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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는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 무예이자 대표적인 무술이다. 1960년대 이전에는 단지 심신을 단련하는 무도의 범주에 그쳤다. 태권도가 스포츠로 발전한 건 1961년 9월16일 대한태권도협회가 결성돼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로 등록되면서 부터다. 1973년엔 세계태권도연맹이 결성되고 이해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서울에서 열림으로써 명실상부한 국제스포츠로 발돋움했다.태권도는 우리나라를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시킨 효자다. 북한과 일본의 견제를 뚫고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뒤 메달 밭이 됐다. 1994년 IOC는 태권도를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다. 태권도협회가 창설된 뒤 33년간 태권도 인들이 쏟은 땀과 눈물로 얼룩진 고난과 역경의 개가였다. 이때부터 태권도는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스포츠 강국으로 솟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태권도는 이제 대한민국의 국기(國技)이자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된 글로벌 스포츠가 됐다. 세계태권도연맹에 가입된 태권도 회원국은 189개 국에 이르고 회원 수만 해도 7000만 명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태권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가 됐다.그제(4일)가 '태권도의 날'이었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세계태권도연맹(WTF)이 2006년 총회에서 9월 4일을 '태권도의 날'로 지정한 것이다.이 날을 전후해 기념식과 문화 축제 등 여러 행사들이 펼쳐졌지만 정작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지속될 것인지, 그러기 위해선 어떤 노력들이 뒤따라야 하는지 등에 대해선 고민이 없다. 올림픽 종목에서 끌어내리려는 움직임을 주시해야 한다. 또 태권도 메카로 조성되는 무주 태권도공원 성지화 작업 역시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지도 관심 밖이다.2009년 태권도의 날에 기공식을 가진 태권도공원(231만 4000㎡) 사업은 공정률이 15% 안팎이다. 2017년 완공 예정인 6000억 짜리 공사에 지금까지 투자된 예산은 817억 원에 불과하다. 내년 예산도 기대난망이다. 이런 걸 보면 출범 첫해에 이미 '태권도 명품화'를 선언한 정부 답지 못하다.태권도 순례와 수련의 장으로 조성함으로써 태권도 종주국의 위상을 높이고 대한민국 대표 문화브랜드이자 세계적 관광자원으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취지가 무색하다. / 이경재 논설위원
정몽구 현대 자동차 그룹 회장이 개인 보유의 5000억원 상당의 현대 글로비스 주식을 해비치 사회공헌문화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밝힌 바있다. 이렇게 많은 금액을 기부 할 때는 본인의 상당한 결심도 필요했을 것이다.우리는 흔히 존경받는 부자로 경주 최부잣집을 예로 든다. 경주 최부잣집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家訓)이 있는데 '벼슬을 하되 진사이상의 벼슬을 하지마라. 재산을 모으되 만석 이상을 지니지마라. 지나는 과객(過客)을 후하게 대접하라. 사방 백리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흉년에는 땅을 사지마라' 등이다.경주 최부잣집이 존경의 대상으로 부상되었던 것은 역으로 조선사회의 부자들이 상대적으로 백성들에게 무척 인색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 사회의 관리들은 수탈이나 세금포탈을 통해서 대부분 재산을 모았던 것이다. 이런 풍토에서 부자들의 기부행위는 드물었을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도 심심찮게 독지가들의 기부행위가 미담이 되고 있다.한국과 마국의 기부문화에도 차이가 있다. 한국은 아직도 청산형 단순 기부가 많다고 한다. 언론을 통해서 가끔 볼 수 있는 것은 한평생 삯바느질을 하며 혼자 산 할머니가 못배운 것이 한이 되어 죽기전에 자기 재산 전체를 대학에 장학금으로 기부하는 식이다. 미국은 기부행위가 생활화 되어 일상적으로 조금씩이나마 기부를 한다.1980년도 미국 NGO 협의체인 인디펜던트 섹터가 미국인의 기부에 대해서 조사를 한 바 있는데 미국인의 약 13%가 자기 수입의 5%를 사회단체에 기부하고 있다는 것이며 14%는 일주일에 5시간 이상 자원봉사를 한다는 것이다. 중산층과 중하층 사람들의 기부총액이 상류 부유층의 기부총액보다 많다고 한다. 미국 가정의 70%가 매년 1000달러, 한화로 약 130만원 정도를 사회단체에 기부한다고 한다.2000년 아름다운 재단이 한국인의 기부와 자원봉사에 대해서 여론조사를 한 바 있는데 우리나라 성인들은 연 평균 10만원을 사회에 기부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국인과 미국인들을 비교하면 기부활동에 있어서는 미국인의 6분의 1수준이라고 한다. 한국인은 그만큼 미국인보다 이기적이고 타인의 삶에 관심이 적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장세균 논설위원
20여 년전 두차례에 걸쳐 일본 가고시마현(鹿兒島縣) 미야마(美山)를 방문한 적이 있다. 사쓰마 도자기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14대 심수관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의 선조는 정유재란 당시인 1598년 남원성에서 다른 도공(陶工)들과 함께 이곳으로 끌려 와 정착했던 것이다.'사쓰마야끼가(薩摩燒家) 14대(代) 심수관(沈壽官)'이란 문패가 붙어있는 대문을 지나 들어간 그의 집은 고풍(古風)이 감돌았다. 집 안팎이 왕대나무로 덮여 있고 도자기를 굽는 가마들이 가지런히 엎드려 있었다.작업복 차림으로 우리 일행을 맞은 그는 차를 마시며 여러 얘기를 나눈 후 이 집의 보물인 수장고(收藏庫)로 안내했다. 2층으로 된 수장고에는 초대부터 14대에 이르는 갖가지 작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초대에서 9대까지의 작품은 소박해 보였다. 특히 초대 심당길의 작품인 찻잔은 흙과 유약을 조선에서 가져왔고 불과 물만 일본에서 조달한 것이어서 의미가 각별했다. 이후의 작품은 그림과 색채가 화려했다.사쓰마 도자기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2대 심수관이 1873년 오스트리아 만국박람회에 출품하면서 부터. 이 박람회에서 유럽인들은 사쓰마 도자기의 정교하고 뛰어난 예술성에 감탄했다. 당시 출품했던 높이 1m 55㎝의 대화병은 일본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어 1902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도 최고상인 금상을 받았다.또 인상 깊었던 것은 당시 끌려왔던 우리 조상들이 배웠다는 한글교본이었다. 그는 한어훈몽(韓語訓蒙) 교린수지(交隣須知) 숙향전 표민대화(漂民對話) 등을 들고 와 직접 설명해 주었다.이후 그는 한국명예총영사에 임명되었다. 1998년에는 납치 400년을 기념해 400년제(祭)를 가졌다. 역대 작품을 모아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고 남원에서 불씨를 채화해 일본으로 가져가는 이벤트로 큰 관심을 모았다.심수관 가문의 고난과 영광은 한일 양국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한국인 핏줄이 만들고 일본인이 키워 온 예술혼은 앞으로 양국이 나아갈 방향까지도 제시해 주고 있다.마침 부안 대명리조트에서 제13회 한·중·일 지방정부 교류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가고시마현 이토 유치히로(伊藤祐一郞) 지사가 참석해 400여 년 전의 일을 언급하며 교류 활성화를 강조했다. 새삼 한·일은 가깝고도 먼 나라임이 느껴졌다./ 조상진 논설위원
사회에서 남자의 영향력은 점차 축소되어 가고 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의 남자의 역할은 여성에 비해 절대적이었다. 농경사회가 가장 필요로 한 것은 노동력이었다. 신체적으로 남자의 우월한 힘은 노동력의 원천이었다. 청동기 시대를 지나 인간이 철(鐵)을 다루었던 철기시대부터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전쟁의 주체는 바로 남자였다.어느 사회에서나 전쟁의 주체에게는 사회적 발언권이 주어졌다. 고대 그리스에서의 민주주의 발달 원인 중 하나도 군대 조직이 말을 주로 사용하는 기갑부대에서 일반 평민도 참가할 수 있는 보병제도로 전환됨으로써 평민의 발언권이 강화되었던 것이다.세계 미래회의 2008년 행사에서 에어미 블란드라는 미래학자는 '남자의 미래, 남자의 역할'이라는 주제발표에서 남자의 역할이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남자의 염색체 중에 Y염색체가 작아지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진화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일어나고 있다.사회변화를 보더라도 남성과 여성의 일자리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 미국의 프로 레슬링 경기에서도 남자 선수 못지않는 레슬링 기술을 여자 선수들이 보여주고 있다. 여자가 하던 요리나 육아를 남자들도 즐겨 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성의 여성화, 여성의 남성화가 활발히 진행중이다.젊은층 남자들의 귀고리 현상이 보편화 되어가고 있다. 남성의 성징(性徵)인 턱수염이나 구레나룻을 젊은층 남자들의 열굴에서 찾기가 힘들 정도이다. 서양에서는 지난 13년간, 금요일 5시에 나가서 월요일까지 스포츠를 즐기는 남자들이 많았는데 지금도 이런 식으로 여가를 즐겼다가는 이혼당하기 십상이다.과거의 전통적인 이상적 남자상은 여자를 보호하고 건장하고 튼튼한 체격을 가졌으며 용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남자는 돈을 벌어와서 집안 경제를 꾸려야 했으며 강력한 성적 매력을 발산하며 공격자·지배자 같은 면모를 가져야 하며 지식도 풍부해야 하고 아울러 주위를 지배하며 화합을 도모할 줄 아는 남자였다. 그러나 서비스 산업, 디자이너 등 많은 분야는 남성의 힘을 필요치 않는다. 전통적인 남성상은 이제 빛바랜 사진이 되어가고 있다./ 장세균 논설위원
광주 전남 사람들은 단합이 잘 된다.지역에 큰 일이 생기면 유지들이 앞장서서 힘 모아 해결한다.지역발전을 위해 중앙 정치권에 로비가 필요하면 업체들이 로비자금을 마련해서 적극 나선다.중앙서도 광주나 전남에서 왔다면 일단 관심을 갖는다.그들은 비판적이면서 적극적이기 때문이다.서울서도 호남향우회하면 단합 잘되는 조직으로 손꼽는다.여기서 호남향우회는 광주 전남 특히 고흥군 향우회를 지칭한다.우리 전북은 어떤가.힘들게 살아서인지 잘 뭉쳐지질 않는다.어른도 없고 기업하는 사람들이 나서는 것도 별로 없다.뒤통수 치는 사람만 많다.앞에 나서면 잘난체한다고 총질하고 나서야할 때 또 안 나서면 안나선다고 돌 팔매질 한다.이런 분위기라 처세하며 살기가 어렵다.대신 진정 투서가 많다.불신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산업화가 미진해 지역이 너무 느슨하기 때문이다.그간 도내 정치권을 보면 꼴불견이다.민주당이 20여년간 일당 독주를 하며 잘 해먹은 탓이 크다.지역에서 완장차고 세도깨나 부렸다.윤흥길의 소설 '완장'에 나오는 종술이 마냥 기세등등 했다.지방의원만 되면 무슨 큰 벼슬이라도 한양 목에다 힘주고 다닌다.눈꼴 사나워 못볼 지경이다.주민들이 손가락질 하는 줄도 모르고 폼만 잡는다.집행부 직원들을 마치 종 다루듯이 한다.심지어 도의원들이 국장 한테 재털이 심부름까지 시켰지 않았던가.이 같은 원인은 지역에 어른들이 없고 국회의원들이 잘 못하기 때문이다.사실 LH때 전북의 치부가 까발려졌다.전술과 전략부재가 통째로 드러났다.여당 대통령후보까지 지낸 국회의원이 청와대 담벼락 밑에 가서 데모를 했으니까 말이다.어른스럽지 못했다.남들이 보면 깔깔댈 이야기다.한편의 코미디였다.정치권도 내년 총선 때문에 얼쩔 수 없이 면피하러 따라 다녔다.지금 전남은 박지원의원을 민주당 대표로 만들기 위해 똘돌 뭉쳤다.박주선의원도 나섰지만 박지원의원을 더 염두에 두고 있다.전북 같으면 어떻게 할까.정동영·정세균최고위원부터 마이웨이다.외연 확대를 통한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 각개약진할 수 있지만 꼭 좋게만은 안 보인다.지난 전주 국회의원 보궐선거때 공천을 놓고 두 최고간에 루비콘 강을 건넜기 때문이다.내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두 최고가 앙금을 풀고 빨리 손잡아야 전북 정치권이 살 수 있다./ 백성일주필
"의원들 몫의 주민숙원사업 예산을 아예 한푼도 편성하지 않았더니 의원들이 난리가 났다. 안달이 난 의원들이 '예산심의 때 두고 보자'는 등 별의별 궁리를 다했다. 그래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예결위원장이 찾아와 의원들의 예산을 세워 달라고 하소연하더라."어느 자치단체의 군수가 털어놓은 에피소드다. "의원 몫의 예산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정도도 아닐 뿐더러 군민을 속이는 짓이기 때문"이라는 게 당시 군수의 생각이었다.한 해 살림의 칼자루를 쥔 예결위원장의 요구를 집행부가 무시한 것도 놀랍지만, 예산심의 책임자가 체면을 구기면서까지 군수를 찾아가 자신들의 몫을 배려해 달라고 하소연한 것 역시 놀라운 일이다.의원들이 예결위원장을 군수한테 보내 자신들 몫의 주민숙원사업비를 편성해 달라고 '간청'하는 촌극이 벌어졌다면 의원들한테는 그만큼 요긴했을 것이다. 도대체 소규모 주민숙원사업 예산이 뭐길래?소규모 주민숙원사업은 마을 안길 포장이나 하수구 정비, 도로개설 및 확포장, 선착장 조성, 저장시설,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신축 등 규모가 작은 사업을 이른다. 주민 민원성 사업도 있고 선심성 사업도 있다.이런 사업들은 대개 단체장이 포괄적으로 활용하는 재량사업비에서 집행된다. 그래서 단체장 호주머니 돈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돈 일부를 의원들이 자기 몫으로 돌려 쓰겠다는 것이다. 예산심의권을 무기로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전북도는 도의원 몫으로 개인당 연간 4억 원씩 책정해 놓고 있다. 의회 부활 초기엔 5000만원이었던 것이 이처럼 불어났다. 전북교육청도 도의원 몫으로 개인당 1억 원씩 배정했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시군의회도 마찬가지다. 의회의 예산심의권에 대한 댓가성이다.이 예산이 문제가 되는 건 생색내기용, 선거운동용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 수의 계약인 데다 시공업체는 해당 의원한테 리베이트를 건네는 경우도 있어 비리 개연성도 있다.최근 도의회가 의원 몫의 주민숙원사업을 풀예산 대신 개별사업에 넣겠다고 했다. 그래도 '의원 몫'이라는 건 살아있다. 눈가리고 아옹하는 격이다. 핵심은 '의원 몫'을 없애는 건데 이걸 실행하지 못하니 안타깝다. 그러고도 집행부한테는 예산편성의 잘못을 따지며 떳떳하게 행동한다./ 이경재 논설위원
노동자들이 데모를 할 때는 으레 머리띠를 묶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노동자 역시도 데모때 머리띠를 두르는 것은 한국과 비슷하다. 또 머리띠에는 여러가지 구호나 요구 조건이 쓰여져 있다. 머리띠를 두르는 데에는 몇가지 심리적 이유가 있다고 한다.첫째는 긴장의 표시로 머리띠를 두른다는 것이다. 머리를 묶으면 뇌신경을 자극하여 주의력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흔히 수도하는 사람들이 머리띠를 두르는 것도 똑같은 이치일 것이다. 둘째는 결의나 의지의 표시로 머리띠를 두르는 것이다. 셋째는 서로가 뜻을 같이하여 죽음과 삶을 같이하는다는 동심(同心)과 결심(決心)의 뜻이 머리띠에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옛날에 의적(義賊)이나 화적(火賊)의 일당이 흑두건(黑頭巾)이나 백두건(白頭巾)으로 머리띠를 똑같이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동학혁명때 동학군(東學軍)도 고깔형 머리수건을 씀으로써 합심(合心)을 나타내기도 했다. 넷째는 나쁜 사귀(邪鬼)를 막는 예방수단으로 머리띠를 둘렀다고 한다.옛날에 신성한 제사음식을 만들때 부엌에서 일하는 주부들은 머리에 띠를 두르고 일을 했다고 한다. 일본의 생선 횟집에 가보면 주방장이 왼쪽으로 꼰 머리띠를 두르고 작업을 하는데 이것도 병마(病魔)가 침입을 못하게 하기 위한 전통이라고 한다. 이런 머리띠를 노동쟁의나 데모에 도입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라고도 한다.중국 역사책 '후한서(後漢書)'에 보면 진(秦)나라의 무신(武臣)들이 머리띠를 두른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뒤에 와서 문신(文臣)들도 머리띠를 둘렀다는데 무신과 구별하기 위해 머리띠 길이에 차이를 두었다는 것이다. 또, 고구려 벽화에도 남자들은 머리띠를 두르고 새의 깃털 두 개를 꽂은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일본의 병서(兵書)인 '고충군진개서(高忠軍陣開書)'에는 일본 사무라이들의 머리띠에 대해서 상세하게 나온다는데 색깔별로 하얀색, 검은색, 파란색, 붉은색, 그리고 머리띠의 길이와 폭, 매듭, 좌우 어느 쪽에 매는가에 대해서도 100가지가 있다고 하며 이로써 사무라이의 신분과 계급, 심지어 출신지방, 병과(兵科)까지도 구분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데모때 두르는 머리띠는 일본식과 비슷하다고 한다./ 장세균 논설위원
고추는 오래 전부터 한국인의 식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우리의 대표 음식인 김치를 담는데 반드시 들어가야 하고, 요즘 널리 애용되는 떡볶이나 각종 찌개의 맛을 내는데도 필수품이다.또한 민간에서는 간장을 담근 뒤 장독속에 붉은 고추를 집어 넣었고, 아들을 낳으면 새끼줄에 붉은 고추와 숯을 걸어 악귀를 쫓았다.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열대에서 온대에 걸쳐 널리 재배되며, 한해살이인 우리나라와 달리 열대지방에서는 여러해살이 풀이다.고추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 확실치 않으나 임진왜란 후쯤으로 추정된다. 고추에 관한 최초 기록인 '지봉유설'(1614년 편찬)에는 "만초(蠻椒)는 일본을 거쳐 온 것으로 '왜겨자'라고 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다른 문헌에는 중국에서 전래됐다고도 하고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 갔다는 문헌도 있다. 또 조선시대 어의 이시필(1657년∼1724년)의 '소문사설'에는 순창고추장의 제조법이 최초로 기록돼 있다.고추는 만초(蠻椒) 이외에도 남만초(南蠻椒), 번초(蕃椒), 왜초(倭椒), 랄가(辣茄), 당초(唐椒), 고초(苦椒) 등으로 불렸다.고추의 특징은 매운 맛인데 이는 캡사이신이라는 염기 성분 때문이다. 최근 매운 맛에 익숙치 않은 일본 여성들 사이에서도 다이어트 효과가 알려지면서 인기 폭발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황산화(세포 노화방지), 항균, 진통, 스트레스 억제, 면역 증강, 가려움증 치료효과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매운 맛인 캡사이신이 암 발생을 촉진한다는 상반된 연구도 있다.요즘 고추값이 심상치 않다. 여름 폭우와 태풍 무이파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고추가 썩고, 병들고, 절로 떨어져 수확량이 신통치 않아서다.'금초'라 불릴 정도다.지난 해 600g 1근에 6000원이면 살 수 있었으나 올해는 1만5000원을 넘어 2만 원에 육박한다. 그래서 고추장을 만드는 순창지역 장류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현재 순창전통고추장의 판매가는 1만8000원으로 이 중 고추성분이 1/3을 차지한다. 이를 원가로 환산하면 6000원 정도여서 고추장값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하소연이다.그러나 정부는 고추값이 들먹이자 9월초께 값싼 중국산 고추를 대량방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래저래 농민들만 힘들어지게 생겼다./ 조상진 논설위원
지난 23일 이명박 대통령은 중앙아시아 순방의 두번째 방문국인 우즈베키스탄에서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4억 6000만달러, 한화로 약 4조 5000억원 규모의 자원 개발에 합의했다고 한다. 수르길 가스전 개발과 가스 화학 플랜트 건설에 합의한것이다.우리나라의 지명을 보면 온(溫)자가 붙은곳에는 대부분 온천수가 났다고 한다. 예를 든다면 온양(溫陽)과 금강산 온정리(溫井里)라든가 강화 길상면, 온수리(溫水里)에서도 따뜻한 온천수가 나왔던 것이다. 울진의 온정(溫井), 당진의 온동지(溫洞池)등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옛문헌에 의하면 탈나무도 또 풀섶도 없는 맨땅에서 몇달씩 연기를 품어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든다면 신라 진평왕(眞平王) 31년, 정월에 경주 동해안쪽에 있는 모지악(毛只岳)에서 폭 4보, 길이 8보, 깊이 5척의 별반 크지 않는 구덩이에서 불이 타기 시작하더니 비바람에 관계없이 연중 계속 타오르다가 10월에야 불길이 멎었다고 한다. 신라 태종때도 경주 토함산 기슭에서 3년간이나 땅이 탔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경주의 동해안 일대인 포항, 울산, 울진 바다가까이 있는 땅이 불탄 기록이 빈번하게 나온다고 한다. 세종때 영해부(寧海府)에서 땅이 탔다는 기록과 더불어 성종(成宗) 14년에도 영해땅의 한 구덩이에서 밤과 낮으로 불이 뿜어졌다는 사실이 상세히 실록에 남아있다고 한다. 그 불구덩이의 길이가 8척이고 폭이 20척인데 낮에는 연기만 나고 밤에는 불빛이 보였다고도 한다.조정에서는 내관(內官), 이효지(李孝智)를 보내 답사케했는데 그 불구덩이 둘레 수백보가 마치 온돌방처럼 달구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주의를 끄는것은 바다 가운데서도 불이 타올랐다는것이다. 경주 토함산 맞바레기, 문무왕이 호국룡(胡國龍)이 되어 묻혔다는 수중릉(水中陵)인 대왕암(大王癌)이 인조 15년에 불타올라 바위가 부서졌다고 한다.여기서 주목을 끄는것은 땅이나 바위가 탔다는 지점이 거의 포항, 울산, 경주 앞바다인 대륙붕 제6광구에 몰려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발견돤것은 천연가스로 보는것이 타당할것이다. 앞으로도 지명(地名)에 유의할 필요가 있을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바람 끝이 달라졌다.제법 아침 저녁으로 서늘하다.불을 넣고 홑이불이라도 덮어야 잠 잘 수 있다.어제가 가을로 깃드는 처서였다.'처서가 지나면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는 속담이 있다.결실로 접어 드는 때라 비가 오면 흉작이 들기 때문이다.지난 여름은 여름이 실종되다시피 많은 비가 내렸다.정읍에 기록적인 420㎜의 폭우가 쏟아져 물난리를 겪었다.처서가 지나면 햇볕이 따갑다.그래야 곡식이 영글고 고추도 말리고 옷도 말리고 책도 말릴 수 있다.농가월령가에서는 "장마를 겪었으니 집안을 돌아보아 곡식도 거풍(擧風)하고 의복도 포쇄(曝灑)하소"라고 권하고 있다.포쇄는 바람에 쐐고 햇볕에 말린다는 뜻이다.한자 '처(處)'는 머물러 정지한다는 뜻이어서 곧 더위가 머무는 때가 처서다.농가월령가 7월령에도 '늦더위 있다한들 절서(節序)야 속일쏘냐'하며 풀죽은 염(炎)장군을 조롱했다.지구온난화로 기후 변동이 심해 처서가 지나도 국지성 호우와 무더위가 계속될 것이란 예보가 있다.워낙 비가 많이 내려 기청제(祈晴祭)까지 지내야 할 것 아니냐는 여론도 있었다.하늘이 구멍 뚫린 것처럼 비가 끊이지 않고 자주 내려 따가운 햇볕이 그렇게도 그리웠다.햇볕은 생명이다.햇볕이 이렇게 귀한줄 미처 몰랐다.지금부터의 햇볕은 다른 때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주여,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마지막 과실을 익게 하시고/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그들을 완성시켜,마지막 단맛이/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이하 생략.실로 지난 여름은 고통스러웠다.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로 서민들의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장사하는 사람들도 장사가 안돼 죽을 맛이었다.김현승(金顯承)시인의 가을의 기도가 생각난다.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이하 생략.지난 여름 비 맞아 지쳐버린 맘들을 이 가을 에 포쇄해서 비워 놓으면 어떨까.백성일주필/ 백성일 주필
문화 유적의 보고로 유명한 이집트나 이탈리아, 그리이스 같은 나라들을 방문하면 조상 덕에 먹고 사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소비하는 돈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또 관청에 등록된 자국의 관광안내인을 동반하지 않으면 입장이 불가능하도록 제도화시킴으로써 일자리와 소득창출 효과를 거두고 있다.중국도 죽은 사람이 산 사람 먹여 살리는 나라에 속한다. 5000년 역사 문화유적의 도시 시안(西安)엔 진시황 능과 진시황의 가상 지하궁전인 '진능지궁(秦陵地宮)', 진시황 능에서 1.5㎞ 떨어진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이 있다. 1974년 농부가 우물을 파다 발견한 병마용 박물관에는 하루 3만명, 피크 때에는 5만명이 찾는다. 입장료도 3만원이나 된다. 훗날 진시황 능을 발굴하면 이 곳을 찾을 관광객도 부지기 수에 이를 것이다. 시안은 경주와 자매결연을, 시안의 한 중학교는 전주 완산중학교와 홈스테이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중국의 관광지 입장료는 비싼 편이다. 관광 가용경비가 100원이라고 할 때 우리나라는 입장료가 10∼20원 꼴인데 비해 중국은 80∼90원이다. 상대적으로 소비 여력이 줄어드니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도 미약하다. 이러니 불만이 많을 수 밖에 없다.경기전(慶基殿)과 조경묘(肇慶廟), 조경단(肇慶壇)이 있는 전주는 조선 왕조의 발상지라는 자긍심이 있는 곳이다. 경기전(사적 제339호)은 태조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1410년(태종 10년)에 창건했다가 불에 탄 뒤 1614년(광해군 6년)에 중건됐다. 면적이 49,590㎡에 이른다.경기전에 있는 조경묘(지방유형문화재 16호)는 전주이씨 시조인 이한(李翰) 부부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고, 전주 덕진 건지산에 있는 조경단(지방기념물 3호)은 전주 이씨의 시조 묘소다.전주시가 한옥마을의 대표적 문화재인 경기전 관람을 내년부터 유료화할 모양이다. 성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전주시민은 50% 할인)을 검토하고 있다. 관람료의 적고 많음이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영향이 문제다. 지역 상권에 미칠 파장도 있다.돈 주고 관람할 만한 게 있느냐는 논쟁은 접고서라도 관광객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얄팍한 정책일 수 있다. 볼거리를 제공한다고는 하지만 한옥마을 관광객의 지갑을 노리는 것 같아 얄밉다./ 이경재 논설위원
교육에는 인성교육과 전문 지식교육으로 크게 나눌수 있다.그러나 이제 학교에서의 인성 교육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사실 학무모들이 이를원치도 않는다. 과거, 못살던 시절에는 점심 도시락을 못가지고 온 동료 학생이 있으면 같은반 학생들이 자기 도시락의 일부를 덜어서 나누어 주었던 인정도 있었다.이것이 약자를 위한 정의감이다.그러나 지금은 가난한 학생을 반 교실에서부터 왕따를 시키는것이다. 학원강사는 시험문제풀이 기술자들이고 EBS방송은 시험문제 정답찾기 공중파이다. 심리학자, 프로이드에 의하면 아이들은 아버지한테서는 이성(理性)과 절제를 배우고 어머니한테서는 감성(感性)을 배움으로써 하나의 균형잡힌 인격체가 될수있다고 했다.그러나 지금은 아버지란 존재는 희미하고 엄마들의 위세가 당당하다.지나친 모성애(母性愛)가 자식에 대한 잘못된 과잉보호로 갈수가 있다.이땅의 엄마들의 과잉보호는 초등학교 조기유학을 낳았고, 심지어 대학 입시에 고교 내신 성적중, 봉사활동 성적이 좋아야한다고 하니까 자기 자녀는 학원에 보내놓고 어머니가 자녀대신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도 있다는것이다엄마들의 지나친 과잉보호는 자녀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거친 언어사용을 낳게 하고도 있다. 어느 고등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펴면서 어느 학생이 말하길 "어떤 년이 이렇게 도시락을 쌓지?"라고 했다는데 이때 "어떤 년"은 자기 어머니를 빗대어 말한것이다. 요즈음 엄마들의 과잉보호의 저의를 본능적으로 자녀들도 잘 알고 있으며 오히려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고 있다.암사자는 자식을 훈련시킬때 자기 체구보다 작은 짐승을 추격하면 어미 사자가 뒤따라가 뒷발질로 낚아채 공중회전을 시켜버린다고 한다. 치사스럽게 굴지 말라는것이다. 그후 먹이를 못잡아 굶더라도 어미사자는 먹이를 나누어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절제된 모정(母情)을 보여주는것이다.바로 사자의 교육법이다. 83년도에 대구 동물원에서 5년된 암사자가 자기를 잘 길러준 사육사를 물어죽인일은 과잉보호속에서 자란 아이가 가정폭력으로 부모에게 대드는 이치와도 비슷한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14~16세기 일본은 센고쿠(戰國)시대로, 막부(幕府)가 실권을 잃고 각 지방으로 분열된 시기였다. 일본 연안일대의 생활이 궁핍한 중소 무사나 농어민들은 해적이 되었다. 이들이 왜구(倭寇)로, 한반도와 중국 대륙의 연안에서 주로 식량을 약탈했다.한반도에서의 활동시기는 고려 말에서 조선 전기가 심했다. 이들은 선단을 이루어 연안마을을 습격했고 때론 내륙 깊숙이 쳐들어 오기도 했다. 그 중 고려 말 우왕 때가 가장 극심했다. 우왕 재위 14년간 침략 횟수는 무려 378회에 이르렀다. 제집 안방 드나들듯 하며 노략질을 일삼았던 것이다.그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침략이 진포(鎭浦)해전이다. 이들은 우왕 6년(1380년), 지금의 군산과 서천 사이 금강일대에 500척의 배를 몰고 나타났다. 이들은 배를 밧줄로 엮어 병사들이 나누어 지키는 한편 육지로 올라가 약탈을 자행했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이때 "백성들의 시체가 산과 들을 덮고 노략질한 곡식을 배에 실어 나르다가 땅에 버려진 쌀이 한 척(尺)이 넘었다"고 한다.다행이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火砲) 덕분에 적선은 한꺼번에 불타버렸다. 왜구들 역시 태반이 타 죽거나 물에 빠져 죽었다. 살아남은 일부가 옥천으로 달아나 먼저 상륙한 왜구들과 합류했다. 다시 전열을 정비, 상주를 거쳐 함양에 집결, 남원까지 방화와 약탈을 일삼았다.이에 조정에서는 지리산과 해주 방면에서 용맹을 떨친 이성계를 양광·전라·경상 삼도도순찰사(三道都巡察使)에 임명, 왜구 토벌작전에 나섰다. 양측은 운봉 넘어 황산 서북쪽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격전 끝에 아지발도(阿只拔都)를 두목으로 한 왜구를 물리쳤다.처음에는 왜구의 수가 고려군보다 10배가 많았으나 겨우 70여 명만 살아 남아 지리산으로 도망갔고 포획한 말이 1600여 필에 달했다. 이것이 황산대첩이다. 이성계는 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주 오목대에 들러 종친들에게 연회를 베풀고 조선 창업의 뜻을 밝혔다.이곳 운봉읍 화수리에는 1577년 황산대첩비가 세워졌다. 청일전쟁 때 일본이 이를 파괴했으나 정부가 1977년 새로 복원(사적 104호)했다.이를 기려 운봉애향회가 1986년부터 황산대첩축제를 벌이고 있다. 광복절에 열리는 이 축제는 당시 전쟁을 현장감있게 재현, 일본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조상진 논설위원
독도는 구호나 행사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 친한파(親韓派,) 일본 교수는 독도문제에 대해 한국이 전가보도(傳家寶刀)처럼 사용하는 '실효적 지배'라는 단어를 쓰지말도록 충고한 바도 있다. '실효적 지배'라는 단어를 빼고 당당하게 독도는 한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라는 것이다.갑작스런 정치인의 독도 방문도 독도 해법에 별 도움이 되지않는다. 이번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재미교포 박사 한 분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군국주의 부활로 규정하고 전세계가 합심하여 일본의 야욕을 저지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그 서한속에는 '독도문제를 이해하려면 먼저 한국을 정복하는 것이 아시아를 정복하는 것이며 아시아의 정복이 러시아의 정복의 길이고 러시아의 정복이 미국을 정복하는 것이라는 게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정한론(征韓論)이다'라는 주장이 실렸다는 것이다.일본은 전통적으로 국내 문제의 해법을 외국 침략으로부터 찾았다. 백년간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에게 오랫동안 충성을 바친 수많은 무사들에 대한 토지분급 문제였다. 분급해 줄 토지가 절대 부족하자 이것을 해결키 위해 조선 침략을 서둘렀던 것이다.아시아의 종주국, 중국이 19세기 초에 영국과의 아편 전쟁에서 참패를 당했다. 중국의 참패는 그 당시 일본 막부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후 일본은 미국 동인도 함대 사령관 페리 제독의 무력시위 이후, 처음으로 미국과 '미일 화친조약'을 맺은후 산업화된 서방의 개방 압력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당시 일본의 한국침략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사람이 일본 국학자 길전송음(吉田松陰), 일본말로는 요시다 쇼닌이다.요시다 쇼닌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안중근 의사의 총탄에 숨을 거둔 '이토오 히로부미'다. 요시다 쇼닌은 그의 외정론(外征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북(東北)블럭은 지맥(支脈)이 접속해서 통합할 수 있다. 삼한(三韓), 임나(任那) 등은 지맥이 접속되어 있지 않다하더라도 형세가 대치하고 있으며 우리가 가지 않으면 그들이 올 것이다. 우리가 공격하지 않으면 그들이 와서 예측할 수 없는 걱정을 야기할 것이다." 정한론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전북에서 여당인 공화당 표가 많이 나왔다. 박정권 시절에는 여촌야도(與村野都)현상이 팽배했다. 그러나 노태우와 3김이 대통령선거에서 세대결을 벌이면서부터 지역감정이 악화돼 경상도에서는 민주당이 전라도에서는 한나라당 표가 나오지 않았다. 이 같은 현상은 20여년이 지나면서 고착됐다. 지난 2007년 대선 때도 이명박 후보가 전북에서 한 자릿수 밖에 표를 얻지 못했다.그간 역대 대통령선거는 물론 총선서도 지역감정 선거가 실시돼 특정당이 독식하는 싹쓸이 구도가 만들어졌다. 평화민주당 시절부터 호남에서는 누구나 공천만 받으면 국회의원에 당선 되는 것은 떼논 당상이었다. 영남에서도 비슷했다. 지난해 치러진 지방선거 때도 똑같았다. 다만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한나라당으로 지사 선거에 출마해 18.2%라는 기록을 세웠다.그 때 그가 두 자릿수 득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 일당 독주 체제에 대한 반감과 남성고 동문들의 헌신적인 선거운동, 그리고 장관 했다는 경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표를 얻었다. 하지만 지금껏 큰 틀에서 보면 구조적으로 전북에서 한나라당 표가 나올 수 없다. 지역주의를 깔고 선거가 치러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으로 출마할 사람 조차 없다. 어찌보면 당연하다.그간 소신을 갖고 전북에서 한나라당을 해온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면면을 살펴보면 그 사람들 보고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유·불리를 떠나 도내에서 한나라당은 중요하다. 집권 여당인 만큼 전북 발전을 위해 중앙과의 통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로 구실을 할 마땅한 인물이 없어 보인다. 중앙당에서 워낙 버린 자식으로 취급해와 괜찮은 인물들이 한나라당에 없기 때문이다.정치발전을 위해 지금 같은 정치구도는 깨야 한다. 국민통합을 위해서도 그렇다. 그렇다면 한나라 중앙당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한나라당 표가 전북에서 안 나왔다고 무작정 포기하지 말고 새롭게 인재를 구해서 판을 짜야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박근혜 전 대표의 지적을 받고 홍준표 대표가 마지못해 최고위원을 호남으로 배정하는 식처럼 가면 안된다. 중앙당은 경선 규칙을 만들기에 앞서 도당위원장에 뜻을 둔 3~4명이 과연 지역에서 신망을 얻는 사람인지부터 가려야 할 것이다./ 백성일 주필
한국 사람들이 즐겨 찾는 중국 관광지는 대략 10여곳쯤 된다. 북경 상해 항주 소주 서안 청도 대련 만리장성 계림 황산 해난도 백두산 등이 그런 곳들이다. 최근엔 사천성의 구체구와 황룡이란 관광지가 '뜨고' 있다.구체구는 해발 3000m가 넘는 산상 7.5Km의 계곡에 폭포와 수정처럼 맑은 크고 작은 호수가 이어진 원시비경 지역이다. 티베트족 9개 마을이 있다 해서 구체구(Nine-Village Valleys)다. 황룡은 3400여개의 에머랄드 빛 석회암 연못의 비경을 자랑한다. 과장되긴 했지만 이승의 선경, '동화속 세계'로 불린다. 유네스코가 1992년 세계자연유산으로, 1997년에는 세계생물권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굳이 두 관광지를 꺼낸 건 놀라운 관광객 숫자 때문이다. 구체구를 찾는 관광객이 하루 3만명에 이른다. 입장료도 1인당 6만원이니 적은 액수는 아니다. 이 곳에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한 건 중국인들의 경우 5년 전, 한국인들은 3년 쯤 전부터라고 한다. 중국의 유명 관광지마다 이런 규모로 관광객들이 북적거린다. 경제적 효과를 헤아리면 그들이 부럽다.중국의 관광소비와 구매력은 왕성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을 주목하는 것도 그들의 관광소비와 구매력 때문이다. 13억 인구의 상위 5%인 6500만 명의 소비력은 상상 이상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부자들보다 더 잘사는 사람들이다.에어버스사의 A-380은 '하늘을 나는 5성급 호텔'이라는 별칭이 붙은 최신형 비행기다. 한번에 550명의 승객을 태우고 날 수 있다. 이 비행기의 아시아 첫 비행지가 바로 중국이었다. 중국 구매력의 힘을 보여주는 상징이다.단적인 사례 하나.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중국 관광객 16명이 쇼핑한 액수는 4억6000만 원 어치였다. 루비 화장품 홍삼 등이 주류였고 허름한 옷차림의 한 70대 노인은 부인이 롤렉스시계를 만지작거리자 선물하겠다며 스스럼 없이 카드로 결재했다. 이들을 데리고 온 조선족 안내원이 귀뜸한 내용이다.전북의 '새만금 관광'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대규모 중국 관광객 유치 프로젝트인 중국특화벨트사업도 그 일환이다. 컨셉은 좋지만 중국이 만만한 곳은 아니다. 그들의 부(富)와 구매력을 활용할 인프라, 그것이 문제다. 우리가 아닌 그들 눈높이의 인프라 구축이 과제다. / 이경재 논설위원
축구 시합도중에 갑자기 운동장에 뛰어들어 난동을 부려 경기를 방해하는 훌리건들이 있었는데 특히, 영국에서 이런 현상이 심했다.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의 이미지와 흘리건의 난동은 모순의 극치였다. 이번 영국의 런던의 폭동사건도 월리엄 세익스피어를 낳았고 세계 최초의 의회정치의 산실(産室)이라는 이미지를 일시에 파괴시킨 의아한 장면이었다.영국은 지금도 전통이 그대로 살아 숨쉬는 입헌 공화국이다.영국은 엄연히 민주 국가 이면서도 귀족이 있고 계급이 있다. 상류층, 중산층, 그리고 하류층이 있는데 계급간의 장벽이 심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영국의 상원은 '귀족원(House of Lord)'로 불리워지고 상당수는 지금도 세습제이다. 하원(下院)의 명칭은 '평민회(House of Commmon)'로써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영국의 상류층이란 영국 욍족과 귀족을 말하고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이라는 벼슬을 가진 사람들로써 과거, 전쟁에서 무공(武功)을 세운 무인들의 후손들로써 직업이 없이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봉토(封土) 임대료로 생활한다. 중산층은 전통적으로 농부, 상공인, 기술자들을 가르키고 하류층은 노동자들을 지칭한다.재미있는것은 영어표현에도 계층간의 차이가 있다는것이다. 사용하는 영어를 보면 어느계층에 속해있는 사람인가도 알수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화장실'이라는 영어, 'Toilet'는 하류층의 언어이고 중류층은 '워싱룸 (Washing room)', 상류층은 '루 (Loo)'또는 '레버토리(Lavatory)'라는 단어를 쓴다고 한다.귀족층일수록 은유법을 즐겨써 화장실을 가고싶다고 할때도 '자연의 부름이 있다"는 뜻으로 'Call for nature'라고 말한다고 한다. 우리사회의 막말 풍조와는 대조적이다. 교육정책도 계급에따라 차별적이다. 공립학교에 한해서는 무상교육이지만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다르다. 상류층은 막대한 등록금을 내는 '이튼스쿨'에 간다고 한다.1960년대에는 하류층은 대학에도 갈수도 없었다고 한다. 영국의 하류층은 신분 상승에 대한 강한 욕망이 없다고 한다.그들을 위해 주택문제와 최저 생활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의 런던 빈민지구의 폭동사건은 그들의 계층의식에 변화가 있다는것인가/ 장세균 논설위원
"골골마다 철철이 꽃이 피어도/ 우리는 무궁화를 섬기는 겨레// 무궁화 이 나라에 다시 피는데/ 소리소리 오랑캐 몰려들 온다"일제때 독립군이 부른 '무궁화'라는 노래중 일부다. 당시 독립군이 부른 노래 가사 중에는 거의 예외없이 무궁화가 들어갔다. 태극기와 더불어 무궁화는 나라를 상징하는 꽃이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일제때 무궁화는 엄청난 수난을 당했다. 진딧물이 많이 끼는 지저분한 꽃이라 비하했다. 심지어 어린 학생들에게 "무궁화를 보면 눈이 먼다"고 가르쳤다. 또 무궁화를 캐어 오는 학생들에게 상을 주기도 했고 그 자리에 사쿠라를 심도록 했다. 몇 백년씩 사는 장수식물임에도 일제 때 거의 뽑혀버려 큰 나무가 별로 없는 이유다.무궁화(無窮花)는 한자로 근화(槿花) 목근(木槿) 순화(蕣花) 반리화(울타리꽃) 등으로 불렸다. 영어로는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다. 중국과 인도가 원산지로 세계적으로 250여 종, 국내에는 200여 종이 자란다.우리나라 무궁화에 관한 가장 오랜 기록은 산해경(山海經)이란 지리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원 전 8~3세기에 편찬된 이 책에는 "군자의 나라에 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君子之國 有薰花草朝生暮死)"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군자국은 우리나라를 가리키며 훈화초는 무궁화의 옛 이름이다.무궁화는 법률적으로 공식 국화(國花)로 지정되지 않았으나 그렇게 여겨져 왔다. 그리고 정부는 1963년 '태극문양을 무궁화 꽃잎에 감싸고 있는 형태'를 나라 문장으로 규정했다. 국가의 주요문서나 공무원 임명장, 훈장 등에 이를 사용하고 있다.이어 1990년에는 다양한 무궁화 품종 중에 꽃잎 중앙에 붉은 꽃심이 있는 단심계(丹心系) 홑꽃 7종을 보급품종으로 지정했다. 이후 20년 동안 공한지, 도로변 가로수나 울타리목으로 전국 3525곳에 307만 그루를 심었다.이어 산림청에서는 2008년 무궁화 메카도시로 강원도 홍천, 테마도시로 전북 완주와 충남 보령을 선정했다.무궁화 특화도시인 완주군은 8-15일 고산휴양림에서 '내 마음에 지지않는 꽃 무궁화'를 주제로 다양한 '나라꽃 무궁화 전국축제'를 열고 있다. 휴양림 일대 11만4000㎡에 무궁화 테마식물원을 조성한 것이다. 민족과 더불어 영광과 수난을 나눠온 무궁화가 선양되는 기회였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독도문제가 뜨겁다. 전 세계 지도 제작사의 77% 정도가 동해(東海)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 외국인들은 이렇게 잘못 만들어진 세계 지도를 보며 영토에 대한 그릇된 지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미국조차 '분쟁지역에 대해서는 가장 널리 쓰이는 명칭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일본을 편들고 있는 상황이다.그렇다고 우리가 미국을 원망하면서 이를 반미(反美)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면 이것 역시도 유치한 발상일 뿐이다. 국가간의 관계란 원래가 국익(國益)의 관점에서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될수도 있기에 그렇다. 아마 미국과 일본이 우리보다 2년 먼저 맺은 '미·일 안전보장 조약'이 우리가 미국과 체결한 '한·미 상호방위 조약'보다 밀착 강도(强度)가 더 센 조약일 것이다.일본은 이 조약의 덕분으로 미국 '핵우산'의 보호 밑에 경제건설에만 주력할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독도에만 국한시켜 본다면 미국은 일본편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세계 제 2차대전 종료전에 있었던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의 미국·영국·중국 영수들의 회담과, 뒤이은 포츠담 회담도 독도에 대한 확실한 국적조항을 다루지 않았다.2차 대전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이 48개국을 상대로 '대일 평화조약'을 맺기 전에 미국은 일본·한국영토에 관한 초안 작성이 급선무였다. 1차에서 5차까지 초안은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고 분명히 명시되었으나 6차 초안에서는 갑자기 일본 영토로 둔갑되었는데 미국 정부의 일본 정치고문관 월리엄 시볼드의 일본 편들기 장난이 개입되었던것이다.다시 7차 초안에서는 독도가 한국 영토로 복귀되었다가 8차, 9차 초안에서는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기재되었다. 10차 초안에서는 유엔 총회의 결의를 들어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인정했다. 의견을 달리했던 영국과 미국은 최종적인 '영·미 합동초안'을 작성했는데 여기에 독도의 귀속문제를 정확히 언급하지 않았다.미국의 입김이 암암리에 작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미국이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노골적으로 편을 든 것은 아니지만 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인정해주지 않은 것 자체가 은근히 일본편을 든 것이나 다름없다./ 장세균 논설위원
97년 동계U대회와 2002년 월드컵 조별 예선 경기를 치른 이후 전북에서는 별다른 국제대회가 안 열렸다. 평창이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되면서 우리나라는 스포츠에 있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6번째 나라가 되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축구대회·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국제경기가 열리면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효과가 나타난다. 이 때문에 국가별로 사활을 걸고 유치 경쟁에 나선다.지금 대구 달구벌이 27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막을 앞두고 들썩이고 있다. 대구시는 이 대회를 앞두고 몇 년 전부터 경기장을 비롯 숙박시설·컨벤션센터·도로망 구축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해 도시 면모를 바꿨다. 건설경기 유발로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대구 시민들이 글로벌 시민이 됐다는 자신감을 가지면서 도시가 활력을 되찾았다. 경기가 열리는 동안 대구는 국내외 관광객들로 넘쳐날 것이다.강원도 평창은 동계올림픽이 열리기도 전에 명성을 얻었다. 산골 평창이 전 세계 매스컴에 소개되면서 글로벌 도시가 됐다. 인천공항서 65분만에 평창에 도착할 수 있는 고속철이 깔리면 평창은 상전벽해가 된다. 평창은 그간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알펜시아를 건설하는 등 준비에 박차를 가해 겨울스포츠의 메카가 되었다. 강원도는 이제 못사는 지역이 아닌 희망이 넘쳐나는 고장이 되었다.여수(麗水)는 이제야 이름값을 하게 됐다. 내년 5월12일부터 8월12일까지 세계박람회가 열린다. 지난해 상하이엑스포를 통해 얼마나 엑스포가 지구촌인들의 큰 잔치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여수가 부에노스 아이레스, 나폴리, 시드니 같은 세계 3대 미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예전 같으면 전국체전만 열려도 도시가 달라지는데 국제경기를 치르고 나면 상상을 초월한다. 잠자고 나니까 스타가 되었다는 말처럼 여수는 스타도시의 반열에 올랐다.전북은 새만금 도로 개통 이후에 1천만명이 다녀갔다고 호들갑을 떤다. 대부분 차타고 휑 지나 가버려 지역경제에는 큰 도움이 안 되었다. 그렇다면 전북은 무엇을 해야 할까. 세계인들이 찾을 수 있는 대형 이벤트를 개최해야 한다. 김진선 전 강원지사처럼 통 크게 밀어붙여야 한다. 정부 여당과 소통이 잘 안되는 불리한 여건에서도 그 뭔가를 찾아야 한다. 그간 전북은 너무 조용한 아침바다였다./ 백성일 주필
‘뭉쳐야 산다’ 5극 3특 시대, 통합을 움직이는 힘은 결단과 책임이다.
지방선거 본격 불법행위 신속 엄단 대응을
새만금의 것은 새만금에게
전주문화재단 20년, 정체성·역할 재정립을
단체장 경선이 중요한 이유
“시민의 일상이 관광이 되는 도시 전주”
규제 풀어야 현대차 새만금투자 성공한다
탑-승한
'매커니즘'보다 '구조'가 좋아요
전북은행장, 지역이해도 높은 내부 발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