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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문화의집 연극 활동] 귀촌 아줌마들의 설레는 무대 도전기 '지금 막 오릅니다'

너희들 몰랐어? 여기 호수에 오래된 천년 묵은 용이 있다는 거?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할아버지 보셨어요? 그럼 봤지. 이리 가까이 와봐. 저기 용담호 보이지? 이 할아버지가 너희들만 했을 때 저 아랫마을에 살았는디 거기서 봤지. 물 속에서 살았다구요? 용궁? 허허. 용궁이 아니라... 아니 용궁이기도 허네. 여기 댐이 만들어지기 전에 저곳이 다 마을이었어... 진안문화의집 공연장에서 예닐곱의 젊은 여성들이 연극 연습을 하고 있다. 3-40대 아줌마들이다. 무대 위 여기저기에 한두어 명씩 어울려 대사를 읽거나 몸동작을 연습한다. 말투나 얼굴 표정에도 각별히 신경 쓰며 몰입한다. 그이들은 연극단원은 아니다. 진안으로 귀촌해와 살고 있는, 익숙해지는 듯 하면서도 아직은 진안에서 산다는 게 낯설기만 한 젊은 귀촌여성들이다. 이들은 12월에 발표할 아동극 소원이가 용됐네 연습에 한창이다. 진안에 전해 내려오는 용담호 전설을 섞어서 프로그램 참여자들과 의견을 나누어 창작했다. △ 소원이가 용됐네 산골 촌구석에서 연극하자고 모여든 주인공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귀촌한 지 5년이 되어가는 심수진 씨는 진안에서 마을만들기 일을 하고 싶어서 귀촌했으며 임신과 출산 때문에 잠시 쉬는 사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이를 입학시키려고 장수에서 넘어오게 되었다는 김현미 씨는 초등학교 방과후 보육교사로 일하고 있다. 진안으로 귀촌한 지 만 2년차 되어가는 전해경 씨는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두 아이의 엄마이며 알바로 방과후 교사 활동을 하는 중이다. 오랫동안 시골살이를 꿈꾸었으며 시댁 가까운 전라도 지역을 알아보다 진안에 귀촌하게 되었다. 결혼하기 전 남편과 연애할 때 서울 대학로에 가서 연극을 보던 경험들이 참여 계기가 되었다. 초기에 즉흥극할 때 부끄러워서 자꾸 빼고 주춤거렸는데, 여전히 부끄럽긴 하지만, 재미있단다. 재미있어서 자주 웃게 돼요, 집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어 줄 때 이제 연기하듯이 읽게 되더라고요. 아이한테도 그렇게 읽어보라고 시키고, 가족들끼리 그렇게 읽다가 많이 웃어요. △ 삶의 이야기들도 서슴없이 나누고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희진 씨의 말이다. 귀촌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 활동인지라 처음에는 귀촌한 삶의 마음들을 풀어보는 일반 어른들의 세계를 표현해보려고 했어요. 연극을 해보자고 모여든 사람들이 연극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일상생활을 하는 평범한 보통사람들이거든요. 그러나 진안에 귀촌해서 사는 사람들이다보니 평범하지 않은 낯선 존재들인 것도 사실이고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사람들은 무대에 대한 열정이 강해요. 젊은 주부들이 많아서 그런지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들 한다. 연극을 통해 집에서 아이들과 놀 수 있는 방법을 배우려 한다거나 책을 재미나게 읽어주는 법을 배우고 싶어 한다. 얼굴이나 몸짓의 표현을 통해서. 그래서 아동극을 하기로 했단다.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에 우리는 즉흥적인 장면 꾸미기 활동을 위주로 했어요. 대본이 미리 짜여진 것은 아니고, 참여자들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즉흥적인 장면 꾸미기 연습을 하고 그러면서 아동극의 방향이나 줄거리를 잡아온 거죠. 나를 알고 서로 알아가고 몸짓형으로 이야기 나누고 우리 동네 이야기 하고... 아이 양육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집 장면들이 많이 등장했어요. 시부모나 남편들도요. 가족이나 이웃집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고 학교 이야기도 나누는 과정이었죠. 서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니 정치나 교육 이야기들도 서슴없이 했어요. 지역에서 마을에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보니... △ 생활세계와 관련이 먼 줄 알아 너무 좋아요. 치유하고 나를 표현할 수 있고 연극이 좋은 거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어요. 중학생인 큰딸이 극심한 아토피로 고생하자 순천에서 친정이 있는 진안으로 귀향한 이유민 씨의 말이다. 이사온 지는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아이가 학교를 자주결석할 정도로 아토피가 심했다. 아이도 시골로 옮겨 살기를 원했다. 시골에서 살다보니 아이의 몸이 많이 좋아졌다. 이것만으로도 이 씨는 행복할텐데, 이 씨는 나름대로 자기 삶을 찾아 나섰고 그러다 연극하는 프로그램으로 합류할 수 있었다. 이런 엄마인생에 아이들도 좋아한다. 저는 연극이란 게 저의 생활세계하고는 관련이 먼, 특별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막상 진안문화의집 선생님으로부터 권유를 받고 선뜻 응한 거예요. 뭔지 모르게 설레었어요. 아이의 아토피 때문에 힘들던 몸이 나를 발산시키고 싶다는 생각으로 동요한 것 같아요. △ 주부 여성들의 잃어버린 감각 살리기 이유민 씨에게는 연극 활동이 행운이 되었다. 어렸을 때 웅변도 하고 글짓기도 좀 하던 끼가 되살아나기라도 한 것일까. 연극 활동이 있는 날 오후에는 진안에서 초등학생 아이들 독서지도를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힘들어 지치지 않고 오히려 더 신나게 더 상쾌하게 아이들과 수업할 수 있단다. 아이들이 주의집중력이 약해서 연극 활동에서 흥미유발을 하며 주의집중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면 좋겠다고 한다. 김희진 씨는 프로그램이 더 진척이 되면 아이들을 위해서 인형극으로 아동극을 꾸며 볼 생각이란다. 그러자면 공연용 인형도 만들어야 하고 극복 꾸미기나 목소리에 집중해서 연습할 계획이다. 주부여성들의 잃어버린 감각 살리기도 과제다. 나중에 아동인형극을 공연하고 마을로 순회하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 생각이다. △ 연극에 꿈을 가진 사람들 진안에 귀농귀촌자들이 많잖아요. 농삿일을 하지 않는 젊은 주부들도 많고요. 의외로 연극을 해보고 싶어하는, 연극에 꿈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어요. 진안군 진안읍에 있는 진안문화의집 기획자 황현화 씨의 말이다. 황 씨는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에서 주관하는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연극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그이도 귀촌해서 진안에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귀촌여성들의 심정을 헤아리는 마음이 크다. 매주 목요일 오전이면 연극을 하고 싶어하는 귀촌여성들이 모여들어 연극 활동을 한다. 소원이가 용됐네 시나리오도 그렇게 모여서 공동으로 창작했다. 진안 용담호 이야기를 중심으로 설정하고 있다. 분주한 도시생활을 하다 진안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와 살다보니 산골마을의 한가로운 맛을 만끽할 수 있어 좋아요. 그러나 대부분 낯선 곳에서 마음이 위축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죠. 도시문화가 그리워지기도 하고요.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일상의 관계를 맺으며 살고 싶은 욕구가 있는 사람들, 그리고 끼와 열정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 그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 연극이라는 새로운 활력소를 찾자는 의도였지요. 진안 귀촌여성들의 연극 소원이가 용됐네는 12월 14일 주민들과 만난다. 진안문화의집 공연장에서 오전 10시에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저녁 7시에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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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29 23:02

[전주 중노송동 문화1길 '꽃장']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 작품이 된 '꽃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터에는 삶의 무늬가 존재한다. 과거와 현재의 일상이 공존하며 삶터에는 새로운 무늬들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무늬가 쌓이면 문화로 자리 잡게 된다. 어느 한 동네에 꽃나무를 나눠주는 어르신이 계신다. 종묘장에서 꽃나무를 가져다 집 앞에서 가꾸고, 한 두송이 더 가져다 이웃주민들에게 나눠주며 함께 가꾸기 시작했다. 한해 두해 길러낸 꽃나무가 제법 자리를 차지하더니 집 앞과 옥상에 계절마다 형형색색 꽃을 피워 예쁘게도 마을을 물들였고, 그리하여 이제는 꽃길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마을이 되었다.꽃길이라는 별칭을 얻은 곳은 바로 전주 중노송동 문화1길이다. 원래 문화촌은 1000년 가까이 기린봉에서 내려온 물을 가두었던 저수지였다. 둘레에는 아름드리 능수버들이 늘어졌고, 아름다운 정자들이 서있었다고 한다. 이후, 일제시대 때 저수지가 메워지고, 공설운동장이 되었다가, 1969년 공설운동장이 철거된 후 중앙정보부와 문화촌으로 상징되는 대규모 주택단지로 개발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터를 잡았다. 네모 반듯 깔끔하게 정돈 된 골목과 도로, 2층 양옥집으로 고즈넉하게 지어진 집들은 오랜 세월 풍파에 허름해 졌어도, 그 기세가 등등해 보인다. 이제는 꽃들이 더해져 아름다움까지 더한 길이 되었다.△어르신과 청년작가, 꽃길에서 만나다꽃길이 되어가던 문화촌에 청년사진작가(장근범 씨)가 이사 와 새 둥지를 틀었다. 이 청년사진작가는 뚝딱뚝딱 본인이 살 집을 고치다, 어느새 마을의 모습과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분자분 눈에 담고 마음에 담기 시작했다. 이 동네에서 뭔가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어르신들은 젊은이들이 살아보지 못한 세월을 먼저 살고, 경험하지 못한 삶을 경험했다. 시간이 쌓아올린 세월의 경험치는 미래를 살아갈 젊은이들에게 큰 배움이 된다. 청년들의 계절은 새롭다. 다양한 것들을 색다르게 받아들이며 꿈꾼다. 오래됨과 새로움. 그 안에 녹아나는 가치들이 만나면 큰 에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2016년 어르신과 청년작가들이 꽃장이라는 꽃길에서 만남을 시작하게 된다.△어르신, 삶을 이야기 하다꽃길에서 만나니, 그 만남의 매개는 당연 꽃이다. 둥지를 튼 사진작가의 집 1층이 마을의 사랑방이 되어 매주 이야기꽃을 피우고 가끔 밥해 먹는 공간이 되었다. 어르신들이 꽃을 매개로 나누고 가꾸는 활동만 했다면 이제는 다양한 장르의 청년작가들과 새로운 것을 시도할 준비를 한다. 주변을 살피면 기술적으로 배움을 가르치는 곳은 많으니, 이곳이 굳이 기술을 습득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은 아니길 바랐다. 삶을 살아가는 공간이니, 어르신들의 삶이 풀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생산적 공간이기를 바랐다.인간의 세포는 분자가 아니라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이 있다. 어르신의 세포가 어떤 이야기로 구성되었는지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부터 청년작가들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사랑, 결혼, 출산, 일 등 어르신의 삶을 구성하는데 중심에 놓였던 주제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오래전 꽁꽁 숨겨 놓았던 이야기를 물으니 어르신들이 천천히 기억을 더듬는다. 더듬을수록 기억은 생생해지고,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하다.함께 나눈 사랑에 대한 이야기 중 연세가 제일 지긋하신 할아버지께서 사랑은 배려다, 배려해야 만이 살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이야기가 제일 마음에 남아요. 어르신들과 이야기 하면서 어르신들이 생각하는 깊이감이 청년인 우리와는 정말 다르구나 하는 것을 매번 느끼게 되었어요. 청년작가로 참여했던 전수진 작가는 사랑을 주제로 어르신들을 만났다. 어르신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는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깊이감 때문에, 당연하다 생각 했던 이야기들이 더 큰 울림으로 전해져 왔다고 한다.청년작가들과 매 차시 주제를 가지고 나눈 이야기가 이제 작품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어르신은 경험과 세월을 들려주고, 청년작가는 어르신에게 작품을 통해 새로움에 대한 경험을 제공한다. 일방향적 배움과 가르침이 아닌 서로간의 등가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스토리가 브랜드가 되는 장터, 꽃장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인 작품은 꽃장이라는 이름을 통해 사람들에게 선보인다. 어르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터에서 진행했기에 장터 또한 삶터에서 진행한다.매서운 겨울추위가 찾아오려는 문턱에서 진행한 2017년 마지막 꽃장은 마을잔치라는 이름처럼 소박하게 진행되었다. 한해 함께 살아냈으니 잘했다고 서로 박수치고 토닥여 주는 자리로 마련된 것이다. 거창하고 사람이 북적이는 공간이기 보다, 소소하게 어르신의 삶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온기로 채워지기를 바랐다.꽃을 매개로 하다 보니 곳곳에 꽃들이 보인다. 매대 마다 어르신들의 작품이 놓여있다. 놓여있는 작품마다 어르신의 이야기가 담겨있고, 시간과 노력이 담겨있다. 그래서 돈으로 교환가치를 만들어 내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2016년 장터에서는 에 어르신 자신이 직접 값을 매기기보다, 손님 스스로가 가격을 요구하고, 어르신은 그 가격에 동의하여 작품을 판매했다. 생각보다 큰 가격이었지만, 스토리에 감동한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작품을 구매했다. 팔릴까 걱정했던 어르신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꽃장을 장근범씨와 함께 기획한 맹그러브 대표 김명규씨는 꽃장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스토리가 브랜드가 되는 장터로써 자리매김 하는 공간이기를 바란다. 더불어 돈으로 어르신의 스토리에 가격이 매기고 판매하기 보다는 다른 방식으로써 교환가치를 만들어 내는 방식을 고민 중이라고 이야기 했다.△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소중해 지는 과정요즘, 새로운 것을 접하거나 배우기 위해서는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야 가능한 것들이 많다. 일상이 단절된 공간에서의 배움은 낯섬을 경험하는 것 외에는 삶의 변화를 만들어 내기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꽃장은 의미 있게 다가온다. 평생을 살아온 삶의 공간에서, 어르신 자신의 세포를 구성하는 이야기를 통해 일상의 변화를 청년작가들과 함께 만들어 낸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소중해지고 새로워진다.서로 다른 세대가 만나는 것은 균열을 만들어 내는 일임으로 순조롭지만은 않다. 서로가 생각하는 모습들이 있기에 그 간극을 좁혀가는 과정 또한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 균열을 만들고 다시 메우는 일은 서로의 세대를 이해하고, 살아가는 삶터에 또 다른 무늬를 그려가는 일임을 알아간다. 그렇기에 서로 다른 세대가 관계를 만들어가고 소통하는 것은 지난하지만,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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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22 23:02

[고창 책마을 해리 책영화제] 책을 품은 영화이야기…"같이 한 편 펼쳐볼까요?"

영화의 원천은 무엇일까? 혹은 책은 어떻게 세상과 만나는가? 두 가지 물음은 오래된 미디어 책, 여전히 진화하는 새로운 미디어 영화(혹은 영상매체) 사이에 어떤 관계가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가,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영화의 원천을 찾아 떠돌다 만나는 이야기의 집, 책. 이야기가 책의 집을 떠나 새로 머물며 희로(喜怒)하고 애락(愛樂)하는 이미지의 옷, 영화. 이 두 가지 방식 매체에 대한 논의가 비로소 우리 곁에서 빛과 소리로 만나기 시작했다. 바로 <책영화제>이다. 지난 11월 3일부터 5일까지 이틀 밤 사흘을 책과 영화 속에서 지낸 <책영화제, 고창> 이야기를 전한다.△영화의 원천, 책의 새로운 거처이번 <책영화제>는 모두 여덟 개 나라 스물여섯 편의 영화와 만나는 작은 영화제이다. 스물여섯 편의 영화는 모두 책을 원전으로 하고 있거나, 책을 모티브로 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영화의 원전을 책으로 삼아 영화제를 열은 것은 처음 시도다. 영화제이지만, 영화 못지않게 책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대개 영화이야기 만 나눈다. 영화의 감독을, 배우를, 배경을, 제작자를 이야기한다. 그 영화가 태어난 원천에 대한 이야기는 가뭇, 사라지고 없다. 그 원천, 책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책 영화제는 책 이야기가 왁자지껄하다.책의 편에서 살피자. 책은 요즘 어떤 존재인가. 눈을 움직이며 활자를 따라 끊임없이 호흡을 이어가야 한다. 손은 또 어떠한가. 눈동자가 움직이며 활자의 끝을 따라가기 바쁘게 페이지를 넘기며 면과 면을 이어야 한다. 그림책같이 이미지가 주를 이루는 책이라면 좀 나으련만, 글만 가득한 활자중심의 책은, 쉼 없이 활자가(혹은 문자가) 지시하는 대상을 호명해야 한다. 소리 내 읽을라 치면, 귀도 가만있을 수 없다. 스스로 내거나 누군가 읽어주는 그 소리를 잡아채기 위해 청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이렇게 손이며 눈, 귀, 온 감각과 상상하는 힘까지 송두리째 동원해야 하는 꽤 까다로운 행위다. 그 행위의 수고로움을 누그러뜨리는 방향 가운데 하나가, 이미지화다. 음성화다. 인류가 그 맞춤한 결과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영화다.△10년 이야기를 쌓다첫 책영화제는 전북 고창 책마을 해리에서 열렸다. 책마을 해리는 글, 그림작가(조형예술가, 목수) 출판 기획자와 편집자, 디자이너 들이 사는 책, 마을, 공동체다. 바닷가 폐교에 깃들어 마을사람들과 숨을 나누어 쉬며 수많은 빛깔 마을학교를 열어 어린이로부터 가족, 마을어르신들의 배움과 놀이의 공간이 되고 있다. 책마을답게 그 모든 결과를 책(혹은 신문 같은 매체)으로 펴내고 있다. 지난 2008년 초 폐교된 나성초등학교 숙직실을 리모델링하면서 시작된 책마을이야기가 이제 10년을 채웠다.출판캠프 방식으로 운영하는 학교 프로그램 못지않게 책마을 공간도 정리가 되어가는 시점, 세상과 책마을해리가 만나는 구체적인 접점으로 책과 영화를 삼은 것이다. 책마을해리에서 열리는 첫 책영화제가 시작된 것이다.△이틀 밤 사흘간 책과 영화 이야기책영화제 첫 영화는 <슈렉>, 윌리엄 스타이그라는 걸출한 그림책 작가의 동명 그림책 『슈렉』을 함께 읽으며 영화제를 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단체 관람객들에게 책과 한편 같고 한편 다른 영화이야기가 흥미진진이다. 이름짜한 애니메이션으로만 알았던 영화의 원작이 그림책이라니, 펼치고 읽는 책과 빛으로 번지는 영상 사이에서 우쭐우쭐이다. 어린이들만을 위한 영화 뿐 아니다. 영화제를 마무리하면서 함께 감동을 나눈 <캡틴 판타스틱>은 원작이 책이 아닌 시나리오지만, 그 안에 등장하는 작가, 책, 책의 문구들이 난무하는 인문경연장이 되었다. 교육은 무엇인지, 삶이란 무엇인지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영화 끝에 이어진 <북씨네토크>에서 중년 관람객은 앵콜상영을 요청하기도 했다.서울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의 도움을 받아 단편 애니메이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청년영상제를 함께 열어, 20대 초반 청년들의 다양한 영화적 시도를 엿보기도 했다. 책과 영상 공모전도 진행했다. 대하소설 첫권떼기를 통해 긴 호흡 소설에 익숙하지 않는 세태, 읽기의 한계를 극복해보려는 시도도 빠지지 않았다. 출판평론가 장은수, 조월례, <씨네21> 주성철 편집장과 안재환 애니메이션 감독이 전하는 책과 영화이야기, 주제토론도 책영화제의 의미를 더해주었다.책영화제 꾸밈은 꼭 책과 영화만이 아니다. 다양한 공연, 전시도 함께였다. 마을학교 <밭매다 딴짓거리> 어르신 학생들의 4년동안 그림과 글을 모아 엮은 『여든, 꽃(김선순)』『마을, 숨은 이야기 찾기(나성마을아짐들)』원화전도 열렸다. 작가와 만남 시간도 100여 명 참가자들과 함께 감동과 웃음의 도가니가 되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부끄럽다며 반주로 소주를 들이키던 분들이 첫날 밤을 묘사하는 적나라함이며, 마을에서 유일한 연애결혼담이며, 이야기보따리가 열리자 봇물 터지듯 말문이 열렸다.책마을아트앤북레지던시 전시도 함께했다. 3년동안 바느질 속에 살았던 정상경 작가의 <수궁가헝겁조형전>부터, 책마을해리 책뜰을 조형예술 작업으로 채운 류충렬 화백의 책조형전도 함께 진행했다. 우리나라 지역출판도서전을 작게 꾸미기도 했다. 이번 책영화제는 3일간 1천여 관람객과 함께했다.△아직 가슴 설레는 모험의 꿈책영화제는 전라북도, 고창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KBS전주총국, 전북일보, 전라도닷컴 등의 친구들과 함께 열었다. 책마을프랜즈는 지역공동체도 한몫을 했다. 고창의 마을공동체 교류의 장이 되기도(책영화제 첫째 날), 마을학교 진행자와 참가자들이 함께 어울리는 학교의 장이 되기도(책영화제 둘째 날) 했다.마지막 날은 해리포터즈의 날이 되었다. 해리포터즈는 책마을해리와 서포터즈의 합성어다. 30여명의 해리포터즈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대학생까지 두루 참여해 책영화제 감동을 함께 나눴다.이번 책영화제는 책마을은 누구나 책을 만드는 마을이라는 슬로건처럼, 영화제를 기획과 준비, 영화제 3일의 기록을 잘 편집하고 디자인해 책으로 발간할 계획이다. 가제가 『책의 미래, 책영화제의 모험』이다.이번 첫 책영화제는 주제를 <책과 영화, 모험을 떠나다>로 삼았다. 책마을해리는 책과 마을이 만나 시작하는 책의 모험이다. 책과 마을로 시작한 책의 모험은, 올해는 토요일 하루 고창 청소년들과 진행한 책 학교로, 책영화제로 확장하고 있다. 2018년 책영화제는 또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불러올지, 자못 기대가 크다./이대건(책마을 해리 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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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15 23:02

[군산항은 콘텐츠다] 평화 땐 교류 나들목·전쟁 땐 요충지 활용 '이야기 무궁무진'

항구를 노래한 유행가가 있는가 하면 항구에 관한 사연들도 많다. 인생을 항해하는 배로 비유하며 떠나는 자와 보내는 자의 이별의 정을 나누는 장소를 항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군산항은 일반적 항구와는 다른 의미가 있다. 사람을 떠나보내는 이별 보다는 자식 돌보듯 소출한 쌀을 가차 없이 수탈당했던, 쓰라린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이런 군산항을 이제는 과거의 회한에만 얽매여 있지 말고 콘텐츠화해 역사교육의 장소로, 반성적 사고를 동반한 힐링의 장소로 활용 하자는 것이다.△ 세계와 전북의 연결고리, 군산항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黃海)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 째 얼어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大處)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은 군산(群山)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에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채만식의 탁류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으로, 군산의 지정학적 위치를 설명하기에 매우 적절한 내용이다.군산은 서해 중남부지역에 위치하며 북으로는 금강이 남으로는 만경강이 흐르는 사이에 반도형 들판이 서해에 맞닿아 있어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다. 북으로는 우리나라 3대 강 중에 하나인 금강이 우리 군산을 끼고 흘러 바다에 이른다. 그 금강 줄기에는 백제시대의 제23 수도가 있었다. 그러므로 군산은 평화시에는 물류와 문화 교류의 나들목 역할을 했고, 전쟁시에는 요충지가 되었던 곳이다.강가에는 배가 닿기 좋은 포구가 있어 상권이 활발하게 형성 됐었다. 그래서 고려시대는 진포라고 불렀다. 그 강 줄기에 나리포구, 서시포구, 사옥포, 궁포, 경포(서래포구), 죽성포(째보선창)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군산의 내항은 수탈의 창구였다. 쌀을 빼앗아 가기 좋은 구조로 강둑에 축대를 쌓고 밀썰물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부잔교를 만들었다.1976년에는 외항의 건설로 본격적으로 세계로 연결 될 수 있는 역할을 확보하게 되었다. 현재의 비응항과 신시도항에 이르기까지 과거에서 미래로 연결되어지는 군산항에 대한 다양한 콘텐츠를 생각해 보려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바람을 가르는 금강둑생명력 넘치는 탁류아스라이 강 끝에 햇살이 퍼지면, 산자락은 봄기운에 들뜨고 강 둔덕 풀섶엔 유채꽃 무리들이 철렁철렁 강물박자로 춤춘다. 강바람 마주하며 사뿐 사뿐 걷다 보면, 금강하구 반가운 갯 내음이 가득하다. 녹슨 작은배가 옛 영화를 꿈꿀 때, 물오리 세 마리 한가로이 노닥이고, 강둑 위 금단추 같은 민들레가 오늘을 노래하네.지난 봄 공주산 옆 나리포구에서부터 내항까지 금강둑을 따라 걸으면서 필자가 적었던 감상글이다.세월이 빨라 벌써 늦가을이다. 며칠 전 금강 하구둑을 다시 걸었다. 안개가 낀 것도 아닌데 먼 산은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 희미하다. 강물은 가을 햇살에 은빛으로 반짝인다. 강둑에는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바람을 가르며 달린다. 여전히 갯 내음이 코끝을 스친다.채만식 문학관을 막 지나서 내항을 향해 걷다보면 군산을 잇는 개통을 앞 둔 동백대교의 라인과 오래전 문을 닫고 초식 공룡의 목처럼 우뚝 솟은 장항제련소의 굴뚝이 묘한 어우러짐을 볼 수 있다. 강물의 색깔은 갯벌이 휘돌아 흐르는 탁류이다. 지구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바다와 강이 만나 만들어진 생명력 넘치는 탁류이다. 그곳에 저녁노을이라도 질 때면 불타오르는 붉고 금빛 나는 하늘이 장관을 이루어 보는 사람 누구나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LA에 살던 필자가 아는 이는 군산 내항에 지는 노을을 바라보고는 발길을 떼지 못하며 그 아름다움에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군산 내항 길은 걷는 것 자체로서 힐링이 되는 콘텐츠 공간이다.△ 금강하구 포구마다 깃든 사연들군산항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공주산 아래의 나리포구엔 아직도 작은 배가 묶여있다. 나리포구가 언제부터 포구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임피현 산천조에는 공주산은 현의 북쪽 13리 약 5km에 있는데 전하는 말에 공주로부터 떨어져나왔기에 이름한다고 한다. 공주산 밑이 진포인데 민가가 즐비하고 배부리는 것을 상업으로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초에도 상당한 규모의 어촌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군산항에서 출발한 여객선이 나포를 거쳐 강경으로 올라가는 항로상의 경유지가 되었다. 해방이후 군산동부어판장 즉 째보선창에 어협조합이 만들어지면서 객주들의 영업자체가 불법이 되어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가 한국전쟁을 겪으며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이처럼 금강하구에 있던 포구들은 그 외에도 서시포구, 궁포, 경포(서래포), 죽성포(째보선창)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포구들은 역사적인 이유로 또는 갯벌이 쌓여 큰 배가 들어오지 못하는 자연현상 등으로 포구의 기능을 잃고 쇠락한 채로 누워있다.그러나 금강하구에 포구마다 깃든 사연은 스토리텔링의 보고이다. 경포는 서래, 슬애 포구라고도 불리웠으며 초가집이 가득찬 어촌마을이었다. 슬애란 서래의 군산식 발음인데 서울에 가는 포구라는 뜻이다. 슬애를 한문으로 기록하려니 서울경(京)에 포구포(浦)를 사용하여 경포라 부른 것이다. 경포에는 경장시라는 오일장이 열렸다. 서래장터에서 호남최초의 31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의 삶이 수탈만 당했던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저항도 함께 했음을 알 수 있는 장소이다.대나무가 많아서 죽성포구라고도 불린 째보선창. 이는 물길이 째지듯 육지를 파고 든 모습 땜에 또는 선창 객주가 실재 째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일제는 금강 줄기에 있는 조선민족 상권인 강경상권을 축소시키려고 계획적으로 째보선창을 활성화시킨다. 소설 탁류 속 주인공 정주사가 착지한 곳이기도 하다. 째보선창이 번창하면서 3.1만세 운동의 집결지인 경포 옆에 있는 서래장도 서서히 문을 닫게 된다. 당시엔 만선의 고깃배 출어를 돕는 객주들 나무장수, 물장수, 떡장수 등 째보선창 언저리가 발디딜 틈도 없이 북적거렸다. 지금은 주인을 잃은 고깃배 붉게 녹슨 닻 수북한 어상자들 쓸쓸한 민야암 등대 넘어로 철공소의 쇠망치 소리만 그 정적을 깨고 있다.필자는 째보선창에 있는 동부어판장 옥상을 해질녘에 올라간 적이 있다. 넓게 펼쳐진 갯벌과 함께 밤하늘 별빛의 아름다운 어울어짐은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기 좋은 곳이다.△ 이야기 많은 군산항, 항구적 기능도 살려야군산항을 근대항으로 개발한 것은 1905년 구한국정부에 의해 공사비 8만 6000원의 투자 7개년 계획으로 대형 부잔교 3기가 만들어지면서 부터이다. 1930년대부터 대륙침략의 병참기지화로 활용되었다. 해방 후부터 1960년대 이후 도시발전 정체로 인해 해망동의 수산물시장을 축조했다. 현재 내항의 모습은 개항 이전부터 현재까지 군산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달하고 쇠퇴를 거듭해 왔다.1979년 금강 하굿둑이 생긴 이래 토사가 쌓이면서 항구로서의 기능을 점점 잃어가면서 꼴깍꼴깍 수명이 다하고 예전의 군산항의 정취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외항으로 나가서 무역항과 여객선을 운행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비응항에는 어선이 드나들고, 신시도에 새로운 외항을 건설 중에 있다.내항은 이미 수탈의 현장으로 활용되었던 흔적들은 근대역사교육 장소로 활용되어 전국에 있는 수학 여행단들의 답사지가 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을 살려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밀물과 썰물이 자연스럽게 콸콸거리며 소통이 되게 해야 한다. 소통되게 하기 위해서는 금강 하굿둑의 갑문을 열어서 해수유통을 하게 해야 한다. 백중사리와 장마 때만 빼고 평상시에는 꾸준하게 문을 열어놓고 민물과 바닷물의 유통이 콸콸거리게 하면 좋겠다. 갯벌로 조여진 목이 뻥 뚫어져서 뱀장어, 우어, 황복어 등의 전성기를 다시 맞이하게 하고, 강 하구로서 민물고기들이 산란을 하여 그것이 자라나 박시글거리며 찾아오는 곳이면 더욱 좋겠다. 또한 뱃길이 열려서 여객선이 드나들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금강하구에 있는 포구와 지금의 내항과 외항 모두 군산항으로서 그 역할을 잘해왔지만 항구적 기능과 어항적 기능이 죽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군산항을 다시 살리는 수 있는 방안을 다양하게 모색해야 한다.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금강은 천혜의 관광자원이고 금강하구에 집중되어 있는 군산항구는 콘텐츠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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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08 23:02

[문화 & 공감] 완주숙녀회·여성자립생활기술캠프 - 전등·창문틀 교체 내 손으로 척척…'난 남자없이 잘 살아'

요즘,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의 이주를 시도한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결과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주한 귀농·귀촌인이 5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농·귀촌은 가족단위의 이주가 많았다. 은퇴시기를 맞이한 50~60대의 장년층이 제2의 삶을 시작하기 위해 선택하거나, 30~40대 중년층이 아이들의 교육이나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을 갖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성장 시대에 제일 타격을 많이 받은 세대부터 차근히 대안적 삶을 위해 이주를 택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지금, 그 타격의 마지막 세대인 청년들이 점차 농촌으로의 이주를 시작하고 있다.△나 홀로 귀농·귀촌 하는 여성 증가 50만명에 육박하는 귀농·귀촌인중 30대 이하 젊은 층이 절반이 넘는다. 귀촌 가구의 가구 원수는 1인 가구가 70.0%, 2인 가구가 18.1%를 차지해 1~2인 가구의 비율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2015년 대비 2016년 전체 귀촌인의 성별 분석 결과 남성이 1.4%증가 했고, 여성이 2.4% 증가해 여성의 증가율이 다소 높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청년, 그중에서도 가족을 구성하지 않은 여성들의 귀농·귀촌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느슨하게 연결된 조직 완주숙녀회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들의 가치관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진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어려웠던 때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으레 당연한 것이라 여겨졌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남편과 자식을 뒷바라지 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여성이 굳이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지 않아도, 독립적 주체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이다. “도시가 싫어서 왔어요. 도시는 차도 많고, 사람도 많고, 건물도 많고, 일도 너무 많아요. 굳이 내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일을 하는 것이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었어요.” 완주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두 여성 청년을 만났다. 완주숙녀회의 회원 이지정, 이보현씨다. 둘 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완주로 귀촌했다. 특별히 완주인 이유는 없었다. 다만, 귀촌을 하고 싶어 하는 순간에 여러 가지 상황이 완주로 정착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성들이 지역에서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니다. 시간과 경험이 쌓아올린 기준의 경계를 허무는 일은 꽤 어려운 일이다. 어려서부터 길들여진 성역할과, 때가 되면 으레 당연히 해야 할 것들(결혼, 출산 등)을 하지 않고 있음에 대한 걱정을 빙자한 잔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그러면서, 소위 정상가족이라 불리는 커뮤니티에 끼지 못함에 불편함을 느꼈던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들이 자주 모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모이게 된 모임체를 통해 완주숙녀회(이하 완숙회)가 만들어졌다. 청년회, 부녀회, 노인회도 있으니 숙녀회도 만들자고 했다. 정체성 없음이 곧 완숙회의 정체성이며, 각자 독립된 주체로 삶을 살다 서로가 필요하면 함께 하는 지지대 역할을 서로 해 나가고자 했다. “우리는 여자라고 무시당하고 결혼 안(못)한다고 혼나고, 애 (더) 안 낳는다고 혼나고 억울한 일 종종 당하면서 시골에 삽니다. 그래도 완주에서 재미나게 살아보려고 모여서 뭐라도 합니다. 함께 기술을 배우고, 재능을 나누며 서로 돕고, 같이 놀면서 서로와 스스로를 돌봅니다” 완숙회는 위와 같은 고민과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회원일 수 있다고 말한다. 가족중심의 이주에서 1인 가구 여성 청년들의 이주가 늘어나면서 ‘정상’이라 불리던 기준에 경계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들이 드러나고, 문제제기를 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연대를 이루면서 차츰 그것이 문제임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여성 스스로가 독립된 주체로 당사자성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한 그들의 연대는 앞으로 귀농·귀촌을 꿈꾸며 발을 한걸음 내딛으려는 여성청년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라 생각 한다. △여성, 진정한 독립을 위한 자립 기술전등이 어두워 다른 것으로 교체해야 된다는 아내의 요청에 남편은 차일피일 일을 미룬다. 업체에 맡기자니 너무 작은 일인데다 수리비용도 아깝다. 직접 하자니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차일피일 일을 미루는 남편이 치사하기만 하다. 문고리가 고장 났다. 어떻게 하면 될 것 같은데 이리보고 저리 봐도 모르겠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니, 그러니까 집에 남자가 있어야 된다는 핀잔이 돌아온다. 문고리 고치려고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하나?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지만 언제나 기승 전 결혼으로 끝나니 불편하다. 여자라면 한번쯤 겪어봤을 일이다. 그리고 이 문제 있어서 결혼을 한 여성이든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이든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자유를 찾을 길은 단 하나. 그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귀농·귀촌 교육이 여전히 남성중심에 머물러 있었어요. 가르쳐 주는 과정에 여자들은 모르면 너무 위축되는 교육이었고, 잘하면 잘하는대로 희한하게 보더라고요. 그런 문제에 있어 불편함을 느꼈고 문제의식을 느꼈어요. 우리가 초보자 여성을 위한 여성기술 워크숍을 만들어 보자 기획하게 된 이유가 된 거죠 ”적정기술 관련 해 일을 했고, 관심이 많았던 두 사람은 이지정씨와 이보현씨는 여성들의 자립생활기술에 관심이 많았다. 당사자성을 가지고,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함께 해결해 보고자 여성들의 자립을 위한 생활기술캠프를 작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여성 스스로의 힘 기르기 하늘에 가을이 담겼다. 드릴소리, 망치소리, 톱질소리. 공구 쓰는 소리로 한적한 완주 시골동네가 시끌시끌하다. 11명의 여성들이 여성생활기술캠프에 모였다. “여기 왜 왔어요?”“자기 손으로 밥 떠먹듯, 조금 고장 나고 상한 것들 스스로 고치려고요. 남편한테 해달라고하기 치사해서.”각자 다른 이유가 있어 이곳에 왔겠지만, 공통된 하나는 본인 스스로가 독립적 주체가 되어 살아가고 싶어 했다. 자기 손으로 밥 떠먹듯,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가 해내고 싶어 했다. 1박2일로 진행한 기술캠프 첫날은 완주 한적한 시골동네 친구집을 방문해 망가진 창문을 바꾸는 일정이었다. 창문을 바꿔 달기 위해 필요한 사항들을 알아본다. 드릴에 대한 기본적인 사용방법을 이해하고 응용하는 방법들을 배운다. 두꺼비집이 어떻게 기능하는가도 배우고 전기가 나갔을 때의 대처법도 배운다.“해보니 별거 아니네” 참여자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중 제일 많이 나온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동안 그 별거 아닌 것 때문에 치사한 상황에 놓였던 자기 스스로가 한심스럽기도 했다. 둘째 날은 공동부엌을 함께 고쳤다. 빛이 약한 전등을 다시 갈아 끼우거나, 환풍기를 고쳤다. 두 조로 나누어 직접 실습하고 실행하니 신기하고 재미있어 했다. 앞으로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는 척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더듬더듬 더듬어 보면 새록새록 기억이 떠올라 스스로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이번 캠프에는 기술에 관심이 있어서 온 여성들도 있고, 또 다른 여성들은 완주와 완숙회를 탐색하러 온 사람들도 있다. 굳이 기술을 이야기 하지 않아도 ‘여성’,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교집합 될 부분들이 많았다. 당사자들이 겪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보고,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도모해 가는 과정은 뜻깊은 일이다. 캠프를 통해 이어지고 연결된 힘들은 연대의 힘이되어 여성 스스로가 각 지역에서 겪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문성희(문화파출소 덕진 문화보안관)※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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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01 23:02

[문화터미널 고창] 버스 기다리며 '순박한 가을빛 문화 향기'에 취하다

고창군 고창읍에 소재한 고창공용버스터미널, 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된 이곳에선 지금 다양한 문화행사가 한창이다. 2017 여객자동차터미널 아트공간 조성사업으로 고창버스터미널을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하여 문화터미널 고창이라 이름붙여 10월 23일에서 28일까지 1주일 동안 문화 프로그램들을 운영한다. 24일엔 문화터미널 고창 개소식 행사가 있었다. 전라북도와 고창군이 주최하고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이 주관하며 고창공동체협의회가 운영하는 문화 프로그램의 메시지는 가을빛 연애편지 주마간산에 공류(共流)하다이다.△문화예술로 재탄생하는 고창 촌로들의 숨소리10월 23일은 아트콘서트 칠순 넘으니 그림이 그려지더라-판타지적 서사를 이야기하는 촌로작가의 탄생전으로 문화주간을 시작했다. 고창군 신림면 용추계곡 기슭에서 농사짓던 손으로 칠순 넘어 생애 처음 어느날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김연수 할아버지의 농부미술관 작품들이 발굴되어 세상에 나왔다. 칙칙했던 터미널 공간이 밝은 문화공간으로 확 바뀐 풍경에 놀라움도 가시기 전, 버스를 타러 가다 우연히 마주친 대합실 공간의 그림들에 시선을 멈추며 독특한 화풍을 궁금해 하는 버스 이용객인 관객들에게 촌로작가는 자신의 그림이야기를 나눈다.여름에는 해도 길고 징허게 뜨겁네 / 이 놈의 해는 품도 안팔아 보았나...로 시작하는, 해리면 월봉마을과 부안면 구현마을 어르신들의 삶의 풍경을 담아 쓴 시들도 등단(?)했다. 느르물, 휘어들이 따위의, 고창공동체협의회의 마을활동가들이 찾아낸, 특정한 마을에서만 쓰는 토속어들도 선보이고 있다. 문화터미널 고창엔 고창의 사람들과 삶의 이야기들이 촌스럽게 표현되는 듯 하면서 삶의 가장 한가운데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역설이 문화예술적 아우라로 재탄생하는 촌로들의 숨소리가 있다.△청소년들의 꿈꾸는 문화터미널 나들이책방그런가 하면 꿈꾸는 문화터미널, 끼를 찾는 청소년 인문학 교실을 내걸고 청소년들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자 10월 27일과 10월 28일엔 만화 그리기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가을빛을 담은 고창의 소리꾼 김상수의 소리(23일)와 연애편지를 쓰는 듯한 김혜연의 피아노 연주(24일/28일), 더드림싱어즈의 성악(26일), 김회숙과 여현수의 춤과 장구(28일)가 이어지고 목공예, 원예, 퀼트, 전래놀이, 천연제품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제공한다. 주마간산하면서도 함께 소통하기 즉 공류하자는 취지다.터미널 로비와 대합실에서는 청소년들과 어른들을 위한 나들이책방을 상시 운영한다. 다양한 종류의 책들 500여 권이 비치되어 있다. 버스를 기다리고 터미널을 드나들며 잠깐 들여다 볼 수도 있고 대출자 기록을 하고 책을 빌려갈 수도 있다. 버스 이용객들이 집에 있는 책들을 기증하여 함께 공유하도록 할 계획이다. 책을 훔쳐가지 않을 양심(?)에 호소할 필요도 없다. 책읽기를 나누고 지식을 나누는 인문학적 공유의 무인책방이니까. 그래서 나들이책방이다.△체류시간 28분을 즐겨라고창공동체협의회에서는 문화터미널 고창을 운영하기 위해 지난 7월 고창터미널 이용객들을 대상으로 이용자 현황조사를 했다. 요일별, 시간대별 이용 상황과 동선을 분석하고 이용객들의 문화수요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두 가지 조사방식을 통해 이를 분석했다. 7월 13-15일 3일간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탑승객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와 탑승객 일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시간대의 하루 평균 이용자 수가 814명으로 주말보다 평일이 이용객이 훨씬 많고, 설문조사 응답자 245명 가운데 고창 내 거주자가 167명으로 68.2%를 차지했으며, 고창 외 거주자는 77명으로 31.4%를 차지했다. 고속직행버스 이용자 수와 농어촌버스 이용자 수는 비슷했다. 그리고 이들의 터미널 평균 체류시간은 28분이었다. 또한 정기 이용자가 41.6%를, 비정기 이용자가 43.4%를, 일회성 이용자가 12.2%를 차지했다.77.5%가 일상생활의 목적상 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된 터미널 이용객들은 터미널에서의 문화 프로그램 활동에 대해 91.0%가 긍정적인 호감을 표명하였고 86.5%가 참여하겠다고 응답했다. 희망하는 문화 활동으로서는 공연이 37.6%를, 전시가 5.7%를 차지했고 간간이 체험활동도 원했다. 터미널에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이런 특성을 반영하였고 이용객들의 동선 특성까지 고려해야 했다.△버스 이용객들을 위한 문화공간고창터미널은 고창읍 중심지에 위치한다. 주변은 상가 등 생활권으로 이어지고 있다. 농어촌버스 이용객들의 경우 도보거리 내에서 각종 병의원이나 고창시장을 이용한다. 장날이면 더 많이 붐비는 까닭이다. 2017 여객자동차터미널 아트공간 조성사업을 시행하며 문화터미널 고창으로 조성한 것은 고창터미널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되 고창의 주민들을 관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스 이용객들을 대상으로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시킨다는 취지로 이해된다.버스터미널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승용차와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개 노인층, 여성, 청소년, 다문화이주민들로서 승용차 혹은 속도사회의 소외자들이며, 이 점에서 사회적 비주류의 경향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하루 수천명이 이용하는, 지역에서 가장 활성화된 공간을 드나드는 그 사회적 비주류의 이용객들이 여행객 혹은 승객이라는 이미지로 고정되며 소외되고 숨겨지는 곳이 어쩌면 버스터미널이다.터미널이 단순히 교통공간으로서가 아니라 낯선 사람들의 대기시간이라는 ㅤ짧은 흐름 속에서 어떤 마주침과 인연이 생성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예술적 교감공간으로서의 문화터미널 고창 역할이 기대된다. 고창에서 살아가는 시골사람들 혹은 고창을 드나드는 여행자들의 주마간산식 문화공간으로서, 그 정취와 이야기가 풍겨지는 문화적 대화의 공류공간으로서 말이다. <고길섶 문화비평가>/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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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0.25 23:02

[고창군립도서관 '길위의 인문학'-자서전 쓰기] 함께 읽고 쓰며 되살려내는 황금빛 인생 이야기

들녘 풍경이 삽시간에 달라지고 있다. 초록이 물러가는 듯싶더니, 어느새 연한 노랑으로 채워진다. 진노랑으로, 황금의 빛깔로 절정인 듯하더니, 며칠 반짝거리는 순간을 놓치면 눈을 채우던 황금빛은 풀 죽은 흙빛으로 사위어간다. 농부들 일손이 바빠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황금빛을 놓칠 수 없다. 부뚜막 부지깽이라도 일으켜 손을 빌어야 하는 추수 시기, 한해 활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시절이다.색으로 치자면 우리 삶의 순간도 마찬가지련다. 연한 녹색 빛깔로 시작해, 초록으로, 어쩌다 비틀거리는 노랑으로, 자칫 먹빛으로 스러지다가도 다시 초록을 되찾기도 하고, 차차 의지와 세월이 빚은 황금 빛깔로 치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거두어들이는 시기, 모든 빛깔을 제 몸에 새기어 색과 빛이 어떠하든 다 품을 수 있는 넉넉한 그릇이 되기도 한다. 고창군립도서관 문화강좌실, 열다섯 남짓한 목소리들이 수런수런거린다. 길위의인문학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자서전 쓰기>에 참가해, 삶을 추수하는 사람들이다.△함께읽기, 함께쓰기로 되살려내는 읽기 쓰기 감각<길위의인문학> 프로그램은 도서관을 통해 지역민에게 인문학을 향유하게 하고 자신과 역사를 성찰하고 삶의 행복에 기여하자는 취지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고창군립도서관은 올해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삶의 자취를 돌아보고 오늘을 사는 힘을, 다시 새 걸음으로 나아가도록 자서전 글쓰기 프로그램으로 준비했다. 지난 7월 6일 첫걸음을 뗀 자서전 프로그램 기나긴 걸음이 이제 막바지 깊은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봄빛은 이미 사위어 하늘과 땅을 불볕으로 덥히던 7월, 기나긴 장마를 거치고 찾아온 8월 휴가철의 유혹도 버티면서, 늦도록 염천(炎天) 9월을 무사히 지나쳐 이어온 오랜 길이었다. 어느덧 글쓰기 동무가 된 참가자들의 옷도 한층 두께를 더해가고 있다.이번 자서전쓰기는 오로지 쓰기만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읽기를 겸해서 그동안 잠시 잊었던 읽기감각을 되찾는 시간이기도 했다. 읽기도 함께읽기 방식이다. 돌아가면서 소리 내 읽는 방식, 오래전 음독(音讀)이라는 유일한 방식으로 읽던 우리 문화유전자 속 읽기를 되살려내는 것이다. 처마 밑에는 낙타털로 만든 갈색 빨랫줄이 하늘을 향해 걸쳐져 있습니다. 하늘 향해 걸쳐진 낙타줄은 사막에 존재했던 모든 생명들을 하늘로 인도하는 길처럼 보입니다(엄마와 딸, 바람의 길을 걷다, 강영란). 차례에 맞춰 자기 목소리로 읽어가는 고비사막여행기는 어느새 우리 삶의 순간순간으로 바뀐다. 우리 엄마, 우리 딸, 고비의 풍습과 닮은 우리 옛 풍습으로 이어져 책 속 작가의 목소리는 어느새 우리 목소리로 바뀌어 있다.△묵독을 거슬러 다시 음독으로, 소리를 통해 읽는 삶과 삶의 이야기두 시간 프로그램 가운데, 한 시간 읽기, 한 시간 쓰기연습으로 진행하는 동안, 그림책의 장면과 글로부터 시작해, 짧은 문장 읽기, 여행기, 재치가 넘치는 어린이동화, 동시 읽기로 이어졌다. 마음읽기를 잘 정리한 책의 서문을 읽으며 우리 마음의 단면을 슬쩍 엿보기도 했다. 우리 지역에서 나고 자란 양귀자 소설가의 『모순』에 등장하는 선운사와 도솔암 풍경을 읽어가며, 소설 속의 것과 실재를 비교해 보기도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이 어떻게 소설 속에 글 속에 나타나는가, 살피는 일도 흥미진진이었다. 묵독이라는 진화한 방식으로 읽기가 바뀌기 전까지 읽는 행위는 소리와 동행하는 행위였다. 소리는 공간과 사람의 전제에서 가능하다. 우리는 묵독을 발견하고 난 뒤, 시공을 압축하는 효율을 얻는 대신 읽는 행위에서 사람과 함께하는 공간을 잃고 말았다. 소리 내 읽는 동안 묵독으로 사라졌던 공간과 사람을 호명하게 되었다. 함께읽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같이 읽은 이야기 안에서 자신의 삶과 닿은 것들을 서로 이야기 나눈다.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의 삶이 만나는 순간이다.△말을 배우면서 시작한 쓰기 감각을 오늘에 되살려훨씬 더 오래 전에 멈추고 만, 쓰기감각을 되살리는 일도 함께한다. 먼저 말과 글은 서로 다른 존재라는 오해의 빗장을 벗기는 일부터다. 저 갑오년 언문일치를 주창한 선조들의 일로부터다. 언(言)과 문(文)은 둘이 아니다, 라는 선언으로부터다. 갑오년은 동학혁명의 해다. 그러니 무려 123년 전의 일이다. 그러므로 글(문, 文) 공부하러 모인 우리들은 말(언, 言)을 배우고, 그 말을 통해 누군가와 생각을 나누기 위해 애를 쓰던 지난 수십 년의 일이 모두 글 쓰는 공부의 바탕이었다는 것을 알아가게 된다. 그러는 동안, 베껴 써보기, 단문으로 글써보기, 이미지 보고 묘사하는 글써보기, 편지글 써보기, 인생곡선 그리기 등 다양한 쓰기연습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제 출판을 위한 글쓰기,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사이 두 차례 특강강사와 만났다.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니, 삶의 굽이굽이를 나눠 접는 책으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문장의 짜임을 익히기도 했다. 고창의 작은 문화예술공간 책마을해리를 찾아 책의 바탕을 탐색하기도 했고, 모처럼 서해 짭쪼롬한 바다 향에 취하기도 했다. 날마다 이런 공부만 하면 좋겠네△쉬지 않고 삶의 메시지를 전하는 네버엔딩 이야기꾼의 탄생출판을 전제로 글쓰기, 이렇게 긴 여정을 통해 마지막 쓰기단계에 다다르자, 모두는 고민이 깊다. 단순히 쓰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출판이 되어, 알든 모르든 누군가와 내가 쓴 글이 마주하게 된다는 부담 때문이다. 고창군립도서관 문화강좌실은 팽팽한 긴장이 감돈다. 그동안 준비한 글을 내어놓고 서로 돌아가며 읽는다. 글쓴이는 빨간색 펜을 가지고 읽기동무, 쓰기동무들이 자신을 위해 돌아가며 소리 내 읽어주는 내 목소리를 들으며 어색한 부분, 맥락이 끊기는 부분을 표시한다. 다 읽고서는 서로 생각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아니, 그렇게 시누이 시집살이가 심했는데, 병간호를 지극정성으로 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아들 못 낳은 시누이보다 시집와 먼저 아들을 낳고 모진 시누이시집살이를 견디고 견디었는데, 그 시누이가 암에 걸리자, 정성껏 그 수발을 다 한 이야기 끝에 오가는 말이다. 글 이야기보다 앞서는 것이 말이고, 삶의 이야기다. 삶이 말이 되고 글이 되었으니, 말이다. 늦은 공부 이야기로, 어렵고 힘들게 살았던 결혼초기 이야기로, 직장생활분투기로, 아내 이야기로, 청소년기 이야기로, 방황과 좌절을 시의 형식으로, 세상과 만나려는 예비작가 들에게 마지막 분투를 당부한다. 내가 살아온 세상의 이야기는 아직 내 인생사의 일부분일 뿐이다 가장 선배 참가자가 쓴 글 맺음이다. 이번 <삶글, 자서전쓰기>에 담기는 이야기는 아이가 첫걸음을 떼듯, 첫 글 떼기다. 앞으로 결코 멈추지 않는 네버엔딩 이야기꾼으로 세상에 삶을 통한 선배들의 메시지를 건네시길 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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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0.19 23:02

[문화재로 하나 되는 새만금] '군산·김제·부안' 전북 서해안 다질 새 문화코드는?

조선 중기 민간에게 널리 퍼진 비결서인 〈정감록〉에 퇴조 삼백리면 범씨 천년 왕국이라는 설이 있다. 혹자는 새만금 방조제로 인해 퇴조 삼백리가 되었다고도 한다.그렇다. 단군 이래 우리 기술로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만들어 간척사업을 진행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지도를 바꾸어 놓았다. 새만금은 새로 만들어진 만금(萬金) 평야라는 말이다. 1991년 첫 삽을 뜨고 난 후 방조제가 연결되기까지 20여 년이 걸렸다. 그 오랜 기다림만큼 전북도민들은 그 땅에서 만금(萬金)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지난 8월 17일 세계스카우트연맹은 대한민국 새만금을 제25회 세계잼버리대회 개최지로 확정했다. 새만금이 만들어지고, 이 지역에서 처음 열리는 세계대회라서 더욱 의미가 크다.2023년에 개최될 세계잼버리 대회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클 뿐만 아니라 예술, 공연, 체육 등 다양한 문화발전의 촉매제가 될 것이며 공항, 철도, 도로 등 새만금 개발 속도를 배가할 수 있는 전기가 될 것 같다.세계잼버리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 전라북도는 치밀한 계획과 함께 인프라 구성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새만금(아리울: 새만금의 또 다른 이름)은 알다시피 군산, 김제, 부안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따로이지만 하나인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세 지역민들이 새롭게 도출해야 할 문화코드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로 여겨진다.필자는 그 해결점을 전북 서부 해안지대라는 공동의 지정학적 위치가 갖고 있는 자연환경과 역사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군산대 철학과 교수인 김성환은 그 해결점을 새만금 하면 떠오를 수 있는 고유하고 일관된 문화적 컨셉을 구축해야 한다고 보았다. 예컨대 안동하면 연상되는 유교문화(퇴계, 도산서원, 하회마을 등)라든가. 부여 하면 떠오르는 백제문화, 보성 하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녹차문화와 같은 독특하고도 차별화된 문화코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그는 새만금의 성격을 서민문화권으로 보았다. 탁 트인 들판이 펼쳐 있음으로 도성이 들어서지 못하는 지역, 그로 인해 권력의 중심지가 되지 못하며 상대적으로 지배, 권력, 집중 등의 가치와 차원을 달리하는 자유, 상생, 개방 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 문화, 정신적 열망이 성장한 곳으로 한다.그것이 때로는 미륵불교와 선도적 이상향의 갈망으로 때로는 세상의 병폐를 치유하고자 하는 사상, 학문, 종교적 개혁의 추구로 혹은 세상을 뒤집어엎으려는 혁명의 불길로 타올랐다. 필자 또한 이 의견에 동감한다.필자는 지역역사문화콘텐츠전문가로서 새만금 지역이 하나 되기 위한 코드와 콘텐츠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과정으로 추석 연휴 동안 자천대가 있는 군산의 옥구향교와 김제의 금산사 그리고 부안의 반계서당을 다녀왔다.문화재 안에는 그 주인공이 되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사람은 자기가 사는 지역의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의 영향을 받아 정신세계가 형성된다. 새만금 지역 안에는 그 시대의 문화영웅이라고 이름 붙여도 손색이 없는 주인공들이 있다.신라말 사상가 최치원과 미륵신앙의 조승(組僧) 진표율사 그리고 조선 후기 실학의 비조(鼻組)인 유형원이다. 각각 다른 시대를 살다간 분들이지만 그들에게서는 사상면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민초 즉 약한 자들을 위해 삶의 에너지를 집중한 자들이다. 또 그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강력한 꿈을 꾼 자들이다. 이들의 삶을 찾아서 답사하는 중에 새만금의 비전을 발견하게 되었다.가을이다. 파란 하늘에 새털구름이 넓게 펼쳐져 있다. 옥구 들은 황금빛 나락으로 익어간다. 그 길을 지나 옥구향교에 이르면, 빨강 홍살문이 버티고 서 있다. 외삼문을 지나 명륜당 오른쪽 옆에 자천대가 있다. 자천대는 신라말 최치원이 어릴 적 글을 읽었다는 곳에 세워진 누각이다. 선연리 하제 바닷가에 있었다. 그 자리에 미군비행장이 들어오게 되면서 헐리게 될 위기에 처하자 옥구향교 경내로 옮겨놓았다.군산에는 최치원을 추억할 수 있는 전설과 설화가 깃든 장소가 많다. 최치원이 출생하고 12살까지 성장한 곳이 군산이라는 설이 있다. 최치원이 누구인가? 6두품 출신이면서 당나라에 유학을 가서 빈공 자격으로 세계인과 겨루어 30인을 뽑는 진사과에 합격한 재원이었다. 그는 우리 고유사상인 풍류도 속에서 유.불.선의 원리가 들어있음을 주체적으로 찾아내고 통섭적인 생각으로 백성을 위한 일관 된 삶을 살았던 분이었다. 최치원과 관련된 문화재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의 백성 사랑과 폭넓은 미래 비전이다.김제 금산사로 향했다. 최치원보다 100여 년 먼저 살다간 스님인 진표율사가 출가해서 수행했던 곳이다. 10세 무렵 들에서 놀다 개구리를 잡아 나뭇가지에 꿰어 물에 담가 놓고 잊어버린 뒤, 이듬해 봄에 다시 가보았더니 그 개구리들이 그때까지 살아서 울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사무치게 참회한 진표는 12세에 금산사로 출가를 한다.부안 부사의 방에서 망신참법으로 수행을 하다가 깨달음이 없자 산 아래로 투신을 했는데 청색 옷을 입은 동자가 구해준다. 미륵보살로부터 교법을 받은 후 금산사로 내려와 미륵신앙을 민중의 신앙으로 정착시키기에 온 힘을 기울인다. 미륵신앙은 이 지역사람들의 삶의 힘이 됐다.금산사 입구는 다른 절과는 다른 성문이 있었다. 후백제 말 견훤이 큰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 미륵전에 감금을 당했고 이때 싸움이 있었던 곳이라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하며 금산사를 뒤로하고 부안으로 향했다.부안으로 건너가 우반동 계곡에 이르렀다. 반계서당은 외 딴 곳에 있다. 그곳에서 칩거하며 연구와 후진 양성에 몰입을 했을 유형원을 생각해 보았다. 그가 앉아 있었을 마루에 앉아보기도 하고, 뒤 곁을 둘러보기도 하고 노릇하게 익어가는 아담한 들판을 쳐다보며 건너편 〈홍길동 전〉을 집필했다는 허균의 집터가 있는 곳도 바라보았다. 가을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무심한 세월을 말하는 듯했다.유형원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힘들었던 조선 백성들을 생각했다. 권고받은 관직도 마다하고 우반동 계곡으로 들어왔다. 그는 매일 말을 타고 달리며 자신의 몸을 단련했고, 지역민들과 함께 부대끼는 가운데 조선의 백성들이 실질적으로 잘 살 방법이 무엇인지 연구하여, 그 생각을 〈반계수록〉에 고스란히 담아 놓는다. 그는 호남실학의 비조가 되었다. 그 뒤를 이어 여러 실학자가 그의 후학으로 자처했고, 정약용에 이르러 호남실학 즉 중농학파의 실학이 집대성된다.답사하면서 새만금 지역에 관통하는 서민 중심의 생각과 미래를 위한 상생의 사상이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보았다.군산의 자천대, 김제의 금산사, 부안의 반계서당 그 문화재에 담긴 주인공들인 진표율사, 최치원, 유형원으로 이어지며 추구했던 그들의 사상이 새만금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끈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이글을 마친다.문정현 ㈔아리울역사문화연구소 대표/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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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0.11 23:02

[완주 삼례읍 주공2단지 한내마을 '호호장날'] 좋아서 부르는 이웃들 세대 아우르는 웃음꽃

△ 완주삼례주공2단지 아파트 사람들완주군 삼례읍에 있는 주공2단지 아파트. 이곳의 주민 10여 명은 아파트 놀이터 공간에서 지난 8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자그마한 장을 열었고 또 이번 달 30일에도 장을 연다. 이름하여 한내마을 호호장날이다. 왜 호호장날일까. 호호는 한자로 좋아할 호(好)에 부르짖을 호(號)인데, 여기서 뒤의 호(號)는 아파트 각 호수를 의미한다. 각 호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좋아하여 함께 부르며 재능을 나누고 어울린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삼례 주공아파트 2단지를 한내마을이라 한다.주민 몇몇이 주도하여 벌이는 장날인지라 5일장 시장같이 노점상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거나 다양한 팔거리들을 가지고 나온 장사치들과 이들을 구경하는 손님들로 요란하지도 않다. 사실 이들의 목표는 장사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한내마을 주민들의 물물교환의 의미가 더 크고 이런 장날을 통해 아파트 마을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공동체적 일상을 꿈꿔보자는 취지가 더 크다.△놀 줄 아는 아이들지난 8월 26일 첫 번째 호호장날 풍경. 오전 11시가 넘어서자 놀이터에는 장날을 준비하는 주민들 외에 20여명의 중고등학생 아이들이 자원봉사 활동을 나왔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이 하는 일은 주변 정리나 부스 활동, 장기자랑 진행 등이다. 자원봉사하는 이 아이들 말고 더 많은 초중등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시끌시끌하게 떠들고 놀면서 호호장날의 대세를 이루기 시작했다. 아파트에 아이들이 많은 편이다. 토요일에도 일을 하는 부모들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기 어려우므로 이런 이벤트가 있으면 아이들이 좋아한다. 장터의 소비자 몫을 톡톡히 한다.오전 11시경부터 오후 3시경까지 4시간이나 계속되는 장터에 아이들은 무대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끼리끼리 모여 노느라 목도 마르고 허기도 지기 때문에 음료나 떡볶이, 부침개 따위들을 사먹곤 한다. 대개 부모가 사서 함께 먹거나 건네준다. 소규모 무대행사는 머리에 물 뒤집어 쓰기 게임, 장기자랑, 춤대회 등을 진행했는데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이에 호응하며 즐겁게 참여했다. 아이들은 계획된 일정표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놀면서 주최 측의 프로그램에 그때그때 호응해주는 식이다. 놀 줄 아는 아이들이다. 7월달에는 수영장을 운영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단다.△아빠랑 인형 사러 나온 자매그렇다고 호호장날이 아이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주민들이 끊임없이 오고 갔다. 장터의 구성은 주 판매대, 작은 탁자형 부스 6개였다. 탁자형 부스에서는 여러 종류의 생활물품들이 판매되었다. 신발, 작은가방 등 여성용 물품, 피규어 장난감, 인형 따위의 아이들 용품, 아주머니가 판매하는 뜨개질로 직접 집에서 뜬 수세미와 그 원료들, 할머니가 다 된 황의숙 씨가 판매하는 청국장, 청량고추, 옥수수, 마늘, 반찬, 보리수청, 쪽파양아치, 호박 류의 농산물 및 가공식품, 자원봉사 아이들이 판매하는 물총, 부채, 팬시우드 거울, 야광팔찌 따위들의 이것저것들과 색칠하기 체험. 어느 주민은 일치감치 나와 농산물 등 7만원 어치의 물건들을 구입하였다. 아이들 장난감이나 인형들은 거의 다 팔렸다. 아이가 직접 판다. 장난감은 500원, 1000원하는 싼맛에서인지 아이들이 차지했다. 두 어린 자매여아는 아빠와 함께 두번씩이나 와서 인형들을 사갔다.△맛솜씨 장인의 농산물 호응 좋아아빠 등 가족과 함께 나와 여성용 물품 장사를 하는 한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싶었는지 도망(?)가려 하자 아빠가 사장이 도망가면 어떻게 해? 팔아야지. 손님들 오게 춤이라도 춰봐! 하곤 재치있게 붙들어 놓았다. 아이는 자기가 사장인 줄 몰랐는지 내가 사장이야? 하며 다시 눌러 앉는다. 그러나 이내 슬그머니 부스를 빠져 나가 친구들과 어울려 논다. 이 가족은 장사를 핑계로 장날놀이를 체험하며 즐기는 듯 했다.할머니들은 황의숙 씨가 파는 농산물이나 가공품을 선호했다. 직접 짓고 만들었다. 된장 등 농산물 맛솜씨가 장인정신으로 녹아들어 일품이다. 손님들은 거의 다 아는 사람들이다. 음식을 나눠 먹고 오랫동안 담소를 나누며 호박 따위들을 사갔다. 주최 측으로부터 판매 권유를 받고 쑥스러워 하다 참가했으나 호응이 좋았다.주민 이현주 씨는 직접 뜨개질한 천연 수세미를 가지고 나왔는데 제법 팔렸다. 집에서 뜨개질 해 선물용으로 쓰곤 하는데 호호장날에 가지고 나와 봤단다. 뜨개질하는 법을 무료로 가르쳐준다고 안내글도 써놨다. 한쪽 켠엔 집에서 만든 대추전과를 가지고 와 무료로 나눠 주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모양이었다.△공론장의 형성호호장날을 여는 몇몇의 주민들은 누구일까. 이들은 완주군생활문화동호회네트워크가 주관하는,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의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참여자들 10여명이다. 프로그램 강사들인 김미혜, 고민경, 이은정 씨도 한내마을 주민들이다. 이들은 매주 화요일 저녁 경로당에 모여 방향제 등 천연제품 체험, 퀼트 및 미싱 활동, 동네 솜씨장인과 함께 하기, 한내마을 사용설명서 만들기 등의 교육활동을 한다. 때로는 누군가 가져오는 비빔밥을 한 솥에 맛갈스럽게 비벼먹으며 온갖 수다로 놀면서도 교육활동과 호호장날 기획 이야기들을 나눈다.이런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아파트 내 일상적인 삶들에서 평소 느꼈던 문제들을, 개인적인 불만으로 넘어가거나 남들한테는 꺼내어 말하지도 못하며 가족들 있는 데서만 흉보듯 말하곤 했던 것들일텐데, 사소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이지만 좀더 공적인 테이블에서 공통관심사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기획자 노은희 씨의 말이다.△9월 30일의 호호장날 기대서민형 임대아파트인 주공아파트 2단지 한내마을 주민들은 농지를 택지로 개발하여 지어져서 주민들이 서로 낯설고 마을의 전통적인 인지상정이나 역사문화가 없어요. 그러다보니 각자도생하느라 바쁘고 마을일에 주민으로서 나서지 않고 공동체적인 관계가 형성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공동체적인 문화의 형성이 필요하다고 보고 주민교육을 기획했어요. 또 재능과 특기 있는 주민들을 발굴해서 서로 나눌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지니 좋아요. 그 교육활동의 하나로서 교육 참여자들이 의논하고 주민들이 만들어나가는 호호장날을 기획한 것이고요.호호장날에 내놓는 물품들은 집에서 쓰던 것들이거나 직접 만든 것들이다. 아파트 주민들이 서로 교환하거나 공유한다는 의미가 크다. 아파트관리사무소도 여러모로 지원을 해준다. 500여 세대되는 아파트에 단 한명뿐인 이장 김흥자 씨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주민자치조직으로 발돋움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작은 일상들을 변화시키려는 새로운 시작, 9월 30일의 호호장날을 기대해본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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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27 23:02

[전주 비단길 시장] 손때 묻은 창작품 사고 파는 소소한 매력…따뜻한 소통은 '덤'

1997년 IMF를 겪은 세대라면 누구나 아나바다장터를 기억할 것이다.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취지로 국가적 차원에서 시작된 장터이다.현재 한국의 장터 문화는 사회가 변화하면서 실질적 목적에 의해 열렸던 아나바다장터와 서구의 벼룩시장 형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며 다양하게 발전변화하고 있다. 단순히 본인에게 필요하지 않는 물건을 재판매하는 벼룩시장 개념에서 확장되어 창작자들과 시민들이 만나 소통하고 교류하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플리마켓(flea market)과 프리마켓(free market)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 또한 이런 문화가 만들어진 것에 기인한다.프리마켓은 창작품과 창작행위가 펼쳐지는 예술시장을 말하고, 플리마켓은 주로 사용하던 중고물품을 사고팔거나 교환하는 장터를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 프리마켓과 플리마켓이 혼합된 형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소비의 주체가 아닌, 생산의 주체로의 욕구마트에 가거나, 인터넷을 검색하면 원하는 물건들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스스로 무언가를 만드는 생산의 경험과 손의 쓸모는 없어지고 소비의 주체로만 자리 잡게 되었다. 자본만 있으면 뭐든지 살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지만 문득, 소비의 주체로만 살아가는 것에 대해 허무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완제품을 구매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반조립 제품을 구매하거나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에 흥미를 갖는 이유. 더불어 한국에서 진행되는 마켓에서 창작행위가 중요하게 자리 잡은 이유 또한 이 때문이라 추측해 본다.△ 2015년 지역 상인들의 마음이 모여 시작전북에도 프리마켓이 다양한 곳에서 열리고 있다. 열리는 지역마다, 이용하는 세대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며 새로운 문화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주에서는 차이나거리, 웨딩거리, 비단길이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거리에 위치한 전주화교소학교에서 비단길시장이 꾸준히 열리고 있다.2015년 차이나거리에 입점한 가게들이 거리를 활성화 시켜 보자며 프리마켓을 기획한 것이 비단길시장의 시초다. 지금은 보따리단, 아워라이프, 수수다방 등 세 곳이 운영주체로 진행 하고 있지만, 처음 시작할 때에는 차이나거리에 입점한 다양한 가게들이 운영주체로 함께 시작 했다. 당시에는 화교소학교가 아닌, 가게 앞 길가 가장자리에 천막을 치고 진행했다. 시도는 좋았지만, 통행하는 차가 많아 시민들이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고, 유동인구는 많았지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바라봐주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실외에서 하는 행사다보니 날씨에 의해 열지 못하거나 철수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다양한 어려움이 존재 하던 중 우연치 않게 비단길에서 중화요리를 운영하는 진미반점 사장님이 전주화교소학교 장소를 제공해 주면서 비단길 시장은 현재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창작품으로 시민들과 소통하는 공간비단길 시장이 열리는 매달 둘째주 토요일의 전주화교소학교는 관심 있게 보지 않으면 스쳐지나가기 좋은 곳이나, 관심 있게 바라보면 마법의 통로를 따라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곳이다. 초록한 나무내음이 가득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한껏 여유로워 보인다. 다른 장터와 비교해 오가는 유동인구가 적어서 그런지 복작임도 덜하다. 아무생각 없이 앉아있기 딱 좋은 장소다. 운영진과 셀러 모두 손님이 없어 초초할 법도 한데 홍보에 큰 열을 내지 않는다. 누가 운영진인지, 셀러인지, 손님인지 모르게 모양 없이 사람들이 한데 섞여 존재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으로 가득 찬 여느 마켓들과는 다른 분위기다.비단길시장에 오면 일반 가게에서 볼 수 없는 핸드메이드 제품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아요. 더욱이 전주에는 꾸준히 운영되는 프리마켓이 없는데, 비단길 시장은 오랜 시간 꾸준히 지속되고 있고요.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사람들 만나 이야기 나누는 재미도 쏠쏠해요손님으로 비단길을 찾은 유설씨는 비단길 시장이 열릴 때마다 매번 방문하는 편이라고 한다. 시중에 판매하지 않는 다양한 핸드메이드 물건을 볼 수 있고, 꾸준하게 이어온 시간만큼 사람들과의 관계도 깊어져 졌기 때문이다. 셀러로 참여하는 사람들 또한 꾸준히 참여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단골도 늘고, 안 나오면 걱정해주는 손님들까지 생겼을 정도라고.저는 집에서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이것저것 배우기를 좋아하는데, 외국에 나가서(남미) 배워온 매듭 법으로 실 팔찌를 만들어 팔아요. 요즘은 스스로 생산 활동을 하는 경우가 드물잖아요. 직접 내가 만들어 팔고 그 자리에서 돈을 벌수 있다는 것이 새로웠어요. 꾸준히 나와서 그런지, 아는 사람들이 많아 편하기도 하고요. 이곳은 다른 마켓들에 비해 공간이 아담하고 소소해서 더 찾게 되는 것 같아요.셀러와 손님 모두 시중에 판매하는 물건이 아닌, 작은 손때와 과정이 묻은 창작품이 좋아 비단길 시장을 찾는다. 그래서인지, 유동인구는 적어도 셀러들이 판매하는 제품에 대해 이해하고 관심을 가지며 구매하려는 욕구는 강하다. 운영진과 셀러 모두 화교소학교의 소담하고 평온한 공간이 주는 에너지를 좋아한다. 오랜 세월 함께 하며 셀러와 운영진 그리고 손님들이 닮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좋아서 시작, 이젠 함께 좋아서 운영남이 좋아 하는 것에 맞추거나, 수익을 바랐으면 못했을 것 같아요. 3년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어쩌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그 목적 없음에 기인하지 않았을까 싶어요(웃음)3년이라는 세월동안 큰 재정 지원 없이 어떤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목적이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비단길시장을 운영하는 네 단체가 입을 모아 한 말은, 그저 우리가 좋아서, 즐겁기 때문에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 했지만, 그 한마디가 그들의 말처럼 3년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비단길시장의 여유롭게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힘이라 생각한다.여유 넘치고, 여백이 많은 사람들이었지만 비단길시장에 대한 가치와 방향, 혹은 운영에 대한 이야기 이어갈 때는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돌변했다. 매 회차 피드백 회의를 하며 비단길 시장의 정체성을 찾아나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으며, 올해 온두레 공동체 사업을 통해 받은 재원으로 지난해보다 비단길시장 홍보에 조금 더 신경을 쓸 수 있었다며 소소한 마중물에도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잠깐하다 없어지는 프리마켓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프리마켓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에 반하여, 기성품만을 판매하거나 더 수익을 내려고 열을 올리는 프리마켓들도 존재한다. 그에 비해 비단길 시장은 프리마켓이 가지는 사회적 가치의 실현과 함께 스스로의 재미를 찾아가기 위한 시간을 잘 쌓아가고 있었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쌓이고, 비단길 시장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들을 찾아 간다. 처음엔 운영단체가 좋아 시작했지만, 점차 셀러와 손님이 함께 좋아 운영하는 마켓이 되어 가고 있다. 비단길 시장이 지금처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마음으로 꾸준함을 잃지 않고, 전주의 대표 프리마켓으로 자리매김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비단길 시장은 전주 화교소학교에서 4월~11월까지(7~8월 야외마켓 특성상 휴장) 매달 둘째주 토요일마다 오후 1시~5시까지 열린다. 10월에는 14일에 열릴 예정이니, 이 가을, 살랑거리는 바람에 간질거리는 마음을 안고 전주 화교소학교로 발걸음을 향해 보는 것도 좋겠다.문성희 문화파출소 덕진 문화보안관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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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20 23:02

[마을신문 해리] 세대와 공간 이으며 활자·종이 위에 번지는 이야기의 힘

이야기가 피어나는 공간이 있었다. 텔레비전 말고, 라디오 말고, 책 말고 이렇게 그럴싸한 이야기 담는 그릇 없이도 잘만잘만 이야기가 피어나는 공간이 있다. 혹은 있었다. 시장 어귀, 시냇가 빨래터, 사랑방 같은 공간이다. 날로 쇠락하는 지역의 시장에서나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이야기들이 사는 공간. 사랑방은 겨우겨우 마을 경로당으로 이어지고, 시냇가 빨래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이 이야기의 속성, 어딘가 움푹 패인 곳에 오래 머물다가는 소화불량, 탈이 나기 마련이다. 대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외친 임금님 이발사 이야기를 아시는가. 그 이야기는 대나무에 스며 그 대나무로 만는 피리들이 동네방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피리 날라리를 불어댔던 것이 아니었나. 누군가에게서 누군가에게로 이어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이야기들은, 이제 어디서 어떻게 어떤 사람들에게서 이어지고 있을까, 살펴보는 이야기의 보고서다. 마을신문 이야기다.△ 고창 해리면 사람들이 만드는 마을신문, 해리고창군 해리면에는 2016년 봄부터 ‘마을신문 해리’가 태어나 수많은 빛깔 이야기를 머물게 하고 있다. 해리면주민자치위원회 주도로, 해리면과 고창의 인문공간 책마을해리가 함께 신문이 태어난 데 산파노릇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신문 해리는 계절마다 한차례(계간) 태어나다가, 2017년에는 한 달 건너 한번씩(격월간) 태어나고 있다. 산파들의 손놀림, 발놀림이 한층 더 분주해졌다. “이번 호 ‘마을신문해리’에는 해리면민의 날 행사도 있고 우리 해리면 행사마다 고생을 많이 하는 해리면자율방범대를 취재해서 실었으면 합니다.”“옳다고 생각해요. 지난 호에는 농업경영인회에 큰 행사를 앞두고 있다고 해서 밀렸거든요. 지난 번 해풍고추축제에도 축제기간 내내 힘들었을 텐데, 이번 호에는 사진도 좀 크게 넣고 해서 자부심을 갖게 하면 좋겠습니다.”“지난 호에도 고민 끝에 추천했다가 큰 행사를 치른다기에 양보했는데, 이번호는 꼭 좀 넣읍시다.”여기저기서 옳다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마을신문 해리’ 기획회의 장면이다. 이렇게 고정꼭지의 글 말고 해리면의 기관단체 탐방기사, 해리면 원로에게 듣는 꼭지, 해리면 마을가운데 하나씩 집중취재해서 싣는 마을에 대해서 취재 대상을 결정한다. 가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한다. 차례를 양보하고 인정하면서 앞뒤 순서를 정한다. 갈등해결 방식도 차례차례다.△ 시니어기자단, 학교이야기까지 마을신문을 채우는 이야기, 이야기, 또 이야기해리면주민자치위원회(위원장 김동우)는 고창군에서 제일 먼저 주민자치위원회가 개설된 곳이다. 그만치 자부심이 크다. 지역의 기관단체장들이 망라되어 있는 단체다. 기획 전반을 잡아나가는 역할이다. 지역 콘텐츠를 찾고 편집하고 유통하는 주체인 책마을해리가 실무를, 고창군과 해리면의 굵직한 이야기와 발송을 책임지는 해리면(면장 윤명수)과 해리면 기관단체가 함께 만들어 주체부터 마을(마을의 확장, 면단위의 마을)이 중심이다. 몇 가지 비중이 큰 취재 꼭지 말고도 시기마다 해리면의 경관을 소개하는 이미지 중심의 표지면, 여기에는 발간주체에 대한 소개와 마을기자단 상시모집 광고가 놓이기도 한다. 이미지 안에는 단 몇 줄, 사진을 설명하는 간결한 글이 붙어, 이미지와 글 사이 상상하는 힘을 키운다.해리면의 초, 중, 고교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이야기와 해리면 크고작은 기관단체의 이야기, 마을에서 전해오는 듣고 혼자 말기에는 너무나 아깝고 아쉬운 이야기(이야기를 파는 점방), 해리면의 방과후, 마을학교 들의 생기넘치는 이야기, 해리면에 태를 묻고 더 너른 세상에서 고향의 기운을 세상으로 확장하는 출향인들 이야기가 와글와글 소리없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더불어, 공연(고창문화의전당에서 열리는), 영화(고창에는 작은영화관이 있다) 소식도 빠질 수 없다. 마을신문 시니어기자단 어르신들이 해리이야기를 그림으로 공예로, 농사일기며 음식일기로 표현한 것들도 곳곳에 놓여 감초역할을 한다. △ 초연결의 시대, 마을신문이 이어주는 세대의 축, 공간의 축 ‘마을신문 해리’는 고창지역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마을미디어 실험이다. 고창군의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인 고창읍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서쪽 끝 바닷가 마을이다. 해리사람들, 하고 부르는 순간 바닷내음이 물씬 풍겨오는 정말 ‘아주 먼 곳’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곳곳에서 피어나듯 살아 움직이던 이야기를 다시 모으고 가꿔 피어내는 것이다. ‘마을신문 해리’는 해리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을까. 세대를 연결하고 있다. 초연결(超連結)의 시대다. 그 매체는 당연, 가장 진화한 매체다. SNS라고 하는 첨단의 연결고리를 통해서다. 그런데 해리사람들은 전통매체인 마을신문, 종이 위에 놓인 활자를 통해서 마을 어르신들과 초등학교 어린 친구들을 연결시킨다. 뉴미디어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어느 한편 치우치지 않고 함께할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세대의 연결을 통해 시간을 모은다면, 공간은 이렇다. 지금 해리 사람들과 예전 해리에 살던 사람들을 연결한다. 3000부 가량 출향인에게 보내지는 신문을 통해서다. 해리면은 매달 군정소식지를 출향인들에게 보내고 있다 그 소식지에 마을신문 해리를 끼워 보내는 것이다. ‘꿩먹고 알먹고’다. 이야기를 통해 서로 떨어진 공간과 사람을 모으는 것이다. 이렇게 정든 고향의 소식을 오늘처럼 누리다보면, 언젠가는 귀향으로 이어질지 모를 일이다. 행정과 민간을 연결한다. 면정, 군정을 일방적으로 하향방식으로 알리는 것이 아니라, 정책의 일단을 서로 생산해 소비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조금씩 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신문은 과거와 현재를 이었다면, 이제 미래의 역할로 확장하는 것이다. 비단 ‘마을신문 해리’만이 아니다. △ 열 번째 마을만들기전국대회, 천지사방 피어나는 마을미디어의 장지난 주 진안에서 제10회 마을만들기전국대회를 열었다. 백운면 한켠에서는 마을미디어 활동가들이 모여 다양한 논의 공간, 마을미디어 축제의 장을 열었다. 전라북도에 작지만 알찬 마을미디어들이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없던 것의 탄생이 아니다. ‘다시’다. 이야기의 속성대로다. 어디서든 멈추지 않는 흐르는 물처럼, 피어나는 아지랑이 결에 불어오는 봄 바람처럼이다. 사랑방에서 새내끼(새끼)를 꼬면서, 마을 우물에서 곁에서, 오일장 전통시장이 떠내려가라고 피어나던 이야기꽃이, 종이 위에 옮겨온 것이다. 활자와 사진의 옷을 입을 것이다. 마을신문 해리는 마을신문기자단으로 확장되었다. 해리지역 마을학교를 통해 미디어교실로 확장되어 마을신문의 이야기 한 빛깔로 가라앉고 있다. 이야기는 멈추는 법이 없다. 목소리를 낮추는 법이 없다. 전라북도 마을마을마다 저마다 제 목소리로, 그 멈출 수 없는 이야기의 장(場)을 확장해갈 것이다. <이대건 책마을 해리 대표>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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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13 23:02

[조정래 '아리랑' 속 배경을 찾아서] 김제~삼례~군산 이어지는 일제 수탈의 역사와 마주보다

초록빛 싱그러움을 뒤덮으려 들판에는 갯내음 짙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거칠게 휘도는 바람을 앞세우고 탁한 회색빛 구름이 바다 쪽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시커먼 먹구름은 하늘을 금방금방 삼켰다. 그리고 그 두껍고 칙칙한 구름덩어리들은 서로 얽히고 설켜 꿈틀대고 뒤척이며 뭉클뭉클 커져가고 있었다.〈아리랑〉 1권 중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서 들판을 징게 맹갱 외에밋들이라 불렀다. 이는 김제, 만경의 너른 들이라는 뜻이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공간적 무대가 된다. 갯내음 섞인 바람은 서해로부터 불어오고 신작로와 군산선은 그 들판을 가로지르며 군산항으로 내달린다. 징게 맹갱 외에밋들에서 나오는 나락들은 실어 나르기 좋은 두 개의 길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첫 번째 수탈의 대상이 됐다.그 수탈지였던 곳을 배경으로 조정래는 대하소설 〈아리랑〉을 집필했다. 소설 속에서 뿐만 아니라 현지에도 수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소설 숨결이 깃든 아리랑 문학관필자는 조정래의 아리랑 문학관에서부터 삼례문화예술촌 그리고 대야의 주조장과 군산 내항까지 하루코스로 답사를 했다.오전 8시 30분에 군산에서 출발해서 김제 아리랑 문학관까지는 45분이 소요됐다.문학관 1층에 들어서자마자 유리관 속에 들어있는 원고탑이 눈에 들어왔다. 그 원고 더미 속에서 일제강점기에 징게 맹개 외에밋들과 군산항에서 그리고 만주와 하와이에서 살아갔던 나라 잃은 자들의 애달픈 이야기들이 꿈틀거리며 말을 건네고 있었다.벽에는 〈아리랑〉 내용들이 소설 속 배경이 되었던 실재 현장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있다. 시선이 멈추어선 곳 마다 나라를 잃은 조선 백성들의 지난한 몸부림을 시간의 망원경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조정래 작가의 글을 쓰기 위한 스케치들이 전시되어 있다. 월명산에서 내려다 본 군산항의 전경들에는 멀리 보이는 장항의 굴뚝과 째보선창의 민야암 등대까지도 자세히 그려놓은 것을 보고 발로 쓰는 조정래 작가의 부지런함에 놀라웠다. 뿐만 아니라 〈아리랑〉 속 공간적 배경이 되는 만주와 러시아 그리고 하와이 등 모든 곳에 가서 주인공들 입장이 되어 그들의 삶을 공감하고 아파하면서 그 이야기를 소설속에 담아놓은 진정성과 인간애에 감동의 전율이 느껴졌다.아리랑 문학관을 나오면 바로 앞에 벽골제가 보인다. 벽골제가 존재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일제가 욕심을 부릴 만한 쌀의소출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벽골제를 뒤로 하고 〈아리랑〉 속 주인공들이 살았던 김제시 죽산면 옛 내촌 외리 마을에 만들어진 아리랑 문학마을로 이동했다.△ 서민 생활상 복원 아리랑 문학마을아리랑 문학마을은 〈아리랑〉속에 나오는 근대 수탈 기관인 주재소, 면사무소, 우체국, 정미소, 등이 실물 크기로 만들어져 있다. 그 안에는 각종 도구들 나침반, 카메라 측량도구, 등사기, 망원경등이 전시 되어있다. 하나같이 악행의 도구로 쓰였던 것들이다. 재현한 시설물들을 통해서 일제수탈, 강제노역, 소작쟁의, 독립운동 등의 우리 근대사를 한 자리에서 배울 수 있다.물론 내촌 마을은 소박하게 소설 속 내용을 근거로 복원되어있다. 이 마을에 살았던 주요 인물은 손판석, 지삼출, 감골댁, 송수익 등이다. 그들이 살았던 마을은 조그만 야산을 뒤로 하고 너른들이 펼쳐진 초가집들이 옹기옹기 모여 있는 평화로운 곳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묘사된 주인공들의 삶은 고통스런 삶의 연속이다. 손판석은 의병과 독립군 연락책으로 활동하면서 갖은 고생을 한다. 지삼출은 친일파인 장칠문의 나쁜짓에 보복을 하려다 주재소에 끌려가 채찍질 당하고 후에 의병으로 활동을 한다. 감골댁은 빚 때문에 맏아들이 하와이로 팔려간다. 가난 때문에 큰 딸이 부잣집에 첩으로 가겠다고 하자 우리는 굶어도 함께 굶고 죽어도 함께 죽어야한다며 눈물을 쏟아낸다. 감골댁의 맏아들 방영근이 가서 노예 같은 우리의 미주지역 이민사. 그것은 풍전등화의 국운 하에서 가장 억눌리고 착취당한 조선 민중들이 신음소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그들은 김제에서 살 수 없게 되자 군산으로 거주지를 옮긴다.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필자가 처음에 출발했던 군산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미곡창고가 있던 삼례문화예술촌에 들렸다.△ 근대와 현대가 공존 삼례문화예술촌40뿐쯤 이동하니 삼례문화예술촌에 도착했다. 미곡창고 4동이 있었다. 농협창고라는 옛간판글씨가 창고 벽에 색 바랜 채로 남아있다. 한 동은 커피숍으로 한 동은 책 전시장으로, 한 동은 옛 인쇄도구들을 전시해 놓은 곳으로 한 곳은 목공실로 이용되고 있었다. 농민의 피땀어린 쌀들이 가득히 쌓여있던 창고가 문화 공간이 되어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들고 있었다.가득히 쌓인 나무판들이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건물로 무작정 들어갔다. 그곳은 목공소였다. 오래된 지붕의 서까래가 드러나 있는 창고에 쌀 대신 나무 향기로 가득했다. 하나같이 다른 용도의 다른 모양으로 손때가 묻은 도구들이 벽에 가지런히 걸려있고 맞은편에는 잘 짜여진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옛날 빼앗겼던 슬픈 양식들이 담겨있던 창고가 지금은 개성 가득한 가구들의 냄새와 매우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역사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은 답사여행에서의 체험일 것 같다.다시 처음 출발했던 군산으로 이동했다. 40여분 후 도착한 곳은 대야의 주조장과 대야농협창고로 사용 중인 미곡창고이다. 일제는 1934년 밀주법을 만들어서 전통 곡주를 만들지 못하게 했다. 술 제조를 그들이 하면서 세금으로 수탈을 해 가고 조선 농민들의 흥과 정담을 나눌 기회도 박탈해 갔다.△ 콘텐츠 연계이야기 엮기 필요조정래 〈아리랑〉속 공간적 배경이 되는 김제와 삼례를 지나 전군가도를 따라서 대야에 이르고 군산구도심을 거쳐 내항에 이르렀다. 전라북도 서북 지역인 징게맹갱외에밋들과 전군가도가 연결 된 그 수탈의 길 위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아리랑 이야기를 늘어지게 듣고 보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김제의 아리랑문학관과 아리랑문학마을 그리고 삼례의 미곡창고를 활용한 문화예술촌 군산의 근대역사경관지구 등 이미 각 지자체에는 나름대로의 콘텐츠 공간으로서 활용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지난해 2월 매일경제에서 청소년에게 쌀 수탈의 역사를 가르치는 쌀 수탈 근대역사 교육벨트 조성사업으로 전북 김제시와 군산시, 완주군이 공동으로 진행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각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자신의 지역발전에만 올인(All in)을 하는 입장에서 연대를 통한 콘텐츠 개발은 매우 고무적이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다.필자 역시 쌀 수탈 근대역사 교육벨트 조성사업에 공감한다. 따로따로가 아니라 어느 한 곳에서 출발을 해도 세 곳을 지나면서 하나의 이야기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그래서 답사를 하고 나면 한권의 책을 읽은 것처럼 생생하게 그 시대의 사람들을 만난 듯한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이야기가 스민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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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06 23:02

[장애인 대상 교육프로그램 운영 문화예술단체 '라온'] "세상에 나를 이야기해요" 서툴지만 뜨거운 그들의 도전

손 씻고 오세요.크기는 일정해야 해요. 서로 서로 비슷하게.30-50대의 젊은 남녀 10명 정도가 두 테이블에 둘러 앉아 선생님의 주의사항을 들으며 경단을 빚고 있다.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밤톨만한 크기로 동글동글하게 빚는다. 모두가 비닐장갑을 끼고 신기한 듯 경험해본다. 선생님은 반죽할 때는 더 힘주어 해야 한다고 몇 번 씩이나 강조한다. 노란 카스테라를 곱게 걸러내는 일도 해본다. 선생님은 함께 둘러 앉아 시범을 보이며 잘 할 수 있도록 한 명씩 한 명씩 요령을 일러준다. 몸 움직임이 좀 느린 듯 하면서도 시선은 반죽 행위에 집중하는 이들은 1, 2급의 지적장애인들이다.△사진 찍는 게 될까?이들이 특별한 경험을 하는 곳은 정읍시 신태인읍에 위치한, 장애인 생활공간인 정읍천사마을이다. 매주 목요일 오전, 문화예술교육단체 라온의 세 선생님들이 운영하는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찰칵! 이야기를 시작하다에 참여하여 자신들을 표현하는 활동을 한다. 이들이 경단을 빚기 전에는 투명한 비닐 앞치마에 검정색, 파란색, 빨간색 매직으로 각자 뭔가를 표현하도록 하는 그림 그리기를 하도록 했다. 직접 그림으로 표현한 앞치마를 두르고 경단 만들기를 경험해보도록 하기 위해서다.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지능지수(IQ) 34 이하를 제1급, 35-49를 제2급 지적장애인으로 구분한다. 예전에는 정신박약아 또는 정신지체인이라고 하였으나 이 호칭이 부적절하다는 판단에 따라 지적장애인으로 바꾸었다. 네이버의 두산백과에서는 지적장애인을 정신 발육이 항구적으로 지체되어 지적 능력의 발달이 불충분하거나 불완전하고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것과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상당히 곤란한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다.정읍천사마을의 박현배 원장은 1, 2급 지적장애인의 경우 대체적으로 한글 습득이나 간단한 산수도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하면서도 지적 능력이 사람들마다 다 다르다고 한다. 글자를 전혀 모르는 데도 스마트폰으로 유투브 동영상을 보는 사람도 있다.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는 10여 명 중에는 한둘 정도가 한글을 습득한 경우라고 한다. 박 원장은 처음에 이들이 교육에 참여해 사진 찍고 그림 그리고 요리하는 게 될까, 생각했다고 한다.△립스틱 바르고 선글라스 낀 날엔이들은 저마다 사진기를 들고 촬영하는 법을 배우고 각자 촬영하거나 서로가 서로를 촬영하며 촬영된 사진이미지를 보며 매우 즐거워 한다. 안진희 선생님의 말이다. 이남숙 씨의 경우 처음에는 사진기 프레임 안으로 사물이 들어가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어요. 지금은 달라졌죠. 종이에 점 하나 찍는 것도 못했지만 지금은 자유롭게 그리기를 해요.이현자 선생님은 이렇게 설명한다. 요리 경험은 커녕 원재료들이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이들 중 여성의 경우 요리본능이 있더라고요. 박삼미씨를 사례로 든다. 박삼미 씨는 요리하는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함께 하려 하고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기도 한다.삼미 씨는 오늘 정읍시내로 나가는 동료들이 있어 따라 나가려고 했는데 요리를 한다 하니 우리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삼미 씨는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빨갛게 립스틱을 바르고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나요. 그러고선 립스틱 바르고 선그라스 낀 날은 자기를 건들지 말라고 경고(?)해요. 삼미 씨처럼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나 미용실 갔다 왔어라온의 선생님들은 이들이 각자의 시선에 따라 사물을 만져보며 촉감을 느끼고 또한 향기를 맡고 느끼면서 표현활동을 하게 한다. 생활세계를 둘러싼 것들에 대해 감수성을 키워 조금씩이나마 삶의 독립 주체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선생님들의 이러한 태도는 정읍천사마을의 방향과 비슷하다. 표현행위나 삶의 자기결정권이 지적장애인들에게는 보호자에게 위임된 경우가 많지만 박현배 원장은 다르게 생각한다.우리는 시설 안에서만 생활하지 않아요. 이 사람들이 사회 속으로 들어가 비장애인과 만나길 바라거든요. 이쁘게 머리 손질을 하고 싶어 미용실에 가겠다고 하면 우리가 동행해줘요. 각자의 판단에 맡겨 능동적으로 선택해서 움직이게 하고, 우리는 그걸 도와주는 거고요. 다양한 학습과정을 경험하도록 하는 사회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해요. 그러다보면 어떤 부분은 예상치 않게 잘하기도 해요.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뭔가를 발견해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워주려는 것이죠. 이런 맥락에서 지금 선생님들이 하시는 문화예술교육의 수확이랄까, 그 성과가 있는 것 같아요. 지적장애인들이지만 활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머리 하러 정읍 시내에 다녀 오고 나선 나 미용실 갔다 왔어 하며 자랑한다고 한다. 정읍천사마을은 하루 일정 중 이들 각자가 원하는 희망활동을 1순위로 선택하여 활동하게끔 배려한다.△작품사진 전시회가 줄 메시지안전과 청결에 대해서는 매우 주의하는 모습이다. 경단 만들기처럼 불을 사용해야 할 때는 불 사용을 최소화하며 그때그때 주의를 환기한다.동글동글 빚은 경단 알을 삶는 곳으로 그 과정을 궁금해 하며 박삼미 씨가 접근하자 이현자 선생님은 요리 과정과 상황을 설명해주며 좀 떨어져 있어야 해요 라고 당부한다. 이들은 자기가 만든 음식에 대해 애착이 강하다. 이 날은 사회복지사 직원도 함께 참여했다.경단 만들기 체험하는 와중에 유성수 선생님은 그림 그리기도 잘 하고 사진에 관심을 많이 보이는 김건 씨에게 경단 만들기 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보도록 권유하고 피사체 조정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서툰 말, 어눌한 행동으로 담아내는 피사체 모습일지언정 김건 씨의 시선엔 또다른 세상이 열리는 과정일테다.처음엔 돌발행동이나 거친 행동을 하던 몇몇도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사그라들었다. 격려와 칭찬을 해주면서 이들과 소통한 효과다. 기회가 되면 이들과 함께 음악 합주를 하고 싶다는 유성수 선생님은 야외활동을 할수록 교육효과가 더 좋다고 한다. 세상에 나가 세상과 대화하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일까.올해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면서 할 이들의 작품사진 전시회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왜곡된 시각을 벗어나게 하는 메시지가 있으리라 기대된다.<고길섶 문화비평가>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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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30 23:02

[꿈다락토요문화학교 여름캠프] 청소년과 예술가들의 만남…꿈 많은 가슴에 창의력 점화

청소년 시기에 아이들은 다양한 것들을 시도하고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온전한 자기 색을 드러내는 시기를 보내기보다, 자기만의 색깔을 알아가기 위해 한걸음씩 걸어가 보는 경험을 해야 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입시제도 안에서 청소년들은 그저 네모난 교실과 책상, 그리고 책에 갇혀 네모난 삶을 살아가기에 바쁘다. 입시공부 외의 것들은 무용한 것처럼 보여지는 세상이다. 아이들에게는 네모의 삶을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삶에서 무용한 것이 삶의 목적임을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 선생님이 한 이야기처럼 시와 미, 사랑 낭만이 삶의 목적이라 느낄 수 있도록 유연하게 숨 쉬고 사고할 수 있는 시간들이 필요한 것이다.△ 2박3일, 무주에서 펼쳐진 낭만의 캠프여름의 계절이 깊어진 무주 덕유산 자락(무주자연환경연수원)에 저마다의 꿈을 안고 아이들이 모였다. 전주, 익산, 무주, 남원, 장수 등 전라북도 방방곡곡에서 모인 100여명의 아이들은 뜨거운 햇볕의 기운을 먹음은, 초록빛 여름 숲 같았다. 무르익어 어떤 색이 될지 모를 다양한 가능성을 품은 아이들이다. 예술가들은 이 아이들에게 creative mind up이라는 주제로 함께 만나 영화와 음악 장르로 즐거운 창작 작업을 해보자고 손을 내밀었다.이번 creative mind up 캠프는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에서 주최하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사업의 일환으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통해 음악을 매개로 청소년들을 오래 만나온 라이브음악문화발전협회 정상현씨가 기획을 맡았으며, 현재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에서 아이들과 영상작업을 하고 있는 여울림이 함께 운영을 맡아 진행했다.△ 레디~ 액션! 영화 만들기영화팀은 두 팀으로 나누어 창작활동을 진행했다. 장난 끼 가득한 얼굴로 웃고 떠들던 아이들이 감독의 레디~ 액션! 신호에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자기 역할을 찾아간다. 캠프 내내 비가 세차게도 내렸다. 야외촬영이 어려워지니 본래 찍기로 했던 내용에서 많은 부분을 수정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카메라 잡는 폼도 엉성하고 조명 위치도 못 잡더니, 시간이 지나자 점점 익숙해져 가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새벽까지 진행되는 밤샘 촬영에 지칠 법도 한데, 지친가운데 힘을 내서 아이들은 촬영에 임한다. 한 씬을 찍기 위한 한 시간의 준비. 영화라는 장르에 다양한 역할들이 있음을 아이들이 알아간다. 연출, 조연출, 조명, 연기자, 마이크 등등. 어느 역할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서로의 호흡이 맞아야 하고, 그 호흡으로 작품하나가 완성됨을 아이들은 알아간다. 고가의 장비들이다 보니, 처음 장비를 접해보는 아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처음을 맞이하는 생경함 속에 아이들은 지금 이순간 자기 나름의 새로운 상상과 도전을 시작할 것이다.△ 다양하게 즐겼던 음악팀음악팀은 고등학생들이 많았다. 평소 자신이 하고 있고, 관심이 있던 영역이어서 집중도가 높았다.음악팀의 워크숍은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평소 만나지 못하는 뮤지션들과 만나 함께 공연 하며 새로운 경험을 이어간다.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이라는 영화를 강사님의 해설과 함께 들으며 음악에 대해 진중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새벽까지 녹음이 진행하여 잠을 못 잤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오전 말로의 강의에 모두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는다.평소에 궁금한 점을 풀어내느라 아이들의 시간은 하염없다. 빡빡하다 느낄 수 있는 과정 속에서도 아이들의 표정과 몸짓에서는 여유가 느껴진다. 아이들 뿐 아니라 함께하는 강사들에게서도 여유로움이 함께 느껴졌다.△ 서로가 만나는 교차지점. 캠프특히, 음악팀은 참가자도 강사도 아닌 청년들이 캠프에서 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수년 전 공연장을 운영했던 정상현씨는 공연할 곳이 없어 공연을 못하는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는 도중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통해 아이들과 앨범작업을 하던 것이 2017년 5년차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다.그렇게 만나 인연이 된 청소년들이 이제는 같이 무대에 오르는 동료 뮤지션으로, 함께 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청소년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느껴졌다.지금 우리 나이 또래에 뮤지션들이 아이들(청소년)에게서 얻을 수 있는 열정의 원동력들이 있잖아요. 아이들은 지역의 뮤지션들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무대에 함께 서보는 계기들이 필요하고요. 지역에서 선배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계속 창작물이 나올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그게 시간이 지나니 점점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캠프는 그런 의미에서 선배와 후배가 만나고 연결되고 섞이는 매개가 된다고 생각해요시간은 그저 흘러만 가는 것은 아니다. 주변의 이야기를 쌓고, 사람을 남긴다. 이렇게 쌓아온 시간이라는 역사가 지금의 creative mind up 캠프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음악팀에게서 느꼈던 편안함은 어쩌면 음악이 주는 편안함과 동시에 오랜 세월 함께한 그 시간의 단단함 때문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Creative! mind up!두 편의 영화와 한곡의 노래가 나왔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활동은 매력적이기도, 그리고 힘들기도 한 과정이다. 영화 장면 속에 본인의 모습이 나올 때마다 아이들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으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각자의 위치에서 자기의 역할로 무대를 꽉 채웠던 음악팀 아이들의 노래는 캠프가 끝난 다음에도 계속 흥얼거리게 된다.2박3일은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이 때로는 긴 여운으로 남아 살아가는 시간에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이번 캠프에 참여한 아이들에게 이번 캠프가 그런 순간을 만들어 내는 힘이 되었을 것이라 믿으며, 살아가는 삶에서 자기의 색깔을 서서히 피워내길 바라본다.문성희 문화파출소 덕진 문화보안관/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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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23 23:02

[책마을해리 만화학교]만화에 푹 빠진 아이들, 만화 그리며 세상과 만나다

이것 좀 읽어 봐, 엄청 재밌다. 이건 표현이 좀 지독한데, 헐~. 초등학교 45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 남짓한 열 댓 명 아이들이 와글바글 순전 입으로 책을 읽고 있다. 책마을해리 운동장 끝 나란히 선 다섯 그루 꿀밤나무 플라타너스 아래였다. 짙은 나무 그림자 커다란 티피텐트 두 개 사이에 올망졸망 놓은 작은 북 텐트, 책 파라솔, 책 의자와 매트 들에 아무렇게나 앉거나 누워 책을 읽는다.폐교된 지 내일모레면 20년, 학교의 소란이 아득한 이 곳에 그 귀한 아이들이 떼를 지어 책을 읽느라 해 기우는 줄 모른다. 이들의 정체, 2017인문독서예술캠프에 참가한 청소년들이다. 50명 남짓 대한민국 곳곳에 흩어져 살던 친구들이 〈책마을 만화학교〉 타이틀 아래 2박3일 모였다.하루 종일 나무 그늘 아래서 뒹굴뒹굴 책만 읽느냐고? 그것도 좋고도 좋지만, 뚜렷한 목적이 있다. 만화다. 우리가, 책으로 눈으로 다른 모든 감각으로 세상을 읽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다시 이야기로, 특히나 그림으로 풀어내 칸에 가두어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언제든 칸에서 풀려나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우려는 것이다.△만화가 좋아 전국에서 모인 50여 명의 아이들책마을만화학교는 3년째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심혈을 다해 진행해오고 있는 인문독서예술캠프 책마을 버전이다. 작년까지 100명 이상, 한두 차례 큰 규모 독서캠프로 진행해오던 것을, 4050명 단위 45회로 진행하는 새로운 버전을 시도한 것이다. 독서를 청소년, 청년, 가족의 공간으로 되찾자는 노력이 조금씩 다양한 빛깔로 번진다. 40명 청소년 참가자를 만화선생님, 책마을 선생님 열세 분이 함께하며 독서부터 다양한 지역의 인문생태자원 체험(하기)과 쓰기(그리기가 더 부각된), 그리고 마침내 펴내기(출판)까지를 돕는 것이다. 밀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40명 정원을 넘겨 진행한 핫한 여름캠프 책마을만화학교. 책마을해리로는 올해가 두 번째 만화학교다. 작년 학교를 마치고 만화책 『넌 너, 난 나』를 출판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3일 동안 이어지는 만화학교 일정을 따라간다.△읽기만 하던 것을 쓰고 출판하는 주인공으로첫날 첫 일정은 계약서 작성으로다. 출판권설정계약서, 독자들에게 생소한 계약서다. 저작권자가 출판권자, 출판사와 계약하는 서식이다. 만화학교 아이들은 이제 만화의 독자가 아니라 저자가 되는 역할 바뀜 마법공간으로 들어선다. 저자 사인(서명)을 멋들어지게 하는 아이들 눈에 진한 호기심이 비친다. 출판권설정계약서에서 갑은, 저작권을 가진 아이들 자신이기 때문이다.이제 모둠나누기다. 나이에 따라 파랑, 초록, 주황, 연두, 분홍까지 모두 다섯 모둠이다. 잘곳 머물곳 먹을곳 놀곳에 대해 살피고는 바로 캐릭터 공부에 들어간다. 공부라기보다는 놀이다. 자기 모습에서 가장 잘 드러내고 싶은 부분을 찾고 그려보고 그려보고 그려보고,다. 저마다 다양한 캐릭터가 태어난다. 나는 이렇게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습으로도 세상과 만난다. 우리가 자녀로, 어버이로, 학생으로 교사로, 관계에 따라 역할이 변하듯이.책속에서 길을 찾는 진로탐색, 『나는 지하철입니다』 그림책을 읽으며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만나고는 다시 나로 돌아오는 여행을 마친다. 이제 비로소 만화로 향한다. 만화가 갖는 여러 가지 속성 이야기, 만화기법과 스토리텔링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그림 그리는 재주(이것을 테크닉, 혹은 스킬이라고 한다)보다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함께 공감하는 시간이다. 이야기불변의 원칙을 다시 확인한다.해는 서편으로 기울기를 늘어뜨리고, 이제 형님들과 아우들이 편을 나눠 한편은 갯벌놀이(바다물놀이), 한편은 만찬을 준비하는 요리사놀이에 접어든다. 첫날은 형님 먼저 요리사다. 형님들 솜씨는 짜장밥, 난생처음 양파를 썰어보는 친구들은 이구동성, 엄마를 외친다. 이 매운 일을 맨날만날 하는 우리 엄마 생각이 얼마나 간절할까. 만화학교 식탁에 오르는 밥은 특별하다. 자연식당 청미래(민형기 대표) 도움으로 오곡통곡식으로 차린다. 작은 도정기에 오색 벼를 넣자, 트트특 현미 쌀이 되어 나오는 신기한 체험부터 만찬준비가 시작된다. 다음날 만찬은 아우들이 준비한 스파게티였다. 이 솜씨, 집에 가서도 부모님께 자랑해보렴. 밤이다. 이제 이야기를 짜는 시간이다. 이야기가 사는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이야기의 틀을 스케치로 표현하고 이야기와 그림 언저리에서 서성대다가 잠깐 앉았다가 한다. 마지막 일정은 만화일기 한편 쓰기, 꿈에서도 만화라니.△내 마음, 내 몸을 향한 여행은, 이제 바깥 세상으로만화학교 둘째 날 일정은 몸 여행 마음여행으로 시작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내 몸 안 여행으로 시작한다. 눈을 감고 보이지 않는 몸 안 구석구석을 찾아가는 의념(意念)여행이다. 오전 어제 못다한 스케치를 마무리한다. 생각이 좀 빠르고 손이 조금 빠른 아이들 몇은 벌써 색칠에 들어가 주위 아이들의 분노 대상이 된다. 얘야, 살살하렴.오후 만화선생님 가운데 대표교사 이지훈 작가와 함께 작가와만남 시간, 만화작가로 사는 일에 대해 열띤 토론이 이어진다. 그런데, 연봉이 얼마예요?그림놀이시간, 어제 그렇게 궁리궁리했던 자신의 캐릭터로 캐릭터 버튼 만들기, 만화 책갈피를 만들기를 통해 책마을과 인문독서캠프 추억을 기억의 갈피에 소중하게 챙겨놓는다.질세라 아우님들 실력발휘 만찬 뒤에는 캠프파이어와 요즘아이들다운 밤놀이가 이어진다. 실컷 놀아야 후회없는 법. 마지막 날이다. 언제 다시 우리가 우리 안으로 여행을 떠날까, 생각여행으로 시작한 하루는, 못다 그린 이야기, 그림 채색을 완성하고, 마침내 책에 들어갈 저자 소개글쓰기까지다. 3일 대장정 마무리다.△책마을 이틀밤 삼일낮 기억을 온몸 온마음으로전국 곳곳에서 왔듯이 전국 곳곳으로 흩어져 돌아가는 아이들이 전라북도가 가진 책의 문화, 고창이 가진 생태인문자원, 책마을 기억을 온몸온맘으로 새겨놓았을 것이다. 이미 끝 난 시인학교 참가자들은 물론일 테다. 이 신나는 책놀이 책쓰기가 여기서 끝일까? 천만에다. 매주 후반 조월례 어린이책평론가와 서평학교, 권오준 생태작가와 생태학교, 이억배 그림책작가와 그림책학교가 9월 첫 주까지 이어진다.우리도 이렇게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서 며칠 책만 읽고 놀았으면 좋겠다.책마을인문독서예술캠프 참가하는 친구들을 데리러 온 어버이들 이구동성 하는 말이다. 살다가 언제 다시 이 전라도 구석 바닷가 작은 폐교 책마을에 오겠는가. 마음 한켠에 작게 나무그늘을 만들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불리고, 그리고 그 언저리에서 책을 펴 드시라. 마음의 북텐트 하나 마련하시라.이대건 책마을해리 대표※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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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16 23:02

[백두대간 품은 장수가야 철을 밝히다] 첨단 신소재 기술 갖고도 연맹 상생 추구한 '철의 왕국' 기지개

이 글의 주제는 장수군 가야문화유산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등재추진을 위한 학술심포지엄 기념 도록의 제목에서 따왔다. 제목이 멋지다. 백두대간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넓어지는 듯하고 민족의식이 불끈거리며 올라오는 것 같다. 그런 백두대간을 품은 장수가야가 철을 밝히다니 왠지 사라진 철의 제국이 다시 살아나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며 옛이야기를 시작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옛이야기 속에서 오래된 미래를 꿈꿔 볼 수 있을 것 같다.최근에 문재인 대통령은 가야사 연구와 복원에 대해 국정과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화재청은 2015년 3월 가야 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 등재추진대상으로 선정했고, 2019년 최종 등재 신청을 준비 중이다. 그 중심에 장수가야와 남원 운봉가야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군산대학교 박물관장인 곽장근 교수가 청년 시절부터 30여 년간 젊음을 바쳐 연구해 온 결과로 가야가 전북 동북지역까지 아우르는 영역으로 삼국 못지않게 넓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백두대간은 백두산 병사봉에서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1,470㎞의 산줄기를 이르는 말이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모든 물줄기가 서류와 동류로 갈라진다.(네이버사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산맥은 분리해서 각각 이름을 붙였다. 그러한 방식은 일제강점기 일본학자에 의해서 명명된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신경준의 산경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백두대간을 뼈대로 강이 실핏줄처럼 동서로 흘러온 땅을 적시며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유기체와 같다고 보았다. 백두대간을 품은 철의 왕국 장수가야라는 말에 이끌려 필자는 고대왕국을 탐험하러 가는 것처럼 현장인터뷰를 떠났다.2017년 7월 28일 장수에 가서 보니 장수의 기상이 장수 같다. 전주문화유산연구소 전상학 책임연구원을 장수면사무소 앞에서 만났다. 한낮인 2시에 만나 두 시간 동안 장수군과 장계면 일대를 차량으로 돌면서 장수가야의 지정학적 위치 구조, 역사성과 연구 과정과 발굴의 의미에 대해서 묻고 답하는 답사를 했다.예부터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육십령 고갯길을 따라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지점인 터널에 도착했다. 터널 건너편 출구에 초록산 풍경이 보인다. 경상도 땅이란다. 팔각정에 올랐다. 장수군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겹겹이 멀어지며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장대한 산세는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한 요새 역할을 충분히 해 온 남성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사이 나지막한 분지는 먹거리와 생명을 품은 아늑한 여성성을 갖추고 펼쳐져 있다. 장수분지와 장계분지를 아우르며 백두대간을 품고 있는 장수는 역사 속에서 호남을 지키는 호위무사 즉 남성성과 여성성을 갖춘 무사 역할을 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필자는 육십령고개의 역할도 궁금했다. 질문에 대해 전상학 연구원는 친절하게도 응답해 주었다.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육십령고개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길목이다. 문화와 경제적 교류를 위해서 이 고개를 넘어가야만 했다. 육십령고개는 산세가 깊어 60명이 모여야 넘어갈 수 있다 해서 또는 육십리 라서 붙여진 이름이다고 했다.무엇보다도 역사책에서 배운 6가야에 대한 것 외에 장수가야를 증명할 수 있는 근거를 현장에서 알아보고 싶었다.연구원은 장수군 가야문화유산의 분포도를 보면 제철유적과 산성, 봉수, 고분군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멀리 보이는 남덕유산과 합미봉 그리고 봉화산에 모두 철광석이 가득하다. 장수군 내에만 60개의 제철유적이 발견되었다. 남원 운봉고원 제철유적지도 31곳이나 된다. 경상도에 있는 대가야와 고령가야에서는 제철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전라도 장수와 남원운봉지역에 엄청난 제철유적이 남아있다. 또한 장수가야가 요충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봉수대가 21군데가 있으며 백두대간 자체가 천연의 요새가 되기도 하지만 길목을 막기 위한 산성이 11군데나 된다고 말했다.그리고 장수군 내에는 지름이 20~30m 되는 고총이 240기나 있다. 고총 발견 시 말발굽 즉 편자와 말뼈가 나왔다. 이는 왕급에 해당하는 지배자의 무덤임을 알 수 있다고 했다.이동 중에 곳곳에서 커다란 봉우리들을 보며 고총이라고 한다. 난평 동네에 이르니 마을 입구에 300여 년이 된 고목이 서 있고 하늘을 찌를 듯한 적송들이 줄지어 있다. 그 너머로 보이는 동산 같은 것이 알봉이란다. 지름이 70m나 되는 무덤이다. 조상 대대로 신성시 여기며 지켜왔는데 촬영을 해 보니 고무덤임이 밝혀졌단다. 경주고분군에 있는 황남대총에 버금가는 크기다. 전율이 느껴졌다. 장수가야의 수많은 유적으로서 고분들이 땅속에 묻혀 사라질 위기에서 이제야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승자의 기록에 패자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역사책에는 단지 6가야만 남아있다. 6가야의 명칭은 후대에 만든 명칭이다.그러나 중국과 일본의 사서에는 가야와 관련된 국가가 20여 개가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 중에서 장수군 번암면으로부터 계북면까지 40㎞ 지역이 남원시 운봉고원과 함께 가야의 유물과 유적이 발견됨으로 인해 가야시대에 강력한 독립적인 정치체가 존재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이렇게 발전했던 지역이지만 중심지가 옮겨지면서 변방이 되고 역사 주체가 바뀌면서 잊혀진 존재가 된 것이다.그런데 왜 문재인 대통령은 가야사 연구를 중요시 여기는가 궁금했다.물론 그 전에 김종필 총재나 김대중 대통령도 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의 후손이라고 해서 가야 연구에 관심을 많이 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에는 호남과 영남의 화합과 상생 관계를 회복하려는데 역점을 둔 것 같다.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나뉜 신라와 백제는 영호남으로 이어져 지역색의 차이로 갈등의 소지를 늘 안고 있다. 그러나 가야는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은 한 나라였음을 기억하면 상생과 조화를 위한 근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모든 생물이 그렇듯이 그 생애가 짧고 길고의 문제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의미 있는 삶을 살았느냐에 달려있다.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 역사에서 4국이 되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562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가야의 의미는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서로를 침범하지 않았던 부분 때문에 외침으로 쉽게 망하기도 했지만, 연맹체의 상생은 배울 부분이다. 또한 그 당시 철을 다루는 기술이란 첨단 신소재 기술에 해당한다. 최첨단의 기술로 무장하고 화합의 국가경영을 했던 철의 왕국이 역사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다시 말해 장수가야는 백두대간의 민족정기를 품은 동서화합을 위한 노둣돌이 될 미래의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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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09 23:02

[고창 방장산 용추계곡 촌로작가 김연수] 승천하는 용을 바라보던 그 농부, 쟁기 대신 붓을 들고…

전라북도 고창군과 전라남도 장성군에 걸쳐 있는 높이 704m의 방장산은 부안의 변산, 정읍의 두승산과 함께 전북의 삼신산(三神山)이라 불리운다. 노령산맥의 한 줄기로, 고창 쪽에서 보자면 고창읍 월곡리에서 신림면 신평리로 이어지는 서향 산자락을 형성하고 있다. 삼신산이라 함은 신선들이 사는 곳이니 곧 신령의 기운이 흐르는 산일테다.신평리로 향하는 용추계곡은 용추폭포 아래 용소(龍沼)의 한 전설을 품고 있다. 천둥번개 치던 날 승천하던 용이 어느 여인의 눈에 띄자 부정탄 탓으로 용소에 떨어져 지네로 변해 방장산으로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그 전설을 닮았을까그 전설을 닮았을까. 아니면 그 지네가 오랜 세월을 거쳐 다시 용으로 화했을까. 신림면에 인접한 흥덕면 한림동에 살던 79세의 김연수(김영중) 할아버지는 천둥번개 치던 날 용추계곡에서 한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멀리서 보았다고 한다. 그이는 지금 구룡목(九龍目)이라 불리우는 신평리의 용추계곡 산자락에 집 한 채를 지어놓고 홀로 살고 있다.평생 농사만 짓다 나이 60이 넘어가면서 홀연히 여기로 들어 왔는데 승천하는 용을 보고 나니(?) 어떤 기운이 그이를 불러들인 모양이다. 승천하는 용을 흥덕에 사는 여러 명과 함께 보았다며 증인들을 내세워 용추계곡 전설에 기댄 판타지적 서사의 주인공으로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듯 하다.그 이야기엔 마냥 허풍이나 허세, 망상 또는 신비주의 류로 채색되는 허구로 들리지 않는 그이의 생애사적 신심이 깃들어 있어 보인다. 그의 신심은 그이가 이곳에 들어와 살면서 직접 창작하고 있는 그림들과 그리고 그의 설명에 묻어 있다. 그곳을, 그이는 농부예술미술관이라 이름붙였다.△ 칠순 나이에 불쑥 그리기 시작여기에 김연수 할아버지의 작품활동을 소개하려는 까닭은 소박하다. 환갑도 훌쩍 넘긴 연로한 나이에 어느날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을 높이 산다. 그 어느날 갑자기란, 평생 농사일에만 바지런하던, 붓 한번 잡아보지 못했다는 민초적 삶의 굴레를 훨훨 벗어던지고, 어떤 신령스런 영감의 모티브였을까, 하여튼 서당개 3년이라는 곁눈질 기회조차 없이, 난생처음 홀로 불쑥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구룡목에 들어와서 처음 한 5년 동안은 자고 먹고 자고 먹고만 했어요. 아주 꿀잠을 잤어요. 그러다 갑자기 돌탑을 쌓기 시작했고, 또 그러다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림 경험도 전혀 없던 나였는데, 신기들린 듯 막 그려지는 거예요.사오월이면 극심해지는 방장산의 용추계곡 돌풍은 매섭다. 태풍은 차라리 약소하다. 돌풍이 몰아치면 마을 사람들은 집안에만 있는단다. 그 돌풍의 기세로 어떤 신기가 김연수 할아버지에게 빙의한 것일까.△ 인생의 가을 들녘에 추수 끝난 빈 들판그러나 그이는 누구나 그림을 그리려 하면 그릴 수 있다고 한다. 시골의 촌부들은 그림을 그려보게 한다거나 연필을 잡고 글을 써보게 하면 대개 두려워 도망간다. 평생을 두고 그래본 적이 전혀 없는 자신들의 처지에서 언감생심이라 생각들 할 터, 안타깝게도 그러한 두려움이 육신을 파고드는지, 그이들의 손놀림은 연로한 손떨림으로 미끌어지고 그이들의 감수성 기억은 쇠잔해질대로 쇠잔해져온지라 그 누가 나서겠는가.삶의 가치를 농삿일에서만 찾도록 길들여 온 촌부들의 자기윤리는 한편으로는 존경받아 마땅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할 정도로 애잔하기조차 하다. 그이들에게도 얼마든지, 김연수 할아버지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듯, 촌부들일지언정 얼마든지 있을법했던 예술적 표현행위들의 감수성은 한국 현대사가 강요한 노동중독의 질곡과 함께 억압되고 소외된, 그리하여 잃어버린 삶의 그루터기로 쪼그라들었으리라.쇠잔해졌음에도 뒤늦게 자기발견을 했고 안타깝게도 그러자마자 타계한 이웃지역 부안면 구현마을의 고 이현기 씨가 남긴 시 한편에서도 그이들의 뒤늦은 멋진 신세계를 느껴볼 수 있다. 시간 따라 나도 따라 여기 같이 왔구나 / 어느덧 팔십고개 내 몸도 굽어지고 / 인생의 가을 들녘에 추수 끝난 빈 들판△ 촌로의 독특한 미적 아우라 풍겨인물, 꽃, 달마 따위들을 그려 온 김연수 할아버지 아니 이 촌로작가의 작품세계는 전문작가들의 미술세계와 다른 차원에서 촌로라는 생애사적 관점으로 접근할 때 이렇게 그렸구나, 라는 것만으로도 감탄할만 하다.연마된 화법이 아니니 당연히 세련된 형상화의 구도하고는 거리가 멀어보이고, 어쩌면 어린 아이들의 그림티가 묻어나기도 하는 삐죽빼죽 그림들이지만, 농부예술이라는 전시공간의 숱한 작품들에서는 촌로의 독특한 미적 아우라가 풍겨진다. 그이는 스스로가 새로운 화법을 터득했다고 말한다. 승천하는 용을 봤다느니 하는 맥락의 표현일까, 그이의 작품 중에는 한자 용(龍) 자를 형상화한 그림들이 눈에 띤다. 그이가 터득했다고 하는 화법이 여기에 있다.여러 화백들을 만나봤어요. 그분들에게 용(龍) 자의 그림 문양이 섬세한 결들로 그려진 것을 설명하면 붓을 여러 개 겹쳐서 사용한 거 아니냐고 의심들 하던데, 나는 분명히 붓 하나로 한번에 내친거거든요. 덧칠하지 않았어요. 6-7분 걸려요. 한 몇 년은 그런 기세가 치솟았는데 이제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그런 화법이 잘 안돼요. 초기의 좋은 그림들은 다 남들 줬어요.△ 방장산 용추계곡은 신령스러운 꿈의 모티브주변의 어떤 이는 그이를 기인이라 한다. 그러나 기인이라기보다 속세의 꿈들과 함께 사는 범인일 성싶다.어릴 적 절 생활을 잠깐 했고 청년시절 농사를 지으면서 노름에 빠져 빚쟁이가 되기도 했으나 고향을 뜨지 않고 굳센 마음으로 농사일을 열심히 하여 빚 청산을 다하고 평범한 농부로 살아왔다.자신의 작품들을 기성세계로부터 평가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어서인지 유명세를 타는 숱한 명사들을 만나러 다니고 자신의 작품들을 보여주며 인증사진들을 찍었다. 그러나 먹혀들지 않은 듯 하다.자신만의 독특한 화풍보다는 누구나 그릴 수 있는 표준적인 그림을 더 자랑스러워 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문화코드를 통해 스스로를 인증하려는 모습일까.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그렸던 여성 알몸그림은 남사스러운 말들이 있자 아예 꺼내놓지도 않는다.쇠잔해지고 손 떨리는 육신으로 세상과 말 건네는 판타지적 서사의 주인공 혹은 촌로작가 김연수 할아버지, 에게 방장산 용추계곡은 촌로에게 다르게 사는 기운으로 꿈을 실어준 신령스러운 모티브인 셈이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어떤 기회가 올지 모르니 기회를 기다리며 삽니다. 마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자연의 순리대로 이루어지니까요.고길섶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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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02 23:02

[완주 고산 '서쪽숲 협동조합'] 시골로 간 젊음 재미있고 의미있는 작당모의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농귀촌이라 하면 자식들을 다 키우고 은퇴시기를 맞이한 50~60대 부모세대들이 제2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시골로 가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요즘은 저성장 시대에 높은 취업난과, 청년층의 생태적 가치와 마을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청년들의 귀농귀촌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30~40대 많은 젊은 부부들 또한, 아이들이 경쟁과 치열함에 싸워야하는 도시가 아닌 여유로운 자연환경 속에서 키우기 위해 귀촌을 선택하고 있다. 이제 귀농귀촌은 단순한 삶의 방식이 아니라 시대적 흐름 안에서 사회를 반영하는 사회현상이 되었다.△의미 있고 재미있는 삶을 꿈꾸다다양한 이유로, 시골로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한 마을에서 나고 자라 자연스럽게 마을을 구성했던 예전과는 다른 형태의 모습들이 곳곳에 존재한다.특히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귀농귀촌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하고 있는 완주의 귀농귀촌인들의 모습은 조금 더 특별한 듯하다.시골로 들어오기 전까지 살아왔던 삶의 형태가 있으니, 서로 즐겨하는 것과 잘하는 것들이 모두 다르다.다양한 이유로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이니, 한데 섞이지 못하고 부유 하고 있을 것만 같던 모습과는 달리 그들은 그들 스스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작당모의를 재미나게 하고 있었다. 서쪽숲 협동조합도 그 작당모의 가운데 생겨나게 된 모습이다.완주 고산 일대로 귀농귀촌하여 살아가는 사람 12명이 서쪽숲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건축을 하는 사람, 벼농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 공연기획을 하는 사람 등 모인 사람들 각각 개인이 갖고 있는 관심사와 재능이 모두 다르다.처음에는 서쪽숲에 나무집이라는 동네 목수팀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기 위해 회사를 만들자고 시작했던 일이 서쪽숲 협동조합의 시발점이 되었다. 각자의 모습과 존재 이유는 달랐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 한 가지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자는 것이었기에 그들은 모일 수 있는 힘이 있었고, 그 모이는 힘으로 다양한 재미있는 작당들을 시도할 수 있는 듯 했다.△아이들의 삶을 지역에서 함께 고민하다구름 덕분에 하늘이 평소보다 낮게 깔린 아침이었다.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큰 나무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제법 진지하게 아이들은 나무를 다듬는다. 전북문화관광재단에서 주최하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프로그램인 play house : 짓고 그리고 머물다(이하 플레이하우스)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플레이 하우스는 아이들의 삶을 지역에서 함께 고민하며 시작한 서쪽숲 협동조합의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도 중 하나다.도시에는 아스팔트밖에 없잖아요. 길가에 핀 풀꽃 한포기 조차 보기 힘든 곳이 도시예요. 우리 아이를 그런 환경 속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아 귀촌을 결심했어요. 협동조합에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있었고요. 그래서 우리에게 아이들 교육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플레이하우스 기획자인 서쪽숲 협동조합 박현정 이사는 자연과 함께 아이를 키우고 싶어 완주로 귀촌을 했고, 아이들 교육문제에 있어 지역사람들과 다양한 고민과 시도를 해왔다고 한다.동네에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다. 학교 공부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틈이 보인다. 그 빈틈은 다른 곳이 아닌 아이들이 살아가는 삶터, 즉 지역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조합원) 중에는 나무로 집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방식으로 채워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끝에 지역에서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아이들을 만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협동조합 내에서 이 일에 관심 있던 세 사람이 기획단을 꾸려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아지트를 만드는 프로그램인 플레이 하우스를 시작하게 된다.△아이들에게 비빌 언덕이 만들어지기를우리가 여관에서 삶을 살지는 않잖아요. 집은 잠만 자는 공간은 아닌 거죠. 집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공간인거예요. 플레이 하우스는 집(아지트)을 짓는 기능을 단순히 배우는 활동이 아니예요. 건축은 내가 움직이는 동선, 바람이 통하는 길, 해가 뜨는 방향 등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하는 총체적 예술인 거예요. 더 나아가서는 이렇게 지어진 아지트는 아이들이 힘들 때, 비벼댈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될 수도 있고요.부모세대가 좋은 뜻을 가지고 귀농귀촌을 했더라도, 아이들 스스로 자기 주체성과 자기 존재 의미 없이 지역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아이들 스스로에게도 농촌지역이 지속가능한 삶의 터전으로 인식될 수 있어야 지역(농촌)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아지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집을 만드는 과정과 기술, 그리고 완성하게 될 아지트. 그 모든 것이 어쩌면 아이들이 지역에서 성장하며 마음 놓고 비빌 수 있는 비빌 언덕의 자원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이 과정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이들이 아지트를 만드는 공터가 관 소속의 공유지로, 작업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용 여부 및 아지트를 완성했을 때의 존속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그나마 다행인 것은 관이 그저 나몰라라 하는 행태가 아닌, 함께 이 일을 해결해 보자며 결의를 다졌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완주군이 관례라는 이유로 원칙대로 이 일을 해결하기보다 다양한 꿈을 지역민들과 그리고 그곳을 비빌 언덕 삼아 살아가게 될 아이들과 함께 꿀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대안적 삶이란, 근본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벼농사 지으니 쌀 있고, 밭농사 지으니 김치도 있어요. 적어도 이곳에서 굶어죽진 않아요.박현정 이사가 마지막에 웃으며 건낸 말 한마디가 폐부 깊숙한 곳을 뜨끈하게 만든다. 퍽퍽한 삶에 기대 쉴 곳이 있다는 것은 참 든든한 일이다. 땅이라는 근본 위에 터를 잡은 사람들에게는 현대사회 속에 없는 함께 사는 여유와 넉넉함이 있는 듯 하다.저성장시대에 더 이상 발전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속도를 내기위해 패달을 밟아도 헛바퀴만 돈다. 저성장에 제일 크게 타격을 받은 세대는 당연 청년들이다. 청년들 학력은 높고, 스펙은 좋다. 그렇다 한들, 이윤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에서 헛바퀴를 돌리자고 청년들을 채용하지는 않는다. 대안이 필요하다. 그 대안을 지금의 청년들은 농촌에서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제 곧 청년이 될 아이를 키우는 부모세대들이 돈이 아니어도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비빌언덕을 함께 만들기 위해 귀촌을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든다.지역에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삼촌 이모들을 만나게 해주고, 함께 작당할 거리들을 만들어 주는 것. 어쩌면 지금의 저성장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수학문제집 하나 더 사주고, 학원 한 곳 더 보내는 것보다 더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문성희 문화파출소 덕진 문화보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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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26 23:02

마을과 학교 만나니 사람농사 풍년 들겠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로 회자되고 있는 온 마을이 한 아이를 키운다는 말. 그 지당하신 말씀을 잊고 살았던 우리에게, 슬그머니 다가와 이제는 마을과 학교를 다시 일으켜 세울 화두가 되었다. 마을이 키우는 아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제라도 다시 이어가야 할 아름다운 전통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그런데 화려한 부활 이면에 되짚어야 할 중요한 전제가 있다. 키워야 할 아이가 많이 줄었다는 것, 마을도 예전 그 활력에 찬 마을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을도, 아이도 예전 같지 않은데, 마을이 키우는 아이라는 공식이 여전히 성립할까? 그 공식의 조건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작은 시도들이 지역에서 조심스레 움트고 있다.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을과 아이, 학교가 연대하는 작은 흐름을 읽어본다.△마을학교 풍경 하나, 온몸교육협동조합온몸교육협동조합 정유선 대표는 가족과 함께 2008년 아산초등학교가 있는 영모정마을에 귀농한다. 둘이었던 아이는 지금 넷으로 늘었고 큰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막내가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대학을 빼고 우리나라 학제 전반에 아이들이 포진해 있는 것이다.학교가 있는 마을에 스미어 살게 된 정 대표에게 고민이 일었다. 수업을 시작하는 종소리, 끝나는 종소리가 없는 것은 물론, 심지어 시간표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수업이 진행되기 일쑤였다. 점점 줄어드는 학생 수, 폐교를 앞둔 학교였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학교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 학교가 있는 마을에 살게 되었지만,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 하나하나를 간섭하며 살기란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폐교를 막기 위해 운영위원이 되어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에 문제제기하며 힘겨운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다 지치고 말았다. 귀농해 사는 자연스런 삶과는 사뭇 다른 생활, 정 대표 가족은 이사를 결심하고 다른 지역에 집까지 계약하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결정을 되물린다. 다른 사회운동보다 학교 교육운동은 학부모가 참여하면 할수록 변화가 있다는 사실에 다시 주목한 것이다.작지만 느끼고 함께 공유한 대로, 변화하면 할수록 그만큼 참여한 사람들의 보람도 크거든요.△농촌유학에서 마을학교까지, 고군(孤軍)에 분투(奮鬪)결정을 되돌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생각, 그 생각의 힘이 더 컸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농촌유학프로그램이다. 마을에 아이들이 늘어나면 학교도 활기를 찾고 변화의 기운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처음에는 마을에 사는 학부모들을 설득해 함께 진행했다. 연줄에 연줄을 대어 불러 모은 도시 어린이들과 시작한 첫 농촌유학프로그램, 그러나 결과는 실패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어린이들의 몹시 까다로운 투정에, 참여해 홈스테이를 제공한 마을 학부모들이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린 것이다. 그 애들 짜증이며 시중들기 더 이상 못하겠다.어린 시절 장기간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며 여름과 겨울 2박3일 단기농촌유학으로 급선회하게 된다. 그것이 2012년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적용하며 마을자원과 도시 어린이들의 요구를 담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올해는 고창교육지원청(교육장 김국재)과 함께 아산초등학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마을학교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마을문화 바꾸는 마을학교의 저력저학년은 생태놀이를 중심으로 하고, 고학년들은 절기살이로 진행한다. 절기살이는 처음엔 단순한 농사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학교의 요구도 농사라면 씨뿌리고 거두는 일, 모내고 거두는 일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기획단계에서 온전히 농사 자체를 체험하는 과정으로 바뀌었다. 절기교육이다. 모를 내고 거두는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모판에 모를 내는 일부터 도정해서 쌀을 손에 쥐고 밥하고 떡 하는 일까지 통째로 농사를 체험하는 방식이다. 학교와 학교 안 아이들만 변화한 것은 아니었다. 그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훈수 두듯 함께 참여해준 마을 어르신들의 변화도 컸다. 일에도 관여하고, 참을 먹는 때도 모셔서 함께 했다.수확시기에는 홀테를 가져와 벼를 당겨 나락을 훑는 일을 직접 시범보이는 일이며, 원통형으로 된 호롱기를 발로 굴려 돌리면서 탈곡하는 좀 더 난이도가 높고 위험한 방법도 익숙한 손길로 척척 시범조교가 되어 주었다.습관처럼 평생 몸에 익은 몸짓으로 지금은 구경도 어려운 농기구들을 다루는 품을 본 아이들이 먼저 달라졌다. 우리 할아버지야, 어깨를 으쓱거리는 녀석들부터다. 마을 어르신들의 문화라는 것이 대개는 절기에 맞게 이뤄진 것인데, 아직 유효한 절기가 몇이나 될까? 학교와 학부모, 아이들과 함께 한 절기놀이를 통해 마을어르신들의 문화도 옛 힘을 되찾게 되었다.여름방학을 앞둔 온몸교육협동조합은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방과후마을학교를 수탁하는 문제다. 우리가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을까? 하는 고민에 더해, 마을과 학부모에게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은 초등과정과는 달리 여전히 마을과 학부모의 생각이 전해지기 어려운 중등과정의 구조를 어떻게 하면 부드럽게 바꿀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그런데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온몸협동조합의 난제를 함께 풀어가는 주체가 고창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지역의 교육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고창마을교육공동체포럼올 초 충남 홍동과 화성, 의정부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을학교사례를 답사하고 난 뒤 자연스럽게 모인 마을교육공동체와 올해 고창교육지원청과 함께 마을학교, 토요마을학교를 운영하는 18개 마을학교가 함께 꾸리는 고창마을교육공동체포럼이다. 3월부터 함께 모임을 시작해, 매달 공동체 공간을 돌아가면서 해당 교육공동체가 걸어온 자취부터 고민거리, 진로에 대해 의견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마을학교 지도를 공동제작하기도 하고, 마을학교끼리 서로의 빛깔을 다른 마을학교 어린이 친구들에게 선을 보이고 되받는 마을학교품앗이도 기획하고 있다. 오는 8월 모임으로 이웃 완주군 고산의 풀뿌리교육지원센터와 영광군 여민동락을 차례로 방문하는 마을교육공간투어 2탄도 계획하고 있다.포럼은 마을학교 마을교육의 한쪽 주체인 학부모 주민만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분기에 한번꼴로 마을교육을 학교교과로 활용하려 고민하는 교사들과 함께 자리를 마련한다. 이른바 소집강 형태다. 학교, 지역, 교육청이 지역교육을 의제로 고민하고 토론하는 작은 모임을 여러 차례 거쳐, 마침내 연말 고창교육대론회로 수렴하는 구조다. 여기에는 참가를 원하는 지역의 초중등학생도 모두 참여해 지역의 교육문제에 해단 솔직한 이야기들을 나누게 된다.포럼은 이제 학교사회적협동조합을 모색하는 단계다. 학교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조합원이 되어 학교가 추구하는 공익을 확보하는 길로서 협동조합이다. 포럼에 속한 교육공동체들에게 새로운 공부가 시작되었다. 1인1표의 민주적 운영, 자본주의 4.0으로 불리는 대안적 기업 모델, 5명 이상 모이면 협동조합 설립 가능. 이런 기본 원칙부터 차례로 배워가고 있다. 학교를 둘러싼 작은 모임, 그러니 배움이 빠질 수 없다. 학교를 둘러싼 지역 모두가 이로운 방식으로 교육의 역할을 확장하는 일이, 지역에서 한발 벌써 조용한 목소리로 운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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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19 23:02

<전북에 머문 최치원의 향기> 역사적 사실·판타지적 설화, 스토리텔링 소재 가득

△ 풍류를 말하다통일신라 말 고대 동아시아의 문장가였던 최치원은 풍류를 말했다. 다소 어려운듯 하지만 여기서 풍류는 국유현묘지도 즉 우리나라에 깊고 오묘한 뜻이 있다는 말이다. 그 기원은 밝 사상인 천신을 섬기는 고조선에서부터 전승되었고 유,불,선 삼교가 담겨있다. 풍류를 실천하는데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원리를 따른다고 한다. 천지에 살아있는 것들은 가정에서는 식구와 만나고 마을에서는 마을사람을, 나라는 백성과 만나는 등 천지만물과 제대로 만나야 풀어진다는 뜻이다.1200년이 지난 지금도 최치원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또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교류의 아이콘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당나라 말기 토황소격문으로 황소에 기의 날개를 꺾어놓은 글솜씨와 인품이 동북아를 포용한 동인주의(同人主義)를 갖은 국제인, 조국 신라를 사랑한 동민주의(同民主義)를 가진자로서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문화영웅이기 때문이다.필자는 지난해 7월 강소성 양주시에 갔다. 최치원의 성장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어서다. 최치원은 12살의 나이로 유학길에 올랐다. 남이 백 번 할 때 천 번 한다는 각오로 6년만에 과거 진사과에 합격했다. 20세에 첫 발령을 받았던 율쉬이 현에는 최치원의 비석이 있었다. 성 밖에 서민들의 삶을 보살피기 위해서 지나다니던 길목에 있었다. 비석 옆으로 멀어져 가는 오솔길이 보였다. 그 당시는 당나라도 신라도 말세지말의 혼돈에 싸여있었다. 그 혼돈 속에서 한줄기 빛이 되고자 외롭게 걸어갔던 최치원의 뒷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최초 생사당의 주인공중국의 황제로부터 자금어대까지 선물 받았던 최치원은 당대를 풍미한 동아시아의 문인들과 소통할 정도의 문필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에서도 관리로서 성공의 삶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치원은 혼돈의 시기에 있었던 신라로 귀국해 자신이 당나라에서 경험한 선진적인 정치이론을 가미한 〈시무10조〉를 진성여왕에게 올린다. 하지만 진골귀족 세력에 밀려 야심찬 개혁은 실패로 끝나버렸다. 신라하대 사회의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회통과 조화의 정신으로 극복하고자 했으나 실패한 후 변방 외직을 자청해 고개 넘어서 외로이 태산에 다다랐다.왕권강화와 나라의 안녕을 위해 온 삶의 열정을 바친 정책은 버려진 풀잎처럼 말라버렸다. 그러나 태산에서 따뜻한 선정을 베풀었다. 정읍에는 최치원이 태수로 재직했던 흔적을 담은 문화경관이 남아있다. 무성서원과 피향정 그리고 유상곡수이다.태산의 옛 이름이 무성이다. 무성서원 입구에는 현가루가 있다. 그 이름은 공자의 제자 자유가 무성고을에서 악기와 노래로 예를 가르쳤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무성서원은 일반적인 서원과는 다른 독특한 구조다. 무성서원은 학문적 기능보다 제향공간으로서의 상징성이 두드러지는 문화경관이다. 최치원은 풍류로 선정을 베풀다가 태산이 견훤의 후백제 땅에 이르니 부성(西山)으로 떠났고 백성들은 그의 사랑을 못 잊어 최치원을 섬기는 생사당을 지었던 것이다.세월이 흘러 정읍에는 최치원에 풍류의 씨가 떨어졌다. 최치원이 뿌린 풍류의 씨앗이 송시열, 송강, 정극인으로 이어지는 가사문학의 맥을 형성한다. 이는 풍류의 연장선인 것이다. 그가 만든 두 개의 연못 사이 피향정 연꽃이 만개해 향기가 고일 때 선비들 모여 앉아 풍류를 논했다. 그 풍류의 씨앗은 가사문학으로 꽃피웠다. 바라건대 그 옛날 최치원 선생이 뿌린 풍류의 씨가 수풀이 되어 정읍과 새만금 땅에 무성하길 바란다.△ 최치원의 판타지 공간정읍과 함께 군산에는 탄생설화가 판타지적으로 유포돼있다.특히 고군산의 해양지역에 최치원에 관한 설화와 유적이 풍부하다. 그 핵심에 군산 옥구가 최치원의 고향이라는 설이 있다. 일반적으로 최치원의 출생지는 경주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대표적인 설이 옥구 내지는 고군산 출생설이다.서유구의 〈교인계원 필경〉의 서문에는 공의 이름은 치원이요, 자는 해부요 고운은 호이니 호남 옥구 사람이다 라고 쓰여있다.고군산군도는 63개의 섬 중 유인도가 16개다. 그 중 최치원과 관련된 명칭이 여러 곳이다.신시도는 고군산도에서 가장 넓은 섬이다. 주봉인 월영산은 가을이 되면 단풍진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최치원이 정상에서 가야금을 타며 글을 읽었는데 그 소리가 중국까지 들렸다고 한다. 월영산에 올라 섬과 섬이 이어지면서 그려낸 비경을 보고 있노라면 스스로 신선이라고 느끼지 못할 사람이 없다. 신시도는 문창현에 속하며 심리, 신치라고도 불리었다.심치는 최치원의 새로운 깨달음이 치솟았다, 심리는 최치원이 바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문창은 최치원이 고려 현종한테 받은 시호다. 옥구향교에는 문창서원이 있어서 최치원을 배향하고 있다.대각산은 최치원이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는 산이다. 정상에 올라 고군산도를 바라보노라면 그 전경이 가히 신선이 노닐던 곳이 맞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대각산과 월영봉 사이에 되내기샘과 그 전설이 있다. 하늘의 은하수가 쏟아져 바다가 되었고, 별들이 내려와 고군산 섬들이 되었다고 한다. 하늘 위 감로수는 땅으로 흘러 되내기샘이 되었는데 밀물 때면 바다에 잠겼다가 썰물 때면 샘물로 솟아나 최치원이 마시고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최치원의 판타지 공간Ⅱ최치원의 금돼지 설화가 있다. 최치원의 아버지가 무장으로 고군산에 온 뒤 그의 부인이 금돼지에게 납치된 것을 구해와 최치원을 낳았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간척으로 이미 육지가 된 내초도에 금돼지굴이 남아있다.고군산도의 최치원 설화를 〈최고운전〉이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신선이 노니는 섬인 선유도는 물론 원래 자천대가 있던 선연리 등의 지명도 최치원을 신선으로 보던 지역민의 생각을 반영한다. 고군산 지역에 각인된 최치원은 홍길동 류의 선도 계통의 영웅이다. 하지만 홍길동이 무사적 영웅이라면 최치원은 문화적 영웅이라는 차이가 있다. 최치원은 바다의 신선으로 그의 탄생 담과 영웅담이 서해를 중심으로 중국 대륙과 한반도를 넘나들며 펼쳐진다.요컨대 전북에는 역사적 사실로서 뿐만 아니라 판타지적인 설화로서 최치원에 관한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가득하다. 지금은 바다의 시대이다. 그 옛날 해민의 꿈을 펼쳤던 최치원의 흔적이 향기로 묻어있는 새만금지역에 최치원의 꿈이 맘껏 펼쳐지길 바란다.문화는 사회 구성원에 의해 공유되는 지식, 신념, 행위의 총체라고 한다. 역사적 진실 차원보다 지역 주민들의 생각의 진실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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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1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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