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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겨레위한 삶

살아오면서 책은 나에게 인생의 동반자로서 많은 지침과 길잡이 역할을 했는데, 만일 책이 없었다면 나 같이 무식하고 아둔한 이는 아마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동화책을 읽으며 해학과 삶의 여유란 게 이런 것이구나! 느낄 수 있었고, 중·고등학교 때 읽은 고전이 갖는 깊이로 바른 이성(理性)과 감정의 적절한 조화를 꾀할 수 있었다. 특히 대학 생활 중 읽은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白凡逸志)는 향후 내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내 삶의 자세와 어려운 상황들을 판단하고 돌파하는데 큰 보탬이 됐다. 백범의 어린시절, 학문연마, 종교관, 청년기-의병, 치아포 사건, 사형수 생활, 탈옥, 방랑생활, 임정시절, 이봉창-윤봉길의거, 중경 임정시절, 해방 전후의 모습, 귀환 후의 모습을 통해서 한국 현대사에서 백범처럼 드라마틱하게 살다간 분도 없는 듯 싶다. 「백범일지」의 상권은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서 기술한 것으로 그의 자녀들에게 남기려는 의도가 중심이다. 개인의 성장과 활동에 초점이 맞춰진데 비해, 하권은 임시정부 활동을 비롯 민족의 독립운동에 대한 경륜, 소감을 동포에게 알리고자 썼다는 차이점이 있다. 물론 상·하권 모두 백범 선생의 일생이자 겨레와 나라를 위한 삶의 기록이다. 백범의 뜻은 대수롭지 않고 평범하더란 뜻이다. 「백범일지」에서 ‘일지(逸志)’의 한자 표기는 세속을 벗어난 고결함을 의미한다. 즉, 「백범일지」는 대수롭지 아니하고 평범한 사람이 기록한 책으로 세속을 벗어난 고결한 뜻을 담고 있다. 선생은 ‘몽우리 돌’로 불려지기를 좋아했다. 백범은 진정한 교육자의 사표였으며 문화로 세상에서 우리 민족을 드높일 수 있다고 했다. “내 나이 70이 넘었으니 직접 국민교육에 종사할 시일이 넉넉지 못하거니와, 나는 천하의 교육가와 남녀 학도들이 한 번 크게 마음을 고쳐먹기를 빌지 아니 할 수 없다.”고 「백범일지」는 끝을 맺는다.「백범일지」를 통해 선생은 왜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되려고 했으며, 그것을 평생을 통해 실천하려고 하였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요즘처럼 대선 주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날 때 백범은 바른 지도자의 모습은 어떤 상이라 이야기할까? 백범의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통일을 염원한다면 통일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너도 나도 마음 좋은 사람을 평생 실천한 ‘몽우리 돌’의 고결한 뜻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함을 일깨워 주었으며, 선생의 겨레 사랑과 나라 사랑의 근간인 민족애가 바탕이 될 때 비로소 통일은 한걸음 앞당겨 질 것이다. 올해도 계속되는 뙤약볕을 피해 중학생 딸아이와 같이 「백범일지」를 읽으며 여름을 쉽게 났음 한다.

  • 주말
  • 전북일보
  • 2007.08.17 23:02

[책의 향기] 해유문서 - 조선 관리들의 업무 인수인계

옛 문서의 향기-해유문서조선시대 관리들의 인계인수‘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 할 만큼 사람을 쓴 다는 것은 일의 모든 것이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능력있는 사람을 잘 가려서 쓰는 것이 조선시대 목민관의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였으니,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인사이동철이 되면 갈 곳을 찾지 못해서 이리 저리 탁구공처럼 튀기는 사람들은 어쨌든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혔거나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일 것이다. 철밥통 시대의 종언을 울리는 울산발 회외리가 무서운 것도 이제는 더 이상 철밥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인사철이 되면 여기 저기 짐을 꾸리는 사람들이 많다. 맡고 있던 업무를 접어두고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나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업무의 인수인계일 것이다. 공무원들이 보직을 변경할 때 인수인계서를 쓰는 풍토가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조선시대 공무원들은 정확한 인수인계서의 작성과 확인이 주요한 업무 중의 하나였다.1669년 부안 우반동에 살던 평산도호부사 김명열은 여러해 동안 앓아오던 고질병이 초상을 치루면서 악화되고 안질까지 겹치자, 계속 수령의 일을 맡아 볼 수 없어 황해도 관찰사에게 사직서를 올렸다. 사직서를 올린 김명열은 후임 평산부사에게 넘겨줄 업무와 재물 등의 목록을 작성해 보냈다. 후임 평산부사는 전임 부사가 보낸 목록을 토대로 일일이 대조 검토한 후 이 사실을 관찰사에게 고하게 된다. 관찰사는 후임 부사가 보낸 목록을 살펴 본 후 이상이 없으면 전곡(田穀) 업무는 호조에, 그리고 군사와 군기 업무는 병조에 보고를 한다. 호조와 병조에서 이상이 없음을 확인 한 뒤 이조에 공문을 보내면 이조는 전임 부사를 해유(解由)시키고 조흘첩을 발급한다. 위 문서는 김명열이 평산도호부사를 사직하고 해유문서를 작성한 다음 규정된 절차에 따른 확인을 거쳐 호조에서 이조에 보낸 해유 요청 공문인 셈이다. 해유란 ‘전임 관리가 후임자에게 사무와 물품 등을 대조하여 재고를 조사한 뒤 문서를 작성해 업무를 인계하는 행위’를 말하며, 해유문서는 이 때 작성되는 문서를 말한다. 정당한 절차를 거쳐 해유를 받지 못한 관리는 업무 인수인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는 곧 관리의 인사고과에 반영된다. 해유된 관리에게 조흘첩을 발급하는 것은 해유여부가 인사고과에 어떻게든 반영되었기 때문이다.한 고을을 책임지고 있는 수령으로서 인사이동에 따른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이러한 시스템은 잠시 왔다가 가는 자리쯤을 생각하고 인수인계서에 대한 검수는 생각지도 않는 요즘 사람들에게 번거롭기만 한 요식 행위일지 모른다. 잦은 인사이동으로 이러한 해유제도가 얼마나 현실에 유용한 시스템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 해유는 일이 터졌을 때만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닌 상시적인 책임 인사제의 전형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홍성덕(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 주말
  • 전북일보
  • 2007.08.17 23:02

[책의 향기] 삶의 본질은 자연으로... - 최효준 도립미술관장

헤르만 헤세의 6촌 손녀 유군더트 전 중앙대 교수는 “독일인보다 한국인이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질풍노도 시기의 통과의례 거리였던 『데미안』을 비롯해, 『수레바퀴 밑에서』『싯다르타』『나르치스와 골드문트』『유리알 유희』등 명작의 저자로 우리에게 사랑받았던 헤세(Hermann Hesse)의 『정원일의 즐거움』(원제: Freude am Garten, 두행숙 역, 도서출판 이레, 2001)은 저자가 직접 그린 소묘와 수채화까지 곁들여져 읽는 이를 고요하고 충일한 사색과 명상의 세계로 이끈다. 헤세는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자 집필 이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정원에서 보내며 그곳에서 쉬고, 관찰하고 사색했다. 그의 정원은 끔찍한 전쟁에 휩싸인 당대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자연과 생명의 흐름에 심신을 맡겨 그 혼란스럽고 고통에 찬 시대에 영혼의 평화를 지켜주는 보루였다. 헤세의 심오한 삶에 대한 성찰은 그의 정원에서 이루어진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2004년 전시로 국내에서도 소개된 그의 ‘정원 그림’들은 화풍이 담백하고 진솔하여 이 책에서도 그의 수필과 시의 문체와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헤세는 어린 시절부터 큰 나무뿌리와 돌 틈에 솟아난 색색의 줄기 같은 자연의 기이한 형태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것이 지닌 고유한 매력에 마법에 걸리듯 사로잡힌 채 복잡하게 얽힌 비전(秘傳)의 언어에 몰두했다. 하여 헤세는 우리와 자연 속에서 활동하는 것이 바로 이 분리될 수 없는 신성함임을 깊이 깨달았고, 이 깨달음이 그의 삶을 이끌었고, 그를 늘 정원에 머물게 하였다. 그는 산 강 나무 잎사귀 뿌리와 꽃 등의 모든 자연 현상은 우리 안에 그 원형이 내재되어 있고, 우리가 사랑의 힘, 창조의 힘으로 느끼는 그 영원성을 지닌 영혼이 자연과 곧 하나임을 ‘정원에서의 삶’을 통해 체감하고 있었다. 헤세가 그의 정원에서 가장 소중하고 성스럽게 생각했던 것은 이름답고 강인한 나무들이었고, 인간보다 오래 살며 고요하고 긴 호흡을 가진 나무를 늘 예찬했다. 정원의 오래된 나무가 폭풍우에 뿌리 채 뽑히거나 나이 들어 쓰러졌을 때 그는 말했다. “너는 그래도 주어진 숙명에 따라 품위 있고 온당한 죽음을 맞이했으니 행복하였다. 너는 우리 인간들보다 멋있고 아름답고 기품 있게 죽어갔다.” 그는 당대인들이 의구심을 가진 것처럼 미숙하거나 반동적이거나 시대의 요구에 등을 돌리고 현실에서 도피한 작가가 아니었다. 후에 발간된 10여권에 이르는 정치 및 문화비평 분야의 간행물이 세인들의 그러한 혹평을 잠재웠다. 그는 정치적인 이데올로기 압제의 희생자들에게 정원이 딸린 자신의 집을 개방했으며, 수백의 이주자들과 도움을 구하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대단한 행동력으로 그들을 지원했다. 그는 세계 각지에서 조언을 구하기 위해 보내 온 수천 통의 편지들에 답장을 쓰며 계몽했다. 자원 봉사를 하고, 보증을 서주거나 추천서를 써주거나 비자를 주선해주며, 집단적이고 파국적인 권력에 대항해서 능력의 한계에 이를 때까지 모든 일을 쉼없이 했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썼다. 양차 세계대전이 거푸 터졌던 인류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그 시대, 소극적인 은둔자가 아니라 그토록 행동적인 지성으로 꿋꿋한 삶을 살았던 그를 그이게 해 준 원천이 바로 대자연을 축약하여 담은 ‘정원’이었을 것이다. 이 시대의 우리들도 한 뼘 정원을 필요로 하는 소이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 주말
  • 전북일보
  • 2007.08.17 23:02

[책의 향기] 내 방 찾기 전쟁 등

△ 내 방 찾기 전쟁로버트 킴멜 스미스 글 / 푸른숲 / 8500원할아버지와 손자 간 내 방 찾기 전쟁이 '장난이 아니다'. '노인 공경' 교육을 받아 온 독자들은 '조손(祖孫) 전쟁'이 벌어졌다며 경악할 지도 모르겠다. 열두살 피터는 할아버지에게 좋아하는 자기 방을 내주기가 싫어 고군분투한다. 그는 한밤중에 알람 울려 할아버지 잠 깨우기, 할아버지가 아끼는 시계 숨기기 등 자신의 방을 빼앗으려는 할아버지에 대한 공격을 거침없이 펼친다. 피터의 슬리퍼 숨겨 놓기, 칫솔 숨겨 놓고 '손가락을 이용해라'라는 쪽지 남기기 등 할아버지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이쯤되면 손자와 할아버지의 방 빼앗기 전쟁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듯 하다. 그러나 작가가 결말에서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거듭나는 가족애다. 그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피터와 할아버지를 통해 서로의 자리를 합리적으로 찾아가는 과정을 코믹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렸다. △ 히컵크레시다 코웰 글 / 한림출판사 / 8500원겁쟁이 훌리건 바이킹 소년 히컵이 모험을 통해 영웅으로 성장하기까지. 용감한 바이킹이 되려면 히컵을 포함한 소년 10명은 자신만의 애완동물을 훈련시켜 성년식을 통과해야 한다. 또래들 사이에서 유슬리스(쓸모없는 아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주인공 히컵은 육아실에서 잡아온 꼬마용 투슬리스(이빨이 없다는 뜻)가 명령에 따르지 않자 고민에 빠진다. 그러나 열세 살 바이킹 소년 히컵은 포기하지 않고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꼬마 용을 길들이며 진정한 바이킹으로 성장한다. 주인공 히컵(딸꾹질-주인공), 클루리스(알쏭달쏭한 아이), 피시레그(물고기 다리), 워티호그(사마귀 얼굴 돼지), 스노틀라우트(버릇없는 코딱지) 등 등장인물의 이름만 듣고도 인물의 성격과 생김새를 상상해보는 즐거움이 있다. 성장소설로 전 3권이며 오는 2009년 드림웍스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할 예정이다.△ (아빠가 들려주는) 안데르센 사이언스김경호 외 글 / 지성사 / 1만3000원인어공주의 용궁은 수심 몇 m에 존재할 수 있을까. 엄지공주는 하루에 몇 끼를 먹어야 할까. 백조와 오리가 어떻게 한 어미 밑에서 태어났을까 등 안데르센 동화 속 과학 이야기 14편을 모았다. 이 책은 환상적인 세계를 따뜻하고 서정적인 시각으로 그려낸 것으로 유명한 안데르센 동화를 과학적인 눈으로 쉽게 풀어 썼다. 과학 교육을 전공한 교수 3명이 아빠가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설명해 나간다.각 동화마다 줄거리를 짧게 재구성하고, 동화별로 생각해 볼 만한 과학 지식을 별도로 설명한 점이 눈길을 끈다. "과학하는 태도야말로 동화적인 상상력과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고 보는 작가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 내 아이 노벨상 수상자로 키우기드림아이 지음 / 현문미디어 / 각 1만원100년 역사상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노벨상을 받았을까. 알프레드 노벨, 다이너마이트, 스웨덴, 마리 퀴리, 어니스트 헤밍웨이, R. 타고르, 알베르 카뮈, 알베르트 슈바이처, 달라이 라마, 넬슨 만델라, 김대중 전 대통령….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는 우리나라 언론에서 특히 관심이 많은 문학상이나 평화상 수상자 일부만 알려져 있을 뿐 대부분 베일에 쌓여 있다.'내 아이 노벨상 수상자로 키우기'는 이런 문제를 단박에 해결해 주는 어린이용 학습만화 시리즈. 이 책은 개인적인 역경을 이겨내고, 인류에 공헌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겨 노벨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인물 30명을 조명했다. 우선 노벨 화학상과 문학상, 평화상 수상자 중 10명씩 선별해 이들의 성장 과정과 업적, 생애를 만화로 재미있게 풀어냈다.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 주말
  • 이화정
  • 2007.08.17 23:02

[책의 향기] 엽기 세계사 등

△ 엽기 세계사이성주 지음/추수밭 펴냄/1만3000원「엽기 조선왕조실록」 「엽기 조선풍속사」의 이성주가 펴낸 엽기 역사 시리즈 네번째 책. 세계사의 다양산 사건과 역사 속 인물들을 엽기적 시선으로 해부했다.‘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던 갈릴레이가 생계를 위해 군사학 과외를 뛰는 잘 나가는 과외선생이었고, 위인전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에디슨이 발명가이기 전에 악덕 사업가였다는 사실. 역사가 재밌어진다.“어깨에 지나치게 들어간 힘을 빼고 역사를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 정색하지 않고 역사를 즐기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가는 “역사를 업으로 하지 않는다면, 즐기는 방법을 찾는 것이 역사에 더 가까이 다다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눈물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문학동네 펴냄/9500원일본에 비해 한국에는 덜 알려진 중국 소설. ‘중국 제3세대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쑤퉁이 중국 4대 민간설화 중 하나인 맹강녀 이야기를 소재로 쓴 장편소설이다. 31개국 33개 출판사가 참여하는 출판 프로젝트, ‘세계신화총서’의 중국 대표작가로 선정돼 집필했다. 재산도 권력도 가지지 못한 민초들이 유일하게 가질 수 있었던 눈물의 힘을 긍정함으로써 현대인에게 진실하고 순수한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 마음대로 울 수 없었던 북산의 마을 여인들이 눈의 제외한 신체의 다른 부위로 몰래 우는 방법을 터득한다는 내용도 흥미롭다.

  • 주말
  • 도휘정
  • 2007.08.17 23:02

[책의 향기] 거짓말이 삶의 위안이 되는 세상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나요?”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작가는 82년생이다. 스물여섯. 아직은 소설 쓰기가 버거울 나이 같지만, 정한아의 「달의 바다」(문학동네)는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다. 김영하 조경란 박현욱 박민규…. 번뜩이는 재치와 기발한 상상력이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만나 소설 읽는 재미를 줬던 작가들 역시 ‘문학동네작가상’이 발굴해낸 이들. 그래서 정한아의 등장은 우선 반갑다. 신문사 입사시험에 번번이 낙방하면서 백수생활을 하고 있는 ‘나’(은미). 빈둥빈둥 놀지만 말고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갈비집 일이라도 거들라는 어른들 구박 속에서 ‘나’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는 우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15년 전 소식이 끊긴 고모가 다른 식구 몰래 할머니에게 미항공우주국(NASA) 우주비행사가 됐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온다. ‘적금과 등산, 단골손님, 소갈비, 독감 예방주사에 대한 믿음’을 가진 할아버지와 달리 ‘환상과 꿈, 아름다움, 비극, 무지개에 대한 믿음’을 가진 할머니는 ‘나’에게 고모를 만나보도록 한다. 하지만 미국으로 찾아간 고모는 우주비행사가 아닌, NASA의 스낵바와 기념품점 직원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성격적 대립, 고모의 감춰진 불행, 트랜스젠더 길을 택한 친구의 고민, 그리고 백수인 ‘나’의 절망…. 그러나 소설은 고모의 말처럼, ‘삶에 대한 긍정’을 이야기한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야.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은데 늘 우리의 밑그림을 넘어서니까 당황하고 불신하게 되는 거야.”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진짜 이야기는 긍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언제나 엄마가 말씀해 주셨잖아요?”다. 처음에는 진짜 이야기였다가 나중에는 거짓말이 되고 결국은 진실로 귀착되는 아이러니. 진실과 거짓이 교차하는 소설을 놓고, 역시 일종의 거짓말인 소설을 쓴 작가는 고모의 말로 용서를 받는다. “만약에 우리가 원치 않는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거라면, 그런 작은 위안도 누리지 못할 이유는 없잖니.”거짓말이 삶의 위안이 되는 세상. 이 한 문장만으로도 독자들은 82년생도 충분히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걸 새롭게 깨닫게 된다. 작가와 비슷한 또래라면, 손으로는 열심히 책장을 넘기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질투와 부러움이 묘하게 얼크러질 지도 모른다. “다시 태어나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나가고,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브래드 피트와 사귀고 싶다”는 스물여섯 아가씨. “하지만 지금 당장은 한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 따로 있다. 아직 쓰이지 않은 나의 소설이 나를 지지해 준다”는 젊은 소설가. 벌써부터 그의 다음 소설을 기대해도 될까?

  • 주말
  • 도휘정
  • 2007.08.17 23:02

[책의 향기] 양계영의 행복한 책방이야기

이탈리아 경제학자 파레토가 주장한 경제학 용어에 ‘2080법칙’이 있다. ‘전체 결과의 80%는 전체 원인중 20%에서 비롯됐다’는 뜻이라 한다. 20%의 소비자가 80%의 매출을 차지한다거나, 국민의 20%가 전체 부(富)의 80%를 차지하는 경향 등이 ‘2080의 법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출판계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각종 통계를 검토해 보면 전체 출판사의 상위 20%가 매출액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바꿔 말하자면 하위 80%의 출판사는 매출액의 20%를 놓고 정말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하위 80% 출판사에는 이른바 한 우물만을 파는 전문 출판사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출판사를 세우고 지금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길만을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걸어 온 결과가 ‘2080법칙’의 하위 80%에 해당한다면 출판인으로서는 맥이 탁 풀릴 노릇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불균형 현상이 조금씩 해소되어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거대 출판사는 오히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마케팅 비용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지만, 외길을 묵묵히 걸어 온 출판사에게는 고정 독자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어 작지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문화에는 무엇보다 다양성과 창조성이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 면에서 힘겹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이들 출판사에게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양계영(홍지서림 전무)

  • 주말
  • 전북일보
  • 2007.08.10 23:02

[책의 향기] 소지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판매를 둘러싼 논쟁이 뜨거운 요즘이다. 국내 축산농가를 보호하고, 국민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과 값싼 소고기의 수입과 판매를 주장하는 입장이 좁혀지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은 '소'가 '고기'라는 말과 어울려 더 친숙하지만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시대를 살았던 조선시대에, 소는 '고기덩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농삿일에 없어서는 안될, 한 집에 사는 식구 같은 대접을 받기도 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생구(生口)'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라 살림에서도 소나 말은 매우 중요하였다. 때문에 고려 공민왕 때에는 홍건적의 침입으로 거의 멸살된 소와 말을 보호하기 위해 '금살도감(禁殺都監)'을 설치하여 소나 말의 도살 등과 관련된 일을 관장하게 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농우(農牛)'를 보호하기 위해 소 잡는 백정을 도성 안 90리 이내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사복시(司僕侍) 같은 기관을 통해서 '분양우(分養牛)' 등을 위탁하여 기르게도 했다. 이렇듯 소는 개인 뿐만 아니라 나라에서도 관심과 보호를 받았던 가축이었다. 이런 소를 만약 몰래 도살하기라도 하면『대명률』의 '재살우마조(宰殺牛馬條)'에 따라 곤장 100대에 처해졌고, 밀도살자 1명을 체포한 사람에게는 면포 14필을 준다는 포상규정도 마련되어 있었다. 때문에 조선시대 소를 잡는 일은, 그것이 개인의 소유라 할지라도, 관에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했다. 이번에 소개할 고문서는 그런 귀중한 소를 어머니를 위해 잡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의 소지이다. 전라도 장수군 천천면 감나무골에 살았던 한경조(韓?祚)는 갑자년 12월에 수령에게 소지를 제출하였다. 한경조에게는 병석에 있는 어머니가 계셨는데, 어느 날 소의 온혈(溫血)과 생간(生肝)을 먹고 싶다고 했다. 구십 노모가 어쩌면 살아서 마지막일 지도 모를 소원을 하니 아들된 자로 어찌 두고 볼 수만 있었겠는가? 한경조는 수령에게 소지를 올려 한 살배기 송아지를 잡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수령은 '삼생(三牲)' 즉 소?양?돼지 세 가지 희생을 갖춘 좋은 음식으로 부모를 봉양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든 있는 것이라면서 특별히 작은 송아지를 잡을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밀도살을 국법으로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경조는 도살을 허락받는 절차를 거쳐 송아지를 잡아서 어머니에게 드렸던 것이다. 아마도 귀하디 귀한 어린 송아지 고기를 맛본, 한경조의 구십 노모는 아들의 효성에 감복하여 병석에서 일어났을 지도 모른다. 율곡 이이는 평생 소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살아서 사람들을 위해 실컷 일만 한 소를 죽어서 고기마저 먹는 것이 어질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즘의 소는 '고기'로 가공되기 위해 사육되는 제품에 불과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 때 목숨을 지녔던 존재에 대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잠시라도 지녀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이선아(한국고전문화연구원 상임연구원)

  • 주말
  • 전북일보
  • 2007.08.10 23:02

[책의 향기] 두·근·두·근 책장 넘기며 '더위사냥'

공포영화가 극장가를 점령하고 있다면, 서점가는 스릴러물과 미스터리물을 찾는 독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에어컨을 틀고 얼음을 씹어먹어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 여름,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면?! 스릴러물과 미스터리물이 ‘페이지 터너’(자신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는 흥미로운 책)로 떠오르고 있다. 묘한 분위기의 여성이 등장하는 표지부터가 눈길을 끄는 「살인의 해석」(비채). ‘정신분석학과 추리소설의 완벽한 만남’이란 평을 받고 있는 이 책은 프로이트와 융의 학설을 바탕으로 쓴 범죄 추리극이다.소설은 프로이트가 실제로 미국을 방문한 해인 1909년 뉴욕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어느 날 미모의 여성이 살해되고 프로이트는 그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이 책은 놀랍게도 전업작가가 아닌, 제드 러벤펠드라는 예일대 법과대학원 교수가 썼다. 지적 쾌감을 안겨주는 스릴러물이다.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웅진지식하우스)과 「파견의사」(랜덤하우스)는 올 여름 엄청나게 쏟아진 스릴러물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살인의 해석」과 비슷한 표지의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은 영국의 역사소설가 아리아나 프랭클린 작품으로, ‘「장미의 이름」과 CSI의 결합’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배경은 미신적 종교관이 지배하는 중세. 죽은 자의 비밀을 밝혀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장편 추리소설이다. 흡입력은 물론, 손에 땀을 쥐게하는 소설이다.「파견의사」는 의학 스릴러를 써 온 작가 테스 게리첸이 한센병을 소재로 쓴 작품이다. 선과 악을 다루는 스릴러가 자칫 빠지기 쉬운 진부함을 매끄럽게 피해간 이 책은 단어 하나하나가 심장 박동을 뛰게 만든다. 마음과 달리 무서운 걸 잘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미스터리류가 적합하다. 적당한 공포와 적당한 재미, 적당한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대개 미스터리류는 서양에서 번역된 것이 많아 내용 역시 서양 중심일 때가 많다. 하지만, SBS에서 방송됐던 교양 프로그램 ‘백만물 미스터리’를 뼈대로 한 「하룻밤 미스터리를 찾아서」(북로드)는 동양과 서양의 미스터리가 균형있게 실렸다. 을사조약 체결 후 민영환이 자결한 곳에서 자라난 대나무, 머리카락이 자라는 오키코 인형, 한 해에 187명이 자살하면서 들었다는 음악 ‘글루미 선데이’ 등 도무지 알 수 없는 세계는 매혹적이다. ‘일본의 천재화가가 김홍도가 아닐까?’ ‘황제 다이어트 창시자가 과체중에 동맥경화로 죽었다’ 등 황당한 미스터리도 재밌다. 「괴물딴지 미스터리 사전」(해냄)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스터리한 사건 124개를 모은 책이다. 하루 방문자 수 1만명, 월간 조회수 1000만건을 기록하고 있는 인기 오컬트 사이트 ‘괴물딴지’ 칼럼 중 흥미진진한 이야기만 엄선했다. 사후세계, 유체이탈, UFO 등 과학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미스터리한 사건들. 미스터리물을 읽는 일부 독자들은 ‘유치찬란한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분명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 주말
  • 도휘정
  • 2007.08.10 23:02

[책의 향기] 만들어진 신 등

△ 만들어진 신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김영사 펴냄/2만5000원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이자 현대 지적 논쟁의 최전선에 서있는 리처드 도킨스의 2006년 작. 출간과 동시에 과학계와 종교계에서 파란을 일으킨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탈레반 한국인 납치를 계기로 더 유명해 졌다. 창조론의 주요 쟁점들에 대해 저자는 자연선택을 근거로 한 반박 이론을 제시하며 창조론의 허울과 실상을 예리하게 밝힌다. 무엇보다 도킨스가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종교의 사회적 기능. 종교가 강자에게는 지배이데올로기로 약자에게는 삶의 위로이자 희망으로 작용해 왔지만, 도킨스는 신이 사라진 이후의 사회가 오히려 더 희망적이라고 역설한다. △ 시누헤미카 왈타리 지음, 이순희 옮김/동녘 펴냄/1만원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었던 파라오 아케나톤의 혁명을 그린 역사소설. ‘시누헤’는 고대 이집트 역사의 거친 풍랑 속에서 아케나톤의 주치의로 종교개혁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그의 혁명, 평등, 반전에 관한 사상을 이해하게 되는 인물이다. 아케나톤 혁명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야기의 기본 얼개에는 모험과 사랑이 있다.이명찬 덕성여대 교수는 “플롯에만 의존하는 보통의 역사소설과 달리, 시대의 질감을 되살려놓은 솜씨가 대단히 뛰어나다”고 극찬한다. 핀란드 작가 미카 왈타리가 1945년에 발표한 작품. '카사블랑카'의 감독 마이클 커티즈에 의해 1954년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기도 했다.

  • 주말
  • 도휘정
  • 2007.08.10 23:02

[책의 향기] 토비 터커, 나를 찾아서 등

△ 토비 터커, 나를 찾아서 / 발 와일딩 글 / 언어세상 / 8000원 "어쨌거나 찢어진 종잇조각을 붙여보거라. 그러면 네가 누구이고, 네가 언제 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고아소년 토비 터커는 과거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부모가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 책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문제와 '다른 나라, 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하는 아이다운 상상력을 역사기행과 매끄럽게 연결시켰다. '이집트에서 미라 만들기' 등 고대 이집트를 비롯해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영국 튜더 왕조 등의 역사와 문화가 시리즈로 이어진다.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이집트 관련 상식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의지력과 책임감의 중요성에 대해 토론해 보면 더 좋을 책이다. 양부모 집에 온 첫날, 토비는 작은 나무상자 속에서 위와 같은 글이 적힌 사진틀을 발견한다. 종잇조각을 맞춰보던 그는 치마를 입은 고대 이집트 소년 세티로 변신, 파라오 람세스 2세가 다스린 지 60년이 되던 해로 날아가 전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가업을 이어받아 농부가 돼야 하는 세티. 그러나 미라 만들기에 더 관심이 있다. 사촌 네브는 미라 만드는 일을 해야 할 처지이지만 농사일을 배우고 싶어한다. 두 소년은 사이가 좋지 않은 양가 아버지의 눈을 피해 서로의 일을 가르쳐 주기로 한다. 네브의 입을 통해 그려지는 미라 만드는 과정은 어른들도 눈을 떼기 힘들다. 두 소년은 쥐의 시체로 간단한 미라를 만들어 보기로 한다. 네브는 내장을 다 꺼내고 시체 안팎을 깨끗이 씻은 뒤 몸 안의 물을 모조리 빼내고 수 주일간 말리는 과정에 대해 설명해 준다. 비위 약한 세티의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나 마음을 다져먹는다. "만약 모두가 그런 이유로 미라 만드는 일을 포기했다면, 아무도 미라를 만들지 못했겠지. 그래, 그 사람들이 이겨 냈다면 나라고 못하라는 법이 없는 거잖아."△내가 늑대였을 때 / 필립 레셰르메이에 글 / 달리 /9000원.동물적 인간이 사회적 인간으로 탈바꿈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프랑스 그림책. 이 작품은 규율과 조직에서 탈피, 자유인간으로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구와 이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사회 권위의 힘을 예리하게 풍자한다. '나는 이제 늑대가 아니에요. 여러분과 같은 학교에 가고, 책가방을 메고 다니고, 내 책상에서 공부도 해요. 하지만 어떤 날이면, 달빛이 붉은 밤이나, 목이 쉬거나 머리가 멍한 밤이면, 나는 창가에 앉아 내가 늑대였던 때를 떠올린답니다.' 짧은 동화의 본문 속에는 내 속에 존재하는 동물적 본성이 문뜩 문뜩 되살아남을 말하며 이제는 더 이상 늑대가 아님을 강조하는 역설적 표현이 여운을 남긴다.찬찬히 곱씹어 볼수록 철학적이고 심오한 내용을 작가와 화가는 늑대와 마을 사람들이란 관계를 통해 재미있고 재치 있게 표현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적 / 아베 나츠마루 / 창비 / 9800원한적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부대끼는 아이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고 있다. 몸집도 크고 거칠 것이 없는 학교짱 아키라와 전학생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지만 똑똑하고 당찬 가츠미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소심한 초등학교 6학년 켄지가 주인공이다. 4월 말 켄지는 그해 첫 사슴벌레를 잡지만 이를 이웃마을 아이들에게 빼앗긴다. 그해 첫 사슴벌레를 잡은 것을 마치 훈장타는 것처럼 여기는 아키라와 아이들은 흥분해 이웃마을 아이들과 결투를 벌이게 된다. 소심한 켄지는 결투가 싫지만 끝내 아키라를 거스를 수 없어 결투에 나갔다가 얼떨결에 포로를 잡고 묘한 승리감과 더불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우울함에 빠진다.소설은 낚시와 곤충채집, 비밀기지 만들기 등 여름방학 동안 아이들이 벌이는 여러 놀이 속에서 남자 아이들 간의 편가르기와 경쟁의식, 힘겨루기를 사실감 있게 그렸다. 동시에 그 속에서 부대끼는 켄지의 심리를 담담하지만 섬세한 문체로 묘사한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보이지 않는 적'은 어쩌면 자아와 타자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사춘기 소년들의 보이지 않는 내부의 자아일지도 모르겠다. 강과 낚시를 배경으로 소년들의 우정을 그린 '울지 못하는 물고기들'로 일본 어린이 문학계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작가의 첫 국내 소개작이다.△ 우리는 바다로 / 나스 마사모토 글 / 보림 / 9000원주인공들은 감히 배를 만들겠다고 나선 초등학교 6학년생들이다. 중학교 입시를 앞두고 같은 입시학원에 다니는 사토시, 구니토시, 마사아키, 이사무 등이 여름방학 전에 도시 근교 매립지에서 발견한 목재로 배만들기에 돌입한다. 여름방학이 오면 그 배를 타고 멀리 떠나겠다는 희망을 안고서 말이다. 처음엔 공상처럼, 장난처럼 여기던 배만들기는 점차 아이들이 완수해야 할 과업으로 변해간다. 배는 현재 이들을 옭아매고 있는 억압적인 현실을 벗어나는 유일한 통로이며 탈출구이다. 개성 넘치는 인물 설정과 생생한 심리묘사가 인상적이다. 이미 27년 전 발표된 소설이지만 소설 속에 묘사된 살풍경한 학원에서의 일상, 집과 학교를 시계추처럼 오가는 아이들의 참혹한 현실은 오늘날 한국의 현실과도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 주말
  • 이화정
  • 2007.08.10 23:02

[책의 향기] 쉽고 재미있고 유용하게 풀어쓴 '경제'

“두부 사려”하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을 멋쩍어하는 소심한 두부장수가 있었다.큰 소리로 외치지 못하니 장사는 잘 될 리 없었다. 그러다 짜낸 묘안. 된장찌개에는 반드시 두부가 들어간다는 사실에 착안, 목소리가 큰 된장장수 뒤를 졸졸 쫓아다니기로 했다. 그래서 된장장수가 “된장 사려”하고 큰 소리로 외치면, 모기 같은 소리로 “두부도”라고 덩달아 외쳤다. 분명한 것은 두 사람 모두 혼자 다닐 때보다 매상이 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적합한 속담은 ‘원님 덕에 나팔 분다’. 경제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이와 같이 정상적인 거래활동인 시장기구를 통하지 않고 개인 혹은 기업의 어떤 활동이 자기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이나 개인에게 혜택을 주는 것을 ‘외부경제’(external economy)라 한다. ‘김 매는 주인은 놉 일꾼 아흔아홉 몫을 한다’에서는 ‘경제적 유인’을,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에서는 ‘끼워팔기 전략’을, ‘반달 같은 딸 있으면 온달 같은 사위 삼는다’에서는 ‘자유무역’을 배울 수 있다. 현대인이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경제개념 61가지가 속담과 함께 재밌는 이야기로 설명됐다. 김상규 대구교육대 교수의 「속담으로 풀어보는 이야기 경제학」(오늘의책)이다.“경제! 정말 쉽고, 재미있고, 실생활에 유용할 수 있도록 속시원하게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이 질문은 20여 년간 경제학을 가르쳐 온 김교수를 줄곧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는 “현대인에게 경제는 이미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며 “문제는 경제의 ‘난이도’”라고 말한다. 한국경제교육학회 부회장과 한국개발연구원 전문위원을 맡고있는 그는 속담에 나타난 한국인의 경제의식에 주목, ‘속담을 활용한 경제개념 풀이’라는 독특한 주제의 연구를 시도해 왔다. 그가 속담을 경제에 끌어들이게 된 동기는 자신의 아이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면서 시작됐다. 어려운 천자문을 쉽게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경제학자로서 호기심이 발동, 천자문 속에 들어있는 경제문장을 찾게 됐고 이를 쉽게 풀어쓸 수 있는 논리로 속담을 다시 보게 됐다. 경제학을 어렵게만 생각했던 일반인들에게는 반가운 책. 1장 ‘뿌리의 경제’에서는 희소성, 기회비용, 시장질서, 균형가격, 상호의존 등 경제 기초개념을 살펴봤다. 2장 ‘나무의 경제’에서는 ‘뿌리의 경제’를 기반으로 펼쳐지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에 대해, 3장 ‘숲의 경제’에서는 국가재정과 경제성장의 상관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4장 ‘정글의 경제’는 국제경제에 관한 것. 비교우위, 자유무역, 보호무역, 국제수지 등이 실렸다. 부록으로 실린 용어해설도 유익하다.

  • 주말
  • 도휘정
  • 2007.08.10 23:02

[책의 향기] 패지(牌旨)

조선시대의 고문서들을 살펴보면서 우선 놀라게 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비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였지만, 현종 4년(1663)에 작성된 서울 북부 호적에 따르면 오늘날 연희동 일대에 해당하는 이 지역 인구의 3/4 이상이 노비들이었다. 노비 호주만 따져도 절반이 넘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일단 노비의 신분으로 태어나면 평생 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사람으로 대접받는 대신 재물처럼 매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이 비인간적인 제도가 자그마치 5백년이나 지속되었던 왕조가 조선이었다. 노비가 없었다면 양반은 양반으로서의 행세를 전혀 할 수 없었다. 일례로 한옥을 살펴보더라도 그 구조 자체가 노비가 없으면 관리가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니 노비의 존재야말로 신분제 유지의 핵심이었던 셈이다. 노비에 대한 양반들의 소유관념은 그만큼 철저할 수밖에 없었다. 도망을 가서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 해골이 되었음직한 노비들까지 자신의 호적에 악착같이 집어넣었던 것이 당시의 양반들이었다. 그처럼 인간이 아니라 재물로서 취급받았던 노비들은 조선의 신분제 사회에서 분명 비참한 삶을 살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노비들의 실제 삶을 들여다 보면 반드시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선 노비들 가운데에는 상전인 양반과 떨어져 독립된 가옥에서 살아가는 외거노비들이 있었다. 이들은 호적에 호주로 등재되어 있다. 비록 상전을 받드는 고단한 신세이기는 하지만 대개는 같은 노비의 처지인 처자식들과 한 지붕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잘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상행위에 직접 나서기를 꺼려하였던 상전들을 대신하여 노비들은 상행위에 참여하였다. 예컨대 오늘날 전하는 매매문서 가운데에는 매매의 거래 주체가 노비들인 경우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모두 자신의 상전들을 대신하여 집과 논밭을 팔았던 것이다. 상전을 대신하여 거래에 나선 노비들은 으레 위임장을 지니고 있었다. 예컨대 위의 그림에 보이는 문서는 상전 이아무개가 자기 소유의 노 선남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신안면에 있는 자기 논 5마지기를 시가로 팔라면서 써 준 위임장이다. 이를 패자(牌子)라고 하였다. 상전과 노비의 관계는 단순히 인간과 재물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였음을 보여주는 실례를 하나 더 찾아 보자. 조선시대 남원의 지리지인 용성지 효자조와 열녀조에는 이례적으로 두 명의 사노(私奴)와 세 명의 사비(私婢)에 대한 사적이 실려 있다. 효자 열녀는 노비의 신분을 따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중 사노 해일은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섬겨 향약(鄕約)의 행사에 초청을 받아 술을 상으로 받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상전이 중병에 걸린 채로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자 그를 대신하여 매를 맞을 것을 눈물로 간청하여 끝내는 장독(杖毒)에 걸려 죽고 말았다고 한다./유호석(전북대박물관 전문연구원)

  • 주말
  • 전북일보
  • 2007.08.03 23:02

[책의 향기] 책과 함께 하는 '쉼표'…

바쁜 일상 속, 책 한 권 읽기가 쉽지 않다. 베스트 셀러란 말에 구입부터 했지만, 앞 쪽 몇 장만 손때가 묻어있거나 뒤적이다가 덮어버린 책들. 올 여름 휴가엔 책 한 권 어떨까?세상의 많은 것들이 이 책 한 권에 들어있다. 책과 함께 한 휴가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더 큰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질 것이다. 홍지서림과 대한문고, 교보문고 등 전북지역 대형서점 베스트 셀러들을 골라봤다. 머리 아픈 인문사회과학 서적보다는 가벼우면서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들이 베스트 셀러 상위에 올라있으며, 현실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서나 재테크를 위한 경제서들의 인기가 여전했다. 외국 저자 보다 한국인들이 쓴 책에 손이 더 많이 간 것도 특징이다. 세 서점의 베스트셀러 1·2위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파피용」과 MBC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 원작소설 「커피 프린스 1호점」이 다투고 있다. △ 파피용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열린책들 펴냄/9800원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은 한 번 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흡인력이 강하다. 「개미」 「뇌」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놓은 그가 이번엔 우주를 무대로 삼았다. 14만4000여명의 마지막 지구인들이 거대한 우주 범선 ‘파피용’을 타고 1000년 간의 우주여행에 나선다. 인간에 의해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새로운 희망의 별을 찾기 위한 모험. 과학과 문학을 결합시키는 작가 특유의 재능이 잘 드러나 있다. 프랑스에서는 「파피용」에 나온 가설들을 바탕으로 우주선을 제작하기 위한 사이트가 개설되기도 했다. <한문장> 인간이 자기 내부의 공간도 정복하지 못하면서 외부의 공간을 정복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우리 가슴 속에 있는 별에 다가가지도 못하면서 멀리 있는 별을 찾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커피 프린스 1호점이선미 지음/눈과마음 펴냄/9800원“아무리 예쁘게 생겼다고 하더라도 이 녀석은 분명히 남자인데 왜이리 끌리는 것일까.”‘한결’(공유)과 ‘은찬’(윤은혜)의 키스신이 화제가 되고 있는 MBC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 이 책은 드라마의 원작 소설이다. ‘가난한 여자와 재벌 3세의 연애’라는 너무도 뻔한 전개지만, 드라마의 인기를 타고 책은 베스트 셀러 목록까지 올랐다. 재미 역시 TV만 못하다는 평. 하지만 후텁지근한 날씨로 우울한 기분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경쾌한 책이다. 드라마를 먼저 봤다면 캐릭터마다 공유나 윤은혜 등 배우들이 대입돼 눈 앞에서 살아움직이는 부작용(?)도 있다. <한문장> 꼭 상대가 여자여야 할 필요는 없는 거죠?△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신웅진 지음/명진출판사 펴냄/1만원‘외교관’이란 꿈을 품고있던 한 소년이 50여 년이 지나 외교통상부 장관을 거쳐 유엔 사무총장이 됐다.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세계의 청소년에게 전하는 꿈과 희망의 메시지’다.간혹 반기문 총장이 직접 쓴 책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저자는 YTN 신웅진 기자. 외교통상부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반기문’이란 인물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게 됐고, 그가 가지고 있는 기본에 충실한 삶의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실력과 인품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반기문 총장. 그가 살아온 삶의 과정은 크든 작든 꿈을 품고, 꿈도 물을 줘야 자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한다. <한문장> 인생은 꿈을 따라 흐른다. △ 파페포포 안단테심승현 지음/홍익출판사 펴냄/8900원‘파페포포’ 시리즈를 단순히 만화로만 생각한다면 인생에 큰 것을 놓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에세이적 감성과 철학적 사유가 개성 넘치는 그림과 함께 파스텔톤으로 어우러졌다. 「파페포포 메모리즈」가 추억의 소중함을 일깨워 줬다면, 「파페포포 투게더」는 더불어 사는 아름다움을 전해줬다. 「파페포포 안단테」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책. 느리다는 것이 게으른 것은 아니며, 천천히 간다고 해서 실패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전해준다.부담없이 읽히면서도 마음에는 큰 울림을 남긴다. <한문장> 생의 한복판을 걸어가고 있는 지금의 내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말은, 조금은 느리게, 안단테, 안단테…△ 이기는 습관전옥표 지음/쌤앤파커스 펴냄/1만2000원‘이기는 것도 습관이다’.「이기는 습관」은 이처럼 충격적인 말로 시작된다. 공을 100번 차도 한 골도 넣지 못하면 헛수고다. 2등은 쉽게 기억하지 않는 사회 현실에서는 꼭 명심해야 할 말이다. ‘현장 경영’과 ‘고객 중심’을 화두로 한 ‘이기는 습관’ 22가지. 애니콜, 파브, 지펠, 하우젠 등 삼성전자에서 마케팅 성공 신화를 일궈낸 전옥표씨가 현장에서 터득한 노하우들을 풀어놓는다.‘이기는 조직은 열정의 온도가 다르다, 일을 축제로 만들어라’ ‘세상에 없는 오직 하나, 제안서 한 장도 차별화하라’ ‘잘하는 사람을 무조건 따라하는 것도 탁월한 전략이다’ 등 현장에서 땀 흘리는 사람을 위한 승리의 정공법이다. <한문장>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닌,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습관

  • 주말
  • 전북일보
  • 2007.08.03 23:02

[책의 향기] 몸과 마음 쌀찌워…

△ 바리데기황석영 지음/창작과비평사 펴냄/1만원전통설화에서 ‘바리데기’는 오귀대왕의 일곱째 공주로 태어나 버려진다. 하지만 부모가 병이 들자 바리데기만 온갖 고생 끝에 생명수를 구해 부모를 살린다. 황석영 신작소설 「바리데기」는 중국 대륙과 대양을 건너 런던에 정착한 탈북소녀 ‘바리’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바리데기’ 신화를 차용해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작가는 전쟁과 국경, 인종과 종교, 이승과 저승,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넘어 신자유주의 그늘을 해부하면서도 속도감있는 문장과 감동적인 내용으로 문학적 완성도도 놓치지 않았다. ‘바리공주’ 설화를 현대에 풀어낸 작가 황석영의 능력에 독자들은 한번 더 감탄한다. <한문장> 나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늘 기대보다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살아있는 한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남한산성김훈 지음/학고재 펴냄/1만1000원1636년 병자년 겨울. 청나라 10여만 대군이 남한산성을 에워싸자 조선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의 작가 김훈이 3년 만에 발표한 신작 장편소설 「남한산성」.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갇힌 무기력한 인조 앞에서 벌어진 주전파와 주화파의 다툼, 지도층의 분열 앞에서 핍진한 민초들의 삶이 들어있다. ‘죽어서도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작가 특유의 냉혹한 문장들이 치욕스런 역사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한문장> 길이란 땅바닥에 있는 것이오. 가면 길이고 가지 않으면 땅바닥인 것이오.△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정철진 지음/한스미디어 펴냄/1만2000원오랜 시간 재테크 분야 베스트 셀러로 사랑받고 있는 책. 재테크를 저급한 투기 기술이나 단숨에 목돈을 만질 수 있는 ‘한탕의 테크닉’ 정도로 오인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재테크 습관을 전해준다. 재테크의 핵심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이 아닌,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돈을 모으냐에 있다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생명을 거쳐 매일경제신문사에 입사한 정철진 증권부 기자가 썼다. 20대∼30대 초반을 대상으로 기획했기 때문에 종자돈이 있어야 가능한 투자법들을 설명한 다른 책들보다 현실적이다.<한문장>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배 여러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인생은 평등하지 않다. 기회는 평등할 지 몰라도 능력, 외모, 집안, 행운 등 모두가 불평등 그 자체다. 하지만 절대로 그 불평등 때문에 ‘1달란트’를 땅속에 묻어두시지 마시길. 여러분의 자괴감과 비틀림, 열등감과 게으름에 대한 피해는 결국 스스로가 지게 되기 때문이다. △ 청소부 밥토드 홉킨스, 레이 힐버트 지음/위즈덤하우스 펴냄/1만원젊은 나이에 CEO가 된 로저. 겉으로 보기엔 행복할 것 같지만 회사는 경영위기에 처해있고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조차 없어 불행하다. 그 앞에 청소부 밥이 나타났다.오로지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다 지쳐버린 현대인들에게 밥은 진정한 삶의 행복을 전한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들이 ‘지금 당장 바뀌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 강요하지만, 이 책은 ‘성공이 삶의 본질은 아니다’고 말한다. 지금 자신이 행복한가를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하는 책. 뜻밖의 책에서 위안을 받는 경우가 바로 이 책이다.<한문장> 가족을 짐이 아닌 축복으로 생각하게 되자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도 일을 하고 있는 시간도 모두 즐거워지기 시작했죠.△ 해리포터 7권(영문판, 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 조앤 K. 롤링 지음/Scholastic 펴냄/3만6000원10년 동안 전 세계인들에게 마법을 걸어온 ‘해리포터 시리즈’ 7권이 출간됐다. 결말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난무하면서, 어떤 전편보다도 ‘포터홀릭’을 긴장케 했던 완결편이다. 번역본보다 미리 결말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은 벌써 이 책을 읽었을 지도 모른다. 영문판으로 7권을 이미 읽은 독자들은 전투장면이 많아 손에 땀을 쥐며 봤다며, 혹 중간 부분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내용을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한 부족한 영어실력때문이라고 말한다.

  • 주말
  • 도휘정
  • 2007.08.03 23:02

[책의 향기] 까매서 안 더워 등

△ 까매서 안 더워 / 박채란 글 / 파란자전거 / 8500표제작 '까매서 안 더워'는 생김새가 다른 친구와의 차이를 품어안으며 커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검은 손 안에 하얀 만물수첩을 들고 다니며 너스레를 떠는 동규는 "넌 까매서 안 덥잖아"라는 친구의 날선 말에도 화 대신 웃음을 보이는 아이다. 이야기마다 '동규의 만물노트'가 일기처럼 소개돼 동규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또다른 동화에서는 경기도 원곡동의 '국경없는 마을'에 사는 성완이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이들의 등하굣길을 미행해 불법 체류자를 단속하는 모습은 이주노동자 아이들에게 지워진 삶의 단면이다. 작가는 이 동화를 통해 "너 때문이 아니라, 진짜 나쁜 건 모든 게 네 탓이라고 믿게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실제 1년간 곳곳에 있는 외국인 마을을 드나들며 이야기를 만들었다.△ 누가 내 음매를 훔쳐갔어 / 데니스 플래밍 글 / 보물창고 / 9500원별이 빛나는 밤. 사이프러스 나무. 빨간 지붕의 작은 집 (…) 이 책을 펼치는 순간,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을 연상시키는 그림과 만나게 된다. 고흐의 작품집을 보는 듯한 강렬한 색깔의 그림들이 펼쳐진다. 여기에 작가 데니스 플레밍만의 개성이 더해졌다. 플레밍만의 펄프 페인팅 기법이 짙은 농도의 그림에독특한 분위기와 질감을 더하기 때문. 그림책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글을 담지 않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강하고 동적인 단어와 운율을 통해 아이들이 좋아하고 경쾌하게 읽어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완성도 높은 그림, 부드럽고 따뜻한 유머, 여러 동물들의 소리, 반복적인 후렴구 외에도 이 책이 갖는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 앤 카메론 글 / 바람의 아이들 / 7000원작가 앤 카메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첫 기착지를 과테말라로 지목했다. 왜 일까. 귀가 솔깃해진다. 순박한 소년 후안을 따라나선 산 파블로 마을. 화산, 절벽과 눈부신 들판과 골짜기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파라다이스다. 하지만 일찌감치 사라져 버린 아빠, 아들의 침대까지 들고 달아난 엄마, 학교 담장을 훔쳐보며 눈물 삼키는 후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이를 수 있는지, 무엇이 우리를 그곳에 영원히 머무르게 하는지를 깨닫고 싶다면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 바다 속 왕국 / 조앤 에이킨 글 / 햇살과 나무꾼 / 8500원 책 제목은 평범하지만 낯선 나라 동스라브 지역(지금의 우크라이나) 이야기다. 11편의 신화와 민화 속에서 천둥과 번개, 새벽의 오로라, 따뜻한 태양은 인간의 운명을 손에 쥔 신(神)이 다. 첫 작품 '바다 속 왕국'은 일상에 균열이 생긴 뒤에야 때늦은 후회를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꾸짖는다. 바닷가에서 홀로 고기잡이를 하며 지내던 어부는 급기야 평범한 아내에게 싫증을 내고 금은보화가 가득한 바다 속 용궁을 찾아 나서기에 이른다. 하지만 아내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외에도 10편의 신비한 대자연과 슬라브족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실었다.

  • 주말
  • 이화정
  • 2007.08.03 23:02

[책의 향기] 퇴화의 날개 등

△ 퇴화의 날개반영호 지음/황금필 펴냄/1만원‘미움아/너도 한때는/무척 사랑했었지’ (‘사랑과 미움’ 전문) ‘세월이 또 야금야금 내 인생을 갉아 먹네’(‘세월’ 전문)한 줄, 많아도 넉 줄을 넘기지 않는 시. ‘정형화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란 부제가 붙었다. 반영호 시인은 2003년도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자유시와 정형시 양식을 병행해 온 그의 의욕적인 시적 성취가 단장시조 안에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로 담겼다. 언어를 넘어서려는 그의 시들은 선명한 감각과 역설의 지혜로 매력적이다. 시를 어려워 하는 이들에게 좋을 시집.△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화 1001점스티븐 파딩, 제오프 다이어 엮음/마로니에북스 펴냄/3만9000원고대 이집트 벽화부터 2000년대 명화까지, 세계 유수 미술관에 소장된 명작 1001점을 모았다. 작품은 유채화, 수채화, 프레스코화 중심으로 구성됐으며, 화가와 큐레이터, 미술평론가, 미술수집가들로 구성된 필진이 화가 및 작품에 대한 해설을 곁들였다.시대를 넘어서는 대가들의 명작과 미술계에 큰 인상을 남긴 논쟁적인 작품들,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숨은 보석같은 명화들, 20·21세기 새로운 현대 회화들을 컬러 도판으로 감상할 수 있다.

  • 주말
  • 도휘정
  • 2007.08.03 23:02

[책의 향기] 전당(典當)문서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듯 한다는 말이 있다. 제사를 모실 형편도 안 되는데 제삿날은 돌아오고 자꾸 어려운 일만 벌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속담이다. 이런 처지를 해결 해 주었던 것 중의 하나가 전당(典當)이다. 전당이란 어떤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리는 것을 말하는데 돈을 빌려 쓴 사람이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하면 맡긴 물건을 마음대로 처분하여도 좋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때문에 전당은 급히 돈을 필요로 하는 서민들의 등을 치는 사설고리대업이라는 역기능을 늘상 수반하고 있지만, 당장 급전이 필요했던 서민들에게는 숨통과 같은 곳이기도 했다. 전당은 물건과 돈을 거래의 대상으로 하며, 돈을 빌려 쓰는 사람의 물건에 대한 소유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돈을 마련하기 위해 물건을 팔지 않고 맡긴다는 것 자체는 급전이 필요할 때 임시적인 방편으로 전당이 사용됨을 의미한다. 또한 물건을 다시 찾겠다는 소유자의 소망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전당은 물건이 가지는 정당한 값보다 싸게 평가하고 돈을 빌려주게 된다. 전당의 대상은 모든 물건일 수 있지만, 시대적 변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시계, 카메라, 보석, 노트북, 골프채 등등 시대상을 반영하는 고가의 물건 들이 주종을 이루겠지만, 조선시대에는 토지나 가옥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매매문서[明文]나 수기(手記)?수표(手標) 등의 형식으로 작성된 전당문기는 담보물의 내용, 빌려간 금액, 상환기한과 방법, 기한 내에 갚지 못했을 때의 처분 내용 등이 기록되게 된다. 또한 이미 진 빚을 갚지 못하였을 경우 빛을 갚기 위해 전당을 잡히는 경우도 많았다. 1909년 5월 정치안은 그 동안 진 빚을 갚을 수 없게 되자, 자신의 가옥과 밭 그리고 산장 등을 전당잡히게 된다. 그는 동복현 내남면 밀양촌에 있는 자신의 4칸짜리 가옥과 나무 5그루, 집 뒤쪽과 밀양촌에 있는 산장과 소나무 그리고 저동의 산장과 목면 밭 7두락지, 자근대동에 있는 콩밭 7두락지를 전당 잡혔다. 그리고 오는 8월 이내로 이자까지 포함하여 이미 진 빚을 갚되, 만일 기한을 넘기면 시가대로 전당물을 넘기기로 약정하였다.이처럼 전당은 돈이 필요할 때 물건(토지 문서 등)을 맡기고 작성하는 것만이 아니었으며, 채무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채무자의 변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작성하는 경우도 많았다. 빚을 갚아야 함에도 갚을 방도가 없을 때에 물건을 전당 잡히는 것이다. 전당 물건 역시 꼭 토지 문서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사람이 되기도 하였다. 중국 증시의 열풍 속에 전당포가 호황이라고 한다. 돈이 될만한 것을 맡기고 증시에 뛰어 들고 있다니 전당은 이래저래 돈과 관련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계륵과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홍성덕(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 주말
  • 전북일보
  • 2007.07.27 23:02

[책의 향기] 연어 생애 그린 '어른위한 동화'

안도현의 「연어」가 출간 10년 여만에 100쇄를 돌파했다. 일종의 사건이라 할 만하다. 물론 「연어」가 한국문학사에서 최초로 100쇄를 넘어선 책은 아니다. 「광장」(최인훈),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조세희), 「당신들의 천국」(이청준), 「태백산맥」·「아리랑」(조정래) 등 한국문학사의 기념비라 할 만한 여러 작품들이 이미 100쇄를 넘긴 바 있다. 하지만 「연어」의 100쇄 돌파는 분명 기념비적 사건이라 할 만한 하다. '어른을 위한 동화'로서는 거의 처음으로 100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어」가 뜻깊은 것은 「연어」가 10년간 독자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았다는 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연어」가 정작 뜻깊은 것은 「연어」에 담긴 깊이 있는 성찰과 그것을 표현해낸 방식 때문이다.「연어」는 모천으로 거슬러 올라가 알을 부화하고 죽는 연어들의 생애를 그린 우화소설이다. 어떻게 보면 내용도 형식도 간단하다. 여기, 한 무리의 연어떼가 있다. 이 연어떼는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자기가 태어난 그곳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각자 알을 수정시키고는 죽어간다. 그저 우리가 연어에 대해 알고 있는 일생을 담담하게 이야기로 풀어갈 뿐이다. 그런데도 「연어」에서 만나는 연어는 특이하다. 「연어」는 연어에 관한 신기한 사실을 늘어놓기보다는 연어를 특이한 방식으로 인격화하는 것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데, 그 과정에서 탄생한 아주 매력적인 인격체(?)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여느 연어들과 달리 은빛을 지닌 이 연어는 일반 연어와 달리 자신만의 내면을 갖고자 한다. 해서, 이 '은빛연어'는 연어 무리들과는 동떨어진 단독자로서의 존재하고자 한다. 당연히 연어 무리들이 습관적으로 행하는 모든 것이 못마땅하다. 강으로 회귀하는 것 자체도. 이 막무가내의 자유주의자는 그러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몇몇 연어(누나, 그리고 '눈맑은연어')의 도움으로 살아남으면서, 또 '초록강물'에게 아버지가 걸었던 '연어의 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혼자만의 삶을 접는다. 그렇다고 해서 연어 무리의 습성을 그대로 따르지도 않는다. '은빛연어'는 자기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공동체에도 필요한 구성원이 되고자 한다. 그러니까 자기의 발전과 공동체의 번영을 동시에 추구한다. 해서 비난하는 대신에 냉소하며, 냉소하는 대신에 대화하며, 자기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목소리를 자기화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결국 혼자만 힘겹고 고통스럽게 폭포를 거슬러 의미 있는 회귀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설득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준 안락한 길(그러나 그 길에 이끌리면 먼 훗날 종족 전체가 도태될 수 있는 위험한 길)을 가려는 연어 무리 대부분을 '연어의 길'로 이끌어간다. 그리고 아름답게 죽어간다. 아니, '삶의 모든 에너지를 세상 속에 다시 돌려주고 그들은 하얗게 변한 가벼운 육체로 떠오'른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 「연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해 보인다. '이미 만들어진 길이나 지성을 무조건 따르지 말고 스스로의 지성과 길을 만들어라. 힘들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가질 것이며 결단을 내려라. 그렇게 단독자가 되거든 이제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자기를 지키면서 자기를 버려라. 그리고 먼 미래를 위해 죽어라. 그것이 진정한 연어의 길, 아니 인간의 길이다.' 최근의 포스트 담론에 익숙한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인간의 무의식마저도 지배되고 있는, 그래서 '나는 사유하지 않는 곳에서만 존재한다'는 지금, 이 시대에 단독자가 되는 것이 가능이나 하겠느냐고.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이 꼭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힘겹기에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연어」의 연어들이 타자가 만들어 놓은 안락한 길을 거부하고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참가치를 발견했던 것처럼. 그렇다면 단독자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은 인간이 더 이상 기계가 아닌 생명체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결국 「연어」는 우리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한 인간의 길을 아주 감동적인 방식으로 환기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힘내라 「연어」?! /본지서평위원

  • 주말
  • 전북일보
  • 2007.07.27 23:02

[책의 향기] 가치있는 삶이란

“무엇을 위해 쉬지 않고 가고 있는가 더 많이 가지려는 것이 결국 행복으로 이어지는 길 이라 믿고 있는가 나의 행복과 불행이 타인에 의해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가 배움의 있어, 얼마나 게으름을 피우고 사는가 단순함과 소박함의 깊이를 위해 무엇을 진행 하고 있는가”헨리데이빗소로우의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를 펼칠 때마다 나는 나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속에서 자연과 동화하는 삶을 살다가 간 헨리데이빗 소로우. 세기를 넘어 미래를 본 그의 대표작 「월든」이 21세기를 움직인 19세기의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면,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는 ‘무엇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 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소로우는 신학자 해리슨 블레이크를 알게 된다. 이 두 사람은 무려 13년여 동안 편지를 주고 받는다. 소로우가 문명의 이기를 배격하고 월든 호숫가에서 2년2개월에 걸쳐 자연주의자로서 삶을 실천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들의 왕래는 계속 된다. 그 왕래 속에서 소로우는 편지를 통해 해리슨블레이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물질주의, 홀로 있음, 종교, 자연, 내면의 침묵, 자신의 사상 등 소로우는 자신의 삶을 단순화하고 자연에 가깝게 살려고 노력하는 일상을 이 편지를 통해 블레이크에게 소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소유지향적인 삶과 존재 중심적인 삶’ ‘산책의 즐거움’ ‘생의 파종기’ ‘인간에게는 슬퍼할 권한이 없다’ ‘여행자 나는 이 말을 사랑 한다’ ‘침묵만이 들을 가치가 있다’ 등의 소로우의 일상의 편지는 모두 다른 색깔을 담아내고 있다. 그가 추구했던 삶이, 편지 한편 한편에 채색돼 있다.모두 28편의 그의 편지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소중히 여겨할 것과, 더 없이 간소하게 살아야하는 이유, 겉치레에 치중하며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땅을 껴안을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늘 새롭게 내면을 살피는 일이 결국 우리 일상을 녹슬지 않게 한다고 말한다. “필요하다면 신조차도 홀로 내버려두라신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그와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 신을 발견하는 것은그를 만나러 가고 있을 때가 아니라 그를 홀로 남겨두고 돌아설 때이다 감자를 썩지 않게 보존하는 방법에 대해 당신의 생각은 해마다 바뀔지 모른다 그러나 영혼이 썩지 않게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수행을 계속 하는 일 외에 배운 것은 없다”차분히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 본적이 언제였던가. 아니 누군가가 보낸 편지를 반갑게 읽어본 적은 또 언제였던가. 뜨거운 여름이 마악 달려오고 있다. 이 여름, 아직 소로우가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를 뜯어보지 못했다면 그 편지를 개봉하면서, 쉼 없이 달려온 내 삶의 큰 쉼표를 찍어보자. 겨울이면 도끼로 얼음을 깨고 물속을 들여다 보며, 강의 물 흐르는 소리를 들었던 소로우처럼./서향숙(KBS 전주방송총국 프로듀서)

  • 주말
  • 전북일보
  • 2007.07.27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