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news
”여수에서 돈 자랑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 말고, 순천에서 인물 자랑 말라”는 얘기가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벌교 가서 주먹 자랑 하지 말라'는 말은 일제강점기 일본 순사가 벌교장에서 아낙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 안규홍 의병장이 순사를 한 주먹으로 때려눕힌 사건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보성 사람들의 패기에 놀란 일본의 두려움이 ‘벌교 가서 주먹 자랑 하지 말라’는 표현으로 굳어졌다고 보성군은 설명했다. 바로 아래에 있는 고흥반도에서 내륙으로 진출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벌교였기에 내로라하는 주먹들도 벌교에 와선 명함조차 제대로 내밀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 체육계에서 진짜 힘센 사람들은 고흥이 대표적이다. 프로레슬러 김일, 프로복서 유제두와 백인철, 축구선수 박지성, 김태영, 김영광 등 셀수 없이 많다. 체육계뿐 아니라 각 분야에서 한때 어깨에 힘 좀 줬던 사람들 중 고흥반도 출신은 의외로 많다. 강기정 현 광주시장, 송영길 전 민주당대표, 박상천 전 법무부장관, 장세동 전 안기부장, 화가 천경자, 언론인 추성춘씨 등 일개 군단위 치고는 유명 인물들이 매우 많은 편이다. 고흥군은 1966년 23만여명에 달했으나 이후 급감하면서 지난해말 현재 6만1113명으로 떨어졌다. 전북의 시군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흥을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게 있으니 바로 프로레슬러 김일이다. 스승인 역도산에게서 기량을 익힌 그는 자이언트 바바, 안토니오 이노키 등과 더불어 1960~70년대 프로레슬링의 인기를 주도했던 3인방중 하나다. 좌절과 패배에 빠져있던 어렵던 시절, 구척장신 외국의 유명 레슬러를 통쾌한 박치기 하나로 쓰러뜨리는 장면에 국민들은 환호하고 열광했다.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레슬링 가운을 입고 등장하는 김일의 모습은 전율, 그 자체였다. 그의 고향인 고흥군 거금도에는 ‘김일 기념체육관’이 있는데 여기엔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레슬링 가운이 전시돼 있다. 그런데 진짜 김일의 아름다운 인간적 면모는 지극한 고향사랑이다. 1960년대 말, 열성 팬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김일 선수를 청와대로 자주 초청했다. 어느 날, 박 전 대통령은 “임자, 소원이 뭔가”라고 물었다. 당시만해도 밤엔 등잔불에 의존해 김을 따야할 정도로 상황은 열악했다. 김일은 “고향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주민들이 김 수확에 어려움을 겪고 제 레슬링 경기를 TV로 볼 수 없다”며 소원을 얘기했다. 불과 반년 뒤 거금도에는 제주도를 제외하곤 전국 섬에서 맨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다. ‘역사(力士)의 고장’ 고흥군이 고 김일(1929~2006)을 기리는 동상을 세운 것은 다 이런 고향사랑에 대한 보은의 의미가 담겨있다. 18일 전북특별자치도가 출범한다.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또 한편으로 고향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실천하는 특별도민이 쏟아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그게 바로 전북특자도 출범을 지켜보는 도민들의 희망이자, 기대가 아닐까.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등단의 문을 통과하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절차다. 해마다 가장 먼저 찾아오는 등단 관문은 신춘문예다. 올해도 여러 개 일간지가 신춘문예를 통해 오랫동안 등단의 열병을 앓아온 문학도(?)들에게 기쁨을 안겼다. 신춘문예의 역사는 길다. 신춘문예 시원은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다. 매일신보는 1914년, 문학작품을 공개 모집해 당선작을 뽑는 ‘신년문예모집’ 공고를 냈다. 신춘문예와는 이름도 다르고 형식도 다소 달라 신춘문예 역사의 정통 갈래로는 분류되지 않지만, 매일신보의 시도는 문학작품 현상공모를 확산하는 기반이 됐다. 본격적인 신춘문예는 1925년, 동아일보가 처음 문을 열었다. 첫해 당선작은 아동문학가 윤석중과 시인 김창술을 비롯해, 소설과 시, 동화 부문의 일곱 명 신작이었다. 김창술은 전주 출신이다. 1920년대 활발한 시작 활동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그의 생애나 문학 세계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은 연말에 공모해 새해 첫날 당선작을 발표하지만, 당시에는 연초에 공모해 3월에 당선작을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봄이 열리는 3월에 당선작을 발표하는 특성을 살려 공모 사업 이름을 ‘신춘문예’로 붙였을 터인데 형식이 달라진 지금도 이름을 지켜가고 있으니 그 자체로 고유명사가 된 셈이다. 동아일보의 뒤를 이은 것은 1928년에 시작한 조선일보 신춘문예다. 당시 수많은 잡지가 창간과 폐간을 거듭하면서도 문예 작품을 공모해 발표 공간을 넓히고 있었지만, 일간지 신춘문예는 그들과는 또 달리 파급효과가 커서 인기가 높았다. 그 세에 힘입어 50년대부터는 서울신문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등이 뒤를 이어 신춘문예를 만들었다. 전북일보도 그즈음 신춘문예를 운영했으나 60년대에 중단했다. 지금의 신춘문예는 1988년 말, 새롭게 형식을 다시 갖추어 부활시킨 것이다. 올해 전북일보 신춘문예는 시와 소설, 수필과 동화 부문에 네 명의 신인을 배출했다. 당선자들은 모처럼 성별도 연령대도 다양하다. 문학 인구의 층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가 우선 반갑지만, 뜻밖에도(?) 심사평은 고르지 않다. 심사위원들은 오랫동안 갈고 닦은 글쓰기 공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글의 본질보다는 화려함에 무게가 쏠려 있는 문장을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얼어붙은 마음을 열어 주는 작품을 많이 써달라’는 주문도 있다. 문학의 진정성보다 작가가 되겠다는 과도한 열망이 앞서는 환경에 대한 우려일 것이다. 돌아보니 어지러운 시절, 정신적 위안을 주는 문학의 힘이 새삼스러워진다. 새롭게 출발하는 신춘문예 작가들의 분투를 기대한다./김은정 선임기자
‘올해엔 몇 명일까?’ 새해 벽두, 농촌학교의 관심사는 단연 입학생 수다. 학교의 명운이 달려 있으니 가슴을 졸일 수밖에 없다. 인구절벽 시대, 교육청에서도 학교별 입학예정 아동 수를 집계하면서 촉각을 세운다. 전북교육청의 ‘2024학년도 초등학교 예비소집’ 자료에 따르면, 올해 도내 취학대상 아동은 1만1523명이다. 해마다 그 수가 큰 폭으로 줄면서 1만명 선 붕괴가 눈앞이다.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작은 학교도 늘었다. 전북에서 새해 신입생이 아예 없는 초등학교가 32곳, 단 1명인 학교가 37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임실 덕치초등학교와 완주 봉동초등학교 양화분교가 눈에 띈다. 최근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농촌유학’이 태동한 곳인데도 학교에 유학생이 사라진 지 오래다. 게다가 올 입학생은 1명뿐이다. 섬진강변 작은 학교인 임실 덕치초에서는 2006년 도시 학생들이 전학 와서 공부하고 돌아가는 ‘섬진강 참 좋은 학교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또 2007년에는 한 시민활동가가 완주 봉동초 양화분교와 연계해 산촌유학센터를 운영하면서 농촌유학의 모델을 정립했다. 당시 폐교 위기에 몰린 시골 작은 학교의 학생수가 갑자기 늘면서 이들 학교는 농촌 작은 학교 활성화의 모델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마침 농촌학교의 위기가 사회문제로 떠오른 시점이었다. 전북도가 즉각 도정에 반영했다. 2012년 ‘농촌유학 1번지’를 선포한 뒤 전국 최초로 ‘농산어촌유학 지원 조례’를 제정했고, 농촌유학지원센터도 설립했다. 하지만 반짝 성과에 그쳤다. 동력을 이어가지 못해서다. 그렇게 잊혀져가던 농촌유학 정책이 최근 부활했다. 민선 8기, 전북교육청이 적극 나섰다. 2022년 서울시교육청, 전북도, 재경전북도민회와 ‘농촌유학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서울 등 도시지역 학생을 유치했다. 새해에는 도내 13개 시·군, 31개 학교에서 농촌유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농촌유학 운영 학교와 참여 학생수가 대폭 늘었다. 그렇다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기상황에서 나온 비상대책이다. 차분하게 짚어보면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교육을 통한 귀촌’을 슬로건으로 내걸었지만 사실상 기대하기 힘들다. 오히려 농촌학교가 도시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수도권 아이들을 위한 대안교육기관이나 생태체험학습장으로 인식될까 걱정이다. 그것도 농촌지역 교육청과 지자체에서 그들에게 매월 50만원의 체재비까지 지원해주면서 말이다. 지속가능성도 문제다. 전북교육청이 농촌유학 정책에 다시 불을 지폈지만 정작 이 정책의 산실인 임실과 완주의 두 학교는 참여하지도 못한 채 다시 위기를 맞았다. 농촌유학 프로젝트가 흐지부지되면서 그 기반과 동력을 진작 잃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농촌유학이 서울 등 도시 아이들이 아닌, 농촌과 지역사회 작은 학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할 때다. / 김종표 논설위원
갑진년 청룡의 해를 맞아 오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시대가 열린다. 전북은 도제(道制) 마지막 해에 생각지도 못했던 시련을 당해 도민들이 실의에 빠졌다. 법치주의를 실시하는 나라인 만큼 잘잘못은 권한과 책임에 따라 가려질 것이다. 일부 보수정치인들의 선동에 보수언론이 장단을 맞춰가며 춤추는 바람에 전북이 올해 국가예산을 확보하느라 애를 먹었다. 해마다 늘어가는 것이 국가예산인데 전북은 사상초유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를 기록해 과연 이 나라에 속한 게 맞느냐는 장탄식이 터져 나왔다. 특별자치도는 특례조항이 많아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과거보다 많아졌다. 호남권에 묶여 독자적으로 지역개발을 못했던 전북이 독자적으로 지역개발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능력만 닿으면 얼마든지 기업유치를 통해 지역개발을 앞당겨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우리의 생각을 말끔하게 새롭게 정비해 특자도민으로서 더 진취적이고 더 민주적이고 더 열정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잼버리 실패사례에서 보았듯이 무한경쟁시대에 그 누구 하나 도와주는 게 없고 오직 자기 스스로가 역경을 헤쳐 나가면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이제 전북은 더 이상 두렵거나 무서울게 없다. 산업화에 소외되면서 산업생태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해 1인당 총생산량에서 전국 최하위에 맴돌고 있지만 새만금에 이차전지특화단지가 조성되면서 기지개를 켰다. 지난 한 해동안 10조 원에 이르는 투자유치를 한 것도 전북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암시한다. 김관영 지사가 주창한 도전경성(挑戰竟成)과 백년대계(百年大計)란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역사학자 토인비의 말처럼 전북도 도전과 응전의 역사가 시작, 새로운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지금 전북은 특자도시대를 맞아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다가오는 22대 총선결과가 전북특자도의 전환점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전북정치권의 힘이 부족해 전북 몫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지금 국회의원들을 우리들이 잘못 뽑았다는 게 증명되었다. 이런 무능력한 사람들을 다시 뽑아주면 절대로 안된다. 물갈이가 나오지만 이번 만큼은 전북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에 책임 추궁 차원에서 전체를 갈아 엎어야 한다. 인정에 사로잡혀 연고주의에 얽매여 또 다시 무능력한 사람들을 다시 국회의원으로 뽑아주면 특별자치시대에도 가망이 없게 된다. 이재명 대표의 피습사건으로 민주당 지지도가 더 견고해졌지만 옥석구분을 잘 해야 한다. 지역주민은 바라다보지 않고 당 대표만 쳐다보는 정치인은 해바라기 정치인인 만큼 팽시켜야 한다. 대세를 거스를줄 모르고 무작정 예스맨 역할만 하는 소신없는 사람도 도태시켜야 한다. 문재인 전 정권 때 좋은 기회를 못살리고 자기 보신하기에 급급한 사람도 더 기회를 주면 안된다. 여기에 시·도의원을 독려해서 무작정 유급당원만 늘리고 관리해온 사람은 능력이 없기 때문에 1차적으로 컷오프시켜야 한다. 특자도 시대를 맞아 전북 홀로서기가 성공하려면 특자도민들이 선택을 잘해야 한다. 모든 게 특자도민들 손에 달려 있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전주상공회의소가 다음달 회장 선거를 앞두고 내홍에 휩싸여 있다. 윤방섭 회장의 재출마 움직임에 일부 회원들이 제동을 걸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2021년 선거 뒤 회장 직무 정지 사태와 관련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약속한 재선 불출마를 이행하라고 압박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에 반발해 윤 회장 측 입장을 엄호 사격하는 측과 팽팽히 맞선 가운데 전운이 감돌고 있다. 오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을 앞두고 도민 모두가 재도약 의지를 불태우는 상황에서 경제계를 대표하는 전주상의 집안 싸움이야말로 이런 분위기에 역행하는 모양새다. 새만금 예산 문제 등 전북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 국면에서 누구보다 이를 타개하는데 앞장서야 할 입장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끝없이 추락하는 지역 경제 현실을 감안하면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는 이들의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문자 그대로 상공인들의 단합과 이익 도모를 위한 구심체인데 되레 갈등 양상을 노출함으로써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꼴이다. 마치 정치 집단처럼 권력 주도권 잡기에 몰두하는 양상을 보여 상공회의소 이미지만 훼손되고 있다. 속사정이야 모르긴 몰라도 회원들 대부분은 경기 침체 장기화로 피를 말리는 고통의 연속이다. 그들 스스로가 머리를 맞대고 돌파구 마련을 위한 숙고를 거듭해야 할 처지다. 이번 사태도 따지고 보면 지난 3년 전 회장 선거에서 무더기 회원 가입에 따른 불공정 논란이 발단이다. 법원 판결에 따른 회장 직무 정지가 장기간 이어지자 소송당사자 측은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 밀실 합의를 통해 갈등을 봉합한 바 있다. 지난 2017년 전주 신시가지에 새 건물을 지어 이전할 때만 해도 전주 상의에 대한 기대감은 남달랐다. 사실상 지역 경제를 이끄는 만큼 그 위상에 걸맞는 역할과 존재감을 갈망했다. 이에 부응해 최근까지도 지역 현안 해결에 경제계 목소리를 대변하고, 실질적 2인자인 사무처장에 도청 국장급 인사를 수혈함으로써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회장 선거에선 파벌이 형성돼 진흙탕 싸움을 방불케 하며 정치인 선거 뺨친다고 비아냥을 듣는다. 과거 상공인 화합을 해칠 수 있다며 합의 추대 방식으로 치렀던 선거와는 딴판이다. 이 때문에 제대로 된 선거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채 갈등 양상만 노골화됐다. 심지어 회장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와 일부 지지자들이 회원을 탈퇴하는 볼썽사나운 모습까지 연출됐다. 대기업과 타지 업체들이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지역 경제를 잠식하는 상황에서 토종 업체의 홀로서기는 점점 힘들어 보인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움직임이 개선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은 데다 브랜드파워의 마케팅 능력까지 장착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악조건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지역 업체 보호에 힘써야 할 전주 상의가 오히려 자중지란에 빠지면 설 자리는 좁아지기 마련이다. 지역 업체 몫만 외칠 게 아니라 스스로 하청 조건이라도 충족시키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영곤 논설위원
조합원 직선제로 오는 25일 치러지는 제25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의 최종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10∼11일 이틀간 후보등록에 이어 12일부터 본격적인 레이스가 펼쳐진다. 250만 농업인을 대표하는 ‘농민 대통령’인 농협중앙회장은 4년 임기에 30억원이 넘는 보수와 전국 5000여 개가 넘는 농협조직의 사업과 예산을 총괄하는 자리의 주인공이다. 간선제로 중앙회장을 선출한 과거와 달리 이번 선거는 조합장 등 1111명의 선거인이 중앙회장을 직접 선출한다. 조합원 수 3천명 미만 조합은 1표, 3천명 이상 조합은 2표를 행사해 전국적으로 총 1252표가 승패를 가른다. 예비후보는 무려 11명이나 됐다. 대부분 농협조합장 출신이나 총선 출마 경험이 있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농업회사법인, 농협중앙회 임직원 등 다양한 경력의 후보자들이 나섰다. 예비후보 11명은 △강호동(63년생·율곡농협조합장) △구정훈(61년생·옥과농협조합장) △송영조(56년생·부산금정농협조합장) △서석조(52년생·북영덕농협조합장) △이찬진(60년생·전 국회의원 출마) △임명택(56년생·전 농협중앙회 근무) △정운진(59년생·농업회사법인 우주 대표) △정병두(64년생· 전 국회의원 출마) △조덕현(57년생·동천안농협조합장) △최성환(56년생·부경원예농협조합장) △황성보(55년생·동창원농협조합장) 등 이었다. 요즘 화두는 충청권 대망론, 영남권 대망론이라고 한다. 영남권대망론의 선두주자는 현재로서는 강호동 예비후보다. 지난 선거에서 3위를 했기에 일단 지명도 측면에서 유리해 보인다. 또한 경남권 후보중 한명인 송영조 부산금정농협조합장 역시 막강한 다크호스로 꼽힌다. 이에 맞설 충청권 대표주자는 조덕현 충남 동천안농협 조합장이 돋보인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충청 출신 중앙회장 선출에 대한 기대를 한몸에 받고있다. 실제로 충청권에서는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충청 민심이 '충청의 아들'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켰다며 30여년 만에 충청권 출신 회장 탄생을 기대하는 눈치다. 호남, 충청, 경기 등 서부권 벨트의 지지세를 모으면서 급부상한다는 전언이다. 아쉽게도 호남대망론이나 전북대망론은 선택지에 아예 없다. 역대 대선때 이철승, 유종근, 정동영, 정세균씨 등이 전북대망론을 등에업고 레이스를 펼쳤으나 모두 실패했다. 농민대통령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도 전북 출신 후보는 아쉽게도 없다. 4년전 선거때 2위를 했던 유남영 후보(정읍농협조합장)가 권토중래, 재도전에 나섰으나 자금부족, 세부족을 이유로 뜻을 접었다. 전국단위 선거여서 30억원 이상이 필요하고, 지지세 역시 중요한데 전북 조합장들중에는 자신의 입지를 염두에 두고 지역 출신 후보를 외면한 것이 유남영 후보의 중도포기 사유라고 한다. 전북 표심은 조덕현 쪽에 많이 쏠리는 분위기인데, 강호동, 송영조 쪽에 붙는 조합원들도 상당수에 달해, 최종적으로 어느쪽에 힘을 실어줄지가 선거 결과에 중대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2011년 G20 정상회의를 홍보하는 공식 포스터가 훼손되는 사건이 있었다. 두 명 작가가 그려 넣은 쥐 그림 때문이었다. 이들은 공용물건손상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만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재판부의 양형 이유였다. 2년쯤 뒤, 서울과 인천의 지하철이 외국 ‘그라피티(graffiti, 건물의 벽 등에 마치 낙서처럼 긁거나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 작가들의 습격을 받았다. 지하철이나 열차에 그림을 그려 넣는 ‘트레인 바밍(Train bombing)’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수많은 그라피티 작가들이 활동했던 외국 지하철은 이미 포화상태였지만, ‘누구도 손대지 않은’ 한국의 지하철은 그만큼 매력적인 ‘캔버스’였다. 지하철에 그림을 그려 넣기 위해 외국 작가들이 지하철의 환풍구를 뜯어내고 침입하자 이를 막지 못한 한국 지하철의 허술한 보안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지만, 이를 계기로 국내에도 그라피티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라피티는 일반적인 벽화와는 영역이 다르다. 그라피티 대부분은 허락받지 않은 작업이다. 신분을 숨기고 도시의 공공장소를 찾아다니며 자신만의 언어로 사회적 메시지를 남기는 그라피티 작가들의 작품은 일종의 ‘예술이 된 낙서’다. 그라피티로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작가는 영국의 영화감독이기도 한 뱅크시다. ‘얼굴 없는 거리 예술가’로 알려진 그의 작업 역시 대부분 위법(?)이다. 그러나 권력과 제도에 저항하며 시의성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자유롭고 도발적인 언어로 담아내는 그의 그라피티는 독창적인 예술의 영역을 구축했다. 이제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시장에서는 그의 작품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고, 도둑 전시로 습격받은 미술관조차 그의 작품을 영구 소장하겠다고 결정할 정도다. 런던에서는 뱅크시가 그린 그라피티를 돌아보는 투어까지 생겨났다. 지난 연말, 경복궁 담장이 낙서로 훼손됐다. 낙서범들은 어이없게도 SNS로 범행 지시를 주고받은 10대들이다. 이틀 뒤에는 경복궁 다른 쪽 담장을 낙서로 훼손하는 모방 범행이 이어졌다. 이 낙서범은 자신의 낙서에 예술 행위를 운운했단다. 미술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은 그라피티에 대한 왜곡이다. 놀라운 것은 경복궁을 비롯한 여러 궁궐 곳곳이 이미 낙서로 도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반달리즘(vandalism)은 문화유산이나 공공예술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다. 인류 역사상 반달리즘의 뿌리는 깊다. 그 대부분이 인간의 무지와 욕심에서 비롯된 약탈과 파괴다. 둘러보면 여전히 반달리즘의 폐해가 많다. 그라피티를 내세운 반달리즘도 적지 않다. 올바른 인식의 확산이 절실해졌다. / 김은정 선임기자
사실 ‘꿩 대신 닭’이었다. 놓쳐버린 꿩은 화려하게 비상했는데, 꿩 대신 잡아놓은 닭은 횟대에 앉아 날갯짓이 없다. 1997년 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무주군과 전북도는 곧바로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섰다. 지역의 명운을 걸었다. 하지만 국내 후보지 경쟁에서 평창에 잇따라 미끄러졌다. 그리고 2004년 연이은 좌절의 끝에서 태권도원(당시 태권도공원) 유치에 성공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빅딜설이 파다했다. 평창이 국제무대에서 고배를 마시고 재도전에 나서면서 전북이 발끈했다. KOC의 중재로 성사된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 신청은 평창이 단독 제출하고, 2014년 대회 유치 신청은 전북이 우선권을 갖는다’는 합의를 강원이 파기한 것이다. 21세기 초 부안 방폐장 사태, 새만금사업 법정다툼 등으로 혼란 속 상실의 늪에 빠져 있던 전북은 10년 넘게 공들인 동계올림픽마저 어이없게 무산되자 쌓인 울분을 쏟아냈다. 도민총궐기대회까지 열었다. 평창의 재도전에 힘을 실어준 정부가 이 같은 반발을 의식해 태권도원 경쟁에서 무주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어쨌든 2004년 말 동계올림픽 국내 후보지(평창) 발표가 있었고, 1주일 뒤 태권도원 후보지로 무주가 최종 선정됐다. 전북도와 무주군은 빅딜설을 일축했지만, 결과적으로 올림픽 대신 태권도원을 얻었다. 동계올림픽 무주유치추진협의회는 해산을 결정하면서 ‘태권도원을 유치해 무주와 전북에 희망의 불을 지폈다는 데 위안을 삼는다’고 했다. 태권도원은 그로부터 꼭 10년이 지난 2014년 개원했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흘렀다. 그 사이 태권도원은 산골 무주에 새로운 꿈을 꾸게 했다. 지구촌 태권도의 성지로 날아오르는 용꿈이다. 기대가 컸다. 하지만 실망의 연속이다. 민자유치 사업이 청사진에 그치면서 태권도원은 제 모습을 갖추지 못했고, 관련 기관 및 단체 이전·집적화 계획도 전혀 진척이 없다. 세계태권도연맹(WT) 본부 유치를 기대했지만 무주는 도전조차 하지 못했다. 연맹의 본부 이전 계획을 아예 몰랐다고 한다. WT 본부는 무주와 태권도원 경쟁을 벌였던 춘천에서 유치했다. 이후 춘천은 태권도 종주도시임을 자처하면서 각종 국제대회를 잇따라 유치했다. ‘태권도 성지화’를 외쳐왔던 전북도와 무주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됐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의 공약인 국제태권도사관학교 건립 사업마저 논란이다. 새해 국가예산을 한푼도 확보하지 못해서다. 21세기를 열면서 동계올림픽 유치에 쏟아낸 도민의 염원이 허무하게 무산되고, 그 눈물과 울분을 어렵사리 희망으로 바꿔낸 게 개원 10주년을 맞은 태권도원이다. 그런데 태권도원 조성을 계기로 추진한 ‘태권도 성지화’ 사업이 표류를 거듭하고 있다. 지역사회 상실과 희망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태권도원, 그리고 태권도 종주도시로서 새 역사를 써야 할 무주가 전북도민에게 다시 상실감을 안길까 걱정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어쩌다가 전북이 깊은 수렁에 빠졌는가. 지금 수렁에서 빠져 나오려고 바등 거리지만 맘 같이 잘 안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전북정치권이 중앙정치무대에서 힘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정치는 독립변수라서 정치적으로 힘이 없으면 개인이나 조직이나 무력해질 수 밖에 없다. 정부 수립이후 전북은 처음으로 국가예산을 확보하면서 치욕스런 결과를 맛보았다. 지난해보다 국가예산 총규모가 2.8%가 SOC는 4.6%가 증가했지만 전북은 마이너스를 기록, 광역단체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전북 보다 인구가 적은 강원도도 10조 원에 접근했고 모든 시도가 긴축재정 상황 속에서 선전, 현안을 해결했다고 난리법석이다. 전북이 지난 한 해동안 새만금에 10조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선전했다. 막판 예산심의 때 여야 협치로 새만금에 3000억 원을 증액시켰다고 플래카드를 부쳤다. 출향인사까지 합쳐 국회의사당에 가서 도민총궐기대회를 한 결과치고는 너무 초라한 성적표다. 전북 정치권은 그 정도 확보한 걸 놓고 공치사 하기에 바빴다. 21대 전북 현역의원들이 의정활동을 한 것을 보면 역겨움이 절로난다. 저런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도민들이 오히려 측은해 보일 정도다. 지금 당장 도민들이 외국에 가고 싶어도 신고 나설 신발이 없다. 그 이유는 공항이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시대에 공항이 없으면 외국 바이어들이 기피한다. 전북도가 10조 원대의 투자유치를 새만금에 했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지금 공항이 없어 실제투자로 연결될지는 더 지켜봐야 안다. 도민들은 새만금 공항관련 예산이 확보되었다고 자랑하는 정치권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된다. 세워진 370억원도 국토부에서 적정성검토 결과가 잘 나와야 토지매입비로 사용할 수 있다. 또 한덕수 총리가 말한 빅피쳐에서 공항건설계획이 축소되거나 빠지면 상황은 난감해질 수 밖에 없다. 국힘이나 민주당은 선거를 앞두고 마치 공항이 건설될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지만 갈길은 어둡고 컴컴하다. 김경안 새만금개발청장이나 국힘 정운천 의원이 새만금공항건설에 속도조절론을 말하면서 신항만을 우선 개발해야 한다는 말은 시사한 바가 크다. 후발주자인 전북이 생각지도 않게 새만금을 이차전지 특구로 지정 받은 것이나 인천으로 유치가 거의 확정된 '한상대회' 를 전북으로 유치한 것은 김관영 지사의 개인기에 의존한 뚝심의 개가였다. 하지만 김 지사가 전방위로 뛰어도 바쳐주는 정치권의 힘이 약해 특자도 출범이 결코 장밋빛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각에서 중앙정부가 재정권을 틀어 쥐고 있어 특자도도 조례를 법으로 명시한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는 사람도 있다. 원래 특자가 붙으면 특별한 것이 아니라서 마냥 기뻐만 할일이 아니다는 것. 올 총선 때 역량있는 인물을 뽑지 않으면 전북낙후는 '백년하청'이 된다. 지난해 잼버리를 잘못 치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것도 결국은 국회의원을 잘못 뽑았기 때문이다. 지금 현역을 한번 더 뽑아준다고 나아질 기미가 없기 때문에 이번에 갈아 엎을 때 사정없이 판을 갈아 엎어야 한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남원 공공의대가 이번에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옛 서남대 의대 정원 49명을 활용한 관련 법안이 지난 연말 법사위에서 좌절됐다. 여야 합의 사항이 아니면 통과 자체가 어려운 법사위 불문율을 감안할 때 무작정 밀어붙인다고 될 일도 아닌데 왜 자꾸 희망 고문만 하는 것인지 마뜩지 않다. 상임위 통과를 애드벌룬처럼 띄워 여론전을 펼쳤지만 결국엔 실패했다. 20대 국회에서도 숱한 과정을 거쳤지만 고비를 못 넘기고 급기야 자동 폐기되는 아픔까지 겪었다. 추진 과정도 간헐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이 법안에 대한 본래 취지가 크게 퇴색한 느낌이다. 지역구 의원 전체가 불퇴전의 각오로 응집력을 발휘해도 결코 장담하기 힘든 상황에서 뭔가 뒷심이 부족한 모양새다. 일각에선 선거를 앞두고 의원들이 면피용으로 선전 효과만을 노린 것은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간 공공의대 입법 과정을 되짚어 보면 전북 정치권의 역량과 한계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이번 경우에도 정부 여당 반대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최대 관문인 법사위 통과는 사실상 어려워 보였다. 번번이 실패한 경험이 있던 터라 정부 여당을 상대로 사전에 최소한의 조율이 전제돼야 한다. 물론 법사위 규정상 본회의 직행 가능성이 남아 있어 불씨는 여전하지만 이런 문제는 떠들썩하게 기자회견을 통해 분위기를 몰아가면 역효과를 내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것이 공공의대가 자치단체의 먹잇감으로 둔갑, 전국 10곳 이상이 노리는 까닭이다. 과거 공공의대 남원 개교를 2024년으로 공식화하고 집권 여당으로 국회 다수 의석을 확보했음에도 '민주당 찬스' 를 놓친 때와는 전혀 딴판이다. 공공의대는 지방의 의료 공백과 맥락이 같다. 수억대 연봉을 보장해도 의사들의 도시 선호 현상 때문에 지역의 의료 현실은 암울한 지경이다. 필수 의료 과목 진료는커녕 응급실 환자도 제때 치료를 못 받는 실정이다. 오죽하면 정부가 나서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해 의료 사각지대를 줄여 나가겠다고 천명했다. 이런 가운데 이달부터 남원의료원에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의사가 파견돼 환자 진료를 보게 된다. 전라북도와 업무 협약에 따라 안과, 감염내과 의사들이 매주 한차례 방문해 의료 공백을 메울 예정이다. 전체 의사 30%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지방 의료 공백의 대안으로 공공의대 역할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더욱이 농촌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그에 따른 환자 비중도 급격한 증가추세다. 이 같은 의료 악순환 구조를 뻔히 알면서도 지금 상태에선 극약처방조차 쉽지 않다. 갈수록 당위성이 커지는 공공의대 법안의 추진 동력을 되살리기 위해선 무엇보다 의원들의 원팀 정신과 전투력 무장이 급선무다. 21대 국회 회기 마지노선인 5월까지 법안 통과의 히든 카드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지역구 의원 10명의 몫이다. 총선 출마의 전제조건으로 인식하고 막판 반전 드라마를 기대한다. 김영곤 논설위원
김동연 경기지사는 3일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를 위한 총선 전 주민투표가 사실상 무산된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통해 커다란 아쉬움을 표시했다. 경기도의 경우 이미 서울보다 더 커진데다 상대적으로 낙후지역인 북부권에 대한 배려 등의 이유로 그동안 야심차게 북부특자도 추진에 주력해왔으나 총선전 투표가 무산된데 따른 소회를 피력한 셈이다. 그는 특히 "여야를 막론하고 경기북부 지역에서 총선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이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를 공통 공약으로 내걸고 민의를 확인받도록 하겠다"며 "특별법 제정을 관철해 35년 동안 정치적 손익에 따라 호출됐다 사라지기를 반복한 희망 고문을 끝내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경기도의 사례는 만일 전북특별자치도가 무산됐더라면, 또는 법 개정에 실패해 허울뿐인 전북특자도로 남게됐다면 얼마나 아쉬움이 컸겠는지를 잘 보여준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고 단지 지금부터 도전할 기회가 전북특자도민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에 불과하지만, 경기북부특자도의 무산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런데 오는 18일 전북특자도 출범을 앞두고 전북도, 도교육청, 도내 대학들이 하루빨리 해야할게 있다. 지극히 사소한듯 해도 전북바로알기 교과목을 당장 운용해야 한다는 거다. 타 시도의 경우 벌써 수년째 대학에서 지역 애착심 고취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곳이 있으나 전북의 경우 대학 이전 단계에서 일부 사회과목에 지역 관련 프로그램이 조금 포함된 정도다. 전북이웃청년웰컴활동 지원사업의 경우 전북 신규 전입청년과 학업이나 직장 등의 이유로 도내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지역활동 참여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에 대한 애착심을 갖도록 하고 있으나 이것으론 부족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도내 10개 종합대학, 9개 전문대학, 2개 기능대학에서 가칭 전북바로알기 교양 교과목을 개설해 운용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례로 전북현대를 들어보자. 전북현대 인스타 공식팔로워 수는 무려 23만5천명이나 된다. 1천만명의 도시를 연고로 하는 FC서울은 6만8천명, 2년 연속 우승팀인 울산현대가 9만8천명인 것과는 큰 대조를 보인다. 전북현대가 좋아 전북을 찾거나 심한 경우 진학을 전북으로 하는 학생까지 있는 것을 보면 ‘전북의 스포츠산업과 전북현대’를 주제로 한 강의를 전북바로알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도입하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다. 지난해 5월 전북대는 ‘전대인의 날’ 행사를 통해 경기관람을 실시했는데 이후 찐팬이 되고 지역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지역에 대한 애착심 고취를 통해 청년들의 지역정착을 유도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상당수 지역에서 시행중인 청년들에게 사소한 금전적 혜택을 주는 것은 청년 인구유출을 일시적으로 늦추는 언발에 오줌누기식 정책에 불과하다. 청년들이 지역을 제대로 알고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심을 갖게하는것, 그게 바로 전북특자도 성공의 첫 걸음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문을 닫는 학교가 늘어간다. 폐교의 위기는 소멸 위기에 놓인 농어촌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폐교 소식이 들릴 때면 취재로 찾았던 학교가 생각난다. 2006년 2월 문을 닫은 고창 무장면 만화리에 있던 신왕초등학교다. 2월 졸업식이 끝나면 문을 닫게 되는 시골 초등학교의 풍경은 쓸쓸했다. 전교생이라고 해야 열 명. 여섯 명이 졸업하고 나면 네 명 아이들만 남게 된 신왕초등학교는 그해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그동안 열 명 아이들은 두 개로 나뉜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다. 6학년 누나 형들과 함께 공부해야 했던 4학년 득주는 ‘친구가 없어 재미없겠다’고 말을 붙이자 ‘형들과 노는 것이 더 좋았다’고 했다. 같은 교실에서 공부한 2, 3학년 세 명도 싸우지 않고 형제처럼 잘 지냈다. 그해 전북에서는 초등학교 세 개가 문을 닫았다. 그중 하나인 신왕은 10여 년 전부터 통폐합 대상이었지만 ‘학교 지키기’에 나선 주민들의 열정으로 간신히 명맥을 이어왔던 터였다. 그러나 2005년, 1학년 입학생이 끊기자 주민들도 결국 손을 들었다. 폐교를 받아들이는 의견서를 교육청에 제출하면서 교사들은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선물이 없을까 고민했다. 신왕초등학교 30년의 기록이 만들어졌다. 마지막 졸업식을 앞두고 발간된 ‘여시뫼봉의 얼이 담긴 신왕교육 30년’은 100여 쪽. 화려하진 않았지만 70년대 중반, 학교가 문을 열자 아이들이 먼 거리를 걸어 다니지 않고도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돼 기뻐하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부터 30~40대 중년이 된 어른들의 어린 시절이 담긴 빛바랜 흑백사진, 신왕을 거쳐 간 632명 졸업생 명단까지 크고 작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교사들은 자료를 찾고 사진을 수집하느라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했지만 ‘아이들이 성장해서도 어릴 적 꿈을 가꾸었던 초등학교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그해 2월 16일 오전 10시. 급식실을 꾸며 만든 졸업식장은 끝내 울음바다가 됐다. 농촌의 아름다웠던 초등학교는 그렇게 소중한 이름을 잃었다. 올해도 초등학교와 중학교 아홉 곳이 문을 닫는다. 전국에서 가장 많다. 이들 말고도 폐교 위기에 처해있는 학교는 이미 스무 곳이 넘는다. 전라북도교육청은 작은 학교 살리기 정책을 시행하겠다면서도 아예 폐교 관련 조례를 개정해 절차를 간소화했다. 사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환경에서 학교 통폐합은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래서 더 우려되는 것이 있다. 공간과 이름을 잃게 된 폐교의 쓰임이다. 오랫동안 마을의 중심이 되었던 이 공간이 소멸 위기의 마을을 일으키는 거점이 될 수는 없을까. 교육기관이 앞장서 길을 열어주었으면 좋겠다. / 김은정 선임기자
2024년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가 밝았다. 열두 띠를 나타내는 십이지(十二支)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상상의 동물인 용(龍)은 동서양의 신화와 설화‧전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신성한 존재다. 우리 민족에게도 용은 최고의 영물이다. 제왕을 나타내고, 희망과 성취를 상징한다. 그런 만큼 용과 관련된 전설과 지명을 갖고 있는 곳이 전국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전통도시 전주도 그렇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바로 완산동 ‘용머리고개’다. 전국적으로 용머리를 뜻하는 용두동(龍頭洞)이라는 지명은 꽤 많다. 글자 그대로 동네의 모습이나 인근에 있는 봉우리의 형태가 용의 머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으로 서울 동대문구와 대전 중구, 광주 서구와 북구, 경기도 고양시, 경북 김천시, 충북 충주시, 충북 제천시 등에 용두동이 있다. 이들 도시와 비교하면 공식 행정지명조차 되지 못한 채 구전으로 내려온 전주 용머리고개의 전설과 명성은 그리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전주 용머리고개에는 더 특별한 이름을 가진 오래된 마을이 있다. ‘용머리 여의주마을’이다. 여의주를 입에 문 용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곳이니 범상치 않다. 하지만 전주의 오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 마을은 이름값을 하지 못한 채 정체성을 잃어갔다. 그러면서 시민의 기억 속에서도 점차 밀려났다. 도시의 중심이 외곽 신도시로 옮겨지면서 주거환경 노후화와 인구감소 등으로 마을은 활력을 잃었다. 골목길 안쪽부터 공·폐가가 속출했다. 그러던 중 전주시와 시민사회가 나서 잠자던 용을 흔들었다. 도시 경쟁력 회복과 주민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관련 법률에 따라 시행하는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서다. 거창한 이름이 무색했던 이 마을은 지난 2018년 국토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선정되면서 새로운 변화를 길을 걸었다. 2022년에는 마을에 생태숲이 조성되고,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공동이용시설이 문을 열었다. 빈집을 허문 자리에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공동이용시설에는 카페와 회의실, 임대사무실 등이 들어섰다. 주민들은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해 다양한 마을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 마을 생태숲에는 초미니 도서관인 옛이야기도서관이 들어섰다. 지상 1층, 전체 건물 면적 32㎡ 규모인 이 도서관은 국내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으로 화제를 모았다. 소공원 안에는 33㎡ 이상의 도서관을 지을 수 없도록 한 공원녹지법 때문에 크기를 최소화한 것이다. 이 도서관은 용의 전설을 비롯해 전통도시 전주의 보석같은 옛 이야기들을 미래 세대에 전달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지난해 이 유서 깊은 용의 마을은 도시재생의 성공 모델로 꼽혀 전국적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범상치 않은 마을 이름도 다시 알릴 수 있었다. 오랫동안 잠자던 용이 깨어나 승천을 채비했다. 그리고 다시 용의 해다. 용머리 여의주마을과 그 여의주를 품은 전주‧전북의 힘찬 용틀임을 기대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새만금 예산 3000억이 복원된 데는 나름 정치권의 선방 결과라며 애써 자위해 보지만 그래도 실망감은 감추지 못한다. 큰 폭으로 깎여 충격파가 컸던 탓인지 일부만 회복됐는데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 이 여파로 전체 예산 확보 상황을 보면 양적으로 질적으로 기대치에 못 미치는 건 사실이다. 전국 9개 광역자치단체 중 사실상 전북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구체적으로 새만금 신공항의 경우 내년 착공을 앞두고 부처 요구 580억 중 327억만 반영됐다. 글로벌 시대 국제공항은 그 지역의 경쟁력이자 외자 유치의 관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유독 새만금에만 '적정성 검토' 라는 족쇄까지 채워 예산 집행마저 어려운 처지다. 여차하면 사업 중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안갯속 국면이다. 타시도 공항과 비교하면 정치 공학적 노림수도 무시할 수 없는 기류다. 부산 가덕신공항만 하더라도 내년 예산이 5300억으로 전년비 41배나 늘었다. 주목할 점은 공항 개항의 명분이었던 2030 부산세계박람회가 실패했음에도 당초 2035년 준공 일정을 6년 앞당겨 2029년에 마무리 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통령이 부산에 내려와 이 같은 개항 시기를 직접 못 박은 것이다. 가덕신공항은 박근혜 대통령 시절 최대 이슈였던 동남권 신공항 후보지로 밀양, 김해와 3파전 끝에 김해 신공항에 밀려 탈락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때 김해 신공항을 백지화시키고 여야 특별법을 통해 가덕도 신공항을 선정함으로써 정치적 특혜 논란이 일었다. 뿐만 아니라 충남 서산공항은 지난 5월 예타 통과를 못했는데 우회적 루트를 통해 기사회생한 가운데 10월엔 대구경북 신공항이 예타를 면제 받았다. 잼버리 파행을 빌미로 기다렸다는 듯이 무더기로 새만금 예산 삭감을 강행했다. 이를 통해 정부 여당의 책임을 돌리고 야당 독점의 지역 정치권에도 일종의 견제구를 날린 것이다. 한마디로 전북에 크게 아쉬울 게 없다는 속셈이다. 일각에선 도내 의원들의 예산 투쟁을 깎아내린다고 못마땅해 하는 눈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둔 그들에겐 이 문제에 사활이 걸려 있다. 다시는 전북 몫을 빼앗기지 않도록 정치권이 단합해 자강 노력을 기울이라는 채찍인 셈이다. 전북이 항공 오지로 전락한지도 꽤 됐다. 정부 홀대는 물론 도민 일부의 부정적 견해도 한몫했다. 그들은 정부 논리에 따라 새만금 신공항의 경제적 가치를 비관적으로 본다. 공항이야말로 지역간 연결고리인 동시에 세계 진출의 통로 역할을 한다. 실핏줄처럼 연결된 공항 현황을 보면 더욱 뚜렷하다. 인근 전남은 광주와 무안, 여수공항을 비롯해 충청지역은 청주공항, 부산 경남의 김해, 울산, 사천공항과 함께 TK는 대구와 포항공항, 강원도는 양양과 원주공항이 있다. 최근 논란을 일으킨 재경 도민회장의 새만금 신공항 반대 발언을 둘러싼 공방이 달갑지 않은 이유다. 도민 역량을 결집해도 모자랄 판에 자칫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격정된다. 김영곤 논설위원
때에 따라 떠오르는 단편적 생각이나 그 생각을 적은 글을 좀 멋스럽게 표현해서 단상(斷想)이라고 한다. 추일단상, 세밑단상 하는 식이다. 2023 계묘년 토끼띠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2024년은 갑진년 용띠해인데 곧 동터오틀 태세다. 올 한해를 보내는 전북인들은 지역에서 생활하든, 타지에서 활동하든 ‘새만금’이라는 세 글자가 가장 강하게 각인돼 있을 것이다. 새만금 잼버리에서 시작해서 새만금 예산삭감, 새만금 기업유치 등등 평소 새만금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이들조차 일희하고 일비했던 나날이었다. 친구가 직장을 잃으면 불황이고, 내가 일자리를 잃으면 공황이라는 말처럼 사실 각 개인들에게는 자신의 소소한 일상 하나하나가 지역공동체의 일 보다 훨씬 더 강하고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올해처럼 지역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전북인들이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일찌감치 없었다. ‘징게 맹갱 외에밋들’은 ‘김제 만경 너른 들’을 뜻하는 옛말이다. 사슴이 아름다운 뿔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잃듯, 금만 평야는 그 풍요로움 때문에 봉건시대에 탐관오리에 시달렸고, 일제강점기에는 더욱 가혹한 수탈의 대상이 됐다. 김제 죽산면에 있는 하시모토 농장은 일제시대 죽산면 농토의 절반 이상을 소유했던 일제 지주 하시모토가 수백명의 소작인들을 관리하던 곳이다. 익산 춘포면 대장촌 일대 역시 대대로 구마모토의 영주 가문이었던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일본 총리의 친조부가 이 마을을 개척한 대농장 소유주였다. 일제때 일본에서 아무런 주소도 없이 '조선 대장촌'이라고만 적고 편지를 보내도 제대로 배달됐다는 믿지못할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보면 대장촌 역시 얼마나 큰 농장이었는지를 가늠케한다. 예전 금만평야의 또다른 외연이 오늘날 새만금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과 낙후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었던 새만금이 중앙정부로부터 외면받는 현실을 목도해야만 하는 도민들의 심정은 가히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새만금 세밑 단상은 그래서 더 우울하거나 처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을 약 옆에 살 약도 있는 법. 어제 여의도 콘래드 서울에서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새만금 민간투자 10조원 달성을 축하하는 기념행사가 열렸다. 지금부터 꼭 10년 전 새만금개발청이 문을 연 이래 9년동안 1조 5천억원의 유치를 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성과임에 틀림없다. 일제가 패망한 뒤 광복 직후 국내 굴지의 기업인은 김연수 경성방직 회장과 박흥식 화신백화점 회장 정도였다. 6∙25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본금 기준(1955년) 대한민국 재계 순위는 1위 삼양사, 2위 대한석탄공사, 3위 한국산업은행, 4위 락희화학공업사, 5위 금성방직 등이었다. 삼성그룹, 삼호그룹, 개풍그룹 등은 1950년대말에 이르러서야 재계 최상위권에 등극하게 된다. 며칠전 하림그룹이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 HMM(옛 현대상선)을 인수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일약 재계 순위 13위에 랭크될 전망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새만금이 살아나면 전북에서 굴지의 기업이 활동하게 될 것이다. 새만금 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던 도민들이 갑진년 청룡의 해에는 기쁨과 희망을 찾았으면 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한지발은 한지를 만들 때 쓰이는 도구다. 한지가 세계에서도 우수한 종이로 평가받는 바탕에는 이 한지발이 있다. 한지발은 한지를 뜰 때 쓰는 대나무로 만든 발이다. 못을 쓰지 않고 만든 발틀 위에 올려놓고 물질을 하여 종이를 뜬다. 좋은 한지는 우선 재료가 좋아야 하지만 한지를 뜨는 과정에서 이 한지발의 면이 고와야 매끄러운 종이를 얻을 수 있다. 질 좋은 한지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인 셈인데, 안타깝게도 그 쓰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제작 과정이 어떤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지난 2005년 국가무형문화재 종목이 된 한지장과는 달리 한지발장은 종목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지발을 만드는 과정은 까다롭다. 재료의 특성을 잘 알고 단계마다 그에 맞는 도구를 잘 다루면서 숙련된 기술이 더해져야 원하는 한지발을 만들 수 있다. 그만큼 만드는 사람의 지혜와 슬기, 끈기가 있어야만 가능한 고단하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인지 한지발을 만드는 사람은 예전부터 많지 않았다. 그조차도 점점 줄어들어 한지발을 만드는 사람은 전국에서도 단 한 명. 전주에서 활동했던 도 문화재 기능보유자 유배근 명장이 유일했다. 한지발 없이는 한지를 뜰 수 없고 제대로 된 한지발은 유배근 명장이 없이는 만들 수 없으니 그의 존재 자체가 한지의 맥을 잇는 상징이었던 셈이다. 1940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유배근 명장은 어린 시절, 가업이 된 한지와 한지발 만드는 일을 익혔다. 한지발은 그의 어머니가 먹고살기 위해 배웠던 기술이다. 그가 살던 동네에서 한지발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의 어머니뿐이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한지발 기술을 이어받았다. 결혼 후에는 아내와 함께 한지 공장을 운영하면서 한지발 제작을 이어갔다. 한지가 잘 팔리던 시절에는 자연히 한지발 수요도 늘었다. 덕분에 80년대 초반에 문을 연 한지 공장은 직원이 30명이나 될 정도로 성업을 누렸다. 그가 직접 만든 한지발로 떠낸 질 좋은 한지가 유배지란 이름으로 팔려나가면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가 한지발 제작에만 매달린 것은 한지 폐수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그 뒤 온전히 전통 한지발 제작에만 일상을 바쳐온 그는 한지발을 만드는데 필요한 도구들마저 중단될 정도로 환경이 어려워진 환경에서도 직접 도구를 만들어 그 길을 지켜왔다. 그는 2005년 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50년 가깝게 한지발을 만들어온 그의 시간이 비로소 빛을 얻게 된 지 열 여덟 해. 갑작스러운 부음이다. 유배근 명장이 23일 세상을 떠났다. 섬세하고 미려한 한지발이 그의 이름으로 남은 자리, 이제 길을 함께 걸어온 아내와 아들이 이어갈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 김은정 선임기자
연말연시 다시 축제의 계절이다. 설국을 기다려온 겨울축제들이 전국 곳곳에서 줄지어 열리고 있다. 올겨울 전북은 유난히 시리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 희망을 얘기해야 하는 때인데도 분위기가 냉랭하다. 그래도 철따라 열리는 잔치는 거를 수 없다. 지난 주말 전북 곳곳에서 겨울축제가 일제히 개막해 2~3일간의 짧은 일정을 마무리했다. 임실 산타축제와 진안 마이산 겨울동화축제, 무주 꽁꽁놀이축제 등이다. 그런데 정작 그곳에서는 소식이 없다. 2012년 시작돼 겨울철 대표축제로 자리잡은 남원 ‘지리산 바래봉 눈꽃축제’다. 매년 12월 하순부터 이듬해 2월 중순까지 약 50일 동안 바래봉 자락 설원에서 열리는 눈꽃축제에는 전국에서 수만명의 방문객들이 몰려 추억을 쌓았다. 지리산 바래봉 자락에서는 1년 내내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린다. 특히 봄철 철쭉제와 겨울 눈꽃축제는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두 축제 모두 민간단체인 운봉애향회가 주최‧주관하고 남원시가 후원한다. 남원시가 직접 행사를 주최하는 춘향제‧흥부제와 달리 지역민과 행정이 긴밀하게 협업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눈꽃축제가 올해 심상치 않다. 발표를 미루고 있지만 사실상 올겨울엔 축제를 열 수 없게 됐다. 아직껏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어 지연 개최도 쉽지 않다. 이대로면 다음해에도 축제 정상 개최를 장담할 수 없다. 기후 탓이 아니다. 주관단체인 운봉애향회와 매해 2000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후원기관 남원시의 갈등이 이유다. 여기에 남원시의회가 축제 회계 내역 비공개 등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실타래가 복잡하게 꼬였다. 행사가 열리는 시유지(지리산허브밸리)에 설치된 컨테이너박스와 대형 비닐하우스 등 가건물 처리 문제가 발단이 됐다. 이들 가건물은 안내소와 먹거리장터‧특산물 판매장 등으로 쓰이고 있다. 축제 기간에 한정해 부지 점용허가를 내주고 있는 만큼 일단 이를 철거해 허가 조건을 이행한 후 다시 점용허가를 신청해야 한다는 게 시의 주장이다. 지난해 겨울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축제를 재개해 큰 성황을 이뤘지만 1년 만에 다시 중단사태를 맞게 됐다. 여기에 전국 제일의 철쭉 군락지로 오랫동안 명성을 이어온 ‘바래봉 철쭉제’도 최근 들어 ‘꽃 빛깔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과 함께 방문객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관광자원 관리 부실과 방만한 행사 운영이 도마에 올랐다. 천혜의 자연자원으로 관광객을 끌어 모았던 지리산 바래봉 자락 축제들이 급속히 퇴색하고 있다. 물론 바로잡아야 할 게 있다면 행사를 한 해 거르더라도 제대로 짚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행사 주최‧주관 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 발짝 물러나서는 안 된다. 전국에 널리 알려진 바래봉 철쭉제와 눈꽃축제는 관광 남원의 이미지와 직결된다. 시린 계절을 보내고 바래봉의 눈꽃과 철쭉이 더 활짝 피어나기를 기대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무려 78% 예산이 깎인 새만금에 불똥이 튀면서 사실은 잼버리 파행의 원인 규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조만간 발표되겠지만 그 당시 잼버리 준비 상황을 되돌아 보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언론도 연일 이 점을 지적하며 대회 차질을 우려하는 보도가 쏟아졌다. 하지만 코앞에 다가온 개회식을 앞두고 공동위원장을 비롯한 조직위 핵심들은 성공 개최를 띄우며 악화된 여론 잠재우기에 급급했다. 민심 달래기용 그들의 퍼포먼스는 불과 며칠 만에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 뒤 국민 감정을 더욱 자극한 건 그들의 책임 회피성 발언과 함께 폭탄 돌리기식 떠넘기기, 유체 이탈 화법의 문제 접근 방식이었다. 도의회가 지적한대로 총체적 부실은 기초공사가 잘못된 데서 비롯됐다. 공무원의 고질적 무사안일을 겨낭한 것이다. 전체적 개선 분위기와 달리 직원 개개인이 공직사회 물을 흐리게 하는 미꾸라지 행태는 여전했다. 잼버리 기간 수의계약 과정에서 터무니없는 업체에 일감을 주고 허위 실적증명서가 악용되는가 하면 쪼개기 발주를 통해 수의계약 비율이 전국 평균 2배에 달할 정도로 특정 업체 밀어주기 의혹이 판을 쳤다. 다른 대회나 행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태마스터스 경우 113건 중 78건이 수의계약을 한 데다 심지어는 상한선 2000만원 초과한 계약도 33건에 달해 검은 고리의 유착관계가 얼마나 심각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 같이 편중된 수의계약과는 대조적으로 장애인 생산품 구매 실적은 법으로 강제 규정을 했음에도 목표치를 밑돌아 입방아에 오른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1% 구매를 의무화 했는데도 공무원들이 외면함으로써 법의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이런 기조에 따라 판촉 행사 등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해도 최근 3년새 실적이 고작 0.22~0.59%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처럼 두 얼굴의 공직사회는 그들의 자정 노력에만 맡기기엔 한계를 드러낸 지 오래다. 본인이 겪은 직장 상사 갑질과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선 득달같이 달려드는 반면 민원인이 당한 공무원의 갑질과 괘씸죄 행정은 아예 본체만체 하고 있다. 새만금 예산이 일부 복원되긴 했지만 그래도 빌미를 제공한 잼버리 파행에 대한 책임 문제는 불가피하다. 역대 대회를 통해 사전에 어느 정도 예상된 문제인 데다 준비 기간도 충분했는데 화를 자초한 건 조직위 무사안일에 귀책 사유가 있다. 앞서 지적한대로 기초공사를 튼튼히 하는 것은 공무원의 몫이다. 이게 부실하면 뿌리째 흔들리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주 내년 출범하는 전북 특별자치도와 관련해 도시브랜드가 표절 논란에 휩싸여 하루 만에 변경되는 홍역을 치렀다. 4억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고 내로라하는 전문가 그룹이 참여해 숙의를 거듭한 결과라니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이와 비슷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란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김영곤 논설위원
교통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1970년대에는 라디오에서 정규 방송 도중 간간히 이런 뉴스가 흘러나왔다. “∼병원에서 위급한 환자가 긴급히 Rh 마이너스 O형 혈액을 필요로 합니다. 해당 혈액형을 가지신 분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크고작은 사건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응급환자는 선의의 헌혈자로 인해 생명을 구하곤 했다. 세월이 좀 흐른 1980년대에도 사정은 비슷했는데 특히 TV자막을 통해 비슷한 유형의 호소가 이어지곤 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헌혈자를 구한다는 호소문이 난무하지 않을뿐이지 요즘에도 희생정신으로 무장한 선의의 헌혈자가 없는 한 응급환자 치료에 필수불가결한 혈액은 만성 부족상태다. 지난달말 현재 기준 혈액 보유량은 전국적으로 5.8일분, 전북은 5.3일분에 불과하다. 만일 혈액보유량이 1일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 보건복지부는 ‘심각단계’로 분류, 지속출혈이 있는 환자나 응급수술 환자, 수혈없이는 생명이 위급한 환자, 중환자 치료중인 암환자등에게만 우선순위를 두고있다. 일반인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사실 이름없는 헌혈전도사들이 우리 사회에는 제법 많다. 송태규 시인(전 원광중고 교장)은 가족 헌혈 횟수가 무려 700회가 넘어 유명한 헌혈전도사이자 헌혈명문가로 널리 알려져있다. 이영진 원광대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오창석 한솔케미칼 경영지원팀장, 김병호 전주신흥고 교장 등도 상상을 초월하는 헌혈 기록을 지닌 명실공히 ‘헌혈전도사’들이다. 전북도 강영석 국장의 경우 직장내에 헌혈동아리를 만들어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헌혈운동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장 앙리 뒤낭이 제창했던 적십자 운동의 일환으로 펼쳐지는 헌혈은 사실 인도주의의 발로, 그 자체다. 대한적십자사 전북혈액원(원장 강진석)은 지난 10월 4일 전북도와 함께 전북도민 헌혈의날 선포식및 헌혈 릴레이를 펼치고 있다. 전국적인 모범 사례로 평가 받으면서 타 시도에서도 잇따라 헌혈의날 선포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헌혈 직업군 분류에서 고교생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학교에서 단체로 하는 것은 봉사활동으로 인정하는 반면, 개인헌혈은 봉사활동 실적에서 제외, 헌혈 인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더욱이 조국사태를 거치면서 향후에는 고교생의 헌혈 전체를 봉사활동 실적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함에따라 향후 심각한 혈액 부족 사태가 우려된다. 지역보건 향상을 위해 시민들이 함께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때마침 오는 26일 오후 2시 전북대에서는 의미있는 행사 하나가 열린다. 김철수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헌혈의집 전북대 한옥센터가 공식적으로 문을 연다. 한옥센터는 전국 첫 사례라고 하는데 이번 행사를 계기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헌혈운동 붐이 일었으면 좋겠다. 올 11월말 현재, 전북의 헌혈 횟수는 총 9만742건이다. 수백번씩 헌혈을 한 이들의 희생정신은 두말할 나위없이 소중하지만, 한 사람의 백보 보다는 백사람의 일보가 더 가치가 있고 효과가 있는게 바로 헌혈이다. 청룡의 해인 갑진년 새해 전북에서 헌혈 횟수 10만 건을 당당히 돌파하길 간곡히 소망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인류를 괴롭혀 온 질병은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질병은 결핵으로 알려져 있다. 인류와 결핵의 관계는 석기 시대,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서 발견된 인골에 남아있던 흔적이 시작이다. 이미 석기 시대부터 수천 년 동안 인류를 괴롭혀 온 질병의 존재는 놀랍다. 결핵은 시기도 따로 없이 세계 전역을 휩쓸었다. 앞선 것은 유럽인데, 산업혁명을 치른 19세기 말 유럽에서 창궐했던 결핵은 20세기 들어서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휩쓸었다. 전염병인데다, 치료법도 없고 원인도 규명되지 못했던 시기였으니 전 세계를 휩쓴 결핵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을지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프레데리크 쇼팽, 에밀리 브론테, 안톤 체호프, 프란츠 카프카, 데이비드 로렌스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들도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결핵이 전염병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이후 치료제와 치료법이 개발되면서 사망률은 많이 감소했으나 ‘후진국형 질병’으로 치부되는 결핵을 완전히 퇴치하지는 못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결핵이 여전히 진행 중인 질병이고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발병률과 사망률이 가장 높다는 사실이다. 결핵의 존재가 새삼스러워지는 이유다. 10년 전만 해도 연말이면 학교 등 공공기관에서 의무적으로 사게 하는 ‘크리스마스 씰’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씰은 일종의 항결핵을 위한 모금 운동이다. 1904년 네덜란드에서 처음 발행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12월 캐나다 출신 선교 의사인 셔우드 홀(Sherwood Hall)이 처음 만들어 판매했다. 이후 부정기적으로 발행되다가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하면서 해마다 발행, 국가가 공공기관 의무구입 규정을 만드는 등 앞장서면서 범국민 모금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2014년 공공기관 크리스마스 씰 의무구입 규정은 폐지됐다. 판매 대부분을 공공기관에 의존하고 있던 크리스마스 씰 사업이 사라질 수도 있는 위기였으나 다행히 살아남았다. 우리나라 크리스마스 씰은 대부분 아름다운 도안으로 호평 받고 있다. 고유한 전통, 동식물 등 자연과 화제의 인물, 캐릭터 등 해마다 선정하는 주제도 다양하다. 결핵협회는 이제 크리스마스 씰 발행에만 그치지 않고 씰의 그림을 다양한 상품(굿즈)으로 만들어낸다. ‘크리스마스 씰은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라며 사랑과 나눔의 실천을 독려하고 있다. 씰은 10장 세트가 3,000원이니 부담도 적다. 70주년을 맞은 올해는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 속 주인공이 등장했다.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씰을 샀다. 누구에게나 즐겁고 반가운 선물이 될 것 같다. / 김은정 선임기자
안호영 의원 통합 결단, 끝까지 최선을
전주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본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HAI 시대, 지역사회 감응에도 주목
리셋되는 행정, 중단의 비용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영화 ‘사람과 고기’를 보고
전주시, 고사 위기의 기령당 활성화하라
김 지사의 컷 오프설은 사실무근
지금, 우리에게 ‘호남’이란 무엇인가