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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회남자' 다양한 가치.문화 병존하는 세상

유안(기원전 179∼기원전 122)은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손자로, 반역죄를 짓고 자살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남왕에 봉해졌다. 황권을 강화하려는 중앙집권세력과 이에 대항하는 지방분권세력의 갈등이 극심한 시대를 산 유안은 특히 학문과 사상으로 시대의 모순을 극복하려 했다. 그러나 절대 권력과 단일한 이념을 추구한 무제와 유교 세력이 유안을 견제했고, 결국 그는 아버지처럼 반역죄에 걸려 자살했다. 비극으로 끝난 불운의 역사. 유안의 빈 자리에는 「회남자」(살림)가 남아있다.김성환 군산대 철학과 교수가 현대적 감각의 고전시리즈 ‘e시대의 절대사상’ 스물일곱번째 책으로 「회남자」를 다시 썼다. 청년시절, 고려대 철학과에 들어가 사회변혁에 관심을 두었지만 욕망의 문제를 치유하지 못하는 서양근대의 한계를 고심하다 동양철학에 이르게 됐다. 그는 “동양철학하면 일반적으로 유교를 중심으로 한 충효나 도덕, 윤리, 규범 등을 떠올리지만 동양철학은 그런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회남자」는 유안이 수천 명의 빈객 방사(方士)들을 불러모아 편찬한 책이다. 한대 이전의 지식과 사상을 집대성하면서, 단순한 총괄을 넘어 통일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김교수는 “지식인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해 패러다임을 형성해 나가는 지식통합사회, 즉 현대 사회에 맞는 열린 정신을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 덧붙였다. 「회남자」는 한대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해 기록 대부분이 소실됐다. 그동안 서점에 나와있던 「회남자」가 당시 사건이나 사상을 나열하듯 소개한 역사서이거나 학위 논문인 연구서에 그쳤다면, 김교수는 「회남자」가 가지고 있는 현대적 의미를 살피는 데 비중을 뒀다. “「회남자」는 놀라운 고전입니다. 오늘날 펼쳐지는 유치한 민족주의의 악순환을 예견이라도 한 듯,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철학적 이유와 해결방법에 대해 치밀하게 논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사람들은 자기가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고 국가나 종교, 지역, 이념 등 자신을 ‘중심’으로 만들어주는 조건들에 집착해 여기에 절대적인 사고를 부여한다. 중심에 대한 갈망과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여러 민족과 나라들과 조화를 이뤄내지 못한다. 대신 새로운 미래는 중심에 포섭되기를 거부하는 변방에서 발견되고 구현될 수 밖에 없다. 김교수는 “「회남자」는 이런 변방의 시각에서 철학적 통찰을 얻는다”고 강조했다. “「회남자」는 유교 경학(經學)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도가 황로학(黃老學)의 견지에서 그때까지 축적된 사상과 문화, 학문을 집대성하고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그 목표는 단일패권주의를 해체하고 다양한 가치와 문화가 병존하는 세상을 구현하는 데 있었습니다.”김교수는 「회남자」를 통해 한대에 형성된 중국 문화와 사상의 원형을 살피는 한편, 중국 문화의 주류가 된 이념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기회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화주의와 유교의 부활을 꾀하는 중국의 국가적 욕망을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비판하는 안목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다”며 “중국 고전에서 중국의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길을 발견한 것”이라고 했다. ‘한 종류의 악기를 수백 명이 똑같이 불어대고, 한 가지 반찬으로 밥상을 가득 매우는 것을 상상해 보라. 이런 음악과 밥상은 생각만으로도 우리를 질리게 만든다.’‘그런데 현대인은 소매가 없는 반소매 옷을 입고서도 왼손을 오른팔 아래에 대고 술을 따른다. 왜 그래야하는지 묻지 않으면서, 남들이 그러니 그게 예법이라고 여기고 그냥 따라한다.’악기와 반찬의 ‘차이’야말로 음악과 밥상을 풍성하게 만든다. 형식적인 주법은 「회남자」의 지적처럼 ‘한 시대의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김교수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명구들도 많아 인생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수양서로도 의미가 있다”며 현대인들에게 「회남자」를 권했다.

  • 주말
  • 도휘정
  • 2007.07.06 23:02

[책의 향기] 시크릿

책 표지에, 눈에 띄는 노란색으로 인쇄돼 있는 카피가 시선부터 잡아끈다. 책을 소개한 '오프라 윈프리 쇼'는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홈페이지가 마비됐고, 예약판매 중인 「해리포터」 최종편을 제치고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인들은 왜 이 책에 열광하는가?「시크릿」(살림Biz)을 쓴 론다 번은 호주의 TV 프로듀서였다. 위대한 성공의 '비밀'을 전 세계 사람들과 공유하겠다는 마음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뛰어난 저술가와 과학자, 철학자들과의 공동작업을 통해 「시크릿」 책과 DVD가 제작됐고, 미국에서는 '시크릿 신드롬'이 불었다. 「시크릿」이 담고있는 '비밀'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게 해준다. 돈, 명예, 사랑, 건강….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비밀'을 찾아 헤맸고, 이 '비밀'은 구전과 문학과 종교와 철학에서 단편적으로 전수되고 있다. 저자가 미국 전역을 돌며 각기 다른 시간에 만난 스물네 명의 '비밀의 달인'들 역시 일맥상통하게 '비밀'을 이야기를 했다.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삶이 결정된다는 것. 단순히 긍정적 사고를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은 파동이 있고 그 파동이 비슷한 파동을 끌어들여 공명을 일으킨다는 것. 바로 이 책이 말하는 '비밀'이다.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몇 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연금술사」와 비슷한 메시지다. 재미있는 것은 '끌어당김'의 법칙이다. 원하는 대상에 생각을 집중하고 그 집중력을 유지하면, 그 순간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으로 그 대상을 불러들인다는 것. 게다가 '끌어당김'의 법칙은 '않아', '아니', 혹은 부정어를 처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파마가 잘못 나오지 않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면, '끌어당김'의 법칙은 '파마가 잘못 나오면 좋겠어.'라고 이해한다. "다투기 싫어”는 "더 많이 다투고 싶어.”로, "저 사람이 내게 무례하게 굴지 않으면 좋겠어.”는 "저 사람 말고 다른 사람도 내게 무례하게 굴면 좋겠어.”로 이해한다. 평소 부정적 표현을 입버릇처럼 사용하는 이들이라면 가슴이 철렁할 것이다.문장 문장마다 밑줄을 긋고 싶은 책이지만, 꼭 한 문장만 챙긴다면 이 말을 권한다. '당신의 임무는 자신을 챙기는 것이다.'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면,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다. 자신을 나쁘게 생각하면 사랑을 가로막게 되고, 자신을 계속 나쁘게 여기게 될 상황과 사람을 더 끌어당기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이 책이 말하는 '비밀'이다.

  • 주말
  • 도휘정
  • 2007.06.29 23:02

[책의 향기] 아빠와 아들 등

아빠와 아들 / 고대영 글 / 길벗어린이 / 8500원아빠와 아들 사이 따뜻한 대화가 오가진 않지만, 행간에서 읽히는 교감이 참 따뜻한 책.아빠와 주인공은 함께 장난치고 때론 대립하는 관계다. 목욕탕 속에 함께 몸을 담근 부자. 뜨거운 것도 잘 참는다는 아빠의 칭찬에 아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지만 애써 용감한 척한다. 아빠와 아들은 금방 저녁 먹고 나서 라면을 함께 먹는 동지이기도 하다. 금방 먹고 또 먹고 싶냐며 투덜대는 엄마의 잔소리도 둘이라서 좋다."내 장래 희망은 아빠가 되는 거다"는 책의 마지막 구절은 대한민국 모든 아빠들의 희망처럼 들린다.평범한 아빠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이들이라면 아들과 함께 읽어보면 좋다.엄마가 수놓은 길 / 재클린 우드슨 글 / 웅진미디어 / 9000원이 책은 8대에 걸친 한 미국 흑인 여성 가족사를 미국 흑인 해방사와 궤를 함께 하며 소개한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로 시작되는 신약성경 마태복음의 첫 부분처럼 수니의 증조할머니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수니 할머니의 입을 통해 퀼트의 무늬로 사용되는 별은 글을 모르는 노예들이 달과 별을 길잡이 삼아 탈출하는데 사용되는 일종의 비밀지도.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획득하기 위해 애썼던 흑인들의 역사를 거대 담론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이들의 생을 통해 제시한다는 데 이 책의 미덕이 있다. 퀼트를 통해 인간의 존엄, 역사를 어린이들의 눈에 맞춰 이야기하는 솜씨도 뛰어나지만 그림도 글 못지않다. 지난해 미국 뉴베리아너상을 받았다. 초정리 편지 / 배유안 글 / 창비어린이 / 8500원약수로 유명한 초정리에 나랏님이 병을 고치러 요양 갔다가 순수한 아이 장운이를 만난다. 아이는 말을 글로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누이에게, 친구에게, 함께 일하게 된 어른들에게 글을 쓴다는 기쁨을 깨닫게 해준다. 힘겨워도 피하지 않고 현실을 당당히 살아나가는 장운이네 가족의 이야기 속에는 조선시대 가난한 민초들의 삶이 배어 있다.당당한 경쟁은 서로에게 발전적으로 작용한다. 비뚤어진 경쟁심은 일그러진 방향으로 나아가기 일쑤다. 책 속의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마음속의 자신을 건강하게 가꾸는 게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과학적 생각을 많이 하고 이를 실생활에 적용하려 애쓰는 백성을 향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초정리 편지’는 작가의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멋진 이야기다. 마음학교 / 루이스 비 웰던 앤 디 매더 글 / 삼성출판사 / 9800원대부분의 부모가 공부만 잘하기를 바란다고 생각하면 오산. 오히려 ‘공부도’ 잘하기를 바라는 경우가 더 많다. 이 책은 부모들의 그런 소망을 실현시켜 주고자 미국 학교의 인성교육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다뤄지는 덕목 26가지를 담았다. 미국식 도덕 교재인 셈이지만, 억지스럽지도 않고 이야기도 짧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다.학교에서 역할놀이를 하거나 어른이 함께 읽으며 어린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이끌어줘야 효과가 클 책. 단순하지만 이야기 끝에 붙은 ‘함께 생각해요’가 책을 값지게 한다.

  • 주말
  • 이화정
  • 2007.06.29 23:02

[책의 향기]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 등

△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김주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 1만1000원‘그녀’가 궁금하다. MBC ‘뉴스데스크’ 주말 단독 앵커로 복귀한 김주하. 그가 언론인으로 살아온 지난 10년을 담아 에세이를 펴냈다. 입사 시험에 대한 기억에서부터 첩보영화를 방불케 한 취재 현장, 손석희 아나운서에게 받은 가르침 등 아나운서에서 기자로 변신한 그의 삶이 생생하게 담겼다. “이 책을 쓰면서 ‘앵커’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화려한 유명세는 잊으려 애썼다. 아니, 입으로가 아닌 발로 뛰는 내 자신을 돌아보며 자연히 잊게 되었다”는 김주하. 객관적 사실을 쓰려고 노력했지만 하고 싶은 말이 많아 풋내기 기자의 푸념이 섞였을지 모르겠다는 그의 고백이 더 매력적이다. △ 검은집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펴냄 / 1만원황정민 주연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검은집’. 원작은 ‘인간의 마음보다 더 무서운 건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준 소설’이란 평을 받은 일본 호러소설 대상 수상작이다.저자는 교토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생명보험회사에 근무하다가 프리랜서로 독립해 창작활동을 시작한 기시 유스케. 실제 보험회사 근무 경험에서 나온 보험사기극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과 이를 토대로 한 생생한 상황 설정, 심리학적 지식을 동원한 사건 추론, 책 곳곳에 인용되는 곤충학적 지식 등이 다이나믹한 필력으로 펼쳐진다. 덕분에 책 두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주말
  • 도휘정
  • 2007.06.29 23:02

[책의 향기] 직부(直赴)와 급분(給分)

최근 내신 성적의 반영비율을 둘러싼 교육부와 대학의 갈등이 식을 줄 모르고 커져만 가고 있다. 상응하는 대가를 받을 것이라는 지엄(?)한 경고까지 내려진 마당이니 가장 고민스러운 고3 수험생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시험이라는게 늘 그렇듯이, 붙는 사람이 있으면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붙을 수도 없고 모두를 떨어뜨릴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시험이기에, 어떠한 방법으로 시험을 치룰 것인가라는 문제는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려는 경쟁시스템 내의 최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반면 국가차원의 인재 양성은 너무 지나치게 편중되지 않는 중도의 방법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적 시스템이 존중되면서 최대의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가 예나 지금이나 그래서 필요하다. 인센티브 역시 그런 점에서 고금을 상통하고 있다. 조선시대 관리가 될 수 있는 최대의 통로인 과거 시험에도 인센티브는 존재했다. 직부(直赴)와 급분(給分)이 바로 그것이다. 직부(直赴)는 선비가 각종 특별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을 때, 소과나 대과의 초시를 거치지 않고 소과 복시나 대과 회시ㆍ전시에 곧바로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인센티브였다. 말하자면 1차 시험 면제라는 특권을 부여한 것이다. 급분(給分)이란 직부할 정도의 성적을 받지 못한 사람이 시험 성적으로 가지고 있다가 초시에 가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가점을 명기하고 있다. 마치 군복무 가산점과 같이 시험점수에 특별 시험의 성적을 더하여 최종 점수를 정할 수 있도록 한 인센티브였다. 유학 김용우는 1865년(고종 2) 7월 7칠 인정전에서 시행된 추도기(秋到記) 유학 분제강(分製講) 시험에서 차통(次通)의 성적을 받아 2분(分)의 가산점을 받았는데, 사진이 바로 그 때 김용우가 승정원으로 가산점을 받았음을 증명하는 증명서로 발급 받은 급분첩이다. 김용우의 이 급분첩은 만일 김용우가 대과에 응시할 경우 대과 성적에 부여하는 가산점으로 활용된다. 분제강이란 시험을 볼 때 시나 글을 짓는 제술(製述)과 경전에 대한 구두시험격인 강경(講經)으로 나누어 시행하는 것을 말한다. 직부와 분급와 같은 인센티브는 ‘공공성’의 범주 내에서 인재를 선발할 때 부여할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러나 이 역시 ‘공공성’을 띄고 있어야 하고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방법과 제한적 권한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지나치면 지나친대로 문제를 야기 시키고, 약하면 선발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복무 가산점이나 내신의 반영 비율에 대한 저간의 논쟁들이 힘겨루기가 아닌 무엇이 더 공적인가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홍성덕 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 주말
  • 전북일보
  • 2007.06.29 23:02

[책의 향기]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어느 봄날, 가장 인간답게 살려고 애쓰는 모리와 미국을 적시는 소나기 언론의 한 축을 이루며 바쁘게 살고 있는 미치를 만나게 되었다. 평생 학생들과 함께 한 모리는 사회학 교수였다. 그러나 어느 날,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수 없게 되고 혼자서는 옷도 갈아입을 수도 없게 되는 등 하고 있던 일들을 송두리째 그만두어야만 하는 루게릭이라는 불청객으로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게 된다. 충격에 휩싸여 세상을 둘러보지만, 여전히 세상은 멈추지 않았으며 아무 일도 없는 듯 잘 돌아가고 있음을 인식하면서 남은 인생의 계획을 세우고 병문안 오는 문병객들을 즐겨 맞으려 한다. 그는 죽음은 당황스런 것이 아니라는 평소 신념을 가지고 병석에서 아포리즘까지 쓰게 되며, 그것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고 또 그로인해 20년 전 제자 미치와 재회하게 된다.많은 꿈들을 월급봉투와 맞바꿔버린 37살의 미치는 매주 화요일마다 1,100Km를 날아가 여러가지 자기 생각들을 혼자 껴안고 있길 좋아하는 사람, 대학교 때의 스승 모리를 만난다. 그 둘은 스승과 제자로 때로는 친구와 부자 같은 관계로서의 나눔을 통해 '세상에 태어나서 어떻게 살다 어떻게 떠나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던져준다.정신적인 안정감을 얻게 하는 가족의 소중함과 자식을 갖는 것 같은 경험은 다시없다며 옛날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자식을 낳겠다는 모리는 벗어나기와 경험하기를 통해 물질의 무의미를 얘기하며, 돈과 권력이 다정함을 대신할 수 없음과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가르친다.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일을 하고 그들에게 베풂으로서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들에 압도당할 거라고 말하며 복수심, 고집, 자만, 허영 등등은 모두가 불필요한 것들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자신과 그리고 주위의 모두와 화해할 것을 그리고 자신과 타인을 용서할 것을 권하다. 시간을 끌지 말고.모리의 아포리즘 중 '인생은 밀고 당김의 연속이며 상반됨의 긴장'이라는 것과 '너무 서둘러 떠나는 일과 너무 오래 매달려 있지 말라는 말'은 우리가 생을 어떻게 갈무리 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느끼게 하는 것이어서 내 가슴에 화인처럼 찍혀있다.죽음이 온 몸을 침범해 들어오는 고통 속에서도 환한 웃음을 잃지 않던 모리, 그는 78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다.지금은 어느 호수가 나무그늘아래에 잠들어 있지만 아직도 그는 내게 끊임없이 묻고 있다."자네, 마음을 나눌 사람을 찾았나?”"지역사회를 위해서 뭔가 하고 있나?”"마음은 평화로운가?”"최대한 인간답게 살려고 애쓰고 있나?”/이연희(수필가·전북예총 사무처장)

  • 주말
  • 전북일보
  • 2007.06.29 23:02

[책의 향기] 이웃을 이해하고 나누는 삶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인디언은 거의 다 주인공을 위협하는 악당이거나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하는 조연일 뿐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백인 우월주의의 한 양상이다. 설혹 영화 속에서 얼굴이 까무잡잡한 인디언이 주인공으로 설정된다고 해도 대개는 백인 관찰자의 시선에 의해 줄거리가 전개될 뿐이다. 인종에 대한 이러한 편견은 약탈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끔찍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1930년대 미국을 휩쓸고 갔던 대공황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 주변부로 밀려난 인디언의 영혼의 싸움을 그 줄거리로 삼고 있는 소설이다. 이 책의 메시지는 어찌 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다.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 사슴을 잡을 때도 제일 좋은 놈을 잡으려 하면 안 돼. 작고 느린 놈을 골라야 남은 사슴들이 더 강해지고, 그렇게 해야 우리도 두고두고 사슴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야.”라는 말이 그것을 압축하고 있다. 인간다운 삶의 지속은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나온다는 것,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꾸어야 하며, 그 비결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물질주의의 거대한 급류에 휘말려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설교'는 한 가닥 지푸라기만도 못한 주제일 수 있다. 하찮은 들꽃 하나, 작은 나무 한 그루에 스며들어 있는 '영혼'을 그들은 믿지 않으려고 하니까. 일견 단순해 보이는 체로키 인디언들의 생활 방식은 실제로 오랜 세월 동안 누적되어 온 교육의 결과이다. 그 단순성 속에는 자연에 대한 세밀한 배려와 이웃과 친구를 향한 따뜻한 신뢰가 깔려 있다. 그것은 이 책에서 백인 중심주의를 상징하는 각종 정치가들을 묘사하는 대목과 잘 대조가 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멸망사를 다룬 디 브라운의 『나를 운디드 니에 묻어 주오』를 오래 전에 읽은 이라면, 그 후 20세기 초 인디언들이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문명의 주변부로 밀려나거나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들이 새와 나무와 풀들과 나누었던 영혼의 대화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것은 현대문명이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을 때 또 다른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일한 출구가 될 터이다.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너무 많은 것을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올 여름에 매미소리가 들리는 나무그늘에서 이 소설을 펼쳐 봐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큰 소득이 하나 생겼다. 내 아들에게 귀가 닳도록 해줄 말을 여기서 발견한 것이다."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넣으면 무엇보다 먼저 이웃과 함께 나누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말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퍼지게 된다. 그것은 좋은 일이다.”/본지서평위원

  • 주말
  • 전북일보
  • 2007.06.29 23:02

[책의 향기] 문복록 - 과거에도 미래를 물었다

요즘에도 점을 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직장에서의 승진이나 자식의 입시 문제를 비롯하여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면 꼭 점을 보는 이들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가벼운 심심풀이로 점을 치기도 한다. ‘점을 본다’ ‘점을 친다’는 말을 과거에는 ‘문복(問卜)’이라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문복에 대한 신뢰도가 오늘날 보다 훨씬 높아서 지체 높은 양반들도 대부분 점을 보았던 것 같다. 지금처럼 과학이나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때이고 보면 돌림병이나 천재지변 등 여러 가지로 뜻하지 않는 변을 당하는 경우, 이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피병이나 택일, 과거합격 여부 등 삶에 부닥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문복을 함으로써 안정을 얻기도 하고 한편으론 다가올 화를 미리 대비하고자 했던 것이다. 오늘 소개할 문서는 부안 우반동에 세거했던 부안김씨 종중에서 내려오는 당시 60세의 진사 김수종의 문복록이다. 김수종은 누구인가? 어린 시절에 자신을 애지중지 아껴주던 조부와 생부를 여의고 성년이 되기도 전에 다시 양모 2명과 양부를 잃었다. 더구나 알콩달콩 부부의 정을 채 알기도 전에 병으로 첫 부인과 사별하였고, 그 후 재혼하였으나 딸마저 저 세상으로 보낸 외롭고 불행한 처지였다. 게다가 58세에 무신난(戊申亂)의 역모에 연루되어 아무 죄 없이 1년여 간을 감옥에서 회한과 고통의 시절을 보내기도 하였다. 하루아침에 생사의 갈림길을 헤메는 고통을 당한 김수종은 이 후 인간사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탄하며 자주 문복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남긴 13장의 문복록 가운데 10여 건이 바로 감옥에서 나온 1년 뒤에 작성된 사실을 보면 그의 심정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사진의 문서는 1730년 9월에 작성된 문복록이다. 먼저 9월 이후부터 겨울 전까지의 자신과 집안의 운세를 물었던 것인데, 중간 부분에는 밑에서부터 양효, 음효, 음효, 변효, 양효, 양효 순으로 6효를 표시하였다. 즉 이 점괘는 익(益)괘에서 무망(无妄)괘로 가는 점괘라는 것이다. 풀이하면 돌아오는 봄에 손님을 맞이할 때, 말이나 행동을 삼가지 않으면 북쪽으로부터 질병의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어 본래의 신수는 좋지 않으나 돌아오는 해(亥)월 초부터는 운수가 길하며, 질병도 없고 집안의 운세도 좋아 노비들도 번성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점괘가 후일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확인할 수는 없지만, 김수종 자신도 점괘에 대해서는 확신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전에도 점을 쳐 보았으나 결과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문복을 한 이유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대부 집안의 선비로서 유학적 소양도 충분히 익혔고, 게다가 많은 토지와 노비를 거느려 남 보기에는 행복한 생애를 보냈을 것으로 보이지만, 삶에 대한 불안감은 늘 그를 떠나지 않고 괴롭혔고 그가 겪은 갖가지 불행들은 그를 운명론자로 만들었음을, 이 문복록은 말해주고 있다. /정성미 (원광대강사)

  • 주말
  • 전북일보
  • 2007.06.22 23:02

[책의 향기] 양계영의 행복한 책방이야기

21세기에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은 무엇일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출간한 「21세기 한국인은 무슨 책을 읽었나」에 실린 ‘21세기 베스트셀러 200’에 따르면 조앤 롤링이 쓴 「해리포터 시리즈」가 약 2000만부로 1위를 차지했고, 다음으로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 「WHY시리즈」 「신기한 스쿨버스」「마법천자문」 순으로 집계됐다. 500만부 이상 팔린 책들 모두가 어린이용 소설이거나 학습만화였다. 200위 가운데 경제경영서는 20%(40종)로 분야별로 가장 높은 점유율을 보였다. 20세기말 한국에 불어 닥친 IMF 관리체계의 후유증과 글로벌 시대를 맞이한 현대인들의 자기계발과 재테크, 그리고 실물경제에 대한 관심이 순수문학에 대한 애정을 눌러버린 결과라고 이 보고서는 분석한다. 반면, 과거 20세기 한국 출판계를 호령하던 한국문학은 순위에서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 됐다. 최인호의 「상도」와 조정래의 「한강」이 겨우 10위권 밖에서 턱걸이를 했고, 총 200위까지 조사된 집계결과를 보면 한국소설은 15%인 29종에 불과했다. 출판시장의 침체가 극에 달한 요즈음, 그나마 책 읽는 한국인은 실용서 만을 열심히 읽고 있으며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 한국문학은 설 자리를 잃어버린 채 흔들리고 있다. 이 한없는 방황을 끝내고 이들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는 날이 과연 언제쯤일까. /양계영 홍지서림 전무

  • 주말
  • 전북일보
  • 2007.06.22 23:02

[책의 향기] 세계문화 이해하는 음악여행

모든 전통(민속)음악은 민족 정체성의 문화적 표현으로 각기 독특한 음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몇 소절만 들어보아도 그것이 어느 문화권의 음악인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고유의 민속음악에 쉽게 귀가 열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즐길 수 있기 위해서는 일정정도의 듣기훈련이 필요하다. 아니면 세계 공통적 음악 코드에 의한 윤색이 요구된다. 월드음악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세계화된 민속음악’이다. 기존 음악의 진부함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의 하나로 시도된 이것은 서구 대중음악의 어법을 도입하여 현대적인 감각으로 ‘보편화’한 민속음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세계화’가 그러하듯 월드뮤직이라는 말도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그늘을 동시에 내포한다. 국가나 민족 고유의 특성이 희석되는 희생이 결국 그 고유성 내지는 그 ‘타자성’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월드뮤직의 진정한 가치가 이러한 ‘타자의 이해’ 즉, 각 민족 고유의 문화와 ‘삶의 양식’의 이해를 돕는 데에 있다는 지적도 이러한 측면에서 가능하다. 세계 음반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서구 음악계가 새로운 마케팅 전략의 하나로 만들어낸 말이지만 이를 통해 지구촌 구석구석의 다양하고 독특한 ‘음의 문화’와 접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심영보의 「월드뮤직-세계로의 창」. 이 묵직한 월드뮤직 안내서는 바로 ‘세계문화를 이해하는 흥미로운 항해’의 듬직한 길라잡이로 기획되었다. ‘항구는 노래를 만든다’ ‘흑과 백이 빚어낸 무지개 빛 음악’ ‘좌절 속에서 건져 올린 희망’ 등, 비교감상을 위해 동원된 12개 ‘열쇠 말’들의 함의가 우선 예사롭지 않다. 이들은 각각 그리스의 렘베티카, 포르투갈의 파두, 아르헨티나의 탱고를 아우르거나 혼혈잡종문화가 빚어낸 쿠바와 브라질 음악을 함께 형용하기 위해, 혹은 남미의 다양한 ‘누에바 깐시온’을 포괄하기 위해, 다듬어진 표현으로, 이 부분에서 이미 다채로운 ‘현대화된 민속음악’은 물론 그 탄생배경이 되는 고유한 ‘삶의 양식’에 대한 저자의 심오한 이해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지식정보를 담은 책이 주는 딱딱함을 음악의 탄생, 변천 과정 및 그 역사적·문화적·사회적 배경에 대한 정성 어린 설명과 서정적 필체를 통해 누그러뜨리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음악가와 음반에 대한 꼼꼼한 소개는 어지간한 음악 애호가조차 질리게 만들 정도이다. 자칫 월드뮤직을 향한 항해 준비를 하고 있거나 이제 막 시작한 초보자들의 기를 꺾어버릴 수도 있겠다 싶다. 책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저자 심영보의 내공은 오랫동안 다수의 교양프로그램을 제작한 방송음악전문피디로서의 경력에 힘입은 것일 터. 남다른 기획력과 음악에 대한 열정은 박수를 받을만하다.음악이 영혼을 적셔주고 민속음악이 민족혼를 비춰주는 창이라면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 거울같이 맑고 깊은 샘물에 닿을 수 있다. 세계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우리 전통음악계에도 신선한 자극제요, 듬직한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서구 문화에 경도되어 우리 음악마저 도외시하는 사람들에게도 분명 새로운 눈뜸의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단순한 음악 안내서뿐만 아니라 참된 세계화를 위한 길잡이 ‘문화서’(文化書)로 서가 한 가운데 꽂아두고 싶은 책이다. 소리축제를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다.

  • 주말
  • 전북일보
  • 2007.06.22 23:02

[책의 향기] '심장 불끈 뛰었던 과거 생생하게'

‘1987년 7월 한 학생의 저승 가는 길이 슬퍼서 100만 민중이 모였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것은 여느 역사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사건이었다. 1924년 러시아의 위대한 혁명가 레닌이 뇌일혈로 쓰러졌을 때, 끄레믈리 궁에 그렇게 많은 인파가 모이지는 않았다. 1948년 인류의 성자 간디가 저격당해 죽었을 때, 그의 장례행렬에 이렇게 많은 군중이 모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한렬은 혁명의 지도자도 아니고 인류의 성자도 아닌 그냥 스무 살의 무명 학생이었다. 그런데 100만의 인파가 그의 주검을 싣고 떠나는 운구차의 뒤를 다랐다. 연세대에서 시청 앞 광장까지. 억지로 나온 이는 없었다. 모두 자신의 발로 걸어온 사람들이었다. 어디서부터 흘러온 역사의 강물이 여기까지 온 것일까?’ ‘들어가며’로 시작되는 이 책은 묻는다. 어디서부터 흘러온 역사의 강물인가. 황지우 시인의 동생, 황광우씨가 쓴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창비)는 ‘시대의 격랑을 헤쳐나간 젊은 영혼들의 기록’이다. 80년 광주항쟁 전후부터 87년 6월 항쟁까지, 학교와 공장과 감옥과 거리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젊음을 바친 이들에게도 꿈은 있었으리라. 1958년 광주에서 태어나 고교시절 부터 반독재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 제적되었던 그는 자신의 꿈을 접으며 군사독재정권과 숨가쁘게 대결하던 수많은 젊음들을 그 시대를 겪었거나 겪지 못한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어한다. 이야기는 그가 검정고시를 쳐서 1977년 서울대 사회과학대에 입학한 이후 그의 삶의 행로를 따라 전개된다. 신림동 단칸방에서 둘째형 황지우 시인과 함께 살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창조와 비판이 결여된 당시의 대학 분위기, 학회 선배들의 교조적인 태도와 대안 없는 비판에 실망했던 대학생활, 학생운동에 연루돼 육군 교도소에서 보낸 시간들…. 80년 김대중 내란 사건에 연루돼 모진 고문을 받던 황지우 시인을 구하기 위해 수배생활 중인 그를 경찰에 넘겨줄 뻔 했던 어머니의 기막힌 심정까지 섬세하게 묘사됐다. 자신의 체험과 관련자들의 증언, 기록사진 등은 생생한 역사다. 그의 말대로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다. 잠기는 것이다. 그는 “과거에서 어떤 교훈을 끌어내고 싶지 않다. 역사에서 필연이란, 과거를 살해하고 난 뒤 죽은 시체에서 꺼낸 뼈다귀일 뿐이다. 그것은 생명체가 아니다. 나는 청년들로 하여금 심장이 불끈불끈 뛰었던 우리의 과거를 생생하게 있는 그대로 만지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독자들이 20년 전 청년들의 젊은 날 이야기를 들으며 소설처럼 삶의 호흡을 느끼면서, 철학처럼 삶의 근본을 사유하는 뜻있는 기회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황씨. 그는 나즈막하게 말한다.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책 제목은 윤동주의 시 ‘사랑스런 추억’의 한 구절에서 빌려온 것이다.

  • 주말
  • 도휘정
  • 2007.06.22 23:02

[책의 향기] 행복한 왕자 등

행복한 왕자 / 오스카 와일드 글 / 보물창고 / 9000원"아름다운 것을 보면 눈물이 난다"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동화가 눈물겹도록 아름답기만 한 것만은 아니다.이 책은 행복한 왕자, 나이팅게일과 장미, 욕심쟁이 거인 등 9편 동화를 담았다. <어린왕>은 아름다운 것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왕 이야기. 그는 대관식 전날 밤 꿈에서 대관식 복장을 마련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작가는 왕이 화려한 옷을 벗어 던지고 양치기 시절에 입던 초라한 옷을 입도록 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화려함에 집착하지 말 것"을 넌지시 제시한다. 한스 안데르센 동화가 아름다움과 슬픔의 환상적인 조화라고 하면,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는 아름다움과 날카로운 비판이 매력적으로 어우러져 있다.그래서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는 가시를 감춘 한 떨기 아름다운 장미꽃 같은 동화다.카펫을 여는 아이들 / 후상 모라디 케르마니 글 / 청년사 / 8500원 이슬람 문화에 익숙치 않는 아이들에게 색다른 호기심을 선사할 수 있는 동화 두 편. 하지만 내용이 가볍지만은 않다. 작가는 이란의 시골마을에서 자라 가난에 찌든 이란 사람들의 희망없는 삶을 그렸다.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아버지 빚을 져 카펫 공장으로 끌려간 주인공 네메쿠. 첫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네메쿠는 아버지의 빚 때문에 카펫 공장으로 팔려갔다. 맞으며 일하는 공장 탈출 후 불 때문에 타 죽는 비극을 담았다. 둘째 이야기도 절망스럽기는 마찬가지. 어려서부터 카펫공장에서 일하다 시력을 잃고 등이 굽은 사람들이 그 후유증으로 아이를 낳다 숨지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끝난다.이 책은 헤쳐나갈 돌파구를 열어놓지 않은 채 던져놓은 생각거리가 많은 책이다. 그 여운의 간극에서 희망을 발견하려면 어른과 함께 읽어야 할 듯 하다. 내가 왜 벌을 받아? / 클로드 귀트망 글 / 큰북작은북 / 8000원 학창시절 벌을 받아보지 않은 학생은 없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견뎌냈던 단체 벌이 부당하다는 생각을 한번쯤 해본다. 주인공 줄리앙은 쉬는 시간에 시끄럽게 한 친구들 때문에 단체로 벌을 받게 된다. 그 시간에 화장실에 다녀 온 줄리앙은 "단체로 받는 벌이기 때문에 빠질 수 없다"는 이유로 벌을 받자 지시를 거부한다. 이에 교장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어른들도 실수할 수 있으며 그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라고 꼬집는 줄리앙의 아빠.스스로 생각하는 버릇을 들이기 위해, 다수나 권위에 맞서 자신의 신념을 지킬 용기를 키워 주기 위해 읽힐 만한 책이다. 어른들이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책. 낙타할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 / 이철환 글 / 대교출판 / 9000원비싸지도 않고, 맛있지도 않는데 호기심에 한번쯤 먹어보고 싶은 것. 설탕에 가성소다를 넣어 부풀린 것을 눌러 만든 '뽑기'다. 주인공 봉구는 뽑기를 잘되지 않아 심술이 난다. 하지만 동네 빈터에서 뽑기를 만드는 등에 커다란 혹이 달린 '낙타 할아버지'는 내일 다시 올 것을 주문한다. 낙타 할아버지는 뽑기를 만들어 주며 엄마에게 매를 맞은 봉구를 위로하기도 한다. 베스트셀러 ‘연탄길’의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 얘기를 썼다. 세밀한 묘사 속에 그려진 앙증맞은 아이들의 모습이 정겹다.

  • 주말
  • 이화정
  • 2007.06.22 23:02

[책의 향기] 신도 버린 사람들 등

△ 신도 버린 사람들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김영사 펴냄/1만1000원인간이라는 사실이 불행한 사람들도 있다. 태어난 신분을 절대 바꿀 수 없는 인도의 절대적 신분제도의 족쇄를 풀어버림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던 나렌드라 자다브의 자전적 이야기. ‘내 운명은 내가 선택했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바로 교육이었다’는 저자의 고백은 불가촉천민이라는 족쇄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깨어있는 의식 덕분에 교육을 받기 시작해 인도중앙은행 총재가 되기까지 만만치 않았던 삶을 이야기해 준다.책에는 네 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저자의 아버지 ‘다무’와 어머니 ‘소누’, 저자, 그리고 그의 딸. 이들의 회상과 대화는 인도의 사회상과 생활상, 계급제도 등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 검은 책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민음사 펴냄/9500원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의 장편소설. 오르한 파묵 문학의 원천이 되어온 도시 이스탄불의 역사적 사건과 신화, 전설이 거대하게 그려진다. 1990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을 통해 작가는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찾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스탄불의 변호사 갈립의 아내 뤼야가 짧은 메모만 남긴 채 사라진다. 유명한 칼럼 작가인 그녀의 의붓오빠 제랄 역시 종적을 감춘다. 갈립은 그들을 찾아 이스탄불 전역을 헤매고 다닌다. 그 과정에서 소설의 배경인 80년대 터키의 대중문화와 새롭게 유입된 서양문화가 뒤섞인 채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혼자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외로움을 보여준다.

  • 주말
  • 도휘정
  • 2007.06.22 23:02

[책의 향기] 기억을 가져온 아이 등

기억을 가져온 아이>김려령 글 / 문학과 지성사 / 8500원작가 김려령은 입양자와의 갈등을 다룬 '내 가슴에 산다' 는 작품으로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까지 거머쥔 무서운 신인.'기억을 가져온 아이'는 판타지 형식을 빌어 기억과 망각에 대한 이야기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풀어 쓴 장편 동화다. 아파트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시골로 내려가 혼자 살던 할아버지가 실종되자 차근이 아빠는 아들과 함께 엄마와 헤어진 뒤 시골로 내려간다.실종된 할아버지를 찾으러 꼬마무당 다래와 함께 벽너머 '기억의 세상'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차근이. 하지만 할아버지를 그곳에 둔 채 홀로 돌아오고, 이혼했던 엄마 아빠 역시 재결합하지도 않는다. 작가는 이야기의 결말의 설정 자체를 아예 거부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 다만 그속에서도 우리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기억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형상화냈고, 또 인간 삶에 대한 통찰들을 발견할 수 있다.대한민국 파이팅서정명 글/ 북쇼컴퍼니 / 1만 원지난 해 12월 14일 자정. 세계가 지켜 보는 가운데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의 취임식이 치러졌다. 세계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자리에 한국인이 우뚝 선 순간이었다. 서울경제신문 뉴욕 특파원인 작가는 아 책을 통해 유엔 본부에서 펼치는 반기문 사무총장의 활약상을 생생하게 그렸다. 반 총장의 리더십 그리고 처세술, 부드러운 미소 뒤에 숨겨진 파워, 항상 공부하는 자세와 누구든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 등 그의 인격들을 보고 느낀대로 글로써 공개한 셈이다.모자람이 없는 영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발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보좌관에게 발음을 배우고 있는 그를 통해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는 그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아름다운 둥지이상배 글/ 일곱난쟁이 / 8000원역설적으로 표현할수록 더 가슴 아린 것들이 있다. 부모를 가난과 병으로 차례 차례 떠나보낸 초등학생 세 남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이 그렇다. 하지만 이야기는 신파조로 흐르지 않는다. 다만 멀리서 바라볼 뿐이다. 부모들이 동수 삼남매에게 남긴 것은 판잣집의 가난이지만, 그 속에서도 형제애는 피어난다. 자전거를 사는 것이 동수의 꿈. 동생 동배가 교내 모형 비행기 날리기 대회에서 1등을 하고, 동수가 산 자전거에 삼남매가 함께 타고 달리는 모습으로 마감하는 해피엔딩. '아름다운 둥지'라는 제목의 여운이 꽤 길다.이태영이상용 글 / 뜨인돌 어린이 / 8500원 남녀평등의 이념을 뒷받침한 지금의 가족법은 이태영 선생 노력의 결과다. 서울대학교 법학과 최초의 여학생, 사법고시에 합격한 최초의 여성, 최초의 여성 변호사. 평생을 '남녀평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 온 이태영 선생을 설명하는 말은 다양하다. 헌법에는 남녀평등 조항이 있었지만 1950년대의 가족법은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딸은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도 없고,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태영 선생은 여성의 지위를 찾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가족법은 1998년 선생이 별세하기 전까지 세 차례 바뀌었다. 그는 여성의 인권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5년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 주말
  • 이화정
  • 2007.06.15 23:02

[책의 향기] "열정ㆍ도전ㆍ긍정의 힘이 10배 성장"

“가난한 사람은 이유가 있다!”젊은 나이에 부를 거머쥔 선배의 쓴소리는 20대 중반의 고학생에게 충격이었다.그 날 밤 속울음으로 밤을 새우며 정한 인생의 목표는 ‘인간으로서 내 역량을 열 배 이상 발휘할 수 있는 분야로 진출하겠다’는 것이었다. ‘텐배거’를 삶의 좌표로 삼고 도전하며 살아온 이상직씨가 「10배 성장전략 텐배거」(한국경제신문)를 펴냈다.‘텐배거(tenbagger)’의 ‘배거’(bagger)는 야구의 루타를 뜻하는 말. ‘텐배거’는 ‘10루타’를 말한다. 월가의 영웅 피터린치가 사용한 이래 투자시장에서는 ‘10루타 종목’ ‘10배 수익률’을 의미하는데, 최근에는 개인은 물론 기업, 국가의 10배 성장전략이라는 범주로 확장돼 사용되고 있다. 이씨의 삶은 텐배거의 도전과 성취를 보여준다. 증권회사에 입사해 투자분야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며 첫번째 텐배거의 성취를 보여줬다. 텐배거로서의 두번째 모습은 현대증권 펀드매니저에서 경영자로의 변신. 운용자산규모 5000억원을 상회하는 국내 수위의 투자자문사와 부동산전문회사, 케이아이씨, 삼양감속기, 동명통산 등을 인수, 각 분야에서 최고의 실적을 거두는 국내 중견그룹을 이끌고 있다. 현재는 자산운용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중국, 베트남 등 후발 국가들의 기업들과 함께 윈윈하며 해외에서 부를 창출하는 데 세번째 텐배거의 열정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텐배거’를 10루타 종목, 10배의 투자수익률로 간단하게 불렀다. 그렇게 단순했던 ‘텐배거’는 점차 나와 함께 성장하면서 나를 독려하는 스승이 되었고, 차가운 현실에 굴하지 않고 10배 성장이라는 희망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질 때까지 나와 함께하는 친구가 되었다.”고 말한다.이씨는 텐배거로 가는 로드맵으로 4가지를 제시한다. ‘1g의 열정’과 ‘3분 59초의 벽을 넘어라’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존중하라’ ‘긍정의 힘으로 시작하라’. 그는 “자신의 가슴 속에 단 1g의 열정이라도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며 “열정의 불씨가 화톳불이 되느냐 용광로가 되느냐는 자신의 의지에 달린 것”이라고 조언한다. 인간이 1마일을 4분 안에 돌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길 당시, 마의 ‘1마일 4분 벽’을 깨뜨린 로저 배니스터에게서는 도전 정신을 배울 것을 주문한다. 그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그 역시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가족경제사와 모럴 헤저드를 통해 교훈을 얻은 그는 “실패 이후의 인생이 진짜”라고 말한다.김정태 대한투자증권 사장은 “앞으로는 투자시장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생존하기 힘들어질 것임이 확실하다. 이 책은 투자시장의 ‘텐배거’를 이룬 저자의 명성처럼 투자시장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주고 있다”며 최고경영자를 비롯해 투자시장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홍석주 한국투자공사 사장은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투자시장의 텐배거 전략은 저자의 치열한 역사가 담겨있기에 더욱 값지다. IMF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머징마켓에서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금융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뜻을 같이 한다”며 이씨에게 힘을 실어준다. “평범함 일상에 불타는 텐배거를 날려보자”는 이씨. 그는 전주고와 동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서울대에서 최고경영자과정(AMP)과 국가정책과정(ACAD)을 수료했다.

  • 주말
  • 도휘정
  • 2007.06.15 23:02

[책의 향기] 걸프렌즈 등

△ 걸프렌즈이홍 지음/민음사 펴냄/1만원세 명의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한다. 2007년 제31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걸프렌즈」는 한 남자를 사랑하는 세 명의 여자가 질투와 우정을 동시 품게되는 과정을 주목했다. 「걸프렌즈」란 제목도 이중적 의미를 품고있다. 한 남자의 세 여자친구들을 가리키는 동시에 서로가 서로의 친구가 되는 세 여자의 관계를 표현한 것. 집안도, 외모도, 학벌도, 지극히 평범한 그가 세 여자의 사랑을 한꺼번에 받게된 이유는 ‘피겨스케이팅 선수 같은 황홀한 키스 솜씨’. 3분의 1로 나뉜 사랑은 세 여자를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현실적이지 않다고? 세 여자는 영화나 옷에 대한 취향처럼, 같은 취향의 대상으로서 한 남자를 공유할 뿐이다.△ 경청박현찬 조신영 지음/위즈덤하우스 펴냄/1만원 ‘듣고 있으면 내가 이득을 얻고, 말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이 더 많은 시대. 가만히 귀 기울여 듣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소통의 지혜인지 일깨워주는 책이다. 보통의 대한민국 40대 전후의 직장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경청」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단절된 소통의 답답함을 현실적으로 접근한다. 네 개의 장을 ‘전주곡’ ‘소나타’ ‘미뉴에트’ ‘피날레’ 등 음악에 비유한 것도 흥미롭다.저자는 스토리로직의 대표 박현찬씨와 「성공하는 한국인의 7가지 습관」 저자 조신영씨.

  • 주말
  • 도휘정
  • 2007.06.15 23:02

[책의 향기] 허벅지살 베 부모병 구했던 효자 열녀들

오늘은 조선시대의 효자와 열녀의 기괴한 행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할고(割股) 행위를 고문서에서 살펴보자. 할고란 글자 그대로 허벅지의 살을 도려내는 것으로, 자신의 멀쩡한 생살을 도려내 병든 부모에게 드린 것을 가리킨다. 요즘에야 생각만해도 끔직한 일이겠지만,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에서는 결코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다. 예컨대 그림에 보이는 고문서는 조선 말기로 추정되는 을해년에 전라도 만경의 유생들이 관찰사에게 올린 상서인데, 같은 고을의 임시원과 그의 아내 백씨의 효행과 열행을 칭송하면서 이들에게 정려의 표창을 내려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기재된 이들 부부의 행적은 그야말로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이다. 임시원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위고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어찌나 효성이 지극하였던지 하늘도 감응하여 어머니가 꿩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면 옆집 개가 알아서 꿩을 물어오고 겨울날에 생고사리가 먹고 싶다고 하면 하늘에서 생고사리가 저절로 떨어질 정도였다. 아내인 백씨도 남편 못지 않았다. 그녀는 시어머님과 남편을 지극 정성으로 섬겼으며, 남편이 병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자기 살을 베어내어 남편을 살리고자 하였으며, 끝내는 자기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여 이틀이나 남편의 목숨을 연명케 하였다. 할고와 단지(斷指)는 백씨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행적은 아니다. 조선시대의 효자 열녀에게 정려를 내려 줄 것을 청하는 상서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어김없이 이 대목이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에도 할고를 한 효자와 열녀들에게 정문을 세워 표창하였다는 기사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호사가의 심술궂은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 할고가 정말 효험이 있었던 것일까? 고문서의 기록들은 한결같이 할고로 인하여 환자가 이틀이나 사흘을 연명하였다고 적고 있지만, 정려를 청하는 기록인만큼 아무래도 곧이 곧대로 믿을만한 것은 못된다. 그보다는 의료시설이 변변하지 못한 당시에 비위생적인 방법으로 할고를 함으로써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놀랍게도 의학적인 면에서 할고의 효능을 뒷받침해주는 의서가 일찌기 중국에서 발간된 적이 있다. 739년 당나라의 명의(名醫) 진장기(陳藏器)가 펴낸 ‘본초습유’는 인육(人肉)을 노망뿐만 아니라 폐병으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쇠약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중국에서 인육을 약으로 삼는 관습을 조장하는데 이 책이 한몫 거들었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나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불교에서 신체공양의 의미로 할고가 행해졌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설령 할고에 효험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허벅지를 베어낸 당사자는 상당한 후유증을 앓았을 것이 틀림없다. 이를 두고 자해행위로 매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효자 열녀는 부모와 남편의 간병에 자신의 아픔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유호석 전북대박물관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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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6.15 23:02

[책의 향기]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밀의 화원』과 『소공녀』의 삽화를 그린 미국의 화가이자 동화작가인 타샤 튜더의 삶의 방식은 아주 독특하다. 미국 버몬트 주의 시골 30만평의 너른 땅에 ‘지상의 낙원’이라 할 만큼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19세기 방식에 거의 가까운 스타일로 살고 있는 이 92세의 깡마른 할머니의 삶을 흔히 ‘동화 같은 삶’이라고들 한다. 그녀가 글을 쓰고 사진가 리처드 브라운이 그림 같은 사진을 찍어 펴낸 책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는 그 놀라운 삶의 면모를 실감나게 보여준다.그녀는 자신이 기른 아마로 실을 잣고 베틀로 손수 천을 짜서 바느질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 과일과 채소를 기르고 염소젖으로 요구르트와 치즈를 만들고 장작 스토브로 음식을 조리하며 필요한 것은 대부분 손수 만들어 쓴다. 옷도 가구도 온통 귀한 골동품을 그대로 사용한다. 꼭두각시 인형을 만들어 인형극을 보여주고 아이들에게 전통의상을 만들어 입히는 것을 즐긴다. 쉬지 않고 부지런히 몸을 놀리며 해마다 천개의 알뿌리를 심는다. 최고의 삽화가에게 주는 칼데곳상을 수상하였고 10년간 100권이 넘는 그림책을 출간했으며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화작가인 그녀지만, “나는 상업적 화가이고 먹고 살기 위해 이 작업을 해왔다”라며 결코 예술가연 하지 않는다.마크 트웨인, 소로우, 아인슈타인, 에머슨 등과 교유하던 집안에서 자란 그녀는 중년에 쓴 동화 『코기빌 페어』가 큰 성공을 거두어 그 인세로 버몬트의 황무지를 매입해서 오늘의 별천지를 만들어 내었다. 남편 없이 네 자녀(둘째 며느리는 한국인이라고 한다)의 어머니인 그녀는 직업이 가정주부라고 당당히 말하며,“가정주부야말로 찬탄할만한 직업인데 잼을 저으면서도 세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오늘날 우리나라 도시민의 60%가 훗날의 전원생활을 꿈꾼다고 한다. 많은 경우 그것은 그저 '꿈'일 뿐이다. 타샤 튜더의 삶의 방식 역시 너무도 별난, 그야말로 ‘꿈같은’, ‘동화적인’, ‘비현실적인’ 그것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저 그녀의 삶이 두드러지게 반문명적이고 비도시적어서 우리의 회귀본능을 자극하는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녀의 삶의 방식은 문명 전환의 이 시대에 다시 많은 이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간디, 소로우, 니어링 부부, 그리고 애미쉬의 삶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사실 타샤 튜더의 삶은 문명과 비문명, 도시와 전원, 미래지향과 복고라는 이분법을 뛰어 넘는다. 그러한 삶은 그 자체만으로 시공을 초월해서 인간적이고 자연적이고 생태적이고 상생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그러한 삶을 아주 별나게 보이게 하는 오늘 우리들의 고도로 문명화된 삶은 어떠한가? 이 책을 통해, 무한성장을 추구하는 그래서 지속가능하지 않은 오늘 우리들의 삶이 왜곡되고 황폐화되었으며 비인간적이고 부자연스러우며 반생태적이고 상쟁적이라는 자각이 들지도 모른다.타샤 튜더는 말한다.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란 온전히 마음에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만족함으로써 행복을 찾으세요.” “지름길을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가치 있고 소중한 것에는 시간과 정성이 반드시 따르는 법이거든요.” 그리고 다음과 같이 독백 같은 말투로 우리들의 가슴을 친다.“요즘 사람들은 너무 정신없이 살아요. 들국화차를 마시고 저녁에 현관에 앉아 개똥지바귀의 고운 노래를 듣는다면 한결 인생을 즐기게 될 터인데.....”/최효준(전북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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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6.15 23:02

[책의 향기] 약자들의 연대를 꿈꾼다

1996년 8월, 여름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서울 신촌 연세대를 둘러싼 수천 명의 경찰 병력과 학교 안에서 고립된 학생들의 대치는 열흘이 다 돼가도록 끝날 줄을 몰랐다. 섭씨 30도가 넘는 더운 날씨에 두툼하게 껴입은 방석복, 헬멧, 거기에 방독면까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최루탄 냄새는 ‘보너스’였다. 숨이 턱턱 막혀온다.이제 겨우 스무 한 두 살, 전·의경 아이들은 제 또래 아이들을 그렇게 적으로 바로 보고 서있었다. 그 아이들 중에는 나도 포함돼 있었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동안 국가주의에 기반한 질서교육과 반공교육을 받고 자라난 아이들에게 학교를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는 또다른 아이들은 국가의 질서를 해치는 폭도들이었다.그 해 겨울도 그랬다. 김영삼 정권이 날치기로 무리하게 밀어붙인 노동법에 노동계가 들고 일어났다. 종로 한 복판,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노동자들과 대치하고 있던 우리들에게 그 순간만은, 그들 또한 적일뿐이었다. 사실 학교를 점거하고 있던 그들은 우리의 친구였고, 도로에 나와있는 그들은 우리들의 아버지, 삼촌 혹은 미래의 내 모습일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2년 간 학교 교육을 통해 체화된 의식들은 군대에서 더욱 공고해져만 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군대는 그런 곳이었다.군 생활을 마친 뒤 다시 돌아간 학교의 분위기는 싹 달라져 있었다. 사회 변혁과 이념 같은 것에 몰두하던 선배들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모두가 토익점수와 학점, 각종 스펙에 목을 매고 있었다. 정치, 사회 같은 거시적인 문제들은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 돼버렸다.혼란스러웠던 나의 20대 중반,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만났다. 조용 조용, 조근 조근 말하지만 논리적이고 강단있는 그의 말투처럼, 이 책도 서정적이지만 날카롭게 한국 사회의 폐부를 들춰낸다.‘꼬레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 갈 수 있는 택시 운전사, 홍세화. 그는 이 책을 통해 ‘똘레랑스’라는 생소한 말을 유행시켰다.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용인하는 ‘똘레랑스’, 이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를 힘주어 말하는 그의 글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학교, 직장, 심지어 교회에서도 공동체나 사회정의, 사회적 연대보다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이야기하는 한국 사회에 그는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대안이 있음을 보여줬다.「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가 출간된 지 10여 년이 지났다. 그토록 배타적이던 한국 사회도 홍세화를 받아들였고, 그는 돌아왔다. 그러나 많은 권위들이 해체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가 똘레랑스가 넘치고 사회적 연대를 쉽게 용인하는 사회가 됐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되고 무한 경쟁 사회가 되어갈수록 이 책이 주장하는 사회정의와 사회적 연대 같은 말들은 역설적으로 더욱 빛난다. 한국사회와 중앙에 비해 상대적인 약자가 되어버린 지역사회에, 이 책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이상현(전북대학병원 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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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7.06.15 23:02

[책의 향기] "그 절망감은 너무도 인간적"

“전도연이란 배우는 영화에서 고통을 바르고 나온 것 같았어요.”전도연이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다음날, 한 중앙지에는 영화 ‘밀양’의 원작자인 이청준씨의 인터뷰가 실렸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얼마나 실감나게 소설 속의 여자를 연기할까 싶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는 극찬이었다. 문득 원작이 궁금해 졌다. 한국 문단의 거목 이청준씨의 중편소설 「밀양-벌레 이야기」(열림원).영화와 원작의 차이는 크다. 소설에서 여자는 자살을 택하지만 영화 속의 여자는 계속 살아간다. 어떤 것이 더 고통스러운 것일까. 「밀양-벌레 이야기」는 실제 사건을 소재로 쓴 것이다. 어린이 유괴살해 사건의 범인이 형 집행 전에 남긴 마지막 말은 ‘나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평화로운 마음으로 떠나가며, 그 자비가 희생자와 가족에게도 베풀어지기를 빌겠다’는 요지였다. 이청준은 작가 서문에서 “그것은 내게 그 참혹한 사건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요. 내가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보다는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 때문이었어요.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고 있었어요. 나는 새삼스레 그를 용서할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지요.”신앙심으로 아이를 죽인 범인을 용서하기로 한 그녀. 하지만 이미 주님의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있던 범인을 보며 그녀가 느낀 배신감은 “너무도 분명하고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절망감은 너무도 인간적인 것”이었다. ‘섭리자의 사랑 앞에 사람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과 권리란 무엇인가!’저자는 “이 소설은 사람의 편에서 나름대로 그것을 생각하고 사람의 이름으로 그 의문을 되새겨본 기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이야기가 ‘우리 시대 영상예술의 달인’ 이창동 감독에 의해 새 영화작품으로 제작됨을 계기로 한 번 더 꼼꼼히 읽으며 손질을 보태고난 지금에도 나는 여전히 제 울음소리조차 낼 수 없는 피투성이 인간의 영혼가 다시 마주하게 된다”고 적어놓았다. 「밀양-벌레 이야기」는 1985년도에 발표된 단편으로 영화 ‘밀양’이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선정되면서 단행본으로 빛을 보게 됐다. 새로운 독자들을 위해 다시 선보이는 만큼 소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이미지와 결합했다. 네거티브필름과도 같은 이미지들은 한 아이가 사라져가는 과정과 아이가 사라진 뒤 남은 자들이 겪는 극심한 고통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삽화를 담당한 최규석은 ‘21세기를 이끌 우수인재상’을 수상한 만화계의 촉망받는 젊은 만화가. ‘적발’하고 ‘고발’하는 듯한 선 굵은 삽화는 책에 무게를 더한다.‘축제’ ‘서편제’ ‘천년학’ 등 영화로 풀어낸 소설 중에 유독 그의 작품이 많다. 그가 지닌 힘이 분명 소설 속에 생생하게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 주말
  • 도휘정
  • 2007.06.08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