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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망부의 백제오가(百濟五歌) (하)] 정읍사 여필종부 이념 춘향전에서 절정 이뤄

'정읍'은 전주의 속현(屬縣)인 정읍 사람이 행상을 나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그 아내가 달 밝은 밤에 산마루에 올라가 남편을 기다리면서 혹시나 밤길에 도적이나 당하지 않을까 염려한 끝에 진흙탕물에 의탁하여 무사귀환을 노래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세상에 전하기는 행상인의 아내가 고갯마루에 올라 남편을 기다리다가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고 '고려사' 악지조에 기록되어 전해온다.

 

조선 성종조에 성현 등이 왕명에 의해 '악학궤범', '악장가사', '시용향악보' 등의 악가집을 편찬하면서 정읍사가 백제의 노래이지만, '악학궤범'에 실은 까닭은 이 노래만큼 조선의 건국이념에 부합된 노래가 없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패망한 나라엔 역사나 문화, 예술 등 그 어느 것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나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백제문화는 중국이 찬탄할 만큼 삼국 가운데 가장 찬란하였고, 그 문화가 일본에 전해졌다는 사실은 문화사가들에 의해 밝혀진 지 이미 오래다. 부위부강(夫爲婦綱), 부부유별(夫婦有別)의 윤리를 바탕으로 하면서 여필종부(女必從夫)의 유교이념이 이토록 아름답게 승화된 노래가 정읍사에 견줄만한 게 없다.

 

'고려사'의 기록이 그대로 믿기지 않을지라도 전주나 정읍이라는 구체적 지명으로보거나, 정읍사 전반에 흐르는 백제여인의 고운 정절을 보더라도 이 노래가 백제의 노래임을 부정할 길이 없다. 달을 매개로 하여 외간 남정네와 질탕(跌宕)하게 놀아난 처용아내의 부정(不貞)을 테마로 한 신라 '처용가'와는 너무나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삼국유사'를 찬(撰)한 일연(一然)은 불도를 닦는 승려답게 처용가의 배경설화에서 병을 일으키는 역신(疫神)이 처용의 아내가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사람으로 둔갑하여 범한 것이라고 짐짓 처용의 아내를 불륜으로 내몰지 않고 윤리적 해석을 해놓았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정읍여인의 망부가인 '정읍사'도 정치적인 와류(渦流)에 휩쓸리며 음사(淫詞)로 내몰리면서 국가의례에서 제외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중종실록' 권 32에 남곤(南袞)은 정읍사를 남녀간 음사(淫詞)로 단정하고 이 노래 대신 고려 때부터 궁중의례에 사용되었던 '오관산(五冠山)'을 불러야 한다는 상소를 했는데, 이러한 시원적 기록에 따라 이 노래를 남녀간의 육정(肉情)적인 노래로 간주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양주동, 지헌영, 이상섭, 박병채 등 국문학자들은 별다른 아무런 근거도 없이 '즌데'를 여성의 은밀한 부분으로 해석하여 - 밤길에 도적에게 범해를 당할까 두려워하여 흙탕물의 더러움에 의탁했다는 고려사 악지의 기록을 무시하고 - 정읍사를 음탕한 노래로 규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어느이다 노코시라'는 사랑하는 임이 밤길을 서둘러 오다가 도적에게 위해(危害)를 당할까 두려운 나머지 '아무 곳이나 짐을 벗어놓고 쉬고 오시라'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남편에 대한 아내의 지순(至純)한 사랑을 간파하지 못하고, 짐짓 '다른 어떤 여성에게 정을 주고 있는가'로 간주하여 정읍사가 의부증(疑夫症)적인 치정성(痴情性)을 벗어나지 못한 보잘 것 없는 작품으로 비하해 버리기도 했다.

 

백제오가 가운데 유일하게 '무등산'만이 여타 다른 노래와 그 주제나 정조(情調)를 달리하고 있다. 무등산 조엔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鎭山)이며, 광주는 전라도에 있는 큰 고을이라 했다. 무등산에 성을 쌓았는데 백성들은 그 덕에 편안하게 살 수 있으므로 이를 즐거워하여 노래하였다고 하였으니, 무등산가만이 일종의 태평가적 성격을 띤 노래였음을 짐작케 한다.

 

이 외에도 이 고장에는 이러한 여성의 아름다운 정조가 서려있는 설화나 소설, 또는 역사적인 사실들도 많다. 삼국사기 열전에 전해져오는 음탕한 개로왕과 열녀인 도미의 아내에 얽혀져 있는 슬픈 이야기나, 나당연합군에 의해 망국의 비운을 맞게 된 백제 의자왕 때 적군에게 몸을 더럽히느니보다 차라리 백마강 낙화암에 몸을 던져 여인의 정절을 지키고 산화(散華)한 3000 궁녀들의 애닯은 이야기 등이 그렇다.

 

도미설화는 지리산가, 정읍사, 선운산가, 방등산가와 더불어 여인들의 정절을 주제로 한 열녀소설 춘향전의 원형이 된 노래요, 설화라 할 수 있다. '고려사'에 한 조각 이야기나 노래로 남겨진 이들 백제오가와 '삼국사기'에 담겨진 도미설화는 고대소설 '춘향전'과 여성의 아름다운 정절이라는 주제로 맥을 같이 한 고전문학이다. 춘향은 전라도 여인들의 정절의 표상일 뿐만 아니라, 한국여성의 정절의 상징이 되어 세계여성문화사를 장식하고 있다. 백제 여인들의 치열한 정절의 관념은 도미설화나 지리산가와 더불어 백제오가를 거쳐 '춘향전'에서 그 절정을 이루어서 더욱 영롱하게 형상화된 셈이다. 국문학자·전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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