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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이상한 사람들'

'300킬로그램이 넘는 거대한 바닷거북이 알을 낳는다. 놀라운 것은 알을 낳는 바닷거북 바로 곁에서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새끼거북이 인도양의 바닷물로 뛰어드는 장면이었다. 그 새끼거북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 30년간이나 넓은 대양을 헤매다가 다시 자신이 태어난 고향의 바닷가로 회귀해 알을 낳는다.' 소설가 최인호.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에 쓴 작품을 교정을 보면서 그는 바닷거북이 알 낳는 장면을 떠올렸다고 한다. 마치 30년 동안이나 망망대해를 떠돌다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찾아와 알을 낳는 거북처럼, 그 역시 이 작품들을 처음 썼던 서른 살 중반을 거쳐 40대, 50대, 그리고 60대에 이르렀다. '다시 돌아와 산란하듯' 펴낸 「이상한 사람들」(열림원). '이 지상에서 가장 큰 집' '포플러나무' '침묵은 금이다'. 다시 그의 손에 잡힌 세 편의 소설은 모두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다.'로 시작된다. 자신만의 집을 갖는 것이 평생 소원인 사람, 높이 더 높이 뛰어올라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려는 사람, 어느날 갑자기 침묵해 버린 사람. 그가 30대였을 때 이들은 자폐적이고 기형적인 사회 부적응자였을지 몰라도 60대가 된 지금은 아니다. 비틀어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쳐버리는 수 밖에 없다. 누가 이들을 이상하다고 하는가. 최인호는 한국 문단에서 이색 기록을 가장 많이 보유한 작가다. 서울고 2학년에 재학중이던 열여덟살 때 교복차림으로 신춘문예 시상식장에 나타나 모두를 놀래켰던 그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벽구멍으로'로 당선작 없는 가작입선을 했다. 스물일곱이 되던 1972년에는 조선일보에 '별들의 고향'을 연재해 최연소 신문연재 소설가로 기록됐다. 「별들의 고향」을 출판할 때는 최인호 얼굴 사진으로 뒷표지를 채웠는데, 책 표지에 작가 사진이 게재된 것도 최초 사례였다고 한다. 25년 만에 「이상한 사람들」을 읽은 작가는 "내가 쓴 소설이었으면서도 신선한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1987년에 가톨릭에 귀의하여 신앙을 갖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6, 7년 전 「이상한 사람들」을 쓸 때 이미 충분히 종교적 사유를 갖고 있었다는 점은 놀랍다고 했다. 그는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이상한 사람들」을 쓸 당시, 같은 제목과 같은 테마로 10편 이상의 연작들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써두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최인호가 들려주는 환상과 잠언의 세계. 언어로만 존재하던 이상한 사람들의 모습은 따뜻하다. 촉망받는 일러스트는 김무연의 그림 덕분이다.

  • 주말
  • 도휘정
  • 2007.03.23 23:02

[책의 향기] 초상을 치르고 난 뒤 빚을 갚기 위해 전답 팔아

집안에 상(喪)을 당했다. 사람이 죽으면 할 일도 많다. 먼저 부고를 만들어 일가친척과 아는 사람들에게 돌려야 하며, 수의도 마련해야 하고, 관(棺)과 곽(槨)도 만들어야 하고, 언제 장례를 치러야 하는지 택일도 받아야 하고, 묻을 땅도 마련해야 하고, 상을 치루는 기간 동안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음식도 먹여야 하고…. 참으로 할 일도 많다. 하지만 문제는 상을 치를 돈이 아니던가. 예나 지금이나 상을 치루는 동안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아무리 집안에 돈이 없다고 하더라도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고자 오는 손님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으며, 생전에 비싼 옷 입지 못하신 분에게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도 좋은 옷을 해 입히고, 생전에는 허술한 집에서 살았다 할지라도 죽은 뒤에라도 양지녘 따뜻한 곳에서 사실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지금 소개하는 문서는 1861년(철종 12)에 박씨(朴氏) 부인이 광양현 인덕면 부암평에 있는 4두락지의 논을 유학 최필언(崔必彦)에게 33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박씨가 팔고 있는 논은 원래 그의 친아버지가 산 것을 물려받아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오던 땅이었다. 그러나 박씨는 누군가의 상(喪)을 당하였고, 상을 치르면서 돈이 부족하여 빚을 지게 되었는데, 이것을 갚을 길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박씨는 친부로부터 물려받아 경작해 오던 논을 자기 임의대로 처분하고 있다. 또한 토지를 매매할 때에는 이전에 토지를 살 때 받은 문서(舊文記)까지 넘겨주어야 하는데, 그 문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넘겨주지 못한다고 밝히고 있다. 무언가를 사고 팔 때 중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판 사람과 사는 사람의 서명이다. 그런데 이 문서에서 땅을 파는 박씨는 서명(수결)을 하지 않고 “상중이기 때문에 서명하지 않는다(喪不着)”고만 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매매문서에 서명을 하지 않고 손바닥 모양을 그리거나 또는 손가락의 마디를 표시하는 경우는 여성이나 노비가 매매에 관여할 경우이다. 조선시대에 가지고 있는 재산 중 일부를 매매할 때에는 그 이유를 문서에 밝히고 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앞서 소개한 문서와 같이 초상을 치르면서 발생한 빚을 갚기 위한 것도 있다. 망자의 넋을 달래야 하는 상주로서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재산을 파는 것이 혹여나 망자의 맘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일까? 조선시대 상중에 있는 사람은 서명하는 사례를 볼 수 없다. /박노석 (전주대 전임연구원)

  • 주말
  • 전북일보
  • 2007.03.23 23:02

[책의 향기] 양계영의 행복한 책방이야기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문화방송의 드라마 ‘하얀거탑’은 기존의 진부했던 주제인 불륜이나 멜로의 구조 없이 다소 딱딱할 수 있을 법한 병원과 법정을 오가며 한 남자의 야망과 성공, 그리고 죽음을 담아낸 근래 보기드문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하얀거탑’은 1969년 일본의 베스트셀러 였던 야마자키 도요코의 「백색거탑」을 드라마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작년에 종영된 드라마 ‘연애시대’ 역시 일본 작가의 원작을 드라마화 한 것으로 당시 드라마 ‘연애시대’가 한창 인기를 얻을 때 소설 「연애시대」 2권이 미처 출간을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드라마의 결말을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의 문의전화가 서점에 빗발쳤던 기억이 새롭다.드라마 뿐일까, 영화에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그 유명한 「해리포터」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이, 최근의 것만 봐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에서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까지 무려 십여 편에 이른다.이쯤 되면 영화(드라마)냐 원작소설이냐를 놓고 고민하는 분들이 많아진다. 영화는 소설이 담지 못하는 방대한 스케일과 현실감을 화면으로 보여줄 수 있고, 소설은 영화가 미처 손대지 못하는 세세하고 미묘한 흐름을 글 속에 풀어낸다.잘 만든 영상작품과 작가의 혼이 깃든 소설작품, 이 모두를 함께 맛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지 않을까. 정말 행복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양계영(홍지서림 전무)

  • 주말
  • 전북일보
  • 2007.03.23 23:02

[책의 향기]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라고 한 것은 김수영이었다. 이 시를 읽은 이후로 나는 우울하고 짜증날 때마다 방의 구조를 바꾼다. 아마도 세상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 아니, 내가 너무 세상과 지독하게 타협하며 살고 있다는 자괴감 때문이리라.모든 것이 새롭게 움트는 이 눈부신 새봄에 나는 어김없이 또 연구실을 들쑤시고야 말았다. 그러다가 포스트잍이 잔뜩 붙어 있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새삼 그 책에 다시 빠져 들었다.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은 지금은 흔히 '동유럽의 기적'이라 불리는 슬라보예 지젝의 초기 저작이며, 슬라보예 지젝을 세계적인 석학의 반열에 오르게 한 바로 그 책이기도 하다. 슬라보예 지젝은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에서 우선 그토록 비이성적인 이데올로기들이 역사상 수시로 출몰하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고 답한다. 지젝에 따르면 나찌즘, 스탈린주의 등의 이데올로기들의 폭력성은 우선 사회적 증상을 고안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사실, 혹은 사물의 자연적 속성이라고 규정하는 물신주의적 오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여기에 그것을 전적으로 자기화하는 인간 주체들의 활동이 덧붙여지면서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이 완성된다. 즉 인간 주체들은 실재계에 대한 왜곡과 배제를 통해 구성된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자기화하고 또 상상계적 동일시를 통하여 자기를 구성하며 이것이 각각의 이데올로기들을 광기의 그것으로 전화시킨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젝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내놓는다. 지젝은 각각의 주체들이 이데올로기에 빠져드는 것은 그들이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에 기만당해서가 아니라 그 이데올로기의 비합리성을 알고 있지만 행한다고 말한다. 아니, 오히려 이데올로기들이 비합리적이고 허구적일수록 그것에 빠져드는 바, 각각의 이데올로기가 내세우는 숭고한 이념을 현실화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형성 과정을 통해 지젝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주 역설적이다.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이 무슨 문제를 발본적으로 '극복하거나' '소멸시키'려는 욕망에서 발원한 만큼, 그리고 인류가 경험한 가장 끔찍한 대량학살과 홀로코스트는 언제나 적대적인 긴장이 존재하지 않는 신생 인류로의 도약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만큼, 이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슨 문제를 근본적으로 소멸시키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그 문제들과 대면하려는 자세, 지젝 자신의 다른 글 제목에 따르자면 '파국과 함께 하기'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처럼 지젝의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은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과는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그 관점에 따라 인류 역사 전체를 다시 구성해낸다. 해서,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을 읽으면 아주 자연스레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다시 보게 되고 우리는 '세계내적 위치'도 다시 조정하게 된다. 한마디로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은 세계를 직접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세계를 바꾸어 읽을 수 있는 중요한 토양을 제공하는 바로 그 책, 그러니까 위대한 저서이다. 마지막으로 사족 한 마디만 덧붙이자. 그런데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이라는 책은 읽어내기가 마치 세상 바꾸기만큼 어렵다는 것. 하지만 거듭거듭 음미하며 읽으면 세상이 좋게 변하지 않아도 굳이 '방을 바꿀'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류보선(군산대 교수)

  • 주말
  • 전북일보
  • 2007.03.23 23:02

[책의 향기] 탄원서

어느 시대나 부유하게 산다는 것은 축복받는 일이며 그래서 남들로부터 한껏 부러움을 사는 일이다. 없으면서도 잘 사는 것처럼 큰 소리를 치고 위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힘도 없고 빽도 없는 백성들이 혹시라도 잘 산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전전긍긍하였다. 잘 산다는 말을 듣는 것을 마치 낙인 찍히는 것과 같이 여겨서 무조건 피하고 싶어했다.조선후기에 전라도 나주목 도림면에 살던 정진현(鄭震鉉)이 제출했던 다음과 같은 탄원서를 살펴보면 이러한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엎드려 살펴보건대 지금 한 고을의 요호부민(饒戶富民)을 선발하는 일은 허실(虛實)이 뒤섞여 있어서 진위를 가릴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선발한 자료에 의거하여 모두 (돈을) 내도록 한다면 어찌 잘못 선발된 억울함이 없겠습니까? 저의 생활이 만일 잘 사는 사람의 그것과 같다면 열이면 열사람이 다 눈으로 지목하고 손으로 가리킬 것이니 어찌 거짓으로 가난한 채 하겠습니까. 대저 공론이 있는 곳에서는 여러 사람의 입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겨우 땅 10마지기에서 나오는 곡식에 의존하여 사는 저를 요호부민으로 선발한다면 저는 지난 해 이앙(移秧)하지 못한 채 묶혀 두었던 논을 팔아 납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주님께서는 지금 (저의 사정을) 살펴보신 후 사실 여부를 조사할 색리(色吏)를 특별히 파견, 허실을 자세히 파악하셔서 (제가) 억울하게 (요호부민으로) 선발되지 않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요호부민'이란 부호(富戶), 곧 부자라는 말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거치면서 국가의 재정이 고갈되자 조정에서는 부호들에게 공명첩(空名帖)을 팔아 재정을 마련하거나 혹은 그들로부터 갖가지 명목을 이유로 의연금 등을 거두어 들여 경제적인 어려움을 타개하려고 하였다. 또 조선후기에는 연이어 흉년이 들자 아예 각 고을별로 부호를 선정하여 두었다가 필요한 때마다 이들에게 억지로 공명첩을 팔거나 쌀이나 돈을 내도록 강요하였다.탄원서를 제출한 정진현은 비록 신분이 양반이었으나 겨우 10마지기의 토지를 근근이 갈어 먹고 사는 처지였다. 따라서 부호로서 선정될 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부호로 선정이 되어 의연금을 냈어야 했다. 따라서 그가 의연금을 내려면 지난해 이앙하지 못한 논을 팔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수령에게 탄원서를 제출하여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고 사실을 조사하여 선처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탄원서를 접수한 수령은 그의 사정을 자세히 읽어보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곧바로 붓을 들어 "누구를 넣고 누구를 뺄 수 없으니 번거롭게 소송을 제기하지 말라”는 판결을 써주었다.이와 같이 조선후기의 요호부민들은 다른 백성들에 비해 살림살이가 조금 넉넉하다는 이유로 걸핏하면 수령이나 색리(色吏)들로부터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보다 못한 하층민들로부터도 억울한 일을 당하기 일쑤였다. 흉년이 들었다는 이유로 소작료를 몇 년 째 바치지 않고 마냥 버티는 경우가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조선후기에 힘없고 빽 없으면서 잘 산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었다. 정진현이 요호부민으로 선발된 것을 취소해 달라고 탄원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들 때문이었다. /전경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 주말
  • 전북일보
  • 2007.03.16 23:02

[책의 향기] 나무를 심는 사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 또다른 삶의 전환기에 다다랐다. 무엇보다도 우리 정치의 위기는 심각하다. 정치 집단들은 국민들의 희망을 버려둔 채 자기들의 이익에만 급급하는 작은 소수이익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우리들의 사회적 가치를 전면 보이콧하는 느낌이 강한 저출산과 심각한 대책이 요구되는 고령화 사회는 우리 사회 시스템과 가치관의 일대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인간의 오만과 탐욕의 극치를 치달리는 국토의 유린과 파괴는 거의 범죄 수준에 가깝다. 국토 개발을 향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의 무책임한 반 지방자치적이고 반 환경적인 모든 각종 국토 개발정책들을 중단하거나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오죽하면 우리나라를 토건 국가라고 하고 지방자치를 토건 자치라고 하겠는가. 사람들은 어느 정도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민주화에 '어느 정도'라는 말은 없다. 우리 사회곳곳에는 지금도 비민주적이고 반민주적인 낡은 구태의 벽을 친 집단들이 널려 있다. 우리들은 보다 더 민주화된 사회, 인간 중심, 자연친화적인 삶의 문화와 지식기반 중심의 새로운 정치, 문화, 경제, 교육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배고픔이 약속된 땅은 무서운 땅이다. 정치든 경제든 문화현상이든, 문제는 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야만적인 경제적 강탈과 폭력에서 시작된다. 우리 사회 곳곳의 극심한 양극화 현상으로 빚어지는 어두운 그늘을 우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가나 세계의 불행은 국가나 세계라는 허구의 세계에 그 불행이 닥치는 게 아니라 늘 '개인'들에게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우린 명심해야 한다. 이런 어려움과 사회적 가치의 혼란 속에서 우리가 새삼 느낀 것은 작은 물질에 대한 소중함이며 우리들이 공동체적인 생활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다. 하찮게 생각했던 나무 한 그루, 물 한 방울, 전기 한등, 한 끼 밥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 말도 이제 나는 귀가 아프다. 나는 늘 그런 삶의 가치를 우리들의 전통적인 작은 마을에서 찾는다. 거긴 사람들이 살았다. 사람중심, 자연 중심, 공동체적인 생활의 유대, 경오가 반듯한 예의, 같이 먹고 같이 놀고 일하면서 살았던 아름다운 풍경이 거긴 있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단 숨에 무엇인가 끝장을 보려는 성급함과 조급함과 거대함과 화려함을 꿈꾸며 산다. 끝내는 다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에 시달리며 무엇을 향해 가는지도 모르게 달린다. 경제만 해결 되면 우리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데, 정말 지금의 경제적인 어려움만 극복하면 이제 세상의 모든 문제는 영원히 사라지는지. 아무도 선뜻 시원한 답이 없이 우리들은 무엇인가를 쫓고 무엇인가에 쫓기며 산다. 지금 우리를 쫒고 있는 것은 그래서 귀신이다. 귀신은 안보이고 무섭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책은 이런 우리들에게 아주 편안한 인생의 의미를 주는 책이다. 단숨에 읽을 짧은 책이지만 그러나 이 책은 그 어떤 장편소설 보다도 오늘날 인류의 지속발전 가능한 생존과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해준다. 짧은 이 책의 구절들 모두 내게 희망의 울림을 주고 있지만 이 책의 첫 장에 나오는 구절은 언제 읽어도 내게 감동 적이다. 여기 그 구절을 옮긴다. '한 인간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발견해 내기 위해서는 여러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한 잊을 수 없는 인격과 마주하는 셈이다.'이 책은 작지만 인류를 다 덮을만한 희망을 주는 나무와 숲 같은 책이다. 나무 한그루를 가꾸듯 세상을 정성들여 가꾸어갈 새 봄이다. 우리들의 삶의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을 때인 것이다. /김용택 시인(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본보 서평위원)

  • 주말
  • 전북일보
  • 2007.03.16 23:02

[책의 향기] 생의 한가운데

머리가 길고 얼굴이 하얗고 몸이 버드나무처럼 가늘고 청승스럽던 여자였다. 고등학교 1학년 교생선생님. 작가가 되고 싶다는 나에게 이 책을 선물해 주었다. 예쁘지도 않고, 나이도 많고, 담배를 무지 피워대고, 술을 즐기고, 남자관계가 복잡하고, '검고 달디단 커피'를 좋아하는 한 여자. 그녀의 이름은 니나였다. 20대가 되었다. 최루탄 가스를 마시고 돌아온 날, 돈이 없어 호빵 하나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날, 공장에서 스타킹 불량검사를 하느라 다리가 퉁퉁 부어 돌아온 날이면 나는 이 책을 꺼내 들고 밑줄을 쳐가면서 읽었다. '자매는 서로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거나,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는 첫 구절부터 마지막 니나의 편지까지, 어느 한 부분 내 마음을 사로잡지 않는 구석이 없었다. 검고 달디단 커피를 즐겨 마시기 시작했다. 담배도 피우기 시작했다.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니나의 말은 나에게 삶의 교본과도 같았다. 삶이 외롭고 지겨울 때, 이것마저도 견뎌내야 하는 나의 몫이라는 걸 니나는 가르쳐 주었다. 삶 아니면 죽음밖에 없었던 가파른 20대의 고갯길을 포기하지 않고 올라서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니나는 나에게 '얼굴이 예쁘지도 않고 나이도 많은' 중년의 여자였다.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30대가 되었다. 30대가 되어서 바라본 니나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서른여덟 살의 나이에 그토록 열정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내가 알았기 때문이다. 늙어감이 두렵던 나에게 '늙음이 문제가 아니라 열정이 문제'라는 걸 니나는 깨닫게 해주었다. 마흔이 코앞에 닥쳐오거나 말거나 핏빛 립스틱을 바르고 혼자 술집에 갈 수 있으며, 매니아 독자층을 거느린 소설을 써낼 수 있으며, 남편 없이 두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사랑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곧 니나의 에너지이며, 우리가 생을 살아가는 이유였다. 열정과 사랑이 없다면 그 생은 곧 죽은 것이 아니던가. 열일곱 어린 나이에 항상 죽을상을 하고 다녔던 내게, 그 몸매가 여린 교생선생님은 생의 비밀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생은 선택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그 무엇이며, 생의 한 가운데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은 저절로 빛이 난다는 것을.세월을 따라 나이를 먹어도 니나는 여전히 내게 놀랍고 부러운 대상이다. 20대와 30대에는 니나처럼 살고 싶었다. 이제는 니나도 내 동생 나이가 되었지만,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고 할머니가 되어도, 니나는 여전히 '죽을힘을 다해 생을 살아가는' 열정적인 여자로 기억될 것이다. 모든 삶을 다 살아낸 후에 깨닫게 될 생의 비밀을 미리 귀띔해 준 여자. 그런 여자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김선경(JTV 방송작가)

  • 주말
  • 전북일보
  • 2007.03.16 23:02

[책의 향기] 놀아요 선생님 등

놀아요 선생님 / 남호섭 글 / 창비 / 8000원“이렇게 날씨 좋으니까 놀아요. 비 오니까 놀아요.(눈 오면 말 안 해도 논다.) 쌤 멋지게 보이니까 놀아요. 저번 시간에 공부 많이 했으니까 놀아요. 기분 우울하니까 놀아요. 에이, 그냥 놀아요. ” 이렇듯 아이들의 “놀자”는 늘 끝이 없다. 그래서일까. 작가이자 시인인 남호섭씨는 “내가 알고 있던 학교의 틀이 완전히 뒤집히는 경험 속에서 시를 쓰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 중등 대안학교인 간디학교의 국어교사로 재직하면서부터다. 제도교육의 폐해를 스스로 극복하고 그 대안을 내보이고자 문을 연 곳에서의 삶과 교육은 낯설기도 하면서 늘 꿈꿔오던 우리네 학교의 정경이라 익숙한 면도 있다. 간디 학교 아이들뿐만 아니라 산골에 사는 순박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여유롭고 느긋한 삶과도 만날 수 있다. 어른들만 사는 나라 / 박상재 글 / 은하수 미디어 / 7000원 산아 제한 정책 때문에 어른들만 사는 나라가 되고 말 것이라는 상상은 엉뚱하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하다. 이 책의 묘미는 바로 이것이다. 아이들의 엉뚱한 상상력을 통해 다양한 세계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어서다. 세월이 지나 모두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가마솥(행복을 가져다주는 가마솥), 자폐아 아들과 엄마의 찡하고도 따뜻한 이야기(훈이와 징검다리) 등 모두 6편의 이야기들은 ‘사랑’이란 가슴 따뜻한 주제어로 묶인다. 작가가 되고 싶어 / 앤드루 클레먼츠 글 / 사계절 / 8500원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종사자를 조사해보면 우선순위 안에 작가가 있다. 뿐만 아니라 작가란 직업은 스트레스 강도가 심한 순위에도 들어 있다. 글 쓰는 일이 제 아무리 고되고 힘들다 하더라도 그만큼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뜻 일게다. 이 책은 열두 살 소녀 나탈 리가 작가가 되는 과정을 담았다. 어린이책 출판사 편집자인 엄마와 적극적인 성격의 친구 조는 어린이 작가가 되고픈 나탈리에게 힘을 주면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빠를 추억하는 글을 쓰게 한다. 한 권의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까지도 엿볼 수 있다. 돌격대장 쿠칸 / 제리 스피넬리 글 / 바람의 아이들 / 7800원 때론 성장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사람을 이해하고 싶지도, 복잡한 세상일에도 등지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아픔을 잘 극복하는 사람은 성장하는 삶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철없던 주인공 쿠칸을 통해 아이가 성장통을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주인공 쿠칸은 여섯 살 때 선물 받은 미식축구 헬멧을 쓰고 사촌에게 돌진해 돌격대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고 싶은 일은 당장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쿠칸은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만 하는 일’에 충실한 펜 웹을 늘 이해할 수가 없다. 중학교 미식축구 부원이 되자 쿠칸은 자신과 잘 맞는 마이크와 힘을 자랑하며 펜 웹을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책을 좋아하는 햄스터 / 플로랑스 데마쥐르 글 / 보물창고 / 8500원 위험을 경고하는 팻말을 걸어놨는데, 글을 잘 몰라 위험에 빠지게 됐다면 억울할 거다. 이 책은 주인공 ‘물음표’를 통해 글을 못 읽는 햄스터들이 글을 깨우침으로써 책 읽기의 필요성을 넌지시 전한다. 사건의 발단은 책방 주인이 책을 엉망으로 만든 햄스터들을 잡기 위해 독이 든 잼을 미끼로 놓아두면서부터다. ‘먹으면 죽는다’는 경고문을 붙였기 때문에 이것을 읽을 줄 아는 주인공 ‘물음표’만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돼서다.

  • 주말
  • 이화정
  • 2007.03.16 23:02

[책의 향기] 연암집, 조선 바보 노무현

△ 연암집박지원 지음, 김명호 신호열 옮김/돌베개 펴냄/7만5000원(전 3권 세트)“글을 고민하는 사람, 연암을 보라.”조선후기 저명한 실학자이자 문장가인 연암 박지원의 문집. 연암의 한시, 서간문, 비문, 서문, 발문, 소품문, 한문소설 등 총 237편의 산문과 한시 42수가 수록됐다. 정통고문체와 패관소품체, 조선식 한자 표현 등을 망라해 다채로운 문체를 구사하고 있는 연암은 조선과 중국의 문학·역사·철학, 서얼 차별과 노비문제, 화폐문제 등 광범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198행에 달하는 장편 한시 ‘해인사’를 비롯한 40여 편의 한시는 시인으로서 박지원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자료다. 이 책은 1932년 활자본으로 간행된 박영철편 ‘연암집’을 텍스트로 하고 있다. 박영철편 ‘연암집’은 연암 후손가에서 보관해 온 필사본을 저본으로 해 신뢰도가 높으며 작품을 가장 광범하게 수록하고 있고 대중적으로도 널리 보급돼 있다. △ 조선 바보 노무현명계남 지음/원칙과상식/8500원“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범죄집단 조선일보에 맞짱 뜨는 자만이 우리의 리더가 될 만한 자격이 있다.”한 문장으로도 화제가 된 책 「조선 바보 노무현」. 많은 이들에게 연극·영화배우로 알려진 명계남이 직접 쓴 책이다. 명계남이 초기 노사모 운동을 통해 사회참여를 한 이후 생활정치운동과 언론개혁운동 일선에서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모아놓은 글모음집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조선일보에 대한 비판과 노무현 정부에 대한 옹호로 이뤄진 책이라 생각하면 된다. ‘참여정부의 성공, 진보의 실패’ ‘1999년 1월 vs 2002년 1월 vs 2007년 1월’ ‘역사앞에서’ ‘명계남 씹으면 맛있나?’ ‘천천히 악랄하게 또박또박’ 등 목차부터 흥미롭다. 자료집 ‘신문으로 읽은 한국사회’도 실렸다.

  • 주말
  • 도휘정
  • 2007.03.16 23:02

[책의 향기] '담화' 신화처럼 재밌고 고전처럼 깨달음이

‘우리들 사는 삶이 이렇다. 내 인생도 보니까 우물쭈물 하다가 여기까지 흘러왔다. 뭐 하나 제대로 해 놓은 것도 없다. 어느덧 거울을 보니까, 봄날은 지나갔다. 봄날이 지나갔다고 해서 마냥 우울에 빠져 지낼 수는 없다. 과거만 생각할 일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도 호기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음중양 양중음’이라고 하듯이 지나온 과거 속에 미래가 있고, 미래 속에 과거가 들어있다. 그걸 생각하면 삶을 차분히 바라볼 수 있다.’그의 ‘담화’(談話)는 ‘담화’(淡畵)가 아닐까 싶다.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엷게 채색한 그림처럼 마음이 물들어 가는 것을 느낀다.강호동양학자 조용헌. 그가 새롭게 내놓은 「조용헌의 담화(談畵)」(랜덤하우스코리아)는 신화처럼 재밌고 고전처럼 깨달음이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인생의 이면을 읽는 즐거움이 있다. 오묘한 맛이다.1961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그는 원광대 대학원에서 한국불교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난 20여년 간 발품을 팔며 풍수, 사주, 고승, 명리학의 대가들을 만나 교류를 가져왔다. 정신과 물질 모두가 풍요롭게 잘 사는 길을 찾기 위해서다. 늘 그렇듯 그가 던지는 질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것. “생각 없이 사는 것도 문제, 생각에만 빠져사는 것도 문제”라는 조씨는 건강한 사유와 건강한 세상살이의 조화에서 그 답을 구한다. ‘思入風雲變態中(사입풍운변태중) 萬物靜觀皆自得(만물정관개자득)’.생각은 세상사 풍운의 변화하는 가운데서 얻어지고, 사물을 고요히 관찰하면 그 이치가 얻어진다는 뜻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담화는 바로 이런 것들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 팔자를 바꾸는 방법’. 조씨는 “팔자를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고금을 막론하고 공덕(적선)을 쌓는 일이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착하게 살았는데도 그 자손이 흥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가짜 선’(假善)이기 때문이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기준도 특이하다. 남에게 이로운 것은 선이고, 자신에게 이로운 것은 악이라는 것. 남에게 이로우면 남을 때리고 욕하는 것도 모두 선이 될 수 있고, 자기에게 이로우면 남을 공경하고 예의를 갖추는 것도 모두 악이 될 수 있다. 조씨는 “공(公)이면 진짜 선이고, 사(私)이면 가짜 선이다”고 정리했다. 이 책에는 ‘그림과 함께 보는’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한국 화단에서 실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여류 한국화가 이보름씨의 그림이 책 속에 들어앉았다. 열정적이면서도 여백의 미를 지니고 있는 그림. ‘담화’(談話)와 ‘담화’(淡畵)가 합쳐저 ‘담화’(談畵)가 된 것이다.

  • 주말
  • 도휘정
  • 2007.03.16 23:02

[책의 향기] 어린이 책세상

나이프 / 시게마쓰 기요시 글 / 양철북 / 9000원‘집단 따돌림’을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주변인까지 아울러 다양한 입장을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보여준 책이다. 이야기 ‘나이프’는 왕따를 당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의 이야기다. 아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이 미워 해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아무런 행동도 옮기지 못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작가의 안타까운 시선이 묻어난다. 덩치 큰 에비수가 약한 히로시를 괴롭히는 이야기를 담은 ‘내 친구 에비수’는 이를 단순히 나쁘다고만 할 게 아니라, 친구 사귀는 법을 잘 몰라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넌지시 전한다. 집을 나간 껌벙이 / 이지현 글 / 계림북스쿨 / 6500원개는 사람과 친밀도가 높은 동물이다. 그래서 어린이 문학작품에 개가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이 책은 털이 까만 잡종 강아지 껌벙이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엄마와 헤어져 재원이네 집에 살게 되면서 겪은 이야기에 집중돼 있다. 낯선 집에 혼자 덩그러니 떨어져 맞게 되는 첫날밤의 외로움, 엄마 품에서 형제들과 뛰놀던 따뜻한 기억이 뒤엉키면서 껌벙이는 엄마를 찾아 나선다. 껌벙이는 화가 아저씨네 집에 도착해 엄마와 형제들을 찾을 수 있을까. 말썽쟁이 토마스에게 생긴 일 / 질 티보 글 / 어린이작가정신 / 7500원재미없는 책을 대체 왜 읽어? 라고 묻는 아이를 위한 책이다. 친구들과 싸우는 것은 물론 남의 집 유리창에 돌을 던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주인공 토머스에게 친구가 있을 턱이 없다. 가는 곳마다 말썽인 토마스에게 착하고 내성적인 책벌레 기욤이 친구가 되면서, 결국 책 읽기에 호기심을 갖게 되는데... ‘외톨이 반항아’를 길들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강요하지 않고 말없이 사랑으로 지켜보는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똥땅나라에서 온 친구 / 박정애 글 / 웅진주니어 / 8000원아이들도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어 한다. 정말 하늘로 올라가는지, 천국과 지옥은 과연 있는지, 누군가 지금의 나를 지켜보고 있는지 말이다. 이 책은 주인공 주영이를 통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으로 살다 돌아가신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았다. 주영이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삶을 포기하려고도 하지만, 무지갯빛 슬라임과의 만남을 통해 똥땅나라로 여행하면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을 준비하는 과정임을 알게 된다. 자살을 결심할 만큼 답답했던 우리네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라면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두 친구 이야기 / 안케 드브리스 글 / 양철북 / 8500원엄마한테 맞고 자라는 아이 유디트에겐 착한것 외에는 아무런 죄가 없다. 엄마를 지켜주기 위해 거짓말을 하다보니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아 ‘외톨이’가 된 것이 전부다. 더욱 슬픈 사실은 이런 엄마조차도 차별과 학대를 받고 자라온 상처가 있다는 것이다. 미하엘 역시 결벽증적인 완고함을 지닌 아빠 밑에서 자라다보니 주눅 들어 난독증에 걸렸다. 결국 아버지의 무관심으로 12년을 맞고 산 유디트가 선택한 것은 자신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나눠 준 미하엘을 찾아 떠나는 일이다. 외롭고 쓸쓸한 아이에게 무관심보다 더 큰 벌은 없다. 새학기를 맞아 우리들도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사랑에 목말라 하는 아이들은 없는지.

  • 주말
  • 이화정
  • 2007.03.09 23:02

[책의 향기] '대한민국 헌법' - 자랑스러운 한국인

국민이 주인이고 모든 정당성의 원천인 국민주권주의가 지배하는 오늘날의 입헌민주국가에서는 어느 나라나 헌법을 가지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에도 헌법이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장 제1조. 그러나 헌법 제1장 제1조를 명확히 알고있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전국민 헌법읽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정종섭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 그가 사진작가 김중만씨의 꽃사진과 함께 「대한민국헌법」(금붕어)을 펴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이념과 방향, 가치지향, 질서에 대해 헌법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이 합의를 했지만, 헌법에 무관심하게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과 헌법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대통령, 국회의원, 공무원들도 우리 헌법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일을 합니다. 이제는 국민들이 법치주의와 신뢰사회의 구축을 위해 나설 때라고 봅니다. 직장 임직원, 학생, 친지 등 모든 분들께 헌법읽기운동에 동참하도록 권유해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현행 헌법은 1987년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노력으로 국민투표로 이뤄진 국민적 합의다. 정교수는 “일본에서도 1980년대 ‘전국민 헌법읽기’ 붐이 있었다”며 “우리 헌법은 미국이나 독일, 프랑스, 일본 헌법보다도 더 잘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누구나 한번만 헌법을 읽어보면 우리나라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지, 또 내가 한국인이라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게될 것입니다. 그리고 옳고 그른 것에 대한 명확한 판단기준도 얻을 수 있을 겁니다.”정교수는 “국민이 헌법을 한번이라도 읽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최소한의 합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문의 한자를 한글로 바꾸고 헌법을 영문으로 구성해 조항별로 배치하는 등 책은 헌법을 소화하는 가장 쉬운 방법들로 엮어졌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김씨의 꽃사진. 「대한민국헌법」은 정교수와 김씨가 함께 만든 두번째 헌법읽기 책이다. 2002년에 만든 첫번째 책 「대한민국 헌법을 읽자!」가 헌법 조항이 담고있는 내용을 열린 상상력을 가지고 해석할 수 있게 디자인한 것이라면, 이번 책은 꽃과 헌법이 만나 또하나의 그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정교수와 김씨는 “꽃과 헌법규정은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자기완결적이면서 동시에 외부세계로 열려 있다”며 “그러면서 열림이 자기 해체로 가지 않고 자기 존재의 고집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꽃과 헌법규정이 가진 열림과 자기고집, 서로간의 소통과 긴장이 함께 있는 모습을 이번 작업을 통해 전하고 싶다고 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법학박사학위를 받은 정교수는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과 건국대 법대 교수를 거쳤으며, 대통령자문 교육개혁위원회 특별위원, 대통령자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대통령자문 새교육공동위원회 전문위원 및 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많은 국가개혁안을 제시해 왔다.개헌 논의가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나라 헌법이 궁금하다면, 「대한민국헌법」을 펴라. 딱딱한 헌법도 이렇게 향긋할 수 있다.

  • 주말
  • 도휘정
  • 2007.03.09 23:02

[책의 향기] 만주 오천년을 가다 - 고조선 고구려 발해 답사

“조선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마음이 편치 않기 시작했다. 주변에 강대국이 나올 때마다 나라가 휘청거리거나 항복했다. 그러다 중국이 안정되면 곧바로 실리가 없는 허황된 논리를 펼치다가 이편에서 저편을 죽이고 저쪽이 이쪽을 죽이는 이전투구가 계속됐다.”정신적으로 이룩한 것은 많았지만, 백성들의 삶을 더 낫게 하는 데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시대였다. 역사를 공부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현실의 삶 속에서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인데, 반면교사(反面敎師)밖에 되지는 않는 역사였다.그래서 주목한 고구려. 「만주 오천년을 가다」를 펴낸 박혁문씨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출발해 거대한 정복국가가 되기까지의 역사가 너무나 통쾌했고 그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들의 삶이 가슴 속에 살아움직였다”고 말했다. 10여년이 넘는 동안 가보고 또 가봤던 만주. 박씨는 “21세기에 필요한 우리의 시대정신이 고려나 조선 보다는 고조선에서 고구려, 발해로 이어진 만주 역사에 있다”며 “사료 속에서 얻지 못한 것들을 현장에서 느끼고 잊혀진 역사의 줄기를 더듬어 이 책에 풀어놨다”고 말했다. 먼 고대부터 근대까지 만주지역에서 우리 역사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에 대해 저자는 ‘역사기행’과 ‘현장답사’ 두 갈래로 접근하고 있다. 1부에서는 만주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으로, 만주의 지형과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사를 큰 윤곽에서 살폈으며, 2부에서는 현장답사여행 코스를 세 갈래로 나눠 곳곳에 어떤 역사의 자취들이 남아있는지 짚었다. 만주땅의 우리 역사를 대중적으로 알리고 싶은 박씨는 되도록 현장의 느낌을 살렸다. 지도나 사진자료 등을 실어 역사교양서로서 형식도 갖췄다. 우리 역사서 뿐만 아니라 중국의 역사서를 넘나들며 만주의 우리 역사를 연구해 온 저자는 현재 신일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 주말
  • 도휘정
  • 2007.03.09 23:02

[책의 향기] 탄원서

필자와 같이 고문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고문서를 읽고 해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고역이다. 정자(正字)로 반듯반듯 쓰여 있어도 한자(漢字)로 쓰여 있어서 잘 해석이 되지 않는데다가 심지어는 초서(草書)라고 해서 흘린 글씨로 작성되어 있으니 도통 뭐가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캐묵어 냄새나는 고문서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읽는 것은 나름대로 커다란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내용이 잘 파악되지 않아 이리저리 생각하는 동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생기기도 하고 또 어느 한 사안에 대해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설이 길어졌다. 우선 조선후기에 전라도 장수현 계남면 곡리(谷里)에 살았던 양사헌(梁思憲)이라는 사람이 을유년 정월에 자기 고을의 수령에게 제출한 탄원서 한 장을 살펴보자. "이와 같이 삼가 아뢰는 말씀은 제(民)가 몸가짐을 삼가지 못하고 노름을 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곤장을 맞은 지 이미 여러 날이 흘렀습니다. 노름을 하다 진 빚 170냥 가운데 50냥은 벌써 이기찬(李基贊)에게 갚았습니다. 나머지 120냥을 지금 간신히 변통하여 분부에 따라 관정에 바쳤습니다. 그런데 이 돈을 뒷날 이기찬이 (받지 않았다면서) 다시 요구할 가능성이 없지 않아서 염려되오니 논리정연한 판결문을 써주셔서 뒷날 증빙을 삼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조선시대는 신분 사회였기 때문에 백성들이 수령에게 탄원서를 올릴 때에도 신분에 따라 쓰는 용어가 달랐다. 양반들은 자신을 '민(民)'이라고 하였고 평민이나 천민은 '의몸(矣身)'이라 하였다. 양사헌이 자신을 민이라고 한 것을 보면 그의 신분은 양반이었는데 노름을 하다 빚까지 지고 그 벌로 옥에 갇히고 곤장까지 맞았으니 양반으로서 체모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정월, 매서운 추위가 살을 에는 듯한 엄동설한에 감옥에 갇혀 있으니 얼어죽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조선후기 감옥은 지붕만 있을 뿐이지 벽은 감시와 환기를 위해 트여 있었으며 바닥은 맨 흙 또는 마루였다. 추운 겨울에도 깔거나 덮는 것은 기껏해야 짚으로 만든 거적때기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니 얼어 죽는 일이 많았다. 아무튼 이와 같이 추운 때에 양사헌이 곤장을 맞고 감옥에 갇혀 있었으니 그의 가족은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하여 노름빚 갚을 수 밖에 없었다. 급히 50냥을 만들어 이기찬에게 갚고서 선처를 호소하였지만 이기찬은 나머지 120냥이 남았다며 합의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가족들이 수령에게 호소하였더니 수령이 슬그머니 120냥을 관아에 바치라고 하였다. 그의 가족들은 할 수 없이 나머지 120냥을 만들어 수령에게 바쳤지만 양사헌은 슬며시 미심쩍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노름빚을 수령에게 바치라고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인데 노름빚을 수령이 가운데서 가로채도 양사헌이나 이기찬 모두 항의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령의 엄한 분부를 어길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만일 그의 분부을 어기면 감옥에서 풀어줄 리가 없었다. 양사헌은 감옥에서 생각다 못해 탄원서를 올려 이기찬이 후에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할 가능성이 있으니 증빙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수령이 어찌 이를 모르고 넘어가겠는가? 양사헌의 요청을 받은 수령은 "(잔 말 말고) 처분이나 기다려라”고 당당하게 명령하였다. 수령은 큰 도둑이었던 것이다./전경목·전경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 주말
  • 전북일보
  • 2007.03.09 23:02

[책의 향기] 양계영의 행복한 책방이야기

올해는 예년에 비해 일주일 정도 일찍 벚꽃이 필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나왔다. 해마다 벚꽃의 개화시기가 당겨지는걸 보면 이상고온 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서점가는 어떨까. 책방의 판매대에는 이미 한 겨울 훨씬 이전부터 벚꽃이 만개해 있다.수십만의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서가 진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작가가 된지 오래이고, 2~3년 전부터는 아예 일본소설만을 위한 판매대를 따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서점가에 일본소설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일본소설은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할 만큼 정통소설의 기반이 탄탄하고 여기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뒤를 이어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쓰지 히토나리, 가네시로 가즈키, 오쿠다 히데오 등등 발음하기도 힘든 대중소설 작가들의 책이 큰 인기를 얻으며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를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다.물론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주로 다루는 한국소설이 가볍고 지극히 개인적인 주제를 다루는 일본소설에 비해 10~20대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도 사회적인 현상이라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과열 현상으로 인해 출판사가 일본작가에게 지불하는 선인세가 5배나 올랐다는 기사를 읽노라면 도배나 막일로 생활비를 충당한다는 우리나라 문화예술인 관련기사가 같이 떠올라 조금은 서운한 느낌을 떨쳐버리기 힘들다./양계영(홍지서림 전무)

  • 주말
  • 전북일보
  • 2007.03.09 23:02

[책의 향기] "천국은 발밑에..' 월든 - 김영혜

우리는 속세를 떠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사는 것을 꿈꾸어보는 적이 종종 있다. 번잡하고 누추한 삶에 지친 어느 날, ‘쑥과 마늘’만 먹고 살지언정 그만 홀연히 떠나고 싶은 충동은 우리 현대인들에게 그다지 낯선 것이 아니다.그런데 1845년,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콩코드라는 곳에 살고 있던 28살의 청년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우리가 가족이 딸렸다는 이유로, 혹은 모아둔 돈이 없다는 핑계로 좀처럼 실현시키지 못하는 이런 꿈을 용감무쌍하게 실행에 옮긴다. 그는 뉴잉글랜드 지방의 제법 번창한 지역인 콩코드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 ‘월든(Walden)’이라는 호숫가에 손수 통나무집을 짓고 홀로 2년 남짓 생활한다. 「월든」은 이 숲속에서의 독신생활에 대한 기록이다. 무엇을 어떻게 키워서 먹었고, 하루를 어떻게 보냈으며, 주변의 자연은 어떻게 변했었고, 자신은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냈던가 등등...그런데 소로우의 ‘은둔생활’--소로우 자신은 이 말을 싫어했다--은 흔히 우리가 꿈꾸는 ‘속세로부터의 탈출’과는 다소 다른 성격을 띤 실험이었다. 그는 19세기 중엽, 인디언을 몰살시키고 멕시코의 거대한 땅 일부를 단돈 천 달러에 빼앗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시민으로부터 인두세를 거두는 등, 이미 제국주의의 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던 당대 미국인들(정치가들)의 행태에 격렬한 분노를 느낀 나머지, 인간은 굳이 탐욕을 부리지 않아도 최소한의 의식주와 그것을 얻기 위한 최소한의 노동만으로도 얼마든지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점을 동료시민들에게 증명해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그는 자연을 깊이 사랑하고, 박물학자에 버금가는 동식물에 대한 탁월한 지식을 겸비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 철학은 물론, 당대의 지식인으로서는--그는 하버드 출신이다--매우 드문 일일 터인데 인디언의 문화와 사유방식에 대한 깊은 이해뿐만 아니라 인도철학과 중국 철학에조차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그래서 「월든」은 자연에 대한 탁월한 시적 기록인 동시에 문장 하나하나, 단락 하나하나가 심오한 철학적 사색을 담고 있는, 그 자체로 하나의 보석 같은 책이다.이 짧은 지면에서 <월든」의 아름다움에 대해 온전히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긴 하나,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단락 중 하나를 그대로 옮기면서 그 안타까움을 대신하려고 한다.“나는 먼저 1피트 깊이의 눈을 치운 다음 다시 1피트 두께의 얼음을 깨서 발아래 호수의 창문을 연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며 물고기들의 조용한 거실을 내려다본다. 호수 속은 마치 불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것 같은 부드러운 광선이 사방에 퍼져 있으며, 바닥에는 여름이나 마찬가지로 밝은 모래가 깔려 있다. 호박색의 저녁노을이 질 때와 같은 영원한 물결 없는 고요가 이곳을 다스리고 있다. 그 고요는 이곳에 사는 거주자들의 침착하고 평온한 기질에도 상응하는 것이리라. 천국은 머리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발밑에도 있다.”(「월든」중 ‘겨울의 호수’ 편, 강승영 역, 이레출판사, 2005) /김영혜(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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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3.09 23:02

[책의 향기] 노비 입안 문서

사람을 사고파는 일은 지금 우리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에서는 이러한 일이 가능했다. 천인 신분인 노비들은 얼마든지 사거나 팔수도 있었고 증여도 가능했다. 노비를 사고 팔 때는 토지나 가옥을 사고 팔 때와 같이 소유권을 이전하고 이를 관청에 신고하여 증빙을 받았는데 이러한 문서를 입안이라 하였다. 입안을 받는 것은 법으로도 규정되어 있었다. 노비는 토지와 가옥과는 달리 출산으로 인한 증가와 도망의 우려가 있는 움직이는 재산(動産)이기 때문에 소유권의 보전은 매우 중요하였고 또한 이중매매로 인한 쟁송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토지매매의 경우보다 입안의 필요성은 더 높았다. 마치 인간에 대한 소유권 등기제도와 같은 것이었다. 사진은 전라도 강진군 열수면에 세거하던 안산 김씨 집안에서 전해지는 문서로 매매문기로부터 입안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문서가 이어 붙여져 있다. 접해있는 부분과 곳곳에 관인이 찍혀있으며 이 문서에는 입안 받는 절차와 매도자의 매매동기, 기타 노비에 관한 정보가 담겨있다. 이 문서에 의하면 1772년 봄에 김재옥은 같은 마을에 사는 김필채로부터 계집종 1명을 사들인 후 매매문서를 첨부하고 관에 입안을 요청햇다. 이를 접수한 강진 군수는 입안을 발급 해주라는 판결을 내리고 매매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매도자 김씨와 증인 김씨를 불러 다시 일종의 확인서에 해당하는 초사(招辭)를 작성한 후에 입안문서를 발급해주었다. 이로써 소유권 이전이 완료되었는데 이 과정에 소요된 기간은 불과 열흘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늘날 소유권이전 등기 시 매도자와 매수자가 계약을 한 후 각각 서류를 지참하고 관할 등기소에 신고하는 절차와 사뭇 비슷하다. 살펴보면 김재옥이 매득한 복상이라는 계집종은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몸값 열 냥에 팔려 어미 곁을 떠나게 되었다. 당시 그녀의 소유권은 벌써 세 번째 바뀌게 되는 상황이었으니 지금 같으면 초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에 팔려가는 인간적 고통은 지금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조선시대 노비는 매매가 가능하였고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였다. 가격도 말 한필보다 쌌으니 비록 사람모습이지만 법과 제도적으로는 사람이 아니라 가축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소나 말과는 달리 쉽게 도망할 수도 있는 존재여서 노비의 소유권은 법과 제도로 보존되도록 절차를 둔 것이다. 그러나 두 차례의 전란과 조선 후기 사회체제의 이완은 노비매매제도와 절차에도 변화를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즉 노비의 입안 절차 역시 조선후기에는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관인이 찍히지 않은 문서(白文記)가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1895년 갑오개혁으로 법제적인 신분제는 폐지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가끔씩 현대판 노비라는 제목아래 인간이 인간을 가혹하게 학대라는 기사를 대할 때면 예나 지금이나 인간에 대한 최선의 가치는 따뜻한 배려와 관심이 아니가 싶다./정성미(전북대박물관 전문연구원·원광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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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3.02 23:02

[책의 향기] 차라투스트라는...- 김정현

나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삶의 목적이 경제적 부나 사회적 지위 혹은 명예를 얻는데 있는 것일까? 서양 현대사상의 발원지 역할을 했던 독일의 철학자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자신의 주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의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의 물음을 던진다.눈에 보이는 것, 물질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시대에 이 책은 삶의 의미나 가치와 같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묻는다. 현대에는 공적인 언어보다는 사리사욕의 이해관계를 통해 자신의 욕구만을 계속해서 채워나가는데 눈치가 빠른 인간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미국의 정치사상가 후쿠야마의 진단처럼, 니체의 이 책은 오늘날 물질과 폭력 속에서 점차 왜소해지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존감마저 망각하며 살고있는 '최후의 인간'으로서 우리 내면의 모습을 비쳐주는 거울역할을 하고 있다.최후의 인간처럼 인간 스스로가 점차 작아지는 시대에 니체는 우리에게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삶의 의미는 경제적인 풍요나 사회적 지위와 같은 외형적 가치나 표피적인 인격(페르조나)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짊어지고 극복해가는 삶의 과정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삶의 고통과 어려움, 모순과 부조리 속에서도 어떻게 우리가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고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즉 자신의 몸에 기어다니는 진균같은 속좁은 생각을 버리고 선과 악, 거짓과 진실, 의미와 무의미, 즐거움과 슬픔, 고통과 생명 등 삶과 연관된 수많은 영혼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들으면서도 삶의 허무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커다란 건강'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알려준다.이 책은 니체의 사상을 상징, 비유로 표현한 문학서이자 동시에 삶의 온몸에 새겨진 실존적 의미를 성찰케 하는 철학서이다. 문학적 형식을 빌어 쓴 이러한 '이야기로 읽는 서양사상사' 속에서 프로이트나 융은 심층심리학의 전제들을 발견했고, 이사도라 던컨은 자유로운 신체의 표현이라는 현대무용의 길을 열었으며, 문학자 토마스 만은 자유로운 예술정신을 읽어냈다. 죽음, 우울, 불안에 빠져있던 <절규>의 화가 뭉크 역시 이 책을 만나며 빛과 생명, 에너지와 강함을 얻었고, 이 책과 연관해 다다이즘, 미래주의, 다리파,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플럭서스 운동 등 무수한 현대예술의 조류가 태어났다.현대예술과 정신분석은 이 책의 정신적 샘에서 철학적 상상력으로 길어 올려진 현대적 사유의 결정체이다. 문학, 미술, 음악, 무용 등 현대의 예술세계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나 삶의 고통과 의미를 자신의 실존적 체험을 통해 묻고 자각적 몸을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 꼭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 자신속에 혼돈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가장 중요한 현대정신의 저수지라고 할 수 있다./김정현(원광대 철학과 교수·본보 서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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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3.02 23:02

[책의 향기] 소금기둥 - 곽병찬

약자와 강자 사이의 투쟁과 정복, 억압과 저항의 이야기들이 무성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강고한 저항만이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믿던 시절, 일제강점기에는 친일파와 독립투사만이 살았던 것으로 짐짓 의도적으로 선을 그어 생각하던 그 시절, 알제리 식민지 출신의 의사 프란츠 파농의 책들은 모종의 교본 노릇을 했다. 파농의 ‘검은 피부 흰 가면’이나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은 백인 또는 식민 모국으로의 정서적 동화를 꿈꾸는 흑인 지식인들의 이중성과 내면적 분열을 통렬하게 고발했다. 그러나 이처럼 선명한 억압과 피지배, 그리고 그 사이에서 겪는 의식의 분열상은 어떤 의미에서 지나치게 명쾌하다. 이태리계 유대인과 사하라 유목민인 베르베르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식민지 튜니지에서 불어로 교육받으며 자라난 알베르 멤미는 이중 삼중의 억압과 분열을 겪으며 진정한 인간적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이른바 북아프리카 해방운동의 한 복판에서 자라난 그는 유아기의 만연한 빈곤과 종교적 강제, 그리고 나찌 부역정권이었던 비시정부와 자유프랑스운동 진영 양측으로부터 받은 정체성의 수난 등의 기억을 이 작품 속에 교묘히 일그러뜨려서 새겨 넣었다. 까뮈의 서문에서 보듯이 유대인일 수도 튜니지인일 수도 프랑스인일 수도 없었던 이 경계적 지식인의 선택은 결국 ‘작가’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작가야말로 ‘한 계층이나 인종 속에 익명으로 용해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인간이 만든 모든 경계와 집단마다 필연적으로 생성되고야 마는 교묘한 차별과 억압의 근원은 무엇인가? 때로 종교의 이름으로 때로는 이데올로기의의 이름으로, 그리고 때로는 이른바 문명과 부에 대한 맹목적 헌신으로 개개인의 나약한 일상과 영혼을 서서히 옥죄어 오는 이 기운들을 진정 벗어날 수는 있는 것인가? 성장소설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결국 남미로 가는 배에 오르게 된다. 다시는 조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듯이 떠나가던 광장의 ‘이명준’처럼-. 이명준이 선택한 영원한 안식 대신 어쩌면 주인공의 운명은 타락한 도시를 뒤돌아보다 소금기둥으로 변한 ‘롯’의 뒤를 따르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억압과 피지배의 문제는 설사 정치적 식민주의자들이 몰락한다 해도, 억울하지만 영원하다. 예술가의 길이란 결국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이 화인(火印)을, 그저 놓치지 않고 눈 부릅떠서 응시하는 것 아닌가?/곽병찬(전주세계소리축제 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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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3.02 23:02

[책의 향기] '처음처럼'

"어쩌면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새삼스러운 이야기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서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함께 확인하고, 위로하고, 그리하여 작은 약속을 이끌어내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이러저러한 이유로 망설여졌던 책이라고 했다. 이미 있는 글과 그림을 모아서 낸다는 것은 아무래도 독자들에게 '매우 미안한 책이며 선뜻 내키지 않는 책'이다. 그래서 몇 편은 글을 새로 쓰고 그림을 다시 그리기도 했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20년 20일. 역사의 무게가 묵중할 것만 같은 신영복 교수(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생각들을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독자들에게는 대단한 기쁨이다. 신영복 교수의 그림과 글씨, 삶의 잠언이 담긴 서화에세이 「처음처럼」(랜덤하우스). 책은 '처음처럼'에서 시작해 '석과불식'(碩果不食)으로 끝이 난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라는 '처음처럼'과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 또는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읽히는 '석과불식'은 희망의 언어인 것이다. 신교수는 "지금까지 필자가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했던 일관된 주제가 있다면 아마 역경을 견디는 자세에 관한 것”이라며 "역경을 견디는 방법은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며,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수많은 처음'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인 어려움이든 한 사회의 어려움이든 역경을 견디는 자세에 관한 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따라서 '처음처럼'의 뜻과 '석과불식'의 의미가 다르지 않고 그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이 책의 모든 글들도 이러한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이야기들”이라고 덧붙였다. 그림을 먼저 담거나 글을 먼저 새기거나, 그건 독자의 마음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공감들이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 일생 동안에 가장 먼 여행은 바로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는 신교수는 이 책을 통해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다시 발에 이르는 긴 여정이 새롭게 시작되길 바란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은 지식에서 품성으로의 여행이며, 발까지의 여행은 삶의 현장으로의 여행이기 때문이다. 책의 날개에는 저자의 청년시절 사진이 실렸다. 20대 청년인 신영복. 젊은 날의 저자 사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가운데 만난 그의 젊은 시절은 옥고를 치르기 전이었다. 날카로운 턱선에서 예리함이 묻어난다. 이 시절, 젊은 신영복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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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휘정
  • 2007.03.02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