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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공부에 편집증ㆍ고독과 분노 자상한 군주 등 입체적 묘사

여러 명의 장님들이 제한된 시간 동안 거대한 코끼리를 만져보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본다면 어떻게 될까.긴 코를 만진 사람은 길다란 대롱을 그릴 것이며, 단단한 상아를 만진 사람은 길쭉한 뿔을 그릴 것이다. 우람한 다리를 만져본 사람은 커다란 통나무를, 평평한 배를 만진 사람은 널따란 벽면을 그릴 지도 모른다. 역사 속 인물을 말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푸른역사)를 펴낸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는 “세종의 정치를 말하고 쓴다는 것은 어쩌면 ‘장님 코끼리 그리기’일 수도 있다”며 “수많은 사건과 다양한 이야기들, 그리고 몇 개인지 알 수 없는 ‘실록 속의 복합구조’를 하나하나 탐색하면서 그려보는 나의 세종 그림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가 세종을 그리는 이유는 그려본 다음에야 비로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들판에서 농부의 고통을 묻는 자상한 군주의 모습과 ‘강무(講武)란 군국(軍國)의 중대한 일’이라며 민폐와 군사들의 고초를 감내하면서라도 군사훈련을 감행하는 모습. 박교수는 「세종실록」을 되읽어가면서 어느 쪽이 진짜 세종의 모습인지 풀리지 않는 의문들에 부딪쳤다고 한다. “여러 인물들의 시각에서 그려낸 그림 조각들을 맞춰 ‘세종’의 그림을 근접하게나마 그려보고 싶었다”는 박교수. 그래서 이 책에는 ‘조선의 정치가 9인이 본 세종’이란 부제가 붙었다.아버지 태종은 공부에 편집증적으로 매달려있던 세종을 무(武)에는 무(無)지한 걸로 봤으며, 수양대군은 세종의 얼굴에서 고독과 간간히 집현전 학자들에게서 느끼는 분노를 읽었다. 허조는 세자빈의 동성애 스캔들을 난감한 표정으로 대하는 세종의 모습을 묘사했다. 각기 다른 시선에서 바라본 덕에 이 책을 통해 그려진 세종의 모습은 입체적이다. 「조선왕조실록」「태조실록」 「태종실록」 「세종실록」 「세조실록」 「정조실록」은 물론이고, 이이의 <율곡전서>,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악학궤범>, 신숙주의 <보한재집> 등 다양한 사료를 폭넓게 인용했다. 꼼꼼한 조사와 치밀한 계획에 따라 그 출처를 빠짐없이 표기하고 재구성해낸 지은이의 성실함과 역량이 돋보인다.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정조의 성왕론과 경장정책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박교수는 세종, 숙종, 영조의 국가경영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실록학교’ 등에서 세종과 정조의 국왕 리더십을 강의 중이며,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연구실장도 맡고 있다. 「정치가 정조」 「세종의 수성리더십」 등을 펴냈다.

  • 주말
  • 도휘정
  • 2007.09.14 23:02

[책의 향기]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등

△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고미숙 지음/그린비 펴냄/11900원'공부'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 저가는 ‘공부도 때가 있다’는 말이 학교라는 근대적 제도가 만든 허구임을 폭로한다. 공부는 평생하는 것. 그의 ‘호모 쿵푸스’ 존재론이다. ‘호모 쿵푸스’(Homo Kungfus)는 축소된 공부가 아니라 일상 전체를 온몸으로 공부한다는 의미에서 다시 정립된 ‘공부하는 인간’을 뜻한다. 하지만 근대 이후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것이 됐다. 특별히 어떤 자격증이나 전문성을 위해 하는 것으로 축소됐다.이 책은 우리가 왜 공부를 해야 하며,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일종의 참고서라 할 수 있다. △ 스포츠 키드의 추억 신윤동욱 지음/개마고원 펴냄/1만원「스포츠 키드의 추억」은 애국주의, 상업주의와는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는 스포츠 팬의 마음이 담겨 있다. 저자는 1등이 아닌 2등, 메이저 종목이 아닌 비인기 종목에 대한 애정을 적극 드러낸다. 앙골라 여자 핸드볼팀을 응원하고, 레즈비언 테니스 선수 나브라틸로바를 존경하며, 남자 하키 대표팀을 좋아하는 마음을 담았다. 스포츠계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응원가인 셈이다. ‘한겨레21’ 사회부 기자를 거쳐 지금은 문화부 기자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어차피 스포츠 보기에 중독된 인생, 태극마크에 대한 집착은 버리고 스포츠를 보면서 인생도, 세상도 생각하자는 뜻을 책에 담았다”고 말한다.

  • 주말
  • 도휘정
  • 2007.09.14 23:02

[책의 향기] 양계영의 행복한 책방이야기

숨막히는 무더위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바야흐로 ‘독서의 계절’이라 불리는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그러나 ‘독서의 계절’이라는 표현과는 달리 실제로 가을철은 가장 책이 안 팔리는 계절이다. 통계로 보면 여름과 겨울방학에는 문학서 위주로, 3월 신학기철에는 학습참고서 위주로 판매가 이루어지면서 오히려 책 읽기 좋은 계절인 가을철은 성수기에 비해 매출이 50% 이하로 뚝 떨어진다. 더군다나 이제는 주 5일제 영향으로 가을은 여행하기 좋은 계절로 점차 바뀌고 있다. 하지만 최근 출판사들은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해 짧은 시간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들의 기획에 열심이다. 얼마전 300호를 출간한 ‘살림지식총서’를 비롯해 책세상의 ‘소설르네상스’ 시리즈 등 각종 문고본의 출판이 활발하고, 고전문학이나 한국문학을 포켓판으로 재출간해 여행길에서나 주말의 자투리 시간에 충분히 다 읽을 수 있는 책들 역시 붐을 이루고 있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인 가을은 한편으로 독서하기도 좋은 계절인 셈이다. 두꺼운 분량에 무거운 주제를 담은 책을 읽기가 부담이 된다면, 여행길의 비행기나 기차 안에서, 또는 한가로운 주말의 거실 소파에서 한 손에 문고본을 들고 틈나는 대로 짬짬이 읽는 마음의 여유가 풍요의 계절 가을을 한층 넉넉하고 윤택하게 꾸며줄 수 있을 것이다. /양계영 홍지서림 전무

  • 주말
  • 전북일보
  • 2007.09.07 23:02

[책의 향기] 환퇴문서

돈이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돈의 위력은 전통기 왕조시대라고 다를 것이 없다. 오늘날 남아있는 고문서 가운데 상당수가 토지매매문서라는 점도 그런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자급자족의 농업경제사회에서 토지야말로 바로 돈이 아니던가. 그러니 토지에 대한 조선시대 사람들의 집착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백면서생의 양반이건 또는 평민이건 노비이건 토지에 대한 관심은 한결같았다. 자신들의 모든 경제행위를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겼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남남 간에는 물론이거니와 가까운 친척이나 심지어 부부간, 부모 자식 간에도 거래 행위가 있을 경우 이를 문서로 남겼다. 이 매매문서를 명문(明文)이라고 불렀는데 이 낱장의 문서에는 당시 사람들의 경제관념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오늘은 이 매매문서 가운데 특별히 환퇴문서로 불리우는 문서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림에 보이는 문서는 1840년(헌종 6)에 임석현이 정진오에게 논 8마지기를 60냥에 팔면서 작성한 것이다. 당시 임석현은 문서를 자필로 작성은 하였지만 상중이었기 때문에 수결, 즉 서명은 하지 않았다. 사채가 많았던 그는 빚을 갚기 위하여 하는 수 없이 논을 팔았으나 언젠가는 이 논을 반드시 되사겠다는 생각에서 ‘환퇴(還退)’라는 문구를 문서에 삽입하였다. 즉 다시 되사는 조건으로 매매를 한 것이다. 이런 문서를 환퇴문서라고 하였는데 그만큼 토지 또는 가옥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집념이 얼마나 대단하였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환퇴거래에서 토지를 파는 사람은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판매가격과 같은 금액을 지불하고 되살 수 있는 권리를 가졌던 반면, 토지를 사는 사람은 완전한 소유권을 이전받지 못하였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불평등한 거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일시적인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토지를 팔 수밖에 없었던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든 제도적 장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급하게 토지를 내놓은 만큼 시가보다 값이 쌀 수밖에 없었고, 환퇴가격을 시가 기준으로 하기도 하였던 만큼 반드시 매입자에게 불리하였다고만은 할 수 없다. 한편 환퇴의 기간은 거래마다 일정하지 않았지만 대개의 경우 1년을 기한으로 하였으나 특별히 기한을 한정하지 않는 거래도 있었다. 그리고 이 기한이 지나도록 되사지 않으면 그 토지는 영구히 매입자의 소유가 되었다. 필자가 본 문서 가운데에는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논 5마지기를 팔고나서 무려 20년 만에 이를 되산 경우도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절치부심하면서 고초를 겪었을 그 누군가를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찡해진다. 환퇴거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매입자가 되팔기를 거부하거나 아예 그 토지를 제3자에게 넘겨버린 경우이다. 그동안 땅값이 엄청 올랐거나 아니면 급히 돈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잃어버린 땅을 되찾기 위하여 열심히 돈을 모았던 사람의 처지에서 보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만 셈이다. 이 경우 두 사람의 분쟁은 결국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유호석(전북대박물관 전문연구원)

  • 주말
  • 전북일보
  • 2007.09.07 23:02

[책의 향기] '하늘은 네 안에서부터' - 김정현 원광대교수

“밖으로 나가지 말라. 네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라. 진리는 인간의 내면에 있다.” 중세의 위대한 신학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진리란 우리 안에 있다고 설파했다. 그의 말은 자신이 가진 재산, 외모, 권력, 사회적 지위와 같이 외면적인 것을 통해 인정받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성찰케 하는 명구 가운데 하나다.명품의상이나 값비싼 아파트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만 동시에 고통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진정한 자아인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보여주는 책이 안셀름 그륀의 『하늘은 네 안에서부터』이다. 이 책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자신의 내면적인 세계 속에서 영성의 목소리를 듣게 해주는 책이다. 그륀은 철학, 신학, 심리학, 경영학 등 다양한 공부를 했고, 초기 사막 교부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80여권의 책을 썼으며 현재 독일의 성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츠아하 수도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적 지도신부이다. 이곳은 한국에 최초로 사제를 파견한 곳이자 한국박물관이 있는 곳이며 다채로운 영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다. 약 15년 전 그 수도원을 방문했던 나는 그륀의 책을 통해 그곳의 영성적 분위기를 매번 다시 만나곤 한다.그륀은 선(禪)이나 융의 심리학과 만난 이후 가톨릭 전통 안에서 영성신학의 보화를 끄집어내어 현대인에게 가장 결여되어 있는 영성적 자기만남을 제시한다. 그는 여러 사막교부들의 이야기를 통해 “너의 내면을 바라봄으로써 하늘도 볼 것”이라고 말하며 ‘아래로부터의 영성’을 강조한다. 즉 자신의 욕망을 관찰하고 고독 속에서 자신 안에 머물고 자신을 견디어내는 것이 모든 영적 발전과 인간적인 성숙을 위한 조건이라는 것이다. 고독 속에서 하늘의 광대함을 호흡하는 경험을 통해, 즉 자신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내적으로 성숙시킬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이러한 경험을 통해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자기 만남, 즉 자기 안에서 선과 악, 밝음과 어둠, 사랑과 미움 사이의 결렬한 투쟁의 내적 체험을 함으로써 인간은 더 강해질 수 있고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된다.그는 여기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분석하는 법을 제시한다. 그는 포만, 무절제, 탐욕 등의 욕구와 비탄, 분노, 나태 등의 감정, 명예욕, 질투, 교만 등의 정신세계를 관찰하고, 자신의 욕정들을 다루며 자신의 생각과 대화하는 법을 알려주고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해지며 자신과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는 명상을 통해 도달되는 우리 안의 고요의 공간이 곧 평화의 관조이며, 우리는 이러한 훈련을 통해 온유한 사람이 되는 영성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영성생활이란 온유하고 신중하고 경건한 삶을 유지하는 것으로 곧 자기 자신을 찾는 길이자 자유로운 삶을 찾는 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영성생활을 하고자 하는 그리스도교인들뿐만 아니라 진정한 자유와 자기 자신을 찾고자 하는 비종교인에게도 유용한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본지 서평위원

  • 주말
  • 전북일보
  • 2007.09.07 23:02

[책의 향기] 위고 카브레 등

△ 위고 카브레 / 브라이언 셀즈닉 글 / 꿈소담이 / 9500원SF영화의 선구자이자 세계 최초로 종합 촬영소를 만들었던 프랑스 영화감독 조르주 멜리에스. 저자는 멜리에스의 흑백 무성영화 ‘달세계 여행’을 본 뒤 그 영화를 만든 멜리에스에 대한 책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단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멜리에스가 자신이 모은 자동인형들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박물관에 기증했으나, 박물관에 불이 나 모두 타 없어졌다는 것.그래서 이 책은 한 소년이 멜리에스가 남긴 자동인형을 발견하는 상상을 했다는 데서 시작한다. 주인공은 위고 카브레. 열두 살짜리 기차역 시계지기 소년이다. 시계수리공인 위고의 아빠가 박물관 다락에서 고장 난 자동인형을 찾아내면서 자동인형과 할아버지의 비밀을 하나 둘씩 파헤쳐가는 긴장감이 눈길을 끈다. 어린이 책으로 보기 드문 ‘팩션 추리 소설’인 데다 형식도 독창적이어서 아이들의 독서 지평을 넓힐 수 있다. △ 오늘은 무슨 날 / 콘스턴스 W. 맥조지 글 / 보물창고 / 8800원이사 ‘당하는’ 일은 아이들에게 큰 스트레스다. 낯선 환경과 친구들에게 적응을 해야 하기 때문. 그러나 이사 결정에 대한 아이들의 의견은 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조차도 몰라 주는 아이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잘 알고 이해해 주는 친구가 있다. 아이들에게 친숙한 개 ‘부머’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머의 눈높이에서, 부머의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사 날 가족 안에서 자신을 이방인처럼 느끼고 소외감마저 느끼는 아이들의 시선이며 심리인 셈이다. 하지만 부머는 곧 새로운 세계에 적응해 간다. 이사뿐 아니라 새 학기, 새 친구, 배움 등을 통해 익숙함과 낯섦을 거듭하는 아이들은 마음 깊은 곳까지 부쩍부쩍 자란다. 부머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빠르게 적응한 모델이자 친구다.△ 세상에 색을 입힌 엉뚱한 생각쟁이들 / 서인영 글 / 대교베텔스만 / 9500원“왜 옷 색깔이 다 저래야만 하는 거지?”이탈리아의 옷 가게 점원인 한 청년이 이게 늘 불만이었다. 그래서 그는 여동생과 함께 알록달록한 색깔의 화려한 스웨터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처음엔 다들 그 옷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막상 그 옷을 입어보니 편하고 좋았던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 남매의 스웨터를 찾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베네통이다. 이 책은 다소 엉뚱해 보이는 상상을 끊임없는 노력으로 현실로 만들어 보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베네통 외에도 건축가 가우디, 화가 뒤샹,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더 바디샵의 아니타 로딕 등 다른 사람이 비웃건 말건 자기의 생각을 실행해 옮긴 8명의 ‘엉뚱한 생각쟁이들’이다. 이런 크고 작은 엉뚱한 생각들이 편리한 옷차림을, 화려한 세상을, 평화로운 지구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엉뚱한 생각들은 기분 좋게 깔깔 웃고 지나가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열살 소녀의 성장일기 / 조 오스랑트 글 / 거인 / 8000원파도처럼 출렁이는 사춘기 소녀의 감정 변화를 그렸다. “대체 왜 그래?” 란 물음에 딱 부러지게 정의내릴 수 없는 징후들. 엄마, 남동생과 함께 바닷가 휴양지로 온 열 살 소녀 조.그 곳에서 또래 소년인 벵상을 만난 후 설렘의 감정을 느낀다. 금발머리 소녀 르나타와 친하게 지내는 벵상의 모습을 보고 크게 화를 내던 조는 또래 이성에 대한 관심, 질투, 또 당황스러운 신체의 변화에 혼란스러워한다. 남동생 시릴과의 놀이는 점점 흥미를 잃어가는 조가 소녀로 성장 중인 감정변화를 상큼하고 발랄하게 그렸다.

  • 주말
  • 이화정
  • 2007.09.07 23:02

[책의 향기] 포옹 등

△ 대유괴덴도 신 지음/Media2.0 펴냄/1만원추석, 극장가 기대작으로 떠오른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의 원작소설.유괴당한 82세 할머니가 되려 3인조 유괴단을 진두지휘, 100억엔이란 엄청난 몸값을 놓고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당초 유괴단이 생각했던 몸값은 5000만엔. 그러나 할머니는 “자네, 날 뭘로 보나. 난 그런 싸구려가 아니야.”라며, 몸값으로 100억엔을 제안한다. 장르는 추리소설. 1979년 제32회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고, ‘20세기 걸작 미스터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살아있는 캐릭터, 정제된 문체와 박진감있는 전개. 영화보다 책이 낫다는 말도 벌써부터 들려온다.△ 포옹정호승 지음/창작과비평사 펴냄/6000원“도공은 그릇의 형태를 만드는 것 같았지만 실은 그릇의 빈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바로 그 빈 공간이 있음으로써 그릇은 쓸모있는 그릇으로 완성되었다. 나도 시집이라는 사발 하나를 만든 셈이다.”「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등으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정호승 시인이 아홉번째 시집을 펴냈다. 「포옹」. 3년 만이다. 사물과 인간을 대하는 시선이 한층 더 그윽해졌다는 평가. 삶과 죽음, 그 속에 깔린 외로움을 따뜻하게 보듬고 있다. “화해와 포옹이 없는 시대에 이 시집이 우리를 포옹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시인의 바람이 담긴 시집이다.

  • 주말
  • 도휘정
  • 2007.09.07 23:02

[책의 향기] 숨겨진 우리 신화를 발견하는 놀라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첫 장을 펴는 순간, 아득한 물음과 마주하게 된다. 생각이 자꾸만 자꾸만 깊어지는 바람에, 쉽게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없다. 이윤기의 우리 신화 에세이 「꽃아 꽃아 문열어라」(열림원). 그의 이름만으로도 ‘읽고 싶은 이 책’이다.2000년 한 해, 문화일보에 서양의 고대 신화 에세이를 연했던 그는 우리 신화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먼 데 있는 서양 신화만 들고판다는 질책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높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거룩한 우리 집 앞산에 발 들여놓기가 늘 망설여진다”는 이윤기. 그는 “우리 신화의 세계도 그렇다”고 말한다. 가끔 집 앞 작은 산에 올라 풀잎 같은 것을 따들고 와 “이거 산삼 아냐?”하고 아내가 물을 때면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는 말은 숨겨져 있던 우리 신화를 발견할 때의 기분일 것이다. ‘신화’란 말에 그리스 로마 신화를 떠올렸던 여러분들. 행여 멋쩍어하지 않기를…. 이윤기 ‘선생’도 ‘학교를 차례로 다니면서, 「삼국사기」는 김부식, 「삼국유사」는 일연 스님, 하는 식으로 달달 외기만 했다. 서른 살이 다 된 다음에야 두 사서의 엉성한 번역본을 처음 읽었다’고 한다. 신화의 해석이나 분석은 자제하고 되도록 쉽게 읽힐 수 있게 쓰고 싶었던 만큼, 자신의 경험과 생각들을 신화 속에 녹여내 의도적으로 말랑말랑하게 썼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삼국유사」를 비롯한 옛 신화 책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두루 다루지 못했다는 점. 그는 「삼국유사」의 경우, 불교 쪽으로 너무 치우칠 우려가 있어서 조심스러웠다고 말한다.‘꽃이 문을 열면 한 나라가, 국선이 들끓던 한 나라가 찬연하게 열릴 터이다. 우리 것이 되었든, 남의 것이 되었든, 신화는 그런 세계에 핀 꽃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에게 신화를 읽는 일은 꽃을 통하여 그런 세계의 진상에 접근하는 일이다.’「꽃아 꽃아 문열어라」. 우리 신화 이야기는 나이를 떠나 누구나 읽어도 좋을 내용이다.

  • 주말
  • 도휘정
  • 2007.09.07 23:02

[책의 향기] 심부름 말 등

△ 심부름 말 / 김수정 글 / sang / 1만원'나는 심부름 하러 갈 때가 제일 좋아요'그 반어적 문장이 호기심을 바짝 당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심부름 하러 가는 걸 싫어한다. 아이가 심부름 하러 갈 때가 제일 좋다고 하는 이유는 '심부름 말'이 있기 때문이다. 판타지지만, 심부름 갈 때만 타고 가는 말이다. 언덕배기에서 바람을 타고 말과 함께 하늘을 날 듯 내달리는 장면은 이 그림책의 백미다. 하지만 마지막 대목에선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 멋진 말을 타고 달려간 곳이 고작 미니슈퍼라니. 두부 한 모를 산 뒤 동네 아이들에게 으스대며 말을 타고 돌아오는 아이의 모습에 덩달아 미소 짓게 만든다. △ 무지개 / 김진기 글 / 푸른책들 / 1만1000원무지개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그림책 '무지개'는 제목에서 예상되듯 색깔 순서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하지만 단순히 색깔을 가르치려는 책이 아니다. 시각을 잃은 엄마와 아직 세상에 대한 체험이 적은 아이가 '무지개'라는 사물을 두고 어떻게 교감하는지 설명한다. 엄마는 비록 시각을 잃었지만 오랜 삶을 살아왔기에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아이는 추억이 별로 없지만 엄마와의 교감을 통해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체험을 한다. 빨강은 엄마를 놀리는 아이들 때문에 빨개진 아이의 볼, 귤색은 엄마가 만드는 초, 노랑은 엄마가 좋아하는 민들레꽃, 파랑은 엄마가 어렸을 적 눈이 멀기 전에 보았던 하늘로 표현된다. 엄마는 눈가에 아른거리는 빛으로 무지개를 본다. 그리고 그 무지개는 아이의 가슴 속으로 들어온다. 눈으로 보든, 마음으로 보든 무지개는 서로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뜬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이세 히데코 글 / 청어람미디어 /1만원 "어떡하지, 내 도감이…." 그림 속 아이는 표정이 없지만, 애잔한 분위기의 그림과 안타까운 한마디 때문에 아이의 심정은 독자에게 성큼 전달된다. 소녀는 아끼던 도감이 망가졌지만, 새 책을 사고 싶지 않다. 갖고 있던 책에 정이 들어서다. 책가게 아저씨가 말한다. "그렇게 중요한 책이면 를리외르를 찾아가 보려무나." 를리외르와 소녀의 따옴표가 없는 대화는 물 흐르듯 읽힌다. 작가는 를리외르 아저씨를 통해 책 한 권의 소중함을, 장인 정신을 보여준다. 를리외르(relieur)는 프랑스어로 '제본'이라는 뜻이다. 책을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튼튼하고 아름답게 보수해 주는 사람들이다. 프랑스에는 1500여 명의 를리외르가 활동하고 있으며, 국내에도 예술제본 전문공방 '렉또베르쏘' 등에서 를리외르를 양성하고 있다. △ 놀이터의 왕 / 필리스 레이놀즈 네일러 글 / 보물창고 / 8800원케빈은 놀이터에 가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놀이터에서 놀려고 할 때마다 새미가 나타나 괴롭힌다. 새미는 자신이 놀이터의 왕이라며 다른 아이들이 놀지 못하게 한다. 그럴 때마다 케빈은 시무룩한 얼굴로 집에 돌아와 아빠와 대화를 나눈다. 아빠는 잔뜩 주눅이 든 아이를 못났다고 나무라지도 않고, 어떻게 싸워야 새미를 이길 수 있는지를 알려 주지도 않는다. 그저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생각을 키우는 질문을 던질 뿐이다. 케빈과 아빠와의 대화는 부모가 자녀에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용기를 얻게 만드는 대화법을 제시한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으면 좋다.

  • 주말
  • 이화정
  • 2007.08.31 23:02

[책의 향기] '사랑에 대하여' 사랑은 신과 같다…

1922년 융은 “사랑의 문제는 경험하면 할수록 점점 더 높이 솟아오르는 거대한 산처럼 여겨진다”고 기술했다. 그리고 40년 뒤, “나의 삶, 그리고 의사로서의 경험은 끊임없이 내게 사랑의 문제를 제기했으나 결코 그 문제에 대해 타당한 답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랑. 사랑은 거대해 어느 누구도 사랑의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없다. 스위스 정신과 의사이며, 분석심리학 창시자인 융(1875∼1941) 역시 ‘천국에서 지옥에 이르는 거대한 사랑의 운명의 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지만, 사랑과 사랑 안에서 비롯되는 관계에 대한 융의 생각들을 엮은 「사랑에 대하여」(솔)가 있다. 이 책에는 ‘사랑에 대한 칼 융의 아포리즘’이란 부제가 붙었다. 깊은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말이나 글을 가리키는 ‘아포리즘’(aphorism). 융 전집과 세미나 자료에서 그가 언급한 것들이 발췌초록됐다. 인용과 짧은 원문을 실은 이 책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넘어 더 넓은 의미에서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제1장 ‘사랑에 대하여’에서는 주로 포괄적 의미에서의 심혼(心魂)의 관계가 중요하게 다뤄지며, 제2장 ‘에로스에 대하여’에서는 심혼의 관계가 감각적 관계와 연결된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 의미에서의 결혼생활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융을 찾아온다는 것. 이 현실적인 주제는 제3장 ‘결혼에 대하여’에서 다뤄진다. 제4장 ‘공동체에 대하여’에서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다루며, 제5장 ‘치유적 관계에 대하여’는 융의 정신치료에서는 전이(轉移) 관계 뿐 아니라 인간적 관계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밝힌다. 융 분석가인 마리안느 쉬스는 “그는 특출난 사상가는 아니었으며, 체험하고 연구했고 순간순간을 관찰했다”며 “이 책을 읽으면서 유의할 점은 융의 초기 저술과 말년의 저술 사이에서 40년 이상의 시간 차이가 있고, 그 시간 동안 융은 멈춰있지 않고 쉼없이 자신의 사상이나 개념을 발전시켜 나갔다는 걸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융의 글들 사이에서 일관성이 없는 경우가 발견된다는 것. 심리학 전문용어들에 대해 설명을 곁들였지만, 여러 곳에서 인용기술된 문장이다 보니 원저의 전후 문맥을 알지 못해 일반 독자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실제 관계맺음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하기 쉬운 현대인들에게 융의 말은 대단히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 세상에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기억해야 할 건 사랑은 신과 같다는 것. 융의 말대로, 이 둘은 모두 가장 용감한 종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 주말
  • 도휘정
  • 2007.08.31 23:02

[책의 향기] 차가운 피부 등

△ 차가운 피부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지음, 유혜경 옮김/들녘 펴냄/9000원「차가운 피부」는 스페인의 문화인류학자인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에게 ‘소설가’란 직함을 달아준 작품이다. 극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살기 위해 벌이는 사투를 통해 폭력의 원형과 마주하게 되고,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사랑을 통해 소통 불가능의 절망을 전한다. 매혹적인 줄거리 안에 감춰진 철학적인 문제들. 스페인 소설이 주는 색다른 경험이다.작가의 잠재의식에서 뛰쳐나온 듯한 이 소설은 길진 않지만, 여운이 길게 가는 작품이다. 「로빈슨 크루소」와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섞어놓은 듯 하다는 평.△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오소희 지음/에이지21/1만2000원‘더 잘 떠나는 자만이 더 잘 머물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세상의 변방을 찾아다니고 있는 오소희. 그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라오스 여행기를 묶었다.“이제 어디서도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착하게 생긴 얼굴들이 까맣게 그을린 채 모두 그곳에 있었다”.그는 라오스로의 여행은 ‘이미 수만 번 우리의 마음결을 쓸고 지나갔던, 그러나 또 쉽게 잊고 지냈던, 세상 모든 존재들의 파장과 울림을 다시금 알현하는 일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여행에 동행한 저자의 어린 아들 시선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 주말
  • 도휘정
  • 2007.08.31 23:02

[책의 향기] 이장할 돈도 없는 과부의 애환

시시비비를 가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것이 명확히 구분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경계를 짓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그러면 재판이라는 제도를 통해 해결을 보기 마련이다. 조선시대 ‘소송’이라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재판의 대부분은 토지소유와 노비 및 산지소송이었다. ‘3대 소송’이라 불리는 이들 소송은 조선시대의 사회상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사람들에 있어 재산(토지와 노비)과 조상들의 묘자리는 반드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대상이었던 것이다.조선후기에는 정약용이 “싸우고 구타하는 살상사건의 절반 가량은 산송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고 할 정도로 산송사건이 급증하고 있었다. 산송으로 인한 업무의 폭증은 지방 수령의 통치행정에 피해를 줄 정도였다고 한다. ‘산송’이란 묘지를 쓰는 문제와 관련지어 발생한 소송으로, 조선시대 묘자리에 묻힌 사람의 품계에 따라 일정한 거리를 정하여 목축과 경작을 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 때문이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종친의 경우 1품 사방 100보를 기준으로 한 품계를 내려갈 때마다 10보씩 줄어들었다. 문무관은 이보다 10보씩 적었다. 묘를 중심으로 이 규정된 범위 내에 묘를 쓸 경우 법에 저촉되어 처벌을 받았던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함부로 묘를 쓰는 것도 쓰는 것이지만, 몰래 쓴 무덤을 처리하는 방법 때문이었다. 몰래 쓴 무덤이라 할지라도 땅 주인 마음대로 파낼 수 없었기 때문에 관청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묘자리 문제가 발생하면 몇 번이고 이장을 할 때까지 소송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몰래 무덤을 쓴 사람은 물론 자신이 비용을 들여 무덤을 옮겨야 했다. 묘자리로 쓸 수 있는 산지를 점유하고 있지 못하거나 제대로 장례조차 치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남의 땅에 몰래 무덤을 쓸 수밖에 없었다. 갑오년에 과부 유씨는 작년 섣달에 연달아 자식 둘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묻을 곳이 없어 이상인이라는 사람의 집 뒤에 몰래 묻었다. 이를 안 이상인이 묘를 옮길 것을 요구하자 이장할 돈도 없었던 과부 유씨는 이상인에게 이상인이 비용을 부담하여 묘를 이장해도 좋다는 수기를 작성해 주었다. 위 문서는 과부 유씨와 이상인은 무덤을 몰래 쓴 사실을 서로 인지하고 소송에 이르지 않고 합의하고, 과부 유씨가 자식들의 무덤을 옮기는 것을 허락했지만, 혹시 주변에서 무덤을 몰래 파내었다는 말이 날까 염려되어 과부 유씨에게 받아 놓은 것이다. 조선시대에 무덤을 몰래 파 내면 그 정도에 따라 곤장 100대와 징역 3년이나 곤장 100대와 유배 3천리 및 교살형이라는 중벌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이상인은 과부 유씨의 구두 약속보다는 한 장의 문서가 필요했던 것이다./홍성덕 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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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8.31 23:02

[책의 향기]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 - 안도현 우석대교수

내 주변 사람은 대부분 아는 사실이지만 나는 휴대전화가 없다. 어쩌다가 잃어버린 후, 나는 핸드폰과 이별을 고하기로 했다. 처음 얼마간은 불편하더니 곧 휴대전화 없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가끔 학교 연구실에서 집으로, 혹은 집에서 연구실로, 두어 번의 연락을 거친 후에 연결이 될 때마다 지인으로부터 불평을 들어야 하는 괴로움이 있긴 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는 무척 달콤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나는 휴대전화 없는 삶이 단지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만을 선사하는 게 아니라, 지구상의 멸종 동물을 보호하고 무의미한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일조하는 거룩한(?) 일이라는 걸 알고 뿌듯해졌다. 아프리카 중부에 위치한 콩고는 콜탄의 주생산국이다. 고온에 잘 견디는 콜탄은 주석보다 하찮은 광물로 취급받다가 최근 다이아몬드만큼 귀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이 콜탄을 정련하면 나오는 금속분말인 탄탈이 휴대전화와 노트북, 제트 엔진, 광섬유 등 첨단기기의 원료로 쓰이게 되면서 가격이 무려 20배나 치솟았기 때문이다. 내전 중인 콩고는 반정부군이 비싼 콜탄을 암시장에 팔아서 막대한 전쟁자금을 조달하는 바람에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아 1990년대에만 무려 500만 명이 희생되었다. 게다가 콜탄의 주생산지인 카후지-비에가 국립공원은 세계적 희귀 동물인 고릴라의 서식지인데, 콜탄을 캐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릴라가 희생되어 그 수가 급격하게 줄고 있다. 야생동물이 한 종 사라지는 일은 멸종도감이 한 페이지 늘어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생명체가 자연에서 담당했던 중요한 역할이 사라지기 때문에 생태계의 균형과 질서가 파괴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도 적잖은 피해를 입게 된다.‘아름다운 지구를 지키는 20가지 생각’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는 핸드폰, 세탁기, 냉장고, 나무젓가락, 화장지 등 우리 생활과 밀접한 물품들이 지구의 환경과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해마다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자연 재해는 모두 이러한 물품들이 지구를 치명적으로 파괴하여 생긴 결과라는 것이다.우리가 음식점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일회용 나무젓가락은 황사를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이다. 이 나무젓가락은 대부분 중국산이다. 이 젓가락을 만들기 위해 중국 땅의 수많은 나무들이 베어지면서 숲이 사라지고 있다. 사라진 숲을 복원하지 않아서 해마다 서울의 6배나 되는 어마어마한 면적이 사막으로 변하고 있다. 황사는 대륙을 거치면서 산업화의 몸살을 앓고 있는 중국 도시들이 내뿜는 중금속까지 섞여들어 가뜩이나 탁한 한반도 공기를 더욱 나쁘게 만든다. 매년 3월~5월에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이 불청객은 천식 등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고 아토피 피부염을 심하게 만드는 원인이어서 초등학교가 휴교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또한 황사가 동반하는 흙먼지와 탁한 공기는 항공과 통신사업에도 장애를 일으킨다. 우리들이 무심코 사용하는 나무젓가락이지만, 이게 쌓이고 쌓이면 커다란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는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이들만은 위한 책이 아니다.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주는 따끔한 충고면서 환경 길잡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에서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건강하게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이들의 소망이다. 이러한 소망을 이루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래, 이 기회에 고릴라가 미워하는 휴대전화를 내던져버리면 어떨까? 그건 아주 작은 일이 아니라 매우 심각하고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지구는 망해도 휴대전화를 버릴 순 없다고?/본보 서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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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8.31 23:02

[책의 향기] 밀알의 의미

대학 졸업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지난 20년간 ‘내 인생의 책 한권’은 언제나 「전태일평전」이었다. 대학 3학년,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져야할 책무를 받아들이면서도 홀몸으로 자식 뒷바라지 해 오신 어머니 때문에 갈등의 나날을 보내던 즈음 「전태일평전」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이 책 초판제목은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다. 1970년대 이 땅의 지식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일대각성을 불러일으킨 인물 전태일은 이 책의 출간으로 80년대 학번들에게 불멸의 존재로 부활했다. 70년대에 일었던 ‘전태일충격’은 구호로는 ‘노동해방’ ‘인간해방’을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그들이 절절히 원할 때 친구가 돼주지 못했던 데에 따른 광범위한 자책현상이다.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자신의 몸을 불 질러 장렬히 분신함으로써 70년대 운동가들을 ‘현장’으로 불러들였다. 사회개혁에의 투신과 일신의 안일 사이에서 갈등하던 80년대 운동가들에게는 결단의 단초를 제공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한 알의 밀알’의 의미를 나는 전태일을 통해 석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한동안 ‘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로만 표기됐던 원 저자가 조영래 변호사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조영래는 43세로 타계하기까지 누구보다 ‘전태일적’ 삶을 살았다. 전태일과 조영래 두 스승을 길러올린 이 책의 백미는 이 부분, 결행 전 전태일의 독백이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전태일의 행적을 추적해가는 글도 좋지만 무엇보다 전태일의 육성이 주는 전율과 감동은 압권이다. 읽는 이의 삶의 방식을 뒤바꿔 놓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몸에 소름 돋게 하고 진심으로 승복하게 하는 글은 현학적인 것도 미문도 아니라는 것을 전태일의 일기를 읽으며 알았다. 얄팍한 인텔리의식과 자만, 이기심으로 썩어있는 병든 영혼을 무장해제시키는 진정성과 혼이 이 책에는 있다. 20년의 몇 배의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을 단단한 진실이다. 내 서가의 많은 ‘출판물’들 속에서 「전태일평전」이 오롯이 ‘책’으로 건재하는 이유다./김선희 우진문화재단 운영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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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8.31 23:02

[책의 향기] 호구단자 - 죽어도 노비 신분 못벗어나

오늘은 어느 양반의 호구단자를 통해서 조선시대의 노비들에 대하여 살펴보자. 호구단자는 나라에서 3년마다 호적대장을 새로 작성할 때 집집마다 호주들로부터 그 식솔들의 명단을 건네받은 것이다. 고을의 수령은 3년 전의 호적과 비교하여 틀림없음을 확인한 뒤 제출된 2부 가운데 1부를 호주에게 되돌려 주었다. 그런데 오늘날 전하고 있는 호구단자들은 예외없이 양반이나 평민의 것들이다. 조선시대에는 상전과 따로 사는 외거노비의 경우 호주로 기재되었던만큼 그들의 호구단자가 남아있음직 한데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기록을 오래 전할 수 있을만큼 형편이 좋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위 사진의 호구단자는 1870년(고종 7)에 경상도 하동부 서양곡면에 살던 호주 정아무개가 작성한 것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오른쪽에서부터 세로쓰기로 시작된 이 문서의 왼쪽 아랫부분은 오른쪽과 확연히 구분된다. 오른쪽은 호주의 식구들을 기록한 것으로, 여든 넷이나 먹은 동갑내기 노부부가 아들 다섯을 모두 장가보내 며느리들과 함께 대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다. 손주들은 분가했는지 찾아볼 수 없지만 이들만 해도 12명이 된다. ‘천구(賤口)’로 시작되는 왼쪽 하단의 기록은 바로 이 집안이 소유하고 있는 노비들의 명단이다. 문서에서조차 노비들은 마치 쪽방 살림의 신세를 면치 못하는 형국이다. 아무튼 이처럼 호적의 노비명단에는 호주 부부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노비를 반드시 기록하게 되어 있었다. 설령 노비가 상전과 함께 살지 않고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살고 있더라도 호적에는 이들을 다 기록하였다. 여기에서는 17명의 노비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 한 사람의 기록을 보면, ‘비(婢) 화순 20세 신해생(辛亥生)’으로, 나이를 적고 다시 출생년도를 간지로 밝혀놓았다. 조선시대에는 호적이나 재산관계문서에서 특히 노비의 경우 나이를 정확하게 기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비를 재산의 일부로 표시할 때에는 그 노비의 생모가 누구이며 또 그 어미가 낳은 자녀들 중에서 그가 몇번째라는 것을 반드시 밝혀놓았다. 예컨대 위의 화순은 ‘비(婢) 선례의 이소생(二所生)’으로 기재되어 있다. 즉 화순의 생모가 선례이며, 그 선례가 낳은 자식으로서는 두 번째가 화순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재산으로서의 노비의 소유권에 관한 한 그 애비가 누구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종모법에 의해 노비의 소유권은 그 노비의 어미의 주인에 속하였기 때문이다. 이밖에 이 노비명단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도망노비와 이미 죽은 노비들이다. 39세의 노 초삼이는 도망을 갔지만 이 명단에 실려 있다. 또 죽은 노비의 경우에는 죽었다는 뜻의 ‘고(故)’자를 달면서까지 호적에 빠뜨리지 않고 그 이름을 넣고 있다. 심지어 115세의 도망노를 기재한 호적도 있다. 노비는 도망을 가든 이미 죽었든 상관없이 내 것이라는 뜻이다. 노비에 대한 양반들의 지독한 소유욕이 아니고 뭔가./유호석(전북대박물관 전문연구원)

  • 주말
  • 전북일보
  • 2007.08.24 23:02

[책의 향기] 양계영의 행복한 책방이야기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해리포터 시리즈 최종판인 7권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도들’은 역사상 가장 친환경적인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전 세계 16개국에서 이 책을 재생종이로 인쇄하거나 계획 중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이 이 책의 한국어판 출판사에 재생종이 출판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약 250만권 이상이 판매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책을 친환경 재생종이로 인쇄할 경우 약 1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살릴 수 있고, 상암경기장 4배 크기의 숲을 살리는 효과가 있다 한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재생종이로 출판되는 책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최고급 종이에 번쩍이는 코팅을 입히고 묵직한 무게의 책이 대부분 이었다. 때문에 2002년 생태운동가인 황대권씨의 ‘야생초 편지’는 재생종이로 인쇄하고 역시 재생종이로 표지를 장식한 그 자체로 서점가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상당수의 책이 재생종이로 인쇄된다. 인쇄기술의 발전으로 재생종이에 인쇄된 활자의 가독성이 오히려 고급 코팅용지보다 더 뛰어나고 컬러인쇄 역시 나무랄 데 없기 때문이다. 한 손에 들기에도 무척이나 가벼워 휴대하기 편하고 무엇보다 밝은 조명 아래에서도 반사되지 않아 눈이 편안하다. 좋은 작품을 친환경적인 종이에 담아 읽는 일,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가 아닐까? /양계영 홍지서림 전무

  • 주말
  • 전북일보
  • 2007.08.24 23:02

[책의 향기] 길흉화복 정해졌나 - 이종민 전북대 교수

‘『주역』은 64편의 완성도 높은 시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이 진정 세상의 ‘공인받지 못한 입법자’라면 동양사상의 보고(寶庫)인 『주역』의 저자는 분명 ‘물이 가는 길’(法)을 보여주는 시인이다. 시가 인간 마음의 “가장 숭고한 행위”의 산물이라면 장대한 우주적, 심리적 상상력을 집대성한 이 책은 분명 인류 최고의 시집이다.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의 시에 관한 유명한 얘기는, 시를 이 고전의 제목으로 바꾸어 내용에 전혀 어긋남이 없다. “권력이 인간을 오만하게 할 때 『주역』이 그 한계를 상기시켜 주리라. 권력이 인간 관심사를 좁게 한정시킬 때 『주역』이 인간 존재의 풍요로움과 다양함을 일깨워 주리라. 권력이 타락하면 『주역』이 정화시켜 주리라.”모든 위대한 시처럼 이 신묘한 철학서에는 교조적 주장이 없다. 수많은 가변적 상황에 대한 가정과 그에 따른 ‘때에 적중한’(時中) 처방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처하게 되는 상황을 64괘(卦)로 나누고, 이에 따른 각각의 경우를 다시 6개의 효(爻)를 통해 정리하여 완성도 높게 갈무리하고 있다. 그 분류에 일관성이 있지만 그 범주가 도식적이지는 않다. 그 내용과 틀거리가 다채롭고 풍요롭지만 결코 혼란스럽지 않다. 훌륭한 시가 그러하듯 우리들 상상의 날개 짓을 마음껏 유혹하면서도 일상의 삶과 우리의 태도를 끊임없이 뒤돌아보게 해주는 것이다.『주역』은 애초 ‘점책’이다. 의심스러워 결정하지 못할 때 신에게 묻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길흉화복을 도덕적인 것과 연관시키면서부터는 심각한 결정을 내리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마음자세를 가다듬기 위해 길잡이 삼는 경전으로 승화하게 된다. 길흉화복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점괘 자체보다 그 풀이가, 그리고 점치는 이의 마음가짐을 더 중히 여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바른 질문만이 바른 답을 이끌어낼 수 있다. 우주의 생성변화의 원리에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열어야 그 신묘한 자연의 섭리를 들을 수 있다. 욕심과 아집에 사로잡혀서는 극즉반(極卽反)의 역설과 아이러니로 가득한 이 ‘시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 그 오묘한 함축의 의미를 가늠하지도 못한다. 속좁은 이념의 잣대로는 이 장쾌한 우주적 상상력에 범접할 수 없는 것이다. 단순 논리에 따라 맥없는 경쟁만 강조하고 편협한 척도로 상대를 매도하기에 이력이 나있는 현대인들이 꼼꼼하게 새기며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성 만능으로 세상을 험하게 망가뜨리고 있는 요즘 세태를 제대로 반성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책이다. 서(恕)의 정신을 잃어버린 이 ‘죽은 시인의 사회’에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상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위대한 시집들과 더불어 곁에 끼고 살아가야 할 동양고전의 요체인 것이다.문제는 접근이 쉽지 않다는 것. 우리들 삶을 우주적 차원에서 총괄하려다 보니 삶 자체만큼이나 복잡해졌다. 훌륭한 시를 대하듯 반복해서 접하는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노력에 상응하는 보답을 반드시 얻을 수 있다는 것. 이 책의 어느 대목이건 지금의 나에 대해 얘기 해주지 않는 곳이 없다. 끊임없이 나를 뒤돌아보게 하는 것이다.한문에 좀 어두운 사람들을 위한 믿을만한 번역서가 있다는 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 오랫동안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에서 후학 양성에 주력해온 한학자 성백효님이 번역한 책이 주석까지 상세하게 풀어주고 있어 초보자들에게 믿음직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본지 서평위원

  • 주말
  • 전북일보
  • 2007.08.24 23:02

[책의 향기] 삶과 죽음, 전생 현생 종교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사는 현상계와 같은 울타리 안에 파장을 달리하는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면? 인간세계 밑에 동물세계가 있고 그 밑에 곤충세계가 있듯, 인간세계 저편에는 영(靈)의 세계가 있다. 다만, 서로 파장이 달라 다른 세상처럼 느껴질 뿐이다. 이는 최근 「生과 死를 넘나드는 사람들」(도서출판 계백)을 펴낸 경제학자 국승규 교수의 주장이다. 현재 원광대 경제학부 교수와 산업·경영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인 그는 30여 년 전부터 인간의 잠재능력 개발에 관심을 갖고 명상법을 익혀왔다. 그러다 접하게 된 영의 세계. 한국초능력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경제학자로서는 보기 드문 이력을 가진 그는 “무속세계를 접하면서 무당이야말로 죽은 자와 산 자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자로서의 산증인들”이라고 확신한다. 20여 년간 직접 만난 무당만 500여명. 국교수는 무당들의 점치는 행위를 미신(迷信, 미혹된 믿음) 정도로 가볍게 여기며 남을 속이는 것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시각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영혼 탐방 과정에서 죽은 자도 살아있는 자와 똑같이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됐다”며 “이승에서 믿었던 종교를 사후에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生과 死를 넘나드는 사람들」은 단순히 무당들이 점치는 모습을 관찰한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 내림굿, 영혼을 부르는 초혼 과정, 무당의 삶, 임사체험과 전생 탐방 등이 기록되긴 했지만, 국교수는 “무당과 죽은 자와의 공생관계에 초점을 맞춰 음지에 가려진 영의 세계를 양지로 끌어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은연중에라도 사후세계가 있다고 여기게 되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줄어들고 모든 사람들이 가능한 선업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등 현대인의 삶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이 책은 종교문제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교수는 기독교와 죽은 자에 대한 우상숭배 문제, 전생과 환생에 대한 생각, 우리나라에서의 영혼 인식 문제, 종교의 특성과 신도들의 맹종적 성향 등 논란이 될 만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히고 있다.국교수는 “삶과 죽음, 전생, 현생, 종교 등이야 말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날마다 겪고 있는 실제 상황”이라며 “이들의 상호관계와 상호작용을 이제는 보다 넓고 깊은 우주적 시각에서 긍정적으로 재조명하고 새롭게 이해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 주말
  • 도휘정
  • 2007.08.24 23:02

[책의 향기]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 등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 / 캐서린 패터슨 글 / 비룡소 / 7500원어떻게 하면 선생님을 괴롭힐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건방지게 보일까.열한살 소녀 질리의 말썽은 끝이 없다. 그가 말썽을 부리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세살 때부터 위탁 가정에서 살면서 여러 차례 버림받았던 질리는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사랑에 굶주린 아이가 할 수 있는 고독한 사랑의 암호였다. 하지만 세번째 위탁 가정에서 만난 트로터 아줌마는 난폭한 질리 마음 속에 숨겨진 사랑을 이끌어 낸다. 꿈에도 그리던 엄마를 만났을 때 질리는 엄마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또다시 상처받는다. 트로터 아줌마는 “엄마가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며, “중요한 것은 질리가 지금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엄마 찾아 삼만 리’부류의 모성회귀의 진부함을 뛰어넘어 현실을 받아들여 충실하게 살아가라는 지혜를 담았다. 작가는 어린이 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안데르센 상을 받은 세계적인 아동문학가다. 이 책은 1979년 ‘내셔널 북 어워드’와 ‘뉴베리 명예상’을 받기도 했다. △ 김 구천구백이 / 송언 글 / 파랑새 / 8000원 ‘김 구천구백이’는 칠천 원을 안 갚아 이자가 붙고 또 붙은 건하의 마지막 별명이다.이 책은 칠천 원 반납 사건으로 펼쳐지는 선생님과 제자의 한판 대결을 담았다. 사건의 발단은 교실에서 유행이던 로봇 장난감, '비드맨' 때문이다. 박 마법이 애들에게 비드맨을 사 주려고 엄마 화장대에서 돈 오만 원이 슬쩍했다가 선생님에게 들통이 났다. "김 칠천, 내일도 칠천 원 안 가져오면 별명이 김 칠천백으로 올라가. 모레는 김 칠천이백으로!”하지만 건하의 엄마는 날마다 바쁘다. 얼굴 볼 시간도 없다. 밤에는 식당에서 일하고 날마다 아침밥 차려 놓고 쓰러져 자기 바쁠 정도다. 초등학교 한 교실에서 벌어진 조그만 사건을 시작으로 인생에 이제 막 발을 내민 제자에게 돈의 의미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을 가르쳐 주고 싶은 선생님과 그로 인해 맘 고생하는 제자이야기를 재미있게 실었다. △ 어른이 되면 괜찮을까요 / 스티안 홀레 글 / 웅진주니어 / 9000원주근깨 투성이 남자아이가 양팔에 튜브를 끼고 바닷물 속에 몸을 허리까지 담그고 서 있다. 그런데 뭔가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가을이 되면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주인공 가르만. 그는 궁금하다. ‘어른들은 겁나는 게 없을까…’그래서 가르만은 할머니, 아빠와 엄마에게 차례로 물어본다. 할머니는 죽어서 가르만과 헤어지는 것이, 미끄러운 길, 눈 치울 일이 걱정인 겨울이 오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관현악단 바이올린 주자인 아빠는 매번 연주를 앞두고 너무 빨리 연주하면 어쩌나 두렵단다.엄마는 목요일에 치과 갈 일이 여전히 겁난다고 했다. '그래, 겉으로 평온하게 보이는 어른들도 나비가 뱃속에서 팔랑거릴 때(노르웨이 말로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을 가리키는 말)가 있구나.' 이 책은 아이나 어른들 모두에게 인생의 무게는 똑같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또한 두려움에 맞설 성실함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도 아름답게 풀어낸다. △ 비밀 족보 / 푸른책들 / 8800원 은익이는 어느 날 겨드랑이가 칼로 찌르는 듯 심한 고통을 느낀다. 이상한 건 고통 받는 사람을 못 본체 하면 아픔이 더해진다는 것. 알고 보니 은익이의 통증에는 '가문의 비밀'이 숨어 있었다. 겨드랑이에 '날개의 씨'를 가진 은익이의 할아버지가 위험에 처한 마을 사람들을 구하려다 하늘의 뜻을 어겼던 것이다. 그는 죗값으로 할아버지의 후손들도 날개의 씨가 자랄 때 고통을 겪게 되고 나쁜 마음을 품을 때는 더욱 심한 고통이 따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겨드랑이에 날개 달린 아기 장수가 태어나 고통에 빠진 백성을 구해준다는 제주도의 '아기장수 설화'를 모티브로 한 장편 동화다.

  • 주말
  • 이화정
  • 2007.08.24 23:02

[책의 향기] 2주에 1권 책읽기 등

△ 2주에 1권 책읽기윤성화 지음/더난출판사/1만원한 달에 책 한 권 읽기 쉽지 않다. 그런데 2주에 책 1권 읽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 있다. 계획부터 발전까지 5단계에 따라 독서습관 들이는 매뉴얼북. 책과 친해지는 법, 작심삼일 방지책, 책을 살 때 쇼핑의 지혜, 맛있게 읽는 법 등 독서 초보들을 위한 책이다.책 읽기를 힘들어하는 초보들을 위한 책인만큼 사람을 대출해 주는 헝가리의 이색도서관, 기억력을 증진시키는 삼색볼펜 독서법, 7명에게 전해야 하는 행운의 책 등 재밌는 이야기들도 함께 소개한다. 저자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 경제경영 분야 MD. 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책 중에서 독자들에게 꼭 필요한 책을 선별하고 판매하는 일을 한다. 그가 쓴 책이라면….△ 두나’s 도쿄놀이배두나 지음/테이스트팩토리 펴냄/1만5000원평소 사진을 찍히는 입장이라서 그런 걸까? 많은 연예인들이 사진을 찍고 전시를 하거나 책을 펴내고 있다. 「두나’s 도쿄놀이」는 영화배우 배두나의 두번째 사진집이다. 1998년 첫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도쿄를 처음 방문한 뒤 10년 동안 영화 프로모션과 각종 CF, 화보 촬영, 여행 등으로 도쿄행 비행기를 30번 남짓 탔다. 도쿄의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는 그가 사진으로 풀어놓는 도쿄의 비하인드 스토리. 지난 겨울 도쿄에서 머물렀던 25일간 촬영한 사진과 10년 동안 일본 여행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차곡차곡 담겼다. 첫번째 책으로 펴냈던 「두나’s 런던놀이」가 약간의 실망감을 안겨주었다면, 도쿄놀이에서는 성숙해진 그의 모습이 확인할 수 있다.

  • 주말
  • 도휘정
  • 2007.08.24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