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규현 신부
 문규현 신부(66)는 지난 3월 전북대 정문 코앞 2층에 60평 남짓한 카페를 냈다. 35년간의 사목직을 은퇴하고 이곳에서 인생 3막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거리가 지척인데도 인터뷰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의 표현대로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은퇴 후 더 바빠졌기 때문이다.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더 많아진 탓이리라. 문 신부를 형인 문정현 신부와 함께 '빨갱이 신부'라 부르는 이가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이 만큼이라도 민주화를 누리고 생명과 인권이 존중되는 것은 그 분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권력과 불의에는 호랑이로 알려져 있으나 마주 대하니 너무 편안했다. 겸손했고 유머 감각도 뛰어났다. 너무 바빠 문답은 이 메일로 주고 받았다.- 안녕하세요? 은퇴 후 카페를 여셨는데 잘 되십니까?"손님 없는 날, 소위 공치는 날도 있고, 자리가 꽉 차서 북적이는 날도 있고 그래요. 영세자영업자들이 겪는 희로애락을 저도 매일 겪습니다. 외부 일정 있는 불가피한 날이 아니면 출 퇴근을 꼬박꼬박하죠. 문 열고 문 닫고, 청소 하고 운전기사도 하고. 퇴직자 등 많은 사람들 꿈이 카페 사장하는 거라는데, 그런 거 보면 저는 복이 많아요. 어딘가 갈 데가 있고 할 일이 있어서 좋다는 말을 특별히 실감하죠. 제 개인에겐 인생 제3막, 새로운 사제생활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영업이익으로 대박은 어려울 것 같고, 사람들 만나고 함께 희망을 엮어가는 것으로 승부해야죠. 손님들이 앉아서 차 마시며 얘기 나누거나 책 읽는 모습을 보면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영화로 읽는 성경'을 진행하시는 걸로 아는 데요?"영상이나 미디어에 익숙한 세대와 소통하고, 또 신앙을 좁은 영역이 아닌 세상의 모든 감정들, 사건들 속에서 해석하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시도입니다. 성경을 단순히 활자에만 의존해서 묵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내용도 방대하고, 천주교 전례력으론 3년이나 걸리거든요. 예전엔 성경 의미 따로, 영화 감상 따로였는데, 지금 이걸 통합하니까 의미들이 새롭게 드러날 때가 많아요. 아하! 체험을 자주 하죠. 이게 즐겁습니다. 앞으로 좋은 책을 나누는 독서 포럼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지난 1월 전주교구 평화동 성당에서 은퇴 미사와 송별식은 가지셨는데, 마지막 미사 강론이 잔잔하면서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사제생활을 마감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고맙습니다. 성당 사목 중심의 사제생활을 마감하는 거지, 사제생활을 그만둔 건 아니지요. 하느님께선 성당 안에도 계시고 성당 밖에도 계시니까요. 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번 사제는 죽을 때까지 예수님의 대리인으로서 세상을 위해 선하고 의롭고 좋은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이런 몫에는 유통기한이 없지요. 본당 사제직을 은퇴하는 건 아무래도 일종의 기득권이랄까, 안전함이나 권력을 확 비우고 내려놓는 큰 전환기적 사건일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어느 시기가 적당한 것일까를 고민했지만, 저울질 하고 고민하는 것 자체가 바로 물러서야 할 때임을 말하는 것이었어요. 내려놓고 떠나고 보니 잘 결정했다는 생각이 확실히 들더라구요. 꽉 쥔 주먹으로는 자유로이 기도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신부님은 1989년에 두 차례에 걸쳐 방북하셨습니다. 그 중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로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임수경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분단 이후 처음으로 판문점을 넘어 함께 귀환,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즉시 체포돼 3년 4개월 동안 영어(囹圄)의 몸이 되셨는데 당시 어떤 각오이셨는가요?"당시에 저의 평양 방문과 판문점 귀환을 환영하고 큰 역사적 사건으로 뜻 깊게 받아들인 사람들도 있지만, 정부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국민들 정서는 한 마디로 '죽일 놈'이었잖습니까. 처음부터 '이건 내 일이다. 내가 해야 한다.'는 각오는 아니었습니다. 남북통일에 대한 신념도 있었고, 이미 개별적으로 방북해서 평양 장충성당에서 미사도 드려본 뒤였지만, 임수경 학생을 데리러 재차 방북하는 일엔 사실 고뇌와 번민이 많았어요. 계획한 일도 많았고요. 정의구현사제단에도 제가 안 갔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렇다 해도 제가 가야하고 해야 할 몫이라면, 독배 드는 걸 피하지는 않겠노라고 기도했지요. 참 여러모로 상황이 어려웠는데 이상하게도 제가 갈 수 있도록 장애물들이 하나하나 치워지는 거예요. 가라는 뜻이구나, 가야하는 거구나 하고 우리 신앙인 표현대로 하자면, 하느님이 이끄시고 하시는 일이었지요. 몸과 맘 다 항복하고, 독배를 기꺼이 손에 들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게 성배가 되었어요. 특별히 선택되었음에 감사할 따름이죠."- 지금 우리 사회에서 북한을 보는 시각은 극명하게 갈립니다. 한쪽에선 북한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또 다른 쪽은 천안함 백령도 사태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면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는 게 바른 시각일까요?"중요한 건 남과 북이 어떤 상태로 살면 좋겠는가에 대한 관점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서로 으르렁거리고 대결하고 총구를 앞세우는 준전시 상태를 유지하며 살겠는지, 아니면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긴장을 완화하면서 평화체제를 다져나가는 게 좋은 건지, 길을 선택해야지요. 준전시 상태를 유지해야만 권력과 기득권, 이익을 누릴 수 있는 세력이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합니다. 한편으론 북한을 몰락시켜 흡수통일 하는 게 유일한 통일전략이고 목표인 세력도 존재합니다. 그런데 죽이겠다고 달라 들면 상대방은 그냥 '나 죽었소' 하고 무릎 꿇을까요. 그들도 당연히 총 듭니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보세요. 정부 요직에 있는 사람들,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국무총리, 여당 대표, 법조계에 있는 사람들까지 병역 면제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들이 주로 제일 격한 단어를 써가며 호전적이 됩니다. 전쟁 나면 대부분 없는 집 자식들이 전장에 내보내지고 희생됩니다. 천안함, 연평도 사태 등등에서 확인됐잖습니까.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그간 남과 북이 이뤄둔 모든 긍정적 관계가 다 파탄 났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대화테이블에 앉기 시작했습니다. 북도 마찬가지겠지요. 어떡허든 살아야하고 그러기 위해선 남측의 지원과 협력이 필요합니다. 같이 살아야죠."- 통일에 대한 전망은 어떻게 보시며, 국민들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까?"남과 북 사이엔 문화나 심리 정서적, 역사적 경험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38도라는 남북 간 경계선조차 지워지는 완전한 통일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북 간 평화체제와 상호공존, 상생이 가능한 체제와 방법들을 모색하고 실천하는데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게 우선이겠죠.'평화가 돈이다!' 이걸 분명히 합시다. 평화가 경제이고 국격입니다. 나라가 평안해야 서민들은 그래도 살기 좋아요. 김대중 노무현 정부시절이 그래도 제일 평화로웠고, 우스운 얘기지만 그 시절에 국민들은 다른 걱정 없이 부동산과 주식 불리는 데만 열중해도 됐어요. 더구나 아이들을 이런 '전쟁' 상태에서 잘 키워보겠다고 하는 건, 교육에 세계 최고로 열 올리는 나라에서 앞뒤 안 맞는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태도예요. 국민들도 남북 간 공존과 상생에 초점을 맞추어 그런 정치인들, 시민사회를 지지해야 합니다."- 신부님은 2001년과 2003년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삼보일배를 하셨습니다. 이후 새로운 시위문화로 정착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북 도민들 상당수는 새만금사업이 낙후된 전북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낙후된 것은 우리의 사고와 상상력입니다. 바다가, 갯벌이 바로 미래경쟁력이지요. 투자 대비 시너지와 수혜자가 적은 보여주기식 대규모 토건공사는 미래경쟁력이 될 수 없어요. 창의적 지식과 아이디어가 세계경제를 좌지우지 하고 있습니다. 저는 혼자서 되묻곤 합니다. 새만금 사업 시작한 지 10년, 20년 되갑니다. 그동안 전북이 발전 했는가요? 학생들은 대도시로 빠져나가고, 인구 줄고, 실업률, 공장 가동률 등등 좋아진 게 있을까요? 끊임없이 새만금 로또를 부추기며 표 얻는 데만 관심 있었던 정치인들, 몇몇 대기업 건설회사와 그에 하청 받는 지역건설업자들 일부만 배불린 사업이죠. 또 땅 투기, 부동산 투기로 각광받은 것 말고, 뭐가 있을까요. 수많은 어민들이 일자리 잃고 농촌 빈민, 도시 빈민으로 전락했는데, 경제 활성화를 말할 수 있을까요. 간척에 쏟아 부었고, 앞으로도 쏟아 부어야 할 그 어마어마한 돈이면 전북지역 경쟁력은 이미 갖추고도 남았을 거예요."- 신부님은 2003년 부안 핵폐기물처분장(방폐장) 유치 반대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성공을 거두셨고, 지금은 부안에 신재생에너지단지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노무현 정부였고, 원전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많았습니다. 당시를 돌이켜 볼 때, 그 때의 행동과 지금의 소회는?"그 때의 신념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핵은 무서운 것이고 ,이 세상 어디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국가권력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힘없는 지역민들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선 없어져야 할 국가폭력입니다. 참여정부의 한계랄까 수준을 처절하게 경험했죠. 참여정부가 여러 면에서 진일보한 유산들을 남겨주었지만 부안 문제는 무엇보다 뼈아픈 대목일 겁니다. 미래 정치세력은 부안항쟁에서 많은 배움이 있어야 할 겁니다.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 이후 무엇보다 기쁜 것은 부안군민들이 치유되고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옳았다, 돈에 우리의 영혼과 고향, 삶의 터전을 팔아넘기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살아나는 거죠. 비록 옳다고 믿고 한 일이었지만 지역이기주의네 어쩌네 하는 많은 비난과 공동체 분열에 시달려왔기 때문에 사실 부안사람들은 그동안 무척 힘들었어요. 게다가 핵폐기장을 돈 덩어리로 보고 계속 유치하려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부안항쟁이 이제 새로운 탈핵 시대를 계승해가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부여 받았다고 봅니다. 부안을 넘어 전라북도가 그래야겠죠."- 신부님은 그 동안 우리 시대를 관통해 온 굵직굵직한 사건 현장에 거의 함께하셨습니다. 특히 용산참사 때는 단식으로 의식불명의 위험한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항상 힘없고 낮은 사람 편에 섰는데, 그 원동력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저는 5대 째 천주교 집안사람이고, 천주교 사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일체와 일치로 모시는 사람입니다. 제 모든 근거와 원천은 예수님에게 있고 그분에게서 찾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힘없고 낮은 사람, 소수자를 사랑하시며, 이들이 귀하게 대접받는 하느님 나라를 만들고자 하신 분이었습니다. 성경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하고 미사 드리니 그걸 까먹을 수가 없죠."-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진보진영의 김승환 교수를 전북교육감으로 당선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어떤 계기에서 관여하셨고 또 현재 교육계의 변화를 어떻게 보시는가요?"언제나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져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회에서 가장 건강하고 훌륭해야 하는 교육계가 어찌 보면 가장 부패하고 낙후되어 있는 게 솔직한 현실입니다. 이런 오명을 벗어나야만 왜곡된 교육환경에 질식 상태인 아이들이 살아나고, 제가 바라는 생명평화 세상도 하루라도 빨리 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이 앞서서 좋은 본보기를 보여준 것도 자극이 되었지요. 김승환 교육감 당선 뒤, 저는 그분을 비웠습니다. 그분은 그분 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하고, 저는 제 일을 해야 하는 거지요. 그분이 올곧게 계속 자기 길을 잘 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다 저렇다 할 얘기는 아닌 것 같군요."- 신부님은 전동성당에서 출발해 평화동 성당에서 은퇴식을 갖기까지 평생동안 전주교구 산하에서 목회직을 맡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지방언론과는 거리를 둔 느낌이 강합니다. 한때 부안독립신문도 창간하셨는데 지방언론의 문제점이랄까, 고쳤으면 하는 점을 지적해주셨으면 합니다."제가 지방언론을 멀리한 게 아니라, 저를 지역개발 걸림돌이요 훼방꾼이라고 생각한 지방언론들이 저를 멀리한 거 아닌가요(하하). 지역 언론들이 갈수록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안쓰럽습니다. 그래서 지역에선 자의반 타의반으로 지역 토호들, 권력자들과 공생하거나 그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그게 죽는 길이예요. 언론, 언론인임을 포기하는 겁니다. 언론이 제대로 살아나면 지역발전이나 미래경쟁력에 생기와 창조성을 불어넣을 수 있어요. 참 언론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자존심이 팔팔 살아났으면 합니다. 영혼 있고 개념 있는 걸로 치면 언론인이 최고여야 하는데, 요샌 형편없어졌어요. 언론인에게서 정신을 빼놓으면 이익집단 되기 쉽죠. 또 철학 없고, 소신 없고, 무지함을 드러내는 '받아쓰기'좀 그만하라는 겁니다. 제발 공부들 좀 하고, 사고하고 또 사고하고, 발로 뛰고 연구합시다. 정말 지역발전에 필요한 게 뭔지, 사건의 본질은 뭔지, 세상의 다른 마을들에선 어떤 멋진 일들, 사건들이 펼쳐지고 있는지, 미래를 향해 신나고 좋은 게 뭔지 자꾸 파고들면서 지역정치인들 지역민들에게 도전해야죠."- 끝으로 주시고 싶은 말씀은?"한 사람, 한 사람이 희망입니다. 조금이라도 변화하고 새로워지려 노력하는 사람들, 사람들과 좀 더 나은 것을 나누고, 좀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서 마음 보채며 묵묵하게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바로 희망입니다. 오늘보다 좀 더 괜찮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오직 나만이 아니라 건강한 사회,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이 희망입니다."/ 대담 조상진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