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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공직사회 부패 - 이경재

지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 지인은 "요즘 공무원들은 대놓고 돈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교묘하게 활용한다."고 했다. 그가 털어놓은 몇가지 사례는 뻔뻔스럽기도 하고 악질적인 것도 있다.# 업무와 관련이 있는 부서 공무원이 어느날 김 한 박스를 선물로 보내왔다. '갑'이 '을'한테 선물을 보내오다니 이해되지 않았다. 영문을 몰라 전화했더니 친척이 김 공장을 하는데 잘 팔리지 않아 소화하는 차원이라고 했다. 그 뜻을 헤아리고 수십만 원 어치 김을 팔아줬다.# 부서 회식자리에 별 부담 갖지 말고 참석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냥 지나쳤다간 괘씸죄에 걸릴 것 같아 참석했지만 회식비용을 나몰라라하기가 어려웠다. 괘씸죄는 육법전서에도 없는 고약한 죄 아닌가. 2차 술집, 3차 입가심용 가맥 집까지 200만 원이 깨졌다.# 직원들 경조사도 고질적인 병폐라고 했다. 시도 때도 없이 화환 보내달라, 조화 보내달라 해서 귀찮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관심했다간 괘씸죄에 걸릴 게 뻔해 수용하고 있다고 했다.더 고약한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모두 불법이다. 공직자가 직무관련자로부터 금전이나 부동산, 물품· 유가증권· 숙박권· 회원권 등 선물, 골프· 음식물 접대 등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 여부와 관계 없이 처벌을 받도록 돼 있다.지난 99년 '공직자 10대 준수사항'을 만들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참여정부 때 이를 대통령령으로 법제화했다. 이것이 '공무원 청렴 유지 등을 위한 행동강령'이다.이 행동강령에는 공무원은 직무 관련자한테 경조사를 통지하거나 회식비를 대납케 해서도 안되고 인사청탁이나 이권에 개입해서도 안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직위를 이용해 알선· 청탁을 해서도 안되고 상급자의 부당명령에 대한 거부권도 보장하고 있다.그러나 행동강령은 지금 글자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 사회에는 부정과 비리가 뿌리 깊게 박혀있다. 특히 고위 공직사회가 심각하다. 징계 따위의 솜방망이 처벌로는 효과가 없다.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라디오연설에서 선출직과 고위공직자들의 부패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공직자윤리법부터 엄격하게 고치겠다고 했다. 이왕 할 바엔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단호한 대책이 나왔으면 한다./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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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1.06.14 23:02

[오목대] 부권(父權)의 상실 - 장세균

요즈음은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TV 드라마 보기가 무섭다는 말을 많이 한다. TV 드라마 속의 아버지는 자녀들 앞에서 항상 어머니의 눈치를 본다든가 어머니한테 혼나는 장면들이 흔하기 때문이다.역사를 테마로 하는 사극(史劇)은 그런대로 아버지들이 선호 하는데 사극 속의 남자들은 권위와 더불어 영웅적 행동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가장(家長)으로서의 아버지 권위는 사실상 땅에 떨어진 지 오래이다. 어느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아버지를 그리라고 하니까 어떤 학생은 팬츠바람에 소주잔을 들고 있는 아버지를 그렸다고 한다.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온 아버지가 지쳐서 겉옷을 벗어 던진채 팬츠바람으로 소주잔을 들이켯을 것이다. 그 아들이 유일하게 접할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런 것이었다.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아버지의 권위인 부권(父權)은 두 가지가 기초되어야 한다고 한다.첫째는 아들이 아버지와 같은 가업(家業)에 종사하고 그 가업을 계승할 때이다. 이 때 아버지는 아들보다 풍부한 경험이 있기에 아들을 가르칠수가 있어 부권이 확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하는 아버지의 어엿한 모습, 그리고 인내하는 모습, 먹고 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말없이 이를 감내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됨으로써 자연스럽게 부권이 형성된다고 한다.둘째는 가족 구성원이 많아야 한다고 한다. 원래 권위란 그 권위를 추종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높아지는 법이다. 과거 우리사회는 대가족 제도였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부권의 두 가지 기본조건이 모두 무너져 버렸다. 산업화로 아들은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게 되었다. 핵가족화로 가정에서 아버지를 너무 가까이 접하게 됨으로써 아버지의 존재가 그렇게 훌륭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마르쿠제는 이제 아버지란 존재는 종족보존을 위한 정액(精液) 제공자에 불과하다고까지 극언했다. 땅에 떨어진 부권은 학교 현장에서도 나타난다. 과거의 학부모 회의는 없어지고 '자모회(子母會 )'가 대신하고 있다. 자모회란 학생들의 어머니 모임이라는 뜻이다. 자녀들의 교육권 향방이 어머니쪽으로 옮겨간 것이다. 부권 상실의 시대에 아버지들의 고민이 크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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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1.06.13 23:02

[오목대] 태산 선비문화 - 조상진

정읍하면 흔히 혁명을 떠올린다. 동학혁명의 횃불이 워낙 높이 타올랐던 탓이다. 그래서 과격한 이미지가 없지 않다.하지만 정읍은 알짜 선비의 고장이다. 호남지방에서 선비 문화유산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불의(不義)에 대한 저항정신이 선비정신과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정읍의 선비문화가 오롯이 남아있는 곳은 태산 일대다. 지금의 태인과 칠보 산내 산외 옹동 북면을 아우르는 넓은 지역이다. 이 일대는 본래 백제의 태시산군(太尸山郡)이었는데 신라때 태산(太山·太는 泰로도 통한다)으로 고쳤다.태산지역에 유교문화의 씨를 뿌린 이는 신라말 대문호이며 정치가였던 최치원이다. 886년 태산태수로 부임해 뛰어난 학문과 덕행을 남겼고 이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 무성서원(武城書院·사적 제166호)이다. 이 사당은 당초 태산사로 불렸으며 고려말에 훼손되었다가 조선 성종때 유림의 발의로 다시 세워졌다. 그 뒤 숙종(1696년)이 무성이라는 이름을 내렸다.태산 선비문화의 중핵인 이 서원에는 최치원 신잠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 등을 배향했다. 무성서원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속에 전북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 또 일제때는 최익현 임병찬 등이 의병을 일으킨 거점이었다. 최근에는 안동의 도산서원, 영주 소수서원, 장성 필암서원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이곳에선 선비 고장답게 유상곡수(流觴曲水)의 흔적이 있다. 최치원 재직시 포석정처럼 자연을 이용해 물에 잔을 띄우고 풍류를 즐겼던 것이다.이같은 풍류는 조선 초 정극인으로 이어졌다. 그는 벼슬을 버리고 처가인 이곳으로 낙향해 우리나라 최초의 가사인 상춘곡을 남겼다. 자연 속에서 세속의 명리를 멀리하고 청풍명월을 벗삼은 것이다. 이와 함께 그는 향촌사회의 자치규약인 고현동(古縣洞)향약(보물 1181호)을 정리해 오늘까지 전승시켰다. 27책이 현존하며 조선시대 최초의 것으로 평가된다. 좋은 일을 서로 권하고 어려움을 함께 돕는 이 향약정신은 500년을 이어오고 있다.이밖에 호남 제일의 정자인 태인의 피향정(보물 제289호)과 호남 사대부 가옥의 대표격인 산외면 김동수가옥(중요민속자료 제26호) 등도 선비문화의 향기가 묻어있다. 9일 제11회 태산선비문화제가 열렸다. 옛 선비들의 올곧은 정신을 체득하는 계기였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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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10 23:02

[오목대] 광복군(光復軍) - 장세균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이 지난 7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그는 살아있는 마지막 광복군 출신이었기에 그의 죽음은 더욱 많은 감회를 일으키게 한다. 백범 김구선생의 비서였으며 사상계라는 계몽적 잡지를 창간했던 광복군 출신 장준하씨의 죽음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일제 지배를 배격하고 조국독립을 위해 어려운 시절에 광복군이 존재했었다는것 자체가 꺼지지 않는 민족혼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 드골의 지휘 아래 '자유 프랑스' 군대가 상젤리 개선문을 통해 파리에 입성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의 광복군은 개인 자격으로 귀국했다.광복군은 해방후 미군정(美軍政)의 요구에 따라 무장 해제한 채 귀국할 수밖에 없었고 1년후에는 그나마 해체되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히 광복군의 일부가 국방 경비대에 흡수되어 대한민국 건군(建軍)에 이바지하게 되었다.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에 중국 중경(重慶)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조직체로 출발했다.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광복군은 한·중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공동의 적(敵)인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며 연합군의 일원으로 항전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는 내용의 광복군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광복군 총사령관은 이청천(李靑天), 참모장은 이범석(李範奭) 등 수명의 간부들이 임명되었다. 광복군의 존재는 단순한 상징적 의미 이상이었다.그 당시 중국 각지에는 약 60만명에 달하는 교포들이 살고 있었던 것이며 그 가운데 20만명은 소집이 가능했다는 것이고 만주에 거주한 200만의 교포와 국내 동포까지 합치면 30만명의 광복군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 당시 임시정부의 판단이었다.무력에 의한 독립론의 근거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1941년 하와이 진주만이 일본으로부터 폭격을 당하자 관망적이었던 미국이 2차 대전에 적극 가담하게 되었으며 미국의 대일 선전포고와 더불어 임시정부도 1941년 12월 10일 대일 선전포고를 하였던 것이다. 광복군 출신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의 서거는 다시한번 광복군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대한민국 건국과 더불어 광복군의 존재 의의도 같이 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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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09 23:02

[오목대] 큰 인물 - 백성일

예로부터 큰 나무 덕은 못 보지만 큰 사람 덕은 본다고 했다. 수양산 그늘 강동 팔십리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여름철에 정자나무 같은 큰 인물은 그늘을 드리우게 해 지쳐 있는 사람들의 심신을 달래줬다. 덕이 많아 곧잘 큰 일도 잘 해냈다. 지역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혼자서도 앞장서서 해결했다. 평소 구린 짓을 하지 않아 중앙 무대에서 말발이 섰고 정치력이 통했다.요즘처럼 도민들이 실망감과 무력증에 빠진 적도 없다. 총력을 경주했던 LH 전북유치가 물건너 가면서 그렇게 됐다. 도내 산간 오지까지 LH 유치 관련 플래카드로 도배질 했었다. 관제성 데모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모처럼만에 도민들이 중앙 정치권을 향해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끝나간 것 같다. 힘 없는 약자의 설움만 톡톡히 느끼고 있다. 전북이 중앙으로부터 냉대를 받은 것이 꽤 오래 되었다.박정희정권 때부터 지금까지 50년간이나 이어졌다. 지난 김대중·노무현정권 때도 별 것 아니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관료 정도만 혜택을 봤다. 민초들은 선거 때 잠시 기분만 좋았지 정권 맛은 못 봤다. 그간 찬방이라 오랫동안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윗목까지 온기가 스며드는데 불 때는 시간이 짧아 아랫목 정도만 온기를 느끼고 말았다. 경상도 정권의 뿌리가 깊게 박혀 지난 두 정권 때도 전북은 쪽도 못 폈다.지금도 찬밥 신세는 여전하다. 정동영 후보가 530만표 차로 대패해 그를 일방적으로 지지한 전북만 닭 쫓던 개 지붕쳐다 보는 꼴이 됐다. 새만금사업도 1차 내부개발 완공 시점을 10년 앞당겼지만 2020년까지 계획대로 끝날지는 미지수다. 해마다 1조원의 국가예산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 절반 확보도 힘들다. 국가식품클러스터 조성사업도 예산 확보가 잘 안돼 어렵다.개인이나 자치단체나 힘 없으면 당하게 돼 있다. 돌이켜보면 소석(素石)만한 인물도 없다. 크게 써 먹을 수 있었던 7선의 이철승씨를 전주 사람들이 팽시킨 것은 두고 두고 후회할 일이다. 지금 중앙 정치무대에서 전북을 대변할만한 인물이 없다. 원래 인물은 고향 사람들이 밀어줘서 키우지만 본인 스스로가 역경을 딛고 일어나서 크는 법이다. 지역이 어처구니 없게도 만신창이가 됐지만 쓴소리 한마디 하는 원로도 없다. 도내 국회의원들부터 정신차릴 때다./ 백성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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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08 23:02

[오목대] 국립임실호국원 - 이경재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호국이란 나라를 지키고 보호한다는 뜻이고, 보훈은 나라를 위해 공헌한 분들을 기리고 보답한다는 뜻이다. 헌데 그 의미가 갈수록 엷어져 가고 있다. 어제가 현충일이었다. 어릴 때엔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으면 무슨 죄를 짓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교육을 엄하게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반기를 게양한 집들이 가뭄에 콩 나듯 하고 추모나 참배 분위기도 느낄 수 없다. 현충일은 쉬는 날 정도로 퇴색해 있다.이럴수록 순국선열을 기리고 유공자에 감사할 줄 아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국립묘지 참배도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과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우리나라에는 현충원 2곳(서울·대전)과 호국원 3곳, 민주묘지 3곳 등 모두 8곳의 국립묘지가 있다. 호국원은 수도권에 이천호국원, 호남권에 임실호국원, 영남권에 영천호국원이 있고 민주묘지는 3.15· 4.19· 5.18 묘역을 이른다.국립 임실호국원은 호남과 제주를 대표하는 호국 성지다. 향군 참전 군인묘지 조성사업의 필요성이 부각되자 1995년 재향군인회 현충사업단이 발족돼 이 사업을 추진했다. 당초 남원· 진안 등 몇곳을 검토했으나 입지조건과 땅값, 풍수지리 등을 종합해 임실군 강진면 백령리로 결정돼 오늘에 이른다. 묘역은 10만6000평으로 전국 최대 규모다.2001년 11월 30일 준공한 뒤 2002년 1월1일 첫 합동안장식이 이뤄졌다. 국가유공자(1869기)와 6.25 참전군인(7981기) 및 참전경찰( 1274기), 월남참전군인(1577기) 등 모두 1만2701기가 안장돼 있다.그런데 현충원과 호국원의 명칭이 차별적이다. 현충원에는 대통령· 독립유공자· 애국지사 등이 안장되고 호국원에는 참전용사와 10년 이상 군 생활자· 국가유공자· 상이군경 등이 안치된다. 똑같은 국립묘지이고, 똑같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공헌했지만 영면의 길에서는 급이 다르게 모셔진다. 안장의 격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명칭까지 꼭 현충원과 호국원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임실호국원 등이 현충원으로 명칭을 변경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국가보훈처는 묵묵부답이다. 호국원의 공무원 인력과 예산도 확충할 필요가 있고 기구의 명칭을 현충원으로 격상시키는 문제도 이젠 적극 검토할 때가 됐다. /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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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07 23:02

[오목대] 주자파(走資派) - 장세균

북한 김정일의 최근 중국 방문은 큰 소득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중국 정부는 개혁·개방을 김정일에게 수시로 요구하지만 김정일의 의중에는 개혁 개방보다는 체제안정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과거처럼 북한은 개혁·개방 시늉만을 할 것으로 보인다.북한은 과거 중국처럼 이념보다 경제문제를 우선시하는 나름대로의 주자파(走資派)가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중국을 통일한 모택동은 전 국토를 국유화하고 중국의 전 인민을 인민 공사라는 조직속으로 몰아넣고 대약진운동을 전개한 바 있었다.그러나 이 대약진운동은 농업생산의 저하로 1959년과 1961년 사이에 굶어죽은 아사자(餓死者)가 무려 3000만명에서 4000만명이었다고 하니 그 참상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에서 10년동안 기아(飢餓)로 죽은 사람이 약 300만명이라고 하니 그 때의 중국 인구와 북한의 인구비례로 보면 아사자 비율은 비슷한 것 같다.그 당시 중국 국가 주석이었던 유소기(劉少奇)는 이런 참상의 원인을 모택동의 대약진 운동의 결점과 착오에 있다고 비판하였던 것이다. 그는 이런 대기아(大飢餓)의 원인은 30%는 천재(天災)이고 70%는 인재(人災)라고 하여 모택동 노선을 비판하고 경제발전이 최우선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비판은 결국 모택동의 미움을 사게되어 숙청을 당한뒤 병사(病死)했다.이렇듯 경제문제를 중요시 하는 사람을 주자파(走資派)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이 모택동의 문화혁명에서 겨우 살아남아 오늘의 중국 경제 부흥을 가능케 한 등소평(登小平)의 정치적 등장이다. 북한처럼 혈족이 아닌 정치 지도자들이 등장함으로써 정책에 변화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중국 개혁·개방 첫 단추의 성공은 동남아시아에 산재한 중국 화교 자본에 힘입었다.그러나 중국의 개혁·개방을 의심한 서구의 자본주들은 중국 투자를 망설였다. 더 나아가 중국은 대만·홍콩·마카오 화교들에게도 투자를 위한 손을 벌렸다. 결국 화교들의 자본투자가 성공하자 서구 자본들이 투입되어 오늘의 중국 경제 호황의 밑거름이 된것이다. 북한에는 중국의 유소기나 등소평 같은 주자파는 없고 충성경쟁만 있는 사회라서 개혁은 힘들다는 생각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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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06 23:02

[오목대] 반딧불이 - 조상진

"갯띄벌기 똥-똥/ 갯띄벌기 똥-똥/ 우리 집에 불없다/ 날래와서 밝혀라/ 갯띄벌기 똥-똥/ 갯띄벌기 똥-똥"평안북도 선천(宣川)지방의 민요 중 반딧불이를 노래한 대목이다.그랬다. 예전 60, 70년대만 해도 반딧불이는 흔했다. 길거리의 개똥처럼 흔하다 해서 '개똥벌레'라고 불렸다.여름철, 시골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집밖에 나오면 여기저기 반딧불이가 날아 다녔다. 손으로 탁 쳐서 잡아 반짝이는 꼬리 부위를 떼어내 놀았다. 짓궂은 아이들은 이마나 눈썹 위에 붙이고 귀신이나 도깨비 흉내를 내기도 했다. 또 활짝 핀 호박꽃에 잔뜩 넣어 초롱불을 만들었다.반딧불은 반딧불이가 내는 불빛이다. 형설지공(螢雪之功) 고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반딧불이(螢)의 꼬리 불빛과 눈(雪)빛으로 고생하며 공부해 입신양명함을 비유한 것이다. 중국 진(晋)나라 때 손강(孫康)과 차윤(車胤)이라는 선비가 살았다. 이들은 너무 가난해 기름을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손강은 겨울 밤, 눈빛에 책을 비추어 읽었고 차윤은 여름 밤, 주머니에 반딧불을 잡아 넣어 그 빛으로 글을 읽었다. 덕분에 둘 다 높은 벼슬에 올랐다.하지만 실제로 최소 200마리의 반딧불은 돼야 겨우 신문활자를 구분할 정도라고 한다. 중국 사람다운 과장법이다.딱정벌레 목(目)의 반딧불이는 몸 길이가 1.2-1.8㎝로 검은 색이다. 배 마디 아래 끝에 발광기가 있고 거기에서 발광물질인 루시페린 단백질이 산소(O2)와 결합해 빛을 낸다. 이 빛은 열이 거의 없는 냉광(冷光)이다. 알→애벌레→번데기→성충이 되기까지 1년가량 걸린다.반딧불이 종류는 세계적으로 2100여 종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8종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실제 채집되는 것은 애반딧불이, 파파라반딧불이, 운문산반딧불이, 늦반딧불이 등 4종 뿐이다.반딧불이 애벌레는 물에 사는 것과 땅에 사는 것이 있다. 애반딧불이 만이 산골짜기 하천에 살며 다슬기나 물달팽이를 잡아먹고, 나머지 땅에 사는 것들은 밭가에 사는 (민)달팽이를 잡아 먹고 산다.그러나 지금 반딧불이는 환경오염으로 귀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무주 남대천 일대의 서식밀도가 높아 1982년 천연기념물 322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에서 3일부터 제15회 반딧불이 축제가 열린다./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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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03 23:02

[오목대] 독립 무장투쟁사 - 장세균

현대사에서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작업이 심심찮다. 역사속의 거인(巨人)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고 객관적 시각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의 행적속의 공과(功過)를 동시에 조명해야 할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제대로 연구가 안되었던 부분이 바로 독립운동사이고 그 중에서도 '무장 투쟁의 역사'이다.독립투쟁하면 얼핏 상해 임시정부만을 연상케 만든 것이 과거 우리 역사교과서였다. 해방 직후부터 1980년대까지 독립운동사는 역사학도에게는 일종의 금기영역이었다고 한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이 없는 가운데 친일파가 반공투사로 변신하는 등 기회주의가 만연한 사회풍토에서 독립운동사를 연구하기가 무척 어려웠던 것 같다.지금의 역사 교과서는 무장 투쟁보다 식민지 체제내의 애국 계몽운동이나 실력양성 운동 등을 위주로 서술해 왔다고 한다. 현행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1920년대 항일 무장투쟁의 중심조직인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에 대한 핵심 내용이 거의 실려있지않다는 것이다. 참의부의 정식명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 주만참의부'이고 1924년에 결성되었다.그 당시 5개 중대에 600여명의 무장병력을 갖춘 군사조직었다고 한다. '정의부'는 1925년에 5개 중대에 1개 헌병중대 총 410명의 의용군을 보유한 가운데 수많은 국내 진공작전을 전개했다고 한다. 이 중 정의부 의용군 제 1중대장을 역임한 정이형은 국내 진공작전을 전개했으나 1927년 체포되어 사형을 구형받았다가 무기형을 언도받은 후 1945년까지 19년간 투옥생활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신민부'는 만주 북쪽에 있었으며 사관양성소에서 장교를 길러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는 한편 일본의 주구(走狗)가 된 친일파들을 처단하는 응징 작업을 했다고 한다. 현재의 역사교과서는 오히려 일제 때 조선총독부의 근대 식민정책 덕분에 한국의 인구가 증가했고 도시가 크게 발전했다는 식으로 기술했다고 한다.조선총독부가 근대 문명을 유입시킨 결과로 한국인의 의식주 생활에 큰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일제시대를 미화시켰다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다. 이상의 내용은 역사학자 이덕일씨의 저서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을 토대로 했다./ 장세균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1.06.02 23:02

[오목대] 표생표사(票生票死) - 백성일

전북처럼 약자 입장에서 보면 정치논리는 불리한 논리다. 언제나 경제나 다른 논리를 찾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정치논리는 힘이다. 우리나라는 선거 때 승리한 쪽이 임기내내 전권을 행사하는 독특한 승자독식 구조를 갖고 있다. 대통령서부터 광역·기초단체장에 이르기까지 사람 쓰는 것은 물론 재원을 배분하거나 정책 결정을 할 때마다 그 기준을 정치논리로 재단한다.선출직은 자신을 찍어준 사람을 우선시 한다. 대통령만 빼고 선출직은 당선된 날 이후부터 재선에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지지해준 쪽에 예산을 한푼이라도 더 배정한다. 그래야 지지기반을 공공히 하면서 재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 때 반대쪽에 선 사람은 미웁기 짝이 없다. 당선자 쪽에서는 국물도 안주고 싶다.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달래기 위한 수단이다.LH이전 문제에 대해 도민들이 절차적 하자와 부당성을 들고 나섰지만 달걀로 바위치는식이 돼버렸다. 떡줄 사람이 전혀 생각을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은 전북에서 한 자릿수 득표에 그쳤다. 게임은 그 때 이미 끝났다. 전북이 분산배치를 요구하고 정부가 분산배치안을 들어 줄 것처럼 말했지만 통치권자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결정을 앞두고 언론플레이를 한 것만 봐도 일찍이 진주행이었다.때마침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로 성난 경남 민심을 다독일 필요도 있고 그래서 그 쪽에다 준 것이다. 공기업 통합의 효과를 얻기 위해 일괄유치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정치논리로 끝났다. 정치논리는 통치의 기본논리로 상위개념이다. 이쁜 놈 떡하나 더 주고 싶은 논리다. 반대 편을 자기 편으로 끌어 들이려고 전략적으로 당근을 줄 수도 있지만 그 건 아니다.지금 전북은 정부의 반향이 없어 답답하다. 요구사항 하나도 안들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이나 대선에서 전북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또다시 증명하고 있다. 어차피 한나라당 후보에 표 찍어줄 사람들이 아니어서 공들일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원칙과 명분을 중시한 박근혜 전 대표도 전북에 차갑다. 지난 경선 때 도내 당원들이 자신한테 표를 안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북이 정치력이 약해 지역차별을 당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무작정 내년에도 민주당만 일방적으로 지지해야 하는지 반문하고 싶다./ 백성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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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01 23:02

[오목대] 김지사의 용기 - 이경재

노자의 말에 이런 게 있다. '용어감즉살, 용어불감즉활'(勇於敢卽殺, 勇於不敢卽活). 용기에는 두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감'(敢)이고, 다른 하나는 '불감'(不敢)이다. 감은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를 무릅쓰고 해내는 용기다. 불감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절대로 하지 않는 용기를 말한다.'살'(殺)은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달라붙어 결판을 내는 식이다. 그런 용기가 필요할 땐 사즉생의 각오로 싸워야 할 것이다. '활'(活)은 인내심을 갖고 이익을 도모하는 용기랄 수 있다. 결국 통찰력과 리더십에 달린 문제랄 수 있겠다.토지주택공사(LH) 이전 무산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전라북도는 5대 투쟁 방침을 밝히고 LH를 통째로 경남에 넘긴 정부를 맹공하고 있다. 당연하다. 매주 수요일 청와대 앞 시위와 도민 서명운동, 혁신도시 반납, 헌법소원, 행정소송 등이 그것이다.아울러 국토부 주최 회의 불참과 지방세 보전도 거부, 전북에 올 국민연금공단도 보이콧하겠다는 태세다. 국민연금 기금(330조원) 운용도 전북을 위해 협조하겠다는 이사장도 문전박대했다. LH 돈(7000억)으로 보상을 마친 혁신도시도 반납하겠다고 한다.'누구 목을 따와도 시원치 않을 것'이라는 감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렇다고 도지사가 강경분위기에 포위돼 실효도 없는 투쟁을 껴안고 가는 건 참다운 용기가 아니다. 노자의 가르침에 빗댄다면 감(敢)의 용기가 필요할 때엔 그렇게 하지 않더니, 불감(不敢)의 용기가 필요할 때에 감(敢)의 용기를 내세우는 꼴이다.전북은 지금 정부나 청와대하고 소통할 비선 하나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다. 당장 6조원 규모의 내년 예산을 따내려면 정부 부처한테 혀 짧은 소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 욕 하는 단체장에게 장관이나 청와대 쪽에서 예산을 챙겨주겠는가.이런 메카니즘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김 지사가 실효가 담보되지 않는 투쟁을 천명하고 나선 건 이해되지 않는다. 김 지사 스타일에도 맞지 않는다. 허공에 대고 소리 지르는 일은 결국 정치인 자신을 위한 정치투쟁에 불과하다. 청와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김 지사는 지금 당장이라도 정치투쟁을 정치인들한테 맡기고 전북의 실리 챙기기에 나서야 한다. 이게 노자가 말하는 불감의 용기다. /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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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31 23:02

[오목대] 인맥사회 - 장세균

우리 사회 특징 중의 하나는 소위 '룸살롱'이다. 세계 어느곳에도 칸막이를 만들어 놓고 그 밀폐된 공간에서 술을 마시는 풍습이 있는 나라는 없다. 그 나라의 술문화를 보면 그 나라의 민족성을 알 수 있다는 사회학자도 있다. 아무튼 밀실인 룸살롱 속에서 갖가지 부패가 이루어지기도 한다.룸살롱이 보이는 은폐 공간이라면 우리 사회의 혈연·지연·학연, 그리고 종파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룸살롱이요, 밀실이다.항간에 떠도는 '고소영' · '장동건' 인사라는 말도 우리 사회 인맥현상을 빗대는 말이다. 한국 사회는 개인의 능력과 잠재력 보다는 그 사람이 속한 인맥의 형태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고 생각들을 한다.이러한 인맥은 서양인처럼 수평적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세로 세우기의 수직적, 종적 인간관계를 낳는다. 누군가 기능적으로 정부 기관의 공무원으로 채용되면 그 직위가 9급이냐 8급이냐 식으로 서열을 정하기 좋아한다. 학문을 연구하는 학계에서도 순수한 토론이나 순수한 세미나를 하기가 매우 어렵다.세미나에서 설사 토론이 벌어졌다 해도 주제 발표자와 토론자와의 사이에 학교 선·후배 관계가 형성되면 객관적이고 진지한 학문적 토론과 비판을 할 수 있는 분위기 못되고 만다. 후배 토론자가 주제 발표자인 선배의 이론을 비판하면 후배는 소위 '괘씸죄'라는 죄목에 걸려 그 세계에서 처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소위 학회라는 모임이 학문집회라기 보다는 일종의 친목대회 분위기가 많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이런 경직된 분위기를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심지어 경제적으로 뒤떨어졌다고 보는 티베트의 라마 학승들이 교리회의를 할 때도 우리와 달리 상·하 구분없이 동렬로 앉으며 서로 경어를 사용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까지도 이 교리회의 때는 용상에서 내려와 동렬에 앉는다고 한다.그러나 우리나라 학계는 교수·부교수·조교수·전임강사·시간강사·조교·학생이라는 수직적 서열로 세분되었다. 인맥내에서도 선배·후배라는 상·하 수직적 관계로 엮어져 있으며 이런 인맥이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추동력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 인맥은 산을 움직이고 강줄기를 돌려 놓는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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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30 23:02

[오목대] 가난의 대물림 - 조상진

아프리카 미국계인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꼽힌다. 자신의 이름을 딴 TV 토크쇼 '오프라 윈프리 쇼'를 25년 동안 진행하며 낮시간대 시청률 부동의 1위를 지켜왔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세계에서 유일한 흑인 억만장자며 자선사업가로도 유명하다.하지만 그녀의 어린 시절은 어려웠다. 시골인 미시시피 주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그녀는 너무 가난해 감자포대로 만든 옷을 입었다하여 '감자포대 소녀'라 불렸다. 9살 때는 사촌에게 성폭행 당하고 마약에 빠졌다. 14살에 미혼모가 되었다. 그런 그녀였으나 고교 때 라디오 프로에 일을 얻으며 도약할 기회를 가졌다.20세기 최고의 입체파 화가 파블로 피카소(Picasso)는 19세 때 출생지인 스페인에서 프랑스 파리로 옮겨 미술공부를 했다. 그는 몽마르뜨 언덕에 아뜰리에를 얻었다. 30여 개가 벌집처럼 밀집된 이 건물의 계단은 삐걱거리고 수도라고는 하나밖에 없었다. 가스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일년 내내 고양이 오줌 지린내가 진동했다. 이곳에서 피카소는 지독한 가난과 싸워야 했다. 어찌나 가난했던지 고양이 신세를 지곤했다. 언젠가는 고양이가 어디선지 길게 이어진 소시지를 끌고 왔다. 굶주림에 지친 피카소는 그 소시지를 고양이와 함께 나눠 먹었다. 그러나 그는 머지않아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이처럼 '개천에서 용나는'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가난의 대물림으로 그렇게 되기 힘들다는 논문이 나왔다. 도의회기 주최한 토론회에서 전주대 김광혁 교수가 '빈곤아동의 발달과 사례관리 효과'라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그는 빈곤 아동이 비빈곤 아동에 비해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주요 5과목에서 5.3점(빈곤 아동 68.4점, 비빈곤 아동 73.7점)이 떨어진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지난 해 12월 전주시내 2300명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학업성적을 조사한 결과다. 이유는 인지적 자극, 부모의 감독과 애착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인지적 자극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원에 가지 못하거나 참고서 등을 접할 수 없어 성적 저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한국사회는 신분 상승의 첫번째 사다리가 학력이다. 빈곤이 대물림될 수밖에 없다. 윈프리나 피카소 같은 인물이 배출되기 힘든 구조가 고착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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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27 23:02

[오목대] 직업이름 - 장세균

우리나라 사람은 상대방의 이름을 무척 존경해주는 경향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직업에 대한 명칭(名稱)에도 상당히 신경을 써준다. 해방후에는 '가정부(家政婦)'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집안에서 허드렛일을 해주는 여자를 가르키는 말이었다.조선사회에서는 노인을 존경해주는 의미에서 성씨(姓氏) 뒤에다 할아버지 '옹(翁)'자를 붙여서 불러주었다. 여자 노인에게는 할머니 '파(婆)'자를 붙여서 '노파(老婆)'라고 불렀다. 임진왜란 때 명(明)나라의 수군(水軍) 사령관이었던 진도독(陳都督)은 이순신 장군의 용병술에 탄복한 나머지 자기보다 어린 이순신 장군을 가르켜 '이노옹(李老翁)'하고 존대해 불렀다고 한다.한 때 집안에서 부엌일을 주로 하는 여자를 가르켜 '식모(食母)'라고 불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식모'라는 이름은 상대방을 비하하는 비칭(卑稱)은 결코 아니다. 어머니가 하는 일을 나누어서 분업한다는 뜻에서 '어미모(母)'자를 붙인 것이다. 한 때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잔심부름을 해주는 사람을 '소사(小使)'라고 부른 적이 있었는데 이것도 상대를 낮게 비하한 비칭(卑稱)이 아니다.나라의 큰 일을 맡아서 외국에 파견되는 사람을 대사(大使)라고 불렀던 것과 비교해보면 '소사'란 말은 작은 일을 하는 사람을 가르킬뿐 비칭(卑稱)은 아니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직업에 따른 직업 명칭에도 급격한 변화가 뒤따랐다. 멸시감이나 위화감을 주는 직업 명칭에도 당연히 변화를 겪게 되었다.예를 들면, 청소원이 '환경 미화원'으로 바뀌었고 면도사가 '이용 보조원'으로, 목욕탕의 때밀이가 '욕실 봉사원'으로, 골프장에서 캐디가 '경기 보조원'으로, 사환이 '사무 보조원'으로, 정비공이 '정비원'으로 바뀌었다. 가정부도 '가사 보조원'으로, 간호 보조원도 '조무사'로 바뀌었다.특히 '원(員)'자를 붙이기 좋아하는 이유는 옛날 조선사회에서 고을의 수장을 '원님'이라고 불렀던데서 기인된다고 본다. 신분사회가 무너진 우리사회는 평등을 지향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직업을 존중해주는 직업 명칭에 인색하지 않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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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26 23:02

[오목대] 선거용 쇼 - 백성일

요즘 도내 국회의원들은 LH가 진주로 가면서 죽을 맛이다. DJ와 노무현 전대통령과 정치를 함께 할 때는 여당도 해봐서 좋았지만 지금은 야당의원이 돼 힘이 없다. 도내 11명 의원들 가운데는 3선 이상 중진이 많다. 대통령 후보와 당 대표를 지낸 의원도 있어 외형상 스타군단처럼 보인다. 국회의원은 선수(選數)를 중시해 초선은 물당번 하기도 벅차다. 그 만큼 관록 자체를 정치력으로 봐주기 때문에 그렇다.국회의원들의 행보가 총선과 대선 때문에 바빠 보인다. 그간 LH문제로 도민들이 몸살을 앓았다. 이번처럼 섬뜩한 문구를 내걸고 도민들이 으 으 한적이 일찍이 없었다. 준 것도 지키지 못하고 빼앗겼다는 생각 때문에 더 그랬다. 도민들은 그간 선거 때마다 민주당에 표를 원도 한도 없이 몰아줬다. LH분산배치 안을 민주당이 당론으로 정한 것도 정치적 배경이 컸다.정부가 진주로 LH를 일괄 배치키로 한 이후에는 투쟁 동력이 급속히 떨어졌다. 헌법소원을 내서 법적으로 투쟁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도 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너무 감정으로 말고 이성적으로 대응해서 실리를 챙기자는 기류다. 얻어낼 것이 있으면 물밑 접촉을 해서라도 얻어 내라는 것이다. 모든 일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지사의 사과와 담화문 발표도 일단 타이밍을 놓쳤다.정부 발표 직후에 즉각 사과했어야 옳았다. 싸움에서 진 장수로서 도민들에게 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였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정치권과 협의도 안하고 지사 혼자 강경 일변도로 앞서 나간 것도 무리수였다. 단독으로 삭발 투쟁에 나선 것은 오히려 국회의원들 한테 미운털이 박혔다. 상당수 도민들이 지사 삭발과 투쟁 방식의 진정성에 의심을 보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말로만 사즉생을 외치다 보니까 일만 꼬였다.정부의 일괄 이전 방침이 전해지면서 나중에 삭발한 최규성의원은 면피용 쇼 같다는 비난을 받았다. 김지사가 어제 도민들에게 사과와 함께 담화문을 발표했지만 뒷말이 무성하다. 밀어붙일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얻은 것 하나 없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의원들이 그간 MB와 이 정권을 향해 하이킥을 날렸지만 결국 유권자가 보면 선거용 쇼 밖에 안되었다. 오랫동안 허송세월 하다가 뒤늦게 난리법석을 떤 것이 바로 쇼가 아닐까./ 백성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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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25 23:02

[오목대] 신선한 '내 탓' - 이경재

'군자 구제기, 소인 구제인'(君子 求諸己, 小人 求諸人) "군자는 자기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논어 '위령공' 편에 나오는 말이다. 훌륭한 사람은 잘못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지만 소인배는 항상 남한테 미루고 자기한테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네 탓, 내 탓 하는 사람의 도량 차이를 적시한 말이겠다.천주교 고백송에는 네 탓이 없다고 한다. 오직 내 탓만 있다.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불가의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 사상도 따지고 보면 내 탓을 강조한 말이다. 2년 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 지난해 입적한 법정 스님 등이 일반 대중들의 내 탓 인식을 일깨운 분들이다.내 탓으로 돌리면 잘못의 원인도 잘 보이고 다시 잘못하는 일도 드물게 되지만 잘못을 남한테 돌리면 원인이 잘 보이질 않고 잘못도 반복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내 탓을 인정할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용렬한 사람은 네 탓만 일삼는다.토지주택공사(LH)를 경남에 통째로 넘긴 정부는 스스로 약속한 원칙을 파기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면 전북은 LH 유치 무산 같은 치욕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제는 원칙과 상식의 나라를 꿈꿨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였다. 이 시기가 그의 시대였다면 'LH 사태' 같은 황당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책이 힘의 논리로 결정되는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 원칙과 상식을 깨고도 이 정부는 사과 한마디 없다. 내 탓이 없으니 소인배 정부 아닌가.그런데 작년 도지사 선거때 'LH 전주 일괄배치' 공약을 내건 정운천 전 장관이 죄인 퍼포먼스를 펼쳤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걸 죄인 심정으로 도민한테 사죄하고 나섰다. 지난 19일부터 호남제일문, 전북대, 객사, 한옥마을, 도청사, 롯데백화점 등에서 하얀색 한복을 입고 함거(檻車=죄수를 이송하기 위해 수레 위에 만든 감옥)에 갇혀 석고대죄해왔다. 오늘은 '도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한다.네 탓만 하는 세상에 내 탓을 인정하고 책임을 통감하고 나선 그가 신선하게 느겨진다. '쇼!'라고 폄훼하는 정치인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는 그에게 묻는다. "함거 속의 죄인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단 한 번이라도 그런 모습 보여 주었느냐"고. /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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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24 23:02

[오목대] 강남(江南) 좌파(左派) - 장세균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새로운 단어가 하나 생겨났다. 소위 '강남 좌파'라는 단어다. 서울 강남은 한강의 기적과 함께 생겨난 신흥도시다. 한 때의 논밭이 빌딩숲으로 바뀌면서 주로 고소득자들이 모여사는 부자촌이 된 것이다. 한국의 '비버리 힐'이 되었다.미국의 부촌인 '비버리 힐'은 한국 교포가 많이 거주하는 로스엔젤레스 서쪽 태평양 연안 가까운 곳 주택지구에 미국 거부들이 숲속의 대저택을 짓고 사는 지역이다. 얼마전에 죽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특히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이 주로 모여사는 지역이기도 하다.서울 강남의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서울대 합격자의 약 30%를 차지하고 사법연수원 졸업생 중에 판검사로 임용된 사람의 30%가 강남지역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통계도 있다. 서울 강남은 부촌(富村)일뿐만 아니라 교육특구이기도 하다.'강남 좌파'는 잘 살면서도 사회복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공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강남 좌파'는 긍정적 면보다는 부정적 면을 띠고 있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잘 살면서도 복지나 하류층에 애정을 가진 사람을 빗대어 '리무진 좌파'라고 한다. 리무진 자동차는 미국 부호들의 상징이기도 하다.영국에서는 잘 사는 좌파를 빗대어 '샤르도네이(chardonnay) 사회주의자'라고 하는데 '샤르도네이'란 쓴맛을 내는 백포도주를 말한다. 백포도주가 보기는 좋지만 맛이 쓰면 별 의미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잘 사는 좌파를 '캐비어 (caviar) 좌파'라고 말한다. '캐비어'는 철갑상어 알을 소금에 절인 것을 말하는데 철갑상어는 비싸기로 유명하지만 소금에 절였으니 먹기가 곤란할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살롱 좌파'라고 한다.한국의 강남 좌파는 공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자기 자녀들은 유명 사립학교에 보내기도 하며 자본주의 제도를 비판하면서도 자본주의 장점을 즐기는 생활을 한다. 반미(反美)를 외치면서도 자기 자녀들은 미국에 유학을 보내고 미국 대학 학위증을 자랑하기도 한다. 이들의 슬로건이 가난한 자들의 고통과 굶주림을 진정으로 이해 못하기에 그들의 정책은 공허할 뿐이다. 현실과 접목된 강남 좌파를 기대한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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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23 23:02

[오목대] 죽음 준비 - 조상진

'관촌수필'로 유명한 소설가 이문구는 2003년 위암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의료진으로 부터 "말기여서 가망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자 "마무리할 게 있다"면서 허락을 얻어 이틀간 집에 다녀왔다. 3년 전 100만 원에 계약한 동시집 원고를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보름 후 62세로 세상을 떴다.임종에 앞서 그는 가족들에게 이렇게 유언했다. "혼수상태가 되거든 이틀을 넘기지 마라. 소생하지 않으면 엄마, 동생 손 잡고 산소호흡기를 떼라. 문학상 같은 것은 만들지 마라. 기일에는 제사 대신 가족이 모여 식사나 해라. 여한 없이 살다 간다." 그는 고향인 충남 보령의 관촌 소나무 숲에 한 줌의 재로 돌아갔다.평생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 스님은 한 술 더 떴다. 지난 해 3월 입적하면서 장례식을 못하게 했다. 여기에 더해 유언장에서 "그 동안 풀어 놓은 말 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 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밝혔다.이에 따라 영혼을 맑게하던 책 30여 권이 서점가에서 사라졌다. 이같은 죽음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스마트'하다. 깔끔하게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깔끔하기는 혼불의 작가 최명희도 마찬가지다. 그는 1998년 임종 자리에서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참 잘 살다 갑니다"라는 필담을 남기고 떠났다. 17년간 오직 '혼불'에 매달려 10권의 문화유산을 남긴지 2년 뒤였다. 당시 51세였다.불모상태의 한국고고학을 이끌었던 김원룡 서울대교수는 "수의를 입히지 마라. 평소에 입던 옷 가운데 한벌 입혀, 화장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1993년의 일로, 당시만 해도 그리 하기가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얼마 전 신부전증으로 세상을 뜬 환자가 1주일 병원 입원비로 6000만 원이 들었다고 한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고통스럽게 목숨만 유지하다 간 것이다.흔히 말기암 등으로 임종을 앞둔 환자는 본인보다 가족들의 만족감을 위해 끝까지 항암치료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할만큼 했다는 위안감 때문이다./ 조상진 논설위원요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환자의 심폐소생술 및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사전의료의향서 쓰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잘 죽는 것(well dying)이 중요해지고 있다.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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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20 23:02

[오목대] 한자교육 - 장세균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 한국어문회관에서 열린'올바른 어문생활과 한자교육'주제 발표회에서 우석대 총장을 지냈던 라종일 박사가"한자를 모르는 젊은 세대들은 한자사용을 기피할뿐만 아니라 한자를 혐오한다"고 말하면서 우리문화의 근저에는 한자로 된 동양의 고전작품들이 자리하고 있고 한자를 제대로 구사할수록 아시아 문화를 선도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는 내용의 강의를 했다.우리말의 70%가 한자로 된 단어이고 과학용어의 90%가 한자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되어 있다. 그래서 한자를 모르는 것은 우리말도 제대로 모른다는 것도 된다. 한자를 모르는데서 일어나는 부작용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서울대학생의 60%가 전공과목에 나오는 기본 단어의 뜻도 잘 모른다는 조사도 있다. 학문에 쓰여지는 단어는 더욱 한자에서 비롯된다.'부창부수(夫唱婦隨)'를 학생들에게 읽으라고 하니까 '아버지가 창을 부순다'고 답변을 하는 등 웃지 못할 일화도 많다. 흔히 사용되는 '배수진(背水陣)'을 '부수차'로 읽는 학생들도 엄청나게 많다. 한자에 얽힌 일화는 한이 없다.여기에다 설상가상으로 관공서까지도 한글마저 무시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동사무소'라고 해야 할것을'동 주민센터'라고 표시해 어쭙잖게 영어를 사용한다. 'Buy 전북상품'이라는 말은 전북도가 내걸은 표어이다. 이것 역시도 어쭙잖은 영어표기이다. 영어단어 몇자가 들어가야 단어의 품격이 올라가는 줄로 착각하고 있다.2002년부터 역대 교육부 장관을 지낸 13명이 대통령에게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건의했으나 묵묵부답이라고 한다. 1970년부터 한자가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박정희 대통령의'한국식 민주주의'가 한자를 학교 현장에서 추방했다고 본다. 북한은 초등학교때부터 3000자의 한자를 가르치고 있다. 일본 역시도 2000자의 한자가 기본이다.국어학자 진태하 교수는 한자도 우리민족인 동이(東夷)족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라는 신문에 나와 중국 네티즌들의 분노를 산 일도 있다. 이미 서울 강남의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한문공부를 시키고 있다. 우리의 언어정책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장세균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1.05.19 23:02

[오목대] 지역주의 파고 - 백성일

20년만에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가 내년 동시 치러진다.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4.27 재 보선에서 민심이반이 드러나 완패했지만 또 지지층을 결집해 정권 잡으려고 절치부심한다. 민주당 등 야권은 정권교체를 위해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집권당의 실정을 최대로 부각시켜 중도와 진보층을 결집해 나갈 것이다. 이미 여야의 선거운동은 시작됐다. 대통령 임기중 실시되는 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한 것은 국정운영의 실패와 집권세력의 오만과 독주의 반사이득을 톡톡히 봐 왔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정책이 좋고 옳아서 지지를 받은 것이 아니다. 상대의 실수 탓이다.여태껏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주의를 바탕으로 치러졌다. 정치인들 만큼 지역주의를 표 모으는데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람도 없다. 앞에서는 지역주의를 철폐해 나가겠다는 사람이 막상 후보가 되면 생각을 확 바꾼다. 지역감정을 자극하면 훨씬 표 모으기가 쉽기 때문이다. 특별한 전술과 전략도 필요 없다. 지역감정만 적절하게 이용하면 돈 많이 안들이고 당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LH문제로 지역감정만 또다시 깊어졌다. LH가 경남 진주로 일괄 이전해 갔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가 어떻게 설득해도 도민들은 수긍하지 않는다. 반발만 살 뿐이다.철썩같이 믿었던 분산배치안이 수포로 돌아 갔기 때문이다. 정부의 결정은 고도의 정치적 발상에 의해서 결말 났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로 영남권이 들썩이는 판에 이를 달래기 위해 진주혁신도시에다 통째로 당근을 안겨준 것이다.전북은 결국 닭 쫓던 개 지붕쳐다 보는 꼴이 됐다. 또다시 정치적 고도(孤島)로 전락했다.처음부터 전북으로 줄 의사가 없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들자니 무겁고 놓자니 깨질 것 같은 LH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끝매듭지어야 할지 고민스럽다. 지역주의만 더 고착화 시킨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설령 석패율이 도입되어도 지금 같아서는 한나라당 후보는 어림 없다. 민주당은 오히려 전북에서 더 결집되는 계기를 만들었다.전국 정당화를 표방한 민주당이 LH문제를 당론으로까지 채택한 터라 자칫 지역당 이미지가 덧칠해질 가능성이 높다. 내년 선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러나 이번 일로 내년 선거가 더 지역감정을 받는 선거로 끝날 수 있다. 그래서 호남에서 민주당 물갈이 공천은 필요하다./ 백성일 주필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1.05.1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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