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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공무원 노조 VS 지방의회 - 이경재

1991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될 당시엔 주민 기대가 컸다. 당시 반쪽짜리 지방자치였지만 굴절된 사안들이 바로잡히고 주민들이 주인 대접받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관선시대의 폐해가 너무 컸던 반작용도 있다. 인사· 예산· 정책 등이 중앙정부 잣대로 좌지우지됐고 지역의 의견은 아예 무시되기 일쑤였다. 지방의 관리들은 목줄을 쥐고 있는 중앙정부만 쳐다보고 일을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지방자치법이 새롭게 제정되면서 채택한 체제는 기관대립형이다. 기획 정책 예산 인사 등 자치단체의 업무는 집행부의 고유 업무로 못박고, 지방의회는 집행부 업무에 대해 견제하도록 기능을 조정해 놓았다. 따라서 감시 견제기능은 지방의회의 고유 업무이면서 가장 큰 권한이다. 사무조사권과 예산심의권이 대표적인 수단인데 집행부는 이 두 권한 때문에 쩔쩔 매기도 하고 지방의원을 '상전'으로 모시기도 한다.지방의회 부활 당시 지방의원들의 가장 큰 불만은 의회경시였다. 걸핏하면 이 풍조를 문제 삼았다. 무지하거나 권위주의적인 자신들은 탓하지 않고 집행부 간부들을 닥달했다. 간부 군기를 잡기 위해 고의로 단체장을 역공하는 일도 많았다. 심지어는 기자들 앞에서 도청 국장한테 재털이 심부름을 시키는 일도 있었다. 해외에 나가면 수행 공무원은 포터로 불렸다. 의원 짐을 대신 짊어지고 저자세로 수발하는 그들을 기자들이 그렇게 불렀다.격세지감. 익산시 공무원 노조가 익산시의회를 향해 눈을 치켜 떴다. 단초는 일부 시의원의 공무원 무시행태와 강압적인 태도를 노조가 지적한 데서 비롯됐다. 이를 두고 시의회가 발끈, 공무원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고 나서자 두 기관이 주먹을 쥐고 있는 상태다. 시의회는 어제도 성명을 내고 "사과하라."고 경고했지만 노조는 "고압적인 태도는 놔두고 의회입장만 내세운다."며 유감이라고 맞받았다.예나 지금이나 그놈의 태도가 문제다. 할 일이 많은데 태도를 놓고 싸우는 건 볼썽 사납다. 하지만 정치서비스를 받는 주민한테는 좋은 일이다. 집행부 견제기능이 제대로 작동될테니까 말이다. 의회-집행부가 초록관계라면 20년 전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그래서 싸움은 말리라 했지만 이런 싸움은 피 터지게 계속 하는 게 낫다./ 이경재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1.08.09 23:02

[오목대] 씨내리, 씨받이 - 장세균

미국에서 정자기증을 통해 인공수정이 본격화 된 지 20년이 지났다. 미국 시사주간지 슬레이트는 인공수정이 합법화 된 후 매년 3만에서 5만명의 아이들이 수태되어 태어난다고 한다.남자가 자기의 정자를 수태를 위해 다른 여자에게 기증하는 사람을 순수 우리말로는 '씨내리'라 한다. 반대로 여자가 임신을 못할 경우, 대신 남자의 정자를 받아 임신해주는 여자를 우리말로는 '씨받이'라 한다. 씨내리보다는 씨받이라는 말이 많이 통용된 것을 보면 조선사회에 씨내리 보다는 씨받이가 훨씬 많았던 것 같다.우리 한국의 전통적 대리모인 '씨받이'를 주제로 한 영화가 권위있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타기도 했었다. 조선사회에서 장손 며느리가 아기를 못 낳을 때는 이 씨받이가 등장하는 데 대부분 씨받이를 직업적으로 하는 여인이나 가난한 집 딸, 또는 종의 딸을 들여와 합방시켜 핏줄을 잇게 하기도 했다. 씨받이와의 합방날짜가 정해지면 저녁에 장정 몇명이 여자집에 들이닥쳐 이 씨받이 여자의 눈을 가리고 자루에 넣거나 업고 가는데 그 이유는 씨받을 집이 어느 고을 어느 가문인지를 알리지 않기 위해서이다.이런식으로 해서 남자아이를 낳아주면 입마개쌀이라 하여 쌀 석섬을 보너스식으로 더 받는다고 했다. 만일 딸을 낳았을 때는 씨받이 부인이 양육해야 했는데 그 양육비조로 논밭 서너 마지기를 사주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와서 미국같은 나라에서는 정자를 제공했던 한 남자에게서 129명이 탄생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이제는 남녀 합방의 복잡한 절차를 생략하고 인공수정의 발달로 인해 수많은 불임부부에게 희망을 주게 되었다. 결혼은 하기 싫지만 아이는 가지고 싶은 독신녀에게는 새로운 복음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인공수정의 발달은 아기의 정체성 문제를 제공하기도 한다.예를 들면 '갑을'부부가 아기가 없자 '병'이라는 남자의 정자를 '정'이라는 여자의 난자와 인공수정을 시킨후 '하'라는 여자의 자궁에 착상시켜 10개월 후 아기를 낳았을 경우 그 아이의 법률적 부모와 생물학적 부모, 그리고 낳은 어머니가 서로 달라 정체성의 대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전통적 가족 개념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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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1.08.08 23:02

[오목대] 남원 광한루원- 조상진

영원한'사랑의 지침서'인 춘향가는 서울서 내려온 이도령이 남원의 경치를 구경하는데서 시작한다. 나귀 안장에 올라 방자에게 묻는 것이다."이 애 방자야.""예.""너희 고을에 볼만한 경치가 있겠느냐?""소인의 고을에 별반 경치 없사오나 광한루라 하는데가 삼남 제일의 누각이라 하옵니다.""광한루가 있다면 오작교도 있겠구나.""오작교도 있거니와 누 옆에 영주각과 승사각이 좋사옵니다.""이 애, 그러면 남원이 곧 신선 사는 데로구나. 오늘 광한루 구경 가자."(정정렬 바디)여기서 광한루(廣寒樓·보물 제281호)는 삼남(三南), 즉 충청 전라 경상도에서 제일 가는 누각으로 묘사되고 있다.이어 이도령은 광한루에서 좋은 경치를 완상하며 술 두석잔 마신다. 곧 취흥이 올라 춘향 만날 시를 짓는다. '다리 이름이 오작이니 신선이 놀던 다리요(橋名烏鵲仙人橋)/ 누각 이름 광한이니 옥경루인가 하노라(樓號廣寒玉京樓)./ 묻노니 전생의 직녀가 그 누군고(借問前生誰織女)/ 알겠노라! 오늘의 견우는 나로구나(知應今日我牽牛).'여기서 옥경루는 하늘나라의 옥황상제가 산다는 누각이다.춘향가는 숙종(재위 1674-1720) 즉위 초 얘기다. 그러나 광한루는 춘향가의 배경이 되기 훨씬 전부터 절경으로 이름이 높았다. 당초 광한루는 1419년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돼 왔을 때 광통루(廣通樓)란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겼던 곳이다. 이후 세조 때 정인지가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를 본 따 광한루라 부르게 된 것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1638년 다시 지었다.광한루에는 내노라하는 시인 묵객들의 한시 80여 편이 걸려 있어 조선 최고의 사교장이었음 말해준다. 광한루 앞에는 연못이 있고 신선이 사는 곳으로 알려진 3개의 섬이 있다. 봉래(蓬萊) 방장(方丈), 두 섬에는 각각 백일홍과 대나무를 심고 영주(瀛州) 섬에는 완월정이라는 정자를 세웠다. 연못은 전라관찰사 정철이 확장한 것으로 은하수를 상징한다. 3000여 마리의 토종 및 비단잉어가 관광객의 눈길을 끈다.요즘 광한루원은 TV드라마 '공주의 남자'촬영지로 각광 받고 있다. 또 남원시는 수문장 이벤트, 사랑의 언약판, 신관사또 부임행차 등 다양한 행사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풍류와 넉넉한 여유 공간으로 재인식되었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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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05 23:02

[오목대] 식사와 교육 - 장세균

미국의 교육학자였던 캔텔은 그 나라의 식사패턴과 교육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였다. 독일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많이 먹는 대식가들인데 독일의 학교는 대량의 지식을 축적시키고 그 지식들이 똑같이 동등한 가치가 있다고 가르친다. 못다 가르친 부분은 주석(註釋)을 달아 지식을 더 첨부시킨다.프랑스 사람들은 미식가(美食家)로 알려져 있다. 음식 맛을 식별하는 예민한 미각으로 식도락(食道樂)을 즐긴다. 그들은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충분한 시간을 갖는다. 까다롭게 주문을 하고 그 요리를 천천히 씹으면서 맛볼 것은 다 맛보는 것이다.이런 식의 식사는 당연히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되었다. 프랑스 학교는 많은 지식을 가르치기 보다는 생각하는 법, 발상(發想)법, 사상의 깊이를 이해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많이 아는 것보다 명철하게 생각하는 것을 중요시한다.영국인의 식사는 유럽의 많은 나라 가운데서도 거칠고 맛없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영국 사람들은 음식 맛을 즐기기 위해 먹기보다는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하는 방편으로 먹기 때문에 영양분이 있는 음식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몸을 튼튼히 하는 교육을 강조하게 되고 스포츠가 중요한 교육의 목적이 된다.대체적으로 영국의 식사문화를 계승한 미국도 음식맛에 중점을 크게 두지 않는다. 필요한 칼로리를 섭취하는 것이 식사라고 본다. 다만 영국의 식사보다는 음식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점이 다르다. 미국의 학교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은 선택과목을 주어 학생 스스로가 칼로리 음식을 선택해서 먹듯이 공부도 그렇게 하게 한다. 적정한 칼로리가 필요하듯 공부의 양도 많지 않다.한국인의 식사패턴은 일회(一回) 완결형이다. 중국이나 서양의 식사처럼 주스가 나오고 그 다음에 수프, 야채가 나오고 고기가 나오는 식이 아니라 모든 음식을 한꺼번에 한 상에다 차린다.한국 학교는 학생들에게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가르쳐야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지식교육에서부터 인성교육, 도덕교육까지 모든 것을 포함시킨다. 한국의 식사는 잡식성이다. 갖가지 채소, 생선, 육류까지다. 한국의 학교 교육 역시도 수강 과목수가 세계에서 제일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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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04 23:02

[오목대] 딴나라당 사람들 - 백성일

20여년간 한나라당은 전북에서 찬밥 신세였다. 노태우·김영삼 정권 때나 현재 이명박 정권 때도 집권 여당이지만 야당이나 다를바 없다. 지역정서의 높은 장벽에 가로막혀 한나라당으로는 선출직 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신한국당으로 강현욱 전지사가 군산서 국회의원이 됐고 이덕용 부안애향운동본부장이 부안서 도의원 된 것 말고는 없다. 도당 사무처장을 지낸 김경안씨나 이계숙씨는 비례대표로 도의원을 했거나 하고 있다.그간 지역에서 한나라 당적으로 출마한 후보들은 거의가 한 자릿수 득표에 그쳤다. 민주당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다행스럽게 지난해 도지사 선거에서 정운천씨가 18.2%라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마의 두 자릿수를 넘었다. MB도 대선 때 한 자릿수에 그쳤다. 도내서 한나라당 후보로 두 자릿수 득표를 한 것은 기적이다. 그 만큼 전북에서 한나라당으로 표얻기가 어렵다.정운천씨가 놀랍게도 표를 많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 일당 독주에 식상한 사람들이 그에게 표를 줬기 때문이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전주에서 태기표 전 정무부지사, 전희재 전 행정부지사가 출마했으나 한 자릿수에 그쳤다. 이 정도 학·경력이면 두 자릿수가 가능할 것으로 점쳤다. 그러나 결과는 아니었다. 이처럼 전북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표를 얻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 없다.내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또 지역주의 선거를 걱정하는 소리가 나온다. 이제는 지역감정 불식을 위해 한나라당 후보에도 표를 줄 때가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 전북도당과 당협을 이끄는 면모를 보면 아니올시다다. 물론 당협위원장 등은 아니라고 반발할 수 있다. '자신들이 척박한 토양속에서 그나마 당을 지키고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자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도민들이 느끼는 감정은 그게 아니다. 도내서 한나라당 한답시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갖고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 보고 누가 표를 찍겠느냐는 것이다. 유·불리만 따져 이합집산하는 정치꾼들 정도로 보고 있다. 박근혜 전대표가 대선 주자 중 선두 주자로 달리자 마치 부나비 마냥 몰려 들고 있다. 지역주의를 경계하는 일부 도민들은 "한나라당 중앙당에서 전북을 포기하는 사석작전을 쓸게 아니라 지역에서 표를 모을 수 있는 인물부터 찾아서 내놓는게 더 급하다"고 일침을 놓는다./ 백성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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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03 23:02

[오목대] 홍 대표의 호남 배제 - 이경재

한나라당 지도부의 호남 발언을 되새기면 허허롭다. 지난 2008년 9월 지역 민생탐방 차 전북에 들렀던 박희태 대표는 "호남벌에서 언제 금배지를 한번 수확할까 하면서 왔다. 태산도 오르고 또 오르면 언젠가는 오를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구애작전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그로부터 꼭 1년 뒤, 정몽준 대표는 대표 취임 후 첫 지방방문 행선지로 호남을 택했다. 그는 광주지역 당직자 간담회에서 "우리가 호남에서 사랑 받으려면 이곳 말처럼 '징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언급했다.2008년 4월 MB 측근으로 당내 소장파 그룹을 이끌었던 정두언 최고위원은 쓴소리를 날렸다. "당이 선거때만 와서 지지를 호소할 게 아니라 평소에 노력을 더해야 한다. (지지층이 적은 호남지역에) 장기적 안목에서 투자해야 하는데 그렇게들 안하더라."고 털어놓았다.호남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기반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역설이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호남에서 한나라당 당원으로 일하는 것은 만주벌판에서 독립운동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한다. 지도부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욕을 다져왔다.그런 탓일까. 변화의 조짐도 있었다. 지난해 도지사 선거때 정운천 한나라당 후보가 얻은 18.2%의 지지율은 한나라당 사람들한테는 하나의 '희망'이었다. 석패율제가 시행되면 내년 4.11총선에서 적어도 3∼4석은 건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래서 한나라당 사람들은 지금 신발끈을 매만지고 있는 중이다.그런데 느닷없이 '호남배제론'이 튀어 나왔다. 홍준표 대표는 호남과 충청에 안배하던 지명직 최고위원 두자리를 모두 충청에 주겠다고 공언했다. 표가 나오지 않는 호남을 포기하겠다는 뜻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낸 정치인도 아마 없을 것이다.전국을 챙겨야 할 집권 여당 대표의 생각 치고는 너무 계산적이다. 당 차원에서도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의에 호남이 배제되는 건 작은 문제가 아니다. 정강정책에도 어긋나는 독선이다. 한나라당의 정강정책은 '이제 구각을 깨고…지역주의에 안주하지 않는 전국정당으로 거듭 태어난다'고 적고 있지 않던가.홍 대표의 발언은 어르고 달래도 모자랄 판에 찬물을 끼얹고, 이제 막 틔우려던 싹을 짓뭉갠 꼴이나 마찬가지이다. 재고해야 옳다./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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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02 23:02

[오목대] 지명과 역사 - 장세균

지금까지는 개인의 주소를 지번(地番)으로 표시했으나 이제부터는 도로명 위주로 표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불교의 일부 단체 ,그리고 우리땅 이름 지키기 모임 등은 여기에 반발하고 있다.지명은 그 지역에 얽힌 역사를 압축적으로 표현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지명은 한마디로 살아 숨쉬는 향토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거리의 이정표나 관공서 서류에는 모두가 한글로만 표기되어 있어 지명의 역사를 알 수가 없게 되었다.한자가 오랫동안 추방되다보니 우리말의 어원도 모르고 우리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여기에다 영어가 범람하다보니 '동사무소'라는 명칭이 어느날 갑자기 '주민센터'로 둔갑되어 국적 불명의 혼합어가 되었다. 한글세대 공무원들의 어쭙잖은 발상이라고 본다.미국의 지명을 보면 인디언의 말과 관련이 깊다. 뒤늦게나마 기독교적 양심의 발로로 인디언 언어를 붙여주는 아량을 베풀었던것 같다. 서쪽에 있는 오레곤(OREGON)주는 인디언말로는 '콜럼비아 강'을 뜻한다. 아이다호(IDAHO)주라는 이름은 인디언말인 'E Dah Hoe'에서 나왔다. 와이오밍(WYOMING)주의 이름은 Sioux 인디언말의 '대평원'을 뜻한다. 네브라스카(NEBRASKA)주의 이름은 Oto 인디언 말로 '잔잔한 물결'이라는 뜻이다. 그 지역 인디언 부족의 말을 붙여준 것이다.전주의 경우, 팔달로(八達路)는 공수내다리 부근에서 싸전다리를 지나 충경로 사거리 금암광장까지의 길을 말한다. 동서남북으로 길이 잘뚫렸다는 뜻의 사통팔달(四通八達)을 줄여서 붙여진 것이다. 진북로(鎭北路)라는 이름은 전주의 기운이 북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진북이라고 붙여진 것이다. 태조로(太祖路)는 한옥마을 중심도로인데 태조 이성계에서 비롯된 이름이다.'어진(御眞)길'은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는 경기전과 관계가 있는 도로이름이다. 향교(鄕校)길은 전주 향교가 있는 도로 이름이다. 서원로(書院路)는 신흥학교 뒷산너머에 있는 화산서원에서 유래된 말이다. 관선길은 관선암(觀善菴)과 관련이 있다. 순수 한글 지명이 아닌 다른 지명은 반드시 한자와 병기(倂記)해 주면 쉽사리 지명의 뜻을 이해할 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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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01 23:02

[오목대] 죽부인(竹夫人) - 조상진

"무더운 여름 평상에서 죽부인(竹夫人)을 두고 수족(手足)을 쉰다. 그 가볍고 시원함을 취하는 것이다." 이는 조선 말기의 문신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에 나오는 대목이다.죽부인은 매끈하게 다듬은 대나무를 원통형으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여름 침구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 끌어 안고 자거나 다리 사이에 끼우고 자면 무섭게 달려드는 삼복더위도 저만치 물리칠 수 있다. 찬 성질을 가진 대나무로 만든데다 안이 텅 비어 있어 통풍이 잘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풀을 먹인 삼베 홑이불을 씌우면 더욱 그만이다.죽부인은 중국 당나라 때 더운 남방지역에서 널리 퍼져 한·중·일 삼국에 보편화되었다. 당나라 때는 무릎에 끼는 도구라는 뜻으로 죽협슬이라 불렀다. 그러다 송나라 때는 끌어 안고 자는 부인으로 의인화 해 죽부인이라 한 것이다.부인이다 보니 아버지가 쓰던 죽부인을 아들이 쓰지 않았다. 또 스승이 쓰던 죽부인을 제자가 쓰는 것도 금기시했다. 남성 위주의 독특한 풍습인 셈이다. 그렇지만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여인네들도 여름철에 이를 애용하게 되었다. 이 경우 '죽남인'이라 부른다.세간에는 죽부인과 관련된 여러 일화가 전한다. 그 중 하나가 5형제 얘기다. 옛날 노부부가 5형제를 두었는데 아직도 아버지의 혈기가 왕성했던 모양이다. 무더운 여름 밤에도 부인과 꼭 잠자리를 같이했다. 이를 본 5형제는 "저러다 또 아이가 만들어지면 큰일이다. 우리가 업어 키우고 똥·오줌까지 치워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지"라고 궁리를 했다.그 끝에 가짜부인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을 아버지에게 드렸다. 아버지는 5형제가 만들어준 죽통을 안고 자보니 사람을 껴안고 자는 것보다 시원하고 잠이 절로 왔다. 덕분에 5형제는 효도를 하고 여섯째 동생이 생기지 않아 짐을 덜었다는 것이다.하지만 여름내내 손 때가 타도록 애용하던 죽부인도 찬바람이 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한쪽에 쳐박아 버린다. 그래서 옛 문인들은 변덕스러운 세태나 권력의 비정함을 이에 빗대기도 했다. 고려말엽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이색의 아버지 이곡(李穀)이 지은 소설 '죽부인전'이 대표적이다. 여성의 절개를 대나무에 비유하여 당시 퇴폐해 가는 고려 사회를 풍자한 것이다.요즘은 에어컨과 선풍기가 너무 흔하다. 하지만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죽부인과 더불어 여름을 나 보면 어떨까./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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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29 23:02

[오목대] 울릉도·독도 - 장세균

일본 야당인 자민당 의원 4명이 8월1일 울릉도를 방문한다고 하여 우리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고 있다. 이는 독도를 영토분쟁화시켜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기 위한 그들 전략의 일환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금까지의 일본 독도 망언은 언어 수사(修辭)의 수준에서 끝났으나 이제는 직접 행동으로까지 나서는 모양새이다.외교통상부는 주한 일본 대사관을 통해 방한을 추진중인 일본 자민당 의원들에게 안전문제 등을 내세워 울릉도 방문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방문을 추진중인 4명의 의원들은 강경파로 '신도 요시타카'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대장을 지낸 '구리바야시 다다미치'의 외손자이고 '사토 미사하시' 참의원은 자위대 출신이며 '가쓰에이' 중의원은 경찰 간부 출신이라고 한다.이명박 대통령은 이들의 입국을 금지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울릉도는 한때 우산국(于山國) 으로 신라 지증왕 13년에 이찬, 이사부(異斯夫)의 정벌 아래 신라에 귀속하여 토산물을 신라에 바쳤다. 그후 고려가 개국한 후에도 이런 조공관계가 계속되어 토산물을 고려에 바쳤다. 고려말부터는 해안사람들을 울릉도로 이주시켜 생활하도록 유도했다.조선 개국후, 세종때에는 여러차례 관원을 울릉도에 파견하여 관리하였다. 그러나 왜구의 잦은 노략질로 울릉도뿐만 아니라 큰 섬들에 대해서 사람을 살지 못하도록 하는 공도(空島) 정책을 조정에서 추진하였다.조선후기 숙종 때에 일개 노젓는 수병(水兵)이었던 안용복은 울릉도와 독도에서 해산물을 독점했던 일본인들에게 붙들려 갔으나 일본에서 울릉도·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고 당당히 주장하여 그 당시 일본 에도막부로터 앞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침범치 않겠다는 서계(書契), 즉 공문서까지 받아오는 쾌거를 올렸다.조선은 가끔씩 관리를 울릉도에 파견함으로써 그런대로 영토관리를 했으나 1800년 쯤부터는 울릉도·독도 관리를 소홀히했다. 이런 해이된 상태에서 일본인 254명이 울릉도에 거주했다는 것이다. 일본이 이런 사실만을 빗대어 울릉도도 자기 영토라고 억지로 우길지도 모를 일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1.07.28 23:02

[오목대] 속죄양 - 백성일

예나 지금이나 조직에서 부(副)자는 별로다. 자치단체에서 부는 장(長)을 보좌하는 역할에 그칠 뿐 독자적인 컬러를 낼 수 없다. 행정부지사는 중앙에서 파견한 공무원이지만 일처리 때마다 지사 눈치를 살핀다.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실질적 의미에서 볼 때는 지사가 임명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정무부지사는 지사의 판단에 따라 여건만 맞으면 그 누구라도 임명할 수 있다.정무부지사는 정무에 관한 사항을 맡는다. 말이 정무지 사실 일 하려고 하면 엄청나게 힘든 자리다. 중앙 정부와 가교 역할을 해야 하고 도내 국회의원·도의원 그리고 언론사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한마디로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들이라서 이 사람들 비위 맞추려면 애 간장 녹는다. 기자들도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라서 까다롭기는 마찬가지다. 평소 접대를 자주해야 하는 자리라서 아예 쓸개와 간장을 떼놓고 다녀야 할 지경이다.김완주지사가 취임초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삼성 출신 김재명씨를 정무부지사로 임명했다. 다음으로 매일경제 편집국장 출신인 한명규씨를, 그리고 쌍용 출신 송완용씨를 임명했다. 연임하면서는 전주문화방송 보도국장 출신인 박종문씨를 기용했다. 정무부지사는 지사를 대신해서 술상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자칫 건강이 망가질 수 있다. 그 만큼 쉬운 자리가 아니지만 정치에 꿈 있는 사람들은 경력 관리를 위해 이 자리를 넘본다. 그런 면에서 장세환 국회의원은 성공한 케이스다.박부지사가 25일자로 사표를 냈다. 언론사에 30년 정도 근무하면서 쌓아온 인맥 덕으로 1년 정도 정무부지사를 했지만 LH문제로 어려웠다. 서울과 전주를 밥 먹듯이 오가면서 열심히 챙겼지만 정무부지사라는 역할의 한계 때문에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실패로 끝난 LH문제에 대해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책임을 지고자 한다"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결국 박부지사가 속죄양(Scapegoat)이 되고 말았다. 사즉생(死卽生)을 외치며 도민들을 구렁텅이로 빠뜨린 김완주지사는 멀쩡하고 박정무만 자리를 떠나게 됐다. 그렇다고 LH후유증이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다. LH후속대책에 관해 정부측의 속시원한 답변이 없어 이래저래 도민들만 속앓이 하고 있다./ 백성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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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27 23:02

[오목대] 공직자와 골프 - 이경재

"골프가 특권층의 스포츠가 돼선 안된다.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누구나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대중(퍼블릭) 골프장을 많이 짓게 했다. 그러면서 농민들도 즐길 수 있는 운동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반면 골프를 즐겼던 김영삼 대통령은 재임 시절 골프에 인색했다. "임기 동안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공직자들의 골프를 금지시켰다. 골프 친 공직자들은 사정기관의 밥이 됐다.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는 대통령은 골프대중화를 이끌었고, 골프를 잘 아는 대통령은 골프를 경원시했다. 골프 역기능, 이른바 댓가성과 연대성을 잘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노무현 대통령은 "골프 좀 치겠다."며 아예 골프치는 걸 공개했다. 그리고는 많은 '골프 사건'들이 터졌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대표적이다. 이 총리는 2006년 3.1일절에 골프를 했다가 보름만에 낙마했다. 그해 1년 전 '식목일 산불 골프'를 쳤다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근신하겠다."고 국민한테 사과해 놓고도 골프를 치다 화를 입었다. 함께 골프 친 이기우 교육부 차관도 사표를 냈다.한나라당 소속 정치인들도 그해 '수해골프'를 쳤다가 화를 입었다. 피해가 극심했던 강원 정선지구의 복구작업이 한창이던 때에 강원랜드 골프장에서 한가롭게 골프를 쳤으니 국민 비난이 빗발친 건 당연한 일이다.전주시와 전북도청 공무원들이 골프를 치고 그린 피 문제로 감사를 받은 일도 있다. 골프로 공직자들이 화를 입는 '사건'은 잊을만 하면 도지는 단골메뉴가 됐다. 최근에는 임실군 소유 법인회원권 사용자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 평일 근무시간에 골프를 친 공무원 8명(임실군청 5명, 전북도청 3명)이 적발됐다. 확인중이니 아직은 새발의 피일 수 있다.익산시는 아예 감사원의 법인회원권 사용자명단 제출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이한수 시장의 동의가 있지 않고서는 가능치 않은 일이다. 평일에 골프 친 공직자들을 비호한다는 욕을 먹을 망정, 비공개 하는 것이 더 남는 장사라는 판단이 섰다는 뜻이겠다.기초자치단체가 감사원의 요구를 깔아뭉갤 정도라면 그럴만한 인물들이 명단에 들어있을 것임은 불보듯 뻔하다. 회원권 사용자중엔 중앙부처와 감사원 직원이 포함돼 있다는 소문이 지역에 파다하다. /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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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26 23:02

[오목대] 문신(文身) - 장세균

일반적으로 몸에 문신이 있으면 조직 폭력배로 인식을 해왔다. 몸에 문신을 긍정적으로 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문화가 변하면서 연예인들까지 문신을 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특히 미국의 프로 레슬러들은 몸에다 갖가지 문신을 하고 링에 등장하는데 관중석 팬으로부터 열광적 환호를 받기도 한다.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서는 금기(禁忌)의 영역을 좁히거나 파괴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간다. 그래서 문신 즉 ,영어로는 '타튜(Tattoo)'가 이제는 개인의 '자기 표현방식'의 하나라는 인식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또 다른 표현으로 문신은 신체의 '자기 결정권의 회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문신도 엄연히 패션의 하나라는 주장도 나온다.우리에게 있어 문신의 역사는 오래이다. 조선의 성종(成宗)때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섹스 스캔들의 여주인공은 그 유명한 어을우동(於乙宇同)이었다. 그 스캔들 내용이 성종실록에 나오는 것이다. 어을우동의 팔뚝에는 대여섯 명의 남자 이름이 문신되어 있는데 문신을 남긴 목적은 남자가 어을우동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사랑의 증거를 남기는 애정문신이다.또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 전쟁터에 나가는 남편의 등에다 부인이 울면서 문신을 새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문신이 나쁜 마귀(魔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문신은 마귀를 아낸다고 보았다.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형벌문신(刑罰文身)이 발달했었다고 한다. 조선조에서는 도둑질하다 들킨 도범(盜犯)에게는 처음인 초범자에게는 오른팔에 '도(盜)'자를 문신하고 두 번째 저지르는 재범(再犯)일 때는 왼팔에다 '도(盜)'자를 문신하여 평생 전과자임을 나타냈다. 고려때는 도범에게 팔에다 문신을 하지 않고 얼굴에다 문신을 한 것에 비하면 범죄자의 인권을 많이 보호해 준 셈이라고나 해야할 것이다.우리말에 '경을 친다'는 말은 바로 신체에다 문신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문신이 일반화 되어 눈썹이 많지않은 성근 눈썹을 위해 인위적인 눈썹문신도 있다. 특히 외모를 중시하는 한국의 풍토에서 미용문신은 성형기술과 함께 비약적 발전을 할 것으로 내다보여 진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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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25 23:02

[오목대] 봉동 생강 - 조상진

완주군 봉동일대는 예로부터 생강 산지로 유명하다.이곳 생강은 다른 지역 생강에 비해 뿌리가 크고 섬유질이 없는 게 특징이다. 더욱이 글루코스(포도당) 함량이 높아 매운 맛이 덜한데다 향긋해 임금님께 진상하는 특산품이었다. 저장 방법도 독특하다. 온돌 아래 지하 저장고에 저장함으로써 생강의 부패를 방지하고 신선도를 유지시킨 것이다.봉동 생강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얘기가 전한다. 하나는 1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만석(申萬石)이라는 사람이 중국에 사신으로 건너가 봉성현(鳳城懸)이라는 곳에서 생강뿌리를 얻어 돌아 왔다. 이것을 지금의 전남 나주와 황해도 봉산에 심었으나 재배에 실패했다. 그러자 지명에 봉(鳳)자가 있는 이곳 봉상(鳳翔)에 내려 와 심은 결과 재배에 성공했다는 것이다.또 하나는 200년 전 일이다. 1820년에 전라감사로 부임한 이서구(李書九)는 풍수지리에 밝아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관내 순시를 위해 봉동읍에 들렸다. 이곳 봉실산(鳳實山)의 산세와 지형을 두루 살핀 후 들판을 보더니 "이 근처에서 장차 향기로운 풀(香草)이 자라 사람에게 큰 복을 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뒤 과연 향내나는 풀이 자라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바로 봉동의 생강이라는 것이다. 조선 초기의 기록에 완주지역 토산품으로 석류 울금 봉밀과 함께 생강을 꼽은 것으로 보아 두번째 얘기는 과장된듯 하다.일제 때 신문(동아일보 1934년 8월 15일)에도 봉동 생강은 '조선에서 유일! 삼례 생강'으로 소개되었다. 당시 봉동면을 중심으로 고산 삼례 용진에서 재배자들이 조합을 조직해 100정보에서 3000석(石)을 생산했다.이 생강조합은 자유당 때도 이어졌다. 한달 남짓 농림부장관을 지내 최단명(1954.5.6-6.29)에 그쳤던 율소리 출신 윤건중씨가 조합을 활성화시킨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농업을 잘 아는 농민출신을 장관에 임명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윤씨를 장관으로 임명했는데 윤씨는 독일 유학을 다녀와 독일식 협동조합 운동을 벌였다.국내 최대 생강 집산지를 끼고 있는 봉상생강조합이 15일 (주)대상 청정원과 공동사업협약(MOU)를 체결했다. 연간 120톤(6억 원 상당)의 생강을 구매키로 한 것이다. 농민들은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해 좋고, 기업은 좋은 품질의 생강을 구입해 상생의 해법이 아닌가 싶다./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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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22 23:02

[오목대] 한국과 홍수(洪水) - 장세균

긴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시작되었다. 장마 때마다 홍수 피해는 우리나라의 연중행사이다. 북한에서는 홍수 때문에 그들의 집단체조인 아리랑 공연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중국은 10년 이래 최악의 홍수로 701명이 사망했고 태국은 이번의 홍수로 101명이 사망하고 360만명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우리나라의 홍수는 여름철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 때문에 장마와 폭우를 동반하는 2~3개의 태풍으로 인한 집중호우로 발생한다. 과거 전통적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홍수와 가뭄은 하늘이 내린 천벌로 보았다. 특히 오랜 가뭄은 농경국가인 우리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직했으면 임금이 머리를 풀고 하늘을 향해 비 내리기를 기원하는 기우제(祈雨祭)를 지냈겠는가. 조선조 500년 동안 기우제를 지낸 횟수가 모두 1142회 였다고 하니 일년 평균 2회가 넘는다.가뭄 못지않게 무서운 재난이 홍수였다. 홍수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정서는 유럽과 다르다. 유럽의 자연은 유순하고 규칙있게 변화하기에 인간의 의지로 다스릴 수 있었다. 유럽의 자연은 인간이 충분히 정복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일반적으로 지중해 인근의 강우량은 한국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고, 유럽의 중심부에 있는 알프스의 눈이 녹아 흐르기에 수량은 풍부하지만 비바람 때문에 피해를 입지는 않는다.그와 반면에 한국의 자연은 인간이 다스리기에 억셌다. 그래서 산천(山川) 앞에 겸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마음은 산에 들어갈 때는 대소변을 받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들어갔다고 한다. 또 산중에서는 큰 소리로 말한다거나 부정탈 말은 산신령을 노하게 한다하여 조심했다고 한다. 만일 냇가에서 돼지나 개를 잡아 피를 흘려서 부정을 타면 그 응징으로 폭우을 내린다고 생각했다.폭우로 홍수가 나면 고을의 원님은 누가 부정을 타게했는지를 조사하여 처벌까지 하려고했다 한다. 치산치수(治山治水)를 잘하는 것이 임금의 덕목이었기에 그랬던 것이다. 홍수와 같은 천재(天災)를 지금으로 말하면 인재(人災)로 생각하여 도덕적 성찰을 했었던 것 같다. 어찌보면 홍수 피해는 미리 대비치 않는 안이한 태도에서 나온 인재이기도 하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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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21 23:02

[오목대] 탁족(濯足) - 백성일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렸던 부안 변산해수욕장이 새만금사업이 시작되면서부터 해류의 변동이 생겨 퇴적토가 쌓이고 있다. 이 때문에 예전의 명성은 오간데가 없어졌다. 심지어 모래를 갖다가 뿌려 놓아야할 상황까지 이르렀다. 물도 깨끗하지 않고 숙박시설이나 상가 등도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것같이 폐허처럼 변했다. 대신 격포나 고창 구시포 쪽으로 해수욕객이 옮겨 갔다.그러나 지리산 뱀사골, 무주 구천동, 진안 운일암반일암,장수 방화동 계곡, 진안 풍혈냉천, 순창 강천사 등은 피서지로 각광 받는다. 다음주부터 초·중·고에서 일제히 방학에 들어가면 이곳으로들 떠날 것이다. 이제는 피서가 하나의 생활 풍속도가 됐다. 하루 이틀이라도 가족과 함께 휴가를 안갔다 오면 신간 편하게 여름 넘기기가 힘들다. 호주머니 사정이 안좋아도 빚을 내서라도 휴가는 갔다와야 하는 연례행사가 돼버렸다.또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방학철에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 만큼 삶의 질을 높이는데 신경 쓰고 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란 말이 있지만 피서 가는데는 상관이 없다. 소득과 취향에 따라 피서법이 제각각이지만 그래도 산과 계곡이나 해수욕장을 찾는게 일반적인 피서법이다. 그러나 예전 선비들의 피서는 달랐다. 요산요수(樂山樂水)를 찾는 사람들이라 탁족(濯足)을 했다. 선비들은 몸을 노출하는 것을 꺼렸으므로 발만 물에다 담갔다. 탁족이란 말은 원래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서 나온 말이다.초나라 충신 굴원이 간신의 모함을 받고 쫓겨나 강가를 거닐며 비관하고 있을 때 마침 지나던 어부가 그의 형편을 물으며 다음과 같은 시 구절을 남긴데서 유래했다.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맹자(孟子) 이루장(離婁章) 상(上)에도 이 말이 인용됐다.여기서 말하는 탁족의 의미는 물의 맑음과 흐림이 그러하듯 인간의 행복과 불행이 스스로 처신과 수양 방법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옛날 선비들은 지금처럼 에어컨과 선풍기를 갖고 몸을 식히는 것에 비해 탁족을 즐기면서 등배자(藤褙子)토수(吐手)죽부인(竹夫人)목침(木枕) 지모(紙帽) 등으로 여름을 났다./ 백성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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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20 23:02

[오목대] 일하는 방식 쇄신 - 이경재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돈이 아니라 지식이 지배하는 사회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1909∼2005)는 저서 '넥스트 소사이어티'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지식기반사회에서는 돈을 지배하는 것보다 지식을 지배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지식'의 개념을 그는 "일하는 방법을 끊임 없이 개선· 개발· 혁신시켜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자장면 배달원이나 미화원, 회사원, 운동선수 등 누구든 일하는 방법을 개선· 개발· 혁신해서 자기 몸값을 높이는 사람이라면 지식인이다.반면 20년간이나 누렇게 변색된 똑같은 강의노트로 학생을 가르치는 대학교수가 있다면 그가 아무리 명문대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더라도 지식인이 아니다. 옛날 관행만 고집하는 부서장이나 CEO, 관리자 역시 지식인 대열에 들 수 없다.피터 드러커는 그러면서 '지식근로자'라는 중요한 키워드를 만들어냈다. 산업-정보-통신혁명에 이어 다가오는 지식혁명 시대에는 조직과 개인이 갖고 있는 지식이 경쟁력을 좌우하게 되고 지식근로자가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지식근로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일을 개선· 개발· 혁신함으로써 근속연수가 쌓일수록 부가가치도 높아진다. 따라서 언제든지 지금의 직장을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며 평생고용을 생각한다.반면 그저 시간만 때우고 봉급이나 기다리는 보통근로자는 부가가치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불황, 퇴출 등에 무기력하고 평생고용보다는 평생직장에 매달린다. 일하는 방식에 따라 천차만별의 근로자가 생성되는 것이다.최근 김완주 도지사와 도청 직원들이 '일하는 방식 쇄신 다짐대회'를 열고 일하는 방식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관행적인 회의 및 보고 줄이기 ▲회의방식 개선 ▲현장행정 활성화 ▲가족의 날 확대 ▲탄력적인 출ㆍ퇴근제 도입 ▲시간 외 수당 개선 ▲월례휴가 활성화 ▲유동정원제 시행 ▲사무 전결처리규칙 준수 등 쇄신방안도 내놓았다.아무리 뜯어봐도 진정한 일하는 방식 개선하고는 거리가 멀다. 도지사나 부서장이 마음 먹으면 해결될 일들을 놓고 굳이 다짐대회를 열면서 호들갑을 떠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런 전시행태를 개선하는 게 일하는 방법 개선이라는 걸 왜 모를까. /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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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19 23:02

[오목대] 마늘 왕국 - 장세균

마늘의 효능에 대해서는 일찍이 널리 알려져 왔다. 특히 남성들에게는 강장제로 애용되어왔다. 그러나 마늘냄새는 한국사람 말고는 일반적으로 외국인에게는 고통을 주는 악취였다. 일제시대때 한국 학생들이 벌을 받기위해 교무실로 끌려가게 될 때는 일부러 마늘을 입에 잔뜩 물고 가면 마늘의 독한 냄새에 기가 질린 일본 선생들이 벌을 못주고 그만 내보냈다고 한다.마늘냄새를 제거하고 마늘 엑기스만을 상품화하여 팔기도 한다. 마늘이 정력에 좋은 것은 미국에서도 증명이 되기도 했다. 팔순(八旬)에 이르도록 정력적인 활동을 과시했던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부인, 일리노어 여사는 기자들로부터 노익장의 비결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그녀의 대답은 간결했다. '비결이란 다만 남이 하지 않은 일을 해온 것이 있다. 수십년동안 마늘을 먹어온 것이 그것이다'고. 영부인의 이런 언급 때문인지 60년대에 미국에 일대 마늘붐이 일어났다고 한다. 먹기 좋게 만든 당의정(糖衣錠)을 영부인의 이름을 따서 '일리노어 타블렛'이라고 까지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미국에서 지난 70년대부터는 마늘이 위암과 간암에 좋다는 학설이 나오기 시작했고, 미국의 많은 암연구소가 마늘이 항(抗) 박테리아 효과를 갖는데다가 질산염이 아질산염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차단하여 암 발생을 억제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경제 잡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에서 마늘을 가장 많이 먹는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기사를 실은 적도 있다. 그 기사에 의하면 한국 사람은 연간 37만톤의 마늘을 먹고, 미국인은 7만톤, 남미가 14만톤, 프랑스가 7만1천톤, 서양에서 마늘을 가장 많이 먹는다는 스페인이 23만 5천톤, 한국 인구의 20배가 넘는 중국은 60만 2천톤에 불과하다. 그래서 한국은 마늘왕국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유럽의 유명한 괴기영화 '드라큐라'에서는 마늘이 마귀를 쫓는 방편으로 나왔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한국 최초의 여성인 웅녀(熊女)는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내용도 있다. 세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밤의 꿈'에서는 마늘을 또한 하층민의 냄새로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마늘의 효능을 일찍이 발견했던 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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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18 23:02

[오목대] 오수(獒樹)개 복원(?) - 조상진

"김개인(金蓋仁)은 거령현(居寧懸·임실군 지사면 영천리) 사람이다. 그는 개 한마리를 길렀는데, 매우 귀여워했다. 어느날 외출하는데 개도 또한 따라 나섰다. 개인이 술에 취해서 길가에 누워 잘 때 들불이 점차 번져 오게 되었다. 개는 곧 곁에 있는 냇물에 몸을 적셔 주위를 빙 둘러 풀과 잔디를 적시어 불길을 막아 놓고는 기운이 다하여 그만 죽고 말았다. 개인이 잠에서 깨어나 개가 한 자취를 보고는 슬프고 감동해서 노래를 지어 슬픔을 기록하고, 무덤을 만들어 장사 지낸 뒤에 지팡이를 꽂아 이것을 표했다. 그런데 이 지팡막대가 나무로 자라났기 때문에 그 땅을 이름하여 오수(큰 개 獒, 나무 樹)라고 했다.악보(樂譜)중에 견분곡(犬墳曲)이 이것이다. 사람은 짐승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만(人恥時爲畜)/ 공공연히 큰 은혜를 저버린다네(公然負大恩)./ 주인이 위태로울 때 주인 위해 죽지 않는다면(主危身不死)/ 어찌 족히 개와 한가지로 논할 수 있겠는가(安足犬同論)."이는 고려때 문장가 최자(崔滋)가 1254년에 지은 보한집(補閑集)에 실린 오수 의견(義犬)에 관한 내용이다. 일제 때부터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했다.임실에서는 이를 널리 알리고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기 위해 1999년부터 220억 원을 투자해 오수견 육성 및 관광지 조성사업을 벌여 왔다.하지만 이 가운데 12억 원을 들여 추진한 오수견 복원사업 및 육종사업이 전북도 감사에서 지적되었다. "오수견에 대한 실체가 없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추진했다"며 향후 목표 달성이 불투명해 보조금 지급을 중단토록 한 것이다.임실에서는 그동안 위원회를 만들어 각종 문헌과 민화, 고대 동북아지역 개의 혈통 등을 기초로 오수개가 '티벳탄 마스티프' 종이란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 같은 종 20여 마리를 수입, 복원에 나섰다. 2008년에는 9마리를 오수견으로 공식 지정까지 했다.그러나 복원된 오수견은 애견협회나 애견연맹 또는 세계축견연맹 등에 공식적인 오수견으로 등록하지 못했다. 정식견종으로 등록하기 위해선 복원된 개의 형태와 혈액 등이'티벳탄 마스티프'가 아닌 새로운 품종(오수견)으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이를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스토리텔링으로 훌륭한 소재지만 1000여 년전의 설화를 현실화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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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15 23:02

[오목대] 한국병 - 장세균

어느 나라든지 그 나름대로 속앓이의 문제점은 있다. 얼마 전에 미국 뉴욕타임즈가 한국을 가리켜 국가적으로 신경쇠약에 걸리기 직전의 상태라고 평한 바 있다. 한국의 높은 이혼율, 세계 제일의 자살률, 입시지옥, 지나친 폭음문화를 지적했던 것이다.한국의 이혼형태는 이제 황혼이혼까지 겹쳐, 세계 제일의 이혼 금메달국이 될 지도 모르겠다. 한국은 자살률이 세계 최고로 하루 평균 자살자가 3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 미수자까지 합치면 얼마가 될 지 모른다. 자살자가 많기로 유명했던 헝가리를 이미 앞섰다.더욱 가슴 아픈 대목은 한국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 제 1위인 것이다. 대학입시 지옥문 앞에서 스스로 자폭한 것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의 높은 교육열을 찬양한 바 있는데 그는 한국교육의 일면만을 보았던 것이다. 자녀들 조기유학을 위해 미국에까지 엄마가 따라와 뒷바라지 해주는 것을 보고 감탄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녀들의 조기유학 뒤에는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기러기 아빠'라는 또다른 존재를 모르고 판단한 것이다.또 그는 한국인의 자녀 공교육은 인성교육·도덕교육과는 거리가 멀며, 치열한 사교육 현상을 모르고 한국인 교육열을 예찬한 것이다. 한국교육은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출세(出世)하는 사람을 만들기위한 교육제도 일 뿐이다.출세자는 돈과 권력을 함께 소유하는 사람을 말한다. 한국인의 끝없는 탐욕은 한 분야에 성공한 것으로 만족치 못하고 남한테 왕처럼 군림 할 수 있는 출세자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이런 출세가도(出世街道)의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소위 서울의 SKY대학 입학을 목표로 학교공부가 끝난 후 저녁 10시까지 학원수업에 매달려야 하는 것이 또한 한국의 교육환경이다.그리고 폭음문화는 좀처럼 수그러지지 않을 것이다. 원래 전통 문화현상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법이 없다. 우리의 폭음문화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기에 여성들의 음주량이 많아지면서 폭음현상도 더욱 가열되었다. 경제성장 제일주의가 반드시 우리의 행복지수를 높여주지는 않는다. 이제는 호흡을 잠시 멈추고 어떤 형태의 사회가 이상적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겠다./ 장세균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1.07.14 23:02

[오목대] 뒷심 부족 - 백성일

외지인들이 전북 사람들을 좋게 말해 양반이라고 평한다. 농경사회가 주축을 이뤘던 시절에는 전북이 먹고 살기가 다른 지역에 비해 나았다. 징개 맹개 외야미뜰 같은 너른 평야가 있어 사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경상도 사람들까지 먹고 살려고 이곳으로 유입됐으니까 말이다. 의식이 풍족해서 여유가 생겨나다 보니까 자연히 풍류를 즐기게 된 것이다. 이게 요즘 말하는 '예향 전북'의 뿌리가 된 것이다.그러나 산업화에 뒤처지면서 반대로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이제는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정든 고향 산천을 등지고 떠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큰 공장이 없어 마땅한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꽤 오래됐다. 최근들어 현대중공업·동양제철화학·일진그룹 등이 대규모 투자를 하지만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요즘에는 투자 한다고 해서 즉시 약발이 나타나지 않는다.최근 LH유치 실패를 보면서 전북이 이대로 가선 안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순진무구하게 정부말만 곧이 곧대로 믿다가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전북 사람들은 머리가 영리하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단합이 안되고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남이 앞에 나서는 꼴도 못보고 뒤에서만 총질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나무 위에다 올려놓고 마구 흔들어대는 사람만 늘었다. 관 눈치나 잘 살피면서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고 잘 둘러대는 사람이 처세 잘하는 사람으로 통할 정도가 됐다.지역이 이렇게 된데는 정치력이 약해진데 연유한다. 중앙에 가서 누구 하나 큰 소리 한번 지를 사람도 없어졌다. 정치인의 강단과 기개가 사라졌다. 예전 같으면 유진산 이철승 송방용 윤제술 나용규 소선규 양일동 김판술씨 같은 쟁쟁한 정객들이 중앙 정치를 주름 잡았지 않았던가. 지금은 밖으로 뻗지 못하고 안으로만 쪼그라 들었다. 분통을 터뜨리고 싶어도 목에다 방울 달 사람조차 없다.전북인의 약점으로 뒷심 부족을 든 사람이 있다. 전북보다 뒤늦게 동계올림픽 유치에 뛰어든 강원도 평창이 3수(修) 끝에 영광을 거머쥔 것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합된 도민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중앙 정치권과 재계가 총 출동해서 지원해준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도민들의 뒷심이 강했다. 지금 김완주 지사부터 시작해서 국회의원·시장·군수 통틀어 결기와 강단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백성일 주필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1.07.1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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