의 세계, 소설을 읽는 독자의 세계. 정교하고 치밀하게 계산된 소설은 기존의 어떤 소설보다도 독창적이다. 가볍게 읽기에는 난해하지만, 낯설면서도 조금씩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이 책이 실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본문의 글자 방향이 거꾸로 돼있거나 페이지 가운데 일부가 하얗게 비어있을 때가 있다. 글자가 검은 상자로 덮여 내용을 알아볼 수 없거나 희미해 지는 곳도 있으며, 종이에 구멍이 뚫려있는 곳도 있다. 파본이 아니다. 모두 작가의 의도다.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 지음/유영미 우석훈 주경복 옮김/갈라파고스/9800원풍요가 넘쳐나는 행성에서 날마다 10만명이 기아나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한 쪽에는 특권으로 가득한 풍요로운 세계가, 다른 한 쪽에는 빈궁한 세계가 존재한다. 제네바대학 교수와 같은 대학 부속 제3세계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인 저자 장 지글러는 ‘기아로 인한 떼죽음은 참으로 끔찍한 반인도적 범죄’라고 말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기아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방법은 각 국이 자급자족 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 아들과의 대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책은 부자들의 쓰레기가 가난한 사람들의 먹을거리가 되고 있는 처참한 현실부터 기아의 현장에서 어떤 사람들이 부당한 이득을 보고 있는지 상세하게 분석했다. 인간의 생사를 가르는 상황들이 얼마나 정치, 경제 질서와 관련있는지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 주말
  • 도휘정
  • 2007.04.06 23:02

[책의 향기] 빈센트 반 고흐 등

▲ 빈센트 반 고흐 / 브리지트 라베, 미셸 퓌에크 글 / 다섯수레 / 9000원“내 이름은 빈센트 반 고흐. 나는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조금씩 조금씩 많이 해 보았단다. 예술품을 파는 상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책을 파는 책장수, 심지어 어느 탄광촌의 선교사 일도 해 보았지.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그림 그리는 일이 나에게 가장 잘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나는 온통 그림 그리는 데에 뜨거운 열정을 쏟아 부었단다.” 살아 있는 동안은 철저하게 외면당했으나 죽어서 인정받은 불운한 화가. 하지만 자신의 영혼과 인생을 다 바쳐 그림을 그렸기에 행복할 수 있었던 화가 고흐 이야기다. 이 한권으로 아이들이 고흐의 그림이 왜 아름다운지 이해할 수 있기란 어렵다. 다만 열정적인 삶 자체와 생애의 이면을 통해 자신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그를 만나볼 수 있다. ▲ 돌아온 고양이 / 박경리 글 / 작은책방 / 9000원<토지>의 작가 박경리 씨가 쓴 동화. 부모 없이 남동생을 돌보며 살아가는 한 여자아이 선주의 이야기는 요즘 어린 아이들이 경험하기 쉽지 않은 경우다. 설상가상 격으로 이런 선주에게 친구들과 놀다가 동생이 바위 위에서 떨어져 죽는 일이 발생한다. 슬픔에 빠진 선주가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은 할머니가 선물한 새끼 고양이 때문. 그런데 이번엔 고양이가 사라진다. 작가는 새끼고양이를 꼭 껴안고 잘 수밖에 없는 선주의 모습이 요즘 시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사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본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결말에 등장하는 선주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아 보인다. 대체 왜 일까. ▲ 우리 숲의 딱따구리 / 황보연 글 / 돌베게 어린이 / 9000원이 책은 왜에 대한 답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관찰과 탐구의 여지를 열어둔 느낌이다. 딱따구리에 대해 관찰한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섣불리 단정하지 않아서다. 아이는 청딱따구리의 둥지를 얻어 알을 낳으려는 동고비 편이 되어 관찰한다. 큰오색딱따구리가 나무에 구멍을 파기 위해 십만 번은 쪼아도 부리가 부러지지 않는 게 신기할 지경이라며 감탄하도 한다. 이 책은 딱따구리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숲에 사는 새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어 초봄에서 겨울까지 숲과 새를 느끼고 관찰하게 해준다. 관찰과 탐구의 여지를 열어둔 느낌이다. ▲ 엄마가 훔쳐보는 선생님 일기 / 문현식 글 / 철수와 영희 / 9000원아이들이 청소시간에 가장 열심히 하는 일은 ? 몰래 춤추는 일이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유행하는 춤은 속칭 ‘털기춤’이란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하는 일은 ? 아무 생각 없이 가요를 따라 부르며 흥얼대는 일이다. 이 책은 이렇듯 늘 궁금하지만 알 길 없는 아이들의 진솔한 고백일기에 선생님 자신의 일기를 써 내려간 것이다. 아이들과 선생님의 ‘합작 일기’인 셈. 진한 감동을 받고, 아이들의 대견스러움에 깜짝 놀라게 하는 대목도 많다. 자녀와 함께 일기를 쓰는 습관을 들이고 싶은 부모라면, 꼭 한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 열두 달 나무 이야기 / 이름가르트 루흐트 글 / 풀빛아이들 / 1만원이 책은 오랜 세월 관찰하면서 나무 세밀화 그림을 통해 사진에서 알 수 없는 나무의 작은 특징을 잘 드러낸 수작이다. 나무의 휴식(1-2월), 나무의 개화(3-5월), 나무가 주는 이로움(6-8월) 등 나무의 생태와 변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놓았다. 이와 함께 출간된 ‘열두달 숲 이야기’와 함께 읽으면 좋을 듯 하다. 이 책은 1980년대 독일에서 출간돼 현재까지도 정보책 분야의 고전으로 평가 받는 그림책. 세밀하게 숲 속 생태를 묘사하고 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숲의 생태를 파악할 수 있도록 일부 페이지에서는 같은 장소의 풍경을 반복해 배치한 섬세함이 돋보인다.

  • 주말
  • 이화정
  • 2007.04.06 23:02

[책의 향기] '세계 명화 비밀'

1991년 영화 '나 홀로 집에' 포스터. 1995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댄 퀘일의 반대자들이 만든 티셔츠. 1995년 영화 '스크림'에 사용된 할로윈 가면.이것들의 공통점은 '자연을 관통하는 그치지 않는 비명소리'를 들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그렸다는 에드바르드 뭉크(1863∼1944)의 <절규>(1893년)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현대 사회의 불안이나 아이러니는 뭉크의 <절규>를 친숙하게 느끼게 한다. 우울증과 강박적인 종교관에 시달리고 있던 작가 자신의 상처받은 삶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작품. 100여년 전, 화가 자신이나 그 시대의 신경증을 담아낸 그림이 지금에도 통한다는 것은 이 그림이 시대를 넘어서는 '명화'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전시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모니카 봄 두첸의 「세계명화 비밀」(생각의나무)은 명화와 관련된 이야기 속에서 미술 작품의 사회적인 기능과 대중의 기대, 문화적 의미 등을 읽어내고 있다. 화가의 편지, 주변의 증언 등 전기적인 사실을 재료로 활용해 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다각도로 추적하고 있다. 대상이 된 명화는 미켈란젤로 부나로티 <다비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프란시스코 데 고야 <1808년 5월 3일>,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 에드바르드 뭉크 <절규>,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잭슨 폴록 <가을의 리듬>. 1501년에서 1950년 사이에 제작된 여덟 점의 미술작품의 비밀은 흥미롭다. 레오나르도는 <모나리자>를 그리면서 새로운 투시법 형식을 고안해 냈으며, 그로부터 400년 후 피카소는 루브르에서 그 초상화를 훔치려 했다는 혐의로 경찰 신세를 질 뻔 했다. 고야는 군주정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1808년 5월 3일>을 그렸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그림을 왕에게 선물했으며, 잭슨 폴록의 작품은 미국 CIA의 지원을 받았다.두첸은 "이 작품들을 가능한한 모든 각도에서 자세히 조명해 보고 싶었다”며 "그런 걸작들이 문화 전체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일상적인 것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어떤 식으로든 설명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명작도 대부분 처음 등장했을 때는 노골적으로 부정적인 반응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혼란스러운 반응을 얻었고 그 예술적인 영향도 즉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천재의 능력은 '우선 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으며, 그들의 문화적 생산물은 기존의 상태를 혼란'시키기 때문이다. 2005년 가을부터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시리즈를 펴내기 시작한 생각의나무는 「세계명화 비밀」 2∼3권도 내놓았다. 2권은 '신화 상징'과 '성서 상징' 등 두 권으로 나왔으며 3권은 '르네상스편'이다.

  • 주말
  • 도휘정
  • 2007.04.06 23:02

[책의 향기] 교첩

조선시대 여러 관직 중에서 참봉(參奉)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관직도 없다. '이 참봉', '김 참봉', '참봉댁'과 같은 호칭에서, 고위직에 올라 세도를 부린 것은 아니지만 한때나마 나랏일에 종사하며 '관록'을 받았던 사람이라는 것을 내세우려고 하는 듯한, 뭐랄까 애잔함을 느끼기도 한다. 미관말직(微官末職)의 상징인 참봉은 조선시대 내의원 등을 비롯한 여러 관서와 능(陵)·원(園)·전(殿) 등에 배속되어 행정실무를 도맡아 보았던 종9품의 벼슬이었다. 오늘 살펴보려는 문서는 참봉 사령장, 교첩(敎牒)이다. 관리에 임명되면 '교지(敎旨)'와 교첩(敎牒)을 내렸는데, 교지는 4품 이상의 관리에게 국왕이 발급한 사령장이고, 5품 이하의 관리의 경우, 사헌부와 사간원의 신원조회[署經]를 거쳐 이조(吏曹)나 병조(兵曹)에서 왕명을 받들어 임명하였다. 이 때 발급한 사령장을 '교첩(敎牒)'이라고 했다. 이 문서는 종9품에 해당하는 관직인 참봉을 임명하는 사령장이기 때문에 이조에서 교첩을 발급하였다. 문서 왼쪽에 보이는 것처럼 '이조지인(吏曹之印)'이라는 관인이 찍혀 있고 이조의 관리들이 서명[署押]을 하고 있다. 요즘으로 말하면 행정자치부 장관이 임명한 자리인 셈이다.이 문서의 주인공은 경기전 참봉에 임명된 김번(金?; 1639-1689)인데, 부안 우반동 일대에 거주하고 있는 '우반동 김씨'들이 바로 그의 후손들이다. 김번의 할아버지인 김홍원이 반계 유형원의 할아버지 유성민에게서 우반동에 있는 토지와 가옥 등을 구입했는데, 김번이 그의 나이 마흔이 되던 해에 우반동으로 이주해 살면서 '우반동 김씨'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우반동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나서 6년이 지난, '강희(康熙) 23년' 곧 숙종 10년(1684) 7월에 김번은 경기전 참봉에 임명되었다. 경기전 참봉으로 임명되었을 당시 김번의 품계는 정5품에 해당하는 통덕랑(通德郞)이었다. 김번은 아버지 김명열이 받을 품계를 물려받아[代加] 종9품 장사랑(將仕郞)에서 통덕랑까지 올라갔던 것으로 보인다. 정5품의 김번이 종9품의 참봉에 임명된 것은 품계와 관직이 일치하지 않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품계와 관직이 일치하지 않을 때, 관직이 품계보다 낮은 경우에는 '行', 관직이 품계보다 높은 경우에는 '守'이라고 표시하였는데, 이런 규정을 '행수법(行守法)'이라고 했다. 그래서 교첩에 '행경기전참봉(行慶基殿參奉)'이라고 적혀있는 것이다. 김번은 자기의 품계보다 한참이나 낮은 관직인 경기전 참봉에 임명되었지만, 이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는 경기전의 전직(殿直)인 참봉이 되어 태조의 어진을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된 것을 자랑스러워했을 지도 모른다. 경기전 참봉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태조의 어진과 전주사고의 실록을 지켜냈던 자리가 아니었던가! 김번 자신도 어진과 실록을 보존하는 공을 세운 경기전 참봉 오희길의 무용담을 틀림없이 알고 있었을 것이며, 그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비록 참봉이라는 자리는 미관말직이지만 종묘사직과 역사를 지켜낼 수 있다는 자긍심을 말이다./이선아(전북대)

  • 주말
  • 전북일보
  • 2007.04.06 23:02

[책의 향기] 양계영의 행복한 책방이야기

해마다 봄철이 되면 서점가에는 노란색 옷을 입은 유치원생들이 견학을 온다. 책과 서점에대한 안내직원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저마다 한 두 권씩 책을 들고 소파에 자리를 잡는다. 무슨 책들을 골랐나 가만히 살펴보면 반 이상이 만화책을 보고 있다.따뜻한 휴일 오후, 서점의 아동코너 한 쪽에서는 엄마와 아이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한 손에 만화책을 불끈 움켜 쥔 아이와 만화책 말고 동화책을 고르라는 엄마의 채근이 이어진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만화는 ‘이야기 따위를 간결하고 익살스럽게 그리고 대화를 삽입한 그림’이라고 되어 있다. 아이를 가진 부모세대에서 만화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을 그림에 담아 낸 일종의 저급한 출판물이라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다.과연 그럴까? 요즘 출판되는 어린이용 만화책을 찬찬히 살펴보자. 대부분이 교육용 만화책이다. 물론 아이들의 호기심에 편승해 텔레비전에서 방송한 만화영화를 책으로 만든 출판물도 적지 않지만, 교과서를 만화로 풀어 낸 책에서부터 영어, 한자, 과학, 수학 등 어른들도 이해하기 힘들었던 내용을 만화로 알기 쉽고 재미있게 꾸민 책들이 상당수다.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한자교육용 만화책을 구입한 고객의 자녀가 어려운 한자를 척척 읽어내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는 이야기를 듣노라면, 이제 만화도 비중 있는 출판물의 한 종류로 대우해 줘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양계영(홍지서림 전무)

  • 주말
  • 전북일보
  • 2007.04.06 23:02

[책의 향기] 아리랑

내가 일본 유학중이었던 1985년 어느 날 일본현대사 특히 일본군사사의 대가이셨던 후지와라 아키라(藤原彰) 선생의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후지와라 선생은 특별한 경력을 가진 분이셨다. 일본 군국주의 시대 유명한 명문가의 집에서 태어난 선생은 당시 시대 상황에 따라 '군국주의 소년'으로 자랐고, 집안의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서 중국전선에 투입되었다. 중국전선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통해 일본 천황제 국가의 모순을 몸으로 직접 감지했고, 침략전쟁의 부당성과 부하들의 '개죽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지휘했던 부대원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부당한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기도 했다. 명령불복종은 당시 일본 군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로서 즉결처분 대상이었다. 그러나 어른들이 일본 군부의 수뇌부에 있는 등 워낙 막강한 집안의 자식이라 처분은 받지 않고 대신 휴가 없이 4년간 최전선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귀국하여 일본의 침략사를 공부하기 위해 동경대학 역사학과에 재입학하였고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연구와 사회활동에 정렬을 쏟았던 분이셨다. 선생의 집에 들어서자 집안 전체가 책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거실에는 우리들 학생들을 위해 조촐한 술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몇 잔의 술이 오간 후 나는 선생께 질문을 했다. "이 많은 책과 자료들 중에서 선생님께 가장 인상에 남는 책은 어떤 것입니까?” 선생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이라고. 나는 너무나 놀랐다. '아리랑'은 한국에서 1984년 동녘출판사에서 처음으로 번역 출간되어 음성적으로 읽히고 있었다. 나도 얼마 전 '아리랑'을 읽어 그 내용에 충격을 받고 나의 뇌리에서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한국 유학생이니까 나를 배려해서 하는 대답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내 질문을 계기로 선생은 '술자리 강의'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는 전부 일본 학생들이었고 외국인은 나 혼자였다. 선생은 자신의 젊은 날의 경험을 섞어 '아리랑'의 내용을 풀어나갔다. 일본 학생들은 그런 책이 있나 하며 놀라면서 경청했다. '아리랑'은 '중국의 붉은별'을 집필했던 에드가 스노(Edgar Snow)의 부인 님 웨일즈(Nym Wales)가 불꽃처럼 살다간 조선인 혁명가 김산(본명 : 장지락)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님 웨일즈는 신문기자로서 당시 중국의 연안(延安)에서 자료를 수집하다가 김산을 만나게 된다. 김산은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5년 3월 10일 평양 교외의 차산리라는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자라면서 동포들이 일본 순사들에게 당하는 것을 보고 혁명가의 꿈을 키웠다. 형의 구둣가게에서 일하며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얼마 후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하던 중 1923년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을 경험하게 된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중국공산당에 가담하여 일본과 맞서 싸웠다. 그러다 일본군에게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고 풀려났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를 의심했고 결국은 일본 스파이라는 누명을 쓴 채 그가 키운 중국공산당의 보안기관에 의해 처형당하고 만다. 모진 한파와 굶주림, 고문 그리고 병마는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그런 고통 속에서도 오로지 조국의 독립만을 바라보며 사라져간 김산의 모습은 고통으로 점철된 우리 역사의 상징이며 빛이리라./이규태(한일장신대 교수)

  • 주말
  • 전북일보
  • 2007.04.06 23:02

[책의 향기] 우리나라 최초 여성 파일럿 권기옥 등

우리나라 최초 여성 파일럿 권기옥 / 임복남 지음 / 작은 씨앗 / 9800원"꿈을 가지라우! 꿈이 없으면 송장이나 다를 게 없디 않가서! (중략) 어느 나라든 젊은이들이 꿈이 있고 패기가 있으면 그 나라는 희망이 있어. 다른 나라가 함부로 넘보디도 못 하고 말이디." 곡예비행을 본 뒤 비행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불꽃처럼 살다간 여성 권기옥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학비가 없어 학교생활을 하기 힘든 상황에도 불구, 중국 운남항공학교 1기생으로 입학해 각종 훈련을 이겨내고 9시간 단독 비행을 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조선시대 파일럿세계에서도 ‘우먼파워’를 당당히 이야기했던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빌리 엘리어트 / 멜빈 버지스 글 / 프로메테우스 / 9800원열쇠를 건네주려고 발레 교습소에 갔다가 얼떨결에 발레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12살 사내아이의 이야기. 가난한데다 ‘전혀 남자답지 못한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그 누구도 자신의 춤을 인정해주지 않는 빌리는 외롭기만 하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을 알아챈 윌킨슨 선생으로 인해 아들이 숨어서 춤추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빠와 형의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거치게 되는데.. 뛰어난 영상과 음악으로 영화 ‘빌리 엘리어트’가 감동을 선사했다면 책 ‘빌리 엘리어트’는 발리레노 빌리의 뛰어난 심리묘사를 맛볼 수 있다. 생생한 역사화에 무엇이 담겨 있을까 / 이주헌 지음 / 다섯수레 / 1만2000원‘책 읽어주는 남자’ 이주헌씨가 쓴 역사화 소개서다. 1편 풍경화, 2편 정물화에 이어 세 번째. 아이 손을 잡고 선뜻 명작 보러 가게 되지 않는 부모들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70점이 넘는 서양의 역사화에 얽힌 이야기를 쉽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영화 이티의 모티브가 됐다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부터 고야의 ‘1808년 5월 3일’,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라울 뒤피의 ‘전기요정’에 이르기까지 꼼꼼한 설명을 담았다. 서양화와 서양역사에 한정됐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페달로 세상을 돌린 아이/ 표시정 글 / 청어람미디어 / 7800원“떴다 올려다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달린다 내려다 보아라 엄복동의 자전거”는 일제 강점기에 널리 불렸던 노래다. 이 책은 자전거가 좋았고, 자전거 하나는 실컷 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자전거포에 취직한 엄복동이 우리나라 최고의 자전거 선수까지 오르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할 새도 없이 성장하게 되는 아이들에게 삶을 즐기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생각할꺼리를 던져준다. 너도 하늘말라니아 / 이금이 글 / 푸른책들 / 8000원이야기는 '미르'라는 6학년 소녀가 시골로 전학 오면서 시작된다. 미르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시골학교로 온 것이 불만스럽고 외롭다. 시골학교는 어쩐지 만만하고 시시하게 느껴져서다. 아버지와 둘만 사는 바우는 미르와 비슷한 입장이면서도 속이 깊은 친구다. 이 책은 이 둘이 티격태격하며 상처받은 내면과 극복해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그렸다. 책 속에는 괭이밥, 짚신나물, 노루오줌, 개망초와 같이 이름모를 꽃이름을 알아가는 기쁨도 있다. 손수레전쟁/ 진 메릴 글 / 다른 / 9800원‘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알아야 한다’는 작가 진 메릴의 작품이다. 막강한 트럭회사와 사회적 약자인 손수레 상인들의 다툼을 풍자해 전쟁이 어떻게 발생되고, 확대되며, 끝나는지 보여주고 있다. 뉴욕 시의 도로는 거칠게 운전하는 트럭운전사들로 인해 심한 정체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에 지친 손수레 상인들이 불법정차를 일삼고 도로의 혼잡을 유발한 트럭회사를 몰아내기 위해 단결하자 이어 트럭회사들의 손수레를 없애기 위한 움직임이 진행되면서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손수레와 트럭 간의 ‘교통 전쟁’을 통해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책이다.

  • 주말
  • 이화정
  • 2007.03.30 23:02

[책의 향기]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

소설가 김지우(1963∼2007)가 세상을 떠났다.평소 편두통이 심했던 그는 갑자기 뇌압이 올라가 정신을 잃은 뒤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지난 24일이었다. 2년 전 그가 낸 첫 소설집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창비)는 그렇게 마지막 작품이 됐다. "내 작품 속 인물들, 노숙을 하고, 보험사기를 치고, 노래방에서 노래하고, 험한 눈길을 걷고, 꽃들이 무슨 죄라고 꽃들을 죽여대고, 감히 서슬파란 대통령각하께 편지쓰기 거부하는.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생의 절정에 다다른 변방의 마이너리그 인생들. 나는 언제나 그들에게 눈길이 간다. 내가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한 그들은 나의 여전한, 가슴 아린 사랑이다.”그가 글쓰기를 멈춘 지금. 다시 펴본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에서 그들은 여전히 일상의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눈길' '그 사흘의 남자' '디데이 전날'에는 경제적 결핍을 온 몸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으며,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와 '해피 버스데이 투 유'에는 사회의식과 도덕성을 잊고 사는 상류층이 있다. '물고기들의 집'에는 피붙이가 아닌 사람들이 가족으로 모여사는 모습과 '댄싱 퀸'에는 꽃들을 통해 생명에 대한 잔인성을 보여준다. 아슬아슬한 삶이다.문학평론가 황광수씨는 '경제적 조건, 사회적 정의감이나 도덕성, 때로는 미학적 사유를 결여한 사람들의 삶 속으로 독자들을 깊숙이 끌어들인다'며 '그의 소설이 우리의 가슴을 따스하게 적시는 것은 새로운 인간관계에 대한 가녀린 희망과 전편에 흐르는 문체의 힘 때문이다'고 말한다. 또 그의 글쓰기는 다른 여성작가들에게서는 흔치 않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위트와 유머의 능란한 구사. 소설가 현기영씨는 "위트·유머가 없이 진지하기만 한 연애가 재미없고 그러한 강연도 따분하듯이, 진지한 소설은 실패하기 쉽다는 징크스를 이 작가는 발랄한 동작으로 극복해 내고 있다”며 '날렵하고 발랄한 위트와 유머'를 들었다. '감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엎드려 책을 읽거나 글 나부랭이를 끼적거리며' 그는 어린시절 고향집에서 문학적 감수성을 예민하게 키워나갔을 것이다. "내가 자란 전주 고향집 화단엔 도심 한복판임에도 과실나무와 꽃나무들이 무성했다. 채 봄이 되기도 전 노란 수선화가 피고 상사화가 애처로운 꽃대를 올리면, 앵두꽃, 모과꽃, 철쭉, 영산홍, 석류꽃, 감꽃, 모란, 작약, 장미, 백합, 대추나무순, 무화과나무순들이 잇달아 피어나고, 수목들 틈새, 양지바른 틈, 물고추를 갈고 들깨를 갈던 돌확 옆에서 고추꽃, 부추꽃, 상추꽃, 파꽃, 쑥갓꽃, 깨꽃, 머위, 아욱들이 여릿하니 피고 자라며, 담장을 따라 붉은 넝쿨장미가 숭얼숭얼 피어오르면 아름다움은 절정을 이뤘다.”라고 첫 소설집의 '작가의 말'은 시작된다. 2000년 단편 '눈길'로 창비 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온 그. 늦깍이의 한을 풀듯 활발한 문단 활동을 했으면서도 그의 고향 전북에서는 그를 충분히 주목하지 못했다. "혹독한 이분법으로만 살았던 내 젊은 날, 나의 독설에 알게 모르게 상처입었던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하고 싶다.”소설가 김지우가 서둘러 떠나고 난 자리, 그가 남긴 한 마디는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를 잊고 살아 미안하다 하고 싶다. 그리고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 주말
  • 도휘정
  • 2007.03.30 23:02

[책의 향기] 눈뜬 자들의 도시 등

△ 눈뜬 자들의 도시주제 사라마구 지음/정영목 옮김/해냄 펴냄/1만1000원알레고리와 패러독스로 똘똘 뭉친 블랙 코미디.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2004년 작이 번역됐다. 전작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사람들이 눈을 뜨고 4년이 지난 시점. 민주주의 실현의 한 축인 선거일. 때마침 큰 비바람이 몰아쳐 투표소에는 아무도 오지 않고 선거관리자들은 날짜를 변경해 다시 선거를 한다. 그러나 투표결과는 백지투표 83%. 정부당국은 결과에 당황하고 충격적인 사건의 배후인물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확실하지 않으며,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 또한 따로 없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깊이와 넓이를 느낄 수 있다. △ 상실 수업데이비드 케슬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지음/김소향 옮김/이레/9800원“난 내가 겪은 이 고통을 이해하는 척하지 않습니다. 대신 신에게 분노할 겁니다. 9년 동안 나를 한 의자에 꼼짝없이 갇혀 있게 한 신에게 화가 납니다. (…) 그러나 신에게도 뜻이 있겠지요.”「인생 수업」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죽음 직전에 완성시킨 유고작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신의학자로 살다 뇌졸중으로 9년간 마비된 몸으로 살게된 그는 가빠지는 숨과 점점 꺼져가는 생명의 기운을 느끼며 죽음에 대한 정신적·실천적 가르침을 남겼다. 공저자인 케슬러는 병상침대에 누운 스승 엘리자베스 옆에 앉아 그의 한마디 한마디를 기록해 「상실 수업」에 담겼다. 「인생 수업」이 죽음 앞에서 삶의 열정을 제시했다면, 「상실 수업」은 죽음 뒤에 더욱 타오르게 될 삶의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주말
  • 도휘정
  • 2007.03.30 23:02

[책의 향기] 간찰

대부분 고문서가 관(官)과 연관된 공식적인 문서라면, 간찰류는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 사적(私的) 문서라는 특징이 있다. 간찰류는 부모나 친구간에 안부를 묻는 안부편지가 많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간에 주고 받은 연애편지 같은 것들도 있다. 변학도에게 처형되기 전날밤에 춘향이가 이몽룡에게 쓴 편지도 있다. 간재 전우와 그 제자들이 주고 받은 간찰은, 스승과 제자간에 의문나는 사항을 묻고 답하는 수준 높은 편지도 있다. 또 학문적 토론을 위해 고봉 기대승과 퇴계 이황사이에 오고간 편지글은 유명하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간찰에는, 간찰의 주인공이 살던 당시 사회상이 잘 반영되어 있다. 사진에 보이는 간찰은 일본에 가 있는 오빠가 조선에 있는 여동생에게 보낸 한글편지이다. 오빠와 여동생사이인데도 헝(형)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또 답서, 슈셔, 동구간 이란 단어들은 지금은 잘 쓰지 않는 표현들이다. 이처럼 간찰은 우리가 잊고 지내던 우리의 옛 삶을 생생하게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편지하여 보내고 답서 바다보기 바라고 기달이던 차의 하로난 동생의 슈셔가 문전의 떠러저 있어 엇지않이 반가울가그려---너의 헝은 엇지그리 전생의 무삼죄가 많이 있셔셔 부모처자동구간 다 버려두고 수천리 있어 이 고생을 하는가---이 곳 헝은 밋지 말고 아무리 여 의 몸이 되야실정 너나 아모조록 부모의게 자조 편지라도하고 부모님 안심을 식커계 ?여라”오빠가 무슨 일로 일본에 가 있는지는 잘 드러나 있지 않다. 편지내용을 보면, 형제가 오빠와 여동생, 그리고 여동생 남편만이 있는 것 같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못내 안타까운 오빠는 고국의 소식이 몹시 궁금하다. 여동생에게 편지를 보내고서 동생의 슈셔(답장)이 오기까지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러던 차에 동생의 편지가 문앞에 떨어져 있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고국에 돌아가지 못해 가까이서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는 미안함을 늘 지니고 있다. 때문에 오빠는 여동생에게 자조 편지하라고 부탁하였다. 이 편지는 여동생의 남편(제부)에게도 자주 편지하라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너의 남편은 엇지 답셔을 안이 ?여난지 모르겻다 ?(내)가 조션의 잇셔셔 답셔 안이?면 관계가 없지만은 ---수천리 잇난 사람의계 답셔가 없스니 내 생각에 무신 연고가 잇셔서 그리되이난지 갑갑하다 할말은 만이 잇스나 그만 근친다”언제 손으로 편지를 쓰나 생각해 보니, 연말에 크리스마스 카드나 신년 연하장을 가끔 쓰기는 한다. 아날로그적인 편지는 컴퓨터가 발명되자 이메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손 끝에 묻어나던 생생한 감정은 자판처럼 딱딱하고 건조해졌다. 편지내용은 마네킹처럼 예뻐 보이지만, 감정은 사라지고 정보만 존재한다. 요즘은 대부분 연락할 일이 있으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고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참 편리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참 정 없는 세상이다./정훈(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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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3.30 23:02

[책의 향기] 직업으로서의 정치

한국사회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정치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 역시 흥미있는 연구감이다. 정치인에 대한 한국인의 신뢰도는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자질있는 정치인을 훈련시키는 변변한 학원조차 없는데도 정치에 인생을 걸려는 사람은 끊임없이 배출된다. 정치에 대한 경멸과 비난을 일삼으면서도 정치적이지 못한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도 곧잘 발견된다.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이런 현상을 분석하고 성찰하는데 도움을 주는 정치사회학 분야의 고전이다. 이 책은 베버가 죽기 직전에 행한 강연 원고로서 얇은 문고본 수준의 적은 분량에 불과하지만 베버 만년의 중후한 사상이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또 그의 다른 강연인 『직업으로서의 학문』과 함께 정치와 윤리, 권력과 이성이라는 주요한 쟁점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관련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쳐온 책이다. 베버는 정치를 권력을 장악하려는 권모술수와 동일시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선한 목표를 추구하는 이타적인 선행처럼 보지도 않았다. 그는 '악마적인 것'과 정치의 불가분성을 강조하는데 인간의 삶에 악마적인 것이 불가피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 부정적 영향력을 최소화하려는 냉정한 노력이야말로 정치의 본질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것을 "두꺼운 철판에 열정과 의지로 구멍을 뚫어나가는” 일에 비유하였다. 베버는 또 정치를 생계수단으로 삼는 직업정치가들의 등장을 주목한다. 오늘날 한국에서 직업정치인 보다 오히려 시민운동가들이 '순수'하다는 이유로 좋게 평가되기도 하는데 베버는 오히려 전문적인 정치가집단의 출현이 지니는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베버가 특히 주목한 것은 정치를 직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에게 어떤 자질이 요구되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베버는 '비창조적 흥분' 상태, 자기중심적인 성취욕 등은 아마추어적인 것이라 비판한다. 또 내면적인 열정이 없이 합리적인 수단적합성만 따지는 관료적 태도도 비판한다. 나아가 결과에 대한 책임보다 주관적 의도나 선의만을 강조하려는 종교적 심성도 정치적 자질은 아니라고 비판한다. 베버는 직업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요소로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의 세가지를 강조하였다. 열정은 대의나 가치에 대한 적극적 헌신을 뜻하며 책임감은 자신의 열정이 현실 속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냉정하게 따지고 계산하는 태도이다. 균형감각은 내적 검증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 즉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베버의 입장에서 본다면 가치에 대한 열정이 없는 정치인도 곤란하지만 결과에 대한 냉철한 책임감 없이 주관적 선의만 내세우는 정치인은 더욱 곤란하다. 바로 이런 점에서 베버는 직업정치인은 '책임윤리'라는 독특한 에토스를 내면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윤리는 냉정하면서도 판단력과 책임감을 강조하는 독특한 정신이다. 베버는 이 책임윤리야말로 '정치의 윤리적 고향'이라고 주장한다. 종교인의 윤리나 마키아벨리적 권력정치를 모두 뛰어넘으면서 책임윤리의 에토스를 내면화한 사람만이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수행할 수 있다고 베버는 주장하였다. 올해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윤리적 에토스를 지닌 정치인, 이런 책임감을 사회화하는 정치를 볼 수 있을까? 한국의 현실에 관심 있는 지성적인 독자들의 일독을 강력하게 권한다./박명규(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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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3.30 23:02

[책의 향기] 상실의 시대

1995년 여름, 내게 찾아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그 안에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은 마음 깊이 남겨졌다. 그냥 흘려듣던 노래가 문자와 함께 파고드는 느낌. 그 때의 느낌은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다.2000년 가을, 그 음악이 마치 나의 것인 것처럼, 마치 내가 와타나베인 것처럼, 공항 라운지 한가운데에서 나만의 '상실의 시대'는 시작됐다.지금보다도 젊었던 그 때. 20대 초반, 나에게 깊은 영향을 줬던 「상실의 시대」와 소설보다 더 깊은 느낌의 '노르웨이의 숲'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유연하고 깔끔한 자연스러움 만큼이나 '나'로 나오는 주인공 '그'는 음악을 좋아하고 피트 제랄드의 '위대한 캐츠비'를 좋아하고 항상 고독하며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요양원의 '레이꼬'가 기타 치는 장면은 지금도 자주 머릿속에 맴돈다. 그녀가 연주하는 '노르웨이의 숲'을 들으면 '나오꼬'는 그녀 자신이 깊은 숲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혼자 춥고 어두운 곳에 있는데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는 그런 외로운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나 또한 그랬다.'그'가 '나오꼬'의 장례식이 너무 외로웠고 쓸쓸하다고 하자, '레이꼬'는 그 장례식을 잊으라고 하면서 '나오꼬'의 장례식에서 기타로 51곡을 연주한다. 그 음악들….디어 하트, 노르웨이의 숲, 미셀, 페니 레인, 블랙버드, 주리아, 웬아임식스티포, 노호에어맨, 앤드아이러브허, 헤이쥬드, 업온더루프, 라벨의 죽은 여왕을 위한 파반느, 드비시의 월광, 크로스 투 유, 워크 온 바이, 웨딩벨 블루스, 로저스하트, 거쉰, 밥딜런, 레이찰스, 캐롤킹, 비치보이스, 스티비 원더, 위를 보고 걷자, 불루 벨벳, 그린 필드, 엘리너리그비, 바하의 푸가…. 이렇게 그녀가 연주하는 곡목을 나열해 놓은 것은 그가 매우 음악을 사랑한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레이꼬'가 기타 치는 장면을 상상하며 부러움은 그렇게 쌓여갔다. 기분이 울적할 때, 기쁠 때, 슬플 때, 내키는 대로 마음껏 기타를 연주할 수 있는 그녀가 내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음악 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젊은 세대들의 한없는 상실과 재생을 애절함과 감동으로 그려낸 「상실의 시대」는 대학 분쟁에도 휩쓸리지 않고 면학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섹스에도 능한 주인공 '나'와 각각 다른 이미지의 여인, '미도리' 그리고 '레이코'와의 관계를 통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작가의식이 잘 그려져 있다.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어린 시절의 상실감은 아직까지도 인생은 상실의 연속이라는 관념 속에 살아가게 만든다.소설보다 더 깊이 남은 '노르웨이의 숲'은 여전히 고독할 때의 마음과 함께 하게 된다. 비틀즈, 오프라 하노이, 허비행콕, 유러피언 재즈트리오 등 각기 다른 느낌으로 전해오는 'Norwegian Wood'. 「상실의 시대」의 깊이 파고드는 문자와 더불어 꼭 챙겨 들어보길 추천한다./명상종(한국소리문화의전당 공연기획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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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7.03.30 23:02

[책의 향기] 벤은 나와 조금 달라요 등

벤은 나와 조금 달라요 ! / 캐시 후프먼 글 / 스콜라 / 8500원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구훈(Asperger's syndrom)을 앓는 주인공 벤의 심리상태를 사실적으로 보여준 책이다. ‘혼자만의 세계’를 즐기고, 특정 과목에 천재적인 능력을 보이며, 새로운 세계에 공포를 드러내는 그들만의 세계를 보여주는 이야기. 작가는 아스퍼거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는 일이 대단히 어렵지만, 그들의 ‘다른’ 세계를 인정하고 그들의 눈으로 바라보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듯 하다. 자기가 태어난 달과 날짜를 서로 곱해 제곱해서 원주율로 나눈 값이 ‘로또’당첨 번호가 되는 황당한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있다. 맘대로 아빠 맘대로 아들 / 오은영 글 / 국민서관 / 9000원“아부지한테 직접 물어 본 적 있는겨?” 이 말을 듣기 전까지 주인공 종기는 아빠를 이해할 수가 없다. 종기의 아빠는 의사다. 어느 날 병원을 그만 두고 솔전리로 내려가 옹기를 구으며 살겠다는 아빠의 느닷없는 발언에 종기는 아빠가 미워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마음이 무시당하는 것 같아 이해할 수가 없어서다. 늘 싸움을 거는 대주, 책만 읽는 수경이 등 나름의 아픔을 간직한 친구들을 이해하면서 비로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는데.. ‘내가 아빠라면’ ‘내가 아들이라면’ 이라는 ‘라면 비법’을 통해 부모와 자녀와의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을 위한 눈높이 대화법도 배울 수 있게 한다. 정표 이야기 / 이정표, 김순규 글 / 파랑새 / 9800원1월 14일. 정표는 하늘나라로 갔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던 정표는 1년 9개월 소아암 투병 끝에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만드는 일기를 남긴 채 떠났다. 정표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병상에서 쓴 일기와 그를 바라보는 어머니 김순규 씨의 글을 엮은 책이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 친구들과의 그리움, 조금 덜 아픈 날의 기억 등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눈을 감기 3 일 전인 1월 11일 “이렇게 힘들게 이겨 내면 다시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신나고 즐겁게 보낼 날이 오리라 믿는다.”는 글을 마지막으로 적었다. 기나긴 병마와의 싸움에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정표의 희망과 사랑의 기억을 어떻게 아로새길 것인지의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일곱 가지 밤 / 이옥 원작, 서정오 글 / 알마 출판사 / 9000원‘임금이 뭐라 해도, 과거시험을 못 봐도 나는 쓴다!’란 글귀는 정조임금도 못 말렸다는 희대의 글쟁이 ‘삐딱이 문인’ 이옥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 책의 저자 이옥은 유교경전에 바탕한 정통 문학을 거부한 당대의 ‘도발’적인 글꾼이었다. 익살맞은 소리를 잘 했다는 송귀뚜라미 이야기나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세상을 버린 처녀, 호랑이를 길들인 며느리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붓 가는 대로 술술 써내려갔다. 어린이들이 접할 수 없었던 한문으로 된 옛 이야기가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동화로 꾸며져 눈길을 끈다. 청계천 5840 / 주경희 글 / 세상의 모든 책 / 8500원책 제목의 ‘5840’은 복원된 22 개다리를 잇는 총 길이가 5084 m. 청계천에 관한 숙제를 하던 주인공 한얼이가 컴퓨터 속 지하 세계로 빠져들면서 청계천 22개의 다리에 얽힌 역사를 새롭게 배워간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한얼이는 거머리와 지렁이가 우글대고 대마녀가 지배하는 청계천 아래 지하세계에서 ‘공주’라는 여자아이와 털보아저씨의 도움으로 22개 청계천 다리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가게 되는데.. 동네 아이들이 팬티만 입고 물장구를 치며 놀던 어린 시절부터, 즐비하게 늘어선 판자집으로 대변되는 고된 서민들의 삶까지 서울의 역사를 같이한 청계천의 이모저모가 재미있게 펼쳐진다.

  • 주말
  • 이화정
  • 2007.03.23 23:02

[책의 향기] 청와대 요리사 등

△ 청와대 요리사이근배 지음/풀그림 펴냄/1만원노태우 대통령이 좋아했던 음식은 멸치 국물에 푹 익은 김장김치를 썰어넣고 콩나물과 쌀밥을 곁들여 끓여낸 ‘갱시기’. 해물을 즐긴 김영삼 대통령은 특히 생선 머리 부위를 좋아했으며, 김대중 대통령은 견과류와 홍어를 즐겨 먹었다.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청와대 요리사를 지내며 세 명의 태통령과 영부인의 식사를 맡았던 이근배씨가 에세이집 「청와대 요리사」를 펴냈다. 전직 대통령들이 좋아했던 음식부터 청와대 주방 이야기까지, 그가 공개하는 ‘대통령들의 식단’은 흥미롭다. 이씨가 자신의 작품으로 꼽는 음식은 ‘청와대 칼국수’. 김영삼 대통령에게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 밀 살리기 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자 당장 주방에 지시가 떨어졌다고. 하지만 탄성이 적고 점도가 약한 우리 밀로 칼국수를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많은 양의 칼국수를 만들어야 할 때면 수입 밀을 조금씩 섞어 쓰기도 했고, 만들고 나서는 손목이 아파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대통령 식사 시간 5분 전에야 밥통 속 쌀이 생쌀인 것을 발견하고 인근 식당에서 솥째 밥을 사와야 했던 진땀 나는 상황도 재밌다. △ 내몸 사용설명서마이클 로이젠, 메멧 오즈 지음/유태우 옮김/김영사/1만3000원의사가 당신의 병을 예방할 수는 없다. 끝도 없이 먹어대는 당신의 손을 감시할 수도 없으며, 먹고 바로 잠자리에 드는 당신을 위해 대신 운동을 해 줄 수도 없다. 당신의 건강을 좌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 뿐. 내가 내 몸의 주치의가 돼야 한다. 심장과 혈관, 두뇌와 신경계, 뼈·관절·근육, 폐와 건강, 소화기관, 성기관, 감각기관, 면역체계, 분비생 이야기 등 우리 몸을 세밀하고 나누고 있는 이 책은 80컷의 일러스트와 친절하고 자세한 안내가 내 몸에 대해 쉽게 전하고 있다. 저자 마이클 로이젠과 메멧 오즈는 의대 교수. 최근 화제가 된 「누구나 10㎏ 뺄 수 있다」의 저자 유태우 서울대 교수가 옮겼다.

  • 주말
  • 도휘정
  • 2007.03.23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